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가 대체 뭔가요? - 세상에서 가장 정확하고 간결한 자본주의 설명서
조너선 포티스 지음, 최이현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19년 7월
평점 :
절판


​<<세상에서 가장 정확하고 간결한 자본주의 설명서

자본주의를 이해하는 것은 세계 경제를 이해하는 것과 같다.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정확하게 말하지 못하는, 자본주의를 명쾌하게 설명하다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

 

표지의 수식문구들이 화려하다. 하지만 읽고 나면 저 문장들 하나하나가 이 책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50 CAPITALISM IDEAS YOU REALLY NEED TO KNOW  라는 원제는

'당신이 꼭 알아야 할 50가지 자본주의 아이디어들'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다.

이 50가지의 키워드들로 작가는 자본주의가 대체 뭔지 하나하나 설명해 나가고 있다.


저자는 경제학자이다. 경제학자이면서 다수의 매체에 글을 기고하고 경제 논평도 진행해온 경험이 있어서인지 글은 매끄러우면서도 날카롭게 진행된다. 가끔 나오는 촌철살인의 문장들은 이래도 되나? 싶지만 그래서인지 나름 통쾌한 맛도 있다.

<<자본주의의 작동 방식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기본 원리를 설명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또한 자본주의가 사회주의나 제국주의 같은 역사와 정치의 핵심 개념들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설명하고, 애덤 스미스와 존 메이너드 케인스, 그리고 누구보다 역설적인 인물인 카를 마르크스 등 위대한 현대 사상가들이 자본주의를 이해하는 데 어떤 도움을 주었는지도 간단히 소개할 것이다.

이 책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내용도 많으며, 이견이나 논쟁의 여지가 있는 내용도 많다. 하지만 부디 이 책이 자본주의라는 주제의 외연과 중요성을 충분히 전달해서, 사회가 돌아가는 방식을 이해하려면 자본주의의 작동 원리를 잘 알아야 한다는 사실을 독자들이 납득할 수 있으면 좋겠다. (p. 7)>>

 

현재 세계 대부분의 국가들은 자본주의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알아야 한다며 한때 마르크스 의 자본론이 필독서처럼 여겨졌을 때 잘 이해도 안가면서 읽으려고 시도했다가 그 빨갛고 두꺼운 6권의 책을 표지만 한참을 노려보다 1권上 에서 결국 멈추었던 기억이 난다. 경제학자도 아닌데 그 자본론을 굳이 읽어야 할 필요는 없겠지만, 자본주의 는 알아야 한다. 이 책은 자본론의 현대적용판 단어집처럼 개념하나하나를 쉽게 설명해준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사회가 어떻게 굴러가는건지 알게 하려는 납득하게 하려는 저자의 성의가 반갑다.

 

책은 매 챕터마다 이렇게 주제의 간단한 개요와 타임라인이 있다.

주제마다 분량이 서너장 정도라서 쉬어가며 읽기에도 좋고 내용전환도 빠르고 주제에 대한 굵직한 타임라인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이것이 바로 마르크스가 잘못 생각한 지점이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 여러 역할 중 하나만 부여했지만, 사실 우리는 다양한 방식으로 자본주의와 상호작용하며, 그 방식이 전부 경제적인 것은 아니다. 이것은 우리 대부분이 자본주의와 맺고 있는 모순된 관계를 설명해준다. 대체로 우리는 자본주의를 사랑하지도 증오하지도 않지만,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은 분며한 사실이다. (p. 10)>>

 

저자는 1장부터 매우 직설적이다. 시작부터 마르크그가 잘못 생각한 지점을 들춰낸다. 읽고 보니 정말 그랬다. 마르크스는 노동자는 노동자 자본가는 자본가 로 역할 을 지정해 두고 논리를 전개해 나간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에선 노동자로 일하면서도 자본을 소유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회사에서 일하는 노동자이면서 회사의 주식을 소유한 자본가 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노동자와 자본가는 소비에서 무척 섬세하게 얽혀있는 관계다. 어느 하나의 입장으로 정리할 수 없는 것이다.

저자는 각 장의 마지막에 항상 핵심문장을 적어두었다. 본 내용에서 약간 이해가 안가거나 미심쩍은 부분이 있더라도 이 마지막 문장에서 만큼은 매번 이마를 탁 치게 된다.


<<정부의 개입은 전반적인 법적 틀을 마련할 때 또는 특정 사회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생산과 소비의 종류를 언급할 때 필요한 개입과 규제의 종류에 따라 정의되어야 한다. 자유가 곧 무정부 상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p. 26)

미래의 성장 수익은 자본에게 더 많이, 노동자에게는 더 적게 돌아갈 것이다. 그러므로 최후 승자는 마르크스 이다. (p. 39)>>

 

저자는 정부의 적절한 개입의 필요성과 마르크스 의 이론이 여전함을 곳곳에서 드러낸다. 자본주의 와 민주주의 혹은 자본주의 와 자유주의 는 등가 관계는 아닌 것 같다.


<<결정적으로 각 나라들은 '특정 상품'에서 비교우위를 가지며, 그로 인해 모든 나라가 자유무역을 통해 이익을 얻는다. (p. 56)

미국의 경제사에서 우리가 얻은 교훈... 그렇다. 미국에는 보이지 않는 손과 수많은 경영 혁신 그리고 에너지가 있었다. 하지만 그 보이지 않는 손을 반복해서 들어올린 것은 새로운 경제활동 영역을 개척해 손이 새로운 자리에서 계속 마법을 부리도록 한 정부이다. (p. 65)

보이지 않는 손은 경제적 효율성이 달성되는 특수한 방식일 뿐, 도덕성이나 공정성과는 무관하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면 자원이 공정하게 분배된다는 말은 스미스의 이론이나 현대 경제학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다. (p. 66)>>

 

세계의 모든 나라들은 자유무억을 통해 이익을 얻을 수 있지만, 세계는 진정한 자유무역을 해온 적이 없다. 미국은 그들의 역사에서 도덕성과 공정성과는 관계없는 효율성만을 계산해서 성장해 왔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인지 현대 경제학에서 공정한 배분은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노조가 쇠퇴하게 된 것은 정부와의 충돌 외에 광범위한 경제 변화 때문이기도 했다. 경제가 산업 및 제조업 중심에서 소규모 작업장, 여성 노동자 수의 증대, 다양한 특징을 가진 일자리 등 서비스 중심으로 변화하자, 생산 설비에서 일하는 숙력된 남성 노동자라는 노조원의 낡은 이미지에 부합하는 노동자의 수가 점점 줄어들었다. 그리하여 노조는 주로 사양 산업이나 공공 부문에 종사하는, 수가 점점 줄어드는 노동자의 이익을 옹호하는 단체로 여겨지고 경제 발전의 장애물로 묘사되었다. 이후 대부분의 나라에서 노조 가입률이 대폭 감소했다. 그에 따라 노조의 정치적 경제적 영향력도 줄어들고 있다. (p. 116)>>

 

그러고보니 내게도 노동조합 이라는 단어는 작업복을 입고 공장에서 일하는 남성노동자의 이미지와 무척 많이 연결되어 있었음을 새삼 깨달았다. 70년대 우리나라에 노동운동이 생겨나기 시작했을때 여공들의 파업은 그리 큰 힘을 얻지 못했다. 전태일 열사의 분신만 기억할 뿐이다. 하지만 그런 현장노동직은 점점 줄어들고 있고, 매년 노동절의 집회규모는 작아지고 있으며 그들에게 호응하는 사람들도 적어지고 있다. 구로공단이 구로디지털단지가 되고 가리봉동이 가산디지털단지가 되었는데 여전히 공장노동자들의 노동조합만으로 노조의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사실 문제가 있다. 일자리는 다변화 되고 세분화 되었다. 비정규직과 알바 그리고 서비스직과 프로랜서직이 늘어나고 있는 이때 예전의 노동조합형태로는 무리가 있다. 노동자들은 새로운 형태의 연대방법을 찾아야 한다.


<<21세기 초인 지금, 모든 자본주의 국가가 민주화된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는 상대적으로 덜 발달했지만 민주화된 곳도 많다. 그렇긴 하지만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상관관계는 비교적 긴밀하다. 정책적으로 자본주의에 적대적인 몇 안되는 나라들은 민주주의에도 적극적으로 반대한다. 그리고 민주주의를 채택하지 않은 나라들은 부의 대부분이 천연자원에서 직,간접적으로 나온다. 결국 이제는 강력하고 경제적으로 독립한 세력으로서 재산권을 보호해달라고 요구하는 부루주아 계급도, 정치권력과 경제적 안정을 추구하는 산업노동자 계급도 존재하지 않는다. (p. 165)>>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동일개념이 아닌데, 사회주의 공산주의 와 섞여서 마치 자본주의는 민주주의와 동일한 것처럼 여겨져온 것 같다. 경제와 정치는 밀접하지만 반드시 한가지 형태를 띠지는 않는다. 세계는 지금 정확히 자본주의라고도 민주주의라고도 볼 수 없는 몹시 혼합되고 혼란스러운 체제들이 뒤섞여 있다.


<<미국 보수주의자들은 조세와 규제 정책을 통해 '경제적 자유'를 제한하는 것에는 극렬히 반대하면서도, 낙태와 결혼, 이민과 같은 개인적 자유를 제한하는 정책은 지지한다. 영국과 유럽국가들에서는 내부 갈등이 종종 유럽연합에 반대하는 형태로 표출된다. 유럽연합은 소위 과도한 규제와 간섭을 없애는 것은 물론이고, 자유로운 교류와 이동을 허용하려고 노력한다. (p. 171)>>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정치,경제적으로 미국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어서 많은 것들이 모방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한국과 굉장히 다르다. 미국은 로비가 인정되고 기업인이 정치인인 경우가 많으며  신대륙으로서 구지배층과의 갈등이 없었던 곳이다. 또한 종교적 통일이 강한 곳이다. (미국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성서에 손을 언고 선서를 한다) 미국보수주의자들과 같은 목소리를 내는 한국정치인들을 볼때 많이 답답하곤 하다. 역사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역사가 없는 나라의 지금을 따라하기보다 우리의 역사를 바탕으로 한 미래인식을 가졌으면 좋겠다.


<<산업화 이전에 승전국은 패전국에서 쉽게 물질자산과 천연자원을 약탈하고, 심지어 그 나라 사람들을 노예로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자본주의 체제에서 한 국가의 부는 생산력에 좌우되므로 몰수하기가 쉽지 않다. 오늘날 복잡한 생산기술로 부를 창출하려면 노동력과 전문성이 필요하므로, 결국 협력할 수단을 마련해야 한다. 이제는 정복할 목적으로 일으키는 전쟁은 유익하지 않다. 더구나 20세기 들어 세계화가 급격히 진행되어 산업국가들 사이에 경제적 의존도가 높아졌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면 관련된 모든 국가들이 손해를 입게 된다. (p. 220)>>

 

뺐고 빼앗은 전쟁의 시대는 지나갔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곳곳에서 아직 작은 전쟁들이 진행되고 있다. 사실 물리적 전쟁이 아니어도 경제전쟁이니 문화전쟁이니 자꾸 '전쟁'들을 하려 한다. 그냥 좀 같이 잘 살면 안되나;;; 적어도 자본주의가 물리적 전쟁은 없애고 있다는 것에 안도를 해야 하나;;;


<<미국의 자본주의는 유럽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으로 발전했다. 유럽에서는 산업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노조와 정당들이 근로조건을 규제하고 정치권력을 나누어달라고 요구했다. 그래서 19세기 후반 유럽의 자본주의는 자본과 노동이 정치,경제적으로 갈등하는 가운데 발전했다.

미국에서는 그런 일이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미국에도 대중에 영합한 반자본주의 운동과 노조 활동이 있긴 했지만, 유럽처럼 권력을 쟁취하거나 세력을 확대하지는 못했다. 또한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주류 정당도 출현하지 않았다. 사회주의와 노동조합주의, 무정부주의와 같은 유럽의 이념들이 이민자들과 함께 대서양을 건너가기는 했지만, 그들이 생각한 미국은 산뜻하게 새출발할 기회의 땅이었다. 미국이 누구나 스스로 운명을 개척할 수 있도록 공평한 기회를 제공한다는 이미지는 지금도 여전히 강하게 남아있다.

그 결과 미국의 자본주의는 여러 면에서 유럽과 같은 다른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과 상당히 달라졌다. 노동자의 권익은 훨씬 적게 보호받았고, 회사를 운영하는 기업 소유주와 경영진의 권한은 더욱 강해졌다. 또한 노동자들을 자유롭게 해고할 수 있는데, 이것은 유럽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사회적 안전망 역시 상당히 취약하다. 미국에는 여전히 국민건강보험제도가 없고, 유럽보다 노동 시간이 훨씬 길지만 유급휴가는 더 짧다. (p. 241)>>

 

저자는 미국이 그동안은 자본주의 경제의 대표모델로 여겨져 왔고 여전히 중요한 나라지만, 이제는 여러 자본주의 국가 중 하나일 뿐이라고 이야기 한다. 미국은 세계적인 나라이지만 점점 세계를 생각하지 않아가고 있고, 기회의 땅이었으나 그 기회는 자본가들에게만 주어졌다. 미국식 자본주의는 결코 미래지향적이 아니다. 시간이 오래 걸릴지도 모르겠지만 이런식으로 간다면 미국의 힘은 축소될 것이다. 세계는 저 혼자 잘 살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자본주의가 주기적으로 일자리를 없애고 새로운 일자리를 만든다는 마르크스의 생각은 옳았지만, 그것의 효과는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유익히다. 심지어 정부는 실업수당을 제공해 노동자들이 기존 일자리를 포기하고 능력에 맞는 새로운 일자리를 찾게 함으로써, 마찰적 실업을 긍정적으로 이용한다. 반면 구조적 실업은 저절로 발생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유용한 기술을 가르치는 교육제도, 고용주와 구직자를 연결해주는 고용지원 정책 등 노동시장이 효율적으로 기능하게 해주는 조치들을 통해 구조적 실업을 줄일수 있다. 마지막으로 노동에 대한 수요는 저절로 부족해지지 않으므로, 경기적 실업을 다룰 때 정부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다. (p. 257)>>

 

세계는 실업시대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실업률이 높다. 특히나 한국에서의 청년실업은 미래를 더욱 어둡게 하고 있다. 실업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개인도 아니고 기업도 아니고 정부다. 정부의 정책이 정말 중요한데 우리나라의 국회는 정책을 만들어내기보다는 국회를 텅텅 비우고 쓸데없는 이슈논쟁만 하느라 바쁘다. 자신들의 권력유지에만 혈안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국민을 위한 정책결정과 국가를 위한 제도개선이다. 그들 본인들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를 진화와 직접 비교하는 것은 상당히 무리가 있다. 기업의 성공 매커니즘은 종이 진화하는 방식과는 사뭇 다르다. 특히 진화는 무작위의 돌연변이 과정을 거쳐 이루어진다. 일부 돌연변이는 개체의 생존과 재생산 가능성을 높인다는 점에서 유익하다. 이 변이는 다음 세대에서는 좀 더 일반적인 것이 된다. 하지만 '기업'의 생존은 시장이라는 환경에 얼마나 잘 적응하는가에 좌우되므로, 결국 기업을 관리하거나 그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내리는 결정에 좌우되는데, 이것은 무작위로 일어나지 않는다. (p. 268)>>

 

자본주의를 생태계와 비교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진화론처럼 자연스럽게 냅두면 된다는 것은 무책임하다. 자본주의는 저절로 진화하지 않고 우성생식이 이루어지지도 않는다. 철저히 인간들의 선택에 따라 변화한다. 선.택.적.이.다.

선택은 빈곤문제에서도 힘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물질적 풍요에 도전하는 태도는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확실히 인류에게 유익히다. 하지만 우리는 풍요로운 사회가 제공하는 기회를 활용하는 방법을 아직 모르고 있다. 기본 소득이나 그와 비슷한 제도들이 답의 일부가 될 수 는 있다. 하지만 훨씬 중요한 것은 아마도 물질이 넉넉한 사회에서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는 방법을 재고하는 일일 것이다. (p. 313)

아무리 기술이 발달하고 사회가 변해도 결국 중요한 것은 '사람' 이다. 사람의 가치를 제대로 생각할 때 자본주의는 좀더 인간적인 경제제도가 되는 걸까?


자동화 때문에 일자리가 없어지지는 않았다. 실제로 경제사를 살펴보면, 기술 발전이 생산성을 향상시켜 사회를 풍요롭게 만든다는 이야기는 정확히 사실이다. 1841년에는 영국 노동자의 20%이상이 농업에 종사했지만, 오늘날에는 1%만 농업에 종사한다. 당시에는 30%이상이 제조업에 종사했지만, 오늘날은 10%에도 미치지 못한다. 제조업 종사자가 줄었음에도, 생산량은 그때보다 훨씬 많다. 그러는 동안 그들의 직업은 바뀌었다. 지금은 노동자의 약90%가 서비스업에 종사하며, 유사 이래 취업률이 그 어느때보다 높다. 과거보다 훨씬 적은 인력으로 더 많은 음식과 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는 사실은 사회가 전반적으로 부유해졌고, 일하지 않는 나머지 사람들은 경제 조사를 하거나 예술 활동을 하거나 운동선수가 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p. 315)

아직은... 두려워하지 말자. 전통 경제학과 역사는 이런 변화가 일부에게는 고통스럽겠지만, 경제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것이므로 장기적으로는 사회 전체가 이득을 볼 거라고 주장한다. 기계가 현재 사람이 하는 일을 더 빨리 효율적으로 할 수 있다면, 우리는 좀 더 부유해지고 다른 할 일을 찾게 될 것이다. (p. 317)

심각한 문제는 지금과 같은 자동화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에, 어쩌면 이것이 자본력과 노동력 사이의 균형 상태를 영구적으로 바꿀지 모른다는 점이다. (p.318)

러다이트 운동은 실패했지만, 그 계승자들(근로조건을 개선하려는 노동조합 운동과 투표권을 요구해 경제와 국가를 재건하려 한 차티스트 운동을 주도한 사람들)은 대체로 성공했다. 그러므로 진짜 시험은 우리의 정치 및 사회 제도가 그 도전에 응할 것인가이다. (p. 319)

다시 정치다. 자본주의 라는 경제제도를 이해하려고 할 수록 발을 걸고 넘어지게 하는 것은 다시 또 정치다. 자본주의를 제대로 파악하려면 결국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건가...


정말로 중요한 것은 생산 수단을 소유하고 통제하는 것이라는 마르크스의 핵심 사상을 다시 떠올려보면, 미래 사회와 경제의 특징은 소프트웨어를 생산하고 소유하고 통제하는 방식으로 규정될 것이다. 정부나 기업, 개인이 이 일을 하거나 아직 알려지지 않은 방시으로 하게 될 것이다. 이런 발전은 잠재적으로 현재의 자본주의 모델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p. 338~339)

하지만 여성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복지국가를 만든 것이 '자유시장' 이나 자본가들이 아니었던 것처럼, 우리 모두의 집단적 노력이 경제 발전을 사회적 진보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p. 339~340)

저자는 마르크스의 핵심사상과 낙관적 미래전망으로 책을 마무리 하고 있다. 중국이 점점 세계경제에서 중요해지고 미국이 점점 세계경제에서 약화되고 자본주의와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는 점점 더 미궁속으로 빠져드는 것 같고 로봇이 인간의 직업을 위협한다고 여겨지는 시대가 되었지만, 저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관적 가능성을 믿는다. 그 가능성이 실현성을 조금이라도 얻으려면 자본주의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이 책이 의미있어지는 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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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인 홈트 입체 미로 - 가상도시 3D 미로 탈출 게임 브레인 홈트 (Brain Home Training)
토마스 래드클리프 지음 / 폴더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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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도시 3D 미로 탈출 게임

이제 미로게임도 3D로 즐긴다!>>

 

이 책은 그림책 크기의 커다린 미로게임 책이다.

차를 타고 이동한다거나 식당에서 음식이 나오길 기다린다거나 등등의 잠깐의 시간적 틈이 생길때 요즘은 애나 어른이나 할 것 없이 모두 스마트폰을 꺼내든다.

그 몇분 혹은 몇십분의 시간도 알뜰히 스마트폰을 이용하려고 든다.

하지만 그런 아이를 그런 상대방을 마주보는 입장에선 썩 달갑지 않은 경우가 많다.

눈나빠지는데... 혹은 대화를 하지... 싶으면서도 이미 스마트폰에 관심을 돌린 이후엔 그 어떤 말도 소용이 없다.

그럴때 일종의 플레이북이 유용할 때가 있다.

책을 펼치면 책장 한가득 흑백의 도시가 나타난다.

네모표시에서 출발해서 동그라미표시로 가면 되는데

훌쩍 뛰어넘으면 될것 같은 저 거리가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

꼬불꼬불 돌고돌다 보면 어느새 책장만 뚫어져라 보게 되고 집중해서 길을 찾게 된다.

너무 어지럽고 헤깔리다고 중도포기하려 한다면, 잠깐!!! 뒤에 해답이 있다. 기서 힌트를 조금 얻어 다시 해보는 것도 ㅎㅎ

숫자를 좋아한다면 스도쿠나 말하기를 좋아한다면 단어퍼즐이나 끝말잇기를 해도 좋겠지만

이것도저것도 아니라면 누구나 만만하게 해볼 수 있는 것이 미로찾기 가 아닐까?!

게다가 입체 미로찾기다 보니 중고등학생이나 어른이 하기에도 쉽지 않다.

쉽지 않은 것을 해보라고 줘야 해결했을 때 더 뿌듯하고 하는 내내 긴장감이 있기 마련이다.

스마트폰 좀 그만했으면 싶을때, 차안이나 기차안에서 식당이나 카페에서 (누가 보면 열심히 공부하는 것처럼 보일것 같은) 이 책을 펴놓고 미로찾기를 해보게 하는 건 어떨까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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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하는 뇌 - 뇌과학자와 예술가가 함께 밝혀낸 인간 창의성의 비밀
데이비드 이글먼.앤서니 브란트 지음, 엄성수 옮김 / 쌤앤파커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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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과학자와 예술가가 함께 밝혀낸 인간 창의성의 비밀

다빈치부터 피카소, 아인슈타인부터 잡스까지... 창조적 예술품과  혁신적 발명품들 속에서 '창조하는 뇌'의 놀라운 작동 원리를 찾아내다!>>

데이비드 이글먼 은 세계적으로 촉망받는 뇌과학자라고 한다. 이 책을 바탕으로 제작한 과학다큐 '창의적인 뇌의 비밀'이 넷플릭스에서 공개됐다고 하는데 아직 나는 보지 못했다. 다양한 매체에 최신 과학 이슈를 꾸준히 소개하고 있는 '사이언스 커뮤니케이터' 라고도 한다. 또 한명의 저자인 앤서니 브란트 는 작곡가로 예술과 과학을 접목한 연구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어서 관련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고 한다. 과학과 예술...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점에서 두 분야는 비슷한 점이 의외로 많은가 보다. 


나는 번역된 책을 읽을 때 원제를 관심있게 보는 편이다. 이 책의 원제는 'THE RUNAWAY SPECIES' 다. 도망친 종(種) 정도로 해석하면 되려나;;;

다윈의 '종의 기원' 할때 그 '종' 인데 runaway 를 앞에 붙였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분류되어 있는 혹은 알고있는 '종' 아닌 무언가를 말하는 가 보다. 책을 읽고나니 인간만의 고유한 특징으로서 창의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아 창조의 다른 표현으로 한 것이 아닌가 싶다.


저자는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들기 위해 표준적인 틀을 깨부수는 것은 뇌 속에서 작동하는 기본적인 소프트웨어의 결과라고 말한다. 인간은 뇌 속에서 움직이는 알고리즘 속 진화적 변화 덕분에 세상을 흡수해 '만일~라면 어떨까'하는 가정 버전을 만들어 내는데, 이 책은 그 창의적 소프트웨어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특히 자신의 기대를 깨뜨리고 싶어 하는 욕구가 어떻게 인류의 '일탈하는 창의성'으로 발전하는지 보여주려고 한다. 다시말하자면, 지금 알고 있고 믿고 있는 것들로부터 달아나야 새로운 것을 창의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고나 할까.


크게 3부로 구성된 이 책의 1부는 하늘 아래 새로운 것 이다.


>>혁신은 '옳은' 것의 문제가 아니라 '다음은 무엇인가' 의 문제다. <<첫장부터 명문장이 나왔다. 인간은 과거를 기억하며 오늘을 살고 내일을 준비한다. 좀더 나은 내일을 살고자 하는 인간의 바람은 결국 혁신을 통해 모습을 드러낸다.<< 신기술은 계속 나타나 새로운 기준이 되고 곧 보편화한다.>> 혁신은 기술의 발전을 통해 직접적으로 확인된다. 십원짜리 동전 두개로 공중전화를 걸던 시대는 생각보다 오래되지 않았는데, 지금은 모두들 스마트폰을 들고 다닌다. 그 스마트폰도 2년의 약정기간이 다 되기 전에 새기계가 나와서 바꿔달라고 유혹하는 시대가 되었다. <<무언가를 잘 이해할수록 우리는 그것을 덜 생각한다. 한마디로 익숙함은 무관심을 낳는다. 반복 억제가 일어나 관심이 줄어드는 것이다>>. 항상 새로운 문물을 만들어 내고 사용해오고 어느새 너무 익숙해져서 무덤덤해져가는 주기가 짧아지고 있다. 옳건 그르건 혁신은 미래를 만들고 혁신의 주기가 짧아질수록 인간의 창의성은 절실히 필요한건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창조물은 이전에 나온 것과 대체로 비슷해 보이지만 실은 모두 변화한 것이다. 지나치게 예측 가능하면 사람들은 관심을 거둬들이고 뜻밖의 놀라움이 너무 크면 갈피를 잡지 못한다. 창의력은 그러한 긴장감 속에서 생명력을 얻는다.>>

 

스마트 폰으로 책을 볼수 있는 시대가 됏지만, 스마트폰 속에서의 책도 책장에서 골라볼 수 있게 해놓곤 한다. 서점에서 책을 골라사고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볼때 자주 보는 책장이 스마트폰속에서 준비되어 있을때 우리는 익숙하게 전자책을 고른다. 마치 내집 책장에서 책을 고르듯이. 스마트폰속에 책장이 아니라 아주 새로운 형태로 책을 고르게 해놓았다면 어땠을까? 아마 지금처럼 전자책이 읽히지는 않았을 것이다. 현실과 다른듯 비슷해야 사람들은 관심을 갖고 놀라워한다. 현실과 너무 다르면 놀라워할뿐 곧 잊혀지고만다.


<<희망은 일종의 창의적인 추측이다. 우리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기보다 자신이 바라는 대로 상상한다. 이를 깨닫지 못하는 우리의 삶의 상당 부분을 가정 영역 속에서 살아간다.>>

 

창의적인 생각은 매일매순간 일어난다고도 할 수 있다. 내가 만약... 하는 가정의 상황을 상상할때 그러한 상상은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품고 있을수도 있다.


<<척색동물 멍게는 기이한 행동을한다. 어려서는 헤엄쳐 다니다가 결국 따개비처럼 붙어 있을 장소를 찾고 나면 영양분 섭취를 위해 자신의 뇌를 흡입한다. 멍게의 뇌는 정착할 장소를 찾고 그곳에 정착할 결심을 하는 데 필요할 뿐이며 그 임무가 끝나면 뇌의 영양소를 다른 장기로 보낸다. 한마디로 멍게의 뇌는 무언가를 찾고 결정하는 데 쓰인다! 어떤 장소에 정착하는 즉시 뇌는 더 이상 필요치 않다. 인간은 하루종일 소파에 들러붙어 감자칩을 먹으며 TV만 보는 게을러빠진 사람조차 자기 뇌를 먹지 않는다. 인간에게는 멍게 같은 최종정착지가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늘 틀에 박힌 일상을 거부하려 안달하며 인간에게 창의력이란 생물학적 지상 명력이나 다름없다.>>

 

멍게가 되를 먹는지 몰랐다;;; 나름 충격적인 에피소드 였다. 뇌가 필요없어질 때가 있고 그때가 되면 뇌로 보내는 영양소를 줄이기 위해 뇌를 먹는다니... 다른 동물보다 뇌가 커지면서 먹이사슬의 꼭대기에 오를 수 있었던 인간에게 뇌가 끊임없이 필요하다는 것은 정말 생존본능인건지도 모르겠다.


<<대개 발명은 한순간에 이뤄진다고 상상한다. 발명가에게 갑자기 '유레카!'를 외치는 순간이 찾아오고 놀라운 계시 같은 걸 받는다고 말이다. 사실 기술 분야에서 일어나는 괄목할 만한 발전에는 정확한 출발점이 거의 없다. 처음에는 발명을 앞두고 이런저런 사람과 아이디어가 한데 모이면서 힘을 축적한다. 그렇게 몇 개월이나 몇 년을 거치며 그 힘이 점점 강해지고 분명해지면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추가되는 것이다.>>


이 책에는 사진자료가 꽤 많이 등장한다. 아이폰 같은 기계부터 그림이나 시 까지 모든 창조물에는 그 이전의 창조물들이 있었다. 그이전의 것들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기계와 명화들이 나올 수 있었다. 아이팟이면 아이팟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이면 유명한 그림 등등으로 결과물만 알고 있었는데 그 결과물 이전에 존재했던 것들을 새롭게 알게 되는 구절구절마다 신기했다.


<<새로운 아이디어는 번개가 내리쳐 불타오르는 게 아니라 뇌 속의 거대한 어둠에서 번쩍이는 수십억 개의 미세한 불길에서 생겨난다.

인간의 창의력은 기적처럼 보이지만 실은 서로 간의 협력으로 뇌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한 사회 안에서 평가받는 창의적인 행동은 그 이전에 어떤 창의적인 행동이 있었는지에 영향을 받는다. 결국 상상력의 산물은 그 사회 역사에 따라 생겨난다.

시대가 요구하는 것은 바뀌고 사회는 계속 발전해간다. 우리는 쥐고 있던 것을 내려놓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여지를 만든다.>>


2부는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뇌 에서는 구체적인 사례들이 차근차근 설명된다.


<<우리는 과거의 거인 때문에 위협받기 쉽지만 그 거인은 현재의 도약판이기도 하다. 뇌는 불완전한 것은 물론 사랑받는 것도 리모델링한다.>>

 

스트라디바리우스는 완벽한 악기라고 여겨져 왔다. 하지만 지금 현재 신소재로 만든 저렴한 바이올런을 켜본 바이올리니스트들은 스트라디바리우스를 구별해 내지 못했다.


'무기여 잘 있거라' 가 무려 47가지의 서로 다른 결말을 담은 초안이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 작품 외에도 지금 우리에게 알려진 작품이 있기까지 수많은 초안들을 작가들은 다 시도해보았었다.


<<한 가지 해결채개에 과잉 투자하는 것은 멸종으로 가는 가장 확실한 길이다. 인류도 정신적으로 다양한 것을 추구하는 힘을 발휘한다. 어떤 문제가 닥쳤을 때 인간은 단순히 한 가지 답이 아니라 다양한 답을 내놓는다.

백미러로 뒤를 보면 진보는 종종 발견과 발전의 직선 도로처럼 보인다. 그건 착각이다. 역사의 모든 순간은 이리저리 뻗어 나간 좁은 흙길과 다름없으며 그 길이 합쳐져 다시 몇 개에 불과한 포장도로가 된다.>>

 

사람들은 쉽게 결과물들만 기억한다. 그 결과물을 향해 오롯지 한우물만 팠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고속도로가 뚫리기 전에 지방국도가 있었고 지방국도가 있기 전에 시와시를 연결하는 길이 있었을 텐데 고속도로만 다니다 보면 길은 그길 뿐인것처럼 생각하기 쉽다. 논두렁길이 평평한 흙길이 되고 흙위에 시멘트를 깔았다가 콘크리트를 깔기까지 그 모든 길들이 있었음을 알아야 한다. 갑자기 등장하는 결과물은 없다. 대표적으로 남은 결과물 이전엔 항상 수많은 시행착오들이 초안들이 있었을 것이다.


<<창의적인 결과물은 대개 많은 시도가 실패한 끝에 나온다. 인류 역사에 등장한 아이디어는 대부분 실패를 용인하는 환경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라는 격언이 괜한 말은 아닌가 보다. 무수한 실패들이 있어야 제대로 된 성공이 따라올 수 있음을 수많은 사례들을 통해 저자는 알려주고 있었다.


<<창의성이라는 소프트웨어는 인간의 하드 드라이브에 아예 설치되어 있어 언제든 주변 세상을 휘고 쪼개고 섞게 해준다. 또한 우리의 뇌는 늘 새로운 가능성을 뽑아내며 대개는 제대로 실현하지 못하지만 일부는 실현한다. 동물의 왕국 안에서 그러한 활력과 고집으로 세계를 재편하는 일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거는 동물은 인간 외엔 없다.

우리의 뇌는 신축적이다. 뇌는 딱딱한 돌에 새기듯 고정불변을 지향하기보다 끝없이 그 자체의 회로망을 바꾸며 변화를 추구한다. 우리 뇌는 나이가 들어도 계속 새로운 것을 추구하면서 신축성을 유지하며 지속적으로 새로운 길을 만들어 놀라움을 안겨 준다. 뇌 속의 회로의 끝없는 재창조로 우리 삶은 날로 노련해지는 작품처럼 발전한다. 그러니까 창의력으로 가득한 삶은 뇌의 신축성으로 유지해주며 우리는 주변 세상을 리모델링하면서 우리 자신도 리모델링한다.>>

 

책을 읽다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창의적인 생각이라는 것이 너무 대단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집안의 인테리어를 바꾸고, 책을 읽고나서 뒷얘기를 상상해보고, 쇼핑할때 어떤 물건이 좋을지 선택을 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날때 호기심을 갖고, 반찬을 할때 재료를 바꿔보는 등등 일상에서의 소소한 작은 변화들도 어찌보면 창의성과 연결되는 것이 아닐까?! 작은 변화들을 생각해보고 실행해보는 모든 것이 결국은 창의성이 아닐까.


3부 창의성의 탄생 에서는 구체적인 실행방법들을 생각하게 한다. 대표적인 장소로 기업과 학교에서의 지향점들을 설명하고 있다.


창의적인 기업들의 도전사례들을 보며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한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꼭 이윤추구 때문이라기 보다는 미래를 만들어가는 하나의 방법으로 다양한 시도들을 가장 먼저 시도해보고 있는 곳이 기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많은 아이디어를 확보한 뒤 그 대부분을 포기하는 것이 보다 현명한 접근 방식이라는 것을 직접 해보는 기업들을 보니, 소비자로서 그 제품이 나오기까지의 숨겨진 도전들도 알아채줘야 겠구나 싶었다.


<<뭐든 돌에 새기듯 고정하지 마라. 지금 잘 통하는 모델도 5년 후에는 통하지 않을 수 있다. 어떤 모델도 절대 영원히 통하지는 않는다. 창의적인 기업은 반복 억제를 피하고 많은 옵션을 만들며 지금 잘 돌아가는 것이 싫증나기 전에 바꾸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혁신은 틀에 박힌 것을 뒤집는 데서 에너지를 얻는다.>>

 

혁신적인 기업이야기를 많이 하는 뇌과학자인 저자는 과학에서의 창의성에 대해서는 의외로 많이 이야기 하지 않는다. 과학보다는 음악이나 미술 같은 예술이야기를 더 많이 한다. 아마도 창의적인 생각이라는 것이 과학적 발견으로 이어진다라는 고정관념 때문인걸까? 아니면 대중서로 쓰다보니 독자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사례들을 드느라 그랬을 수도 있을 것 같긴 하다.

저자는 학교에서의 교육에서 지금보다는 좀더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교육환경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창의적인 성인이라면 사회 번영을 위해 학생들에게 오답을 두려워해 움츠러들지 말고 과감히 위험을 감수하라고 격려해주어야 한다. 아이들이 자신의 모든 지적 자본을 성공을 보장받는 안전한 일에만 투자하는 게 아니라 보다 다양하고 위험한 일에도 투자하게 해야 한다.>>

 

정말 교육에 조금이라도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아마 모두 이 말에 동의할 것이다. 문제는 현실이다. 당장 먹고살기 힘들때 무작정 도전해보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회가 실패를 받쳐줄 수 있을때 아이들에게도 실패를 권해줄 수 있을텐데 말이다...


<<젊은 학생이 창의적인 사고를 하려면 예술이 필요하다. 예술이 그 공개적인 특성 덕분에 혁신의 기본 툴을 가르치는 데 적합하기 때문이다.

더 나은 예술은 더 나은 엔지니어를 만든다. 그렇지만 예술이 중요한 더 깊은 이유는 따로 있다. 예술이 과학 발전을 유도하는 것을 넘어 문화까지 움직이기 때문이다.>>

 

예술교육을 강조하는 것은 '생각의 탄생' 이라는 책과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 보인다. '생각의 탄생' 에서는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생각도구 13가지를 알려주면서 천재들의 사례들을 통해 예술과 과학이 얼마나 윈윈했는지 보여준다. 책의 결론부분에서는 '전인교육' '통합교육' 을 강조하는데, 그 내용이 이 책에서 말하는 교육과 무척 비슷하다. '생각의 힘' 이 과거에서 찾은 창의력 향상 교육이라면 이 책은 현실을 바탕으로 한 미래기반 창의력 향상 교육을 지향한다고나 할까.


<<많은 경우 교육은 과거를 돌아보고 널리 인정하는 지식과 결과를 찾는 데 집중한다. 사실 교육은 아이들이 디자인하고 만들고 살아갈 미래 세계를 지향해야 한다. >>

 

교육은 어쩔 수 없이 과거를 배우는 과정이다. 문제는 그러한 과거를 바탕으로 얼마나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느냐 이다. 저자도 말했다시피 그냥 뚝 떨어진 발명품은 없었다. 조금씩 조금씩 여기저기서 아이디어를 얻어서 개발하다 보면 어느새 대단한 발견이 눈앞으로 다가와 있곤 했다. 과거를 배우는 교육이지만 그 과거들이 미래를 생각할 수 있도록 힌트를 주는 교육이 되어야 할텐데.. 그게 참... 현실에서는 어렵다;;;


<<뇌는 언제나 단조롭고 예측 가능한 것을 거부하라고 우리를 닦달해 이미 아는 것을 새로운 것으로 대체하게 만든다. 그래서 인류는 늘 따분한 현상 유지에 만족하지 않는다. 뻔한 일상에서 벗어나게 만드는 그 힘이 바로 창의력의 토대다. >>

 

아이들이 어리면 어릴수록 집중력의 시간이 짧다. 금방 지루해 하고 그렇기 때문에 금방 호기심을 갖는다. 어쩌면 지루해할 수 있기 때문에 아이들은 계속 무언가를 발견하고 질문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반복되는 일상이 길어지는 어른이 되어가도 쳇바퀴 돌듯 똑같은 매일을 사는 것 같은 어른이 되어가도, 어른도 자주 지루하다. 그래서 어른도 지루함을 벗어나기 위한 창의력 뿜뿜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나이가 더 들어도 인간은 계속 창의적일 수 있다. 왜냐면 인간은 계속 지루함을 느끼게 되므로. 지루함을 벗어나고 싶어하므로.


<<지금 혁신이 해일처럼 밀려들 여건이 무르익고 있지만 그것이 현실화 하려면 사회 도처에 적절한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아이의 창의성을 키워주지 못할 경우 인류가 소유한 장점을 십분 활용하지 못할 수도 있다. 우리는 지금 상상력에 투자할 필요가 있다.>>

 

상상력에 투자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자라나는 새싹들에 대한 교육이다. 창의성을 키워주는 교육을 강조하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창의성은 주입시킬 수 없는 건데 창의성도 학원에서 문제집에서 가르치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가장 기본적인 교육현장인 학교에서 아이들이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 있도록 하면 참 좋을텐데...


과학책인가 싶었는데 자기계발서 인가 싶다가 교육지원서 같은 마무리의 이 책은 여하튼 인간의 창조성과 그 창조성을 만들어내는 뇌의 특성을 강조하고 있다. 원서의 제목처럼 일탈하는 새로운 인류의 종 으로 인류는 끝없이 생각해야하는 숙명을 타고난 것 같다. 앞으로 점점 더 창의적인 생각을 해야 살 수 있는 시대라고 하는데, 이 책을 통해 창의적인 결과물들이 어떻게 창조됐는지 가볍고 쉽게 읽고나니 나의 뇌도 조금은 창의적인 쪽으로 방향을 잡았기를 기대해 본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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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잘 살면 왜 안 돼요? - 교실 밖 실전 사회 탐구
이치훈.신방실 지음 / 북트리거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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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도 벅찬 인생, 동병상련은 없다!

혐오, 내 일이 아니니까 신경 끌래요. 비트코인, 부자가 되기 위해 투자할 거에요. 플라스틱, 편해서 쓰는 건데요. 그런데......

나만 잘 살면 왜 안돼요?>>

 

처음에 제목을 읽었을 땐, 나만 잘살면 왜! 안돼요? 라고 읽었다. 이 경우 나만 잘 살겠다는 의미다.

그런데 책을 읽고 보니, 나만 잘살면 왜안돼요? 였다. 이 경우 나만 잘 살면 안된다는 의미다.​


공교롭게도 이 책을 읽기 바로 전에 읽은 책이, 이 책의 출판사인 북트리거 의 [수상한 질문, 위험한 생각들] 이었다.

연달아 읽을 생각은 정말 전~혀 없었는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돼버렸다;;; 이 책 목차를 보고서야 음? 하는 느낌에 다시 표지를 보니 앗! 했다는...


두 책은 비슷한 주제를 다루고 있고, 저자의 이력도 비슷한 언론계이다. 이 책의 저자는 KBS다큐전문PD다.

읽고 보니 저자의 이력은 책에서 내용을 풀어내는 방식과 깊은 연관이 있는 것 같다.

[수상한 질문, 위험한 생각들] 이 기자다운 재기발랄함이 있다면, [나만 잘 살면 왜 안돼요] 는 다큐다운 해설이 있다고나 할까.

[수상한 질문, 위험한 생각들] 이 발칙한 생각을 제안한다면, [나만 잘 살면 왜 안돼요] 는 변화된 사회를 제대로 바라보도록 기준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 책의 네 시간에 나누어 수업하듯 구분되고 있다.

첫째시간 - 다양한 사회, '약자'는 무시해도 될까? 에서는

한국사회를 집어삼키고 있는 혐오와 나홀로족시대로서 혼자가 편한 사람들과 세계에서 한국까지 번져온 페미니즘 물결과 함께사는 우리를 위한 다문화 사회 에 대하여 풀어내고 있다.

혐오를 할 수도 있고, 나혼자 편하게 살 수도 있으나 남성과 여성이 동등하게 한국인과 비한국인이 평등하게 살아야 할 이유를 말해준다.


둘째 시간 - 경제와 자본주의, '나'만 혼자 잘 살면 될까? 에서는

새로운 세상으로 일컬어지는 4차산업혁명 시대와 투자와 투기 사이에서 인식되고 있는 가상화폐와 핫플레이스에 드리운 그늘인 젠트리피케이션 과 다양한 방법으로 개인이 노출되고 있는 감시사회 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새로운 시대가 어떤 식으로 열리고 있는지, 가상화폐 보다 그 기본적인 블록체인 기술을 어떻게 구분지어 생각해야 하는지, 젠트리피케이션과 도시재생이 어떻게 반복되고 있는지 기술이 발달할 수록 개인의 정보에 대해 어떤 준비가 필요할지 알려주고자 한다.


셋째시간 - 자연과 인간, 무조건 '편리'한 게 좋을까? 에서는

바다롤 떠도는 죽음의 알갱이라 불리는 미세플라스틱과 저개발 빈민국에 필요한 적정기술과 재앙이 되어 지구를 덮치고 있는 환경호르몬의 심각성과 식량문제에 대해 문제의식을 고취시킨다.

플라스틱이 얼마나 위해한지 함께사는 세계인으로서 어려운 국가들을 위한 진정한 착한 기술은 무엇인지 환경호르몬과 GMO 작물과 식량산업의 문제성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겠다는 생각이 들며 반성하게 된다.


넷째시간 - 대중문화, '재미'만 있으면 모든 게 용서될까? 에서는

청소년들에게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는 영역이라고 할 수 있는 아이돌, 언어파괴, 유튜브혁명, 온라인게임 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할 점들을 시사하고 있다.

아이돌의 팬덤문화 변화와 특정집단에서 사용하고 있는 언어파괴의 유행과 넘쳐나는 유투브 영상과 중독이 염려되는 온라인게임에 대해 겉으로 보이는 현상들을 파고들어 깊게 생각해야 할 기준들을 생각해보길 권하고 있다.


세상 모든 것엔 양면이 있는 듯 하다. 다 나쁘기만 한것도 다 좋기만 한것도 없다.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 일부는 장점이고 일부는 단점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양면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항상 양쪽을 다 바라볼 수 있는 관점, 그것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한번 깨닫게 하는 책이었다.

청소년 학생을 둔 학부모나 청소년 또래가 읽으면 세상을 판단할 객관적 기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경험을 시켜줄 책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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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용, 조선을 바꾼 한 권의 책
백승종 지음 / 사우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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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서술 목적은 [중용]이 조선 사회에서 과연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를 탐구하는 것이다. 한손에 [중용]을 들고 떠나는 문화사 산책이라고 보아도 좋겠다.​ >>

저자는 역사가이자 역사 칼럼니스트 라고 한다. 독일과 한국의 여러 대학에서 역사 강의를 하면서 펴낸 책들도 다 역사관련 책들이다. 책들을 살펴보니 특히 조선시대 중반부에 해당하는 시기의 역사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중용] 이라는 책이 등장한 것은 적어도 2400년 전이라고 한다. 조선의 굵직한 선비들은 다른 책들을 먼저 공부한 후 읽어야 이해할 수 있는 책으로 [중용]을 꼽았다고 한다. 3천500여 글자수로 이루어진 비교적 얇은 편에 속하는 학문서적인 [중용]이 조선시대를 관통하며 학자들에게 꾸준히 읽혔던 이유는 무엇일까 를 연구하다 보니 조선시대의 학문적 흐름을 깨달은 저자가 펴낸 이 책은, [중용]을 철학적으로 깊이 분석하고 해설하는 데 목적을 둔 책이 아니라고 한다. 철학적 논의가 없는 것은 아니나 [중용]의 본문인용과 해설은 일부분일 뿐이다. 조선시대의 대표적 학자들이 어떻게 해석했는가를 살펴보며 시대적 의미를 되짚어보고 있다.


<<세계 어느 나라에도 조선처럼 엄격한 제왕학 수업은 없었다.>>


조선시대의 세자 교육은 철저한 편이었다. 학문을 하는 세자가 임금이 되느냐 아니냐에 따라 시대의 학문적 흐름과 당쟁의 판도가 바뀌었다. 그러나

<<독서할 때는 외우는 것이 중요하다 는 성리학자들의 일관된 입장이었다.>>

라는 문장을 보며 주입식 교육이 오랜 역사가 있었구나 싶었다. 그러나 외우기만 하고 끝난 것은 아니었다. 일단 외우고 나서 신하들과 스승들과 제자들과 그 문장의 진정한 의미를 토론하는 것을 즐겼고 필수로 여겼다. 그런데 암기만 남고 토론은 사라졌다는 것이 갑자기 씁쓸하고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라면 어느 경우에나 부합하는 객관적 기준을 마련하려고 애썼을 것이다. 그러나 동아시아의 성리학자들은 달랐다. 그들은 경우에 따라서 대응방식이 달라질 수 있다는 상황적 또는 상대적인 해법을 강구했다.>>

 

서양의 고대철학이 다 아리스토텔레스 같았던 것은 아니다. 객관적인 기준을 마련하는 것을 좋아하는 학파가 있는가 하면 세상의 이치와 근본을 탐구하는 학파도 있었다. 이러한 학파는 형이상학적일 수 밖에 없다. 서양의 고대철학에서 다양한 갈래가 생겨나고 자연과학철학이 형이상학철학 못지않게 발전한 것은 사실이지만 동아시아의 학자들이 형이상학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또한 기준없이 두루뭉술했던 것도 아니었다. 비록 유교 성리학 이라는 학문이 비대하게 발달하긴 했으나 서양과 동양을 단순비교하는 것은 곤란하다. 객관적이다 상대적이다 라는 표현은 대표성을 배제하고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실록의 기록이라고 해서 반드시 믿을 만한 것은 아니다. 기록은 주관적이다. 기록자의 구구한 변명 또는 자기합리화일 경우가 대부분이다. 역사가는 한시도 기록을 떠날 수 없으나, 기록의 포로가 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할 것이다.>>

 

저자는 조선왕조실록과 왕의 일기인 일성록을 많이 참고하고 있다. 같은 자료에서 다양한 자원을 발굴해 여러 책을 써온 저자로서의 마인드는 좋은 것 같다.


[중용]이 조선에 수용된 것은 14게 말 이라고 한다. 15세기부터는 선비들의 필수서적으로 자리 잡았고, 이후 이 책은 조선 사회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할 때마다 중요한 처방전을 제공하며 세상에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저자는 태종부터 정조사이의 왕과 학자들을 언급하고 있다. [중용]이 중심에 있던 사회를 다루다 보니 그리 된 것이겠지만, 사실 나는 개인적으로 정조 이후의 조선시대가 더 궁금하다. 정조 이후 학자들은 대체 어느 학문을 숭상했기에 그리 되었던 건가 싶어서....


<<16세기 후반 조선의 선비들은 [중용]을 통해 큰 용기를 얻었다. 조광조 일파의 정치적 실패로 인해 정지,사회적 전망은 어두웠다. 많은 선비들은 비관론에 빠져 있었다. 이때 [중용]에 담긴 희망의 메시지, 곧 '나 한사람의 도덕성이 세상을 바꾸는 힘'이라는 이 책의 주장은 선비들의 가슴에 희망의 불씨와도 같았다. 이제 그들은 추악한 정치,사회적 현실 앞에서도 결코 초라해지지 않을 수 있었다. 그들은 새로운 정신적 자양분을 얻었다.>>


아쉽다. 본인만의 자아성찰에 머무르게 한 그 희망이 조선시대 학자들에게 시대적 실천의 의무에서 떠날수 있는 자유를 준것 같아서...


<<17세기 전반, 조선의 선비들도 형이상학적 사유의 한계를 조금씩 실감했다. 그들이 제아무리 형이상학적 연구에 매달려도 현실은 개선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선비들은 이제까지외는 다른 길을 모색했다. 당장에 김장생의 경우만 해도 그러했다. 그는 예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제창했다.>>


안타깝다. 형이상학의 한계에서 벗어나는 실천지침을 예학에서 찾다니... 예학은 추후 궁내법도에 대해 옷을 어떻게 입어야 하네마네 초상을 몇년 치러야하네마네 하는 당쟁으로 그 학문의 한계를 드러낸다... 제사를 4대(부모, 조부모, 증조부모, 고조부모)까지 지내는 것도 여기 기원을 둔다.


<<17~18세기 조선에는 한 가지 끔찍한 사회문화적 현상이 나타났다. 선비를 '사문난적'이라 손가락질하며 배척하는 사건이었다. 누가 사문난적인가. '사문'은 유교적 질서요, 이를 어지럽히는 사람이 '난적'이었다. 그때는 주희를 비판하는 사람이 사문난적으로 몰렸다.

조선 건국 이래 대궐에서는 왕세자를 위한 서연과 국왕을 위한 경연이 수백년 동안 지속되었다. 세월이 흐르자 조선의 왕은 성리학의 믿음직한 수호자로서 선비들의 학문적 논쟁에 대해서도 정확하고 단호한 판결을 내리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국왕은 자신의 위엄을 세우고 권력을 강화할 수도 있었으니, 그가 재판관의 역할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왕이 학문에 공을 들여 경지에 이른 후 신하들에게 학문적 재판관 역할을 했던 시기는 별로 없다. 당쟁을 이용해서 왕의 정치력을 높였던 시기도 길지 않다. 한가지 학문에 집중했던 폐쇄성은 결국 서로의 정적들을 제거하는 권력다툼의 도구가 됐을 뿐이었다. 당시의 학자들은 정치투쟁과 경전해석을 별개의 문제로 여기지 않았다. 그들은 가치관의 다원성을 인정하기가 불가능한 선비들이 되어있었다. [중용]의 대가 라는 사람들이 [중용]에 반하는 사람들이 되어버린 아이러니


물론 주류가 우물안의 개구리들이 되었다고 해서 모두가 다 그랬던 것은 아니다. 꾸준히 자신만의 해석과 세상에의 적용을 위해 용기있게 목소리를 내는 학자들도 있었다. 다만 항상 소수였다는 것이...


<<천주교 서적의 전래를 계기로, 조선의 선비들은 초자연적 존재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18세기의 실학자들은 사물에 관해 실증적이고 비판적인 연구방법을 창안했다. 적당한 여건만 갖춰졌다면 그들은 한국의 역사적 운명을 새롭게 개척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역사에 만일은 없다지만, 실학자들의 연구가 좀더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정조이후 왕권이 무너지지 않았더라면 이후에 그렇게 빨리 일본에게 침략당하지 않았더라면 하는 가정들은 늘 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학문을 할 때는 반드시 의심을 품어야 한다. 의심이 없으면 배워도 굳건하지 못하다. 내가 말하는 의심이란 쓸데없이 믿지 않거나 우물쭈물하면서 우유부단하게 구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만일 이러저러해서 옳은 줄을 알면, 반대로 이러저러해서 잘못된 점이 있는 것도 함께 살펴야 한다. 이것이 보고 아는 것이다. 만일 그런 방법으로 공부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이 틀린 것을 옳다고 주장해도 나는 대응할 길이 없다.>>

 

저자가 인용한 이익의 글이다. 대학자로서 [중용]을 새로 해석하고 책을 편찬한 깨어있는 지식인의 말은 지금도 의미가 고스란히 다가온다. 나는 학문을 연구하는 학자는 아니지만, 책을 읽을 때도 가져야 하는 자세라고 생각한다.


[중용]을 읽어보지 않은 상태에서 읽었지만, [중용]이 어떤 책인지 알려주는 책은 아니었지만, 조선시대 학자들이 얼마나 열심히 학문을 탐구했고 중요하게 여겼던 생각들이 무엇이었는지 그들의 생각이 시대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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