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가 쉬워지는 제주여행 교과서 여행 시리즈
정은주 지음, 김도형 사진 / 길벗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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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가봐야 할 초등학교 과목별 여행지120

직접 보고 느끼고 체험하는 자연, 과학, 사회, 역사, 예술과 예체능 여행지가 한 권에

 

 

제주도는 늘 좋다.^^

4번인가 갔었는데 갈 때마다 새롭고 갔다와도 또 가고 싶어지는 곳이었다.

이 책은 유아나 초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에게 특히 유용한 책이긴 하지만, 어린 자녀가 없어도 제주도를 알고 보고 느끼게 해주는 책이라 나는 마냥 좋았다. 이렇게라도 제주도를 여행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어서 ㅎㅎ

이 책의 글을 쓴 이와 사진을 찍은 이는 부부다. 여행하는데 의견이 맞고 여행하는 직업을 가진 이들이 부러울 때가 참 많다. 늘 떠나기만 하는 여행같지만 머무르는 여행도 있다. 다 상황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지기 마련이다. 아마도 어린자녀를 두게 된 이후로 이 부부에게 여행의 관심분야도 달라진 듯 하다. 여행도 아이와 함께 아이를 위한 여행은 어른들만의 여행과 결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나는 이런 결의 여행도 참 좋아한다.

이 책의 유용성은 첫 장부터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일러두기> 에서 이 책의 구성을 알려준다. 페이지의 구성은 학습포인트, 여행지 기본정보, 사전조사를 해봐요, 엄마아빠랑 배워요, 구석구석 둘러보기, 체험과 이양기 즐기기, 여기도 가보자, TIP 등으로 다채로우면서 꼼꼼한 정리가 돋보인다.

목차를 보면서 또한번 감탄하게 된다.

제주시, 서귀포시, 제주동부, 제주서부, 제주의 섬 으로 지역별 목차가 그러려니 싶었는데, 목차뒤에 또다른 목차가 바로 이어진다.

바로 영역별 목차인데, 자연과학, 문화예술, 체험탐구, 사회역사 로 정리되는 목차를 보며 좋은 발상이라고 생각했다.

목차만 훝어봐도 일정에 따라 지역별로 묶어서 여행코스를 짤 수도 있고 목적에 따라 분야별로 묶어서 여행코스를 짤 수도 있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목차만 이렇게 상세한가 하면 그렇지 않다. 책의 뒤편에 색인도 있어서 원하는 장소를 찾아볼 수도 있고 기타 필요한 정보들도 있어서 활용성이 높아 보였다. 그야말로 제주도 종합백과사전 같달까.^^

컬러풀의 사진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방구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요즘의 답답함에서 벗어나 마음이 시원해지는 것 같았고, 그 많은 곳들을 한줄한줄 정성들여 알려주는 글들이 때로는 기행문처럼 때로는 이야기처럼 읽혀지면서 각종 여행팁들까지 얻을 수 있으니 그야말로 일석이조 정도가 아니라 일석다조 였다.

제주도의 구석구석을 책으로 보면서 들뜨는 마음을 다잡아보지만 역시나 놀러가고 싶은 마음은 수그러들 줄을 모른다. 시기가 적절해지는 데로 어서 제주도에 가고 싶다. 그리고 갈때는 이 책을 지도삼아 어디를 갈까 즐겁게 고민해보리라.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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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같은 곳에서
박선우 지음 / 자음과모음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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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주류가 있고 비주류가 있기 마련이다. 그 주류라는 것은 양적일수도 있고 질적일수도 있다. 또한 시간적일수도 있고 공간적일수도 있다. 여하튼 그러한 주류와 구분하기 위해서인지 비주류에는 항상 그것을 표현하는 수식어가 붙기 마련이다. 대부분의 화가들과 작가들이 남성일때 드물게 등장하는 여성화가들 작가들앞에는 꼭 '여성'화가 라거나 '여성'작가 라는 수식어가 붙었었다.

요즘은 아마도 '퀴어'라는 수식어가 그런 비주류의 상징어가 아닐까 싶다. 영화에서 제일 먼저 본것 같긴한데 나는 영상보다는 책을 주로 읽다보니 근래에 읽은 문화비평서나 문학에서 그 단어를 접함으로써 실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퀴어소설'이라는 표현이 거부감없이 읽히는 시대가 된건가 혹은 '퀴어소설'이라는 표현이 그냥 소설이라고만 표현되는 시대가 올건가 하는 그런 생각들... 그렇게 '퀴어소설' 이라는 분야가 아직은 신선한 내게 '퀴어소설' 인듯한데 아닌것도 같은 소설을 읽게 되었다. 바로 이 책이었다.

이 책에 엮인 소설들을 쓸 때 내가 가장 고민한 점은 문장도, 소재도, 플롯도 아니었다. 번번이 나는 소설의 첫 문장을 쓰기 직전까지 주인공의 성별을 고심했다. 그것은 내가 인위적으로 변경할 수 없는 흐름, 작품의 톤과 방향성을 결정짓는 일이나 다름없었다. 대체로 내가 그리는 남성 인물은 소중한 무언가를 잃어버렸고 그것을 회복하지 못한 채 결말을 맞이했다. 한동안 나는 그것을 마땅하다 여겼는데, 그것은 내가 지닌 남성성에 대한 분노와 체념에서 비롯했다. 이와 다르게 여성 인물은 소중한 무언가를 잃어버렸음에도 그것을 회복하려는 조짐을 품은 채 결말에 이르렀다. 한동안 나는 그것을 의식적으로 노력했는데, 그것은 내가 지닌 여성성에 대한 조심스러운 긍정이었다고밖에 볼 수 없다. 돌이켜보니 그렇다는 것이다. 이제 나는 '나' 의 성별을 고민하지 않는다. (p. 248 작가의 말 中)

박선우 라는 낯선 이름의 작가가 쓴 단편8편을 실은 이 작품집은 '작가의 말'을 십분이해할만한 감성을 공감하게 해주었다. 따지고보면 성별을 왜 굳이 흑백

그논리로 구분해야 하는가? 모두 인간이고 누구에게나 강한면과 약한면이 동시에 존재한다. 그 성격적 특징들을 굳이 남성적이다 여성적이다 할 거 뭐 있겠는가... 화자가 남성이었다가 여성이었다가 하는 8편의 소설을 읽고나면 남성이건 여성이건 공통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어떤 감정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저 다 사랑하고 싶고 사랑받고 싶고 상처받기 쉬운 사람일 뿐이었다...

왜 어떤 순간들은 불청객처럼 찾아와 남은 생을 고스란히 들여도 소거할 수 없는 얼룩을 남기고 떠나버리는 것일까. 어째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것일까. (p. 11)

그 시절 나는 내가 아닌 누군가가 되어보는 일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나는 나였고, 거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아무 문제도 없어야 한다는 것, 그것이 중요했다. 나는 굳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사실은 다른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믿었다. (p. 32)

그 지경이 되도록 취한 적은 난생처음이었고 다시는 없을 것 같다. 이제 내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그런 것뿐이었다. 내 남은 생에 더는 어떠한 변화도 일어나지 않으리란 것 말이다. (p. 37)

밤의 물고기들 中

낯선 남자가 '누나와 나' 가 사는 아파트에 하룻밤 묵고 간다. '나'는 그의 방문이 어색하고 이상하다. 2미터 가까운 키에 근육질의 그 남자는 사랑하던 남자와 헤어진 후 슬픔을 못이겨 방황하는 중이라고 했다. 그와 '나'는 밤새 술을 마시게 된다. 술이 센편이었는데 만취한 '나'는 이 짧은 하룻밤의 기억으로 스스로를 자각하게 된다.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지만 자신의 눈에는 점점 확대되어 보이는 지워지지않는 커다란 얼룩이 묻은 불량품 같은 자신을 처음 깨닫게 된다.

그런가. 그러더니 억양이 없는 어조로 되물었어. 거기서 여기까지 그렇게나 먼가.

멀지.

먼가. (p. 45)

언제가 취중에 했던 이야기를 반복하는 사람은 자신이 말했다는 사실을 잊어버려서가 아니라 그 이야기를 여러 번 게워내 아주 잊어버리려는 사람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p. 47)

지금 내가 여기에 길을 그리려고 한다 쳐. 이렇게, 길은 위로 뻗어나갈수록 점점 좁아지고, 끝내 소실점에 이르러 완전히 사라진다. 그러면 감상자는 이곳과 저곳이 꽤 멀리 떨어져 있구나, 저기가 끝이구나, 하고 받아들이기 마련이잖아. 캔버스라는 평면에 깊이가 있는 게 아닌데도 마치 가상의 거리감을 실제인 양 의식하지. 그런데 나는 그림을 그릴 때나 감상할 때 한순간도 잊어선 안 된다고 봐.영지는 고개를 돌려 잠시 내 얼굴을 살피더니 캔버스 위로 왼손을 펼쳐 보였다. 고작 이거라고. 기껏해야 여기서 저기까지는 한 뼘도 채 되지 않는다고 말이야. (p. 50)

이런식으로 상대를 등한시해야만-상대가 온 힘을 다해 쏟아내는 이야기를 온 힘을 다해 외면해야만-유지 가능한 관계가 과연 어떤 결말에 이를지에 대해 상상해 보았다. 사실 그건 상상해볼 것도 없었다. (p. 56)

무릇 관계란 오래될수록 견고해지는 것이 아니라 무르고 허술해지기 마련이다. 영지는 어쩌면 우리도 이런 식으로 느슨해지다가 한순간에 툭 끊어져버리고 말겠지, 별것 아닌 일을 계기로 영영 볼 수 없게 되겠지, 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걸지도 몰랐다. 그러니까 오늘 같은 일을 계기로 말이다. 그건 무서워, 이쪽으로 와줘, 라고 부탁하는 상대에게 음, 시간이 애매한데, 멀기도 하고, 그게 그렇게 무섭나, 라고 퉁명스레 대꾸하는 순간에 벌어지는 일 같은 것. 이 세계에서 단 두 사람만이 감지하게 될 무한한 거리의 확장을 의미할 터였다. (p. 61)

우리는 같은 곳에서 中

가깝다고 알았던 거리가 새삼 멀게 느껴질때, 오래되어 굳건하다 믿었던 관계가 모래성보다 더 부실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 그런 순간을 잊지 못하고 술마시면 얘기하고 또하고 또하면서 스스로의 상처에 소금을 뿌렸다가 약을 발랐다가 하면서 결국 스스로가 잊고 있었던 것은 평면위의 그림을 보면서 3차원 공간을 생각하는 것과 비슷한 뇌의 착각 이라는 점이었다. 감정의 연대가 끊어졌을때를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을 뿐 실오라기 하나 붙잡고 있었다는 것을 모른채 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먼저 그 얇은 실오라기를 버린 사람의 마음을 끝까지 부여잡고 있는 사람으로서는 알 수가 없기 마련이다. 그래서 취중진담이 아니라 취중망담을 해야만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서로 마주보는 한 공간이 좋은 것일까... 서로 한 방향을 함께 바라보는 것이 좋은 것일까... 결국 같은 자리인 것일까...

바닥에서 튀어 오른 물방울들이 유리 벽 곳곳으로 날아와 맺혔다. 수십 개의 물방울에는 아주 조그마한 너와 나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우리는 그 안에 함께 있었고, 빛이 머무는 각도에 따라 다양한 색채로 반짝거렸다. (p. 93)

우두커니 건너편을 바라보다가 우산 끝에 맺힌 빗방울에 시선이 머물렀다. 물방울은 서서히 몸집을 부풀리다가 예기치 않은 순간에 툭 하고 떨어져 내렸다. 가장 크고 분명해졌을 때 미련 없이 그랬다.

그날 나는 손을 뻗어 낙하하는 빗방울을 쥐어보려고 했다. 추락의 궤적을 자꾸만 낚아채려고 했다. 나는 그것을 놓치지 않기 위해 꽉 움켜쥐었다. 쥔 채로 입술 가까이 가져왔을 때에야 내가 가질 수 없다는 걸 알았다. (p. 98)

빛과 물방울의 색 中

퀴어페스티발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권고사직을 당한 '나'는 마치 출근하듯이 스타벅스 카페에 규칙적으로 가고 머물고 돌아온다. 수십년만에 퍼붓는다는 장마빗속에서 갑자기 떠났던 '그'가 나타난다. 하지만 '그'는 우산끝에 매달린 물방울 같았고 '나'는 그가 떠나고 나서야 가질 수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장마비는 그쳐있었다. 물방울은 늘 서서히 몸집을 부풀리다가 가장 크고 분명해졌을 때 미련없이 떨어진다. 그 물방울이 찰나에 보여줬던 반짝거리던 '우리'를 기억하는 것은 행복일 수 있을까 아닐까...

이렇게 엉망으로 뒤엉킨 속내를 한마디로 표현하고 싶었다.

단 한마디로.

두 마디는 구차할 것 같았다. 세마디를 할 바에는 장문의 편지를 쓰고 말지. 그러나 문장이 길어지면 나도 모르게 떳떳하지 못한 뉘앙스를 흘릴 듯 했고, 미안하다 사랑한다 같은 표현을 반어로든 은유로든 농도만 다르게 써 보낸 뒤 밤마다 이불을 걷어찰 것 같았다. 그런 상상만으로 몸서리가 일었다. (p. 106)

정확한 한마디로 너와 나 사이를 매듭짓고 싶었다. 그런데 그게 무엇인지 좀처럼 알 수가 없고, 앞으로도 알 수 없을 것 같아서...... 그저 헤매는 심정으로 살고 있다. 이것도 사는 건가. (p. 107)

이제야 알 것 같아.

네 이름을 부르고 싶었다. (p. 114)

느리게 추는 춤 中

욕을 해도 시원치가 않고 미련을 떨어봤자 돌이킬 수 없고 잡혀지지도 놓아지지도 않는 떠난 사람에게 혼란의 감정을 담아 하고 싶었던 딱 한단어는 결국 너였다. 그냥 너였다. 무슨 의미가 되었건 어떻게 들리건 하고 싶은 말은 그냥 너였다. 그뿐이다. 그런 때가 있었다. 그런 사랑의 순간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안 하던 걸 해서가 아니라 하지 않아서 문제인 건 아닐까, 하는 추측에 이르렀다. 어쩌면 해서는 안 될 일을 해서가 아니라...... 해야만 하는 일을 하지 않아서 이 지경에 이른 것이 아닐까. 그럼 이제라도 한번 해볼까. 뭐든 저질러볼까. (p. 125)

그 얼굴. 이제껏 외면해왔던 그 얼굴을, 눈빛을, 나는 비로소 마주할 수 있었다.

너는 갔다.

나는 남겨졌고, 그걸 이제야 알았다. (p. 145)

그 가을의 열대야 中

그냥 사랑하다가 자연스럽게 헤어진건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나'는 묻지 못했고 '너'는 따지지 않았다. 그래서 예전과 달라졌다는 것을 서로 모르는 척 했다. 그리고 한참이 지난 후에야 갑자기 몸에 두드러기 올라오는 가을인데도 더웠던 밤에서야 '나'는 그때의 '너'의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남겨진 '나'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너'를 위해 해야만 했던 일을 하지 않았던 '나'를 마주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너를 만나게 된다 해도, 너와 네 아들 앞에 선다 해도 내가 무슨 말을 할 수나 있을까 싶다. 어째서 나 같은 삶에는 단 하나의 예시조차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나 같은 사람들은 대체 어떠한 생을 견디다가 이렇다 할 흔적도 남기지 못한 채 사라져버린 것일까. 나는 그들처럼 소거되고 싶지 않을 뿐이다. 더 이상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을 뿐이야. 이토록 너를 기리워하는 이가 세상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언제든 돌아와도 좋을 자리가 여기 있다는 사실을 너에게 전해주고 싶을 뿐이다. 차마 어떤 대답을 듣지 못해도 괜찮아. 이제 내게 남은 바람은 그것뿐이다. (p. 154)

순간 그녀는 이 모든 일을 연후가 이미 겪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은 생에 간절히 염원할 단 하나의 이미지.

그게 뭔지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다. (p. 183)

고요한 열정 中

다른 사람들의 삶은 평범해보이고 보통같고 정상같아서 흔하디 흔한 '예시'가 있어 보이지만 과연 그럴까? 내가 가진 특별함이 특별한 것이 아니라 감추어야 하고 그래서 견뎌야 하고 그래서 스스로 답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느껴질때 그런 생각 들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의 감정은 생김새가 다 다르듯이 누구에게도 예시는 없는 것 같다. 그저 차이가 있다면 내가 바라는 것이 있느냐 없느냐 라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답을 찾느냐 못찾느냐 가 아닐까.

간절한 마음에, 여자친구에게조차 털어놓지 않았던 소원. 은수가 더 이상 아무 데도 가지 못하게 해주세요.

올겨울에는 부모님이 계신 거제도에 가자고, 거기 몽돌해수욕장에서 소원 풍등을 띄우자고는 차마 말하지 못했다. (p. 192)

소원한 사이 中

단 6페이지로 씌여진 단편인데, 제목과 내용의 아이러니로 인해 인상깊었던 작품이었다. 소원한 사이 라고 하면 대게 멀어진 사이 라는 의미로 해석되는데 여기서는 아니었다. 소원처럼 가까이 하고 싶은 사이였다. 하지만 소원처럼 이루어 질 수 없어보이는 사이였다. 소원은 그런 것이 아닐까. 바라지만 바라기에 이루어지지 않는 것. 이루어졌다면 이미 소원이 아닌 것. 바라기만 하기에 소원이 될 수 있는 것.

'사랑의 파탄' 수업 중에 그런 문장을 읽은 적이 있었다. 사랑이 지닌 특성 중 가장 결정적인 요소는 자기파괴성이다. (p. 209)

어째서 부끄러운가.

아무도 이경을 나무라지 않았다. 누구도 이경에게 잘못이 있다고 비난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경은 그 일을 기점으로 자신이 조금씩 변해간다고 느꼇고, 변했다기보다 원래의 소심한 자신으로 돌아왔고, 더는 인생의 선택에 있어 마음이 움찔거리는 쪽으로 나아가지 못했으며, 안락만을 찾아 쥐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적당히 억누르거나 모르는 체할 수 있었기에, 그런 마음은 종내 사라져버렸다. 다시는 튀어나오지 않았다. 마치 이제는 사라지고 없는 청춘의 빛처럼. (p. 214)

생각해보니 그때 우리 참 어렸다. 그때는 우리가 다 큰 줄만 알고, 남아 있는 선택지가 몇 개 없는 줄만 알고, 겁먹은 짐승들처럼 매일 불안하고 초조해했던 것 같아. 사실 지금도 비슷하지. 그렇지만 예전과 똑같지는 않은 것 같다. 얼마 전에 교정보던 원고에 이런 내용이 있었어. 하늘에는 달이 태양을 가리는 순간에만 볼 수 있는 별들이 있다고 말이야. 개기일식이 일어나면 중력장에 의해 빛이 휘면서 태양 직전에 가려져 있던 별들을 볼 수 있다고 했지. 지구에서 태어난 생명체인 이상 결코 볼 수 없었던 존재들인데, 몇십 년 만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천체 현상으로 인해 잠깐이나마 볼 수 있다는 게 좀 신기하더라. 어쩌면 우리도 그런 것이 아닐까 싶었어. (p. 216)

휘는 빛 中

그렇게 가깝지도 멀지도 않았던 사이, 떠날 사람이기에 기꺼이 되어줄 수 있었던 메아리 없는 대나무숲같던 '나'는 몇 년이 지난 후에야 조금은 갑작스럽게 이메일을 보낸다. 읽지 않으리라 생각하면서도 매일 수신확인 체크를 하던 중에 답장이 온다. 그렇게 답장을 받고서야 '나'는 평소에는 볼 수 없지만 늘 태양에 가려져 있지만 볼수 없어도 존재하는 별처럼 '그녀'가 존재함을 확인하고 나서야 세상의 빛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휘는 빛도 곧장 직진하는 빛도 다 제나름의 밝기를 가지고 있기 마련이라는 것을 새삼스레 깨닫게 된다. 그리고 '나'는 안도했을까? 이제야 일탈할 수 있게 됐을까?

8편의 인물들은 다 제각각인 것 같으면서도 마치 한가족인 것처럼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그래서 저자의 솔직함이 더 와닿았고 그래서 더 멀지 않게 느껴졌다.

읽으면서 '어둠의 왼손'이라는 소설이 떠올랐다. 어슐러 르 귄 이라는 판타지 거장의 작품이지만 판타지소설이라고 하기엔 굉장히 혁명적인 요소가 들어가 있는 작품이었다. 박선우의 소설을 읽으며 '어둠의 왼손'이 떠올랐던 이유는 이 판타지 소설속에 등장하는 한 외계종족의 특성때문이었다. 이 외계종족은 무성이다. 동시에 양성이다. 평소에는 남성이나 여성의 특징을 지니지 않은 무성이다가 필요에 따라 혹은 때에 따라 여성이 될수도 있고 남성이 될 수도 있다. 여하튼 성을 선택할 수 있다. 그 외계종족은 지구인의 신체적 특징을 들으며 깜짝 놀란다. 지구인은 그럼 일년내내 발정기냐며 어떻게 그렇게 미개할 수 있냐며 ㅍㅎㅎㅎ

'양성'에 대한 신선한 생각으로는 고대 아리스토파네스의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는데, 플라톤의 <향연> 에서 '에로스' 에 대한 의견을 돌아가며 말하던 중 아리스토파네스는 인류가 처음에는 양성동체였다는 것으로 에로스의 기원을 설명한다. 간단히 말하면 남녀가가 한몸이었는데 떨어져서 서로를 찾게된다는 것이랄까. 그런데 양성동체도 결국은 '양성'이다. 무성과 다르다.

박선우의 소설들을 읽으며 나는 '무성'과 '양성'의 중간지대를 경험한 느낌이었다. '성'에 대한 개념을 어떻게 구분지어야 하나 구분을 짓긴 지어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기도 했다. 개념적으로 이론적으로 생각하면 논쟁적이 될 수밖에 없는데 문학으로 읽으니 비록 구체적으로 정리되진 않더라도 마음으로 정리되어지는 것들이 있었다. 새로웠고 마음아팠고 좋았다. 그리고 응원한다. 무엇이 되었건 모두 사랑이다.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이해할 수 있기 마련이다. 내 어항의 크기는 얼마만한 것일까? ^^

 

이게 뭐예요?

코이 잉어예요, 그가 말했다.

잉어라고요?

모르셨구나. 그는 이를 드러내며 환히 웃었다. 코이는 자신이 처한 상황과 환경에 맞춰 성장하는 물고기인데요. 가정용 어항에 넣어두면 5센티미터 남짓 자라고, 큰 수족관에 옮겨 놓으면 행동반경이 넓어진 만큼 10센티미터에서 30센티미터까지 자라나요. 강에 풀어주면 1미터가 훌쩍 넘게 커지거요. 그는 코 밑을 문지르다가 덧붙였다. 그래서 태어나자마자 이렇게 좁은 공간에 가둬놓으면 티끌만 한 크기로 평생을 살게 된답니다. (p.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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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국편 3 : 실크로드의 오아시스 도시 - 불타는 사막에 피어난 꽃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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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사막에서 피어난 꽃' 처럼 오아시스 도시들은 한때 찬란했고 한때 번성하였으나 지금은 유산처럼 남아있는 도시들이다.

문화유산으로 남아있는 유적지들을 답사한다는 것이, 그렇게 과거의 흔적들을 살펴본다는 것이 마냥 행복한 일일수는 없는 거겠지만, 이 책처럼 읽으며 마음이 슬펐던 적은 없는 것 같다. 유홍준님의 유려한 글솜씨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실크로드 라는 비단결같은 고운이름 속에 숨겨진 척박한 가장자리들의 삶이 읽으면 읽을수록 마음이 짠해졌다.

실크로드는 길 이름중에서는 아마도 가장 유명한 길이름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그 구체적 경로는 그닥 알려지지 않은듯도 싶다. '로드' 의 유적답사는 지도을 알고 보는 것이 훨씬 구체적으로 다가오고 실감나게 읽힌다. 그래서 이 책의 처음도 지도로 시작한다.

 

 

동쪽에서 시작해서 서쪽으로 가는 길의 여정은 알겠는데, 역사를 바탕으로 한 '실크로드의 오아시스 도시들'을 좀더 이해하려면 전체적인 지도를 함께 알아두는 것이 맥락이해에 도움이 된다.

 

 

 

실크로드는 기원전 한무제의 명을 받은 장건에 의해 열린 길이다. 타클라마칸사막을 둘러싼 이 길은 중국에서 서역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이 지역은 지금의 중국 신장위구르 자치구에 해당하는데 산맥을 경계로 티벳자치구와 닿아있다. 이 두 자치구는 지도에서 차지하는 크기 대비 발달한 도시가 매우 적다. 이것은 땅은 넓으나 사람이 살만한 땅이 별로 없다는 의미다. 높은 산맥과 고원으로 둘러싸인 이 지역은 서로다른 문화권의 자연경계에 해당했다. 이 자연경계로 인한 완충지들 덕분에 중국은 오랜기간 나홀로우뚝 존재할 수 있었다. 그러다 실크로드가 열렸고 문명의 흥망성쇠에 따라 비슷하듯 다른 다른 길들도 열렸다.

여름이면 40도를 넘나드는 불타는 사막에서도 일년내내 녹지않는 만년설이 흘려보내주는 강물을 마시며 살았던 곳이 바로 실크로드의 오아시스 도시들이었다. 척박한 환경에서 양쪽 문화의 경계에 위치한 이 도시들은 문명의 혼합지였고 강력한 왕권들의 도전처였다. 불교문화의 시작이 이곳이었고 이슬람문화의 끝이 이곳이었다.

실크로드라고 하면 대개 카라반들이 낙타를 몰고 구릉을 따라 사막을 건너가는 처연한 모습을 상상한다. 그러나 실크로드가 열리기 훨씬 전부터 타림분지에는 작은 오아시스 왕국들이 넓게 퍼져 있었다. 카라반의 상품 교역은 오아시스 도시와 도시를 이어가며 행해졌다. 실크로드는 선이 아니라 점에서 점으로 이어진 것이었다.

역사적으로 보자면 타림분지 주위에는 오래전부터 사람이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 5천년 전의 신석기시대 토기, 4천년 전의 미라, 3천년 전의 청동기 등이 오아시스 도시들의 오랜 역사를 증언해 준다.(p. 9)

 

'책을 펴내며' 머릿말부터 나의 좁은 상식들을 깨트려 준다. 실크로드 하면 사막, 사막하면 오아시스 도시, 오아시스 도시하면 연못이나 호수같은 고인물 근처의 작은 촌락 을 연상하게 되지만 다~ 아니었다. 중국의 실크로드는 사막뿐만 아니라 살을에는 추위의 산맥을 넘어야 했고 도시들은 흐르는 강을 따라 강변에 건설되었으며 그 기원은 실크로드가 있기 훨씬 전 석기시대부터 존재해온 고대도시국가들이었다. 무엇보다 실크로드 라는 부드럽게 흐르는 느낌의 길이 아니라 '점'에서 '점'으로 이어진 길이었다는 것이 가장 뇌리에 깊이 새겨졌다.

그러다 기원전 2세기, 실크로드가 열리면서 이 조용한 오아시스 왕국들의 평화로운 삶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비단과 옥을 매개로 한 카라반들의 발길이 바빠지고 동서교역의 이권을 차지하기 위해 역대 중원의 제국들이 격렬하게 다투면서 그 틈바구니의 오아시스 왕국들은 온갖 고통을 겪게 되었다.

상인들이 개척해놓은 그 길을 따라 불교가 중국으로 들어왔다. 불교를 전파하러 가는 서역승과 불법을 구하러 중국에서 천축(인도)으로 가는 입축승의 발길이 이어졌다.

결국 죽음의 사막을 뚫은 것은 돈과 신앙이었다. (p. 10)

 

길은 서로를 연결하게 하고 연결되면서 서로다른 마음을 확인하게 한다. '돈과 신앙' 이 뚫은 길은 실크로드 뿐만이 아닐 것이다.

시각의 변화는 의식의 변화도 동반하는 법이라고 한다. 뭔가 변해도 변했을 것 같다. (p. 15)

직접 보고 경험한 것은 책으로만 익힌 것과는 분명 다를 것이다. 일단 마음에서 솟아나는 애정의 정도가 다를 수밖에 없다. 국내 유수한 곳을 답사하며 글을 쓴 저자도 중국을 답사하며 전과 다르게 느끼는 본인을 깨달으셨다는데 하물며 어쩌다 책으로나마 조금씩 답사를 느끼는 나는 그 감동을 채 알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내게 진한 감동을 주었다.

무엇보다 기행문과 답사기 사이에서 고민하다 그동안 유지해온 답사기의 기조(정확하게, 재미있게, 유익하게)를 지키며 글을 써주신 저자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실크로드에 대한 애잔한 감정의 절반은 누란에서 나온다. 그네들의 역사가 더없이 아프고, 그네들의 최후는 마냥 슬프기만 한데 탐험가들의 증언은 신비롭다. (p. 17)

어떤 그림에는 티투스 라는 서명이 있는데 그것이 로마 글자가 아니라 고대 인도어로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후 며칠간 그는 중국 변경의 어느 사원이 아니라 로마제국에 속해 있던 시리아나 다른 동방 지역에 위치한 어느 저택에 와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며 발굴했다고 한다. '붉은 수염에 파란 눈'의 누란 사람은 인종적으로나 지리적으로나 쿠샨왕조에 가까웠고, 그리스 미술과 만난 불교미술이 누란까지 이렇게 전파된 것이었다. (p. 42)

불교사원의 유적지 기둥 밑부분에 '날개 달린 천사' 벽화가 그려진 곳 누란, 이미 사막속에 묻힌 지 오래라 지금은 사라진 도시이기에 근대 유럽탐험가들의 기록을 중심으로 상상할 수 밖에 없는 누란 이라는 도시를 시작으로 한 이 답사기는 이렇듯 힌비롭게 시작한다. 최근 로마사를 읽은 나로서는 '티투스' 라는 로마인 이름에서 눈이 번쩍 뜨였다. 기원전 중국 변방도시에 로마문화라니 wow

한결같이 카누 모양의 배를 뒤집어놓은 모양의 관에 우리나라 관의 칠성판처럼 여러 개의 넓적한 널빤지로 뚜껑이 덮여 있었고, 그 위에는 소가죽이 넓게 덮여 있었다. 바닥은 따로 만들지 않고 모래바닥에 그대로 놓여 있었다. 그들은 사람이 죽으면 배를 타고 강을 건너듯 저승으로 간다고 믿었던 것처럼 보였다. (p. 49)

실크로드의 오아시스 도시들은 샘의 도시가 아니라 강의 도시였다. 관을 배모양으로 만들만큼 그들에게 강은 중요한 영적 장소였다. 사막기후인 땅인지라 누란의 고대무덤들에서는 미라도 다수 발견되었다. 사막에 배모양 관이라... 얼마전 김훈 작가의 '달 너머로 달리는 말' 이라는 소설을 읽었는데 소설속 초원부족의 모습이 떠올랐다. 만년설의 강물을 젖줄로 삼은 초원부족들에게도 배는 저승길에 동반자였다.

하지만 이 '누란'은 핵실험 장소로 45차례 사용되면서 지금은 군사보호구역이라 가볼수 없는 곳이 되었다. 가봐도 사막뿐이겠지만...

결국 나로 하여금 타클라마칸사막의 오아시스 도시들을 답사하게끔 바람을 불어넣은 것은 투르판의 유혹이었다. 그리고 내가 실크로드 답사기의 제목을 '불타는 사막에 피어나는 꽃'이라 붙인 것 역시 오아시스 도시들을 순례하면서 받은 전체적인 인상 중에서 투르판에서 받은 감동을 가리킨 것이다. (p. 57)

지배자와 주민이 바뀌면서 투르판에는 계속 새로운 문화가 들어왔다. 하나의 문화가 정착되기 무섭게 또 새로운 문화가 들어왔다 이러한 문화의 변천은 어느 오아시스 도시보다 다채로웠고 그 흔적이 건축, 조각, 회화, 공예 등에 뚜렷이 남아있다. 종교도 불교, 이슬람교뿐 아니라 유교, 조로아스터교, 네스토리우스교, 마니교까지 그 자취를 남겼다. 그래서 문명사가들은 투르판을 '문명의 용광로'라고 말하기도 한다. (p. 60)

생전 처음 보는 도시 이름 '투르판'에서 이렇게 다양한 단어들을 한꺼번에 보게될줄 몰랐다. 투르판이 이렇게 문명의 용광로가 된 것은 그 지리적 환경에 영향이 크다. 그래서 이곳은 중국문화, 인도문화, 그리스로마문화, 이슬람문화 의 흔적을 모두 볼수 있는 곳이다. 자연적으로도 도심 바로 옆에 쿰타크사막이 있어(저자는 실크로드 답사에서 가장 감동적인 풍광이 쿰타크사막이었다고 한다) 한곳에서 유구한 세월을 지금도 느낄 수 있게 한다, 문명의 흔적은 신석기시대때부터 있었으며 지금까지 삶이 이어지고 있는곳, 따라서 넓은 땅에 다양한 폐허들이 존재한다.

답사는 찾아가는 유적지 못지않게 거기에 도달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그것은 단순한 장소의 이동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유적지가 처한 지리적 환경에 대한 이해이기 때문이다. (p. 61)

역사는 유적·유물과 함께 기억할 때 이미지가 선명학 그려지기 때문에 한 지역의 답사는 역사 순서로 진행하는 것이 요령이다. (p. 74)

어느 답사나 마찬가지이지만 중국 답사에서 가장 필수적인 것은 유적지에 대한 설명보다도 그곳의 역사를 아는 것이다. (p. 100)

책을 읽으며 답사기로서의 배울점도 많았다.

폐허에는 폐허 나름의 미학이 있다. 같은 폐허라도 로마 시대의 대규모 목욕탕인 카라칼라 대욕장이나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 같은 곳은 원래의 모습을 상상해보며 인간 공력의 위대함에 경의를 표하게 한다. 우리 산천에 널려 있는 폐사지를 보면 화려한 건축이 있는 절집보다는 풀숲에 묻혀 있는 주춧돌과 무너진 석탑에서 오히려 조용한 선미가 느껴진다. 이에 반해 지금 교하고성 폐허는 보이는 것이라고는 아무 치장이 업는 흙벽이기 때문에 어떤 상상도 필요치 않다. 세월의 흐름 속에 모든 빛깔과 장식적인 형태미가 다 제거된 골격이 주는 건축물의 원형질을 보여줄 따름이다 콤타크사막에서 대자연에 압도되는 경외심이 올라왔다면 여기서는 인간 삶의 원초적 향기가 일어난다. 참으로 위대한 폐허였다. (p. 86)

쿰타크 사막이 대자연의 우아한 아름다움이 주는 장엄한 울림이었다면, 고창고성의 폐허에서 일어나는 것은 인간의 삶과 역사의 체취가 뼛속까지 스며오는 숭고의 감정이었다. (p. 105)

폐허의 미학... 마음에 든다. 언젠가 내가 어떤 유적지에 가서 무심하게 돌무더기를 바라보게 되었을때, 그 너른 땅에 무너져 내린 돌조각들을 보며 '폐허의 미학'을 떠올릴 수 있게 된다면 다 이 책 덕분이다.

정방형에 가까운 이 마당 한 변의 길이가 25미터 정도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상대방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는 최대 거리입니다. 그리고 상대방의 표정까지 알아볼 수 있는 거리는 12미터 정도이기 때문에 이 공간 가운데 있으면 마당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표정을 다 읽을 수 있는 셈이 되죠. 해서 이런 크기의 마당에 모인 사람들은 하나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절간의 마당도 이 크기를 넘지 않고, 공연장 역시 이 크기 이상이면 다른 차원의 공연이 됩니다. 현대 건축에서는 인간 감각과 신체조건의 한계에 바탕을 둔 휴먼 스케일에 대해 열심히 연구해서 이런 결론을 얻어냈지만 이 건물을 설계한 분은 아마 체험적으로 또는 인간의 생래적 감각으로 이처럼 인간적인 공간을 만들어냈으리라 생각됩니다. (p. 88)

저자와 실크로드 답사를 함께 한 분들은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많았던 듯 하다. 그래서 그 전문가들의 식견을 사이사이에서 읽는 재미도 쏠쏠했다. 건축과 미술사와 종교 그리고 그림까지.. 거기다 고구려의 후예의 기록도 그 먼땅에서 보게될 줄이야...

어느 나라든 국립박물관은 그 나라 문화유산의 자존심이자 문화능력을 상징적으로 담보하는 곳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그것이 구색에 맞추기가 아니라 그 이름에 걸맞은 유물을 보유했느냐는 점이다. 박물관의 위상은 소장품의 질과 양으로 평가되는데 모든 것이 다 우수할 수는 없는 일이고 그 박물관만이 내세울 수 있는 소장품이 있느냐 없느냐에 그 평가가 달려 있다. 이에 대해 우리 국립중앙박물관은 두 가지 분야예서 자랑스럽게 대답할 수 있다. (p. 141)

이 두 가지 분야란 하나는 신안해저유물이고 하나는 투르판과 누란에서 출토된 중앙아시아 유물들이다. 신안해저유물이야 우리나라 바다에서 나온 것이니 큰 수확이지만, 중앙아시아 유물들이 많다는 건 뜻밖이었는데 '오타니 컬렉션' 이라 불리는 일제의 수탈?덕분이었다. 여하튼, 중앙아시아 유물을 거의 쓸어가다시피한 독일은 2차세계대전때 폭격으로 거의 대부분의 유물을 잃었지만, 우리나라는 6.25때도 문화유산들을 부산까지 피난시키며 보존했기에 그 노력은 인정받아 마땅한 것 같긴 하다.

위구르족은 기원전3세기 이전부터 고비사막 북쪽에 살고 있던 '정령'이라 불린 민족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들은 흉노족과 혈연관계가 있다고 하는데, 전설에 의하면 흉노의 왕자 2명이 다툼을 벌이다 부하들을 데리고 나가 만든 것이 돌궐족과 위구르족이라고도 한다. 위구르란 연맹 또는 단결이라는 뜻이다. (p. 147)

이후 천산위구르왕국은 원나라의 멸망과 동시에 종말을 고했고 1347년 신강성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차가타이한국에 복속되었다. 이 무렵(14세기)부터 이 지역은 투르판이라 불리게 되었고 주민들은 완전히 이슬람화되었다. 이슬람교가 중국에서 회교로 불리게 된 것은 회골이라 불리던 위구르가 믿는 종교로 알려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투르판의 이슬람화와 동시에 베제클리크벽화는 혹심한 피해를 당하고 만다. (p. 149)

회교도라는 말이 위구르족을 일컫는 말임을 처음 알았다. 그저 이슬람교인들을 한자화한것을 음차하여 그대로 부르는 말인줄 알았는데, 중국땅의 소수민족 중 하나인 위구르족에게서 이슬람교의 용어가 나왔다고 하니 신기하고도 신선했다. 고대소아시아와 이집트지역에서 기독교가 사라지고 이슬람교가 자리잡았듯이 중국의 서역지방변경또한 그러했던 것이다. 산맥과 사막등의 자연경계가 없었다면 이 종교의 흐름이 어디까지 이어져 왔을지 모를 일이다. 역사를 알면 알수록 자연이 그어놓은 경계를 인간이 바꾼 적은 거의 없는 듯 하다.

우리도 중국을 바라볼 때 중원을 중심으로 했던 왕조만 생각할 것이 아니며 서역과 막북(고비사막 북쪽)의 유목민족들을 함부로 '호'라고 부르며 오랑캐로 대할 일이 아니다. 안서 유림굴의 서하시대 불화를 보면 고려불화와 연관성이 있듯이 베제클리크석굴의 천산위구르왕국 불화에서도 고려나 조선 불화와의 천연성을 볼 수도 있었으련만 그것이 다 파괴되어 지워진 것이 두고두고 아쉽기만 한 것이다. (p. 170)

역사를 볼때 너무 중심만 보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중국의 역사를 볼때 중원이라 불리는 중심왕조만 생각했었는데, 중국에 영향을 끼친, 끊임없는 서역에서의 다양한 흡수와 융합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가장자리지역의 위구르지역과 티베트지역은 전혀다른 외모의 사람들이 중국어로 말하는 낯선 풍경속에 자신들의 자치와 독립을 꿈꾸고 있다.

카레즈는 위구르어로 '우물'이라는 뜻으로, 지하에 우물을 파고 이 우물들을 서로 연결해서 물길을 만든 지하 관개수로를 말한다. 천산산맥의 만년설이 여름이면 녹아내려 흐르다가 사막 속으로 사라지는데, 투르판은 바다보다도 낮은 저지대이기 때문에 비굑적 용이하게 우물을 팔 수 있어 카레즈 건설이 가능했다. 이런 카레즈가 모세혈관처럼 연결되어 있는데 모두 합치면 그 길이가 무려 5천킬로미터가 넘는다고 한다. 그래서 카레즈는 만리장성, 대운하와 함께 중국의 3대 불가사의 공정으로 꼽힌다. (p. 179)

실크로드는 사막을 두르고 있는 길이지만 마냥 사막을 건너는 길이라기 보다는 가끔 사막을 만나는 길인듯 하다. 오아시스 도시지역은 왕국이 번성할 수 있을 정도로 물이 충분한 지역이 있었다. 수로하면 로마만 생각했었는데, 카레즈 라는 수로를 보니 더욱 놀라웠다. 길은 물길만큼 대단한 길이 없는 것 같다.

이번 실크로드 답사에서 '어느 도시가 제일 좋았느냐' 고 물으면 나는 투르판이라 할 것이고, '어느 오아시스 도시가 매력적이더냐' 고 물으면 쿠차라고 대답할 것이다. '어디가 제일 인상 깊었냐'고 물으면 타클라마칸사막을 건너간 일이라고 말할 것이고, '어느 코스가 제일 감동적이었냐' 고 물으면 주저 없이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천산산맥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p. 183)

답사를 다녀온 사람에게 가장 하기 쉬운 질문이 '어디가 제일 좋았냐' 일 것이다. 그 의미에 따라 여러 곳을 말하는 것은 좋은 답인듯 하다. 가는곳마다 느껴지는 감상은 다 다르고 제각각 의미가 있을 터이다.

여행이 중요한 이유는 인간의 경험을 확대시켜주기 때문이다. 해외여행에서 우리는 크게 세 가지를 보고 배운다. 문화유산 답사는 인류의 역사와 인문정신을 가르쳐주고, 도시 여행은 인간 삶의 다양한 면모를 엿보게 하며, 자연 관광은 대자연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혀준다. (p. 186)

'문화유산답사기' 시리즈는 이처럼 여행에 대한 저자의 문장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유적과 역사와 답사도 흥미롭지만, 여행에서 느끼고 배우는 저자의 생각들에 배우는 부분들이 참 많았다. 늘.

채색에 있어서는 파란색 안료를 많이 사용한 것이 눈에 띈다. 이 푸른색 안료는 '라피스 라줄리'로 우리에게는 흔히 청금석이라 알려진 광물로부터 얻어낸 것이다. 이로인해 키질석굴의 청색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고 '푸른 석굴'이라는 애칭을 갖게 되었다. 이것은 당시 아프가니스탄에서만 나오던 광물이라 이를 구하기 위해 많은 돈을 썼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만큼 쿠차 사람들은 푸른색을 좋아했다는 얘기인데 실제로 지금도 쿠차의 민가를 보면 대문과 창틀이 대부분 청색으로 되어 있다. (p. 210)

제69굴에는 신라와 연관된 이른바 '장식보검 벽화'가 있다. 한 무사가 허리에 장식보검을 차고 있는데 꼭 경주 계림로 14호분에서 출토된 것과 같은 모양이다. 이런 장식보검은 카자흐스탄의 보로보에 지역에서 출토된 것과 함께 전 세계에서 3점뿐이다. 우리 신라와 서역의 문화교류를 증명해주는 매우 중요한 벽화다. (p. 218)

청금석은 고대부터 정말 귀한 광물이었다. 그 광물을 이용한 청색이 페르시아문화와 인도문화의 영향을 보여주며 여전히 벽화에 남아있다. 고대의 문화교류와 상업교류는 늘 상상의 영역이다. 어떻게 그 옛날 그렇게 많은 교류를 할 수 있었을까... 예전부터 신라에서 출토된 보검과 유리잔 같은 고대페르시아나 고대로마와의 연결성이 보이는 유물은 늘 신기했다. 그러데 중간지역인 실크로드에 같은 모양의 검 그림이 있다니... 실크로드는 신라까지 이어졌던 셈이다. 사실 초원유목민과 가장 연결된 나라는 고구려와 백제가 아니라 신라였다. 신라와 가야의 역사는 늘 신비롭다.

쿠마라지바가 등장해 산스크리트어로 된 불경을 한문으로 번역해줌으로써 비로소 중국의 지식인(유학자)들도 불경을 읽을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쿠마라지바는 단순히 단어를 직역만 한 것이 아니라 불교에서 말하는 개념들을 한문으로 옮기려 애썼다. 쿠마라지바가 번역하면서 고민한 것은 '천축에서 찬불가의 가락은 지극히 화려하고 아름다운 것인데 이것을 한문으로 옮기려니 그 뜻은 얻을 수 있은 그 말의 이치까지 전할수는 없다' 는 점이었다. (p. 225, 226)

쿠마라지바로부터 250여 년이 지나 현장법사는 천축에 들어가 원전을 구해와 평생을 다해 번역했다. 현장법사는 의역이 아니라 직역을 택했다. 이렇게 불경은 중국어로 의역과 직역이 모두 완성됐다. 후세 사람들은 쿠마라지바의 번역을 구역, 현장법사의 번역을 직역이라고 하며 이 둘을 역성의 성도가 아니라 율장·경장·논장의 삼장에 통달한 삼장법사라 부르며 영원한 스승으로 모시고 있는 것이다. (p. 228)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동상은 불교사에 금자탑을 세운 위인이며 성현인 쿠마라지바이다. 현장법사 나 삼장법사 라는 이름은 들어봤지만 쿠마라지바 라는 이름은 생소하다. 하지만 그의 번역은 지금도 유효하다. 극락, 지옥, 열반 이라는 단어는 쿠마라지바가 표현한 의역들이라고 한다. 지금도 외국어를 한자로 표기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라고 한다. 한자는 융통성이 별로 없는 문자이다. 그런데 그 옛날 음악처럼 운율이 있고 노래처럼 불리던 게송 들의 경전을 한자로 번역한다는 것은 왠만한 고수가 아니었다면 못했을 일이다. 왜 쿠마라지바는 알려지지 않았을까...

쿠차의 벽화는 많은 것들을 알려준다. 보호된 굴이라 답사여행에서 직접 보진 못했다는 '신2굴의 천장벽화'는 비잔틴의 성현을 그린 것과 비슷한 분위기를 보이고, 동아시아에서 춤과 음악과 노래와 악기라면 쿠차의 영향을 받지 않은 나라가 없었기에 고구려 고구려 벽화와 신라의 시구절에도 쿠차의 영향을 찾아볼 수 있다. 문명의 융합과 전파에 있어 중요한 곳이다. 게다가 고구려유민2세로 당나라에서 활약했던 고선지장군의 흔적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두보의 시에서 고선지 장군에 대한 시를 보면 '푸른빛의 한혈마를 탄 고선지'장군을 표현하고 있는데, '한혈마' 라는 단어에서 다시금 김훈의 소설이 생각났다.

젊었을 때는 모두 화려하고 발달된 문명을 경험해보고 싶어해 파리, 런던으로 떠나는 배낭여행을 선호한다. 중년으로 접어들면 유명한 박물관과 역사 유적을 찾아 이집트, 그리스, 로마를 여행한다. 그러다 중늙이가 되면 역사고 예술이고 골 아프게 따질 것 없는 중국의 장가계, 계림 등 자연관광과 일본온천여행을 선호한다. 그러다 노년이 가까워진 인생들은 오히려 티베트, 차마고도 등 인간이 문명과 덜 부닥치며 살아가는 곳을 보고 싶어한다. 인간의 간섭을 적게 받아 자연의 원단이 살아 있는 곳에 대한 그리움이 노년에 들면서 깊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몸이 받쳐주지 못하여 그냥 로망에 머물고 말기 일쑤다. (p. 281)

이럴수가! 이렇게 절묘한 여행의 흐름이라니!! 정말 맞는 말이었다. 여행지는 나이에 따라 선호지역이 뚜렷이 구분되는 편이다. 내가 눈여겨 보던 곳은 어디였더라 새삼 생각해보니 갑자기 나이를 절감하게 된다. 그랬구나... 여행지도 나이듦을 나타내주고 있었구나... 그리고 결국은 로망으로만 남기게 되고 마는 것이었다...

소그드인의 고향은 소그디아나는 지금의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 부하라 지방으로 아무다리야강과 시르다리야강 사이의 오아시스 곳곳에 퍼져 작은 왕국들로 형성되어 있었다. '다리야'는 강 이라는 뜻이란다. 이들은 이란계 주민으로 소그드어를 사용했고 조로아스터교를 신봉했다. 이들은 지리적으로 동서양의 중앙에 자리 잡고 일찍부터 중국, 인도, 이란과 직접 교역하면서 실크로드의 중개상 역할을 해왔다. 소그드인들은 타고난 장사꾼이었다. 이들은 아무리 사소한 일에도 계약서를 작성할 정도로 일상생활에서도 거래를 분명히 했다고 한다. 소그드 상인들은 4세기부터 동쪽의 중국, 북쪽의 유목국가들, 서쪽의 이슬람제국과 거래하며 방대한 상업망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6세기부터 8세기 사이, 중국으로는 당나라 시대이고 사마르칸트 아프라시압 궁궐이 있었을 때가 소그드 카라반의 전성기였다. 거래에는 동전과 함께 염색하지 않은 '평직비단'을 화폐로 사용했는데 동전에 비해 비단이 장점이 많았다. 우선 동전의 가치는 유동적인 반면에 비단 가격은 안정적이었고 비단이 동전보다 가벼웠다고 한다. (p. 292~296)

비단은 주요거래 품목인줄 알았더니 화폐대용으로도 사용됐었다. 이러니저러니 '실크로드'라는 이름이 붙을 수 밖에 없었을 것 같다. 계약서를 중시하는 소그드인들을 보며 고대유대인의 상업이 생각나기도 했다. 소그드인들의 계약서 중에 혼인계약서가 발굴된 것이 있는데 거기 '드라크마' 라는 화폐단위가 등장한다. 로마의 화폐단위다. 고대로마의 화폐로 중국과 거래한 소그드인들의 카라반 행렬이 우리가 실크로드라는 단어를 들었을때 연상하는 그 낙타행렬이다. 소그드상인들이 활발히 오가고 당나라가 위세를 떨쳤을때 밀려난 북쪽의 초원유목민들은 서유럽으로 눈을 돌려 침략의 시간을 만들어 간다. 역사는 끊임없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있었음을 우리는 자주 잊고 사는 것 같다.

이렇게 활발했던 소그드인들은 소그디아나가 이슬람에 점령된 이후에도 다른 오아시스 도시들을 통해 유지되다가 이슬람의 동방진출로 궤멸되고 만다. 소그드의 정체성은 그렇게 사라졌다. 그리고 실크로드의 서쪽길에 위치한 도시들은 이슬람화 되었다. 이슬람화 된 곳들의 불교유적은 거의 완전하게 파괴되었다. 지형의 특성상 석굴 유적지가 많았고 석굴의 벽화와 후대 책으로 남은 기록이 일치하는 부분이 발견될때마다 고대의 역사들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되곤했는데 파괴된 유적은 더이상 역사를 알려줄 수 없게 되었다. 여하튼 이러한 사정들이 중국땅 변방에 이슬람도시들이 여전히 있는 배경이다.

호탄에 왔으면 모름지기 알아두어야 할 것이 ㅎ나 있으니 그것은 옥 이다. 호탄의 영광과 역사 그리고 호탄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모두 옥에 있다. 그러나 우리가 옥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중국인의 옥에 대한 애호는 상상을 초월한다. 금보다도 옥을 더 귀중하게 받아들인다. 한 예로 임금의 도장은 금인 이고 황제의 도장은 옥새 다. (p. 363)

황제의 도장은 옥새다! 이 옥새의 의미를, 금새보다 더 가치가 있었던 옥새임을 처음 알았다. 그러고 보니 중국에서 가장 흔한 기념품들 중에는 꼭 옥과 관련된 상품들이 있었다. 홍콩에 갔을때도 커다란 옥덩어리를 전시해놓은 것을 봤는데... 중국인들은 옥을 그렇게까지 귀하게 여겼구나... 호탄옥은 최고급옥이라는데 그중에서도 양지백옥을 가장 높게 친다고 한다. 양지백옥은 양비계 빛깔의 희고 윤기나는 옥이다.

'곤륜산 신화'를 바탕으로 한 '요지연도' 를 볼때 로마 사람들이 그리스 신화를 이끌어 자신들의 이야기로 쓴 것처럼 조선사람들이 중국의 신화를 즐겨 인용한 것이라는 생각이나, 위구르족의 '열두 무카무'가 민족의 정체성을 살리고 세종대왕의 '종묘제례악'이 나라의 정통성을 부여했다는 설명등 우리역사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나오면 더 관심이 가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 이 책의 내용은 모두 신선하고 신기했다.

중앙아시아의 소수민족들이 이룬 국가명이 대부분 00스탄인 것처럼('스탄'이라는 이름은 땅 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위구르족이 위구리스탄으로 독립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이해될 정도로 실크로드의 도시들은 내가 알던 중국과 너무나 달랐다. 아마도 티베트지역의 답사기가 나온다면 마찬가지의 마음이 들 것 같다. 너무나 다른데 하나의 나라로 통합되어 있다는 것이 대체 어떤 정서를 갖게 할지 감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저자가 답사한 모든 지역이 생소했고 알려주는 모든 문화유산이 신기했다. 개인적으로 차근차근 읽고 있는 중인 서양역사에서 조만간 이슬람을 만나게 될 터인데 그전에 실크로드를 접함으로써 이해의 폭을 미리 넓혀놓을 수 있었던 점도 좋았다. 이 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그들의 역사와 문화를 알게 된것에 정말 감사한 마음이다.

오아시스라면 사막 속의 옹달샘을 떠올리곤 했는데 실크로드에 와보니

그게 아니었다. (p. 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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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
김선지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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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과 차별, 억압에 맞서온 스물한 명의 여성 미술가들

여성의 예술은 한낱 아마추어에 불과하다는 편견에 맞서

위대한 예술 작품을 탄생시킨 여성 거장들의 삶고 철학을 만난다

 

여성이 미술을 하기 위해 싸워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물론 그때는 미술뿐만이 아니라 여성이 주체적으로 뭔가를 하려면 그것이 무엇이든 할수 없던 시대였다. 남성의 재산이자 소유물로만 살아야 하는, 존재하지만 존재성을 드러내서는 안되는 시절이 오래도록 계속되어온 것이 인류 역사의 한 단면이다.

여성미술사 가 왜 따로 있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그냥 미술사는 다 남성들의 미술사이기 때문이다. 여성의 역사가 왜 따로 있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그냥 역사는 다 남성중심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어떤 분야에 '여성' 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이 마음에 안들수도 있겠지만 희소하기 때문에 그만큼의 가치를 더 부여해서 파악해보자는 의미에서 나는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렇다고 무언가를 한 여성들이 특히 미술을 한 여성들이 다 싸움꾼이었느냐고 한다면 그렇지는 않다고 본다. 많은 어려움이 있긴 했겠지만 미술하는 여성이 희소했던 시대에 미술을 했던 여성들의 배경은 다양했다. 전투적으로 싸워야 했던 여성도 있었지만 비교적 평탄하게 꿈을 이루었던 여성도 있었다. 하지만 어쨌든간에 미술관에 여성미술가의 작품이 드문 것은 사실이다.

"여자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들어가려면 발가벗어야 하는가?"

그동안 우리는 남자들로 가득 채워진 미술사에 조금의 의심도 품지 않았다. 위대한 예술가들의 이름을 한번 떠올려보라. 거의 대부분 남성들이다. 여성 예술가들은 왜 없을까? 여성은 남성에 비해 예술적 능력이 떨어지는 걸까? (p. 8)

그렇다고 남성들은 생각했다. 여성은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남성들보다 뒤떨어진다고 여성이 남성처럼 생각하고 남성처럼 능력을 가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생각은 산업사회가 시작된 이후에도 여전했고 여성미술가 들은 드물게 빛을 보다가도 금새 사라졌다.

이 책에서는 르네상스부터 20세기 초 현대 미술의 태동까지 미술사에서 사라진 여성 예술가의 삶과 예술을 살펴보려고 한다. 또한 미술의 범주를 미술사에서 중심 역할을 해온 회화와 조각에서 패션, 공예, 디자인 분야까지 확장해 각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긴 여성 예술가를 포함해 서술해보고자 한다. (p. 14)

저자는 걸출했던 여성 거장들 21명에 대해 삶과 작품을 간략하게 나마 살펴볼 수 있게 해준다. 그러나 작품이 많이 실리지 않아서 아쉬웠고, 싸우지까진 않은것 같은데 과하게 편향적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조심스럽게 의문이 드는 부분들도 있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여성'이라는 수식어는 여전히 유의미했다. 어떻게 받아들여지던 간에 이 걸출한 여성들의 노력만큼은 몇배로 힘들었으리라 믿어의심치 않는다.

1부 가부장 수레바퀴 아래에서 예술혼을 불태우다

>> 조각, 그 금녀의 문을 두드리다 - 포르페르치아 데 로시 (1490 ~ 1530)

그림을 그리는 여성은 있어도 조각을 하는 여성은 없었다. 조각은 거친 망치외 끌로 작업해야 하는 데다 육체적 힘이 요구되어 남성이 독점한 분야였다. 일반적으로 여성은 육체적 힘과 지적 활력이 부족해 조각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조각가가 되려면 남자 견습생으로 북적이는 작업장에서 수년간 수습과 훈련을 받아야 했는데, 정조가 중요시된 당시에 여성에게는 이러한 과정이 금지되었다. 르네상스 시대 여성이 할 수 있던 예술 작업이라고는 공예, 테피스트리와 자수, 수채화 등이 전부 였다. 이것들은 남자에게만 허락된 회화, 조각, 건축에 비해 하찮고 열등한 영역으로 여겨졌다. (p. 23)

데 로시가 과일 씨앗에 한 조각을 보면 그야말로 그 정교함에 입을 다물수 없게 된다. 씨앗 조각으로 유명세를 얻은 데 로시는 대리적 조각까지 할 기회를 얻게 되지만 그녀의 작품은 헐값에 팔렸고 남성경쟁자들의 모함에 시달리다 마흔살에 무일푼인채 흑사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 아버지의 그림자에 가려진 초상화의 귀재 - 마리에타 로부스티 (1560~1590)

미술신동이었던 마리에타는 열네 살에 초상화로 명성을 떨쳤다. 심지어 그녀의 초상화는 신성 로마 제국의 막시밀리안 2세와 스페인의 펠리페2세의 관심을 끌어, 두 사람 모두 그녀를 궁정화가로 채용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틴토레토는 딸과 계속 공동 작업하기를 원했고 마리에타가 이 제안을 거절하도록 종용했다. (p. 34)

여성이 미술교육을 받기 어려웠던 시대에 화가가 된 여성들은 아버지가 화가인 경우가 많았다. 아버지 밑에서는 미술을 배울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화가아버지 틴토레토는 딸의 재능을 자신의 작업장에서만 이용하려 했을 뿐 넓은 세상에서 펼칠 기회는 주지 않았다. 틴토레토의 작품으로 알려진 작품들은 속속 마리에타의 작품으로 밝혀지고 있는 중이다.

>> 여성 영웅들을 캔버스에 소환환 '여자 라파엘로' - 엘리자베타 시라니 (1638~1665)

시라니의 유디트는 사실적이기보다는 이상적인 고전주의 양식으로 그려졌다. (p. 49)

시라니가 그린 여성들은 비록 포르티아, 마리아 막달레나, 클레오파트라 등 강인한 성품을 지닌 여성들이었지만, 그 표현 방식은 남성 화가가 여성을 보는 전통적 방식, 즉 남성의 시각을 만족시키는 성적 대상으로서의 여성을 고수했다고 할수 있다. 남성들로 채워진 영웅 역사화에 여성의 자리를 만들었지만, 그 영웅적인 여성들조차 끝내 남성적 시선에서 벗어나지는 못한 것이다. (p. 50)

 

스물일곱 나이에 요절했으나 여느 왕후장상이나 유명인사 못지않은 성대한 장례식을 치뤘던 시라니는 화가의 딸이었다. 역사화는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시대에 역사화로 인정받은 여성화가였다. 그러나 시라니의 역사화 속 여성은 영웅이든 아니든 애로틱했다. 그리고 그녀는 짧은 생애를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끊임없이 그림을 그려야 했고 그 수입은 모두 아버지가 가져갔다.

>> 전문 화가의 길을 개척한 풍속화의 대가 - 유디트 레이스테르 (1609~1660)

프란스 할스의 작품 중 수작으로 평가되던 <즐거운 커플>은 19세기 말 네덜란드 미술사학자 코르넬리스 호프스테드 데 그루트에 의해 결국 레이스테르의 작품으로 판명되었다. 그런데 그토록 극찬하던 이 작품이 할스가 아닌 한 무명 여성의 그림으로 밝혀지자 미술사가들은 그림에 대한 평가를 완전히 뒤집었다. (p. 60)

레이스테르는 화가의 딸은 아니었지만 미술 신동으로 인정받았고 당시로서는 드물게 자신의 작업장을 가졌던 성공한 전문 화가였다. 그러나 그녀의 그림은 화가였던 남편 얀 민세 몰레나르 나 프란스 할스 작품으로 팔려나갔다. 금전적 이익을 위해 여성화가의 작품은 남성화가의 작품으로 둔갑하는 일이 많았다. 그렇게 당대 유명했던 레이스테르는 죽고나자 무명이 되었다.

>> 18세기 유럽을 사로잡은 여인 - 앙겔리카 카우프만 (1741~1807)

앙겔리카 카우프만은 전 유럽의 스타 예술가였다. 그녀는 18세기 가장 유명한 화가이자 역사상 가장 성공한 여성 화가로, 엘리자베타 시라니처럼 '여자 라파엘로'라고 일컬어지며 뭇사람들의 칭송을 받았다. 음악과 미술 모두에 재능이 뛰어났고, 자신의 그림들을 가구, 직물, 찻잔, 그리고 장식품에 디자인하여 엄청난 수입을 올린 뛰어난 사업가였으며, 괴테를 비롯해 레이놀즈 경, 빙켈만, 러시아의 카타리나2세, 오스트리아의 요제프2세 등 유럽의 왕족과 귀족은 물론 그 시대 최고위층 인사들과 친분도 두터웠다. 그야말로 당대 최고 지성들이 흠모한 여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앙겔리카 카우프만의 이름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왜 이 위대한 여성화가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일까? (p. 71)

카우프만은 영국왕립미술아카데미의 창립회원이었다. 화가인 아버지는 딸의 재능을 알아보고 전폭적인 지원을 했다. 부모의 열성적인 교육열 덕분에 당시로서는 드물게 양질의 교육을 다양하게 받을 수 있었다. 당시 회와의 범주에서는 역사화가 가장 우월하고 지적인 분야라고 여겨졌기 때문에 카우프만 또한 역사화가로 인식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 하지만 누드수업에 참가할수 없던 여성으로서 인체묘사에 뒤떨어지는 한계를 넘을 수 없었다.

>> 여성의 공간과 세계를 그린 인상주의의 두 거장 - 베르트 모리조(1841~1895) 와 메리 카사트(1844~1926)

19세기는 프랑스 혁명 이후 전통적 신분 질서가 무너지고 신흥 부르주아와 시민 사회가 등장하면서 자유와 평등이라는 새로운 가치가 도래했다. 그러나 사람들이 '좋은 시대'라 부른 이 시대는 남성들의 것이었고 여성들은 그 혜택을 나눠 갖지 못했다. (p. 86, 87)

카사트와 모리조는 부유한 계층 출신이라 그나마 전문화가로서 활동할 수 있었다. 상류층의 부모 덕분에 미술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교양으로서 미술을 가르쳤을 뿐 딸이 전문화가가 되기를 바란 것은 아니었다. 모리조는 마네의 남동생과 결혼함으로써 마네의 도움으로 미술계에 진입할 수 있었고 카사트는 드가와 동료가 되면서 다양한 도움을 받았다. 카사트와 모리조는 인상파 그룹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사회적 제약으로 여성의 일상과 실내공간을 그림의 주요소재로 할 수 밖에 없었다.

2부 편견과 억압을 담대한 희망으로 바꾸다

>> 운명은 만들어나가는 것 - 소포니스바 앙귀솔라(1532~1625)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 하면 흔히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보티첼리 등 남성 미술가들만 떠올리지만 이들 못지않게 엄청난 명성을 떨쳤던 여성 화가도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소포니스바 앙귀솔라. 16세기 여성 미술가들이 처지를 생각하면, 앙귀솔라는 이례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화가였다. (p. 105)

16세기까지도 예술가의 자화상은 일반적ㅇ니 것이 아니었고, 더구나 팔레트, 붓, 캔버스와 이젤이 등장하는 화가의 자화상은 없었다. 따라서 앙귀솔라의 <이젤 앞의 자화상>은 화가로서의 자신을 묘사한 최초의 자화상이란 점에서 의미가 깊다. (p. 110)

유럽에 널리 알려진 최초의 국제적 여성 화가로서, 라비니아 폰타나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와 같은 다음 세대 여성 화가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미켈란젤로뿐 아니라 교황비오4세, 스페인의 펠리페2세도 그녀의 열성 팬이었고, 바로크 미술을 대표하는 반 다이크오 카라바조, 루벤스 등 불세출의 거장들이 그녀의 작품을 모사하기도 했다. (p. 116)

 

앙귀솔라도 부모덕이었다. 부유한 귀족의 딸로 태어난 앙귀솔라에게 아버지는 유명한 선생을 초빙해 딸들을 가르칠 만큼 교육에 열성이었다. 남다른 교육철학을 갖고 딸의 재능을 지원해준 아버지 덕분에 일찍부터 그림실력을 인정받은 그녀는 스물일곱에 스페인 궁정화가가 된다.그러나 그녀의 많은 작품들은 서명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오랫동안 다른 남성 화가들의 작품으로 알려져왔다.

>> 고정된 성 역할을 걷어차고 직업 화가로 - 라비니아 폰타나 (1552~1614)

그녀가 이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예술가의 딸이었고, 볼로냐 출신이었으며, 아버지와 남편의 적극적인 외조가 타고난 재능을 뒷받침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국제적인 프레스코 화가인 아버지에게서 훈련을 받았고, 여성 예술가들을 지원한 도시 볼로냐에서 태어났다. 앙귀솔라와 젠틸레스키를 제외하고 거의 모든 유명한 르네상스 여성 화가들은 볼로냐의 지적·예술적 토양이 만든 결과물이었다.(p. 123)

라비니아 폰타나는 16세기 이탈리아에서 손꼽히는 초상화가 중 한 사람이며, 앙귀솔라와 쌍벽을 이룬 동시대 여성화가라고 한다. 딸의 재능을 키워준 아버지는 딸이 그림을 계속 그릴 수 있게 뒷바라지할 수 있는 사람을 사위로 골랐고, 그렇게 만난 남편은 열한명의 아이를 양육하는데 헌신적이었그며 폰타나는 계속 그림을 그리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다. 이건 정말 폰타나의 개인적 복이다. 지금도 이런 남편은 만나기 힘들지 않나?;;; 폰타나는 '초상화의 귀재'라고 불렸다.

>> 성폭력 피해자에서 불세출의 여성 화가로 -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1597~1651)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는 최초의 페미니스트 화가로 불린다. 젠틸레스키는 17세기 여성으로서는 아주 독립적이었고, 전문 직업인으로도 성공했으며, 작품 역시 강인한 여성상을 묘사했다. 젠틸레스키가 한 고객에게 보낸 편지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기도 했다.

"나는 여자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줄 것입니다. 당신은 한 여자의 영혼에서 시저의 정신을 발견할 것입니다" (p. 131)

 

중세 여성화가들 중에서 가장 유명한 이름이 아마도 젠틸레스키 가 아닐까 싶다. 카라바조의 제자화가였던 아버지 덕에 그림을 배울 수 있었으나 스승인 화가에게 성폭력피해를 당했다. 당시로서는 드물게 재판정까지 갔고 온갖 수모를 겪었으나 재판도중 가해자가 전 부인을 죽이고 처제와 간음했다는 다른 범죄가 밝혀져 1년형을 받음으로써 젠틸레스키의 명예가 회복되었다고 한다. 명예가 회복된 것은 좋으나 이 재판내용 자체가 이미 너무 불합리하지 않은가;;; 여하튼 압도적 재능으로 자신의 작업장을 운영하며 성공한 여성화가의 삶을 살았다.

>> 350년 만에 수장고 밖으로 나온 정물화 - 클라라 페테르스(1594~1657)

페테르스는 이렇게 작품에 끊임없이 서명을 하거나, 나이프 같은 사물에 제조 회사의 상표처럼 자기 이름을 새겨 넣었고, 작게 초상을 그려 넣기도 했다. 그림 곳곳에 숨겨놓은 서명과 자화상이 자신을 드러낼 수 없었던 사회에 살았던 한 여성의 몸부림 같아 안타깝다. (p. 157)

클라라 페테르스는 17세기 플랑드르에서 가장 유명한 여성 화가이자 정물화의 개척자였다고 하는데 그녀의 삶에 대해서는 알려진게 거의 없다고 한다. 페테르스의 정물화는 사진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사실적이다. 팬던트나 빛에 비친 금속표면등에 아주 조그맟게 자신의 초상을 그려넣기도 했는데 그 세밀함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하지만 그녀의 작품은 350년간 내내 미술관 수장고에 묵혀진채 모두에게 잊혀져 왔다.

>> 탐험 정신으로 빚어낸 과학과 미학의 결합 -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1647~1717)

관찰을 바탕으로 1675년에 최초의 삽화집 <새로운 꽃에 관한 책>을, 1679년에는 곤충의 탈피를 소재로 한 삽화집 <애벌레의 경이로운 변태와 그 특별한 식탁>을 출판했다. 메리안이 남긴 아름답고 정밀한 곤충 그림과 세밀한 관찰 기록은 사람들이 곤충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지 일깨워줬다. (p. 164)

당시 동식물 연구서가 대개 표본을 모사한 곤충 그림만 있었던 것과 비교하면 그녀의 탐구 방법이 얼마나 선진적이었는지 알 수 있다. (p. 169)

그녀는 현지 답사를 하며 직접 생물 표본을 수집해 연구한 저명한 생물학자들인 다위, 헤켈, 월리스 보다 훨씬 앞서서 적도 부근의 열대 지역에서 곤충을 채집하고 기르며 연구 관찰했다. (p. 174)

 

서양의 곤충학자 하면 바로 파브르 가 떠오르는데, 파브르 이전에 먼저 곤충에 관심을 갖고 세밀하게 관찰하며 그림으로 기록을 남긴 여성이 있었다. 정교하고 아름다운 동식물 수채화와 동판화를 남긴 여성화가 메리안 이다. 메리안의 집안은 출판공방을 하고 있었고 덕분에 메리안은 출판되는 책들을 통해 지적 탐구심을 키울 수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발생학을 그대로 믿던 시대에 곤충의 변태과정을 밝힌 것은 그녀가 최초였다. 그러나 그녀의 이름은 생물학에도 미술학에도 남지 않았다.

>> 오직 자기 내면의 소리를 따라 - 로자 보뇌르(1822~1899)

당시에 여성은 바지를 입을 수 없었고, 만약 입고 싶다면 당국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 마침내 보뇌르는 프랑스 정부로부터 공공장소에서도 바지를 입을 수 있는 허가를 받아냈다. 이후 그녀는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남자 옷을 입고 살았다. (p. 180)

보뇌르는 평생 부유한 삶을 살았다. 77세로 생을 마칠 때까지 들라크루아에 상응하는 찬사를 받을 정도로 화가로서 성공적인 삶을 즐겼고, 작품들은 사회의 모든 계층에게 인기가 있었다. (p. 185)

 

남녀의 사회적 역할이 명확이 구분되고 여성에게 현모양처의 미덕을 강요했던 19세기 프랑스에, 남자같이 짧게 머리를 자르고 거친 작업복을 입은 채 파리 도살장과 가축시장을 활보한 여성이 있었다. 그녀는 공개적인 레즈비언이었고 동물만 전문적으로 그린 성공한 여성화가 로자 보뇌르 였다. 학교에 적응하지 못한 딸에게 집에서 동물과 함께 마음을 여는 교육을 했던 부모 덕분에 그녀는 자신의 재능을 키워갈 수 있었고 인정받고 성공했다.다만 인상주의 라는 새로운 미술 사조에 사실주의 화가들이 잊혀질때 잊혀졌을 뿐이다.

>> 여성의 몸에 대한 여성의 관찰 - 파울라 모더존 베커(1876~1907)

파울라 모더존 베커는 사실상 최오의 모더니즘 여성 화가이다. 그림의 주제며 색채, 형태, 붓질 등 대담하고 새로운 실험들은 그녀가 20세기 초 모더니즘을 창조한 피카소와 마티스 같은 혁신적인 화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음을 증명해준다. 그러나 이런 미술사적 성취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현대 미술사에 이름을 남기지 못했다. 반 고흐가 그랬듯 그녀 역시 작품을 팔아 돈을 벌 수 없는 처지였고, 가난과 냉대 속에서 그림을 그리다가 이른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p. 195)

100여 년 전 사실주의 화풍이 유행했던 독일 미술계에 베커의 표현주의적 화풍은 낯설었다. 생전에 화풍을 인정받지 못한 것이 여성때문이기 때문이었을까... 주류의 화풍에 반하는 독자적 화풍을 가졌던 화가들은 대부분 당대에 비참한 삶을 살았다. 하지만 베커는 자신이 하고싶은 데로 하고 살았고 출산 후유증으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 사후 '파울라 모더존 하우스' 라는 여성 미술가에게 헌정되는 미술관으로는 최초의 미술관도 건립되었다. 오히려 여성이라서 특별한 대우를 받은 것 같은 느낌도 든다.

>> 거침없이 통념을 깨부순 행동하는 페미니스트 - 수잔 발라동(1865~1938)

'수잔'이라는 이름은 이런 복잡한 그녀의 삶을 압축해 보여준다. 사실 그녀의 원래 이름은 마리 클레멘틴 발라동이었는데, 나이 많은 화가들 사이에서 정부 노릇을 하는 그녀의 처지가 성서 속에서 장로들에게 성희롱을 당하는 수잔과 비슷하다고 하여, 화가 툴루즈 로트렉이 지어준 이름이었다. 당시에 그림 모델이란 직업은 화가들과 육체적 관계를 맺는, 일종의 매춘부 취급을 받았다. (p. 207)

발라동은 누드를 그릴 때, 마치 자신의 삶을 반영하듯 투박한 노동 계급의 여성을 소재로 불완전한 몸매를 과장하지도 이상화하지도 않고 보이는 그대로 정확하게 묘사했다. (p. 213)

 

수잔 발라동은 거리의 아이였다. 정식 교육을 받지 않았음에도 모델일을 하며 어깨너머로 배우고 화가들과의 교류를 통해 자신의 실력을 스스로 키워나갔다. 그녀의 그림은 거침없었지만 그림에 대한 태도만큼은 진지했다. 하지만 발라동은 그림보다 스캔들로 더 유명세를 탔다.

>> 각성한 여자에게 보이는 것들 - 한나 회흐(1889~1978)

그녀는 여성과 남성, 서구권과 비서구권, 인간과 오브제를 어수선하게 결합하는 방식으로 정치 문제와 젠더 문제,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 판타지 등을 복합적으로 표현했다. 이 때문에 1930년대 독일을 장악한 나치는 급진적 사상을 가진 그녀를 다른 다다이스트들과 함께 퇴폐 미술가로 낙인찍었다. (p. 228)

20세기 초 유럽을 강타한 예술운동중에 다다이즘이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서구문명에 대한 회의와 절망에서 비롯된 다다이즘은 기존 사회의 모든 가치를 부정하는 예술운동을 펼친다. 이성을 부정하고 무의미, 우연성, 즉흥성을 특징으로 하는 '반예술'을 지향하는 다다이스트 중 독일에서 돋보인 존재는 한나 회흐 였다. 하지만 혁명적 다다이즘 조차도 기존의 가부장적 가치관을 넘어서지 못했다. 동료들은 그녀를 멤버로 인정하지 않았다.

3부 경계를 넘어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다

>> 렘브란트 그림보다 비싼 종이오리기 작품 - 요아나 쿠르턴(1650~1715)

요아나 쿠르틴은 이 민속 공예를 자신의 독자적인 예술로 재창조했다. 그러나 미술사학자들은 종이 오리기를 그저 민속 예술로만 취급했다. 이 때문에 그녀는 뛰어난 걸작을 남기고도 미술사에 기록되지 못했다. (p. 239)

17세기 엄청난 인기를 누리며 렘브란트의 <야경>보다 비싼 가격에 팔린 미술 공예품이 있다. 바로 종이를 정교하게 오려 만든 공예품인데, 이 종이 오리기 작품의 대가는 요아나 쿠르턴이다. 그녀는 '종이 오리기 예술의 렘브란트'라고 불리었으며, 그녀의 작업장은 당대 유럽의 명사라면 빼놓지 않고 찾는 암스테르담의 랜드마크가 됐다. 그러나 재료의 특성상 아주 소수만 남은 그녀의 작품은 그나마도 미술관 창고 서랍속에서 수백년간 잠들어 있다.

>> 직물 디자인을 예술로 끌어올리다 - 안나 마리아 가스웨이트(1688~1763)

가스웨이트는 산업 혁명 전후 시기에 활동한 뚜어난 실크 직물 디자이너로서, 직물에 그림의 원리를 도입해 직물 디자인을 예술적으로 한 차원 더 끌어올렸다. 그녀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어서 어떤 배경이 있었는지는 모르나, 그녀는 당시 예외적으로 굉장히 성공한 직물디자이너의 삶을 살았다.

>> 세계 최초의 패션 디자이너가 된 가난한 소녀 - 로즈 베르탱(1747~1813)

베르탱은 예리한 비즈니스 감각과 공격적인 마케팅 전략을 구사할 줄 알았다는 점에서 시대를 앞서간 여성이었다. 집에서 옷을 만들어 입는 게 일반적이었던 시대에 베르탱은 모자, 리본 등 패션 소품까지 파는 전문 옷 상점의 탄생, 새로운 소비 형태를 이끄는 패션 디자이너의 등장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p. 268)

로즈 베르탱은 오트쿠튀르(고급맞춤여성복 또는 그런 옷을 만드는 의상점)의 창시자이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패션을 맡게 되면서 성공가도를 달렸다. 프랑스의 사치스런 왕정이 몰락하면서 베르탱의 사업도 몰락했지만 그것은 시대의 흐름이었고 그녀가 만들어낸 패션은 남았다. 본문 내용중에서 마리 앙투아네트의 사치성을 부각한 점은 역사적 해석이 좀더 필요한 부분이다. 사치스럽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 왕비보다 수십배로 사치와 낭비를 일삼은 루이14세를 더 부각시키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 세상에서 제일 예쁜 집을 만든 여자 - 카린 라르손(1853~1919)

카린의 예술적 공헌은 남편의 이름 뒤에 가려졌다. 최근 현대 디자인에 미친 카린의 영향이 점차 비중 있게 다뤄지고 있지만, 아직도 미술사에서는 칼 라르손이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의 단독 개척자라고 소개하는 일이 더러 있다. (p. 275)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의 원형을 만들고 전 세계에 널리 알린 부부는 칼 라르손과 카린 라르손 이다. 최근 이 부부에 대한 책을 읽어서인지 다시 보아 반가웠다. 저자는 카린을 결혼 후 자신의 꿈이었던 화가의 길을 포기한 결혼 제도의 희생자라고 표현했지만, 최근 읽었던 <칼 라르손, 오늘도 행복을 그리는 이유> 를 읽고 들었던 생각은 카린이 가정을 선택한 것이지 꿈을 포기했다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들 부부의 삶과 가정은 너무나 행복이 충만했다. 카린이 결혼의 희생자라면 그녀가 불행한 삶을 살았어야 하지 않나... 하지만 카린은 가정에 충실하면서 직조공예로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며 살았고, 그렇게 카린이 멋지게 꾸민 집을 그린 남편의 그림을 통해 그녀의 작품들이 유명해지게 되었다.

>> 녹색 정원의 작은 신 - 거트루드 지킬(1843~1932)

기존의 정원에서는 조각물, 파빌리온, 분수 등이 중심이었고 나무와 식물은 오히려 보조적 역할에 머물렀다. 프랑스의 정원은 식물을 인위적으로 다듬어 식물 고유의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소홀히 취급했고, 반면 영국식 정원은 관목과 교목이 자유롭게 어우러져 정원이라기 보다는 숲에 가까웠다. 그런데 지킬의 새로운 정원은 프랑스식 정원처럼 완전히 인위적으로 통제되지도, 영국식 정원처럼 방만한 자연스러움을 추구하지도 않았다. 두 정원의 특징을 모두 살려 어떤 형식 안에서 식물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도록 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혁신은 건축물이나 조각, 나무 중심의 정원에서 초본 식물, 꽃 중심의 화단 정원으로 정원의 개념을 완전히 바꾸었다는 것이다. (p. 293)

거트루드 지킬은 영국의 원예사이자 정원 디자이너이다. 자연을 캔버스 삼아 그림을 그린 '정원의 화가' 라고 불린다. 원래 화가였으나 시력이 실명에 이를 정도로 손상되어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되었을 때 찾은 새로운 캔버스가 정원이었다. 그녀의 정원은 여전히 세게 곳곳에서 방문객들을 즐겁게 하고 있다고 한다.

아는 여성미술가들보다 모르는 미술가들이 많다보니 짧게 라도 한명한명 기념하며 적는 다는 것이 전체적으로 너무 길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한명한명 다 알아두기에 충분할 거장들이었다. 다만, 이 책에 나오는 많은 여성미술가들은 대부분 당대에 인정을 받고 성공한 여성미술가의 삶을 살았다. 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라기 보다는 성공한 여성미술가들의 역사라고나 할까. 당대에 여러 편견들과 싸워야 했던 여성미술가는 표지 자화상의 수잔 발라동 한 사람뿐인듯 하다. 그리고 아마도 그녀의 작품은 여전히 미술계에서 다른 그림들과 우열을 다투며 싸우고 있지 않을까 싶다.

후대에 잊혀지고 지금 모르는 사람이 된 것은 그녀들이 싸울 수 없는 그녀들이 없어진 후의 시간대의 일이다. 당대에 녹록지 않은 여성미술가의 삶을 산것은 분명하나 당대에 그녀들 스스로 싸워야 했다기 보다는 현대에 지금 우리네 인식에서 잊혀진 이유를 우리가 싸워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대에는 유명했는데 실력도 인정받았었는데 지금은 왜 잊혀졌는가? 어쩌면 그옛날보다 지금이 더 문제가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녀들의 이름을 미술사에 새겨놓으려면 지금 미술계에 싸우는 여성들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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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편이니까 - 더 나은 내가 되고 싶은 10대를 위한 독서 테라피 비행청소년 19
박현희 지음, 신병근 그림 / 풀빛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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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로 <더 나은 내가 되고 싶은 10대를 위한 독서 테라피> 라고 써 있기도 하고, 출판사의 청소년 교양시리즈 중 한 권이기도 하지만, 읽어보니 청소년용 책이라고 가벼이 말할 수 있는 책은 아니었다. 저자가 소개하는 책들이 모두 성인용(=청소년용으로 나오지 않은) 책이라서 청소년이라 해도 십대 후반은 되어야 독해가 가능할 듯한 책들이었다.

소개하고 있는 책들이 만만치 않다고 해서 이 책이 어렵느냐하면 아니다. 전혀 그렇지 않다. 책은 술술 재미있게 읽힌다.

저자의 <수상한 북클럽> 이라는 책을 재밌게 봤던지라 (읽고나서 너무 괜찮았어서 아주 유익한 청소년 책이라고 몇 안되는 지인들에게 추천도 했더랬다) 이 책에 대한 기대감도 높았는데, 기대 이상이었다.

저자는 고등학교 사회 교사로, 좋은 책을 읽고 책 이야기를 나누는 독서모임을 진행하고 있기도 하다고 한다. 이 책은 2016년부터 <고교 독서평설>에 연재했던 글을 가려 뽑고 고쳐 쓴 책이라는데, 자신이 읽은 책을 삶에 녹여내어 쉽게 풀어쓰고 있어서 딱히 책을 소개한다거나 권유한다는 느낌보다는 자연스럽게 책에 관심을 갖게 하고 있어서 좋았다.

글 한편당 두세권의 책을 언급하고 있다보니 이 얇은 책 속에서 알게 되는 책들은 은근히 많다. 이 책 한권을 읽었는데 20~30권의 책을 읽은 느낌이랄까 ㅎㅎ

그런데 신기하게도 저자가 읽은 책들 중에서 내가 읽은 책들과 겹치는 책이 거의 없어서 놀랐다. 주변사람들이 책중독 아니냐고 할만큼 비교적 책을 좀 많이 읽고 있는 편인 나로서는 지금까지 읽은 책이 권수로 따지면 상당한데도 저자와 겹치는 책은 겨우 다섯 권이었다. 역시 사람마다 관심사가 다 다르고 그 관심사를 채워주는 책들이 너무나 다양한 세상이다. 정말 세상에 재미있는 책은 무궁무진하다!

저자는 이 책을 읽는 독자의 어떤 날을 위한 처방전 식으로 글을 엮었다. 유순하고 부드럽게 쓰여진 책이라 잔잔하게 읽히지만 저자가 소개하는 책들 중에는 쉽지 않은 주제들을 풀어내고 있는 책들도 꽤 있었다. 나와 너무나 다른 독서취향을 가진 저자이지만, 저자가 알려주는 책들 중에서 내게도 맞는 처방책이 있는지 좀더 생각해 보기 위해 책 제목들만 간략히 적어놓기로 했다.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할 때 - 쓸모없는 짓의 행복, 뿔을 가지고 살 권리, 인형의 집, 게으름은 왜 죄가 되었나, 승자의 저주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세상과 화해하고 싶을 때 - 사랑하는 안드레이,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 저 청소일 하는데요,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 비혼입니다만 그게 어쨌다구요,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더 좋은 세상에서 살아가고 싶을 때 - 좋아 보이는 것들의 배신, 말이 칼이 될 때, 어둠의 왼손, 이갈리아의 딸들,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 세 부족사회에서의 성과 기질, 루시퍼 이펙트, 푸른 눈 갈색 눈, 파도

더 나은 내가 되고 싶을 때 - 우아한 관찰주의자, 교수처럼 문학 읽기, 변신, 변신이야기, 허클베리 핀의 모험, 돈키호테, 반지의 제왕, 미래 경영의 지배자들, 혼자 못 사는 것도 재주, 죽음의 중지, 로봇시대 인간의 일,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하지만 그대의 오늘이 어떤 날인지에 상관없이 아무 책이나 닥치는 대로 읽어도 좋겠다. 약은 남용하거나 오용하면 곤란하지만, 좋은 책은 함부로 많이 읽어도 절대 부작용이 없으니까. (p.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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