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 게바라 평전 역사 인물 찾기 10
장 코르미에 지음, 김미선 옮김 / 실천문학사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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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전국민을 분노하게 했던 박근혜 퇴진 집회 때였다. 박근혜 정권에 분노했던 나는 광화문 거리로 나갔고 거기모인 수많은 민중들과 함께 '박근혜 퇴진'을외쳤었다. 촛불집회에는 수많은 깃발들이 나부꼈지만 내눈에 정말 선명하게 보이는 한 인물이 그려진 깃발이 있었다.(그 깃발은 동국대학교에 속해있는 동아리나 단체였던 것 같다.) 그 깃발에 그려진 주인공은 1967년 볼리비아에서 혁명투쟁을 하다 토벌대에 체포되어 39살의 나이에 사망한 혁명가 체게바라였다.

볼리비아 토벌대는 체게바라가 혁명의 우상이 되는 것을 우려하여 시신을 묘비도 세우지 않은 채 묻어버렸다. 1968년 5월 혁명시기 프랑스 파리의 젊은이들은 3명의 혁명가 사진을 들고 거리로 나와 구체제에 맞섰다. 하나는 1949년 장제스 국민당을 축출하고 중화인민공화국을 건국한 마오쩌둥이었고, 다른 하나는 당시 미국의 침략과 남베트남 괴뢰정권에 맞서 투쟁하고 있던 베트남의 국부 호치민이었고, 또다른 하나가 바로 1958년 피델 카스트로와 함께 바티스타 괴뢰 정권을 전복시킨뒤 높은 지휘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 혁명을위해 볼리비아에서 투쟁하다 전사한 위대한 혁명가 체게바라였다.

68혁명을 시작으로 체게바라의 사진과 초상화는 점차 '저항의 상징, 젊음의 상징, 투쟁의 상징'으로 이미지화되었다. 전세계의 파업현장, 시위현장 심지어 체게바라가 죽기를 원했던 미국에서도 투쟁하는 민중들은 체게바라의 사진을 들었다. 제작년 대한민국에서 시작되었던 박근혜 퇴진 촛불집회도 마찬가지였다.

도데체 체게바라는 어떠한 삶을 살았기에 왜 수많은 사람들이 저항의 상징으로 인식하는 것일까?

1.체게바라 일대기

체게바라는 1928년 아르헨티나의 한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몸이 안좋아 2살때부터 천식을 앓았다. 그의 부모님은 공기 좋은 곳으로 여러번 이사했을 정도로 어린 체게바라와 그의 건강을 잘 보살폈다. 대학생이된 체게바라는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학교에서 의학을 배웠다. 재학 중이던 1951년에 나이 많은 친구, 알베르토 그라나도와 함께 오토바이로 남미 전역을 여행했고 <모터싸이클 다이어리>라는 여행기를 남겼다. 남미여행을 한 체게바라는 여행도중 자본주의 체제아래 고통받는 남미민중의 현실을 깨닫고 1953년 의대를 졸업한 뒤 과테말라 혁명에 참가했다. 과테말라 혁명이 실패로 끝나자 죽을 위험에 처한 체게바라는 1955년 멕시코로 망명했다. 거기서 평생 동지가 될 피델 카스트로를 만났고 피델 카스트로에게 감명받아 "풀헨시오 바티스타 정권 전복을 위한 혁명"에 동참하게 되었다.

1956년 피델 카스트로를 중심으로 82명이 8인승 레저 보트 그란마호에 탑승하여 쿠바혁명을 위한 여정에 나섰다. 초반에 상륙했을 당시 바티스타 정규군의 습격을 받아 82명 중 20명만이 살아남았다. 체게바라와 피델 카스트로의 일행은 정규군을 피해 밀림으로 숨었고 게릴라 전으로 정규군에 맞섰다. 미국의 앞잡이 바티스타 정권은 그들을 토벌하기 위해 폭격기도 동원했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지만 체게바라와 피델 카스트로가 이끄는 혁명군은 쿠바내에서 세력을 넓혀나갔다. 혁명군 안에서 체게바라는 지휘관이자 의사역할도 했고 마을 주민들을 무료로 치료해주는등 민심을 잘 사로잡아나갔고 그들이 이끄는 혁명군은 나중에 가선 바티스타의 정규군 보다 세력이 강해졌다. 그러나 혁명을 이끌던 체게바라는 배신자와 적군을 처단하는데 있어서 무자비하다 싶을정도로 살인을 하는데 망설임이 없었다. 쿠바땅에 상륙한지 2년만인 1958년 12월 체게바라와 피델 카스트로는 제 2군을 이끌고 쿠바 제 2의 도시 산타클라라에 돌입하여 수도 아바나를 해방시켰고 1959년 최종적으로 쿠바혁명을 성공시켰다.

쿠바 혁명 이후 체게바라는 쿠바내에서 산업부 장관을 비롯한 온갖 고위직을 거쳤다. 1961년 체게바라와 카스트로는 미국이 주도한 피그스만 침공을 잘 막아냈다.1960년대 쿠바 외교부 장관을 지낸 체게바라는 1965년 모든 권력을 내려놓고 다시 혁명의 길을 찾아 떠났다. 이후 그는 아프리카 콩고에서도 투쟁했고 마지막에는 볼리비아에서 투쟁했다. 볼리비아에서 투쟁하던 중 체포된 체게바라는 결국 토벌대의 어느 한 병사의 총에 맞고 처형됐다. 그의 나이 39이었다.

2.자본주의의 상품화와 우상화

체게바라는 죽고 난 뒤(위에서 언급했듯이) 68혁명 신좌파들의 우상이 되었다. 그는 죽은 뒤 저항의 상징이
됐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품화되기도 했다. 수많은 티셔츠와 물품에 그의 얼굴이 그려졌다. 그의 얼굴은 지금도 혁명의 상징 저항의 상징으로 간주되면서 동시에 전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화폐를 통해서 소비할 수 있는 소비의 대상 혹은 상품이기도 하다.

드라마틱한 그의 혁명투쟁과 죽음은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감동을 주고 불의에 저항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난 체게바라가 자신의 자본주의의 상품화가 되기 위해 투쟁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체게바라 그는 자본주의의 체제아래 고통받고 독재정권 하에 억압받고 있는 만국의 프롤레타리아들을 위해 그리고 민중의 해방을 위해 혁명투쟁에 나선 것이고 그 과정에서 아주 드라마틱하고 영웅적인 죽음을 맞은 것이라 본다.

물론 난 투쟁에 나서는 이들이 상품화된 체게바라를 소비하는 것에 대해 나쁘게 보진 않는다. 상품화된 체게바라 또한 억압받는 민중의 자신의 권리와 민중의 해방을 추구하고 사회를 변혁하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2011년 아랍의 봄때도 그랬고 2016,17년 박근혜 퇴진 집회때도 그러하지 않았던가?

3.글을 마치며

내가 이 책을 폈을 당시 박근혜 퇴진 집회가 시작되었을 시점이었다. 2년전(박근혜 퇴진 집회 이전이다.) 나는 혁명가 체게바라의 매력에 빠져 그에 대한 책을 여러권 읽었었고 그 중엔 장 코르미에가 쓴 체게바라 평전도 있었다. 그리고 난 그 책을 읽으며 체게바라의 매력에 푹 빠졌었다. 특히 박근혜 퇴진 집회 시기 장 코르미에의 체게바라 평전은 나로하여금 박근혜 퇴진 집회에 나가도록 만든 책이었고 체게바라의 삶은 나에게 크나큰 감동을 줬다. 체게바라의 삶이 나에게 감동을 줬듯이 앞으로도 정의를 꿈꾸고 불의에 맞서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거라 본다.

Viva La Cuba!! Viva La Che Guev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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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론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이형석 옮김 / 신라출판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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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사상가이자 철학자인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읽었다. 책 자체는 요약본이지만 군주론의 핵심적인내용을 알기에는 충분했던것 같다.

내가 군주론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외할아버지께서 군주론을 읽어보라고 얘기해주면서 부터였다. 군주론도 철학 책인지라 매우 어려운 책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읽어보니 그리 어려운 책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내가 이해한 군주론의 핵심을 얘기하자면 군주 자체가 아주 강력한 힘과 능력 그리고 자질이 있어야 하고 국가내의 민심을 잘 사로잡아야 하며 그래야 국가가 유지되고 타국을 정복하고 강한 국가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주의해야할 점이 있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성악설을 기반으로 서술되었다는 점과 마키아 벨리의 군주론이 결국 나폴레옹과 히틀러와 같은 사람들에 의해 악용이 되었다는 점이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마키아벨리가 무슨 이유에서 군주론을 썻는지 그 시대상을 고려해볼 필요도 있는 것 같다.

책을 읽는 것은 좋으나 좀 주의해서 읽고 너무 교조적으로 그 사상을 받아들이진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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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 핵소 고지
멜 깁슨 감독, 샘 워싱턴 외 출연 / 기타 제작사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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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전 영화보고 남긴 영화평이다.)

집에서 영화 핵소고지를 봤다. 2차대전에 참전했던 연합국 국민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전쟁 영웅은 전투에서 총을 들고 적진을 돌파하여 전략적으로 적들에게 큰 타격을 주거나 국가를 위해 적을 많이 사살한 공로로 훈장을 받은 군인들일 것이다.

그러나 영화 핵소고지는 전장에서 총들고 적들을 제압한 군인들 뿐만 아니라 주인공 도스처럼 적진 한 가운데서 자신의 목숨을 걸고 부상당한 동료 병사들을 치료하고 병원으로 이송시켰던 의무병들도 진정한 영웅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영화 핵소고지를 보며 다음과 같은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주인공 도스와 같은 상황에 놓여있었다면 난 과연 어떤 길을 선택했을까? 또는 총을 들지 않고 오직 아군동료들과 부상당한 이들을 위해 내 목숨 걸고 그들을 끝까지 살려보내고자 노력 할 수 있었을까?'와 같은 질문들이 내 머리속에서 끊이질 않았으나 아마 자신이 살기 위해 총을 들고 전장속에서 부상당한 이들을 외면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들었던 것 같다.
주인공 도스처럼 자신의 목숨보다 남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적진 한가운데로 돌진하여 수많은 이의 목숨을 구해내기란 절대로 쉽지 않은 일이다.

주인공 도스는 수많은 아군동료와 심지어 적인 일본군 부상병들까지 살려보냈고 적들에게 포위당한 그 상황에서도 살인을 하지 않았다.
주인공 도스의 이와 같은 희생정신을 보여준 영화 핵소고지를 보기를 잘한것 같다.
오랜만에 전쟁영화 중에서 정말 감동적이고 괜찮은 영화를 본 것 같다.

전쟁영화고 배경이 태평양 전쟁 당시 미군과 일본군의 사실상 마지막 결전인 오키나와 전투가 배경이어서[1] 그런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좀 낫선 주제 일 수는 있으나 안본사람은 꼭 한번 보기를 바란다.

나한테 있어서 이 영화는 평생 잊혀지지 않을 명작중에 하나인것 같다.

[1] 추가적으로 좀 더 얘기하자면 사실 오키나와 전투는 한국 현대사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사건중에 하나다. 전황적으론 1945년 5월 나치독일이 항복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여전히 추축국으로서 연합국에 맞서 끝까지 저항하고 있었고 오키나와 전투에서 끈질기게 싸운 일본군의 저항에 지친 미군은 오키나와를 수많은 희생 끝에 점령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원자폭탄을 쓰게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는 우리 광복군이 대일전에 참가하지 못하게 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민족사적으론 오키나와에도 일본군이 만든 위안부 위안소가 있었고 수많은 조선인 노무자들이 일본의 군사기지 건설에 동원되었으며 조선에서 학도병으로 끌려온 많은 징용병들이 오키나와 전투에서 제국주의자들에 의해 희생당했던 역사가 있다.

따라서 오키나와는 우리 역사에서 잊어선 안될 역사이기도 하다.

영화 점수는 10점 만점에 1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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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The Post (더 포스트) (2017) (한글무자막)(4K Ultra HD + Blu-ray + Digital)
20th Century Fox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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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달전 남겼던 영화 평입니다.)


영화 더 포스트를 봤다. 영화 더 포스트는 미국내에서 베트남 전쟁의 진실을 폭로하려는 양심적인 언론인들과 진실을 덮으려 하는 미국정부의 스토리를 아주 잘 다룬 영화다. 사실 이 영화 예고편을 봤을 때부터 베트남 전쟁을 주제로 한 영화라 하기에 매우 보고 싶었었다.



베트남 전쟁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참전한 전쟁 중에 가장 많은 인명손실을 초래한 전쟁이자 미국인들의 양심에 칼을 그은 전쟁이기도 하다. 1945년 일제 패망 이후 프랑스가 재침한 시점부터 1973년 미군이 베트남에서 철수 할 때까지 그 기간 동안 미국은 투르먼, 아이젠하워, 케네디, 린든 존슨 그리고 리처드 닉슨대통령을 거쳤다. 1964년 통킹만 사건 이후 참전한 미국은 베트남에서 전선의 무의미한 전쟁을 치렀고 계급적인 불평등까지 초래했다. 돈이 많은 부유한 집안의 자식들은 언제든지 징병을 기피 할 수 있었지만 가난한 계급의 자식들은 징집되어 지옥의 베트남으로 끌려갔다. 거기다 미군은 수색과 섬멸 작전을 펼치면서 미라이 학살을 비롯한 양민 학살 문제까지 일으켰다. 그리고 미국이 상대했던 북베트남군과 베트콩은 호치민과 항불독립운동가들의 지도아래 자유와 독립이라는 명분아래 용감하게 싸웠을 뿐만 아니라 사기 면에서도 미군과 연합군보다 훨씬 앞서있었다. 자유와 독립이라는 명분아래 조국의 독립과 민족해방을 위해 싸웠던 베트콩들과는 달리 명분도 없이 베트남에 끌려와 전투를 치렀던 미군들은 시작부터 절망의 늪으로 빠졌고 이는 결국 군인들까지 반전운동에 나서는 계기가 되었다. 도미노 이론이라는 허황된 이론을 믿던 미국은 베트남에서의 상황이 쉽게 진전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사실을 가려가며 “미국이 이기고 있다.”는 선전을 지속적으로 해댔다. 1968년 베트콩과 북베트남군이 가한 구정공세로 이는 거짓이라는 사실이 밝혀졌고 반전운동으로 이어졌다. 베트남 전쟁 문제는 결국 닉슨대통령으로까지 이어졌고 펜타곤 페이퍼가 공개됨으로써 베트남 전쟁을 이끌어가기 위해 미국이 벌인 온갖 추잡한 짓이 들어났고 결국 미국을 베트남에서 물러나게 만들었다.



영화는 1966년 대니엘 엘즈버그의 참전부터 시작한다. 전투에 참가했던 엘즈버그는 미국정부가 사실을 왜곡하며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보내는 것에 대해 환멸을 느꼈고 이는 결국 펜타곤 페이퍼를 몰래 수집하여 언론에 공개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베트남 전쟁 기간 동안 미국 민중은 베트남 전에 반대했다. 자신들의 자식이나 이웃의 소중한 자식들이 베트남으로 끌려가 명분 없는 전쟁을 치르다 죽는 모습을 보며 미국의 일반인들도 아마 미국정부의 잘못된 정책에 반감을 가졌던 게 아닐까?



베트남 전쟁을 주제로 만든 미국영화 중에 반전영화들이 매우 많다. 지옥이 묵시록, 플래툰, 디어헌터, 풀 메탈 자켓등 반전과 평화를 호소하는 명작 영화들이 많지만 대부분 7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사이에 제작된 영화다. 따라서 제작된 지 시간이 많이 흐른 영화들이다. 그래서 그런지 올해 개봉한 영화 더 포스트가 끌렸던 점이 있는 것 같다. 영화 더 포스트는 미국의 기밀문서 펜타곤 페이퍼에 담겨진 진실을 폭로하려는 미국의 양심적인 언론인들이 진실을 은폐하려는 미국 정부에 대항해 진실을 밝히는 과정을 다룬 영화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펜타곤 페이퍼의 핵심인 통킹만 사건에 대해 일언반구조차 없었던 것과 베트남 전쟁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미국의 반전운동의 비중을 심도있게 다루지 못했던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래도 베트남 전의 진실을 알리고 언론의 자유의 중요성을 알리는 매우 훌륭한 영화라 본다. 진실을 밝히려는 자와 가리려는 자의 전개에서 지난번에 봤던 영화 1987의 느낌도 있었다. 이 영화가 전해주고자 하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진실을 가리려는 자는 진실을 밝히려는 자들을 이길수 없다는 사실이다. 비록 상영하는 상영관은 많지 않았지만 국내에세 개봉하여 영화관에서 관람 할 수 있었기에 기뻤다.



영화 점수는 10점 만점에 9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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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층 서기실의 암호 - 태영호 증언
태영호 지음 / 기파랑(기파랑에크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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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영호는 관심종자다. 현재 남북관계를 악화시켜 제놈 지갑이나 챙기려는 꼼수다. 그러니 이승만 찬양해대는 답없는 출판사 기파랑이라는 곳에서 책을 출판한 것이고 아직도 90년대 고난의 행군때나 얘기하며 일반국민들에게 왜곡된 정보를 던져주고 있다. 따라서 읽을 가치도 없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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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胤 郞 2018-11-25 02: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검색해보면 알겠지만 보는 방향은 되려 비슷할겁니다.
그렇다해도 읽고 깝시다. 그리고 기파랑책 내 인생에 다시 읽을
일 없겠지만 그걸 빼도 이 책은 읽어보는게 맞다고 생각됨

NamGiKim 2018-11-25 03:13   좋아요 0 | URL
네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