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무기가 되는 심리학 - 삶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50가지 심리 기술
레온 빈트샤이트 지음, 장혜경 옮김 / 심플라이프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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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50가지 심리 기술

인간관계부터 돈 버는 기술까지 심리학에 답이 있다

배우고 익히는 단계를 넘어 이제는 써먹어라

이미 알고 있지만 활용할 줄 몰랐던 심리 기술을

나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용하는 법

위기의 순간, 티 나지 않게 상황을 반전시키는 강자들의 심리 도구!

심리학으로 백만장자가 된 비결을 밝히다!

(표지문구 中)

제목부터 책을 소개하는 화려한 문구들까지 한마디로 말하자면, 심리학 실용서 다.

개인적으로 눈길이 갔던 문구는 심리학으로 백만장자가 됐다는 부분이다. 심리학으로 돈을 벌었다고?

이 부분은 저자의 지극히 개인적인 성공스토리인데, 저자는 그 성공의 비결을 심리학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1988년생의 독일청년으로 심리학을 전공하였으나 심리학박사라거나 상담사거라나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직업은 일종의 파티플래너 다.

독일에서 인기있는 퀴즈쇼에 출연하여 1등을 하였고 그 상금이 100만유로였다. 그야말로 하루아침에 백만장자가 된 거다.

그 퀴즈쇼에서 자신이 1등을 하게 된 비결은 대학시절 배운 심리학이었다는 것인데, 그렇다고 이 책이 개인적 성공스토리를 담은 자기계발서는 아니다. 이 책은 심리학책이다. 저자가 배우고 느끼고 써먹어봤던 심리학의 단면들을 쉽고 재미있게 알려주고 있다. 나이에 걸맞는 통통튀는 에너지를 가득 담아.

당시 환영식에서 내가 그랬듯 어떤 집단에서 생전 처음 보는 인간 하나가 조심성 없이 "제 이름은 레온이고 심리학을 공부해요"라고 선언한다고 하자. 그 순간 다음 세 가지 반응 중 하나가 나올 확률은 거의 100퍼센트다.

좀 드물지만 첫 번째 반응은 이런 감탄사다. "와우! 심리학과, 진짜 재미있겠다. 나도 거기 가고싶었는데" 이 경우엔 얼른 행간을 읽어야 한다. '와우'가 시니컬할수록, '진짜'의 '진'을 길게 뺄수록 다음 문장이 뒤따를 확률이 높아진다. '나는 노력파가 아니었거든' 실제로 노력파의 비율을 따져보면 심리학과가 의예과보다 쥐꼬리만큼 더 많기는 하다. 심리학과는 반장들을 모아놓은 집합소이다. 대입시험 성적이 상위권에 드는 모범생들이 심리학과에 모여 있다. 그렇게 본다면 노력파라는 낙인이 꼭 기분좋은 것은 아니지만(대부분) 맞는 말이고 그러니까 과히 기분 나쁘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다.

심리학과라는 고해성사가 만나는 전형적인 두 번째 반응은, 그 공부를 해서 어떤 뇌 손상을 치료하고 싶은지 꼬치꼬치 캐묻는 것이다.

앞의 두 반응보다 훨씬 더 나쁘고, 내 경우 지금까지도 해결하지 못한 세 번째 반응이 남아 있다. 압도적으로 빈번하게 만나는 반응으로, 속삭임에 가까운 나지막한 탄식이다. "아!" 그리고 이어지는 긴 침묵. 이때 상대는 마치, 동트는 새벽 숲속 빈터에서 사냥꾼의 소리를 감지하고 걸음을 멈춘 아기 사슴 밤비처럼 뻣뻣해진다. 그는 심리학과 학생을 만난 충격에서 깨어나자마자 약간 더듬거리며 이런 말을 내뱉는다. "심리학. 아, 음, 그렇군" 상대의 눈에서 공포가 뿜어져 나온다. '아무 생각도 하지 마. 저 녀석이 내 생각을 읽을 수 있어!'

(프롤로그 p. 4~6)

프롤로그 시작부터 저자의 책에 대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가볍고 발랄하고 무엇보다 신선하다.

독일에서는 의대보다 심리학과에 더 공부잘하는 학생이 간다는 것도, 심리학과를 다닌다는 말에 대한 세가지 반응들도, 신선하다.

이런저런 심리학 책을 꽤 여러권 읽어봤지만 시작부터 이렇게 웃고 들어가는 심리학책은 또 처음이다. ㅎㅎ

두뇌를 통해 우리는 심리학의 출발점이 될 질문에 도달한다. 뇌는 우리의 본성, 우리의 심리와 무슨 관련이 있을까? 인류는 오래전부터 뇌와 심리 사이에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머릿속의 내용물과 우리의 본성, 우리의 감정과 행동에 서로 연관성이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이 연관성이 엄청나게 중요하며 사실상 전부라는 깨달음에 이른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p. 21)

과학으로서의 심리학이 제공할 수 있는 것들은 매우 흥미진진하지만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니고 또 앞으로도 결코 완성되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 글을 계속 읽으면서 데카르트의 주옥같은 사상을 찾아낼 것인지, 아니면 다음 장으로 건너뛸 것인지는 순전히 당신의 결정에 달렸다.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면 계속 읽어나가기를 바란다. 내가 써먹어 보니 제법 괜찮았던 타협안을 끝부분에서 알려줄 예정이니까 말이다. (p. 27)

오늘날의 신경학이 모든 문제게 답을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인간의 심리가 결국엔 신경세포의 네트워크에 불과하다는 사실에는 의뭄의 여지가 없다. 우리의 뇌는 우주에서 가장 흥미로운 기관이다. 기적을 낳기 때문이다. 뇌는 심리를 탄생시킨다. (p. 30)

 

피니어스 게이지라는 사람이 1848년 쇠막대기가 뇌를 관통하는 사고를 당했으나 생명엔 지장이 없었다. 다만 사고 전후 성격이 너무나 달라졌고 그 모습을 당시 그를 치료했던 의사가 기록해 놓았다. 뇌의 어딘지 모를 그 어떤 부분이 사람의 성격을 바꾸게 한다는 증거로 다른 심리학 책에서도 봤던 사례인데, 저자는 심리학을 뇌과학으로 바로 연결시키고 있었다. 아마도 요즘 심리학은 그런가보다.

심리학 하면 왠지 뇌보다 심장에 가까운 학문일것 같고, 지금까지의 심리학책들은 나의 이 선입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었다. 정확히 하자면 심리학을 굳이 심장이나 뇌와 연결시키지 않았었다. 심리학은 약간 추상적인 무언가였다. 그런데 최근 심리학은 신경학과 맞물려서 뇌과학으로 발전했나 보다. 역시 책은 최신책이 최신정보를 담고 있기 마련이다. 특히 과학분야는. 그래서 독일에서는 의예과보다 심리학과가 더 들어가기 어려운가 보다. 뇌과학이므로. 한국은??

솔직하게 말해 우리 모두에게는 회색 지대의 인격 특성들이 있다. 말하자면 완전히 '정상'은 아닌 성향들이 숨어 있는 것이다. 그러니 누구는 '정상'잉고 누구는 '비정상'이라는 생각은 쓰레기통에 던져버려도 좋다. 우리 모두는 다 어느 정도 제정신이 아니고 조금씩은 다 미친 인간이다.

이런 상황을 인정한다면 심리 장애 진단이 결코 생각처럼 간단하지 않은 이유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흰색과 검은색의 경계가 어디란 말인가? 어느 지점부터 장애이며 어디까지는 아직 정상인 것일까?

(p. 48)

맞는 말이다. 우리 모두는 다 어느 정도는 조금씩 제정신이 아닌 부분을 갖고 있다. 우리 모두는 회색인간이다. 어떻게 명확하게 흰색과 검은색을 가를 수 있겠는가? 하루에도 수십번 이랬다저랬다 하는게 인간이고 그게 자연스러운데. 저자는 실용적인 심리학적 기술을 알려주려 하면서도 누구나 조금씩 가지고 있을 수 있는 심리적 장애도 그럴 수 있다고 사람은 다 비슷하다고 마음을 가볍게 해주려 한다. 비정상 인것이 정상이라고. 괜찮다고.

뇌는 워낙 게으르기 때문이다. 뇌는 꼭 필요한 만큼만 생각하려고 한다. 그러기 위해 쉬지 않고 휴리스틱을 활용한다. 휴리스틱이란 간단하고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대략적 규칙이다.

(p. 64~65)

심리학을 뇌과학적으로 보는 입장이다 보니 뇌의 관성에 대해 자주 이야기가 나온다. 뇌는 우리의 생각보다 오류가 많다. 그러한 뇌의 특징을 알고 깨닫고 행동에 반영하는 것이 자신의 심리를 파악하고 고쳐나갈 수 있는데 큰 도움이 된다.

자기충족예언은 타인의 행동에 대한 우리의 기대가 다시금 그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저 녀석이 미친놈일 것이라고 기대하면 나는 그에 맞게 행동할 것이고 나의 행동을 통해 기대했던 상대의 행동을 불러올 확률도 높아진다. (p. 90)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보고 어떤 평가를 내릴지는 오직 헤일로 효과가 결정하기 때문이다. 헤일로 효과는 연구가 매우 잘 된 심리 현상이다. '헤일로'는 '후광'이라는 뜻이다. 즉 한 사람의 한 가지 특징이 너무나 강렬한 빛을 던지는 바람에 그의 다른 특징들을 보지 못하거나 판단을 내릴 때 고려하지 않는 현상이다. (p. 95)

한 사람의 개별적인 부정적 특징이나 행위가 그 사람의 전체 인상을 크게 흐릴 때 그것을 두고 '혼 효과' 라고 부른다. 머리에 후광을 두른 예수와 반대로 이 경우는 암가의 뿔이 머리에 달리는 것이다. 후광과 악마의 뿔은 일상 곳곳에서 쉬지 않고 빛을 비추어 우리의 눈을 가린다. (p. 97)

매몰비용오류란 일단 시작한 프로젝트는 끝장을 보려 드는 우리의 성향을 말한다. 돈이 얼마가 들건 반드시 그렇게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가 이미 그 프로젝트에 투자했기 때문이다. 이미 투자한 비용은 잃었다고 생각하고 그만 손을 털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을 때까지 계속 돈과 시간과 에너지를 밀어 넣는다. 특히 자기 스스로 돈을 집어넣었을 때는 손을 떼기가 정말로 힘들다. (p. 102, 103)

'사고행위융합'은 강박장애 환자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사고가 왜곡되는데, 생각을 실제 행위와 동일시 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강박장애 환자는 끔찍한 생각 때문에 괴롭다. 그 생각이 실현될지도 모른다고 걱정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생각을 시리제 행동과 동일시 하거나 끔찍한 사건을 생각하기만 해도 현실이 될 위험이 높아진다고 겁을 낸다.

생각과 행동의 경계가 흐려지는 것은 너무나 무서운 것이다. 자신에게서 그런 심리 장애의 증상을 발견하면 마음이 불안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심리학을 공부하며 얻은 중요한 깨달음 하나는 우리 모두의 마음에는 정말로 많은 장애 요인들이 숨어 있다는 사실이다. '정상'의 흰색과 '장애'의 검은색 사이에 얼마나 넓은 회색지대가 있는지, 다시 한번 기억해보라. (p. 111, 112)

 

저자는 다양한 예를 통해 심리학적 용어와 현상들을 설명한다. 학자들의 연구사례와 자신의 경험담을 섞어가며 스스로 느낀 점을 쓰다보니 공감도가 높다. '공감'은 심리학서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아무리 좋은말 맞는말이라고 해도 내게 와닿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저자의 경험담은 스스럼없이 다가온다. 그것도 아주 퐈이팅넘치게. ㅎ

유명한 심리학 교수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플로(flow)' 라는 말에 '몰입'이라는 뜻을 부여했다. 플로는 원래 '흐르다, 순환하다, 흘러나오다'라는 뜻이다. 그는 맡은 일을 처리하는 동안 마음이 일을 향해 흐르는 상태를 그 개념으로 표현했다. 전 세계인이 느끼는 완벽한 심취와 몰입의 감정은 연령, 성별, 교육 수준을 막론하고 놀랍도록 닮았다. (p. 150)

다음에 몰입을 경험하게 되거는 지금 이 내용을 아예 떠올리지 말고 흘러가는 에너지에 몸을 맡겨라. 물론 몰입을 배울 수는 있지만 몰입의 가장 좋은 점은 그것이 우리 모두에게 깃들어 있고 모두가 그것을 안다는 사실이다. 몰입은 어느 때보다 이론과 고민이 없을 때 제일 먼저 우리 곁으로 달려올 것이다. (p. 153)

 

'몰입'은 '집중' 과는 좀 다른것 같다. 주로 학문적은 부분에 열심일때 '집중' 이라는 단어를 쓴다면, '몰입'은 무엇을 하고 있건 지금 그순간에 빠져든 상태를 말한다. 청소를 하다가 전화소리도 못듣고 먼지만 보이는 순간도 몰입이고 책을 보다가 라디오소리도 못듣고 내용에 푹빠져드는 것도 몰입니다. 집중은 약간의 피로감을 가져오지만 몰입은 일종의 작은 환희를 가져온다. 저자의 글을 읽다보니 저자는 자신의 삶에 순간순간 몰입을 잘 하는 타입인것 같다. 즐기면서 집중한다고나 할까?! 패기넘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우리부터 자신을 믿고 심심한 시간을 허락해야 한다. 심심한 것이 섹시하지는 않다. 하지만 머리의 공회전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연구 결과로도 명확히 입증되었다. 심심하지 않으려고 몸부림칠 것이 아니라 심심함을 자주 만나 알아가야 할 것이다. 컴퓨터도, 휴대전화도 없던 시절로 돌아간 듯 정기적으로 멍을 때려야 한다. 창의적이기를 바란다면 세상의 온갖 자극을 막아줄 벙커와 시간을 확보하자. 이 벙커가 바로 심심함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벙커를 못 찾겠거든 무작정 우체국으로 달려가서 전화번호부를 읽어보라. 도움이 될 것이다. 진짜로.

(p. 203)

택배부칠 것도 없는데 우체국에 가서 두꺼운 우편번호부 책을 한장한장 읽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ㅍㅎㅎㅎ

나는 멍도 잘 때리고 생각의 벙커에도 잘 빠지는 편이지만, 저자의 말처럼 너무너무 재미없고 의미없는 숫자들만 가득한 전화번호부나 우편번호부를 보며 머릿속이 탈탈 비워지는 경험도 해봄직할 것 같다. 비워야 채워지는 법이다.

긍정적이고 올바른 행동을 통해 나쁘고 잘못된 행동의 허가증을 얻는 것이 바로 도덕적 셀프 면죄이다. 재미있는 점은 우리 뇌가 한 분야의 선행을 보상하기 위해 전혀 다른 분야에서 비도덕적인 행동을 해도 좋다는 면죄부를 발행한다는 사실이다. 다양한 과학적 연구가 이런 효과를 입증한다. (p. 205)

변화로 가는 길에서 실패는 정상적인 일이다. 포기의 핑곗거리가 아닌 것이다. (p. 211)

나는 장기적으로는 '친절하되 신중하게' 주고 받는 게 좋다고 확신한다. 여기서 '친절'하다는 건 가급적 '먼저 베풀라'는 뜻이다. '신중'하다는 건 '누군가 내게 베푼다면 그 사람을 조금 더 조심하라'는 의미이다. (p. 229)

삶의 의미를 잘 담아냈다고 장담하는 자기계발서들이 베스트셀러가 되어 몇백만 부씩 팔리는 것도 놀랄 일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책은 백날 읽어봤자 소용없다고 생각한다. 한 가지 이유만 떠올려봐도 충분하다. 우리 모두는 각자 다른 것을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p. 237)

우리는 창피한 일을 하거나 특별히 멋진 일을 했을 때는 늘 자신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고 인식한다. 하지만 실제 그 빛의 밝기는 손전등 불빛 정도 밖에는 안 된다.

나의 말과 행동이 내 생각만큼 언제 어디서나 주목 받는 것은 아니다. (p. 258, 259)

'편향맹점' 우리 인지의 맹점을 말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선 생각의 오류를 거듭 확인하지만 자신은 절대 그렇지 않다고 확신한다. 한마디로 자기 뇌의 작은 실수에는 눈이 머는 것이다. (p. 307)

 

시중에는 심리학서적들이 많다. 따라서 잘 알려진 심리학 연구 결과들도 많다. 하지만 그 심리학 연구 결과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현실파악하는데 적용하느냐는 사람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다. 뇌를 다친 사람을 통해 뇌의 어떤 부분을 다쳤기에 그랬을까 하며 뇌를 연구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뇌는 성격과 연관있구나 느낀 사람도 있을 수 있고, 심리는 뇌과학이구나 깨달은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모두 다 맞고 모두 다 다르다. 저자는 학자까지는 아니고 따라서 전문가라고 하기엔 부족하다. 하지만 자신이 배운 심리학으로 자신을 단련시켜서 일상생활에 적용시켜 보았더니 백만장자가 되는 경험까지 하게 됐다. 심리학은 정말 유용하구나를 느끼고 보니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려주고 싶었던 것 같다. 뇌의 오류와 자신의 착각을 경계해보는 것만으로도 일상생활에서 많은 부분을 좀더 마음편히 살 수 있다는 것을. 심리학을 학문적 연구까지는 안하더라도 삶의 기술로 배워보는 것은 무척 좋다는 것을.

심리학 책은 가볍고 산뜻하게 마지막장을 덮는 경우가 별로 없었는데, 뭔가 물음표가 남곤 했는데, 이 책은 깔끔하게 마무리되는 느낌이 좋았다.

아! 그러고 보니 한가지 궁금한 점이 갑자기 떠오른다. 서양사람들은 50이라는 숫자를 좋아하나?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당신이 알아야 할 50가지의 자본주의아이디어들, 50 가지의 심리기술.. 뭔가를 알려주려면 50가지 정도는 되야 하는 건가~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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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뉴욕의 초보 검사입니다 - 정의의 빈틈, 인간의 과제를 묻다
이민규 지음 / 생각정원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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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의 빈틈, 인간의 과제를 묻다

'세상의 중심', '탐욕의 최전선' 뉴욕에서 일하는 한국인 검사의 정의 분투기

"오늘도 괴물이 되지 않으려 싸우는 중입니다"

 

저자는 이제 서른이 된  청년이자 뉴욕에서 검사생활 1년차인 군필 한국인이다.

아직은 얼떨떨한 사회초년생이자 팔팔한 에너지의 인생초년생인 젊은이는 겸손하면서도 심지굳고 경청하면서 고민하는 '사회정의부' 소속 검사였다. 미국의 번영의 상징인 도시 뉴욕이 있는 뉴욕주의 검찰청 소속 검사.

 


 

슈퍼히어로들은 한결같이 뉴욕에서 활약한다. 배트맨의 무대인 고담시도, 슈퍼맨의 무대인 메트로폴리스도 뉴욕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도시들이다. 몇몇 히어로들은 아예 대놓고 뉴욕에 거주하며 활동하고 있다. 아이언맨은 미드타운, 스파이더맨은 퀸스, 데어데블은 헬스 키친, 닥터 스트레인지는 그리니치빌리지에 사는 식이다. 슈퍼히어로들이 몇 십 년째 뉴욕을 본거지로 삼아온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뉴욕이라는 도시가 그만큼 멋진 그림과 다채로운 이야깃거리를 보장하기 때문이다. 예전부터 뉴욕은 꿈과 희망과 기회의 땅이었다. (p. 8)

그렇다보니 뉴욕은 늘 화려한 성공과 대박을 노리는 사람들의 세속적인 욕망들로 가득하다. 수많은 사람들의 욕망이 서로 충돌하고 화학반응을 일으키며 기형적으로 변해간다. 이런 욕망의 격전지에서 욕망이 탐욕으로 변질되는 건 한순간이다. (p. 9,10)

뉴욕의 초보 검사로 지낸 지난 1년간 '슈퍼히어로'는 되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사람들의 고통과 슬픔에 공감할 줄 아는 '슈퍼히어러'는 되자는 마음으로 살았다. 그게 검사로서 최소한의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p. 12,13)


프롤로그를 여는 그의 솔직함과 재치가 책을 시작하는 내 마음을 가볍게 해주고 있었다. 이 젊은이 마음에 든다. ㅎㅎ


저자의 글을 읽으며 미국은 한국과 법환경이 무척 많이 다름을 알게 되었다. 한국에서 무소불위의 철퇴를 내리치는 검사와 달리 미국에서는 검사고유의 권한인 기소권조차 검사의 고유의 권한이 아니다. 기소권은 대배심제도에 의해 시민들의 판단으로 결정된다. 검찰청도 한국처럼 수직적인 위계질서하의 '검사동일체원칙' 기반이 아니라 연방검찰청, 주검찰청,지역검찰청 으로 힘이 분산되어 있다. 힘을 분산시킴으로써 부정부패를 줄이고자 하는 시스템이라고 한다. 하지만 법시스템이 좋아도 권력보다 돈이 최상위를 독점하고 있는 미국사회에서는 시스템도 별 소용이 없어보인다. 법시스템이 분산되어 있으면 뭐하나 기업가들의 돈폭탄 로비에 법도 정치도 다 소용없어지는데...

 


 

드라마 <비밀의 숲> 에서 가슴에 콱 박히는 대사를 들은 적이 있다. 검사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드라마였는데, 작중에 검찰총장은 후배 평검사의 어깨를 툭툭 치고는 이렇게 말한다. "흔히들 검사나 의사나 같은 '사'자를 쓰는 줄 아는데 의사는 '스승 사'자를 쓰고 변호사는 '선비 사'자를 쓰는데 유독 검사만 '일 사'자를 쓴단 말이야. 그래서 검사는 사람이 아닌가 했는데 깃발을 높이 든 모양이라고 하더군. 원래 일 사 자가. 우린 그래야 돼. 방향을 제시해주는 사람. 선봉에서 기준이 되어주는 사람. 그게 우리의 본모습이라는 걸 국민들에게 보여줘" (p. 65)

<비밀의 숲> 드라마는 나도 정말 좋게 본 드라마였는데... 이렇게 좋은 대사가 있었던가;;; 그동안 한국 영화나 드라마에서 검사들이 워낙 권력에 붙어 악의 축처럼 비춰진게 많다보니 변호사는 정의로와도 검사는 오히려 정의롭지 못하다는 선입견이 있었던 것도 같다. 하지만 사실 본래는 검사 가 하는 일은 몹시 정의롭다. 나쁜 사건이 생기면 그 사건에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위해 가해자들에게 엄벌을 내려주는 사람이 검사 아니던가.


저자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악덕기업주에게 부당해고를 당한 사람, 불법체류자로 성매매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 재산싸움을 벌이는 가정, 가정폭력에 시달리다 성폭력까지 당한 사람, 다단계 판매에 이용당한 사람, 부당대출에 허리가 휘는 사람... 미국의 부자도시 뉴욕에도 우리와 별반 다를 것 없는 가난하고 이용당하는 사람들이 넘쳐났고 그 사람들은 검사를 찾아와서 부당함을 호소했다. 그리고 저자는 검사로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가해자들에게 벌을 주기 위해 일을 한다. 가해자들에게 비싼 변호사가 붙어있어도 월급쟁이 검사로서 최선을 다해 파고든다. 검사가 하는일이 새삼스러운 것은 그동안 너무 뉴스에서 정치권력문제에 등장하는 검사들의 모습만 봐서 그런가 싶기도 하다...

 


 

물론 꿈을 꾸는 일은 중요하다. 하지만 꿈꾸는 것만으로 인생이 바뀔 정도로 우리가 처한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간절하게 바라면 모든 게 잘 해결된다는 명쾌하고도 단정적인 해법을 제시하는 건 환자의 성별, 나이, 신체 및 정신 건강 상태 등은 고려하지 않고 비타민C만 잘 챙겨 먹으면 병에 안 걸린다고 말하는 것만큼이나 무책임한 태도다. 경우에 따라 치명적인 결과를 불러올 수도 있다. '힐링'이 아니라 '킬링'에 가까운 셈이다. 병은 사람을 못 죽여도 잘못 처방된약은 사람을죽이는 법이라고 했다. (p. 123)


부푼 꿈을 안고 미국에 이주해온 젊은 부부가 열심히 읽었던 자기계발서들이 말한 처방들은 다 부질없었다. 자기계발서의 허황됨에 대해 명쾌하게 반박하는 저자의 글이 시원스러웠다. 통쾌하기까지 했다. 우리나라에도 자기계발서가 얼마나 많이 나오고 있는가? 베스트셀러에는 또 얼마나 자주 오르는가? 어찌나 자수성가하고 믿으면 이루어진 꿈들이 많은지 기가 막힌다. 하지만 믿는다고 이루어지는 게 아닌 것이 대부분의 현실이다. 믿음보다 더한 노력이 있었음을 알려주는 책은 잘 읽히지 않는다. 쉽게 이룬 꿈을 믿고 싶지 어렵게 이룬 성공을 실천할 마음은 없기 때문이다.

 


 

위에 밝힌 '키티 제노비스 사건' 역시 <뉴욕타임스> 의 보도와 실제 상황에서는 많이 차이가 있었던 것으로 최근 밝혀졌다. 그 내용에 따르면 실제로 범행을 목격한 사람은 여섯 명에 불과했고, 그것조차 새벽에 비명소리를 듣고 깬 것이라 범행 과정을 제대로 본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게다가 그 중 두 명은 경찰에 분명히 신고를 했고, 심지어 한 명은 거리로 직접 뛰쳐나가 앰뷸런스가 올때까지 피해자를  보호했다고 한다. 결국 <뉴욕타임스>는 2016년 오보를 인정하는 사과 기사를 냈다. (p. 159)


'제노비스 신드롬' 혹은 '방관자 효과' 로 널리 알려진 이 사건은 새벽 퇴근길 한 여성이 노상강도에게 처참하게 살해되는 동안 이웃주민 아무도 신고하지 않았다는 기사로 충격을 주어 인간의 책임회피성 대한 증거로 많이 언급되는 사건이다. 심리서들에도 자주 등장한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오보였다는 말은 없다. 자신이 알고 싶은 부분만 알고 모르고 싶은 부분은 무시하는 정보이용의 왜곡이 책임회피 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아닐까.


한 사건의 소송은 제도적 절차상 오랜 시간과 비용이 들기 마련이다. 그래서 미국에는 1925년 '연방 중재법' 이 생겼다고 한다. 소송까지 가기 전에 중재로 서로 좋게 해결하면 시간과 비용도 줄고 인간적 화해의 마무리로 더 좋은 결과를 얻어낼 거라는 좋은 취지는 점점 왜곡되어 현재는 국민의 기본권인 재판청구권을 박탈하는 것으로 이용되고 있다고 한다. 왜냐하면 상품의 구매약정조항에 깨알같은 글씨로 '이 계약으로부터 발생되는 모든 분쟁은 중재규칙에 따라 중재로 최종 해결한다' 라는 사전 중재 합의 조항이 있으면 상품에 아무리 심각한 문제가 있어도 소비자들은 집단소송을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기업들은 깨알같이 이 조항을 꼭 써넣고 있다고 한다. 근로계약서에도 써넣어서 근로자가 아무리 부당한 일을 당해도 노조로 단결하여 집단소송을 하는 것은 법적으로 절대 불가능 하다. 미국은 이래저래 정말 기업가의 나라다.


미국은 엄벌주의 국가의 대표주자라고 한다. 흉악범들에게 사형이나 종신형, 100년형 200년형을 수시로 선고한다고 한다. 그래서 폭증하는 재소자들을 수감하고자 학교보다 교도소가 더 많이 지어지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흉악범들에게 너무 관대한 처벌이 나올때마다 그들의 갱신성을 믿을때마다 엄벌주의에 찬성했던 나로서는 먀약과 총기허용으로 더 필요해진 엄벌주의가 된 미국의 입장이 나아 보였다. 하지만 알고보니 그렇지가 않았다. 미국에서는 흡수주의가 아닌 병과주의로 형벌을 정하기 때문에 여러건의 범죄를 저질렀을때 가장 큰 형벌을 주는 것이 아니라 모두 합산한 형벌을 준다. 그래서 자잘한 도둑질 몇번 하면 형벌이 더해지고 더해져 살인죄를 범한 흉악범보다도 더한 100년형이 나올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정말 사형선고를 내려도 종신형처럼 교도소에 수감된채 평생을 살다가는 한국의 교도소와는 달리 미국의 교도소는 사형집행을 정말 집행 한다. 그것도 수시로. 이런식이면 억울한 사형이 없을 수가 없게 된다.


심지어 미국은 기업가들이 선거유세에서 정치적 편향된 의견을 물질적 공세로 퍼부을 수 있는 권리가 법으로 인정된 나라다. 소수의 자유가 다수의 자유를 위협하고 소수의 권리가 다수의 권리를 막을 수 있음에도 그러한 소수의 자유를 보장해주는 것이 과연 공정하고 평등한 것일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우리나라가 아무리 부정부패가 있다고 해도 미국거대제약기업에 의해 마약성 진통제 허용으로 온국민을 마약에 노출시켜 해마다 마약중독율과 사망율이 급증하고 있는 미국보다는 훨씬 낫다고 본다. 민간에게 넘길 것이 있고 넘겨선 안될 것이 있다. 모든 것이 민간에게 넘어간 미국은 결국 대기업들에게만 유리한 민주주의 아닌 자본의 나라가 되었다.


저자가 로스쿨로 진학을 결심하게 된건 뜻밖에도 한국에서 군대생활을 할때 함께 있던 선배의 우연한 충고 때문이었다고 한다. 군대에선 공부가 그렇게 재미있더니 사회에 나와선 그렇게 재미가 없단다. ㅎㅎ 여튼 그렇게 로스쿨로 진학해서야 우연히 전태일 평전을 읽고 조영래 변호사를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전에는 보지 못했거나 볼수 없었던 것들에 조금씩 관심이 가기 시작하여 노동법, 인권법, 형사법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다른 형태로 여전히 인간 최소한의 요구 마저 외면당하고 있는 현실이 아직 진행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솔직하게 아직은 그분들처럼 용기 있는 삶을 살고 있지 못함을 고백하고 부끄러워한다. 하지만 그들을 기억하고 가슴에 품고 그들의 삶에 깊은 존경과 높은 찬사를 보내고 있는 저자의 마음 십분 이해한다. 우리는 누구나 히어로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누구나 품을 수 있다. 정의의 가치를.

 


 

유유히 흐르는 물처럼 살았고, 또 형태가 없는 물처럼 살아봤으니, 법을 배우고 난 뒤엔 나도 한 번쯤은 거칠게 몰아치는 물처럼 세상을 뒤흔들어보자고. 이 다짐 하나만큼은 꼭 이루어보고 싶어 '사회'를 다루는 노동법, '사람'을 다루는 인권법, 그리고 '정의'를 다루는 형사법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다가 이 모든 걸 골고루 다룰 수 있는 '사회정의부' 소속검사를 지망하게 되었다. 하지만 막상 검사실에 들어와 바라본 법전 너머의 현실 세상은 상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거대하고 복잡했다. 거칠게 몰아치는 건 내가 아니라 요동치는 세상이었고, 거기에 속수무책으로 흔들리는 건 세상이 아니라 나였다. 그렇다보니 본격적으로 법을 공부하기에 앞서 세웠던, 세상을 뒤흔들어보자는 그 다짐은 이제 많이 희미해졌다. 사실 이제는 딱히 그러고 싶은 마음도 없어졌다. 크고 굵직힌 사건들에 연연하기보단 작고 사소한,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일생이 걸릴 만큼 커다란 일들을 살피고 공감하는 일이 더욱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꿈의 크기가 줄었다고도 볼 수 있고, 현실적인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내 모습이 싫지 않을 걸 보니, 한편으론 '진짜' 검사가 되어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p. 240~241)


저자의 글은 한줄한줄 솔직담백하게 와 닿았다. <두 얼굴의 법원> 책을 읽으며 느꼈던 사법농단의 심각성도, <법에도 심장이 있다면> 책을 읽으며 느낀 개인적인 공명심도, <나는 뉴욕의 초보검사입니다> 책을 읽으며 다 떨쳐버릴 수 있었다. 법에 대한 생각을 초심으로 돌아가게 하는 초심의 검사가 전해주는 남의나라 법현실이 사그라들었던 내가 속해있는 법현실에 대한 희망을 다시 살려주었다. 가볍고 쉽고 재밌게 읽히는 책이지만 개인적으로 의미가 남는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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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에도 심장이 있다면 - 법정에서 내가 깨달은 것들
박영화 지음 / 행성B(행성비)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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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정에서 내가 깨달은 것들 >>

 

책은 30년 넘게 법조인으로 살아온 저자가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자전적 에세이다.

저자는 1959년 강릉생으로 23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2002년 까지 16년간 판사직을 수행하다가 이후 변호사로 활동중인 분이시다.

어제 읽었던 '두 얼굴의 법원' 에서 판사계에 대한 현실을 알고 나니 개인적으로 회복이 좀 필요했다.

물론 사법농단 이 일어나던 때에도 용기있는 판사들이 있었기에 그나마 이렇게라도 수습이 되는 중이라는 희망적 결론을 내린 책이었지만 그래도 읽으면서 쌓인 피로도를 낮추고 싶었다.

그래서 법에도 심장이 있기를 바라는 제목에 끌렸다.


그런데... 판사직을 16년간 일했고 2002년 부터 2019년 현재까지 변호사 생활은 17년을 넘어가고 있는데, 책의 내용은 대부분 판사직에 있을 때의 일들을 이야기 하고 있었다.

판사로서 보낸 시간보다 변호사로 보낸 시간이 더 긴데 판사로서의 관점을 유지하며 쓴 내용들은 왠지 자서전적 분위기가 느껴진다. 자서전을 쓰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자서전에서 자신의 경험들의 장점들만을 부각시킨다.


본인이 판사로서 법의 판단을 내려야 할때의 고충을 이야기 하며 자신이 얼마나 심사숙고해서 최대한의 훌륭한 결정을 내렸는지 줄줄이 풀어놓는다. 할아버지가 '내가 젊었을 때는 말이야~' 하며 모험담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듯이...

군법무관 으로 일할때는 군법정에서 일반병사의 지나친 실형을 감해주기 위해 상관과 맞짱뜨고, 형편이 어려운 피의자의 상황에 마음이 아파 양말을 보내주었으며, 심판보다는 화해로 유도했고, 고집불통 주심을 설득시키기 위해 배석판사로서 배려있는 행동을 얼마나 잘 했는지, 사건 하나하나마다 억울한 일이 생기지 않게 얼마나 잘 해왔는지 이야기 한다. 변호사로 활동할 때도 의뢰인이 10억을 준다해도 경우가 아니면 수임받지 않았고, 의뢰상담만으로 소송까지 가지 않도록 해준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이야기 한다.


그렇다고 읽기 거북할정도로 자화자찬만 하는 책은 아니다. 그런 경험들 속에서 법은 법정은 어떠해야 하는지 이상적 모습에 대해 하는 이야기들은 구구절절 바람직한 문장들도 많았다.

 


 

법을 존중하고 법의 존엄성을 지켜야 한다는 사실이 법을 만고불변의 진리로서 무조건 수호해야 한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옳지 못한 법은 고쳐야 한다. 법은 정의롭고 올바르게 사람들을 이끌고 권리를 지키는 동시에 법 자체로도 굳건히 서야 한다. 따라서 옳지 못한 법을 거부하고 비난하기보다는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 정당하게 고쳐야 한다. 그래야 그 법을 모두가 인정하고 모두가 따른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법이 진짜 법이다. (p. 57)


판사는 정의롭고, 검사는 용맹하며, 변호사는 따뜼하다. 이는 아마도 법의 최전방에서 움직이는 대표적인 직업군에 기대하는 우리의 이상형이 아닌가 싶다. 법조인 대부분이 이런 이상형이 되고자 노력하지만 안타깝게도 세상의 모든 파나가 합리적이고 공정하지 않듯, 검사 또한 모두 용맹하고 정의롭지는 않다. 물론 변호사도 마찬가지다. (p. 103)


일반적인 디케상은 두 눈을 감거나 가리고 있다. 이는 디케의 정의가 인종, 계급, 성별에 차등을 두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런데 우리 대법원 로비에 서 있는 디케상은 두건으로 눈을 가리거나 눈을 감은 모습이 아니라 두 눈을 멀쩡히 뜨고 있다. 이는 두 눈을 부릅뜨고 실체적 진실을 밝히겠다는 강한 의지의 상징이라고 한다. 그리고 오른쪽에 엄격한 법 집행을 상징하는 칼을, 왼손에 공명정대함을 상징하는 저울을 들고 있는 일반적인 디케의 모습과는 달리 대법원의 디케상은 오른손에 저울을, 왼손에 법전을 들고 있다. 이 역시 다른 어떤 것도 개입시키지 않고 오로지 법에 근거해 공정하게 판정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일 테다. 사실 정의의 여신상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각 나라마다 형태가 조금씩 다르다. 하지만 어떤 형태든 거기에 담긴 의미엔 차이가 없다. 공정한 잣대로 진실을 밝히고 엄정하게 판정해 공동체에 정의가 실현되도록 하겠다는 다짐 말이다. (p. 112)

 


 

디케상의 모습이 다르다는 것은 대법원에 가보지 않은 나로서는 신선했고 다른 나라들의 디케상도 궁금해지면서 우리나라가 그토록 법전을 중요시 한다면 법이 정말 중요한건데 입법기관의 요즘 행태를 보면 한심하기 그지없다...

 


 

나는 16년 넘게 판사로 근무하면서 단 한 건에 대해서도 누군가의 지시를 받아 판결을 내려본 적이 없다. 권위적이었던 옛 시절, 간혹 외부의 간섭이나 압력이 가해지면 선배들은 당당히 자신의 소신을 편 다음 법복을 벗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만큼 독립성은 법관에게 생명과도 같은 것이다. (p. 64)

 


 

저자는 사법농단을 의식했던 걸까? 지시를 받아 판결을 내려 본적은 없지만, 소신있는 선배들은 결국  법복을 벗어야만 목소리를 낼수 있었다는 건 안타까운 조직문화 아닐까?법관의 생명같은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 법복을 벗어야 했다면 더이상 올바른 법집행을 못하게 된건데 그것이 과연 법관의 생명을 지킨걸까 못지킨걸까?


2002년 까지 16년 판사직을 수행했다고 하니까, 1986년 부터 였다는 계산이 나오는데... 그 뜨겁던 시절 판사로서 떳떳하게 일했다면 박수쳐주고 싶다. 하지만 그이후 대형로펌에 들어가 기업편에 선 사건의 변호를 위주로 하고 있는 경험들에 대해선 별다른 언급이 없다. 왠지 이분... 조만간 선거포스터에서 뵐 것만 같다;;;

내가 몰라서 일수도 있지만 사법농단 사태 이후 판사들의 책이 눈에 종종 띈다. 대표적으로 문유석 판사의 책이 있겠지만, 그 책 말고도 신간들중엔 소년법정판사의 책도 있었고 김두식 교수의 법정관련 책도 있었다. 검사 변호사 의 영화같은 사건 일화 책이 아닌 법정과 법 자체에 대한 책 혹은 판사들의 의견은 최근에서야 눈에 띄는 걸 보면 판사들에게도 언론의 자유화?! 시대가 온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은 최대한 목소리를 내지 않으려 한 집단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그 집단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드러나지 않았던게 아닐까...

저자는 사법농단 사태 이후 추락된 판사계의 이미지를 회복시키기 위해 현재는 변호사 임에도 17년 전과 그이전의 경험들을 상기하며 올바른 판사가 있었음을 알려주고 싶었던 걸까...


여하튼 법조인으로서 개인적 의견을 담은 에세이니까 자화자찬이든 이상향수립이든 뭐든 다 괜찮겠지만 그래도 법에 심장을 부여한 사람이 저자 한사람만은 아닐진데... 좀... 아쉬웠다.

그래도 정말 이런 마인드의 판사들만 계시다면 아니 전부는 아니더라도 많이 계시다면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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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얼굴의 법원 - 사법농단, 그 진실을 추적하다
권석천 지음 / 창비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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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농단, 그 진실을 추적하다

양승태 코트 사법농단 사건의 진실, 마침내 드러나는 법원의 숨겨진 얼굴

판사 이탄희는 왜 두 번 사표를 냈나

권석천이 추적한 '양승태 코트 사법농단'의 진상!

강제징용 재판, 판사 뒷조사, 청와대 유착... 그 내막을 밝힌다>>

 

 

묵직한 책이었다.

읽기 전엔 사법농단 에 대해 너무 몰랐다는 반성과 판사에 대한 호기심으로 선택했는데,

읽고 나니 사법계 실태에 대한 안타까움과 판사들의 양심에 대한 의문으로 읽기 전보다 더 무거워진 책이었다.

하지만 논픽션을 이렇게 손에 땀을 쥐고 읽긴 오랜만이었다. 이미 벌어지고 이미 알려진 사건에 대한 기록이었음에도 다음이 어떻게 진행될지 너무 궁금해서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까지 손에서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제가 이 책을 쓰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이 중대한 상황을 또다시 무관심과 진영논리의 휴지통에 욱여넣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서로의 과거'를 손가락질하는 대신 '우리의 현재'를 이야기하고, '모두이 미래'를 바꾸고 싶기 때문입니다. 관련자 몇몇의 처벌을 판단하는 형사법정의 좁은 틀에 '사법농단'의 모든 것을 맡길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읽는 여러분께서 관심을 가질 때 법원의 변화가 시작됩니다. 법원이 달라지면 그 변화는 사회 곳곳으로 퍼져나갑니다. '자유,평등,정의'가 대법원 장식벽에 머무르지 않고 현실 속에 약동할 때 여러분과 저의 일상은 바뀔 수 있습니다.

이제 서막을 올렸을 뿐입니다. 재판은 이어질 것이고, 증거와 증언은 계속 나올 것이고, 다양한 측면에서 저마다의 평가가 내려질 것입니다. 이 순간에도 본질을 흐리려는 시도는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권력에 선악이 없듯 진실에도 선악이 없습니다. 맞서지 않으면 진실은 지켜지지 않습니다.

조금은 다른 세상에 살고 싶다는 바람으로 이 책을 세상에 내보냅니다. 부디 함께 고민하고, 토론하고, 행동하고, 대안을 찾아갔으면 좋겠습니다.

(프롤로그 p. 7 )>>

저자는 기자다. 법대 출신 기자로 언론사의 법조취재팀에서 오랜시간 일했다. 논설위원, 보도국장을 거치며 법조인들을 오래 옆에서 지켜봐왔다. 그래서 더 안타깝고 아쉽고 미안한 마음까지 들정도로 친분이 있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기자는 취재대상이 아닌 독자를 위해 글을 써야 한다는 신념에 더 우선을 두었음을 읽는내내 느낄 수 있었다.

변호사, 검사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사건별로 제법 각인된 이미지가 있다. 소수의견편에 선 정의로운 변호사, 경찰의 수사력과 군인의 위계질서와 폭력배에 준하는 깡을 가진 검사. 그런데 판사는?? 변호사와 검사의 대치 속에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는 권한이 있는 것은 판사인데, 그 중요한 역할의 판사를 그동안 왜 몰랐을까 싶을 정도다. 판사의 이미지로는 고작 포청천의 판관 정도만 떠오를뿐;;;

사상초유의 탄핵사태를 거치며 헌법재판소의 재판관들이 정의의 심판자처럼 비춰질때 대법원에는 또다른 심판관들이 있었다. 그들이 실은 국민대다수와 더 밀접한 판결을 내리는 핵심판관들이었다. 사법농단 기사들이 쏟아질때 부패정권의 한 가닥 정도로만 여기고 피곤함에 넘겼었는데, 아니었다. 대통령이 누구였건 관계없이 그들만의 조직내에서 썩을만큼 썩은 고름이 터진 것이었다. 물론 그런 조작이 통했던 정권들이었기에 가능한 것이기도 했지만...

 

<<사법권 독립의 두 기둥은 '법원의 독립' 과 '법관의 독립'이다. 두 가치는 같은 길을 걷지만 갈림길에 서기도 한다. 외부로부터 독립해야 하지만 내부로부터도 독립해야 한다. 대법원장도 재판에 관한 한 판사에게 지시나 명령을 할 수 없다. 지시나 명령을 하면 그 자체로 헌법 위반이다. 판사의 판단을 구속할 수 있는 것은 헌법과 법률, 그리고 스스로의 양심뿐이다.

(p. 15)>>

판사조직에도 상관이 있고 위계가 있지만, 적어도 사건에 한해서는 판사는 온전히 독립성을 보장받아야 한다. 그런데 대법원장이 사법부를 자신의 개인조직처럼 여겼고 판사들을 수족부리듯이 했으며 그 수족들은 정치권과 연합하여 사건의 판결에 입김을 불어넣었다. 심지어 김앤장이라는 외부회사와의 공조도 서슴치 않았다. 뇌물을 받거나 지위보존을 위한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치적을 위해 자신이 생각하는 대법원의 위상을 세우기 위해 사법농단이라는횡포를 부렸다. 그 행동들속엔 국민에 대한 의무와 정의에 대한 책임은 없었다.

2017년 이탄희 판사에게 법원행정처에서 일하자는 제의가 들어온다. 판사들에게 대법원의 법원행정처는 가장 중요한 요직이라고 한다. 승진이 보장된 라인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업무인수과정에서 그는 생각지 못한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자신이 속한 학회의 세미나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윗선지시에 의해 부당한 목소리를 내기를 요구받고, 판사들에 대한 성향파악 뒷조사가 있어왔으며, 권력관계에 얽힌 조직서열에 충성하는 판사들이 있음을 보게 된다. 하지만 처음엔 이해해보려고 노력했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곳 아닌가. 그동안 가져왔던 믿음을 한순간에 버린다는 건 쉽지 않는 일이다.

 

<<분리 통치의 체계 안에서 자신의 고민을 같은 조직 사람들에게도 터놓지 못하는 상황이 되면 어던 부당한 일이 맡겨져도 해내야 할 것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낙오되지 않기 위해서 쫓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아닐까.

(p. 62)>>

하지만... 점점 드러나는 판사조직내의 권력의 실체에 그는 실망했고, 자신도 그들처럼 되기는 싫었다. 적어도 처음엔 개인적 명예만을 생각한 판단으로 사직서를 내기로 결심했었다

<<그날밤 이탄희가 결단한 것은 '유능하지 않기'였다. 우리는 유능함을 가치있는 것으로 여기지만 실은 유능함만큼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것도 없다. 유능해야 할 때 유능해야 하는데, 무능해야 할 때 유능할 때가 많다. 잘못 유능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법원행정처 판사들의 모습에서 발견하게 된다.

유능하지 않기도 마음먹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무능하다'는 말을 듣고 싶은 사람은 없다. 이탄희는 '유능하다' 는 말도, '무능하다'는 말도 듣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유능하지도, 무능하지도 않기로 결심했다.

의식이 존재를 규정하는 게 아니라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 자신이 한 행동에 기준을 맞추게 된다. 한번 기준을 낮추면 계속해서 낮추는 수밖에 없다.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논리를 만들어내고, 그 논리들이 기준을 끌어내리는 악순환에 빠진다. 그것이 쉽게 무릎 꿇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기준을 낮추느냐 마느냐를 결정하는 첫 순간이 중요하다. 그때 어떻게 결정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가게 된다. 시작점의 작은 각도 차이가 가면 갈수록 큰 차이로 벌어진다. 당신이 인생의 갈림길 앞에 섰다면 첫발을 내딛기 전에 고민해야 한다. 조직논리에 가담하기 전에 삶을 건 고민을 해야 한다. 한번 들어가면 절대 못 빠져나온다.

(p. 76, 77, 78)>>

사직서는 반려되고 원래 일하던 곳에서 재판하는 판사로 남기로 한 그에게 폭풍같은 며칠이었다. 다시 일상으로 원래데로 돌아온 것이었다면 그에게 개인적으로 더 평탄했을 것이다. 하지만 요직에 발령받고 정식출근하기도 전에 제자리로 돌아온 그에 대한 시선은 그동안 누적되어왔던 의문들을 터트리는 계기가 됐고, 그렇게 사법농단의 진실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한다.

<<조직논리는 무섭다. 조직을 위해 개인이 희생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조직만 무사할 수 있다면 한 사람의 명예나 인격쯤은 한입에 집어삼킨다. 어느 조직에서나 내부 고발자가 나타나면 바로 공격이 시작된다. 사생활이나 인성에 대한 공격이다. 문제 삼을 것이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공격한다.

조직에서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도 마찬가지다. 피해자는 대개 상급자가 아닌 하급자다. 피해자에게 인격적 모멸감을 주고 사회적 고립감을 준다. 조직에서 배겨날 수 없게 한다.

(p. 131)

우스운 얘기가 될 수도 있지만, 만일 사표를 낸 판사가 이탄희가 아니었다면 많이 달랐을 거예요. 이탄희는 에이스 중의 에이스였거든요. 재판 잘한다는 소문도 났지만 행정처TF일도 많이 했어요. 그것도 굉장히 열성적으로 하면서, 샤프하고, 예의바르고... 그러니까 다들 인정했죠.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 판사였어요. 평판이 좋았던, 아니 굉장히 좋았던 판사가 무슨 부당한 지시를 받고 사표를 썼다는 것만으로, 그걸로 게임 끝이었던 거죠.(지방법원 부장판사)

(p. 135)>>

이탄희 판사의 사표였기에 많은 이들의 의견을 한데 모을 수 있었다. 진행되는 과정을 보면서 그는 결국 두번째의 사표로 판사직에서 물러난다. 피해자에 가까운 그의 사표는 가해자들에 대한 분명한 메시지를 던지는 사표였다. 하지만 그 메시지가 얼마나 퍼졌는지는 잘 모르겠다.

사법농단의 핵심 양승태 전대법원장이 법원에서 마지막 메시지로 '교각살우의 우'를 범하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교각살우 란 '쇠뿔이 좀 비뚤어졌다고 해서 쇠뿔을 고치려다간 소를 죽일 수도 있다'는 뜻이인데, 크고 작은 잘못이 있더라도 시스템에 혼란이나 악영향을 줄 수 있다면 그냥 넘어가는 것이 옳다는 논리다. 그는 끝까지 자신이 세운 대법원의 시스템을 옹호하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쇠뿔이 삐뚤어졌다고 누가 쇠뿔을 통째로 뽑겠다고 막 달려드나? 목숨을 위협할 정도라면 그냥 막 뽑나? 다른 방법을 찾지? 그냥 덮어두고 냅두는 것이 아니라! 그는 자기자신이 대법원의 목숨이 담긴 쇠뿔인줄 알았다 보다. 오만이 하늘을 찌른다. 재판을 신성하게 진행해야 하는 것이 판사이지, 신성한 재판을 진행할 힘을 지녔다고 해서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신성한것으로 간주돼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그 자신을 건드림으로써 재판의 신성함을 침해당했다고 여길것이 아니라, 재판의 신성함을 침해한 그 자신의 죄를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처벌받아야 한다.

 

<<외압에 흔들린 판사들도 있었지만 흔들림 없이 재판 독립을 지킨 판사들도 있었다. 그들로 인해 재판 독립이라는 가치가 훼손됐다는 사실에 좌절하지 않을 수 있다. 그들에게서 희망을 본다.

어떻게 해야 할까. 햇빛만큼 강력한 정책은 없다. 투명성을 높이면 조직논리가 설 곳은 사라질 것이다. 시민들이 조직의 내부까지 들여다볼 수 있게 하라. 조직의 문 앞에 걸린 빗장을 풀고 누구든 들어와서 볼수 있게 하라. 그것으로 조직논리 너머의 신세계를 열어젖힐 수 있다. 문 하나가 열리면 다른 문들도 열리기 시작할 것이다. 개혁은 연결될 수록 완벽해진다.

'사법농단' 사태는 구시대적인 시스템이 더이상 기능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내부자 몇몇이 입을 맞춰 은폐하면 감출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법원에도 교과서에서 읽은 대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세대가 등장하고 있다. 이탄희의 저항은 새로운 세대의 계절이 오고 있음을 알리는 예고편이다. 뒤이어 나타난 희망의 징후는 전국법관대표회의 이다. '판사블랙리스트'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시작됐던 판사들의 자발적인 회의체가 법원의 공식 기구로 자리잡았다.

(p. 376, 392, 399>>

저자는 아직 갈길이 멀긴 하지만 개혁은 시작되었다고 희망의 씨앗을 기대하며 마무리 짓는다. 나도 믿고 싶다. 이참에 판사조직도 조직논리에 휘둘리지 않는 정말 공명정대한 곳으로 거듭나기를 진심 바란다.

하지만 이탄희 판사는 자신의 꿈이었던 판사직에서 사직후 현재 공익변호사단체 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고, 양승태와 수하들의 재판은 아직 진행중이며, 새로 대법관이 된 김명수 판사의 개혁은 가시화된 것이 없다.

국가의 정의를 세워주는 곳 법원에서 진정한 정의가 실현되려면 소수의 판사들에게 기댈것이 아니라 국가의 주인인 국민이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이 책은 좀 더 많이 읽혀져야 하고, 재판은 계속 주시해야 하며, 올곧은 판사들에겐 응원의 박수를 보내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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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국가들 - 누가 세계의 지도와 국경을 결정하는가
조슈아 키팅 지음, 오수원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19년 7월
평점 :
절판


<<누가 세계의 지도와 국경을 결정하는가

다시 던지는 질문, 국가란 과연 무엇인가?

지도에 없지만 실재하는 나라들의 경이롭고 안타까운 이야기>>

 

저자는 서문에서 이 책의 목적은 지구상에서 국가들의 지정학적 배치가 어떤 과정을 거쳐 현재의 상태에 이르게 됐는지, 그 배치 상태가 왜 그토록 오랜 세월동안 큰 변화 없이 유지돼왔는지, 나아가 현 상태를 바꾸는 것이 가능한지, 그것이 바람직한 일인지를 탐색하는 데 있다고 밝히고 있다. 저자가 이 문제를 설명하기 위해 대표적인 예로 든 5개의 나라아닌나라들을 나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압하지야, 아크웨사스네, 소말릴란드, 쿠르디스탄, 키리바시.

이 다섯 국가의 현재 상황들은 국가란 무엇이고 국경이란 무엇인지 에 대해, 단순한 답을 가졌다고 생각했던 이 질문들에 대해, 쉽게 답할 수 없는 굉장히 복합적인 문제점을 내포한 것들이었는지를 깨닫게 해주고 있었다...


책의 서문에 해당하는 [들어가며] 에서 책의 주제와는 관계없지만 개인적으로 무척 당황스러운 문장을 만났다.

<<트럼프는 인터뷰를 했던 기자에게 중국 주석 시진핑과 대화하는 동안 "한국이 실제로 중국의 일부였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한 것이다.(p.29)>>

헐... 트럼프는 정말;;; 여러가지로 할말을 잃게 만드는 사람이다.;;;


1장 <국가 체제가 지배하는 세계> 에서는 [압하지야] 에 대한 이야기 이다.

[압하지야] 는 러시아의 지원을 받고 있는 분리주의 소수민족 거주지로 국제사회가 '조지아'의 영토로 인식하는 곳이다.


<<이 책을 쓰기 위해 조사를 하러 다닌 곳에서 내가 늘 들었던 불만은 다양한 민족 집단에게 엄연한 독립국 지위를 누린 역사가 있다는 사실을 강대국들이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영토 문제가 불거지는 지역에서 과거는 단순한 과거가 결코 아니다. (p. 41)>>

 

압하지야 는 고유의 언어가 있는 독자 문화권으로, 8세기부터 11세기까지 엄연히 주권이 있는 왕국으로서 존재했다고 한다. 그뒤 조지아, 오스만제국, 러시아의 통치를 받으며 半자치 체제를 갖고 있었는데, 공산주의가 러시아를 통치하던 시대에 '조지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내의 자치 공화국으로 지정받았었다가, 1991년 조지가 가 소련에서 독립하면서 벌어진 유혈 내전에서 압하지야의 자치는 막을 내렸고, 현재 압하지야를 향한 조지아 와 서구 세계의 대체적인 평가는 이곳이 러시아가 점령한 괴뢰 국가라는 것이다. 압하지야 인들은 자국 영토에 주둔하고 있는 수많은 러시아군을 조지아 공격을 막기 위한 필요악으로 간주하고 있으며, 조지아나 러시아로 재병합되는 것을 극렬히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세계는 더이상의 새로운 국가의 출현을 원하지 않는다.


무주지, 현대국가 영토와 고대 정부와의 정치적 무연속성, 베스트팔렌 체제, 민족주의, 발견자우선주의, 민족자결주의 등 국가가 형성된 역사를 되집어 보면 현재의 국가과 국경선에 대한 생각들은 점점 혼돈에 빠진다.


<<전후 몇 년 동안 UN 회원국 자격은 국가 지위의 황금률이 됐다. UN 회원국 자격을 받았다는 것은 전세계 국가 공동체에 실제로 속한다는 '공인증명서'였다. 창설 당시 UN 회원국은 51개국 이었다. 그 후 회원국이 약 200개로 늘어난 과정은 탈식민지화, 즉 역사상 가장 큰 흐름으로 존재했던 '건국'의 이야기다. (p. 70)

20세기 후반에 태어난 신생국들은 윌슨이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유럽에 제시한 것처럼 특정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문화적 분포를 바탕으로 새로운 영토 국가로서 성립된 것이 아니라, 과거 유럽 식민지에 그려졌던 국경을 기반으로 국가가 된 것이었으며, 이는 다분히 의도적이었다. 탈식민지화의 물결로 당시 제3세계라고 불리던 지역에 수십 곳의 신생 독립국이 탄생했지만, 이 나라들은 수십 년 전 베를린이나 파리에서 유럽 열강이 그려놓은 국경선을 바탕으로 생겨났다. 이렇게 그려진 국경선은 해당 지역에 살고 있던 주민들과 의논 한 번 없이 확정됐지만, 이제 개발도상국이라 불리게 된 이 신생국가들의 정부는 1945년 부터 지금까지 대체로 그 당시의 국경을 유지할 것을 요구해왔다. (p. 73)>>

 

현재 국가들의 건국과 국경선은 시작부터 이미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하지만 강대국들에 의해 그어진 국경선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으며, 따라서 이곳저곳에서의 작은 독립국들의 요청은 여전히 강대국들에 의해 묵살되고 있다. 압하지야 도 그런 작은 곳이다.


<<냉전 시대에 기원을 둔 장구한 내전 끝에 1993년 에리트레아가 에티오피아로부터 독립을 쟁취했고, 2002년에는 동티모르가 인도네시아에서 독립했으며, 2011년에는 남수단이 수단으로부터 독립했다. 세계지도는 이제 정체 상태로 돌입했고 이후 변화 없이 유지됐다. 지도에 더 이상의 조정을 가하지 않으려는 까닭은 이해할 만하다. 예나 지금이나 국경선 변경에는 살상이 수반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건국을 놓친 나라들에게 정체 상태는 가혹한 처사다. 이라크건 우크라이나건 캅카스건 간에 국경 유지는 그 자체가 바람직한 선으로 간주되기에 이르렀다. 국제적 지지를 받지 못하는 압하지야 같은 지역들이 탈퇴한 유사국가 이상이 되려면 끔찍하게 고통스러운 시기를 겪어야 할 것이다. 요컨대 1990년대 초반까지 나라를 세우지 못했다면, 그런 집단의 운은 다한 셈이다.(p. 74)>>

 

크게는 세계대전 이후 작게는 소련의 해체 이후 국가들이 생겨났고 국경선이 그어졌다. 하지만 그 뒤로도 몇개의 나라들이 생겨났다. 다만 그 나라들은 여전히 분쟁중이거나, 그 나라들을 보며 다른 지역에서 독립의 열망이 생겨나고 있어서 계속 작은 독립국들의 생성을 지켜볼 수도 없는 노릇인지라(작은 독립국의 국가 인정은 독립에서 그치지 않고 인종청소로 이어져왔다는 문제가 있다) 그저 '유지' 만 하고자 하는 입장도 이해는 간다. 하지만 애초에 잘못 그어진 국경선인 것을 어째야 할런지...


영토는 있으나 주권을 인정받지 못하는 압하지야 대비 영토가 없어도 주권을 인정받고 있는 '몰타기사단' 이 있다. 전에도 몰타기사단 관련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일종의 봉사단체로서 그 역사성이 주권까지 만들어낸 특이한 집단이었다. 몰타기사단 의 예가 신생독립국을 원하는 압하지야에게 답을 줄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2장 <나라들 사이에 끼인 나라> 에서는 [아크웨사스네] 를 다룬다.

[아크웨사스네] 는 미국과 캐나다 국경 지대에 걸쳐 있는 원주민 보호구역 성격의 정치체이다. 역사적으로는 미국과 캐나다보다 훨씬 이전에 존재했던 곳이지만 국가로 인정받고 있지 못하고 있는 곳이다.


아메리카 를 신대륙이라고 불렀지만, 사실 이미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인도사람도 아닌데 인디언이라고 불리며 원시종족 정도의 취급을 받고 있는 원래의 주민들은 캐나다 와 미국 이곳저곳에 작은 공동체 마을에 잔존해 있을 뿐이다. 그중에서도 '아크웨사스네' 는 캐나다와 미국의 국경 사이에 위치한 지역이라 더욱 특이한 상황에 처해 있다. 예를 들어 집에서 회사까지 오고가려고 해도 미국의 승인 캐나다의 승인을 매일 같이 받아야 하는 곳인데, 주민들은 아크웨사스네 자치여권을 한번쯤 들이밀어 보고 거부당하느라 시간이 더 걸리는 그런 애매한...


<<인류학자 제임스 스콧은 현대 국가의 주요 프로젝트 중 하나가 사회의 "가독성을 높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회의 가독성을 높인다는 것은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질서를 부여함으로써 사회가 특정 지역의 지식에 의존하지 않고 중앙집권적 관료제의 통제를 받을 수 있도록 일원화한다는 뜻이다. 현대 국가는 안정적이고 설명하기 쉬운 국민, 질서정연하고 획일적인 체제를 선호한다.

오늘날 인디언 국가의 존재는 그 자체로 시민권 및 영토의 가독성에 대한 도전이다. (p. 125)>>

 

사실 인디언 입장에서는 정말 억울할 것 같다. 먼저 살고 있었는데 일방적인 침략을 당했고, 뒤늦게 국가를 세워보려했지만 철저히 무시당하고 있다. 상대가 미국이니만큼 가능성이 없어보여서 더 안타까운 노릇이다. 영화에서 보는 인디언들만의 문화는 독특하면서도 약간 신비스러운 면이 있다. 그들만의 문화와 정체성을 인정해주기만 해도 굳이 국가로서 독립을 주장하지 않을 것도 같은데, 캐나다에서나 미국에서나 인디언 원주민들의 생활은 몹시 열악하다...


자신들만의 독특한 체제가 이미 있으나 주권이 없는 아크웨사스네 를 마무리 하며 저자는 '에스토니아'의 전자시민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에스토니아 는 전자 시민권을 제공하고 있는 세계 최초의 국가이다. 사실 그 시민권이 딱히 필요한 건 아니지만, 인디언 원주민들에게 그런 정도의 권리라도 자치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해줄 수는 없는걸까?


3장 <보이지 않는 국가> 는 [소말릴란드] 에 대한 이야기 이다.

[소말릴란드] 는 소말리아 북부의 半자치 지역으로서, 국가로서의 요소를 제대로 갖췄는데도 국제사회에서 묵살당하고 있다고 한다.


<<소말릴란드는 어딘가에 있는 곳인 동시에 아무데도 없는 곳이기도 하다. 그 주된 이유는 세계의 다른 대부분의 지역이 이곳을 모르거나 이곳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p. 144)

국가의 지위는 법적 개념이지만 이를 얻는 일은 전적으로 정치적 과정이다. 어디가 국가이고 어디가 국가가 아닌지를 구분하는 보편적인 법칙을 확정하려는 시도는 무엇이건 간에 끝내 결실을 맺지 못할 것이다. (p. 147)​>>

 

소말릴란드는 소말리아의 북부지역이다. 해적과 내전으로 유명한 소말리아는 남부지역이다. 남부지역과 달리 북부지역은 비교적 오랜 기간 안정적 체제를 유지해왔지만, 이것을 아는 사람들은 거의 없는 듯 하다. 원래 독립국이었으나 식민지배를 당했다가 독립하면서 남북 지역이 합쳐져 소말리아가 됐고 이 두 지역의 통일은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소말릴란드가 마주하고 있는 실망스러운 현실은 세계지도가 국제법이나 심지어 관습보다도 경로의존성에 의해 현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가들은 현 상태를 바꾸지 않으려는 관성에 빠져 있고, 국민들은 현 상태를 바꾸는 것이 몹시 어렵고 위험을 초래하리라는, 어느 정도는 정당한 우려를 품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p. 165)>>

 

아프리카에는 미국의 절대적 지지에 힘입어 가장 마지막으로 독립국 인정을 받은 남수단 이 있다. 하지만 지금 남수단의 분열과 내전 상황은 소말릴란드에 먹구름만 드리울 뿐이다.


<<20세기 동안 제국의 해체로 세계의 땅은 대략 200개 주권국가들로 쪼개졌고 이는 문제를 해결한 만큼 또 다른 문제를 남겨놓았다. 새로 국가가 된 지역에 살고 있는 이들 중 많은 수가 그 나라 사람이고 싶지 않다는 문제가 그것이다. 문제는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엥서 특히 극심했다. 이 지역에서는 신생국가들의 국경이 영토 자체에 살고 있는 민족의 현실과 연관을 맺고 그려진 게 아니라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유럽 열강의 정치에 의해 그려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식민지를 세웠던 국가나 식민지 지배를 받았던 과거의 국가 모두 전 세계 최대의 민족자결을 향한 윌슨의 원칙에 매진하기보다는 거의 예외 없이 기존의 국경을 그대로 유지하고 싶어했다. 다시 말해서 식민 지배를 받았던 국가들은 독립을 해야 하되, 일단 독립을 하면 그 이상의 국경 재편은 피해야 하는 것이다. (p. 169)>>

 

아프리카 와 중동 지도를 보면 특히 눈에 띄는 것이 직선으로 그어진 국경선들이다. 아프리카와 아랍은 동양이나 서양보다 다양한 부족체가 있는 것으로 아는데 국경을 이렇게 자대고 그은 듯 직선으로 만들어 놓았다는 것은 분열이 일어나지 않을래야 않을수가 없는 상황이다.


사실 우리나라 처럼 고유한 영토와 국경을 오랜 기간 유지해 오고 있는 국가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식민지 지배를 당할 때도 민족이 섞이거나 추방당하거나 국경이 무너지진 않았다. 그래서 아프리카와 중동의 분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면 문화와 부족 관계없이 직선으로 그어진 국경선이라는 것이 얼마나 말도 안되는 상황이란 말인가.


하지만 그렇다고 와서 이제 와서 아프리카와 중동을 부족별로 국가로 인정해 줄 수도 없다.

<<소말릴란드의 인정을 통해 국제사회가 아프리카 식민지 시대 이후의 국경들을 재고중이라는 신호를 보낼 경우 앞리카 대륙 전체의 민족주의 운동에 청신호가 켜져 새로운 내전의 물결이 일어날 수 있다. (p. 180)>>


 

나름대로의 평화를 유지하고 있으면서 국가로서의 인정을 원하는 소말릴란드는 세계의 철저한 무시 속에 그 어디에도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그러한 소말릴란드와 대비하여 저자는 [리버랜드] 라는 지역을 소개한다.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 사이에 위치해 있으면서 두 나라에게 다 별 관심을 받지 않는 지역으로 자유지상주의자들이 사는 곳이다. 무시와 방치를 즐긴다고나 할까... 하지만 소말릴란드는 선진국들의 원조를 절실히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4장 <독립을 향한 꿈> 에서는 [쿠르디스탄] 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쿠르디스탄] 은 흔히 쿠르드 자치구라 불리는 '이라크령 쿠르디스탄' 을 말한다. 이곳은 월드 뉴스의 헤드라인데 단골로 등장하면서도 현재의 중동 지도를 다시 그리려는 시도에서 계속 좌절을 맛보고 있는 곳이라고 한다.


<<쿠르드족에게 로잔 조약은 서구가 저질러왔던 여러 배신 중 하나다. 서구의 배신은 쿠르드족의 현대 민족주의 운동을 규정해왔다. 쿠르드족은 독립을 위해 끊임없이 싸웠고 조약에 제시된 약속을 늘 환기시키곤 했다. ( p. 201)

오늘날의 지구상의 국경선이 어떻게 그려지고 있는지 질문을 제기하지 못하는 상황이야말로 나로 하여금 이 책을 쓰게 만든 이유였다. 모든 국경에는 의문을 제기해야 하며, 국경이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면 그대로 유지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체의 시대, 골치 아픈 통념은 국경을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만이 아니다. 국경 재편이 민족 간 폭력의 원인이 아니라 해결책이 되리라는 통념 역시 곤란하기는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IS가 등장하고 리비아, 예멘, 시리아, 이라크가 몰락하면서 이런 생각이 세를 얻게 됐다. (p. 230)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정 시점에서 현 상태의 국경이 더 이상 효력이 없다는 것만큼은 인정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새 국경을 그리지 않는 것일까? 불행히 역사상 존재했던 국경 분할은 긍정적 효과보다는 부정적 효과를 더 많이 낳았다. (p. 231)>>

 

중동의 국경문제는 종교문제와 얽혀 있어서 더욱 복잡하다. IS 때문에 인식은 더 나빠졌고, 분리주의는 독립으로 이어지는 힘을 얻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살던 곳에서 더이상 살지 못하고 난민이 되어 떠도는 중동 사람들은 이제 무너진 국가의 의미도 국경선의 의미도 다 필요없이 그저 살던 고향에서 살고 싶은 소망만 가지고 있다지만, 그 소망은 결국 분쟁으로 표출되고 있을 뿐인지라 그 해결이 점점 요원해지고 있는듯 하다.


쿠르디스탄 을 다룬 4장의 끝에 무국적자의 삶을 간략히 다루고 있다. 소련의 여권을 가지고 외국에 나왔다가 해체이후 무국적자가 되거나 동독의 소멸후 무국적자가 되거나 중동난민이 되어 떠돌다 무국적자가 되거나 사연은 다양하지만 무국적자로 산다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한국인은 외국만 나가면 열렬한 애국자가 된다는 데 무국적이라니 도대체 상상이 안간다...


5장 < 지도에서 사라지는 나라들 > 에서는 [키리바시] 라는 섬나라가 나온다.

[키리바시] 는 태평양 한가운데 위치한 작은 섬나라인데, 기후 변화 때문에 점점 가라앉고 있어서 '물리적 영토'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나라도 존속할 수 있는가' 라는 문제를 새롭게 던지고 있는 나라 라고 한다.


키리바시는 앞의 나라들 처럼 국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나라가 아니다. 국가로 인정받고 있기는 한데, 기후 변화에 의해 가장 먼저 사라질 위기에 처한 불운의 국가라서 언제까지 국가로 존재할 수 있을 지 알수 없는 나라이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이자, 기댈 만한 천연 자원도 거의 없고 서로 멀리 떨어진 섬들로 이뤄진 키리바시는 그 존재 자체가 애초에 불가능해 보이는 곳이다. 키리바시는 신생국가 중 하나로서 1971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 20세기 밀어닥쳤던 탈식민지 물결의 맨 끝에 있었던 셈이다. 그렇지만 키리바시는 세계지도를 재편하는 다음번 주요 물결의 최전선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곳은 정치적 경계 뿐 아니라 물리적 경계라는 문제에 의문을 제기할 뿐더러 국가의 탄생이 아닌 소멸 문제를 건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p. 258)>>

 

영토가 없어도 주권이 있는 몰타기사단 같은 곳도 있지만, 영토가 있는 상태에서 주권을 행사하던 국가가 외국의 침략이 아닌 자연재해로 영토를 소실했을때, 그 주권은 어떻게 되는 걸까? 바다의 제해권은 어떻게 되는 걸까? 국민들은?


<<저자가 키리바시의 전 대통령에게 물었을때, 그는 이렇게 답한다.

"나는 이 나라가 세계지도상에서 사라진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우리는 독실한 기독교인들입니다. 키리바시인들은 종말이 올 때까지 여기 있을 겁니다. 우리 땅이 없어진다고요? 북극 만년설이 녹기 때문에? 하나님이 여기에다 우리를 데려다놓으시고 그런 계획을 세우셨을 리가 없어요"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p. 279)

타라와를 방문하는 동안 내가 느낀 것은 대부분의 키리바시 주민들이 대체로 이와 가까운 입장이라는 것이었다. 이들의 태도는 전적인 부인까지는 아니었다. 그저 무관심이 만연해 있는 것 같았따. 이곳 주민들은 기후가 변화하고 있다는 데 동의했지만 섬이 사라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p. 280)>>

 

정말 놀랐다. 세계 곳곳에서 인터뷰가 오고 관찰을 하고 모두가 곧 사라질 섬이라는데 정작 살고 있는 사람들은 이런 믿음을 갖고 있다니... 어떤 대통령은 국민들을 이주시킨다며 인접국의 땅을 사기도 했지만 그 땅은 상징적일 뿐 이주계획은 현실성이 없어보인다....이래저래....


<<이 섬나라에서 더 이상 살 수 없게 될 경우에 일어날 일을 고려하지 못하도록 막는 정신적 장벽은 만약의 사태를 대비한 계획을 차단하는 주된 걸림돌이다. 키리바시는 미래에 닥칠 현실을 마주하지 않으려는 세계인들의 태도를 반영하는 축소판인 셈이다. 지도에서 사라지는 나라, 우리는 이런 일을 겪은 적이 한 번도 없다. 따라서 아직 우리는 이런 소멸을 상상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p. 282)>>

 

미래에 닥칠 현실을 마주하지 않으려는 자세는 환경문제에서 가장 많이 두드러지고 있다. 아직 현실화 되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망치고 있는 자연이 언제 어떻게 복수해올지 모른다. 우리나라는 가라앉을 섬나라까지는 아니지만 급속히 변화는 기후와 오염되가는 환경은 우리에게 어떤 미래를 줄 지 계속 이렇게 정면을 마주하지 않고 피하기만 하다가 어떤 사태가 될지 정말 걱정스럽다.


<<확립된 지도는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고, 국제 기구와 강대국들은 지도를 현재 상태 그대로 보존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는 현재의 지도가 가능성 있는 대안보다 반드시 더 낫기 때문이 아니라, 수백년간의 경험이 국경 재편의 파국적 성격과 위험성을 가르쳐줬기 때문이다.(p. 310)

현상을 유지하려는 논거를 전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해도 정말 현상 유지가 옳은가 하는 물음은 던질 가치가 충분히 있다. 오늘날의 세계에 속하는 기존 국가들은 존재하는 것만으로 가치가 있는 조직체가 아니다. 이들의 유용성과 가치는 세계 전체뿐 아니라 국경 내에 살고 있는 자국 국민에게 안전과 복지를 제공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국가가 이런 순기능을 실행하지 못할 때 우리의 과제는 단순히 국경 유지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야 국경을 개선할 수 있는지 질문하는 것이어야만 한다.(p. 311)>>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고 문제의식 조차 갖지 않는 것은 오히려 위험할 수 있다. 불편하고 어렵더라도 질문해 보는것, 그래서 생각해보는 것 그것만으로도 일단 문제자체를 벗어나 답으로 가는 길에 한발짝 걸음을 시작한 것일 수 있다.


책표지 뒤에 다양한 추천사들이 있는데, 그중 <지도에 없는 마을> 저자가 쓴 문장이 눈에 들어온다.

"대부분의 독자들이 전혀 모르는 세상의 영역, 전세계에서 가장 취약하지만 확고한 희망으로 미래를 열어가는 국가들과 만나게 된다. 경이롭고, 따스하고, 절박하고, 안타까운 여정이 될 것이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나는 <지도에 없는 마을> 을 읽었다. 이 책을 읽을 때 가볍게 시작했다가 쏟아지는 무거운 쟁점들에 쉽게 책을 마무리할 수가 없었다. 정치적 갈등이 있는 곳과 버려지고 감춰진 장소들부터 상상의 장소까지 모두가 논쟁적인 곳들이었지만, 그야말로 마을 단위여서 신기한 마음반 놀라운 마음 반이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국가들> 을 읽으면서는 실재해 있는데 보이지 않는 취급을 당하는 국가들의 이야기를 국가단위로 역사와 정치성을 이해하며 읽다 보니 더 위협적으로 다가왔다. 생전 처음 듣는 나라들의 힘들고 아픈 이야기... 하지만 세계는 점점더 자국의 이익만을 따지는 대세에 있으니 이거 참 안타까운...

그러나 한사람한사람 이 국가들을 알게 되고 보게 된다면 보이지 않는 국가 에서 보이는 국가 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미국뉴스만 듣고 일본뉴스만 볼게 아니라 세계의 뉴스에 좀더 관심을 가져야 할 것 같다. 이타적 마음으로야 그 나라들이 다 잘 됐으면 좋겠지만, 이기적 마음으로라도 그 나라들에 관심은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 그 국가들이 여전히 보이지 않는 곳에서 국가가 되지 못하더라도, 멀리서나마 그곳의 소식을 알아보고 관심을 가지는 것이 언제 어떻게 우리와 엮일지 모르는 세계의 실상을 좀더 빨리 알아챌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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