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어클리벤의 금화 1
신서로 지음 / 황금가지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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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 한 끼 식사로 잡혀온 소녀, 울리케 피어클리벤. 구조대조차 바랄 수 없는 가난한 남작의 여덟번째 딸은, 죽음의 위기에서도 해박한 지식과 언변으로 이를 모면한다. 급기야 교섭을 통해 용의 혁력까지 이끌어낸 울리케는, 세상을 뒤흔들 거대한 격랑과 마주한다.

브릿G 최장기간 종합베스트셀러 1위이자 정통판타지 문학의 부활을 알린 화제작!

"유감입니다만 지고한 분이여, 황제 폐하께 제 식용의 적합 여부를 확인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표지 문구 中)

와우 정말 대박이었다.

나는 소설도 좋아하고 판타지소설도 좋아하지만, 대부분의 판타지소설들은 한 두권으로 끝나는 판타지의 옷을 입은 소설들이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정말 정통 판타지다!

반지의제왕이 영화화되기 훨씬 전에 판타지문학이 뭔지도 모를때 친구의 권유로 읽게된 그 3권으로 나는 판타지문학에 홀딱 반했었다.

하지만 반지의 제왕은 인간계까 아닌 판타지세계를 기반으로 한다. 인간은 부수적인 존재다.

반지의제왕 작가와 친구사이라는 작가의 나니아연대기 는 동화적 향기가 너무 짙고 인간계와의 구분이 너무 명확하여 크게 재미를 느끼지 못했었다.

트와일라잇 시리즈는 책이며 영화며 오랜만에 홀딱 반했던 작품이었지만, 판타지라기 보다는 로맨스부분에서 반했었다.

해리포터 시리즈는 청소년문학 같은 등장인물들의 성장기와 마법이라는 소재적 판타지가 무척 재미있었지만 거대한 세계관이랄까 그런건 없었다.

그런데 이 작품 정말 정통 판타지다!!

마법사는 그만큼 영지의 산업 발전과 문화, 아울러 군사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분야에서 활약할 수 있는 비대칭 전력이이다. 그리고 마법사와 비견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비대칭전력이 바로 용이다! (p. 35)

용. 지상 최강의 포식자이자 맹수인 동시에 신화의 계보를 증거하는 실재의 현현. 분명히 피를 흘릴 줄 아는 필멸의 육체를 갖되, 재해에 준한 권능을 휘두르는 것이 가능한 반신의 적생자이다. (p. 57)

'라르글드' 는 신들을 모시는 '전사의 인도자', '왈퀴레야'들 가운데 하나의 이름이다. 피어클리벤과 같은 북부인들에게 신들은 직접 기원하거나 구복을 청할 대상으로서 여겨지지 않는데, 신들은 완전하고 고고한 존재이기에 인간의 청을 듣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을 모시는 제장인 왈퀴레야들을 직접적인 신앙의 대상으로서 여기고, 그로써 온갖 공양의 속된 의식이나 싸움의 잔혹함을 합리화할 수 있는 것이다. (p. 181)

류그라들은 중앙대륙의 토착 민족이었다. 그들의 고향은 앞서 지나치며 언급되었던 아우칼 대호의 한가운데 섬처럼 위치한 류그른 숲이었다. 이제는 전설과도 같은 이야기지만, 그들은 숲속에 은둔하며 거대한 신목 류그네라스를 섬겼다고 했다. 하지만 제국의 개국 이후 어떤 알 수 없는 이유로 신목은 차차 고사했고, 결국 이후 류그라들은 고향을 떠나 그 신목의 가지들을 가지고 수십의 행렬로 나뉘어 대륙 곳곳을 누벼왔다. 잘라내었음에도 여전히 잎이 돋아 살아있는 신목의 가지가 뿌리내릴 수 있는 새 고향을 찾기 위해서 말이다. (p. 301)

먼 북부인들을 어르매라고 하죠. 아무튼 그 어르매들은 아주 추운 북방에서 사는데, 그들의 설신을 달래기 위해 엄격하게 골라진 소녀를 제물로 바쳐요. 바쳐진 소녀는 죽는 게 아니라, 음..., 아니, 살아있다고는 하기 어렵긴 하죠. 무언가 생명체를 벗어난 존재가 되어요. 그러고는 일종의 제사장처럼 설신과 인간 사이를 중재해 눈과 추위를 다스리게 되는 거죠. 전설에는 서리심 이라는 무석을 심장 대신 갖고 있대요. 이런 서리심의 무녀들이 어르매의 큰 부족마다 하나씩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죠 (p. 381)

마법사, 용, 무녀, 새로운 종족들 하나하나 자연스러운 배경과 상황설정이 감탄스러웠다.

빈곤은 없음에서보다 무지함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부지런히 궁리해 보아라. 결국 영지에 닿을 것이다. (p. 255)

- 린트부름의 적생자들이 결코 모르는 두 가지가 있다. 첫번째가 허락을 구하는 것이고, 두번째는 자랑하는 것이지. 반면에 우리가 가장 잘하는 게 무언지 아느냐?

... 말씀하소서

- 용서하는 것이다!

너무 기가 막혀 잠에서 깨버린 울리케는 손으로 눈가를 비볐다. 용의 음성이 귓가에 아직도 생생하였다. 그들은 허락을 구할줄 모른다. - 강하기 때문이다. 또한 새삼 자랑할 줄도 모른다 - 원래 그냥 강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숱하게 용서한다. - 가장 강하기 때문인 것이다!

그즈음에서야, 울리케는 어떤 호의를 갖고 있건 간에 이 용이 결코 만만치 않은 대화상대임을 절실하게 깨달았다. 용은 그저 좀 더 힘이 세고 좀 더 머리가 좋은 생물이 아니다. 애초에 사물과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 자체가 다른 것이며, 어쩌면 아무리 그가 울리케와 인간에게 호의를 보인다 해도 인간을 일종의 장기 말로 여기는 가치관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할지 모른다. (p. 358)

그들의 선조가 신과의 맹약을 어긴 데 대한 저주로 결코 언약에 저항할 수 없는 용들은, 그 때문에 결코 거짓말을 할 수 없다. (p. 418)

첫장면에서 강렬하게 등장했던 용은 사실 등장하는 페이지가 많지 않다. 하지만 등장할때마 점점더 강렬한 존재감을 뿜어낸다.

시무나리란 힘의 노래를 말한다. 이는 창조신 에아가 태초에 천지간을 빚을 때 불렀던 노랫말의 일부라고 전해진다. 일반인은 이를 아무리 읊어도 단순한 섬심의 의미 말고는 가질 수 없지만, 에다의 도리에 달한 우리는 그것을 창조신의 권능과 같이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p. 500)

태초의 신 에아 는 가장 옛적으로 올라가자면 수메르문명에 등장하는 신 이름이다. 에다의 서 는 북유럽 신화에 등장한다.

짙은 숲을 배경으로 하는 북부지역의 묘사와 신화적 이름들은 북유럽 신화에 대한 호기심도 종종 불러일으킨다.

이제 피어클리벤은 그들과 무시할 수 없는 악연으로 묶이고 마는 것입니다. 교섭의 여지가 분명하게 생깁니다. (p. 522)

변방 가난한 영지의 남작의 여덟번째 딸이 어느날 갑자기 용에게 납치된다.

그러나 열일곱살의 울리케 피오클리벤은 은 용과의 교섭에 성공하고 언약을 맺기까지 한다.

뒤어어 고블린 과 밤의 거래자들 까지도 교섭의 대상으로 포섭하고 새로운 정치세력인 까마귀금고단 기사의 이 제안에서 새로운 교섭의 등장이 예고된다.

이 판타스틱한 판타지소설은 울리케가 맺는 교섭마다 한단계씩 위로 성장하고 성장할때마다 관련세계의 영역은 넓어진다.

530페이지에 달하는 1권의 내용은 앞으로 펼쳐질 내용들의 앞자락만 조금씩 알려주는 등장인물소개서 같은 책이었음에도 가독성이 짱이었다.

이 재미난 인물들과 설정들이 앞으로 어떤 상황들을 가져올지 점점 더 흥미진진해지리라 예상하기에 충분한 1권이었다.

게다가 신화적 설정을 바탕으로 한 서사적 세계관도 흠잡을 데가 없었다.

북유럽 신화적 마법사와 용과 마수들 및 중세시대적 기사와 귀족과 함께 현대적 논리와 정치와 교섭이 어우러진 멋진 스타트였다.

이런 세계관적 설정을 잘 갖추어 놓은 판타지문학의 인기작가 중에 전민희 작가가 생각난다. 시리즈별로 다 장편이다.

아직 읽어보기 전이지만, 비슷한 시대와 소재를 활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갑자기 궁금해진다.

세부적 묘사가 뛰어나다는 전민의 작가의 작품도 궁금하고 정통판타지가 무엇인지 오랜만에 느끼게 해준 신서로 작가의 '피어클리벤의 금화' 도 어서 완간이 되었으면 좋겠으면 하는 바람이 생긴다. 두 작가의 작품이 최근에 거의 동시에 출간되고 있는 것도 나름 경쟁구도처럼 보여서 흥미롭다. ㅎㅎㅎ

8권 완간을 예상한다는데 이제 2권까지 나왔다. 1권을 읽은 나로서의 선택은 2가지다.

한권한권 나올때마다 손꼽아 기다리며 읽느냐, 8권 다 완간되었을때 쌓아놓고 읽느냐.

고민이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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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한 어머니의 날 1 타우누스 시리즈 9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김진아 옮김 / 북로드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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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그녀는 오지 않았다. 아마 오늘도 오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직접 나서기로 했다!

독일을 넘어 전 세계를 매혹시킨 '넬레 노이하우스' 의 '타우누스 시리즈' 아홉번째 작품이라는데 나는 처음 접하는 작가였고, 읽자마자 바로 팬이 되었다.!

Muttertag 라는 원제의 뜻은 독일어로 어머니날 이라는 단어다. 어머니의 날 이라는 두 단어가 아니라 어머니날 한 단어다.

그런데 한국어판의 제목은 '잔혹한 어머니의 날' 이다.

궁금했다.

소설의 내용을 잘 함축한 이 제목에서 '잔혹한' 이라는 수식어가 어머니 를 꾸미고 있는 것인지 어머니날 을 꾸미고 있는 것인지.

잔혹한 어머니 일까 잔혹한 날 일까

가제본 이벤트에 당첨되어 받은 이 책은 2권인데 손에잡자 내려놓을 수 없는 흡인력을 지닌 작품이었다.

조용한 마을에서 사건이 일어나고 세월이 흘러 누군가 죽고, 상관없다고 여겨졌던 첫번째 죽음과 마지막 죽음은 연결되어 있었다.

수사관이 조사를 하고 범인을 추리하고 정황이 조금씩 드러나고 범인의 범위가 좁아들어 갈수록 나도 저절로 범인을 추리하게 된다.

그런데

이 소설의 매력은 범인을 한번이 아닌 여러번 놓친다는 데 있다.

대부분의 범죄스릴러 소설엔 반전이 있고 강력하게 예상됐던 범인이 아닌 전혀 예상치 못한 범인이 최종적으로 잡힌다.

그런데

이 소설은 그러한 반전이 한번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 사람이 범인일 거야 라고 예상했는데, 다른 인물이 등장하고, 새로운 인물이 범인일거야 라고 예상하는 순간 예전인물이 재등장한다.

뒤집히고 뒤집히는 추리속에 범인이 확실시된 순간이후에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정말일까? 왜일까? 어떻게? 라는 질문들이 솟아오른다.

'타우누스 시리즈' 는 아마도 타우누스 라는 지역에서 일어난 범죄를 해결하는 여형사 피아 의 해결 시리즈인듯 한데, 주인공 형사가 같을 지라도 사건이 매번 다를 것이므로 조금씩 등장하는 앞 사건들의 그림자에 대해 몰라도 큰 상관이 없다. 충분히 이 작품 자체에 빠져들게 된다.

소설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다가 점점 현재의 한 시점으로 모아진다.

화자의 교차등장으로 형사가 되었다가 범인이 되었다가 뜻밖의 한인물이 되었다가 하면서 그들 모두의 심리에 몰입하게 된다.

그날 밤 잠자리에 누웠을 때 그는 삶이 죽음으로 변하는 순간이 얼마나 특별하고 사람을 흥분시키는 것인지 깨달았다. 그날 맛본 전능의 힘을 다시는 잊지 못할 것이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희생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오늘부터 그는 사냥꾼이었다. (1권 p. 15)

중간중간 등장하는 범인의 독백은 싸이코패스의 성장을 독자가 느끼게 한다.

하지만 이 작품에 등장하는 싸이코패스는 한명이 아니다.

그리고 싸이코패스만 절대악인일까? 라는 질문에 아니라는 대답을 하게 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항상 똑같은 소리! 주변의 겁쟁이들과 방관자들은범인에게 최고의 보호막을 제공한다. (1권 p. 250)

주인공 여형사 피아의 이러한 생각은 소설속에 여러번 등장한다.

그래서 살인을 저지른 범인은 당연히 나쁘지만, 일상에서 모른체 하고 방관하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의외로 선과 악의 경계는 뚜렷하지 않게 된다.

피아는 자신과 똑같은 환경에서 자란 킴이 왜 그렇게 됐는지 의아스러웠다. 커다란 변화를 가져온 어떤 계기가 있었던 걸까? 아니면 타고난 천성의 발현일까? 유년기의 경험이 반드시 싸이코패스적 인격발달에 책임이 있는 걸까? 한 사람의 인격적 성장에서 유전인자가 하는 역할은 얼마나 클까? 누구나 정신적으로 다르게 설정된 상태로 태어나니 같은 상황이라도 다르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닐까? (1권 p. 361)

피아의 이러한 생각들은 책을 다 덮고 나서도 계속 남는다. 생각하게 된다.

제목에서 예상되듯이 이 작품은 어머니와 아이의 문제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아이를 버린 여자들이 죄의식을 느끼며 산다고 불쌍해 할 일은 아니다. 그들은 가장 나쁜 부류다. 나쁜 짓이라는 걸 알면서도 저질렀으니까. (2권 p.59)

이 여자는 아이에게 데리러 오겠다고 약속만 하고 결국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우리 엄마처럼. (2권 p. 60)

낳아준 어머니도 길러준 어머니도 잔혹했다.

어머니를 기다리던 아이에게 어머니를 만날 수 있는 날은 일년 중 단 하루 '어머니날'이었다.

하지만 가장 소중했던 그날이, 그에게 일년 중 가장 잔혹한 기억을 준 날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그가 직접 나서기로 했다. 직접 잔혹한 어머니의 '날' 을 만들어 갔다.

악인이 정말 악하면 오히려 깔끔하다. 악인 이 나쁜놈~! 하며 욕할 수 있으니. 그리고 그렇게 악한 놈은 없을 거라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에.

하지만 악인이 정말 악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때 오히려 현실감 높은 스릴러적 긴장감이 찾아온다. 바로 내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을 것만 같아서.

소설속 여러명의 싸이코패스를 보면서 악인의 구분은 모호해진다. 그래서 이 작품의 매력은 더 상승한다. 질문을 남기는 소설은 늘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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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이만 헤어져요 - 이혼 변호사 최변 일기
최유나 지음, 김현원 그림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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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기는 싸움, 취미는 위로

최변의 웃음, 짜증, 눈물범벅 법정 드라마

둘이 되어 사는 결혼 그리고 다시 하나가 되는 이혼,

그 이혼을 돕기도, 막기도 하는 변호사의 이야기

표지 中

저자는 20대부터 이혼 변호사로 활동하며 1000건 이상의 이혼 소송을 진행한 이혼전문 변호사라고 한다.

숱한 간접 경험을 통해 느끼고 배우는 것을 공유하고, 이혼 소송에 대한 보편적 갈등 상황을 다루면서도 그에 대한 이혼 변호사로서의 자기 생각을 담기위해, 만화가와 함께 인스타툰 <메리지 레드>를 시작했고, 기혼 뿐만이 아니라 미혼에게도 큰 공감을 얻어 이렇게 책으로까지 나오게 되었다.

소재만으로도 소설 못지 않은 가독성을 지닌 책이라 예상했는데, 책장을 펼치고 보니 웹툰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만화책이라 그야말로 술술 읽히는 책이었다. 에피소드마다 감정이입이 절로 되는 공감력은 보너스이자 핵심이다.



저자가 이혼 전문 변호사로서 마주한 현실은 드라마와 많이 달랐다고 한다. 공감도 높은 상담은 저자의 특기이자 장기였지만 변호사의 역할이 어디까지일지 혼란스러운 현실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기도 했었다고 한다. 변호사 말 한마디라도 더 듣고 싶어하는 의뢰인들의 잦은 연락과 하소연 그리고 꼭 필요한 법률 서면 작성시간과 자료조사시간 사이에서 우선순위를 정해나가기까지 이혼전문변호사가 되는 과정이 진솔하면서도 웃음짓게 그려지고 있다.

"어떤 사람과 결혼해야 하나요?"

직업이 직업이라 그런지, 미혼인 이들을 만나면 항상 듣는 질문이다. 7,80대 어르신들은 "다 거기서 거기"라고 많이들 말씀하시는데, 이혼 변호사로 살다 보니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어차피 누굴 만나도 대단할 것 없다는 회의적인 의미가 아니라, 어떤 사람을 만나든 수십 년을 함께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는 뜻으로 하는 말씀인 것이다. 관계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랄까. (p. 116)

만화책?!이다 보니 이혼사례들이나 법적인 조항같은 구체적인 정보를 알려주는 책은 아니다. 그보다는 이혼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마음과 그 마음을 공감하는 변호사의 마음을 잔잔이 그려내는 책이다. 글자가 많다고 정보가 많은 것은 아니다. 때로는 그림 한장이 더 많은 의미를 전달해 주는 것처럼 이 책은 짧은 에피소드와 친숙한 그림을 통해 더 많은 공감을 느끼게 해주고 있었다.

저자가 만나는 이혼소송 당사자들이 말하는 이혼의 원인들은 이혼 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연상되는 그런 이유들이다. 가정폭력, 외도, 집안의 갈등, 육아 등 일상의 단면들이자 작지만 큰 화염이 될 불씨들이다. 불씨들이 커지고 커져 집을 태워삼키는 화마와 같은 갈등이 생겼을때 이혼으로 해결하는 과정이 때로는 답이 될수도 있고 때로는 아닐수도 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고 간접경험으로 배워나가는 저자의 마음을 담은 글들은 이혼에 대해 좀더 숙고하게 만든다.

먹고사느라 바빠서 내가 누구랑 먹고살고 싶었었는지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물론 많이 어려운 문제다. 나도 여전히 어렵다.

모든 부부가 평생 안고 가야 할 숙제일 것이다. (p. 206)

저자는 "우리 이만 헤어져요" 라고 말하지만, 읽고나면 그 속에 "당신은 행복한가요?" 라고 묻고 있는 것임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행복하지 않다는 답을 얻었을지라도 그 해결방법으로 이혼을 선택하기 전에 어떠한 최선을 다했는지 다시한번 생각해보기를 권하고 있는 것임을 느낄 수 있다.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알~아~" 라는 티비광고노래처럼, 저자가 콕 집어 말해주지 않아도 어떤 결혼생활을 해나가야할지 조금은 알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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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면의 역사 - 평평한 세계의 모든 것
B. W. 힉맨 지음, 박우정 옮김 / 소소의책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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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면이 지배하는 세상의 평평함을 읽는다!

인류 역사에서 평면은 어떻게 활용되고 있을까?

우리가 미처 알아보지 못한 평면의 진정한 가치를 통찰하는 책

표지의 띠지 문구 中

"우리가 서 있는 곳, 건물을 짓는 토대이자 세상의 근간을 이루는 평면의 실체는 무엇일까?"

뒷 표지에 적혀 있는 이 질문에 대해 저자는

"평평함은 열망의 대상이면서 두려운 무언가다"

라고 갈무리한다.

저자는 역사와 지리학 박사이다. 그래서인지 평면에 대해서도 역사적으로 변화의 추이를 관찰하고 지도를 바탕으로 한 설명이 자주 이용된다.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왔던 평면! 평평함! FLATNESS! 는 어떤 의미를 지녀왔을까?

다양한 뜻으로 쓰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평면성은 사실 일관되게 공간을 가리키는 개념이며, 그 근본적인 의미의 범위도 같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글자 그대로의 뜻이건 은유적으로 쓰이건, 평면성의 근본 요소는 '불변성'이다. 이것은 흥미롭지 못한 무미건조함과 다르다. 평면성의 은유적 쓰임새와 글자 그대로의 의미는 오히려 서로 겹치면서 상호작용하여 불변성이라는 그 뜻의 본질을 공유하는데, 다양한 맥락에서 사용되면서도 일관성을 보인다. 그러므로 일상적인 의사소통에서나 보다 차원 높은 개념적 은유에서나 평면성은 언어학에서 말하는 용어의 이식성에 있어 '불변성의 원칙'에 해당된다. (p. 13)

평면성에 대하여 저자는 언어적 역사적 의미를 추적한다.

지금까지 생각해 본적은 없었지만, 이 책을 계기로 생각해보니 사실 우리가 살고 생각하는 세상은 2차원과 3차원의 모호한 경계위에 있다.

2차원의 평면위 글자를 읽고 영상을 보고 생각은 3차원 입체로 떠올린다고 하지만 따지고 보면 상상이지 실제적 3차원은 아니다. 3차원 입체적 몸뚱아리를 갖고 있지만 입체적 인것은 때론 예측불허의 불안감을 주기도 하고 끝없이 펼쳐진 선으로 표시된 2차원적 풍경에서 위안을 얻기도 한다. 왜일까? 저자의 말처럼 평면성에서 불변의 원칙으로 인한 평안을 느끼는 것일까?

기준점으로서 지상 표면의 우선순위 역시 중요하다. 즉 인간은 지하 또는 바닷속 혹은 바다 위가 아니라 땅 위에서 살도록 진화해왔고 중력으로 지탱된다. 우리는 이 표면의 중요성과, 우리 발밑의 땅과 우리를 뚤러싸고 있으며 우리가 숨 쉴 수 있는 대기의 첨예한 차이를 잘 알고 있지만 우리 발밑, 심지어 불과 몇 미터 아래에 무엇이 있는지는 심각할 정도로 아는 바가 없다. 지구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매우 피상적이다. 따라서 공간개념의 발달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표면으로서 지상 표면을 인식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p. 24)

생각해보지 못한 관점이었다. 그러고 보니 땅위에서 사는 인간이 땅보다는 산위다 바다속을 더 열심히 연구하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하기까지 하다. 땅밑은 뭔가를 묻거나 뭔가를 파낼때만 들여다볼 뿐 평생을 지지하고 사는 땅에 대해 그 속에 대해 언제 생각해 본 적 있을까? 물론, 저자또한 땅 속보다는 땅의 표면 즉 평평하다고 인식되어지는 지상표면에 집중한다. 이 책의 주제는 평.평.함. 이니까. ㅎㅎ 그런데 따지고보면 지표면도 평평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지구는 둥.그.니.까. ㅎㅎㅎ "평면성은 특히 존재론적 문제를 제시한다" 는 저자의 말은 책을 읽다보면 신기하게도 고개끄덕여지게 된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 우주를 구성하는 수많은 구형 천체 중 하나일 뿐이라는 사실이 발견되었어도 지구평면설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 이론들 중 일부는 종교 사상과 창조 신화에 뿌리를 두고 있었지만 일반적으로 과학과 객관적 관찰에서 증거를 찾으려 했다. 현대의 창조론자들은 진화 모형에 맞서 생명을 설명하는 문제에 계속 초점을 맞추느라 땅의 형태에 대해서는 많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고 지구평면설을 거의 채택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현대의 기후변화 회의론자들도 세계까 평평하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연관성은 없지만 창조론자들과 기후변화 회의론자들은 당연한 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고집 때문에 비유적으로 '지구평면론자'라고 불리곤 한다. 이러한 비유가 가능한 것은 이 믿음이 미개할 뿐 아니라 공간의 기본 개념이 평면론에 내재된 심한 무지와 멍청함을 확인하는데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p. 81)

기원전 고대그리스 과학자들은 인간이 살고 있는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막대기와 햇빛만으로 계산해 냈다. 하지만 지구가 둥글다는 것은 천년 넘게 믿음을 얻지 못했다. 사람은 아는만큼 보이고 믿는만큼 이해한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땅이 평평하고 바다가 평평하다고 말해주는데 그 합체적 덩어리인 지구가 둥글다는 것은 우주에서 찍혀보내온 사진이 등장하기전까지는 믿음을 얻지 못했다. 하지만 보여지고 나서도 그 실체를 의심하고 다른 무언가에 믿음의 중심을 둔 사람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신기하게도.




미국의 지형학자 윌리엄 모리스 데이비스는 '유년기'의 경사지가 서서히 마모되고 '노년기'와 관련된 평탄화된 지형이 생성되는 과정에서 삭박작용과 붕괴의 역할을 강조했다. 자연의 쇠퇴에 뿌리를 둔 어느 정도의 비관주의에 따라 붕괴와 평탄화가 함께 진행된다는 주장도 종종 나왔다. (p. 96)

인생은 무에서 태어나 무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했던가... 벌거벗고 주먹을 꼭 쥔채로 태어나 옷을 입고 손을 편채 죽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과정이다. 가진것 없이 태어나 가진것 없이 가는게 인생이다. 그 어떤 인생의 굴곡을 겪어도 마지막 모습은 다를 수 없다. 굴곡진 인생이란 표현은 지형의 마모와 유년기/노년기를 대비시킨 학자의 말을 수긍하게 한다. 그럼, 지구가 굴곡이 없어지고 평평해질 수록 지구의 종말이 다가오는 것인가?! ㅋㅎ

불변을 개념의 중심으로 생각하면, 반복되는 평평함은 예측 가능함, 단조로움, 부재, 비어있음, 지루함 이라는 개념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그러나 이 개념들의 의미는 사회집단마다 다르고 시간이 지나면서 바뀌었다. (p. 126)

평평함을 그림이나 문학으로 연결지어 생각하면 단순하고 무미건조한 느낌을 받는다. 선과 면으로 이루어진 몬드리안의 그림은 단순하다는 느낌을 주고 소설속 주인공의 성격이 평면적이라 함은 지루하다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몬드리안의 그림은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았고 소설속 인물들이 다 입체적인 성격을 가졌다면 비교대상이 없어 내용전개에 과부하가 걸릴 것이다. 이러나저러나 의미가 변하든 어쩌든 평평함은 여전히 늘 곳곳에 필요하다.

스포츠의 현대화는 지형의 표준화로 상징될 뿐 아니라 경기의 규칙, 도구, 행동에 대한 광범위한 규제 절차에서도 분명히 나타났다. 스포츠를 위한 장소는 보통 자연 지형과 분리되어 있었고, 공간을 현대성의 이미지와 연결된 기하학으로 바꾸는, 아마도 가장 극단적인 예로 여겨졌다. 시간과 거리가 대단히 정확하게 측정되었고, 스포츠의 공간성은 '평평한' 우주에 필요한 조건과 흡사하게 등방성을 띈 표면을 취했다. (p. 170)

가상 현실 게임은 그 지형적 다양함으로 현대 스포츠와 구분된다. (p. 192)

가상현실이 2차원의 평면 이미지에 의지한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으며, 가상현실은 평평함을 자연 상태에 근접하도록 만드는 방법의 일부일 뿐이다. (p. 193)

규격화는 평면화로 연결된 때가 많았다. 농업의 발달은 땅의 표면과 구획을 규격화 했고, 가정의 부의 상징은 집앞마당의 잔디밭으로 규격화되기도 했다. 스포츠의 규격화 또한 평평한 운동장, 동일한 조건을 갖춘 장소들의 평평함을 기반으로 했다. 스포츠가 변했에도, 현실에서 가상으로 변한다 할지라도, 평평함은 유지된다. 설사 경기장의 평평함이 아닐지라도, 동일한 규칙의 적용자체가 어쩌면 일종의 평평함이다.

평면성은 우리 자신의 이미지를 바꿀 때, 즉 후기자본주의 세계에서 공공 영역에 들어가기 위한 필수조건인 강제적인 자기 스펙터클화(자신을 볼거리로 만들기)할 때 치르는 대가를 빗대는 효과적인 은유다. 이렇게 전 세계가 평평해져 왔다. (p. 258)

평면화는 평등주의적이며, 지형의 변화를 사회의 지배구조가 가진 수직적 계층의 몰락, 그리고 제국주의적 기업들의 혁명적 해체와 일치시킨다. 이런 주제들은 '힘잇는 자들은 낮추고 낮은 자들을 높임으로써' 사회의 '평준화'를 촉진하는 급진적 이념들을 연상시킨다. (p. 260)

평평함은 때론 평등함으로 연결되기도 했다. 우리는 신분제사회를 생각할때 계급의 피라미드를 떠올린다. 하지만 그 신분탑을 부수고 지평선처럼 수평선처럼 나란히 평등한 위치라고 표현할때 신분의 평등함은 인간의 평면성을 내포한다. 평면적인 인간이어야 평등할수 있다는 것은 왠지 좀 슬퍼지는 은유이다. 여하튼 평면,평평함은 때론 때론 이렇게 혁명적 생각을 갖게 하는 때도 있었다. 평면에서 출발한 사회의 입체성이랄까;;;

평면, 평평함에 대한 다양한 생각들을 담은 이 책은 역사와 과학과 예술을 지나 인간에게 도착했다. 그리고 그 평평함은 '열망의 대상이면서 두려운 무언가' 로 아직 그 생각의 여정이 끝나지 않았음을 암시하며 마무리되었다. 때론 종잡을 수 없게, 때론 샛길로 빠진것 같은 이야기들 속에서 읽은 평평함에 대한 저자의 생각들은 사고의 다양성과 관점의 다변화에 대한 새로움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런데... 평평함이 이렇게 어려운 개념이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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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생명체로 산다는 것은 - 동물생태학자 사이 몽고메리와 동물들의 경이로운 교감의 기록
사이 몽고메리 지음, 레베카 그린 그림, 이보미 옮김 / 더숲 / 2019년 9월
평점 :
절판


동물생태학자 사이 몽고메리와 동물들의  경이로운 교감의 기록

"인간과 다른 종과의 교감은 우리의 영혼을 성장시킨다"

그들은 친구였고, 가족이었고, 스승이었다

열세 마리 동물이 가르쳐준 인생의 지혜

표지문구 中

저자 사이 몽고메리는 동물생태학자, 탐험가, 작가 이며 지금까지 지구상에서 가장 희귀하고 아름다운 동물들을 많이 만나왔고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써왔다. 야생에서 탐험중에 만난 동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책들은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좀 다르다. 이 책은 저자의 삶에 큰 영향을 준 동물들과의 교감의 기록이자 추억담이다.

관찰대상으로서의 동물과 삶을 함께 한 동물들에 대한 느낌은 좀 많이 다를 것 같다.

평생을 집에서든 밖에서든 다양한 동물들과 함께 살아온 저자이지만 인생의 깨달음을 준 동물들은 관찰대상이 아닌 친구이자 반려자였다.

어느 인터뷰에서 "동물에게 박물학적 지식 말고도 인생의 교훈을 배웠다고 생각하나요?" 라는 질문에

저자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좋은 생명체로 살아가는 법이요"

그렇게 예상밖의 질문과 고민없이 한 대답에서 이 책이 시작되었다.

저자와 함께 했던 동물들은

어릴적 함께 자란 검둥개 몰리를 통해 저자 자신의 인생의 방향을 정하게 되었고

생태학자로서 첫 발걸음을 내딛게 해준 호주에서 만난 에뮤는 유대감을 쌓아가는 과정을 알게 해주었다.

개인적인 고난으로 인생의 고비에 처해 있을때 만난 아기돼지는 주어진 삶을 그대로 사랑하는 법을 알게 해주었고

정글에서 만난 타란툴라 는 세상을 다시 바라보게 해주었다.

함께 살던 닭들 중 한마리를 먹이로 삼은 족제비를 크리스마스에 만난 날 슬픔보단 경이로움을 느꼈고

테스라고 이름붙인 보더콜리 의 삶은 저자의 삶에 온전히 녹아들어 사랑으로 채워주었다.

야생에서 만난 나무타기캥거루를 보며 삶을 마감한 테스와 돼지를 마음에서 떠나보낼 수 있었고

수족관에서 만난 대문어 와 친구가 되는 과정에서 인간과 다른 종을 이해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었다.

보더콜리 테스 이후 새로이 만난 보더콜리 샐리 그리고 서버 는 반려견과 함께 살고 떠나보내고 다시 만나는 과정을 통해 끊임없이 사랑을 주고 받는 관계를 알게 해주었고 여전히 진행중이다.

저자가 야생동물들을 이야기할때 생태학자들의 연구는 동물들의 환경을 보호하는 데에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해주었고

문어의 파란 혈액 속에는 구리 성분이 있어서 혈액의 주성분이 철분인 인간과 얼마나 다른지 신기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야생은 삶을 갈구하게 만드는 행복한 배고픔과 같아서

우리를 온당하고 온전하게 만든다 ( p. 156 )

저자는 곤충부터 파충류 조류 어류 포유류 가리지 않고 거의 모든 생명체에게 거리낌없이 손을 내민다.

그들의 삶의 방식을 존중하고 그 방식대로 친구가 돼길 기다리며 경이로운 시선과 따뜻한 마음으로 모든 생명체를 대한다.

이 책은 관찰기가 아니이게 자연과학적 지식을 얻는 것도 아니고, 듣도보도못한 신기한 동물들을 새롭게 소개받은 것도 아니지만, 저자가 동물들과 함께 살고 사랑하고 느끼고 깨달은 이야기를 읽으며 인간과 동물로 구분되는 것이 아닌 그저 좋은 생명체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경험하게 해주었다. 어린이부터 어르신까지 연령관계없이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에세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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