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페의 음악
장자크 상페 지음, 양영란 옮김 / 미메시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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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윙이 넘치는 삽화가,

장자크 상페가 사랑한 음악과 음악가들

장자크 상페 의 삽화를 눈여겨 보게 된 것은 <승부> 라는 파트리크 쥐스킨트 의 책을 보면서 부터였다. 예쁘게 새로 편집되어 나온 책을 읽으며 오래전 읽은 <좀머씨 이야기> 도 생각나고, 세월이 지나서인지 전에는 그림보다 글이 눈에 들어왔던 책이 지금은 글보다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글이 직접적으로 전해주는 의미와 또다르게 삽화가 간접적으로 전해주는 의미에 더 풍성한 여운을 느끼며 상페의 그림책들을 몇 권 찾아 읽어보기도 했다.

이 책은 저널리스트 마르크 르카르팡티에와 '음악'에 대해 인터뷰한 것을 엮은 책이다. 상페는 어렸을때 여건이 허락했다면 음악가가 되고 싶었다고 한다. 생계를 위해 시작한 삽화일이 직업이 되고 안정을 마련한 이후 자신이 좋아하던 음악에 본격적으로 심취한 것 같다. 상페가 사랑하는 다양한 음악의 경쾌함을 스윙으로 압축시켜 말해본다면 그의 흐르는 듯한 필체의 그림은 분명 스윙이 넘쳐나고 있다.

상페의 그림이 좋아서 그림책인줄 알고 선택했던 이 책이 그림책이 아니라 인터뷰책이었음을 책을 읽기 시작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림과 짧은 문장들이 어우러지면서 전해주던 유머와 감동이 있는 기존에 읽었던 그런 상페의 책은 아니었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이 얼마나 컸는지 상페라는 작가에 대해 조금은 알게 해주는 책이었다.

그가 걸어온 예술가로서의 궤적을 기뻐해야 할까, 아니면 안타까워해야 할까? 스스로를 기꺼이 <그림 그리는 문필가>로 정의하곤 했던 사울 스타인버그의 말을 빌려 이 질문에 감히 대답해 보자면, 상페는 <그림 그리는 음악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스윙이 넘치는 삽화가이다. -마르크 르카르팡티에- (p. 9)

상페를 인터뷰했던 마르크 르카르팡티에는 그를 '그림 그리는 음악가' 라고 표현했지만, 내가 읽어온 상페의 책을 바탕으로 생각했을때 내게 상페는 <음악을 그리는 삽화가> 였다. 어느 책에서건 상페의 책 속엔 늘 음악에 관련된 그림이 빠지지 않았고 그림을 보고 있을 뿐인데도 음악이 들리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게 하는 능력이 있었다. 상페는 너무나 열렬하게 음악을 숭상하고 음악가에 대한 꿈이 있었다지만, 나는 음악을 그릴 줄 아는 삽화가로서의 상페가 훨씬 좋다. 그의 그림엔 늘 음악이 흐른다.

당신은 음악에 미쳐 있으면서도 그림 그리는 일을 합니다.

나는 그림 그리는 일을 하는 거 맞습니다. 그런데 왜 그럴까요? 왜냐하면 종이 한 장과 연필 한 자루를 마련하기가 피아노 한 대를 장만하기보다는 훨씬 쉽기 때문이지요. (p. 14)

 

상페가 음악을 했어도 아마 잘 했을 것이다. 인터뷰 내용을 읽다보니 음악적 능력도 출중한 것 같다. 하지만 음악을 했다면 상페 특유의 그림을 통한 유머는 볼 수 없었을 것이다. 내게는 상페가 삽화를 그려서 다행이다.

 

상페의 그림은 쉽게 대충 그린것 같은데 너무 잘 그렸다는 점이 놀랍곤 하다. 선 몇개 그은 것 만으로도 그의 삽화는 무엇을 전달하고자 했는지 거의 완벽하게 보여주곤 한다. 하지만 이렇게 쉬워보이는 그림도 내가 그리면 당연히 이렇게 그릴 수가 없다. 그리고 상페자신도 이런 그림을 그리게 되기까지 무수한 노력이 필요했음을 말하고 있다.

음악이니 연주니 하는 건 무엇보다도 기술의 문제입니다. 그림도 마찬가지고요! 사람들은 언제나 영감을 말하지만, 사실 연습과 노력의 문제인 거죠. (p. 20)

 

상페의 인터뷰를 읽다보면 그가 품어온 음악에 대한 열정이 정말 놀랍다. 그리고 지극히 개인적이면서 순수한 것이 느껴진다. 그가 좋아하는 음악들은 내겐 너무 옛날의 오래된 음악들이지만 그가 음악을 대하는 마음 만큼은 어렸을 때의 그마음 거의 그대로라는 것이 전달되어서 대단하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어쩌면 당연하게도 상페는 작사,작곡도 틈틈이 하고 있었다.

이제는 우리가 당신의 작사가이자 작곡가, 요컨대 창작가로서의 지위에 대해서 말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그게 필요할 것 같습니다만.

내가 보관하고 있는 어느 상자 속엔가 책이 한 권 들어 있는데, 아마도 나는 그걸 절대 못 끝내지 싶어요. <올리브의 결혼>이라는 제목으로 고양이들을 전면에 내세운 이야기책입니다. (p. 45) 엄청 많이 썼죠. 모두 곡을 붙인 건 아닙니다. 곡과 노랫말 때문에 내 머리가 너무나 복잡하죠. (p. 46)

그래도 암튼 머릿속엔 있다는 말이죠?

엄청 많이 들어 있죠. (p. 46)

상페가 작사, 작곡 하고 무대의상과 무대연출까지 한, 고양이들이 등장하는 코미디 뮤지컬이 개막되기를 기다려봐야 하려나 ㅎㅎㅎ

당신은 유쾌한 존재입니까? 유쾌하기보다는 위로가 불가능한 쪽입니까, 아니면 위로가 불가능하기보다는 유쾌한 쪽입니까?

내가 보기엔 유쾌한 쪽입니다. 어렸을 땐 늘 유쾌했어요.

여러 주변 상황에도 불구하고 말입니까?

다른 사람들 덕분에! 내가 몹시 좋아했던 사람들이 있고, 그들이 나의 삶을 구원해 줬죠. 그래요, 그 사람들은 유쾌한 사람들이었어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비록 이따금씩 비극적인 짓을 한다고 해도, 대체로 유쾌한 사람들입니다. (p. 96, 97)

상페가 말하는 유쾌함은 그저 밝다거나 가볍다거나 하는 것과는 좀 다른 성격의 것이다. 멜랑꼴리가 함께 하는 유쾌함이랄 수도 있는데... '웃픈'의 반대라고나 할까....

경쾌함은 어리석음과 정반대죠.

시대가 유머러스한 그림마저 사라지게 하고 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사실이에요!

그리고 보니 당신은 화석 같은 존재로군요.

솔직히 나도 몹시 불안합니다.

사실 프랑스엔 더 이상 유머러스한 삽화라는 장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있다해도 아주 드물고요. (p. 100, 101)

상페의 그림은 경쾌하고 유머러스 하다. 서양식 유머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편이지만, 상페가 사랑해마지않는 유머라는 게 무엇인지 조금은 알것 같다. 하지만 상페도 인정하듯이 시대가 많이 변했다. 장자크 상페는 1932년생이다. 그의 전성기와 지금은 달라도 정말 너무나 다르다.

 

드뷔시, 라벨, 사티... 이들이 당신의 3인방인가요?

나에게 제일 위대한 3인은 드뷔시, 라벨 듀크 엘링턴 이죠.

그리니가 난 클래식 음악을 두고 말하는 겁니다.

클래식 음악이다, 아니다 같은 구분은 없습니다.!

아, 그래요?

네, 없어요. 드뷔시는 클래식 음악이 아니라 그냥 음악입니다! 마찬가지로, 엘링턴과 라벨 사이엔 아무런 차별도 있을 수 없습니다. (p. 134)

상페는 음악을 구분하지 않는다 했지만, 사실 그가 좋아하는 음악의 분야는 특정적인 분야로 보였다. 클래식, 재즈, 샹송.

그의 그림엔 클랙식 연주장이자 클래식 악기들이 자주 등장한다. 피아노도 꼭 그랜드 피아노이다. 항상 스탠드 마이크에서 노래를 부르고 춤은 댄스홀에서 왈츠를 추는 것으로 보인다. 상페가 좋아하는 음악은 아마도 느낌이 찐~한 그런 류인것 같다. 모짜르트도 바흐도 그는 즐기지 않는다. 그의 음악적 감성은 프랑스식 유머 혹은 프랑스식 경쾌함 이라고나 할까... 1950~70년대의 벨 에포크 라고 할만한 그런 분위기의 곡들이라고나 할까...

혹시 최초로 뮤지션들을 그렸을 때를 기억하나요?

뮤지션들에 대한 그림이라고요?

아니면 음악에 대한 그림이라도 좋고......

내가 오래도록 보관하고 있었는데, 결국 분실했어요. 악기를 팔던 상점 앞을 고양이가 지나가는 그림이었죠. 내용이라곤 그게 전부였어요. (p. 153)

왜 다시 그려볼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궁금한데...

당신은 현실을 그대로 복사해서 그리기보다는 암시하는 편을 선호하나요?

네, 내 클라리넷들은 정확하지 않고, 내 자전거들은 굴러가지 못합니다! 나라고 그런 게 자랑스럽진 않지만, 어쨌거나 난 내가 할 수 있는 걸 할 뿐입니다. 그건 확실해요! (p. 161)

책의 뒷부분 1/3 정도는 음악과 관련한 상페의 삽화들로 채워져 있다. 아무런 멘트 없이 악기와 함께 그려진 사람들의 모습들이 담긴 그림을 보다보면 음악적 삶에 대한 희노애락이 느껴진다고 해야할까... 어린아이때부터 노년까지 평생을 음악과 함께 살아온 상페의 시간들이 느껴진다고 해야할까... 하여튼, 자신이 할 수 있는 걸 최선을 다해 한다는 말이 음악이 되어 깔려있는 듯 각양각색의 음악하는 사람들이 모두 편안해 보였다. 이 책을 통해 상페의 음악에 대한 열정을 알 수 있게 되긴 했지만 삽화 속 암시를 찾아내는 재미가 있는 상페의 그림책들이 훨씬 재밌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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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만나는 한국신화
이경덕 지음 / 원더박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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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별왕과 소별왕, 삼승할망과 저승할망, 성주신, 조왕신, 자청비, 바리공주, 강림...

익숙하지만 낯선 한국 신화의 주인공

이들이 품고 있는 이야기를 새롭게 만나다

 

 

저자가 책을 시작하며 언급하듯이 '신화' 라고 하면 대부분 '그리스로마신화'를 생각하지 않을까? 그리고 우리에겐 그런 신화가 없다고 못내 아쉬운 마음을 가져오지 않았을까? 그런데~! 우리에게도 신화가 없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에게도 있었다, 신화가. 부분적으로 전래동화 혹은 옛이야기 로 읽혀지던 것들이 알고보니 신화였다. 이제야 생각해보니 신화란 것이 원래 그랬다. 옛날부터 입에서 입으로 이야기로 전해오던 것이 신화가 아닌가? 그저 동화라고 얄팍하게 생각했던 나에게 첫장부터 깨우침을 주는 책이었다.

20세기에 한반도로 유입된 문화는 우리의 바람을 토대로 이루어진 자발적인 유입이라기보다는 강압적인 측면이 강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일제 문화와 서양 문화가 우리의 상상계에 침투해서 그 영역을 확장해 오는 사이에 우리 문화에서는 큰 변형이 발생했다. 예부터 문화의 교류와 변화에서 큰 역할을 하는 것이 이야기이다. 이야기는 상징을 만들어 내고 의미는 상징으로만 축적되고 발현된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상징을 모두 모아 놓은 것이 바로 문화다. 즉 그 지역에서 통용되는 상징의 총체가 바로 그 지역의 문화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문화는 우리의 신화를 토대로 의미를 축적해왔다는 말이 된다. 그러니까 우리가 누리며 사는 문화는 우리의 이야기, 즉 한국 신화로부터 유래한 것들이다. 이 책은 한국 신화를 새롭게 바라보자는 취지에서 시작되었다. 우리에게도 정신적 토대가 되는 신화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한 걸음 나아가 그것이 지닌 문화적 성격이 어떤 것인지 함께 생각하면 좋겠다는 취지였다. (p. 6~10 '시작하며' 中 발췌요약)

저자는 문화인류학자로서 사회와 문화를 신화를 통해 분석하는 것을 학문적으로 연구해본 사람이기에 저자가 들려주는 한국의 신화이야기들은 흥미로운 분석들이 많았다. 무엇보다 다른 나라의 특히 서양의 신화들과 비교해주는 부분들이 정말 의미있게 다가왔다. 국뽕스럽지 않으면서도 주체성과 자긍심을 갖게 해주는 점이 좋았다.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다. 모자란 것이 아니라 다양한 것이다. 문화에 굳이 순위를 매길 필요는 없는 것이다. 더구나 옛 이야기인 신화에 있어서는 더더욱.

한국에는 두 개의 창조 신화가 전해진다. 흥미롭게도 하나는 남쪽 끝인 제주도, 다른 하나는 북쪽 끝인 함경도에서 전해진다. 제주도의 창조신화는 <천지왕본풀이>에 들어 있다. 본풀이는 근본을 풀어낸다는 뜻으로 신화의 우리말이다. 두 신화에 따르면 태초에 하늘과 땅이 붙어 있었다. 이렇게 하늘과 땅이 붙어 있다는 신화는 그리스, 이집트, 남태평양 등 곳곳에서 발견된다. 하늘과 땅이 붙어 있다는 것은 구별이 없이 한 덩어리로 존재하고 있었음을 뜻한다. (p. 17)

그리스와 남태평양 신화의 특징은 갈등이다. 그러나 갈등이나 대립보다 조화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한국 신화는 좀 다르다. (p. 18)

신화는 대부분 세상의 창조부터 시작하기 마련이다. 한국에 신화가 없었다고 생각했던 이유 중 가장 큰 하나는 아마도 창세신화가 없다고 알았기 때문인것 같다. 우리의 대표적 신화인 '단군신화'에서는 세상을 창조하지는 않지 않은가? 하지만 이 책에서 다루는 신화에서 '단군신화'는 등장하지 않는다. 우리의 옛이야기 속에도 세상을 창조하는 신화가 있었고, 조선건국에 국한된 단군신화가 아니어도 전통적 가치를 품은 다른 신화들이 다양하게 있었다. 저자가 신화를 알려줄때면 소설처럼 술술 읽히고 그 신화를 해석해줄 때면 새로운 깨달음이 찾아오곤 했다.

<성경>의 <요한계시록>이나 북유럽 신화의 <신들의 황홍(라그나로크)>등의 불 심판, 또는 불에 의한 종말 이미지와 수명장자의 최후는 다르지 않다. 이처럼 세계 곳곳에는 불을 매개로 한 종말과 심판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는 평화로운 질서에 대한 인류의 갈망이며 간절한 요청이다. (p. 24)

거인에 의한 창조는 다양한 신화에서 관찰된다. 북유럽 신황서는 추운 지방답게 눈과 얼음 속에서 태어난 이미르 라는 거인이 등장한다. 중국에서도 혼돈에서 태어난 반고라는 거인이 죽고 난 후 그의 머리와 팔다리는 산이 되고 피와 눈물은 강과 하천이 되었으며 두 눈은 해와 달, 털은 풀과 나무, 입김은 비바람, 목소리는 천둥, 눈빛은 번개와 벼락이 되었다고 전한다. (p. 37)

그리스로마신화에도 다양한 거인들이 등장한다. 저자는 한국의 신화만 이야기하지 않는다. 동서양의 신화를 골고루 섭렵하고 있는 학자이기에 알려줄 수 있는 식견들을 발견할 때마다 참 반가웠다.

그 어느 신화에도 세상을 놓고 신들이 내기를 벌이는 예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대부분의 신화에서는 신들의 전쟁이 발생한다. 전쟁과 다툼을 통해서 이승을 차지할 신을 결정한다. 그리고 그 전쟁과 다툼을 통해서 종교만큼 또렷하지는 않지만 선과 악의 경계가 생겨난다. 그런데 한국 신화에서는 전쟁과 다툼 대신에 내기가 벌어지고, 그 내기의 끝은 어김없이 꽃 피우기 내기로 흐른다. 꽃 피우기 내기는 창조 신화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과연 꽃을 피운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p. 30)

인류가 노래에서 태어난 사례는 세계 어느 신화에도 없다. 하늘을 향해 부르는 아름다운노래, 그것이 한반도에서 태어난 사람들의 기원이다. 금쟁반과 은쟁반은 남녀 차별이 아니라 모두 귀한 것임을 의미한다. (p. 39)

집단의 가장 큰 미덕 가운데 하나는 환대다. 환대는 찾아온 자를 반갑게 맞이하는 것이다. 고대 여러 지역에서는 누군가 찾아오면 상대를 가리지 않고, 이익을 따지지 않고 환대해야 했다. 지나가는 나그네가 유숙을 청하면 재워주는 게 마땅한 일이었다. (p. 85)

한국의 신화는 읽으면 읽을수록 대부분 참 평화롭다는 느낌이 들었다. 대부분의 신화는 전쟁사이기 마련인데 말이다. 그리스신들도 전쟁을 치뤘고 북유럽신들도 전쟁이 결말에 다다르는 가장 큰 사건이었다. 그런데 한국의 신화에는 전쟁이 없다. 거창하지 않은 대부분의 이야기들은 세계관이 좁아서 그런거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쟁취보다는 평화를 숭상했기에 그랬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세계 모든 신화에서 '환대'는 공통적이라는 것도 여러 생각을 하게 했다. 세상은 함께 어울려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세계 공통의 가장 큰 가치였던 것일까. 고대까지 거슬러가지 않더라도 '사랑방'의 존재는 그런 환대의 문화가 오래도록 이어졌음을 새삼 깨닫게 한다.

한국 신화에서 다른 신화에 없는 꽃 피우기 내기나 꽃밭이 매번 등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꽃이 만발한 언덕처럼 풍요롭고 아름다운 삶을 살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p. 112)

힘으로 상대를 굴복시키는 것은 오히려 어렵지 않다. 그러나 힘으로 누군가를 굴복시킨다면 이후로도 계속 그 힘의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그것은 함께 공존하고 더불어 살기를 꿈꾸는 삼승할망의 세계관과 다른 모습이다. (p. 128)

성경에 나오는 모세나 그리스 신화의 오이디푸스처럼 버려진 아이가 세상을 바꾼다. 나일강에 버려진 모세는 훗날 노예 상태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해 고향으로 돌아가게 했고, 오이디푸스는 괴물 스핑크스를 몰아내고 테배의 왕이 되었다. (p. 140)

바리공주의 행동은 '이시시의 성인'이라고 불리는 성 프란체스코의 기도를 연상케 한다. (p. 149)

레테강을 비롯하여 그리스신화에는 이승과 저승 사이에 여러 강이 있다. 그 강들을 건네주는 것은 카론이라는 뱃사공으로 뱃삯을 주지 않으면 건네주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이 죽으면 뱃삯으로 쓰라는 의미로 이빨 사이에 동전을 꽂아 주었다. 이런 풍습은 동서양이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에서도 저승 갈때 쓰라며 관에 노잣돈이라는 것을 넣어 준다. 이런 관념은 저승에서의 생활이 이승과 다르지 않고 그대로 적용된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p. 161)

한국신화는 다른 나라의 신화와 다르기도 하고 같기도 하다. 소소하지만 조화로운 세상을 꿈꾸는 한국신화에도 버려진 아이가 큰 일을 해낸다. 동화로 읽던 바리데기 이야기가 신화로 읽으니 또 다르게 다가왔다. 세계에 그토록 다양한 환경에서 그토록 다르게 살아온 사람들임에도 공통의 문화를 발견할 때면 사람은 참 다 비슷하구나 싶기도 하다. 인류는 굉장히 다양한 것 같지만 사실 모두 같은 '종' 이다.

처용에 대해서는 여러 주장이 있다. 가장 그럴듯한 것은 처용의 용모와 행태에서 볼 때 무슬림이라는 것이다. 무슬림들이 신라를 찾아와 교역했다는 증거가 여러 문헌에 남아 있고 생긴 모양이 영락없이 무슬림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p. 225)

신라의 문화에서 외구의 흔적을 찾을 수 있듯이 아라비아의 고대 문헌들에도 신라에 대한 언급들이 있다고 한다. 이럴때면 역사는 참 신비롭게 다가온다. 신화가 곧 역사는 아니지만 신화가 상징하는 의미에는 분명 역사적 배경이 깃들이 있다.

한국 신화에는 집의 신들, 즉 부엌을 지키는 조왕신이나 문을 지키는 문신의 도움을 받는 이야기가 많다. (p. 236)

그리스와 로마의 신화에 화로와 불의 신인 헤스티아나 베스타가 있으나 여러 문의 신이나 화장실의 신은 보이지 않는다. 이는 한국 신화가 생활과 매우 밀접하다는 것을 알려 준다. (p. 273)

미다스는 그나마 원래의 상태로 돌아갔다는 점에서 다행이다. 시빌레는 아폴론으로부터 한 주먹의 모래알만큼 긴 수명을 얻었다. 그러나 결국 그의 가장 간절한 소망은 죽는 것이었다고 한다. 동방삭이나 미다스, 시빌레와 달리 소사만에 대한 비극적 이야기는 전해지는 바가 없다. 소사만은 상대가 굴러들어 온 해골일지라도 진심을 다해 정성껏 상대했기 때문이 아닐까? (p. 290)

많음을 의미하는 숫자는 문화마다 다르다. 가까운 일본이나 중국은 8을 쓰고 문화권에 따라 아라비아 숫자의 마지막인 9를 쓰기도 한다. 한국 신화에서는 7이 많음을 의미하는 숫자다. (p. 296)

염라대왕의 출신지는 인도다. 인도 신화에서 죽음의 신이었던 야마가 중국으로 건너와 염라왕이 되었다. (p. 317)

'신과 함께' 라는 만화와 영화가 인기를 끌면서 조왕신 과 성주신은 많이 알려진 우리네 조상신이 되었다. 그런데 그 밖에 집안 생활처 곳곳의 신들이 제각기 위치하고 있었다. 그리스신화에서는 가정과 관련된 신이라고 할 수 있는 헤스티아 나 헤라가 그리 큰역할을 맡고 있는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그리스신화를 거의 그대로 흡수한 로마신화에서 살아남은 로마 고유의 신들은 가정의 신 라레스, 찬장의 신 페나테스, 경계의 신 테르미누스, 문의 신 야누스가 있는데, 로마의 신들이 우리네 조왕신 성주신 문신들과 비슷한 역할을 맡은 것 같아서 흥미로웠다. 가정의 신은 비슷해 보이면서도 문의 신은 크게 달라서 비슷한듯 다른 신화의 비교가 문화의 비교로 자연스레 연결되어 새삼 역사가 더 재미있게 다가오기도 했다.

장수에 관련된 신화나 문화마다 다른 숫자선호도도 재미있고 신화에서 서로서로 영향을 받아 신들이 오고간 흔적들이 보여지는 부분도 재미있었다. 이야기란 역시 참 재미있는 것이다.

김치원님의 아내도 그렇고 강림의 본부인도 그렇고, 궁지에 몰린 남편을 다독이고 해결 방안을 찾는 것은 여자들이다. 이럴 때 연상되는 것은 강인하 생명력을 가진 대지의 여신이다. 사회문화적으로 한국 신화에서 여성들이 크게 활약하는 것은 당시 사회를 주도했던 것이 남성들이기 때문이다. 남성들이 주도하는 사회를 바꾸는 것은 남자 스스로 할 수없다. 그것은 상대가 되는 여성의 몫이다. 동화의 주인공이 대체로 여성인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p. 320)

그러고보니 '엣날 엣적에~' 하며 이야기를 들려주던 이들은 대부분 할머니들이었다. 할아버지가 손주손녀를 앉혀놓고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었다는 소리를 들은 기억이 없다.;;; 우리 문화에서 이야기의 전승자는 대부분 여성이었다. 그렇게 옛이야기로나마 자신들의 바램을 후대에게 전했던 마음이 애잔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하지만 한국신화에서 여성들의 역할이 대부분 영웅에 가깝다는 점에서 여성의 주체성이 진작부터 자각되었구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강림의 신화는 삶과 죽음이 하나로 엮여 있음을 보여 준다. 이승과 저승이 가로막혀 있어 서로 왕래하지 못하는 일본이나 서구의 신화들과 달리 강림의 신화에서 보듯 한국 신화는 이승과 저승이 순환적인 구조를 가진다. 삶과 죽음이 다르지 않고 동전의 앞뒷면과 같다는 인식이 오랜 세월 우리에게 있었다. (p. 333)

익숙한 신화들에서 접할 수 있는 저승세계는 그저 죽음의 세계이다. 때론 저승은 거의 지옥에 가깝게 표현되기도 한다. 하지만 한국신화에서 저승엔 꽅밫이 존재하고 부활을 가능하게 하는 꽃들이 존재한다. 종교와 무관하게 윤회와도 상관없이 이승과 저승은 단절된 세상이 아니라 오고갈 수 있는 그렇게 생활과 연결된 곳으로 표현된다. 한국신화에 존재하는 상상의 세계엔 같은듯 다른 한국신화만의 고유한 문화가 있었다. 대별왕, 소별왕, 오늘이, 가믄장아기, 삼승할망, 바리데기, 자청비, 철현도령, 황우양, 소사만, 강림 등 대부분 낯설게 느껴지는 다양한 인물들이 보여주는 한국신화의 세계가 궁금하다면 이 책을 읽어볼 것을 권한다. 그리고 우리 신화의 소중함과 가치를 느낄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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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하고도 달콤한 성차별
다시 로크먼 지음, 정지호 옮김 / 푸른숲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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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모든 걸 다 잘해야 하는 여자와

한 가지만 잘해도 되는 남자의 탄생

 

 

All the Rage 라는 원제는 모든 분노 라고 번역된다. Rage 는 분노 중에서도 격렬한 분노 라고 한다. 저자가 그토록 거센 분노를 일으켰던 이유는?

육아 때문이다.

이 책은 맞벌이 부부 중 여성의 입장에서 저자의 경험담과 연구가 결합된 육아전투기라고 볼 수 있다.

대부분의 성차별에 대한 논의는 여성과 남성이 경험하는 사회적 인정 차이를 주로 쟁점으로 삼았다면, 이 책은 부부 모두 사회생활을 하는 맞벌이 부부 사이에서 일어나는 가사와 육아의 부담에 대해 모성신화에 가려졌던 아빠들의 무책임을 다루고 있다. 가사와 육아를 전담하는 슈퍼엄마들에게 이루어지는 성차별은 은밀하게 이루어져서 분노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육아라는 달콤함을 은근히 포함하고 있기도 하다. 따라서 가정내의 성차별 문제는 달리보면 아빠들이 행복을 놓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차별로 피해를 보는 것은 여성만이 아니었다.

둘 다 똑같이 일하는데, 왜 집에서는 평등한 관계를 맺지 못할까? 도무지 납득할 수 없었다. (p. 14)

이 책은 일관되게 맞벌이 부부의 여성 입장에서 쓰여진 책이다. 전업주부 입장에서 판단하기엔 애매한 부분들이 있지만, 맞벌이 하는 저자의 고민에서 출발한 책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구조적인 문제죠" 뉴옥주립대학교의 사회학자이자 가정 내 노동 분담을 연구하는 베로니카 티치너가 전화로 이런 말을 했다. "일터가 변하지 않았잖아요. 아직도 직장은 모든 직원들이 집에 돌봐주는 아내가 있다고 가정하죠. 모두가 이상적인 일꾼 역할을 해야 하고 아픈 아이를 돌보기 위해 자리를 비우면 안 되는 거죠. 만약 어느 한 집이 이런 균형을 못 잡아서 힘들어진다면 그건 개인 문제에요. 모든 가정이 똑같은 문제를 가진다면? 그건 사회문제고요" (p. 28)

성차별은 크게 보면 분명 구조적인 문제다. 산업사회의 발달은 밖에서 돈을 벌어오는 가장인 아빠와 집에서 살림과 육아를 전담하는 엄마라는 기본틀을 바탕으로 이루어져 왔다.하지만 성평등 교육을 받아온 젊은 세대에게 더이상 이런 기본틀은 이해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82년생 김지영' 이라는 소설이 히트친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구조적인 문제이기만 한 것일까?

"페미니즘 운동이 여전히 미완에 머물러 있는 이유는 '개인 영역'을 들여다 보는 일이 정치권을 비난하는 일보다 훨씬 위협적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 책은 궁극적으로 개인 영역을 자세히 관찰한다. (p. 32)

사회구조적인 문제는 여전히 개선시켜야 할 부분이 많지만 당장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없다. 그렇다고 마냥 나아지기를 기다리고 있을 수만도 없다. 개인적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이 있을 것이다. 저자는 그 개인적인 부분에 관심을 두고 있다.

도덕적 세계의 궤적은 길지만 결국 정의를 향해 구부러진다. 지금의 여자들은 어머니와 어머니의 어머니 세대 보다는 좋은 세상을 누리고 있다. 결혼한 여자는 남편의 소유로 간주되며 법적인 권리가 전혀 없었는데, 이게 아주 먼 옛날 얘기가 아니다. 1980년에야 미국 통계국은 공식적으로 모든 남편을 '집안의 가장' 이라 부르는 것을 중단했다. (p. 36, 37)

모니크와 주변 친구들은 내 친구들과 다를 바 없이 성 평등이라는 미사여구를 들으며 자랐다. 여자들은 남자들이 하는 일은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고, 우리는 교육에서 남녀평등을 보장하는 수정 법안 제9조를 쟁취했고 대학원을 나왔다. 그러나 이런 미사여구는 딱 여기에서 멈추었고, 이런 명백하고 당연한 일은 더 이상 언급되지 않았다. 현재 모니크는 변호사이지만, 모니크의 남편은 주양육자가 아니다. (p. 47)

2017년 OECD 보고서는 우리 시대 가장 중요한 성 평등 문제로 가정에서 나타나는 남녀의 불공평한 무임 노동 분담을 꼽았다. (p. 50)

역사가 기록된 이후로 일괄적으로 여성은 늘 남성의 재산이었다. 급격한 사회변화 속에 이념과 교육은 성평등 개념에 발 맞추었으나 현실적용은 아직 갈길이 멀어 보인다. 그 간극에서 당황하는 것은 대부분 갓 아이를 낳은 직장여성들이다. 그동안 평등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했을지라도 아이를 낳는 순간 그 생각은 무너진다. 궤적이 길더라도 정의를 향해 구부러진다는 격언을 믿어도 될까?

낮게 책정된 초과근무 수당은 여성이 진지학 전문 직업 세계에 뛰어들무렵 정규 임금보다 높게 책정되었습니다. 이런 현상이 일어났을 대 인상적인 것은 이상적인 직원이라는 정의가 여성이 효과적으로 경쟁할 수 없는 단일 요소, 즉 시간에 의해 바뀌었다는 사실이죠. (p. 69)

자녀가 없는 여성은 자녀가 있는 여성에 비해 면접기회를 얻을 가능성이 2.1배 더 높았다. 반대로 자녀가 있는 남성에게는 자녀가 없는 남성보다 면접기회가 조금 더 주어졌다. (p. 70)

사회적 상황은 성 이데올로기를 대체할 수 있다. (p. 75) 부모가 된 부부는 평등을 예상했지만 불평등이 기본적으로 존재하는 관계에서 인지부조화를 최소화하기 위해 결국 덜 평등주의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다. (p. 76)

여성이 직업사회에 진출하기 시작했을 때 임금체계에도 변화가 왔다. 직장은 여전히 성실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보이는, 아이가 있는 여성직원을 원하지 않는다. 그런데 왜 아이 문제는 직장여성 전담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엄마가 아니라 아빠가 가도 되는데? 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사회다. 아직은. 그렇게 아빠들은 남성들은 가정내의 불평등 문제에 둔감해진다. 다들 그렇게 살잖아~라면서.

동물의 왕국에서 가장 헌신적인 수컷은 포유류가 아니라, 젖을 먹이거나 새끼를 품지 않는 물고기와 조류이다. 이어서 양서류와 곤충이 2위를 차지하지만, 인간은 이런 동물과는 결혼할 일이 없다. (p. 109)

수렵과 채집을 통해 인간은 진화 역사의 약 90퍼센트에 해당하는 기간을 존속해왔다. (p. 113)

"핵심만 얘기할게요. 인간 행동 중에서 타고난 건 거의 없습니다.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행동은 의식적, 무의식적 경험으로 형성되죠. 성별 노동 분담이 '선천적'이라는 주장은 권력 구조를 유지하기 위한 편리한 방편이에요" (p. 122)

저자는 다양한 과학적 연구결과를 토대로 주장한다. '우리는 그렇게 타고나지 않았다' 라고.

포유류라는 어감이 주는 포근함따위 포유류에게 얼마나 없던지;;; 진화의 역사 대부분은 지금의 성차별적 인식과 분명 다른 방식이었지 않을까? 우리가 아는 인간의 역사는 진화의 시간을 따져봤을때 그리 길지 않다. 그렇다면 오랜세월 유지되어온 인간만의 본능은 무엇일까? 정말 남성과 여성이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평등 본질주의적 관점은 (남자는 이런 역할에 맞게 타고났고, 여자는 저런 역할에 맞게 타고났다는) 남녀의 본질적 본능에 대한 믿음에 (성차별은 옳지 않다는) 평등의 가치를 결합시켰다. (p. 165)

"젠더 시스템은 사회경제적 변화와 개인의 저항이라는 도전이 이 시스템에 매일 매일 장기적이고 꾸준히 쌓이는 경우에만 허물어진다" (p. 177)

남녀의 역할이 구분된 채 태어난다는 것 자체가 이미 평등하지 않은 생각이었다. 저자는 고정적 성역할에 대해 다양한 의문을 제기한다. '학습'을 통한 습득에 다양한 문제를 제기한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라도 저항을 시작해 볼것을 권한다.

소위 도덕적 모성은 엄마로서 여성에게 도덕적 권위를 부여하지만, 정치적 또는 경제적 권위는 주지 않는다는 이데올로기다. 이는 또한 자녀 중심 규범이어서 여자들에게 자녀를 먼저 생각하고 가정에 머무르라고 강요한다. 도덕적 모성은 실로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엄마라는 직업에 윤리적 의무를 부여했고, 이 의무는 이후에도 아주 미미하게 약해졌다. 그리고 남자에게는 똑같은 의무가 권장되지 않았다. (p. 195)

이른바 여성희생숭배는 부득이하게 냉전 중에 강화되었다. 당시 페미니즘의 목표를 헐뜯던 서구의 사회집단은 반공 정신과 같은 노선을 걸었다. (p. 210)

공교롭게도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어가던 시기는 냉전시대였다. 평등을 요구하는 주장은 수시로 빨갱이로 치부되며 묵살되곤 했다. 여성이 직장을 다니고 싶으면 가사도 육아도 알아서 잘 전담해야 했다. 여성의 지위향상과 육아정책들의 요구는 당시 받아들여질 수 없는채 지금까지 그대로 굳어져 온 셈이다. 남성들의 가치는 사회적 성과로 평가받았고 여성들의 가치에서 사회적 성과는 개인적 욕심에 불과할 따름이었다. 사회는 여성들의 노동력을 싸게 이용하면서 끊임없이 '좋은 엄마' 이미지를 주입시켰다. 저자는 암묵적 동의로 여성들이 침해받아왔다고 말한다.

엄마의 역할을 찬양하고 떠벌리면서 실제로 말도 안 되는 기준을 전파하는 문화에서 사는 여자가 느긋해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 여자들은 더 이상 일을 한다고 매도당하지 않는다. 대신 세상이 다 보도록 애들 앞에 바짝 엎드린다. 그리고 배우자에게 우리와 동참하자고 손짓한다. 하지만 남자들은 그렇게 열심히 아빠 노릇을 하는 데 는 전혀 관심이 없다. (p. 248)

성별 일탈 중립화란, 사람들이 남녀 성별과 관련된 비전형적인 행위를 상쇄하기 위해 성별과 관련된 전형적 행동을 과장하려고 하는 것이다. (p. 260)

엄마가 가장 잘 안다는 통념은 계급을 막론하고 부모를 지배하는 철학이지만, 가정 내 성 평등이 뿌리내리려면 이제는 사라져야 한다. (p. 266)

"어떤 사람들은 이론적으로는 남자와 여자가 동등해야 한다고 믿을지 몰라도, 여전히 엄마는 자녀의 인생에서 아빠가 따라갈 수 없는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에는 많은 믿음이 동반된다. 가령 엄마에게는 육아에 특별한 능력이 있다는 믿음 같은 것이다. 그리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 여자들은 양육이 자기들 책임이라고 믿는다. 근본적으로 양육을 배우자와 나누는 책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p. 269)

종종거리는 엄마, 느긋한 아빠 이 모습은 사실 맞벌이 부부 가정이 아니어도 많은 가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지 않을까 싶다. 성평등을 배웠지만 현실과의 괴리감이 불러일으키는 인지부조화를 상쇄시키기 위해 전형적인 태도를 고수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 나혼자 알아서 하는 것보다 누군가와 함께 무엇을 한다는 것이 더 어려운 법이다. 공동육아는 말이 좋지 현실적으로 끊임없이 충돌거리를 만들곤 한다. 하지만 저자는 주양육자에 성별은 따로 없다며 육아에서 아빠들이 얻어갈 것들이 많음을 강조한다.

페미니즘의 과업은 좀 더 평등한 남성성을 발전시키는 데 신경을 거의 쓰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미완성이라고 한다. 이에 대한 한 가지 해결책은 아빠라는 정체성을 전적으로 받아들이도록 남자들을 격려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p. 309)

아버지 역할을 상대적으로 인생에서 중요한 것으로 보지 않는 태도는 온갖 불행을 낳는다. 해법은 아마도 교육일 것이다. (p. 316)

저자는 남자들이 '진짜 사나이' 에서 '좋은 남자' 로 거듭나기를 응원한다. 그래야 '행복한 아빠'가 되는 길이 열린다. 행복은 사회적 성공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생식에 관한 전통적인 남성 중심적 관점은 아이 낳는 일을 혜택이 아닌 희생으로 본다. 동물로서 우리 여자의 존재 이유가 오로지 출산이고 우리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전해주는 것이라면, 아이를 잉태하는 것은 여자에게 주어진 진화적 이점이기도 하다. 여자가 생식의 수단을 통제하는 것이다. (p. 328)

직장과 가정 양쪽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볼 때 여자는 좀 더 남자처럼 되었고, 남자는 좀 더 남자처럼 되었으며 대신 더 여자처럼 되지는 않았고, 여자는 여자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했다. (p. 341)

저자는 그동안의 다양한 연구분야에서 암컷 유기체를 집중 조명하는 연구가 대체로 무시되고 관심을 받지 못했음을 안타까워 한다. 다른 책에서 읽었는데, 여성호르몬 '에스트로겐' 의 연구에서도 암컷생쥐가 아닌 수컷생쥐를 이용해 실험해왔다는 사실에서 그저 헛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여성이 남성화 하는 것이 성평등이라면 온 세상에 남성만 넘쳐날 것이다. 그러면 우스갯소리로 애는 누가 낳는가?

이제는 적응을 멈출 때가 왔다. 진부한 잘못된 인식과 편안히 사느니 차라리 명백한 진실을 안고 불편하게 사는 게 낫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가 왔다. 우리의 불만을 부인한 결과 변화는 오지 않았다. 우리가 모든 성차별주의를 노골적으로 적대시하기 시작해야 저항이 생기고 불평등한 가정을 정당화하는 일을 종식시킬 수 있다. (p. 365)

미국인이 저자인 책을 읽다보면 종종 놀라게 되는 것이 미국사회가 너무나 보수적인 사회라는 것이다. 때론 조선사회보다 더 억압적인 사회로 보일 정도였다. 서양여자들이라고 다 떵떵거리며 사는 것도 아니었구나 싶고;;; 여하튼, 저자가 이런 책을 낼 수 있었던 것도 결국은 남편을 잘 만난 덕이 컸다. 대화로 서로의 문제를 풀어가며 서로의 꿈을 응원할 수 있는 동반자를 만나 평생을 함께 한다는 것은 정말이지 쉬운 일이 아니다... 성평등 문제 관련해서 사회구조적 변화도 필요하고 교육도 필요하고 각자의 가정에서 개인적 저항도 필요하다는 저자의 의견들에 수긍이 가는 면들이 많긴 했지만, 맞벌이 부부가 아닌 경우의 가정내 불평등을 어떻게 설명할지 질문들이 남기도 한다. 무엇보다 표지 비닐봉지는 왜 인가;;; 내용상 아기띠나 유모차에 가방들이 주렁주렁 달린 뒷모습 같은 것들이 더 어울렸을 것 같은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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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의 종교노트 : 기독교 편 - 과학자의 시선으로 본 기독교 역사 이야기
곽영직 지음 / Mid(엠아이디)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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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문명과 현대사회의 뿌리가 된 기독교

'과학자의 눈'으로 정리한 2,000년 기독교의 역사

 

세계사 라고 하는 것이 결국 서양의 역사와 동일어 임을 역사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곤 한다. 그리고 서양사는 곧 기독교의 역사와 동일어 임을 더불어 느끼곤 한다. 그래서 교회 발치에도 가 본적이 없는 나로서는 항상 헤매게 되는 부분이 있다. 이런저런 종교의 역사 관련 책을 읽어서 겨우겨우 숭숭 뚫려 있던 커다란 구멍을 메꾸긴 했지만 여전히 종교사는 어렵기만 하다.

학교 다닐때 시험기간이 되면 유독 인기가 높아지는 학생이 있었다. 평소 인사만 하던 친구인데도 슬쩍슬쩍 눈치를 보며 친한척 말을 건내게 되는 친구, 바로 노트필기를 잘 하는 학생이었다. 공부를 잘하건 못하건을 떠나 깔끔한 글씨체로 차곡차곡 꼼꼼하게 정리해 늫은 친구의 노트를 보면 탐이나서 어떻게 한번 빌려서 복사를 해볼까 궁리를 하곤 했다. 복사를 해놓고도 결국 공부를 안해서 시험성적은 그냥그랬지만 친구의 노트를 복사한 순간만큼은 시험을 이미 잘 본것처럼 마냥 기분이 좋았더랬다. 요즘 학생들은 필기를 잘 안한다고 하던데 그럼 그런 노트에 대한 추억이 없으려나;;;

여하튼, 그래서! 이 책은 세계사 수업을 듣는다고 생각했을때 잘 정리된 친구의 노트를 빌려 본 기분이었다. 기독교의 역사 정리 그 자체! ㅎㅎ

저자는 물리학 전공 교수이지만 평소 역사와 철학에 관심을 많았던 터라 기독교의 역사에 대해서도 확장된 호기심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기독교의 역사에 대해 정리해봐야 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 이후 성경을 바탕으로 주제별 연대별 기록을 시작했는데 스스로를 위해 차곡차곡 쌓아왔던 글들이 책으로 나오게 될 것은 예상하지 못했었다고 한다. 과학자이니만큼 주관적이 아니라 최대한 객관적으로 쓴 것이 표가 난다. '철저하게 과학글을 쓰는 방법으로 기독교 역사 이야기를 정리해 보기로 했다' 는 저자의 다짐이 고스란히 드러나 종교의 유무와 관련없이 누가 읽어도 불편한 구석은 딱히 없으리라 생각된다. 이 책의 장점이다.

크게는 연대순이고 작게는 주제별인 이 책은 총 14 챕터로 '사도시대' 라는 전도의 시작점부터 20세기 마지막 공의회를 포함한 현재까지 기독교의 역사 전체를 아우르고 있다 매 챕터 마다 '들어가며' 라는 글을 통해 더 간단한 요약정리를 미리 읽고 본내용을 시작할 수 있게 해주는 점도 좋았다.

기독교의 역사는 그야말로 엄청나게 복잡한 정치사와 철학사의 혼합을 보는 것만 같았다. 교리 교파가 너무나 다양했고 종교와 얽힌 권력관계도 늘 복잡했는데 그러한 배경에는 성경의 열린 해석들이 있었고 그문제는 여전히 다양한 교회를 양산하는 바탕이 되고 있었다. 하지만 저자는 그러한 사건들에 대해 가치판단을 내리지 않는다. 그저 당시의 종교적 상황을 핵심만 추려서 간략하게 전달해 주려 한다. 그런 정리들을 읽다보면 흐름이 눈에 들어온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모든 사건들은 인과관계가 있기 마련이다. 앞에서 벌어진 일로 인해 뒤에 벌어질 일들이 이해가 되고 그렇게 기독교의 흐름을 읽다보면 세계사의 맥도 대충 잡히는 듯 하다.

평소 책을 읽을 때 중요하게 여겨지는 문장에 혹은 인상깊은 문장에 포스트잇을 붙이곤 하는데 이 책엔 그야말로 빼곡하게 포스트잇을 붙였다. 알아두면 좋을 정보들이 많아서였다. 책을 읽고 글로 정리할 때면 그런 포스트잇 붙은 문장들 중에서도 더 문장들을 골라 추려내 보곤 했는데, 이 책처럼 객관적으로 잘 정리된 내용들을 또 요약하기란 내게 힘에 부치는 일이다. 그저 유익하게 잘 읽었고, 앞으로도 서양사를 읽을 때 가끔 들춰보게 되겠구나 라고 생각하며 비좁은 책장이나마 기꺼이 한 자리 마련하여 잘 꽂아둘뿐.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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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이야기 2 - 진보 혹은 퇴보의 시대 일본인 이야기 2
김시덕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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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 시대는 진보의 시대였는가,퇴보의 시대였는가

이 책은 역사책이다. 그리고 시리즈다. 역사시리즈라서 딱히 순서대로 읽을 필요까지는 없지만, 순서대로 읽는 것이 정리에는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아직 5권 전권이 나오진 않았다.

1권을 읽고 홀딱 반했던 터라 2권을 무척 기다렸더랬다. 1권에서 다룬 16세기를 전후한 일본에 대한 내용들은 그동안 나의 무지함을 일깨워주었고 2권에선 또 어떤 새로운 깨우침을 줄지 무척 기대했다. 2권은 17세기를 전후한 시대 즉, '에도막부'시기에 대한 내용이다.

처음에 <일본인 이야기>시리즈를 다섯 권으로 구상했을 때, 저는 일본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단순히 시간 순서대로 다루지 않고, 각 권마다 뚜렷한 포인트를 잡아 일본 사회의 특징을 설명하는 방식을 택하기로 했습니다. 제1권의 포인트 혹은 쟁점은 카톨릭과 조선이었습니다. 이번 제2권의 포인트는 농민의 일생, 그리고 그들을 치료해준 의료·의학입니다. (p. 4 '들어가며' 中)

역사는 이름난 몇명을 기록할 뿐이지만 그 역사를 살아낸 대다수의 사람들은 '농민'들이었다. 역사를 읽어나가는 방식을 크게, 굵직한 사건들과 위인들로 역사의 개요를 정리할 수 있는 것과 변한듯 변하지 않은듯 일반 대다수 사람들의 생활을 살펴보는 것으로 나눈다면 대부분의 역사는 첫번째 방식으로 읽혀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일반 독자인 우리가 역사를 가까이 느낄 수 있는 방식은 두번째 가 아닐까? 백성의 대다수를 차지했던 농민들의 생활을 살펴보는 2권을 시작하며 저자는 이 책의 제목을 그래서 일본이야기 가 아니라 일본인이야기 라고 정했다고 말한다. 그렇게 농민의 삶을 중심에 두었을때 에도시대를 진보로 볼지 퇴보로 볼지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결론 스포를 좀 미리 하자면, 당연할지도 모르겠지만 농민들의 삶은 고통스러웠다.

지금부터 제가 이 책에서 말씀드리려는 내용의 관점은 앞에서 소개한 두 가지 입장과 모두 다릅니다. 저는 에도 시대 일본이 16세기의 센고쿠시대와 비교해서 전체적으로 퇴보했다고 생각합니다. (p. 15)

센고쿠 시대에 유럽과 동시대적으로 교류했던 일본은 자기 집안과 지배층의 정치적 이익을 지키기 위해 국가의 발전을 정지시키기로 한 두쿠가와 이에야스의 결정에 따라 갑자기 유럽과 단절했습니다. 그 결과, 일본인들은 유럽 여러 나라에서 일어났던 혁신을 유럽인들에게 직접 배우지 못하고, 네덜란드어로 집필하거나 번역한 책들을 통해서만 간접적으로 접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사정이 이러하므로 에도 시대 일본의 네덜란드학, 즉 난학은 진보가 아니라 퇴보였다고 보아야 합니다. (p. 15)

일본의 에도시대는 같은 시기의 유럽을 중심으로 한 전 세계의 움직임과 비교했을 때 동시대성이라는 측면에서 분명히 퇴보였습니다. 조선과 대청제국, 동남아시아 국가들과만 비교해서 에도시대 일본이 성취를, 특히 난학의 성취를 과대평가하는 관점은 너무 좁은 세계관입니다. 이런 식의 과대평가는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 사회의 지적인 한계가 되었으며, 이 한계를 뛰어넘지 못해서 일본은 서방 선진국과 같은 국가가 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에도 시대 일본의 퇴보와 진보를 같은 시기 유럽의 상황과 비교하고, 유럽과의 접촉 정도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p. 18, 19)

이 책은 두괄식인건가 ㅎㅎ 초반에 저자의 주장은 대부분 일찌감치 드러난다. 이 책의 부제도 '진보 혹은 퇴보의 시대'인만큼 주제의식을 미리 분명히 한 것일수도 있는데, 초반부터 진보와 퇴보의 판단을 하는 것을 보면서 나는 좀 다른 생각이 들기도 했다. 역사는 꼭 진보해야 하는가? 퇴보가 나쁘기만 한가? 진보냐 퇴보냐 식의 이분법적 관점에서 보면 편리한 디지털 시대에 수고스러운 아날로그적 활동을 하려는 사람들은 퇴행한 것인가? 역사에 방향이 있다면 나는 직선이 아니라 나선형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퇴보한 것 같은 순간에도 시간이 앞으로 흘러가듯 역사도 앞으로 흘러가고 이러튼저러튼 인간들은 그 속에서 배우게 된다. 어떤 식으로든 더 나은 방향을 늘 꿈꾼다. 그렇다면 전체적으로 항상 진보가 아닐런지... 인간은 항상 어딘가로 한발짝은 내딛고 있지 않은가. 쇄국은 항상 시대를 역행하는 것으로 판단되지만 자세히 보면 나름의 이유가 다 있기 마련이다. 그 이유의 필연성을 시대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역사를 읽는 이유가 아닐런지... 여하튼,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더구나 서방세계와 비교한다면 에도시대 쇄국이후의 일본은 정체이자 퇴보라고 부를 수 있긴 하다.

에도시대에 관해 논할 때 3대 도시의 경제적 융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최근 한국에서는 조선 시대를 미화하는 경향이 부쩍 늘어났는데, 일본에서도 마찬가지로 에도시대를 미화하는 경향이 수십년간 이어지고 있습니다. 아직 농촌 거주 인구가 전체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에도시대, 이 시대에 대도시가 아닌 소도시와 농촌 지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지배층이 초래한 인재와 지진·냉해 등의 자연재해 사이에 낀 일본의 피지배층은 살아남기 위해, 나아가서는 잘살기 위해 개인으로, 또는 가족 단위로 노력했습니다. 난학의 핵심은 사람들의 병을 치료하는 난의학이었습니다. 네덜란드 의학, 즉 난의학은 한계가 뚜렷했습니다. (p. 21, 22)

1권에서도 느꼈지만, 2권에서도 저자는 용감하게?! 사견을 많이 피력하고 있었다. 특히나 에도시대와 겹쳐지는 조선시대에 대해서는 '서양중세=암흑기'라는 일반화된 도식처럼 일본도 조선도 암흑기였다며 강도높게 비판하고 있다. 일단 이 책이 일본인이야기이므로 에도시대 농민들에 대해서만 생각해보면 2권의 내용은 대부분 농민들의 힘들었던 삶을 풀어내고 있는데, 사실 따지고 보면 일반 백성들이 살기 편했던 시대가 있었는가? 에도시대 이전의 농민들의 삶의 질이 어떠했기에 에도시대 농민들의 삶을 퇴보로 보아야 한다는 것인지 비교서술을 해주는 것이 좀더 설득력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에도시대 농민들의 삶이 힘들었고 조선시대 백성들의 삶이 힘들었던것을 알겠다 알겠는데 그 전과 비교해서 무엇이 더 힘들어진 것일까? 그저 내내 힘들었던 게 아닐까? 진보냐 퇴보냐는 결국 역사에 족적을 남긴 몇몇 사건들로 판단되는 것이지 이 책의 핵심이라는 농민들의 삶으로 판단하기엔 무리가 있지 않을까?

한의학과 난의학은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었습니다. 나아가 이와 같은 절충적인 사고방식은 에도 시대 일본의 학문 전반에서 널리 확인됩니다. 이런 점에서 에도 시대는 절충과 타협의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화권과 일본, 유럽의 절충, 한의학과 난의학의 절충, 도쿠가와 막부라는 군사 독재 정권에 대한 농민과 도시민의 타협, 조선과 명나라, 대청제국과는 달리 과거 제도가 없던 사회 시스템에 대한 지식인의 타협 등이 모두 이 시기에 일어났던 일입니다. (p. 33)

이 시리즈의 최대 강점은 일본 역사에 대한 무지를 깨뜨려준다는 것이다. 읽을때마다 놀랍지만 일본역사는 중국이나 한국보다는 봉건제 유럽과 닮아 있었다. 천황이 있으나 다스리지 않았고 다스리지 않아도 정신적 중심으로 늘상 있어오다 보니 마치 일신교처럼 일본사회를 묶어주는 역할을 해왔고 종교는 불교 비슷한 절들로 넘쳐났지만 주로 주민센터역할을 했기에 신도라는 일본의 종교는 천황중심이 될 수 밖에 없어보이는 것이 신기했고 신묘한 수 같았다. 통치자들은 바뀌어도 황제가 되려하지 않았고 그럼에도 항상 무력독재이긴 하나 통일국가라기 보다는 소도시들의 연합체로 오랜 세월 지내왔으며 지역공동체와 가문의 이어짐이 한번도 변한적이 없는 것을 보면서 일본사회의 독특함은 신기할 정도였다. 하나로 합쳐진듯 보이면서도 항상 따로따로 소규모로 살아온 그들의 정신과 문화가 우리네와 너무 달라서 앞으로도 서로 이해하려면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겠구나를 또한번 깨달았달까.

과거제도가 없는 에도 시대 일본에서는 조선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공부할 수가 있었습니다. 에도시대 일본의 관점에서 보자면, 조선의 학자들은 주희 선생의 관점을 따르며 관료 시험을 준비한 것이지, 자기 생각을 심화하고 펼치는 진짜 공부를 한 것이 아닙니다. 에도 시대 일본에서는 자기 앞가림만 할 수 있다면 공부하겠다고 마음먹기가 비교적 쉬웠습니다. 이렇게 공부하는 사람들의 목적도 역시 사회적으로 성공하겠다는 것이었는데, 에도 시대 일본에서는 공부해서 성공하고 싶은 사람이 택할 수 있는 길이 여럿 있었습니다. (p. 49, 50)

과거제도가 없었기에 주류 사상과 관료적 신분사회가 아니었던 일본도 공부의 목적은 결국 입신양명이었다. 시험준비만 하면 되는 공부가 차라리 선택의 여지가 없어 판단하기 쉬었다면 그래서 정체될 수밖에 없었다면 자유로이 공부를 선택할 수 있었던 에도시대 일본인들이 관심을 가졌던 학문은 결국 실용적 분야일 수밖에 없었고 학문의 구심점은 생겨나기 힘들었다. 무사계급이 항상 지배를 하다보니 지식인층은 무력하고 무시받는 계층이었지만 그럼에도 쓸모가 있다면 권력층에 눈에 들어 편하게 살 길이 열렸다. 싸우다 다치고 병들어 죽는 사람들이 넘쳐나던 시대 게다가 한정적일지라도 유럽의 의학이 소개된 일본사회에서 글자 좀 읽을 줄 아는 사람들이라면 의학에 쏠리는 관심이 어쩌면 당연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무사 집단이 보기에 글자를 다루는 사람은어차피 위협이 되는존재가 아니었고, 사상적으로 통제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큰 의미가 없었습니다. 따라서 기묘사화나 대청제국 정부가 지식인을 탄압한 문자옥 같은 사건이 에도 시대 일본에서는 거의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지식인 집단이 정치 문제에 참견하고 나설 때는 막부가 즉시 반응했습니다. 요는 글 다루는 사람들은 정치에 끼지 말라는 것입니다. (p. 52)

지식인집단이 주요 정치권력을 형성했던 중국과 한국과 달리 일본은 오랜 세월 무사계급이 권력을 잡아왔다. 고대와 근대 사이 내내 그런것 같다. 정치권력에 지식인층이 목소리를 낼 수 없는 문화가 그토록 오랜 세월 이어졌다는 것은 의미심장해 보였다. 그나저나 저자는 책에서 내내 대청제국 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명나라는 그냥 명나라 라고 하면서 청나라는 왜 대청제국이라고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역사학자계에서 쓰는 용어인가;;;

여담이지만, 시민 강의를 하다 보면 정말 열심히 공부하시는 분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저는 이것이 바로 에도시대 일본의 공부하는 생활인들의 모습이라고 느낍니다. 이런 분들이 사이비 역사서인 <환단고기> 같은 책을 읽고 국수주의에 빠지거나, 출토문헌 연구에 근거하지 않은 역학 공부에 빠져서 열정과 재산을 쏟아붓는 경우를 볼 때면 마음이 아픕니다. 이분들께 체계적으로 공부하는 방법과 순서를 알려드릴 지식인 집단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일본은 에도 시대 이래로 국가가 전국의 학문을 통제하는 전통이 없었고, 메이지 시대의 고등문관시험도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다 보니, 국가의 녹을 받아야만 공부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처음부터 시민을 상대로 글 쓰고 강연하면서 생계를 꾸리는 지식인 집단이 많이 존재합니다. 이들 지식인 집단과 시민들이 지속해서 만나면서 일으키는 선순환이 일본 출판계의 번성을 이끌어내는 원동력이기도 합니다. (p. 53, 54, 55)

어려서는 어려운 집안 형편때문에 못하던 공부를 삶이 안정되고 열심히 하는 분들을 보면서 안타까워 하는 저자의 마음은 십분 이해가 된다. 옛날부터 시험을 통해 등용되는 문화를 지녀온 한국에서 여전히 시험으로 모든 것이 평가되는 체제가 평생공부를 방해하는 문화가 될 수 있다는 점에도 공감한다. 그러나 일본에서의 생활공부가 과연 어떤 성과를 냈는지는 잘 모르겠다. 저자가 비판하는 조선시대에는 배우지 못한 농민도 배운 사람도 때때로 권력층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며 봉기를 일으키곤 했다. 그러나 일본역사는 어떠한가? 일본에선 혁명이 없었다. 실패했건 성공했건 어쨌건간에 일본에서 (우리나라에선 수시로 있었던)사회변혁이 크게 일어난 적이 있는가? 지식의 대중화는 좋으나 실용성 위주로 하던 공부가 얼마나 심도깊은 지식인층을 만들어냈는가? 일본의 출판문화는 나도 부러운 부분이 많다. 특히 체계적인 고전원서번역이 그렇다. 이런 돈이 되지 않는 책들이 출판될 수 있는 것은 만화책 덕분이라는 이야기를 들은적 있는데 저자는 지식인층이 있기에 출판계의 번성이 가능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인가? 한국에 중간지점의 지식인집단이 나타나기를 바라는 저자의 마음에 나도 공감한다. 하지만 학자집단에서 먼저 대중에게 올바른 방향을 이끌어줄 수는 없는 것인가? 바람직한 공부방향을 알려줄 수는 없는 것인가? 자발적으로 공부하는 문화가 여전히 어려운 국내현실에서 솔선수범하는 학자층을 나는 발견하고 싶다.

에도 시대는 도쿠가와 막부의 정책에 따라 유럽으로부터 고립되었고, 도쿠가와 가문과 각지의 다이묘들이 영원히 일본을 지배할 수 있도록 사회적으로 변화를 거부하는 시스템을 강제한 시대였습니다. 피지배민, 특히 농민들은 과중한 세금을 지배 집단으로부터 요구받으며 힘든 삶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중에도 피지배민들은 능동적·수동적 방법으로 자기 자신과 집안의 생계를 꾀했고, 희미하게 열려 있는 사회적 신분 상승의 기회를 잡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앞으로 그들의 분투하는 모습을 자세히 보여드리겠습니다. (p. 59)

'서장 - 백성과 의사' 에서 이 책의 주요 내용은 거의 다 설명된다. 1장-백성들의 이야기 와 2장-의사들의 이야기 는 그야말로 세부적 내용들이라 부분적으로는 앞에서 언급했던 내용의 반복이 보이기도 한다. 1권과 달이 2권에서는 마무리 글이 없이 본문으로 끝난다. 나는 개인적으로 마무리글을 좋아하는 편이라 이 책의 '서장' 내용이 마무리글에 더 적당하지 않았을까 싶다. 요점을 먼저 알려주고 상세히 풀어가는 것과 상세한 내용들을 차근차근 훑어본 후 정리하는 것 중 후자를 선호하다 보니 책의 마지막장을 덮고 나서도 왠지 개운치가 않았다.

많은 한국인에게 '일본'이라는 나라는 굉장히 단일한 성격을 띤 하나의 국가라는 이미지이지만, 에도 시대 일본은 3백여 개의 국가가 공존하는 하나의 '세계'였습니다. 마치 오늘날 지구상의 2백여 개 국가가 국제무역을 하듯이, 이 '에도시대 일본'이라는 하나의 세계에서도 3백여 개의 국가 사이에 국제무역이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지금의 국제연합UN보다 강력하기는 했지만, 도쿠가와 막부도 3백여 개의 번 이라는 국가를 일일이 통제하고 중계할 수는 없었고, 그럴 의지도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오늘날 서방 국가들에는 식량이 남아돌아도 제3세계에서는 굶어 죽는 사람들이 속출하는 것과 똑같은 일이 에도시대 일본에서도 지속해서 발생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각각의 번 은 서로 독립적으로 번 내의 기근을 해결하기 위해 고심했습니다. (p. 88)

지금의 세계 국경선이 정해진 것은 2차세계대전 이후이다. 유럽의 국가들은 전쟁전에 서로의 왕조가 얼키고설켜서 국가라는 개념은 희미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영국국민은 런던에 살면 런던인이라 부르고 웨일즈에 살면 웨일즈사람이라 칭한다. 이탈리아 사람은 로마에 살면 로마인이라 부르고 시칠리아에 살면 시칠리아인이라 칭한다. 스스로를 영국인 이탈리아인이라고 먼저 생각하지 않는다. 지역중심의 이러한 사고방식이 일본에서도 비슷하게 유지된 것 같다. 단순한 국기처럼 하나의 일본인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들은 각각 독립적이고 그렇기에 중앙정부에 대해 무심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중앙집권화로 오랜 세월 역사를 쌓아온 우리와는 엄청나게 다른 사고방식일 것이다.

쌀을 둘러싸고 지배층인 무사 집단과 피지배민은 첨예한 계급적 갈등 상태에 빠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피지배층이 체제에 저항할 수 있는 이론적 근거를 제공해주는 종교를 빼앗긴 상태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이따금씩 터져나오는 피지배민의 봉기·폭동은 언제나 무사집단이 양보하는 척을 하다가 피지배민 측의 지도급 인사들을 처형하면 흐지부지 소멸하는 패턴을 그렸습니다. (p. 92)

민중은 꾹꾹 참다가 봉기를 일으킬 수 있지만, 지도자가 없는 민중의 봉기는 대체로 좌절되고 더 큰 탄압을 부릅니다. 지도자가 있다 해도 대안이 될 세계관과 이론이 없는 봉기는 뚜렷한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백성들의 목숨만 잃게 합니다. 에도 시대는 그런 봉기와 좌절을 되풀이한 시대였습니다. (p. 98)

천황이 마치 종교처럼 상징적 구심점이 된 것은 세계전쟁을 일으키던 군사집단의 계획이었지 그전 시대에 천황의 존재감은 미미했다. 일본의 역사는 내내 무사들로 대표되는 폭력세력이 권력을 잡은채 종교도 사상도 그 어떤 주된 사상도 없이 큰 사회적 변화없이 흘러온 것 같다. 그러니 사회를 바꿀 생각을 할 수 없는 일반백성들은 개인적 판단으로만 살아온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회가 크게 뒤바뀌는 것 같을때 갈팡질팡에 빠져 쉽게 우울해질 수밖에 없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근대 일본문학이 그렇게 허무하고 냉소적인 개인주의에 빠졌던 것은 아닐까... 개인적으로 안좋아하는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이 갑자기 이해되는 기분이었다.

여러 번 주군을 갈아타며 자신의 운을 시험하던 무사들이나 센고쿠 시대의 이합집산 속에 주군을 잃어버린 무사들은 새로운 삶의 방식을 개척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대규모의 무사가 실직하게 되었습니다. 에도 시대 초기에 실직하고 살길을 모색한 무사의 전형은 오제 호안입니다. (p. 143) 이념을 위해서는 역사적 사실을 왜곡해도 된다는 주자학자 오제 호안의 입장은 한반도에서 낯설지 않습니다. 의학과 저술·출판으로 생계를 꾸리면서 학문을 닦아 당대의 권력자들에게 어필하고 구직하는 오제 호안의 삶은 과거제 없는 에도 시대 일본에서 지식인이 생계를 꾸리는 초기 모델이었습니다. (p. 145, 146)

에도시대에는 누구나 공부할 수 있었다지만 그렇게 생활속에서 공부한 사람들은 시대를 끌어가는 지식인층이 되지 못했고, 적극적으로 공부하여 지배계급에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오제 호안 같은 사람들은 자신의 출세를 위해 왜곡도 서슴지 않았음에도 그러한 사람들이 권력층에 영향을 끼쳤다. 저자가 바람직하게 보는 일본의 중간층 지식인집단이 어떤 성격이라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에도 시대에 지배 집단의 압박에 저항할 만한 세계관이나 이론을 지니지 못한 피지배민들은 쉽게 꺾일 하쿠쇼잇키를 일으키거나, 바바 분코 사건에서 보았듯이 문학을 이용해서 지배 체계에 저항했습니다. 이렇듯 일본인들은 문학으로 사상을 합니다. (p. 154)

문학을 이용해서 지배 체계에 저항했나? 권력층이 저항받았다고 알기는 했을까? 문학으로 사상을 한 것인가? 개인적으로 포기한 것이 아니고?

이렇듯 예속민을 이용한 농업의 한계가 뚜렷하다 보니 조선에서도 '17세기에 노비를 이용한 양반의 직영지가 급속히 감소'하게 됩니다. 물론 그 정도는 일본과 달랐습니다. 일본에서는 에도 시대 초기에 인구조사에 흔히 나타나던 예속민이 중후기 들어서는 거의 사라져 보이지 않게 되지만, 조선은 독자 여러분께서 더 잘 아시다시피 멸망 직전까지 노비제도를 포기하지 못했습니다. (p. 179)

일본과 조선은 다른 사회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일본 농민은 세금만 되면 되는 자유민과 비슷했지만 조선 노비는 그냥 모든 것이 종속된 노예였다. 예속민이 사라진 시기가 다른 것은 어쩔 수 없는 사회구조의 차이였다. 그런데 왜 나는 저자가 '다르다'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조선이 틀렸다' 라고 말하는 것처럼 읽혀지는지 모르겠다. 내가 조선을 바람직한 사회였다고 말하고자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사회구조의 차이는 많은 것을 달리 이해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 미국에서의 흑인노예는 얼마나 오래 지속되었는가? 그리고 지금은 과연 흑인이 백인과 똑같아졌다고 말할 수 있는가? 다른 학문보다도 특히나 역사는 '다르다' 와 '틀리다' 를 잘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시에는 의학이든 문학이든 사상이든 예술이든 간에 지적 활동을 하는 사람의 숫자가 절대적으로 적었고, 그들은 서로 가족 간이거나 친구이거나 스승·제자, 선배·후배 관계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p. 244)

일본에서 정말 학문을 하고 싶은 사람은 후지와라 세이카의 길을 택하여 학원 선생이 되거나 의사가 되는 등 스스로 밥벌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자 했습니다. (p. 248)

일본에서는 의사가 되어 명의로 이름을 날리면 막부나 번에 관료로 채용되는 일이 많았습니다. 막부나 번에 채용된 의사들은 대대로 의사지위를 세습함으로써 안정적으로 옛 의학서를 연구할 경제적·시간적 여유를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들 세습 의사들은 한의학 서적은 물론이고 중화 세계와 일본의 귀중한 책들을 고증학적으로 연구해서 속속 성과를 냈습니다. (p. 263)

이런 일본의 문화는 지금도 여전해 보인다. 이해는 안되지만 정치도 세습되고 있다. 누구나 공부할 수 있었지만 대부분 공부하지 않았다. 먹고살기 바빴다. 공부할 여건이 되면 개인적 취미처럼 공부했다. 시대의 사상엔 관심이 없었다. 차라리 획일적이나마 사회적으로 신분상승의 유일한 도구로 똑같은 것을 공부하던 조신시대에는 편협하건 어쨌건 간에 학자층이 많았다. 물론 그것이 그닥 득이 된 것 같진 않지만... 여하튼 지금도 한국의 많은 부모들은 그래서 자식의 공부에 열을 올린다. 그러니 평균은 일단 높다. 하지만 일본은 여전히 '집안대대로' 식의 약간 '끼리끼리' 문화가 지배적이지 않은가? 어느 사회가 더 닫힌 사회인가? 어느 사회에 더 양질의 중간 지식인층이 많을 수 있겠는가? 어느 사회에서 더 시대의 리더가 탄생할 수 있겠는가?

이런 의미에서 유의는 자립하여 생활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함으로써 권력에 기대지 않고 자유로운 공부를 하려 한 에도 시대 지식인 집단의 정체성 그 자체였습니다. 문자 그대로 시민학계·의료계와 관제학계·의료계의 대립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권력층에서 부르면 달려가서 한자리 차지하고 곡학아세하기 바쁜 한국의 몇몇 시민 단체와는 달리, 일본의 시민 단체들이 쉽게 권력에 기대거나 투항하지 않고 굳건히 버틸 수 있는 근원에는 나고야 겐이와 이토 진사이, 고토 곤잔 같은 유의 정신을 지닌 선배들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p. 266~267)

일본 지식인층이 자유로이 공부해서 그래서 무엇을 했는가? 지역공동체를 위해서 뭔가 했다하더라고 나라를 위해서는 시대를 위해서는 무엇을 했는가? 근근이 불편함을 해소하며 공동체를 유지하고 사는 것과 나라를 뒤집어 엎는 것중 무엇을 지향하는 지는 각자의 선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규모 지역적 지식인층의 집단이 저자가 바람직하다고 보는 중간지식인층인 것일까? 한국의 시민단체들이 그동안 그렇게 부끄러운 행태만 보여왔는가?

역사를 연구하면서 특히나 다른 나라의 역사를 연구하면서 그 나라에 애정이 생긴다는 것은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알면 알수록 더 애정이 생길 것이다. 반대급부적으로 내가 속한 나라와 비교하면 할수록 내 나라의 문제점이 더 도드라져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학자의 중립적 태도는 그 무엇보다 학자의 기본태도가 아닐런지.

그래도 저는 센고쿠 시대에서 에도 시대를 거쳐 메이지 시대에 이르는 4백년의 일본을 바라보면서, 단기적으로는 사회가 퇴보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이를 극복하고 조금씩이라도 나은 방향으로 진보한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 퇴보의 기간 중에 괴로워하고 죽어간 사람들, 그리고 퇴보를 회복하기 위한 불필요한 노력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 괴로움과 불필요함을 저는 에도 시대에서 느낍니다. 그래서 저는 에도 시대를 진보가 아닌 퇴보의 시기였다고 주장합니다. 일본의 사회와 역사를 일본 내부의 흐름으로만 바라보면 이러한 좌절과 극복의 과정이 눈에 잘 띄지 않습니다. 가톨릭, 조선, 한센병 호나자, 천민, 농민... 이런 외부·소수 집단으로부터 일본 사회를 바라보았을 때, 비로소 일본 사회가 겪은 퇴보와 진보가 확인됩니다. 마찬가지로 저는 고려가 멸망한 뒤, 조선과 식민지 시대를 거쳐 현대 한국이 탄생하기까지의 과정 또한 약 6백 년에 걸친 거대한 좌절과 회복의 과정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p. 324~325)

역사의 주체를 일반 백성을 기준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일본 농민들 말고 조선의 한국의 농민들에 대해서도 저자가 이 책에서 일본농민들을 바라보듯이 그렇게 바라보고 있을지는 의문이다.

유럽 의학을 전후하여 일본에 소개된 자연과학, 지리학 등을 가리키는 난학이 기존의 중국학이나 일본의 전통적인 지식 체계와는 전혀 다른 학문으로서 일본의 상층부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새로운 과학 세계관을 소개한다고 해서 순식간에 사회가 바뀌지는 않습니다. (p. 376)

유럽에서도 이랬을진대, <해체신서>를 비롯한 몇 권의 유럽 의학서와 자연과학서가 일본어로 번역되었다고 해서 에도 시대 일본이 그로부터 급격하게 근대를 향해 질주했다는 식의 이미지를 갖는 것은 현실과 맞지 않습니다. (p. 377)

조선시대 흥선군의 쇄국정책은 한국인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는 사건일 것이다. 에도시대 서양세력에게 열렸던 문을 닫은 것또한 쇄국이었지만 네덜란드를 향한 한곳의 문을열어두었으니 쇄국이 아니라고 일본 교과서에서 이 시대를 표현하는 말들 중 쇄국이라는 용어를 지웠다고 한다. 그러니 근대로의 발판이 된 시대라고 표현하기 더욱 좋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에도시대 2백여년간은 흥선대원군 시대의 쇄국과 그리 달라보이지 않았다.

농촌과 도시의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 그리고 평생 사람들에게 부림을 당하다가 쓸모없어지자 도살당할 위기에 처한 소와 말을 구제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구마가이 렌신, 더 건강하게 오래 살고자 하는 농민들의 바람을 이루어주기 위해 신분과 법규까지도 뛰어넘은 하가 주토쿠, 이 두 사람은 도쿠가와 막부가 자신들의 일본 지배를 영구히 하기 위해 유럽에 대한 쇄국을 시행함으로써 물질적 혜택, 특히 의료 혜택을 박탈당한 가운데에서도 더 건강하게 살기 위해 노력한 에도 시대 일본 피지배민의 고군분투를 상징합니다. 제3권에서는 지배층의 방해를 이겨내고 '더 잘살기 위해' 노력한 상인들의 이야기를 들려 드리겠습니다. 1년 뒤에 뵙겠습니다. (p. 398~399)

작년에도 이맘때 1권이 나왔던가... 일년만에 기다리고 기다렸던 2권을 읽었다. 1권에서처럼 많은 깨우침을 얻진 못했지만 여전히 일본에 대해 새롭고 신선하면서 다양한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해준 2권이었다. 마무리글이 없어서 아쉽긴 했지만, 2권에서 농민들은 하루하루 먹고살기 힘들었고 무사집단은 고여있었고 시대는 정체된 에도 시대를 볼 수 있었다. 3권에서는 아마도 더 적극적으로 일본식 개인주의가 팽배해지는 일본인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예상된다. 일본의 역사를 읽으며 이런저런 많은 생각들을 하게 해주는 이 시리즈는 정말 좋은 시리즈다. 1년을 기다려 3권도 꼭 읽고 싶다. 그렇게 5권까지 꼭 다 읽겠다고 마음먹은 역사 시리즈다. 저자의 노고를 늘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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