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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살았던 날들 - 죽음 뒤에도 반드시 살아남는 것들에 관하여
델핀 오르빌뢰르 지음, 김두리 옮김 / 북하우스 / 2022년 1월
평점 :
여성 랍비의 죽음에 대한 사유는 특별했다. 삷과 죽음은 종이의 양면 같아서 어느날 불현듯 뒤집어질 수 있다. 누구라도 자신이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듯이 삶의 어느 한순간이 유한성으로 치닿게 되면 죽음이 다가오는 것이다.
여기 이 책 [당신이 살았던 날들]은 프랑스인 랍비가 마주한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살아남은 사람들을 구별되는 시간 속으로 몰아넣는다'의 문장처럼 죽음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금 우리로부터 분리시킨다. 그 분리가 주는 비극은 인간이 견디지 못할 정도의 충격과 쇼크이기도 하다. 그나 그녀의 '장례식에 가보면 인생을 어떻게 살았는지 알 수 있다'는 말처럼 우리가 죽은 후 행해지는 의식으로도 인간은 평가되어진다.
'우리의 장례식에서 우리가 우리의 죽음으로 요약되지 않고, 그래서 우리가 살아생전에 얼마나 살아 있었는지를 느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란 글을 읽으며 깊은 공감의 끄덕임이 나온다. 죽음으로 요약되기보다는 살아생전의 삶으로 정리가 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다.
'나는 항상 애도자들에게 당부한다. 그들이 떠나보낸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건 간에 그로 인한 고통 외에도 생경한 현상을 경험할 각오룰 해야 한다고. 그 현상이란 말의 공허함과 말하는 사람들의 서투름이다'
장례식장을 가게 되면 늘 고민되는 것이 무어라 위로의 말을 전해야 하는 가다.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이 어려움은 죽음이라는 공포를 우리 모두가 거부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문제라고 할 수 있겠다.
'프랑스어에는 대부분의 언어처럼, 자식을 잃은 어머니나 아버지를 지칭하는 단어가 없다. 우리는 부모를 여의면 고아가 되고, 배우자를 잃으면 과부나 홀아비가 된다. 그렇다면 자식을 잃었을 때 우리는 뭐가 될까? 마치 명명하지 않으면 그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고 믿는 것 같고 그 미신을 따라 그런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단단히 입단속을 하는 것만 같다'
위 문장으로 나는 이 책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했었다. 생각치 못한 영역을 건드려 주면서 죽음을 다시 마주보며 자식을 잃는 일은 단어로조차 명명할 수 없는 것임을 알게 된다.
모세가 죽은 나이인 120세가 유대인들에게 절대적 지평이 되었고 간절히 이르기를 바라는 나이가 되어, 유대인들은 생일 때마다 모세를 따라서 백이십 세까지 살 수 있길 바란다는 이야기는 꽤 흥미로웠다. 120이란 숫자가 그런 의미를 담고 있다니..유대인들은 묘지에서 죽은 자를 계승하기 위해 영원토록 기억하기 위해 무덤에 조약돌을 놓는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유럽여행에서 묘지마다 예쁜 조약돌이 장식되어 있는 걸 본 기억이 나기도 한다. '무덤에 남은 이 계승자들의 흔적은 죽은 자에게 확실한 연대를 약속하는 보증처럼 보였다' 조약돌은 죽은 자와 남은 자를 이어주는 존재였다.
랍비 오르빌뢰르가 들려주었던 친구의 죽음과 헝을 잃은 꼬마의 이야기, 자신의 장례식을 미리 체험한 여인의 경험은 죽음에 대한 자세와 인식에 대해 좀 더 밀도있는 사유를 허락해 주었다.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2/0310/pimg_7599381053337630.jpg)
<츨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