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집이 대가를 치를 것이다
스테프 차 지음, 이나경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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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시대, 두 인종, 두 가족

한 발의 총성으로 깨어나는 도시의 암울한 역사

증오에 의해 잿더미로 변한 아메리칸 드림

폭력의 근저에 흐르는 인종적 딜레마의 본질을 꿰뚫는 책

세상이 살만해졌다고 느끼게 하는 책들이 있다.

잘 알지도 못하고 경험하지 못한 시간들이 내가 겪지 않은 시간들이라는 것에 감사한 마음을 갖게 하는 책들이 있다.

누군가는 옛날이 좋았다고 그리워할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지금이 더 살기 좋다고 그리고 앞으로 더 살기 좋아질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인종차별에 대한 작품들이 과거에 비해 자주 눈에 띈다. 각종 차별에 대한 글들이 예전에 비해 자주 눈에 들어온다. 무시당하지 않고 눈에 띄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분명 발전이라고 생각한다. 인종구성이 다양하지 않은 나라에 살면서 잘 몰랐던 인종차별에 대해 미국사회에서 한인사회와 흑인사회의 갈등을 체감하게 해줌으로써 문제적 시야를 넓혀주는 이 소설은 그런 '발전'에 분명 큰 보탬을 줄 수 있는 작품이었다.

"영화가 취소댔대" 남자는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가 무서우냐, 흑인이 열 명만 모이면 갱단인 줄 아느냐고"

"우린 표가 잇어요. 돈도 다 냈다니까요"

"그래 봤자야"

"그건 불공평하잖아요" (p. 20)

1991년 3월 이었다.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갔을 뿐인데 상영이 갑자기 취소됐다. 로드니 킹 구타 사건으로 흑인사회에서 백인경찰에 대한 소문이 흉흉하던 때였다. 그 뒤로 28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크게 변한건 없었다. 2019년6월 그레이스는 알폰소 쿠리얼 추모 집회에서 언니 미리엄을 만났다. 알폰소는 백인 경찰의 총에 죽은 십대 흑인 소년이었다.

레이는 고등학생 시절 이후로 제대로 된 일을 한 적 없었다. 숀도 매니가 기회를 주기 전까지는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배링 크로스 일원들과 함께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말썽을 부리며 돈이 필요하면 마약을 나르고 불법을 저질렀다. 올바로 살고 싶어져도 일거리를 찾기 어려웠다. 마지막에 레이는 대릴에게 사준 장난감 권총을 가지고 은행을 터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p. 68)

레이는 십년만에 감옥에서 나왔다. 사촌인 숀에게 그는 친형이나 다름없었다. 숀은 이삿짐센터 일을 하며 적게 벌더라도 합법적으로 살려고 노력하며 레이의 가족을 보살폈다. 유일한 가족이었던 친누나 에이바는 1991년 열여섯의 나이에 누군가의 총으로 살해당했다.

미리엄이 이본과 말을 안 한 이후로, 아마 잘은 모르지만 그한참 전부터도 흑인, 인종, 인종차별을 조금이라도 암시하면 그레이스의 집은 긴장했다. 다른 가족들도 그러는지 궁금했다. 친구들과 그 부모도 섹스 이야기를 피하듯이 이 화제를 피하는지. (p. 87)

미리엄이 부모와 인연을 끊고 집을 나간 이유를 그레이스는 알지 못했다. 아버지 폴은 무뚝뚝했지만 성실했고 어머니 이본은 딸들에게 희생적이었다. 각별한 자매사이였지만 그레이스는 언니를 이해할 수 없었다. 부모님과 함께 일하는 약국문을 닫고 여느날처럼 퇴근하려던 주차장에서 누군가가 쏜 총에 어머니가 쓰러지고 나서야 그레이스는 가족들이 그동안 감춰왔던 비밀에 직면하게 된다.

"에이바 매슈스는 사우스센트럴에 사는 열여섯 살 흑인 여자애였어. 폭도들이 한국인을 공격한 건 그 애 때문이기도 했어" 미리엄은 끊지 않고 빠르게 말했다. "어느 날, 그 애가 편의점에 들어갔는데, 주인이 그 애가 우유를 한 병 훔쳤다고 했어. 싸움이 벌어졌고, 주인이 그 애 뒤통수에 총을 쐈어. 경찰이 와선 그 애가 2달러를 쥐고 있는 걸 발견했고" (중략) "주인이 한국인 아저씨였어?" 미리엄은 슬픈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동생을 봤다. "한국인 여자였어" (p. 124)

이본 박이 갑작스런 총격사건으로 사경을 헤맬때 28년 전의 흑인소녀피살 사건이 수면위에 떠올랐다. 누가 한국인 중년 여성을 저격했는가? 왜?

출소한지 얼마 안된 레이와 사촌 숀은 소식을 듣고 술잔을 부딪혔다. 하지만 숀은 기쁘지 않았다.

에이바는 성인도 천사도 아니었다. 나쁜 일들을 겪었고, 그런 것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좋은 일들도 겪었지만, 에이바는 당연히 받아들였다. 욕도 하고 말대꾸도 했다. 맞서 싸우기도 했다. 사람들 말과 달리, 에이바는 물건도 훔쳤다. (p. 169)

아무에게도 상처주지 않았는데 누가 못마땅히 여긴다고 생각하면 미칠 것 같았다. 그건 예전, 교회에 다니고, 가게를 운영하고, 가족을 양육하며, 잘 가꾼 정원 같은 삶을 사는 조용하고 근면한 한국인 부부의 2세대 딸이던 시절의 이야기였다. 이제 그녀는 모든 걸 알아 버렸다. 그들은 모래 위에 집을 지었고, 비가 내리고 물이 불어나자 세상의 냉혹한 홍수에 휩쓸려 버린 것을. (p. 193)

숀은 가족과 가정을 지키고 싶었지만 흑인사회는 술렁거렸다. 그레이스는 가족의 화목과 평안을 원했지만 비밀이었던 진실은 가족을 산산이 부수고 있었다. '그런 식으로 구부러지다 보면, 넌 다른 사람이 될 거야, 더 나쁜 사람 (p. 200)' 이라고 말하는 미리엄도 '법정을 가득 채운 한국인들 (p. 222)' '사람들에겐 항상 배상할 수가 없거든. 신께 사죄하는 수밖에 없을 때가 있다 (p. 226)' 라는 아버지 폴도 그레이스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레이가 범인으로 지목되어 경찰에게 구속되었다. 그레이스는 숀을 찾아가기로 한다.

좋은 사람들이 아니었다. 속이 좁고 결점을 가진 사람들, 죄를 지으면서 남을 쉽게 판단하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이곳에 모이니 한 몸이 되어 서로를 껴안았다. 부모가 여기 오는 게 이상하지 않았다. 인자한 표정을 보니 이 힘든 한 주를 겪은 그레이스에게는 그들의 선의가 힘이 됐고 가슴이 뭉클했다. 용서받은 느낌이었다. (p. 286)

어렸을때 다니다 말던 교회에 오랜만에 온 가족이 함께 갔을때 그레이스는 부모님이 왜그토록 교회에 열심히 나갔는지 느낄 수 있었다. 한인사회에도 교회가 있고 흑인사회에도 교회가 있었지만 그들이 믿는 신은 하나임에도 같아 보이지 않았다.

"LA경찰이 우리 이야기를 고른 거다. 큰 기자회견을 소집했지. 정의니 뭐니 연설을 하고. 네 엄마를 일급 살인죄로 기소하겠다고 약속했어. 흑인 애가 죽을 때마다 그랬을 거 같아?" (p. 308)

"로드니 킹 구타 사건이 있은 지 2주도 안 되어서 항상 뉴스에서 얻어터지고 있었으니까. 날마다 경찰 넷이 무기도 없는 흑인을 때리는 영상이 나왔거든. 2주 동안 매일. 그때 네 엄마가 그앨 쏜 거야" (중략) "영웅이 되려고 네 엄마를 악당으로 만든 거다" (p. 309)

이용당했다고 해서 살인이 정당화될 순 없다. 하지만 겉모습에 휘둘리는 사람들에게 그런 배후적 의미는 다가가지지 않았다. 그레이스와 숀은 각자의 위치에서 점점 더 구석으로 내몰리고 있었다. 결국 엄마는 죽었다. 흑인사회에서 레이를 석방시키기 위한 집회규모를 키우고 있었다. 그레이스는 인종차별주의자로 매도당하고 있었다. 하지만 진범이 누군지 숀은 알아버렸고 그레이스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또다시 폭동의 조짐이 보이고 있었다

"이건 아뭣도 아니에요. 당신들이 아무 노력도 없이 위로받으려고 하는 행동이죠. 뭔가 바꾸고 싶다면, 우린 놔두고 정말로 '뭔가' 해 봐요" (p. 394)

1991년 3월 15세의 라타샤 할린스가 오렌지주스를 사러 엠파이어 주류마켓 엔드델리에 가서 주스값을 내려고 했을 때, 두순자라는 이름의 가게 주인이 주스를 훔쳐 간다고 하더니 시비가 붙었고 두순자는 총을 꺼내 소녀를 쏘았다. 소녀는 왼손에 2달러를 쥔 채 사망했고 당시 차별에 대한 누적된 불만이 팽배했던 흑인사회는 LA폭동을 일으켰을때 한인마켓을 집중 타격했다. 이 실화 사건을 바탕으로 한 소설은 생생하게 읽히는 동시에 인물들의 내면에 깊이 빠져들게 한다. 두 시대, 두 인종, 두 가족이 서로를 적으로 여기는 것처럼 시작됐지만 그들이 서로 멱살잡고 싸울때 뒤에서 팔짱끼고 웃는 이들이 있었음을 깨닫게 해주고 있었다. 그렇게 작가는 분노의 방향을 어디로 잡아야 할지 밀도높은 공감으로 적시하고 있었다. 그 방향으로 제대로 향해가지 못할때 누가 대가를 치루게 될지는 우리 스스로에게 되물어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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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욕이 뿜뿜 솟는 50가지 방법
쓰카모토 료 지음, 박재영 옮김 / 이지북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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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서는 거의 안 읽는 편이다.

나를 의욕적으로 계발할 만큼의 의욕이 없는 편이라.

더구나 일본 저자의 책은 문학외엔 안 읽는 편이다. 역사는 왜곡이 심하고 에세이는 정서에 안맞는데다가 문학도 사실 일본문학엔 공감이 안되서 거의 안 읽는다. 그런데 일본 저자의 자기계발서라니.

자음과모음 서포터즈 활동을 하게 되서 받은 책인데... 문학 이외의 책을 그것도 이런류의 책을 받게 될 줄은 몰랐다;;; (그동안은 소설책들이라 너무 좋았는데.... ㅠㅠ) 여하튼, 받은 책이니까 감사히 읽긴 읽었다.

'의욕이 인생을 바꾼다! 무기력, 무열정, 노답 문제아를 케임브리지에 입학시킨 궁극의 솔루션!' 이라는 홍보문구가 알려주듯이

저자는 공부천재는 아니었지만 고등학교때 뒤늦게 공부에 열의를 갖고 명문대를 이어 케임브리지 대학원까지 수료한 의욕맨이다.

'케임브리지, 하버드, 스탠퍼드... 세계 21개 명문대의 심리학, 뇌과학 연구를 바탕으로 한 과학적 법칙' 이라는 수식어가 알려주듯이

저자는 자신이 지금의 성과를 얻기까지 스스로 깨달았던 방법들을 독자들이 알면 독자들도 의욕이 뿜뿜할거라면서 활기차게 이런저런 방법들을 법칙이라며 이야기한다.

저자는 의욕이 생기게끔 하는 '구조'를 강조하면서 무분별한 의욕이나 의지를 말하는 게 아니라고 하지만, 결과적으로 저자처럼 의욕이 뿜뿜 하는 에너지를 소유한 사람이 아니라면 공감할 만한 '과학적 법칙'은 없었다.

하지만 이건 자기계발서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철저한 내 개인적 감상이자 결론이다.

누군가에겐

'일잘러가 되기 위한 자기관리법' 이나 '합격을 위한 의욕 공부법' 이나 '다이어트를 위한 자신과의 대화법' 이나 '제대로 쉬기 위한 의욕적 휴식법' 들일 정말 의욕을 솟구치게 하는 50가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 누군가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 일단 책은 한시간이면 다 읽을 정도로 휘리릭 잘 읽히는 장점이 있는 책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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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생활 건강
김복희 외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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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친 마음에 힘을 주고 지친 몸을 눕게 하는,

여성 시인 열 명의 생활 건강 에세이

문학의 장르를 크게 시, 소설, 극, 산문 으로 나눌 수 있다면 이 중에서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유일한 분야는 '시' 라고 할 수 있다. 에세이는 좋아하진 않지만 읽어서 이해안 될 것이 없는 글이고, 영화나 드라마 또는 연극으로 보는 극을 대본 책으로 보는 재미도 조금은 느껴본 적 있고, 이런저런 책을 읽다가 지칠때면 소설을 찾아 읽는 나로서는 나름 문학을 즐기면 즐긴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시는 정말이지 한번도 제대로 이해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어쩌면 시란 이해가 아닌 영역일텐데 이해하려고 들어서 더 그런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시인 열명의 에세이 열 편을 담은 이 작은 책은 시처럼 읽히는 이 얇은 책은 읽는 내내 머릿속을 부옇게 만들곤 했다. 일상을 담아내고 있지만 여전히 내가 알지 못하는 시의 세계로 나를 끌어들이는 듯 했다.

지금의 나는-기억은 좀 군데군데 없지만-좋아하는 일을 자주 하고자 노력하는 잔잔하게 망가진 인간이다. (p. 19)

책 제목에 '건강'을 달고 있는 이 책의 첫번째 글 [굴러가는 동안 할 수 있는 일- 김복희] 에서 시인은 이미 건강하지 않은 '망가진 인간'이고

나는 삶이 기쁘지 않아. 엄마에게 고맙지 않아. 마음 뿌리를 다 뽑을 작정으로 털어놓고 나면 슬픈 만큼 흡족했다. 그는 묻지 않고 눈앞의 나를 다 본다. 나는 그에게 받아들여진다. 언제나 그냥 받아들여진다. (p. 40)

외로움에 몸부림치며 몸도 마음도 망가지려할때 [몸 맘 마음 - 유계영] 속 엄마처럼 아무 조건 없이 받아들여지고 사랑을 느끼게 해주는 가족이 있어 시인은 외로워 보이지 않았다.

끝이 있다는 느낌, 막다른 벽에 부딪힐 거라는 느낌은 좋다. 그 또한 나의 생활이고 나의 건강이다. 끝이 있다는 감각은 건강하다. 테두리에 대한 감각도 건강하다. 테두리 혹은 사방의 벽을 감각하며 가방을 걸어서 여행을 가지 않기. (p. 59)

일상을 여행처럼 표현한 [여행 가방 - 김유림] 에선 막막한 여행보다 일상의 감각에서 건강함을 찾다가도

그래. 그날 내가 A씨의 전화만 받지 않았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 거다. A씨는 내게 그랬다. "그래도 고유한 건강함에 대해 쓰면 독자들도 흥미로워할 거예요" 당시 나는 수긍했다. 그러나 쓰려고 보니, 그 전화를 받고 수긍한 내 자신을 탓할 수밖에 없었다 건강한 지점을 찾으려고 12월 내내 분투했지만 도무지 나는 건강하지 않다는 잠정적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중략) 니체이자 내가 말했듯이 나는 비극을 긍정하기로 했다. 건강하지 않음을 밝힘으로써, 그것이 건강의 씨앗이 될 수 있음을 여러분에게 알리기 위해 쓴다. (p. 66)

이 책의 시작을 알게 해준 전화 한통을 통해 [고독한 소호 방 - 이소호] 의 '쓰는' 행위는 시인의 건강하지 않음을 오히려 상기시킨다.

다만 내가 아는 건, 이 알 수 없는 사랑이 나를 생활하게 한다는 것. 이 사랑이 나의 살과 기립근을 이뤄 날 일으키고 허허벌판에 홀로 서 있을 때에도 아주 혼자는 아니게 한다는 것. 그러므로 아주 먼 길을 걷는 데에도 끄떡없게 한다는 것을, 안다.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랑이, 나의 생활과 건강을. (p. 101)

할머니와의 관계를 통해 가족의 사랑을 되씹는 글이 [사랑의 정체 - 손유미] 시인의 사랑이 가족의 결속력을 확인시켜준다기 보다는 시인의 나른함에 늘어지다가도

완벽함이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허상에 불과하다. 그저 스스로 세운, 자신만의 기준일 뿐이다. 열정은 원동력이 되어 움직이게 하지만, 인간의 에너지는 유한하다. 그것을 간과해서는 아니 된다. 그래서 노동과 학업 또한 우선순위를 매긴다. 지혜롭게, 슬기롭게, 짜릿하게, 자신있게. 무엇보다 우선이 되어야 할 것은 '건강' 이라는 것을 깨달으며 (p. 119)

5잡러라는 바쁜 시인의 생활을 통해 [미안하지만 아직 안 죽어 - 강혜빈] 같은 번아웃된 시인의 존재를 확인하게 되기도 한다.

나는 겨우 내 방과 화해하고, 그 안에서 건축하기 거주하기 사유하기를 실천하고 있는 중이었다. 내가 잘못된 곳에 와 있다고 느끼지 않고, 이제 막 여기가 나라는 사람의 거푸집임을 인정하는 중이었다. (p. 139)

누구보다 외로울 것 같은 시인의 삶이 [건축하기 거주하기 사유하기 - 박세미] 처럼 평화로워 보이다가도

나는 반복적이고 건강한 삶만이 사회를 건강하게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건강한 삶을 지키는 것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삶에는 어쩔 수 없이 구멍이 생기기 마련인데 그것이 없다는 것은 기이한 일이다. 철저하게 감추었거나 메우려 하기에 보이지 않는 것일 테다. 그것을 없애려 하는 것이야말로 병적인 태도는 아닐까. 오히려 삶의 상처와 결여가 있는 삶이 더 건강한 것은 아닐까. 삶이 주는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사람, 그로 인해 병이 있는 사람, 느린 사람, 그보다 더 느린 사람, 그것이 아니라 그저 다른 사람.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것은 건강하지 못한 자들이다. (p. 157)

[나의 안/건강한 삶 - 성다영] 에선 건강한 삶에 대해 의문을 제기해 보기도 하지만

그 사랑의 색깔이 나를 물들인다. 그림을 통해 세상을, 그리고 나 자신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p. 174)

[사랑의 색채, 단 하나의 색깔 - 주민현] 시인에게 건강은 결국 '사랑' 으로 회귀된다.

그러나 나는 늘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원망하고 증오하는 사람들과 거의 매일 함께 있었다. 아니야, 나는 좋아하고 보고 싶은 사람들과 늘 함께 살고 있다. 사람들에게 받은 마음으로 건강했고 아무 마음을 곁에 두지 않고도 혼자 생활할 수 있었다. 엄마와의 관계조차 거부하고 싶었던 내게 시는 더 완벽한 고립으로 사람과의 관계를 만들어주었다. (p. 188)

시인은 고독을 자초하지만 결코 사랑없이 살 수 없구나 싶었다. [새끼의 마음에서 - 윤유나] 새끼의 마음을 유지하고 싶고, 반려동물의 마음을 알아주고 싶고, 가족에 대한 사랑에서 떨어지고 싶어도 시인의 건강 생활 비법은 결국 '사랑'이었다.

'다친 마음에 힘을 주고 지친 몸을 눕게 하는 여성 시인 열 명의 생활 건강 에세이'는

다친 마음을 시처럼 쓴 글을 지친 몸 옆에 누운 기분으로 읽게 되는, 여성 시인 열 명의 건강하지 않은 생활을 보여주는 건강 에세이 였다.

그러나 또 어찌 알겠는가? 시처럼 모호하고 뿌연 글들이 누군가에겐 자신의 생활건강을 돌아보게 해줄 진한 공감이 될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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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위한다는 착각 - 종말론적 환경주의는 어떻게 지구를 망치는가
마이클 셸런버거 지음, 노정태 옮김 / 부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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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봄> 이래로 가장 탁월한 업적

인간이 환경을 생각한지 그리 오래 되지 않은 만큼 출간된지 60여년 밖에 안된 <침묵의 봄>은 (환경학의) 최고의 고전이라 불린다. 그리고 이 <침묵의 봄>은 여전히 읽히면서 그 어떤 환경학 책보다 큰 영향력을 지금도 발휘하고 있다. 나도 이 오래전 환경에 대한 책을 몇년전에서야 읽으면서 여전한 무지에 놀라고 부끄러웠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마냥 옳다고만 여겨지던 '환경주의가 지구를 망친다' 니 '지구를 위한 착각'을 하고 있는 거라니 이 도발적인 문제제기에 호기심이 일었다. 그리고 두툼한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침묵의 봄>이래로 가장 탁월한 업적'이라는 문구에 동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지난 30여 년을 환경 운동가로서 살아왔다. 그중 20여 년은 기후 변화를 비롯한 환경 문제에 관해 조사하고 글을 쓰는 데 바쳤다. 내 목표는 자연환경을 보호하는 것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보편적 풍요를 누리게끔 하는 것이다.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나는 이 책을 썼다. (중략) 환경과 기후 문제에 관해 사람들이 주고받는 이야기 중 상당수는 잘못되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 그 잘못된 정보를 바로잡아야 한다. 환경 문제를 과장하고, 잘못된 경고를 남발하고, 극단적인 생각과 행동을 조장하는 이들은 긍정적이고 휴머니즘적이며, 이성적인 환경주의의 적이다. 그런 주장에 신물이 났기에 나는 이 책을 쓰기로 했다. 이 책에서 다루는 모든 사실, 주장, 논증은 현재 이용 가능한 최고의 과학 지식에 근거하고 있다. (p. 28) 마지막으로 이야기해야 할 것이 있다. 이 책은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윤리관을 옹호하는 입장을 취한다. 혹자는 그것을 주류 윤리관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세속적 형태건 종교적 형태건 휴머니즘을 옹호한다. 종말론적 환경주의자들이 곧잘 취하는 반인간주의에 반대하는 것이다. (p. 29)

저자는 환경운동가로 살아왔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기에 환경문제에 관한한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주류를 반박한다. 아주 용감하게. 읽는 내내 저자의 직설에 감복했고 저자가 제시하는 증거들에 감탄하며 왜 그동안 이런 내용이 알려지지 않았을까 안타까웠다. 환경문제는 정치경제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산업이 발달하면서 환경이 파괴되었다는 식의 그런 얘기가 아니다. 저자는 오히려 그 반대입장을 취한다. 산업이 발달해야 환경을 보호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 관계를 감추고 싶어하는 자들에 의해 우리의 눈에는 가리개가 덧씌져 있었음을 책을 읽으며 확인할 수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세계는 기후변화로 멸망하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기후 변화가 사실이며 인간이 기후 변화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호헨카머 선언'에 실명으로 동의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이 동의한 내용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자연재해 자체가 심각해져서가 아니라, 인력과 자원이 유익하지 못한 방향으로 사용되어서 자연재해로 인한 비용이 증가한다는 데도 동의한 것이다. (p. 55)

기후 변화가 수십억 명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문명을 붕괴시킬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라면, 기후변화정부간협의체의 어떤 보고서에도 그와 같은 종말론적인 이야기가 단 한 줄도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랄 것이다. (p. 58)

'기후 양치기'들이 있다. 환경 문제를 떠들며 관심이 쏠리는 것을 즐기는 양치기 소년 같은 이들이다. (p. 69)

상식처럼 여겨지는 기후나 환경관련 뉴스들의 이면은 따지고 들어갈수록 과학적 토대가 부족했음을 오히려 왜곡해왔음을 저자는 꼼꼼하게 지적한다. '기후 양치기'들이 주로 하는 주장들을 살펴보자.

'지구의 허파가 불타고 있다' 라고 하지만 아마존은 지구의 허파가 아닐 뿐더러 아마존 열대우림은 위기에 처해 있지 않고 건재했다. 저자는 아마존의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들에 분노를 터뜨린다. '삼림 파괴와 화재 증가는 근본적으로 경제 성장을 원하는 대중의 요구에 정치인이 부응한 결과다. 자연환경에 대한 관심 부족 탓이 아니다. (p. 97)' 라며 '브라질은 인구 중 4분의 1이 빈곤에 허덕이는 나라다. (p. 98)' 라는 것을 상기시킨다. 그리고 서양인들의 역사를 돌아볼 것을 주장한다. '21세기 환경주의자들은 '야생'이라는 말을 긍정적인 뜻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과거에는 야생이란 공포의 대상이었다. (중략) 그래서 초기 기독교인들은 숲을 없애는 일을 악이 아니라 선으로 여겼다. (중략) 숲은 야생의 땅과 죄악이 꿈틀대는 곳이었다. 농장과 목장을 만들기 위해 숲을 개간하는 것은 신의 과업을 이행하는 일이었다. (p. 101)' 그리고 이렇게 농장과 목장을 만들어 부를 쌓은 유럽은 산업의 발달로 지금의 현대문명을 이루었다. 후발주자인 저개발국가들이 뒤를 이어가는 발달의 과정을 이제 환경문제로 바꿔서 저해하고 있는 것이다. '이건 정말 반개발주의, 그러니까 반자본주의에요. 농업 비즈니스를 증오하는 마음으로 가득 차 있죠. 최소한 브라질 농업만큼은 증오하는 게 확실합니다. 같은 기준을 프랑스나 독일에 적용하고 있지 않으니까요. (p. 105)' 자신들이 잘먹고 잘살게 된 상태에서 여전히 가난과 기아에 허덕이는 생존의 문제를 환경때문에 막아서는 것, 그것은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당연히 억울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린피스의 환경 운동은 값싼 브라질산 농산물을 유럽 시장에서 몰아내고픈 유럽 농부들의 목적의식과 잘 맞아떨어졌다. (p. 107)' 저자가 제기하는 의문에 나도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존 화재 연기를 연막탄 삼아 보호무역주의를 휘두르려는 게 아닌가 싶은 거죠. (p. 109)' 이러한 내용이 놀라운가?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언론의 관심이 플라스틱에만 쏠리는 것은 그만큼, 어쩌면 그보다 훨씬 더 중대한 문제로부터 눈을 돌리게 만드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는 기후 변화도 마찬가지다. 플라스틱이 쓰레기나 기후 변화보다 훨씬 더 쉽게 바로잡을 수 있는 요인들이 해양 생물의 생명을 크게 위협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가령 남획은 '기후 변화를 제외한 영역에서 어류의 지속성을 위협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하나'라고 기후변화정부간협의체는 지적하고 있다. (p. 139)

저자는 '자연을 지키기 위해서는 인공을 받아들여야 한다' 고 '어떤 이들은 쓰레기 문제보다 더 속상한 일이 훨씬 많다. (p. 145)' 고 말한다. 역시 가난이 문제다. '가난한 나라는 우선순위기 다르다. (p. 149)'

'호모사피엔스는 여섯 번째 멸종의 원인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 희생양이 될 위기에 처해 있다. (p. 153)' 라는 말은 종종 들어봤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멸종동물 보다 '환경난민' 이 아닐까? 동물과 사람 중 누가 더 중요하냐고 따지자는 게 아니다. 상생의 방법이 있는데 굳이 왜 자꾸 한쪽만 선택하냐는 것이다. 동물을 보호하기 위해 사람을 내쫒고 있다는 것을 들어본 적 있는가?

에너지 생산을 집중화, 고도화하는 것은 지구 행성의 더 많은 부분을 야생 동물에게 넘겨주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오늘날 지구상에 세워진 모든 수력 발전 댐과 모든 화석 연료 발전소 그리고 모든 원자력 발전소를 합쳐도 얼어붙은 땅을 제외한 전체 면적의 0.2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 에너지 생산을 위한 토지 사용 면적은 식량 생산을 위한 토지 사용 면적의 고작 200분의 1에 불과하다. (p. 216) 그린피스나 멸종저항의 주장은 틀렸다. 가난한 나라에 에너지 밀도 높은 공장이 들어서는 것은 숲을 위협하지 않는다. 공장이 떠나 버릴 때 숲은 진짜 위기에 빠진다. (p. 220)

환경문제를 세계적으로 보는 단체들이 주로 관심을 갖고 보호하고자 하는 곳은 자국이 아니다. 아프리카 남미 동남아시아의 자연들. 하지만 그 사람들이 보호하고자 하는 자연 속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가난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환경운동가들은 자신들이 고래멸종을 막았다며 가난한 사람들과 무관한 환경운동의 성과들을 내세울지도 모른다. 저자는 명쾌하게 말한다. '고래를 구한 것은 국제조약이 아니라 식물성 기름이었다. 국제포경위원회가 1982년 포경 행위를 금지했을 때 이미 포경 산업은 사실상 끝난 상태였다. (p. 240)' 라고 '석유가 고래를 춤추게 한다' 고.

탄수화물 섭취를 옹호하고 지방에 반대하는 십자군 운동은 환경뿐 아니라 사람들의 건강에도 유익하지 못했다. 돼지를 더 살찌우는 대신 덜 살찌우는 비효율적인 방식으로 기르도록 분위기를 몰아갔기 때문이다. 가축을 기르는 이들은 곡물 먹이를 더 많이 먹일 수밖에 없었고, 이것은 더 많은 땅이 필요해진다는 말과 같았다. 사람들이 저지방 식단을 택해 비효율적으로 가축을 기르면 결국 필요한 땅은 더 넓어진다. 고기에 대해 사람들이 걱정하는 내용 중 상당수는 틀렸다. (p. 291)

저자는 채식주의자였지만 지금은 고기를 먹는 것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환경주의자라면 사람들이 고기를 쉽게 접할 수 있도록 가축을 길러 제공하는 일을 꺼리지 말아야 한다. (p. 293)' 고 말한다. 가축의 농장식 사육에 대한 비판을 넘어선 비난을 퍼붓는 사람들이 들으면 깜짝 놀랄 소리다. 하지만 가축과 야생동물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사람이 해야할 일에 대해 고민할 필요성은 분명해 보였다. 가축사육에 대한 저자의 견해도 놀라웠지만 더 큰 충격은 원자력 발전소에 대한 찬성근거들에서 왔다. 너무도... 옳았다. 저자는 원자력 에너지가 지구를 지킬 수 있다며 반핵운동뒤에 숨어있던 것들을 드러낸다. 결국 자본가들의 이권다툼이었다.

태양광 또는 풍력 시설이 대대적으로 들어선다면 그 불안정성을 감당하기 위해 더 많은 가스 발전소가 세워져야 하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다. 가스 발전소는 상대적으로 쉽게 켜고 끌 수 있어 날씨 변화에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p. 366) 독일만큼 신재생 에너지에 전폭적인 투자를 한 나라도 없다. 지난 20년간 독일은 이른바 '에너지 전환'에 총력을 기울렸다. (p. 371) 그러나 2019년 세계 최대 컨설팅 그룹 매킨지는 독일의 에너지 전환이 경제와 에너지 수급에 심대한 위협을 가했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기후 변화 대응, 공급 안정, 경제적 효율 이라는 에너지 산업의 세 꼭짓점 모두에서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다' (p. 372)

'도시는 응축된 에너지가 필요하다. 오늘날 인류는 건물, 공장, 도시에 공급하는 전력보다 에너지 밀도가 1000배 높은 연료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므로 에너지 밀도가 낮은 신재생 에너지의 사용이 늘어나는 것은 자연 보호에만 해로운 일이 아니다. 인류 문명을 지키고 유지하는 데도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p. 383)' 라며 저자는 신재생 에너지가 갖고 있는 문제점들을 하나하나 지적한다. 저자의 말마따다 신재생 에너지가 오히려 자연을 파괴하고 있었다. 신재생에너지 또는 친환경 에너지 라는 것은 일종의 유토피아 같은 거였다. 그리고 유토피아는 늘 이루어진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세계적으로 신재생 에너지와 친환경 에너지에 집착하고 있는가? 역시 또 결국 자본가들의 이익 문제였다. 그리고 더 충격적인 건 그 자본가들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는 환경주의자들과 환경운동 단체들의 민낯이었다.

진실은 훨씬 복잡하고 추잡하다. (p. 422)

녹색 경기 부양책에서 가장 큰 이득을 본 이들은 억만장자들이었다. (p. 436)

늘 그랬듯이 '힘 있는 자들이 가장 좋은 해결책에 반대'했다. '부유한 나라의 환경주의자들이 콩고 같은 나라의 가난을 초래하는 근본 원인은 아니지만 최소한 책임은 있다. 가난하고 낙후된 지역 사람들이 산업화와 개발의 혜택을 받지 못하도록 그 길에 들어서는 것을 어렵게 만들고 있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p. 449)' 라는 저자의 말에 쉽게 공감이 안 갈수도 있다. 서양사람들이 아프리카나 빈민국들에 이런저런 기부를 엄청나게 하고 있는 것을 종종 뉴스로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을 일부러 헛돈을 쓰고 있는 셈이었다. 정작 필요한 것은 안 해주고 필요없는 것만 퍼붇고는 생색만 엄청 낸다고나 할까. 맬서스의 인구이론도 틀렸다고 저자는 꼬집는다. '기근은 식량 생산이 아니라 체제의 문제인 것이다. (p. 477)' 기근은 인구의 폭발적 증가 때문이 아니었고 해결할 수 없는 문제도 아니었다. 하지만 권력자들은 대부분 멜서스주의자들이었다.

세계 인구 증가율이 정점을 찍고 내려오고 있다는 것이 분명해지자 맬서스주의자들은 다른 길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인구 과잉과 자원 고갈 대신 기후 변화를 빌미로 종말론 공포 몰이를 벌여 나간 것이다. (p. 481) 얼마나 많은 NGO들이 개발도상국의 관개 시설 확충 프로젝트를 공개적으로 반대하거나 물밑에서 압력을 넣었습니까. 농업 현대화 프로젝트가 시작되려 할 때마다 '그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게 아니고 환경 을 파괴한다'라며 반대했던 게 누구인가요. (p. 484) 하지만 경제 성장이야말로 환경 보호다. (p. 489) 나는 되물었다. "세계에서 가장 취약한 계층을 상대로 에너지 실험을 하는 현실에 대한 말씀이신 거죠?" (p. 493)

극빈국에 대한 자본국들의 에너지 실험도 문제였지만 환경종말론의 종교화도 문제였다. '종말론적 환경주의에는 바로 그런 종교적 성격이 짙게 깔려 있다. (p. 513)' '오늘날 환경주의는 일종의 세속 종교다 (p. 520)' 종말론은 묘한 매력이 있다. 2000년이 될때 종교가 있건 없건 세상의 종말에 대해 한번쯤은 심장이 떨려본적 있지 않은가?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예로 들어 사람들이 왜 환경종말론에 빠져드는지 설명한다. 만약 이렇게 종말론에 대한 회의감으로 책이 마무리되었다면 정말 우울한 책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자는 직설적 용기만큼 따듯한 희망도 넘치는 사람이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말이 아니다. 할 일은 많다. 문제는 그 방향이다. 현재의 긍정적인 흐름을 더욱 키워 나가야 한다. 저에너지 농경 사회로 돌아가자는 퇴행적 움직임으로 지금까지 이룩한 발전을 되돌리려 해서는 안 된다. (p. 538) 그러므로 우리는 이성주의를 넘어서 휴머니즘을 다시 포용해야 한다. 인간의 특수성을 긍정하고 인류 문명과 인류 자체를 증오하는 맬서스주의와 환경종말론에 맞서야 한다. (p. 540) 우리는 환경종말론자들의 주장을 균형 잡힌 시각으로 대하고, 인류가 도달한 풍요의 과실을 여전히 누리지 못하는 이들을 향한 공감과 연대의식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p. 541)

이 책은 환경주의에 대한 책이지만 환경주의자들을 무조건으로 옹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동안의 숨겨진 비리들을 파헤쳤다고 보는 것이 맞다. 그렇다고 환경주의자들이 모두 다 그렇다고 호도하는 것도 아니다. 팩트를 체크하고 팩트만 믿자는 말이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함께 제대로 알고 향해 가자는 말이다. '환경 휴머니즘의 핵심 가치를 밝힐 때가 됐다. 부유한 나라들은 가난한 나라들의 경제 개발을 부정하지 말고 반드시 도와야 한다. 특히 부유한 나라들은 지금 당장 가난한 개발도상국들에 채운 개발과 에너지생산의 제약이라는 족쇄를 풀어야 한다. (p. 541)' 라는 저자의 주장에 귀기울여주는 이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대량 멸종을 메멘토 모리로 받아들이고 환경진보가 '불멸 프로젝트'가 되도록 이 책이 알려주는 진실이 널리 회자되길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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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이 만만해지는 책 - 넷플릭스부터 구글 지도까지 수학으로 이루어진 세상의 발견
스테판 바위스만 지음, 강희진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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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찾기, 영화 추천, 일기예보, 여론조사, 전염병 통제...

우리의 일상과 함께 숨 쉬는 수학의 쓸모에 관하여

넷플릭스부터 구글지도까지 수학으로 이루어진 세상의 발견

수학이 만만해질 수 있을까? 많은 이들의 희망사항이자 꿈일 것이다. 이 어려운 로망을 실현해보고자 오늘도 도전해본다. 수학을 쉽게 느끼게 해줄만한 책을 찾아 읽어보는 것으로.

이 책을 통해 수학의 다양한 분야와 그 뒤에 숨은 목적을 살펴보고, 수학이 얼마나 필요하고 쉬운 학문인지를 입증하고 싶다. 실제로 몇몇 수학 분야는 놀라우리만치 다양한 영역에 활용할 수 있다. 복잡한 공식을 일일이 이해하지 못해도 그 뒤에 숨은 원리를 꿰뚫어볼 수 있다. 그래프이론도 마찬가지다. 그래프이론은 구글에서 검색 결과를 정렬할 때도 활용되지만, 암세포가 특정 치료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 예측하거나 도심의 교통 흐름을 분석할 때도 동원된다. 통계나 미적분 등 이 책에서 소개하는 현대 수학의 여러 분야 또한 탁월한 쓸모를 자랑한다. 얼핏 듣기에는 복잡하지만 그 뒤에 숨은 아이디어가 황당할 만큼 단순한 경우도 많다. 고등학교 시절 수학 시간이 고역이었던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활용도가 높다. (p. 11)

많은 사람들이 수학은 어렵다고 말한다. 하지만 수학은 학창시절 내내 엄청나게 중요한 과목이기에 섣불리 포기할 수도 없다. 그럴때마다 '수학의 필요성'을 느끼고 '수학 공부의 목적'을 깨닫는다면 그나마 수학공부에 흥미를 가지게 될 것이라며 이런저런 책들에서 열심히 응원을 보내주곤 한다. 이 책도 그런 연장선에 있는 책이다. 다만, 열여덟살에 석사학위를 받고 스물한살의 나이에 수학철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는 등 유럽에서 가장 촉망받는 수학철학자라는 저자의 에너지 넘치는 응원이 수학에 대한 의욕을 불러일으키기엔 출발하는 마음가짐이 일반인들하고는 다를수밖에 없다라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랄까;;; 그래도 수학은 이 책처럼 전문가가 설명해주는 책이 좋다. 저자는 수학철학자라서 그런지 수학의 특정분야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수학의 다양한 범위를 두루 살펴봐주고 있는데 이 책의 큰 장점이라 하겠다.

우리는 어디를 가든 매 순간 수학과 마주친다. 물론 글자 그대로의 수학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직업상 늘 수학에 관해 생각하고 고민하는 나조차 연산 한번 하지 않고 지나가는 날이 더 많다. 이렇게 우리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수학은 항상 '음지에서' 묵묵히 대 활약을 펼치고 있다. (p. 31)

수학은 일상과 동떨어진 학문이 아니다. 돈계산을 하고 추천영화의 %를 확인하고 최적의 길찾기를 하는 등등이 다 수학적인 일상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숫자가 나오면 다 수학적이라고 볼수도 있다. 하지만 학교에서 배우는 수학은 이러한 일상과 도통 연결되지 않는 기분을 느낄 때가 많다. 계산을 할때 근의공식을 쓰진 않고 %가 들어있는 자료를 볼때 경우의수를 다 따지는 것은 아니며 길안내를 해주는 지도앱이 어떻게 수학을 활용하는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저자는 숫자없이 살아가는 지구상의 몇 안되는 부족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기도 한다.

우리는 대체 왜 수학을 배워야 할까? 지금까지 살펴본 바에 따르면 수학 없이도 생존은 가능하고 충분히 행복한 삶을 꾸려갈 수 있는 듯하다. 그런데도 왜 대부분의 사람들은 산술과 기하를 익혀야 한다고 생각할까? 왜 고대의 메소포타미아인과 이집트인, 그리스인, 중국인들은 그토록 수학에 골몰했을까? 그 이유는 아마도 수학이 우리 삶에 필수 불가결한 무언가를 채워줬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 '무언가'는 무엇이었을까? (p. 91~92)

저자는 '수의 기원'부터 시작한다. 내가 좋아하는 역사로 시작하니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그동안 역사서들을 꽤 읽는다고 읽었었는데도 이집트의 상형문자는 특수한 경우에만 사용되고 행정문서들의 일상에서는 상형문자와는 다른 '신관문자'로 기록했다거나, 숫자기록이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에서 거의 동시에 등장했다거나, 이집트에서는 화폐없이 빵과 맥주로 교환이 이루어지다가 기원전 390년경 그리스 용병을 받아들이면서 은화동전이라는 화폐를 사용하게 됐다거나, 중국에서의 숫자사용은 다른 문명권에 비교해 늦은편인 기원전 1000년께 시작됐지만 혁신적인 숫자 체계와 다양한 연산기술을 개발했다거나, 그리스인들의 추상적 수학과 중국인들의 현실적 수학 탐구 목적이 수학자들에 대한 인식과 처우도 달랐다거나 하는 등의 역사 이야기들은 수학을 떠나 읽어도 무척 흥미로운 내용들이었다. 여하튼 저자는 고대의 수학을 살펴보면서 다시한번 질문을 던진다. '인류는 왜 수학에 관심을 두었을까? (p. 130)'

수학의 유용성에 관해서는 첫 장부터 강조해왔다. 우리는 수학을 활용하면 문제를 더 쉽게 해결할 수 있고, 복잡해 보이던 문제가 갑자기 쉬워질 수 있다는 사실을 줄곧 확인했다. 수학을 알아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일정 규모를 넘어선 국가나 도시들은 여러 행정 문제를 처리해야 했고, 그 일은 타고난 수학적 능력만으로는 부족했다. 이에 따라 인류는 수학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수학을 모르는 부족들이 아무 이유 없이 소수 부족인 게 아니다. (p. 131)

더 나은 삶,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늘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해 노력한다. 그 노력 중의 하나가 수학의 활용이었다. 그리고 지금 현재도 그 노력은 여전히 현재 진행중이다. 예전보다 더 광범위하게 예전보다 더 치밀하게.

미분과 적분은 우리 주변 곳곳에 숨어 있다. 자동차, 커피머신, 자동 온도조절기 등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기기들은 미적분 없이는 작동하지 않는다. (p. 163) 미적분은 분명 우리 주변 여러 분야에 폭넓게 활용되고 있고 필요한 학문이다. 다만 어떤 직업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미적분이 더 필요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예컨대 건축사가 되고 싶다면 미적분을 피할 길은 거의 없다. 자연과학 쪽으로 진출하고 싶다? 당장은 아니라도 언제가는 미적분을 다룰 가능성이 크다. 차량의 안전도나 자동차 디자인 분야에서 일하는 이들도 마찬가지다. (p. 165)

고등학교수학 중에서도 거의 최고난이도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미적분이 이렇게 필수라니 암담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저자도 반문한다. '흠, 그런데 미적분 없이도 할 수 있는 일이 충분히 많잖아? (p. 165)' 하고. 더구나 갈수록 컴퓨터가 대신 처리해주는 일이 많은데 굳이 사람이 알아야 하겠냐고 되물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누군가가 무언가가 대신 해주는 일을 얼만큼 믿을 수 있을까? 최소한 그 기저에 깔린 원리는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미적분의 원리까지 가지 않더라도 개념과 원리 이해에 대한 중요성은 일상에서 '통계와 확률' 을 이용한 왜곡된 사례들을 통해 그 필요성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최근엔 데이터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그래프이론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가짜 뉴스나 개인정보 보호, 인공지능이 초래할 미래에 대한 우려는 이제 사회적 담론이 되었다. 그 모든 주제는 그래프이론의 능력 범위 또는 한계와 관련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래프이론을 알아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 사회적으로 공론화한 주제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갖고 싶다면, 자타 공인 전문가들이 내놓는 해법 중 어떤 것이 실천 가능하고 어떤 것이 불가능한지 조금이라도 판단하고 싶다면 그래프이론이 당신에게 큰 힘이 되어줄 것이다. (p. 250) 약간의 수학 실력만으로도 내 데이터를 누가 어떤 용도로 활용하는지를 들여다볼 수 있다. 수학, 그 중에서도 특히 우리가 골치 아프다고 생각하는 수학 분야 들에 관한 지식을 우리 뇌에 조금만 장착하면 세상을 훨씬 투명하게 조명할 수 있다. (p. 272)

저자는 수학의 역사부터 과학적 성과를 이룩한 수학 및 다양한 수학의 분야들을 두루 설명한다. 그리고 '숫자는 어떤 의미에서 유용할까? 숫자는 우리가 속한 세상을 비추는 거울이라고 할 수 있다. 숫자가 유용한 까닭은 우리가 주변 세계의 구조에 집중하게끔 만들고, 여간해서는 눈길이 닿지 않는 미세한부분까지 들여다보게 해주기 때문이다. (p. 255)' 라며 정리한다. 결과적으로 수학의 필요성은 '유용한 학문' 이기 때문이다. 수학 몰라도 살 수는 있다. 그러나 더 잘 살고 싶다면? 더 나은 삶을 살고 싶다면? 수학의 유용성을 활용할 줄 알며 살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노력해야 할 것이다.

책한권 읽었다고 갑자기 수학이 만만해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꾸준하게 조금씩조금씩이라도 세상이 수학으로 이루어진 세상이라는 것을 알아가는 것은 중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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