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된 전쟁 -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 그리고 한반도의 운명
그레이엄 앨리슨 지음, 정혜윤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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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대 역사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옥스포드 대학으로 유학, 이후 여러 이력을 거쳐 하버드 대학교 케네디 스쿨의 학장을 역임, 전 미국 국무부 장관 헨리 키신저를 지도하고 오늘날에는 니얼 퍼거슨과 함께 응용역사학 선언문을 발표한 그레이엄 앨리슨의 ‘예정된 전쟁’을 일독했습니다. 원제는 Destined For War 인데요 번역된 국문 제목과는 약간 어감이 다르긴 합니다만 개인적으로 크게 신경쓰이지는 않았습니다.

책을 열자마자 다소 의외였던 것은 우리가 한번쯤은 해외 기사를 통해 이름을 들어봤을 법한 인물들의 찬사들이 소개되어있는데요. 500페이지 분량의 내용은 차치하더라도 앨리슨이 인용하고 주장하는 내용들이 역사학을 전공한 학자 특유의 관점인지는 모르겠지만 꽤 예상못한 부분이 많았습니다. 그중에서도 요즘의 중국 대두론과 그에 따른 중국 위협론에 대해 꽤 강경하고 현실적인 대처를 미국에게 요구하는 내용들이 근래의 흐름이었다면 저자는 미국과 중국 양측이 서로가 원하는 부분을 겸허하고 진지하게 고려해보자고 말하고 있는데요. 이 책의 3부에서 그러한 내용으로 ‘중국도 미국과 똑같다고 상상하라’는 소제목으로 읽혀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책의 도입 부분에는 과거 그리스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전쟁을 통해 도출된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대해 상세히 입장을 밝히면서, 이 패권국과 도전국의 긴장관계가 예상치 않은 결과로 이어졌고, 더욱이 동맹 관계의 도시국가들로부터 반강제적인 연루까지 당한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예기치 못한 전쟁에서 오늘날 미국과 중국이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 투키디데스의 함정은 ‘민주 평화론’과 함께 중국 위협론에 많은 학자들이 설명할 때 인용되는데요. 뒤이어 앨리슨의 세계1차대전의 상황에 대한 분석에도 이 투키디데스의 함정이 딱 들어맞는 사례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1차대전하에서 프랑스와 영국과 대응해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사소한 결전이 결국에는 전유럽의 청년층을 말살시키며 최악의 인명 피해와 극심한 사회 침체, 정치 적 혼란을 잉태한 최악의 대전으로 우리도 알고 있듯이 현재의 미국과 중국의 있을지도 모를 패권 대립은 양국이 이미 핵보유국으로 핵강국의 사소한 대결은 과거 케네디와 흐루쇼프간의 핵전쟁 가능성까지 치달았던 상황을 다시금 밟게 될지도 모른다고 우리 모두에게 경고하는데요.

미국은 대 중국 관계에서 동서 냉전시기 소련을 제어하기 위해 양국이 협력했듯이 아예 양국의 이해의 접점이 전무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더군다나 미국과 미국의 안보동맹국들이 참여하는 대 중국 봉쇄에 이르기에는 그 위험부담이 적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앨리슨도 구 소련에 대한 봉쇄와 같은 방법을 중국에게 사용하기에는 어렵다고 보고 있습니다. 다만 타이완과 남중국해, 센카쿠/댜오위다오. 한반도 등지의 가상 시나리오들을 상세히 언급하며 이 지역의 아주 사소한 불씨는 미국과 중국의 전면적인 대결을 야기시킬 것이고 양국의 핵무기가 사용되는 상황은 필연하게 방지해야만 하는 차원에서 양국간의 서로에 대한 겸허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즉, 오늘날 오바마 행정부 시절부터 요즘의 트럼프 정부까지 미국의 대 중국 정책은 ‘중국이 과거 독일과 일본의 전철을 밟지 모른다’는 가정하에 만들어지고 있으며, 이런 과정은 대체로 중국 관련 정책이 모순된 상황이라고 보고 있는데요. 이에 미국의 핵심 국가 이익에 관한 명확한 설명과, 중국의 목표가 무엇인지 이해하려고 하고 전략과 국내의 산적한 문제에 대해 먼저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미국 정치권에 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 한반도와 관련해서도 미국과 중국의 타협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제안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요. 북한이 붕괴될 때, 워싱턴과 베이징은 한반도에 대한 서울의 통치를 받아들이고 미국은 이에 한국에 주둔한 주한미군을 철수하는 일종의 빅딜을 언급하고 있는데요. 사고의 전환이랄까요. 물론 그 가능성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미중 서로간의 입장과 이해를 교환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꽤 흥미롭고 생각해볼만한 문제가 아닌가 저는 곰곰히 생각해봤습니다.

저는 이 책을 3일에 걸쳐 읽는 동안 앨리슨 교수가 설명하는 국제정치와 지경학과 비슷한 형세 설명에 끊임없이 저도 머리를 굴렸는데요.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있는 제안일까하는 일종의 머릿속 연구를 즐겁게 했던 것 같습니다. 특히나 한반도에 대한 현실과 우리와도 밀접하게 혹여 연루의 위험이 될지도 모르는 센카쿠/댜오위다오, 대만 문제 등에 대한 앨리슨 교수가 혹여 있을지도 모를 가상 시나리오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고려해보는 꽤 즐거웠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도 한번쯤은 읽어보시길 권유 드려보고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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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내부의 적 - 자유와 민주주의의 위기를 근본적으로 성찰하다
츠베탕 토도로프 지음, 김지현 옮김 / 반비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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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체제의 사회에서 살고 있는 시민이라면 읽어볼 만한 그리고 그 내용을 궁금하게 만드는 제목의 ‘민주주의 내부의 적’ 을 일독했습니다. 이 책의 저자인 츠베탕 토도로프는 그 개인의 인생 여정이 남다른 면이 있는데요. 냉전 시기의 동유럽 불가리아에서 태어나 1963년 프랑스로 이주한 다음 구조주의 이론가로 연구에 몰두했으며, 자기 자신이 이 책에서 스스로 인정했듯 사상가로서 문명의 교류나 충돌에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약간의 논외지만 자기 자신을 사상가라고 지칭하는 스스로의 평가에 뭔가 신선한 느낌이 들더군요. 글의 맥락과는 다소 관계가 상이할 수도 있지만 사상가적 삶을 살아왔다고 담담하게 인정하는 태도가 어쩐지 부럽기도 하더군요.

냉전시기의 폐쇄된 공산 독재 사회에서 생활하다 사사롭게는 개인의 자유와 의지를 존중하는 자유 세계에 안착한 토도로프의 일전의 소회가 어땠을지는 감히 상상하기 어렵습니다만 이러한 배경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자신의 사유 스펙트럼이 꽤 많은 부분을 이해하고 고려할 만한 기본 여건은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더불어 실제로도 이 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애정과 관심 또한 이 글 전체에 잘 녹아 있다고 여겨지더군요.

토도로프는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것들 중에 (정치적) 메시아주의, 신자유주의, 포퓰리즘, 다문화주의에 대한 극단적 배격 등을 로마시대의 아우구스티누스와 펠라기우스의 대립으로 시작하고 있는데요. 인류 역사상 일찍이 법에 의한 인간 자유에 대한 규제와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한 믿음의 대결이 위의 두 인물에게 시작되어 투영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역사의 결과론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자연 상태에 풀어놓는 것을 거부한 ‘일종의 법에 의한 자유 규제’로 사실상 추가 기울었다고 봐야하는데요. 14세기 르네상스와 그 이후 계몽주의의 확립과 프랑스 혁명으로 이어지는 근대 민주주의의 확립에 ‘인간의 의지’에 의한 논쟁이 지금도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저자는 더불어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신자유주의적 이데올로기는 9. 11 테러 이후 영국과 미국에서 개인 경제 주체들에게는 자유를 허용한 반면, 반대로 시민의 자유는 점점 더 통제했다고 평가하며 신자유주의를 자발적으로 채택한 이 서구의 두 강대국은 시민의 권리와 자유에 있어서는 ‘거대한 정부’가 되었다고 보는 것이 요즘 우리가 느끼는 감상일겁니다. 또한 하이에크와 애덤 스미스와 그들에게 동조하는 많은 사람들은 사실상 ‘사회적 균형’애는 관심이 없으며 오로지 시장주의하에 자율적 경쟁과 이윤 추구가 오늘날 ‘극도의 사익화 인간’을 만들어낸 주범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만으로도 신자유주의가 민주주의에 있어서 얼마나 해악이 되고 있는지 깨닫게 됩니다.

그동안 미국과 유럽이 민주주의 체제의 선도 국가를 자임하면서 그들이 정치적 메시아주의를 내걸고 우리가 아니면 안된다는 식의 슬로건으로 이라크, 리비아, 아프가니스탄, 유고슬라비아에 예방주의적 개입과 적극적 전쟁으로 일관하면서도 결국에는 해당국의 석유 자원과 지리적 고려를 통한 자국의 이익 추구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토도로프는 꼬집고 있는데요. 서구 언론과 여론이 너무나도 민주주의를 확대시키고 해당 국민들을 민주화의 대열에 동참시킨다는 명분으로 결과적으로는 큰 희생과 파괴가 동반되었다는 점에서는 우리가 얼마나 자의적인 프로파간다 시대에 놓여있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유럽에 확산되고 있는 이슬람 인구의 유입과 그로 인한 종교적, 인종적 거부, 다문화주의에 대한 배격과 이를 토양으로 세를 넓히고 있는 포퓰리즘에 대해서도 비판하고 있습니다. 역사가 진보하는 것은 선이라고 여기면서도 오늘날 민주주의 내부를 황폐화시키고 분리시키는 것들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이 있어야만 하고 이들을 어떻게 하면 개선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진정한 고민이 각자의 몫으로 남겨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자도 마찬가지로 요즘의 유럽의 변화에 대해 우려를 갖고 있으며, 과거부터 오랫동안 쌓아온 ‘유럽의 다양성의 전통’에 기대를 갖고 여기에 시민들이 ‘지금 당장 민주주의를!’ 이라고 나서서 외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민주주의가 진정 서로 존중하는 이들이 모여 만든 정치체제라면 우리들의 자유와 인권, 평등을 위협하는 모든 것을 거부할 권리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거대한 정부나, 이익집단, 기득권층들이라 하더라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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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만난 북한 근현대사
테사 모리스 스즈키 지음, 서미석 옮김 / 현실문화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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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The Diamond Mountains 라는 제목으로 지난 2010년에 출간된 호주의 역사학자 테사 모리스 스즈키의 책을 읽었습니다. 국내에는 2015년에 번역 출간되었구요. 저는 얼마전 같은 출판사에서 출간된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 전쟁’의 서평이 알라딘 이 달의 역사책 리뷰에 선정되어 현실문화 출판사로부터 이 책을 기증받았습니다. 자리를 빌어 감사하단 말씀 드리고 싶군요.

책의 첫머리에 저자인 테사 모리스 스즈키는 한일병합이 이뤄진 1910년 경에 만주와 조선을 둘러보고 글을 쓴 ‘에밀리 켐프’의 당시 행로를 떠올리며 여행을 시작하고 있는데요. 켐프의 특별한 개인사를 언급하며 그녀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오래전에도 이렇게 알려지지 않은 동양을 둘러보았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대단하다고 여겨지는데요. 더욱이 에밀리 켐프는 조선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기에 그녀의 기록의 곳곳에 마음이 느껴지더군요. 그래서 추정한건대, 테사 모리스 스즈키 역시 분단국가인 한국과 북한에 대한 안타까움과 자신이 스스로 읽힌 역사의 흔적들로 오로지 외부의 환경과 냉전 초기의 이념적 대결이 잉태한 책임이 오늘날 한민족에게 놓여져 있다고 여기면서 글 곳곳에도 켐프와 마찬가지로 그러한 애정이 보입니다. 켐프와 모리스-스즈키가 시공을 초월해 가지는 공감이 독자들에게도 전해지지 않을까 감히 생각해봅니다.

이렇게 저자의 행적은 하얼빈과 선양, 장춘을 거쳐 단동, 신의주, 평양을 향하게 되는데요 과거 하얼빈에서의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처단을 언급하며, ‘안중근은 조선을 장악하여 복속시키려는 일본의 야욕이 확실해지기 전까지만 해도 일본의 근대화와 이토의 정치적 견해를 열렬히 지지하던 추종자였다.’ 라고 짧게 소개하고 있는데요. 일찍이 안중근 의사가 소위 아시아주의적 입장의 지식인이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의 개화기와 그 시기의 한복판에 있었던 이토 히로부미의 행적을 추종했다는 것은 너무나 믿기 어려웠습니다. 원전의 출전이 소개되었다면 좋았을텐데 조금 아쉬웠습니다. 또한 중국의 동투르키스탄 합병과 복속된 위구르 족과는 달리 중국에 동화되지 않고 떠도는 후이족을 소개하고 일제가 세운 만주국에 대한 역사적 배경과 일화들까지 엮어내어 꽤 흥미롭더군요. 불교에 대한 저자 자신의 감화적 태도도 심도있게 서술되고 있는데, 동아시아 역사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전반의 학문적 이해가 깊다는 것을 또 알 수가 있었습니다. 서양인이 이 정도로 우리를 비롯한 이 지역에 대해 면밀한 이해를 갖고 있는 것은 특히 놀랍더군요.

이후 평양에 도착에 받는 느낌과 도중에 만난 다른 나라의 관광객들에게 사람들이 정치적 신념 때문에 고문 당하고 살해당하는 나라의 땅을 밝아야 하는가, 밟지 말아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점, 전근대의 식민지 유산을 탈피하겠다고 하더라도 평양에 20세기 초 일본 근대주의자들이 깔아 놓은 격자도로가 기반이 되어 오늘날 도로의 기본이 되었다는 평가, 평양의 중류층 이상의 사람들은 북한의 동북지방에 산재해 있는 정치범 수용소의 존재에 대해 알지 못한다는 소개에 많은 생각이 들더군요. 이 책이 쓰여진 2010년경은 남한의 박근혜 정부나 미국 일본 등도 김정일 사후 급속하게 북한이 붕괴될 것이라고 보고 북한의 상황을 방치하기까지 했는데요. 자신들이 주체 사상이라는 이념으로 주민들을 철저히 관리하고 체제 유지에만 급급한 북한 정권과 북한의 지도층들이 서독이 붕괴해가는 동독을 사실상 떠맡은 사례를 그들은 생각조차 하기 싫을 것이라는 본래의 진실은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판문점과 서울, 부산과 거제도를 거쳐 원산에 이르는 길은 결국에 책의 원제가 말하는 종착지인 금강산을 향하게 됩니다. 4대 사찰과 불교 유산이 산재해 있는 민족의 영산, 더불어 도교적 흥취까지 스며있는 일제 시기에도 일본인들 마처 경탄을 금치 못했던 금강산을 마지막으로 스즈키의 여정은 끝이 나는데요. 그녀는 영험하고 신성한 금강산에서 자신의 마음속 한켠에 어떠한 느낌을 두고 왔을지 궁금합니다. 자신의 학문적 연구를 통해 알게된 한반도와 근대 이후의 동북아시아의 역사는 그녀에게 어떤 의미일지도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또한 우리 한국인들은 저 이북의 땅은 밟지 못하지만 그녀가 전하는 북한의 분위기와 사람들의 모습은 이 책으로나마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감사해야 될지도 모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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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시아의 파워 매트릭스 - 전쟁과 평화의 기로에 선 한반도
NEAR재단 지음 / 이새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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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시아 연구를 목적으로 설립된 민간 싱크탱크인 NEAR재단에서 동북아 3국인 한중일 간의 정치, 경제, 역사 화해에 대한 논의를 근래 한권의 책으로 펴냈습니다. 일종의 연구집이라고 봐도 무방할텐데요. 한중일 3국의 공인된 관련 연구자들이 집필진으로 참여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성균관대 이희옥 선생과, 전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였던 이태진 선생을 글로나마 접할 수 있어서 비교적 기대와 함께 책을 일독할 수 있었습니다.

1부는 냉전 이후 안보 환경 변화가 초래된 오늘날 동북아에 대한 개괄적 분석과 여기에 중국의 대두와 북한의 핵과 미사일 문제를 다루고 있고, 2부는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주제로 한중일 3국간의 경제적 측면에서의 분석, 앞으로의 전망을 담고 있습니다. 3부는 아무래도 요즘 일본 정치권의 심상치 않은 역사를 해석하는 문제와 전체적으로 1945년 2차대전 종전 이후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역사문제에 대해 한중일 3국의 연구자들과 이들의 대담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한반도가 실재하는 이 지역은 정치적으로 안보 변화에 놓여있는데요. 특히 중국이 놀랄만한 경제 성장을 바탕으로 외형적으로나마 경제대국에 도달함으로써 이에 대한 대국화 전략을 수립하고 지역 강국에 걸맞는 대접을 받으려는 입장과 국제 사회의 첨예한 제재와 비난에도 핵과 미사일을 개발해 지역 안정 뿐만 아니라 아시아 전체에 안보 줄안이 되고 있는 북한 문제에 대해 의견들을 개진하고 있는데요. 대체로 심도있는 논의를 보여주고 있어서 관심있게 보게 되었습니다. 다만 북한이 왜 핵무기를 개발하느냐는 문제에 대해 아직도 언급되는 것은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와 일본측에서는 북한 문제에 대해 중국의 성실하고 실효적인 영향력을 기대하는 듯 했으나, 사실상 중국의 북한에 대한 영향력은 거의 전무하다고 여기고 다른 대안을 찾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중국은 북한의 지정학적 위치와 소위 순망치한적 이해관계로 북한의 붕괴나 남한에 의한 흡수통일을 전혀 바라지 않고 있으며, 여기에는 수많은 난민들의 동북3성 유입을 근거로 내세우고 있지만 본질적인 이유는 실질적으로 미군과 국경을 마주하고 싶지 않은 자신들의 안보적 이해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꽤 흥미로운 내용들 중에는 만약 대만이 핵무장을 시도하게 된다면 중국은 지금의 북한에게 대응하는 것처럼 하긴 힘들것이라는 주장이 있는데요. 그리고 이러한 동북아의 안보 불안정에 미국이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을 용인하고 한국과 일본에 전략 자선을 더 투입하게 된다면 중국이 좀 더 북한을 관리하려고 들 것이라는 논의에는 예측이 어렵고 부정적인 측면이 크다고 봐야겠죠. 미국의 핵우산 아래 있는 것이 중국과 러시아 뿐만 아니라 미국에게도 강한 안보이익이므로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을 용인하지는 않겠으나, 이번의 북한과의 대화 기조가 어그러지거나 결국 무용의 결과에 이른다면 예측하기 힘든 트럼프 대통령의 성향으로 봤을 때, 한일 양국의 핵무장을 용인하고 군사 자산을 일정부분 후퇴시키고 과거의 고립주의로 갈 가능성도 고려해 볼만 하겠지만 그렇게 되기에는 아무래도 어려울 것입니다. 또 새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가 김정은과의 치킨 게임을 어떻게 풀어 나갈 수 있을지에 대해 현명한 협상력과 면밀한 외교적 이성이 필요하며 그중에서도 북한 핵실험 결과에 대해 미국과 중국등에 섭섭함을 표시했는데, 여기에는 우리가 능동적으로 ‘우리다운’ 생각이 결여되어 있는 것으로 정부와 외교 당국자들이 적극적으로 우리의 의사와 요구를 주변국과의 관계에서 주지시키고, 특히 미국과 중국 양국 사이에서 되도록 중립을 지키려고 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고 보는 시각에 수긍이 가더군요. 이른바 연미화중에 대한 높은 상황 분석과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음 경제 부분에서는 한중일 삼국 뿐만아니라 아세안을 비롯한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지속가능한 경제 성장과 앞으로 있을지도 모르는 아시아 금융 위기 가능성과 (대체로) 중국 주도의 한중일 삼국 경제 통합화에 대한 분석 및 경제 협력 가능성, 금융 위기 가능성에 대한 삼국간의 통화 스와프 문제 등에 대해 논의하고 있는데요. 지난 한일간의 통화 스와프는 독도 문제와 위안부 문제 등으로 일본 내의 불만이 원인이 되어 연장이 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여기에 의견을 밝힌 일본 연구자는 ‘경제적 문제에 역사 문제가 관여되고 있으므로 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식으로 밝히고 있는데 뒤에 3부에서도 간혹 나오는 논리지만 자신들이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은 괜찮고 한국과 중국이 역사 문제를 물고 늘어지는 것은 탐탁치 않아 하는 일본 내의 의견이 보여지고 있습니다. 다만, 일본 측에서 한중일 삼국 사이에는 달러가 존재하기 때문에, 한중일 삼국의 화폐로 직접 교환할 수 있는 시장의 구축이 필요하다고 건의한 것은 꽤 수용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한일 양국은 뒤에 미국 때문에 이러한 논의가 어려울 수도 있지만 시도해 볼만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과거사 해결과 동북아시아 화해 시대에 대한 결론에는 일본이 거듭된 사과에도 불구하고 한중 양국이 너무나 집요하게 요구와 평가를 내리고 있다는 일본 측의 주장은 여러 글들에서도 비슷하게 접하게 되는데요. 이처럼 일본 내에서는 이에 대한 불만이 적지 않게 있는 모양입니다. 저는 이 점을 일본 국민들이 전후 역사 문제에 대해 갖고 있는 본심의 의견이라고 생각합니다. 뿐만 아니라 아베 총리의 일단 역사 수정주의에 대해 미국의 뉴욕 타임스나 워싱턴 포스트가 연일 비판하고 있음에도 본심을 내비쳐, 그것을 실질적인 무라야마 담화나 고노 담화의 무력화에 나서고 싶었지만 당시 오바마 행정부의 압력으로 철회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사실 지금의 트럼프 대통령의 역사 인식이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 일본의 정치권이 어떻게 나올지에 대해 우려할 만한 가능성이 있으며, 과거와는 달리 한중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배타적으로 행동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국민대 이원덕 교수는 과거 2차대전 종전 후 독일이 동서 냉전 상황하에 주변국과의 관계 정상화와 사죄를 통한 전반적인 독일의 국가 이익이 있었기에 사좌 정치를 행할 수 있었다고 평가하며 일본에게도 이러한 환경이 조성되면 일본이 사죄를 할 것이고 역사와 화해 문제는 저절로 해결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평가하고 있는데요. 저는 여기에 동의하기 힘들었습니다. 일본측에서 지난 2015년 위안부 합의에 대해 자민당 정부가 아니라 다른 정부라 하더라도 일본 측에서 이것보다 더 높은 양보를 하기는 힘들며 이를 한국 정부가 감안해야 한다고 말하는 부분에서 일본의 역사 문제과 관련된 거의 전반적인 논의에 대해 한결 같은 입장이라는 것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이태진 선생도 역사를 잊지 않되 용서는 하자는 일부 한국 학자들의 주장에 동의하기 힘들다고 밝히고 있으며, 이러한 배경에는 아직도 ‘식민지 근대화론’를 비롯한 수정주의적 입장에 서있는 학자와 관료들이 많은 것으로 아무리 용서가 피해자만이 할 수 있는 권리라지만 이러한 일본측의 태도를 무조건적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 국민 정서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비슷한 영국과 아일랜드의 관계가 북아일랜드 문제로 거의 100년이나 지체된 것처럼 한국과 일본, 중국과 일본 사이의 해결되지 않은 역사 고리는 그보다 더 오래 지속될 한중 양국 국민들의 정서가 깃든 아주 근본적인 문제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사실상 아베로 비롯된 일본의 정치권이 더욱더 수정주의적 입장에 다가설 것으로 예상되어 사실상 한중일 3국간의 진정한 교린과 협력은 어렵지 않나 예측해봅니다.

결론적으로 최근에 동북아시아의 정치, 외교적 환경 분석과 안보 문제를 다룬 글들 중에 이 책은 독자들에게 꽤 수준높은 이해를 제공한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각국의 입장과 이 지역의 현실적 문제들을 다루고 있어서 이론과 접근이 대체로 실용적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그리고 이 분야의 이름있는 연구자들이 다수 참여해 최근의 연구 경향까지 파악할 수 있어서 학문적 측면에만 국한해봐도 꽤 유용하지 않나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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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팔아버린 남자 - 신자유주의 국가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윌리엄 클라인크넥트 지음, 유강은 옮김 / 사계절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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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 ‘The Man Who Sold The World”와 매치되어 한국에 번역 출간된 ‘세계를 팔아버린 남자’를 일독했씁니다. 이 책은 2012년도에 출간되었구요. 저는 우연찮게 초판본을 구해 읽게 되었습니다. 약간의 호기심으로 구글에서 검색을 해보니 원래 미국에서 출간된 책에는 젊은 시절 배우로 활약했던 로널드 레이건의 흡연 장면이 책표지로 장식되어 있는데요. 이상하게 묘한 느낌이 들었는데요. 아마도 신자유주의를 통해 미국과 세계를 자유 시장에 맡기며 즐거워 하는듯한 모습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상하게 이 책을 소화하는데 다른 책들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4일 동안 잡고 있었는데요. 생각보다 진도가 안나가서 괴로웠던 것 같습니다. 딱히 번역의 문제라기 보다는 몇몇 중요한 사건 중심으로 해석해 지은이가 의견을 내는 방식이 아니고 레이건 행정부 시절 당시의 관련된 인사들의 행적들을 신문 기사가 풀어내는 방법으로 글을 엮어내고 있어서 읽어내는데 적잖은 노력이 들어서 그런지 모르겠군요. 조지 슐츠나 캐스퍼 와인버거와 같은 당시 내각의 유명인들을 제외하면 귀에 생소한 인물들이 대부분이라 아마도 배경지식이 없어서 더 그랬을지도요. 반대로 일종의 르포 형식이라 이런 글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약간의 배경지식을 취합하여 읽으면 괜찮을 것 같기도 합니다.

출연하는 영화의 단역으로 출발해 당시 배경으로만 봤을 때도 배우 치고는 꽤 정치적 성향이 있었던 인물이 레이건일텐데요. 초기 진보적인 성향에서 본격적으로 정치에 관심을 갖고 활동할 시기에 적극적인 공화당주의자로 변신하고 특유의 이미지 정치와 많은 이들에게 인간적인 호감을 느끼게 만드는 장점 등으로 대통령 선거를 치뤄 꽤 이슈를 만들기도 했는데요. 사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은 이 책의 저자도 특별히 강조하는 부분은 영국의 대처와 더불어 전세계에 이른바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은 항상 옳다’는 신념의 자유시장을 강조하여 신자유주의의 기치를 올린 정치인으로 유명한데요. 2008년 이 전까지 미국과 유럽이 거의 유일한 이념으로 생각한 전세계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파고에 대한 비판과 재평가는 오늘날 수많은 사상가와 학자들을 통해 이뤄지고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클라인크넥트의 이 책은 당시의 레이건과 그 주변인물들 특히 정책과 정치상황에서의 상황에 대한 독자들이 판단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으로 평가를 내리고 싶습니다.

일찍이 우드로 윌슨이 ‘서민을 실망시키는 것은 무엇이든 진보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천명했던 것처럼 레이건 행정부의 정치경제적 행위들은 사실상 소수의 부유 계층과 기업들을 위한 전반적 시장 재구성과 여기에 도태되는 많은 국민들을 무자비한 야생의 세계로 내몬 것이라 볼 수 있는데요. 거기에 해당되는 한때 왜곡 주장으로 밝혀진 ‘복지 여왕’의 오도와 복지 전반을 무위로 돌리고, 환경 규제와 금융업 전반의 규제와 기업 규제와 같은 최소한의 안전망을 갈아엎은 이른바 ‘제네럴모터스에 좋은 것이 미국에 좋은 것’이라는 주장까지 잉태하게 됩니다.

여기에는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네오콘들의 대부인 레오 스트라우스와 비견되는 철저한 자유주의자 아인 랜드를 추종하는 자유시장 근본주의자 앨런 그린스펀을 연준 의장에 앉히고 종내에는 금융시장에서의 상업 은행과 투자 은행의 분리를 보장했던 글래스-스티걸 법안의 적잖은 무력화 시도와 부유층의 재산 증식 시도라고 봐도 무방한 무분별한 기업 합병을 통한 기업들의 주가 상승 시도 등 미국의 자유 시장 추종에는 이러한 의도가 있었는데요. 당시에도 낙수 효과(Trickle Down)를 믿는 미국인들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의 복지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미국 국민들의 왜곡된 정서도 한몫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정치권과 언론의 의도였던간에요. 저는 여기에 소개된 자료들 중에 충격이었던 것이, 1981년 한해 동안 (합병을 위한) 전체 대금 가운데 300~380억 달러가 미국 은행에서 대출한 것이라고 나와있는 것을 보고 이러한 인수 합병이 실로 소수의 부유층을 위한 수단이었다고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밖에도 회계 부정으로 수십억달러를 휴지 조각으로 만든 엔론 사태나 저축 대부조합의 도산 사태 등 우리가 알아야 될 사항들이 많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사회 따위는 없다’고 일갈한 대처 전 영국 수상의 말처럼 레이건 대통령의 행적들에서도 묘한 기시감을 느꼈는데요. 무분별한 신자유주의화의 제 2부가 되지 않도록 많은 시민들이 이에 대한 인식을 명확히 하는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느꼈습니다. 그래서 저역시 중간에 내려놓고 한쪽으로 치워버릴까 하는 고민을 억누르고 끝까지 읽게된 원동력이 아니었나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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