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마 폴리스 - 홍준성 장편소설
홍준성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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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박쥐가 날아다니는 세상을 비뫼시라는 카르마폴리스라고 해야 할까... 현대의 폭력과 불평등이 카르마로 되돌아온 폴리스에서 작가가 살고 있다고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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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마 폴리스 - 홍준성 장편소설
홍준성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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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철학을 종횡무진하며 직조해낸 현대의 우화

무게감 있는 서사를 관통하는 젊고 활달한 문장

데크르트, 벤야민, 셰익스피어, 까뮈, 베케트... 독자들의 지적 한계를 시험하는 매력적인 상징들!

표지도 예뻤고 카르마니 폴리스니 하는 단어들도 좋아하는 단어였는데, 역사와 철학을 직조해낸 현대의 우화 라니 독자들의 지적 한계를 시험하는 소설이라니 이런 엄청난 수식어를 단 작품은 과연 어떤 내용을 풀어낼까 싶어 기대감이 스멀스멀 생기게 하는 책이었다. 하지만 400쪽이 채 안되는 비교적 얇은 이 소설 한권이 한장한장 참 더디게 넘어갔다...

시작은 어느 고서점에서다.

이곳에 기거하는 책벌레들이 유독 뒤룩뒤룩 살진 부르주아지처럼 살아가는 것이, 역사적으로도 철학이란 게 대개 귀족이나 유산 상속자 같은 배부른 이들의 고상한 취미활동이었다는 사실과 묘하게 겹친다는 점이었다. 역시나 온 우주를 관통하는 은밀한 질서가 존재하는 걸까? (p. 11)

살짝 삐딱한듯한 문체에 세밀한 묘사력이 돋보여서 요샌 등단한지 얼마안된 젊은 작가들이 참 잘 쓰는구나 싶기도 했다.

'비뫼시' 라는 도시와 '기적이 사라진 해로부터 1192년 뒤 (p. 14)' 라는 비현실적 시공간의 설정과 수도원, 왕정, 국회의원, 컴퓨터, 자본주의 등의 뒤섞임은 가상의 세계 내지는 판타지인가 싶은 생각이 들게 하기도 하지만 아니다, 이 소설은 현대 소설이고 현재 시점이다. 과거의 여러시대에서 이런저런 것들을 차용해와서 상징적으로 사용한 것때문에 이 소설에 '현대의 우화'라는 수식어를 붙인 모양이다.

이 소설엔 문장뒤에 주석번호가 붙은 것이 참 많은데 예를들어

'유사 이전부터 포도줏빛 바다 위에서 수없이 난파되기를 반복하면서도 끈덕지게 이어왔던 그 지난한 서사시를 재현하고 있었다. (p. 34)' 의 주석17을 보면 '호메로스, <오뒷세이아>, 천병희 옮김, 숲, 2015, 141쪽(219~224행)변용 (p. 370)' 이라던가 '42번이 보기에 불행의 소리는 모두 엇비슷했지만, 행복의 소리는 제각기 달랐다. (p. 124)' 의 주석77에서 '래프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1>, 연진희 옮김, 민음사, 2009, 13쪽 변용 (p. 374)' 하는 식의 '변용'이 참 많다. 하지만 굳이 이런 변용이 필요했을까 싶다. 개인적으로 호메로스의 작품을 좋아한다. <오뒷세이아>도 최근에 읽어서 저 구절이 생생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저 '포도주빛 바다' 라는 표현이 저 한문장만으로 얼마나 그 상징성이 전달될 수 있을까? <안나 카레니나>의 첫문장은 하도 유명하니 비틀어볼수도 있다고 치자, 그렇게 유명한 구절에 대한 변용은 그렇다 치더라도 '그러나 어김없이, 아침은 다시 찾아왔다. (p. 37)' 라는 누구나 쓸수 있는 평범한 문장들에 대해서도 주석20에서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이영의 옮김, 민음사, 1998, 7쪽;9쪽 변용 (p. 370)' 라는 식으로 주석을 다는 것을 보면서 '독자들의 지적 한계를 시험' 하는 것인지 그저 작가가 읽은 책들을 수없이 나열하며 잘난척 한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생활은 육중한 몽둥이를 들고서 그들을 쫓아왔는데, 조금이라도 따라잡히게 되면 곤죽이 되도록 두들겨 팼다. 언젠가는 생활이 몽둥이를 내려놓거나 쫓아올 수 없는 도착선이 존재하기는 할까? (p. 47)' 에서 느껴지듯이 작가가 쓴 문장만으로도 매력있는 작품으로 서술할수 있지 않았을까? 굳이 165개 라는 주석으로 자신이 읽은 책들을 나열할 필요가 있었을까... 책을 다 읽고나서 든 생각은 내용 그 자체 보다도 작가가 인용한 구절을 재인용해 작가에게 소감을 전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독자들은 환상적인 사건들의 연쇄에 당황하게 되고, 작가가 의도한 모든 것들에 얼떨떨해진다. 마치 미지의 거대한 포유류가 나뭇잎을 뜯어 먹는 모습을 목격한 동물학자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된다. 아름다운 뿔이 달려 있긴 한데,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p. 49) 주석33. 귄터 그라스의 <양철북>에 대한 악평이다. 빌 핸더슨·앙드레 버나드, <악평>, 최재봉 옮김, 열린책들, 2011, 115~116쪽. (p. 371)'

이런저런 거슬리는 '변용'들을 제외하고 줄거리를 정리해보자면, 잔혹한 지배자아래 가난하고 핍박받는 처지의 사람들이 신음소리를 내다가 세상이 난장판이 된다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다.

'가시여왕의 책무란, 혁명이나 폭동 같은 극단적인 사태로 치닫지 않도록 위기를 관리해주는 것, 즉 도시를 견딜만한 지옥으로 유지하는 데 있었다. (p. 61)' 가시여왕은 온갖 안좋은 모습을 다 갖춘 절대 권력자의 상징적 인물이다. '여왕이 보기에 댐 높이에 문제가 있다면, 하늘이 이를 고려하여 강수량을 조절해야 하는 것이었다. (p. 64)' 라는 분명한 캐릭터 설정등으로 서사를 이끌어 갈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손에 들린 책은 교회에 널리고 널린 <성경>이었기 때문이다. (중략) "정말이지 놀라운 책이었습니다." 그가 웃으면서 말했다. "아무리 읽어도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거든요. 그게 뭐, 그럴 수밖에요. 제시된 정보 자체가 너무 생략되어 있기도 했거니와, 심지어는 터무니없을 만큼 앞뒤가 안 맞기도 했으니까요. 적어도 하나님이나 복음 편찬자들이 논리학 강의를 이수하지 않은 건 분명해 보이더군요. 하지만 그때는 읽을 거리가 그 책뿐이었습니다. 별수 없었죠. 한데, 그러다가 재미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애당초 논리적으로 어긋났거나 너무 생략된 글이 제대로 이해될리가 만무했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읽고 또 읽을 수 있게 되더라고요. 시대를 초월하는 걸작이 걸작인 이유는 해석에 저항하기 때문이란 걸 그때 처음 깨달았죠" "말도 안 되는 말을 내뱉어놓으면 이름이 후세에 남게 되는 경우가 왕왕 있는 법이지" (p. 128))' 에서 알수 있듯이 작가의 재기발랄한 표현등으로 보건데 문장력은 충분히 있어 보였다.

하지만 넘쳐나는 다른 책들의 문장'변용'으로 인해 오히려 문장들이 온전히 느껴지지 않고 산만해졌다. 이런 문장'변용'뿐만이 아니라 '악곡 없는 간주곡'이라는 제목을 단 부분에서는 갑자기 그리스비극 적 문체가 차용된다. 좀비도 아닌데 죽은자가 살아나고 이유도 없어보이는데 영혼이 깨어나더니 그리스비극체로 ~도다! ~리니! 하면서 저희들끼리 비극을 읊어대다 뚝 하고 다음 내용과 단절된다. 이렇게 갑자기 내용단절을 시킬거면 '데우스 엑스 마키나' 기법은 왜 차용하지 않았나 싶을 정도다.

여하튼, 비뫼시에선 온갖 비리와 폭력이 난무하고 '대홍수'라는 재난까지 겹쳐 점점 삶은 곧 지옥이 되어간다. '예전에 제왕교육을 받길, 노동계급의 경우에 자식들 중 세 명 정도는 굶어 죽지 않게 계속 새끼를 칠 수 있도록 만들어줘야 하고, 유한계급의 경우엔 고쳐 쓸 수 없기 때문에, 배반의 싹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곧바로 제거한 뒤, 그 빈자리를 충성스러운 중간 계급 중 하나를 승격시켜 메워줘야 한다고 배웠지. (p. 268)' 를 충실히 수행하던 가시여왕은 '철가면'을 씌운 자신의 아들에게 당하게 되고 세상은 뒤집어지면서 소설은 끝난다. 뚝. 이러한 단절을 현대와 현실을 비판한 우화라고 주장한다면 그럴수도 있겠다 싶지만 굳이...

'진실은 포유류이다. 보살핌이 없으면 생존할 수 없기 대문이다. 반면에 거짓은 버섯류이다. 한 번에 수천여 개의 홑씨를 뿌리며 포자번식을 하고, 그늘진 곳이라면 어디서든 자라나기 때문이다. 독버섯은 이따금 떨어져주는 빗물 외엔 그 어떠한 보살핌도 필요치 않다. (p. 275)' 라고 작가가 썼듯이 작품을 포유류처럼 썼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백권이 넘는 책들에서 문장을 뽑아 바꿔가며 번식하려한 이 책을 '역사와 철학을 종횡무진하며 직조해' 냈다고 수식어를 붙이기엔 그 '변용'되고 '인용'된 문장들이 마치 버섯이 흩뿌린 포자번식처럼 느껴지고 그런 버섯들이 가득한 그늘들을 너무 눈에 띄게하기 때문이다. 최근 읽었던 아모스 오즈의 '유다' 라는 철학적 소설과 무척 비교가 됐다. '데카르트, 벤야민, 셰익스피어, 까뮈, 베케트... 독자들의 지적 한계를 시험하는 매력적인 상징들'이 가득한 철학적 소설을 쓰고 싶었다면 문장겉핥기가 아니라 그런 문장들을 되씹고되씹어 스스로 성찰하고 숙성시킨 진중한 무게감의 새로운 문장으로 발현시켜보려 더 노력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작가가 알고 있는 역사와 철학과 고전을 고의적으로 혼란스럽게 뒤섞어 독자들을 시험해보려 한 휘브리스가 작가에게 카르마로 되돌아가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작가도 아니고 작가적 능력도 없는 그저 일개 평범한 한명의 독자일뿐이지만 작가의 작품을 읽고 생각하고 표현하는 것은 독자의 역할이기에 독자로서 충실하게 이 작품을 읽었고 감상해보았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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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신뢰 - 인생의 모든 답은 내 안에 있다 현대지성 클래식 36
랄프 왈도 에머슨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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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가 말한 초인의 사상적 뿌리이자,

미국의 개척·독립정신의 초석이 된 불멸의 에세이 3편을

꼼꼼한 해제와 가독성 높은 완역으로 만나다

니체는 알았어도 랄프 왈도 에머슨은 몰랐다.

헨리 소로는 알았어도 랄프 왈도 에머슨은 몰랐다.

그런데 니체의 초월주의에 영향을 끼치고 헨리 소로의 스승이었으며 오바마, 간디, 마이클 잭슨에게까지 영감을 준 사람이 랄프 왈도 에머슨 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의 대표적 에세이가 [자기 신뢰] 라고 한다. 안 읽을 수 없었다.

이 책은 고전시리즈 중에서 내가 가장 신뢰하는 [현대지성 클래식] 시리즈의 새번역, 완역본이다. 이 시리즈의 장점인 원전 완역과 새번역 그리고 무엇보다 꼼꼼한 해제가 처음 접하는 작가와 사상을 담은 책도 읽을 수 있게 이번에도 역시나 큰 도움을 주었다. 잘 모르는 작가와 사상이었던만큼 뒷부분의 해제 먼저 읽고 본문을 읽었다.

에머슨의 사상은 초월주의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이 사상이 가장 잘 담겨 있는 에세이가 [자기 신뢰]이다. 그리고 그 자기 신뢰를 바탕으로 인생과 자연 그리고 신성을 편견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 에세이 [운명]은 에머슨의 저서 [인생과 처세]에 첫번째로 실려 있을 정도로 대표적인 문장이다. 그리고 이 책에 수록된 마지막 에세이 [개혁하는 인간]은 유출 혹은 진화의 개념에 입각하여 인간은 한없이 향상하는 쪽으로 자신을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글이다. 이 해제에서는 먼저 저자의 생애를 살펴보고, 저작의 배경을 여러 측면에서 일별한 후에, 책에 실린 세 편의 에세이를 해설하는 순으로 진행한다. (p. 150)

책은 비교적 얇은 편이고 세 편의 에세이를 다 합해도 150페이지가 안 되기 때문에 손에 잡기 어려운 책은 아니다. 하지만 한편의 에세이 분량을 넘어서는 해제가 없었다면 흰것은 종이요 검은것은 글자다 라고 하고 넘어갈 뻔 했다. 저자에 대해 알고 저작에서 표현하는 개념들을 해제를 통해 숙지하고 나서 읽어도 본문은 읽는 내내 더디게 넘어갔다.

에머슨은 목사였으나 기존의 교회의식에 반발하여 교회와 결별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평생 굉장히 종교적이고 영적인 사람이었다. 목사를 그만두고 전문적인 강연자로 활동하며 본인의 강연을 바탕으로 한 책을 낸 저자의 직업은 요즘식으로 말하자면 '자기계발강사' 다. 자신의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그어떤 종교인보다 가슴을 파고드는 신성을 이야기했고 그어떤 사상가보다 현실을 꿰뚫는 질문을 던졌다. 그러면서도 그는 굉장히 낙관주의자였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에머슨은 칼라일보다 훨씬 더 계몽되고 폭넓고 유연하고, 또 더욱 심오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는 칼라일보다 훨씬 더 행복한 사람이다. 그의 마음은 늘 감사하고 또 고마워해야 하는 이유를 언제나 발견해낸다. (p. 153)' 고 말했다한다. 에머슨은 19세기 사람이다. 당시의 미국상황을 알아야 그의 사상을 이해할 수 있다. 에머슨은 미국의 '정신적 독립'을 중요하게 역설했다.

초월이라는 용어는 중세의 스콜라 철학자들이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사물의 8대범주를 초월하는 사물의 성질을 가리켰다. 그후 칸트가 이 범주 중에서 체험의 구성 요소에 속하지만, 감각과 지각을 통해서는 알 수 없는 요소에 초월이라는 이름을 붙임으로써 뚜렷한 의미가 확정되었다. (중략) 그후 셸링이 이 용어의 의미를 좀 더 정교하게 가다듬어 독일 관념론으로 확정했다. (p. 162) 이러한 독일 관념론은 다시 콜리지를 통해 영국 낭만주의에 수입되었고 이어 에머슨에게 영향을 주었다. (중략) 초월주의는 이처럼 다양한 개념을 적극 수용했으나 그 개략적인 윤곽은 일원론으로 귀결된다. 일원론은 세상과 신이 하나이며, 신이 세상 안에도 깃든 만큼 인간 내부에도 신성이 깃들어 있다고 보는 사상이다. 이렇게 볼때 초월주의는 체계적인 철학도 순수한 종교도 아닌, 동서고금 철인들의 뛰어난 지혜를 한데 모아놓은 절충적 사상이었다. (p. 163)

초월주의가 일원론과 연결되는줄은 전혀 몰랐었다. 플라톤 책을 읽으며 '일자'에 대한 개념을 처음 알게 됐었는데 이렇게 에머슨의 에세이에서 그 일자에 대한 개념을 배우게 될줄은 상상도 못했다. 스피노자와 니체와 소로 는 알았어도 왜 에머슨은 여태 몰랐는지 의아해질 정도였다. 그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쳤으면서도 철학자나 사상가로 분류될 정도는 아니어서 그랬을까? 에머슨이 에세이 수준에서 머물면서 논리적인 체계로 장대한 철학을 정립하진 못했더라도, 고대철학에서의 '일자' 와 스피노자의 '전일성'과 '에머슨의 '오버소울' 과 니체의 '초인'은 일맥상통하게 다가왔다.

영혼과 자연의 조화로운 관계를 통하여 운명의 이치를 깨닫고 더 나아가 물질주의에 갇혀 있는 정신을 회복시키는 것, 이것이 이 책에서 소개한 세 편의 에세이 [자기 신뢰], [운명], [개혁하는 인간]의 일관된 주제이다. 마지막으로 각각의 에세이는 원래 소제목이 없었으나 가독성과 독자의 편의를 위하여 옮긴이가 임의로 붙인 것임을 밝힌다. (p. 204)

에머슨의 에세이는 어떤면에선 개혁적인 성향의 목사가 연설하는 설교처럼 읽히기도 한다. 그만큼 종교적인 사랑을 핵심가치로 두고 있다. 그래서인지 [과거의 거울에 비추어] 라는 책을 통해 알게된 '이반 일리치'를 생각나게 했다. 급진적 사상가였으나 카톨릭 사제였던 이반 일리치와 에머슨은 '공공을 위한 사랑'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내겐 비슷한 성향의 종교지도자로 느껴졌다.

'에머슨은 이 월든 호수 근처에 땅을 좀 가지고 있었다. 이 땅을 소로가 무상으로 빌려 오두막을 짓고 1년 반 동안 숲속 생활을 하며 기록한 것이 [월든]이라는 장편 에세이다. 에머슨의 자연관을 소로가 [월든]에서 구체화한 셈이다. (p. 181)' 라는 문장을 읽으며 에머슨에게 영향을 받았다는 다른 사람들보다도 적어도 소로 만큼은 에머슨이 없었다면 탄생하지 못했을 지식인이구나 라는 것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소로가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지 않았다면 스승처럼 여겼던 에머슨의 사상에 대해 좀더 정리한 책을 썼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소크라테스도 플라톤덕분에 유명해지지 않았던가...

사람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번쩍거리며 지나가는 빛줄기를 발견하고 관찰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p. 14) 우리는 자기 생각을 절반도 옳게 드러내지 못하고, 각자가 마음속에 품고 있는 신성한 생각을 오히려 부끄럽게 여긴다. 하지만 부끄러워 하지 말라. 그 신성한 생각은 자기 형편에 알맞고 확실히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기에 충실하게 밖으로 표현해야 마땅하다. (p. 15) 유일하게 옳은 것은 내 기질을 따라 생활하는 것이다. 그 기질에 어긋나는 것은 뭐든 잘못이었다. (p. 19) 나는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해야지, 남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해서는 안 된다. (p. 22) 진실한 삶을 산다면 우리는 진실하게 사물을 볼 수 있다. (p. 39)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왜 자기 신뢰를 언급하는가? 자기 영혼이 우뚝 서 있는 한, 말로 하는 힘이 아니라 실제로 활동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p. 41) 자신에게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은 자신밖에 없다. 근본 원리에서 이기지 못하면 그 어떤 것도 당신에게 평화를 가져다주지 못한다. (p. 62)

에머슨은 '이탈리아, 잉글랜드, 이집트로 여행을 가면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으리라는 미신이 교양 있는 미국인들을 사로잡고 있다. 자기 문화가 없어 이런 일이 생긴다. (p. 53) 모든 사람이 사회가 진보했다고 자랑하지만, 진보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회는 결코 진보하지 않는다. (p. 57)' 고 말하며 스스로가 볼수없는 것에 대한 허망한 상상을 하지 말고 스스로에게 집중할 것을 요구한다. 또한 '사회는 하나의 파도이다. 파도는 앞으로 나아가지만, 파도를 만들어내는 물은 전진하지 않는다. (p. 59)' 라며 파도에 휩쓸리기 보다 파도를 일으키는 근본원인과 파도의 물적구성인 물 자체를 관찰해볼 것을 제안한다. 그러한 과정에서 '자기신뢰'를 얻을때 스스로가 충만해질것이라고 강조한다. 이러한 맥락을 읽다보니 [시크릿] 이라는 미국식 자기계발서가 왜 탄생했는지 이해가 되기도 했다. 다만, [시크릿] 과 [자기 신뢰]의 차이는 개인적 성공과 만인의 행복 이라는 목표지점이 다르다고나 할까.

[자기 신뢰]라는 에세이는 이 책에서 가장 쉽게 읽히면서도 가장 핵심적인 에세이였다. 이 짧은 에세이가 엄청난 파급력을 가졌던 것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된다. 이어지는 에세이인 [운명] 은 운명론적 삶에 대한 인간의 '의지'를, [개혁하는 인간] 은 스스로를 개혁함으로써 공공에 베푸는 사람이 될 것을 강조하는데, [자기 신뢰]만큼 명확하게 다가오진 않으나 에머슨의 개혁적 '인류애'를 느낄 수 있었다.

에머슨은 심도깊은 연구를 한 사상가라기 보다는 활발한 강연자로 활동해서 그런지 세편의 에세이 모두 비교적 가볍게 읽혔다. 그러나 이 짧고 쉬운 언어들이 당대의 엄청난 사상가들에게 영향을 끼쳤다는 점에서 학문적으로 분석하고 들자면 엄청나게 무거워질수도 있다고 여겨진다. 나는 아직 스피노자도 니체도 소로도 잘 알지 못하기에 앞으로 읽고 싶은 책 리스트에 이들의 책이 올라가 있다. 그리고 에머슨의 에세이를 읽음으로써 나중에 범신론적 철학서들을 읽을때 보다 편안한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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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불의 딸들
야 지야시 지음, 민승남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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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에서 미국으로 이어지는 3백년,

가족과 국가를 형성하는 시간과 세대 앞에 마주 선 14인의 이야기

소설의 첫문장이라고 하면 아마도 가장 유명할 '안나카레리나'의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이유가 있다' 라는 문장 이후 가장 인상깊은 문장을 만났다. 소설을 시작하기에 앞서 첫 페이지에 인용된 이 속담은, 가족이라는 숲과 제각각의 구성원 나무들에 대한 이 아칸족 속담은 왠지모르게 마음을 울리는 무언가가 있었다. 빽빽한 숲도 들어가보면 성긴 나무들사이라는 것이 왠지 슬픈 서사를 예감하게 한다. 그리고 흔한 유행가 가사처럼 슬픈 예감은 틀린적이 없다...

가족은 숲과 같다. 숲 밖에서 보면 빽빽하고, 숲 안에 있으면 나무들이 저마다 자기 자리를 가진 것이 보인다. - 아칸족 속담

그리고 다음장에 등장하는 간략한 가계도는 소설을 읽는 종종 다시 들춰보게 돼는 페이지 였다. 그렇게라도 그들이 연결되어 있음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들 스스로도 모르는 그들의 관계를 눈으로라도 읽어줌으로써 그들의 헛헛함을 메우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싶어지는 마음이 되어서...

마메-에피아-퀘이-제임스-아비나-아쿠아-야우-마조리

마메-에시 -네스 -코조 -H -윌리 -소니-마커스

한명한명의 인생이 가나출신 미국인의 역사를 이루고 있는 이 소설은 흑인노예시기부터 현재까지의 300여년을 통해 사라진듯 사라지지않은 그들의 '집'을 그려내고 있었다. 마메의 불 에서 시작되어 해변의 물로 돌아오는 이 책의 원제는 'HOMEGOING 귀환' 이다.

코비는 얌 일곱 그루를 잃었는데, 한 그루 한 그루의 손실이 가족을 강타하는 느낌이었다. 그는 맹렬히 타오르다가 달아난 불에 대한 기억이 자신을, 자식들을 그리고 가문의 혈통이 이어지는 한 그 자식들의 자식들까지 영원히 따라다니며 괴롭히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p. 15)

에피아 가 태어나던 날 집안의 가장 중요한 재산이라고 할 수 있을 얌 일곱 그루를 사라지게 한 '불' 은 이후 7세대의 앞날을 예언하는 듯 소설의 첫 페이지에 등장한다.

에피아가 그 불에 저주받은 거예요. 영원히 여자가 되지 못하는 악마가 붙었다고요. 생각해 봐요, 무슨 사람이 그렇게 아름다우면서도 손을 댈 수가 없어요? 여자의 징표들은 다 나타났는데 아직도 소식이 없잖아요. 그래도 백인은 에피아와 결혼할 거에요. 그 사람은 에피아의 정체를 모르니까. (p. 33)

왜 맞는지 이유도 모르는 채 존재 자체로 어머니 바바에게 미움을 받고 자랐으나 '아름다운 에피아'라고 불리던 소녀는 케이프스코트 해변에 성을 짓고 노예무역을 하던 영국인에게 현지처로 팔려갔다. '이것은 <선>이고 저것은 <악>이며, 이것은 <희고> 저것은 <검다>라고 부르고 싶어하는 욕구를 에피아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의 마을에서는 모든 것이 모든 것이었다. 모든 것이 다른 모든 것의 무게를 견뎠다.(p. 45)' 에피아는 자랄때도 어딘가의 누군가에게 속하지 못했는데 제임스의 사랑을 받으면서도 케이프스코트의 성에서의 삶또한 에피아를 어딘가의 누군가에게 속하게 만들어주진 못했다. 그녀는 태어난 순간부터 낯선 이방인 같은 존재였다. 여기도 저기도 그녀의 집이 아닌 것만 같은... '불안이 그를 살아 있게 만들었고 이제 그 불안은 에피아의 몫이 되었다. 그 불안은 그녀의 삶, 그녀가 낳은 자식의 삶에 양식이 될 터였다. (p. 51)'

에시는 널빤지 한 장도 머리에 이고 나르지 못했지만, 어머니가 완벽하게 둥근 코코넛을 절대 떨어뜨리지 않고 마치 제2의 머리처럼 흔들림 없이 이고 가는 것을 보아 왔다. '그렇게 하는 건 어디서 배웠어요?' 에시가 마메에게 물었을 때 마메는 이렇게 대답했다. '무엇이든 꼭 배워야 할 처지가 되면 다 배울 수 있단다. 목숨을 하루 더 부지하기 위해서라면 하늘을 나는 법도 배울 수 있어' (p. 65)

마메는 딸 에시를 귀하고 귀하게 길렀다. 에시는 부족의 관습을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였고 마메는 그것이 탐탁치 않았다. 부족들끼리의 전쟁이 잦았던 시절이라 마을엔 늘 타부족과의 전쟁에서 획득한 노예가 있곤 했다. 에시가 하녀로 끌려온 노예를 함부로 하는 말을 했을 때 마메는 처음으로 에시에게 화를 냈다. '약한게 뭔지 알고 싶니? 약한 건 사람을 자기 소유물처럼 다루는 거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의 소유라는 것을 아는 게 강한 거고. (p. 66)' 라며 '노예'로서의 삶에 대해 안타까워하며 에시를 혼냈던 마메는 꿈에도 몰랐다. 자신의 딸이 노예의 삶을 살게 될 줄은.... 그것도 멀고먼 아메리카땅까지 끌려가서...

무역이 너무 많이 증가하고 노예를 모으는 방법들이 너무 무모해져서 많은 부족이 아이들 얼굴에 표식을 해 식별이 가능하게 만들었다. 노예로 가장 많이 잡히는 북쪽 사람들은 팔아넘길 수 없을 정도로 흉한 몰골을 만들기 위해 얼굴에 흉터가 스무개 이상씩 되기도 했다. 퀘이의 마을 전초 기지에 들어오는 노예들은 대부분 부족 전쟁의 포로들이었고, 가족들이 팔아넘긴 경우도 소수 있었다. (p. 104) 그들은 거기서, 숲 지대에서 그렇게 살았다. 먹거나 먹히면서, 포획하거나 포획되면서, 보호받기 위해 결혼하면서, 퀘이는 영원히 쿠조의 마을에 가지 못할 터였다. 그는 약해지지 않을 터였다. 그는 노예 사업에 몸담았고 희생이 필요했다. (p. 112)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태어나보니 자신의 동족들이 노예로 잡히고 팔려가고 있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희생이 필요했다. 노예들이 팔려나가는 가나의 해변이 황금해안으로 불리는 것은 지극히 슬픈 아이러니였다. 에피아가 태어난 판티족과 에시가 태어난 아샨티족은 같은 아칸족이었다. '같은 나무에서 갈라져 나온 두 개의 가지였다. (p. 77)' 하지만 그들의 사이는 점점 더 멀어질 뿐이었다. 아프리카 땅에서 뻗어나간 가지도 아메리카 땅에서 뻗어나간 가지도 그들의 뿌리를 알게되기 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영국인들은 더 이상 미국에 노예들을 팔지 않았지만 노예 제도는 끝나지 않았고, 아버지는 그게 끝나리라고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손목과 발목에 채우는 물리적인 족쇄가 정신에 채우는 보이지 않는 족쇄로 바뀌기만 할 터였다. (중략) 영국인들은 노예 무역이 끝난 뒤에도 아프리카를 떠날 생각이 없었다. 그들은 성을 차지했고, 아직 드러내 놓고 말은 안 하지만 아프리카 땅도 차지할 작정이었다. (p. 147)

영국인들이 뒤를 이어 다른 유럽인들이 아프리카 땅에 상륙해서 흑인노예들을 무역의 상품으로 다뤘던 시절이 끝났다고 해서 노예제도가 끝났다고 할수는 없었다. 그 노예들이 실질적으로 노동하고 있던 아메리카 땅에서 노예제도는 여전한 현실이었다. 아메리카 대륙의 북부지역부터 자유를 얻은 흑인노예들이 새삶을 일구길 꿈꿨지만 '배가 털릴 때마다 흑은 부두 노동자들이 모두 불려 가서 조사를 받았다. 조는 그것이 지긋지긋했다. 경찰이나 제복을 입은 사람 근처에 있으면 늘 조마조마했다. (p. 172)' 새로운 땅에서 흑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끝나지 않은 노예의 삶이라는 것을 자유를 얻었던 그때 그당시엔 몰랐다. 하지만 대를 거듭하는 후손들은 좀더 분명하게 그 삶을 체험하게 된다. '자네는 어렸어. 노예제가 자네 눈에는 그냥 점 하나에 불과하지, 응? 자네한테 아무도 말을 안 해준다면 내가 해주지. 전쟁은 끝낫을지 몰라도 노예제는 안 끝났어. (p. 237)'

불이 판틀랜드 해안에서부터 아샨티까지 내달리며 모든 것을 태워 버리는 꿈. 그녀의 꿈속에서 불은 두 아이를 품에 안은 여인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불의 여인이 어린 두 달을 안고 내륙의 숲에 이르렀을 때 아이들은 사라졌고, 불의 여인이 느끼는 슬픔은 눈에 보이는 모든 나무와 덤불에 오렌지색과 붉은색, 푸르스름한 색이 들끓게 만들었다. (p. 263)

자신의 운명을 거부했던 제임스의 딸 아쿠아는 꿈속에서 환영에 시달린다. 아프리카는 여전히 전쟁의 대륙이었고 남편은 다리를 잃었다. 더해가는 악몽속에서 한숨도 잠을 못자고 '불의 여인'에게 두려움을 느끼던 아쿠아는 결국 자신의 두 딸을 잃게 된다. 마치 제물로 바쳐지듯이... 그리고 살아난 단 한명의 아이는 '사람들 말로는 선생님이 불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렇게 똑똑한 거라고요, 불에 밝혀져서요. (p. 335)' 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교사로 살고 있지만 여섯살 이후로 자신의 어머니 아쿠아를 만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그는 힘주어 역사를 가르치면서 아프리카에서의 삶에 대해 고뇌를 거듭하는 중이었다.

그것이 역사의 문제점이다. 우리는 몸소 보고 듣고 체험하지 못한 것을 알 수가 없다. 다른 사람들의 말에 의존해야 한다. 옛날에 그곳에 있었던 사람들이 자식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자식들이 알도록, 그래서 그 자식들에게 다시 이야기해줄 수 있도록. 그 자식들은 그 자식들에게 또 그 자식들은 그 자식들에게. 하지만 우리는 상충되는 이야기들이라는 문제를 안게 되었다. (p. 336) 우리는 힘을 가진 사람 이야기를 믿는다. 바로 그 사람이 이야기를 쓴다. 그러니까 너희들은 역사 공부를 할 때 항상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나는 누구의 이야기를 놓치고 있을까? 이 목소리가 나오게 하기 위해 누구의 목소리가 억눌렸을까? 그 답을 알게 된다면 그 이야기도 찾아보아야 한다. 그래야만 더 분명한-그래도 여전히 불완전하기는 하지만- 그림을 볼 수 있다. (p. 337)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것을 우리는 수시로 잊고 산다.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해 교차검증과 고고학적 연구가 보태지긴 하지만 남은 기록들로 재구성되는 역사는 애초에 한계가 있는 학문이다. 그렇다고 무의미하다고 폄하하거나 소용없다고 포기해선 안된다. 보여지는 것을 통해 보여지지 않는 것을 보는 눈을 가져야 한다. 알려지지 않는 것을 알고자 하는 관심을 가져야 한다. 아프리카에서의 정체성찾기도 어려웠지만 아메리카에서의 정체성은 더욱 요원했다.

나는 경찰에게 얼마나 많은 멍을 얻을 수 있을까? 나는 시장, 주지사, 대통령에게 얼마나 많은 편지들을 보낼 수 있을까? 무언가를 바꾸려면 얼마나 많은 날들이 걸릴까? 바꾸면 진짜로 바뀔까? 미국은 달라질까, 아니면 거의 그대로일까? 소니에게 미국의 문제는 분리가 아니라 실상 분리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소니는 늘 백인들에게서 벗어나려고 노력해 왔지만 이렇게 땅덩어리가 큰데도 갈 곳이 없었다. (p. 362)

학교를 빠지고 할렘가를 떠돌고 마약에 빠지는 흑인들의 현실에 대해 알려주는 책들은 생각보다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여전히 그런 책들이 호응을 얻고 있다는 것은 여전히 현실이 그러하기 때문일 것이다. '너는 네가 하는 짓을 계속하고 있지만 백인들은 더 이상 그런 짓을 할 필요가 업다. 너를 노예로 팔 필요도 없고, 너를 소유하기 위해 탄광에 집어 넣을 필요도 없지. 백인들은 그래도 너를 소유할 것이고 그런 짓을 한 건 너라고 말하겠지. 그건 네 잘못이라고 말하겠지. (p. 390)' 사회적 시스템을 가리기 위해 개인의 유책으로 돌리는 많은 문제점들에 대해 우리는 '숲'의 관점으로 볼 필요가 있다. '나무'만 볼 것이 아니라.

마조리 아버지가 쓴 책 [국가의 멸망은 국민들의 가정에서 시작된다] 그 책은 아버지의 필생의 역작이었다. (p. 400) 집에 있는 책을 다 읽은 마조리는 어느 날 오후 내내 아버지 책을 붙들고 있었다. 하지만 겨우 두 쪽밖에 읽을 수 없었다. 그녀가 아버지에게 그 이야기를 하자 아버지는 마조리가 지금보다 훨씬 나이를 들어야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이 무엇을 분명하게 보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p. 401)

'나이를 들어야 이해할 수 있는 내용' 이 있고 '무엇을 분명하게 보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을 나도 나이들어가면서 조금씩 깨닫고 있는 중이다. 개인적인 프레임도 그렇지만 현실에 대한 인식도 그러하다. 지금 미국 사회에서의 흑인으로 사는 것에 대한 책이 많이 나오고 있다는 것은 그런 이야기를 할때가 되어서가 아닐까... '환영을 보는 재주 (p. 430)'를 가진 마커스는 운명처럼 마조리를 만난다. '고향에 온 걸 환영해 (p. 444)'

<누가 죽음을 두려워 하는가> 라는 소설과 <세일럼의 검은 마녀 나 , 티투바> 라는 소설을 통해 핍박받는 삶속에서 지켜지는 아프리카 토속적인 '이어짐'을 느꼈다면 <워터댄서>라는 소설을 통해 보여지는 흑인노예로서의 참혹한 현실이 <프라이데이 블랙> 과 <롱 웨이 다운> 이라는 소설속 현실로 여전히 이어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는데 <밤불의 딸들> 은 그 모든 것을 다 풀어내고 있었다. 한명한명의 삶의 몇장면을 읽는 것만으로 300년 흑인노예 역사책을 읽은 듯한 기분이 들게 하는 이 소설은 쉽고도 몰입감 높게 읽히는 소설의 장점과 구체적 현실감이 느껴지는 역사로서의 장점을 모두 갖춘 책이었다.

흑인의 삶을 다룬 소설이 자꾸 나오고 호평을 받는 다는 것은 지금 우리시대가 읽어야 하고 알아야 할 것들이 그 작품들 속에 들어있기 때문일 것이다. 시대가 읽기를 권하는 책은 더 잘 캐치해서 읽어줘야 하지 않겠는가? 이 책이 우리나라에서 또 많은 나라에서 읽혀지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지금의 미국사회에 특히 백인들에게 널리 읽히고 공감을 얻었으면 좋겠다. 많이 자유로워진 것 같고 많이 평등해진 것 같지만 삶엔 여전히 투쟁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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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페이지 과학 : INSTANT SCIENCE - 한 페이지로 넘기는 과학의 역사·원리·발견
제니퍼 크라우치 지음, 박성래 옮김 / 영진.com(영진닷컴)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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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페이지로 넘기는 과학의 역사·원리·발견

두꺼운 벽돌책이 부담스러운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두껍지 않아도 책 한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읽어내는 것조차 점점 더 부담스러워하는 시대가 된 것 같다. 그래서인지 '1페이지' 어쩌구 하는 수식어를 단 책들이 종종 눈에 띄곤 한다. 그런 수식어를 단 책은 반드시 한권이 아니어도 단 한 페이지만읽어도 뭔가를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가볍게 읽으면서도 가치를 느낄 수 있다는 건 굉장히 매력적이다. ^^

'인스턴트 사이언스' 라고 쓰여 있는 이 책을 보며 '과학' 도 인스턴트 로 접근할 수 있구나 싶어서 신선했다.

인스턴트 라는 말은 즉석 식품을 지칭할때 주로 사용하는 말이다. 가볍고 간단하게 조리해 먹는 식품을 인스턴트 식품이라고 한다. 과학도 그렇게 가볍고 간단하게 읽을 수 있다면? 이또한 매력적이다. ㅎㅎ

책은 일단 디자인 면에서 굉장히 깔끔하다.

매 페이지마다 한 페이지에서 주제 하나씩을 충실히 담고 있으면서도 다양한 색감과 시각자료를 활용해서 내용이 어렵더라도 보기좋게 감각적으로 다가온다.

1페이지, 인스턴트 라는 수식어로 가볍게 시작한 것 대비 내용이 생각보다 어려워서 놀라긴 했다. 하지만 그 내용을 다 이해하라고 이 책을 쓴 것도 아닐 테고 그 어려움들을 다 이해하려고 이 책을 읽는 것도 아니다. 이 책은 일종의 '상세 목차' 같은 책이다. 또는 과학용어 들의 감각적 풀이집 이랄까?!

여기 나오는 다양한 단어들과 법칙들을 이 책을 통해 이해까진 아니어도 눈에 익혀두면 언젠가 다른 과학책을 읽을 때 분명 도움이 될 것 같다.

짧은 요약본 같은 책이지만 '과학'의 다양한 분야를 나름 총 망라 하고 있다.

과학의 기초분야인 수학으로 시작해서 물리학, 화학, 생물학&의학, 지질학&생태학, 기술 까지 순수과학부터 응용까지 두루 섭렵한다.

과학적 본문을 시작하기에 앞서 몇가지 설명된 수학도 시작하자마 전문성이 팍팍 느껴진다. '수학적 개념은 발명한 것일까요? 아니면 발견된 것일까요?(p. 15)' 같은 철학적 질문을 이 '인스턴트 과학'책에서 만날 줄이야 ㅎㅎ

이후로도 신선한 내용들이 눈에 들어오곤 했는데, 파이(π)의 특별함이라던가 극한 생물의 신기함이 재밌기도 하고 '인간에 의한 기후변화' 에선 착잡하기도 하고 '활자' 부분의 '나무 활자 기술은 중국, 일본, 한국, 인도에서 수천 년간 사용해 왔습니다.(p. 150)' 에선 반갑기도 했다.

적은 지면속에서도 여성 과학자 에미 뇌터, 벨 버넬, 로잘린드 프랭클린 의 억울한 사례를 빠뜨리지 않고 언급해준 것과 남성임에도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배척당한 '앨런 튜링'등 과학의 어두운 이면들을 알려준 것도 좋았다.

과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마중물 책으로도 핵심용어집으로도 활용될 수 있을 것 같은 이 책은, 얇지만 무시할 수 없는 전문성을 띠고 있으면서도 시각적으로 훌륭해서 한권으로서도 한페이지로서도 의미있게 읽히는 알찬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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