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부상, 문명의 전환인가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열린강연 시리즈 1
임현진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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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의 열린강연시리즈의 3권 중, 임현진 서울대 명예 교수가 쓴 ‘아시아의 부상, 문명의 전환인가’ 를 일독했습니다. 이 책은 앞선 시리즈 중의 제일 첫번째 책입니다. 전체 분량은 110여 페이지 정도인데요. 여기에 실려 있는 내용들은 대체로 기본적인 틀을 벗어나지 않고 있어서 새로운 내용을 기대하는 분들에게는 원하는 충족이 되지 못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책은 크게 5장의 챕터와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중국 칭화대 교수인 후안강 교수와의 대담,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인 찰스 S. 쿱찬 교수의 인터뷰 글이 실려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4장의 ‘미국과 중국이 부딪치고 있다’는 부분을 내용을 좀 더 보강해서 논의가 좀 더 진전이 되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을 느꼈습니다. 이 부분에서 아시아의 미래에 관련해 낙관적 시나리오와 비관적 시나리오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곁들이고 있지만 아무래도 넓은 저변에 있는 독자들을 위한 글이어서 그런지 그 정도의 제기에서 마무리를 한 모양입니다.

이어 중국 칭화대 교수인 후안강 교수와의 일종의 대담집에서는 조지 프리드먼이 경고한 중국의 여러 심각한 문제에 대한 후안강 교수의 답변을 들을 수 있었는데요. 확실히 중국의 지식인이라고 자처하는 이들은 광범위한 중국내 부패 문제와 서부와 동부간의 소득격차, 그동안 경제 발전 과정에 있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중국 인민들의 소득 격차가 극심한데, 여기에 경제계 엘리트와 공산당을 비롯한 정치 엘리트간의 정치적 제휴로 인한 부의 편중 문제 등 당면한 문제에 대한 너무나 낙관적 태도는 저로서는 이해하기 힘들군요. 사실 앞으로 중국의 경제발전이 지지부진해진다면 세계 경제에 입장에서도 특히 지역 내 안보적인 측면에서 중국의 공산당 세력이 이러한 내부의 불만을 민족주의적 표출로 대체할 가능성이 높아 이것은 우려할 만한 시나리오입니다. 앞으로 미중간의 대결이 어떻게 귀결될 것인가 하는 문제보다는 나날이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부패. 지역 격차, 부의 편중 문제를 지속적인 외적 경제 성장이
억누르고 있는 상황에서 이것이 중국 정치권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면 이 내부 압력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에 대해 정말 우려의 시선을 보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중국측 인사들은 양적인 중국의 경제 성장과 막대한 외환보유고 및 지속적인 기업간의 인수합병 등으로 크게 낙관하고 있는 모양인데요. 이러한 낙관은 아주 간단하게도 미국 경제와 미국의 내수시장이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긴다면 중국과 같은 수출주도의 국가들은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이후에는 다행히 미국의 상품시장이 큰 영향은 없었지만 이런 낙관이 언제라도 지속될 것이라는 믿음은 무속신앙에 기대어 경제 예측을 하는것과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앞으로의 30년이 아시아의 세기가 될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중국이 평화적으로 부상할 것인가에 대한 결과가 이 책의 제목대로 ‘아시아의 부상’ 여부가 달려있다고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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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성주의 - 미국이 낳은 열병의 정체
모리모토 안리 지음, 강혜정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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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016년 일본에서 출간되어 ‘반지성주의’의 열풍을 일으킨 이 책의 저자 모리모토 안리의 간단한 이력을 접한 순간 조금 놀라웠는데요. 저자 자신이 신학을 전공하고 국제기독교대학의 목사까지 역임했던 행적이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목사라고 봐도 무방한 사람이 반지성주의라는 주제 들고 글을 썼다는 자체가 대담하게 느껴지면서도 다소 의외라고 느낀 것이 이 책을 읽기 전에 느꼈던 감정이었습니다.

우선 반지성주의에 대한 정의를 언급하고 싶습니다. 웹을 비롯한 여기저기에 이에 해당하는 설명들을 손쉽게 찾을 수 있는데요. 저자인 모리모토 안리는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반지성주의란 지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문제 의식이 아니라 지성의 자기 반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문제의식이며, 이러한 반지성주의의 입장에 있는 의견이나 사람들은 지성이 갖고 있는 특수한 성격, 즉 지식 자체가 대체로 권위를 뛰어넘기도 한다는 문제와 지식인들이 종종 스스로 그런 권력이나 제도의 일부가 된다고 평가한 것과 같이 제가 느끼기에는 지식 자체가 과도화게 해석되고 인정되어 그것에 대한 우려로 ‘반지성주의’를 이해하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위키 백과를 비롯한 다수는 ‘반지성주의’에 대한 다소 적대적이고 노골적인 평가가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일단 저로서도 반지성주의적 운동이 오늘날 민주주의 체제에서 분명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포퓰리즘과 포퓰리스트를 비롯한 일련의 우려할 만한 정치적 분위기가 반지성주의와 그 궤가 비슷하다고 봐도 무방하기 때문이죠.

세계 지성사에서 반지성주의를 최초로 소개한 ‘미국 생활에서의 반지성주의’를 쓴 미국 역사가 리처드 호프스태터를 모리모토 교수도 언급하고 있는데요. 포퓰리즘 연구를 거의 최초로 시도한 폴 태가트와 유사하게 호프스태터 역시 ‘반지성주의 연구’에서 동일한 위상을 갖고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저자는 미국에서 초기 청교도 유입의 영향으로 비롯된 미국 독립 혁명과 그 이후의 초기 미국의 청교도적 분위기, 그리고 독립 운동에 관여한 소위 미국의 국부들의 행적들을 연관지어 대체로 정교 분리를 강조했던 미국 초기 사회가 오늘날 백인 상류층과 정치종교적인 백인들에 의해 어떻게 세속의 불합리한 상황에 눈감고 종교적인 구원 사회에 몰두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해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일찍이 토마스 제퍼슨이 앞으로의 독립 미국이 정교 분리 국가가 되는 것이 마땅하다고 보았으나, 모리모토 교수가 설명하듯이 초기 미국 식민지에 학교보다 교회가 먼저 들어선 연유로 현재의 미국 사회의 전반적인 기독교적 분위기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처럼 레이건의 대통령 퇴임사로 설명되는 다소간의 자신의 기독교적 가치 지향과 40세 이전까지 방탕한 생활을 했으나 그 이후 종교에 귀의해 다른 사람이 되었던 조지 W. 부시의 일화 등으로 전세계 민주주의 국가들의 맏형이라 자임하는 미국의 정치적 분위기가 공화당을 비롯한 보수적 정치인들이 과도하게 언론이나 매체를 통해 기독교적 체험을 비중있게 다루고 그것을 재차 강조하는 것은 개인의 국한된 문제라고 보기에는 민주적 제도 하에 헌법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교 분리의 원칙에 다소 편파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신앞에서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미국 독립 선언서의 주장과 마찬가지로 개개인은 특별히 교육을 받지 않아도 도덕적인 능력을 갖고 있으며, 평균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좋은 정치와 나쁜 정치를 분별하는 것이 가능한데, 이것은 민주주의의 기본이 되는 신념이지만 이런 능력이 이성의 능력과 동일한 것이 아니라고 저자는 강조하고 있습니다.아마도 지성의 측면에서 이성이 역할을 하는 부분까지 공통적으로 평등하다고 여기는 것은 반지성주의적 측면이라고 보는 것 같습니다. 부분적으로 확대 해석되거나 다르게 인용된 평등의 개념이 지성에 대한 인식을 무시하는 것으로 주장하는 듯 한데요. 앞서 말한대로 지성이 때로는 권위로 나타나거나 권력화하는 경우도 있지만, 지성에 대한 무조건적인 배제는 계몽주의적 입장에서도 휴머니즘적 측면에서도 매우 좋지 않은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그렇지만 모리모토 교수는 이렇게 지성의 지배에 대한 반역은 이처럼 평등이라는 이념을 원동력으로 허고 있는데, 이러한 반지성주의는 단순히 지적인 것이나 지적인 사람에 대한 반발을 의미하지는 않으며 그것은 지식의 권위에 대한 반발이며 이러한 반역에 의해 때로는 반지성주의가 지성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며 예측되지 못하는 반대급부에 대해서도 밝히고 있습니다.

책을 일독하고 나서 약간 뒷맛이 개운하지 못했는데요, 반지성주의에 대한 노골적인 반발이나 부정은 아니지만 민주주의 국가에서 아주 중요한 핵심 가치인 ‘정교 분리’에 대한 입장이 대체로 모호해서 그가 신학을 전공한 학자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우리의 역사에서 14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 이전의 가톨릭적 정교 일치 세계는 당시의 인간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충분히 찾아볼 수 있습니다. 지금에도 중동에서 벌어지는 이슬람 유일의 종교 원칙이 어떤식으로 표출되는지 알 수 있지요. 이런 모호한 부분을 제외하면 미국의 역사와 초기부터 안착된 현재 미국 사회의 분위기, 기독교적 운동과 그와 관련된 인사들의 행적들까지 세세히 제공하여 우리가 ‘반지성주의’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제공하고 있다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다만 이러한 정보가 미국의 과거와 지금의 현실과 연결되어 있어서 다소 제한적이긴 합니다만 이러한 미국 자체의 반지성주의에 대한 정보 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봐도 개인적으로는 무방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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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제국, 미국 - 글로벌화와 미국의 패권
이가라시 다케시 지음, 곽진오 옮김 / 역사공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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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대한 다소 거창한 수식어로 장식하고 있는 이 책의 저자는 일본에서도 상당히 주목받을 만한 이력으로 채워져 있는 도쿄대학 법학부 교수이자 명예교수인 이가라시 다케시입니다. 그는 비교정치와 특히 미국정치외교에 관한 일본 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 지명도가 있는데요. 그래서인지 미국 내에서도 여러 직함을 거쳐왔던 것으로 보입니다. 국내에 번역 출간된 것이 더 있는지는 아직 조사해보지는 않았지만, 일본 내에서도 미국과 유럽 정치와 관련된 여러 책들을 정력적으로 집필해 다수 출간했더군요.

다케시 교수가 이 책을 통해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은 크게 미국 독립 혁명의 기초라고 볼 수 있는 공화주의와 다소 제약이 가해진 연방제, 세계 양대 대전을 거쳐 서유럽의 재건과 냉전 시기를 거치면서 발휘해 온 소위 ‘미국에 의한 글로벌화’와 좀 더 확대된 개념으로 동아시아 3국의 민주화에 영향력으로 발휘되었던 미국의 초국가적 정치력 등 이론적으로 만들어 놓은 개념들이 본래 기존의 학문적인 체계와는 다른 고유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뭐 어차피 이 글에서도 미국인들 스스로도 제국주의에 대한 적지않은 반감과 거부감 때문에 지금의 세계에 대한 영향력을 제국주의적 접근으로 해석하는 것에 일종의 ‘회피적 거부’가 있다고 분석하고 있지만, 사실상 미국의 패권은 과거 유럽의 제국주의와는 달리 특유의 미국 고립주의에 기반한 체제를 뒤엎거나 강요하는 측면은 거의 볼 수 없다고 봐야겠죠. 물론 비밀스럽고 대놓고 밝힐 수 없는 과거 CIA의 공작들이 얼마간 있긴 했지만, 이것을 미국 제국주의의 한 측면이라고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있긴 합니다.

냉전 시기에 태평양을 자신들의 앞마당이라고 생각한 미국은 안보적인 측면에서 일본의 지정학적 위치를 중요하게 여기고 미일 안보조약과 이후 한국 전쟁으로 비롯된 동서 냉전의 실질적 충돌에 한국을 자유주의 세력의 보호권으로 받아들이고, 1949년 국민당 정부가 대만으로 쫓겨난 이후에도 대만 자체의 안보 보장을 위해 미국이 중국과 관계정상화를 거쳤음에도 이를 포기 하지 않은 것은 그것이 우연이듯 계획적이든 지역내의 안정에 이바지 한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에 다케시 교수도 필리핀과 한국, 대만의 민주화 과정을 예로 들며, 이러한 안보 공약과 자신의 시장을 이들 나라에게 제공해 아시아의 4마리 용이 경제 발전을 수월하게 할 수 있는 산모 역할을 결과적으로는 맡았고, 이것의 가치도 인정해야할 부분이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일본 역시 경제발전 단계에서 이러한 미국의 거대한 내수 시장의 득을 본 것은 분명 사실일겁니다.

소련과의 냉전이 갈수록 첨예화 되던 레이건 정부 시절에 미국은 당시 전두환 정권을 자유 진영의 중요한 교두보라 여기고 한국 국내의 민주화 요구를 거의 모른척 하고 있었는데요. 여기에 박정희 시기부터 고난을 당해온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박해와 관련된 정치적 문제로 사실상 기존의 입장을 돌려 한국 정부에 개입함으로써 1987년 6월 민주화 운동 이후 한국이 정상적으로 민주주의 국가로의 이행을 이끌었다고 이 책은 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레이건 행정부를 비롯한 미국의 영향력은 기존의 군사력이 포함된 안보 보장 뿐만 아니라 상대국의 정치권에 초국가적 영향력을 발휘하고 경제적인 산파 역할까지 자임하여 실질적으로 여러 측면에서 이 동아시아의 국가들이 정상적인 국가로의 이행을 촉진하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보고 있는 듯 합니다. 저 역시, 우리 국민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과 국가를 재건하기 위해 개인의 삶까지 희생시킨 우리 부모님 세대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이토록 전세계에 인정받는 경제 대국이자 민주주의의 모범 국가로 인정받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다만 이러한 내적인 역량과 노력에 미국의 외적인 환경 지원과 안전 보장 등이 맞물려 거대한 시너지를 낸 게 아닌가 추측해봅니다.

전체적으로 여기에 언급되는 배경은 레이건 시기부터 오바마 행정부 초까지 그동안 있었던 세계 정치의 굵직한 사건들을 함께 분석하고 언급되는 당시 대통령들의 면모까지 서술해 내고 있어 흥미를 끄는 부분이 제법 있었습니다. 특히 조지 W. 부시에 대한 언급은 여기에서도 전혀 어긋나지 않아, 그 자신이 종교적 신념과 말도 안되는 예지력으로 무장해 이국 정치 역사상 책과 담쌓은 대통령중 아이젠하워와 더불어 유명하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여기에 교주 레오 스트라우스를 받드는 네오콘 무리들을 중용해 미국식의 일방주의를 세계에 강요한 것은 그동안의 미국식 정치에 어울리지 않은 면이라고 분석하고 싶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다케시 교수가 많은 부분을 할애하며 언급하고 있습니다.

책의 간략한 소개는 이 정도로 하고요. 개인적으로는 앞서 말씀드린대로 꽤 창의적인 개념과 이론에 흥미로웠고, 꽤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나 서술을 포함한 문장들이 평이한 편이라 즐겁게 읽었던 것 같습니다. 국제 정치나, 외교사에 아직 배경지식이 없는 분들이라도 읽어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사실 각국간의 국제 정치나 외교가 거의 무정부의적이고 힘에 기반한 뭔가 이성적인 측면에서 이해가 힘든 부분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아마도 이런 측면에서 매력을 느끼는 분들도 적지 않으실 겁니다. 저도 그런 중독성 때문에 외교와 국제정치에 관련된 글들을 주구장창 찾아 읽는지도 모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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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 사흘 일정으로 출장왔습니다
익히 예전부터 들어왔던 송정해수욕장,
그리고 오션뷰가 좋다는 송정 별다방에
책 펴놓고 앉아 있네요
약소하지만 2018년 바다 구경하시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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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세기의 종언 - 아시아의 전쟁 위험 및 경제·무역·정치·인구 문제 대해부
마이클 오슬린 지음, 김성윤 옮김 / 오르마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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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비롯한 유럽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킨 ‘원제, The End Of The Asian Century 인-아시아 세기의 종언’ 의 저자는 과거 예일대 역사학과 교수였던 마이클 오슬린입니다. 현재는 미국기업연구소로 자리를 옮겨 디렉터 겸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는데요. 역사학과의 교수를 역임한 경력이 흥미롭게 느껴져 구글에서 검색을 했더니 학부는 조지 타운 대학에서 수료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책에 수록된 저자의 흑백 사진보다 웹에 올려져 있는 컬러 사진을 보니 뭔가 배우 같은 느낌이 들더군요.

사실 한국에 번역 출간된 이 책의 제목이 조금 의구심이 들어 책 겉표지에 원제가 씌어 있음에도 다시 검색을 해봤는데요. 원제가 맞는 것 같더군요. 그러니까 다시말해 개인적인 의문은 요즘 세계 역사에서 과연 ‘아시의 세기’가 도래하긴한건가 라는 문제였는데요. 책을 천천히 읽어보니 아마도 저자는 과거 일본 제국시기와 근래 중국의 대두로 비롯된 분위기를 빗대어 지칭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2차대전 당시 일본 제국시기와 관련해서는 서구 문물을 받아들여 성공적으로 산업화를 일본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데요, 이를 대단하게 해석하는 것은 뭔가 확대해석의 오류가 될까봐 저어되긴 합니다만 그래도 뒷맛은 썩 좋지 않았습니다. 하여튼 덩샤오핑의 중국이 가공할만한 경제 성장을 바탕으로 일본을 제치고 세계 경제 2위에 오른 이 분위기와 그 (다소 긍정적인) 여파에 대한 평가를 ‘아시아의 세기’ 라고 부른다면 이 관대한 표현의 시기가 과연 얼마나, 끊임없이 지속될 수 있는가에 대한 예측과 분석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주로 다루고 있는 국가와 지역은 한국과 중국, 일본 그리고 동남아시아지역, 인도가 중심입니다. 아무래도 현시점에서 대국의 대접과 과거의 영향력을 복원시키려는 중국의 대두와 이를 어떻게 어떤 식으로 받아들이고 관리해야되는지에 대한 저자의 답변이 이 책에 실려있다고 생각하는데요. 미국의 주도로 이 지역의 안보에 영향력을 끼쳤던 ‘소위 미국 중심의 부챗살 동맹’ 이 냉전 시기부터 지역 안정의 기여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지만, 중국에 의한 세력 변동의 균형을 저지하지는 못했다는 한계로서 판단하고 있습니다. 미국인의 입장으로 자신의 국익에 걸맞는 평가라고 볼 수 있겠으나, 사실상 미국의 동맹국들로 지지되는 지역의 안보적인 답보로 우리 나라를 비롯한 지역 국가들이 민주주의와 시장 경제의 번영을 누린 것은 얼마간 사실이니 인정을 해야될 부분일 것입니다. 더욱이 정치, 경제, 사회적인 측면에서 동북아시아 3국과 동남아시아, 인도를 세밀하게 분석하고 비평한 것도 꽤 인상이 깊었는데요. 저자인 마이큻 오슬린은 실제로 아시아 각국의 주요 인사들과 대담과 만남을 통해 현지의 분위기 등을 토대로 글을 마련했던 것으로 느껴지는데요. 개인적으로 문장들이 설득력이 높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중국의 경우에는 정치권력과 경제를 거머쥔 기득권 층들의 부패 문제, 조만간 이 모순이 내부에서 터질 경우 가뜩이나 권력의 정당성 문제에 고심하고 있는 중국 공산당 정권이 아주 손쉬운 방법인 ‘중국 인민들의 민족주의 열망’에 한발 담궈 해소할 가능성은 매우 큰 리스크라 보고 있고, 한국과 일본의 고령화 문제, 인구 감소로 비롯되는 심각한 경제 노동력 감소, 노년층의 빈곤 문제와 복지 문제 등이 앞으로 양국의 사회 경제적 측면에서 관건이 될 사항이며, 특히 한국의 경우에는 다소 과다하게 투입되고 있는 사교육 비용을 비롯한 교육 비용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고 첨언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실질적인 능력을 갖고 있는 ‘중견국 한국’은 북쪽에 근본적인 안보 불안의 원인인 북한 문제가 중국과 일본으로 둘러싸인 지정학적 환경에 더욱 도움이 안되고 있는 요인으로 평가하고 있는데요. 그래서 충분히 강국으로 봐도 무방하지만 머리 위의 북한의 문제가 한국의 군사 외교적 측면에서 발목을 잡고 있는 요인임을 우리에게 다시금 기억시키고 있습니다.

꽤 조심스런 평가이긴 하지만, 저자인 오슬린도 앞으로 혹시 있을 모를 지역내 중국의 패권 지향과 영향력 확대에 대하 관리가 필요함을 말하고 있고, 이 부분에 대해서도 한국과 일본, 태국 이 3국이 서로 중요한 역할을 맡으며 미국과 연계하여 사소한 충돌로 직접적인 무력 충돌로 확대될 중국발 위기에 면밀하게 대응해야 하지만 아시아 전체를 꼽아도 미국의 주요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이 아직도 청산되지 않은 과거사 문제와 일본의 평화 헌법 개정을 비롯한 군사 대국화 발걸음에 나서는 것에 대한 아주 전반적인 불신을 갖고 있어 양국의 관계가 전혀 나아질 기미가 없는 것은 미국의 국익에도 별로 좋지 않은 것이죠. 물론 이것은 사소한 해석이고 대국적인 측면에서 이 지역내의 안보를 위해서는 미국과 앞서 언급한 이 3개국이 긴밀한 공조가 필요하지만 어떻게 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입니다. 제 개인적으로도 과거사 사과를 인정한 고노 담화를 끊임없이 무력화 시키려고 하고 있는 아베의 정치적 욕망과 정당하고 인정받을 만한 과거사 문제에 대한 진실된 인정을 자신들의 ‘국격을 떨어뜨리는 일’ 이라고 평가하는 일본의 우익들과 대다수의 정치인들의 속셈임을 이미 많은 책들을 통해 알고 있어 한일간의 필요한 관계 정상화는 앞으로도 요원하지 않을까 조심스레 추측해봅니다. 아베의 수정주의적 역사관은 미국의 여론마저도 불쾌하게 만들 정도니까요.

즉, 종장에서 오슬린이 밝히고자 하는 것은 이러한 ‘아시아의 세기’ 가 근본적으로 한반도, 동중국해, 남중국해의 정말 사소한 대립으로 유럽이나 납북 아메리카의 경우와 같은 공동 안보 대화 협의체가 거의 전무한 이 지역의 현실로 봤을 때, 지역에 있는 각국의 정치권들이 이에 대한 노력을 하지 않으면 그 리스크 자체가 어떤 식으로 귀결될지는 사뭇 평가하기 어렵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오슬린의 이 글은 이 곳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뼈아픈 충고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한국과 일본, 필리핀 등지에 거의 30만에 육박하는 군사력과 첨단 무기들을 배치하고 있는 미국으로서도 예측하기 힘든 권위주의적 독재체제의 중국에 대한 관리가 이러한 복잡한 배경 때문에 더 힘든 것이 아닌가 봐야 겠구요. 그래서 머리를 짜내어 도출할 수 있는 해결책은 점진적으로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지역에 민주주의를 더 확대 하는 수밖에 없는 것으로 저자는 결론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2020년 이후 중국의 민주화와 북한의 핵포기가 아시아의 번영과 발전의 필 수 요소가 될 것임은 아주 자명하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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