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밖 인문학 콘서트 - 10만 명이 함께한 서울시교육청 인문학 강좌 교실밖 인문학 콘서트 1
백상경제연구원 지음 / 스마트북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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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이야말로 첫 번째 교양이다!

신화, 철학, 문학, 미술, 영화, 환경, 역사, 미래까지

10만명이 함께한 서울시 교육청 인문학 강좌

 

 

[교실밖 인문학 콘서트]는 청소년과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서울시교육청 인문학 아카데미 '고인돌2.0(고전 인문학이 돌아오다)'중에서 고른 열가지 주제에 대해 다양한 강사진의 풍부한 이야기를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교실밖' 이라고 해서 청소년용줄 알았더니 청소년뿐만 아니라 성인이 읽어도 충분한 깊이가 있는 교양서였다.

1장 유럽 신화, 완전 첫 걸음] 에서는 신화란 무엇이고 신화라는 단어를 들었을때 떠올렸을 법한 유럽신화에 대한 기초내용을 개괄해준다.

신화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기원(origin)에 관한 오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p. 17) 신화는 우리가 왜 태어났는지, 왜 죽는지, 죽으면 어디로 가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말해준다. 즉, '근원적인 철학적 사고'를 하게 한다. 인간으로서 무엇을 해야 하고 하지 말아야 하는지, 다른 동물이나 식물과는 어떤 관계를 맺으며 살아야 하는지를 말해주는 것이다. 신화는 은유나 상징, 알레고리라는 신화만의 방식을 통해 이러한 것들에 대해 말해왔다. (p. 19) 신화가 늘 재미있고 신기한 이야기라는 생각은 신화가 가진 한쪽 면만을 보는 것이다. 국가 이데올로기로 작동하는 신화나 미디어의 조작으로 형성되는 신화는 경계해야 한다. 신화는 양날의 검으로써 기능할수도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p. 24) 신화는 종교나 역사와 관련이 있지만, 유익하고 풍부한 상상력의 보고라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수천 년을 인류와 함께 살아남은 강력한 이야기인 신화를 아는 것은, 모든 대중문화 콘텐츠로 통하는 지름길이라고 해도 틀린말은 아니다. (p. 25)

인문학의 3대 큰 줄기를 문사철이라 부르곤 한다. 문학, 역사, 철학이 그것이다. 이 세가지 모두 다 좋아하는 영역이다 보니 이런저런 책을 읽다보면 신화는 여기저기서 불쑥불쑥 튀어나오곤 한다. 문학도 역사도 철학도 그 첫 시작은 신화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인문학에 관심이 있다면 신화를 빼고 그냥 지나갈 순 없을 것이다. 다만, 원전번역서로 시작하길 권한다. 신화 자체가 사실이라기 보다는 상징과 은유로 풀어지는 이야기인데 중역이나 축약같은 다양한 변화를 거친 책들은 그 본연의 의미를 전달하기 어렵기 마련이다. 원전 번역이라해도 사실 완전한 원전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남아있는 이야기들 자체가 이미 유구한 세월을 거치는 동안 다양한 변이를 거쳤기 때문이다. 그러니 더더욱 신화는 줄거리를 아는 것보다 원전 자체의 상징을 이해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저자가 알려주는 신화이야기는 우리에게 익숙한 작품들을 통해 더욱 친숙하게 다가온다. 켈트신화가 해리포터에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지, 북유럽신화가 어벤저스시리즈와 반지의 제왕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등 신화가 여전히 우리의 문화에 다양한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한국의 저승관과는 어떻게 닮아있는지 읽다보면 재미에 폭 빠져읽었음에도 새로이 알게되는 것들과 더 알고싶은 것들이 남아 지적호기심을 자극한다.

2장과 3장은 철학이다. 2장 살면서 갖고 싶은 다섯 가지] 에서는 일상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철학적 사고를 돕고 3장 철학하는 삶이란] 에서는 변화된 시대에 앞으로 어떤 철학적 질문을 가져봄직한지를 생각해보게 한다.

4장~7장은 문학과 예술이다. 때로는 소설로 때로는 영화로 때로는 미술로 풀어지는 이야기들은 다양한 작품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만큼 가장 쉽고 재미있게 읽히는 부분이기도 하다.

4장 자아의 발견] 은 청소년에게 추천할만한 다양한 소설들과 함께 '자아'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데 백세시대가 될수록 어른이 되는 나이가 늦어지고 있다 보니 사실 '자아의 발견'은 청소년에게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서 혼란스러운 젊은 나이에 읽기에 좋은 내용이었다. 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 ,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 로이르 로이의 '기억전달자' ,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 과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핀의 모험' 소설의 내용을 따라가며 주인공의 성장과 함께 읽는이의 성장에 조언을 해주는데 해당 문학 작품들을 읽었다면 따듯한 충고처럼 다가오고 읽지않았다면 읽고싶은 마음이 들게 될 이야기들이었다.

5장 원작과 함께 영화 읽기] 또한 소설보다 오히려 더 접하기 쉬울 영화라는 장르로 인해 더욱 재미있게 읽게 되는 부분이었다. '위대한 개츠비' , '작은 아씨들' , '엠마' , ' 레미제라블' , '허삼관매혈기' 에 대해 원작 소설과 영화를 함께 다룸으로써 장르를 넘나드는 이해와 시대를 넘나드는 해석을 통해 원작과 영화를 세트로 함께 보면 재밌겠구나 싶어 바로 찾아보고 싶은 마음을 들게 하는 부분이었다.

6장 필환경 시대, 문학에서 길을 찾다] 는 다양한 장르의 문학을 통해 변해가는 환경 속에 살고 있는 인간에게 문학이 먼저 던진 질문들을 되새겨보게 하고 있었다. 잃어버린 자연을 생각하게 하는 시들과 에세이 '월든' 의 소박함과 '멋진 신세계' 와 '오릭스와 크레이크' 라는 소설이 미리 보여주는 디스토피아등을 통해 환경과 인간의 관계를 무겁지 않으면서도 진지하게 접근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듯 했다.

7장 단박에 읽는 서양 미술사] 는 소제목 그대로 서양 미술사롤 40여페이지에 압축해서 보여주는 놀라운 능력이 발휘된 장이다. 예술이란 무엇이며 고대부터 르네상스를 거쳐 인상주의를 지나 현대까지 굵직한 사조들을 빠짐없이 다루면서도 예술의 흐름을 이해하는데 무리없게 해주면서 예술 자체에 대한 질문까지 남겨주는 장이었다. 개인적으로 미술사 하면 곰브리치만 알았는데 단토의 책을 읽어야 겠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어서 특히나 인상적인 파트였다.

8장은 스토리 이고 9장과 10장은 역사와 미래 라는 토픽을 다루고 있다.

8장 이야기꾼 프로젝트]는 이야기를 직접 써보는 연습을 시켜주고 있는 듯한 장이었다. 이 장 또한 짦은 페이지로 스토리작법을 훈련시켜주기에 이정도라면 나도 한번 써볼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쉽고 알차게 스토리텔러연습을 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9장 역사 속 뉴노멀의 현장을 가다] 에서는 세계사에 굵직한 획을 그은 혁명들(네덜란드 독립, 영국내전, 미국 독립, 프랑스 혁명, 러시아 혁명)을 보면서 그러한 역사적 사건들을 통해 지금의 모습을 반추해보게 한다.

10장 새로운 접촉문명, 온택트 시대] 는 딱 지금 의 현실 모습을 통해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변화들이 미래에 더욱 어떤 모습이 될지 생각해보게 한다. 중요한 것은 언택트 가 아닌 온택트 라고나 할까.

이제 매뉴얼로 가능한 일들은 기계에 맡기면 되는 세상이 되었다. 전례가 많은 일들은 인공지능이나 기계자동화로 대처할 수 있기 때문에, 반복적인 일처리 재주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이해하고 꿰뚫어 보는 통찰력과 기민한 대응력이 중요하다. 인간은 매뉴얼에 없는 일들을 해결해야 한다. 매뉴얼에 없는 변화에 대처하고 새로운 매뉴얼을 만드는 힘이 필요한 사회가 21세기 선진사회다. (p. 416) 21세기 디지털 미래사회는 변화무쌍한 사회다. 어제의 패턴이 반복되지 않고 어떤 변화가 닥칠지 가늠하기 힘든 'VUCA사회'(VUCA는 휘발성Voiatility, 불확실성Uncertainty, 복잡성Complexity, 모호성Ambiguity 의 준말이다. VUCA사회란 미래로 끊임없이 변화하고,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하기 어렵고, 그 어느 때보다도 복잡하고, 모든 것이 선택의 문제로 모호한 세상을 의미한다)라고도 한다. 어제까지의 모범사례가 미래의 대책이 되지 않는 사회, 즉 미래를 개척하는 최고의 상상력이 요구되는 사회다. (p. 417)

무에서 유가 창조된 적은 없었다. 세상을 뒤집은 발견발명들도 갑작스러운 것은 없었다. 모든 것은 다 작지만 꾸준히 쌓이고 끊겼다가도 다시 이어지는 시간들이 쌓여 창조된 것들이었다. 누군가의 무엇이 없었다면 위인의 업적도 없었다. 아무리 미래사회가 VUCA사회라 해도 그런 미래조차 현재의 우리가 한 것들로 인해 다가올 사회다. 그러니 지금 무엇을 할 것인가 생각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생각을 뒷받침해주는 것이 바로 인문학이다. 따라서 여전히 우리는 그리고 앞으로도 우리는 책을 읽어야 한다. 기왕이면 원전들을, 부담스럽다면 이런 교양서들로 시작해보면 어떨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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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비문을 찾아서 - 글씨체로 밝혀낸 광개토태왕비의 진실
김병기 지음 / 학고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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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해파<渡海破)'가 아니라 '입공우(入貢于)'였다!

왜가 바다를 건너와 백제 가야 신라를 쳐부순(渡海破)게 아니라

왜가 고구려의 신민이 되었다!

 

 

오랜만에 가슴뜨거워지는 역사서를 읽었다.

나는 역사를 좋아하지만 그래서 역사서를 자주 읽는 편이지만 국내역사서는 그닥 자주 읽지는 않는다. 국내 역사 관련 책들은 역사서라기보다는 흥미위주의 책들이 많고 게다가 한국의 역사가 조선사가 다인것마냥 조선사에 치중된 경향이 많아서 찾아 읽어야 할 필요성을 딱히 느껴보지 못했었다. 게다가 국내 역사를 다루면서도 학자다운 양심을 저버린 사람들도 꽤 많아 보이기에 그런 면면들을 대면하느니 그냥 안보고 모르고 지내는게 속편했달까... 그래서 나와 아무 상관없지만 재미도 있고 유익하기도 한 서양사 관련 책들을 찾아 읽고는 한다. 그런데... 이 책은 달랐다!

일러두기2.

그동안 우리는 습관적으로 '광개토대왕'이라고 불렀다. 일제가 그렇게 부른 것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다. 그러나 비문에는 분명히 '광개토태왕'이라고 명기되어 있다. '태(太)'는 '대(大)'보다 훨씬 큰 개념이다. 비문의 기록을 좇아 응당 '광개토태왕'으로 호칭해야 하므로 증보판에서는 초판의 '광개토대왕'을 모두 '광개토태왕'으로 바로잡았다.

본문을 시작하기에 앞선 '일러두기'에서부터 이 책의 색깔을 명확하다. '비문'에 쓰여진 글자에 집중한다는 것.

중국의 동북공정 이니 일본의 임나본부설 이니 하는 말들은 이미 지나간 옛스럽고 무용한 그런 이야기들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현재진행중이었고 미래를 내다본 주장들이었다. 이대로 가다간 중국에든 일본에든 어느 한쪽에 한국이 먹히고 말 상황이었다. 그저 헛된 역사논쟁이라고 치부하고 말 것이 아니었다. 그 핵심에 광개토태왕비문이 있었다.

그러한 연구를 토대로 일제는 조선을 당쟁을 일삼다가 망한 나라로 규정하면서 식민 지배의 당위성을 강조하는 식민 사학의 틀을 세웠고, 병탄 후에는 우리에게 그런 식민 사학을 주입했다. 일제는 실증사학을 내세워 유물이야말로 객관성을 갖는다고 주장하면서 유물을 근거로 우리의 역사를 실증해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그러면서 그들은 우리의 역사유물을 없애기도 하고 변조하기도 했다. 변조한 유물을 들어 실증을 강조하여 유물을 자의적으로 해석함으로써 우리의 역사를 왜곡 날조하였다. (p. 12) 일제가 우리의 역사를 자기네들의 필요에 맞도록 혈안이 되어 왜곡하던 그 시기에 역사 왜곡의 제물이 되어버린 게 바로 광개토태왕비이다. (p. 13) 그런데도 왜 우리 학계는 이런 정황 증거는 외면하고 '일제가 설마 비를 변조까지 했겠어?'라는 태도를 보이면서 관대하기 이를데 없고, '일본서기'에 근거하여 광개토태왕 당시의 정황을 파악한 다음에 그 정황에 맞춰 광개토태왕비문을 해석해야 한다는 주장은 왜 그토록 만연해 있는지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다. (p. 14) 내 연구의 핵심은 글자의 변조를 증명하고 원래의 글자를 찾는 데에도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핵심은 신묘년 기사에 나오는 '속민(屬民)'과 '신민(臣民)'이라는 어휘의 차이점을 분명하게 밝힌 데에 있다. 속민과 신민의 분명한 의미 차이에 입각하여 신묘년 기사를 해석하면 고구려가 왜를 신민으로 삼았다는 문장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내 연구의 핵심내용인 것이다. (p. 16)

저자는 오랜세월 서예를 학문적으로 연구해온 서예가이자 서예학자이다. 엣 역사는 한자로 전해지고 있으니 서예학은 그 중요성을 무시할 수 없는 학문이다. 그런데 국내 대표적인 서예학자의 연구를 국내 사학계에서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다는 상황이 저자의 답답함 못지 않게 나도 답답해 졌다. 신라와 백제의 역사 관련해서는 국내에 전해지는 역사서들을 바탕으로 분석하려고 하면서도 '광개토태왕비문'해석에 있어서는 '일본서기'라는 고서의 정황에 맞춰 해석하는 걸로 보이는데, '일본서기'는 일본에서나 고대역사 관련 책으로 애지중지하는 책이지 당시의 한반도역사와 중국역사와 비교해보면 거의 위서에 가까운 책이라는 것은 조금만 검색해봐도 바로 나온다. '광개토태왕비문'의 변조관련 주장은 100여년에 가깝게 이어지고 있다는데 국내 사학계는 이 주장에 전혀 개입하지 않아온 듯 보인다. 왜 일본이 제시한 증거들의 변조가능성을 검토하지 않는가? 그러는 사이 중국은 고구려 역사를 중국역사에 편입시키고 일본은 한반도 남부의 역사에 임나본부설을 주입시켰다. 왜 한국 사학계는 이런 편입과 주입을 저지하지 못했는가? 그동안 한국 사학계는 대체 무엇을 연구해왔단 말인가? '어차피 사실이 아닌데' 하며 안일한 태도로 수수방관하고 제대로 된 반박거리를 준비하지 않는 동안 중국과 일본은 탄탄히 논리를 만들고 증거까지도 만.들.어.왔다. 한국사학계는 중국과 일본의 들러리인가?

마침내 광개토태왕비 앞에 섰을 때 나는 뜻 모를 비감에 사로잡혔다. 1600년 고령을 용캐도 견뎌왔건만 이제는 지쳤다는 듯, 비면에는 많은 상처가 나 있었다. 게다가 만주 벌판에 늠름하게 우뚝 서 있어야 할 광개토태왕비는 중국이 만들어놓은 방탄 유리창 속에 갇혀 있었다. 그 옛날 요동 벌판을 호령하던 광개토태왕도 갇혀 있었다. 아니, 고구려 역사 전부가 옹색한 유리창 속에 갇혀 있었다. 어디 그뿐인가. 유리 감옥에 갇힌 광개토태왕비를 지키고 있는 것은 검둥 개 두 마리였다. 개 두 마리, 이 것은 은유가 아니라 사실이다. 광개토태왕비 각의 사방에 놓인 네 개의 개집. 그중 두개의 개집에는 개가 들어앉아 감시라도 하듯 내방객들을 힐끔 쳐다보고 있었다. (p. 34 ~ 35)

네 개의 개집. 검둥 개 두 마리. 하아...

2004년 저자가 직접 보았던 그 모습이 지금은 어떻게 달라졌는지는 모르겠으나... 어떤 모습으로 있던 어차피 국내 사학계의 외면은 마찬가지 상황이 아닌가... 그야말로 할많하않...

광개토태왕비! 서기 414년에 세운 이 비석은 높이가 6.39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자연석으로 만들었다. 위와 아래 면이 약간 넓고 허리가 약간 좁아서 보기에 따라서는 잘록한 모양새를 하고 있다. 밑면의 너비는 제1면(동남방향)이 1.48미터이고, 제2면(서남방향)이 1.35미터 이며, 제3면(서북방향)은 2미터이고, 제4면(동북방향)은 1.46미터이다.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한 이 거대한 비석은 화강암으로 된 좌대위에 세워졌다. 비석의 각 면에는 탄본에서 본 것처럼 행의 줄을 맞추기 위한 사잇줄(계선)이 쳐져 있다. 이 사잇줄에 맞춰서 1행에 보통 41자씩, 네 면을 돌아가며 모두 44행에 글씨가 새겨졌다. 음각한 비문의 글자가 모두 1,775자에 이른다. 중국 학자들의 조사에 따르면, 이 중에서 이미 풍화되고 훼손되어 판독이 힘든 글자가 141자라 한다. 글자 하나의 크기는 가로나 세로가 보통 12센티미터 정도로 접시만 하며, 큰 글자는 한 변이 16센티미터에 이른다. 비문의 내용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제1부에는 고구려 건국 신화와 광개토태왕의 행적을 간단히 적었다. 제2부에는 광개토태왕이 비려와 백제를 토벌하고 신라를 구했으며 왜구를 패주하게 하고 동부여 등을 토벌한 사실과 함께 획득한 성 및 촌락과 인마의 규모와 수를 적었다. 제 3부에는 광개토태왕이 생전에 내린 교언에 근거하여 광개토태왕릉을 지키는 책임을 다할 백성들의 출신과 가구 수 등을 적었다. (p. 36)

광개토태왕비의 탁본을 일제가 취득한 정황도 탁본 자체의 신뢰성도 비문의 자의적 해석도 모두가 미심쩍었지만 저자의 말처럼 광개토태왕의 행적을 기리는 비문에 왜의 승전을 기록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저자가 구현한 변조의 앞과 뒤가 딱딱 들어맞아서 대체 이 변조를 왜 한국 사학계가 인정하고 뒷받침해주지 않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혹시 정통 사학계가 밝혀내지 못한 것을 이른바 재야 사학자가 밝혀낸 것이라서?

그렇다면 광개토태왕비를 어떻게 구해낼 것인가? 무엇보다도 '제대로 아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혹자는 '모든 역사는 승자의 역사'라고 하지만, 나는 '역사는 이긴 자의 것이 아니라 아는 자의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알아야 한다. 제대로 알아야 제대로 지킬 수 있다. 광개토태왕비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 그것이 세 번의 죽음에서 광개토태왕비를, 그리고 고구려를 살려내는 길이고 나아가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살리는 길이다. 일본은 정부가 나서서 역사적으로나 국제법적으로나 독도가 일본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고, 중국은 '동북공정'이라는 이름의 역사 왜곡 사업을 국가적인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마당이다. 우리라고 제대로 역사를 보고 제대로 알자고 하는 취지의 역사 교육을 강화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p. 42)

공감한다. 알아야 한다. 그것도 제대로 알아야 한다. 그러니 읽어야 한다. 많이 읽어야 한다. 그래야 책 중에서도 옥석을 가릴 수 있고 누구의 주장이 더 타당한지 판단할 수 있다. 한쪽에만 매몰되지 않기 위해 바르게 읽고 제대로 알아야 한다. 역사는 지나간 과거가 아니다. 현재를 반추하는 거울이자 미래를 엿보게 해주는 망원경이다. 어디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지 알기 위해서 역사에 늘 관심을 가져야 한다. 과거와 현재를 모르고 세운 미래는 사상누각일 뿐이다.

일본은 구석기 시대의 유물을 조작하는 세계적 역사왜곡도 서슴치 않았던 전적이 있고 역사교과서 왜곡을 통해 끊임없이 자신들의 역사를 창조하려 한다. 중국은 고구려 역사와 유적을 유네스코에 등재시키며 자신들의 역사속으로 교묘히 고구려역사와 앞으로의 북한땅까지 복속시키려는 의도를 찬찬이 진행중에 있다. 그 틈바구니에서 한국의 역사는 그저 속절없이 잘려나가고 말 것인지...

사마천은 이런 설명을 통해 역사는 과거에 대한 기록임과 동시에 현재를 비추는 거울로서 현재에도 생생하게 살아 있음을 설파하였다. 이런 점에서 사마천의 역사관은 '모든 역사는 현재의 역사이다'라고 한 역사철학자 베네데토 크로체의 역사관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다. 레오폴트 랑케를 대표로 하는 실증사학자들은 역사를 사회과학으로 인식하여 역사를 연구함에 있어서 역사가의 견해를 철저히 배제하고 역사적 사실만을 규명할 것을 주장했다. 이러한 실증사학은 증거에 기초한 사실의 기술에 전력을 다했다는 점에서 근대 역사 연구에 기여한 바가 크다. 그런가 하면, 크로체나 E.H.카등은 역사를 인문학적 관점에서 바라보며 해석의 문제로 파악하려고 했다. 크로체가 '모든 역사는 현재의 역사이다'라고 말한 것도 역사적인 사실은 변하지 않지만 그 역사를 해석하는 시점의 사회 분위기나 학문적 연구 동향 등에 따라 다른 조명과 해석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드러낸 것이다. E.H.카 또한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간의 계속적인 상호작용이며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말함으로써 역사적 사실 자체보다는 그것을 탐구하는 역사가의 관점을 더 중요시하였다. (p. 312)

역사가의 태도에는 두 극단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역사의 교훈을 전하기 위해 깎을 것은 깎고 보탤 것은 보탠 공자의 '춘추필법'이고 다른 하나는 사실 그 자체가 말하게 함으로써 과거를 있었던 그대로 보여준다는 '랑케필법'이다. 춘추필법은 2천년 동안 중국 문명권의 역사 서술을 지배했고, 랑케필법은 100년 동안 서구 역사학계에서 유행했다. 오늘날 역사가들은 이 둘 사이 어딘가에 있다는데, 중국의 춘추필법 다운 동북공정과 일본의 (변조한 증거까지도 사실이라고 바탕에 깔고 시작하는) 랑케필법다운 임나일본부설 사이에서 한국의 사학자들은 역사적 사실의 무엇을 검증하고 그런 역사와 어떤 대화를 하고 있는 것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무엇보다도 국가적 역사교육사업이 대입시험에 한국사필수로 그친것을 넘어 중국과 일본처럼 국가적 무언가를 좀 했으면 싶다.

한국 역사에 관심있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독도 문제 만큼이나 광개토태왕비문 이 중요한 문제라는 인식이 널리 확산되어서 버려진 역사를 빼앗기고 나중에 땅을 치며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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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로 읽는다 리스타트 한국사 도감 - 한국사를 다시 읽는 유성운의 역사정치 지도로 읽는다
유성운 지음 / 이다미디어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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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를 다시 읽는 유성운의 역사정치

역사에서 정치를 읽고, 정치에서 역사를 읽는다

역사관련 책을 읽으며 길치였던 내가 지도를 자주 보게 되었다. 여전히 길은 헤매곤 하지만 역사서를 볼때 지도의 필요성은 충분히 깨닫게 되었다. '지도로 읽는다' 시리즈는 제목으로 일단 끌리는 책이었다. 역사와 지도 라는 불가분의 관계를 도감으로 표현한 책이라니 두말할필요없이 호기심이 일었다. 게다가 전에 읽은 '지도로 읽는다' 시리즈의 한 책이 일본저자의 책인줄 모르고 읽었다가 적잖이 실망했었는데 이번책은 저자에 대한 안심이 다시 한번 이 시리즈에 손을 내밀게 했다.

저자는 국내 유명 신문사의 기자다. 역사를 전공했으나 정치부 기자가 되어 이 두 분야가 자연스럽게 융합된 글을 쓸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책은 '중앙일보' 지면과 온라인에 연재됐던 글들을 대폭 보강한 것으로 역사적 사실을 좀 더 충실하게 다듬고 그래픽 지도와 도표도 보완했다고 한다. 칼럼을 묶은 대부분의 책들이 원래의 글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아 대부분 짧고 가벼운 경향이 있는데, 이 책은 내용을 보강하여 내실을 다진 성의가 확연히 티가 났다.

국내 역사서들이 대부분 조선사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듯이 이 책도 한국사도감 이라고는 하지만 한국사라기 보다는 조선사에 치중한 책이다. 총 6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장이 삼국시대, 2장이 고려시대 그리고 3장에서 6장이 조선시대이다. 애초에 칼럼식의 글이라 연대기식 서술이 아닌 주제에 따른 글의 모음이다보니 역사를 흐름으로 보기 보다는 중요한 포인트들을 상기시켜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서로다른 조각천을 이어붙인 한장의 조각보 이불 같달까. 하나하나 다른 조각천의 무늬처럼 제각각의 흥미로운 주제들이 툭툭 튀어나오니 굳이 아귀가 맞게 꿰어 맞추기 보다는 제각각의 이야기 자체만으로 재미있게 읽혀지는 책이었다.

우리는 흔히 단군의 자손이라고 말하지만, 삼국의 건국 시조 중 누구도 자신을 단군과 연결 지은 적이 없다. 왜 그럴까. 누구도 그런 의식이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한반도가 단일 세력이 아니라 토착민들이 석탈해처럼 외지에서 한반도에 들어온 여러 구성원과 함께 나라를 세우고 만들어갔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역사는 그런 다양성과 역동성 위에서 기초를 쌓아 올리면서 닻을 올렸다. (p. 29)

석탈해 설화와 시베리아 퉁구스족의 설화가 연결되고, 백제의 비류와 온조 건국 설화가 각각 다른 이유나 '왜' 라고 일컬어진 지역이 지금의 인식과는 다를 수 있다는 주장등 한반도에서 흥망성쇠를 이루었던 나라들의 발자취를 살피다 보면 우리의 시작이 얼마나 다양성을 포함하고 있었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그러고보면 '단일민족'이라는 환상을 품은지 얼마 안된 것 같은데 우리는 왜 그런 환상?!을 품게 된 것일까...

당 태종이 안시성을 함락시키지 못한 것이 아니라 연개소문의 숨은 지략 덕분일수도 있다는 것이나, 백제가 일본과 밀접한 관계라서 백제 멸망기에 일본원군이 왔던 것이 아니라 당시의 권력현황을 일본이 잘 파악했기 때문이라거나, 처용설화가 페르시아의 역사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등 신문에 실렸던 기사였던 만큼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풍부해서 읽는 재미가 있었는데, 이 밖에도

김<金)씨를 '금'이 아닌 '김'씨라고 발음하게 된 것은 우리 역사에서 아직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 중 하나다. 분명 한자 '金'은 '쇠 금'이라고 배우고 있는데, 김씨 성에서만 유독 '김'이라고 발음하기 때문이다. (p. 90)

쇠금 자를 쓰면서 왜 성씨에서는 김이라고 부르는 것일까 하는 의문 같은 역사적 상식을 흔드는 질문들 예를들어, 왕건의 훈요십조에서 호남차별을 유훈으로 남겼다고 볼 수 있을까, 서희가 정말 담판만으로 강동6주를 챙긴것일까, 일본이 고려를 신라와 마찬가지로 본 이유와, 세계를 재패한 몽골의 지배하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만큼 고려가 예외적으로 특별한 지위를 누리게 된 원인등 유명한 역사 이야기들이 당시의 배경을 알고 나면 전혀 다른 결론을 얻을 수 있다는 점들은 유익하기도 했다.

조선의 역사에 대해서는 조선 국왕, 조선 사림, 임진왜란, 조선 사회 로 나누어 역사적 흥미를 유발하는 이야기들을 풀어놓는다.

경복궁의 풍수를 둘러싼 맏아들 잔혹사와의 연관성, 자주국방의 대명사처럼 불리는 세종이 실제 행했던 사대외교가 현재 대통령 당선시 방미일정을 먼저 잡는 것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조선에서 개발된 연은개발법이 조선과 일본의 명운에 어떻게 상반된 영향을 주었는지, 금주령과 농업과의 관계, 이황의 자수성가로 부자된 스토리, 영화 남한산성에서의 역사왜곡 등 신선한 관점들이 흥미롭게 읽히면서도 사림파들의 논쟁점을 정리한 두 도표는 조선의 붕당을 깔끔하게 정리하여 알아두면 좋을 역사적 가치가 있었다.

'사칠논쟁' 과 '예송논쟁' 과 함께 조선 지성사의 3대 논쟁으로 꼽힌다는 '호락논쟁'의 결과에 따라 오랑캐라고 부르며 금수려 여긴 청나라에 대한 인식이 뒤바뀔 수 있다는 것을 보며 불필요한 논쟁인줄만 알았던 조선시대의 논쟁들이 새롭게 보이기도 하고, 양반이라는 단어가 처음엔 특권 계층이 아니라 그저 '관료집단'을 가리키는 대명사라서 대립개념은 무직자였을 뿐이었는데 후기로 들어오면서 변질된 배경이나 조총이 날아가는 새도 잡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것 같은 내용을 읽으며 명사의 의미를 새로 알게 되기도 했다.

임진왜란의 이런저런 뒷얘기들을 읽으면서 새로 알게 되는 것도 있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선조는 나쁜 임금인것 같다. 그 좋은 머리를 자신을 위해서만 쓰지 말고 임금답게 백성을 위해 썼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꼬.... 하긴 뭐 '만약에' 라는 가정을 역사에 세운다면 어디 한두군데 세우고 싶겠냐만은....

조선사의 비중이 크다보니 당연히 일본사에 대한 내용도 적지 않게 등장하는데, 최근 읽었던 '일본인 이야기' 가 생각나면서 예전보다는 좀더 일본의 역사적 이해관계를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그럼에도 여전히 일본은 우리와 너무나 달랐다는 것을 재확인하는 것이었지만...

흥미로운 주제들에 대해 기자다운 글빨로 쉽게 풀어진 이야기들은 재미있게 읽히면서도 현실정치를 생각나게 했다. 저자가 직접적으로 현실정치와 연결지은 문장들을 보면서 그럴때도 있지만 꼭 그런 문장들이 아니어도 역사라는게 워낙 현실을 반추하게 만들다보니... 예전엔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는 현실을 보며 한숨만 짓곤 했는데, 역사서를 읽으면 읽을수록 한숨뒤에 안심 혹은 기대가 생기곤 한다. 역사에서 하나도 배우지 못한것 같지만 아니다, 지금은 과거와 분명 다르다. 나는 언제부턴가 역사가 늘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역시 역사서는 꾸준히 읽어야 좋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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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SF #2
정세랑 외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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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는 지금 이곳 너머를 말하는 장르이지만

SF라는 장르는 지금 여기에 있다.

이 현재성이 갖는 가능성을 깊이 고민하여

오늘날 한국 SF를 가능한 한 모든 방향에서

충분히 말할 수 있는 책을 만들어 나가고자 한다.

-표지 뒷면 내용-

 

 

SF를 좋아한다고 하면서도 국내 SF작가들에 대해 내가 너무 무지했었구나를 알았다. 외국작가들의 SF소설에 빠져서 그 작가들의 상상력을 선망하면서 간혹 읽을 기회가 있었던 국내 SF작가들의 소설 몇 편들에 대해서는 마음속으로 응원의 박수를 쳤던 것이 어쩌면 그런 나의 무지가 저지른 오해였을 수도 있겠다. 우리의 SF는 아직 이라는 그런 오해?!

국내 유일의 SF 무크지 라는 타이틀을 보면서 정작 나의 눈길을 잡았던 것은 정세랑 이라는 이름 석자 였다. 최근 읽었던 '피프티피플' 소설에서 작가에게 홀딱 반해있던 터라 이런 작가가 편집위원인 잡지라면 믿고볼수 있는 책이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책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인트로 글에서 역시나 그런 믿음을 다질 수 있었다.

읽으면서 보니 이 책은 무척 다양한 장점을 갖고 있었는데 그러한 장점들이 모두 SF로 연결되어 있었다. SF잡지이니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겠는데 그 다양한 시도들이 책이 아니라 '잡지'라서 가능했겠구나 싶어서 '오늘의 SF'의 필요성이 자연스레 느껴졌다. 다양한 글자크기의 변형, 흑뱅의 조화 같은 편집틀의 신선함부터 소설을 중심으로 하면서도 에세이, 작가론, 인터뷰, 칼럼, 리뷰 등 국내 SF를 살펴볼 수 있는 다양한 형식의 글까지 모두 '미래적' SF 의 '지금' 현주소를 확인할 수 있게 해주어 뜻깊었다.

꽉 찼지만 한 손에 쥐이는 이 잡지가 아직 오지 않은 더 나은 날들을 볼 수 있게 해 주는 배율 적절한 망원경이면 좋겠다. (p. 9)

인트로글 속 정세랑의 이 한 문장 만으로도 '오늘의 SF'의 가치는 충분히 표현되었다고 보지만, 이 무크지를 처음 읽어본 나의 느낌들을 기념하며 사족이겠으나 그래도 조금 남겨놓아 보려 한다.

에세이 는 두 편의 글이 실려 있는데, 전삼혜의 '위치스 딜리버리'와 함께하는 분당산책을 쓴 전혜진의 글은 북리뷰인듯 아닌듯 SF소설에서 현실공간이 줄 수 있는 묘미를 새롭게 깨닫게 해주었고, 'SF를 쓴다는 것, SF작가로 산다는 것'을 쓴 박문영의 글은 수줍고 소심하지만 SF소설가로 살아가고 있는 솔직한 마음의 표현들이 SF가 아니어도 소설가로서 녹록치 않은 삶을 살아가고 있을 많은 작가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크리틱 코너에서는 '듀나론-모르는 사람 많은 유명인의 이야기' 라는 작가 듀나에 대한 작가론이 펼쳐지는데 글의 제목이 정말 적절하다 싶었다. '듀나' 라는 작가명은 나도 수차례 들어봤기에 유명작가는 맞는 것 같은데 정작 듀나의 작품을 읽어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는 작가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저자가 '듀나론' 이라는 글을 쓰기 위해 예전에 모두 다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작품 전체를 다시 읽는 데 꼬박 몇 달을 소요했어야 할만큼 듀나의 작품은 많았다. 지금까지 27년간 발표된 작품이 120편이니 앞으로 더 발표될 작품들까지 생각한다면 정말 대단한 작가이긴 한것 같다. 이름만 듣다가 이렇게 작가론까지 읽었는데 이제는 나도 듀나의 작품세계로 들어가봐야 하는 것이 맞는데... 현실적 시간의 제약이;;; 이 마음의 부채감을 어서 떨쳐낼 수 있기를!

인터뷰는 앞 뒤 로 두 편이 실렸는데 이다혜 기자가 만난 민규동 감독과 최지혜 편집자가 만난 김창규 작가의 대화이다. 민규동 감독이 늘 SF영화를 꿈꾸었다는 것을 알던 모르던 이다혜 기자의 인터뷰는 늘 맛깔나게 읽히는 재미와 톡쏘는 촌철살인 멘트가 여전히 매력적이었다. 김창규 작가의 작품들은 (미안하게도) 내가 몰랐던지라 읽어야할 책 목록을 더 두툼하게 채워놓는 것으로 미안함을 대신해본다.

이 책의 가운데 부분 두툼하게 검정종이로 인쇄된 부분들이 내가 고대하던 SF단편 들이 차지하는 곳이다. 검정바탕에 흰 글씨들이 SF라는 장르와 잘 어울리면서 생각보다 눈도 편안해서 더욱 즐거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었다.

정소연 작가의 '수진' 은 여섯명의 수진을 만나게 되는 미정의 삶이 로봇 이라는 SF적 소재를 아무렇지 않게 여길만큼 삶의 현실감들이 돋보였다.

문이소 작가의 '이토록 좋은 날, 오늘의 주인공은' 은 가능할 것 같은 아니 가능해졌으면 싶은 SF적 장례문화를 제시함으로써 '상상이 현실로 된 순간'들을 다룬 책을 생각나게 했다. SF소설에서 등장한 기술들을 과학이 연구했을때 그 시너지가 얼마나 큰지 우리는 체감하지 못하지만 알고나면 놀랄 것들이 그동안 많았고 앞으로도 더 많을 것이니 개인적으로 이 소설속 기술이 어서 개발됐으면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고호관 작가의 '0에서 9까지' 는 인트로글에서 정세랑 작가의 소개를 보며 가장 기대했던 작품이었는데 역시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SF소설을 읽으면서 이렇게 박장대소 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해준 작품이었다.

"사람이 아무리 자기 의지가 있다고 해도 뇌도 모종의 알고리즘으로 작동하는 거라 패턴을 보여야 하거든요? 선배는 안 그래요. 선배는 보통 사람과 달리 뇌에 그런 알고리즘이 없나 봐요. 선배는 무슨 짓을 해도 진짜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인 거예요. 어쩌면 진정한 자유의지를 지닌 사람일지도 몰라요. 진정한 자유인" (p. 98)

다시 생각해봐도 웃음이 절로 나온다. 물론, 나름 비애가 있긴 하지만... 무겁게 읽히지 않아 더욱 좋았다. 앞선 웃음들이 읽는이에 따라 소소했다면 아마도 누구나 마지막 멘트에 가서는 그야말로 한번 크게 웃게 될 것이다.

"간단합니다. 0과 1 중에서 아무렇게나 하나를 골라서 계속 입력해 주기만 하면 됩니다" (p. 115)

김혜진 작가의 '프레퍼' 는 단편소설이 줄 수 있는 서사의 매력을 잘 전달해준 작품이었다. 극한 상황 속에서 인간의 삶에 대한 본능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드는 메세지까지도.

손지상 작가의 '인터디펜던트 바로크' 와 배명훈 작가의 '임시조종사' 는 그야말로 실험적인 작품이란 무엇인가를 알게 해준 작품들이었다. 한번 읽고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지만, 나름의 독특한 뭔가 있어보이긴 하기에 다시 읽어봐야 겠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다시 읽게 될지 어쩔지는;;; 이 또한 무크지 라는 잡지의 매력이 아닐까. 골라 읽는 재미! ^^

황모과 작가의 '스위트 솔티' 는 SF가 미래사회만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재해석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자연파괴나 우주이주 같은 미래적 요소가 있긴 하지만 '난민' 이라는 현실적 주체들이 중심이 된 서사가 결코 미래적으로만 읽히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름과 언어의 다양성이 주는 자아의 개념에 대한 생각꺼리들은 SF소설을 읽으면서 지금현실을 되돌아보게 하는 매력이 있었다.

바다위에서 태어난 내게 사람들은 늘 출신을 물었다.

나는 배 위에서 태어났고 엄마와도 세 살 때 헤어졌으므로 출신은 바다거품나라도 어디도 아니고 바로 이 배라고.

엄마가 배 위에서 몸을 풀었고 나는 진주 라는 뜻의 '무티아라'라는 이름을 얻었다. (p. 173)

그녀가 나를 솔티라고 부르며 불평했다. 솔티라는 말 속에 바다 냄새가 묻어 있는 것 같았다.

매일 창고에 드나들면서 린다는 솔티라는 호칭 앞에 스위트를 붙이기 시작했다. 스위트 솔티. 그게 나의 새로운 이름이 되었다. (p. 188)

 

한민족의 등장과 부산이라는 현실공간이 한국을 연상케하면서 SF와 현실이 섞인 묘한 재미를 주고 있었는데 그런 현실감과 연결된 고향에 유달리 애착을 갖는 인간의 본능?!에 대해 되묻게 되는 것이 개인적으로 이 작품이 내게 남기는 메세지였다.

고향이 어디든 우리는 떠나온 존재였다. 언제든, 결국엔 떠나야 했다. 그리하여 또 다른 삶을 이어 붙여야 한다. (p. 197)

다양한 단편 소설들에 이어진 '칼럼' 도 다들 너무 괜찮은 글들이었다. 특히나 '한국 SF의 또 하나의 줄기, 순정만화' 라는 글은 그야말로 공감 백퍼!

한국의 SF는 1920년대부터 시작되어 1960년데 한낙원을 중심으로 여러 작가들에 의해 본격적으로 창작되었으며, 최초의 SF 작가 단체인 'SF작가클럽'이 1969년에 결성된 것만 보더라도 한국 SF의 역사가 짧다는 이야기는 하기 어려울 것이다. (p. 275)

PC통신 이라는 신물물이 등장한 시대부터 아마 본격적인 문학변동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만 보더라도 1988 과 1994 시리즈의 햇수는 불과 6년이지만 드라마가 보여주는 문화의 격차는 굉장히 크다. 그 중심에 PC통신이 있었다. SF라는 장르도 그와 무관하지 않았다.

한국 순정만화 작가들에게도 SF에 대한 역량과 열망은 무르익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를 증명하듯, 강경옥의 '별빛속에'(1987~1990)가 대성공을 거두었다. (p. 276)

'별빛속에'의 성공 이후 작가들의 열망과 시장성을 확인한 출판계의 수요, 그리고 순정만화 전문 잡지안 '르네상스'의 창간(1988)이 맞물리며, 한국 순정만화계에서는 SF걸작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다. 신일숙의 '1999년생' , 김진의 '푸른 포에닉스' , 김혜린의 '아라크노아' , 황미나의 '레드문' 등 순정만화의 거장으로 꼽히는 작가들이 줄지어 SF장편을 발표했다.

한국SF 순정만화에서는 역사와 왕권, 국가의 운명이나 반역, 전쟁과 같은 선 굵은 고전 영웅 서사의 형태로 변주되었다. 이들은 SF는 남성의 이야기라는 당대의 편견을 넘어, 적극적으로 여성 주인공들을 선 굵은 영웅의 운명으로 밀어 넣었다. (p. 277)

만화 평론에서 한국 순정만화 SF에 대해 적극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바로 이 시기, 이 작가들에 국한해서다. 마치 일부 거장만이 순정만화 속에 SF를 담아냈으며, 그것이 아주 특별한 경우였다는 듯이.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오히려 1990년대 중반에 접어들며 순정만화는 당시 대학강서 주목받던 여성학, 페미니즘의 영향을 받아 여성들이 창작하고 여성들이 향유하는 매체로서 그 깊이를 더해 간다. (p. 278)

순정만화는 여성의 장르로서 만화계 내에서도 차별을 받았다. 평단에서는 순정만화의 성취를 종종 무시했고, 출판사들은 여성작가와 남성작가의 원고료를 차별했다. 순정만화계에서 꾸준히 다양한 소재와 형태를 갖춘 SF작품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SF는 남성의 장르' 라는 근거 없는 믿음을 갖고 있던 일부 팬들은 '순정만화치고는' , 'SF의 탈을 쓴' 같은 경멸적인 수식어와 함께 '진정한 SF가 아닌 것 같다'라는 말로 깎아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순정만화는 SF를 통해서 차별받는 이들의 이야기에 먼저 주목했다. (p. 279)

일단, 이 칼럼을 쓴 전혜진 작가에게 박수를!

구구절절 어찌나 옳은 말이던지 ㅎㅎ 최근 순정만화 컬러링북을 통해 추억에 빠져있던 내게 다시한번 순정만화의 가치를 상기시켜준 글이었다. 강경옥의 '별빛속에' 는 내 책장 한켠에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는 순정만화 소장본세트 중 하나다. 르네상스 뿐만 아니라 댕기, 화이트 까지 만화잡지를 손꼽아 기다리던 시절, 강경옥을 비롯한 신일숙, 김진, 김혜린, 황미나 등의 작품들을 얼마나 즐겨 읽었던가. 만화방에 가면 으례 순정만화코너가 여성전용자리 인것처렴 여겨지곤 했다. 수많은 무협지들과 챔프만화들 속에서 작게나마 마련되있던 순정만화코너가 어찌나 좋았던지 지금도 가끔 만화카페에 가게되면 순정만화 코너를 찾아보곤 한다. 여하튼, 나를 SF의 세계로 입문시켜준 것은 순정만화였다.

SF소설을 즐기는 이라면 한번쯤 언급하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을 '스타워즈' 시리즈를 생각나게 하는 'SF와 과학기술 그리고 우주개발' 이라는 유만선의 칼럼 과 'SF와 여성의 몸, 모호함을 선명하게 그려내다' 라는 이은희의 칼럼도 인상적이었지만 뭐니뭐니해도 이 책에서 내가 가장 좋았던 글은 전혜진의 칼럼이었다. ㅎㅎ

도대체 아이를 낳아 기를 일이 없는 로봇들이 여성형이라는 이유로 자록한 허리와 넓은 골반을 가진 형태로 디자인될 이유가 무엇이며, 볼링공처럼 커다란 가슴을 매달고 있을 이유는 또 무엇일까. 많은 SF영화와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남성형 로봇들이 꽤나 다양한 형태로 변주되는 것과는 달리, 여성형 로봇들은 둥글고 부풀어 오른 가슴과 엉덩이의 로봇들을 굳이 성적이형을 닮도록 따로따로 디자인하는 것 자체가 쓸데없는 자원 낭비에 가까움에도, 굳이 여성형에게만 전형적인 신체적 특징을 부여하는 것은 무슨 심보일까. 남성형 로봇에게서 남성 신체의 가장 전형적인 특징인 외부 성기는 굳이 감추어 평평하게 만들면서 여성 신체의 특징을 한껏 적나라하게 드러낸 여성형 로봇의 몸을 만들고, 로봇이라는 이유로 더욱 거리낌없이 그 융기들을 드러내게 한다.

이제는 안다. 인간을 인간이 아닌, 여성이라는 성별의 한 부류로만 바라볼 때, 얼마만큼 인격을 거세하고 존재 가치를 유린할 수 있는지 말이다. 이렇게 여성의 몸에 덧씌워진 지나친 생식주의적 관점은 나아가 재생산으로 이어지지 않는 성적인 행동을 모두 불결하고 무가치한 것으로 전락시키며, 이러한 행동을 하는 여성의 몸 역시도 그와 비슷하게 가치 없는 것으로 대우해도 상관없다고 여기게 한다. (p. 294)

이 무크지를 읽기전 가장 기대했던 코너는 단편소설들이었지만, 읽으면서 가장 인상적이고 읽고나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 칼럼의 글들이었다. SF분야는 그야말로 이루어지지 않은 가상의 세계를 다루기에 현실에서 문제라고 여겨지던 것들을 고칠수 있는 세계이자 미래에서 있었으면 싶은 것들을 이루어내는 세계이다. 따라서 어쩌면 가장 지금의 현실을 가장 잘 표현해줄 수 있는 것이 SF소설이 될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로봇의 여성형 신체에 대한 생각은 그동안 너무나 무의식적으로 자연스레 받아들여왔구나 싶어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어슐러 르 귄 의 '어둠의 왼손' 에서 처럼 무성의 존재를 로봇 형태로 생산하지 않았던 지난 시간들은 결국 권력때문이었던 것일까...

가장 마지막 코너인 '리뷰'는 5편의 신작SF에 대한 서평들인데, 책을 읽고 서평쓰기를 즐겨하는 내게 전문적인 '북리뷰'란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는 듯 했다. 그리고 역시나 찾아온 깨달음, 내가 갈길이 멀구나;;;

비정기적 무크지 이기에 '오늘의 SF' #3 이 언제 나올지는 알수 없다. 하지만 SF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 무크지를 차례 한장만 봐도 한코너만 읽어도 그 소중함을 충분히 알게 될 것 같다. 소설을 읽는 재미뿐만이 아니라 SF의 다양한 모든 면들을 두루 살펴볼 수 있게 해주는 글을 통해 잡지만이 줄 수 있는 매력을 십분 발휘하고 있는 이 무크지가 앞으로도 꾸준히 발행될 수 있기를 마음으로 열렬히 응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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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갑생의 바퀴와 날개
강갑생 지음 / 팜파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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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땅의 길을 다니는 비행기, 자동차, 기차까지

우리가 알지 못했던 재미있는 교통 이야기

 

 

운전면허는 커녕 자전거도 제대로 못타는 나로서는 교통수단에 대해 아는 것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하지만 과학적 관점에서 교통수단의 발달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영역이다. 그러던차에 교통전문 기자가 쓴 책이라고 하니 가독성은 보장된다고 볼수 있어 관심이 생긴 책이다.

저자는 사회부기자로 신문사에 첫 발을 내디뎠다. 건설교통부에 출입하는 기자들은 두 가지 분야로 나뉘는데, 건설은 경제부에서 교통은 사회부에서 맡는다고 한다. 기자를 꿈꾸던 시절 사회부나 정치부 기자를 그리던 저자가 교통분야로 발령받았던 순간은 뜻밖이었지만 하면할수록 교통분야에 빠져들어 교통관련 대학원공부까지 하고 지금은 명실상부한 교통전문 기자로 불리게 되었다. 관련 공부를 하면서 동시에 발로 뛰며 취재를 하던 저자가 '바퀴와 날개' 라는 연재 칼럼을 쓰게 됐고 그런 기사들이 쌓여 이렇게 한 권의 책이 되어 나왔다.

바퀴와 날개 라는 제목에서 연상되듯이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교통수단들은 크게 3가지로 구분된다. 비행기와 철도와 자동차 이다. 칼럼식 글의 모음이라서 한편한편 독립적인 글들은 교통수단의 발달사를 돌아보기도 하고 미처 몰랐던 속사정을 알려 주기도 하고 미래를 위해 고민해야할 지점들을 일깨우고 있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호기심을 유발하는 통통 튀는 주제들이 재미있게 읽히는 책이다.

기내식에도 자본주의 논리가 극명하게 적용되고 있다는 것, 다른 직업들도 그랬겠지만 승무원도 남성이 최초였다는 것, 활주로의 폐기물이 엄청나고 처리과정은 더 엄청나게 중요하다는 것, 수하물이 나오는 순서는 그야말로 복불복 이라는 것, 항공기 탑승 후 하기 를 처벌하는 개정안이 20대국회에서 임기 만료로 폐기되었다는 것, 항공유를 피치 못하게 공중에서 버려야 하는 경우가 발생해도 기화되기 때문에 환경오염을 일으키지는 않는다는 것 등 비행기 관련해서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았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버드 스트라이크 관련한 내용이었다.

사실 얼핏 생각해보면 엄청난 크기의 항공기가 자그마한 새와 부딪친다고 무슨 충격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는데요. 연구 결과는 전혀 다릅니다. 무게 1.8kg 짜리 새가 시속 960km로 날고 있는 항공기와 부딪치면 64톤 무게의 충격을 주는 것과 같다는 겁니다. 그야말로 엄청난 흉기로 변한다는 의미인데요. 다행히 순항 중인 경우에는 고도가 높아 버드 스트라이크가 일어날 가능성은 크지 않습니다. (p. 33)

막상 하늘을 날때는 괜찮은데 이착륙시 새와 부딪칠 확률이 높아 공항주변에 새들을 쫓기 위한 방법이 정말 다양하게 필요하겠구나 라는 공감도 그렇지만 그 충격이 저렇게 어마어마한줄은 몰랐다. 종다리 같은 작은 새 한마리가 수십톤의 충격을 줄 수 있다니... 하늘길을 새와 나누어 써야하는 비행기 입장에서 앞으로도 계속 고민스러울 것 같다.

철도이야기는 거의 기차의 역사를 읽는 기분이었는데 특히나 기찻길이 북한을 통과하게 되면 시베리아횡단열차와 어떤 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에 대한 언급이 자주 있어서 이 책이 신문기사에서 바탕한 것임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철도에 대한 다양한 전문적 상식을 많이 배울 수 있어 좋기도 하고 우리나라 철도의 시작이 일제시대때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그때의 상흔을 알면서도 계속 이용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기도 했다.

의외로 자동차에 대한 분량이 가장 적었는데 아마도 가장 많이 사용되는 교통수단이다 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많이 알고 있으리라 예상되어서 그런것 같다. 하지만 역시나 전문가다운 속얘기를 많이 풀어놓아 주어서 대부분 신선하게 읽히는 내용들이었다.

외국에는 비보호 좌회전이 흔하지만, 국내에서는 상대적으로 많이 활용되지는 않는 듯합니다. 그런데 4색 신호등은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교통신호의 통일성을 규정하는 비엔나협약(1968년)과 맞지 않는다는 점인데요. (p. 253) 국제적으로 가장 많이 활용하는 게 3색 신호등이라면 우리도 통일의 필요성을 고려해볼 필요는 있어 보입니다. (p. 254)

우리나라 신호체계가 외국과 다르다는 점은 몰랐는데 그밖에도 고속도로 대부분을 관할하는 한국도로공사에서 드론을 띄워 교통법규 위반 차량을 적발하고 있다는 것이나 직진과 우회전 차량이 맨 바깥쪽 차로를 함께 쓰는 도로에서 적색 신호에 정지해 있는 직진 차량의 뒤에서 우회전 차량이 경적을 울리며 비켜달라고 할때 직진 차량이 정지선을 넘어서 움직이면 신호위반으로 벌금을 물게 된다는 것등의 다양한 내용들은 운전자들이 알아두면 유익할 내용들이기도 하지만 비운전자인 내가 알아두어도 좋을 내용들이었다.

자동차 관련 미래문제는 아무래도 자율주행차 와 스마트 톨링 같은 첨단 기술의 현실적용 방안이었다. 비행기나 기차에 비해 변화의 체감이 직접적으로 느껴지는 자동차관련 고민거리들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논쟁이 필요해 보인다.

교통수단에 대해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흥미용으로, 교통문제에 대해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생각용으로, 교통시스템에 대해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이해용으로 등등 다양한 호기심들이 충족될 이 책은 제목 그대로 '바퀴와 날개' 에 대한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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