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포크라테스 미술관 - 그림으로 읽는 의학과 인문학
박광혁 지음 / 어바웃어북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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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려낼 것인가?'란 질문에서 의학이 출발한다면,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의 해답을 찾는 것이 인문학이다.

두 학문은 결국 인간의 삶에 관한 문답이다!

의학의 시선으로 미술을 보면 인문학이 읽힌다!

 

 

'미술관에 간 물리학자' 라는 책을 읽고나서 미술계의 사람이 아닌 비전문가의 눈으로 해석하는 미술인문학에 흥미를 느꼈었다. 알고보니 시리즈였고 '미술관에 간 의학자' 라는 책을 읽어봐야지 하고 생각하던 터에 미술관 다니기를 즐겨한다는 그 의사가 새로운 책을 냈다기에 신간으로 저자의 책을 읽게 되었다. 의학의 시선으로 미술을 보고 본인의 인문학적 소양을 곁들여 글로쓰는 저자의 활동이 오롯이 담긴 책이었다.

그동안의 미술관련 책에서 봤던 그림도 있고 못봤던 그림도 있었지만 엮어내는 방식이 새로웠다.

고흐의 'Wom Out' 이라는 비탄에 잠긴 한 노인을 연필로 그린 소묘로 시작해서 차이코프스키의 비창으로 연결된다거나

네덜란드 가정의 일상을 담은 '어머니의 의무' 라는 그림에서 당시 머릿니를 잡아야 하는 행동의 필요성과 진화적 의미로 이어지고

'모나리자'의 도난사건에서 '아폴리네르 증후군' 이라는 병명의 주인공인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의 생애를 애잔해하다가

고야의 주치의 그림에서 아스클레피오스를 거쳐 '헨리8세와 이발사 외과의사들' 이라는 그림으로 오는 동안 의사들의 변천사를 살펴보고

미하일 브루벨의 데몬 그림 시리즈에서 매독 이라는 균의 치명성에 대해 설명하다가

돈키호테를 그린 화가들의 그림을 보면서 당시 돈키호테 라는 소설속 인물이 무엇을 상징한 것이고 거기서 정신의학 코드가 얼마나 나왔는지를 파악하고

드레퓌스 사건때문에 에밀졸라가 겪어야 했던 일화에서 일산화탄소 중독에 대해 생각해보는 등

그림을 보면서 화가들의 삶과 당대의 시대적 상황과 음악및 문학까지 이어지는 연결점들이 의사이기에 생각할 수 있는 지점이었으리라 여겨지는 부분들이 많아서 흥미롭게 읽혔다. 비전문가가 그림을 본다는 것은 이렇게 새로운 생각들이 가능하기에 전문가들의 그림설명책보다 때론 더 재미있게 읽혀질 수가 있는 것 같다.

히포크라테스와 그를 추종해온 의학자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집대성한 히포크라테스 전집에 나오는 의료윤리에 관한 내용이 우리가 알고 있는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기원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선서의 항목을 히포크라테스가 썼는지 밝혀진 바도 없습니다. 원래의 명칭도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아니라 그냥 '선서'였습니다. 1세기경에 편찬된 히포크라테스 전집에 수록되면서 히포크라테스 선서란 명칭으로 불리게 된 것지요.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세태에 맞게 여러 차례 변경·재해석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인종학살에 참여한 일부 의사들의 죄과를 반성하는 의미에서 1948년의 세계의사협회에서 수정해 만든 제네바 선언이 지금의 히포크라테스 선서입니다. (p. 303)

히포크라테스 전집 가운데 '금언집'에는 바로 그의 정신을 엿볼 수 있는 금과옥조 같은 문장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금언집은 히포크라테으의 선서와 함께 후대에 가장 많이 회자되는 기록으로 꼽힙니다. 그 가운데 특히 인상적인 문장으로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문구는 금언집 첫머리에 등장하는데, 있는 그대로 옮기면 "인생은 짧고, 테크네는 길며, 기회는 순간이고, 경험은 흔들리며, 판단은 어렵다" 라는 긴 문장에서 발췌한 거지요. 여기서 '테크네'라는 단어가 'art'로 바꿔 회자되다가 art를 우리말로 직역했더니 '예술'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하지만 art의 사전적 의미에는 '예술'만 있는 게 아니라 '기술'도 있지요. 히포크라테스는 기술 가운데 '의술'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일 것입니다. (p. 308, 310)

아무래도 저자가 의사이다 보니 그림에서 보이는 질병적 힌트들로 설명되는 내용이 많았지만 나는 가장 마지막 에피소드인 '히포크라테스의 방' 이란 글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겉표지를 벗겨내면 표지에 또다른 그림이 등장하는데 바로 그 그림에 대한 설명이 히포크라테스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들로 엮어지고 있었다. 히포크라테스 라는 고대인물이 왜 여전히 현대의학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도 했고 '금언집' 이라는 존재는 처음 알았는데 거기서 그 유명한 문장이 잘못 풀이된 것이라는 확인도 의미있었다. 역시 번역이 참 중요하다;;;

'그림으로 읽는 의학과 인문학' 이라는 부제에 걸맞는 내용으로 쉽고 재미있게 읽히는 이 책을 읽고 나니 다음번엔 미술관에 간 수학자나 화학자도 읽어볼까 하는 관심이 생긴다. 그림도 인문학도 어렵지만은 않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이런 책들은 기분전환에 참 도움이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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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솝 우화 전집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32
이솝 지음, 아서 래컴 그림,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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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와 아리스토텔레스가 극찬한 고전 중의 고전

88장의 독보적인 일러스트와 함께

고대 그리스 원전에서 직접 번역한 358편의 우화 전집

이솝우화가 동화책이라고만 생각했던 내게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이라는 표지 수식어가 눈에 들어왔다. 개인적으로 '원전 완역본' 을 좋아한다.ㅎㅎ

이런 번역된 고전은 번역자가 정말 중요하다. 앞서서 박문재 번역의 원전 완역본을 몇 권 읽었었는데 모두 매우 만족스러웠었다. 고대사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주석과 해제를 꼼꼼하게 달아주고 매끄러운 현대어로 된 문장 읽는 맛도 좋았다. 번역하는 책에 대한 번역자의 이해도가 고전 번역에서는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박문재 번역자의 책은 모두 원전 자체에 대한 높은 이해도가 바탕이 되어 있는 것이 느껴져서 앞으로도 믿고 보는 번역자가 될 듯 하다.

이솝우화가 왜 동화책이 아닌가 를 먼저 알고 책을 읽으려면 책날개에 쓰여진 '저자 이솝' 에 대한 설명과 책 뒷부분의 해제를 읽어보면 된다. 이솝(BC 620~564)는 영어식 이름으로 원래 이름은 '아이소포스'로서 고대 그리스에서 독보적인 이야기 작가이자 연설가였다고 한다.

영어로 번역된 이솝 우화들은 많이 각색되고 분칠되어 빅토리아 시대의 도덕주의를 대변하는 것처럼 소개되었지만, 원문이 전하는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야만적이고 거칠며 잔인할 뿐만 아니라, 고대 그리스인이 처절한 일상 속에서 벼려낸 단단한 지혜를 다루고 있다. 죽음을 앞둔 소크라테스가 마지막까지 이솝 우화를 탐독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책 날개 내용 中)

이솝 아니 아이소포스는 당시의 성인들을 일깨우고자 일상에서 겪은 여러 경험과 삶의 지혜를 재치있게 이야기로 전달하는 능력이 뛰어났던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고대인들에게도 더 옛날옛적의 고대인이 들려주던 이야기들이 있었을 것이므로 소크라테스 시절에 소크라테스처럼 대중들에게 은유와 교훈이 섞인 대화를 즐겨하는 사람들에겐 이런 '이야기'들이 정말 유용하고도 풍부한 지혜의 샘물이 아니었을까 싶다. 사람들에게 '말'이라는 대화수단이 생겨난 이래로 '이야기'라는 것은 늘 있어왔을 것이다. 고전이라 불리는 것은 모두 다 그런 '이야기'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닐지... 인간의 삶이란 곧 story 이므로.

아이소포스의 이야기들은 구전되다가 조금씩 수집되었는데 기원전 4세기에 아테네의 정치인이자 대중 연설가였던 데메트리오스가 당시 연설가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10권의 책으로 펴냈다. 연설가들이 대중들에게 인기있는 연설을 하려면 이런 우화들을 적절히 섞어 사용하는 기술이 아주 유용했을 것이다. 지금도 인기있는 강연이나 강좌들은 본내용 자체보다도 곁들여지는 강사의 이야기들이 아니던가.ㅎㅎ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이솝 우화 모음집은 기원후 1세기에 바브리우스가 160편의 우화를 편찬한 판본이고, 이후에 나온 것들은 이 판본을 토대로 하고 있으며, 최초로 이솝 우화를 라틴어로 번역해서 책을 펴낸 사람은 기원후 1세기에 살았던 아우구스투스이 해방노예 파에드루스였지만 이후 중세 시대에 나온 거의 모든 라틴어판 이솝 우화들은 10세기에 로물루스라는 우화 작가가 펴낸 책을 대본으로 했다고 한다.

이 책에서 텍스트로 사용한 것은 1927년에 에밀 샹브리가 간행한 것인데 이 판본에서 샹브리는 358개의 우화에 그리스어 알파벳 순서로 번호를 매긴 뒤 각 우화의 그리스어 원문과 프랑스어 번역문을 배열해놓았다고 한다. 이 책은 이솝시대부터 구전을 통해 수집되면서 원형이 대체로 잘 보존된 이야기 중에서 그리스어 원전 358편을 완역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 페이지에 이야기 하나씩 그리고 간혹 독특한 그림들과 어우러지는 우화들은 옛이야기 읽는 재미가 느껴지기도 하고 촌철살인의 깨달음이 전해지기도 한다.

아이소포스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독수리와 쇠똥구리' 라는 우화를 읽으며 그때 무슨 일이 있었을까 상상해보게 되고, '협잡꾼' 이라는 우화에선 신전에서 말해지는 신탁이 사기라는 것을 넌즈시 알려주고 싶었던걸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지금 현실에도 딱 들어맞는 우화를 읽을 때면 '이야기의 힘'을 새삼 느낄 수 있곤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신들에게 기원만 하는 사람을 깨우치는 '난파당한 사람' 이나 '제우스와 좋은 것들이 담긴 단지' , '신들을 놓고 언쟁을 벌인 두 사람' , '말과 소와 개와 사람' , 법을 지키지 않는 위정자들을 빗대는 '늑대와 당나귀' , 전쟁의 원인에 대한 '전쟁과 오만' 등은 정말 팍팍 꽂히는 이야기들이었다. 그중에서도 하나만 옮겨보자면,

강물을 때리는 어부

한 어부가 강에서 물고기를 잡고 있었다. 어부는 강둑의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강을 가로질러 그물을 쳤다. 그런 후에 밧줄 끝에 돌을 묶어서, 그 밧줄로 강물을 때렸다. 물고기들이 깜짝 놀라 도망가다가 엉겁결에 자신이 쳐놓은 그물망에 걸려들게 할 속셈이었다. 그 근방에 사는 사람 한 명이 그렇게 하는 어부를 보고, 그가 그렇게 강물을 흐려놓아 그 물을 마실 수 없다고 말하며 그를 꾸짖었다. 어부는 대답했다. "하지만 강물이 이렇게 탁해지지 않으면, 나는 굶어 죽을 수밖에 없소"

교훈 - 선동정치가는 나라가 여러 편으로 갈라져 격렬하게 싸울때 가장 큰 이득을 본다. (p. 50)

동화책으로 보던 우화가 원전은 약간 다르다는 것을 알게되는 재미도 쏠쏠했는데,

'여우와 포도송이' 라는 우화는 동화에선 '신 포도들'이라고 번역되어져 왔지만 그리스어 원전은 '덜 익은 포도들' 이라는 것과

'개미와 베짱이' 가 아니라 '매미와 개미들' 이었다는 것이 신선했고

'배와 발' 이라는 우화는 '머리와 발' 로 바뀌곤 하지 않았나 싶었는데고 무엇보다

'금도끼 은도끼' 가 우리나라 전래동화 뿐만 아니라 이솝우화에도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여기서는 산신령이 아니라 '헤르메스'가 도끼를 들고 나타난다. ㅎ

수메르 신화나 플라톤 철학 등의 고대 사상들이 성경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솝우화까지 반영되어 있다는 것을 읽으니 신선하기도 했고,

주석 - 교훈에서 '주님'으로 번역한 '퀴리오스'는 제우스를 비롯한 그리스의 신들을 칭송하는 글에서 사용되었지만, 기독교에서 하나님이나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킬 때도 썼다. 그리고 이 교훈의 내용은 성경의 야고보서4장6절과 같다. (p. 42)

그리스어를 알았다면 더 재미있었을 말장난 이 섞인 우화들은 주석을 통해서나마 간접적으로 그 재미를 느낄 수 있기도 했다.

주석 - 이것은 그리스어로 '심장'을 뜻하는 '카르디아'에 '생강, 사고' 라는 뜻도 있음을 이용한 말장난이다. 두 번이나 속은 어리석은 사슴에게는 '생각'이라는 것이 없을 테니 '심장'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p. 245)

무엇보다 동화책으로가 아니라 원전 그대로 읽으면서 고대 그리스인들의 생각과 삶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역사로만 접했던 고대 그리스인들이 더 가깝게 다가오는 기분이었달까, 역사에서 느꼈던 고대 그리스인들이 좀더 친숙해졌달까 ㅎㅎ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이솝 우화 같은 형태의 우화는 일찍이 기원전 3천년경부터 수메르어와 아카드어로 존재했다고 한다. 그 후로 본격적으로 발전된 고대 우화로는 그리스 우화 이에도 아프리카 우화와 인도 우화가 유명하다. (p. 426) 고대 그리스의 경우, 최고의 서사 시인이었던 호메로스가 활동하던 기원전 8세기에는 우화가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직후 몇몇 그리스 시에서 우화가 등장한다. 현재 우리가 아는 한, 고대 그리스인 중에서 우화를 본격적으로 만들어낸 사람들은 소아시아에 살던 그리스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소아시아는 우화에 자주 등장하듯 사자가 출몰하는 지역이었고, 전승에 따르면 우화 작가인 이솝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p. 427)

아이소포스가 쓴 우화는 무척 유명하지만, 그에 대한 확실한 기록은 사실 남아 있지 않다고 한다. 그럼에도 기원전 6세기 후반에 이르자 아이소포스는 그리스에서 누구나 아는 이름이 되었고, 헤시오도스 나 헤로도토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 고대 사상가들도 곧잘 우화를 인용하곤 한 것을 보면, 이야기는 대를 잇는 지혜의 전승수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관심을 끌면서 재치있게 교훈을 전달하는 방법이었기에 나이를 불구하고 누구에게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올 수 있었을 '우화' 라는 이야기의 힘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지 않을까. 그런 옛이야기의 힘을 느낄 수 있을 대표적 우화전집으로 이 책을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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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나도 그랬으니까 - 이근후 정신과 전문의가 알려주는 서툴지만 내 인생을 사는 법
이근후 지음, 조은소리.조강현 그림 / 가디언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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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후 정신과 전문의가 알려주는

서툴지만 내 인생을 사는 법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 라는 책을 정말 기분좋게 읽은 기억이 있다. 그 책을 썼을 당시 저자의 나이가 이미 팔순을 넘긴 어르신 이었다. 그런데 에세이를 그닥 좋아하지 않는 내가 폭 빠져 읽을 정도로 멋진 어르신의 모습을 볼 수 있어 인상깊게 읽었었다.

예를들어, 자식과 위아래층에 살면서도 현관 비밀번호를 알려하지 않고 방문전에 꼭 연락을 하며 충분히 자식의 생활을 존중해 주는 모습이 멋있어 보였더랬다. 거기다 자식의 차로 함께 가기로 했던 곳을 자식에게 일이 생겨 혼자 택시를 타고 가야했을 때에도 불쾌하다거나 원망하는 마음없이 정말 쿨하게 '그럴 수 있지' 하는 태도에 '와 이런 분이 계시나' 싶었더랬다. 더구나 많다면 많을 수 있는 나이에도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고 '해주겠지' 하며 바라지 않고 '나' 라는 사람이 할수 있는 활동들을 찾아 여전히 활발하게 하신다는 것이 대단하시구나 하며 감탄을 연발하곤 했었다. 그러니 그런 어르신의 또다른 에세이를 읽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이번 책은 쓰시면서 '서투름' 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에 두었다고 한다. 크게 4부로 나누어져 있는 얅고 작은 에세이인 이 책은 순서관계없이 어느 페이지를 펼쳐 읽어도 간단하지만 분명한 조언을 찾을 수 있다. 그중 몇 가지만 골라보자면,

어떻게 살 것인지는 개인의 선택이다.

어떤 선택이든 우리의 목표는 일생을 즐겁고 유쾌하게 살아가는 것이 되어야 한다. (p. 57)

중요한 것은 '나' 자신 이라는 것, 변치 않는 교훈이다. 물론, 이거이 '나만' 이라는 뜻은 아니다. 나 아닌 타인에 휘둘리지 않는, 그래서 후회도 미련도 남기지 않을 수 있는, 그런 주체적 '나' 를 생각해보라는 말일 것이다.

성공은 마디가 짧은 나무이고, 자기 성장은 마디 없이 나의 노력만큼 늘어나는 나무라고 생각하면 좋겠다.

성공에 집착해 자기 성장을 방해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성공은 한때의 즐거움이지만, 자기 성장은 끝없는 즐거움이다. (p. 63)

성공과 성장의 차이는 분명 크게 다가온다. 성공은 끝이 있다면 성장은 끝이 없어서 더 힘든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성공 과 실패로 양분되는 과정보다는 대박을 터뜨리진 못해도 꾸준한 과정 끝에 찾아오는 의미가 분명 가치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는 젊은 독자분들께 돌다리를 두들기지 말아보기를 권한다. 돌다리는 건너라고 만들어진 것이다. 튼튼하든 부실하든 물 위를 건너는 용도로 만들어졌다. 강을 건너려면 무조건 돌다리를 밟아야 한다. 돌다리가 튼튼한지 안 튼튼한지, 이것저것 걱정하다 보면 건너지 못할 수도 있다. 건너야 할 이유가 뚜렷하다면 앞뒤 가릴 것 없이 건너야 한다. (p. 79) 정 두들기고 싶다면 일단 건너고 나서 한 번쯤 두들겨 보자. (p. 80)

이젠 팔순도 훌쩍 넘어 몇년 후엔 아흔이 되실 분이 이런 발랄함을 전해주실 수 있다니, 여전히 매력있으시다. ㅎㅎ

여유는 시야를 넓혀 주고 더 많은 행복과 즐거움을 안겨 줄 수 있다.

이제는 느림의 미학을 느끼는 삶을 지향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p. 214)

칠십이 넘은 나이때 사이버대학 강좌를 수강하시는 등 식지 않은 학구열을 유지하시고, 매년 에세이 한권정도 쓰시며 글솜씨가 없다하시면서도 꾸준히 글을 쓰시고, 이제 한쪽 눈은 실명에 다른 한쪽 눈마저 잘 안보이신다는 신체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여전히 당신이 할수 있는 영역을 찾아 기껍고 즐겁게 활동하고 계신 듯 하다. 앞서 읽었던 책이 전해주는 재기발랄함은 부족한 듯한 이번책은 성기고 해묵은 조언들이랄까 어른들이 할법한 그런 말씀들이랄까 하여튼 좀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라때식 표현도 이분처럼 하시면 들을법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무엇보다 그 연세에 이렇게 열린 마음으로 살고 계시는 모습을 보여주시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존경스러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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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진 - 지구는 어떻게 우리를 만들었는가
루이스 다트넬 지음, 이충호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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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진화와 지구 변천사의 황홀한 조화!

인류의 기원에 대한 궁극의 대답!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와 어깨를 나란히 할 책 -선데이 타임스- > 라고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처럼 거대한 지식의 통합 하지만 더 재치있고 더 빠져들게 한다 -월스트리트 저널-> 라고 써 있는 홍보문구를 보며 벌어지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내게 굵직한 감동을 선사했던 인생책들인 [사피엔스] 와 [코스모스] 라는 어마무지한 책을 동시에 인용할 수 있는 이 책은 과연 얼마나 대단한 책이란 말인가.

나는 지구가 우리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탐구하려고 한다. 우리는 지구에 사는 모든 생물과 마찬가지로 문자 그대로 지구로부터 만들어졌다. (p. 12)

이 책에서 우리가 시도할 탐구는 엄청나게 긴 시간에 걸쳐 펼펴질 것이다. 인류의 역사 전체는 사실상 정적인 지도(지구를 다룬 영화에서 단 한 프레임에 해당하는) 위에서 펼쳐졌다. (p. 16)

과거를 알아야 현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고, 미래에 대비할 수 있다. 우리의 궁극적인 기원 이야기는 가장 심오한 질문으로 시작한다. 인류의 진화를 이끈 지구의 과정들은 무엇이었을까? (p. 18)

내게 [사피엔스] 가 인류의 문명사를 이해하는 선구안을 가르쳐줬다면 [코스모스]는 우주와 연결되어 있는 휴머니즘에 대해 각성시켜준 책이었다. [오리진]은 이 두 책의 간격을 메꿔주고 있는 듯한 책이다. 인류의 문명은 결국 지구안에서만 이루어졌고 지구 자체는 태양을 비롯한 우주와 연결되어 있는 행성이다. 저자는 우주 안에 속해있는 '지구'를 중심에 두고 인류문명사를 풀어낸다. 지구가 무엇에 영향을 받아 어떻게 변화해서 무엇을 만들어냈는지.

저자는 지구 태초의 시간부터 현재까지 크게 잡은 주제들 위주로 굵직하게 설명한다. 지구가 우리를 어떻게 만들었고 그렇게 만들어진 인류가 이동을 하게 된 지구적 원인은 진화에도 영향을 끼쳤다. 인류의 문명은 향신료, 암석, 금속 이 바닷길과 실크로드를 통해 오고가며 인류가 주체적으로 이루어낸 업적 같아보이지만 석탄과 석유를 바탕으로 세워진 현대까지도 지구적 영향력은 인간의 근시안을 넘어서고 있었다. 지구는 여전히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인간들의 세상은 지구의 얇디얇은 껍데기에 세워진 것에 불과했다. '판'의 활동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우리가 진화하는 동안 다양하고 역동적인 자연 경관의 특징을 만들어내고 유지한 것은 판과 화산의 활발한 활동이었다. 지구 전체에서 서로 멀어져가는 판들의 활동이 가장 실질적으로 그리고 가장 오랫동안 일어나고 있는 이 거대한 동아프리카 지구대는 우리의 진화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p. 28)

인류의 진화는 동아프리카에서부터였다. 판게아에서 대륙들이 떨어져 나오고 지금의 형태가 완성된 형태겠거니 생각했었다. 그런데 판의 움직임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지구의 자전이나 공전, 중력 같은 것을 살면서 체감하지 못하듯이 대륙의 움직임도 인간이 알아채기에는 어려운 활동영역이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 사이 아프리카 대륙이 두쪽날지도 모른다니, 그것도 인류의 출발지가. 지구의 움직임은 진화에 영향을 끼쳐왔다. 인류의 진화또한 지금이 완성형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은 '기원' 문제의 중요성을 새삼 각성시켜 준다.

인류의 진화에서 두발 보행 능력의 발달은 뇌 용량이 상당히 커지기 전에 먼저 일어난 게 틀림없다. (p. 30) 호모 에렉투스는 약 200만 년 동안 살아남았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해부학적 현생 인류가 이 세상에 출현해 지금까지 살아온 기간은 이것의 10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p. 31) 체형과 생활 방식에 일어난 이 발전은 서로를 견인했다. 효율적인 달리기와 정교한 인지 능력이 발달하면서 도구 사용, 불조절 능력과 결합되자 사냥의 효율성이 높아져 음식물에서 고기의 비중이 커졌고, 이것은 뇌를 더 크게 발달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것은 다시 더 복잡한 사회적 상호 작용과 협력, 문화적 학습과 문제 해결 그리고 가장 중요한 언어의 발달을 낳았다. (p. 34)

인류의 진화에 대해 한 권으로 읽었을 법한 내용이 몇 페이지로 설명된다. 최근 읽은 DNA나 진화 관련 책들에서 봤던 내용들이 간단하지만 분명하게 서술되는 것을 통해 저자가 최신 정보를 충분히 탐구하고 썼구나 싶어서 초반부터 책에 대한 전반적인 신뢰도가 높아졌다.

지구대를 만들어내는 판들의 장기적 활동 추세와 지구의 기후 변동과 우리의 진화에 직접적으로 그리고 극적으로 영향을 미친 서식지의 급격한 요동 사이의 핵심 연결 고리를 제공한 요인은 바로 이 증폭기 호수들이다. (p. 39) 모든 종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환경의 산물이다. 우리는 동아프리카에서 일어난 기후 변화와 판들의 활동이 낳은 유인원 종이다. (p. 44) 판들의 경계를 나타낸 지도 위에 주요 고대 문명 장소들을 겹쳐보면, 놀랍도록 밀접한 관계가 나타난다. (p. 44)

동아프리카를 중심으로 한 인류의 진화와 이동에 기후변화는 분명 중요한 변수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 기후변화에 영향을 끼친 것 중에 판들의 활동이 있었다. 아니 판들의 활동이 먼저였다. 4대문명지가 다 강하류 농업이 유리한 곳이다 라는 식상한 문장을 뒤집어 생각해보게 하는 '판들의 경계'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서양문명의 발상지라 할 수 있는 그리스문명, 에트루리아문명, 로마문명 도 이 영향력 아래에 있었고, 오늘날의 대도시의 위치 또한 이 지질학적 유산과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

빙기는 평균적으로 8만년 동안 계속되고, 빙기들 사이의 간빙기는 그보다 훨씬 짧은 1만 5000년 정도만 지속딘다. 1만1700년 전부터 시작된 홀로세처럼 각각의 간빙기는 기후가 다시 빙기로 돌아가기 전의 짧은 휴식기에 지나지 않는다. (p. 53) 13만~11만5000년 전에 일어난 바로 앞의 간빙기는 현재의 간빙기보다 일반적으로 더 따뜻했다. 오늘날 아프리카에 살고 있는 동물들이 유럽에서 돌아다녔다. (p. 55) 지구의 궤도 이심률, 자전축의 기울기와 그 흔들리은 모두 지구의 기후에 영향을 미치며, 이것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주기적으로 변한다. 이 주기적 변화들을 앞장에서 짧게 언급한 밀란코비치 주기 라고 부른다. (p. 59)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은 이유로 약 100만 년 전부터 더 느리지만 더 극단적인 주기로 건너갔는데, 바로 약 10만년 에 이르는 지구의 궤도 이심률 주기로 옮겨간 것이다. (p. 61) 현재 지구는 전체 생애 중 약간 기묘한 시기에 있다. 지구가 지금까지 존재한 전체 시간 중 80~90%는 지금보다 상당히 따뜻했다. (p. 62)

지구는 인류를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다. 인류가 존재하건말건 무관하게 자신의 활동을 할 뿐이다. 수억년의 지구 생에 중에서 인류가 존재한 시간은 미미하다. 지구의 활동을 안다는 것은 인류에게 시급한 문제다. 환경파괴를 이야기할 때 지구를 살리자는 표현이 마치 인류가 지구를 도와주는 것처럼 여기게 하는데 인간의 오만이다. 인류가 살기 위해 지구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다. 인류가 지구에 대해 배워야 하는 것은 지구의 생존문제가 아니라 인류 생존의 문제다. 지구는 앞으로도 그저 자신의 활동을 해나갈 뿐이다. 인류가 존재하건 말건.

전 세계 사람들의 유전자 조사에서 나온 가장 놀라운 결과는 사람이라는 종이 놀랍도록 균일하다는 사실이다. 머리카락 색과 피부색 또는 머리뼈 모양의 지역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지구에 살고 있는 75억 명 사이의 유전적 다양성은 놀랍도록 낮다. 사실, 지구 정반대편에 살고 있는 두 인간 집단 사이의 유전적 다양성보다 중앙아프리카의 어느 강 양쪽에 살고 있는 두 침팬지 집단 사이의 유전적 다양성이 더 크다. 하지만 사람의 유전적 다양성은 아프리카 내에 살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크게 나타난다. (p. 71) 오늘날 아프리카인이 아닌 사람들의 유전 암호 중 약 2%는 네안데르탈인에게서 유래했다. (p. 72) 아프리카에 남은 원주민 중에서 네안데르탈인이나 데니소바인의 DNA가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p. 73)

세계에 사람들이 엄청나게 다양한 것 같지만 거기서 거기란다. 그러니 질병 하나가 세계를 유행하는 것 아니겠는가. 아프리카는 가난한 대륙이라는 이미지로만 봐서는 안 되는 중요한 곳이다. 인류의 기원을 알려주는 곳이자, 앞으로도 (작지만 그럼에도 존재하긴 하는) 인류의 '다양성' 연구에 중요할 곳이다.

마치 우리 조상들이 불굴의 의지가 이글거리는, 눈살을 잔뜩 찌푸린 표정으로 아프리카의 고향에 결연히 등을 돌리고 지평선을 향해 과감하게 걸어가 대륙들 가장자리에 위치한 온 구석구석을 체계적으로 채워간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수렵 채집인 집단들이 인구 밀도가 매우 낮은 상태에서 온 사방을 배회하면서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p. 79)

신대륙과 구대륙간의 이동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낙타와 말은 사실 북아메리카에서 진화한 뒤, 베링 육교를 건너 유라시아로 넘어왔는데, 고향에 남아 있던 낙타와 말은 모두 죽고 말았다고 한다. 신대륙이라고 이름붙여지기 전에 이미 고대인류가 걸어서 건너간 땅이 아메리카 였다. 인류를 중심에 둔 미화는 삼가해야 한다. 문명의 발달도 자연이 만들어 놓은 천연 국경에 의해 구분된 것이다. 그곳에 살던 인류가 우수했던 것이 아니라. 인간을 중심으로 놓고 생각하면 자연과 환경과 지구의 영향을 자꾸 잊어버리게 되는 것 같다.

우리의 생활방식을 되돌릴 수 없게 바꾼 발명은 갑작스런 기후 변화의 역경 속에서 태어났다. (p. 93) 주요 곡물은 모두 초본 식물, 즉 풀이다. 여기서 놀라운 사실은 우리가 목초지에서 방목하는 소나 양, 염소와 다를 바가 없다는 점이다. 인류도 풀을 먹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p. 100) 이 진화적 혁신 덕분에 식물은 습지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p. 115)

인간이 농업으로 정착할 수 있게 된 것은 풀 덕택이었다. 식물이 포자번식에서 겉씨식물과 속씨식물로의 변천과정이 인류의 진화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친 것을 읽으며 경이로웠다. 전지구적 환경은 생태계와 밀접하게 상호교류가 이루어져 왔다.

이보다 훨씬 중요한 이유는 티베트 고원이 공급하는 단순하지만 아주 중요한 자원 때문인데, 그것은 바로 물 이다. (p. 130)

중국관련 책을 읽었을때 티벳고원을 강제적으로라도 중국영토내에 유지하려고 하는 이유가 정치군사적 이유라고만 생각했었데 더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티베트 고원은 대륙이 급수탑 역할을 하는 곳이었다. 고인류의 이동에서 호수가 중요한 역할을 했듯이 지각판들의 경계가 만들어낸 환경에서 물은 어쩌면 가장 중요한 자원이었다. 사막에만 오아시스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산꼭대기에도 벌판한가운데도 있었다. 지구는 그런 호수를 만들었다 없앴다 하곤 했다.

이렇게 대서양과 태평양으로 둘러싸임으로써 미국은 사실상 섬나라가 되었는데, 그러면서 한쪽으로는 유럽과 반대쪽으로는 아시아와 해상 교역을 쉽게 할 수 있는 이점을 누리게 되었다. 미국이 경제적 성공과 함께 자유의 이상을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했기 때문인데, 그것은 지리적 환경이 제공한 조건 덕분이었다. 유럽 국가들은 혼잡한 대륙에서 계속 서로 부대끼며 옥신각신 살아갔지만, 미국은 영토 보전의 안전성 때문에 거의 200년 동안 대외 정책에서 고립주의적 태도를 견지했다. (p. 169~170)

고대그리스의 역사에서나 네덜란드의 역사에서 지리적 환경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다시 확인하는 것도 재미있었지만 미국의 지리적 분석은 신선했다. 무엇보다 '블랙벨트' 지도를 보면서 오늘날의 정치가 먼 옛날 지질학적 구조와 연결될 수도 있다는 것을 보니 무척 흥미로웠다.

런던 지하철이 불편할 정도로 더운 이유는 런던 점토 때문이다. 지하 동굴은 보통은 상쾌할 정도로 서늘하기 때문에 이 점은 의아해 보일 수도 있다. 사실, 터널을 처음 팠을 때, 점토의 온도는 약14℃였고, 초기에는 런던 지하철이 무더운 여름에도 시원하게 지낼 수 있는 장소라고 선전했다. (p. 215)

지하에서 런던 지하철을 기다린다는 것은 더위를 감수해야 하는 일임은 경험한 바 있다. 이또한 사소할지라도 지구의 역습이었구나 생각하니 웃음이 났다. 역사적으로 엄청난 흔적을 남긴 지구의 역습도 있었다. 미노아문명은 지중해 교역으로 일찍이 큰 부를 쌓은 성공한 문명이었으나 지각판의 결실을 누린만큼 끔찍한 대가를 치룬 곳이기도 했다.

지구상의 모든 철은 별 내부의 핵융합 반응에서 만들어졌다. 철은 별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원소이다. 큰 별의 중심부에서 수소 핵융합 반응을 통해 헬륨 '재'가 충분히 많이 쌓이면, 이번에는 헬륨 핵융합이 일어나 탄소와 산소가 만들어지고, 계속해서 더 무거운 원소들의 핵융합이 일어나 황과 규소를 비롯해 점점 더 무거운 원소들이 만들어지다가 결국에는 니켈과 철이 만들어진다. (p. 233) 역사적으로 우리가 귀하게 여겨온 금 은 지구가 철핵과 규산염 맨틀로 분리된 뒤에 지표면에 충돌한 소행성에서 온 것이다. (p. 234) 지구에 복잡한 생명체가 존재하게 된 것은 바로 이 뜨거운 철핵 덕분이다. (p. 235) 호상철광층은 대부분 지구에서 최초의 대륙들이 막 생겨나던 무렵인 22억~26억 년 전의 비교적 짧은 기간에 전 세계 각지에 퇴적되었다. (p. 236)

인류가 순식간에 써 없애고 있는 광물들은 사실 지구가 오랜 시간을 들여 만들어온 것들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가 '지구는 녹슬어갔다(p.241)' 라고 한 표현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지구는 다시 녹슬어 갈 수 없게 되었다. 멸종위기에 처한 것은 동물들만이 아니었다.

2세기 초에 로마 제국과 한 제국은 공통점이 많았다. (p. 260)

전차의 발명은 기원전 2000년경에 일어났다. 전차는 전쟁의 전술에 혁명을 가져왔다. 하지만 호메로스가 트로이 전쟁에서 500여 년이 지난 기원전 800년경에 <일리아드>를 쓸 무렵에는 청동기 시대의 이 군사기술은 이미 낡은 것으로 변한지 오래되었다. 전차는 명성과 권력의 상징으로만 명맥을 유지했다. (p. 277)

기마 유목민들은 때로는 공물을 요구했고, 때로는 농촌과 마을을 공격해 약탈했으며, 가져갈 수 있는 것을 다 약탈한 뒤에는 그냥 넓은 초원 지대로 돌아가 버렸다. (p. 279)

헝가리 평원은 생태학적으로 스텝과 농경 지대 사이의 중간에 위치했고, 스텝 초원 지대에서 가장 서쪽 끝에 위치한 지역이었다. (p. 283)

페르시아의 이 성벽은 중국의 만리장성 다음으로 세상에서 두 번째로 긴 방어용 성벽이며, 만리장성과 똑같은 목적으로 건설되었다. 즉, 정착 문명과 야만 문명 사이의 경계선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p. 286)

유라시아의 이슬람 핵심 지역을 파괴한 반면 유럽을 고스란히 남겨둔 덕분에 몽골족은 이 지역에서 권력의 균형추를 유럽으로 기울게 했고, 유럽은 이슬람 세계를 추월해 더 빨리 발전할 기회를 얻었다. (p. 292)

역사를 좋아해서 그런지 역사만 나오면 확 빨려들어갔다. 개인적으로 헝가리스텝지역의 발견은 서유럽 역사의 이해에 큰 도움이 되었다. 인류의 문명은 점점 더 화려해지고 지구의 영향력은 그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듯 했다. 하지만 어떤 위대한 제국도 결국 자연의 경계를 넘어서진 못했다. 가톨릭, 프로테스탄트, 그리스정교회 라는 기독교의 3가지 신앙도 살펴보면 자연적 경계를 바탕으로 형성됐고, 아메리카 문명이 빈곤해진 이유도 지형적 이유가 컸으며, 스텝지역에서 활동한 유목민족도 환경에 적응한 결과였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반대로 중세의 교양있는 사람들 중에서 지구가 편평하다고 믿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p. 311)

대항해시대를 열었던 사람들은 독실한 신자들이었기에 천동설을 지지했으나 속으로는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니 그것이 과연 교양이랄 수 있는 것인지... 아니 그렇기 표리부동했기에 정말 교양인것이었는지도.

석탄기의 세계는 지금과는 아주 딴판이었다. 판들의 활동 때문에 지표면 위를 늘 돌아다니던 대륙들의 배열은 지금과는 아주 달랐다. 석탄기 내내 주요 대륙들은 서로 들러붙으면서 하나의 초대륙 판게아로 합쳐지고 있었다. (p. 357)

에너지원이 되는 자원에 대해서는 실생활에서도 밀접한 연관성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영국의 탄전들의 분포가 영국의 정치 지도에 영향을 미친 지도를 보고 있자니 수억년의 시간이 만들어낸 자원을 파내쓴 인간이 한 일이 결국 무엇인가 싶어진다... 석유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화석 연료를 태우는 것은 병에 갇힌 진(아라비아 신화에 나오는 악마)를 꺼내는 것과 같다. 그것은 17세기에 거의 무한한 에너지를 원하던 우리의 소원을 들어주었지만, 나중에 우리에게 값비싼 대가를 치르도록 하는 심술을 부렸다. (p.381)>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는 문장이었다.

우리는 한 바퀴를 빙 돌아 출발점으로 되돌아온 셈이다. (p. 382)

저자는 '핵융합' 에너지라는(원자력이 아니다) 친환경적 에너지를 사용하게 된다면 더이상 지구의 자원을 소모시키지 않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밀란코비치 주기에 의하면 약 5만년 뒤에는 지구의 기후가 빙기로 되돌아가야 하지만, 인류가 대기로 쏟아낸 온실가스 때문에 예정된 다음번 빙기는 찾아오지 않을 것이 거의 확실하다는데, 이것이 인류의 희망시대가 될지 절망시대가 될지는 모를 일이다.

지구는 끊임없이 역동적인 장소이며, 그 표면의 특징들과 행성 차원에서 일어나는 과정들은 인류의 이야기에서 결정적 역할을 했다. 우리 종은 독특한 판 구조론과 기후 조건을 지닌 동아프리카 지구대에서 출현했는데, 우리를 원인猿人에서 우주인으로 진화하게 해준 다재다능함과 지능은 우주의 주기에 따라 일어난 환경 요동의 산물이다. (p. 389) 문명의 전체 역사는 현재의 간빙기에서 잠깐 동안 반짝이는 불꽃에 지나지 않는다. 즉, 우리는 잠깐 동안 기후가 안정된 시기에 살고 있다. (p. 390) 지구는 인간의 이야기가 펼쳐질 무대를 마련했고, 그 자연 지형과 자원은 계속해서 인류 문명을 나아갈 방향을 이끌고 있다. (p. 391)

[사피엔스]가 인류문명의 헛점을 짚어주고 [코스모스]가 우주속 먼지크기인 인류를 깨닫게 해줬다면 [오리진]은 인류가 결국은 지구에 속한 존재일 뿐이라는 것을 상기시켜주는 것 같다. 비록 앞선 두 책만큼의 인문학적 깨우침을 주는 책은 아니었지만, 인류와 우주 사이에 지구라는 연결점을 분명하게 자리매김해주는 의미있는 책이었다.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을 잊지 말아야 겠다.

지구가 우리를 만들었다. (p. 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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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이 현실이 되는 순간 - 시대를 앞서간 SF가 만든 과학 이야기
조엘 레비 지음, 엄성수 옮김 / 행북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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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주행 자동차, 드론, 스페이스X, 원자폭탄, 탱크, 인조팔다리...

세상을 바꾼 과학과 기술이 탄생하는 순간

SF소설은 과학기술의 미래를 보여주는 장르 같다. 허구이기에 상상력은 현실을 초월하고 실제 과학기술보다 자유롭게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낸다. 과학기술은 SF를 때론 실현시키기도 하고 때론 실현불가능함을 증명하기도 한다. 결국 서로 영향력을 주고받으며 두 분야는 각각의 미래를 끊임없이 구현하고 있다. 지금은 익숙해진 과학기술들이 잉태되어 있는 듯한 SF들을 훑어보게 해주는 이 책은 그런 상호보완적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게 해준다.

자율주행 자동차의 발전에 아시모프가 가장 크게 기여한 것은 무엇일까? 이는 사실 자동차 자체와는 무관하지만, 아시모프는 완전한 자율성에 지능까지 갖춘 로봇이 인간 또는 로봇 자신과 관련해 일으킬 수 있는 문제들을 다루는 로봇 윤리학 분야에서 선구자적인 SF사상가였다. (p. 19)

자율주행자동차에서 아시모프의 '로봇 공학 3원칙'을 읽게 될 줄은 몰랐다. 곧 구현될 것만 같은 미래적 신기술 중 우리의 현실에 가장 근접해 있는 것은 아마 자율주행자동차 일 것이다. 책에 나오는 옛날 티비시리즈의 '키트' 가 현실화 된 셈이다. 사실 나는 '키트'를 모는 느끼한 남자 보다 손으로 모든 것을 만드는 맥가이버를 좋아하는 쪽이었는데 언젠가부터 SF에 빠졌네 ㅎ 여하튼, 로봇공학3원칙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야말로 '로봇' 과 연결지어 생각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때 내가 생각했던 로봇은 아마도 인간형 로봇이었나 보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자율주행자동차도 로봇이었다. 로봇의 윤리학은 시급한 문제다.

노틸러스 호가 미래지향적인 배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쥘 베른이 잠수함을 처음 생각해낸 것은 아니다. 16세기 초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일종의 '배를 가라앉히는 장치'에 대한 수수께끼 같은 메모와 그림을 남겼는데, 그 배를 잠수정 또는 잠수함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p. 33)

쥘 베른의 <해저 2만 리> 는 내가 정말 좋아하던 동화책이었다. 수영도 못하고 물놀이도 별로라 했던 내가 왜 가장 좋아하는 책이 이 책이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가장 처음 한글로 읽었던 책은 바다 책이었다. 갑자기 생각난 뜻밖의 우연이 <해저 2만 리> 더 각별하게 느끼게 한다. ㅎ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천재는 천재였다 보다. 잠수함에 대한 상상도 했었구나... 그런데 다빈치의 상상력은 이후로도 여러번 이 책에서 등장한다.

독일의 천문학자이자 수학자인 요하네스 케플러가 1608년에 슨 소설 <꿈>은 종종 최초의 SF로 불린다. 달 방문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이 소설에서 지구상에서 달까지의 여행은 초자연적인 존재들의 도움을 받아 이루어지지만, 케플러는 이 책에서 태양계와 궤도 역학 같은 첨단 과학 이야기들도 다룬다. 그야말로 '과학 소설'을 다룬 것이다. (p. 42)

그 유명한 천문학자 케플러가 SF소설을 썼었다니, 놀랐다! 적어도 이 소설에서 방아찧는 토끼는 등장하지 않겠구나 싶었다. 케플러는 천문학자니까ㅎㅎ

우리에게 달만큼이나 친숙한 화성은 오랫동안 많은 작가와 몽상가의 상사력을 자극해왔으며, SF의 세계에 적어도 판타지 장르의 SF와 과학에 근거한 SF라는 두 가지의 구체적인 하위 장르를 만들어냈다. (p. 58)

화성에 대한 허구들을 되짚어보니 과학이 급속도로 발전했음을 새삼 또 느낀다. 어렷을 땐 화성에 화성인이 사는줄 알았는데... 화성에 생명의 흔적이 없다는 것이 지금은 너무나 당연한 상식이 되어버린 것을 보면...

전쟁(2차세계대전)이 끝난 뒤 그 유명한 '페이퍼클립 작전'을 통해 그와 그의 많은 동료들은 미국으로 넘어갔고, 그 과정에서 그들의 많은 연구 결과 및 관련 자료 역시 대부분 미국 수중으로 들어갔다. 미국으로 이주하면서 '완전한' 미국인이 된 폰 브라운은 미국의 군사-산업 프로젝트를 이끄는 핵심 인물이 됐으며, 먼저 달에 도달하려는 소련과의 로켓 개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범국가적인 로켓 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국민을 상대로 한 홍보에도 열을 올렸다. 그는 월트 디즈니 사와 손잡고 텔레비전 프로그램들을 통해 과학과 공학기술의 복음을 전파하면서 미국 어린이들에게 친근한 인물이 되는 등 나치주의자에서 미국에 없어서는 안 될 보물로 재포장되었다. (p. 63~65)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패전한 독일의 과학자 총 642명을 미국으로 데려가 당시 독일의 최첨단 과학기술을 연구케 한 비밀 작전이 '페이퍼클립 작전' 이라고 한다. 그 주축이었던 인물인 베르너 폰 브라운의 일화를 읽으며 미국의 우주산업 뒤에 숨겨진 그림자의 하나를 본것 같아서 좀 씁쓸했다.

크로미의 소설 <최후의 심판의 날>은 방사능이 발견되기 전에 쓰인 것으로, 방사능은 그로부터 1년 후 프랑스 물리학자 앙리 베크렐이 우라늄염에서 일종의 방사능이 나와 사진 건판을 뽀얗게 만든다는 걸 알게 되면서 발견된다. 마리 퀴리와 피에르 퀴리 부부가 이 방사능의 출처는 화학물질이 아니라 원자 물질이라는 사실을 밝혀낸 것은 그로부터 다시 2년이 더 지나서의 일이다. (p. 73)

원자폭탄도 발견되기 전에 이미 SF에서 예견되었었다니. 과학의 발견과 SF의 예측은 밀접한 연관이 있어보이는 경우가 많다. 어디서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구체적으로 확인할 순 없지만 과학의 경향과 소설속 과학을 캐치하는 눈 밝은 이가 분명 있었을 것이다.

다빈치의 장갑전차는 그의 설계도면에서 한발도 더 나아가지 않았는데, 애초부터 이 전차는 그야말로 그의 판타지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다빈치가 예견한 무기가 탱크라는 이름으로 현실화된 것은 400년도 더 지나서의 일인데, 그걸 SF소설에서 예견한 사람은 H.G.웰스 였다. (p. 91)

다빈치가 살았던 시대는 나름 전쟁시대였다. 작은 공국에 소속된 사람으로서 다빈치는 그만의 상상력을 다양한 무기연구에 펼치기도 했다. 잠수함도 탱크도 자신이 모시던 군주를 위해 했을 법한 상상의 무기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군주를 위한 것이었는지 평화를 위한 것이었는지는 알수 없다.

웰스의 설명에서 흥미로운 점은 그가 말하는 열 광선이 아르키메데스의 '화염 거울'을 떠올리게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화염 거울이 실제 존재했을 가느엉은 거의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기 때문에 그 장치는 잘 알려진 최초의 SF 소설 속 이야기 정도로 봐도 좋을 것이다. (p. 105)

다빈치도 아니고 기원전 3세기의 수학자 아르키메데스라니~! 하긴 아르키메데스도 그의 도시국가를 위해 이런저런 무기들을 개발했었다는 일화가 있었다. 그런데 '화염 거울' 은 처음 읽는 에피소드였다. 시대를 앞서가는 발견은 확인할 때마다 참 경이롭다.

테슬라는 물을 채운 수송관으로 메시지를 전 세계에 빠르게 보내는 시스템, 적도를 중심으로 지구를 도는 거대한 우주 고리, 입자 가속기 살인광선 같은 초현대적인 발명품을 구상했던 방탕한 천재였다. (p. 132)

근대의 인물인 니콜라 테슬라에 대해 자세히 나오진 않지만 그의 생각으로 구현된 것들은 굉장했다. 테슬라 라는 이름이 전기자동차 이름인줄만 알았는데 실존 인물이었구나 ㅋ 이 인물에 대해 호기심이 생긴다.

SF 소설에서 화폐의 미래에 대한 예견은 그 역사가 아주 깊다. 예를 들어 빅토리아 시대의 작가 에드워드 밸러미는 자신의 1888년 소설 <뒤를 돌아보며> 에서 신용카드에 대해 예견했는데, 심지어 그 이름까지 오늘날과 똑같았다. (p. 147)

사실 상상력이라는 것도 현실 기반 없이 갑자기 무턱대고 생각되어 지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SF가 예견한 많은 것들이 신기하긴 했지만, 시대를 읽고 시대의 과학의 흐름을 주시한 소설가들의 상상력에도 다양한 연구와 준비가 있었음을 새삼 느끼곤 했다.

오웰이 <1984>를 쓸 당시만 해도 텔레비전은 아직 진기한 물건이었고, 가지고 있는 집이 거의 없었다. 그러다가 불과 10년도 채 안돼 텔레비전은 거의 모든 가정과 문화를 점령하기 시작했는데, 오웰은 그보다 훨씬 더 먼 데까지 내다봤다. 그러니까 대중오락의 수단인 텔레비전이 대중 억압의 수단으로 기능이 왜곡되는 시대가 올 거라고 내다봤던 것이다. (p. 157)

동물농장과 1984라는 작품은 여기저기서 하도 언급이 자주 되고 요즘 학생들에겐 필독서이기까지 한 작품인데 읽었었는지 어쨋는지 정확한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래도 조만간 찾아 읽어봐야 겠다. 텔레비전이 상용화되기 전에 텔레비전을 감시도구로 생각한 작가의 의도는 아무래도 작품을 읽어봐야 정확히 알 수 있을 것 같아서...

복제기의 기본 원리는 이 트랜스포터와 같다. 트랜스포터의 경우 어떤 물체의 원자 구조를 스캔한 뒤, 그 정보를 이용해 에너지-물질 전환 마지막 과정에서 그 물체를 그대로 복원해낸다. 사실 모든 트랜스포터는 일종의 복제기로, '물질 전송'이라는 말은 부적절한 말이다. 물질 자체가 전송되는 것이 아니고 정보만 전송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p. 178)

순간이동 이라는 것이 복제의 개념이라는 것을 처음 깨달은 듯 하다. 고체형의 물질을 원자형으로 분해해서 이동시키는 것이 순간이동이라고 하니 복제가 맞긴 한것 같다. 그렇게 설명을 읽으니 왠지 신비감은 살짝 떨어지는 기분이다. ㅎ

호프의 이야기와 신속한 X선 활용 간에 어떤 관계까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둘다 나타날 만한 때가 되어 나타났다는 것이리라. 과학적 발견과 기술 발명의 역사에서 되풀이해서 나타나는 현상 한 가지는 그런 일들과 돌파구가 마치 그럴 만한 때가 됐다는 듯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미국 철학자이자 특별한 사건들의 연대기를 주로 다루는 작가 찰스 포트는 증기기관 기술이 고대 부터 잘 알려진 기술임에도 불구하고 빅토리아 시대가 될 때까지 비약적인 발전을 하지 못한 이유를 파고든 끝에 이런 결론을 내렸다. '인류 사회는 증기기관 시대가 오기 전까지는 증기기관 사용법을 알아내지 못한다' 이런 현상은 미적분학과 진화론의 자연도태설에서 전구와 무선전신의 발명에 이르는 많은, 아니 어쩌면 거의 모든 획기적인 과학적 발견들에 적용된다. (p. 198)

모든 것엔 '때' 가 있었다. 절실히 공감한다. SF와 과학의 접점은 이런 '때' 가 서로 맞아들어가는 그런 때였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핵심적인 단락이 아닌가 싶다.

메리 셀리의 <프랑켄슈타인>과 마찬가지로 웰스의 <모로 박사의 섬>은 생물학과 의학이 놀라우리만큼 너무 빨리 발전하고 있다는 일반 대중의 불안감을 반영하고 있다. 예를 들어 <프랑켄슈타인>은 해부학적 절개 및 수혈의 발전, 소생 의학의 출현 그리고 생물학 분야에서의 전자기학과 전기요법의 발전 등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쓰였다. 그리고 웰스의 소설은 다윈의 진화론과 생체 실험에 대한 논란 외에 세포설과 세균설, 생화학의 급속한 발전, 세포분열 및 증식과정에 대한 이해가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과정에서 쓰였다. (p. 206)

뭔가 우주적이고 거시적인 세상에는 상상력이 폭발되지만 오히려 미시적이고 인간적인 분야에는 그 상상력이 잘 발현되지 않아온 것 같다. 조심스럽기 때문일까 디스토피아에 대한 불안때문일까...

미국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장군은 미군을 밴제드린 황산염 정제를 약 50만 팩 주문했는데, 태평양 일대에서의 전투가 전혹성을 띠게 된 데는 이 같은 약 남용도 한몫했던 것으로 보인다. (p. 224)

정신의학의 발달은 약으로 구현되었다. 이 약이 아직 인간의 정신을 조종할 정도는 아니지만 진작에 전쟁에 이용됐었다는 것을 읽으니 심히 우려가 되긴 한다.

보철 기술은 고대 이집트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이집트에서 발견된 미라 중에는 몸에 커다란 인공 발가락이 붙어 있는 미라도 있었다. 또 기원전 3세기경의 로마 장군 마르쿠스 세르기우스는 쇠로 된 의수를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 의수가 워낙 쓸 만해 여러 해 동안 장군직을 수행하는 데 별 문제가 없었다고 한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청동 거인 탈로스는 몸 전체를 보철 혹은 인공 신체로 교체헤 만들었다고 한다.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만들어낸 괴물의 직접적인 조상 중 하나느 히브리 신화에 나오는 오토마톤 '골렘'이다. 흙으로 빚은 후 생명을 불어넣은 이 괴물은 자신을 만든 이들의 통제에서 벗어나 제멋대로 미쳐 날뛴다. 흥미로운 사실은 사이버네틱스의 창시자 노버트 위너가 무차별적인 사이버네틱스 발전인 불러올 잠재적 위험을 경고하면서 이 골렘을 언급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는 일단 인간의 통제권을 벗어나면 제어할 방법이 없는 정교한 자율형 기계들의 위험성을 경고하면서 골렘을 예로 들었던 것이다. (p. 230)

신체에 대한 부분적 인공신체에 대한 생각은 (역시나 또) 고대부터 있었다. 역시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정신 인가;;; 그래서 '정신' 의 발현과정을 모르기에 '아바타'영화에서처럼 신체는 둘이될지라도 정신은 하나밖에 존재할 수 없는 것이 지금의 현실인 것 같은데... 미래적 SF에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루어 나갈지 궁금해진다. 지금은 기억의 가치나 신체존재의 무의미 등을 소설에서 읽을 수 있곤 해도 뭔가 아직 미진한 느낌이다. 다른 과학 분야에 비해서는... 어찌보면 진흙으로 빚어진 골렘이 미쳐 날뛰는 괴물이라면 마찬가지로 진흙으로 빚어졌다는 인간은 왜 '정신' 이 있는 것인가 싶고 ㅎ

휴고 건스백은 과학과 기술의 열렬한 신봉자로 늘 각종 트랜드를 좇았으며 SF 소설이 갖고 있는 영향력을 높이 평가했다. 그는 작가로서는 그리 잘 알려진 편은 아니지만 SF소설의 역사에서는 아주 중요한 인물이 되었다. SF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휴고상'도 그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p. 241)

작가로서 유명세가 별로 없었다면서 '휴고상' 에 왜 이름을 올리게 됐는지 궁금하다. 물론 '텔레포트' 라는 그가 상상한 화상통화 시스템이 획기적이었다고는 하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론 필립 K 딕 만큼은 아닌것 같은데 말이다.

태블릿의 독창성과 디자인 문제를 놓고 막대한 소송비용을 지불해가며 오랜 특허 분쟁을 벌이고 있는 삼성은 1960년대 나온 영화 <2001:스페이스 오디세이>를 언급하며 맞섰다. 애플의 디자인 콘셉트를 표절했다는 혐의에 대한 반박자료로 고전적인 SF영화를 인용한 것이다. (p. 257)

사실 애플의 창시자 스티브 잡스는 스스로가 인정하는 트레키(스타트렉의 팬)다. 그는 <스타트렉>에 나온 패드 같은 장치들이 자기 회사의 일부 제품을 디자인하는 데 영감을 주었다고 했다. (p. 260)

할많하않;;;

인터넷의 출현과 그것이 전 세계의 문화, 경제, 사회에 미칠 폭넓고 심대한 영향에 대해 예견하지 못한 것은 SF계의 가장 큰 실수 중 하나다. SF계는 원거리 통신 또는 소형화 추세처럼 일부는 세세한 부분까지 잘 예견했고, 로봇 또는 개인 교통 같은 분야는 지나칠 정도로 과장되게 예견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보통신 분야, 특히 인터넷 분야는 관련 기술들이 이미 출현하거나 출현하기 직전까지도 해당 분야를 예견하거나 눈에 띄는 작품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p. 264)

저자는 1946년 머레이 라인스터 의 <조라는 이름의 로직> 이라는 소설은 눈이 번쩍 뜨일 만한 예외적인 SF 소설이었다고 하면서 유일하게 네트워크 세상을 예견했다고 하는데, 여하튼 다른 분야들에 비해 인터넷 세상에 대한 예측은 SF에 없었구나라고 생각하기 신기하다. '인터넷'의 발전은 그렇게 급작스러웠던 사건이었나 보다.

인공지능 자동차, 잠수함, 달 탐사, 화성 프로젝트, 원자폭탄, 탱크, 에너지 무기, 드론, 신용카드, 감시사회, 복제 기술, X선 등의 레이저선, 생체공학, 신경정신약물, 인조인간, 화상통화, 휴대용 단말기, 사이버 공간 등 총 18가지의 주제에 따른 SF 소설과 과학과의 접점을 살펴 볼 수 있었던 이 책은 쉽고 가볍게 읽히면서 과학적 상상력을 자극하고 있어서 과학에 호기심을 갖는 학생들이 읽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비록 마무리글 없이 본문으로 뚝 끝나는 편집이 아쉽긴 했지만 SF가 현실이 된 순간들을 살펴보는 것은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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