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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는 미래가 있는가
이매뉴얼 월러스틴 외 지음, 성백용 옮김 / 창비 / 2014년 11월
평점 :
전세계에 손꼽히는 사회학자 5인이 현재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전반적인 분석과 그에 대한 비판 그리고 앞으로 이 자본주의의 미래를 예측한 이 논저는 소위 2008년 세계금융위기 혹은 대침체에 착안하여 쓴 글이기도 합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현재의 자본주의의 여러 문제들로 인해 체제 전반의 위기를 느끼고 계신 분들이 많을 겁니다. 다만, 최소한의 상식선에서 이러한 진단을 하고 있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반대로 무비판적인 자유시장 원리주의에 이미 몰입된 사람들은 현재의 자본주의가 대체 무슨 문제를 안고 있느냐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는데요. 이런 부분을 차치하더라도 우리의 삶과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이 자본주의에 대한 합리적이고 면밀한 분석은 그만큼 의미가 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여기에 참여한 집필진인 총 5명의 사회학자들의 이름은 다음과 같습니다. 일찍이 자본주의적 세계체제론을 분석한 이매뉴얼 윌러스틴, 개인적으로는 대니 로드릭과 비슷한 관점을 갖고 있다 여겨지는 랜들 콜린스, 특유의 군사학적인 관점으로 자본주의 체제를 바라보고 있는 마이클 맨, 저명한 민족주의 이론가인 게오르기 데를루기얀, 비교 역사학과 실증 사회학의 거장인 크레이그 캘훈이 이들입니다. 이 책은 원제, ˝Does Capitalism Have a Future?˝로 지난 2013년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이듬해인 2014년 11월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우선 간단하게 여기에 소개된 5인은 자본주의 체제 전반을 나름의 식견에 따라 다각도로 분석해 내고 있습니다. 윌러스틴과 콜린스의 입장은 자본주의 체제의 불안정성을 논하고 앞으로의 미래가 상당한 개혁이 없으면 암울하다는 전망으로 양자가 거의 유사하다고 볼 수 있으며, 다음 마이클 맨은 자본주의 체제가 급격하게 붕괴할 가능성을 먼저 부정하면서 대공황과 2008년 대침체를 기반으로 자본주의가 어떤 변화를 맞이하게 될지에 대해 논하고 있습니다. 데를루기안은 과거 구소련 체제에 대한 분석과 더불어 오늘날 자본주의가 저들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인가에 대해 분석하고 마지막 캘훈은 자본주의가 스스로 개혁된 상태로 온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하고 자본주의 자체가 시장 경제이면서 동일하게 정치학적인 카테고리를 갖고 있다면서 이런 고리들이 꽤 견고한 상황이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윌러스틴이 세계제체론에 입각해 자본주의의 노정을 사회학적으로 분석하는 부분에서 특유의 ‘헤게모니 사이클‘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모든 이데올로기적 체제가 각자 수명을 갖고 태어나며 자본주의 역시 그것을 벗어나기란 어려우리라는 진단을 그는 내리고 있는데요. 자본주의 자체를 거대한 생명체로 여기는 학자들이 의외로 많은 것처럼 이것을 논외로 하더라도 어떠한 사상이나 체제 자체가 인간의 역사에서 영원히 존속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가정은 학문적인 접근에서도 쉽게 긍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사실 현재의 자본주의적 경제 기조의 위기가 어떻게 보면 미국의 헤게모니 쇠퇴와 연결이 될 수도 있을텐데요. 대략 46퍼센트에 이르는 미국의 국방비 지출과 반대로 사회 부문의 비용 투입에도 불구하고 미국 사회 전반의 사회 보장이 유수의 선진국들 가운데 최하를 걷고 있는 것은 자본주의가 효율성을 부득 강조하는 점을 감안한다면 쉽게 받아들일 수 없은 수치입니다. 이에 마이클 맨은 ˝자유시장에 대한 호소가 자비로운 국가에 대한 호소보다 이데올로기 상으로 더 깊이 미국에 뿌리내리고 있다˝고 언급하면서, 미국인들이 신념 이상으로 내면화 되어있는 자유에 대한 믿음과 그 자유를 잣대로 자신들의 삶 마저 해석하는 이러한 특유의 관념적 상황은 미국의 자본주의가 어떠한 양상을 띄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8년 뉴욕발 세계금융위기에서 아마도 수많은 자유주의적 민주주의 질서 옹호론자들에 의해 ‘금융시장에서의 케인스주의적 대처‘를 한시적으로 수용하기도 하는데요. 이러한 맥락을 견고한 사회학적 틀의 변화로도 받아들일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경제학자들이 적극적인 국가 담론을 거부하며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을 강하게 옹호했던 얼마전의 주장이 문득 떠오릅니다. 다수의 이익을 위해 시장 자체를 붕괴 상태로 내버려둘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뭐랄까 이런 전개에 대한 아무런 자각이 없는 저 금융 엘리트들을 보노라면 다소 후안무치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매뉴얼은 이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에서 자본을 영원히 축적 가능하다는 점을 회의적으로 보고 있었는데요. 뒤이어 논증되는 콜린스의 주장에서도 마찬가지로 불평등의 심화 자체가 다수의 중간 계급을 몰락에 이르게 하고 더 나아가서는 과소 소비를 초래한다는 점에서 혁명의 기운을 우려할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자본주의를 내부부터 몰락하게 할 원인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하에서 불평등의 심화와 금융 시장의 불안˝이라는 이 두 가지 사안은 미래의 자본주의를 어떤식으로든 변질시키는 위험요소라 할 수 있을텐데요. 상위 고소득 계층이나 이미 부유의 단계를 넘어선 소수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부를 성공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회의 안정이 최대로 중요한 요소이며, 콜린스의 주장대로 지금처럼 자본주의가 온라인 사업과 인터넷 혁명으로 종래와 달리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경우 이 새로운 테크노크라트들이 불평등의 문제를 등한시하게 됨으로써 그 자체로 자본주의를 종말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는 경고를 덧붙이고 있습니다. 이것은 콜린스의 중요한 주장대로 중간 계층의 소멸내지는 몰락이 그 자체로 자본주의의 건전성을 해치게 되리라는 것을 익히 전망하게 하는데요. 이처럼 사회의 건전성과 자본주의의 체제 유지는 매우 연관이 되어 있으며, 이것을 가소롭게 혹은 대단치 않게 보는 이들의 논법이 과연 스스로의 안정에도 도움이 될 것이냐에 대해서는 지극히 회의적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윌러스틴과 콜린스는 자본주의 체제의 순수한 종말로서가 아니라 여러 복합적 요인들로 인해 이 몰락이 가속화 될 수 있다고 보는데요. 핵무기에 따른 핵전쟁 가능성과 심각한 기후 변화로 인한 인간 삶의 위태로움이 자본주의 종말을 불러일으킴과 동시에 사회적 격변을 초래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즉,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으로 인한 혁명이 아니라 무차별적으로 자본을 축적하기를 바라는 탐욕의 자본주의가 지구와 인간 사회의 건전성을 무너뜨리고 스스로 자멸에 이르는 것을 사실상 뜻하는데요. 특히 무지한 경제학자들이 자신들이 신봉하는 ‘시장자유의 순수성‘이 끝내 자본주의를 비명에 이르게 할 수 있으며, 그것은 정치사회적인 혁명이 아니라 자본주의가 스스로 목줄을 졸랐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여기 콜린스의 예측과 거의 일맥상통한다고 생각됩니다. 이 두사람과는 달리 마이클 맨은 ˝미래의 혁명적 변혁˝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견지하면서 자본주의가 내부 모순의 가능성을 크게 받아들이기 보다는 전반적으로 자본주의 체제가 종말을 고하지는 않을 것이며, 그에 대한 근거로 현대 좌파의 세력이 매우 보잘 것 없으며, ˝좌파의 미래는 기껏해야 개량주의적 사회민주주의거나 자유주의가 아닐까 싶다˝며 이를 일축합니다. 사실 과거 신자유주의적 파고에 있어서 진보 좌파의 몰락 자체는 근본적으로 사회에 있어서 이익이 되지 못했습니다. 이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지구가 아니라 다른 행성에 살고 있는 것이겠죠. 마이클 맨의 앞선 결과론적인 견해로 좌파의 몰락을 분석하려 시도한다면 그야말로 오판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 한술 더 떠서 마이클 맨은 핵무기와 어쩌면 연관성이 있을 민족주의를 자본주의 체제의 종말 보다도 더 위험 요소로 보고 있습니다만 이에 대한 진정성은 차치하더라도 자본주의의 대안을 그저 ‘네오파시즘적 이행‘으로 한발 물러서 이를 분석하는 것은 막연한 소설보다도 더 위험하다고 여겨집니다. ˝금융자본과 신자유주의의 영향이 지대한 미국과 영국˝을 이해하면서, ˝이 신자유주의가 금융 자본이 뜻하는 대로 몸을 움직여 많은 나라들을 수렁에 빠지게 한 점˝도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인류가 어떤 짓을 하던 자본주의를 벗어나기 힘들것이라는 틀에 박힌 주장은 통념으로는 그럴 수 있다쳐도 밀접한 대안이 되지 못하는 것은 명백한 한계라 할 수 있겠습니다.
크레이그 캘훈은 ˝2008년 위기의 뿌리는 미국과 유럽에 집중되어 있었다˝ 분석하면서 더욱이 유럽에서는 반정치의 위협까지 존재했다고 덧붙입니다. 물론 이들 반정치 운동의 근본적인 원인은 시장에서 정치를 퇴출시키는 교묘하고 대담한 전방위적인 작업에 있다고 봐야할텐데요. 앞선 마이클 맨의 주장대로 시장 경제를 부정하고 탈자본주의적 길에 들어서는 국가가 등장할 경우, 이 국가는 자본주의 체제를 존속시키고 유지시키려는 다수의 국가들에 의해 봉쇄 내지는 북아프리카의 민주화 운동 시기에 프랑스와 영국이 개입했던 것처럼 진보와는 아주 다른 양상을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자본주의적 위기는 모순의 양상에 따라 어느 국가에서든 존재할 수 있지만 아예 탈자본주의에 이를 수 있을 것인가는 매우 어려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전세계게 이미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체제로 자리매김하고 있고 만약 예멘이나 콩고와 같은 국가에서 탈자본주의 운동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국지적인 문제로 국한되겠지만 반대로 일본과 같은 국가에서 탈자본주의로 나아갈 경우 종래의 자본주의 국가들이 연대해 일본에 개입하게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봐야할 것입니다. 여기서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캘훈의 입장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체제가 어느 한 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 전세계적인 사회경제적 체제이며,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라는 양대 기조에 해를 끼치려고 하는 자들이 나타나는 것은 그것의 실효성 여부를 떠나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2100년 이후 급격한 기후 변화 때문에 세계 체제가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고 필자들은 예측하고 있었지만 사실상 가장 높은 시나리오는 자본주의 자체가 내부 모순으로 인해 스스로 자멸할 수밖에 없는 길에 들어서는 것이 가장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심각한 불평등 문제와 계급 간에 심대한 경제적 차이는 자본주의 스스로를 몰락하게 하는 요소이며, 이것에 대해 제대로 된 접근을 하지 않을 경우 자본주의를 몰락하게 하는 것은 혁명이 아니라 스스로의 문제 때문이라는 것을 거듭 밝혀두고 싶습니다. 바로 그런 연유로 윌러스틴 역시 ‘도덕적 가치의 회복‘이라는 부분을 거듭 강조하고 있고 기술 관료들과 엘리트들이 사회문제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야만 한다는 콜린스의 주장 역시 자본주의의 존속에 필요한 일임은 분명해 보입니다. 물론 이러한 가운데 ‘핵전쟁에 따른 절멸‘이 인류 생존의 문제로 남아 있고 전쟁으로 인한 갈등 해결이라는 해법이 ‘상호확증파괴‘라는 지옥의 실현 가능성 때문에 핵전쟁의 발발을 방지하고 있지만 이를 반대로 뒤집어 보면 잃을 것이 없는 ‘실패 국가‘가 핵무기를 사용하게 될 환경이 조성된다면 이를 방치한 국제 체제의 무능으로 인해 비롯될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대니 로드릭은 이미 국제 체제의 비규범성과 비민주화로 인해 언제나 이러한 위험성을 내포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는데요. 이는 충분히 설득력이 있으며 기존의 체제를 터무니 없이 맹신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로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을 인류 전체가 항상 주지하고 있어야만 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우리나라의 진보주의의 일각에서 아직도 한국을 유독 남한이라고 지칭하는 경우가 있는데요. 이 출판사가 진보를 대변한다고 여기지는 않지만 글 본문에서 남한과 한국을 동시에 표기하는 것은 상당히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더불어 이딸리아나 에스빠냐 혹은 엘리뜨와 같이 과거 ‘종속 이론‘과 같은 논저에서 보여지는 단어 번역이 이 글에서도 볼 수 있었는데요. 그저 현재의 외래어 표기법을 지켜줬으면 하는 바람 뿐입니다.
중도 자유주의는 세계체제의 지배 이데올로기, 사실상 유일하게 정당한 이데올로기로서의 지위에서 물러났다
오늘날 세계 앞에 놓인 문제는 자본의 끝없은 축적을 효율적으로 추구하는 능력을 되찾을 수 있도록 정부들이 어떤 식으로 자본주의 체제을 개혁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아니다
컴퓨터로 경영되는 미래 세계가 반드시 조지 오웰이 1984에서 묘사한 것처럼 첨단 과학기술을 이용한 감시와 독재국가의 지배가 이루어지는 세상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자본주의 산업의 생산품들에 대한 열광이야말로 자본주의를 잘 굴러가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이다
그렇게 되면 경제 전반에 걸쳐 개인 소비지출을 지탱하고 그리하여 자본주의의 작동을 지속시키는 데 충분할까? 금융시장들이 밑바닥의 군소 참여자들을 착취하면서 점점 더 집중화하는 쪽으로 나아간다면, 그렇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말할 수 있는 전부는 역사적 혁명들과 폭력의 다양한 양상이 최종적인 자본주의 위기에도 역시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핵심은 한결같다. 중간 계급의 기술적 대체가 지금 자본주의가 지배적인 지역들에서 21세기 끝나기 전에 자본주의의 몰락을 몰고 오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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