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축의 발명 - 미국의 북한 이란 시리아 때리기
브루스 커밍스 외 지음, 차문석 외 옮김 / 지식의풍경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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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반테러리즘의 일환으로 걸맞는 표적들을 통칭해 악의 축으로 규정했는데, 이것은 많은 분들이 아시다시피 제2차 세계대전의 추추국 (the Axis) 에서 인용된 표현입니다. 바로 이런 불량국가들에 대한 분석과 당시 소위 네오콘이라 불리우던 미국 행정부에 있는 주류 정치 세력에 대한 비판으로 3명의 저명한 학자들에게 원고를 부탁하는데, 그 부탁을 한 사람은 미국의 저명한 출판인인 안드레이 쉬프린입니다. 그는 출판사 뉴프레스를 세운 사람입니다. 미국에서도 손꼽힐정도 인정과 존경을 받는 사람이죠.

이 책에는 쉬프린이 원고 청탁을 건네 3명의 학자들의 글이 담겨져 있습니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시카고 대학교의 역사학 교수인 브루스 커밍스와 뉴욕 시립 대학의 역사학과의 교수인 에브란드 아브라하미안, 미국평화연구소 선임 연구 위원인 모셰 마오즈 입니다.

책의 원제인 Inventing The Axis of Evil 은 좀 더 노골적으로 표현한다면 ‘악의 축 꾸며내기‘로도 바꿀 수 있지만 우리에게 번역된 제목은 ‘악의 축의 발명‘으로 소개되었습니다. 당시의 부시 대통령이 어떠한 심정과 역사적 배경을 인지하고 그러한 표현을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브루스 커밍스 교수가 꼬집은 대로, 역사 감각이 없다면 지도자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 부시 대통령 자신은 통달한 지식으로 인한 깊은 사유없이 주변의 네오콘들에게 조언과 때론 얼마간은 수동적인 리드를 당했음에도 지대한 정치적 영향력을 갖고 있는 처칠과 같은 언행을 흉내내기에 바빴던 그런 이중적인 인물이었습니다. 미국이라는 거대한 민주주의 국가가 외부의 위협을 걱정할 정도로 허약하고 모순에 가득찬 상태라고 의심하지 않지만 당시에 미국의 정치권은 이른바 9. 11 테러로 인한 심각한 안보 위협을 노이로제와 비슷한 심정으로 받아들이고 있었고 그러한 국내 분위기를 부시와 그의 행정부가 적극적으로 이용한 것이겠죠. 파이프 라인을 위해 이라크에 개입할 구실을 만들고 전쟁을 수행한 것은 익히 알려진 바와 같습니다.

이 책은 국내에 2005년에 출간되었기에 여기서 주장된 정치, 외교적인 형태가 수정 또는 첨언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만, 전체적으로는 미국을 포함한 세계의 사람들이 북한과 시리아, 이란을 좀 더 이해하게 하는데 큰 도움을 제공합니다. 커밍스 교수가 말한대로 북한이 왜 핵을 갖으려고 하는지에 대한 것과 (물론 북한이 핵을 갖는 것이 정당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기까지 그 이전의 미군정의 불성실함과 한국과 한국민에 대한 무지, 보다 입체적으로 김정일의 북한과 클린턴, 부시 행정부의 미국이 북핵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했던 여러 입증된 자료들을 분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커밍스 교수의 원글이 여기에 소개된 번역과 동일한지는 모르겠으나, 이 분의 해학과 풍자적인 표현은 참 거리낌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한반도와 한국민에 대한 그의 진실한 이해와 동정이 느껴져서 읽는 내내 커밍스 교수를 실제로 대면하고 싶은 마음이 들더군요. 물론 그의 한국 전쟁에 대한 수정주의적 입장으로 인해 특히 국내에서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서구 학자 못지않게 우리에 대한 깊은 이해는 충분히 존중 받을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얼마전 극적인 타결을 본 이란의 핵개발과 관련된 왜 이란이 핵무장을 하려는 것인가에 대한 답이 아브라하미안 교수를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이 부분도 이란의 핵개발이 정당하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혁명 전까지는 이스라엘과 우방국이었으며, 미국과도 중도 어느 나라보다 가까웠으며 당시 중동에서는 친자본주의적이고 민주주의적인 국가가 혁명의 길을 거친 이후, 폐쇄적이며 민족주의적인 주장이 강화되어 지역내 강국화를 부르짖고 중국과 인도의 핵기술을 받아들여 핵을 키우는 배경에 대해 언급되고 있습니다. 한가지 덧붙인다면 여기에 진보된 북한의 미사일 기술이 한몫을 하게 되었죠. 지금은 좀 더 개혁적인 요구가 이란 내부를 변화시키고 있고 종교적인 국가 지배가 많이 완화되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다만 아브라하미안 교수가 언급한 그 이후의 이란에 대한 것은 시간차가 있어서 보충 설명이 되지 못하는 점은 있는데요. 이란 혁명 이후의 미국과의 관계와 이란이 혁명을 거쳐온 개략적인 정치사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점은 유익하다고 생각합니다.

러시아의 유일한 지중해 진출 교두보이자 현재 IS문제로 거의 전국토가 무정부 상태로 빠진 시리아에 대해 모셰 마오즈가 분석한 글도 그동안 궁금했던 아사드 대통령과 그의 정권에 대해 면밀히 알게 해주고 있습니다. 미국이 IS와 더불어 시리아 정부군까지 축출하려는 행동에 대해 왜 러시아가 반대했는지 그런 지난날의 정치역사적 배경까지 이해 되었습니다. 구소련 시절에 시리아와의 우호 협력 조약을 그때 그때 작위적으로 조절해서 받아들였던 지난 역사가 있음에도 현재의 러시아는 지중해 진출과 시리아와의 준동맹 국가임을 자처해 개입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습니다. 이것은 온전히 푸틴의 의지입니다. 더불어 이스라엘과 레바논, 그리고 예전의 협력 관계였던 이집트, 마지막으로 현재로서도 골치아픈 문제인 팔레스타인과의 갈등에 대한 배경을 이 글을 통해 이해하게 됩니다.

이 3개의 악의 축은 어쩌면 미국이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충분히 개선시킬 수 있었던 관계 또는 문제였음에도 정확한 표현으로 ‘현재는 그냥 한구석에 치워버려‘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을 이슬람의 테러리즘 문제로 인해 부각된 측면이 큽니다. 지구상의 거의 모든 정치인들 혹은 정치세력들은 자신들이 이용할 수 있는 수단이라면 머뭇거리지 않지만 이 악의 축의 문제는 미국 자신들이 깊숙이 관여해 있다는 측면에서 자기모순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의미와 관련해 브루스 커밍스 교수는 ˝한국인들은 미국인의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고통을 겪어 왔다. 미국은 수십 년 전에 북한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었지만, (빌 클린턴을 제외한) 미국의 지도자들은 노력하지 않는 편을 택했고, 그리하여 이 새로운 세기에 미국은 그 문제와 관련하여 악화된 상황에 놓여있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의 현명함은 이 악의 축이 현실적으로는 미국의 문제이며 그 원인 또한 미국의 소홀함이라 이해하고 있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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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의 담대함 - 버락 오바마는 어떻게 비판을 이겨내고 확고한 유산을 창조했는가
조너선 체이트 지음, 박세연 옮김 / 성안당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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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매거진의 정치 칼럼니스트이자, LA타임스,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등에 꾸준히 글을 기고하고 있는 조너선 체이트의 오바마 전 대통령의 대한 지난 8년간의 임기의 성과를 담은 글을 흥미롭게 읽어보았습니다.

어쩌면 임기내내 그리고 대통령에서 물러난 뒤에도 미국의 티파티를 비롯해 수많은 보수단체와 공화당에게 인간적 모멸감까지 부수적으로 받아야 될 정도로 공격을 받은 대통령으로 기억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오바마 대통령의 당선 전까지 그를 지지했던 진보적이고 사회 민주주의적인 지지자들의 지지 철회도 있었습니다. G7을 비롯한 OECD 내의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주류 언론이 비교적 진보적이라고 평가 받는 미국 언론들에게서도 오바마 행정부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습니다. 뭐 어찌됐든 바로 그런 의문에서 저자의 이 글이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도 그런 의미에서 이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백악관에 머물던 시간을 돌이켜보게 되었습니다.

진보, 보수 양쪽에서 공통되게 그를 평가하는 것은, ‘수려한 연설, 해박한 지식, 철학적이고 교훈적이며 치우치지 않은 대화와 태도‘ 입니다. 일전에 힐러리 클린턴은 오바마를 평가하며 ‘그는 정치인보다는 연설가나 교육자가 어울린다‘고 했죠. 하지만 조지 W 부시가 남긴 유산이 남긴 여러 문제들을 정상적으로 회복시킨 대통령이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 책은 총 6장의 주제로 나눠 그와 그의 임기에 대해 분석하고 있습니다.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서 그가 겪었던 인종주의적 차별과 오해, 편견에 대한 일화들과 미국 사회에 아직도 끈질기게 자리잡고 있는 흑인과 유색인종에 대한 미국 백인사회의 인종주의적 편견에 대해서도 밝혀내고 있습니다. 미국인 백인 주류 사회는 오히려 자신들이 역차별을 받고 있다고 여기고 있으며, 현재에도 곳곳에서 흑인들에 대한 차별이 이어지고 있음에도 미국 사회는 충분히 흑백이 모든 조건에서 평등하다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얼마간의 신문 기사들을 검색해보면 그와 같은 주장이 얼마나 허구에 가까운지 깨달을 수 있겠으나 그들에게 진위여부는 크게 중요하지 않는 듯 합니다.

이어 소위 리먼 브라더스 사태로 대표되는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인한 뉴욕발 금융위기를 떠안고 임기를 시작한 오바마 행정부에게 월가에 투입한 공적자금은 거의 필수불가결한 문제였으며 다수의 공화당 인사들도 인정했듯이 리먼 브라더스와 더불어 AIG 등을 퇴출시켰으면 아마도 세계 경제에 미치는 여파는 막대했을 것 입니다. 이른바 이러한 어쩔 수 없는 예견으로 인한 구제금융 투입이 ‘대마불사‘라는 인식을 많은 경제인들과 금융인들에게 안기게 되었으나, 도드-프랭크 법안을 지지하며 금융시스템의 안전장치를 마련한 것은 좋은 평가를 받을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 역시 매우 실망한 부분이지만 바버라 에런라이크와 모리스 버먼의 책에서 언급했던 것과 같이 이런 대참사를 일으킨 수많은 CEO들을 연방검사들을 동원해 기소하지 않은 것은 이해하기 힘든 부분입니다.

그리고 오바마가 만든 여러 정책들 가운데 가장 많이 언급되는 ‘오바마 케어‘에 대해서도 필리버스터 논쟁이 있긴 했습니다만 끝내는 오바마 대통령이 서명을 함으로써 ‘국민들의 강제 보험 가입‘으로 그 재원마저도 적자 지출이 아니라 여러 낭비되는 세금을 줄여 대처해 혜택을 입고 있는 국민들과 정책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언론과 일반 여론까지 크게 지지를 보냈는데요.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 임기를 시작하면서 논란을 잠재우려고 그랬는지 이 오바마 케어는 건드리지 않겠다고 선언합니다. 종래의 미국 국민들중 약 4천만명이 의료 보험이 없는 상태였으나, 오바마 케어 시행 이후 약 2천만명의 국민이 새로 보험 가입자가 되었으며, 기존의 소요되는 비용도 약 30% 감소된 것으로 오바마를 극도로 혐오하는 사람들마저도 이 오바마 케어에 관련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는 상황입니다. 물론 한계점도 명확히 있는 부분이라 시간을 두고 정치권이 개선을 시키고 현실화 시키는 것이 필요하겠습니다.

마찬가지로 언론과 여론으로부터 공격받았던 이란과의 핵협상도 강온 양면을 동원해 타결 전, 중국과 러시아의 협력을 이끌어내고 이란의 평화적인 핵 이용은 열어 놓고 그에 따라 이란의 핵 프로그램을 끝내고 동시에 이스라엘의 안보 불안과 지역 내의 갈등 해소를 이뤄낸 것은 좋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여겨집니다. 제재와 강도높은 협박만 일삼았던 전임 부시 행정부와는 달리 이렇게라도 해결책을 만들어 놓은 것은 진일보한 것이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전세계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던 것은 세계의 패권국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부분에서 국익을 양보하기도 하고 국제 사회의 여론 형성과 주도를 민주적인 절차를 이용하려고 했던 노력입니다. 간혹 정보 당국의 의존한 비선 행위와 불합리한 행동을 보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과거 패권국을 지향한 국가들에 비해서는 자유 민주주의 세력의 큰형이라는 체면치레를 하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이 부분은 여러 의견으로 갈릴 수 있겠으나 저번 이란 핵문제와 관련된 협상은 오바마 개인의 평가로서도 그리고 미국의 역할에 있어서도 긍정적인 평가임에 틀림없습니다.

다만 이 책에서는 언급이 되지 않았지만, 에드워드 스노든으로 인해 밝혀지는 미국 내 주요 정보국들에 의한 무차별 도청과 미국의 동맹국들에게까지 행한 감청 문제 등 어떻게 보면 헌법을 위반한 이러한 위법한 사항을 개선하지 못한 것은 오바마의 한계라 볼 수 있을텐데요. 집권 1기 내에는 과반수가 넘는 의회 권력을 확보했으면서도 비대해진 정부 조직에 대해 칼을 대지 못한 것은 중차대한 이유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만 이러한 부득이함을 떠나서 이로인해 많은 진보주의자들과 지지층들이 실망한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조지 오웰이 두려워했던 국가의 일반 시민에 대한 무차별적인 감시가 실현된 것은 문제입니다. 헌법을 위반하면서까지 국가의 안위가 중요했냐는 점은 앞으로도 많은 토론과 대화가 있어야겠죠.

끝으로 파리 협약으로 나타나는 세계 기후 위기에 대해 오바마의 정치력으로 세계 최대 탄소 배출국인 중국과 타결의 실마리를 만들어 내지만 그 결과는 다들 알다시피 차기 정부 였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전면적인 거부로 나타났습니다. 이미 중국 내 대도시의 심각한 공해 문제로 이 부분을 해결해야된다는 목소리가 중국 내부에 있어왔기에 중국 정부도 이에 전향적으로 대응했는데 결국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미국이 없는 이 기후 협약이 어떻게 될지는 TPP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오바마 대통령이 백악관에서의 임기를 마치고 자연인으로 돌아갔지만 아직도 이 전임 대통령에 대한 비난과 홀대는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는 전임 대통령의 흔적 지우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데요. 저자도 이와 관련해 언급하고 있습니다만 이제는 임기를 마친 역대 대통령들 가운데 인종차별적이고 여성차별적인 인물을 백악관에 보낸 것은 앞으로 공화당에게 지울 수 없는 흔적으로 남을 것입니다. 설사 그것이 오바마와 민주당을 지우기 위한 행위로 인한 것이라 할지라도 이민자들과 유색 인종을 공공연히 배척하는 이런 인물과 손을 잡은 것은 1860년대 노예 해방을 부르짖으며 미국을 통합했던 링컨의 유산으로 시작된 정당의 역사로 봤을 때 실로 모욕적이고 개탄스러운 것으로 남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지미 카터로부터 오바마 행정부까지 근 40년 가까이 되는 현대 미국 정치와 주요 행위자들, 그리고 언론과 여론에 대한 해박한 분석을 가미한 저자의 이 글은 일반 독자들이 보기에도 이해가 쉽게 풀어 써나가고 있습니다. 번역상의 문제도 거의 없고, 다만 일부 오탈자가 몇군데 보이더군요. 저는 오자를 두 군데 발견했는데 이 점은 출판사의 문제일겁니다. 이 부분을 제외하고는 저는 만족하며 읽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을 내어 한 번 더 읽어볼 생각입니다. 단순히 전기라고 생각하지 마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그런 선입견이 있었습니다만 다 읽고 보니 근래 미국 정치에 대한 현명한 판단과 분석에 관한 글이라는 해석에 이르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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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핵 시대 - 전략과 위험, 그리고 새로운 무력 외교
폴 브래큰 지음, 이시은 옮김 / 아산정책연구원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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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내내 여러 뉴스 프로그램에서 기사화되어 판단되고 재분석되는 ‘북한의 괌 주변 공해상의 미사일 공격‘에 때마침 조금 연관되어 있어보이는 이 책을 손에 잡게 되었습니다. 이 땅에 사는 우리에게는 별로 새로울 것이 없는 반복되는 북한의 도발이죠. 이런 상황에서도 서울을 비롯한 거의 대부분의 도시들이 매우 평온하고 평소와 다름없습니다. 다만 미국을 비롯한 외부의 언론과 방송들은 이번의 북한 도발에 대해 연일 기사화하고 있습니다.

그럼 책으로 돌아가면서 저자인 폴 브레큰은 현재 예일대에서 정치학과 경영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2012년에는 미국 최고의 교수 및 학자 300인 안에 뽑혔다고 나와 있습니다. 이렇게 명성이 있는 사람이니 미 국방부와 정부 쪽의 여러 연구를 해 온 듯합니다.

책의 제목인 ‘제 2차 핵 시대‘는 과거 냉전 시대에 미국과 소련의 첨예하고 극단적인 핵대결의 시대를 ‘제 1차 핵 시대‘ 이후의 세계를 뜻합니다. 물론 저자의 해석이죠. 이 제2차 핵 시대에 처음 시기에 대해서는 본문에 여러가지 상황이 나오는데 아마도 1991년 냉전이 끝나고 한참 지난 1998년 이후 인도와 파키스탄의 핵무장 이후를 뜻하는 듯합니다. 물론 이스라엘의 핵무장은 한참 이른 시기이지만 그동안 이스라엘은 여러 여건과 국익을 고려해 핵무기 보유에 대한 언급에는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는 태도를 보여왔습니다. 다만 이스라엘의 핵무장에 관한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요. 저는 미국이 자국의 핵폭탄을 이스라엘의 안보 차원에서 장기 대여 혹은 무상 대여로 알고 있었는데, 사실은 프랑스가 이스라엘의 연구용 원자로를 제공한 것으로 나와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기폭 장치를 비롯한 핵무기 실험을 한 것은 나와 있지 않으나 아마도 프랑스가 사하라 사막 등지에서 한 자료들을 이스라엘을 위해 제공하지 않았나 추측해봅니다. 더욱이 이스라엘과 프랑스는 서로 동맹국입니다.

여기서 언급되는 여러 분류되는 용어들이 생소한데요. 저자는 국내 GDP 1조 달러 이상 국가들을 기준으로 일류국가라는 분류를 하고 있으며 나라의 경제 규모가 거기에 미치지 못하는 국가들을 전부 이류국가로 통칭하고 있으나 이 이류국가의 범위에도 여러가지 분류가 되는 듯 합니다. 일류국가는 성공적인 민주주의제도와 앞서 말한 경제 규모로 해석되어 보입니다. 일류국가에 언급되는 국가들은 미국, 일본, 인도, 중국, 브라질 등입니다. 반대로 파키스탄과 북한의 핵보유를 이류국가의 핵보유라 칭하고 있습니다.

먼저, 제1차 핵 시대 즉, 냉전 시대의 미소간의 핵대결을 먼저 설명하고 있는데요. 미국과 소련의 극심한 이념 대결에서 핵 위기는 여러 차례가 있었고 상호확증파괴라는 공포의 균형하에 양국의 정치인들은 우발적인 대결이 지구의 종말로 맞이하지 않기 위해 소위 ‘위기의 관리‘에 노력해왔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제1차 핵 시대의 교훈을 8가지로 압축하며 그에 대한 설명도 곁들이고 있습니다.

1991년 소련의 붕괴 이후 NPT 체제에서 국제적으로 공인된 핵무기 보유 5개국 이외에 발생한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 북한의 상황에 대한 자세한 분석을 하고 있는데요. 개인적으로는 이스라엘의 핵무기 보유와 전통적인 중동 지역 맹주라 볼 수 있는 이란과의 갈등 등 그 지역 정세에 대한 30년이 넘는 분석이 꽤 흥미로웠습니다. 이란의 핵문제는 지난 오바마 정권에서 이상하게 해결이 되었지만 이스라엘의 핵보유는 반대로 미국의 묵인과 프랑스의 협력으로 이뤄졌으며, 미국은 혹시 모를 이집트와 사우디아라비아의 핵무장을 피하기 위해 이스라엘의 핵보유를 몇십년간 언급하지도 않았으며 이스라엘도 이런 정치적 상황을 알고선 이러한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는 정책으로 일관했다고 생각합니다. 중동 내의 정치적, 군사적 상황이 용이하지 않은 이스라엘은 1981년 이라크의 오시라크 원전을 폭격한 것처럼 이란의 핵시설을 제거하고 싶어했지만 이란에 대한 공격은 설사 미국이 개입한다 하더라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정도로는 끝나지 않을 것이기에 오바마가 중국과 독일 등을 끌어들여 이란 핵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던 것에는 이런 배경이 자리하고 있다고 봐야할 것입니다. 특히 이스라엘에 대한 안전이 고려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인도와 파키스탄의 핵무장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데요. 인도는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민주주의 국가로 과거 중국과의 국경 분쟁과 파키스탄과의 카슈미르 지역의 영유권 문제로 핵보유에 나섰고 파키스탄은 인도에 비해 경제력이 10분의 1도 안되는 처지에 인도와 사활적 대립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핵무기 만이 자신들의 안위를 지켜줄 유일한 수단으로 여겼습니다. 파키스탄의 핵보유는 거의 중국의 협력으로 이뤄졌으며 여기에는 미국도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거치면서 파키스탄 내의 군 기지를 이용하고 협력을 위해 이러한 핵개발을 묵인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인도와는 원자력협정을 맺어 인도가 비 NPT국가로는 거의 최초로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게 됩니다. 파키스탄 핵개발과 관련해서 여지없이 압둘 카디드 칸 박사가 나오고 있습니다. 미국 정보 당국도 인정했지만 이 칸 박사가 북한 핵개발에 지대한 공헌을 한 사람이죠. 다만 파키스탄의 핵무기는 일전에 즈비그뉴 브레진스키가 테러단체에 가장 유출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는데요. 폴 브래큰도 역시 이 점을 언급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북한의 핵개발에 대해 분석하고 있는데요. 이 지구상의 약소국가가 몇기의 핵무기를 갖고 얼마나 용이하게 세계 최대의 강대국에게 사용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일례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지역내의 미국의 최대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의 안보 우려를 끼치면서 북한은 ‘미국 너희가 한국 일본을 폐허로 만들 각오가 되어 있느냐‘ 협박하는 것처럼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 마땅하게 대처하지 못했습니다. 중국 또한 거의 어쩔 수 없이 북한에 대해 최소한의 지원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미국도 이런 중국의 입장을 어느 정도는 감안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다만 이에 관련하여 저자의 주장에 몇가지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있는데요. 이러한 상황에 일본의 핵무장을 막을 수는 없어보이고, 일본의 핵무장은 전적으로 일본 자신에게 달려 있다는 판단과 만약 일본이 핵무장을 하게 되면 서유럽의 프랑스와 영국 같은 핵보유 국가가 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핵무장은 한국과 대만의 핵무장을 막을 명분이 없게 되는 것으로 이는 거의 대부분의 전세계 국제정치학자들이 인정하는 부분인데 이것은 너무 안일한 판단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북한의 핵과 미사일 제거를 위해 선제적인 공격이 좋은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언급하는데요. 그 이유는 선제 공격이야 말로 서울과 도쿄에 그나마 제한된 피해만을 끼친다고 주장합니다. 사실 제일 우려하는 부분은 워싱턴이 서울과 도쿄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고 단독 행사에 나설 가능성입니다. 이 지역의 모든 국가는 한반도의 안정만을 바랄 뿐이지만 다만 북한은 이러한 분위기를 전략적으로 이용해 ‘위기의 게임‘을 하고 있지요. 아마 거의 대부분의 국민들과 우리 정부는 한국을 배제한 미국의 결단을 바라지는 않을 것입니다. 도쿄는 어쩌면 그것을 바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서울은 그렇지 않지요.

끝으로 폴 브래큰의 이 책은 수정되어야 될 주장이 몇 가지가 있지만 1945년부터 요즘의 북한의 핵문제까지 70년이 넘는 기간의 핵과 관련된 정치학적 또는 외교, 군사적인 해당 국가들의 행위와 그 기민한 분석만으로도 독자들에게 충분히 도움이 될 만합니다. 이제 제가 이 책을 보면서 인상이 남았던 부분은 중국이든 북한이든 얼마간의 사소한 핵폭탄 몇기 라도 이들이 얻을 것은 충분히 얻어냈다는 주장이 계속 뇌리에 남아있습니다. 물론 시기가 시기인 만큼 제가 우리 나라의 핵무장을 바라고 끄집어 낸 것이 아니라, 핵과 관련된 지난 국제 정치가 이처럼 비이성적이고 차별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핵확산을 거의 국체로 여기는 미국 마저도 인도와 이스라엘과 파키스탄의 핵을 묵인했으며, 지금도 국제 사회에 파키스탄의 핵은 매우 안전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정말 괴리감이 느껴지는 부분입니다. 분단의 한복판에 그리 연일 벌어지는 저 북한의 위협 행위를 보면서 과연 우리 나라는 어떻게 될지 큰 걱정이 앞서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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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트다운 - 도쿄전력과 일본정부는 어떻게 일본을 침몰시켰는가
오시카 야스아키 지음, 한승동 옮김 / 양철북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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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 ‘멜트다운‘은 노심용융을 뜻하는 용어로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지진으로 인한 후쿠시마 원전 1기부터 4기의 붕괴에 대한 당시 약 1년간의 일본 정부와 도쿄 전력 등의 면밀한 취재를 바탕으로 씌어진 일종의 탐사보도 기록물입니다. 저자인 오시카 야스아키는 아사히 신문 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언론인입니다.

우선 책을 다 읽고 난 느낌은 아직까지도 머리에 남아있는 생생한 현장감입니다. 이런 탐사보도 스토리를 가진 글을 그동안 많이 접해보지는 못했는데요. 생생한 느낌과 저에게 더 유익했던 것은 일본 관료사회에 대해 정확한 인식을 갖게 된 점입니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는 1기부터 4기중 1기는 수소 폭발로 끝났지만 나머지 3기는 멜트다운과 더불어 2기가 대기중에 폭발한 사건으로 하마터면 반경내에 있는 일본 국민 약 3천만이 긴급 대피할뻔한 사고였습니다. 더불어 일본의 내부 붕괴와 정치권의 파탄까지 가져올 위기까지 있었는데요. 특히 도쿄전력이라는 폐쇄되고 배타적인 그들만의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한 기업이 얼마나 사회에 해악이 될 수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도쿄전력은 일본의 명문 도쿄대 출신인 경영진과 원자력 분야를 전공한 일본 내에서는 이과 계통으로는 의학 계열과 비슷하게 최고위 엘리트 들이 직원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각 부서별로도 관련 정보가 공유되지 않는 배타성과 특히 관리 및 검열을 받아야 되는 내각의 기관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것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실제로도 도쿄전력의 회장과 사장 및 요직의 인사들이 자신들의 주장과 목적을 관철시키기 위해 내각의 관료들에게 때론 고압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보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일본 역사상 기록에도 없는 대규모 지진이 덮치고 이어 쓰나미가 원전을 휩쓸자 그 사고저리에 과정에도 도쿄전력이 한 몸뚱이로 움직이여 간 나오토 총리에게 당연히 가야될 정보를 누락시키거나 자기들끼리만 공유하고 지휘 감독을 받으려 하지 않으려는 부분은 참 대단한 부분입니다. 저는 다른 부분보다도 경악을 금치 못하는 곳이 있었는데, 내부적으로 후쿠시마에 걸쳐있는 원전들이 쓰나미가 닥칠경우 어떻게 될지에 대해 조사를 마치고 그 시뮬레이션에 따라 원전 전체를 보호하는 콘크리트 방파제 건설이 필요한 것을 인식하고 있음에도 그것을 누락, 묵인 시킨 것은 정말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자신들의 필요한 이익 논리에 따라 주민이든 내각이든 국가이든 크게 개의치 않는 행위는 정말 놀라울 뿐입니다.

이후 계속 요구되는 배상처리 문제에 있어서도 관련 기관에 로비와 압력 또는 회유를 동원해서 도쿄전력 수뇌부가 책임을 피하고 기업 보전을 위해 사투를 벌이는 것에도 심각한 괴리감이 느껴지더군요. 결국에는 제한이 없는 배상지원 설정과 도쿄 전력 수뇌부의 사퇴로 마무리는 되었지만 그와중에도 막대한 퇴직금등을 챙기는 것을 보니 ‘이 무분별한 거대한 사익화‘에 대해 혐오감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동안 전혀 알지 못했던 간 나오토 총리에 대해 알게 되었는데요. 본디 사회 운동가 출신이었지만 정계에 입문해 무라야마 총리 이후 비 자민당 출신으로 집권 민주당의 내각 총리가 되어 집권 기간에 벌어진 후쿠시마 사태에 스스로 책임감을 갖고 사후 처리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새롭더군요. 이후 후쿠시마처럼 심각한 상황이 도래할 수 있다는 하마오카 원전을 총리의 권한으로 폐쇄 결정을 내리고 이 사태를 통해 탈원전을 결심하여 여러 재생 에너지와 친환경 에너지에 대한 방안을 찾는 모습 또한 여느 일본 정치인 같지 않았습니다. 처리 중간에 총리가 해수 주입 중단을 요구했다는 유언비어에 언론과 자민당을 비롯한 정치권이 비난에 몰입하고 내각 불신임을 위한 투표를 요구할 때 지금의 아베 신조 총리가 한 몫 거드는 것을 보고 간 나오토와 아베 신조, 양자의 대립적 인간상이 머릿속에 그려집니다. 아베의 그 언론을 이용해 벌인 교묘한 정치 수작은 지금의 아베와 딱 들어맞는다고 봐야겠죠.

결국 뒤이어 몇번의 자민당과 언론의 정치 공세에 결국 간 나오토 내각은 총 사퇴를 하게 되고 글도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내내 들은 생각은 책임을 지지 않으려하고 응당 다수의 안전이 걸려 있는 경우라면 아무리 사적인 이익과 몸담은 소속이 중요할지라도 처신은 옳아야 하지만 역시 사회 시스템의 한계인지 자연적인 인간의 내적 결함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다수의 이익을 위해 소수의 불이익은 감수해야 하지만 민주주의의 정체를 따로 논하지 않더라도 일의 여파가 어떤식으로 나타날지 파악했다면 마땅한 판단이 필요한데 각자 자신의 보신이 더 중요한 법인가 봅니다. 이럴 경우에는 법과 제도를 강력하게 하여 그 개인이 속한 사회보다 몸담은 조직에 힘이 더 쏠리는 행위를 미연하게 방지하는 것이 필요하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개인적 윤리에 맡겨 정확한 판단을 기대하는 것이 일견 옳지만 그것은 동화에서나 바랄 만한 일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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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평등에 관하여
로버트 달 지음, 김순영 옮김 / 후마니타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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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와 관련해 전세계에서 손꼽히는 학자이자 권위자인 전 예일대 로버트 달 교수의 생애 마지막 저작인 ‘정치적 평등에 관하여‘ 를 이제서야 일독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미국 학계에 끼친 그의 영향은 지대해서 온라인 상에서 많은 이들이 추모를 하고 있는 걸로 압니다. 그가 2014년 숨을 거둘때까지 책을 손에 놓지 않았다고 들었는데요. 참 대단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미국은 민주주의의 발전과 그 궤를 같이한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경쟁적 소비주의라는 지배적 문화가 더 큰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한다는 인식이 시민들에게 확산되었죠. 이는 미국의 시민들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많은 국가들의 국민들에게도 동일한 딜레마를 남기게 됩니다. 이에 더이상 무분별한 소비문화가 개인의 행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하고 더불어 민주주의가 성숙해짐에 따라 개인의 정치적 평등에 더 관심을 좀 더 기울이게 됩니다. 사실상 자본주의체제가 발전하면서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인간 개개인의 정치적 평등이 그만큼 확대되지는 못했습니다. 링컨 대통령에 의해 미국이 노예제를 폐지한지 100년가까이가 지나서야 흑인에 대한 정치적 참정권과 평등이 비로소 확립되었죠. 여성의 참정권과 평등권도 이와 비슷합니다.

저자는 이러한 인간의 본디 평등한 존재로서의 가치 추구는 기본적으로 모든 인간은 동등한 권리를 지니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차별받지 않아야 하지만, 근래 임마누엘 칸트로부터 비롯된 순수 이성으로서의 이성적 판단은 평등의 추구에서 한계가 명확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데이비드 흄으로부터 인식된 도덕적이고 감정적인 정서적인 역할이 현대 사회의 정치적 평등을 구축하는데 더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고 보는데요. 왜 흔히 아이들이 ˝이건 너무 불공평해요˝라고 말하는 것처럼 평등을 인식하는데 중요한 수단은 이성이 아니라 인간의 감정이 더 큰 좌우를 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죠.

이렇게 인식이 전환된 인간의 평등의 추구는 무엇보다도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는 것이 중요하고 이미 민주주의 체제 자체가 규모의 딜레마를 겪고 있는 만큼 이를 점진적으로 해소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시민들의 정치 참여가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그리하여 ‘참여적 민주주의‘가 이러한 개인들의 정치적 불평등을 완화시키고 개선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로버트 달 교수는 판단하고 있는 듯 했습니다. 매우 원론적인 주장이긴 합니다. 하지만 이를 해석하면 민주주의 하에서 정치 엘리트들과 기득권들에게 투표를 하는 많은 경제적 하위 계층의 이러한 정치적 행동이 앞서 설명한 정치 엘리트와 기득권들에게 매우 잘못된 신호를 안겨줄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에게 저 사람들이 우리의 기득권과 정치적 결정을 지지하는구나 하는 잘못된 해석 같은 것이죠. 그래서 단순히 계급적 투표를 포함한 정치 행위에서 끝나는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사회 구조의 건전한 발전과 상생을 위해 많은 시민들이 나서야하는 이유일 것입니다. 개개인의 인권과 평등이 중요하다고 인식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올바른 발전이라고 생각한다는 그의 주장에 제가 강하게 긍정하게 되는 이유입니다.

결국 개개인의 ‘정치적 평등‘을 구축하고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여 삶의 질을 높이는 결과는 많은 시민들의 ‘적극적인 정치적 참여의 민주주의‘가 비롯되는 것으로 사실상 정치적 평등과 경제적 불평등 해소는 양자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으로 해석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자신이 불평등에 처해 있다고 생각하는 감정적 모티브부터 비롯되어 그것을 정치적 참여로 승화시키는 것이 앞으로 악화될 지도 모르는 수많은 민주주의 국가내의 개인들의 정치적 불평등을 해소하는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여겨지는데요. 무엇보다도 민주주의의 올바름은 모두가 평등하다는 것에서 출발해 그것을 억압하고 배제하려는 정치권력들과 기득권들을 제어하는 것에 궁극적인 목표로 삼아야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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