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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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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 미니애폴리스의 교외에 위치한 열두 살 루크의 집에 괴한들이 침입해 부모님을 살해하고 루크를 납치한다. 루크는 원래 자신의 것과 거의 똑같은 모양으로 꾸며져 있는 방에서 깨어난다. 그곳은 TP(텔레파시)와 TK(염력)을 가진 아이들을 모아놓고 가혹한 훈련과 실험을 통해 그들의 능력을 키워 테러에 사용하는 '시설'이었다.

 

작년 여름 '아웃사이더' 라는 작품으로 시원쫀쫀한 스릴러의 세계를 맛보게 해준 스티븐 킹의 작품이 올여름에도 다시 찾아왔다. 이번에는 악에 맞서는 초능력 아이들의 이야기다. '인스티튜트' 즉, 연구소.

한 남자가 등장한다. 이름은 팀 제이미슨. 얼마전까지만 해도 경찰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냥... 떠도는 중이다.

팀은 올라탔다. 그녀의 이름은 마저리 켈러먼이었고 브런즈윅 도서관장이었다. 그런가 하면 남동부 도서관 협회인가 뭔가 하는 단체의 회원이기도 했다. 그 협회는 돈이 없는데 "왜냐하면 트럼프 하고 그 일당이 다 빼앗아갔거든요. 그들이 문화를 이해하는 수준은 당나귀가 수학을 이해하는 수준하고 비슷해요" 라고 했다. (p. 24)

근래 영미권 번역서를 읽으면 자주 등장하는 트럼프 ㅋㅋ 이젠 뭐 익숙할 정도다 ㅋㅋ 이런 면에서도... 역시 스티븐 킹!!

그는 평범한 사람들, 특히 넉넉하지 않은 사람들이 일상적인 친절과 호의를 베풀면 가슴이 뭉클해졌고 놀랐다. 이번이 처음도 아니었다. 아니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몰라도(그도 어떨 때는 그랬다) 미국은 아직 살 만한 곳이었다. (p. 25)

엄청난 사건들도 경첩의 사소한 움직임 하나로 방향이 바뀔 때가 있다. (p. 26)

예측할 수 없는 소설이 때로는 아주 초반에 속내를 드러내보일 때가 있다. 내가 보기엔 위 구절이 그랬다. 올 여름 스티븐 킹의 스릴러는

살곳이 못되어버린 현실에서 살만한 세상임을 느끼게 해주는 사람들을 만나며 사소한 우연이 거대한 인연을 만들어내는 온기, 그것을 전해줄 것 같은 예감...

서늘한 스릴러를 읽는데 따스한 온정을 느끼게 해주는 것은 일면 모순되 보이지만... 스티븐 킹이라면 가능할 듯!

그는 경찰이었기에 서핑과 태양으로 상징되는 새러소타라는 휴양지의 낮과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만큼이나 다른 밤의 얼굴을 알았다 밤의 얼굴은 역겨웠고 가끔은 위험했고, 그는 죽은 약물 중독자와 폭행당한 매춘부를 지칭하는 NHI, 즉 인간 같지 않은 것들이라는 뜻의 혐오스러운 경찰용 은어를 쓸 정도로 타락하지는 않았지만 10년을 경찰로 지내는 동안 냉소주의자가 됐다. 가끔 이런 감정을 집까지 안고 간 것이 그의 결혼생활을 무너뜨린 원흉 가운데 하나였다. 그가 아이를 철저하게 거부한 이유 중에 이런 감정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세상에는 나쁜 것이 너무 많았다. 잘못될 수 있는 것이 너무 많았다. (p. 55)

미국 경찰은 아무래도 온전히 가정을 꾸려나가기 어려운 직업인가 보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미국경찰 혹은 요원들은 대부분 이혼남이었던듯;;;

세상엔 나쁜 것이 너무 많았고 잘못될 수 있는 것이 너무 많아서 천직이 경찰일 것 같은 팀을 어이없는 사건으로 사직하게 만들었다.

예를 들자면, 휴일날 쇼핑중에 두 소년의 싸움을 목격하게 됐는데 한 소년이 총을 들고 있었고 그 총이 사실은 장난감 총이었다든가 그런데 그 장난감 총을 내려놓게 하기 위해 천장을 향해 공포탄을 쐈는데 쇼핑천장의 샹들리에가 흥미거리용으로 현장을 핸드폰촬영중이던 시민 한명을 다치게 했다던가 그런데 그때 팀이 술 몇잔을 마신 상태였고(휴일이었다!) 그 시민이 여기저기 떠벌리고 소송거는 사람이었다든가 그래서 모범경찰표창을 받은 팀이 권고사직과 방랑이라는 갑작스런 사태를 겪게 되었다든가 하는... 지금 미국의 웃픈 현실이랄까.

총기사고와 마약사고에 대한 스티븐 킹의 경고는 작품마다 등장하는것 같은데 한결같은 그의 쓴소리에 늘 마음속으로 박수를 보내곤 한다.

여하튼 팀은 듀프레이 라는 작은 소도시에서 야경꾼으로 임시 머물게 되는데 팀의 진가를 알아본 경찰서장은 그에게 경찰복직을 제안한다.

그리고 장면은 전환되어 몇 개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한 소년이 등장한다.

루크 엘리스.

열두살인 이 소년은 아이큐 측정이 무의미할 정도로 굉장한 학습능력을 가진 아이다. 고등교육과정의 영재학교에서도 더이상 가르칠 것이 없어 대학진학을 권유했고 최고수준의 대학 두곳에서 비공식적 입학허가를 받은 상태다. 그리고 이 천재소년에겐 또다른 능력이 있다.

피자 팬이 테이블 위를 미끄러져 요란한 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떨어졌다. 허버트와 아일린은 그런 줄도 거의 알아차리지 못했다. 루크가 흥분하면 그런 현상이 벌어졌다. 자주는 아니고 가끔이기는 했지만, 그들은 거기에 익숙해져 있었다. (p. 93)

새로운 배움에 대한 열망에 한껏 들떠있었을 때 어느 밤 집에 괴한이 침입한다. 부모님과 루크 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부모님과 루크는 천재적 학습능력에 집중하고 있었기에 능력이라고도 생각지 않았던 루크가 일으키는 특이한 어떤 현상때문에 그들이 왔다. 그리고 루크가 다시 눈을 떴을 때,

그의 방이 아니었다.

가슴 속에서 뭔가가 파닥거리기 시작하자 그는 심호흡을 몇 번 하며 그걸 가라앉혔다. 잠겨 있을 게 분명하다는 생각을 하며 문 앞으로 다가가 손잡이를 잡고 돌려보았다. 문이 잠겨 있지 않았지만 문지방 너머의 복도는 그가 12년과 몇 개월을 살았던 그 집의 2층 복도와 전혀 달랐다. (p. 108)

하룻밤 사이 이 무슨 날벼락같은 일이란 말인가.

정신을 차릴 수 없는 혼돈속에서 루크는 자신처럼 영문도 모른채 납치당해와 있는 다른 아이들을 만나게 된다. 이 아이들은 루크처럼 뛰어난 학습능력은 없었지만 루크가 능력이라고 생각지 않았던 특이한 현상을 일으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아이들이었다. 텔레파시 혹은 염력.

그녀는 말문을 맺을 필요가 없었다. 세상에는 점점 더 귀해지는 상품이 있었다. 상아. 호피. 코뿔소 뿔. 희금속. 심지어 석유까지. 여기에 IQ와 별개로 비범한 재능을 소유한 특별한 아이들이 추가됐다. 이번주에 딕슨이라는 아이를 비롯해 다섯 명이 더 들어올 예정이었다. 훌륭한 업적이었지만 2년 전에는 그런 아이를 30명쯤 데려올 수 있었다. (p. 113)

그들은 루크의 천재성 따위는 관심없었다. 루크가 사물을 움직이는 능력, 그것에만 초점을 두었다. 그리고 실험들... 그들에게 아이들은 소모품이었다.

루크는 다른 아이들을 통해 빠르게 현실을 이해해 나간다. 그리고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생각하기 시작한다. 누가? 왜? 어떻게?

여기가 어떤 시설인지 몰라도 고목들로 뒤덮인 숲속, 그러니까 외딴 산골짜기에 자리잡고 있었다. 놀이터만 해도 그가 맨 처음 보았을 때 든 생각은 6세기부터 16세기까지를 수용하는 교도소의 운동장이라는 게 있다면 딱 이렇게 생겼겠다는 것이었다. (p. 135)

MIT와 에머슨에 입학할 예정이었던 루카드 데이비드 엘리스가 컴퓨터 화면 위에서 깜빡이는 한 점으로 전락했다. 루크는 그의 방으로 돌아가 좌우를 두리번거리다 경악스러운 사실을 발견했다. 책이 없었다. 한 권도 없었다. 컴퓨터가 없는 것만큼이나 몹쓸 일이었다. 어쩌면 그보다 더 몹쓸 일이었다. (p. 183)

루크를 다른 아이들처럼 어린 소년으로만 본 것이 그들의 착오의 시작이었다. 루크에게 책을 주지 않음으로써 다른 형태의 사고를 하게 한 것이 그들의 무지의 시작이었다. 루크는 다른 아이들과 달랐다. 그들에게 루크는 평균에도 못미치는 TK 소유자일 뿐이었지만, 루크는 왠만한 어른 몇명이 머리를 모아도 알 수 없는 많은 것들을 이미 알고 있는 소년이었다. 아이들이 견딜 수 없는 잔혹한 현실은 아이들을 좌절시켰지만 루크는 좌절 이상을 생각하기 시작한다.

마침내 눈물이 마르자 서글픔과 상실감이 아니라 그보다 단단한 다른 감정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있는 줄도 몰랐던, 일종의 기반암이었다. 그런게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 위안이었다. 이건 꿈이 아니라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었고 이제는 여기서 탈출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게 느껴졌다. 그 단단한 것은 그 이상을 원했다. 악에 바친 열두살 짜리의 무능력한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래도 그러고 싶어 했고, 그럴수만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p. 236, 237)

그들이 원했던 방향은 아니었지만 루크는 새롭게 자신을 각성했다. 그리고 그들은 밝혀내지 못했지만 그들이 원했던 방향으로도 루크의 능력은 각성했다. 루크는 진짜 자신을 감추었고 서서히 계획을 짜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루크 엘리스는 머리가 비상한 동시에 특이하다는 평가를 받지 않으려고 오버해 가며 붙임성 있게 굴던 아이였다. 그는 적절한 상호작용을 모두 수행한 뒤에 책의 세상으로 돌아갔다. 이 세상에는 심연이 있고, 책 속에는 거기 숨겨진 것을 소환하는 비밀의 주문이 들어 있었다. 모든 걸작 미스터리물이 그랬다. 루크에게는 그런 미스터리물이 최고였다. 미래의 언젠가는 그가 직접 책을 쓸 수도 있을지 몰랐다. (p. 323)

공과대학과 영문학전공 대학교육과정을 동시에 배우고자 했던 천재소년 루크, 루크의 지식에 대한 열망과 책에 빠져드는 몰입감을 보면서, 특히나 책에 대한 경외감과 미스터리물에 대한 열정을 보면서 루크가 스티븐 킹의 어릴적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티븐 킹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그는 아무래도 천재 같다! ㅎㅎ

여하튼, 루크는 시설과 관리자들의 헛점을 찾아내기 시작하고 누구도 모르게 탈출할 계획을 세운다. 자신만 시설을 빠져나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돌아와서 다른 아이들을 구해내기 위해서.

엄청난 사건들도 경첩의 사소한 움직임 하나로 방향이 바뀔 때가 있다. (p. 442)

전직 경찰 팀도 천재소년 루크도 '엄청난 사건들도 경첩의 사소한 움직임 하나로 방향이 바뀐' 운명을 맞닥뜨린채 1권이 끝났다.

빨리 다음줄을 읽고 싶은데 마음의 다급함과 궁금증을 따라가지 못하는 눈의 속도가 아쉬울 정도로 빠져드는 소설이었다. 아~~~~ㄱ 2권이 읽고 싶다.;;;

1947년 생의 스티븐 킹과 1945년 생의 딘 쿤츠는 미국 스릴러 소설계와 비틀즈와 롤링스톤즈로 비유되곤 한다고 한다. 두 거장은 여전히 그 어떤 현역보다 왕성하게 집필 활동중이라는 점에서 공통적으로 경이롭지만 스타일은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스티븐 킹은 스토리를 중요시 하고 딘 쿤츠는 플롯을 중요시 한다는 인터뷰모음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두 거장의 몇몇 작품을 읽으면서 스토리와 플롯의 차이를 이제는 조금 알 것도 같다. 전체구조가 사전에 이미 탄탄하게 짜여진 플롯과 한치앞도 예상할 수 없는 스토리의 전개는 둘 다 매력적이다. 서로다른 반전의 묘미또한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다. 이 두 가지 매력을 한 시대에 스릴러라는 같은 장르로 만나게 해준 두 거장에게 마음 깊이 감사할 따름이다.

그나저나... 루크의 탈출은 성공할까? 루크와 팀이 만날 것 같긴 한데... 둘은 어떤 관계를 맺게 될까? 다른 아이들을 구할 수 있을까? 그 시설의 운영자들은 어떤 세력일까? 악을 증폭시키는 어른들에 맞서는 아이들이 그 거대한 악을 분쇄시킬 수 있을까? 궁금하다궁금하다궁금하다~~~;;;

1권을 읽었을 뿐이지만 천재적인 이야기꾼 스티븐 킹의 매력을 여실히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여름엔 역시 스릴러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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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살인 1
베르나르 미니에 지음, 성귀수 옮김 / 밝은세상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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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욕조에서 발견된 여교사의 사신, 풀장 주변 위에 떠있는 19개의 인형, 엽기적 살해 현장 주변을 맴도는 연쇄살인의 그림자! (표지 中)

 

베르나르 미니에

처음 듣는 작가 이름이었다.

<눈의 살인> 이라는 장편소설로 발표와 동시에 베스트셀러의 작가가 된 그의 작품은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기에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아 다수 영상화 되었다고 한다. <물의 살인1>을 읽는 동안 그러한 평가에 대해 아~! 할 수 있었다. 글을 읽음과 동시에 장면이 머릿속에 쉽게 그려졌다.

프랑스 스릴러 작가 하면 '기욤 뮈소'만 알았는데, '베르나르 미니에'의 작품에서도 그에 뒤지지 않는 스릴러적 묘미를 느낄 수 있어 앞으로도 그의 작품에 관심이 갈 듯 하다.

프롤로그 에서 한 여자의 독백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납치된 후 몇 주, 몇 달이 흘렀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이전의 삶이 있었던가. 매주 한 번쯤, 어쩜 그보다 자주 또는 드물게, 쪽문으로 팔을 내밀라는 지시와 함께 정맥주사를 놓았다. 아팠다. 주사 솜씨가 어설픈 데다 약물이 진해서였다. 그리고 나면 거의 곧장 의식을 잃었고, 깨어났을 땐 위층 식당에 앉아 있었다. (p. 9)

한 여자가 감금된채 헤어나올 수 없는 고통을 겪는, 시작부터 충격적인 장면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뒤이어 금요일-토요일-일요일-월요일-화요일 로 시간순서적인 사건 진행을 전개하기 시작한다. 프롤로그의 시간과 이 금토일월화 의 시간이 동시간대인지 과거와 현재의 교차시점인지 분명치 않다. 동일 사건인지 두 개의 별개 사건인지도 분명히 알수 없는채 잔인한 살인사건 현장에 빠져든다.

마르삭 이라는 평온한 대학도시에서 한 여교사가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온 나라가 월드컵 개막전에 흥분하고 폭풍우가 모든 배경을 압도하던 날, 혼자 사는 젊고 매력적인 여교사의 정원을 흘끔 내려다보곤 하던 이웃집 노교수의 신고에 의해 출동한 경찰은 사건현장에서 약에 취해있는 한 남학생을 체포한다.

이 현장에 마르탱 세르바즈도 가게 된다. 얼마전 충격적 살인사건의 주범인 연쇄살인마를 검거하여 유명세를 탄 마르생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기 때문이다. 전화를 건 사람은 20여년 전의 첫 사랑 마리안 이다. 그녀는 자신의 아들이 억울한 살인누명을 쓰게 되었다며 도움을 요청한다. 20년 만의 통화임에도 목소리를 듣자마자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마르삭은 세르바즈가 공부했던 도시이기도 하고 그의 딸인 마르고가 공부하고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그리고 마리안과 그의 절친 프랑시스의 학창시절 우정과 배신의 추억을 안겨준 곳이기도 하다. 마흔 한살의 인생동안 그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어린시절의 살인사건이었으나, 사실 그는 작가가 되고 싶었다. 뛰어난 재능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아버지의 자살 이후 형사가 되었다.

그는 토라와 쿠란, 성서가 모두 펼쳐진 채 놓여있는 작은 가구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종교에 관심 있으십니까?"

그가 묻자 윈쇼의 입가에 미소가 스쳤다. 술을 한 모금 들이켜는데, 기운 잔 너무 어딘지 짓궂은 눈빛이 이글거렸다.

"참 흥미롭지 않습니까? 종교라는 것 말입니다. 어떻게 그런 거짓말들이 그토록 수많은 사람을 미혹시킬 수 있을까요? 제가 저 가구를 무어라 부르는지 아십니까?"

세르바즈가 눈썹을 실쭉 치켜 올렸다.

"<머저리들 코너>" (p. 75)

사건을 신고했던 이웃집 노교수 올리버 윈쇼는 90세를 바라보는 나이에도 형형한 눈빛을 지닌 마르삭대학 영문학 교수이다. 탐문수사 중에 세르바즈와 나누는 대화가 인상적이다. 이 노교수는 범인인것 같진 않은데 왜 이렇게 상세한 묘사를 하는 걸까 궁금했다. 무엇보다 이런식의 현실을 비꼬는 시니컬한 관점이 등장할 때마다 개인적으로 무척 인상 깊었다.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세르바즈가 문학을 전공해서인지 저자의 개인적 취향 때문인지 작품 내내 다양한 문학작품이 인용된다. 소제목 중의 하나가 '나는 플라톤의 친구이지만 그보다 더 진리의 친구다' 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의 한 구절을 사용할 정도로 고전에 대한 인용도 자주 등장한다.

세르바즈는 또다시 스스로 시대에 뒤쳐진 느낌을 받았다. 그가 데리고 있는 젊은 부하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세상이 얼마나 빨리 변하고 있으며, 그가 어느 정도까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지 일깨워주곤 했다. 조만간 한국인이나 중국인들이 수사로봇을 발명해 형사들을 폐기처분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p. 77)

프랑스 감옥은 늘 결백한 사람들로 북적댔고, 거리에는 죄지은 자들로 넘쳐났다 판사와 변호사는 그 잘난 법복을 걸치고 도덕과 법에 대해 보란 듯이 일장연설을 토해내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사법체계의 맹점이 무수한 오류를 범할 수 있음을 인정하고 있었다. (p. 84)

뜻밖의 한국 등장 ㅋㅎㅎ 중국과 일본이 아니라 중국과 한국이 언급된 것을 반가워해야 하려나;;;

외국 스릴러 소설을 읽다보면 정의의 주인공이 형사나 요원인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래서인지 법복 입은 자들에 대한 비판을 종종 본다. 우리나라의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정의의 주인공은 검사나 변호사 일 경우가 많지 형사인 경우는 별로 못 본 것 같은데... 문화의 차이일까 부패의 차이일까 ^^;;;

마르고는 자기가 무얼 원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 점에선 어떤 의혹도 없었다. 문득 딸의 유부남 애인의 말이 생각났다. 성탄절을 며칠 앞둔 어느 날 카피톨 광장에서 딱 한 번 만났었다. "겉모습은 제멋대로지만, 마르고는 아주 속 깊은 아이랍니다. 똑똑하고 자주적이죠. 모름지기 아버지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성숙할 거예요" 그 자체만으로 고통스럽거니와 가시 돋친 설전에 가까웠던 대화. 다만 아버지가 딸을 그간 얼마나 잘못 알고 있었는지를 깨닫게 해준 대화이기도 했다. (p. 100)

wow 과거 딸의 애인이 유부남인데 형사인 아버지가 그 애인을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니;;; 더구나 딸은 이제 열일곱살인데;;;

하긴 고등학생때부터 술과 담배, 마약이 가능한 문화이니 애인의 범주도 우리네와는 많이 다르려나;;;

"잘 생각해봐. 네 목숨이 걸린 일이야!"

"음악이......"

"뭐, 음악?"

"바보 같은 얘긴 줄 알지만 자꾸 말해보라고 다그치니까"

"내가 무얼 다그치는지는 내가 잘 알아, 자 계속해봐. 음악이?"

"정신이 들었을 때 오디오세트에서 들려오는 음악소리가......" (p. 110)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잡힌 소년이자 마리안의 아들인 위고는 사건 현장에서 생소한 음악을 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사건이 일어난 여교사 집의 오디오세트에서 CD가 나왔다. 구스타프 말러의 '킨도토튼리더(죽은 아이들을 위한노래)' 였다.

구스타프 말러.

이 음악가는 세르바즈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가이기도 했지만, 몇 년 전 검거한 연쇄살인마가 가장 좋아하여 사건현장에 틀어놓곤 하던 음악의 음악가이기도 했다. 말러의 음악에 대해서라면 둘 다 달인의 경지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연쇄살인마는 얼마전 정신병원에서 탈출했다. 사건의 범인을 추적할 수록 연쇄살인마인 쥘리앙 알로이스 이르트만의 그림자가 짙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온천하가 언제 산산조각 날지 모르거니와 정치, 경제, 종교, 자원고갈이란 이름을 단 묵시록의 네 기사가 죽어라고 채찍을 휘두르는 상황임에도 일촉즉발 지구촌 족속은 축구 같은 참으로 하찮은 짓거리에 미쳐 계속 광란의 춤만 추어댈 것인가 보다. 세르바즈는 한숨을 내쉬었다. 기후재앙과 주가폭락, 대규모 소요사태와 대량학살이 걷잡을 수 없이 세상을 몰아치는 가운데서도, 점수를 따는 데만 혈안이 된 바보들과, 그런 바보들을 응원하고자 경기장에 꾸역꾸역 모여드는 더한 바보들은 늘 있을 거라는 생각. (p. 125)

연쇄살인마가 다시 활개를 치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는데 여기저기서 온통 월드컵 축구에 광분중인 것을 볼때마다 축구를 좋아하지 않는 세르바즈는 이해할 수 없었다. 이 형사는 알면 알수록 참 사색적이고 문학적이다. 하지만 이 예민함에는 슬픈 기억이 깃들어져 있다. 어린 소년이었을 때 집안에 강도가 들어 어머니는 의자에 묶인 아버지 앞에서 강간당하고 살해당했다. 그 소리들을 벽장안에서 들었던 어린 소년은 10년 후 자살한 아버지를 발견하게 된다. 그때 공부를 때려치우고 경찰시험을 봤다.

'흘러간 시간은 돌이킬 수 없나니' 베르길리우스의 <농경시> 에서 인용 (p. 157)

해석학은 '말하다' '표현하다' 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헤르메네이아'에서 유래했으며, 이는 전령의 신 헤르메스의 어근이기도 하다. (p. 163)

최근 읽었던 책 중에 프랑스 작가의 호메로스에 대한 에세이가 있었는데, 프랑스는 라디오에서도 한 계절 내내 고전이야기를 하고 중학교에서도 호메로스를 읽는다더니 스릴러 소설에서도 고전을 등장시키는 구나 싶어 신기했다.

엘시노어의 궁정과도 같은 대학도시 마르삭이 험담에 대한 감각과 더불어 말조심에 대한 감각 또한 남다른 곳이거니와 지극히 우아하고 세련된 방법으로 애먼 사람을 저격하는 곳이며, 따라서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비방은 용납할 수 없이 저급한 취향으로 간주되는 곳임을 세르바즈는 모르지 않았다. 요컨대 지금 그가 상대하는 사람들은 고도의 지식인들로 수수께끼와 암시, 숨은 의미를 즐기며 아주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자신의 섬세한 지성을 과시하고 싶어하는 하즐이었다. (p. 204)

살해된 여교사 클레르의 주변을 탐문할 수록 부유한 지성인들과 학생들이 주민의 대부분인 마르삭 만의 고유한 어떤 특성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이러한 특성은 연쇄살인마 쥘리앙과도 닮아 있었다.

분명 복에 겨워서였을 거다. 적어도 마리안의 생각은 그랬다. 세르바즈 역시 말은 안했지만 고대 그리스인들이 대죄로 여기던 휘브리스(도를 넘는 오만)라는 단어가 머릿속에서 떠올랐따. 이를 범하는 사람은 자기에게 주어진 몫 이상의 것을 바람으로써 죄를 저지르는 것이요, 신들의 분노를 산다는 얘기였다. (p. 230)

20년 만에 만난 세르바즈와 마리안은 어쩔 수 없이 과거에 멈춰졌던 시간을 현재까지 연결시켜야 했다. 그 과정에서 몰랐던 서로의 속내를 알게 된다.

세르바즈-마리안-프랑시스 의 삼각관계는 비슷하면서도 다르게 여전히 마르삭 교정에서 진행중이었다. 수재들만 모인다는 이 학교에서 사랑과 경쟁은 여전히 솔직해서는 안되는 분야인가 보다.

"현재 상황을 정리하자면 이래. 지금 위고는 살인혐의를 받고 있어. 범죄현장에서 발각되었지. 다비드는 불과 몇 초 간격으로 그를 뒤따라 술집을 나갔고, 그걸 목격한 사라는 입을 다물고 있지. 아울러 1학년 최우수 학생 네 명이 거기 있었다는 거야. 다시 말해 반경 수백 킬로미터 내에서 가장 우수한 두뇌의 젊은이 네 명으로 이루어진 4인조. 말해봐, 그런 각도로 보면 문제가 훨씬 더 흥미롭지 않아? 요컨대 구린 놈이 그들 중에 있는 거라고." (p. 251)

세르바즈의 딸 마르고는 용의자인 위고와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다. 살해된 여선생에게 배운 적도 있다. 소문을 타고 자신의 아버지가 그 사건을 맡았다는 것은 학교내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리고 위고가 범인이 아닐 것이라는 심증이 있다. 그런데 교내에서 수상한 움직임이 포착되고 마르고는 아빠와 다른 형태의 수사에 착수하기로 한다.

"당신들끼리 마음대로 놀아보라고. 그래서 당신들 중 누가 더 강한지 실컷 확인하라고. 결국 나는 당신들이 하는 노름의 판돈에 불과했던 거야. 싸움판 그 자체. 당신들의 그 고약한 경쟁의식. 그 오랜 대결 한가운데 나라는 존재가 있었지. 마치 전리품처럼 말이야. 알겠어?" (p. 427)

과거의 배신은 세르베즈가 알던 이유가 아니었고, 클레르에게 내연남이 있었다는 것이 밝혀진다. 그런데 내연남이 또 있다. 이른바 삼각관계.

삼각관계는 여기저기서 등장한다. 두 남자 사이의 한 여자, 두 여자 사이의 한 남자, 두 범죄자와 한 형사, 두 상관과 한 부하직원, 세명의 친구 등등등

소설이 시작되자마자 살인사건이 발생했고 용의자가 현장에서 붙잡혔다.

하지만 용의자가 범인이 아니라는 증거만 쌓이고 예상되는 범인은 한명에서 두명 두명에서 세명으로 자꾸 늘어만 간다.

모든 가능성이 열린채 1권이 끝난다. 과연 범인은 누구일까? 정말 연쇄살인마가 재등장한 것일까? 예상밖의 새로운 인물일까?

참, 소설에서 '헌병'이 자주 나오는데 내가 생각하는 '헌병'의 개념은 군인이라 이해가 잘 안갔었다. 그런데 읽다보니 소설에서 말하는 '헌병' 이라는 건 우리식으로 보면 파출소 또는 지구대 로 불리는 동네의 작은 경찰기관을 말하는 것 같다. 헌병으로 새로 부임하게 된 인물의 설명을 읽고 보니...

>> "도로교통 단속하고, 이따금 술꾼들이 드잡이하는 걸 정리해주고, 좀도둑질이나 기물파손행위, 학교 앞에서 약 파는 놈들을 잡아다가 콩밥을 먹이고, 뭐 그런 일들을 하며 지내요." (p. 491) <<

사실 이 소설이 2권세트인지 모르고 읽었던 터라 2권의 존재를 알았을때 아차 싶었다. 어쩌나... 한번에 몰아서 읽었어야 했는데;;;

모든 것이 시작되고 모든 문이 열리고 모든 사람이 대상이 된 채 덮게 된 마지막장... 이거 원 궁금해서;;;; 어서 2권을 찾아 읽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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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랜드 - 심원의 시간 여행
로버트 맥팔레인 지음, 조은영 옮김 / 소소의책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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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하는 데만 6년이 걸린 이 책 [언더랜드]는 물질, 신화, 문학, 기억, 그리고 대지에 존재하는 지구의 방대한 지하 세계를 탐험하면서

주제에 따라 지면 아래에서 형성된 울림, 패턴 연결의 네트워크로 확장해나간다. (표지 날개 中)

'언더랜드' 라는 책 제목을 봤을때 땅 아래 세계에 대한 과학적 혹은 역사적 책이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어쩌면 고고학적 이야기와 지질학적 이야기를 기대했던 것도 같다. 그런데 읽고나니 무어라 특정지을 수 없는 책이었다. 지표면 아래 뚫린 다양한 구멍들을 탐사하는 탐험기이자 지구의 생명을 생각하게 하는 자연다큐이자 문학적 은유들이 넘쳐나는 논픽션인 글들은 읽을수록 놀라웠고 묘한 매력에 빠져들게 했다.

경관, 기억, 장소, 자연에 관한 저술로 유명한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저자는 세계적 자연 작가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폭넓은 사유를 글에 녹여 내고 있어서, 단순히 재미가있다or없다 로 표현할 수 없는 그 이상의 어떤 경지를 느끼게 해준다. '언더랜드' 라는 물질적 실체에 대한 책을 읽고 있는줄 알았는데 아득한 심원의 시간이라는 비실체적 무언가에 대한 경험을 하고 있는 듯한 오묘한...

언더랜드에서는 소중한 것을 지키고 유용한 것을 생산하고, 해로운 것을 처분하는 세 가지의 과제가 문화와 시대를 아우르며 반복된다.

은신처(기억, 소중한 물건, 메시지, 연약한 생명).

생산지(정보, 부, 은유, 광물, 환영).

처리(폐기물, 트라우마, 독, 비밀).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는 두렵기에 버리고 싶고, 사랑하기에 지키고 싶은 것들을 언더랜드로 가져갔다. (p. 16)

땅밑 이라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무엇일까? 땅속에 남긴 인간의 흔적 중 가장 오래된 것이 무엇일까? 인위적으로 땅을 파헤치고 다시 덮는다는 것은 '매장' 이다. 인간이 땅속에 소중한 것을 묻었다면 자연이 땅속에 묻은 소중한 것은 돌이다. 지하동굴에서 저자가 만난 돌은 억겁의 시간을 켜켜이 흡수하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인간이 갈 수 있는한 최대한 깊이 파고들어간 땅속에서 과학자들은 천체물질을 연구하고 있기도 했다.

빛과의 상호작용 일체를 거부하고, 심지어 존재 여부조차 확실치 않은 이것에 붙은 이름은 '암흑물질'이다. 젊은 물리학자가 암흑물질을 연구할 수 있는 장소는 지하 900미터 아래에 암염, 섬고, 백운석, 이암, 미사함, 사암, 점토와 표토층으로 차단된 이곳 언더랜드 뿐이다. (p. 65)

우주 탄생의 숨소리를 들으려면 우주에서 가장 조용한 땅 밑으로 내려와야 한다. (p. 69)

과학은 자연과학적 구분이었던 지질학시대에 '인류세' 라는 현시대를 생성해넣게 했고, 이러한 과학의 발달은 언더랜드와 연관지어 생각했을 때 쉽게 대답할 수 없는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앞으로 닥칠 사물의 역사는 어떨까? 우리 미래의 화석은 어떤 형태일까? 인간은 세상을 빚어내는 능력을 크게 키웠으므로 자신이 빚어낸 것들의 오랜 사후 세계에 더 큰 책임이 있다. 인류세라는 말은 면역학자 조나스 솔크가 말한 기억하기 쉬운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좋은 조상인가?' (p. 89)

이 책에서 유일하게 언더랜드의 어둠을 밝혀주는 것은 '언더스토리' 다. 하지만 이 언더스토리에도 인간의 해석은 자연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다. 숲을 협동체제로 여겨하고 숲의 지혜라고 할만한 공동의 지능이 있어 늙은 나무가 어머니 역할을 양육한다는 해석은 인간의 자원재분배적 시각으로밖에 나타내지 못하는 것 같다. 하지만 언더스토리는 그 이상이다. 자연이 늘 인간 이상의 존재이듯이.

하층식생, 영어로 언더스토리understorey는 숲 지붕과 숲 바닥 사이에 사는 생물을 부르는 산림학·산림생태학 용어다. 곰팡이, 이끼, 지의류, 관목, 묘목들이 이 중간층에서 경쟁하고 번식한다. 그러나 은유적으로 '언더스토리'는 서로 뒤엉켜 나무와 숲에 문화적으로 다양한 생명을 부여하는 언어, 역사, 사상, 그리고 그들이 얽히고 설켜 날로 풍성해지는 이야기들을 모두 포괄한다. (p. 106)

인간은 늘 자연에서 많은 힌트를 얻어왔지만, 언더스토리에서도 인간은 자연의 지혜를 배워야 한다. 숲의 땅속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균류의 관점을 본받아야 한다.

지금까지 역사를 진보와 발전의 과정으로 서술하는 방식에 의문이 제기되면서 역사의 개념 자체가 바귀었다. 역사는 더 이상 앞으로 날아가는 화살, 또는 자기 교차 나선으로 형성된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그보다는 사방으로 갈라지고 또 합쳐지는 일종의 그물망 조직으로 보는 게 나을 것이다. (p. 114)

'종의 외로움'. 우리가 지구로부터 이 지구를 함께 나누어 쓰고 있는 다른 생명을 빼앗으며 스스로 빠져드는 지독한 외로움을 나타내는 말이다. 우드 와이드 웹에서 찾아낸 의미 중에 인간 세계에 적용할 수 있는 게 있다면, 그건 우리가 위태롭고 해결되지 않는 세기를 향해 나아갈 때 우리를 구할 수 이는 것은 협업이라는 사실이다. (p. 125)

하지만 인간이 협업으로 땅속에 구현한 것들은 그닥 좋은 결과들로 보이진 않는다. 뭔가를 캐내거나 뭔가를 묻거나 그 어느쪽도...

석회암지대의 채굴로 만들어진 지하의 카타콤은 채석이 끝나자 땅위에서 한계에 다다른 묘지들의 뼈를 모아 넣는 공동무덤이 되었고 지금은 은밀한 취미를 가진 카타필들의 탐험공간 되었다. 하지만 번성한 파리도시 아래 텅빈 지하도시가 있다는 것이 나는 왠지 위태롭게 느껴졌다. 어쨌든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인간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아주 오래전부터 그래왔다.

별이 뜨지 않는 강은 고대 그리스·로마의 문화와 함께 흐른다. 이 강은 망자의 강이다. 레테, 스틱스, 플레게톤, 코키투스, 아케론이 모두 지상 세계에서 언더랜드로 흐르는 강이다. 이 다섯 개의 강이 하데스의 어두운 심장에서 합쳐져 거대한 물줄기가 된다. (p. 191)

고전문학이 어둠 속으로 흐르는 강을 받아들인 이유를 지질학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 작품들의 배경이자 작품을 집필한 경관의 대부분이 카르스트 지형이다. 카르스트라는 말은 슬로베니아어의 크라스에서 온 것으로, 물에 녹는 바위와 광물이 용해되면서 형성된 지형을 말한다. 주로 석회암 지대이지만 백운석, 석고 등도 해당한다. 카르스트는 언더랜드에서 많이 볼수 있다. 카르스트에서는 메마른 바위에서도 샘이 솟고 골짜기는 통제되지 않으며 강은 어느 한 지점에서 사라졌다가 다른 지점에서 다시 나타난다. 이런 곳에서는 같은 강이라도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p. 192)

환경은 인간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문학엔 그런 환경이 환상적으로 묘사되곤 한다. 고대문학에서 확인할 수 있는 신화적 배경들을 지형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또다른 재미가 있었다. 이 '별이 뜨지 않는 강'에 대한 탐구는 멈춰진 적이 없는 것 같다.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도 태양이 비치는 의식 세계 아래의 심리적 언더랜드를 탐구한 책이라는 것을 보면... 무엇보다도 종교와 결합되었을때 그 신비로움은 더했다.

과거에 동굴안에서 신비로운 종교의식이 있었다면 지금 동굴의 신비스러움은 동굴탐험가들을 불러모은다. "산이 거기에 있어" 산을 오른다는 산악인처럼 "거기에(지도에) 없어" 동굴에 들어간다는 이들이 있다. 이런 탐험가들이 예기치 않게 동굴에서 목숨을 잃기도 하지만 동굴은 그 은밀함 때문에 잔인한 처형장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저자가 탐험한 동굴의 어둠은 과거를 보여준 것이라 어쩌면 그나마 나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앞으로 만나게 될 동굴들의 어둠이다. 미래를 어둡게 하는 이 어두움들은 마치 언더랜드의 반격이 시작되는 듯 하다.

어느 날 굉음과 함께 지름 70미터의 원형으로 사막 바닥이 갈라지더니 단 몇 초 만에 바위, 모래, 굴착기를 집어삼키며 심연으로 무너져 내렸다. 공동이 지상으로 이동했다... 천연가스가 매장된 동굴이 무너지면서 유독가스가 지상 세계로 쏟아져 나왔다. 피해를 줄이기 위해 가스에 불을 붙여 태우기로 한다. 불과 몇 주면 다 태울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40년 이상 지난 지금도 그 구덩이는 여전히 불타고 있다. 사람들은 그곳을 '지옥으로 가는 문' 또는 '헬게이트'라고 부른다. (p. 267)

저자는 헬게이트에 들어서기 전에 인류의 평온을 느낄 수 있는 동굴벽화부터 찾아간다. 낮은 회색 구름과 높은 회색 바다 사이에 험준한 암괴와 설원이 그리는 흑백의 긴 띠처럼 보이는 노르웨이 베스트피오르에서 척박한 환경에서도 살았던 인간의 흔적에 경탄하고 어떻게 이런 곳에 그림까지 그리며 살 수 있었는지 콜헬라렌 동굴에서 먼 과거로의 황홀경에 빠져든다.

바위가 그리지 않은 게 분명한 선 하나가 튀어나왔다. 그 선을 다른 선이 가로지른다. 그리고 다시 세번째 선이 만난다. 그래, 저기가 맞다. 붉은 댄서들이다. 희미하긴 하지만 틀림없다. 붉은 유령 댄서가 바위에서 뛰어오른다. 또 한명, 여기에도 또 한 명, 십수 명이 더 있다. 여전히 혼령같지만 이젠 존재한다. (p. 301)

이 형상들은 모두 함께 춤추는 유령들이다. 그리고 나 역시 유령이다. 그들에게는 흥이 있다. 우리에게도, 그리고 그들이 이곳에서 함께 춤춰온 수천 년의 세월까지도.

갑자기 나도 모르게 머리가 찡해지더니 가슴과 등이 들썩였다. 나는 울었다. 흐느꼈다. 이 눈물 모양의 협곡에서 쏟아지는 눈물에 몸을 떨었다. 나는 지금 세상과 격리되었지만, 바로 옆에 이 너그러운 댄서들이 있다. 이들에게 오기까지 감내해야 했던 위험과 어려움이 사라지고 기쁨이 밀려와 나는 울었다. 화강암과 어둠 속 깊은 곳에서 놀랍고 어찌할 수 없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감정으로 흐느꼈다. (p. 302)

저자의 글은 굉장히 서정적이다. 자연을 온몸으로 느낀다. 시간을 온몸으로 체험한다. 저자의 두려움과 고통과 외로움이 글을 통해 전해진다. 그렇게 현재는 심연과 연결된다. 하지만 이제 한치앞도 제대로 보려하지 않았던 인류세의 어둠이 몰려온다.

로포텐과 베스터랄렌 제도 해역의 원유 개발에 대한 논쟁은 지난 15년 동안 계속되어 왔고 노르웨이의 영혼을 위한 투쟁이 되었다. 판돈은 크고 양쪽의 힘은 팽팽하다. 한쪽에는 오일 머니로 기름칠한 국가기구와, 오일 문화에 빚을 지고 거기에 뿌리를 내린 인구가 있다. 다른 쪽에는 자국을 녹색 국가로 생각해 자연이라는 현세적인 종교에 헌신하고 지구온난화를 줄이고 기후변화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또한 어업 국가로서 노르웨이의 오랜 정체성을 중요시한다. (p. 322)

깨끗한 바다에서 물고기잡으며 살아가던 때가 분명 있었음에도 지금은 석유없이는 아무것도 못할 것 같은 시대가 되어버렸다. 석유시추가 시작되면 주변 자연은 폐허가 되어갔다. 그렇게 인간은 여기저기 수천 킬로미터의 터널과 시추공을 뚫고 있다. "이 행성을 진정한 속 빈 지구로 만들고 있다.(p. 338)" 는 저자의 표현에 누가 반박할 수 있을까. 이렇게 뽑아올린 석유로 인간은 무엇을 태우고 무엇을 데워왔던 것일까? 지구는 뜨거워지고 있고 녹지 말아야 할 것들이 녹아내리고 있다.

2016년의 무더웠던 여름에 전 세계에서 빙하가 오랫동안 간직했던 비밀을 드러냈다. 지구의 빙권이 녹으면서 영원히 묻혀 있는 편이 나았을 것들이 지상으로 올라왔다. 러시아의 야말 반도에서 약1만 1600제곱킬로미터의 영구동토층이 녹았다. 러시아의 농업전문가들은 이 지역에서 다시는 어떤 농작물도 자라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러시아의 전염병 학자들은 북극의 매장지와 얕은 무덥에서 1800년대 후반에 사망한 환자들의 몸속에 있는 천연두, 얼어붙은 매머드 사체에서 오랫동안 잠자고 있던 거대 바이러스 등 다른 것들이 방출될 거라고 예측했다. (p. 355)

그린란드 북서쪽에서는 묻혀 있던 냉전 시대의 미군기지와 그 안에 있던 유독성 폐기물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언더랜드에서 내가 수없이 목격한 역동성 속에서, 오랫동안 묻혀 있던 골칫거리 역사가 다시 등장하고 있다. (p. 356)

묻혀있던 것들이 다시는 세상에 드러나지 않으리라 예상하고 묻었던 것들이 땅위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소멸됐다고 여겨졌던 탄저병에 생명이 죽어나가고 잊혀졌던 오염물질들이 새로운 문제거리가 되었지만 이렇게 빙하가 녹아내리는 자연재앙을 기회로 삼는 이들도 있었다. 그린란드가 녹으며 광물자원또한 드러났다. 하지만 얼음은 빙하는 존재해야 한다. 그것이 지구의 생태계에 얼마나 큰 역할을 하고 있는지 알아야 하는데...

얼음은 기억한다. 그것도 자세히, 그리고 100만 년 이상 기억을 간직한다. 얼음은 산불과 해수면 상승을 기억한다. 얼음은 11만년 전 마지막 빙하기가 시작될 무렵 공기의 화학적 조성을 기억한다. 또 5만년 전 여름에 며칠이나 햇빛이 비추었는지를 기억한다. 홀로세 초기, 눈이 내린 순간의 구름 속 온도를 기억한다. (p. 364)

깊이 매장된 얼음의 색은 파란색이다.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파란색, 시간의 푸른 빛이다. (p. 365)

얼음이 가진 오래된 기억일수록 회수되기는 어렵고 상실되기는 쉽다. (p. 367)

히말라야 빙하의 감소는 이 얼음 강이 계절에 따라 저장하고 방출하는 물에 의존하여 살아가는 아시아10억 인구의 생계와 삶을 위협한다. (p. 410)

쌓이는 데는 오래걸리지만 사라지는 데는 순식간인 '시간의 푸른 빛'을 지키지 못하고 있으면서도 남아있는 언땅에서 여전히 은닉처를 찾고 있는 인간이 묻고자 하는 것은 '핵폐기물'이다.

인간은 천천히, 값비싸게, 기적적으로, 그리고 유해한 방식으로 우라늄을 힘과 동력으로 전환하는 법을 배웠다. 우리는 이제 우라늄으로 전기를 만드는 법도, 죽음을 만드는 법도 알지만 제 일을 마친 우라늄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는 알지 못한다. (p. 431)

이 폐기물을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해 고안한 최선의 해결책이 매장이다. (p. 433)

언더랜드는 언제까지 인간의 과오를 품어줄 수 있을까? 인간은 어디까지 파헤쳐 들어갈 수 있을까? 지구가 거대한 무덤이 되는 것은 아닐까...

"인류가 글을 쓰기 시작한 역사는 설형문자가 등장한 이래 고작5000년이다. 우리의 언어 체계는 동적이고 표기체계는 파괴, 왜곡되기 쉽다. 오늘날 세계에서 수메르인의 설형문자를 이해하는 사람은 1000명이 채 되지 않는다.(p. 448)"

위험물질을 파묻어 놓고 (아주 튼튼하게 파묻어놓았다고 자부하며) 위험하다고 표기해놓았다고 안심해도 될까? 지금의 언어가 미래에도 여전히 사용되리라는 것이 허상일수도 있음을 처음 느꼈다. 지구는 언제 어떻게 움직일지 모르고 지구의 움직임은 언더랜드를 어떻게 변형시킬지 모르면서 지.금.은. 괜찮다고 묻어버리고 끝내는 것이 미래를 갉아먹는 행위는 아닐까... 작은 좀벌레들이 나무를 조금씩 파먹고 나무는 그들을 먹이고 키우다가 결국은 나무가 죽는 것처럼...

아이스킬로스의 [아가멤논]에는 '미케네의 망루'로 알려진 부분이 있다. 먼 지평선을 지켜보다가 트로이가 함락되었음을 알리는 화톳불이 보이는 즉시 고함을 지르는 일을 맡은 망루지기에 관한 이야기다. 오랜 감시 끝에 마침내 망루지기는 지평선 멀리 불이 타오르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그 순간 그는 소리를 지를 수 없었다. 말문이 막혀버려 소리를 내지 못하게 된 것이다. 아이스킬로스의 유명한 이미지에서, 망루지기는 '커다란 황소가 혓바닥 위에 서 있는' 것처럼 느꼈다. 아일랜드 시인 셰이머스 하니의 표현에서 보자면 '망루지기는 자신의 혀가 소를 실은 트럭에서 떨어진 건널판자처럼......죽었다' 고 느꼈다. 인류세를 표현할 때 나는 마치 혀에 황소가 서 있어 경고를 외치지 못하고 위험을 더욱 가까이 끌어들인 망루지기가 된 기분이 든다. 인류세라는 발상이 반복적으로 공격을 가해 우리를 벙어리로 만든다. (p. 392)

저자가 보여주는 언더랜드는 매혹적이었고 거대했다. 그리고 슬펐다. 그렇게 신비롭고 아름다운데 사라지는 것이 너무나 빠르고 너무나 광활해서...

저자가 보여주는 어두운 곳들을 한곳 한곳 읽으면서 사실은 그곳들이 어둡지만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될때마다 그곳에 어둠을 덧씌우고 있는 것은 인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때마다 '커다란 황소가 혓바닥 위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뭐라 말해야 할지 알수 없었다. 우리가 인류 이후의 시대와, 그 시대를 살아갈 존재에게 무엇을 남길지 이제는 정말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할때가 아닐까. 아직은 조용히 참고 있으나 사실은 역동적이고 살아숨쉬고 있는 지구가 제대로 반격할 때까지 인간은 계속 지구를 옥죄기만 할 것인지...

'빙산의 일각'이라는 표현은 언더랜드에도 적용된다. 지금 인간이 지상에서 보고있는 자연파괴의 모습은 '빙산의 일각'이다. 지하는 보이지 않지만 보아야 할 곳이다. 언더랜드 위에 세운 인간세가 무너져 내리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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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정신과 의사 - 뇌부자들 김지용의 은밀하고 솔직한 진짜 정신과 이야기
김지용 지음 / 심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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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부자들 김지용의 은밀하고 솔직한 진짜 정신과 이야기

한량 의대생에서 열혈 정신과 의사가 된 김지용의 슬기로운 정신과 생활

 

 

책 이외의 매체를 자주 접하지 않다보니 저자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하지만 저자는 꽤 유명한 정신과 의사였나 보다.

저자는 정신질환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줄이고 올바른 정보를 전달할 목적으로 팟캐스트 <뇌부자들>을 시작해 3년 넘게 진행중인데, 이 팟캐스트가 (저자의)예상외로 큰 성공을 거두면서 티비 교양프로그램이나 강연회, 타 팟캐스트에 출연하게 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면서 칼럼도 연재하고 책도 이번이 두번째였다.

이러한 저자의 다방면의 활동은 몰랐지만 정신과 의사가 쓴 책을 종종 읽는 편이다 보니 제목부터 '어쩌다' 정신과 의사가 됐다는 솔직함에 끌렸다. 그리고 이 '솔직함'은 읽는 내내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척 하지 않는 정신과 의사는 저자가 처음인듯 ㅎㅎ

다 알고 있어야만 할 것 같다. 나는 전혀 모르겠는데, 진료실 안팎에서 만나는 이 반응들은 정신과 의사를 인생사의 모든 문제에 해답을 가지고 있는 현자 같은 존재로 기대하고 오해한데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데 이 잘못된 기대와 오해를 정신과 의사들 스스로 유도한 측면도 없지 않다. (p. 11)

사람들의 뇌리에 정신과는 결국 이런 곳으로 자리 잡힌 것 같다. 삶의 여러 문제에 답을 알려주는 곳. 그러나 가기엔 왠지 마음이 내키지 않는 곳. 막상 가보면 기대한 답이 아닌 약을 주는 곳. 나는 정신과의 문턱이 지금보다 더 낮아졌으면 좋겠다. 아니, 더 낮아져야만 한다. (p. 12)

신체적 증상들이 눈에 보이는 다른 질병들에 비해 정신과 는 눈에 보이지 않기에 병이라고 해도 믿기지 않고 병이 아니라 해도 믿기지 않는 묘한 의학 분야인 것 같다. 그럴수록 더 제대로 알아야 할 텐데 일반 대중들의 눈에는 정신과를 볼때 특수한 선글라스를 끼고 보는 듯 아직 그 문턱이 높은 것이 사실이다.

'아는 것이 병이고 모르는 것이 약이다' 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잘못 알고 있는 편견들이 정신병을 키우고 모르고 있던 무지들이 정신병을 키우는 사례를 자주 접한 저자는 정신과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없애는데 앞장서고 있다. 그 패기와 열정에 시작부터 감사한 마음이다.

어쩌다 의사, 어쩌다 정신과 의사가 된 나는 어쩌다 시작한 팟캐스트 <뇌부자들> 활동을 통해 다양한 일을 하게 되었다. 어쩌다 보니 2년 넘게 매주 방송국에 직원처럼 출근하고 있고, 언론사에 정기적으로 글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어쩌다 보니 지금은 두 번째 책을 쓰는 중이다. 진료실에서 만나는 다른 모든 이의 인생과 마찬가지로 내 인생에도 계속해서 예측하지 못한 새로운 길이 나온다. 언제 끝나고, 어떻게 새로운 길로 이어질까. 모른다, 아무도 내게 알려줄 수 없다. 나 역시 진료실에서 만나는 이들에게 미래를 알려주지 못한다. 그렇기에 현재에,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하자고 말한다. (p. 36)

현재 내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에 숨어 있는 의미, 그것들을 더 잘 알아챌 수 있도록 내 마음속을 들여다보고 정리해보려 애쓴다. 이 책을 쓰는 것 역시 그 애씀의 흔적이다. (p. 37)

정신과 의사는 환자에게 철저히 중립적이고 객관적이어야 한다. 환자의 감정에 동요해서도 안되고 그렇다고 너무 매몰차서도 안된다. 그러니 환자를 위한 의학적 정보가 아닌 자신의 사적인 이야기나 경험담은 이야기하지 않는다. 저자도 진료실에서는 그런 태도를 유지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자신이 정신과의사로서 성장한 경험담들을 솔직하게 풀어놓는다. 의사로서의 권위적인 모습보다는 함께 고민하고 발전해나가는 동지적인 모습이 친근하게 다가온다.

정신과 의사는 기본적으로 의사다. 심리 상담을 기대하고 찾아오시는 분도 많지만, 심리 상담사와는 그 역할과 정신 질환을 바라보는 시각에 분명한 차이가 있다. (p. 49)

공황장애로 긴 시간 치료를 받아왔지만 결국 부정맥 증상이었음이 뒤늦게 밝혀지기도 한다. 긴 상담과 꾸준한 운동으로도 호전되지 않던 무기력의 원인이 우울증이 아닌 갑상선 호르몬 이상으로 밝혀지는 경우도 많다. 정신과적 문제가 하나도 없던 분도 질병이나 수술 등으로 신체 컨디션이 저하될 때, 또는 복용 중인 약물의 부작용으로 환각과 망상을 경험하는 일이 생각보다 매우 흔하다. 그렇기에 정신과 의사가 좀 더 정확하게 진단하고 치료하려면 정신과학뿐 아니라 전반적인 의학 지식을 반드시 갖춰야 한다. (p. 50~51)

그렇다. 정신과 의사는 기본적으로 의사다. 그래서 심리상담을 기대하고 정신과에 갔다가 짧은 진료와 함께 받은 처방전이 생소하고 왠지 배신당한 것 같은 기분에 화가 나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리적인 문제가 있다고 느껴졌을 경우 먼저 정신과에 가는 것이 맞다. 정신과에서 다른 신체적 질병이 아닌 심리적 문제임을 확인 받은 후라면 (정신과 진료만으로 상담욕구가 채워지지 않았을 때)심리상담을 받아보는 것이 바른 순서가 아닐까 싶다.

이 모든 상황이 어려웠다. 내가 상상했던 정신과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따듯하고 깊이 있는 상담? 그런 건 없어 보였다. 적어도 내게는 허락된 것 같지 않았다. 나를 포함해 모든 동기가 통과의례처럼 환자에게 맞는 일을 경험했다. 심히 난폭한 사람을 강박하는 일에 동참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상담을 하던 중에도 비상벨이 울리면 쏜살같이 뛰어가야 했다. (p. 69)

얼마전 큰 인기를 끌었던 '슬기로운 의사생활' 이라는 드라마를 보진 않았지만, 의사들의 성장과 진심을 엿볼 수 있는 드라마라고 전해들었다. 저자가 수능성적이 생각보다 잘 나와서 어쩌다 의대에 진학하고 한량처럼 지내다 유급을 거듭하고 정신차리고 공부에 매진하여 정신과의사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읽다보면 정신과 의사들이 이렇게 수련받았구나.. 싶어서 좀더 인간적으로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무의식은 언제나 주인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자신이 속해 있는 마음의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분쟁의 불씨를 없애려 한다. 문제는 '의식'과 상의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판단한 방식에 따라 노력한다는 데 있다. (p. 92)

너무나 지우고 싶은데, 왜 자꾸만 떠오르는 걸까? 상처는 무작정 덮는다고 지워지지 않는다. 덮어놓는다고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무의식은 여러가지 방법으로 해결을 도모한다. (p. 98)

내가 지금까지 읽었던 정신과 의사들이 쓴 책들은 대부분 환자들의 사례를 예로 들어 그 심리에 대한 분석이나 처방을 해준 내용을 알려줌으로써 해당 책을 읽는 독자에게 위안을 주거나, 그동안의 진료 경험을 토대로 삶에 대한 조언을 해주는 힐링 에세이 같은 책들이었다. 하지만 저자의 책은 자신이 진료했던 환자를 이해하기 위한 저자의 노력과 그러한 사례에 대한 정신과적 정보를 동시에 전해주고 있어서 솔직함에 대한 공감과 동시에 정보적 유용함이 있었다.

함부로 추측하지 말고 기다려야 한다. 답은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내담자의 마음속에 있다. 그 답을 찾아가는 여행에서 내 역할은 가이드일 뿐 답을 내가 정해선 안 된다. 내담자 스스로 답을 알아챌 때에야 진정한 변화의 힘이 생긴다. 내가 정하고 알려줄 대는 그런 힘이 생기지 않는다. 그러므로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한다. 이렇게 마음속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 가이드로 동참하는 일이 쉽진 않다. (p. 102~103)

정신과 의사들이나 심리상담가들이나 하나같이 이야기한다. 답은 내담자의 마음속에 있다고, 스스로 알아채야 한다고.

하지만 그런 말들이 와닿지 않을 때가 많다. 답답해서 찾아갔는데 답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알아내야 한다고 하는 말을 들으면 얼마나 허탈하겠는가 말이다. 배가 아파서 병원에 가면 장염이라 진단받고 치료받는다. 머리가 아파서 병원에 가면 뇌진탕이라 진단받고 수술받는다. 하지만 심리에 문제가 있는 듯 하여 정신과에 갔더니 처음부터 답은 내 안에 있었다고 한다면 병이 두배로 얹히는 느낌이니 애초에 넘었던 정신과의 문턱이 아예 벽으로 둘러쳐진 기분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정신과 에서 하는 일중 심리상담은 일부분으로 보인다. 정신과는 정신병을 진단하는 뇌과학적 분야이다. 뇌의 질병은 치료받을 수 있고 나아질 수 있다. 정신과 라고 했을 때 심리상담만 떠올리는 것도 왜곡된 인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여하튼, 저자의 책에서도 심리상담 이야기가 주로 등장하긴 한다. 그리고 이때 상담자와 내담자간의 특수한 관계에 대한 저자의 고민이 그럴수 있겠다 싶어서 정신과 의사의 입장에 대한 이해에 도움이 되었다. 환자는 의사 한 사람을 보니까 그 한사람이 특별하고 내가 특별히 생각하는 만큼 상대방도 그랬으면 싶은데 이러한 마음은 의사가 여러 명의 환자를 보고 있다는 것을 까맣게 잊어버리게 하곤 한다.

그렇다. 치료자와 내담자는 서로를 길들이며 특수한 사이가 되어가지만, 분명 한계가 있는 관계다. 진료실에서도 이런 한계를 느끼는 순간을 만나곤 한다. 한계를 알고 시작하는 관계지만, 어쨌든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아닌가. 여러 감정이 오간다. (p. 124)

"그럼 이제 그냥 나가면 되나요? 이게 끝인가요?"

그와 내가 느끼는 감정은 아마도 동일했을 것이다. 뭔가 부족하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마음속 깊은 비밀까지 다 털어놓으며 길게 만났던 사람과의 이별 자리 치고는. 그 부족함에 뭔가 어색하다. 마지막으로 악수라고 해야 하나? 혹시 서양에서는 이런 상황에 가벼운 포옹이라고 하는 것이 용납되려나? 나는 자리에서 일어선 뒤 복잡 미묘한 감정을 가리려는 듯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는 것으로 상황을 마무리 짓는다.

"네, 가시면 됩니다"

나도 꽤 아쉽고 서운하다. 하지만 원래 이런 자리다. 참 특수한 관계다. 가장 가까우면서도 서운하리만큼, 가끔은 서글프리만큼 먼 사이. (p. 130)

감정을 다루지만 감정을 공유하지 않는 사이라는 것을 깜빡할 수 있는 사이, 그런 사이에 대한 인지를 다른 책에서는 잘 다루지 않았던 것 같다. 저자는 자신이 여전히 부족하지만 부족한만큼 노력하는 중이며 그렇게 부족한 면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작은 위안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있다. 환자와 선긋기를 철저히 하고 있으면서도 부족함을 드러내는 정신과 의사를 만날 수 있는 이 책은 그래서 특별하다. 상담하면서 환자에게 직접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이 책을 통해 환자에게 이해가 아닌 공감을 처방이 아닌 응원을 하고 있었다는 속내를 드러내주는 것이, 그 마음이.

가족관계도 이렇게 처음부터 완벽할 수 없는데, 만나자마자 내 모든 것을 알고 이해해주는 '백마 탄 왕자' 같은 대상은 원래 없다. 있을 수 없다. 진료실에서도 똑같다. 나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누구에게도 완벽한 치료자일 수 없다. 만난 순간부터 특별한 내담자라는 존재 또한 없다. 함께하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며 나눈 생각과 감정이 쌓여갈수록, 서로를 길들이는 과정을 통해 내담자와 나는 서로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어 간다. 그 살마의 눈물 한 방울, 웃음이 다른 사람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특별한 의미를 띠게 된다. (p. 173)

정신과에 와서 상담 치료를 하는 일에는 분명 '용기'가 필요하다. 다른 사람을 탓하며 넘어가는 쉬운 길 대신, 나와 타인의 마음에 의문을 품고 좀 더 나아지기 위한 어려운 길을 선택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분들 못지않게 이 글을 읽는 당신 역시 분명 용기 있는 사람이다. 내 마음이 왜 이런지, 다른 사람은 왜 그러는지 궁금하고 답답한 마음에 상담을 받거나 책을 읽고 있는, 그럼에도 아직 혼자라 느끼는 분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당신은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강한 사람이다. 과거 복습과 예행연습 또한 충분히 했다. 과거의 상처가 어떻든 간에 당신은 이겨낼 것이다. 누군가를 다시 만나는 일, 당신이 시작 버튼을 누르는 것만 남았다. (p. 180)

아이쿠, 이렇게 저자에게 한방 먹을 줄이야. ㅎ

저자가 자신의 책을 찾아 읽을 만큼의 심리상태를 지닌 독자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이, 저자가 정신과 의사이긴 하구나 싶어달까. ㅎㅎ

스스로 부족하다고 그래도 열심히 하고 있다고 하던 저자가 어느새 이만큼 성장했구나 싶기도 했달까. ㅎㅎㅎ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완벽한 대상' 이 아니라 '충분히 좋은 대상'이다. '충분히 좋은' 이란 말을 내 방식대로 더 풀어서 이야기해보자면 '군데군데 불만족스럽고 안 맞는 부분도 있지마,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은' 이다. (p. 208)

당신은 당신의 삶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진료실에 오는, 특히 책을 많이 읽는 이들에게는 '자신의 부족함을 잘 알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렇기에 혹시 스스로의 부족한 면에만 시선을 집중하고 있지는 않은지 염려된다. 고백하건대, 그들이 꼽은 그 '부족한 면'이 내가 보기엔 단점이 아닐 때도 많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이 글의 여기까지 읽은 당신은 스스로의 마음을 들여다보려고, 남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나와 남에게 더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이미 충분히 좋은 사람이다. (p. 237)

wow 울컥할 뻔 ㅋㅎㅎ

고맙습니다.

친구들, 진료실 안팎에서 만난 사람들, <뇌부자들> 청취자들이 궁금해하며 묻던 이 열정의 정체. 멤버들마다 '열심히 하는' 이유는 제각각 다르지만, 나는 분노가 크다. 정신과 의사가 된 그날부터 자주 화가 났다. (p. 267)

"사람들은 우리가 하는 말을 왜 이리 안 믿을까?"

"그러면서 비교도 안 되게 비싼 가짜 치료법에는 왜 이리 잘 현혹되는 걸까?"

<뇌부자들>은 이 한탄에서 시작됐다. 다들 계속 한탄만 하기는 싫었다. 좌절의 경험이 반복적으로 쌓이며 우리는 확실히 알게 됐다. 정신 질환을 향한 공포와 편견은 '몰라서' 생기는 것이라는 사실. 그러나 일반인이 정신 질환에 관해 모르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으니까 당연히 모를 수밖에. 정신 질환에 관한 정보나 지식을 최대한 정확하고 쉽게 전달해야, 그래서 '모르는 사람'이 점점 줄어야 사회적 편견과 오해를 해소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일이 진료실에서 환자를 진료하는 일만큼이나 중요해 보였다. (p. 273)

정신병원을 향한 환자와 가족들의 공포심, 마음대로 약을 끊음으로써 발생되는 재발의 빈도, 검증되지 않은 다른 치료방법이 횡행하는 현실, 심지어 정신질환이란 없으며 모든 것은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그럴싸한 현혹 등 저자가 정신과 의사가 되자 마자 깨달은 것은 잘못된 상식과 편견들이 치료를 방해하고 더디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는 것에 저자는 분노를 느꼈다.

거기다 기형적이라고 할만한 우리나라 진료의 행태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냈다. 시스템상 국가가 정해준 진료수가에 맞춰 장시간 상담 치료를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저자는 기본적인 것부터 차근차근 제대로 알려져 나가길 원한다.

우울증을 비롯한 정신 질환의 발병엔 생물학적 요인, 심리적 요인, 사회 환경적 요인 세 가지가 모두 작용하는 것이므로 정확한 분석과 진단이 필요하다는 것, 정신 질환은 뇌의 질환이며 그렇기 때문에 약물에 의해 증상이 조절될 수 있다는 너무도 당연하고 과학적인 사실을 부정하는 부류들을 믿지 말것을 진심으로 호소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자신의 이러한 분노와 열정을 담은 호소가 언젠가는 제대로 전달될 것임을 믿고 있는 저자의 희망이 이루어지길 나또한 응원해본다.

그래도 정신과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각이 지난 몇 년간 많이 변했다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더 욕심을 내고 싶다. 여전히 만족할 수 없다. 많이 변했다고 하지만, 사회 내 다른 영역들의 변화에 비하면 그 속도가 더디고 아직 갈 길이 멀다.

정신과와 정신 질환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자세도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 질환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우린 정상이에요!' 라고 용기 있는 목소리를 내는 것을 넘어, 나머지 사회 구성원들이 그 목소리를 지지하고 적극적으로 지켜줬으면 좋겠다. 시대에 뒤떨어진, 비과학적인, 비상식적인 발언을 하는 이들의 발언을 더 이상 허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책 또한 그 변화에 기여하는 작은 불씨가 되었으면 좋겠다. (p. 325, 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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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앞은 왜 홍대를 다니지 않는 사람들로 가득할까 -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는 디자인경제
장기민 지음 / 리드리드출판(한국능률협회)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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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는 디자인경제

디자인경제로 설명하는 일상 속 고정관념들

 

표지부터 '디자인경제'를 강조하고, 책날개에 적힌 저자의 이력을 보니 산업디자인·공간디자인 등을 공부했기에 '디자인' 관련 책인 줄 알았다. 뭔가 숨겨진 독특한 디자인이라던가, 디자인으로 성공한 사례라던가 하는 식의 디자인 이야기를 풀어내는 책인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디자인 경제학? 디자인 경제학!

이 책의 제목은 이 책의 첫 글의 제목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책에 관심을 갖게 만든 질문이기도 하다.

서울시내를 다니는 지하철의 역 이름중에는 대학의 이름을 딴 것이 종종 있는데, 그 장소들은 꼭 그 대학을 다니는지와 관계없이 젊은이들이 모여드는 번화가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특히 '홍대입구' 역이 그렇다.

저자는 신촌역을 앞마당처럼 사용하는 연세대학생들과 홍대입구역을 자주 드나들면서도 홍대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젊은이들 이야기를 예로 들며 '인식경제학' 의 서두를 연다.

디자인경제학의 인식경제에서는 사물이나 관계에 대한 명시나 규정보다 사람들의 일반적인 인식에 따른 결과가 더 큰 경제적 효과를 가져온다고 말한다. (p. 18)

한 번 각인된 인식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우리 각자는 타인에게 지금 어떤 모습으로 인식되어 있는지, 또한 그 인식을 디자인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노력을 해야 하는지 점검해야 할 때다. (p. 19)

이후로 나오는 글들에서 대부분의 소제목으로 '00경제학' 이라고 써놓은 것으로 보아 이 책은 아무래도 경제학 책인것 같지만, 기존의 경제학적인 이론들을 설명하는 경제학적인 경제학이라기 보다는 지금의 현실경제를 설명하는데 있어 임의적으로 이름붙인 비경제학적 경제학을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다. 따라서 학문과 상관없이 잡지 읽듯이 칼럼 읽듯이 술술 읽힌다.

현대차가 삼성동 땅을 매입했을 때 삼성은 음향회사를 매입했고 결과는 다르게 형성된 사례로 자신만의 경쟁력을 강조하는 '퍼스널 브랜딩 경제학'

알파벳 없이는 자신들의 언어를 화면상에 표현할 수 없는 중국이나 일본과 달리 한국은 고유의 한글로 간편하고 무궁무진한 언어를 표현할 수 있다며 '한글경제학'

BTS 나 기생충 등을 예로 들며 '문화 경제학'

디자인을 단순히 외형적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데코레이션 정도의 개념이 아니라 '의미부여' 개념으로 봐야 한다며 '디자인 경제학'

시작은 아주 미미했으나 엄청난 성공을 거둔 유투브를 예로 들어 '유튜브 경제학'

음료를 주문하면 진동벨을 주는 다른 커피전문점들과의 차별성을 강조한 블루보틀의 성공을 이야기하며 '블루보틀 경제학'

중고서점 알라딘 을 예로 '중고서점 경제학'

BTS 의 성공신화를 예로 'BTS 경제학'

소나타 자동차를 예로 '연비 경제학'

감성적인 공간을 중시하는 요즘 세대를 이야기하며 '공간 경제학'

코로나19 검사 때 한국이 개발한 방식을 예로 들어 '드라이브 스루 경제학'

편의점이 물건 판매 뿐만 아니라 택배나 대여등 다른 서비스로 확대하는 것을 예로 '편의점 경제학'

고객에게 각인된 브랜드 이미지를 이야기 하며 '소통 경제학'

스타벅스와 신세계의 협약을 예로 '관계 경제학'

중고물품 거래를 예로 '중고거래 경제학'

디지털카메라 대신 필름을 선택한 코닥의 예로 '선택 경제학'

뉴욕 길거리 쓰레기는 파는 것으로 성공한 사례로 '공감 경제학'

오바마 행정부때 에볼라 사태를 잘 마무리한 사례로 '경험 경제학'

핸드폰을 선택할 때 이제는 통화품질이 아닌 카메라화질로 구매하게 됐다는 예로 경제활동의 목적은 전환(스위치)될 수 있다며 '스위치 경제학'

10의100제곱이라는 뜻의 Googol(구골)로 이름을 정했으나 실수로 구글로 이름이 정해진 예로 '실수 경제학'

스티브잡스의 실패와 성공을 예로 '스티브잡스 경제학'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가 성장하여 영국의 기업들을 합병하고 있는 것을 예로 들어 '리버스 경제학'

IBM 이 컴퓨터 조립을 포기한 것을 예로 '체인지업 경제학'

시몬스 침대의 팝업스토어를 예로 '업데이트 경제학'

소비에 영향을 끼치는 감정표현에 대한 '이모티콘 경제학'

넷플릭스의 성공사례로 '구성 경제학'

다수의 의견에 쫓아가게 되는 군중심리를 예로 '아이스아메리카도 경제학'

골목상권의 성공사례로 '골목 경제학'

콜롬비아의 메데인 이라는 도시를 예로 '도시재생 경제학'

인천시의 루원시티 건설계획을 예로 '지하철 경제학'

신도시 개발 효과에 대한 '신도시 경제학'

다른 커피숍들과의 차별성을 가진 스타벅스를 예로 '스타벅스 경제학'

검색은 네이버 메신저는 카카오를 예로 '독점 경제학'

넷플릭스 서비스를 예로 '넷플릭스 경제학'

마켓컬리 성공을 예로 '마켓컬리 경제학'

세계적 메신저 라인을 누른 카카오톡을 예로 '카카오톡 경제학'

배달의 민족 성공을 예로 '배달의 민족 경제학'

현대카드의 차별적 전략을 예로 '현대카드 경제학'

김치냉장고가 유행하면서 아파트 건축도면에 김치냉장고 자리를 마련하게 된 것을 예로 '디자인믹스 경제학'

등 책을 읽다보면 이런 경제학이 있었나 싶지만 정통 경제학으로서의 00경제학을 이야기 한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이렇게 경제학이 많을리가;;;

그저 지금 현실을 판단하는데 있어서 이해하기 쉬운 소재들을 사례로 들어가며 그 모든 것들이 경제와 관련이 있다고 참고해보라고 알려주는 것이랄까.

다만 그 경제적 면모들이 디자인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잘 모르겠고 다른 매체에 실었던 칼럼들을 모은 것인지 중복되는 내용들이 있어서 큰 흐름이 잡히지 않는 것이 아쉽긴 했지만, 익숙하던 일상의 많은 것들을 경제적으로 보게 된 경험이었다. 그래서 '디자인 경제학' 이라는 표현 보다는 이 책의 첫 글에서 나왔던 '인식 경제학' 으로 묶는 것이 더 자연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디자인경제학' 이라는 용어 자체가 아마도 저자가 만든 신조어 같고 글들은 어찌보면 저자의 자기개발서 인것 같기도 하여, 자신만의 활동분야를 열심히 개척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저자의 앞날을 응원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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