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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끝 여자친구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9월
평점 :
사실 이 책을 구입하게 된 건, 핑크빛 책표지와 사막 어딘가를 바라보는 여인에 호기심이 발동해서 단순히 읽어보고 싶다라는 느낌으로 덥썩 집어들게 되었던 아주 가벼운 동기로 시작된다. 한자락 연애이야기나 사랑을 담은 그런 가벼운 소설쯤으로 생각해서였던 것 같다. 그런데 읽다보니 내용이 심오해서 첫 이야기는 한번이 아니라 두어번 더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고보니 김연수작가님의 책은 처음 집어드는데, 어딘가 낯익은 느낌도 나서 생각해보니, 아이아빠가 매년 생일때마다 한권씩 사준 이상문학상 수상작 작품집 2009년에 있던 바로 그분이었던 것이다. 어쩌면 이 책도 그런 우연이 아닌 필연같은 만남으로 내 손에 들어왔던 것일까.
이 책에는 모두 9편의 단편들로 구성이 되어 있다. 첫번째 작품 [케이케이의 이름을 불러봤어]를 시작으로 책의 제목이 된 [세계의 끝 여자친구], 그리고 마지막은 이 책 속에서 가장 긴 분량을 차지하는 [달로 간 코미디언]이라는 작품이다.
17살의 케이케이와의 추억을 더듬어가는 첫번째 이야기 속에서는, 일곱살때의 케이케이가 시체수영을 즐겼다던 '밤메'라는 지명을 찾아온 이국의 여인과 그녀를 돕게되는 혜미와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이국의 여인이 케이케이를 잃고 그리움으로 찾아온 그곳, 그리고 이국의 여인을 돕던 혜미에게도 3살된 아이를 잃은 슬픔이 교차되며 서로가 갖는 그리움 같은 것이 함께 바라보는 불꽃 속에서 동질감으로 표출되는 이야기랄까.
두번째 이야기 [기억할만한 지나침]에서는 여름휴가차 바다로 여행을 온 여고생의 이야기다. 뜨거운 혈기를 지닌 고교생 현과 그곳에서 만난 차분하고 따뜻한 벨보이, 그리고 바에서 만난 데킬라와 또다른 남자와의 아찔한 관계, 그리고 힘든 현실을 참다 바다로 향해가는 그녀의 이야기가 아픈 그런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이 책의 제목이 된 세번째 이야기는, 도서관의 게시판에 걸리게 된 한편의 시 '메타세콰이아, 살아있는 화석'을 통해서 시의 모임에 참석하게 된 청년이 만난 할머니 희선씨. 그리고 그곳에서 알게 된 한 시인의 메모와 함께 그곳을 찾아가는데......
읽는내내 가슴이 아려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사랑과 헤어짐, 그리움, 집착......가슴아픈 사랑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그 마음을 잘 헤아릴 수 없을 것 같기도 하다. 읽다보면 마치 내가 경험하지 않은 일인데도 나의 경험처럼 짙게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아니 그 느낌을 잘 표현하지 못할 것 같다. 사실 이 책은 하나의 이야기가 아니라 단편으로 무려 9편이나 구성이 되어 있기에, 어느 것 하나 버릴것 없고 어느것하나 기억에 남지 않는 작품이 없었던 것 같다. 오히려 모든 작품이 뇌리에 남아 서로 강하게 주장을 하여 책을 덮은 후 한동안 혼미할 정도였다고나 할까. 다시한번 곱씹어서 읽어보면 분명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것 같은 작품들이다.
사실 처음에는 생소했고 낯설었다.
하나하나 돌아보면 참으로 특별한 만남과 이별, 그리고 그리움과 아픔을 담은 듯한 이야기가 있었다.
특이할만한 것은 몇몇 작품은 배경이나 등장인물이 갖는 특징이 외국인이거나 혹은 외국에서 자랐거나 교포거나 하는 재미있는 구성이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을 그렇게 지었나보다 궁금했는데, 책 속 대표작품의 제목에 관한 이야기는 책 뒷편의 <작가의 말>속에 소개가 되어 있어서 흥미로웠다. 뒷면에는 문학평론가 신형철님의 해설도 부록으로 들어 있고 김연수 작가님의 <작가의 말>을 통해서 작가님의 작품에 대해 조금이나마 한발 더 다가갈 수 있는 시간도 되었다. 가벼운 소설만 읽다가 오랜만에 깊이있는 소설을 만난 느낌이다. 처음엔 충격이었지만 차츰 그 매력속으로 풍덩 빠져드는 느낌으로 다가오는 <세계의 끝 여자친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