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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세부터 헬로라이프 스토리콜렉터 29
무라카미 류 지음, 윤성원 옮김 / 북로드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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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건 분명 나 혼자만의 괴로움이 아니다. 유치원에 다닐 때 나는 이 세상이 너무도 고도화된 문명사회라서, 겉보기엔 전쟁도 없고 아주 평화로워서 커서도  평온하게 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직도 이토록 생존 그 자체를 위해 허덕여야 하는 세상인 줄 몰랐다. 커가면서 '현실'이라는 것들이 나를 짓눌렀다. 날더러 그것들은 어떻게 먹고 살 것인지 고민하라고 요구했다. 고민해봐야 답이 나올리 없다. 고민보다는 지금 당장 닥친 일부터 해치우는 것. 혹은 부모님 말씀을 듣는 것 그런 수준에서 하루하루가 흘러갔다, 그 이외에 주변에서 종종 조언을 얻기도 했지만, 그것은 조언일 뿐. 부모님 말씀과 마찬가지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었다. 보장된 삶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여기 이 소설에, 그런 나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있다. 나이대는 다르지만 같은 시대를 살아가기 때문에 그런지 몰라도 공감이 되었다. 게다가 그들은 '평범'한 고민들을 한다. '사랑'을 쫓고, '돈'을 고민하면서 같은 시대를 산다.

이 책은 연작 중편소설로 기획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인물들도 다르고 이야기도 달랐지만 연관되는 이미지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결혼상담소에 다니는 나카고메 시즈코는 얼그레이를 좋아하는 이혼여성이다. 결혼생활에 지친 그녀는 재혼을 하고 싶어하지만, 그것이 쉽지는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시도하는 과정에서 그녀는 나름의 즐거움을 찾고, 다른 여유를 찾아나간다. 그 과정에서 얼그레이는 그녀의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늘을 나는 꿈을 다시 한 번 이라는 중편에서는 후쿠다라는 동창을 돕는 시게오가 나온다. 시게오와 후쿠다는 '물'을 매개로 우정을 맺는다. 이 중편에서는 '물'이 곧 우정을 상징하는데, 한 쪽이 일방적으로 다른 한 사람에게 베푸는 것처럼 보이는 하나의 사건을 통해 서로가 서로에게 위안을 얻는 소설이다.

캠핑카라는 중편에서는 퇴직 이후 새로운 인간관계를 구축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토미히로가 주인공이다. 그는 캠핑카를 사서 아내와 함께 여행다니는 것을 꿈꾸지만, 아내가 '자기만의 시간'을 주장하자 잠시 공황상태를 겪는다. 그리고 그것을 '커피'를 끓여마시는 일상을 통해 그려낸다. 그는 잠시 혼란 상태에 있을 때 '커피'를 자연스럽게 끓여먹던 자신을 잃는다. 그리고 새로운 관계망을 형성할 희망을 얻으면서 '커피'를 다시 끓일 수 있게 된다.

펫로스(pet loss)에서는 보이차가 나온다. 남편이 자주 놀러가는 예전 거래 회사 전무의 아내가 타준 차가 보이차였고, 보이차를 좋아하게 된다. 그녀는 남편과의 관계에서 실망하고 강아지 보비를 통해 그 빈자리를 메우려 하는데, 그때 공원에서 개주인이라는 처지로 공감대를 형성해 만난 요시다씨와 보이차로 서로의 간격을 보여준다. 마지막 즈음에는 남편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고 가까워지는 계기를 '보이차'로 만드려고 결심한다. 

여행도우미는 트럭운전사인 겐이치가 주인공이다. 그는 해녀인 할머니에게서 햇차를 마시는 지금의 습관을 배운다. 그는 그 시기를 가장 소중하게 추억하지만, 그가 좋아했던 사람에게 그와 관련된 추억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다. 그러나 그는 자주 햇차를 마시며 추억을 떠올린다. 그가 변화를 결심한 것도 추억을 상기한 까닭이다. 그래서 그에게 햇차는 그의 삶을 지탱해 온 추억이다.

 

그러니까 이 소설들은 '마실 것'에 마실 것 이상의 희망을 담아 삶을 버티고, 그 에너지를 독자에게도 전달한 셈이다. 일상에서도 실천해볼 법한 평온을 찾는 해결책인 듯도 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얼그레이나 보이차나, 햇차, 스파클링 물, 커피 등은 내게는 사치스러운 취미 같기도 해서 실천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저 보온병 하나 딸랑딸랑 들고 다니면서 시간을 보내지 않을까? 혹은 마실 것을 매개로 사람과 만나는 것은 할지도..

 

정말 일상에서 있을 법한 이야기를 잔잔하게 풀어간다. 현실은 '내 마음대로'흘러가지 않지만 그래도 하루하루를 살아가자는 듯이 반짝인다. 아무것도 내세울 수 없고, 보장된 것은 없어도, 가치있는 하루를 보내는 데는 현실적인 변화 없이 내면의 안정감만으로도, 가능하다는 듯이, 그것은 사람과의 소통과 사랑, 작가의 표현에 의하면 '신뢰'로 가능하다는 듯 이야기가 이어져서 예쁘다.

 

맛있게 잘 읽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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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아이들]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우리 동네 아이들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29
나지브 마흐푸즈 지음, 배혜경 옮김 / 민음사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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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와 나 사이의 간극. 


이 작품의 의미를 ‘나’ 어떻게 되새겨야 할까? 내가 처음 이 책을 집어들었을 때, 종교갈등에 관한 이야기를 읽을 줄 알았다. 이 책을 선택한 이유가 ‘종교 갈등’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쩐지 ‘코란’을 읽는 기분이 들었다. 구약 신약을 포함해 마호메트까지의 이야기가 담긴 것이 ‘코란’이라고 알고 있는데, 그 내용을 답습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상징이라고 보기에는 1:1 대응 공식이 단순해서, 내용이 낯설지 않았다. 단순한 대응, 단순한 전개, 수사적이지 않은 서술방식으로 쓰여졌는데, ‘의외로’ 재미있었다. ‘꿈’이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이상향, 지향점. 가야할 길. 되고 싶은 사람. 그 길을 가는 방법. 예쁜 사상들.

그래서 왜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 신성모독이라는 말을 들었는지, 그것에 관심이 갔다. 왜냐하면, 정말 구질구질한 세상을 예쁜 생각을 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선지자’들이 등장하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그들이 ‘신성모독’을 했을 리 없다. 신이 존재한다면, 그런 이들을 좋아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만약 이 소설을 신성모독으로 여겼다면, 신의 비유처럼 여겨지는 ‘자빌라위’가 죽었다는 것과, 진실을 진실로 이야기하려고 하는 소설의 문장들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소설적 선지자는 ‘인간’이고, 실현 가능한 어떤 것들을 현실 안에 사는 사람으로서 느끼고 배워나갔다. 그러므로 그의 글은 코란이 아니라 소설이 되었다. 마지막 선지자인 ‘아라파’는 그가 창조한 독창적인 인물이었다. 뼈대를 어디서 빌려왔는지 모를 인물. 해설에 의하면 그가 쓰는 ‘마법’은 과학기술이라 한다. 허나 과학기술을 믿지 않는 사람으로서 아라파를 마냥 좋아할 수 없다. 나는 소설 속의 아라파에 관해 좀 더 고민해보고 싶다. 

그리고 ‘아랍 문학’의 특징은 이 소설에 어떤 식으로 녹아들어 있을까? 

많은 이야기는 현재 지금의 시점에서 어떤 문제와 맞서 싸우려고 할 때 생기는 괴리와 간극을 메우려고 쓰여진다. 이 작품의 작가 역시, “나는 사회와 나 사이에 간극이 생겼을 때만 글을 쓴다.”라고 인터뷰 했다. 세계를 하나의 축소판으로 볼 때, ‘우리 동네’에서 벌어진 일들은 인간이 겪는 많은 일이다. 그것도 ‘한 명’의 인간으로서 겪는다. 

이 정도면 코란의 ‘변주’는 성공한 것 같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시점에서 그는 성공한 것일까? 독자가 읽고 의미망을 새로이 재발견해야 성공한 작품일까. 이제 남은 것은 독자의 몫인 듯 하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당신이 당하지 않으면 억압을 증오하지 않는군요!"1권p291

"‘어린 놈이 늙은 할아버지더러 뭔가 하라니 이렇게 괘씸할수가! 사랑을 받고 싶으면 행동으로 옮기거라.’ ...... ‘나약한 자는 잠재된 자신의 힘을 모르는 어리석은 자이고 나는 어리석은 자를 좋아하지 않아.’ ...... ‘저는 약하지만 어리석지 않아요. 사랑받는 자식은 행동으로 실천하는 자죠!’"1권 p356-357

"네, 이 동네에서 내가 사랑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어요."1권p373

"그런 허위의식을 버릴 때 당신은 더욱 아름답고 훌륭한 사람이 될 거예요. 자발 구역 사람들이 윌 동네에서 제일 선량한 사람은 아니에요. 제일 선량한 사람들은 가장 친절한 사람들이에요. 나도 종종 당신처럼 실수를 해요. 자발 구역 사람들에게 각별한 관심을 가졌죠. 그러나 행복이란 진정으로 그것을 추구하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거예요. 선량한 사람들이 어떻게 나에게 와서 악령에서 벗어나는지 봐요."1권 p383

"사람들은 자발라위의 힘과 영화를 탐냈어. 그들은 자발라위의 다른 우월한 면모를 망각한거지. 그렇기 때문에 자발이 재산 소유권을 사람들에게 갖게 했어도 그들을 변화시킬 수 없었던거야."1권 p386

"싸운다는 생각은 하지 마.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려고 고군분투하는 사람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는 것을 가볍게 생각하지 않아."1권 p407

"너는 지혜가 힘보다 강하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어..... ‘당신의 사랑이 지혜보다 나아요.’" 2권 p38

"사람들은 힘을 숭배해. 심지어 그 힘에 희생되는 희생자조차 힘을 숭배하지!"2권 p57

"살인자가 희생자를 지고 가야 해."2권 p58-1권 152p

"살인자가 카프르 알자가리 사람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다른 놈들을 공포로 몰아가는 데 관심이 있지, 범인을 처벌하는 데는 관심이 없다." 1권p209

"아드함, 너는 나를 싫어하는데, 그건 네가 나 때문에 쫓겨나서가 아니라 내가 너의 나약함을 떠올리게 해서 그런거야. 네가 싫어하는 나의 모습이 바로 너 자신의 사악한 모습과 같아서고. 나는 이제 너를 미워할 이유가 없어. 오히려 오늘 너는 나에게 위로가 되고 나를 달래 주네. "1권p99

"까드리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 혼잣말을 했다. ‘나는 그 애를 한 번 죽였는데 그 애는 매 순간 나를 죽여요. 나는 살아있는 게 아니에요. 누가 나를 죽였을까요?’"1권p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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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셋 리미티드]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선셋 리미티드
코맥 매카시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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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 것인지 죽을 것인지 정하라고 했을 때, 사는 것과 죽는 것의 의미를 저울질해서 어떤 것 하나를 선택할 ‘능력’이 나에게 있을까? 이 책은 그 답할 수 없는 질문을 가지고 끈질기게 탐구한다. 인간의 본질이 무엇이냐, 왜 인간은 어떤 것을 선택하고 행동하느냐, 등등..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삶의 양상을 바깥으로 끄집어내고 싶었던 것 같다.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려고 무진장 애를 썼다. 그의 말마따나, “ 흑 : 질문을 하는 사람은 진실을 원한다고 생각하지. 의심하는 사람은 진실 같은 건 없다는 얘길 듣고 싶어하고. 66p” 인가보다. 작가는 흑과 백이 말하는 두가지 내용 전부가 현존하는 진실이면서 거짓이라 여기는 듯 하다. 왜냐하면 결론부분에 가서 소설(아니면 희곡?)을 혼란에 빠뜨리기 때문이다. 혼란이라고 해봐야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깊어서 감성적으로 짓눌릴 정도는 아니다. 그래서인지 혼란스러운 결말이라 해도 곤경에 빠지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 결말은 두 힘의 충돌이 빚을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결말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아직 삶에 대한 철학적 지식이 짧은 나로서는, 뭔가 알 수 없지만(?하하)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이유 없이 그냥이라서 조금 이상하기도 하다.)


나 개인적으로는 ‘백’의 삶을 살다가 살기 위해 ‘흑’의 쪽으로 넘어왔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생각한 삶이란 것에 빗대어 이 책의 내용을 빙산의 일각만이라도 소개해보겠다.


처음 세상에 대해, 내 자신이 왜 사는지에 대해 고민해본 것이 언제인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때 내 자신이 존재하는 것에는 분명히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가정하고 끊임없이 그 가정을 의심해왔는데, 의심할수록 알 수 있는 것은 점점 더 사라져가고 내 삶은 무용한 것이라는 결론밖에 남는 게 없었다. 나는 그렇기에 자살을 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흑의 입장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단순하다. 정말 살기 위해서였기 때문이다. “흑 : 모든 걸 포기해버렸어. 그런데 문득 그 말을 해버렸어. 이렇게 말한거야. 날 좀 살려주세요. 그러니까 살려주시더라구. 103p”

그리고 원하는 것 대신 필요한 것을 얻었다. 원하던 것이 정말 내가 원하던 것인지 아닌지 안개처럼 뿌옇게 보였기에, 지금 당장 내게 필요한 것들을 찾아나갔다. 살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것들을 내가 모르는 새 소망하고, 그것을 내가 알지 못하는 방법으로 얻어냈다. “흑 : 나는 원하던 것 대신 필요한 걸 얻었소. 그게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최고의 행운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119-120p”

하지만 흑이 마지막에 백을 돕지 못해 절망하면서 외쳤던 절규는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내가 백을 도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백은 애초 흑과 반대지점에 있으면서 평행선이라, 맞닿기 어렵다. 애초 설득이 불가능한 것이다. 생명이 무용하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어떻게 생명이 귀중하다고 설파할 것인가? 생명이 무용하기에 값지고, 그것이 물리적으로 같은 것이라는 걸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못한다. 애초 아는 바가 없고, 내 뜻대로 되는 일이 아니다. 그걸 흑은 ‘신의 뜻’이라고 표현할 뿐.

나는 그것을 생명이 살고자 하는 집단적인 힘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그것 역시도 정확한 표현은 아닐 것이다. 


작가가 결론을 '백'의 견고한 주장과 실천. 그를 지켜보는 '흑'의 혼란으로 맺은 것은, 아마도 '백'의 입장이 너무 견고하다 해도 하나 힘알탱이가 없는 결론이라서(단순하게 말해 '백'의 입장은 생명을 향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자신이 선조로부터 전해받은 생명력을 견고하게 믿고 사랑을 온전히 받는 사람에게는 조금의 혼란도 주지 못하기에, '백'과 '흑'의 힘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라고 나는 판단했다. 실재로 혼란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이성'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려고 들 때는.



(To be or not to be)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이 문장으로 정리될 수 있지만, 이 하나의(?)문제가 한 권의 책(얇지만 압축적이라서 더 어려운)에 담길 정도로 길고도 혼란스러운 이야기다. 나는 그렇기에 이 책을 단번에 정리하는 그런 무시무시한 일은 못하겠다. 포기…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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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모노프]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리모노프
엠마뉘엘 카레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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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가 매력적인 이유는 그가 한 가지 목표에 ‘순수하게’ 매진했기 때문일까? 그 목표가 옳은 것이든 옳지 않은 것이든 그는 개의치 않았다. 그의 지혜는 편협하고 사상은 단조로웠을지라도 자신이 해야 할 바가 무엇인지 알고 있으며 무엇 때문에 이 세상을 살고 있는지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보다 소중한 지식은 없다고 여기며 행동했다. 무모하다 싶을 정도로 돌진만 했다.

영웅이 되기 위하여 다사다난한 삶을 산 리모노프, 그가 돈키호테라 불리기에 적당하다 생각한 이유는 어찌보면 우스꽝스럽게 보이는 그의 생각을 관철시키려고 그의 일생을 바쳤기 때문이다. ‘영웅적인 삶을 살고 싶다’는 목표를 전면에 내세우고 ‘파시스트’가 되려고 노력하며, ‘전쟁’은 한번쯤 해봐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그 모든 것들을 일생에 걸쳐 몸으로 실천한 그를 지칭할 수식어로 ‘돈키호테’보다 적절한 단어가 생각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왜 리모노프를 매력적이라 느꼈을까? 돈키호테야 소설 속에 등장한 인물이고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면서 자신의 사상을 추구한 것은 아니니 매력적으로 느낄 수도 있다고 한다 하자. 리모노프는 실존인물이다. 게다가 그는 현안문제에 대해 정말 ‘다른’시각을 가진 사람이다. 소설을 읽고 그의 넘치는 에너지를 보고 스타로 추앙하고 좋아할 수는 있어도, 전혀 다른 배경에서 살아온 내가 이유없이 그의 사상에 동의하기는 어렵다. 동의는 커녕 그에게 권력이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단순히 그가 영웅이 되는 데 실패했기 때문에 매력적이라 느끼는 것은 사실을 너무 단순화시킨 것 같다. 그를 매력적으로 느낀 작가의 의도가 소설 안에 적절하게 배합되어 독자가 리모노프를 매력적인 사람으로 받아들이도록 만들었기에 그럴지도 모르지만, 무언가 더 말해야 할 것 같다. 

작가의 표현에 따르면 리모노프는 나르시즘적인 사고방식으로 모든 일을 결정할 때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고 결정한다. 명석한 두뇌와 훌륭한 신체능력을 가지고 오직 역사에 남겠다는 일념으로 명예만을 쫓는 사람인데. 이런 설명만으로는 그에게 매력을 느낄 이유를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게다가 앞서 말했지만 그는 “파시스트“가 되고 싶어했다. 파시스트라니! 내가 가진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생각이었다. 내가 이해한 바로는 국가주의, 전체주의를 의미하는 파시스트는 일당독재체제를 통해 국가를 지배하기를 바라는 사람들로서, 그 사상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못 내도록 총력을 기울이며, 일반 시민들이 쉽게 발언권을 얻을 수 없는 환경에 처해있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들이었다. 고위당원들만 혜택을 공유하고, 위에서 고인 물들이 썩어간다 해도 그들끼리의 리그에서만 모든 물자를 독식하는 그런 상태. 그런데 리모노프는 영웅이 되고 싶어하면서 파시스트가 되겠다고 생각했다. 영웅은 모든 사람이 추앙하는 인물인데, 사람들이 반대할 만한 사상을 내세우면서 영웅이 될 수 있나?

그런 이유는 러시아 역사를 살피지 않으면 전혀 이해할 수 없다. 작가는 그가 파시스트가 되고 싶어한 이유는 그가 어릴 적에 느낀 러시아적인 가치를 복원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가 태어난 시기에 우크라이나는 소련에 포함된 국가로서, 공산국가였다. 모든 물자는 국가에 의해 관리되고 배포되었다. 모두가 평등하게 가난한 것처럼 보였다. 


늘 켜져 있는 가스레인지 위의 파란 불꽃이 에두아르드는 눈에 거슬렸다. 불을 끄려는 아들을 어머니는 말렸다. 따뜻하고 방에 항상 누가 함께 있는 것 같아서 든든하다고 했다. <파리에서는 이러면 수천 프랑이 나와요> 하고 그가 한마디 하자, 그녀는 아들의 외국 생활에 대해 들은 몇 안 되는 얘기 중에 이 사소한 내용이 단연코 가장 충격적인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니까 네 말은, 거기는 사람들한테 <돈을 내고> 가스를 쓰게 할 만큼 나라가 짜단 말이냐?⌟305p


옛날에는 사는 게 고생스러웠어도, 구시렁구시렁 불평은 하면서도 전반적으로 자긍심을 느꼈다. 가가린스푸트니크 인공위성, 강한 군대, 광활한 제국의 영토가 있다는 사실이, 서양보다 공정한 사회에서 산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웠다. 그런데 <글라스노스트> 이후로 고삐가 풀린 표현의 자유 때문에 맞은 편의 사내 같은 소박하고 순수한 사람들의 머릿속에 1917년부터 이 나라를 지배한 자들은 모두 사디스트고 살인자이며 작금의 참패를 불러 온 장본인이라는 사고가 각인되었다고 에두아르드는 판단했다. <사실, 우린 딱 제 3세계 국가, 핵무기를 가진 오트볼타(부르키나파소의 옛 명칭)꼴이오> 하고 사내는 한탄했다. 어디서 한 번 읽은 게 마음에 들었는지, 남자는 상대의 비위를 맞추겠다는 부담감 속에 같은 표현을 되풀이했다. 지난 70년동안 우리가 최고라고 세뇌를 받았지만 우리는 패배자들이었다고. <브쇼 프라이그랄리(폭삭 망했다)>. 70년 동안 열심히 노력하고 희생한 대가가 이것이라고, 똥통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다고. 301p


평등한 가난함(?평등과 가난함이라는 단어를 이렇게 함부로 써도 될까 모르겠지만..)과 제국의 자부심을 그리워하는 러시아 사람들은 공산주의 국가에 향수를 느꼈다. 리모노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러시아에서 태어나 러시아의 삶을 살아본 사람이기 때문에 러시아적인 사고방식으로 사유할 수 있었다. 리모노프는 그런 의미에서 그가 추구하는 바와 러시아적 정서가 일치된, 철저하게 러시아적인 사람이다. 공산국가라는 특수한 환경에 처해있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사고방식일까? 자본주의의 물결에 휩쓸려 폭력적인 상황에 노출된 것은 러시아도, 남한도 마찬가지이지만, 애초 공산국가였던 적이 없던 남한과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식이 정말 달랐다. 


시장경제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이상적인 이행과 범죄적 이행 사이에서 선택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소. 범죄적 이행이냐 내전이냐, 둘 중 하나였으니까. 364p


인생의 한 모퉁이에서 이번엔 또 운명이 예고도 없이 그를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로 보내 준 것이었다. 전쟁을 하면 삶과 인생에 대해 두 시간이면 배울 것을 평화로울 때는 40년이 걸려야 배운다고 그는 생각했다. 전쟁은 추악하다. 사실이다, 전쟁은 미친 짓이다. 그래서 어쩌라고! 지나치게 무기력하고 합리적인, 본능을 억누르는 문명의 삶도 결국 미친 짓이기는 매한가지 아닌가. 전쟁이 쾌락 중에서도 최고의 쾌락이라는 것은 어느 누구도 함부로 입에 담지 못하는 진실이다. 325p


인생의 한 모퉁이에서 이번엔 또 운명이 예고도 없이 그를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로 보내 준 것이었다. 전쟁을 하면 삶과 인생에 대해 두 시간이면 배울 것을 평화로울 때는 40년이 걸려야 배운다고 그는 생각했다. 전쟁은 추악하다. 사실이다, 전쟁은 미친 짓이다. 그래서 어쩌라고! 지나치게 무기력하고 합리적인, 본능을 억누르는 문명의 삶도 결국 미친 짓이기는 매한가지 아닌가. 전쟁이 쵀락 중에서도 최고의 쾌락이라는 것은 어느 누구도 함부로 입에 담지 못하는 진실이다. 325p


전쟁의 맛, 진짜 전쟁의 맛은 사람한테는 평화의 맛처럼 자연스럽기 때문에, 평화는 좋고 전쟁은 나쁘다는 고매한 소리로 이 맛을 없애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남녀의 존재가 그렇듯 현실에서는 <음양>의 이치처럼 이 둘 모두 필요하기 때문이다. 326p


작가가 리모노프와 비슷하다고 묘사한 ‘푸틴’은 정권을 잡았다. 리모노프는 ‘파시스트’가 되고자 했으면서도 ‘푸틴’을 ‘파시스트’라며 싫어한다. 그가 바라는 것은 이토록 뒤죽박죽이다. 작가 역시도 그걸 염두해두고 리모노프가 오직 영웅이 되기 위해 목숨까지 불사할 사람이라는 표현을 썼는 지도 모른다. 그는 러시아의 혁명을 위해 당을 만들었었고, 60대 후반에(2009년-66세) 푸틴에 반대하여(맞나,,?)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 31조를 상기시키는 <전략 31>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단체를 결성’하여 활동중이라 한다. 그는 영웅이 되고자 했지만 실패했다. 사실 그가 목표로 한 바가 실현되지 않았기 때문에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리모노프는 그런 그의 인생을 ‘개떡같은 인생이지, 한마디로.’라고 요약했다고 한다. 작가는 그런 그의 이야기를 그렇게 끝내기 아쉬웠다.


에두아르드라는 파시스트한테 한 가지는 인정해 줘야 한다. 그는 과거나 지금이나 항상 소수의 편에 서 있다. 뚱뚱한 사람들보다는 마른 사람들, 부자들보다는 가난한 사람들, 수두룩하게 있는 착한 사람들보다는 당당한 개차반들의 편이다. 갈팡질팡하는 듯 보이는 인생 역정이지만 그는 언제나, 정말로 언제나, 그들의 편에 서는 일관성을 보여주었다. 436p


영웅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기에 가지는 일관성인지는 잘 모르나, 처음부터 지켜온 이런 일관성은 리모노프를 진짜 영웅처럼 보이게 만든다. 나 역시도 에두아르드 리모노프의 이런 점에 반하기도 했다. 작가는 그 말에 덧붙여서 이런 말들을 곳곳에 적었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신성한 단결>을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이다. 나 스스로는 이유 없는 폭력을 행사할 사람이 아니라고 자신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시대가 달랐으면 상황적 여건이나 명분을 내세워 충분히 나치에 협력하거나 스탈린주의나 문화혁명에 가담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나는 지금 내가 사는 세계에서 당연하게 여겨지는 가치들, 내 시대, 내 나라, 내 계층의 사람들이 영구불변하고 보편적인 최고의 가치라고 확신 하는 것들 중에서 세월이 지나면 기괴하고 추악할 뿐 아니라 명백히 잘못된 가치로 판명되는 것들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지나치게 고민하는지도 모르겠다. 리모노프류의 상종 못 할 사람들이 오늘날의 인권이나 민주주의 같은 이데올로기는 기독교 식민주의의 변형(야만인들에게 진실과 아름다움과 행복을 가져다주겠다는 똑같이 좋은 의도, 똑같은 선의, 똑같은 절대적 확신에서 출발하는)이라고 주장할 때, 나는 물론 이런 상대주의적 논리에 동의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딱히 반론할 근거도 없다. 331p


세상의 복잡다난함을 흥미롭게 관찰하는 이들은 자신들의 견해와 상반되는 사실을 발견하면 덮으려 하지 않고 오히려 부각시킨다.334-335p


우리의 전반적인 사고체계는 미덕에 의한 등급화, 가령 마하트마 간디는 살인범인 소아 성애자 마크 뒤트루보다 훨씬 고귀한 인간상이라는 판단에 기반하고 있다. 246p


<남과 비교해 스스로 우월하다거나, 열등하다거나, 심지어 동등하다고 판단하는 인간조차 현실을 모르는 것이다>라는 생각은 지고지상의 지혜이며, 이 생각을 수용하고 소화하고 체화함으로써 이 생각이 단순한 생각에 그치지 않고 여하한 상황에서도 우리의 시선과 행동을 결정하는 좌표로 작용하게 만들기에 한 평생이라는 시간은 충분하지 않다고 믿는다. 247p


작가의 이런 생각들이 이 책을 집필하게 된 계기가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그렇기에 더욱더 리모노프의 삶을 실패자의 인생인 양 끝마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또한 타인의 카르마, 심지어는 자기 자신의 카르마를 판단할 때조차 오판의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생각한다.515p” 그래서 작가는 이런 질문을 한다. “이 집에서 늙어 가는 상상을 해보나요, 에두아르드(리모노프)? 투르게네프의 주인공처럼 생을 마감하는?”

그 말에 리모노프는 이렇게 답한다.


사마르칸트나 바르나울 같은 도시들에, 태양이 작열하고 먼지가 자욱한, 느리고 격렬한 도시들에, 그곳, 총안이 뚫린 사원들의 높은 담장 밑 그늘에, 걸인들이 있다. 몇 무더기의 거지들이. 이가 빠지고 상당수는 눈도 없는, 그을린 얼굴의 앙상한 노인들. 이들을 때가 까맣게 묻은 튜닉과 터번을 두르고 앞에 벨벳 조각을 펼쳐 놓고 동전을 던져 주길 기다리며 앉아 있는데, 막상 던져 줘도 고맙다는 인사 한 마디 없다. 이들이 살아온 삶은 알 길이 없지만, 무연고자 공동묘지가 종착역인 것은 분명하다. 나이도, 혹 있었다손 치더라도 이젠 재산도 없으며, 여태 이름이 있는지도 알 길이 없다. 모두 다 내려놓은 사람들이다. 넝마를 걸친 걸인들이다. 왕들이다. 519p


이 결말을 읽고 무릎을 쳤다. 암살당하지 못해서 영웅이 되고자 한 꿈이 좌절된 영웅의 이야기가 진짜 영웅의 이야기로 변모하는 순간이다. 넝마를 걸친 걸인이자 왕이라 묘사된 그들은 러시아적으로 ‘낙오자’가 된 리모노프를 묘하게 닮아있다. 

내가 겪은 일도 아닌데 리모노프의 삶이 얼마나 파란만장했으면 그 열기와 에너지가 활자 밖으로 뛰쳐나오는 것 같았다. 리모노프가 욕망에 충실하고서도 인간적인 사람이 되는 길을 착실히 밟아왔다는 점이 정말 사랑스럽다. 그의 자유로운 삶의 방식에 놀라울 뿐이었다. 

책에 나오는 저돌적인 그의 생각과 행동은 오히려 영웅적인 삶과는 거리가 먼 행동들이라 여겼지만, 책을 읽고 나서 생각컨데 인생이라는 것은 참 신비해서 욕망만을 쫓는 사람에게도 열심히 노력할 경우 평범하고도 영웅적인(?) 깨달음을 주는 건가 싶기도 했다. 러시아 바깥에 살아온 나도 그의 삶이 이해되면서 웃을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나와는 전혀 다른 이세계의 사람인데도 나와 닮았다고 느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떤 점이 닮았다고 생각했냐면, ‘이상’이라 여겨지는 것을 향해 목숨걸고 돌진하는 점이다. 그렇게 돌진하다가 리모노프처럼 노년을 보낸다 해도 아량곳하지 않고 죽는 순간까지 노력하기를 희망하기에, 그러했다. 너무 뜬금없는 이야기일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사실 나는 허영과 허세는 많아도 겁쟁이라서 리모노프처럼 영웅(?)적으로 살거나 무모하게 전쟁에 나서거나 하기보다 누구도 죽이거나 무시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펜대만 잡고 굴릴 것 같지만. 그랬다. 그렇게 따지면 리모노프보다는 카레르가 추구하는 삶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세상의 복잡다난함을 흥미롭게 관찰하는 이들은 자신들의 견해와 상반되는 사실을 발견하면 덮으려 하지 않고 오히려 부각시킨다."라는 의견과 "<남과 비교해 스스로 우월하다거나, 열등하다거나, 심지어 동등하다고 판단하는 인간조차 현실을 모르는 것이다>라는 생각은 지고지상의 지혜이다"라는 카레르의 의견에 동의하기 때문이다.

여튼 리모노프는 재미있는 사람이다. 소설 리모노프를 읽으면서 자신의 이야기와 리모노프 이야기를 절묘하게 섞어서 도대체 어디까지가 리모노프란 사람의 진실일까 궁금했다. 묘사라기보다는 관찰일기 같은, 논평을 읽는 기분이었다. 리모노프가 가로지르는 러시아의 역사를 전반적으로 다루었기에, 아무 지식이 없는 내가 읽기에 조금 힘들었지만 재미있는 책이었다. 읽고 나서는 리모노프의 넘치는 에너지가 부럽다고 생각했다. 


 p.s. '리모노프'를 읽자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이라는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면서 왜 그런 인물들이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안에 등장했을 지 더 잘 알게 된 기분이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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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너리 오코너 - 오르는 것은 모두 한데 모인다 외 30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12
플래너리 오코너 지음, 고정아 옮김 / 현대문학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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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르는 것은 모두 한 데 모인다 


나는 플래너리 오코너가 쓴 단편소설의 규칙성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로테스크를 규칙이라고 들이댈 수는 없지 않은가. 읽으면서 규칙성을 찾으려는 나를 비웃듯이 이야기들은 준비되지 않은 내 뒤통수를 쳤다. 아무리 어떤 뒤통수를 칠 지 미리 알아보려고 살펴도 결말은 항시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났다. 규칙성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매혹적이었다. 어떤 인물도 얌전히 믿을 수 없었고, 그랬기에 어떤 인물도 결말이 나올 때까지 비난할 수 없었다. 

대충 읽다가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파악조차 하지 못하고 이야기가 끝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게다가  소설 안에서 사건 하나가 터지고 나면 항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리곤 했다. 어떤 인물도 스스로가 바랐던 대로 이루어진 적이 없었다. 읽는 내내 뒤통수가 남아나질 않는다. 무엇 하나 놓칠까 싶어 꼼꼼히 읽어도 마찬가지였다. 꼼꼼히 읽지 않으면 내용의 흐름도 따라갈 수 없었다. 

매우 간결하게 그 장면에 필요한 이야기들만 서술되어 있었다. 문장 하나하나의 숨결을 느끼면서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섬뜩한 기분이 들고 이야기가 끝나 있었다. 인물에게 공감하도록 길게 설명을 늘어놓는 것도 아니었다. 작가는 독자가 인물에게 공감하기를 바라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사실 작품에서 대체적으로 선한 인물은 나오지 않고 어중간하게 속물적이거나 부적응자인 사람들이 나와서 판을 벌였고, 누군가가 죽거나 처절하게 상처받고 나서야 이야기가 끝이 났다. 그리고선 일상적으로 공유되던 의문들과 규칙이 하나씩 깨져갔다.

그러니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와 연관지어 무언가를 찾으며 읽으려 해도 섬뜩함 이외의 것은 공유할 수 없었고, 감정적으로도 단편들을 단숨에 읽는 것은 힘이 부쳤다. 당신이 싫어하더라도 진실을 마주하게 해주마. 라고 작가가 말하는 듯 했다. 부적응자들의 위선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믿었던 것들에 의해 사람들은 조롱당한다. 플래너리 오코너가 형성한 사건은 상징은 명료하게 말하기 애매한 지점에 서 있다. 작가가 서술하는 시점과 공간은 작품 안에서 뚜렷하게 드러났지만 하려는 이 소설들은 그 시대에 국한되지 않고 현대에 와서도 재해석 될만한 여지를 품고 있었다. 왜냐하면 플래너리 오코너가 다룬 것들은 단순히 시대적 상황과 정치적 의견이 아니라, 인간이 품고 있는 모순 그 자체를 심연에서 끌어올려 그대로 보여주려고 했기 때문이다. 



“손님 같은 분들은 호크슨의 교사 봉급에 대한 공약 때문에 호크슨에게 투표하시겠지요? 당연하죠. 돈이란 많을 수록 좋으니까요. “

“돈이라고요!” 레이버가 웃었다. “썩어 빠진 주지사 아래서는 돈을 얼마를 받아도 결국 잃는 돈이 더 많다는 걸 모르시나요?” 그는 자신이 드디어 이발사와 같은 수준에 섰다는 걸 깨달았다. “그 사람은 너무 많은 부류의 사람들을 배척해요. 그 사람은 내 돈을 다먼보다 배는 더 빨아먹을 겁니다.”

“그러면 좀 어떤가요? 저는 좋은 일에는 돈을 아끼지 않습니다. 좋은 일에는 언제든지 돈을 낼 겁니다.” 이발사가 말했다. 

“호크슨이 약속한 임금 인상은 이분 같은 선생님에게는 적용되지 않아.” 방 뒤편에서 누군가 말했다. 그러더니 기업가 같은 태도의 뚱뚱한 남자가 다가왔다. “이분은 대학 선생님이시지?”

“맞아요. 이분은 호크슨이 말하는 임금 인상에 해당이 안 돼요. 하지만 다먼이 돼도 봉급은 안 올라요.” 이발사가 말했다. 

“그래도 무언가 얻겠지. 학교는 모두 다먼을 지지해. 나름대로 얻는 건 있지. 무상 교과서, 새 책상같은 것 말이야. 그게 게임의 규칙이야.”

“학교 환경 개선은 모두에게 이익이 됩니다.” 레이버가 침을 튀기며 말했다.

.

.

.

“선생이 깨닫지 못하는 건 우리가 그걸 싫어한다느 거에요. 선생이 수업하는 교실에 까만 얼굴 두엇이 섞여 있는 것이 좋습니까?”

레이버는 한순간 거기 없는 어떤 것이 자신을 땅에 때려눕히는 느낌을 받았다.

(이발사 29-31p)


‘이발사’라는 단편에서는 레이버가 흑인옹호가라는 별칭을 가진 다먼을 지지한다. 단편에서 확인하면, 다먼을 지지하는 이유는 호크슨을 지지하는 다른 사람들의 이유(돈)와 비슷한데도 흑인 옹호가라는 별칭을 한껏 활용하여 흑인 이발사 고용인인 조지의 지지를 얻어내려고 연설을 한다. 하지만 여기서 모순이 발생하는데, 레이버 스스로는 백인과 흑인에게 같은 대우를 하려 하면 싫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다. 게다가 이발사는 아마도 이익 때문에 호크슨을 지지하지만 그 이유는 추상적이고 당위적이며, 지지하기 위해 끌어들인 이론들이 서로 모순되더라도 인지하지 못할 정도이다. 단지 호크슨을 신뢰하고 주장을 굽히지 않을 뿐이다. 

한편 레이버가 작성한 연설문 역시 당위적인 내용일 뿐이다. 조지는 연설을 듣고 난 이후에도 여전히 호크슨을 지지한다는 말을 한다. 

이 단편만 봐도 단순히 흑인이냐 아니냐 사이에서의 편견은 시대적 배경으로서 인물의 사고방식을 보여주는 장치로 활용될 뿐이다. 인물의 내면에서 벌어진 모순이 가져온 미묘한 균열을 겉으로 드러내서 위선을 폭로하는 과정일 뿐이다.  


‘오르는 것은 한데 모인다’라는 작품에서는 아들이 어머니의 편견(흑인은 백인과 근본적으로 급이 다르다)과 맞서싸우려 하지만 실재로는 자신도 편견에서 벗어났다기보다는 어머니를 괴롭히는 수준에서 그치는데, 그 괴롭힘이 극에 달해 어머니가 쓰러지자 그 때문에 아들 역시 죄책감에 휩싸이며 괴로워진다. 이런 모습들을 볼 때 작가가 시대적 배경을 잘 활용하여 자신을 지나치게 신뢰하는 인간들의 자기모순을 바깥으로 끄집어내지만 그 자기모순이 현대에도 마찬가지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한 눈에 들어오는 것은 단순하게 해석이 가능하지만, 플래너리 오코너가 쓴 소설중에는 한 번에 파악되지 않는 모순들도 많이 있다. 이런 것들을 어떤 시각에서 파악할 것인지가 각자 작품을 해석하는 다른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플래너리 오코너가 마치 방관자처럼 존재하는 것을 소설화할 수 있었던 능력이 한 껏 발휘된 까닭일까? 내게는 아직 그녀의 소설은 수수께끼이다. 파악되지 않은 미지의 것을 포함하고 있는, 어떻게 바라봐도 다양하게 해석이 되는 소설이다. 하지만 그녀의 방식이 소설가에게는 새로운 영감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르는 것이 모두 한 데 모인다’면, 그녀의 소설 역시 ‘오르는 것’에 속하기 때문일까. 그녀가 가리키고 있는 첨예한 지점에 다가서고 싶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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