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의 오리진 - 아리스토텔레스부터 DNA까지 다윈의 ‘위험한 생각’을 추적하다
존 그리빈.메리 그리빈 지음, 권루시안 옮김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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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부터 DNA까지 다윈의 '위험한 생각'을 추적하다

'오리진'은 기원을 뜻한다. '00에 관한 오리진' 이라고 하면 어떤 '기원'을 추적한 내용을 예상하면 된다. '진화의 오리진'이라고 해서 인류진화에 대한 유구한 세월을 탐구한 책인줄 알았다. 하지만 그보다는 '진화론' 자체의 생성과 발달에 대한 책이었다. 다시말하자면, '진화론'의 '기원'에 대한 책이다.

목적이 '진화론' 이라고 심플하게 정리되듯이 차례도 심플하다. 고대/중세/현대 이렇게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구분은 단어그대로의 시간을 의미한다고 보긴 힘들다. 고대/중세/현대 순서로 서술되긴 하지만 책의 전반적인 내용은 '다윈의 진화론' 이 등장한 시대를 전후한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라서 단어 자체의 시간적 개념보다는 진화론이 등장하기 전이 고대 이고 등장한 시기가 중세이고 인정된 이후의 시대가 현대 라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할 듯 싶다.

다윈의 진화론이 등장하기 이전 시기인 '고대'에서는 지질학적 배경이, 다윈의 진화론이 등장한 '중세'시기엔 진화 자체의 의미가, 다윈의 진화론이 널리 인정된 '현대' 시기엔 진화론을 뒷받침하는 DNA연구가 주 내용을 이룬다. 무엇보다 '다윈의 진화론'에 얼킨 고정관념을 차근차근 확인하고 수정하며 보완하는 것이 이 책의 핵심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진화 이론에 관한 다윈의 위대한 책이 출간된 1859년 무렵, 진화는 널리 사실로 받아들여져 있었고 이미 수십년 전부터 과학자들이 본격적으로 논의해오고 있었다. 다윈의 특별한 공로는 진화의 매커니즘을 설명했다는 것이다. 그 매커니즘은 바로 자연선택이다. (p. 9) 1859년에 이르러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라는 생각은 때가 무르익어 있었고, 다윈과 월리스가 생각해 내지 않았다면 다른 누군가가 오래지 않아 생각해 냈을 것이다. 어쩌면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월리스의 친구 헨리 베이츠였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쩌다가 상황이 바뀐 걸까? 그리고 진화의 기원 이야기에서 왜 월리스가 아니라 다윈이 주인공이 되었을까? 이게 바로 이 책이 풀어나갈 이야기이다. (p. 10)

저자는 첫장부터 '다윈의 속설을 깨부수다' 라며 '진화론' 하면 '다윈' 하고 떠오르는 고정관념에 대해 돌멩이를 던진다. 역사에 길이남을 발명과 발견은 결과론적으로 기억되기 마련이지만 모든 발명과 발견엔 다 그 이전의 선배들의 노력과 실패와 확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저절로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 알게되는 것은 없다. 이런저런 상황이 무르익게 되어 나온 발명과 발견은 다 나올만해서 나온 것이다. 다윈이 아니었더라도 그 시기의 누군가가 '진화론'이라는 이론을 정립할 수 있었을 거란 말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윈의 업적이 추락하는 것은 아니다. 상황이 아무리 무르익었어도 본인의 노력과 연구가 없었다면 새로운 이론을 생각해낼 수는 없었을 것이므로.

이 책은 사실 진화 자체의 기원에 관한 책이 아니라 진화라는 관념의 기원에 관한 책인데, 그렇다고 제목을 그렇게 지으면 그다지 입에 착 붙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p. 12) 이 책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는 진화에 관해 생각해냈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사람을 모두 설명하려 하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불완전하다. 그러나 그중 주요 인물들을 집중 조명함으로써 이 이야기가 다윈 이전과 이후에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보여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p. 13)

'진화론' 하면 '다윈' 이지만 저자는 '다윈의 진화론'에 대해 그리 많은 내용을 할애하지 않는다. 다윈 보다는 그 주변의 인물 혹은 그 이전 과 이후 의 인물들과 연구들을 통해 '다윈의 진화론'을 새롭게 인식할수 있도록 배경설명을 주로 한다. '다윈의 진화론'의 기원을 풀어낸 책이지만 '다윈의 진화론'은 나오지 않는다고나 할까.

엠페도클레스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반박을 시작으로 고대부터 있었던 진화론적 생각들은 아낙시만드로스 - 에피쿠로스 - 루크레티우스 등 에게서 그 기본개념들을 찾아볼 수 있고 이슬람 학자들에게서도 '자연 속에서 인류가 차지하는 위치에 대해, 또 살아 있는 종 간의 관계에 대해 본격적으로 생각한 사람들(p. 25)' 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기독교가 사회의 주요 사상이 되면서 '진화'에 대한 생각은 불경시 되었다. 그러다 '지질학'적 증거들로 인해 다시 서서히 새로운 생각들이 차근차근 토대를 만들어가기 시작한다. 화석과 토층이라는 지질학적 증거들은 '진화'의 개념을 자연스럽고 논리적으로 이끌어내게 되었다. 그리고 다윈도 생물학자가 되기 전에 '지질학자'로 출발했었다.

로버트 훅, 칼 폰 린네, 존 레이, 샤를 보네, 모페르튀이, 디드로, 몬보도, 뷔퐁, 푸리에, 베누아 드 마예 등의 학자들의 연구 내용은 때론 사회적으로 논란을 일으키기도 하고 무시를 당하기도 했지만 여하튼 이러한 연구들이 쌓여갔기에 다윈의 이론적 토대가 세워질 수 있었다. 무엇보다 다윈의 할아버지 이래즈머스 다윈 또한 당대의 진화론적 연구들에 동의하며 자신의 연구에서도 진화론적 결과를 도출해냈었다. 이 모든 '진화'적 사고방식의 바탕에는 '지구의 나이'에 관련된 연구들이 밑바탕이 되었다. '찰스 다윈은 라이엘의 지질학을 신봉하는 사람이었다.(p. 97)' 비글호의 탐험결과는(지진으로 인한 변화 및 바닷가에서 관찰한 융기의 증거들 등등) '젊은 지질학자' 다윈을 학계에 등장시켰다. 진화론은 한참후에 등장하게 된다.

라마르크, 퀴비에, 후커, 라이엘, 헉슬리 등 '다윈의 진화론'에 지분이 있는 쟁쟁한 학자들이 여럿이지만 그중에서도 단연 으뜸은 '월리스'다. 월리스와 다윈은 거의 비슷한 시기에 각자 '자연선택'이라는 진화론적 새로운 개념을 생각해냈는데 다윈에 비해 가려져있는 '월리스'에 대해 저자는 자세하게 그의 활동을 풀어낸다. 다윈이 월리스 소식을 듣고 선수를 쳤다거나 월리스가 인정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거나 등의 소문은 소문일뿐 진실과는 좀 달랐다. 둘은 서로를 존중하고 존경했으며 솔직하게 소통했다. 다윈은 월리스를 지지하고 경제적으로 돕기위해 신경쓰기도 했고 월리스는 죽을때까지 다윈보다 더 적극적인 다윈주의자로 살았다.

'현대'로 구분된 3부의 내용은 앞선 내용들에 비해 맥락이 갑자기 뚝 끊기는 느낌인데 멘델의 유전법칙을 시작으로 DNA연구가 어떻게 발전되어 왔는지 살펴본다. 여하튼, '진화라는 시간 척도에서 볼 때 유전자가 염색체 사이에서 재배치되는 일은 수시로 일어나며, 이로써 자연선택이 작용하기 위한 변이가 늘어나면서 진화를 일으키는 두 가지 새로운 깨달음으로 이어졌다. 둘 중 어느 것도 다윈과 월리스의 업적을 훼손하거나 신뢰도를 떨어뜨리지 않는다. 자연선택은 두 사람이 발견한 바로 그 방식으로 변이를 바탕으로 작동한다.(p. 299) 그러나 다윈도 월리스도 (또 19세기의 누구도) 자연선택의 바탕이 되는 변이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정확하게 알지 못했고, 새로운 깨달음이 생겨난 것은 바로 이 부분이며 오늘날 최고로 인기 있는 연구 주제가 됐다.(p. 300)' 며 다윈의 진화론과 현재의 DNA연구를 연결지어볼 뿐이다.

우리의 관점으로 볼 때 여기서 받아들일 부분은 진화의 과학적 이해는 21세기의 20년대에 들어가고 있는 지금도 여전히 진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윈과 월리스는 자연선택의 역할을 정확하게 이해했지만, 복잡한 생물체들은 단백질의 표현 방식을 후성유전적으로 제어하는 유연성 덕분에 재난에 대처할 여지를 얻는 셈이다. (p. 311)

완전체적인 창조에서 '진화'라는 개념이 자리잡기 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탄생한 진화론은 여전히 진화하고 있다. 그리고 어쩌면 저자의 말마따나 '진화 이야기는 막 시작됐을 뿐인 것 같다.(p. 312)' 왜냐하면 '진화'가 과학적 상식으로 여겨지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고, '진화'라는 개념을 인정하고 난 후의 진화이야기는 더더욱 얼마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화가 사실'이라고 받아들여지기까지의 과정이 '진화의 오리진'이었다면 앞으로의 연구들이 진정한 '진화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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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탐험 - 너머의 세계를 탐하다
앤드루 레이더 지음, 민청기 옮김 / 소소의책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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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진 것 너머의 세계로 떠난, 선을 넘은 사람들의 이야기!

끝없는 인간의 호기심과 열망이 만들어낸 놀랍고도 위대한 탐험의 역사!

인간은 진화의 최종산물이기 이전에 탐험의 종족이다. 인간은 지적생명체이기 이전에 떠돌이이고 방랑자이다. 영장류 중에서 아니 전 생명체 중에서 인간만큼 끊임없이 새로운 지역으로 떠나는 종족이 또 있을까? 미지의 세계에 대한 불안보다 호기심이 앞서는 유일한 생명체가 아마도 인간이 아닐까 싶다. 그랬기에 아프리카대륙에서 태어난 호모사피엔스는 전 지구에 퍼져 살게 되었다. 탐험은 곧 생존본능이었다. 인간에게 있는 이 탐험에 대한 욕망이 지금의 인간을 있게 했다. 이 책은 그러한 '인간의 탐험'에 대한 책이다.

모든 탐험은 결국 미래에 대한 투자다. 인간이 우주 진출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은 대부분 미래 세대가 누리게 된다. 역사적으로 인간이 한계를 넘겠다고 마음먹을 때마다 항상 그랬다. 왜 지구 밖으로 탐험을 떠나야 하느냐고 묻는 것은 인류의 조상에게 왜 아프리카의 리프트 밸리를 떠나야 했느냐고 묻는 것과 같다. 별달리 부족한 게 없는데도 왜 떠나야 하는 걸까? 그것은 언덕 너머에 새로운 먹을거리가 있을 수 있고, 우리가 당면한 문제들에 대해 미지의 세계를 탐험해야만 얻을 수 있는 해답이 있기 때문이다. (p. 9) 이 책은 탐험이 어떻게 인류를 풍요롭게 만들었는지 살펴보는, 발견과 모험, 부와 정복, 편견과 관용의 이야기다. (p. 10)

총 4부로 구성된 이 책은 선사시대 인류의 이동과 중세 대항해시대를 거쳐 지구의 오지탐험이 어떻게 우주탐험으로까지 연결되는지를 보여주는 인간의 대장정을 다룬다. 개인적으로 역사를 다룬 1부와 2부가 재미있었지만, 저자가 역점을 둔 것은 우주탐험에 대한 희망과 열망을 담은 3부와 4부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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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탐험에 대한 역사를 다룬 책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 이 책은 연대기적 서술이면서 아니기도 하다. 인간의 역사를 관통하는 탐험에 대해 모든 발견 모든 시간을 다룬다기 보다는 큰 획을 그은 몇 가지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류의 탐험 역사에게 가장 놀라운 업적은 아마도 하와이와 이스터 섬, 뉴질랜드를 연결하는 '폴리네시아 삼각지대'에 정착한 일일 것이다.(p. 35)' 라는 저자의 말에 공감한다. 언제부턴가 외딴섬이나 밀림지역에서 헐벗은 차림으로 살고 있는 수렵채집민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점은 '야만인'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그들이 이루어낸 탐험의 업적은 그야말로 엄청난 지혜와 기술이 뒷받침된것이었다. 나침반이나 총칼 없이는 어떤 탐험도 시작하지 못하는 우리네가 그들의 입장에서는 더 무지해 보일수 있음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페니키아, 고대이집트, 고대그리스인들의 지리적 탐험은 상식으로 알려진 수준 이상의 엄청난 정보들을 그때 '이미' 알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고대인이 얼마나 세계를 넓게 돌아다니고 알았는지 읽는 과정은 정말 무척이나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보통 '대항해 시대'라고 하면 유럽인이 배를 타고 해상 무역이 발달하지 않은 낙후된 세계로 들어가는 모습을 떠올린다. 그런데 사실 유럽인이 갔던 곳에는 이미 잘 짜인 해상 무역망이 존재했으며, 유럽인의 모험도 실제로는 더 큰 대포로 무장한 채 많은 사람이 살고 있는 지역을 정복하러 갔던 것이다. (p. 138)

고대 중국은 스스로를 로마 제국과 서로 지구반대편에서 세상의 균형을 맞추고 있는 나라고 생각했으며, 인구와 경제력 측면에서 로마와 거의 대등했다. (중략) 결국 멸망한 로마와 달리 중국의 고대 문명은 본질적으로 언어와 문화, 유산이 거의 온전히 유지된 채 왕조에서 왕조로 이어지며 발전을 거듭했다. (p. 145)

부유한 중곡과 대조적으로, 당시 유럽은 여전히 흑사병의 참화에서 회복중인 보잘것없는 변방이었고 전체 인구의 3분의1이 줄어든 상황이었다. 유럽은 끊임없이 서로 다투는 수백 개의 작고 호전적인 나라로 조각조각 나뉘어 있었다. (p. 157)

커다란 돛을 펼친 웅장한 범선이 유럽의 대항해시대를 이끈 것처럼 우리는 생각해왔지만 알고 나면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당시 인도의 교역망은 이미 세계적이었고 중국의 물자는 풍부했다. 서양인들은 건너건너오는 인도와 중국의 물품들을 보며 선망했고 인도와 중국을 찾아나섰지만 볼품없는 배들로 천신만고끝에 힘들게 찾아간 인도와 중국에서 서양인들이 내민 물품은 너무나 형편없고 보잘것 없어 무시당했다. 서양인들에게는 교역으로 내놓을만한 변변한 물품이 없었다. 그러니 인도와 중국이 가진 것들을 무력으로라도 빼앗아야 했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대포와 학살과 정복이었다. 평화로운 교역은 시작부터 불가능했다. 말이좋아 대항해시대 이지 결국 전세계를 대상으로 한 약탈전의 시작이었다. 이는 십자군전쟁때와도 다르지 않았다. 그중에서 가장 포악한 약탈자가 콜럼버스 였다.

콜럼버스를 후원하기 위해 왕궁이 보석을 팔았다는 유명한 일화와는 달리, 두 국왕이 한 일은 팔로스 데라 프론테라는 작은 항구에 명령을 내린 것이 전부였다. 항구 마을의 빚을 탕감해주는 대신 콜럼버스에게 선박과 선원을 제공하게 했던 것이다. 팔로스에서 콜롬버스에게 제공한 세 척의 배는 과연 바다를 항해할 수 있을지 의심될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다. (p. 194)

콜럼버스는 이때 다시한번 카리브해의 신기한 물건을 들고 스페인 왕궁에 갔지만, 이번에는 반응이 훨씬 더 냉랭했다. 몇년 동안 찾아다녔는데도 아직 그곳이 아시아라는 근거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p. 200) 한편 행정가로서 콜럼버스의 무능은 점점 더 심해졌다. (중략) 특사는 콜럼버스가 식민지를 통치하기 위해 고문과 폭력을 사용하고 엄청난 숫자의 원주민을 노예로 만들었다고 보고했다. (중략) 콜롬버스는 죽는 순간까지 자신이 발견한 땅이 아시아 대륙이라고 믿었다. 반면 다른 사람들은 이미 오래전에 그가 발견한 신대륙의 정체를 파악하고 있었다. (p. 201) 노예제는 콜럼버스가 처음 만들지 않았지만 그가 남긴 유산의 일부였다. (p. 202)

한때 콜럼버스가 위인전에 빠지지않고 등장하며 대항해시대의 대표적 위인으로 추앙받았었다. 하지만 최근 역사에서는 그에대한 재평가가 진행중인 듯 하다. 다른 역사서에서도 콜럼버스의 항해와 탐험은 여러 문제점이 있음을 지적당하고 있는것을 읽은적이 있는데, 이 책에서 또한 콜럼버스의 탐욕과 무능을 읽으며 그때 그장소에 첫발을 내디딘 사람이 콜럼버스가 아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헛된 생각을 해보게된다. 여하튼, 이 문제많은 대항해시대는 유럽을 일으켜세우고 다른대륙을 짓누르며 세계를 하나로 묶어가게 된다. 인간의 발이 닿지 않은 곳은 이제 극지방을 제외하곤 거의 없다시피했다.

유럽이 중국과 다른 길을 걷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지리적 여건도 하나의 답이 될 수 있다. 중국의 영토는 같은 방향으로 두 개의 거대한 강이 흐르는 광활한 평원인 반면, 유럽은 해안선이 엄청나게 길고 수많은 만과 포구, 해협이 있는 들쭉날쭉한 반도다. 유럽의 강은 사방으로 흐르면서 40여 개의 지역해와 만난다. 유럽의 수로와 산맥, 삼림은 대륙을 자연스럽게 여러 지역으로 나누며, 그로 인해 무역이 일어나기 좋은 환경이 형성된다. 중국은 하나로 통일된 대제국이었지만 유럽은 서로 끊임없이 충돌하는 작은 국가들의 집합이었다. 그래서 유럽에서는 치열한 경쟁이 계속되었고, 그러한 경쟁이 기술이나 경제 발전을 촉진했다. 수많은 발명품이 중국에서 나왔지만 유럽의 각국은 남보다 앞서나가기 위해 그 발명품들을 더욱 완벽하게 다듬었다. 중국은 황제가 다스리는 제국이었던 탓에 혁신에 따른 보상이 없었지으므로 수백년간 정체될 수밖에 없었다. 반면 유럽에서는 우위를 점하기 위해 저마다 끝없이 노력해야 했다. (p. 226)

제레미 다이아몬드의 <총균쇠>를 읽으며 지리적 환경의 중요성을 정말 깊이깊이 깨달았었다. 유럽과 중국의 발전사에 대한 대비점또한 '지리'의 효과는 엄청나게 다른 결과를 만들어냈다. 사방이 뚫렸으나 지중해라는 닫힌 바다안에서 유럽은 작은 도시국가들의 각축전이 끊임없이 벌어졌고 이러한 경험들이 쌓여 결국 다양한 발전을 이루었다. 하지만 한쪽은 거대한 중국 한쪽은 거대한 태평양이라는 환경이 전부였던 한반도는 그런 자극들에서 수천년간 비껴나있었기에 다른 역사를 만들어올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배경은 역사의 우열을 가리지 말고 자연스런 흐름에서 이해해야 할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탐험은 이제 단순히 세상을 발견하는 것만으로 부족했다. 세상의 진면목을 발견하는 것이 탐험의 의미가 된 것이다. (p. 251)

인간은 극지방에 깃발을 꽂았고 하늘을 비행하며 온 지구를 날아다니게 되었다. 이제 인간이 가지못한 곳은 '우주' 뿐이었기에 우주탐험의 시대가 열렸다. 하지만 현재적인 가치생산이 없는 우주탐험은 아무나 쉽게 할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기에 시작이후부터 내내 다양한 한계에 부딪혀오고 있는 중이다.

NASA는 예산이 80퍼센트가 깎이는 바람에 어려운 선택을 해야만 했다. 원래 계획은 달에 영구적인 기지를 건설하고, 지구 궤도는 도는 우주정거장을 건설하고, 우주선으로 소행성과 금성을 근접 통과하고, 재사용이 가능한 우주선을 제작하고, 화성을 탐사하는 등의 임무를 계속진행하는 것이었다. 1980년대까지는 모든 계획이 예정대로 진행되었고 1990년 이전에 탐사선을 화성에 착륙시키려는 계획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하지만 예산이 삭감될 위기에 처한 NASA는 여러 계획 중에서 하나에만 집중하기로 했는데, 결국 재사용이 가능한 우주선 사업이 선택되었다. (중략) 전 세계적으로 우주개발의 목표는 국제우주정거장에 국한되었다. 그것이 최선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밖에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주의 다른 천체를 탐험하는 임무는 무인 우주선이나 미래 세대의 탐험가들에게도 넘어갔다. (p. 298)

'탐험의 역사'를 술술 설명하는 것을 보며 저자가 역사학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수도 있지만, 사실 저자는 항공우주 엔지니어로 미국의 민간 우주개발 업체인 스페이스X의 총괄 관리자다. 저자의 전문분야는 역사가 아니라 우주라는 얘기다. 따라서 과거의 '탐험'이야기들은 어찌보면 인간의 탐험에 대한 욕망을 설명해내는 과정이고 궁극적으로 이 욕망을 펼쳐내고 싶은 분야는 '우주탐험'이라고 볼수 있다. 우주탐험의 시대가 열리는 순간 저자의 전문적인 식견들이 마구 쏟아진다.

오늘날 우리 앞에 놓인 위험은 과거보다 크지 않으면서도 결코 적지 않은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인류의 영역을 넓히고 같은 목적으로 인류를 통합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영역을 밖으로 넓히는 것이다. 과연 인류는 이런 사명을 외면하고 탐험을 포기하게 될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중에는 언제나 방랑자들이 있을 것이다. (p. 394)

'탐험의 역사에서 인류가 배운 것이 있다면, 지금까지 아무도 해본 적이 없는 일을 하려고 노력할 때 놀라운 일이 생긴다는 것이다. 우리 선조들이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려 하지 않았다면 인류는 지금까지도 아프리카의 리프트 밸리에 갇혀 있는, 흥미롭긴 하지만 대수롭지 않은 생물종에 그쳤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굳은 의지로 불가능에 도전해 스스로 미래를 개척하고 후손을 낳은 탐험가들의 후예다. 우리에게는 정말 놀라운 일을 해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중요한 것은 하고자 하는 의지다.p. 397)' 라며 저자는 우주탐험에 대한 인류의 의지를 북돋우려 애쓰고 있다. 대중의 우주탐험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고 정치적 필요성도 줄어들면서 우주탐험은 그야말로 '예산'이라는 현실적 장벽에 가로막혀 있기에 저자의 부추김은 때론 안타깝기까지 하다. 저자의 이 절절한 우주탐험 필요성을 읽으며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가 생각났다. 수십년전의 칼 세이건도 '예산'장벽에 대해 절절한 안타까움을 토로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순수한 우주에 대한 열망이 참 아름답게 다가왔었더랬다. 그때의 순수함과 지금의 필요성이 합쳐져 '우주탐험'의 시대가 제대로 열리길 진심으로 응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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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이야기 - 신들과 전쟁, 기사들의 시대
안인희 지음 / 지식서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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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유럽을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할 36가지 중세 이야기

책을 좋아하고 독서를 즐겨하다보니 이런저런 책을 꽤많이 읽게 됐는데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고전읽기로 연결됐었더랬다. 고전을 읽으려다보니 서양의 역사를 중심으로 한 이런저런 인문학 책들을 읽게 됐고 그러다보니 고대문명-고대그리스-고대로마 관련 책들을 다수 읽게 됐다. 그렇게 서양사를 중심으로 한 세계사책들로 또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중인데 '중세'관련 책을 읽어야 할 시점인 요즘, 마치 내맘을 읽은 것처럼 딱 필요한 '중세' 이야기 책이 나와서 반가웠다. 이건 반드시 읽어야 해~! 하는 느낌이 팍!! ㅎㅎ

문화사는 언뜻 소프트한 영역처럼 보이지만 실은 다루기가 매우 어렵고 까다로운 분야다. 인문학의 각 영역을 어느 정도 총괄하는 지식과 안목이 없이는 주제를 잡는 것조차 쉽지 않다. 그러다보니 역사책에서도 자주 만날 수 없다. 그러니까 내게 가장 흥미롭고 소프트한 역사의 이야기는 보통의 역사책에서 만나기가 어려웠다. 좋은 역사책도 이 부분은 그냥 건드리다 말고 지나가곤 했다. (p. 8~90 -들어가며 中-

인문학자이자 도이치어권 번역자라는 저자는 서양의 다양한 인문학 책들과 문학작품을 읽고 번역하고 강의도 해오며 자신의 성향에 맞는 중세책을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문화사'적으로 중세를 살펴보는 이 책을 집필하게 되었다고. 그동안의 공부와 경험을 바탕으로 쓴 책이긴 하지만 '야코프 부르크하르트'라는 학자의 책을 만나 큰 깨달음을 얻었기에 정신적 스승으로 여기며 큰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이런저런 역사책을 읽으며 느꼈던 점이지만, 역사서들도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향은 꽤 다양하다. 사건중심, 사람중심, 정치중심, 경제중심 등등 어느 방향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서 풀이되는 이야기들은 조금씩 달라지기 마련이다. 개인적으로는 통사로 읽는 것을 좋아하지만 그런 책들은 대개 벽돌책이라 사실 시작하기가 쉽진 않다. 읽는 재미로 따지자면 아마도 '문화사'적으로 풀어낸 이야기가 가장 재미있을 것이기에 이 책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책의 구성은 크게 3부로 나뉘어져 있다.

476~1000 의 중세 초기, 1000~13000 의 중세 전성기, 1300~1492 의 중세 말기, 이렇게 3부 다.

간단히 말하자면 중세는 서로마의 멸망부터 동로마의 멸망까지 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서양사책들에서 서로마의 멸망을 로마제국의 멸망으로 간주하고 동로마만 존속했던 시대를 '중세 암흑기'라 지칭하며 무시하곤 하는데, 저자는 '암흑기'라는 표현에 반대입장을 취한다. 최근 읽었던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를 읽으면서 느꼈던 점도 있어서 나또한 저자의 기본 입장에 공감하며 책을 시작했다. 이 책의 핵심은 책뒤표지에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중세란?

유럽 대륙 전체가 역사의 무대로 펼쳐진 "진정한 유럽 역사의 시작"

이교 신들과의 싸움, 기독교 내분, 교황과 황제, 교황과 교황의 싸움이 벌어진 "종교 전쟁의 시대"

종교적 전설과 기적, 기사들의 모험을 둘러싼 "환상의 시대"

인간중심, 이성중심 사유로 돌아오는 합리화 과정 "르네상스"

지중해 중심 사유에서 벗어나 대서양을 토대로 세계로 나아간 중세의 끝 "제국주의의 출발 지점"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중세가 암흑기가 아니라 '진정한 유럽 역사의 시작' 이라는 점이다. 시간은 징검다리처럼 띄엄띄엄 건너뛰며가는 것이 아니다. 강물처럼 끊임없이 흐르고 바다처럼 쉬지않고 출렁이는 것이 시간이고 역사이기에, 중세라고 불리는 시간들도 결코 고대와 근대 사이의 구멍난 시간일 수 없다. 따라서 지금의 유럽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중세사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저자의 시각은 굉장히 바람직해 보인다.

중세초기 부분에서는 일단 고대부터 시작한다. 중세로 접어들기 전 앞선 시대에 대한 간략한 개요가 있으니 중세시대로 연결되는데 있어 흐름적으로 자연스러워져서 좋았다.

우리는 이 책에서 바로 이 중세 시대를 다룬다. 유럽인들의 눈에는 찬란하고 자랑스러운 시대가 가고 암흑기처럼 보이기도 한 시대였다. 하지만 중세는 1,000년이나 계속되는 시대를 가리키는 것이니,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시대에 온갖 재미있는 사건들이 벌어졌다. '중세 암흑시대'라는 말로는 절대로 다 담아낼 수 없는, 매우 역동적으로 발전하던 시대였다. 지중해 세계를 넘어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진짜 '유럽'이 등장한 시대이기도 했다. (p. 31)

라는 중세의 중요성에 공감한다. 중세가 없었다면 근대도 없었다. 르네상스 시대에 중세를 '암흑기'리고 부르던 것을 지금도 그렇게 부를 이유가 무엇인가? 오늘을 사는 이는 늘 어제의 시절에서 과오를 찾기 마련이므로 르네상스 인들에게는 앞선 시대가 암흑기였을지 몰라도, 지금 세계사를 보는 데 있어 중세를 여전히 '암흑기'로 표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근대의 모든 부흥은 중세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지금의 유럽국가들이 대부분 중세 시대에 시작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중세는 세계사에서 반드시 알아야 할 중요한 시기이다.

유럽의 역사에서 이렇게 종족과 문화와 종교와 언어가 계속(한 번만이 아니라 여러 번이나) 뒤섞이므로 문활르 말할 때 '민족 문화'란 말은 별 의미가 없다. 대체 '민족'이란 게 뭐냐는 의문도 있다. 혈통이나 민족만으로 문화를 논할 수 없다는 것은 이미 자명한 일이 되었다. 따라서 최근 연구자들은 주로 언어를 기준으로 문화를 가르고 있다. '프랑스문화'란 '프랑스어 문화'를 뜻하는 것으로 본다. (p. 45)

1부인 중세초기 에서는 연대기적 역사서술로 가장 역사책 처럼 읽히는 부분이었다. 이러한 역사서술에서는 지도가 굉장히 중요한데, 사이사이 적절한 지도가 첨부되어 있어서 큰 도움이 되었다. 유럽의 역사는 그야말로 섞이고섞이고 또 섞이는 혼란의 혼합사다.

중세에는 교황이 세속의 영토를 지녔고, 황제나 왕도 자기 영토에 속하는 교구의 성직자를 임명할 수 있었다. 이렇게 권한이 겹치는 부분에서 황제와 교황 사이의 다툼은 피할 길이 없었다. (p. 155)

2부인 중세전성기 에서의 핵심은 '종교' 다. 지금의 유럽대륙이라 일컬어지는 곳은 로마제국시대의 서로마지역에 해당하므로 동로마는 차치하고 서로마지역에서 난립하는 신흥세력들의 권력다툼 속에 '교황'의 존재는 다양한 역사적 변곡점을 만들어낸다. 로마제국의 황제가 엄연히 콘스탄니노플에 존재하고 있는 상황에서 서쪽지역의 황제옹립과 콘스탄티노플의 영향력을 벗어나고자 한 로마교황의 권력은 서로마역사의 다양한 변주를 이끌고 이 중심에 기독교가 있었다. 이때문에 중세를 암흑기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중세문학은 그 어느때보다 환상적인 상상의 세계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저자는 다양한 문학작품들을 소개하는데 이 '문학사적'인 중세이야기는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기도 하다.

이 시기에 두 가지 기술적인 발전이 이루어졌다. 한편으로는 나침반을 이용해서 먼 바다에서 오랜 기간 항해가 가능하게 되었다. 나침반은 11세기 중국에서 맨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후 아랍을 거쳐 유럽에 소개되었으며, 이어서 유럽에서 더욱 개선되었다. 또 다른 하나는 제노바 상인들이 대형 선박을 건조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p. 325)

3부 중세말기 에서는 르네상스와 대항해시대를 연 배경이 서술된다. 페스트로 인구가 줄고 영국과 프랑스의 전쟁 과 콘스탄니노플의 함락등 여전히 유럽대륙엔 전운이 가득했지만, 무역의 범위는 점점 넓어져갔고 그덕에 생겨난 경제적 윤택함은 르네상스를 경제적 필요성은 신대륙탐험을 주도했다. 이제 유럽은 유럽대륙을 벗어나 지구전체를 무대로 활동하기 시작한다. 근대의 시작이다.

이 책에서 제시되는 적절한 시각적 자료와 술술 읽히는 이야기체는 중세를 역사가 아닌 이야기로 접근하게 해줌으로써 쉽고 재밌게 중세를 경험하게 해준다. 역사전체를 아우르는 통사도 아니고 문화사라고 하기보단 (부분적)문학사에 가까운 책이었지만 중세역사를 시작하는 막막함을 가볍게 해준 이 책을 읽고나니 한결 마음편하게 중세의 또다른 책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최근 읽었던 책에서 '읽기의 목표는 하나의 작품을 소진하는 데 있지 않고, 또 다른 읽기의 가능성을 촉발하는 데 있다' 라는 문장을 인상깊게 봤었다. 그런면에서 이 책은 중세역사 읽기의 마중물로 제역할을 다하지 않았나 싶다. 쉽고 재밌는 역사이야기책은 늘 두팔벌려 환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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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인의 인문학 - 삶의 예술로서의 인문학
도정일 지음 / 사무사책방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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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걸은 우리 시대의 공적 지식인

도정일이 던지는 '뜨거운 실천이성'의 인문 에세이

이 책의 특징은 표지와 띠지 문구에 거의 다 표현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인문적 가치의 사회적 실천에 주력하며 후마니타스칼리지 설립, '책읽는 사회문화재단' 설립, 영유아를 위한 '북스타트' 운동 및 '책읽는 사회 만들기 국민운동' 등을 주도해온 저자의 '실천이성'을 바탕으로 한 인문학은 어려운 학문이 아니라 삶의 예술로서의 인문학, 다시말해 '만인의 인문학'이었다.

삶의 시학은 '산다는 것의 예술'에 주목한다. 산다는 것의 예술은 예술을 하면서 사는 삶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삶 자체를 예술로 보는 것을 의미한다. 시학의 눈으로 인간을 보고 삶을 말한다는 것은 그러니까 인생살이 자체의 예술, 혹은 삶이 가진 예술적·시적 차원을 중히 여기는 일이다. 테크네의 존재이기보다는 '아르스(예술)'의 존재일 때 인간은 가장 인간다워진다. (p. 15)

3부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만인의 시학' '만인의 인문학' '다시, 인간이란 무엇인가' 로 묶어 놓은 일종의 칼럼집이다. 책의 뒤에 보면 '수록 원고 발표 지면 및 연도' 가 정리되어 있는데, 주제별로 묶느라 그랬는지 글쓴 순서는 제각각이다. 이렇게 다른 시기에 다른 매체에 기고한 글을 모은 책일 경우 글의 주제가 비슷하면 반복되는 내용이 있기 마련이고, 때론 왜 이런 주제의 글을 썼는지 당시의 사회적 배경이 필요할 수도 있는지라, 그저 묶어놓기만 한 구성에서 끊어지는 맥락은 어쩔수 없다 하겠다.

저자에게 인문학의 핵심은 아마도 '독서'와 '미학적 삶'인듯 하다. '읽기의 목표는 하나의 작품을 소진하는 데 있지 않고, 또 다른 읽기의 가능성을 촉발하는 데 있다.(p. 14)'는 저자의 책읽는 방식에 공감하면서도 삶이 그렇게 예술적이기만 할순 없는건데 싶어서 거리감을 느끼기도 했다.

헤라클레이토스, 아레테, 테크네 등의 고대그리스 단어들을 접할때마다 인문학 책은 왜 항상 고대그리스를 소환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인문학 강좌라던가 고전읽기 같은 경우도 늘 고대그리스에서 출발하곤 한다. 저자는 '테크네의 존재이기보다는 'ars'(예술)의 존재일 때 인간은 가장 인간다워진다. (p. 30)'며 인문학의 시학을 펼친다. '시학'자체도 아리스토텔레스를 연상시키는 단어이기는 하다. 도대체 인문학은 왜 고대그리스적이어야 하는가...

인간과 세계의 상상적 연결방식이라는 점 때문에 '뮈토스(신화)'는 고전철학 시대에는 세계에 대한 합리적·이성적 설명으로서 '로고스'와 충돌하고, 근대에 들어와서는 '과학'에 밀려난다. 근대는 신화가 빛을 잃었던 시대이다. 그러나 인간의 사유방식이 근원적으로 신화적이라 여기는 점, 세계에 대한 인간의 관계 짓기가 근본적으로 상상적이라는 점, 역사 자체가 '뮈토스'의 범주라는 점 등이 인식되면서 신화는 현대에 들어와 비상한 학문적·대중적 관심 영역이 된다. (중략) 그것은 인간세계의 제도, 풍습, 관행, 가치, 사회적 위계구조, 현상질서 등을 정당화하고 현실모순을 상상적으로 해소하는 강력한 이데올로기 장치이다. (p. 95) 현대는 인간의 어느 시대 못지않게 이데올로기로 뒤덮이고 이데올로기로 지탱되는 '신화의 시대'이다. 신화의 작동은 살아있다. (p. 96)

신화의 작동이 살아있다는 말은 맞는 말이다. 여전히 인문학 책에 즐겨 담기는 소재가 고대의 신화 들인 것을 보면... '공상과학소설장르를 품격있는 소설의 반열에 올려놓은 사람, 미국작가 어슐러 르 귄(p. 104)' 의 판타지도 신화적 상상력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저자의 언급을 보며 가장 미래적인 소설이라 불리는 판타지 SF 소설에서 고대신화가 얼마나 자주 이용되는지 문득 생각해본다. 이데올로기는 그렇다쳐도 소설에서 '신화의 작동'이 살아있음은 분명하다.

브루노 프레이의 진단은 '돈보다 민주주의가 행복에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민주주의는 사람들이 공동체의 삶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공동체를 함께 일구고, 운명을 자기 손으로 결정하는 민주적 '자율성'이다. (중략) 로버트 퍼트넘은 '웰빙'이 돈의 문제가 아니라 시민적 덕목, 연결망, 공동체의 안전 같은 무형의 '사회자본'에 따라 결정된다고 주장해온 사람이다. 이런 주장과 경제학자들의 진단 사이에는 상당한 친연성이 있다. (p. 161)

서양은 많이 약화되긴 했지만 여전히 강한 텍스트인 기독교 경전에다 2000년 넘게 유지되고 부단히 생산되어 온 각종의 세속적 텍스트(고전)들을 갖고 있다. (p. 175) 우리는 말하자면 텍스트가 없는 사회에 속한다. 한 사회가 반드시 강한 텍스트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가라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강력한 텍스트는 변화의 개입통로를 차단함으로써 오히려 닫힌 사회를 가져올 수 있고 배타성, 독선, 진리 독점주의로 인한 폭력의 근원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서양적 근대화는 모든 신성한 텍스트들을 땅바닥으로 끌어내리고 세속적 고전들에서도 그 진리성을 박탈하는 이른바 '탈신성화와 해체'의 충동을 갖고 있다. 이 근대적 충동이 보편화되면서 세계의 여러 전통적 텍스트사회들은 텍스트 없는 사회로 이행하고, '텍스트 없음'이 오히려 근대화를 성취한 열린 사회의 미덕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그런데 역설적인 것은 근대화의 본고장인 서양에서는 근대화에도 불구하고 강한 텍스트들이 여전히 힘을 지니고 있는 반면, 그 근대화를 제대로 성취하지도 못한 나라들(대표적으로 한국)에서는 텍스트는 텍스트대로 실종되고 그로 인한 가치 혼란과 정신적 고통은 또 그것대로 경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p. 176) 어떤 점에서, 전통적 텍스트 사회들을 와해시키고 '열린 사회'론의 이데올로기적 동원을 통해 가장 큰 이득을 본 쪽은 서양이다. (p. 177)

민주주의의 태동을 고대그리스사회에서 찾곤 한다. 하지만 그 민주주의는 도시국가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자잘한 도시국가들은 지금처럼 대형국가체제로 통합되지 못했다. 그 민주주의가 지금의 거대국가에 맞는 민주주의라고 할순 없을 것이다. 텍스트! 중요하다. 하지만 그 텍스트는 아이러니하게도 신성화화 탈신성화 양쪽 모두에게 이용되어 왔다. 결국 핵심은 민주주의건 고전이건 간에 '서양중심주의'였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여전히 우리의 인문학은 서양인문학을 논하고 있다. 그래서 여전히 고대그리스를 소환하곤 하는 것인가 보다.

텍스트를 가진 사회가 되기 위해선 우선 텍스트의 선정, 선정을 위한 토론, 현대적 읽기를 안내할 방법의 개발이 필요하다. (p. 178)

심심하면 인문학 열풍이 불곤 하는 것 같다. 그때마다 아쉽곤 했다. 인문학에 우리것 남의것 굳이 따질 필요야 없겠지만, 그래도 한쪽으로만 편중되는 것은 좀... 우리에게 고전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지금의 국경선은 세계2차대전 이후 정해진 것이고 한 곳에서 5천년이 넘는 유구한 역사를 지탱해온 나라는 거의 없다. 우리의 역사속에서 우리의 인문학을 찾을 수 있다면 더 좋지 않을까?

저자에 의하면 '후마니타스'라는 말은 로마 시대의 키케로가 '문명을 만드는 인간'을 지칭하기 위해 만들어낸 말이라고 한다. 인간이 문명을 만든다는 것은 굉징히 인간중심주의적이다. 인간이 문명도 만들고 다른 것도 만들고 그렇게 인간이 모든 것을 만들수 있는 것 처럼 시대는 변화해 왔다. 인문학이란 어쩌면 이러한 인간을 중심으로 한 '인식의 안경'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지나친 인간중심주의는 인간이 살기 힘든 환경을 만들기도 했다. 인문학의 질문은 이제 어쩌면 탈인간중심주의를 추구해야 하지 않을까? '인문학적 안경'을 쓰고도 인문학을 제대로 못 읽겠는데 때로는 그 안경을 벗고 다른 관점으로도 봐야하니 여전히 인문학은 어려운 것 같다. 이 어려운 인문학을 자연스러운 흐름을 잡아 한권의 완결된 책으로 새로 써주셨으면 좋았을 텐데... 만인을 위한위한 인문학 이라는 커다란 얼개에 숭숭 뚫린 구멍을 메꾸려면 또다른 인문학 책을 읽어야 할것 같다. 하긴 뭐 한권으로 인문학을 어찌 다 파악할 수 있겠는가, 인문학도 인간도 평생 공부해야할 숙제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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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 마음이 단단한 사람 - 융처럼 살아보기 : 아홉 가지 인생 문제를 분석하다 매일 읽는 철학 4
류쑤핑 지음, 원녕경 옮김 / 오렌지연필 / 202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융처럼 살아보기:아홉가지 인생 문제를 분석하다

얼마전 프로이트의 책을 읽고 나서 융에 대한 관심이 커졌었다. 하지만 융의 저서를 바로 읽기엔 어려울 것 같아서 간접적으로 융에 대해 알수 있는 책을 찾고 싶었다. '매일 읽는 철학 04'라고 표기되어 있어서 철학시리즈 중 한권인가 싶었고 '융처럼 살아보기' 라고 해서 융에 대한 간접체험용으로 괜찮으려나 싶어 고른 책이었다. 책날개에 쓰여진 저자의 이력을 보니 중국인 '작가'였다. 작가의 글이니만큼 학문적으로 어렵진 않겠구나 싶어서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펼쳤다.

융은 자신이 이중인격을 지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중략) 융의 일생은 제1인격과 제2인격의 작용과 반작용으로 점철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p. 79) 하지만 이는 의학에서 정신질환이라고 말하는 '인격분열'이나 '정신분열증'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었다. 어쨌든 융의 인생을 통틀어 제2의 인격에는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p. 80)

융은 <파우스트>를 읽으며 이러한 두가지 인격에 대한 생각을 더욱 심화시켰다고 한다. 하루에는 낮과 밤이 있고 하늘에는 해와 달이 있으며 모든 일에는 장점과 단점이 있다. 천당과 지옥 또는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으로 생각하는 방식은 오랜 세월 인간에게 익숙한 생각법이었으니 융이 자신의 인격에 대해 이중적으로 생각했다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발견이 그러하듯이 너무나 당연한 것을 미처 알아차라지 못하는 사람과 통찰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융의 일대기를 중심으로 서술되는 이 책은 융의 학문에 대해서는 그리 많은 내용이 소개되지는 않는다. 따라서 쉽게 읽히는 것은 좋은데 읽고나면 딱히 남는게 없다. 그래서 어쩌다 나오는 융의 이론 관련 내용은 무척 반가웠다.

크라프트에빙의 책 서문에 눈길을 사로잡혔다. <정신의학>의 서문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정신의학 분야의 교과서가 어느 정도 주관적인 성격을 띠는 것은 아마도 이 과목의 특수성과 학문으로서의 불완전성 때문일 것이다' 이 문장에 마음을 빼앗긴 융은 서둘러 책을 읽었고 그 속에서 '인격의 병'이라는 단어를 발견했다. 저자는 정신병을 '인격의 병'이라 일컬었다. '아, 인격의 병!' 순간 융의 심장이 두근대기 시작했다. (p. 114)

크라프트에빙의 책은 융을 당시 전도유망한 외과나 내과가 아닌 생소하고도 무시당하는 정신분석학을 전공으로 선택하게 했다. '인격의 병' 융에게 정신분석은 이 한단어로 축약될 수 있을 것 같다. 위인전처럼 융의 인생을 읽고있노라니 융은 어렸을때부터 스스로에게 '인격의 병'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 알았던 것 같다. 융이 정신의학적 환자라기 보다는 뭐랄까.. 여하튼 평범한 정신세계의 소유자는 아니었다. 그랬기에 정신분석학에 끌렸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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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에게 우호적인 사람들은 대부분 프로이트를 융과 적대적으로 표현하곤 하는 것 같다. 하지만 둘이 함께 연구하다가 갈라섰다고 해서 꼭 그렇게 볼 건 없지 않나 싶다. 프로이트를 전적으로 지지할 순 없었지만 융은 프로이트를 통해 많은 깨우침을 얻었다. 이 두 사람의 에피소드를 읽으며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왠지 비슷하게 느껴졌다. 플라톤이 하나의 이론을 세우고 현실에서 떠나 이상적인 것을 추구했다면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실에 초점을 맞추고 백과전서적으로 광범위하게 연구했다. 프로이트도 자신의 이론을 하나의 체계로 정립하고자 하면서 현실에서 멀어져갔다면 융은 하나의 방법이 아닌 사람마다 다 다른 개별적인 방법을 추구하면서 현실속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했다. 플라톤과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나 프로이트와 그의 후배격인 융의 관계는 결국 모든 발전사와 맥을 같이 한다. 앞선 것을 뛰어넘고자 하고 앞서 밝혀낸 것 이외의 것을 밝히고자 하느 것은 뒤따르는 사람들의 운명이자 목표가되곤 한다. 늘.

'맙소사! 설마 어제 꿈에서 봤던 그 아가씨가 이 아가씨인가?' (p. 194)

책을 읽을수록 참 신기했던 것이 융은 꿈을 참 자주 많이 정확하게 꾼다는 것이다. 때로는 '영매'인가 싶을 정도로 영적인 예시를 꿈으로 전달받기도 했다. 그래서 그의 연구방향이 뒤로 갈수록 '영'적인 심령적인 무언가로 향했던 것일까... 융의 영적 스승도 그의 꿈에 나타난다. 융은 자신의 꿈을 해석함으로써 자신의 이론을 정립해 나갔다. 그의 꿈은 거의 예언자가 받을 법한 계시에 가까웠다. 다만 예언자가 세상에 대한 계시를 받는다면 융은 정신분석학적 계시를 받는 달까... 하지만 관심분야가 집단무의식과 원시적 종교로 나아간 것을 보면 종교적 계시와 뭐가 다를까 싶기도 하다. 이렇게 보면 프로이트를 교조주의라 비판했던 것과 융의 종교성이 무엇이 다를까 싶기도 하고...

융은 환자에게 분석치료를 할 때 그 어떤 시스템도 따르지 않았다. 모든 환자에게는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번에는 아들러의 언어를, 다음에는 프로이트의 언어를 사용해야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단 한 가지 방법을 적용하는 것이 심리요법의 본질이 아니라면 정신의학적인 분석만으로는부족하다. 정신과의사는 환자를 이해해야 할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알아야 한다. (p. 276)

모든 환자에게 다 다른 방법을 적용한다는 것은 맞는 것도 같지만 그만큼 어려운 것이다. 어떤 환자에게 어떤 방법을 적용할지 의사가 어떻게 알아낼 수 있단 말인가? 시스템이나 매뉴얼의 필요성은 결국 기초가 있어야 한다는 건데, 융의 진단방식은 아무나 할 수 없어 보인다. 그리고 결국 융의 학설도 어떤 시스템이 되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이어져올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융의 학설이 더 궁금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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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의 일대기처럼 쓰여졌으나 전체 일생을 다룬 것도 아니고 융의 에피소드를 바탕으로 교훈을 주는 것처렴 쓰여졌으나 그 교훈이 와 닿지는 않고 융의 학문을 설명하는 것도 같았지만 결국 에세이로 마무리된 이 책을 왜 '매일 마음이 단단해지는 법'을 알려주는 책으로 홍보문구를 선택했는지 이유는 알수 없다. 하지만 융을 개인적으로 접근하면서 융이론의 화두를 엿볼 수 있도록 쉽게 서술한 점은 이 책의 매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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