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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고쳐쓰기 - 천박한 자본주의에서 괜찮은 자본주의로
세바스티안 둘리엔 외 지음, 홍기빈 옮김 / 한겨레출판 / 2012년 9월
평점 :
절판
독일 뿐만 아니라 세계 사민주의의 입장에서 많은 영감을 제공하고 있는 프리드리히에버트 재단의 기획으로 세바스티안 둘리엔, 한스외르그 헤어, 크리스티안 켈러만 이 세 명의 저자가 오늘날의 자본주의적 위기와 이를 넘어서 ‘괜찮은 자본주의라’는 모토로 꽤 놀랄만한 저작을 만들어 냈습니다. 번역은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인 홍기빈 소장이 맡았고, 한겨레출판에서 책의 출판을 책임졌습니다.
전체적으로 여기 글의 중점적인 주제는 “시장경제에 대한 사회 통제의 철저한 우위”라고 저자들은 밝히고 있는데요. 이미 케인스가 상세한 자료와 입증할 만한 데이터를 가지고 미래를 예측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정확성을 담보할 수는 없고, 단지 우리는 모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고백을 했습니다. 특히 시장 경제에 있어서 도사리고 있는 많은 리스크들과 예측 불가능성을 고려했을 때, 더이상 시장이 우리에게 인간의 불합리성을 대체해 주리라는 것은 이미 허구임에 밝혀졌는데요. 즉, 공공의 역할을 수행하는 주체는 시장이 되어서는 안되며, 그것은 각 국가의 주권의 권리라 여겨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이는 시장의 점진적인 실패로 말미암아 벌어지고 있는 유럽의 민족주의의 재현이 얼마나 위험한 단초인지 지난 역사에서 교훈을 찾을 수 있다면 많은 사람들이 이 점을 주의깊게 고찰하는 것이 중요하리라 생각됩니다.
1부는 2차대전 이후 1970년대를 거쳐 시장 자유주의가 다시 발흥되면서 1980년대 레이건과 대처로 비롯된 신자유주의적인 자본주의에 대해 평가하고 그것의 주된 기반이 되었던 ‘금융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을 주로 담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한스베르너 진의 ‘카지노 자본주의’가 훌륭한 참고 자료가 될텐데요. 금융 시장에서 금융인들의 정보 제한과 시장 참여자의 합리성을 무기삼아 이에 언론인들과 정치인, 사상가들이 여기에 무비판적으로 동조해, ‘부채의 무분별한 증권화’로 비롯되는 수많은 금융 기법 등이 시장을 어떠한 식으로 붕괴시켰는가는 지난 2008년 뉴욕 발 세계 금융 위기로 익히 알려진 바가 있습니다. 미국과 같은 경우에도 글래스-스티걸 법이 무력화 되면서 금융계에 대한 규제가 철폐되고 2001년 이후 금융 시장이 자본주의에 있어서 새로운 성장 원동력으로 이해되기 시작하자 이러한 파급이 더욱 가중된 것인데요. 이는 자유 시장 논리에 입각한 무분별한 규제 완화가 어떠한 결과를 일으켰는지 보여준 중요한 사건입니다. 이러한 결과는 지난 2007년 이후 서브 프라임 모기지와 관련된 미국의 손실이 IMF 추산 5000억~6000억달러로 집계된 바 있습니다. 거의 대규모 카지노적인 도덕적 해이이며, 시장이 만능이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보여준 결과입니다.
뿐만 아니라, 레이건 시대 이후 “주요 보수파 정치인들에게 노동 조합의 세력화와 노동자의 권익 보호 따위는 이들에게 눈엣가시였다”는 설명과 나날이 그 격차가 심각해지는 소득 불평등이 미국의 큰 사회 문제가 되었고, 복지를 시장경제의 크나큰 해악이라는 날조를 유포시킨 이들 보수층의 행동이 오늘날의 사회 안정망의 붕괴와 빈부 격차를 크게 악화시킨 일종의 이념적 프로파간다의 폐해라는 분석이 옳은 이유인데요. 저는 이러한 미국의 사례로 그렇게 막대한 사회이념적이고 정치권의 백지 수표 지원을 받은 신자유주의가 어떻게 미국 국민들의 기대를 산산이 저버리고 막대한 쌍둥이 적자국이로 전락시켰는지 명확히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여기의 저자들도 앞으로 통제권을 사회로 갖고 오는 것에 대해 주저하지 않고 있으며, 이 점과 관련하여 독일과 스칸디나비아 3국의 사례와 금융 시장에 대한 통제력을 유지한 지난 중국 정부의 정책을 비교 분석하고 있습니다. 다만 미국의 막대한 경상수지 적자가 바탕이 된 독일과 중국, 일본 등의 막대한 흑자국들의 상황이 정상적이지 않은 것은 분명하고, 이렇게 미국의 만연된 적자 기조에 기대어 다른 국가들이 번영을 누리는 것은 장기적으로는 세계 경제에 좋지 못한 영향을 끼치게 될 겁니다.
이에 2부에서는 앞으로 우리가 좀 더 괜찮은 자본주의를 만들기 위해서 공공 부분의 정부나 시민들이 인지해야만 하는 사항들에 대해 비교적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는데요. 이를테면 뉴질랜드나 미국 등을 통해 공공 부문의 시장화의 실패에 대해 다시 공공부문을 세우고, “만사를 시장에 맡겨놓기만 한다면 공공재의 공급은 불출분해진다”고 이를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소득 불균형에 대해서는 특히 최저 임금은 평균 임금의 상승에 맞추어 조정되어야 하며, 더 싼 노동력을 위해 이동하는 대규모 자본들과 그것을 수단으로 삼아 평균 이하의 임금을 지불하는 것은 일종의 노동에 대한 시장주의적 관점이라 볼 수 있지만 이것을 개선하기 위한 임금 부조와 같은 장치들을 생각해보는 것도 중요합니다. 최저 임금제에 대한 것은 전적으로 정치적인 일이 되어야 하고 그것을 시장의 문제로만 여기는 것은 사회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도 명확히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전 지구적 금융 자본에 대해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며 새판을 다시 짜는 것과 마찬가지의 여러 방책을 글에서 제시하고 있는데요. 이미 금융권에 대한 자기 자본 비율에 대한 사항과 여러 개선 사항은 익히 알려져 있습니다. 자기 자본 잠식과 같은 문제는 심각한 문제로 여겨지고 있고 금융 시장에서 도덕적 해이가 벌어지게 되는 무차별적인 이익 추구에 대한 한계 설정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는데요. 국제적 자본 이동에 대한 규제가 과연 실효성이 있을지는 좀 더 면밀한 관찰이 필요하고 자본을 가짐으로써 자본 이익을 얻고 있는 소수의 부유층들에 대한 실질적인 과세를 부여하는 것이 좀 더 중요하지 않나 개인적으로 생각해봅니다. 일전에 미국 당국은 스위스의 UBS에 압력을 넣어 미국인들에 대한 계좌 정보를 건네 받은 적이 있습니다. 이와 같은 수단들이 좀 더 면밀하게 고안된다면 그것이 좀 더 효과적이지 않나 싶습니다.
아직도 산업 발전이 지속적으로 필요한 많은 국가들과 탄소 배출권과 관련된 이견, 앞으로 녹색 성장과 같은 환경친화적인 수단의 마련은 시급하고 중국으로 뒤이어 인도와 같은 거대 인구 국가들의 역할이 중요할 텐데요. 이미 선진국의 반열에 있는 국가들과 후발국 들 간의 전반적인 조정과 타협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경제학자들도 환경과 상생 발전 가능한 이론을 고안해 내는데 노력해야 하는 것도 마찬가지겠죠.
끝으로 우리의 경제학은 여전히 스미스의 그늘하에 있다고 무방한데요. 신고전파로 불리우는 주류 경제학이 아직도 인간의 이기심과 사적 이익 추구에 많은 손을 들어주고 있고 정부의 역할에 대해 회의를 품은 학자들이 더 많다고 봐야할 것입니다. 신자유주의의 낙수 이론은 이미 허구임에 드러났고 근본적으로 자본주의의 모순을 개선하는 것만이 파국을 막는 길임을 인지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시기라고 여겨집니다. 여기의 저자들도 인정한 우리의 자본주의를 좀 더 인간적으로 만들어 다시 쓰는 것이 중요하다는 입장을 아마 많은 독자들이 수긍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