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이 라마, 화를 말하다 - 분노를 다스리는 지혜의 가르침
달라이 라마 지음, 이종복 옮김, 툽뗀 진빠 편역 / 담앤북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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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를 다스리는 지혜의 가르침

 '명상', '죽음'에 이은 달라이 라마의 세번째 강론-화와 증오를 다루는 지혜

 

 

이 책은 1993년 미국 애리조나주에서 달라이 라마 가 강론했던 내용을 정리한 책이다. 당시 초청을 받아들이며 달라이 라마는 무엇을 가르쳐 주기를 바라는지 물었고 초청측은 인내에 대한 샨띠데바의 가르침을 부탁드렸다고 한다. 그래서 달라이 라마께서 '샨띠데바의 <입보리행론> 제6장 인욕품' 의 게송들을 구절구절 풀이해주는 식으로 며칠에 걸쳐 강론이 진행되었고 1993년에 '화의 치유(Healing Anger)'로 출판되었던 것을 새로 번역하여 재출간한 책이라고 한다.

'샨띠데바의 <입보리행론>'은 8세기에 완성된 저작으로 대승불교권에서 중요한 고전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전설에 따르면 <입보리행론>은 샨띠데바가 인도의 유명한 날란다 불교대학에 있을 때 요청을 받고 대중집회에서 즉흥적으로 읊은 것이라고도 한다. 수행자들에게 이 책은 대승불교가 제시하는 깨달음으로 가는 길에서 핵심적인 수행의 윤곽을 그려주는 중요한 문헌인데, 이 문헌이 11세기에 티베트어로 번역된 이래 티베트인들의 삶에 깊은 영향을 미쳤으며, <입보리행론>은 티베트에서 대승불교의 사상과 수행에 관련된 방대한 학술 업적을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마음수련'으로 알려진 전혀 새로운 장르가 일어나는 데에도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사설이 길었는데... 그만큼 이 책에 대한 사전정보를 내가 너무 몰랐던 탓이다.

이 책을 접하는 독자들이 대부분 나와 같을 것임을 알았던 건지 편역자의 서문또한 위와 같은 내용들과 책에 대한 배경을 설명하느라 길고 긴 편이다.

정리하자면, 이 책은 '<입보리행론>의 제6장 인욕품'에 달라이 라마가 구절구절 주석을 붙이고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불교문화에 대해 서양보다는 우리나라가 역사적으로 친숙해서인지 책의 내용은, 읽을 때는 어려운 불교경전 읽는 기분이 들었지만 내용만 놓고 쉽게 생각해 보자면 불교의 기초개념들이었다. 이 책 한권의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자비심과 윤회와 업보를 설명하며 지금 작은 일에 화를 내는 것이 아무 의미도 없으니 참고 인내하라 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개념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하지만 아무래도 불교를 전혀 모르는 기독교문화권인 미국에 가서 한 강론이다보니 그랬던 것 같다. 따라서 '화병' 이라는 한글병명을 가졌을 정도로 '화'를 많이 내는 우리네 삶을 지혜롭게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알고 싶었던 나로서는 크게 얻을 수 있는 내용은 없었다. 이 책의 영문제목 <Perfecting Patience> '참을성 있는 인내심'의 불교적 수행이 미국에서는 신선했을지 몰라도 한국에서는 그냥 사는 일상에서 그냥 자연스럽게 시도해 봤던 사람이 꽤 많지 않을까;;;

최선의 방법은 무엇보다도 화와 증오를 일으키는 원인과 조건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p. 78)

불교의 기본적인 가르침은 마음을 잘 길들이고 다스려서 내적인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우리가 하는 행동이 유익한지 해로운지는 그 행위가 잘 다스려진 마음에서 나오는지 그렇지 못한 마음에서 나오는지에 달려 있다. (p. 115)

샨띠데바는 평소 화를 일으키게 만드는 원인을 방지하는 법을 알려준다. 다른 이에게 해를 끼치는 일이 그 가해자의 본래 품성이라면, 그에게 화를 품는 것은 의미가 없다. 다른 이들을 해치는 일은 그 사람의 천성이기 때문이다. 반면 남에게 해를 가하는 것이 천성이어서가 아니라 모종의 주변 상황 때문이었다면 그는 환경적인 조건에 휘둘린 것이다. 따라서 그 경우에도 그에게 화를 내거나 책임을 묻는 것은 의미없는 일이다. (p. 155)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해를 입히거나 다치게 했을 때 그는 악업을 쌓는 것이다. 따라서 상처 받은 일을 정호의 기회로 삼고 그 기회를 선사한 이에게 오히려 감사해야 한다. 그 일을 인내함으로써 우리는 선업을 쌓아 기회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p. 164)

우리가 화나 증오를 일으키지 않으면서 인내와 감내를 수행할 수 있다면 일시적으로는 불편함이나 상처를 겪겠지만 미래에 일어날 큰 위험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다. (p. 209)

우리에게 그런 좋은 수행 기회가 주어졌는데도 참지 못하고 적에게 성질을 부렸다면, 인내와 감내를 수행해 공덕을 쌓는 기회로 활용하지 못한 나의 잘못이다. (p. 254)

"저는 대부분의 기도가 여러분 일상의 수행을 상기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게송들은 기도문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여러 가지 문제들, 사람들을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를 일상생활에서 상기시켜 주는 역할을 합니다." (p. 320)

분노는 화나 증오와 다르고, 긍정의 에너지가 없는 화나 증오는 그 원인을 이성적으로 파악해야 하는데, 막상 차근차근 생각해보면 다 화내거나 증오를 일으킬 일이 아니니 그 의미없음을 깨닫고 작은 화 들을 참다보면 더 큰 화를 내지 않을 수 있는데다 이러한 선업은 윤회의 흐름 속에서 결국 나를 위한 것이니 참고 인내하며 기도할때마다 기복 보다는 일상을 상기하고 늘 수행하는 마음을 가져보아라... 라는 이 책의 불교적 기본 가르침이 내게 와 닿기에는... 흐음...

본문 뒤에 '부록'으로 '샨띠데바의 입보리행론 제 6장 인욕품 의 전문'이 실려 있으므로 이 부록을 먼저 읽고 본문을 읽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티베트어 책을 번역한 영문판을 중역으로 옭겼다면 해석에 변형이 약간이라도 있을 수 있었을 텐데 역자가(종교전문가이므로 종교어에 대한 번역에 신뢰가 갔다) 티베트어를 직접 한국어로 옮긴 것이라고 하니 믿을만 할 듯 하다. 책을 다 읽고나서 이 책을 다시 볼 기회가 생긴다면 '부록'만 읽어봐도 좋을 듯 하다. 고전의 명언들은 삶에 늘 유효할 때가 많으므로.

나는 그저 유명하신 스님이 '화'에 대하여 에세이처럼 쓰신 책이겠거니 하고 이 책을 읽기 시작했던지라, 책을 시작하자마자 불교적 용어와 불교경전의 게송들이 나와서 좀 당황스러웠다. 틱낫한 스님의 책이나 국내 스님들의 책을 편안하게 읽었어서 이 책도 그런 연장선에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좀더 (불교적 색깔의 일상에세이가 아닌) 전문적인 불교적 종교서적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이 도움이 될 듯 싶다. 그리고 '부록' 은 다시 읽어봐도 좋을 고전의 향기를 풍기고 있었기에 이 책에서 내게 가장 가치있는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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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원 (반양장) - 제13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96
백온유 지음 / 창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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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투성이 마음을 딛고 날아오르는 모든 이를 위한 성장소설

"높은 곳에 서려면 언제나 용기가 필요했다"

 

 

『아몬드』 『페인트』 『위저드 베이커리』 『완득이』 에 상응하는 소설이라고 해서 궁금했다. 아몬드, 페인트, 위저드 베이커리, 완득이 다 너무 좋았던 작품들이었다. 내게 청소년 소설이 성인 소설보다 더 완벽하게 좋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 대표적 작품들이 저 작품들이었다. 그리고... 이 소설은 그 뒤를 잇는 작품이라 말해도 손색없는 소설이었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먹먹해진 가슴을 가라앉히느라 뻑뻑해진 눈을 껌뻑거리느라 한참을 앉아있었다...

유원은 고등학교 2학년 여학생이다. 평범하다면 평범해보이지만 자신을 비롯한 주변 사람 모두가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는 소녀.

그래도 대부분의 아이들은 그 사건을 입 밖으로 꺼내는 것이 예의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나를 당혹스럽게 하는 건 거의 어른들이었다. 그들은 내게 궁금한 것들을 걱정을 가장해 물어 오곤 했는데 모범적인 내 대답을 들은 후에는, "그래도 잘 컸네" 그런 말을 칭찬이랍시고 내뱉곤 했다. (p. 18)

어른들은 늘 아이들이 예의가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예의없음이란 것이 어른인 자신에 대한 제대로 된 존경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것과 동의어일 때가 많다. 그러나 예의란 그런 것이 아니다. 아이들은 예의를 제대로 느끼는 경우가 더 많다. 적어도 걱정을 가장한 호기심을 충족하는 것이 예의가 아니라는 것은 안다.

죽은 친구의 부모를 이렇게까지 챙긴다는 게 믿기지 않을 때가 많았다. 어릴 때부터 나는 신아 언니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종종 생각해 왔다. 일단 친구를 사귀어야 한다. 우리 언니 같은. (p. 21)

누구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며 큰다는 것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나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드러내지 않아야 할 경우에는 더욱.

나는 아저씨의 의도를 가늠하려고 노력한다. 일부러 괴롭히는 것 같기도, 점진적으로 복수하는 과정 같기도 하다. 나는 왜 아저씨의 냄새에 예민해지고, 아저씨의 말투와 사소한 습관을 판단하는지. 나는 왜 당연히 고마워해야 할 대상에게 사나운 마음을 갖는지. (p. 42)

당연히 고마워해야 할 대상이라는 건 사실 말이 안되는 말이다. 당연히 고마워해야 할 대상은 없다. 고마움을 당연하다고 생각할때 고마움은 더이상 고마움이 아니게 된다. 그게 인간적이다. 더구나 십이년째 언니의 기일마다 혹은 사이사이 명절이나 대소사 때마다 집에 찾아오는 대상이 그 당연히 고마워애햐 할 대상이라면. 고마움이라는 부채가 영원히 갚지 못할 빚이 되어버리고 난 이후라면.

그날 이후, 이전에 나를 몰랐던 사람들조차 기적적으로 살아 남은 나를 위로하고 축복했다. 그러나 그들은 내가 웃을 때면 생전 처음 보는 풍경처럼 낯설어하고 약간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내 행복을 바랐다면서도 막상 멀쩡한 나를 볼 때면 워낙 뜻밖이라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알 수 없다는 듯 당황했다. (p. 81)

자신이 모르던 때에 자신으로 인해 생긴 목숨값을 평생 갚는 심정으로 자란다는 것은... 어린아이의 뜻없는 맑은 웃음조차 생경하게 쳐다보는 사람들을 보며 성장한다는 것은... 그런 사람들의 눈빛을 너무 어렸을 때 깨달았다는 것은...

"뻔한 내용을 왜 50화까지 챙겨 보는 거야? 그럼 최소한 오십 시간을 저 드라마를 보면서 날렸다는 거잖아"

"다 아는 내용이고 뻔한 내용이니까 보는 거야. 치킨이랑 짜장면도 아는 맛이니까 먹는 것처럼" (p. 96)

갑자기 뒷통수를 맞은 듯한 기분이었다. 정말 그랬다. 드라마를 좀 봤다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초반의 내용을 보고 나면 대충 감이 올때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그럴때일수록 더더욱 끝까지 챙겨본다. 다 아는 뻔한 내용이 다 아는 맛 과 연결된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다. 나는 새로운 음식보다 늘 먹던 맛을 좋아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지 않나?

나는 더 나태하게 살아도 됐을 것이다.

사고가 없었다면.

나태하게 살면서도 죄책감을 덜 느꼈을 것이다. 실수를 두세 번 반복해도 초조해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자꾸만 무언가에 쫓긴다는 생각이 들었다. (p. 100)

더 나태하게 살아도 됐을 텐데... 너무 열심히 살고 있는 힘듦을 나는 안다. 죄책감 가질만한 사건이 없었음에도 그런 삶을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한참의 시간을 보낸 후에야 이제야 조금 나태해도 된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중이다. 소설을 읽으며 나보다 훨씬 시간절약을 한 소녀들이 고마웠다.

"적당히 행복하기도 힘든데, 어떻게 두 배나 행복하게 살라는 거야" (p. 111)

행복하게 사는 것이 어디 뜻대로 되는 일이던가... 누구나 다 행복하게 살고 싶어 한다. 응원의 말이랍시고 이미 없는 사람의 몫까지 두배로 행복하라는 말은 결코 응원이 될 수 없다. 나하나 행복하기도 힘든 세상이다.

언니를 아는 사람 대부분이 언니에 대한 무서운 자부심이 있다는 것을 느껴 왔다. 언니의 죽음은 그저 그런 죽음들과는 차원이 다라다는 것에 뿌듯함을 느낀다는 것 말이다. 그것이 다른 희생자 가족에 비해서 엄마가 일찍 안정을 찾을 수 있었던 원동력임을 알고 있다. 상대적으로 나은 위치에 있는 유가족이기 때문이었다. (p. 117)

더한 죽음과 덜한 죽음이 어디 있을 수 있겠는가 마는 남아있는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중요할 때가 있다. 어차피 죽은 사람들은 모르니 남아 있는 사람을 위해서라도 그렇게 죽음의 의미를 달리 하는 것이 필요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십이 년 전 기사에는 '희망' 의나 '기적' 이나 '빛' 같은 단어들이 자주 등장한다. 세계 전체에 희박한 것들을 굳이 내게서 찾으려는 시도가 폭력적으로 느껴진다. (p. 152)

직설적이지만 기분나쁘지 않은 문장들을 발견할 때마다 좋았다. 너무 좋았다. 시원하기까지 했다.

그러게... 남의 일에 대해서는 다들 너무 쉽게 말한다. 거창한 의미여도 거침없이 해댄다. 그러한 의미부여를 받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폭력이 될수도 있는 것인데.

수현이 아니었으면 몰랐을 바람. 먼지 가득한 창고, 노을과 에드벌룬, 오랜 기다림. 마음껏 미워할 수 있는 용기를 주는 목소리. (p. 195)

'미워할 수 있는 용기' 라는 책을 읽어본 적은 없지만 자기계발서에서 말해주는 것보다 이렇게 소설로 느끼게 해주는 용기가 더 마음에 와닿을 것 같다.

미워한다는 감정에 용기가 필요한 사람들이 있다. 미워한다는 생각만으로도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미워할 수 있다고 그래도 괜찮다고 하는 말이 얼마나 힘을 줄 수 있는지 아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죄책감의 문제는 미안함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합병증처럼 번진다는 데에 있다. 자괴감, 자책감, 우울감. 나를 방어하기 위한 무의식은 나 자신에 대한 분노를 금세 타인에 대한 분노로 옮겨 가게 했다. 그런 내가 너무 무거워서 휘청거릴 때마다 수현은 나를 부축해 주었다. (p. 196)

죄책감이 만들어낸 합병증에 시달리는 게 얼마나 힘든지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이 생겼다는 죄책감은 미워하지 못하는 나 자신을 미워하게 하고 그렇게 나 자신에 대한 분노가 차오르다 보면 남에 대한 분노로 번지기 마련이다. 차라리 누군가를 미워하는 게 낫다. 불특정 다수에 대해 분노하게 되기 전에 그 한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을 인정하는 것이 낫다.

"근데 살인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 우리 주위에도 종종 있잖아.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사람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는 것 자체가 바보 같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영화에서는 시거를 사이코 킬러라고 부르는데 나는 시거 같은 사람은... 그냥 돌멩이 같은 거라고 생각해. 교회 주차장에 깔려 있는 자갈 같은 거 말이야. 뽀족뽀족하고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것들, 그냥 그런 상태인 거야. 처음부터 그렇게 태어난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런 상태인 거야. 거기에 내가 넘어져서 긇기고 베여도 화를 내는 게 무의미한 거야. 내가 돌멩이를 이해하려는 노력도 무의미한 거고, 돌멩이가 내 감정을 이해해 주지 않을까 기대하는 것도 무의미한 일인 거야" (p. 215)

유원과 수현을 보면서 친구 사이에도 운명적 만남이라는 것이 있다는 생각을 한다. 사실 드라마에 나오는 운명적 사랑 보다 살다보면 만나는 운명적 친구를 우리는 자주 경험한다. 그리고 그러한 운명에는 적절한 때 라는 것이 있었다. 소설을 읽으며 그런 때 그런 친구를 만나서 참 다행이다 하는 안도감을 느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각자가 각자의 자리에서 건강하게 자라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p. 216)

수현과 정현이 나에게로 달려왔다. 무사히 돌아온 나를 부둥켜 안아 주었다. (p. 224)

유원이 솔직하게 말할 수 있게 되고 유원의 부모님이 오래된 마음의 빚을 벗어날 결심을 하고 수현과 정현이 나름대로 자신들이 어떻게 노력해왔는지를 유원이 알아가는 그 모든 시간들이 소설속에서 내내 따뜻하면서 시원했다. 따듯한데 시원해서 좋았다. 정말 좋았다. 모든이를 위한 성장소설이 맞았다. 내마음도 한뼘 위로를 받은 만큼 한뼘 용기를 얻었고 그렇게 한뼘 자란 듯 했다. 이 작품을읽게 되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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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너머로 달리는 말
김훈 지음 / 파람북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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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과 야만의 뒤엉킴에 저항하는 생명의 힘

문장은 전투와 같고, 표현은 양보할 수 없다

표지 中

신비로운 소설이었다.

판타지처럼 읽히지만 판타지가 아닌 것을 알겠고 역사서처럼 읽히지만 역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겠다.

역사에 기록되지 않았으나 역사에 존재했을 것이 분명한 시대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소설은 판타지와 역사의 경계를 넘나들며 인간과 동물의 경계도 넘나는 초원의 이야기였다.

초원의 역사는 기록을 남기지 않았기에 판타지 처럼 다가오는 역사의 영역인데 다른 문명의 역사에 기록된 작은 편린들 만으로도 강렬한 인상을 주기 때문에 늘 궁금해지곤 한다. 역사를 좋아하다 보니 이런저런 역사서들을 찾아 읽는 편인데, 서양사건 동양사건 늘 유목사에서 막히곤 한다. 문자를 갖지 않았고 기록을 남기지 않았으나 말을 타고 드넓은 초원을 달리며 여기저기 자신들의 존재감을 각인시켰던 유목민족, 그들의 이야기를 이렇게 소설로 접하고 나니 새롭고 신기한 기분이다.

간단한 지도로 시작하는 이 소설에선 대립적인 두 나라가 등장한다. 나하 라는 강을 사이에 두고 북방엔 초원민족의 초나라가 있고 남방엔 농경민족의 단나라가 있다. 그리고 그 사이의 끝쪽에 나하의 시원이 있는 백산이 있고 백산 아래 작은 나라? 월 이 있다. 초나라의 말은 신월마 이고, 단나라의 말은 비혈마 이다. 대화가 거의 없이 3인칭으로 서술되는 이 소설은 인간의 서사와 말의 서사가 교차되면서 색다른 흥망성쇠를 보여준다.

<앞에> 초 와 단 의 역사를 간략하게 설명해주고 본문이랄 수 있는 <달 너머로 달리는 말> 에서 좀더 세세하게 풀어주는데 묘하게 몰입이 된다.

초나라는 유목민들의 나라다. 떠돌아다니는 민족이었기에 포로는 죽였고 늙인이와 병든 자는 두고 떠났으며 식량이 모자라면 아이와 젊은이가 먼저 먹었다. 초는 산 자들의 나라였다. 건물을 짓지 않았고 문자를 멀리했다. 모든 지식은 구전으로 전해지고 몸으로 익히게 했다. 군대는 진지가 따로 없었고 대오는 헐거웠다. 하지만 빠르고 치고 빠지는 전술에 능했고 전투복이 따로 없었다. 동물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고 자연에 순응했다.

단나라는 정착민들의 나라다. 땅에 정착하여 농사를 짓는 민족이었기에 지켜야 할 것이 많아 성을 쌓기 시작했다. 문자를 숭상했고 많은 것을 기록하려 했다. 기록이 쌓이고 쌓일수록 의례가 늘었고 무덤은 커져갔다. 군대는 밀집대형으로 움직였고 갑옷으로 무장했으며 단체행동을 중시했다. 단의 역사는 대부분의 문명사 기록에서 볼 수 있는 내용들과 비슷할 터인데 그렇게 기록된 역사들은 사실 그리 믿을만 하지 못하다.

단은 문자를 알았고 문자로 세상일을 적었고 문자를 받들었다. <단사>는 당대에 기록되었으므로 언설의 흐름이 끊어지지는 않았으나, 기록하는 자들 가운데 세상을 보지 않고 문자를 보는 자들, 세상과 헛것이 뒤섞여 보이는 자들, 보이는 것을 보지 못하는 자들, 봐도 보이지 않는 자들, 대낮에 귀신과 흘레붙어서 정액을 흘리는 자들이 많았고 또 후세에 말 잘해서 영화로운 자들이 이야기를 덧붙이고 비틀기를 거듭했다. 그러므로 <단사>에서 옮길 만한 대목은 그리 많지 않다. (p. 32)

초와 단의 역사를 간략하게 풀어놓는 부분을 읽다보면 정말 있었던 나라들의 역사서를 바탕으로 쓴 것 같아서 연대를 찾아보고 나라의 기록을 찾아보고 싶은 기분이 들었으나 이 책은 소설이다. 하지만 역사가 기록하는 역사의 시간과 역사가 알려주지 않은 역사의 시간을 잘 짜맞춘 글을 읽다보면 어느새 소설임을 잊어버리고 역사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여기까지가 지금부터 시작하려는 내 이야기의 멍석이다. 초의 <시원기>나 단의 <단사>는 모두 제각각의 기록이다. 초와 단이 나하를 사이에 두고 오랫동안 싸웠으므로 그 기록들은 서로 부딪친다. 게다가 단의 기록은 당대에 이루어졌으나 초의 일들은 후세에 문자로 옮겨졌으므로 두 건의 서물은 서로 맞물리지 않는다. 나는 초원과 산맥에 흩어진 이야기의 조각들을 짜 맞추었다. (p. 43)

역사는 사실 크게 보면 유목세력과 농경세력의 각축전이었다. 이 소설은 고대부터 중세까지의 그 다양했던 각축전을 하나로 함축해놓은 것 같았다.

'흩어진 이야기의 조각들을 짜 맞추었다'는 표현이 정말 아주 절묘하게 들어맞는 소설이다.

옛날옛날에...

말과 사람은 자신들의 영역에서 살았다. 사람들은 말을 타고 달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 전이었다. 그러다 사람의 냄새를 거부하지 않고 신기해하는 말과 동물의 마음을 어루만질 줄 아는 사람이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사람은 말을 타고 달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말을 타고 달릴 때 추는 이 세상이 멀리 보였고 내려다보였다. 먼 곳이 가까웠고 더 넓어진 세상이 더 좁아 보였고 지평선이 자꾸만 뒤로 물러갔다. 말이 땅을 박차고 치솟을 때 추는 사람이 땅을 밟고 살아온 수만 년의 발걸음에서 풀려나 바람 속을 달렸는데, 땅의 사슬에서 풀려나려면 말은 끝없이 땅을 박차야 했다. 발굽이 땅에서 떠서 다시 땅에 닿는 사이사이에 말은 앞으로 나아갔다.

말에 올라타서, 추는 시간을 앞질러, 시간을 이끌면서 달렸다. 초원은 다가왔고 다가온 만큼 멀어져서, 초원은 흘러갔다. (p. 57)

사람과 함께 살게 된 동물들이 다 제각각의 사연이 있게 마련이겠지만, 말을 타기 전과 후는 급격한 변화를 가져온 것 같다. 사람은 더멀리 더빨리 갈 수 있었다. 사람은 더 넓은 땅을 알게 되었다. 사람에게 다가왔던 말은 순했지만 핏속에 초원을 향한 갈망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초원에서 비혈마의 무리들이 지는 해를 향해 일제히 달려간 까닭은 정확히 알 수 없다. 나하 북쪽, 초의 신월마들이 초승달을 향해 달리던 까닭도 알 수 없다. 저무는 해와 떠오르는 달이 말들의 넑을 잡아당겼다는 것은, 그 까닭을 알 수 없는 인간들의 게으른 소리다. 그것은 말들만이 안다. (p. 72)

인간사는 인간사대로 복잡해서 인간이라고 누구나 다 이해할 수는 없기 마련이지만 말이 봤을때는 더더욱 그러했다. 특히나 인간들의 전쟁은.

목왕은 나하 건너로 군대를 보내서 대륙 남쪽, 단의 땅을 평평하게 만드는 대업을 준비해 나갔다. 목왕은 그 싸움에서 죽어서 무덤 없는 흙이 되어 초원의 풀을 키울 결심을 했다. (p. 83)

작전을 재가하면서 칭왕은 말했다. -나는 이제, 문자로써 이루려 하는 것을 무력으로 이루려 한다. 문과 무는 본래 하나인데, 그 방편이 다를 뿐이다. 나의 문과 나의 무는 서로 의지해서 함께 나아간다. 무는 문을 힘차게 하고 문은 무를 아름답게 한다. 그대들은 나하 북쪽 대륙에 나의 뜻을 심어라. 피어나서 무성하게 하라. (p. 95)

초의 목왕과 단의 칭왕은 달랐다.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를 볼수 없고 서로 이해할 수 없었다. 목왕은 아들 표에게 자신의 뜻을 유훈으로 남긴다. 표는 군대를 모아 출정했고 단은 벽을 튼튼이 하고 방어진지를 구축한채 기다렸다.

초원에서 수만 년을 살아온 부족들은 늑대나 개 떼처럼 자신의 진퇴와 대형을 맞출 수 있었다. 초의 군독들은 말을 해야만 말을 알아듣는 아둔한 자들에게만 말로 지시했다. 말을 해야만 알아듣는 자신은 말을 해도 결국 알아듣지 못한다고 초의 군독들은 한탄했다. 초의 군독들은 군병들을 다그치면서, 바람을 보고 배워라, 개들을 보고 배워라, 무장을 가볍게 해라, 가벼워야 이긴다, 싸울 때 많이 먹지 마라, 배가 고파야 정신이 맑아지고 싸움에 신명이 난다. 그것은 선조때부터 이어지는 가르침이었다.

초의 기병들은 달리는 말 위에서 엉덩이를 들고 바람 속으로 똥오줌을 내질렀고, 목이 마르면 말 목에서 흐르는 말 땀을 핥아 먹었다. (p. 111)

중국 진나라가 만리장성을 쌓게 하고 로마제국을 손쉽게 침략했던 유목민족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많지 않다. 소설을 읽는 내내 초의 습성들은 역사가 알려주지 않는 유목민족을 구체적으로 상상해볼 수 있게 해서 신선하고 흥미로웠다.

표가 상양성을 병력으로 두들겨보니 땅에 들러붙어서 사는 종족들의 착지 근성은 완강했다. 그 종속들은 땅에서 떨어지면 곧 죽는 줄 알아서 기어이 앉은 자리에 눌어붙어 돌무더기를 쌓는데, 그 성벽을 바로 쳐들어가서 부수기는 어렵다. 군대의 진퇴를 풍도로 출렁거리게 만들어서 적들의 사이사이를 바람이나 연기처럼 흘러가게 한다는 것이 표의 생각이었다. (p. 162)

사람이 땅에 들러붙으면, 땅은 그 위에 들러붙은 자의 것이 되는데 그 위에 기둥과 지붕을 세우고 그 안에 들어앉은 자들의 어두움을 표는 상양성에서 알았다. 초원에서 창세 이래로 전개된 싸움은 세상에 금을 긋는 자들과 금을 지우려는 자들 사이의 싸움이었고, 초원 끝까지 나아가서 금을 지우면, 그 뒤쪽에서 다시 금이 그어져서 싸움은 끝이 없었다. 싸움은 초의 시원부터 대를 이어가며 표에게 물려졌다. (p. 191)

연도를 알수 없는 시대이긴 하나 초원사람들은 벽을 허물고 금을 없애기 위해 싸우고 땅에 들러붙은 사람들은 벽을 세우고 금을 긋기 위해 싸운다는 것이, 땅에 들어붙는 순간 그리 된다는 것이, 소설 속에서 자주 초나라 사람의 시선으로 땅에 들어붙은 단나라 사람들을 보다보면, 초원의 습성에 대한 로망이 생겨나는 기분이다.

월나라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하루를 넘기지 않고 그날로 장례를 마쳤다. 시신이 굳기 전에 새들에게 먹여 보내려고 월나라 사람들은 장례를 서둘렀다. 월나라의 새들은 크고 검었고 울음소리가 멀리 닿았다. 다 먹은 새들은 날갯짓 없이 높이 떠서 백산 쪽으로 날아갔는데 사람들은 날이 저문 후에도 새가 날아간 쪽으로 요령을 흔들었다. (p. 175)

월의 백성들은 땅에 붙어서 살았지만, 땅에 금을 긋지는 않았다. 각자의 집 앞마당은 그 집 곡식만을 말릴 수 있었으나, 넓은 들의 소출은 나누었다. 집들은 풀과 나무로 엮어서 낮았고, 어른 허리 정도까지 땅을 파고 들어앉았다. 집집마다 방 한가운데 화덕을 마련해서 불씨를 귀하게 여겼다. (p. 248)

초나라도 단나라도 아닌 나라를 이루지 않고 부족들끼리 평화롭게 사는 곳을 다른 나라 사람들이 월나라 사람들이라고 지칭했다. 하지만 그들은 나라를 의도하지 않았다.

월나라의 장례의식은 '티베트의 천장(조장)'을 생각나게 했다. 나무가 부족하여 화장도 못하고 물이 귀하니 수장도 못하고 땅은 돌투성이 척박하여 매장도 못하는 티베트에서는 예로부터 장례를 치룬 시신을 독수리에게 내주었다. 삶의 방식은 자연환경에 맞춰지기 마련이고 티베트의 삶은 자연에 순응한 모습을 지금도 유지하고 있다.

초원에서 말을 달리며 며칠씩 말위에서 생활할 수 있는 유목민의 모습과 정착한 순간부터 땅을 차지하고 확장해간 대다수의 농경민족의 모습과 독특한 장례의식 및 평화로운 삶의 모습을 유지하는 월부족을 보면서 저자가 앞서 말한 "짜맞춘 이야기'들의 재미를 쏠쏠이 찾을 수 있었다. 시대와 장소와 민족이 혼합된 그 짜맞춤이 이렇게 하나의 이야기로 소설이 될 수 있다니 새삼 신기해 하며 읽게 되었다.

물건과 물건 사이에 물건이 아닌 것이 끼어드는 더러움을 초의 선왕들은 경계했고, 돈몰한 목왕도 그 가르침을 받들었다. 금붙이로 곡식이나 땅을 사고팔게 되면 곡식도 땅도 아닌 헛것이 인간 세상에서 주인 행세를 하게 되고, 사람들이 헛것에 홀려 발바닥을 땅에 붙이지 못하고 둥둥 떠서 흘러가게 되고, 헛것이 실물이 되고 실물이 헛것이 되어서 세상은 손으로 만질 수 없고 입으로 맛볼 수 없는 빈 껍데기로 흩어지게 될 것이라고 선왕들은 근심했다. (p. 193)

말言이 빛나고 돌이 가지런해야 사직의 영광이 나하의 남쪽에 고루 떨칠 수 있다는 선왕들의 유훈은 상양성 싸움 후에 더욱 새로웠다. 칭은 개 떼를 풀어서 싸움을 몰아가는 초의 전술을 천하고 더럽게 여겼다. (p. 213)

전쟁은 늘 참혹하기 마련이고 인간들의 전쟁에 말들은 이유도 모른채 달려나가야 했다. 신월마 토하와 비혈마 야백의 사랑이야기가 그 어떤 로맨스보다도 짠하게 마음을 울렸다. 이미 시작된 전쟁이 진행될 수록 왕들은 서로의 사고방식을 더욱 알 수 없었다. 다르다는 것이 틀렸다는 것이 아님을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마는 역사는 늘 다른 것은 틀린 것이라고 다투어온 시간의 기록이기도 하다.

세상을 지워버리고 싶은 충동이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서식하고 있었던 모양인데, 이 책은 그 답답함의 소산이다. 세상을 지우면 빈자리가 드러날 테지만, 지우개로 뭉갤 수는 없어서 나는 갈팡질팡하였다. (p. 271) <뒤에 中>

<앞에> 서 흩어진 이야기의 조각들을 짜 맞추었다고 했는데, <뒤에> 서 이 책은 세상을 지워버리고 싶으나 그러지 못하여 쌓인 답답함의 소산이라 말하는 저자의 생각을 나는 잘 알지 못한다.

작가는 이 소설을 내며 한 인터뷰에서 "화가가 물감을 쓰듯이, 음악가가 음을 쓰듯이, 그렇게 한번 언어를 전개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라며 그렇게 써낸 신화적 판타지 세계에서 두 집단 사이의 끝 모를 적대감을 드러내며 "그 야만적 폭력, 그 양 폭력이 부딪쳐 가지고 결국 서로 무 가 되는 그런 모습들을 그리려고 했죠" 라고 답했다. 작가의 열 번째 장편소설이자 첫 판타지 소설인 이 작품을 쓰는 중간에 산소호흡기를 써야할 정도로 심각한 건강상의 위기를 겪기도 했다는 그에게 지금의 현실이 새로운 혹은 여전한 약육강식의 시대인것이 안타까웠던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게 이 소설은 유목민 대 농경민의 전쟁이야기로 읽어도 좋고, 신화적 상상력을 토대로 한 역사판타지로 읽어도 좋고, 인간의 폭력과 말의 생명력을 연결시킨 無의 소설로 읽어도 좋을테지만, 내게는 그저 궁금했던 역사속 감춰진 시간들의 재현으로서 충분히 멋진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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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원
존 마스 지음, 강동혁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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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 안에, 당신은 완벽한 파트너와 매칭됩니다"

유전자로 완벽히 연결된 '단 한 사람'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일까?

스릴러 소설인데.. 분명 스릴러 소설이긴 한데 여태 읽어왔던 스릴러 하고는 달랐다. 무척 달랐다.

대부분의 스릴러 소설을 읽을 때 심장 쫄깃해하며 결말을 빨리 확인하고 싶은 마음은 '범인이 누군가?'라는 답을 찾고싶어서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아니었다.

물론 이 작품에도 살인사건이 등장하긴 하지만, 중심인물들 중에 사이코패스 한명이 있어서 그 한명의 성격을 드러내주기 위한 배경일뿐 살인사건은 이 소설의 중심사건이 아니다.

'DNA 매치'는 생물학과 화학물질, 과학에 기초를 두고 있었다. 맨디는 전혀 모르는 분야였다. 하지만 그녀는 온 마음을 다해 이 서비스를 신뢰했다. 수십억 명의 다른 사람들이 그렇듯이. (p. 11)

"결혼은 구식 제도가 될 거야. 내말 잘 기억해둬. 모두가 운명의 짝과 함께하메 되면, 누구도 다른 사람한테 무언갈 증명하기 위해 결혼할 필요가 없어질 거야" (p. 24)

사랑은 언제 시작되는 것일까? 운명의 끌림이라는 것이 있는 것일까?

이 사람이 내 운명이다 싶었던 만남도 이별로 끝나기 일쑤고 이번엔 사랑이야 싶었던 감정도 인생을 함께 해주지 못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감정의 끌림과 유전자적 호르몬의 끌림은 무엇이 먼저 일까?

어느 과학자가 DNA 의 매칭으로 세상에 나의 짝은 단 한명 뿐이며 그 한 명을 유전자 정보로 찾아줄 수 있다고 한다면?

어느 시대 이 DNA 매칭으로 내 반려자를 찾는 시간과 에너지를 단축시키고 더구나 확실하기까지 한 미래형 사랑이 일반화된다면?

과연 편리하고 좋기만 할까??

서로의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거리면서도 정확히 똑같은 속도로 뛰는 걸 느낀 그 순간, 그들은 서로가 서로의 반쪽이며 둘이 합쳐져 하나의 완전한 존재를 이룰 것 같았다. (p. 328)

맨디와 리처드, 크리스토퍼와 에이미, 제이드와 케빈(혹은 마크), 닉과 샐리(혹은 알렉스), 엘리와 팀(혹은 매튜)

이렇게 5커플의 이야기를 순서대로 조금씩 전개시켜 나가면서 매칭된 커플의 서로 다른 상황을 보여주는 이 소설은 '사랑' 의 접근법과 확신에 대해 무척 다양한 생각을 하게 해준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들이 하면 할수록 예상보다 너무 묵직한 질문을 자꾸 던져주면서도 쉽게 답을 찾을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맨디는 유산의 아픔과 남편이 매칭된 여자에게 떠나버린 이별의 고통속에 자신도 누군가와 매칭되었을지 의뢰해보기로 한다.

크리스토퍼는 스스로가 사이코패스인걸 알고 있고 연쇄살인을 저지르고 있는 중이지만 단순한 호기심으로 색다른 여자를 만나보기로 한다.

제이드는 찌질하고 미래가 없어보이는 자신의 젊은날을 이대로 소진해버리고 싶지 않아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험을 시도해 보기로 한다.

닉은 샐리와 결혼하고 싶고 서로에게 완벽한 한쌍이라고 생각했지만, 혹시 모를 의구심을 해소하기 위해 검사를 해보라는 샐리의 요청을 수락한다.

엘리는 회사를 키우느라 연애를 할 여력도 없었고 회사를 키우고 나니 제대로 된 남자를 만날 수 없었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매칭을 해본다.

DNA 매칭 서비스가 세상에 등장하고 난 후, 진짜 자신의 짝을 찾아가겠다며 헤어진 커플이 부지기수였고, 나이와 성별 혹은 그외의 조건들이 얼토당토 않은 상대와 맺어진 난감한 경우들이 발생했으며, (상대방이 아직 DNA 정보를 등록하지 않은 경우나 죽었거나 등등의 그외 경우로 인해)매칭서비스로 짝을 찾지 못해서 진정한 짝이 아닌걸 알면서도 사랑할 존재를 찾아야 하는 2등시민들은 열패감에 시달려야 했지만 'DNA 매칭 서비스' 는 날로 인기를 더해가고 신뢰도를 높여가는 중이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서로를 알아가며 사랑의 감정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DNA정보를 검색해서 자신의 짝을 찾자마자 불꽃같은 사랑을 확신하는 시대에 '사랑'이란 무엇일까?

"전 세계에 검사를 받고 자신들이 매치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부부가 수백만 쌍이나 있어요. 하지만 그 사람들은 사랑했기에 서로의 곁에 남았죠. 난 동성애 혐오, 인종차별, 종교적 증오를 박멸 직전까지 몰아 넣었어요. 매치는 성적 지향이나 피부 색깔, 어떤 신을 섬기겠다는 결심 등을 인식하지 않으니까요. 매치는 온갖 신앙과 신념을 가진 사람들을 가능하리라고 생각도 못 했던 방식으로 단합시켰어요. 이 세상을 덜 적대적인 곳으로 만들기 위해 당신은 뭘 했나요?"

"하지만 당신은 '그들' 과 '우리' 를 만들어냄으로써 그만큼 많은 사람을 분열시켰어요. 사랑하도록 설계되어 있는 사람들과, 자신들의 관계에는 그만한 가치가 없다고 느끼게 된 나머지 사람들을 나눠놓은 거죠. 당신이 한 짓과 히틀러가 유대인들에게 한 짓이 얼마나 비슷한지 모르겠어요?" (p. 423)

맨디가 리처드를 만나러 찾아갔을 때 그 첫 장소는 그의 추도식을 하는 교회였다. 하지만 맨디는 리처드의 아이를 임신한다.

사이코패스이자 연쇄살인범인 크리스토퍼와 첫눈에 사랑에 빠진 에이미는 경찰이었다. 크리스토퍼는 자신의 사랑에 당황하게 된다.

런던에 사는 제이드가 호주에 사는 케빈과 매칭되었을때 만날 수 없는 먼거리를 제이드가 날아가서 도착을 알렸을 때 케빈은 전화를 끊어버렸다.

샐리를 사랑하고 행복한 가정을 꿈꾸었던 닉이 샐리의 반강요에 밀려 매칭을 의뢰후 받은 결과는 그의 성정체성을 혼란에 빠뜨렸다.

사설경호원을 옆에 대동해야만 외출할 수 있던 엘리가 혼자 한적한 식당에서 팀과 평범한 데이트를 한날 엘리는 사랑에 빠졌다.

DNA매칭으로 맺어진 행복한 커플도 있겠지만 그러한 서비스가 세상에 등장했을때 벌어질 수 있는 온갖 혼란을 담고 있는 이 소설을 읽고 있다보면 사랑에 빠지는 것이 과연 언제인지 무엇때문인지 혼란스러워진다.

읽을수록 무거워지는 마음을 부여잡고도 궁금해서 궁금해서 다음 페이지를 읽어야만 했던 이 소설에서 피식 웃음이 났던 부분은 의외로 사이코패스 크리스토퍼 관련한 에피소드에서였다.

"소설 취향까지 섬뜩하네" 에이미가 말을 이었다. "<한니발 라이징>, <아메리칸 사이코>, <케빈에 대하여>, 도널트 트럼프 자서전..." (p. 137)

크리스토퍼가 사이코패스라는 단어의 의미를 자세히 살펴봤을 때는 20대 초반이었따. 세상에는 그와 비슷한 다른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그 말은 크리스토퍼가 정상이라는 뜻이었다. 그저 다른 형태의 정상이었을 뿐이다. (p. 164)

최근 영미권 책을 읽을 때 트럼프를 비판하는 내용이 담긴 소설이나 사회서를 읽어보긴 했었는데, 사이코패스 가 읽는 섬뜩한 취향의 책중에 그 자서전이 포함되어 있다는, 심지어 다른 책들 처럼 < > 표시도 안해주는 무심한 언급과 사이코패스가 세상에 자기자신 혼자가 아니라는 것에서 자신을 정상으로 인정한다는 그 비약이 트럼프를 이런식으로도 표현할 수 있구나 싶어서 심각하게 읽던 도중 혼자 막 웃었다. 지금 트럼프처럼 수도없이 욕먹고 있는 사람이 또 있을까 싶다.

여하튼 이 소설이 알려주는 '과학이 만들어준 미래형 사랑에 대한 전복적인 상상력' 은 디스토피아적이라고 말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유토피아적이라고 말할 수 없는 애매한 딜레마들을 잔뜩 풀어놓는다.

매칭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과 이용하지 않는 사람, 매칭된 사람을 찾아 지금의 사랑을 버리는 사람과 유지하는 사람, 매칭되었기에 서로에 대한 확실한 사랑을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과 매칭서비스 결과를 믿지 않는 사람, 매칭된 상대방에 대한 감정이 한순간 불꽃 튀는 사람과 미적지근한 사람 그 외에도 '사랑'을 '운명의 상대'를 찾는 방법이 감정이냐 과학이냐에 따라 시간과경험이냐 유전자와 호르몬이냐에 따라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소설을 읽는 내내 책도 마음도 묵직했다.

소설을 읽을때 문장이 남는 경우가 많았다. 읽으면서 밑줄을 그어가며 마음에 드는 문장을 여러번 다시 읽어보게 되곤 했었다. 하지만 이 소설은 문장이 남는 소설은 아니었다. 밑줄그은 문장은 한줄도 없었다. 하지만 커다른 물음표를 남겨주는 소설이었다. AI 가 어디까지 인간과 비슷해질 수 있는지 고민하는 시대에, 인간만의 독특한 특성을 감정과 창의성등에서 찾고 있는 시대에, '사랑' 은 얼마나 인간다운 감정일 수 있는지 생각하게 해주는 의미있는 소설이었다.

"매치가 제대로 되었거나 제대로 되지 않았을 모든 사람은 자신의 본능에 따라야 할 거예요. 가끔은 울타리 너머의 풀밭이 더 푸르지 않을 때가 있으니, 우린 우리가 속한 곳에 머물러야 해요. 그리고 가끔은 도박을 하면서 최선의 결과가 있기를 바라야죠"

"대표님이 원하는 평결을 받지 못하시면요? 그땐 어쩌죠?"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당신이 잘 알죠. 버튼을 누르고, 세상이 다시 실수를 저지르게 하세요" (p. 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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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라르손, 오늘도 행복을 그리는 이유
이소영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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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케아의 모든 디자인은 칼 라르손에서 시작된다'

스웨덴 국민 화가의 일상 속 작은 행복

'휘게, 라곰, 피카를 그림으로 표현한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나는 미술을 잘 모르고 화가도 몇명 몰라서 미술을 쉽게 말해주는 책을 좋아한다. <미술에게 말을 걸다> 라는 책을 읽고 저자인 이소영의 글에 반했다. 작가가 보여주는 그림들도 좋았다. 그림을 일상과 멀리 떨어져 있는 고매한 무엇이 아닌 일상과 함께할 수 있는 편안한 무엇으로 느끼게 해주는 것이 좋았다.

제목과 표지와 표지에 써있는 이런저런 문구들을 보고 행복을 전해주는 책이구나 싶었다. 칼 라르손 이라는 한명의 그림을 모아놓은 이렇게 화가 한명의 그림에 대한 책도 처음이었지만 그 화가가 일생을 자신의 가족과 집을 그린 그림으로 유명해졌다는 것도 신기했다. 누군가를 혹은 어딘가를 그렇게 밖을 그리는 그림들이 아닌 내 가족을 내 집을 계속 그렸고 그런 작품들이 인정을 받았다는 것이 궁금해졌다.

칼 라르손 1853~1919 은 스웨덴의 국민 화가로 불리며 사람들에게 오랜 시간 동안 사랑받고 있습니다. 그는 북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이자 공예 운동가이며, 부인 카린 베르구 와 함께 8명의 아이들을 키우며 스웨덴 팔룬에 있는 집 '릴라 히트나스'를 손수 가꾸는 행복한 삶을 그림에 담았습니다. 스웨덴의 가구 브랜드 이케아는 공공연하게 칼 라르손과 그의 아내 카린이 꾸민 집의 인테리어 스타일이 자신들의 정신적 뿌리라고 언급합니다. 칼 라르손의 작품과 생애는 스칸디나비안 포크 아트에 기반을 둔 스웨덴의 디자인과 가구 문화를 발전시켰고, 오늘날까지도 전 세계인의 주목을 받는 스칸디나비아식 스타일의 기초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 책은 지난 몇 년간 그의 작품과 삶을 해매며 그와 가족이 살던 집을 여행하고 온 저의 여정입니다.

본문을 시작하기에 앞서 위의 내용으로 시작한 이 책은 위 글 뒤에 여러 페이지에 걸쳐 칼 라르손의 그림들이 나온다. 그가 일상을 보낸 장소들과 그 장소들 속에 있는 그의 가족들을 그린 그림... 뭔가 특별하지 않은 것 같으면서도 특별한 것 같은 그의 작품들을 보고 나면 저자의 프롤로그에서 저자가 왜 칼 라르손을 궁금해했는지 이유를 밝힌다.

나는 집필하는 3년간 매일 밤마다 서재에 앉아 칼 라르손의 그림들을 봤다. 하지만 글을 쓰기가 쉽지 않았다. 칼 라르손의 그림들은 대부분 행복을 박제해 놓은 것 같은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꾸민 정지된 화면 속에서 한참을 해맸다. 그리고 그 행복은 나를 더 예민하게 만들었다. 나는 행복보다 불행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이었다. 타인의 행복은 멀리서 응원을 보내는 것에 그쳤지만, 유독 타인의 불행은 내 불행처럼 끌어안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행복한 그림' 보다 '삶의 어두운 모습을 표현한 그림'에 더 애정을 가진 사람이었다. 행복한 장면만 그리는 작가인 칼 라르손에 대한 이야기를 쓰는 시간은 동굴 속에 떨어진 반지를 찾는 과정 같았다. 결국 이 책은 나 스스로를 바르게 받아들이는 계기가 되었다.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칼이 일부러 행복한 장면만 찾아 그린다는 것을. 그럼에도 사람들은 왜 칼 라르손의 그림을 인정하고 좋아하는 것일까? 그런데 글을 쓰다보니 깨달았다. 사람들이 칼의 그림을 사랑하는 이유는 '대신 행복해주기' 때문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칼의 그림을 통해 대리만족을 하고 있었다.

세상을 하루아침에 바꿀 글을 쓰고 있는 것도 아니면서 혼자 힘겨워한 후 다시 그의 작품을 보며 깨달았다. 특별한 행복의 비밀 따위는 없었다. 그는 그냥 별일 없는 하루를 잘 기록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 별일 없는 하루하루가 왜 그렇게 아름다운지 모르겠다.

다시 힘을 내어 오랫동안 붙들고 있던 칼 라르손의 삶과 작품에 대해 썼다. 행복의 비밀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별일도 별일 없는 듯 기록한 화가의 삶 속에 있는 행복을 감상하기 위해서 말이다. 나와 함께 희극의 긴 탄생과정을 파헤쳐보고 싶은 분은 합류하기를 바란다. (프롤로그 p34~37 中)

기꺼이 합류하고 싶어졌다. 저자가 앞에 있었다면 저요저요 하고 손들뻔 했다.

나도 행복해 보이는 그림을 마냥 편안한 마음으로 선망하며 볼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차라리 현실과 동떨어진 그림이나 그저 풍경 그림이 보기 좋을 때가 많았다. 인물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괜히 복잡해지곤 하는 마음을 뭐라 설명할 수는 없다. 하지만 칼 라르손의 행복한 그림들 보다도 저자가 품었던 질문을 나또한 공감할 수 있었기에 보고 싶어졌다. 칼 라르손의 그림이. 더욱 읽고 싶어졌다. 저자의 글이.

그리고 책을 다 보고 나서 느낄 수 있었다. 일상과 행복의 관계에 대하여...

한국의 많은 사람이 사랑하지만, 아직 한국에서는 개인전을 한 번도 열지 않은 작가. 이케아의 정신적 모토라고 하나 아무리 이케아 홈페이지를 뒤져도 흔적이 많지 않은 작가. 수체화로 그려진 수많은 그림이 하나같이 너무 따뜻해서 한번 보면 절대 잊히지 않는 작가, 칼 라르손은 누구일까. (p. 45)

빈민가에서 태어나 자신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 없이 어머니와 함께 힘들게 성장한 칼 라르손. 어려서부터 미술에 재능을 보였고 힘든 환경 속에서도 열심히 뒷바라지 해준 어머니 덕에 미술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던 칼 라르손. 미술을 통해 직업을 얻고 기반을 잡기 시작했을 때 병을 얻은 몸으로 돌아온 아버지를 부양했던 칼 라르손. 책 에서 그의 자화상이 종종 나오는데 60p 에서의 자화상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제대로 된 정장을 갖춰 입고 당당하게 선 자세로 그림을 그리고 있는 40대의 자신을 담은 그 그림에서 '더 이상의 가난과 우울함이 보이지 않는 그의 모습에 괜히 뿌듯해진다' 라는 저자의 말이 깊이 공감갔다. 고난을 겪고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는 늘 감동을 주기 마련아닌가... 칼 라르손이 특별하다면 그의 성공은 그가 원하는 가족과 가정을 이루었다는 점이랄까.

그리고 그의 이런 성공은 그의 부인 카린 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칼 라르손이 청혼했던 장소에 드레스를 입고 서있는 카린을 그린 그림은... 아름다웠다! 신부가 아름답긴 했지만 꼭 신부때문에라기 보다도 뭐랄까 그 분위기가... 그림의 제목을 왜 '다리'라고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에게 소중했던 시간을 그림에 (마치 사진처럼) 담기 시작했던 것은 카린에서 시작되었다.

화가대 화가로서 유학시절 프랑스에서 만난 두 사람은 결혼하고 행복하게 살았지만 그림과 가정을 병행하는 것은 어려웠다. 누군가는 가정을 전담해야 했고 그 시절로서는 당연하게도 (어쩌면 지금도 그렇지만) 여자인 카린이 가정을 맡았다. 8명의 자녀를 낳고 기르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카린이 아플때를 그리며 칼 라르손의 마음은 어땠을까...

연작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비슷한 상황을 그린 그림들이 있곤 한데, 카린과 아이를 그린 일상의 그림과 똑같은 인물을 살짝 변형해서 봄의 공주로 표현한 그림을 나란히 볼 수 있는 페이지가 인상깊었다. 다홍색 이라는 색명이 정확하지는 않은 것 같긴한데, 여하튼 봄의 공주에서의 망토 색깔을 나는 다홍색으로 부르기로 했다. 이 다홍색이 칼 라르손의 그림에 굉장히 자주 등장한다. 원래 붉은 색은 생명력을 상징하곤 하지 않나? 칼 라르손의 다홍색이 그에게 행복의 색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칼 라르손은 아이들이 책을 읽는 장면을 많이 그렸다. 이는 부모였던 칼과 카린 모두 독서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나도 오늘 하루를 잘 보냈는지 판단할 때 책을 읽을 여유가 있었나, 없었나로 확인하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삶을 평가하는 과정에 책이라는 멋진 물건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삶은 꽤 괜찮아진다. (p. 121)

자녀들의 책보는 모습을 그린 그림들이 여러점 있었지만, 나는 책을 펼쳐놓고 딴 생각을 하거나 숙제를 해야 하는데 졸고 있는 모습을 (그 순간을 목격했지만 그림을 그리는 거울속 아버지까지) 그린 그림이 보기 좋았다. 자녀들의 꾸러기 다운 모습을 그린 그림도 많았는데 뾰로통한 표정을 하고 혼자 식탁에서 늦은 식사를 하는 아이의 그림이 정말 어찌나 일상스럽던지 저절로 웃음이 나는 걸 보면 칼 라르손의 그림이 행복을 담고 있긴 한가 보다.

그는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세계관을 그 누구보다 정교하고, 정확하며, 아름답게 그려나갔다. 지극히 평범한 가족의 일상만으로도 세계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오른 이 화가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삶에서 새로운 것을 찾는 일보다 있었던 일들을 제대로 둘러보는 것이 더 중요한 것임을 느낀다. (p. 143)

칼 라르손은 전원생활을 꿈꿨고 실현했다. 자연에 위치한 그의 집과 환경은 지금 도시에서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여전한 로망이다.

 

 

다복한 가정, 야생화 가득한 정원, 몇 걸음 가면 있는 자작나무 숲, 호수

마음만 먹으면 언제나 가능했던 피크닉, 야외에서의 식사

그리고 그림을 보다보면 어느새 성장해 있는 그의 아이들

여러 북유럽 국가들을 다녀온 후 내가 느낀 공통점은 그들은 그 무엇보다 가정 환경과 자신이 속한 공간의 인테리어에 큰 관심이 있다는 것이다. 겨울이 길고 날씨가 추워 집에 오래 있어야 하는 환경적 특성이 조명과 가구, 인테리어의 발전으로 나타났고 내적으로는 소중하고 가까운 사람들과 집안에서 보내는 문화인 '휘게(덴마크 사람들의 아늑하고 소소하고 여유로운 시간)' 나 '피카(스웨덴 사람들의 커피 마시는 시간)' 로 나타난 것이다. (p. 196)

칼과 카린은 그들이 꿈꾸던 이상적인 보금자리를 만들어나간다. 그리고 자신들의 집에 작은 용광로라는 뜻을 지닌 '릴라 히트나스' 라는 이름을 붙인다. (p. 201)

칼 라르손의 그림들은 우리에게 평범한 날과 특별한 날이 같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들의 일상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 역시 평범함을 특별하게 만들기 때문일 것이다. 가족 전체가 힘을 합쳐 무언가를 해내는 일은 아주 소소한 것일지라도 거대하게 다가온다. (p. 270)

북유럽은 햇빛이 귀하다. 그들에게 여름은 잠깐 스쳐가는 시간이므로 햇빛은 보석 같은 존재다. (p. 281)

짧은 여름과 긴 겨울을 가진 곳에서 사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을 만큼 칼 라르손의 그림은 대부분 여름을 담고 있었다. 신록이 우거진 계절, 야외에서 신나게 활동하는 아이들, 꽃들이 만발한 집... 집안에서 휘게와 피카의 시간을 길게 가지는 동안 매년 오는 여름이지만 겨울에 생각하는 여름은 특별한 만큼 그가 여름에 그렸던 그림들을 보며 보석같은 그들의 시간을 스스로 추억했을까?

유럽의 수공예 운동을 영국의 윌리엄 모리스가 이끌었다면,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수공예 운동의 중심에는 칼과 카린이 있었다. 두 사람이 평생에 걸쳐 만든 가구는 많은 북유럽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었고, 실용적이고 밝은 인텔어 스타일은 오날날에도 북유럽 인테리어 디자인을 대표한다. (p. 227)

서양에서는 식물을 잘 키우는 사람을 두고 '초록 엄지'를 가졌다고 말한다. 그녀는 그 누구보다 탁월한 가드너였다. (p. 277)

칼은 그림을 그리는 사이사이 목공 작업도 좋아해서 가구를 만들곤 했다. 아이들이 늘어가면서 집은 계속 확장공사를 했고 그렇게 확장한 공간을 카린과 함께 꾸며나갔다. 카린은 그림을 그리는 화가로서 보다도 직조 공예가로서의 능력이 출중했다. 산업혁명 이후 대량생산으로 나오는 상품들에 지친 사람들에게 새롭게 불어온 수공예의 바람은 카린의 인테리어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그녀의 인테리어 감각은 칼의 그림을 통해 세상에 퍼져나갔다.

게다가 카린은 식물을 키우는데도 탁월했다. 그녀의 정원과 집안 창가 그리고 식탁에는 늘 감각적으로 배치된 꽃들이 있었다.

릴라 히트나스의 풍경을 담은 수채화 화집은 1899년에 출판되었다. 이 책은 알버트 보니에 출판사에서 가장 성공적인 책이 되었다. 칼과 카린이 핸드메이드로 만든 가구와 인테리어는 책을 통해 스웨덴 사람들에게 알려졌고, 릴라 히트나스는 순식간에 유명해진다. 이 책에는 24점의 수채화 작품이 실렸는데 모두 릴라 히트나스의 여러 방을 표현한 작품들이었다. (p. 309)

사진과 똑같은 그림을 보면 경이롭고는 하지만 그림은 역시 사진과 달리 똑같지 않음으로써 풍기는 분위기가 멋을 더해줄 때가 많은 것 같다. 칼의 그림을 통해 카린의 인테리어가 책에 담겼을 때 그 책은 스웨덴 사람들의 로망을 담은 책이 되지 않았을까.

카린은 가족과 가정을 위해 그림을 포기했고 가족과 가정을 위해 테피스트리 작업과 디자인을 시작했다. 직접 옷을 만들어 입혔고 직접 디자인한 직조물과 자수로 집안을 꾸몄다. 미술을 전공했던 덕에 독창적인 디자인의 인테리어 소품들이 탄생했다.

칼에게 작업실이 있었다면 카린에게는 재봉실이 있었다. 카린은 이 공간에서 릴라 히트나스를 꾸밀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디자인하고 만들었다. (p. 326)

카린이 수공예로 생활용품을 디자인하고 창작하는 일은 칼 라르손이 그림을 그리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분야였따. 둘은 각자의 분야에서 예술성을 펼쳤고, 카린은 어머니, 예술가, 뮤즈일 뿐만 아니라 트렌드세터, 생활계의 거물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큼 자신의 예술성을 집안 곳곳에 표출했다. (p. 329)

공간이 주는 힘은 크다. 칼에게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작업실이 있었듯이 카린에게는 인테리어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작업실이 있었다. 거실 한모퉁이 부엌 한켠에서 수를 놓고 테피스트리를 만든 것이 아니라 그녀만의 공간에서 그녀스타일데로 작업할 수 있었다. 어쩌면 그러한 자신만의 공간이 있었기에 카린의 인테리어적 감각이 성장할 수 있었던게 아닐까 싶다. 둘은 8명의 자녀를 둘 정도로 부부애가 좋았지만 침실이 따로 있었다. 문이 없는 옆방이긴 해도 이 부부의 독립된 침실은 그들의 독립된 자아를 지켜줄 수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함께 할 것은 함께 하고 따로 할 것은 따로 할 수 있는 문화를 공유했던 그 공간 그 집은 여러 면에서 다시한번 많은 이들이 꿈꾸는 공간이 실현된 곳이었다.

 

 

자신의 자화상을 그리면서 '천국'이라는 제목을 붙인 화가가 또 있었을까? 저 멀리 자신의 보금자리인 릴라 히트나스를 배경에 두고 평화로운 숲에서 자신은 그림을 그리고 아내는 바느질을 하고 있는 자화상을 그린 그에게 그 순간이 아마도 천국 이었나 보다. 천국을 살면서 경험하다니... 부러울 수 밖에 없다. ㅎ

 

 

"마음속에 파티를 매일 여는 자는 삶 전체가 파티다" 라는 문장이 인상적인 297 페이지의 그림엔 카린과 7명의 자녀가(한명은 아기때 죽었다 ㅠ) 한꺼번에 나온 유일한 그림이었다. 그들의 삶이 매일매일 파티처럼 보여서인지 그림을 그리는 당사자인 칼을 제외한 모두가 나와서인지 인상적이었는데, 좀더 보다 보니 생각났다. 아차차 이 그림은 앞에 나왔던 그림이었다. 그리고 이 페이지에서는 양 쪽 사이에 끼어 가려진 그림부분이 앞 그림에서는 한 페이지에 오롯이 담긴 덕에 나와있었다. 한 남자가, 바이올린을 켜고 있는 한 남자. 아마도 칼 라르손은 자신이 연주하는 음악을 듣는 가족들이 매일 즐거운 삶을 살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던 것일까, 그가 꿈꾸었고 유지하고자 했던 행복이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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