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의 극우주의 - 모멘툼 vol. 01
김민하 외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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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인 지식인들이라고 부를 수 있는 6인의 집필진이 극우주의라는 주제로 글을 모았습니다. 작고 아담한 사이즈의 이 책은 2014년에 출간되었는데요. 2014년은 참으로 의미심장한 한해였죠.

책의 내용을 채우고 있는 주제는 우리나라의 일베 현상과 우리 나라의 극우정당 출현 가능성, 개신교의 반공주의, 일본의 넷우익인 2채널과 재특회, 극우와 계몽주의의 연관성, 마지막은 ‘우리안의 파시즘‘ 이 장식하고 있습니다. 집필진 면면을 보니 반가운 이름이 몇분 있었는데요. 우선 김민하씨가 보였고, 또 다른 이는 얼마전 이곳을 통해 간단히 리뷰 했던 ‘박근혜는 무엇의 이름인가‘ 의 저자 이택광 교수입니다. 김민하, 이택광 두 분이 같이 공동 저작으로 낸 책은 일전의 ‘우파의 불만‘ 이라는 책인데요. 이 우파의 불만이라는 글도 꽤 읽어볼만 내용들이 많습니다.

우선 ‘일베 현상‘ 에 대해 먼저 언급을 하고 싶습니다. 사실 온건한 표현으로 알려지기로는 매우 극우적인 커뮤니티로 알려져 있죠. 하지만 여기 글에서도 언급되는 내용이지만 여성혐오와 여성차별주의와 인종주의, 반이주민주의 등 거의 파시즘과 가까운 성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우리 한국 사회에서는 ‘파시즘‘ 이라는 표현에 과격하고 돌출적인 반응을 보이는데요. 이를테면 ‘저 인간 너무 파시스트 같은 말만 하는데‘ 라는 말에 많은 사람들이 격렬하게 대응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바로 일베의 많은 회원들이 자기들이 스스로 여성혐오와 인종주의적 발언을 하면서도 결코 파시즘적 사고나 파시스트가 아니라고 항변합니다. 저는 지극히 파시즘과 일베 사이에는 등호가 어울린다고 생각하는데 말이죠. 넷상에서는 여성 비하 발언을 하면서도 지하철이나 버스 등지에서 자신의 고유한 내적인 가치관으로서의 여성을 비하하려는 욕망을 쉽게 표출하지 않는 것은 그렇게 함으로써 받게 되는 다수의 타인들로부터 매우 강한 단언적 판단을 받게 되는것을 자신이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일겁니다. 넷상에서는 자기 비하를 바탕으로 남까지 곁가지로 그 마당에 끌어들이지만 사회의 생생한 무대에서는 그렇게 하면 안되는 것을 잘 아는거죠.

이어 한국에는 극우 정당이 존재하는가 라는 질문으로 그 범위에 인접한 자유한국당은 과거 새누리당 시절에 경제와 일부 복지 정책을 포함하여 그 스탠스가 남달랐지만 이 점을 감안하더라도 한국 밖에 나가면 거의 무조건 극우정당 취급을 받았을 것이라는 점에 대해 저도 매우 동감하는 편입니다. 과거 개발독재 지지자들이 주축이 되어 이어져 온 이들이 한국의 대표적 보수 우파라고 자임하지만 이념적 상대편에 대해 진정으로 첨예하고 격렬한 정치 행위없이 오로지 반공주의에 기대어 최근까지 상식적인 비판까지도 허용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오늘날 분단의 현실을 외면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자양분 삼아 키워온 편파적 반공주의에 무분별하게 몸을 실은 정치인들과 지식인들이 많은 것은 불행한 일이라 할 수 있겠죠.

그리고 일본의 넷우익들의 인종주의적 차별을 일삼고 있는 재일동포에 대한 인간이라면 누구나 누려야 할 법적인 보호를 거둬내고자하는 상황과 과거 수많은 다른 이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겪은 전쟁의 체화에 그 전쟁 시스템적 상황에 인간과 생명을 분리해 자기들 스스로 감정적 합리화에 나서고 있는 일본의 예술가들과 그 현상에 대해 논하고 있습니다. 가해자인 일본인들이 전쟁의 참상에서 인본주의와 생명을 찾는 것은 참으로 가당찮은 일입니다. 역사적 문제와 표리부동한 그 태도를 제대로 해결하지 않고 또 이처럼 자신들이 어쩔 수 없는 역사적 피해인들과 같이 동일하게 사고하는 것은 정말 역겨운 일입니다.

이렇게 우리나라와 일본에의 소위 극우 현상에 대해 여러 현상들을 통해 알려주고 본디 우리의 극우주의는 우파적 계몽주의에서 비롯되어 결국에는 파시즘과 가까운 이론적 현상이 있다는 것에 동의할 수 밖에 없습니다. 꽤 지금의 현실을 잘 정리해 글로 쓴 여러 집필인들의 노력이 느껴졌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마지막 이택광 교수의 파시즘에 관한 글을 반복해서 읽어보시길 권유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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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진실 - 객관성이 춤추는 시대의 보고서
파하드 만주 지음, 권혜정 옮김 / 비즈앤비즈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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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프리카 출신의 언론인이자 작가로 유명한 파하드 만주는 이기적 진실 True Enough 의 출판으로 당시 미국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제가 느끼기에는 미국 주류 언론계에서 잘 다루지 않은 ‘대중이 자신의 입맛대로 받아들이는 객관적 진실‘ 에 대한 실체를 분석해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책에 소개되고 있는 여러 사례중에 흥미를 일으키는 것은 2004년 당시 존 케리 민주당 대선 후보의 베트남 파병 시절에 대한 공화당 진영의 전역 군인들의 진실이 왜곡된 반대적 홍보 활동, 2001년 9. 11 당시에 무역센터 남쪽 빌딩에 충돌했던 여객기에서 미사일이 발사되었다고 주장하는 일종의 일인 블로거, 2004년 대선 당시 개표에 의심스러운 정황이 있었다는 전문가 등 이들이 이렇게 주장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에 동조를 하며 작위적으로 소위 ‘선택적 노출‘을 하지만 진실은 그렇지 않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선택적 노출은 일종의 자신의 믿음을 부정하는 정보들에 대해 무시하고 당연하게도 이러한 인지 상황에 인지 부조화를 피할 수 없지만 자신이 납득하기 위해 선택적으로 진실 인양 받아들인다는 뜻입니다.

인터넷 매체가 발달하면서 소위 정보의 홍수라는 표현이 수긍될 정도로 한 개인이 이성적으로 진위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워지고 있지요. 설사 명백한 진실이 존재하고 그것이 알려지고 있음에도 인지 부조화나 감정적 망연자실을 피하기 위해 사실이 아님에도 일견 수긍해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흡연가들이 애써 무시하는 흡연의 나쁜점이라든지, 의학적 지식과는 전혀 상관없는 정보임에도 그것을 맹신하여 몸을 망치는 경우라든지 실제 주위에도 많이 목격할 수가 있지요.

이처럼 저자는 ‘객관성의 쇠퇴‘라는 표현으로 독자들에게 설명을 하고 있는데요. 정치나 언론의 홍보화와 그 수단이 잘 갖춰진 미국에서는 개인의 영향력이나 그 사람이 속해 있는 단체에 따라 명백하게 사실이 아닌것을 현재 주장하고 있음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것에 동조하게 된다는 것을 주의깊게 분석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이 없던 과거에는 발생할 수 없는 일들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에는 곳곳에서 볼 수 있는 광경입니다. 특히 자신이 믿어 의심치 않는 일에 반대하는 사람은 눈에 거슬리고 불쾌하게 느껴진다거나 자신의 의견과 어긋나는 답변을 하는 사람을 편파적이라고 보는 등 이런 무비판적으로 주입된 정보에는 이성적 판단을 하기란 어려운 법입니다.

그외에도 한 분야의 전문가들이라는 사람들이 암묵적으로 기업의 지원을 받아 편향적인 주장을 한다든지, 기업 자체적으로 홍보 수단을 만들어 진실과는 사뭇 다른 주장을 하는 등 시사하는 바가 큰 사례들이 많이 실려 있습니다. 저자의 자료 수집의 노력이 느껴지는 부분이랄까요.

인간이라는 존재가 본디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지만 위에서 설명한 대로 여러 사람들이 동조해 주장하는 왜곡된 것에 어떤 판단을 하기란 신중하기 마련입니다. 내 스스로 그것과 관련된 정보를 취합해서 사실 관계를 파악해 나가는 것은 요즘 같은 현대 사회에서는 무척 여러 여건이 어려운 법입니다. 그렇다고 전문가의 의견에 기대어 내 자신이 어떤 판단을 내리는 것도 뭔가 확실하지 않지요. 다만 최종적으로 어떤 사례에 판단을 하기 전에 충분히 신중하게 여러 자료들을 검토하고 특히 연관된 많은 책들을 읽는 것이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지금 너무나 왜곡된 정보가 넘치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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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첨 민주주의 - 선거를 넘어 추첨으로 일구는 직접 정치
어니스트 칼렌바크 & 마이클 필립스 지음, 손우정.이지문 옮김 / 이매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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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칼렌바크와 필립스가 1985년에 집필한 글을 2008년에 다시 출간한 ‘시민의회 A Citizen Legislature‘를 옮긴 것입니다. 원제를 ‘추첨 민주주의로 바꾼 것은 역자들의 의견인 것 같은데 만약 원서의 내용을 제대로 번역한 것이라면 국문으로 번역된 책의 제목이 의미심장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도 유명한 민주주의 이론서로 알려진 벤자민 바버의 ‘강한 민주주의‘ 에서도 추첨식 민주주의에 대해 강조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책에서 저자들은 미국의 의회 민주주의의 현실에 맞춰 상원은 선거로, 하원은 추첨으로 구성되는 것으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추첨 민주주의의 핵심은 소위 엘리트 권위주의적인 종래의 간접 민주주의에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저자들이 이런 엘리트 주의에 대해 반감을 갖고 직접적 비판을 가하고 있지는 않으나 현재의 미국 의회제도의 가장 큰 폐해라고 할 수 있는 각종 이권 단체들의 로비스트를 동원한 로비, 그로인한 의원들에게 제공되는 정치자금 등 날로 워싱턴 정가가 이렇게 맞물리면서 의회에 있는 의원들이 국민을 제대로 대표하지 못하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국민이 의회에 대표되지 못하는 현실에 ‘추첨제 민주주의‘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데요. 현재에도 미국의 법정에도 ‘배심원 제도‘ 가 추첨 민주주의의 한 형태로 오랫동안 제 기능을 발휘하고 있으며, 법원에서 긴밀히 관리하고 오픈된 형태의 배심원 제도는 그것이 무작정의 수로 추첨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지난 18대 총선에서 당선된 법조인 출신들의 숫자가 60명이나 되었습니다. 즉 의회에 입법을 하는 국회의원들의 전직이 법조인이라는 것은 그만큼 우리나라의 입법 위원들이 소위 이와 관련된 전문직종인들이라는 증거일텐테요. 이러한 전문 직종 출신의 정치인들이 일반인들보다 좀 더 해당 분야에서 우월하다는 실질적 증거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이 책에서도 제가 주장한 부분에 대해 언급되어있습니다.

민주주의의 가치를 믿는 시민 사회에서 추첨으로 선발된 사람들이 행정부를 건전하게 견제하고 국민들을 위한 입법 행위 등 국민 자신을 대표하는 일을 능숙히 잘해 낼수 있다고 봅니다. 민주주의가 정차된 미국에서는 민주주의 의식의 편차가 크지 않은 시민들의 정치참여가 현재 정체되고 적지 않은 폐단을 안고 있는 의회제의 상황에서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저자들은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추첨 민주주의를 통한 여러 개선 효과들도 이 책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민주주의의 가치와 실행되는 형태, 그리고 일상 생활의 민주적 가치에 대해서도 알기 쉽게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추첨 민주주의라는 표현에 거부감을 잠시 접고 읽는다면 꽤 유익한 시간이 되시리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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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당신들의 나라 - 1%를 위한 1%에 의한 1%의 세상
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 전미영 옮김 / 부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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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우리나에서도 많은 판매고를 올린 ‘긍정의 배신‘의 저자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다른 작품인 ‘오! 당신들의 나라‘를 소개할까 합니다. 원제는 This land is their land 번역하자면 ‘이 땅은 저들의 땅‘ 이 되겠군요.

이 책은 총 7장의 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각장마다 소제목과 거기에 속한 신문 칼럽 분량 정도의 글이 주제별로 채워져 있습니다. 에런라이크의 전작인 긍정의 배신은 아직 읽어보지 못했지만 대충 글 구조가 어떨지 짐작이 되더군요. 예리한 감성과 특유의 풍자적 표현으로 무장된 글들은 가끔 놀랄 정도로 탁월한 의식이 녹아 있습니다. 저는 천천히 책을 읽는 내내 김규항 씨의 글이 문득 생각났습니다. 글자로 폐부를 찌르는 느낌이 비슷하다고 해야할까요.

지난 10년간 자본주의적 혁신이 가장 두드러진 분야는 여력이 거의 없는 사람들에게서 돈을 쥐어짜는 기술이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를 대체할 마땅한 수단이 없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현실적인 풍자를 섞어 주옥같은 글들이 모였습니다. 미국내에 상대적으로 경제적, 사회적 위치가 약한 사람들의 암울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사회학적 및 여러 이론적 용어를 남발하지 않고서도 독자들에게 이처럼 자본주의의 형님국가 미국의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에 대해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다른 장들 보다 미국의 의료제도에 관한 글들을 더 유심있게 봤는데요. 확실히 미국의 외료현실은 자본주의의 극단적인 면에 매몰되어 환자들로부터 최대의 이윤을 뽑아내고 있는 냉혹한 현실임에 틀림없어 보였습니다. 현대적인 사회 체계에서는 자본주의 체제가 더 고도화되기 마련인데요. 간단히 말씀드리면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재생을 하기위한 측면으로서 의료 시스템을 설명한다면 맹목적인 이윤추구로서의 안정장치가 다 벗겨진 이런 미국과 같은 의료 시스템은 단기간 내지는 고도의 이윤 생산의 목적으로서는 왜곡적이게도 그 역할을 다할수는 있겠으나 결국에는 사회 시스템을 붕괴시키는데 큰 일조를 할 것이라고 추측되어집니다. 그리고 인간의 생명이라는 것을 정도에 따라 획일화와 규격화를 시켜 의료 행위 자체만으로 거대한 재화 생산의 수단으로만 취급한다는 것도 매우 과격한 해석입니다. 보험회사와 의료계 그리고 정부가 이러한 시스템 구축화에 일조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바로 이 시점에 오바마 케어가 탄생했으니 그나마 제한적이지만 뭔가 개선의 희망이 되었고 다행히도 영악한 트럼프도 자신의 다수 지지층들의 이익을 위해서도 오바마 케어는 건드리지 않을 가능성이 크겠습니다.

제가 잠깐 언급한 의료 부분에서 뿐만 아니라 다른 글들도 쉬이 그냥 넘어가지 못할 정도로 좋은 글들이 많습니다. 이렇게 다른 나라의 현실에 대해 조금 알게 된다는게 개인의 인생에 있어서 많은 경험이 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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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의 시스템 후쿠시마 오키나와
다카하시 데쓰야 지음, 한승동 옮김 / 돌베개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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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몇 안되는 양심적 지식인이자 도쿄대 교수인 다카하시 데쓰야가 희생의 시스템이라는 주제로 후쿠시마와 오키나와로 의미있는 이 책을 집필했습니다. 더욱이 그는 일본 내 역사 왜곡 문제와 인권 문제에도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저자가 책에서 언급하는 소위 희생의 시스템은 어떤 자(들)의 이익이 다른 것(들)의 생활 (생명, 건강, 일상, 재산, 존엄, 희망 등등)을 희생시켜서 산출되고 유지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타인의 양보와 희생으로 다수의 이익을 실현한다는 개념은 역사상 여러 사람의 머리를 거쳐 정립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이런 명목으로 보신을 위해 책임을 떠 넘기는 것은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입니다.

얼마전에 읽었던 ‘기후 변화의 유혹, 원자력‘ 을 통해서 조금 깨닫게 된 것은 원전이 매우 안전하고 친환경적인 전력 시스템이라고 홍보에 열을 올리는 사람들은 핵 발전에 대한 거대한 이권과 그것에 매몰되어 결과적으로는 국민 다수 내지는 전력 생산의 혜택으로 포장해 반대에 있는 사람들의 의견을 그야말로 소수 의견으로 만드는 그들의 해악한 전략상의 방법입니다. 이 책의 저자도 주장하고 있지만 핵 발전소를 유치한 그 지역의 주민들이 지역 발전과 지역 경제 부흥을 위해 거래를 했다고 해도 동시에 안전을 답보하지 않은 그와 같은 정치적 거래는 부당하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러한 안전이 보장되지 않은 실례를 이번에 후쿠시마 원전이 보여준 것이죠.

후쿠시마 사태 발생 이후, 저자가 밝히는 일본의 무책임의 크기는 참담하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연간 일반인의 방사선 피폭 기준량은 1밀리시버트인데, 사고 지역의 방사선 피폭량이 연간 20밀리시버트 안쪽이면 괜찮다는 논리로 거기에는 어린 아이들도 괜찮다는 식의 주장은 일본의 관료들과 원전 관계자들이 얼마나 상황을 낙관하고 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사고난 현장에 투입되는 일용직 근로자들의 안전 대책은 거의 미비했으며, 피폭 노동자들의 실태를 도쿄 전력이 아직도 공개하지 않는 점과 언론도 굳이 보도하려고 하지 않는 것은 대체 관료들은 저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더 경악할 만한 사례로 국제적으로 저명한 피폭의료 전문가라는 사람이 ˝매시 100마이크로시버트까지는 위험하지 않습니다˝ 라든가 ˝100밀리시버트의 누적 피폭선량이 위험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따위의 얘기를 하는 것이 더욱 이해가 안되더군요. 그외에도 사고 이후 일본 당국이 어떻게 사후 처리를 해왔는지에 대해서도 비교적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더불어 저자는 동일한 희생의 시스템의 한가지로 오키나와를 말하고 있습니다. 저도 이 곳을 통해 오키나와의 현실에 대한 몇 권의 책을 리뷰했습니다. 그의 표현대로 오키나와는 일본의 식민지라고 말할 수 있으며, 전체 일본의 미군 기지 73%가 오키나와에 현존하는 상황에 국민들의 님비현상인지 아니면 일본 정치권의 고도의 정치적 전략인지는 모르겠으나 1972년 이후로 일본의 국민과 정부는 이런 오키나와의 상황을 전혀 개선시키려는 최소한의 노력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키나와의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로 민주당 정권이 붕괴한지도 오래 되었지만 현 아베 정권도 이를 해결할 의사가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소위 미일간의 배려세 명목으로 막대한 주둔비를 쏟아 부으면서 일본 본토인들을 위해 오키나와에 미군 기지들을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입니다. 우리나라로 비유하자면 한국 정부가 제주도에 미군 기지 전체를 때려박고 바다 건너 국민들과 관료들이 전혀 모른척 하는것과 동일하죠.

이렇게 우리가 모르는 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눈물로 절대 다수가 그 알량한 안정과 이익을 얻는다면 그것 자체만으로도 불의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쩌면 이 글을 읽는 많은 분들이 현실을 도외시한 맹목적 도덕주의 접근이라고 비난할 수도 있지만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지금 우리 나라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들이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라면 그러한 상황을 개선시키고 시스템을 좀 더 희생을 요구하지 않는 것으로 변화를 이끌어야 하겠죠. 더불어 충분한 토론과 대화를 선행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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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17-07-25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늘 관심 두는 이슈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일어나고 있을지도˝....그게 참 걸립니다. 모르면 안심하게 되는데 모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