1945 중국, 미국의 치명적 선택 - G2 시대는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리처드 번스타인 지음, 이재황 옮김 / 책과함께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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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유명한 현대 중국학 권위자인 존 K, 페어뱅크 교수가 있던 하버드 대학에서 중국 역사를 공부하고 이후 베이징의 공산 중국에 파견된 미국 언론인으로 이름을 알린 리처드 번스타인의 1945 중국, 미국의 치명적 선택’을 일독했습니다. 원제는 ‘China 1945 Mao’s Revolution and Ameriac’s Fateful Choice’ 인데요. 우리말로 번역한 제목과 원문이 뭔가 비슷하면서 다른 느낌을 주는데, 책을 다 읽고 나니 마오의 중국이 될 수 밖에 없는 의미가 있더군요. 물론 역사적으로도 마오의 공산당이 중국의 권력을 손에 쥐게 된 것이죠. 약간 논외로 얼마전에 소개해 드린 리처드 J. 번스타인의 ‘악의 남용’을 기억하실겁니다. 철학자가 중국 현대사에도 관심있었나 하는 호기심을 절로 느꼈는데, 알고 보니 이 전자와 후자의 번스타인이 서로 다른 사람이더군요. 저는 ‘악의 남용’의 인상이 뇌리에 깊게 남아서 같은 저자인 줄 알고 좋아했었는데요. 저의 착각이었습니다.

이 책의 전체 분량은 약 680여 페이지입니다. 인용된 주와 출처가 표시된 분량이 비교적 적은데요. 그래서 상대적으로 본문의 분량이 그만큼 적지 않습니다. 이번에는 개인적으로 일에 쫓기다보니 완독이 너무나 늦었던 것 같습니다. 거의 8일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었네요.

개인적으로도 적잖은 중국 관련 서적을 읽어봤지만 번스타인의 이 글은 좀 더 1941년부터 1945년 시기의 사실에 근접한 중국과 미국 정치의 진면목을 보여준다는 점에 의미를 주고 싶습니다. 소련의 스탈린과 미국의 루스벨트, 중국의 장제쓰와 마오쩌둥의 그동안 접하지 못했던 진면목들을 수많은 자료들과 역사적 분석 등을 통해 독자들에게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는데요. 범위를 한정짓기에는 약간의 무리가 있지만 중국의 국공 내전이나, 왜 국민당의 장제쓰는 몰락했는가 등의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충분한 이해가 드실겁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당시 세계는 루스벨트와 처칠의 유럽에서의 나치 독일의 축출을 위해 과거 히틀러와 불법적이고 비도덕적인 불가침 조약을 맺은 스탈린의 소련과 전략적인 고려에 힘입어 손을 잡는데요. 이는 여러 학자들이 제기한 대로 루스벨트와 처칠의 정치도덕적 입장을 크게 훼손시킨 사건으로 그만큼 유럽 전선에의 상황이 심각했기에 그와같은 매우 정치적인 선택을 하게 됩니다. 그 즈음에 중국은 일본에게 밀리고 있던 장제쓰와 국민당 정부에 세력에 밀려 잠시 도태되어 있던 마오쩌둥이 주요한 정치 행위자들이었습니다. 미국의 루스벨트 행정부는 처음에는 장제쓰에 대한 노골적인 불신이 이 시기에는 거의 없었으나, 국무부 중국 전문가들은 장제쓰의 국민당 군과 장제쓰 개인의 권력에 대한 야심 등을 이미 인지하고 있었는데요. 소련의 스탈린도 마찬가지로 장제쓰와 마오쩌둥의 대립은 일본군과의 전황에 하등 좋은 이유가 없으며, 길게는 중국에서의 불리한 전황이 만주의 100만 일본군으로 하여금 과거 1904년과 같은 일본 제국주의에 침략 구실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장제쓰와 마오쩌둥의 합작은 매우 시급한 요구였습니다.

거의 특사로 파견된 패트릭 헐리 상원의원이 양 측 사이의 중재자로 노력하면서 초기에 장제쓰와 마오쩌둥 간의 협력의 분위기가 시도되긴 하지만 미국 정부의 중국에 대한 조심스럽고 복잡한 이해관계와 헐리 대사와 미 국무부 중국 전문가들과의 대립으로 루스벨트 대통령이 최종적으로 헐리의 안을 채택하면서 마오쩌둥의 공산당과 거리를 두는데요. 이 시기의 마오쩌둥은 자신이 대외적으로 민주주의적 이념을 선호하는 이미지를 선전하면서 미국과 중국 공산당이 협력할 수 있음을 내비치지지만, 저자인 번스타인이 지적한대로 마오쩌둥 그는 후에 자신이 수많은 반대파와 정적들을 제거함으로써 이것이 하나의 정치적 술수에 지나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충동적이고 기만과 술책에 능수능란했던 마오쩌둥의 면모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장제쓰의 국민당은 버마에서의 일본군을 효과적으로 제압한 것을 들어 미국 조야에 퍼져있던 ‘무능하고 대책없는 수준’은 처음에는 아니었던 것으로 재조명을 하고 있는데요. 그는 중국인들에게 ‘대원수’라 불리우며 중국 서해안 지역 일대의 일본군에 맞서 비교적 고립된 상태의 상황에서 지원된 소수의 물자로 잘 버티고 있었다는 점으로 저자는 재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전체적인 맥락에서 ‘100만이 넘는 효율적이며, 훈련과 장비가 잘 되어 있는 일본군으로부터’ 몇년간의 전선 유지를 맡아 온 것은 폄훼받을 일은 아니겠지요. 다만 1945년 이후 매우 실망스런 공산당과의 대결은 전반적인 부분에서 군의 무능과 부패를 바로잡지 못한 수장의 책임은 피할 수는 없을것입니다.

이처럼 눈앞에 보이는 듯한 미국과 중국의 양 거두 정치인들간의 정치 게임과 많은 자료들을 적시 적소에 배치하고 당시의 정치 상황에 대한 일목요연한 분석은 당시 상황을 주제로 한 여느 역사 서적보다 탁월하다고 여겨집니다. 읽다 보면 눈앞에 잡히는 현실감에 저역시 놀라웠습니다. ‘중국인들은 잘못된 미신의 일환으로 죽은자의 피로 적신 빵을 먹으면 병이 낫는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는 자료처럼 꽤 놀라운 것이 많습니다.

끝으로 1949년 중국 공산당의 내전 승리와 소련의 핵실험은 미국 정부에게 있어선 매우 큰 충격으로 다가왔는데요. 당시 미 의회는 중국 대륙에서의 국민당 정부의 패퇴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정치인들간에 온갖 정치 설전과 비난전이 있었습니다. 의회를 통해 상응하는 그 책임을 묻겠다는 소리도 들렸는데요. 여기에 저자는 이러한 분석을 합니다. ‘루스벨트는 처칠과 달리 스탈린이 전후 미국과 우호 협력의 관계로 남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갖고 1945년 4월 그가 죽는 순간까지 이를 놓지 않았으며, 그가 위독한 시기에 중국 국공 내전에 대한 리더십이 실종되어 미국 정부 고위층에 있는 어느 누구도 중국 문제에 관해 책임을 다하지 못했고 뒤이어 트루먼 행정부에 들어서도 중국 인식에 대한 혼란이 지속되었다’ 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1949년의 중국 공산당의 내전 승리가 뒤이어 1950년 한국 전쟁에 영향을 미쳐 이 사건의 소회가 작다고 할 수 없겠습니다. 논외가 되겠지만 번스타인의 이 책은 여러 위키 백과에서 인용되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그만큼 일독하시면 중국 현대사와 관련해 보다 타당한 시각이 갖춰지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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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탈국가 이스라엘 - 팔레스타인 강탈의 역사
존 로즈 지음, 이정구 옮김 / 책갈피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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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 Israel : The Hijack State : America’s Watchdog in the Middle East. 인 이 책은 존 로즈의 1986년에 출간된 책을 최근에 국문 ‘강탈국가 이스라엘’로 번역한 글입니다. 최초 출간이 1986년이라 그 전에 국내에 번역이 되었는지 검색을 해봤는데요. 따로 나오지는 않더군요. 요즘의 번역 출간 추이를 봤을 때 꽤 시간차이가 있는데요. 아무래도 이런 부류의 책은 출판을 하는 것이 오히려 리스크가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같은 사람에게는 매우 반갑기도 합니다. 논외로 원제보다는 국문 제목이 좀 더 순화된 표현인 것 같은데요. 이 책을 읽고 나면 원제의 의미가 이해 되기도 합니다.

소위 ‘시오니즘 운동’ 이라 불리우는 유대인들의 국가 건설 노력은 1945년 세계2차대전이 끝나고 영국과 뒤이어 미국의 외교적 묵인하에 원래 그 지역에 살고 있던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인들이 유입되면서 시작되는데요. 여기에 존 로즈도 밝히고 있지만, 2차대전 이후 유럽의 유대인들이 거의 대다수가 히틀러에 의해 희생되었지만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유대인들 다수가 중동으로의 이주 보다는 유럽과 미국 등지로의 이주를 선호했고 이는 시오니즘 세력과 분리에서 이해하는 것이 좀 더 명확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얼마전에 읽은 존 J. 미어샤이머의 ‘이스라엘 로비’에서는 미국 내의 이스라엘과 유대인의 로비 단체 및 이익 집단이 미국 의회와 백악관에 벌이고 있는 금권 로비에 대해 비교적 상세히 나오고 있는데요. 미국 정부가 ‘유대주의 로비’에 이스라엘에 대한 무비판적인 행태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매우 오해이며, 이스라엘 자체는 미국의 중동 정책에 있어서 중요한 교두보이고, 중동의 정세는 석유와 관련하여 미국의 정계 및 경제계에 있어서 중요한 이해관계입니다. 미국에 고분고분하지 않는 중동 정권들을 길들이는데 이스라엘 만큼 요긴한 정치적 수단이 없다는 점에서 왜 미국이 이스라엘을 안고 가는지에 대해 이러한 배경이 있습니다. 본문에서 밝히는 저자인 로즈의 입장도 이와 비슷합니다.

여기에 로즈는 더 덧붙여, 그동안 미국이 이스라엘에 비교적 최신의 무기들을 이스라엘에 제공한 것은 미 방산업체들의 요구라고 볼 수 있는데요. 사실상 이스라엘이 이 무기들을 사용함으로써 그 실효성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에 대한 정보들을 미국측의 제공한 것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즉, 미국이 일방적으로 이스라엘 정권과 국가 유지에 지원을 나서는 것은 무조건적인 인도주의적 입장에서 벌이는 일들이 아니라는 점이죠.

끝으로 세계대전 와중에 ‘홀로코스트의 지옥’에서 살아남은 민족이 거의 나치와 비슷하게 팔레스타인들과 주변 아랍민족을 다루고 있다는 것은 인류 역사의 선명성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거의 대부분의 주변 요건을 배타적으로 받아들이고 적극적인 힘의 논리로 대하는 것은 유대인들과 이스라엘의 논리가 얼마나 빈약한지 충분히 깨닫게 해줍니다. 로즈는 1982년 팔레스타인 수뇌부를 제거하기 위해 레바논 남부와 수도인 베이루트에 행한 대규모 이스라엘 공군기에 의한 융단 폭격과 지금도 제대로 파악되지 않고 있는 무고한 민간인들의 희생자 수 등을 고려했을 때 이런 상황을 거의 묵인한 국제사회와 오히려 이를 부추긴 미국과 서구의 행태를 봤을 때 견고한 국가 체제와 국력의 결여가 어떠한 결과를 갖고 오는지 이 레바논의 사례로 교훈을 얻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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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계급투쟁 - 난민과 테러의 진정한 원인
슬라보예 지젝 지음, 김희상 옮김 / 자음과모음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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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경제학의 피케티와 함께 가장 많이 인용되고 있는 슬라보예 지젝의 ‘새로운 계급투쟁’을 읽었습니다. 지젝은 우스개로 동시대의 슬로베니아인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인물이라고 평가받는 것처럼 일반인들에게 적지 않은 영감과 영향을 끼치고 있는데요. 저 역시 요즘 유럽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대중영합주의적 정치 현상과 시리아와 리비아를 비롯한 지역에서의 난민 발생과 이 난민들이 유럽에 유입되는 현상에 대해 좀 더 이해가 필요해서 이번에 지젝의 글을 처음으로 잡았습니다.

일단 번역은 참 나무랄데가 없었다고 밝히고 싶습니다. 평소에도 지젝의 글쓰기가 그렇게 난해하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문과 번역이 잘 맞아서 그런지 일독이 꽤 즐거웠습니다.

여기에 소개된 글을 전체적으로 요약해 본다면, 파리를 비롯한 유럽 각지의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테러, 시리아, 리비아 사대로 비롯된 유럽의 난민 유입 등에 유럽인들에 의한 (다소 기계적인) 문화종교적 상대주의, 난민을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일부 사람들과 이를 악용하는 대중영합주의적 정치와 정치인들에 대한 비판을 매우 받아들이기에 더할나위 없이 효과적으로 독자들을 설득하고 있는데요. 합리적이고 이해가 쉬워 개인적으로는 지젝의 주장에 수긍이 가더군요.

요즘의 많은 문화 상대론자들이 이슬럼 성전인 쿠란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이슬람 근본주의적 배타성’에 비판을 가하지 않고 있고, 여기에 여성 성폭력의 대상이 되는 이슬람 제3세계 여성들에 대한 입장 또한 묵인에 가까운 상황에 진보주의와 좌파인사들의 동일한 행동에 비판을 서슴지 않고 있는데요. 이에 좌파는 ‘신앙인은 아니지만 광신에 반대하면서 자신의 고유한 문화를 존중하는 교인은 존중하자고, 흥미로운 것은 이슬람 자체가 이 구분을 명확히 했고, 오늘날까지 이를 지켜왔다는 것이다.’ 라는 주장을 지젝은 빗대어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의 이해에 관해 이슬람에 있어서 공적인 영역이 사적인 부분까지 간섭하는 종교의 세속화를 감안하지 않는 판단에 비판적 입장입니다. 소위 좌파가 이런 입장을 계속 유지해 왔고 저 역시 이 부분에 동의하는 편입니다.

사실 이슬람의 이러한 측면도 기독교 근본주의와 매우 유사하며 일련의 성당 사제들의 소아들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 문제를 예로 들며 바티칸이 이러한 현실에 눈감고 당시에 이를 은폐하기 급급한 진정한 이유도 병적인 현실에 비롯된 것이 아니라 로마 가톨릭 제도의 보존을 위해 소아성애가 필요했다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상당히 논란이 될만한 부분이지만 세계 가톨릭의 본산이라는 바티칸의 지위와 그로인한 기독교 근본주의적 시각에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근래에는 바티칸이 미국 시카고와 뉴욕 등지에서 벌어진 사제들의 이러한 문제에 차츰 공개적 입장을 밝히고 있는 것은 (이러한 배경에서) 꽤 용기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지젝은 교회가 이러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행위에 눈을 감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죠.

그리고 팔레스타인 지역에 나가 있는 현지의 이스라엘 군이 테러리스트로 의심되는 사람이 거주하고 있다고 여기는 가옥을 폐쇄하고 제거하는 상황에 여기에 투입되는 병사들의 개인적인 죄책감을 상쇄시키기 위해 가까운 가족들과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다소 동일시 하는 수단을 이용하고 있는 것에도 비판을 가하고 있습니다. 즉 제도가 뒷받침되는 이러한 일종의 교묘한 폭력에 일개 개인이 거부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 종교와 문화의 상대적인 부분이라고 용인하는 부분이 현실을 더 극단으로 치닫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현재의 유럽이 이러한 이슬람 난민들의 유입과 더불어 이런 난민 진입에 반대하는 대중영합주의적 정치가 고개를 드는 상황에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무차별 테러에 사심없이 비판하고 반대하며 최소한의 인권의 측면에서 여성과 아이들의 보호받을 권리를 요구하는 것이 좌파들과 진보의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억압받는 자들의 세계적 연대를 통해 단순히 종교라는 이유만으로 그 그늘에 도사리고 있는 폐해들에 눈을 감지 않고 비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글은 강조하고 있습니다. 꽤 얇은 분량의 글이지만 근래 논란이 되고 있는 유럽의 현상과 배경을 잘 설명하고 있는데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인용된 것들도 비교적 평이하고 이해가 빠른것도 글 전체적으로 긍정적인 부분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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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위기의 정치학 - 기로에 선 유럽, 경제의 위기인가 정치의 위기인가
울리히 벡 지음, 김희상 옮김 / 돌베개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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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에서의 후기근대론 내지는 근대사회정치학으로 대표되는 울리히 벡의 짧은 3편의 에세이를 실은 ‘경제 위기의 정치학’을 읽었습니다. 울리히 벡은 앞서 설명한 후기근대론을 대표하는 3명 중의 한 사람인데요. 앤서니 기든스와 지그문트 바우만이 나머지를 차지합니다. 저는 학부시절 때 ‘성찰적 근대화’를 인상깊게 읽었는데요. 1999년경으로 기억되네요. 식민주의로 비롯된 유럽의 근대적 발전에 대한 아주 총체적인 반성과 해석으로 유명한 글로 기억납니다.

지금부터 소개해드릴 이 ‘경제 위기의 정치학’은 2013년 국내에 번역 출간되었는데요. EU통합의 역사에 대한 조홍식 숭실대학교 교수의 보론까지 들어가 있을정도로 독자들에게 보다 나은 이해를 제공하려는 출판사의 노력도 보입니다. 오늘날 사회학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울리히 벡이 2012년 그리스의 금융위기로 인한 당시 유럽사회에 비등했던 유럽 통합의 회의론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를 담고 있습니다. 주목할 점은 독일사회의 독일인들이 이 EU와 유럽 통합 과정 및 단일 화폐 유로화에 대한 입장 등을 벡의 글을 통해 접할 수 있었는데요. 메르켈 독일 총리에 대한 정치적 평가라든지 남부 유럽의 국가들을 포함한 EU를 이루는 국가들에 대한 정치 상황의 객관적 입장과 그 이해를 담고 있습니다. 특히 벡이 평생을 걸쳐 연구한 사회학의 입장에서 독일의 입장과 주요 EU의 상황에 대한 설명과 해석은 남다른 부분이 있더군요.

그리스는 오랫동안 군부 독재 정치에 놓여 있었으나 EU에 가입하고 그 틀에서 경제적 번영을 누렸는데요. 많은 그리스는 자신들의 국가 경제 위기에 독일을 비롯한 주된 요구 즉, 강력한 긴축 재정에 대한 그리 정치권의 노골적인 불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 국민들 자체는 EU의 탈퇴를 바라지 않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가치가 없이는, 그 문화적 유산과 품위를 잃어버린 유럽은 아무것도 아니다.’ 라고 언급되는 것처럼 국민국가의 전통적 해석에만 몰두해서는 유럽 전체가 중요시하는 자유민주주의적 가치를 등한시하는 결과에 이를 수 있으며 그리스의 표면적 상황도 이러한 가치 위에서 양자가 노력해야 한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사실상 그동안의 유럽은 미국과 영국으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의 탈을 쓴 자본주의를 복지라는 무기로 길들여왔으며, 여기에 유럽적 보편주의로 다수의 회원국들과 이해의 노력을 기울여왔다고 저자는 평가하고 있습니다. 2차대전 이후 사과와 배상을 거듭해 온 독일은 메르켈 총리 대에 이르러 독일 자신이 주체가 되어 남유럽을 비롯한 주변국들에게 저축과 긴축 재정을 잠정적으로 요구해왔지만 삶을 대하는 태도가 워낙 서로 상이하다보니 그동안 EU에서 독일이 프랑스와 더불어 노력해 온 과정이 녹록치 않았음을 알게 되더군요. 전후 주된 전범국가가 이런 지도국의 위치에 오른 것 만으로도 참으로 대단한 것인데요. 과거와 마찬가지로 이러한 독일의 노력이 오늘날 우파 포퓰리즘 정치가 창궐하고 있는 시점에서 머리를 드는 자국의 국수주의를 억제하고 전통적인 유럽의 민주주의적 가치가 위협받게 만드는 위기가 일견 그리스를 비롯한 경제 불안 요인이 부채질을 하긴 했으나, 벡의 평가대로 단순히 오늘날 유럽의 위기가 통화의 위기만이 아님은 확실합니다.

저의 짧은 예견대로라면 조만간 울리히 벡 교수가 유럽의 포퓰리즘 정치의 확산에 대한 글을 내놓지 않을까 기대해 보는데요. 사회학적인 측면에서 대중의 이러한 정치적 변화를 분석하는 것이 학자 자신에게도 꽤 매력적인 일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이렇게 오랜만에 접한 울리히 벡의 글이 꽤 현실적이어서 저는 나름대로 의미있게 느껴졌습니다. 사회학을 연구하는 많은 학자들이 일종의 객관화된 시각으로 사회를 분석하고 흐름을 연구하는데요. 지그문트 바우만 역시 참여하는 사회학이야말로 오늘날 너무나 요청되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앞으로도 이러한 글들이 더욱더 많이 출판되기를 개인적으로도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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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주하는 중국 - 중국 문제, 어떻게 볼 것인가?
니와 우이치로 지음, 이용빈 옮김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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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주중 일본 대사를 역임한 니와 우이치로의 지난 2014년 당시 일본의 베스트셀러였던 ‘중국의 대문제’를 2015년에 번역 출간한 ‘질주하는 중국’ 을 읽었습니다.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뒷부분의 옮긴이가 쓴 후기에 역자가 2014년 일본 나고야에서 머물다가 발견한 이 책을 입수해 국내에 소개하는 작업을 단계적으로 진행해왔다고 밝히고 있는데요. 출판사 차원의 작업이 아니라 이 책을 흥미롭게 본 역자가 개인적 차원에서 출간 노력을 기울였던 모양입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알 수가 없으나 어찌됐든 흥미롭긴 하더군요.

일단 저 개인적으로는 일본인이 쓴 이러한 글들을 읽을 때, 최대한 집중을 해서 보는 편인데요. 소위 일본 지식인들이라고 불리우는 이들의 중국과 한국을 보는 관점에는 일견상 조금 차이는 있지만 일관된 관점이 있습니다. 한국인들과 중국인들이 역사문제를 정치 및 경제를 비롯한 여러 면에서 일본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과거의 문제로 해석해 보고 있다고 여기는 등의 작위적인 이해가 보입니다. 이를테면 근래의 한중일 삼국의 냉각기에는 이렇게 일본을 기저에 깔린 역사관으로 불편하게 생각하는 한국과 중국의 인식이 비롯되어 있다고 여기는 것이죠. 뭐 사실 이러한 관점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속편하기는 하겠습니다만 일본 역시 민족주의적 관점이 매우 팽배한 내부 문제를 안고 있는데 자신들을 돌아보지 않고 무조건 이웃 국가들의 책임 문제로 돌리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는 않겠죠.

다만 저자인 니와 우이치로는 조금 평범한 일본인들과는 조금 다른 이해의 폭을 갖고 있는데요. “명확히 기록하자면 일본은 무조건 항복했던 패전국이다. 일본은 ‘분할통치’되어도 도리가 없는 상황이었다. 미국이 없었다면 중국과 소련에 분할 통치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잊어서는 안된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저도 이 문장이 의도하는 바가 정확히 뭔지 알기 위해 몇번을 계속 읽었는데요. 저런 저자의 관점이 립서비스가 아니라면 꽤 일반적인 역사로서 이해하고 있는 일본인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책 소개의 앞서 사설이 조금 길었습니다. 책은 전체적으로 시진핑 시대의 중국과 앞으로 일본과의 관계가 어떻게 될지에 대한 관점과 일반적인 중국 정치와 사회에 대한 분석을 첨언으로 담고 있습니다. 경제 성장과 지방 분권, 관료들의 부패 문제, 농민공, 소수 민족 문제 등을 대사를 역임했던 시절에 중국 각 지역을 방문하여 바라보고 느꼈던 개인적 체험을 곁들이며 서술하고 있습니다. 베이징의 일본 대사가 아주 특이하게 일본 중앙 정부의 눈밖에 날 각오를 하고 중국 각지를 돌아본 행동은 대단하다고 느껴지더군요. 자신의 소신대로 좀 더 중국과 중국인들을 명확히 알기 위해서라고 그 이유를 들고 있는데요. 책상 앞의 책상물림은 아니어서 꽤 설득력이 있습니다.

저자는 현재 일본이 중국과 당면하고 있는 문제로는 ‘센카쿠/댜오위다오’에 대한 영토 분쟁으로 보고 있으며, 일본측에서는 센카쿠/댜오위다오에 대한 영토 분쟁은 없다고 일관하고 있지만 중국은 1992년 영해 및 인접 구역 법이라는 볍률을 제정하며 “댜오위다오는 중국 영토”라고 명확히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와 관련한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2012년 9월 9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개최된 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이후의 정상회담에서 회의를 마친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와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복도에서 이른바 ‘복도회담’을 했다고 나오는데요. 센카쿠 지역에 대한 일본의 정부쪽 구입과 관련해 후진타오 주석이 이에 대해 물었고 그런 과정에서 두 정상이 복도에서 싸운 모양입니다. 저자는 이를 ‘복도에서 싸우며 헤어지는 유치한 외교’라고 빗대어 표현하고 있는데요. 저는 전에 몰랐던 사실이라 잠시 메모를 했습니다.

중국의 대두에 따른 일본의 영향력 쇠퇴는 이미 예견된 일입니다. 지금도 진행이 되고 있죠. 여기에다 2차대전 종전 후 아직도 해결이 되지 않은 일본의 수정주의적 역사 문제로 중일 간의 관계 뿐만 아니라 한국과 일본간의 관계에도 심각한 냉각기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에 저자는 먼저 센카쿠/댜오위다오 문제에 있어서 양측간의 무력을 사용하지 말자는 선언부터 시작해 과거 저우언라이식의 묵인하고 넘어가는 방법으로 서로간의 신뢰를 쌓자고 주장하는 듯 한데요. 아주 전형적인 일본인의 관점입니다. ‘역사수정주의자 아베’가 총리 자리에 있는 한 자신들은 별로 바뀌지 않고 한국과 중국이 바꿔라는 식의 요청이죠. 저자 자신도 막상 그 한계를 인식했는지 최종적으로 힘들 경우에는 국제 사회에 의지해 국제적 공감대를 만든다는 식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과거 역사에 대한 무라야마 담화와 고노 담화부터 겸허히 받아들일만한 정치인을 추리는 작업을 일본 국민들이 먼저 하는 것이 선행되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한국과 중국의 민족주의적 문제를 들고 나오기 전에 자신들의 내부 문제 먼저 반성하는 것이 이치에 맞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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