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 인생의 끝을 준비하는 현대인을 위한 고대의 지혜 아날로그 아르고스 4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 지음, 제임스 롬 엮음, 김현주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21년 6월
평점 :
절판


인생의 끝을 준비하는 현대인을 위한 고대인의 지혜

세네카는 고대로마의 스토아 철학자 이다. 얼마전 읽었던 세네카의 에세이집 글들은 '삶'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이 책은 '죽음'에 대한 세네카의 글을 모은 책이다. 삶과 죽음은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 는 늘 지혜를 필요로 하는 질문들이다. 그 지혜를 오랜 세월 전해져온 고대인의 글에서 배워볼 수 있기를...

그는 삶을 제대로 인식한다면 인생은 죽음으로 가는 여정일 뿐이며 인간은 태어나는 날부터 매일 죽어가기에 살아가면서 죽음을 연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세네카의 사상이 담긴 여덟 권의 저작에서 가려 엮은 것으로, 이 글을 통해 세네카는 자신의 편지 수신인과 인류에게 죽음, 즉 사람의 생이 끝나는 지점을 받아들일 필요성에 대해 당시나 지금이나 유례없을 만큼 솔직하게 이야기 한다. (p. 10)

이 책은 세네카의 에세이 전문을 실은 것이 아니라 부분적으로 내용을 옮겨와 엮은 것이다. 그 엮은 주제는 하나 '죽음' 이다.

철학자인 동시에 정치가였던 세네카는 AD30년대 말 로마 황제 칼리굴라가 미쳐가며 잔인하게 굴던 시대에 젊은 원로원 의원을 지냈다. 40년대 황제 클라우디우스 시대에는 정치적 여론 조작용 재판으로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감형되어 코르시카 섬으로 추방당했다. 이후 로마로 환송 명령을 받고 어린 네로의 스승이 된 세네카는 50년대부터 60년대 초까지 황실에서 지냈다. 그는 점점 정신이 이상해져 심지어 가족들까지 죽이려는 네로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결국 미수에 그쳤던 황제 암살 음모에 공모했다는 혐의로(아마도 잘못된 혐의였을 것이다) 네로의 분노를 사서 AD65년, 60대의 나이에 자살하라는 형을 선고받았다. (p. 12)

세네카가 살았던 시대는 그야말로 광적인 황제들의 시대였다. (한마디로 멀쩡한 정신의 황제를 경험해보지 못했다고나 할까) 죽음이 난무했고 고문과 사형이 아닌 자살형은 차라리 축복이었다. 고전을 전공하고 그리스문학과 역사를 가르치는 저자는 세네카가 '그리스의 선대 철학자들과 로마의 교사들로부터 스토아철학의 체계를 물려받았지만 죽음의 방법, 특히 자살에 관한 원칙에 새로운 중요성을 부여했다. (p. 14)' 고 말한다. 하지만 세네카가 말하는 자살과 현대적 의미의 자살은 구분지어 생각할 필요가 있다. 세네카는 '자신의 글에 쓴 것과 같은 자살을 실제로도 자주 목격했다. 칼리굴라와 네로를 포함하여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의 모든 황제들이 정적들에게 스스로 목숨을 끊으라고 자주 명령했고 명을 어기면 사형에 처하거나 재산을 몰수하겠다고 위협했다. 세네카는 그런 강요된 자살을 많이 목격해다. 그래서 다른 동료 스토아 학자들보다 훨씬 자주, 더 열정적으로 고통이나 정치적 압력에서 탈출할지 말지의 여부와그 시기에 관한 주제로 다시 돌아갔다. (p. 15)' 과거의 모든 기록은 당시의 상황을 감안해서 읽어야 한다. 스토아철학자로서 정치계에 있었던 세네카의 현실은 그의 철학적 주제를 그가 경험하고 목격하는 현실속에서 찾게 만들었다.

세네카의 글은 죽음에도 존엄성이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잘 죽는 것'의 의미가 본인의 죽음을 침착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든 떠나는 시간과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든 아니면 무자비한 원수가 육체에 가하는 폭력을 용기 있게 참아내는 것이든, 그에게는 잘 죽는 것이 대단히 중요했다. (p. 17)

세네카의 현실은 늘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늘 마음 졸이며 위기의식 속에 살았다기 보다는 스토아철학자로서 '잘 죽는 것'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했다. 저자는 '세네카가 약25년에 걸쳐 쓴 산문 중 죽음을 가장 중요하게 다룬 여덟 편의 산문에서 발췌하여 모은 이 책의 구절들은 죽음에 관한 교훈을 속성으로 가르치려는 그의 노력이다. (p. 18)' 라고 말했다. 그가 처했던 현실을 상상해보고 그가 남긴 말들을 읽어보며 그가 선택한 죽음에 대해 그는 과연 죽음을 잘 맞이했는지 판단해보는 것은 이 책을 읽는 의미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것같다.

친밀한 편지글 형식을 띠고 있지만 [도덕적 서간집]은 애초에 출판을 위해 쓰인 글이며 수신인인 '너'는 루킬리우스 일 때도 있지만 로마 시민이나 모든 인간을 가리키기도 한다. (p. 23)

에피쿠로스는 '죽음을 연습하라'라고 말한다. 이 말의 의미를 더 분명하게 전달하자면 '죽음을 맞이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은 훌륭한 일이다' 라고 할 수 있겠다. 딱 한 번만 사용하는 기술을 배우는 일이 쓸모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죽음을 연습해야 하는 이유다. 우리는 알기는 해도 경험으로 말할 수 없는 것을 항상 연구해야 한다. '죽음을 연습하라' 이렇게 충고하는 사람은 우리에게 자유를 연습하라고 명령한다. 어떻게 죽을 것인지 배운 사람들은 어떻게 노예가 되는지를 잊는다. (p. 24) [도덕적 서간집]

죽음에는 연습이 있을 수 없다. 죽음에 기술이 필요하다면 그야말로 단 한번의 기회에 사용되는 단 한번의 기술일 것이다. 그리고 살면서 유일하게 경험해 볼 수 없는 것이 바로 죽음이다. 그러니 연습해야 한다고 세네카는 말한다. 죽음을 생각하고 연습하는 것이 곧 무엇에도 노예로서 종속되지 않는 자유로운 삶이 될 것이라 말한다. 죽음을 연습하는 것은 곧 제대로 살아내는 것이기도 하다.

세네카는 폐결핵을 포함하는 호흡기 질환과 천식으로 평생 고통받았다. 그의 기록에 따르면 그 불편함 때문에 청년기에 자살을 고민하기도 했다. 그는 일평생 아래에 묘사되는 발작을 경험했을 테지만 특별히 의사들이 그 발작들에 붙여준 이름이 (세네카에 따르면) 메디타티오 모티스, 즉 '죽음을 위한 연습'인 점을 고려하면 세월이 지나면서 질병에 의미가 더해진 셈이다. (p. 30)

세네카의 정치적 상황속에서만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던 것이 아니었다. 세네카는 평생 폐질환으로 고통 받았고 그 병을 '죽음을 위한 연습' 이라고 불렀다. 죽고 싶을 만큼 고통스런 질병을 평생 앓으면서 수많은 죽음을 목격하고 자신도 언제 어느때 죽임을 당할지 모르는 삶이라니 당연히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하게 되었을 것 같다. 이렇게보면 철학자로서 '잘 죽는 법'에 대해 고뇌하고 고뇌하게 된 것은 당연한 귀결이 아니었을까.

나는 준비되어 있다. 앞으로 남은 모든 날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사는 것이 즐겁더라도 죽기를 거부하는 사람을 칭찬하거나 따라 하지 말라. 내쫓기듯 떠나는 것에 무슨 덕이 있겠는가? 하지만 여기에도 덕이 있으니, 나는 내쫓길 테지만 그럼에도 나의 떠남을 받아들인다. 내쫓긴다는 것은 떠나는 자리에서 본의 아니게 추방당하는 것이기에 현자는 절대 내쫓기지 않는다. 현자는 모든 일을 본의 아니게 하지 않는다. 그는 필연에서 벗어난다. 왜냐하면 그는 필연이 강요하는 죽음을 염원하기 때문이다. (p. 33)[도덕적 서간집 54]

이 책에 자주 인용되는 [도덕적 서간집]은 세네카가 죽기직전 마지막으로 남긴 에세이라고 한다.(p. 141 참고) 네로에게 퇴출당하고 칩거하는 동안 당연히 곧 다가올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자신의 죽음을 준비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어차피 죽을 거 편안하게 최선을 다해 잘 맞이하고 싶지 않았을까.

죽음은 관습적으로 경멸당하는 것 이상으로 경멸당해야 한다. 우리는 죽음에 대한 많은 것을 의심 없이 받아들인다. 그런데 수많은 재주꾼은 죽음에 관한 나쁜 평판을 퍼뜨리려고 노력하며 지하감옥, 영원한 밤으로 뒤덮인 왕국 등으로 죽음을 묘사한다. (p. 55) 그런데 이 이야기들이 우화에 불과하며 사후세계에는 죽은 자들을 두렵게 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안다 해도 또 다른 공포가 존재한다. 사람들은 지하세계에 존재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만큼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중략) 죽음이 악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정신은 덕을 얻지 못하겠지만 죽음을 아무래도 좋은 것으로 여긴다면 가능할 것이다. (p. 56) [도덕적 서간집 82]

세네카는 사후세계를 믿지 않았다. 사후세계에 대한 묘사들은 다 우화이고 거짓이라고 한다. 존재하지 않기때문에 두려워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잘 죽는 것은 사후세계를 위한 준비를 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죽음은 악한 것도 아니고 두려운 것도 아니다. 세네카는 자신의 죽음에 직면하기 위해 무수히 노력했던 것 같다.

나는 젊었을 때는 잘 사는 것에 관심을 두었고 늙어서는 잘 죽는 것에 신경쓰고 있다. 잘 죽는 것이란 기꺼이 죽는 것을 의미한다. 상황이 무엇을 요구하든 그것을 기대하며, 무엇보다 슬픔을 배제하고 죽음을 응시하기로 마음을 가다듬자. 우리는 삶을 준비하기 이전에 죽음에 대비해야 한다. 삶이 이미 잘 갖추어져 있는데도 우리는 더 채워 넣으려고 욕심낸다. 항상 무언가 부족해 보이고 앞으로도 계속 그래 보일 것이다. 그러나 충분히 살았음을 결정하는 것은 햇수도 아니고 날수도 아니고 정신이다. 소중한 루킬리우스, 나는 충분히 오래 살았다. 나는 마음 가득 죽음을 기다린다. (p. 67) [도덕적 서간집 61]

세네카는 내내 죽음을 이야기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하는 동안 머릿속에선 자신의 삶이 스쳐지나가고 있지 않았을까?

우리는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사는 것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 왜냐하면 오래 살게 돕는 것은 운명이지만 충분히 살게 돕는 것은 자기 자신의 정신이기 때문이다. 삶은 충만하다면 길 것이며, 정신이 자신의 선을 스스로 되찾고 통제할 때 삶은 충만해진다. 느리게 지나가는 80년 세월이 어찌 특권이겠는가? 사는 것이 아니라 삶을 버티는 것이다. 늦게 죽는 것이 아니라 오래 죽어가는 것이다. (p. 78) 얼마나 살아야 완전하겠느냐고 네가 물었다. 지혜를 얻을 때까지 사는 것이다. 그 목표에 도달한 사람은 가장 먼 지점이 아니라 가장 위대한 지점에서 인생을 끝맺는다. (p. 80) [도덕적 서간집 93]

세네카는 수명에 연연해하지 말라고 말한다. 짧게 살다간 이의 죽음을 슬퍼할 것도 없고 장수하는 이의 삶을 부러워할 것도 없다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충분히 충만하게 사는 것이다. 세네카는 자신의 죽음을 기다리며 자신의 삶에 대해 이러한 만족감으로 위안을 얻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좀더 편안한 마음으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아무리 괜찮은 척 해도 결국은 죽음이 두려웠기에 끊임없이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용기를 가지려 했던 것이 아닐까. 고찰하고 또 고찰하며 용기와 지혜를 갖춘 현인이 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마치 소크라테스처럼.

소크라테스는 독을 마시지 않고 식음을 전폐하며 금욕함으로써 생을 마감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감옥에서 30일 동안 죽음을 기다렸다. 모든 가능성을 열려 있다는 - 그렇게 긴 기간이라면 온갖 종류의 희망의 방이 마련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믿음에서가 아니라 법에 복종하며 친구들이 자신의 최후의 날에 기쁨을 얻게 하기 위해 서였다. 죽음을 경멸하면서도 독배를 두려워하는 것보다 더 바보 같은 일은 없으리라. (p. 114) [도덕적 서간집 70]

소크라테스는 죽음을 경멸하지도 않았고 독배를 두려워 하지도 않았다. 앞서서 '죽음은 관습적으로 경멸당하는 것 이상으로 경멸당해야 한다. (p.55)' 라는 문장을 보면 세네카는 죽음을 경멸했던 것도 같다. 경멸하는 것 앞에서 당당하기 위해 죽음을 아무렇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려 했던 것일까. 죽음을 기다린다고 말하면서도 내심 더 살고 싶은 욕망을 내려놓기가 힘들었던 것인지도...

도둑과 적군 모두 네 목에 칼을 꽂을 수 있음을 기억하라. 권력자는 물론이거니와 노예에게도 네 삶과 죽음의 권한이 있을 수 있다. 공공연한 공격이든 비밀 모의를 통해서는 집안에서 배신당해 몰락한 자들의 일화를 생각해보라. 왕보다 노예의 증오에 의해 무너졌던 사람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p. 144) [도덕적 서간집 4]

왕뿐만 아니라 노예에 의해서도 죽임을 당하던 시대였다. 세네카는 네로황제에 의해서도 죽음을 당할수 있고 집안에서 부리던 노예에 의해서도 죽음을 당할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세네카는 노예에 대해 비교적 관대한 입장을 가졌던 철학자였다. '노예상태는 정신의 상태가 아닌 육체의 상태이며, 노예는 영혼의 자유를 통해 육체의 예속을 초월할 수 있다' 고 말했던 세네카가 두려워 했던 존재는 결국 자신을 내친 네로황제 뿐이었던 것 같다. 그러니 잔인한 처형이 아니라 자살형이 내려졌을때 오히려 감사한 마음이 들지 않았을까. 그래서 자신의 죽음을 소크라테스의 죽음과 견줄만한 모습으로 연출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세네카는 플라톤이 [파이돈]에서 각색한 장면 중 죽음을 차분하게 마주했던 소크라테스의 모습을 매우 동경했다. (중략) 타키투스의 역사서 [연대기]에 실린 아래의 본문에 세네카의 죽음에 대한 기록이 전해져 내려온다. 세네카의 자살은 복잡다단했고, 타키투스의 기록은 플라톤이 남긴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이야기만큼 긍정적이지는 않다. 세네카가 성인이 되고 나서 내내 생각하고 준비했던 그 죽음을 실제로 이루어냈는지는 독자들이 스스로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p. 154~155))

타키투스의 [연대기]에서 세네카의 죽음 장면만 찾아 읽어봤었다. 이 책의 저자가 말한것처럼 세네카의 죽음은 소크라테스의 죽음 같은 감동적인 장면은 아니었다. 세네카가 알려주는 고대의 지혜는 결국 인간은 누구나 다 거기서거기라는 것 아닐까? 평생 죽음에 대해 성찰하고 현인이 되고자 했던 세네카와 죽음을 생각지 않고 삶에 치중하는 현대인은 다를 것이 별로 없어 보였다. 그러니 우리가 세네카로부터 배워야 하는 것은 간단하게 말하면 '메멘토 모리' 가 아닐런지.

우리는 어느 순간 부득이하게 삶을 떠나야 하고 마지막 숨을 내쉬어야 하기에, 조금 더 거창한 이유로 죽는 것은 일종의 기쁨이다. 우리는 언젠가 어디선가 반드시 죽는다. (p. 152) [자연 연구 6]

그저 오래 사는 것에 대해 세네카는 ' 사는 것이 아니라 삶을 버티는 것이다. 늦게 죽는 것이 아니라 오래 죽어가는 것이다.' 라고 했다. 산다는 것이 오래 죽어가는 것이 아니라 얼만큼 살든 충만하게 사는 것이 될 수 있도록 세네카의 문장에서 지혜를 찾아보는 건 어떨까? 우리는 모두 언젠가 어디선가 반드시 죽을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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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크로스 더 투니버스 트리플 4
임국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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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너머 다른 시공간에서 반짝이고 있을,

지난 시절 내가 사랑했던 것들이 보내는 시그널

세 편의 소설이 한 권에 모이는 방식을 통해 작가가 흥미로운 시도들을 할 수 있도록 한 <자음과모음 트리플 시리즈> 4권이다. 따라서 세 편의 작품이 실려 있고 앞선 시리즈가 그러했듯이 책은 작고 얇아서 단숨에 읽히는 단편소설집이다. 그리고 임국영 이라는 새로운 젊은 작가를 알게 해준다.

<어크로스 더 투니버스>

세상 돌아가는 실정을 알 수 없었던 아이들로서는 어수선한 시대상은 관심사 밖이었다. IMF보다는 세일러 문으로 기억되는 바야흐로 대만화영화의 시대였다. 공중파3사에서 황금 시간대 직전인 대략 오후 5시부터 7시까지 경쟁적으로 애니메이션을 방영했다. (p. 11) 아이들은 열광하며 미디어의 시혜를 기꺼이 만끽했다. 학교에서 친구들을 만나면 어제저녁에 본 만화를 주제로 대화를 나누고 오프닝 송을 합창했다. (p. 12) 만경과 수진은 함께 TV를 시청했다. 불만은 없었다. 컴퓨터는 만경과 수진에게 허락된 몫이 아니었다. 만경과 수진도 동갑이었고 같은 초등학교에 다녔지만 친구는 아니었다. (p. 13)

투니버스 채널이 생겼을 무렵 나는 이미 티비만화채널을 졸업한 나이였던지라 작가가 말하는 만화들과 내가 아는 만화들은 너무나 달랐다. 이렇게 소설에서 격세지감을 강하게 느낀 것도 처음이지 싶다. 여하튼, 만경에게는 형이 있었고 수진에게는 오빠가 있었는데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고 같은 중학교에 다니는 절친한 친구 사이였던지라 그 동생들도 한 집에서 놀게 될 때가 많았다. 아니 놀았다라기 보다는 그저 같은 공간에 있었다. 티비 만화채널을 보면서.

만경은 내성적이고 소극적이며 친구 하나 없는 왜소한 소년이었고 수진은 훤칠한 체구에 활발했고 거친 소녀였다. '만경에게 수진은 '주인공'이었다. 만화영화 속에나 나올 법한, 다른 인물들과는 확연히 차이가 나는 프레임과 작화로 생동하는 캐릭터처럼 보였다. (p. 16)' 그러다 만경이 만화책을 빌려주게 되고 대화의 물꼬가 트이며 같은 중학교에 진학하게 되자 둘은 친구가 되었다. 그리고 둘 사이엔 지수라는 친구도 늘 함께였다. 세 사람은 언제나 붙어다녔고 만화동아리도 함께 했으며 수시로 '만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던 어느날 만경은 봐서는 안될 장면을 보고 말았다.

네가? 어떻게 내게? (p. 37)

"용서 안 할 거야. 절대 못해" (p. 39)

자신이 수진을 좋아했던가, 아니다. 수진은? 그럴리 없다. 왜 사람들은 나와 수진이 붙어다니면 사귀는 거냐고 물었을까. 수진이란 아니는 도대체 누구였고 그에게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만경은 시간이 지나도 이해할 수 없을 것들에 관해 생각하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만하면 됐어. 사랑과 정의는 이제 지긋지긋해. (p. 43)

수진은 여전히 만화를 즐겨 봤다. (p. 44) 눈동자가 크고 만지면 깨질 것처럼 여리던, 만화에나 나올 법한 아이였다. 수진의 과거와 추억은 대체로 만경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중략) 수진은 어린 시절 늘 붙어 다니던 그 이상한 친구가 앞으로도 떠오를 것 같다고 예감했다. (p. 46)

만경에게 수진은 만화속 '주인공' 같은 아이였고, 수진에게 만경은 '만화에나 나올 법한 아이' 였다. 둘은 어른이 되었지만 그 시절 함께 본 만화가 그들을 키운 것을 깨닫지 못했다.

'애초에 당장이라도 세계가 망할 것 같았던 그 이상한 시대에 왜들 그렇게 만화를 많이 보여줬을까. 혹시 어른들이 아이들을 돌볼 여력이 없었던 것은 아닐까. (p. 45)'

<코인 노래방에서>

코인노래방을 나서고 집으로 향하는 동안 우리는 학창 시절에 즐겨 듣던 음악에 관해 기억을 되짚었다. 연인의 음악 취향은 대중적인 편이었다. 그 시절 그 나이대 청소년이라면 누구나 들어보고 불렀을 법한 뮤지션과 노래를 주로 입에 올렸다. (중략) 노래를 얘기하다 진즉 흥미를 잃은 내 얼굴을 포착했다. "그러니까 록발라드가 좋단 거지? 야다나 플라워 아니면 더 크로스?" 연인의 장난기가 다시 발동할 기세였다. 나는 우물쭈물하다가 말을 꺼냈다. "나는 문화사대주의자였어" "무슨 소리야?" "팝을 좋아했거든" "아, 허세남" (p. 53)

평범한 하루였다. 연인과 말장난을 치고 투닥거리며 서로의 취향을 우스워하고 코인노래방에서 실컷 춤추며 노래불렀던 그냥 여느날과 비슷했던 평범한 하루였다. 하지만,

이 말을 꺼내기 전의 나와 이후의 나는 무엇이 다를까, 머리가 어지러웠지만 발설 자체가 목적인 말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지금 이 순간 이 사람이 아니면 평생 털어놓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일었다. 그래서 누구에게도 내보인 적 없던 비밀 하나를 입 밖으로 꺼냈다. "근데 내가 걜 좋아했어" (p. 55)

동성애가 문학에서도 금지된 소재였던 시절이 있었다. 봇물터지듯 터진 동성애 작품들이 유행처럼 넘쳐난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어느새 지금은 굳이 동성애 소설이라고 구분짓지 않고 구분할수도 없는 사랑이야기가 소설 들에 등장하고 있는 것 같다. 그때 그시절 동성 친구를 사랑한 이야기는 어떤 코드로 읽어야 할까...

' 그날 이후로 그 믿음이 흔들렸다. 그래서 이 이상 나아가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번외의 카테고리에 속한 인간으로 살고 싶지 않았다. 그 당시 내 꿈은 '정상인'이 되는 것이었다. 남들과 비슷한 자세로 걷고 적당한 템포로 말하고 똑바르게 발음하고 무리 없이 타인과 눈을 맞춘 채 소통하는 그런 인간 말이다. 나는 이미 심리적인 소수자였고 약자였다. 그 이상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p. 67)'

<추억은 보글보글>

집에서 가장 가까운 오락실은 간판도 없었고 허름했지만 단층 건물 하나를 통째로 사용할 만큼 공간이 넓었다. 까만색 필름이 붙은 유리문 앞에 서면 문틈에서 새어 나오는 복잡한 소음이 들렸다. 그 문을 당겨 열고 문턱을 넘는 순간 내가 살던 공간과 전혀 다른 세계에 진입한 듯한 감각이 훅 끼쳤다. 비좁고 어두운 그 공간에는 퀴퀴한 먼지 냄새와 담배 향이 감돌았다. 빈틈을 찾기도 어려울 정도로 빼곡한 전자기기와 사람이 내는 열기가 몸을 둘러싸면 마음이 차분해졌다. (p. 86)

작가와 내가 세대차이가 많이 나는 줄 알았는데 오락실 분위기를 보니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오락실은 정말 딱 저랬다. 까만색 필름이 붙은 유리문 텁텁하고 퀴퀴한 공기 빼곡한 전자기기의 소음... 그런 분위기 때문에 오락실은 내게 위험하고 무서운 곳이었고 그래서 혼자 가본적은 한번도 없었다. 하지만 도진과 원경은 오락실에서 만난 절친 이었다. 그 둘은 '서로에게 마지막 남은 유년 시절 친구였다. (p. 83)' 특히 도진에게 그냥 친구라 부를 만한 사람은 원경 뿐이었다.

게임기는 어째서 두 플레이어가 나란히 앉아 있도록 설계되어 있는가. 맞수와 어깨를 붙이고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일은 두 사람의 복서가 링 위에 올라서 서로를 마주하는 이유와 같았다. 나는 지는 걸 참지 못했다. 다른 것은 몰라도 누가 날 게임으로 무시하면 견딜 수 없을 만큼 괴로웠다. 그랬기 때문에 도진의 존재가 믿기지 않았다. (p. 123)

도진은 원경에게 둘도 없는 친구였지만 나이를 먹고 환경과 여건이 바뀌면 가깝게 교류하는 인물과 집단이 대체되기 마련이라고 여긴 원경과 달리 도진에겐 오직 원경 뿐이었다. 원경은 그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만나기만 하면 옛날 이야기를 꺼내는 도진에게 원경은 기어이 화를 내고 말았다.

'어떤 기억은 내가 받은 상처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준 모욕으로 이루어져 평생 따라다닌다. 삶의 변곡점에서, 누군가에게 비난받고 처지가 비루해지는 모든 순간마다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내 인생이 그때부터 망가진 것은 아닐까 하는 비약이 자꾸 돋아났다. 그래서 원경이 앞에 있으면 옛날 얘길 꺼냈다. (p. 119)'

트리플 시리즈는 책의 말미에 작가의 후기 처럼 읽히는 작가의 에세이 한 편을 실어놓았다.

이 소설집은 나의 첫 책이다. 이곳에 실린 세 편의 소설은 오롯이 단 하나의 책을 위해 쓰인, 말하자면 당신에게 보내는 열렬한 신호다. 감사함을 담아 별을 향해 노래를 쏘아 보내는 심정으로 내가 정한 사람에게, 바라는 때와 방식으로 내보이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적어보았다. 그뿐이다. 정말이지 그 마음밖에 없었던 것 같다. 우주 너머 다른 시공간에서 반짝이고 있을 당신에게 미약한 나의 시그널이 닿았다면 반갑게 맞아주길 부탁드린다. (p. 137~138)

티비가 세상에 등장하고 만화라는 것이 방영되기 시작한 이후로 유년시절에 강한 애착을 품었던 애니메이션 하나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우리는 저마다의 만화속 세상을 꿈꾸었고 만화속에서 자라났으나 어른이 되고 나면 그 세상은 우주 저 멀고 먼 별보다 더 아득히 멀어져 있곤 한다. 그 시절의 시그널을 다시 보내준 작가에게 박수를, 그리고 그 신호를 감지한 사람들은 이 '투니버스'에 탑승해 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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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직장생활이 어려운 당신을 위한 부처의 처방전

일도 챙기고 마음도 챙기는 오늘의 말씀

책날개에 쓰여있는 저자 이력이 신선하다. '작가이자 데이터 과학자면서 선승이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굴지의 미국기업에서 일하면서 수도하는 선승이라니... 파란눈의 스님이 연상되었다.

하지만 저자의 글은 첫장부터 스님같은 인상을 싹 지워버린다. 통통 튀고 재치있으며 실용적이다.

부처는 평생 단 하루도 일하지 않았다. 약2500년 전 고대 인도에서 태어나 응석받이 왕자로 자란 싯다르타는 부유한 삶을 버린 채 떠돌이 수도승이 되었고, 존경받는 영적 스승으로 일생을 마쳤다. 그런데 그 모든 과정을 통틀어 단 한 번도 급여를 받고 일한 적은 없었다. (p. 6)

서문의 첫 문장부터 웃음이 나왔다. 이런식으로 부처를 생각해 본적은 없었다. 하지만 저자는 부처를 결코 폄훼하는 것이 아니다. 부처의 말씀을 회사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다양한 의견들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책이므로.

큰 깨달음을 얻고 말 그대로 부처가 된 싯다르타는 깨달음의 여덟 가지 핵심 요소 중 하나로 '올바른 생계'를 꼽았다. 부처는 일의 중요성과 더불어 일을 '올바르게 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p. 8) 부처는 깨달음을 얻는 것이 온전히 수도자의 삶을 사는 이들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평범한 사람들이 올바르게 일할 수 있게 돕는 것이야말로 자신만의 깨달음을 얻도록 돕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우리를 지치게 하는 일이 아닌, 진정으로 깨어나도록 하는 필수 요소로서의 일. 이것이 바로 이 책에서 다루고자 하는 내용이다. (p. 9)

부처의 가르침이라고 하면 조용한 분위기에서 오랜 시간을 들여 수련한 후에 찾아오는 커다란 깨달음... 뭐 이런 것들이 떠오르지만 저자는 부처의 가르침을 가볍게 풀어낸다. '직장에서 행복과 성취감을 주는요소는 다른 곳에서 우리에게 행복과 성취감을 가져다주는 것과 다르지 않다. (p. 13)' 라며 부처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한 실용적 자기계발서가 가능하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증명한다.

부처는 일과 가정생활의 정반대 방향에 모든 소유물과 애착을 포기하는 삶이 있는 것으로 설명했다. 즉, 떠돌이 승려로 사는 쪽이 깨달음을 얻는 데 좀 더 유리하다고 생각했지만, 그 길이 모든 사람에게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이해했다. 한편 부처는 자신의 행복을 좇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는 것은 참으로 끔찍한 발상이라고 생각했다. (중략) 부처는 '정직한 직업'이야말로 '가장 큰 축복'이라고 말했다. (p. 22~23)

부처의 가르침을 직장생활에서 적용하려면 먼저 가르침의 핵심과 일상에서의 접목이 필요하다. 저자는 어려운 경전을 인용해와서 푸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이해하고 깨달은 것을 통해 부처의 가르침을 실용적으로 설명한다. 핵심은 분명하다. '행복은 직업적 성공으로 이어진다. 절대로 그 반대가 아니었다. (p. 29)' 다시말하자면, 성공한 사람이 행복한 것이 아니라 행복한 사람이 성공한다는 말이다.

스타트업의 생리가 그렇듯 불교가 성공한 궁극적인 이유는 품질에 있었다. 무엇보다 부처가 찾아낸 상품에 그 요인이 있었다. 부처는 고통이라는 문제를 보았고, 그에 맞는 해결책을 찾아냈다. 그리고 그 해결책은 효과가 있었다. 기적처럼 알아서 팔려나가는 제품이 출현하자, 그 뒤로는 모든 게 순조로웠다. (p. 37)

스타트업이라니 ㅋㅋ 절묘한 표현이다. 이 책이 술술 읽히는 재미는 이런 식의 표현에 있는 것 같다.

이 책에 나오는 말은 글로 남은 그의 가르침을 인용한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부처의 강연은 녹음된 적이 없고, 부처가 직접 글로 쓴 적도 없다. 심지어 부처가 쓰고 읽을 줄 알았는가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밝혀진 바는 없다. (p. 39) 부처가 세상을 떠나고 몇 달 뒤, 완전한 깨달음을 얻은 신도 500명이 지역 왕의 초대로 모였다. (중략0 그들은 교대로 한 명씩 부처의 강의를 시연하며 암송했다. 그 내용이 몇 세대에 걸쳐 구전으로 전해지면서 서서히 불교가 퍼져나갔다. (p. 40) 우리가 접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복사본은 그로부터 적어도 1000년 후에 기록되었다. (p. 41) 다시말해, 내가 이 책에 인용한 부처의 말은 누군가 부처의 가르침을 암기한 내용을 부처 사후 수 세기 후에 최초로 글로 옮긴 뒤, 번역에 번역을 거듭한 사본을 출처로 한다. 우리가 접할 수 있는 건 딱 그 정도 선이다. 하지만 그렇게 남아 있는 글에 따르면 부처는 '깨달음'을 얻는 것을 목표로 삼지는 않았다고 한다. 방황하는 왕자 시절에 싯다르타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고통을 이해하는 것이었다. (p. 42)

예수도 마호메트도 공자도 소크라테스도 그리고 부처도 그 누구도 직접 글로 쓴 것을 남긴 적은 없다. 후대가 외우고 서로 짜맞추고 정리하여 경전이 되고 교리가 된 것이다. 결국 각자의 해석이 문제가 아닐까 싶다. 여하튼, 부처의 가르침 중 중요한 것은 '우리는 나쁜 일이 일어나서 고통받는 게 아니라,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해서 고통받는다. (p. 44)' 라는 점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문제에 부딪혔을 때, 행복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런 문제가 일어난 것을 받아들이고 나아가야 한다고 부처는 가르친다. (p. 46)' 라면서 '부처는 이 길을 걷는 데 도움을 줄 중요한 기술을 발견(p. 46)' 했으므로 이에 관해 상세히 이야기하겠다며 본론을 펼쳐낸다. 이 본론은 책의 2장의 내용이고 직장 사무실에서 할 수 있는 '수행법'에 대한 구체적 예시들이기도 하다.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나오지만 그 중 마음에 드는 문장을 소개해본다.

>> 지혜의 반대말은 무지가 아니라 오만이다. 무지는 온전히 존중받아 마땅한 상태다. 무지는 모든 궁극적인 지식의 근원이다. 오만은 위험이 도사리는 곳이다. 초심자여서 좋은 점은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 안다는 것이다. 전문가는 때때로 그것을 잊곤 한다. (p. 72) <<

>> '깨달음으로 가는 길은 초심자의 마음으로 당신의 삶 전체를 대하는 것이다'라고 풀이할 수 있다. 깨달음이란 모든 것을 아는 걸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무것도 모르는 쪽에 훨씬 가깝다. (p. 78)<<

소크라테스가 생각나지 않는가? 가장 현명한 사람으로 자신의 이름이 신전에서 호명되었을 때 소크라테스는 말했다.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 라고. 삶의 지혜를 담은 철학은 서양이고 동양이고 서로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진리 뭐 그런 것인가 보다.

어떤 사람들은 부처가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라고 말하는 낙천적인 성격의 소유자라고 생각한다. (p. 131) 부처는 일반적으로 앉아 있거나 누워 있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대개 평화롭고 만족스러워 보이며, 위엄있고 현명해 보인다. 하지만 절대로 열심히 노력하는 것처럼 보이진 않는다. 사실 부처는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사는 타입이 아니었다. 부처는 노력했다. 본인이 열심히 노력한 것은 물론이고 제자들도 열심히 노력하기를 바랐다. (p. 132)

저자는 부처의 가르침과 수행법에 대해 유머러스하다 싶을 만큼 가볍게 쓰면서도 기존의 편견들을 과감히 깨뜨린다. 명상, 마음챙김, 호흡법 같은 익숙한 단어들이 제시될 때는 그런가보다 하다가도 이렇게 색다른 표현이 등장할 때면 더 깊이 아 그렇구나 하게 된다. 붓다의 가르침을 이렇게 웃어가며 읽게 될 줄이야 ㅎㅎㅎ

이 책의 목적은 당신을 불교신자로 만들기 위함이 아니다. 내 목표는 그보다 훨씬 소소한 동시에 원대하다.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 더 행복해지고 덜 고통받는 데에 부처의 가르침 중 일부를 참고하도록 돕는 것이다. 주로 직장생활을 염두에 두고 썼지만 당신이 시간을 보내는 곳이면 어디든 상관없다. 잠시 행복한 것에 멈추는 것이 아닌 참되고 깊은 행복을 누리길 기원한다. 불교에서는 이를 '깨어났다' 라고 표현하는데, 결과적으로는 같은 의미다. (p. 228~229)

불교의 가르침과 수행법을 배우게 되면서도 자기계발서로 읽게 되는 이 책은 가볍지만 나름 치열하고 치열하지만 나름 평온하다.

자, 이제 사무실에서든 집에서든 '깨어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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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일 밤의 미술관 : 루브르 박물관 - 루브르에서 여행하듯 시작하는 교양 미술 감상 Collect 8
이혜준 외 지음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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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읽기 좋은 좋은 책이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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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준 외 지음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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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국가 공인 가이드와 찬찬히 둘러보는

하루 1작품 루브르 박물관 집중 투어

'여행' 이란 단어가 '꿈' 처럼 멀어진 것이 예상치 못하게 길어지고 있는 요즘이다. 어딘가로 훌쩍 떠나고 싶고 그게 비행기를 타고 머~얼리 가는 것이면 더 좋겠고 그렇게 떠나봐야 집으로 다시 돌아오고 싶어질 텐데 앞으로도 당분간은 그런 '자유'가 요원해 보이니 책으로나마 그 아쉬움을 달랠 수밖에...

해외 여행을 갈 수 있다면 가보고 싶은 도시들 중에서 '파리'는 아마도 열손가락 안에 꼽히는 도시일 것이다. 그 이유중 하나는 아마도 '루브르'박물관 때문일 것이다. 파리에 가보고 싶은 적은 없지만 루브르는 궁금했었다. 이런저런 미술책을 읽어봤지만 가이드가 소개해주는 것은 또다를 것 같아 기대가 됐다. 그야말로 여행하는 기분이 들지 않을까~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방문하는 박물관이며, 기원전 4000년부터 19세기까지 거의 모든 미술사를 아우르는 유물과 미술 작품을 소장하고 전시하고 있는 곳, 루브르 박물관은 프랑스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보물창고와도 같은 곳입니다. 하지만 60만여 점을 소장하고 3만 5000여 점을 전시하고 있는 방대한 규모에 여행객들은 어디부터 어떻게 관람을 해야 할지 길을 잃곤 하죠. 이 책에서는 유로자전거나라에서 10년 이상 활동한 프랑스 국가 공인 가이드 4명의 해설로 루브르의 핵심 작품들을 생생하게 소개합니다. (p. 4)

루브르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는 작품들에 대해 이런저런 책에서 조금씩 본적은 있었어도 루브르박물관 자체에 대해선 전혀 아는 것이 없었다. 루브르박물관이 '프랑스 혁명의 격동기인 1793년'에 공식 개관했고 '작품 한 점을 1분씩만 보아도 2개월이 넘는 시간'이 걸리며 박물관 건물 자체도 900년 역사의 유물이라는 것은 프랑스가 자랑하기에 충분한 배경이 되어 보였다.

루브르 박물관은 리슐리외관, 쉴리관, 드농관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세 관의 이름은 현재 루브르박물관이 존재할 수 있도록 노력한 인물들의 이름입니다. 드농(1747~1825)은 나폴레옹1세 시절 전리품들을 관리하며 루브르의 초대 관장으로 일한 인물이고, 쉴리(1559~1641)는 앙리4세때, 리슐리외(1585~1642)는 루이13세때 저명한 정치가였습니다. 그들의 수완으로 많은 예술 작품이 프랑스에서 탄생하고 모일 수 있었습니다. 리슐리외관에서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유물들과 더불어 18세기 프랑스 조각, 17세기 북유럽 회화, 나폴레옹3세의 화려한 아파트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쉴리관에서는 스핑크스와 이집트의 고미술품들, 프랑스 회화를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많은 사람이 방문하는 드농관은 고대 그리스 조각들과 중셉터 르네상스, 바로크, 신고전주의, 낭만주의 작품까지 볼 수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리슐리외관에서 쉴리관, 드농관으로 옮겨가는 코스로 작품을 만나보겠습니다. (p. 29~31)

음~! 그랬구나. 루브르 박물관의 세 곳 중에서 사람들은 모나리자가 있는 드농관에 몰려든다고 하는데 나는 한적하다는 리슐리외관에 가장 먼저 가보고 싶다. 인류문명의 시작은 메소포타미아였으므로 연대순서상으로도 그곳이 가장 먼저 아닐까 싶기도 하고. ㅎㅎ

하루에 한두작품씩 감상하다보면 책 한권으로 백여점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게 되는 이 책은 아무 페이지나 펼쳐봐도 좋고 전시관의 순서를 달리 해서 읽어도 좋고 책의 뒤쪽에 있는 작품리스트(책 뒤에 '미술사 흐름에 따라 보기' 라고 작품의 리스트를 연대별로 간략하게 정리해 놓은 리스트가 있다)에서 원하는 페이지로 찾아가 읽어도 좋다. 박물관 투어이다 보니 역사적 에피소드가 빠질 수 없는데 가이드가 해주는 설명들은 간략하면서도 호기심을 자극한다.

내게 인상적이었던 작품들은,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초청하고 프랑스의 르네상스를 이끌어 이후 유럽문화의 중심으로 우뚝 설 수 있도록 발판을 만들었기 때문에 프랑스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왕이라는 <프랑수아1세 초상화> (p. 76)

원래도 좋아했지만 작은 그림 속에 수많은 상징과 의미를 숨겨놓은 디테일한 표현에 대해 알고 나니 더 좋아진 얀 반 에이크의 <대법관 롤랭과 성모 마리아> (p. 85)

루이14세가 침실에 걸어놓고 죽는 순간까지 수십 년 동안 바라보았다고 하는 푸생이 그린 <아르카디아의 목동들> (p. 124)

종교 개혁으로 인해 개신교가 자리 잡은 북유럽에서 우상숭배가 금지되면서 유행한 풍경화의 대가 로랭의 <크리세이스를 아버지에게 돌려보내는 오디세우스> (p. 133)

바로크 시대의 거장이자 빛의 거장이라고 할 수 있을 렘브란트의 <명상 중인 철학자> (p. 157)

니케 여신상은 알았지만 원래 모습대로 배의 형상위에 올려놓아 '산을 파서 신전을 만들고 분수에 물을 채운 뒤 물에 떠 있는 듯 설치'했다는 당시의 모습을 상상하게 만드는 조각상 <니케> (p. 294)

모나리자 보다 더 요모한 분위기의 작품으로 실물이 궁금해지는 다빈치의 마지막 완성작으로 알려진 <세례 요한> (p. 368)

천장화 하면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 만 떠올랐었는데 프랑스의 영광을 나타내며 프랑스의 역사와 예술을 하나로 잇는 가교 역할을 한다는 <살롱 드농의 천장화> (p. 438)

등이었다.

그리고 작품도 작품이지만 깨알같은 역사적 상식 찾는 재미도 쏠쏠했다.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와 가톨릭은 종교적 색채도 예술도 달라졌는데 십계명 조차도 그랬다는 것, '개신교와 가톨릭의 십계명도 다릅니다. 개신교의 십계명 중 1계명과 2계명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너에게 나 말고 다른 신이 있어서는 안 된다. 너는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든 아래로 땅 위에 있는 것이든 땅 아래로 물속에 있는 것이든 그 모습을 본뜬 어떤 신상도 만들어서는 안 된다. 너는 그것들에게 경배하거나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즉, 신의 모습을 그리거나 만들면 안 된다는 뜻이죠. 그래서 플랑드르 지역에는 성상 파괴령이 내려졌고 그림을 그릴 때도 종교적 인물은 그리지 않았습니다. 대신 화가들은 일상생활 모습 속에 상징물들을 그려 종교적인 메세지를 전달한 것입니다. (p. 97)' 성상파괴령이라... 동로마도 생각나고 이슬람도 생각나고 그런데 지금의 교회와 성상파괴령이 딱히 매칭되지는 않고 ㅎㅎㅎ

'1748년에 프랑스 주도로 본격적인 이탈리아 폼페이 유적에 대한 발굴 작업이 시작되면서 프랑스는 고전(그리스·로마 시대)에 대한 새로운 추종기에 들어갑니다. (p. 217)' '<밀로의 비너스>의 발견으로 다시 고대 그리스 문화에 대한 찬양이 일고 사람들이 그리스의 독립에 동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이 석상의 프랑스 입성은 그리스의 유럽 복귀를 알리는 듯했고 그리스 자유의 상징처럼 되었죠. 더불어 당시 프랑스가 <라오콘>을 이탈리아에 반환하면서 내세울 만한 그리스 작품이 없었던 차에 루브르 박물관의 명성을 다시 일으키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p. 289)' 를 보면서 아테네 신전을 뜯어다 놓은 듯한 대영박물관이 생각나기도 했다.

치마부에의 작품 <마에스타>를 설명하면서 '신성과 인성을 상징하는 검지와 중지를 펼쳐 보이는 아이의 정체는 예수입니다. (p. 331)' 라는 문장을 보면서는 검지와 중지라면 사진찍을 때 우리가 흔하게 하는 V 의 그 손가락인데 그렇다면 여기서 V 포즈가 탄생한건가 하는 생각에 혼자 웃어보게도 됐다.

'세속의 비너스를 뜻하는 그리스어 '판데모스'는 '팬데믹'의 어원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p. 356)' 에서는 고대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중세시대에 타락의 이미지를 얻으며 현대에 와서는 '팬데믹'으로 까지 변화된 것에 조금은 씁쓸해지기도 했다.

'지금까지 루브르에서 자신의 회고전을 연 화가는 총 3명뿐입니다. 피카소, 샤갈, 그리고 2019년에 피에르 술라주라는 화가가 자신의 100번째 생일을 맞아 회고전을 치르면서 세 번째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회고전이 아닌 개인전으로 영역을 넓히면 몇 명이 더 있습니다. 그리고 그 뿌리를 따라가면 프랑스 혁명기의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가 나옵니다. (p. 445)' <사비니 여인들의 중재> 라는 단 한 작품만을 걸어놓고 첫번째 개인전을 유료로 열었다는 화가의 에피소드를 읽으며 여러모로 참 대단한 작가라는 것을 또한번 느낄 수 있었다.

'최근 현대 이전에 탄생한 회화를 전시하는 곳에서 전시실의 벽지를 어두운 색으로 교체하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고전 미술은 어두운 곳에서 봐야 한다는 이유 때문이랍니다. (p. 484)' 라는 문장에 고개 끄덕여졌다. 오래된 작품일수록 그 작품을 그렸던 당대는 어두웠을 것이다. 전깃불로 환해진 지는 얼마되지 않았다. 그림이 그려진 당대의 시각을 갖고 당시 사람들이 봤을 색채를 느끼며 작품감상을 하려면 너무 환한 전시장 보다는 작품에 몰입되는 환경을 찾는 데 좀더 신경써야 할 것 같긴 하다.

루브르 박물관이 프랑스를 대표하는 박물관이고 이 책을 쓴 저자들은 모두 프랑스 국가 공인 가이드 이다 보니 읽는 내내 프랑스와 루브르 박물관에 대한 자긍심이 느껴져서 영국을 대표하는 대영박물관과 차이를 느끼게 했다. 대영박물관에도 국가 공인 가이드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가봤던 대영박물관에서는 사실 영국을 느낄 수 없었다. 다만 전세계를 느낄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 한권의 책만으로도 루브르 박물관에선 프랑스가 느껴질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이 차이점에 대해 좀더 생각해 봐야 겠다. '아듀adieu는 프랑스의 작별 인사인데, 원래 뜻은 '신 앞에서 만날 때까지'à dieu입니다. 'dieu'는 프랑스어로 신을 뜻하며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zeus를 어원으로 합니다. (p. 262)' 아듀... 비록 그 신이 제우스에서 다른 신으로 바뀌었을지라도, 언젠가 만날수 있게 될지 어쩔지 몰라도, 여하튼 아듀, 박물관 앞에서 만날 수 있을 때까지.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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