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대통령 리더십과 미국시대의 창조
조지프 나이 지음, 박광철.구용회 옮김 / 인간사랑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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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하버드대 케네디행정대학원 학장이자, 현재에도 미국 정치외교학의 중요한 이론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조지프 나이의 꽤 흥미로운 글인 ‘미 대통령 리더십과 미국시대의 창조’를 읽었습니다. 국내에 번역출간된 나이의 책들 가운데 리뷰한 것은 이번을 포함해 두번째인데요. 앞서 ‘미국의 세기는 끝났는가’를 좀 때늦은 시기에 서평을 썼던 기억이 드는군요. 소위 뒷북이라고 해야할까 싶은데요. 출간되고 나서 한참 많은 분들께 이슈가 되고 나서 제가 뒤늦게 읽은 셈이어서 요상한 부연 설명이라 밝히고 싶습니다.

이 책의 전체적인 내용은 20세기 들어 미국의 (주된 영역의 근거로 따지자면) 정치외교적인 측면의 영향력 발휘에 큰 의미를 가져온 시기와 그 시기의 대통령들에 대한 분석과 그것을 미국적인 가치와 관점에서 꽤 설득력있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테오도어 루즈벨트,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우드로 윌슨, 프랭클린 루즈벨트, 해리 트루먼,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로널드 레이건, 조지 H. W. 부시 이렇게 총 8명의 대통령의 임기와 행적 등을 꼼꼼히 살펴보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조지프 나이의 글을 보고 드는 생각은 국제정치학의 측면에서 이상주의와 현실주의적 측면이 섞여 있는 이론가라고 여겨지는데요. 왜냐하면 아예 미국의 관점에서 현실 이익적 측면만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윤리 도덕적 측면에서도 기본적인 이해의 폭을 두고 있는데요. 아예 전반적으로 현실주의적 입장으로 여겨지는 헨리 키신저와는 사뭇 다른 부분인데요. 물론 키신저와 동일한 입장은 앞으로 중국이 미국의 패권을 위협하는 존재로 부각된다는 분석에서는 그러합니다. 물론 패권 위협의 과정과 수단 및 결과에 대한 입장은 상이할 수는 있겠죠.

이 8명의 미국 시대의 리더들을 각각 감화와 변혁적 구분으로 분석하고 여기에 굵직한 국제정치적 판단 시기에 상황지성이라는 일종의 대처 능력을 덧붙여서 독자들도 보다 쉽게 글에 접근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는데요. 적절하게 주장하는 바에 대해 비교적 상세하게 설명을 곁들이고 있습니다. 많은 역사적 사례들이 언급되고 있는것이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설명하고자 하는 각각의 대통령들의 임기내에 해당되는 이들이 어떻게 리더십을 발휘했고 어떠한 명암이 있었는지에 대해 효과적이거나 윤리적인 기준을 정해 우리들이 판단하는데 적잖은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물론 미국의 이익과 영향력 확립의 측면에서 역사적 사례와 연계하여 주장과 근거를 보이는 것은 어찌됐든 우리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부분이라고 하더라도 미국의 정책 행위의 결과를 분석하고 이해하는 입장에서는 좋은 제공을 하고 있지 않나 감히 생각해봅니다.

예를들어 로널드 레이건 임기에 발생했던 이란-콘트라 사건에 대해 리더에 대해 시민들이 요구하는 정치윤리적인 기준 하에 비판하고 있는 것처럼 매우 효율적이고 이익부합적인 측면의 행위만을 옹호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다른 사람들의 입을 통해 1949년 소련의 핵실험 이전의 세계 패권에서 보다 우월적인 지위를 이용해 보다 확실한 토대를 쌓지 못한 것에 대해 미국인으로서 아쉬움이 있는 듯 하긴 했는데요. 반대로 해리 트루먼이 밤을 새워가며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폭탄 투하 승인을 내렸지만, 한국전쟁 당시 맥아더의 빗발치는 핵무기 사용 요구에 대해서는 용납하지 않은 것처럼 일종의 핵무기 사용 제한에 대한 선례를 마련한것에 대해 일정부분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것으로 보아 조지프 나이의 균형적인 관점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끝으로 조지프 나이는 역대 대통령들과 달리 앞으로 미국의 대통령은 여러 국가의 부상이나 돌발 상황에 직면해서 보다 선호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다른 국가들을 강하게 압박하기 보다는 그들과 공존하는 파워를 행사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이러한 분석은 조금 어긋나지 않았나 싶군요. 이 책의 출판시기가 오바마 대통령 시기 정도로 추측되는데요. (따로 찾아보지는 못했습니다) 말미에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조언으로 마무리 되고 있는데요. 저는 오히려 이 책은 도널드 트럼프 본인이 직접 읽어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본인의 학력과는 상관없이 원래 책에서 지혜를 찾는 타입은 아닌것으로 여겨지는데요. 어쩌면 저의 조언이 쓸모 없을지도 모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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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로 읽는 미중의 한반도 전략 - 북핵, 사드보복 그리고 미중전쟁 시나리오
주재우 지음 / 종이와나무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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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추석 즈음에 사흘 정도를 정신없이 몰두하게 만든 ‘한국인을 위한 미중관계사’의 저자인 주재우 교수의 최근 출간된 ‘팩트로 읽는 미중의 한반도 전략’을 읽었습니다. 앞서 설명드린 ‘한국인을 위한 미중관계사’는 방대한 자료와 곳곳에 보이는 저자의 통찰력에 유명한 스릴러 작품과 같은 몰입감이 대단했던 글이었습니다. 주재우 선생의 이 책도 그래서 읽는데 고민이 들지 않았습니다.

전체적으로 총 9장의 주제로 각각의 챕터가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형태로 봐야할 텐데요. 어느 하나 따로 선별해 취사 선택해서는 전체적인 맥락의 이해 부족을 느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여기에다 기본적인 국제정치학적인 배경 지식이 기반이 되어야 저자가 밝히는 주장들에 대해 논지 해석에 대한 스스로의 판단이 어느 정도 구분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제1장의 소제목인 미중 관계에 대한 한국인들의 오판부터 어떤 기대감이 들었는데요. 요지는 한국인들을 포함한 각종 외교정책에
관여하는 관료들도 미국과 중국의 이익들에 대한 선명한 파악이 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들고 있는데요. 달리 말하면 너무 표면적인 의미에만 집착하고 있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예를들어 작년 말에 사드 배치 문제도 중국이 한국에 대해 시험하는 진정한 의도와 우리 정부와 국민들이 중국측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하는 등의 근거들이죠. 그런데 원래 외교나 국제정치에서는 어떤 논점에 대한 실체가 잘 드러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더욱 어려운 법이죠. 더군다나 중국과 같은 국가는 권위주의적인 국가이면서 국가 정책과 관련된 정보와 관련해서는 폐쇄적인 분위기가 있죠. 그런 부분에서 중국 현지에 학자와 관료들에 대한 여러 연결점을 보유하고 유지하는것이 중요하다고 일각에서 주장하는 이유일겁니다.

주재우 선생은 이 책에서 요근래 한창 미국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존 미어샤이머 등의 ‘미중 전쟁 불가피론’에 대해 반대의 의견을 피력하고 있는데요. 세력전이론이라든지 투디키데스의 함정 등은 오늘날 미중 관계를 해석하는데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하면서 1953년 한국 전쟁 휴전 이후 미중 양국은 1972년 이전까지에도 비공개 대사급 회담을 유지하면서 서로간의 대화를 끊임없이 유지해왔고 그런 기조 때문에 베트남 전쟁에서의 철수 문제 등과 같은 부분에서 서로 협력해왔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물론 저도 ‘미중 전쟁론’ 에 너무나 매몰되어 본질을 왜곡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여깁니다만 현실적으로 중국과 미국은 동맹 관계에서 연루의 문제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를테면 미일 동맹이나 말할것도 없이 한미 동맹 등 국제정치학에서 아주 대표적인 비대칭 동맹인데요. 국력의 차이가 현저한 동맹 관계에서 그렇지 않은 국가는 동맹국에 의한 연루에 문제에 직면하기 마련인데요. 가까운 예로는 일본과 중국과의 영토 분쟁인 ‘센카쿠/댜오위다오 분쟁’ 과 현재 여러 부분에서 예측 불가인 필리핀이 연루되어 있는 남중국해 문제 등 아주 사소한 문제라고 하더라도 큰 전쟁으로 발전될 수 있는 경우이죠. 물론 미국에서는 전쟁 개입이 단순히 행정부의 문제가 아니라 거의 의회가 승인해야 된다고 여기겠지만 어떤식으로든 센카쿠 열도에서 미일 간에 충돌이 순식간에 벌어져 이 지역에서의 중일간의 사소한 전투 행위는 높은 확률로 미중간에 전쟁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한반도는 말할 것도 없구요.

특히 요즘 김정은의 북한은 미사일 사거리와 핵기술 확대를 나날이 확장시키면서 미국 본토를 위협하고 있는데요. 지금의 미국 트럼프 행정부도 그 예측 불가능성이 있지만 무엇보다도 미 의회가 북한에 의한 안보 위협에 대한 대응책에 대한 압력과 미국 국민들의 상당한 대응 요구가 빗발친다면 트럼프가 입으로 말하기 좋아하는 ‘외과수술식’ 평양 수뇌부 제거에 나설 가능성도 있습니다. 미국은 과거에도 이러한 제한적 군사력 투입과 공중 폭격이 없었던 것도 아닙니다. 미중 양국이 아주 전면적으로 서로간에 선전포고의 형태로 전쟁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예측 불가성의 국제 정치 무대에서 사소한 문제들이 전쟁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죠. 더국다나 주재우 교수도 언급했듯이, 미중 간에는 지금도 전략적 불신이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원론적인 입장에서 중국이나 일본, 미국 등은 한반도에서의 전쟁을 전혀 바라지는 않을 것입니다. 중국은 아직도 경제적 고성장이 자신들 뿐만 아니라 전세계 경제에 필요하고, 일본은 도쿄가 북한 미사일 사정권일 뿐만 아니라 주일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상황이니 말할 것도 없지요. 그렇지만 북한의 SLBM 기술 확보 문제와 ICBM의 대기권 진입 기술 획득이 현실화 되기 전까지 미국은 그것을 제거하기 바랄 것이고 그 제거 방법이 항상 외교적인 대화로 풀어나가리라는 보장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약간의 논외지만 저는 주재우 선생의 이 전 글인 ‘한국인을 위한 미중관계사’에서 제가 오독을 하지 않았다면 앞으로 미래에 미국과 중국이 갈등 내지는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힌 것으로 아는데요. 다만 이번의 글은 그 요지가 전환되었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곰곰히 생각해보니 저는 어쩌면 존 미어샤이머 쪽과 가깝다는 생각이 드네요. 특히 국제정치에서 이상주의적 이론을 믿지는 않습니다. 1910년대 비교적 잡음없이 세계의 패권이 영국에서 미국으로 옮겨간 이유에는 양국이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그 문화적 배경이 서로 유사하다는 측면과 서로 이해관계가 많이 연관되어 있다는 점이 있었는데요. 최근의 미국과 소련간의 동서 냉전 시기에는 세계 패권을 다투던 두 강대국이 이념적으로 분리된 상황이어서 더욱더 그 갈등이 첨예했는데요. 오늘날 미국과 중국은 마찬가지로 이념적이로 서로 분리되어있지만 인류 역사상 좀처럼 볼 수 없는 경제적 밀접관계가 두 국가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전세계 경제에 있어서 매우 필요불가결한 상태이니 이것이 어떤 변수로 나타날지는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많은 이론가들이 이러한 미중간의 경제적 밀접한 관계가 최종적으로는 양국이 서로를 파탄으로 이끌지는 않을 것이라는 주장을 하는데 다시 반복되는 주장인지는 모르겠지만 국제정치 자체가 원래부터 예측불가의 분야이므로 너무 속단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글을 쓰다보니 미중간의 관계에 대한 부분 위주로 흘러가고 말았습니다. 제가 보기에 주재우 선생의 가장 큰 학문적인 성과는 중국에 대한 이해도 뿐만 아니라 미중간의 관계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그것을 연계해 분석하고 곳곳에 보이는 통찰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부분에서 이 글도 읽는 내내 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즐거웠던 것 같습니다. 스스로는 이런 글들이 출판계에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는데요. 아마도 현실적으로는 녹록하지는 않겠죠. 어려운 일에 나서고 있는 출판사 측에도 자릴 빌어 감사 말씀드리고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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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15 01: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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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19 15: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왕단의 중국 현대사
왕단 지음, 송인재 옮김 / 동아시아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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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중국 텐안먼 민주화 운동’의 주역이자 이후 중국 정부의 연행을 받고 11년을 복역하다 극적으로 국제 사회의 압력으로 풀려나 미국 하버드대에 입학에 베이징 대학에서 마치지 못한 학업을 마치고 이후 미국과 영국의 여러 대학을 거쳐 현재 타이완 칭화대학에서 ‘중국 현대사’를 강의하고 있는 왕단의 책을 일독했습니다. 이 글은 특별한 연구 글이긴 하지만 동시에 대학에서 강의했던 내용을 실은 것으로 밝히고 있는데요. 책의 내용을 전혀 알지못하더라도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르겠지만 2012년 중국 정부로부터 금서로 지정 받았습니다. 실로 중국의 정치가 어떠한지 충분히 인식될만한 일이 아닌가 개인적으로 생각해봅니다.

총 15강의 형태로 나뉘어져 중국 현대사에 있어서 매우 굵직한 사건 위주로 분류되어 어떻게 보면 각 파트가 독립적일 수도 있겠는데요. 물론 전체적인 맥락의 이해의 차원에서 완독을 하는 편이 아마도 더 유익할 것 같습니다. 대략적인 것들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한국 전쟁, 토지개혁, 반우파 운동, 중소 관계의 파국과 중미 관계 상호 작용, 문화대혁명, 덩샤오핑 시대의 개막과 이후에 6. 4 텐안먼 사건 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다만 저의 개인적인 기대와는 달리 문화혁명과 관련한 부분이 다소 간략해서 아쉬움으로 남는군요. 그 외엔 특히 텐안먼 사건과 관련되서는 아주 상세히 기록과 더불어 사실적으로 쓰고 있어서 이 부분과 관련해 도움이 필요한 분들께는 좋은 기회일 것 같습니다. 물론 상당한 분량 만큼이나 이렇게 중국 현대사를 마오쩌둥과 중국 공산당의 권력 지향적인 부분으로 접근해 다루는 것은 꽤 공감할 만합니다. 얼마전에 읽었던 니시무라 시게오와 고쿠분 료세이 공저의 ‘중국의 당과 국가’ 만큼이나 읽어볼 만한 글이 아닌가 덧붙여 봅니다.

이 책이 중국 당국으로부터 금서로 지정된 것은 저자 자신의 이력이 한 몫을 했겠지만, 그것보다도 마오쩌둥에 대한 아주 생생한 분석과 비판이 큰 부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번스타인의 ‘1945 중국, 미국의 치명적 선택’ 도 마오쩌둥에 대한 실제적인 평가와 비판을 했는데요. 번스타인의 글에서는 노련한 정치 술수로 최대의 효과를 내려 했던 마오쩌둥에 대한 묘사가 주였다면, 왕단의 글에서는 권력의 정점에 오르자 자신의 권위에 조금이라도 손상을 주는 사건과 인물에 대해 끝까지 그 책임을 묻는 그 집요함과 혀를 내두를만큼의 뒤끝작렬에 대한 묘사가 류샤오치, 팽더화이, 린뱌오 등과의 관계를 통해 아주 생생히 접할 수 있었습니다. 저자인 왕단도 간접적으로 언급하고 있지만 북한의 김일성도 이러한 마오쩌둥의 일인숭배에 착안을 한게 아닌가 싶기도 하구요.

한국인으로서 궁금했던 한국 전쟁에 관련해서는 이미 러시아측의 공개된 문서 등을 통해 김일성이 얼마나 스탈린에게 남한 침공에 대한 허락과 지원을 받기 위해 노력했는지 여실히 드러나고 있는데요. 다소 의외인거는 마오쩌둥의 경우는 스탈린의 김일성에 대한 지원 요구 땨문이 아니라 1950년 10월 2일 중국 공산당 정치국회의에서 린뱌오를 비롯한 정치국위원 전원이 북한 파병 결정에 반대했음에도 마오 스스로가 결정한 것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애초에 스탈린의 요구에 수동적으로 대응한게 아니라 처음에는 기분이 나빴는지도 모르겠으나 최종적으로는 자신이 나서서 결정한 사안으로 한국 전쟁 이후 중국 공산당의 권력 정당성이 강화된 요인이 되었는데요. 전쟁이 고도의 정치행위라면 마오의 그 결정은 딱 상황에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이처럼 왕단은 마오쩌둥과 중국 공산당에 대해 노동 계급의 이념적 지향의 정치 집단이라는 기존의 중국 자신들의 선전보다는 어떠한 사소한 이익이라도 그것이 필요한 것이라면 이념과는 상관없이 아주 쉽게 옮겨갈 수 있는 일종의 이익 집단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조반니 아리기도 이와 비슷한 입장을 보인 적이 있고, 중국 관련 학자들은 아마도 이러한 접근에 충분히 공감할 것으로 보입니다. 즉 덩샤오핑의 개혁 개방으로 일컬어지는 일종의 대 전환의 프레임이라기 보다는 중국 공산당 자체가 권력 유지와 선전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이익에 쉽게 가까워질 수 있는 집단이라는 점이죠. 그리고 중국은 사회 전체에 파급력을 끼칠 수 있는 원동력이 ‘민족주의적 욕망’이 잠재해 있다는 점이 언제든지 중국 공산당은 이 민족주의의 배타적 욕망을 이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우려할 만하다고 여겨집니다.

끝으로 공산당이 1949년 국공 내전에서 최종 승리자가 되면서 대만으로 넘어가지 않고 남아 있던 소위 민주당 계열 세력들과 합종 형태로 정권의 틀을 만들어 놓지만 결국 마오쩌둥이 반우파 운동으로 비롯되는 중국내 우파 세력의 일소를 통해 자신과 공산당의 권력 집중 작업을 끝낸 것으로 보여지는 부분은 의미심장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인간 고유의 사고와 사상의 자유를 그런식으로 틀어막아 스스로 자살의 길로 내모는 상황은 겪어 본 사람만이 아는 거겠죠. 비판을 용납하지 않는 거대한 권력이 인간을 소모품으로 만드는 상황은 글로만 접해봐도 매우 충격적인 부분입니다. 그래서 중국과 밀접한 이웃 나라 국민인 우리들만이라도 이러한 중국 정치권력의 사실에 입각한 정확한 과거 행적과 실체를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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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 중국, 미국의 치명적 선택 - G2 시대는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리처드 번스타인 지음, 이재황 옮김 / 책과함께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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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유명한 현대 중국학 권위자인 존 K, 페어뱅크 교수가 있던 하버드 대학에서 중국 역사를 공부하고 이후 베이징의 공산 중국에 파견된 미국 언론인으로 이름을 알린 리처드 번스타인의 1945 중국, 미국의 치명적 선택’을 일독했습니다. 원제는 ‘China 1945 Mao’s Revolution and Ameriac’s Fateful Choice’ 인데요. 우리말로 번역한 제목과 원문이 뭔가 비슷하면서 다른 느낌을 주는데, 책을 다 읽고 나니 마오의 중국이 될 수 밖에 없는 의미가 있더군요. 물론 역사적으로도 마오의 공산당이 중국의 권력을 손에 쥐게 된 것이죠. 약간 논외로 얼마전에 소개해 드린 리처드 J. 번스타인의 ‘악의 남용’을 기억하실겁니다. 철학자가 중국 현대사에도 관심있었나 하는 호기심을 절로 느꼈는데, 알고 보니 이 전자와 후자의 번스타인이 서로 다른 사람이더군요. 저는 ‘악의 남용’의 인상이 뇌리에 깊게 남아서 같은 저자인 줄 알고 좋아했었는데요. 저의 착각이었습니다.

이 책의 전체 분량은 약 680여 페이지입니다. 인용된 주와 출처가 표시된 분량이 비교적 적은데요. 그래서 상대적으로 본문의 분량이 그만큼 적지 않습니다. 이번에는 개인적으로 일에 쫓기다보니 완독이 너무나 늦었던 것 같습니다. 거의 8일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었네요.

개인적으로도 적잖은 중국 관련 서적을 읽어봤지만 번스타인의 이 글은 좀 더 1941년부터 1945년 시기의 사실에 근접한 중국과 미국 정치의 진면목을 보여준다는 점에 의미를 주고 싶습니다. 소련의 스탈린과 미국의 루스벨트, 중국의 장제쓰와 마오쩌둥의 그동안 접하지 못했던 진면목들을 수많은 자료들과 역사적 분석 등을 통해 독자들에게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는데요. 범위를 한정짓기에는 약간의 무리가 있지만 중국의 국공 내전이나, 왜 국민당의 장제쓰는 몰락했는가 등의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충분한 이해가 드실겁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당시 세계는 루스벨트와 처칠의 유럽에서의 나치 독일의 축출을 위해 과거 히틀러와 불법적이고 비도덕적인 불가침 조약을 맺은 스탈린의 소련과 전략적인 고려에 힘입어 손을 잡는데요. 이는 여러 학자들이 제기한 대로 루스벨트와 처칠의 정치도덕적 입장을 크게 훼손시킨 사건으로 그만큼 유럽 전선에의 상황이 심각했기에 그와같은 매우 정치적인 선택을 하게 됩니다. 그 즈음에 중국은 일본에게 밀리고 있던 장제쓰와 국민당 정부에 세력에 밀려 잠시 도태되어 있던 마오쩌둥이 주요한 정치 행위자들이었습니다. 미국의 루스벨트 행정부는 처음에는 장제쓰에 대한 노골적인 불신이 이 시기에는 거의 없었으나, 국무부 중국 전문가들은 장제쓰의 국민당 군과 장제쓰 개인의 권력에 대한 야심 등을 이미 인지하고 있었는데요. 소련의 스탈린도 마찬가지로 장제쓰와 마오쩌둥의 대립은 일본군과의 전황에 하등 좋은 이유가 없으며, 길게는 중국에서의 불리한 전황이 만주의 100만 일본군으로 하여금 과거 1904년과 같은 일본 제국주의에 침략 구실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장제쓰와 마오쩌둥의 합작은 매우 시급한 요구였습니다.

거의 특사로 파견된 패트릭 헐리 상원의원이 양 측 사이의 중재자로 노력하면서 초기에 장제쓰와 마오쩌둥 간의 협력의 분위기가 시도되긴 하지만 미국 정부의 중국에 대한 조심스럽고 복잡한 이해관계와 헐리 대사와 미 국무부 중국 전문가들과의 대립으로 루스벨트 대통령이 최종적으로 헐리의 안을 채택하면서 마오쩌둥의 공산당과 거리를 두는데요. 이 시기의 마오쩌둥은 자신이 대외적으로 민주주의적 이념을 선호하는 이미지를 선전하면서 미국과 중국 공산당이 협력할 수 있음을 내비치지지만, 저자인 번스타인이 지적한대로 마오쩌둥 그는 후에 자신이 수많은 반대파와 정적들을 제거함으로써 이것이 하나의 정치적 술수에 지나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충동적이고 기만과 술책에 능수능란했던 마오쩌둥의 면모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장제쓰의 국민당은 버마에서의 일본군을 효과적으로 제압한 것을 들어 미국 조야에 퍼져있던 ‘무능하고 대책없는 수준’은 처음에는 아니었던 것으로 재조명을 하고 있는데요. 그는 중국인들에게 ‘대원수’라 불리우며 중국 서해안 지역 일대의 일본군에 맞서 비교적 고립된 상태의 상황에서 지원된 소수의 물자로 잘 버티고 있었다는 점으로 저자는 재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전체적인 맥락에서 ‘100만이 넘는 효율적이며, 훈련과 장비가 잘 되어 있는 일본군으로부터’ 몇년간의 전선 유지를 맡아 온 것은 폄훼받을 일은 아니겠지요. 다만 1945년 이후 매우 실망스런 공산당과의 대결은 전반적인 부분에서 군의 무능과 부패를 바로잡지 못한 수장의 책임은 피할 수는 없을것입니다.

이처럼 눈앞에 보이는 듯한 미국과 중국의 양 거두 정치인들간의 정치 게임과 많은 자료들을 적시 적소에 배치하고 당시의 정치 상황에 대한 일목요연한 분석은 당시 상황을 주제로 한 여느 역사 서적보다 탁월하다고 여겨집니다. 읽다 보면 눈앞에 잡히는 현실감에 저역시 놀라웠습니다. ‘중국인들은 잘못된 미신의 일환으로 죽은자의 피로 적신 빵을 먹으면 병이 낫는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는 자료처럼 꽤 놀라운 것이 많습니다.

끝으로 1949년 중국 공산당의 내전 승리와 소련의 핵실험은 미국 정부에게 있어선 매우 큰 충격으로 다가왔는데요. 당시 미 의회는 중국 대륙에서의 국민당 정부의 패퇴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정치인들간에 온갖 정치 설전과 비난전이 있었습니다. 의회를 통해 상응하는 그 책임을 묻겠다는 소리도 들렸는데요. 여기에 저자는 이러한 분석을 합니다. ‘루스벨트는 처칠과 달리 스탈린이 전후 미국과 우호 협력의 관계로 남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갖고 1945년 4월 그가 죽는 순간까지 이를 놓지 않았으며, 그가 위독한 시기에 중국 국공 내전에 대한 리더십이 실종되어 미국 정부 고위층에 있는 어느 누구도 중국 문제에 관해 책임을 다하지 못했고 뒤이어 트루먼 행정부에 들어서도 중국 인식에 대한 혼란이 지속되었다’ 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1949년의 중국 공산당의 내전 승리가 뒤이어 1950년 한국 전쟁에 영향을 미쳐 이 사건의 소회가 작다고 할 수 없겠습니다. 논외가 되겠지만 번스타인의 이 책은 여러 위키 백과에서 인용되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그만큼 일독하시면 중국 현대사와 관련해 보다 타당한 시각이 갖춰지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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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탈국가 이스라엘 - 팔레스타인 강탈의 역사
존 로즈 지음, 이정구 옮김 / 책갈피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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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 Israel : The Hijack State : America’s Watchdog in the Middle East. 인 이 책은 존 로즈의 1986년에 출간된 책을 최근에 국문 ‘강탈국가 이스라엘’로 번역한 글입니다. 최초 출간이 1986년이라 그 전에 국내에 번역이 되었는지 검색을 해봤는데요. 따로 나오지는 않더군요. 요즘의 번역 출간 추이를 봤을 때 꽤 시간차이가 있는데요. 아무래도 이런 부류의 책은 출판을 하는 것이 오히려 리스크가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같은 사람에게는 매우 반갑기도 합니다. 논외로 원제보다는 국문 제목이 좀 더 순화된 표현인 것 같은데요. 이 책을 읽고 나면 원제의 의미가 이해 되기도 합니다.

소위 ‘시오니즘 운동’ 이라 불리우는 유대인들의 국가 건설 노력은 1945년 세계2차대전이 끝나고 영국과 뒤이어 미국의 외교적 묵인하에 원래 그 지역에 살고 있던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인들이 유입되면서 시작되는데요. 여기에 존 로즈도 밝히고 있지만, 2차대전 이후 유럽의 유대인들이 거의 대다수가 히틀러에 의해 희생되었지만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유대인들 다수가 중동으로의 이주 보다는 유럽과 미국 등지로의 이주를 선호했고 이는 시오니즘 세력과 분리에서 이해하는 것이 좀 더 명확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얼마전에 읽은 존 J. 미어샤이머의 ‘이스라엘 로비’에서는 미국 내의 이스라엘과 유대인의 로비 단체 및 이익 집단이 미국 의회와 백악관에 벌이고 있는 금권 로비에 대해 비교적 상세히 나오고 있는데요. 미국 정부가 ‘유대주의 로비’에 이스라엘에 대한 무비판적인 행태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매우 오해이며, 이스라엘 자체는 미국의 중동 정책에 있어서 중요한 교두보이고, 중동의 정세는 석유와 관련하여 미국의 정계 및 경제계에 있어서 중요한 이해관계입니다. 미국에 고분고분하지 않는 중동 정권들을 길들이는데 이스라엘 만큼 요긴한 정치적 수단이 없다는 점에서 왜 미국이 이스라엘을 안고 가는지에 대해 이러한 배경이 있습니다. 본문에서 밝히는 저자인 로즈의 입장도 이와 비슷합니다.

여기에 로즈는 더 덧붙여, 그동안 미국이 이스라엘에 비교적 최신의 무기들을 이스라엘에 제공한 것은 미 방산업체들의 요구라고 볼 수 있는데요. 사실상 이스라엘이 이 무기들을 사용함으로써 그 실효성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에 대한 정보들을 미국측의 제공한 것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즉, 미국이 일방적으로 이스라엘 정권과 국가 유지에 지원을 나서는 것은 무조건적인 인도주의적 입장에서 벌이는 일들이 아니라는 점이죠.

끝으로 세계대전 와중에 ‘홀로코스트의 지옥’에서 살아남은 민족이 거의 나치와 비슷하게 팔레스타인들과 주변 아랍민족을 다루고 있다는 것은 인류 역사의 선명성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거의 대부분의 주변 요건을 배타적으로 받아들이고 적극적인 힘의 논리로 대하는 것은 유대인들과 이스라엘의 논리가 얼마나 빈약한지 충분히 깨닫게 해줍니다. 로즈는 1982년 팔레스타인 수뇌부를 제거하기 위해 레바논 남부와 수도인 베이루트에 행한 대규모 이스라엘 공군기에 의한 융단 폭격과 지금도 제대로 파악되지 않고 있는 무고한 민간인들의 희생자 수 등을 고려했을 때 이런 상황을 거의 묵인한 국제사회와 오히려 이를 부추긴 미국과 서구의 행태를 봤을 때 견고한 국가 체제와 국력의 결여가 어떠한 결과를 갖고 오는지 이 레바논의 사례로 교훈을 얻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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