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홉 명작 단편선 2 체홉 명작 단편선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지음, 백준현 옮김 / 작가와비평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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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 격변기 러시아인들의 삶의 모습을 다양한 색채로 표현한 작가 체홉.

체홉이 남긴 단편 명작들을 통해 인간의 삶에 대한 그의 냉철한 시각과 따뜻한 감성을 동시에 느껴본다.

안톤 체호프 라고 이름은 익히 들어봤던 작가였다. 유명세 대비 작품으로는 나에게 그닥 인지도가 없던 작가였다. 얼마전 톨스토이의 책을 읽으며 작가의 생애에서 안톤 체호프와의 인연에 눈길이 갔었다. 톨스토이의 작품을 읽으며 성장하고 톨스토이의 명성이 자자하던 때 작가가 되고 톨스토이를 존경했으나 그와 다른 작품세계를 추구하다가 톨스토이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작가 안톤 체홉. 짧은 생애 대비 굉장히 많은 작품을 남겼다던데, 일단 가볍게 단편선으로 접해보기로 했다.

작고 얇은 책이지만 무려 7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 이 책에서 처음 접한 안톤 체홉은 시종일관 발랄하고 발칙했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굉장히 선구적인 페미니즘적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었다.

『뚱뚱이와 홀쭉이 (1883)』 에서 오랜만에 우연히 만난 두 친구의 상황이 역전되는 대화가 웃픈데 아무 대사 없이 남편의 대화에 아내가 등장한다.

『카멜레온 (1884)』 에선 개에게 손가락을 물린 사람의 하소연에 대해 개주인이 누구냐에 따라 태도가 달라지는 서장의 모습또한 당대의 남성들을 비웃는듯 하는데

『아뉴따 (1886)』 에서 젊은 남자들에게 빌붙어 허드렛일을 하며 살아야 하는 여성 아뉴따의 비참한 삶은

『약사의 아내 (1886)』 에서 남편이 잠든 사이 자신의 미모를 알아봐준 손님들에게 잠시 들떴다가 무심한 남편에게 또다시 무시당하기도 하지만

『불행 (1886)』 에서 남부러울것 없는 젊은 귀부인이 자신을 사모하는 다른 남성에게 잠시 흔들렸다가 남편에게 고백했음에도 무시당하면서도 자신을 추잡하다고 자책하는 상황이 과연 어느쪽이 더 불행할지 헛웃음짓게 하고

『목 위의 안나 (1895)』 에서 나이많은 부자남편과 결혼한 어린 신부의 변화를 통해 여성이 권력을 차지하는 방법이 당시 어떠했는지 보여주기도 하면서

『약혼녀 (1903)』 에서 행복한 약혼 생활 도중 지인의 말한마디에 모든 것을 두고 떠나고서 자신을 찾게 되는 극적 반전을 연출하기도 한다.

여성에 초점을 맞추어보자면, 남편에 의해 설명되는 아내로서의 여성들이 주로 등장한다고 할 수 있는데

대사 한마디 없고 아예 등장조차 없는 무존재감에서 비참한 삶을 살아야 했던 당대의 여성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미모를 통한 인정 뿐이었지만 여성도 배울수 있고 배우기 위해 떠난다면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찾을 수 있다는 메세지를 전해준다고나 할까.

이 여성들의 서사 속에 남성들은 시종일관 여성을 무시하지만 여성에게 휘둘리고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지 못하며 비겁하고 무력한 모습만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어떤 여성이 등장하던간에 남성들의 삶도 결코 돋보이진 않는다. 따라서 여성들의 삶이나 변화가 대비되면서 더 두드러지게 보인다고나 할까.

깨달아야 해요. 예를 들어, 당신과 어머니와 할머니가 아무 일도 안 한다면 그건 곧 누군가 다른 사람이 당신들을 대신해 일ㅇ르 하고 있다는 뜻이고, 그 말은 즉, 당신들은 다른 사람의 삶을 먹어 삼키고 있다는 뜻이기도 해요. 이런 걸 깨끗한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더럽지 않나요?" (p. 140)

[ 약혼녀 ] 中

정숙과 순종이라는 도덕적 가치에만 묶여서 이것을 어기는 그 어떤 작은 행동조차도 더럽다고 추잡하다고 비난받고 자책하던 여성들에게 정말 더러운 것이 무엇인지 작가는 알려주고 싶었던 것일까?

하지만 메세지는 나의 감상 후기일뿐 이 작고 얇은 책은 굉장히 쉽고 가볍게 읽히는 책이다. 그냥 그렇게 쉽고 가볍게 넘겨질 수도 있는 책이다.

가족 모두의 생계를 위해 그해 말부터 모스크바와 빼쩨르부르그의 여러 잡지에 다양한 필명을 사용하면서 짧은 유머 단편과 촌평등을 기고하기 시작했다. 체홉 자신의 표현을 빌자면 2~3일에 1편씩 '마치 찍어내듯이 쓴' 이러한 단편 소품들은 그가 희곡과 중편 소설에도 본격적으로 손을 대기 시작한 1887년 이전까지 300여 편에 달했다. 그러나 이렇듯 단시간에 완성해 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단편들 중 상당수에는 일정 수준 이상의 작품성이 존재했으며, 중편과 장편들이 문단을 지배하고 있던 당시의 상황에서는 일상생활에서 포착한 소재들의 다양함과 기발함이라는 측면에서 독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p. 177)

그러니까 안톤 체홉의 작품들은 초창기에 일종의 유머로 읽힐수 있었던 것 같다. 웃으며 읽었지만 읽고 나면 왠지 뜨끔한.

그런 작품들중 몇 가지가 이 책속의 [뚱뚱이와 홀쭉이] [카멜레온] 등이다. 하지만 안톤 체홉의 능력을 높이 샀던 지인들의 충고에 의해 체홉은 '단편 기고수를 점차 줄여나갔으며, 단편을 쓰더라도 길이가 늘어나고 내용 또한 진지해지는 경향을 보이기 시작했다. 또한 한편으로는 중편 길이의 작품과 희곡 창작으로도 영역을 넓혀 갔다. (p. 180)' 고 한다. 그래서인지 안톤 체홉의 대표작은 희곡작품들이다.

'그의 단편에 사상이나 이념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을 들어 비판적 태도를 보인 일련의 비평가들의 견해 (p. 180)' '사회에 지도적 이념을 제시할 수 있는 진지한 작품이 나와야 한다는 당시 문단의 분위기도 체홉에게 어느 정도 영향을 (p. 180' 미쳐서 인지 체홉은 톨스토이의 작품들에 진지한 관심을 가지고 '톨스토이의 문학적 태도와 자신의 작품 경향을 비교하며 일정한 내적 갈등을 겪었다. (p. 181)' 고 한다. 하지만 체홉은 자신의 정체성을 바꾸지 않았다. '체홉이 톨스토이의 영향권에서 벗어난다고 하여 그것이 곧 톨스토이 문학에 대한 직접적인 비난으로 나타나지는 않았다. 후일 체홉은 톨스토이에 대해 '내가 제일 존경한 유일한 작가'라고 표현한 바 있는데 (p. 182) 결국 최종적으로는 톨스토이의 창작 경향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와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며 언제나 겸허한 태도로 충고와 비판을 경청했다. (p. 183)' 톨스토이는 이러한 안톤 체홉의 작품에 대해 평가절하한 적도 있었지만 병문안을 자주 갈정도로 안톤 체홉을 아끼기도 했다.

'그의 꾸준한 관심대상이던 당대 러시아 여성들의 삶의 애환과 자아실현의 문제는 이 시기의 작품인 『목 위의 안나(1895)』 와 『약혼녀 (1903』 에서는 사뭇 다른 방향으로 표현됐다. (중략) [목위의 안나] 는 여성의 자아실현이라는 문제를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p. 186) 체홉의 마지막 단편 소설인 [약혼녀]에서는 (중략) 창작 후기로 가면서 자신의 사회의식을 더욱 과감하게 표현하려 했던 체홉의 태도가 여성 해방이라는 주제의 측면에서 극대화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p. 187)' 라는 것을 보면 당시의 밑바닥 삶을 살았던 사람들의 생에 대환 관심이 점점점 여성들의 삶으로 옮겨갔던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안톤 체홉은 의사였으나 글을 많이 쓰게 되면서 의사생활을 접었는데 틈틈이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진료하고 의료봉사도 열심히 했다는 걸 보면 타고난 성정이 따뜻한 인류애를 품은 사람이었기에 위와같은 인식의 흐름이 가능했으리라는 생각도 든다.

그는 이러한 질문에 대한 자신의 답을 독자에게 제시하여 강요하지 않고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 생각하게 만들 뿐이었다. (중략) 이로 인해 초기부터 체홉의 작품들에 대해 부정적은 시각을 견지해오던 일단의 비평가들은 체홉이 인간 삶의 미래를 제시하지 않은 채 끝까지 비극적인 전망만을 그린다고 비판했다. 지금도 그의 작품 세계에 따라붙은 '황혼의 시인' '절망의 시인' 허무의 작가' '주의나 주장이 없는 작가' 등등의 비판적 표현은 희곡작품들이 발표되면서 더욱 강한 색채를 띠었다. (p. 189)

왜 이런 평가를 받았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이 책에서 알게된 체홉은 따뜻한 시선과 비참한 현실속에서도 유머를 찾아내는 능력을 갖고 있는 것 같은데 말이다. 체홉이 남긴 작품이 많다하니 많이 읽어보면 달라질수도 있겠지만, 당대 러시아를 휩쓸었던 교훈적 메시지의 대작들에 비교되어 이런 평가를 받은 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인지 체홉이 했다는 말이 다시한번 웃음짓게 했다.

"비평가들이 그러던데, 내가 음울한 사람이라는 게 무슨 말이오? 내가 차가운 피를 가진 사람이라는 건 또 무슨 말이오? 그리고 내가 어떻게 염세주의자입니까? 염세주의자라는 단어는 그 자체가 혐오스럽소" (p. 190)

멋진 작가를 알게 되어 기쁘다. 안톤 체홉의 다른 작품들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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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데거, 제자들 그리고 나치 - 아렌트, 뢰비트, 요나스, 마르쿠제가 바라본 하이데거
리처드 월린 지음, 서영화 옮김 / 경희대학교출판문화원(경희대학교출판부)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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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렌트, 뢰비트, 요나스, 마르쿠제가 바라본 하이데거

'20세기 위대한 사상가이자 한때 나치에 참여한 하이데거 철학을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

표지색이 마음에 든다. 무거운 주제에 어울리는 톤이다. 표지 한쪽에 사진이 있다. 한 남자가 뚫어져라 노려보고 있다. 사진크기가 작은 편임에도 불구하고 그 눈빛이 강렬하다. 처음엔 히틀러 사진인줄 알았다. 그런데 책을 읽다보니 사진속 인물이 하이데거 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하이데거가 히틀러와 이토록 닮았던가?!

한나 아렌트 외에는 잘 모르는 이름의 사상가들이었다. 하지만 저자가 이 네 명을 선택한 이유는 분명하다. 이들은 모두 하이데거의 유대인 제자들이었다. 이 책의 원제는 Heidegger's Children 이다.

2001년 [하이데거, 제자들 그리고 나치( Heidegger's Children ) 초판이 출간된 이래 이 책의 중심 주제는 엄청난 재능을 지닌 '동화된 유대인 사상가'들과 마지막까지 자신의 심오한 사유길이 갖는 독일적 본성을 고집했던 철학자 사이의 우려스러운 친밀성에 관한 것이었다. (p. 8)

이 책의 원서는 2001년에 나왔다. 이 책의 시작은 1판과 2판의 머리말로 시작한다. 개인적으로 머리말은 이 첫 페이지의 이 문장까지만 읽고 패스할 것을 추천한다. 머리말이 너무... 길고... 본문보다도 더... 어려웠다. 이 책에서 중요한 것은 '동화된 유대인 사상가들' 과 '자신의 심오한 사유길이 갖는 독일적 본성을 고집했던 철학자' 라고 생각한다. 그 다음이 이들 사이의 '우려스러운 친밀성' 이라고 여겨진다.

'1933년 하이데거는 히틀러라는 디오니시우스(시라쿠스의 폭군) 앞에서 플라톤을 극적으로 연기할 수 있고, 그렇게 함으로써 '총통을 지도한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보란 듯이 나치 운동에 가담했다. (p. 45)' 그리고 플라톤이 디오니시우스를 철학자왕으로 만들겠다는 허상을 실패했듯이 하이데거도 히틀러를 지도하겠다는 망상에서 내쳐졌다. '국가사회주의의 끔찍한 악행을 하찮아 보이게 만드는 하이데거의 불온한 노력, 그것도 우연히 그런 것이 아니라, 실질적 가해자인 독일인들을 역사적 책임에서 면제시켜 주려는 노력은 그의 제거주의적 반유대주의 고백과 결합되어 그를 더 이상 '훌륭한 사상가'로서 볼 수 없게 만든다. (p. 49)' 그러나 하이데거는 여전히 철학사에서 나름 탄탄한 지지기반을 유지하고 있는 듯 하다. '[검은 노트]가 드러낸 바와 같이, 그의 철학은 국가사회주의의 교리와 실천을 열광적으로 받아들였다. 이에 대해 내릴 수 있는 단 하나의 결론은 하이데거의 철학은, 해법을 제시하기는 커녕, 문제의 일부라는 것이다. (p. 51)' 그런데도 왜 여전히 하이데거의 철학는 논의되고 소환되는가? ''존재'와 '포에시스'의 이름으로, '이성'과 '근대성'에 대해 하이데거가 보여준 철학적 공격은 당시 소외된 젊은 세대 연구자들의 성향과 놀랍도록 잘 들어맞았다.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과 근원적인 것으로 부터 사유의 단초를 얻은 하이데거의 강력한 비판은 '이성과 근대 시대에 작별'을 고하기를 원했던 새롭게 부흥한 포스트모던 시대정신과, 그것도 근대에서 따라 나온 참상 및 파국과 매끄럽게 맞물렸다. 그렇게 하이데거와 포스트모더니즘 사이에 이상한 정략결혼이 체결되었다.(p. 53)' 다시 말해서, 하이데거 철학과 포스트모더니즘 사이의 정략결혼이 이혼되지 않는 한 하이데거 철학의 생명력은 앞으로도 꽤 건강히 유지될지도 모르겠다. 근대성 이후 포스트모니즘과 니힐리즘은 아직 현대성으로 완전히 자리잡지 않았고, 일례로 하이데거의 극우적 엘리트주의는 트럼프를 미국대통령으로 만든 것과도 일맥상통한다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욕하면서도 완전히 버리지는 않고 미련스럽게 붙잡고 있는 철학이 하이데거 철학인 것인지도...

한나 아렌트, 한스 요나스, 카를 뢰비트, 그리고 허버트 마르쿠제 이들은 스스로를 '유대 출신 독일인'이라 생각한 유대 문화에 기반을 두지 않은 유대인이었다. 철학적으로 훈련된 지식인으로서, 그들은 유대 문화 전통이 나닌, 신성한 게르만적 정신과 교양의 이념에서 구원과 의미를 찾고자 했다. 네 명 모두 독일의 위대한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로부터 교육을 받았다. 비록 자신의 기념비적 작품인 [존재와 시간]을 1927년에 출간하기 전까지 이렇다 할 출판물이 없었음에도, 강연자이자 교수자로서의 재능은 이미 하이데거에게 상당한 명성을 안겨주었다. (p. 68)

하이데거의 제자들은 제도화된 정치적 반유대주의가 낳은 트라우마의 한가운데에서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처음으로 깨달은 비유대주의적 유대인이었기 때문이다. (중략) 독일계 유대인의 경험을 설명할 때 지속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주제는 19세기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가 유대인들이 가장 성공적으로 통합되었던 바로 그 국가에서 어떻게 유럽 유대인의 몰살이 고안되고 실행될 수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p. 94)

하이데거는 굉장히 카리스마 있고 강연을 잘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책을 읽는 내내 하이데거에게 빠진 제자들의 모습은 역으로 하이데거를 다시 보게 만들었다. 하이데거에게는 유대인 제자가 많았다. 그러나 이 유대인 제자들의 대부분은 본인이 유대인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독일인이라 여기며 성장하고 교육받았던 것 같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외부로부터의 구분으로 인해 자신들이 유대인으로 분류되고 신봉했던 스승은 유대인이라고 그들에게 등을 돌렸다. '동화된 유대인'으로서 어느날 (갑자기) 독일인에서 독일인이 아니게된 상황은 그들의 철학적 질문이 되었고 뛰어난 성찰은 역으로 그렇게 훌륭한 제자들을 키워낸 스승을 돋보이게 만들었다. 하이데거의 무엇이 젊은이들을 그토록 현혹시켰던 것일까... 시대상황 때문이었을까... 독일은 당시 유럽중에서도 유대인들이 가장 많고 가장 성공적으로 자리잡은 곳이었다고 한다. 그런 독일에서 반유대주의가 태동되었다. 이것이 과연 아이러니 일까 아니면 당연한 수순이었던 것일까...

근대는 '절대 죄악'의 시대였다. 이와 같이 모든 수단은 그 절대 죄악을 심연으로 몰아넣기 위해 정당화되었다. 하이데거와 그의 제자들은 모두 '전선 세대'에 속해 있었다. '전선 세대'들이 잠깐이라도 허무주의에 관심을 보인 것은, 어떠한 영구적인 가치가 구축되려면 그 전에 대규모의 파괴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확신에서 비롯된 당연한 귀결이었다. (p. 73)

하이데거는 정권이 쓰라린 최후를 맞이할 때까지 나치당에 당비를 낸 당원이었다. 그는 지속적으로 '히틀러 만세!'라는 이른바 '독일식 인사'로 강의를 시작했다. (p. 77)

하이데거의 제자들은 그 프라이부르크 현자와 운명을 같이함으로써, 미래 철학의 정점에 이르렀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다른 제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들은 하이데거의 새로운 '실존' 철학은 신칸트주의, 헤겔주의, 그리고 실증주의와 같은 당대의 지배적인 독일 강단 철학의 진부한 아카데미즘을 좌절시켰다고 느겼다. 그런 그의 갑작스러운 나치즘으로의 전향은 유대인과 비유대인을 포함한 대부분의 제자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만일 누군가 그의 초기 실존철학의 이데올로기적 요소를 주의 기피게 재구성한다면, 그의 정치적 전환은 전면적인 단절로 보이지 않는다. (p. 79~80)

통일된 정치 세력으로서 반유대주의가 갖는 잠재력은 과소평가될 수 없었다. 베를린에 충성하는 것보다 고백적·문화적·지역적 분할이 종종 보다 더 중대한 문제가 되는 독일 정치의 독특한 성격을 감안할 때 말이다. 반유대주의자들에게 있어서, 유대인들을 대량학살하는 것만이 '병-폐'로서의 근대성이 갖는 독성을 올바로 치료할 수 있었다. (p. 100)

1930년 히틀러가 권력을 손에 쥐고 나치가 반유대주의적 조치를 확대함에 따라, 의미 있는 유대인 정체성을 탐색하는 일은 독일에 남아 있는 유대인들 사이에서 긴급한 문화적 의무가 되었다. (p. 107)

하이데거와 제자들은 이른바 '전선 세대'였다. 시민혁명은 실패했고 전쟁에도 참패했다. 먹고살기 힘든 시절이었고 허무주의가 팽배해 있던 상황이었다. 하이데거의 '실존'철학은 제자들에게 허무가 아닌 '의미'를 강렬하게 시사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하이데거의 나치즘 전향은 이미 그의 철학속에 초기부터 잠재해 있었다고 한다. 하이데거와 제자들은 당시의 아카데믹적 철학계에서 이방인에 가까웠다. 하이데거는 본인의 철학이 주류가 되리라 자신했다. 그가 매일 외쳤을 '히틀러 만세'는 사실 본인에게는 '하이데거 만세'를 의미했던 것같다. 독일은 통일국가가 되기 전 아주 자잘한 조각들로 나뉘어졌던 나라였다. 수많은 공국, 대국, 백작령, 남작령 들을 하나로 통합시킬 수있는 정치세력, 게르만족이라 통칭되지만 수많은 갈래의 민족의 통칭인 게르만족은 하나의 민족이라 부르기 어려웠으나 하나로 뭉치게 만들수 있던 상대적 유일종족, 반유대주의의 배경에는 '종교'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또한 독일은 유럽대륙에서 가장 형이상학적 철학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었다. 하이데거는 당대의 그 어떤 철학보다 자신의 철학이 완전하다 여겼고 강렬한 카리스와 논리로 젊은이들에게 설파했다. 제자들은 죽을때까지 그의 철학적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는 것만도 급급해야 했다. 하이데거의 유대인 제자들은 '반유대주의라고 하는 고통스러운 경험을 통해 처음으로 자신의 유대인성을 발견 (p. 122)' 해야 했다. '아무리 그들이 노력한다 할지라도 민족 혹은 인종으로서의 유대인은 결코 독일인이 될 수 없었다.(p. 124)'

한나 아렌트와 마르틴 하이데거 둘 다 독일의 참사에 대해 설명했다. 두 사람 모두 나치즘을 전형적으로 독일적인 것이라기보다 유럽적인 현상으로 해석하는 입장을 확고하게 견지했다. (p. 111) 하이데거와 아렌트의 관계는 다정함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심하게 착취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의 나이, 사회적 지위, 그리고 배경에 차이가 있음을 감안할 때,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거의 없었을 것이다. 둘의 관계를 시작한 것은 하이데거였다. 감수성이 예민한 열여덟살의 아렌트는 자신보다 거의 두배나 나이가 많은 남자가 체현하고 있는 가공할 만한 정신을 경이로워했다. (p. 119) 당시 하이데거는 독일 대학에서 생활하는 것을 금지당한 채였다. 그의 명성은 나치의 협력자로서 가졌던 지위로 인해서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손상되었으며, 그는 믿을만한 홍보업자와 친선대사를 절실히 필요로 하게 되었다. 아렌트는 이 목적에 딱 들어맞았다. 국제적 명성을 가진 유대인 지식인이자 전체주의에 대한 주요 비평가로서 그녀의 지지는 하이데거의 나치즘과 관련된 집요한 비판을 막아내는데 도움을줄 수 있었다. (p. 141)

저자는 하이데거 철학에 대한 문제점을 두드러지게 하기 위해 네 명의 유대인 제자를 선택했다. 하지만 네 명의 제자들에게 공평한 시선을 던지고 있는 것 같진 않다. 네 명의 제자 중 유일한 여성이자 유일하게 스승을 용서한 한나 아렌트에 대해서는 둘의 '관계'에 초점을 맞춰 설명한다. 하지만 나머지 세 명의 제자들에 대해서는 그들의 '사상'에 초점을 맞췄다. '마지막까지 아렌트는 하이데거에게 속박되어 있었다. 죽기 1년전인 1974년에, 그녀는 가까스로 절제해서 예의를 갖추어 그에게 다음과 같이 썼다. "아무도 당신이 했던 방식으로 강의할 수 없고, 당신 이전에 어느 누구도 할 수 없었다" (p. 121)' 한나 아렌트에 대한 폄하적 표현들에 대해 부분적인 반감에도 불구하고 한나 아렌트의 모순적인 태도는 이해하기 어렵긴 하다. 일종의 그루밍이었던 것일까... 하지만 '결과적으로 아렌트에게 있어서, 아우슈비츠는 독일 역사 혹은 독일민족의 특성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중략) '부르주아지'의 최후의 결과인 폭력적 군중은 세계적인 현상이다. 우리는 오직 독일의 폭력적 군중만이 그런 끔찍한 행위를 할 수 있다는 맹목적인 믿음에 굴복하지 않아야 한다. (p. 156)' 는 한나 아렌트의 (어쩌면) 무감한 태도에 나는 일부 공감한다. 유대인학살이 비극적인 사건이었던 것은 맞다. 독일이 잔인했던 것도 맞다. 하지만 왜 일본은 해석하지 않는가? 유럽사상가들은 유대인학살 에만 너무 관심을 집중하고 따라서 독일의 파국적 행태에만 분노한다. 하지만 동시에 일본도 독일 못지않게 잔혹했다. 유럽사상가들이 유대인학살 피해만 논의하는 한 그들의 사상이 세계적 사상이 되기엔 한계가 있는 것이 아닐까? 세계사엔 유럽사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자연과 하늘은 가치와 의미의 시금석이 되기를 그만두었고, 그 대신 척도로 자리한 것은 '인간'이었다. 방향감각을 상실했다는 느낌이 사회에 만연해 있었다. 뢰비트가 주목한 바와 같이 '19세기 중반 이래로, 유럽 역사가들은 더는 진보의 패턴을 따르지 않고, 쇠퇴의 패턴을 따랐다.' (p. 177) 뢰비트에게 니체는 유럽의 도덕적·지적 허무주의에 대한 첫번째 예언자였다. (p. 181) 뢰비트에 따르면, 니체의 영원회귀설은 '힘에의 의지'의 이념 속에서 구체화된 니체 자신의 의지주의자로서의 상상을 포함하며, 유럽 니힐리즘 담론을 교정하는 데 필요한 교설에 해당한다. (p. 182) 뢰비트의 스토아주의는 '동양의 지혜'와 많은 부분 공통점을 갖는다. 그는 나치가 지배한 유럽을 피해 피난처를 삼은 일본에서의 5년의 체류기간(1936~1941)동안 동양적 지혜와 너무나 뜻이 잘 맞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p. 183)

근대 니힐리즘에 대해 스토아적 답변을 했다는 뢰비트는 심지어 일본에 5년간 살았다. 그런데 대체 일본 어디서 살면서 어떤 모습만 보았길래 일본제국주의의 잔혹성은 못보았는가? 당대의 내로라하는 사상가였다면서 유대인으로서의 피해망상 해결하는데만 그쳤던 것인가? '하이데거가 그렇게 많은 재능 있는 유대인 학생들을 지도했다는 역설적인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이들 학생들 대부분이 스스로를 유대인이라 여기지 않았으며, 하이데거 역시 그들을 그렇게 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스스로를 전적으로 동화된 독일인으로 보았다. 하이데거는 나치의 생물학적 반유대주의 견해를 결코 공유하지 않았다. 오히려 유대인에 대한 그의 혐오감은 전통적인 문화 질서, 즉 대체로, 문화적으로 동화되거나 세례받은 유대인들을 받아들이는 사고방식에서 기인했다. (p. 194)' 뢰비트는 뮌헨에서 동화된 독일계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났고 그의 아버지는 개신교로 개종한 예술가였다. '뢰비트는 자신이 근대 정치적 극단주의가 갖는 파우스트적 유혹에 굴복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스토아적 거리두기의 태도 덕분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역사의식을 전적으로 거부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하나의 극단적 발상이다. 이는 역사를 의미 없는 우연성의 영역으로서 포기하는 태도를 받아들인다. (p. 219)' 뢰비트는 일본제국주의 사회에서 '역사를 우연성의 영역'으로 깨달은 것일까? 시대를 제대로 읽으려 하지 않은 도피적 거리두기가 아니었을까? '뢰비트는 기원전 3세기 신조에 만족한 채로 있었다. 기원전 3세기 신조를 근대에 와서 주창한 학자로는 괴테, 헤겔, 부르크하르트가 있다. (p. 220)' 뢰비트는 끝내 독일인이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하이데거의 경우는 다수의 우파 지식인에게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사례를 보여준다. 당시 우파 지식인들 상당수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본질에서 비독일적이며, 만일 독일이 바이마르 시대의 위기를 극복하고, 본래 독일 전통인 '위대한 정치(니체)'를 열망한다면 '국가의 권위주의적인' 해법이 필요할 거라고 확신했다. 더욱이 하이데거는 항상 자신을 독일의 관료들 사이에서의 일반적 관행을 급진적으로 따르지 않는 사람으로 인식했다. 그의 변변찮은 배경을 감안할 때, 그는 상류층 교수들 사이에서 불편한 마음을 가졌을 것이다. 실증주의, 신칸트주의, 혹은 지식가회학 같이 당시의 지배적인 지적 경향과 맞지 않는다고 느낀 하이데거는 '반지성적 지식인'이라는 페르소나를 선택했다. 하이데거가 스스로를 아웃사이더로 이해했다는 사실은 그가 어째서 철학적·정치적 급진주의에 끌렸는지를 설명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p. 197) 하이데거와 국가사회주의는 실존론적 급진주의를 공유했다. 역사적 위대함이라는 목적에 쓸모없는 것으로 여겨지는 전통과 가치를 '무화시키는'방식으로 대응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철학적으로 하이데거는 서구 형이상학의 전통적인 범주들을 '해체'시키려 했다. (p. 201) 당시 독일을 지배하던 정신적 분위기는 실존론적 니힐리즘이었다. 단호한 결단의 파토스가 의무적인 관점으로 보이는 기분 말이다. (p. 208)

하이데거 라는 인물에 대해 알게 될 수록 놀라웠다. 지금도 거리에 나가면 하이데거식 태도를 견지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가? 하이데거가 여전히 논의되는 이유이려나... 해체 이후의 건설에 대한 논의는? 일단 뒤로 밀린다. 하이데거 라면 자신이 지도하는 일인(히틀러)의 독재를 공고히 하는 것으로 현실적 건설을 했다고 치자 지금의 하이데거들은 무엇을 추구하는가?

1920년대 '실존주의적 휴머니즘'의 지지자로 변절한 이후, 신앙을 잃은 가톨릭 신자이자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철학자였던 하이데거는 확실히 원래의 신앙으로 복귀했다. 도처에 신학자들이 기뻐했음은 물론이다. (p. 225) '기초존재론'의 고질적인 윤리적 결함에 대한 요나스의 날카로운 비판은 이후 하이데거 연구에 뚜렷한 영향을 미쳤다. (p. 226) 이주로 맺어진 조국의 지배적인 지적 경향에 타협하지 않았던 요나스는 벤야민이 두려워했던 운명에 처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미국 내에서 지배적인 철학 학파인 논리 실증주의, 언어 분석, 그리고 실용주의는 바꿀 수 없는 그의 주된 접근법이었던 유럽 형이상학적인 성향을 거의 받아들이지 않았다. (p. 232) 전쟁으로 폐허가 된 유럽으로부터 그에게 피난처를 제공한 미국 사회는 그가 도망쳤던 사회보다 확실히 더 나았다. 그러나 때로 요나스는 영혼의 상태에 대해 고민했을 것이다. 한때 미국 사회를 보편적인 부러움의 대상으로 만들었던 정치적인 덕목들, 즉 경건함, 자립, 투철한 공공심, 시민참여, 뿌리 깊은 공동체는 소유를 미덕으로 삼는 무자비한 개인주의로 대체되었기 때문이다. (p. 273)

저자는 한스 요나스를 '인간과 자연의 공생을 추구한 생철학자' 라고 표현했다. 요나스는 철학이라기 보다는 종교에 관심이 많았던 듯 하다. 그러한 윤리적 성향이 강한 요나스의 철학은 생애 말기에 이르러서야 인정받았다. 1987년 84세의 요나스는 독일 서점가협회의 명망 있는 평화상을 받았고 독일 연방공화국의 수훈 십자훈장을 받았다. 1993년 89세의 나이로 뉴욕의 집에서 사망하기전의 10여년이라는 기간이 그의 지적 유산이 대가를 받은 기간이라고 한다. 도덕적 통찰이 필요했던 시대가 어제오늘이야기었겠는가마는 자본주의사회가 강력해진 때에서야 '생철학'으로 인정받았다는 것이 어떤 의미 일까... 요나스의 철학은 신학에 대한 성찰 과 '궁극적 질문'을 상기시키려고 노력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는데, 하이데거의 철학에서 가장 무시되는 분야가 그런 윤리가 아니었을지... 어찌보면 요나스 사상 또한 하이데거의 독재를 벗어나기 위한 무기력한 선택은 아니었을지...

1927년, 겉으로 보기에는 뜬금없이,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이 등장했다. 이 작품은 강단철학의 진부한 아가데미즘과 의식적으로 결별함으로써, 철학적 탐구를 위한 전례 없는 풍부한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 같았다. 신칸트주의, 논리 실증주의 등, 철학계의 지배적인 양상은 역사적 시대가 직면한 방향감각의 상실을 체계적으로 무시했다. 반면 하이데거 철학은 위기의 분위기를 존재론적 탐구를 위한 '존재적' 출발점으로 끌어안았다. (p. 277) 마르쿠제가 보기에, 하이데거의 역사성에 대한 논의는 실제 역사에 대한 관심을 담기에는 여전히 지나치게 형식적이었다. 궁극적으로 역사성에 대한 기초존재론의 주장은 가짜-구체철학임을 보여주었다. (p. 289) 그와 동시에 마르쿠제는 마르크스주의자와 하이데거주의자가 역사성을 설명하는 데 있어 유사성을 갖는다는 점에 강하게 사로잡혔따. 이들 두 학파 사이의 화해 가능성은 이 유사성에 달려 있었다. (중략) 말하자면, 본래적 실존이란 무엇이며, 그것은 어떻게 일반적으로 가능한가? (p. 290) 그러나 마르크스와 달리, [존재와 시간]에서 하이데거는 명백하게 비민주적인 '귀족적 급진주의' 관점을 받아들였다. 그는 '자기 극복(니체)'이나 '본래성'의 목표를 선택된 소수, 즉 정신적으로 선택된 사람만이 접근할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p. 295~296)

허버트 마르쿠제는 실존론적 마르크스주의로부터 좌파하이데거주의로 사상의 흐름을 보인 사람이라고 한다. 하지만 철학도 사상도 잘 모르는 나로서도 하이데거의 극단적 엘리트주의와 마르크스의 극단적 서민주의는 전혀 연결될 수 없어 보였다. 가능하지 않을 연결을 가능하도록 시도해본것이 마르쿠제가 선택한 하이데거 철학에 대한 반박법이었을까? '하이데거는 수치스러운 줄을 모르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연합군에 의해 자행된 잔혹행위들이 나치가 저지른 것과 동일하다고 주장했다. (p. 325)' 하지만 하이데거의 제자들은 스승의 철학에서 느낀 유의미성을 포기할 수 없었나 보다. 그리고 '하이데거에게 있어서, 본래성은 정신적 엘리트에게 제한되는 가능성이다. 마르쿠제에게 있어서, 물화를 초워라는 능력은 이론적으로 재능있는 사람들, 즉 지적 엘리트들의 영역이다. (p. 332)' 라는 점에서 더욱 포기가 어려웠으리라 생각되긴 한다. 하이데거와 네 명의 제자들은 모두 엘리트주의 라는 공통프레임을 지니고 있기에 서로에 대한 '관계'를 완전히 끊을 수 없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하이데거는 1934년 5월에 대학 총장직을 사임했다. 그의 짧지만 결연한 정치 진출은 적지 않은 환멸을 불러일으켰다. 하이데거는 철학적으로 교만했으며 정치 경험이 부족했을 뿐 아니라 정치적 판단에 있어서도 기본적으로 무능했다. (p. 336) 하이데거는 인간의 지적 능력보다 더욱 근원적인 것은 합리적인 것 이전의 성향과 기질들(기분, 도구, 언어, 실천적 참여와 상황, 타자-와의-공동 존재 등)임을 증명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하이데거의 철학은 보편 개념에 대한 치명적인 불신을 드러냈다. 보편 개념은 그가 파괴하기를 희망했던 서구 형이상학 전통의 상징에 해당한다. '진리' '도덕성' 그리고 '선'과 같은 개념들은 플라톤적 지적 곡해에 해당하는 것으로, '존재'에 대한 '표상'의 독재를 상징한다. 형이상학에 대한 하이데거의 비판에 따르면, 플라톤은 진리의 장소를 사물 그 자체의 '비은폐성'으로부터 '생각' 혹은 '표상'으로서의 진리 개념으로 옮겨놓았다. 그리고 그로부터 서구 철학의 몰락이 시작되었다. (p. 337)

하이데거의 오만함에는 점점 더 혀를 내두를 뿐이었다. '[존재와 시간]이 보수 혁명적인 세계관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은 하이데거의 실존론적 분석론이 사실상 존재의 내용, 즉 양 대전 기간의 시대정신에서 유래한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 내용은 순수하게 '형식적인' 작업과는 거리가 멀다. (p. 343)' 하이데거의 철학은 세계1차대전과 2차대전 사이에 이루어졌다. 역사도 그렇지만 철학도 그 시대를 연결짓지 않고 판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하이데거 철학을 양 대전 기간의 시대정신과 연결지어서만 생각해본다면 의미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왜 그 이후로도 지속적으로 현재와 연결지으려 하는가... '하이데거는 결코 골수 나치가 아니었다. 그는 독일의 '국가 혁명'을 생물학적 발판이 아닌 존재론적 발판 위에 세울 필요가 있다고 확신했다. 그는 (서구 역사에 대한 독일의 비범한 세계사적인 공헌을 위해) 독일의 배타주의를 노골적으로 찬성했는데, 이러한 배타주의가 인종적·생물학적 용어로 정당화될 수 있다고는 결코 믿지 않았다. 하이데거에게 있어서 그러한 정당화는 19세기 과학주의나 생물학주의 논리로 후퇴하는 것을 의미했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인간 실존에 대한 모든 물음은 궁극적으로 '존재물음'과 함께 성립하거나 몰락했으며, 그런 이유로 결코 과학적으로가 아니라, 존재론적으로만 답할 수 있었다. (p. 345)' 하이데거의 배타주의가 늘 시시때때로 현실속에서 재현되기 때문인 것일까... '하이데거의 관점에서, 가장 풍부한 '역사성'을 소유한 민족은 독일인이다. (p. 350)' 그리고 지금 세계 곳곳엔 자신들이 가장 풍부한 역사성을 소유한 민족이라 생각하는 나라들이 여럿 있다. 그들은 알게모르게 하이데거 철학의 영향을 받은 것일지도...

확실히 [존재와 시간]의 시야에 만연해 있는 실존론적 허탈감은 독일 특유의 유산이다. 그가 사용하는 많은 염세적 비유들은 종교적 구원의 전망을 벗어던지고, 철저하게 현실에 입각한 실존론적 존재론의 요소를 새긴 독일 낭만주의의 자산이자 업니다. 하이데거적 불안은 이전 시대의 희망과 위로가 시대착오적이면서 비양심적인 감상에 그치는 것으로 보이는 시대에 염세적인 낭만적 감수성을 표현한다. (p. 413) 실존론적 사상이 갖는 '명백한' 특징이 있다면, 민주적 정치 문화의 중심적 에토스인 '공공의 이성'의 가치에 대한 헌신이 부족하다는 것과 관련이 있다. (중략) 하이데거와 그의 철학적 후계자들이 보이는 공공 이성에 대한 신뢰의 결핍은 확실히 부분적으로 양 세계대전 사이의 방향감각 상실에 의해 과잉 결정된 세대적 현상이다. 만약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주장을 깨뜨림으로써 명예를 부여받은 시대가 있다면, 바로 그 시대일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실존론적 패러다임'이 갖는 시대적 관련성을 알아내고자 하는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결점은 눈감아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상당히 중요한 문제이다. (p. 428)

'공공의 이성'의 가치를 중시하는 저자로서는 하이데거와 네 명의 제자들 중에서 유독 한나 아렌트에 대한 평가가 박할 수밖에 없었을 것같다. 나도 '공공의 이성' 이 '염세적인 낭만주의'에 밀리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것이 여전히 하이데거 철학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왜 하이데거를 범죄화해서는 안 되는가](글항아리, 2016)에서의 지젝의 표현을 빌려보자면, '진지한 철학적 분석에서 외재적 비평은 내재적 비평에 근거해야 한다' 지젝은 월린을 포함한 자유민주주의 비평가들이 자칫 하이데거가 근대성의 기본 교의에 대해 제기하는 문제를 회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는다. 근대성의 핵심 이념이라 할 수 있는 '인간중심주의' '민주주의' '진보' 와 같은 가치는 생명공학적 발견과 전 지구적 자본주의 사회가 던지는 사회적 문제를 다루기에 더 이상 유의미하지 않은 낡은 기준일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지젝에 의하면 하이데거의 사상을 독일 민족주의적 보수 이데올로기로 직접적으로 환원시켜 해석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하이데거의 철학체계는 이들 원천으로부터 독립적으로 탈맥락화되었다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생태 하이데거주의자들이 생겨나는 것이 그때문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p. 436)' 라는 옮긴이의 설명과 비슷한 내용을 읽으면 하이데거 철학의 위험성이 더 느껴진다. 솔직히 나는 그냥 하이데거 철학이 무시되었으면 좋겠다. 회자되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하이데거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이데거를 철학사에서 성급하게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하는 것이지 않을까. (p. 437)' 라는 옮긴이와 같은 의견이 많기에 여전히 이렇게 하이데거 관련 책들이 나오고 있는 것일 것이다. 그렇다면, 피할수 없다면 즐기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러나 과연 우리의 지적 토양이 하이데거 철학을 즐길만큼 그렇게 탄탄한 것인지에 대해 불안함이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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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침입자들의 세계 - 나를 죽이는 바이러스와 우리를 지키는 면역의 과학 내 인생에 지혜를 더하는 시간, 인생명강 시리즈 1
신의철 지음 / 21세기북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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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죽이는 바이러스와 우리를 지키는 면역의 과학

'서가명강' 시리즈 책을 몇 권 읽어본적 있는데 만족스러운 시리즈였다. 그 자매브랜드로 '인생명강' 시리즈가 나왔다고 해서 일단 믿고 보는 책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선택한 책이었다. 이 책은 인생명강 시리즈의 1권이다.

코로나19 가 이렇게 장기화될 줄 어느 누가 알았을까... 예상하지 못했던만큼 전염병과 면역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때보다 높아진 시대이기에 이 책이 주는 메세지는 더욱 깊은 울림을 줄 것 같다. 책을 시작하고 몇 페이지 넘기지 않아 벌써부터 마음을 파고드는 문장을 만났다.

나를 지켜 너를 구하는 일, 내가 당신의 백신이 되어주는 일. 그것이 바로 면역의 의미다. (p. 9)

코로나사태 이후 거리감이 노골적으로 벌어질수록 개인화된 사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잘못된 편견이었음을 책의 초반부터 깨닫는다. 저자가 말하는 '면역'은 함께사는 사회의 정의를 새롭게 하고 있었다. '나를 지켜 너를 구하는 일, 내가 당신의 백신이 되어주는 일. 그것이 바로 면역의 의미다' 캬~! 명언이다.

이 책에서는 크게 바이러스·백신·면역 이렇게 세 가지 키워드를 다룬다. 코로나19 시대에 가장 큰 문제로 주목받고 있는 바이러스란 무엇인지, 이런 바이러스에 대항해 인류가 개발한 가장 강력한 무기인 백신은 어떤 역사를 거쳐왔는지 되짚어봤다. 그리고 면역의 작동 원리를 바탕으로 다양한 생각거리 또한 제시했다. (p. 13)

그 어느때보다 제대로 된 '면역이야기'가 필요한 시점인 이때에 잘 나와준 책이다.

'신종'이라 분류하는 정확한 기준이 무엇일까? 어쩌면 그런 기준은 없는지도 모른다. 신종이라는 말 자체가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학사 안에서 신종 바이러스를 구분하는 기점이 된 시기가 있다. 대략 1970년대 초반 이후로, 그때부터 발생한 바이러스들을 신종 바이러스 라고 부르게 되었다. (p. 53)

신종 바이러스가 최신의 바이러스가 아닌 의학사적으로 50여년전 부터의 바이러스를 지칭하게 된 것은 '과거의 의학은 과학과는 거리가 있었다.(p. 53)' 라는 저자의 말에서 시사되는 바가 컸다. 의학사의 기간은 오래되었으나 과학의 발달이 의학과 만난 것은 생각보다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코로나19 이전에 과학자들 사이에서는 '질병X'라고 하는 굉장히 강력한 신종 바이러스가 언젠가 출현할 것이라는 논의가 오고 가기는 했었다. 실제로 2018년 2월 세계보건기구가 향후 중요하게 다뤄야 할 질병으로 발표한 목록에 질병X가 포함되어 있었다. 미래의 일이니 이름을 특정할 수는 없지만, 대 유행을 일으킬 바이러스 질병을 질병 X라고 지칭한 것이다. 그때만 해도 어디까지나 불확실한 미래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코로나19는 첫 번째 질병X가 되었다. (p. 71)

질병X 라는 단어가 있었구나... 과학계에서 대두되자마자 거의 바로 코로나19가 터진 셈이니... 소잃고 외양간 고친다 라는 속담은 이번에도 역시나 들어맞은 것인지도... 인간의 오만과 자만이 쌓일 수록 예상되는 후폭풍이 분명 있었으나 무시한 인간에게 닥친 재난을 과연 누구탓을 하겠는가... 뿌린 만큼 거두는 법인 것을...

특이성과 기억 현상은 항체와 T세포가 작동하는 기본 원리다. 즉 몸속에서 일어나는 면역반응에는 크게 항체 반응과 T세포 반응이 있으며, 이를 작동시키는 기본 원리에는 특이성과 기억 현상이 있다. 그리고 이런 현상을 유발하도록 우리가 인위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바로 백신이다. 항체와 T세포의 특이성과 기억 현상 덕분에 우리는 백신을 개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p. 99)

서가명강 시리즈가 그랬듯이 인생명강 시리즈도 엄선된 필진이 주는 신뢰감이 남다르다. 저자는 바이러스 및 면역반응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권위자이다. 나는 많이 아는 사람이 쉽게 쓰는 책을 참 좋아한다. 대중서이면서 어렵게 읽히는 책은 저자가 아무리 많이 알고있는 사람일지라도 결국은 저자의 능력이 모자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본문 여기저기 등장하는 전문적인 내용도 어렵지 않게 읽을만 했다. 그런점에서 이 시리즈는 앞으로도 무척 기대가 된다.

나 이외의 모든 사람은 나의 환경이고, 나 또한 상대방의 환경이다. 그러므로 나의 면역은 타인의 면역과 연결된다. (p. 108)

쉽게 읽히는 점도 좋았지만 구성도 괜찮았다. 길지않은 챕터는 생소한 학문적 내용을 읽는데 지치지 않게 했고 새로운 장을 시작할때마다 등장하는 '명문장'은 울림이 컸으며 매글의 마지막 페이지에 저자가 남긴 '질문'도 의미있게 다가왔다. 책을 읽는 내내 '면역'이 나의 건강적 문제가 아니라 좀더 확대된 개념으로 이해해야 함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었다.

이미 백신이 개발된 상황에서 결과를 보고 이야기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백신을 개발하기 그리 어려운 바이러스였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전 세계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봉쇄나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면서 초조하게 기다려온 백신이기 때문에 착시 현상이 있었던 것이다. 개발을 시작한 지 채 1년이 되지 않아 효과가 90퍼센트 이상인 백신을 개발한 것은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성공이다. (p. 121~122)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커진 불안감 때문에 백신에 대한 불안감도 상대적으로 높아졌다. 하지만 저자는 백신의 사전 준비 정도와 결과를 전하면서 좀더 믿어줄 것을 당부한다. '백신 거부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다각도의 노력이 필요하다. (중략) 최근 한국에서 보여진 바와 같이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쓸데없이 백신에 대한 불안을 조장하는 것도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언론도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 불필요한 사회적 소모가 일어나지 않도록 원칙에 입각한 사실 보도를 해야 할 것이다. (p. 131) 가장 중요한 것은 대중이 과학적·합리적 사고로 무장하는 것이다. 사회 전반에 과학을 바탕으로 한 의사결정의 풍토가 조성되어야 비로소 현명한 개인들이 서로의 안전한 환경이 되어주는 사회적 차원으로서의 백신이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p. 132)' 라는 저자의 말에 깊이 공감한다. 사회적 건강은 결국 사회적 구성원이 만들어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개개인들이 좀더 정확한 정보를 취득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카더라 에 휩쓸리지 말고 이런 책을 좀 읽었으면 좋겠다. 중요한 건 팩트 아니겠는가.

면역학은 면역세포들이 나와 남을 어떻게 구분하는지에 대해 상세히 알게 되면서 그 기초가 세워지게 되었다. 어쩌면 나와 남을 구분하는 데 익숙한 인간의 본성이 이런 면역학의 기초 성립에 일조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대 면역학이 조금 더 발전하면서 나와 남의 구분이라는 명제가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이 점점 더 드러나게 되었다. (p. 158) 면역학 발전의 초기 단계에만 하더라도 면역반응에 관한 연구는 어떻게 나와 남을 구분할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시간이 흘러 나와 남보다는 무해한 것과 유해한 것의 패러다임에 따라 면역 현상을 바라보게 된 것이다. (p. 170)

이 책을 읽으며 '면역'의 정의를 가장 새롭게 깨달은 부분은 위와 같은 저자의 관점이었다. 코로나19는 나와 남을 뚜렷하게 구분하고 각 나라의 국적을 더욱 강하게 구별한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면역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무해한가와 유해한가 이다. 내부인과 외부인이라는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한 사회에서의 이민자를 예로 들어 설명한 부분을 읽으며 그러한 구분이 얼마나 무용한지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날 면역학에는 필요 이상의 과다한 이미지가 덧씌워져 있다. 인간이 앓고 있는 수많은 질병 중 면역학적인 원리나 기전과 상관없는 질병에까지 면역학적 해석의 틀을 갖다 대는 것이다.(p. 210)' 라는 저자의 설명에 새삼 나의 무지 또한 깨달을 수 있었다. '면역력'이라는 개념이 얼마나 허상인지;;; '면역과 건강은 결코 일차원적으로 연결 지을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p. 210)' 를 꼭 기억해두어야 겠다.

면역반응의 기본 원리에는 몸속 생리를 넘어 인류가 역사를 지속할 수 있는 삶의 기본 원리가 담겨 있다. (p. 227)

질병과 면역에 대한 과학책인줄 알았더니 인류가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삶의 기본 원리'까지 되새겨주는 책이었다. 과학책이다 인문학책이다 구분할 거 뭐 있겠는가, 그저 삶의 교훈을 준 것만으로 '가치 있다' 로 여기면 될 것이다. 이 책은 지금 이 시대에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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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버 드림
사만타 슈웨블린 지음, 조혜진 옮김 / 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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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사건 하나 없는데도 기묘하게 공포스럽고 스릴러적으로 읽히는 이 작품은 인간이 저지른 죄에 대한 인과응보를 담고 있음을 가장 마지막에 가서 깨닫게 함으로써 강렬한 메세지를 남긴다. 독은 인간이 뿌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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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만타 슈웨블린 지음, 조혜진 옮김 / 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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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가장 빛나는 별

사만타 슈웨브린의 대표작 국내 첫 출간

띠지에 훈장처럼 써있는 인터내셔널 부커상 최종후보작 이라는 것도, 셜리잭슨상 수상작이라는 것도, 2021 넷플릭스에 오리지널 무비로 공개될 영화의 원작 소설이라는 것도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스르르 잊혀져 있다. 이 화려한 이력보다 훨씬 선명하게 떠오르는 건 레이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 이었다.

그리고요? 아주머니는 왜 아무 말도 없죠?

이 이야기에 매여 있으니까. 나는 이야기를 완벽하게 볼 수 있지만 때로는 진전시키기가 어려워. 간호사들이 놓는 주사 때문일까?

아니요.

하지만 난 몇 시간 뒤면 죽을 거야. (p. 14)

소설은 두 사람의 대화로 진행된다. '나' 아만다는 니나 라는 딸의 엄마 이고 지금 병상에 누워 있다. 그 옆에서 귀에 대고 속삭이며 말하고 있는 소년은 '다비드'라는 9살 이웃 소년이다. 나는 왜 죽어가고 있는가? 니나는 어디에 있는가? 다비드는 누구인가? 다비드가 말하는 '벌레'는 무엇인가?

나는 항상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거든. 지금 당장은 니나가 느닷없이 수영장으로 달려가 뛰어든다면 내가 차에서 뛰쳐나가 그애한테 이르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계산하는 중이야. 나는 그걸 '구조 거리'라고 불러. 딸아이와 나를 갈라놓는 그 가변적인 거리를 그렇게 부르는 거지. (p. 27)

작가는 아르헨티나의 떠오르는 신예 작가이고, 이 소설의 원제는 스페인어로 'DISTANCIA DE RESCATE' 즉 '구조 거리' 다.

아이의 이마에 입을 맞추는데 열이 펄펄 끓더라고요. 몸이 불덩어리엿어요, 아만다. 그때 우리 다비드의 눈앞에는 분명히 천국이 어른거리고 있었을 거예요. (p. 37)

영어판 제목이 '피버 드림'이었다고 한다. '열이 나는 꿈'

'피버 드림' 은 '구조 거리'보다 훨씬 은유적이다. 어쩌면 개인적 심리적 '구조 거리' 보다 사회적 공공적 '증상'을 표현함으로써 더 소설의 메세지를 잘 표현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개인적으론 '구조 거리'라는 원제가 더 와닿았다. 구조할 수 있는 거리, 하지만 구조하지 못한 순간...

여하튼, 지금 병상에 누워 있는 아만다의 몸도 불덩어리다. 다비드는 세살때 그 일을 겪었다. 다비드와 아만다는 아만다가 이렇게 되기 직전의 상황을 세세하게 재구성한다. 한장면한장면 아주 섬세하게 기억해내려 애쓰지만 그어떤 구체적인 장면도 이 상황을 설명해주진 못한다. 소설적 은유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는 독자의 몫이다.

이건 정상이 아니야, 다비드. 칠흑같은 어둠만 있고 너는 내 귀에 대고 소곤거리고 있잖니. 나는 이게 실제 일어나고 있는 일인지조차 모르겠어.

실제 일어나고 있는 일 맞아요. 아만다 아주머니. 저는 응급병동 병실에 있는 아주머니 침대 가장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있어요. 우리에겐 시간이 얼마 없어요. 그리고 시간이 다 되기 전에 정확한 순간을 찾아내야 돼요. (p. 46)

'정확한 순간' 이때는 다비드의 표현에 의하면, '벌레가 생기는 정확한 순간'을 말한다. 다비드는 이 '정확한 순간'을 찾기 위해 아만다에게 끊임없이 질문하고 대답을 들으며 아만다의 시간을 꼼꼼하게 되짚어가는 중이다. 이 순간을 찾아내는 것은 중요하다. 아만다에게도, 다비드에게도.

그 실은 존재하지만 느슨해서 우리에게 때때로 약간의 독립성을 허용해줘. 그런데 구조 거리가 정말 중요하니?

아주 중요해요. (p. 49)

부모와 자식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끈이 연결되어 있다고들 말한다. 아만다가 말하는 '구조 거리'도 비슷한 개념이 바탕이 되어 있다. 니나와 아만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실이 서로를 연결하고 있다. 니나에게 어떤 위험이 닥칠듯한 예감이 들때면 아만다의 몸에 그 실이 팽팽하게 죄어온다. 하지만 때론 그 팽팽함을 자각하지 못하여 '구조 거리'를 놓치고 만다. 아만다는 자신이 그랬을까봐 두렵다. 아만다의 딸 니나는 어디있는 걸까? 아만다는 왜 이렇게 된 걸까?

그 아이의 몸에 네 영혼이 일부 있니?

그건 우리 어머니가 하시는 얘기죠. 아주머니도, 저도 이럴 시간 없어요. 우리는 벌레를, 벌레와 아주 비슷한 것을, 그리고 벌레가 처음 아주머니 몸에 닿는 정확한 순간을 찾는 중이라고요. (p. 56)

다비드가 세살때 다비드의 엄마 카를라는 두려움에 떨며 녹색집으로 갔다. 제발 다비드가 죽지 않기를 바라며. 의사도 병원도 변변치 않은 시골동네에서 녹색집의 여자는 유일하게 민간처방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아만다와 니나가 휴가차 내려온 시골마을엔 사실은 엄청난 비밀이 은밀하게 녹아있었다.

밖에서는 남자들이 드럼통을 내리고 있어. 드럼통이 커서 한 손으로 하나씩 잡고 옮기는 데 애를 먹고 있어. 엄청나게 많아. 트럭이 온통 드럼통 천지야.

바로 이거예요.

드럼통 하나가 헛간 입구에 따로 놓여 있어

이게 바로 중요한 일이에요

이게 중요한 일이라고?

네 (p. 84)

아만다는 다비드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정신이 오락가락 하고 혼미해서 그런것 같기도 하고 다비드가 어린 소년이다 보니 정확한 정보의 한계가 있어서 그런것 같기도 하다. 생명이 오락가락하는 시간속에서 아만다가 니나를 걱정할때마다 읽는 사람의 마음도 졸아들어간다. 스릴러적 사건이 없음에도 굉장히 스릴러적으로 읽히는 작품이다.

무슨 일이니? 나는 니나에게 물어.

축축해요. 니나가 살짝 화난 투로 말해. (p. 86)

이슬이야, 걷다보면 마를 거야

바로 이거예요. 이게 바로 그 순간이에요. (p. 87)

지금 그 일이 일어나고 있어요.

무슨 일 말이니, 다비드? 하느님 맙소사,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니?

벌레요. (p. 88)

구조 거리... 아만다는 위험신호를 감지했었다. 카를라가 자신의 아들에게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나서 떠나려고 했었다. 휴가고 뭐고 평온했던 이동네가 갑자기 이상스레 느껴졌다. 그때 떠났어야 했다.

엄마, 손이 너무 따가워요. 니나가 제 손을 보여주더니 내 옆에 앉아. 그러고 날 안아.

나는 아이의 두 손을 잡고 한 손에 한번씩 입을 맞춰. 아이는 손바닥을 위로 뒤집어 내게 보여줘. 카를라는 과자를 한봉지 꺼내와서 니나의 손바닥 위에 한움큼 놓아.

이게 다 낫게 해줄 거야. 카를라가 말해. (p. 111)

마을사람들은 문제를 인식하지 못한채 그냥 그러려니 살고 있었다. 이방인인 아만다 모녀가 휴가를 내려오기 전에도 분명 마을엔 이상한 일들이 있었는데...

그런 일은 그냥 일어나는 거예요, 아만다. 우리는 시골에 살고 밭에 둘러싸여 있으니까요. 누군가는 쓰러지고, 회복하더라도 이상이 생기는 일은 흔하죠. 당신도 그런 사람들을 길에서 보고요. 그런 사람들을 구별할 줄 알게 되면 그 수가 얼마나 많은지 놀랄 거예요. (p. 95)

그냥 일어나는 일... 이 그냥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음을... 시골에서 그냥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옮긴이의 말'을 읽으며 깨달을 수 있었다. 그 일을 깨닫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벚꽃이 만개 하고 화사한 햇살이 쏟아지는 봄날의 요즘, 어딘가에선 '침묵의 봄' 여전히 현재진행형 같아서...

'뿌린만큼 거둔다'는 말을 역설적으로 느끼게 한 작품, <피버 드림> 이었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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