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의 마음 - 심리학, 미술관에 가다
윤현희 지음 / 지와인 / 2021년 7월
평점 :
절판


<미술관에 간 심리학>의 윤현희 박사 신작

심리학자와 함께 읽는 화가들의 내밀한 마음 이야기와 삶의 드라마

<미술관에 간 물리학자>를 통해 이 시리즈를 알게 됐다. 미술관에 간 000 시리즈에서는 물리학자 뿐만 아니라 화학자, 수학자, 의학자, 해부학자 등이 차례차례 미술관을 방문하고 있는 중이다. 미세한 제목의 차이로 동일 시리즈에 묶인 책 같진 않지만 그동안의 시리즈보다 더 관심이 가는 '심리학'으로의 미술관 방문은 어떨지 궁금했다. 그리고 기왕이면 신작이 좋으니까 <미술의 마음> 읽기 부터~! ^^

저자는 임상심리학자인데 심리치료의 한 방안으로 미술작품의 창작과 감상을 활용한다고 한다. 미술작품을 활용하기 위해선 그만큼 미술작품을 잘 알아야 할터. 심리학자가 들여다보는 미술의 속마음은 과연 어떠할까?

이 책에는 열다섯 명의 화가들의 인생과 그들의 예술작품이 심리학과 만나는 접점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들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빛의 역사다. 빛은 그 자체로는 물성을 가지지 않지만 모든 사물은 빛에 의해서만 존재가 드러난다. 회화의 역사는 화면에 빛을 담아온 역사이며, 화가들은 자신의 마음을 빛에 실었다. 심리학자의 눈으로 빛이 담긴 그림을 감상하다 보면 화가의 삶의 이야기와 빛의 의미, 그리고 그들의 마음이 궁금해지곤 했다. 이 책은 그런 질문에 대한 답을 담았다. 화가들의 작품이 내포한 미학적 서정과 서사를 현대 심리학의 다양한 주제들과 연결시켜 이야기를 풀어냈다. (p. 6 - 저자의 말 中-)

저자는 그림감상을 많이 한것 같아 보이는데 그림 그리는 실력도 수준급이었다. 명화들이 등장하기전 '저자의 말'에서 자신의 작품 하나늘 내보이는데 그 작품의 제목이 '프로노이아' 였다. '보라색 꽃다발을 그려놓고 '프로노이아 pronoia'라 이름을 붙였다. 프로노이아는 온 우주와 온 세상이 나를 도울 거라는, 막연하고 대책없지만 기분 좋은 믿음의 상태를 의미한다. 타인과 세상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의심을 의미하는 것이 편집증paranoia 이라면, 프로노이아는 그 반대 의미다. (p. 8)' 라는 말에서 프로노이아와 파라노이아의 대칭에 눈길이 같다. 한국말로 치면 님이라는 글장 점하나를 붙이면 남이되는 식의 고대어는 늘 흥미롭게 다가오곤 한다. 대칭되는 단어들은 그 상반되는 의미와 비슷한 어감이 묘한 깨달음을 전해주곤 한다. '프로노이아'라는 단어를 보며 서양인들의 '시크릿'적 자기중심적 믿음이 갑자기 생각나기도 했다. 여하튼, 내게 의미있게 다가왔던건 '보라색' 이었다. 저자가 그린 보라색 꽃다발 그림 자체도 괜찮았지만 그 보라색이 인상파의 핵심적 색이었다는 내용을 읽은 기억이 나서 한번 더 쳐다보게 된 그림이었다. 심리학과 인상주의는 묘하게 통하는 느낌이 있다. ㅎㅎ 그리고 저자는 인상주의가 등장하기 전 '르네상스'부터 출발한다.

인류사 최악의 팬데믹이었던 14세기 페스트는 '르네상스 문예 부흥'이라는 놀라운 역설을 가져왔다. 이는 역사가 우리에게 전하는 하나의 긍정적인 힌트일지 모른다. (중략) 대책 없는 전염병의 창궐과 죽음의 행렬 앞에서 교회와 성직자들의 절대적 권위는 무너졌다. 반종교를 외치며 과학과 이성의 세계로 귀의하는 지식인들은 그리스 문학과 과학에서 답을 찾고자 했다. 이는 르네상스 문화 혁명의 토대가 되었다. (p. 21) 팬데믹으로 인한 심리적 타격을 극복하기 위한 고민의 목소리가 높아가는 시절에, 이와 같은 역사적 흐름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마음을 치유하는 예술의 힘은 시대를 막론하고 하나의 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p. 22)

중세 패스트 라는 팬데믹 시대는 절대적이었던 종교를 누르고 르네상스를 가져왔다. 그렇다면 코로나라는 현대의 팬데믹은 무엇을 누르고 새로운 무엇을 가져온 것일까? 우리는 약이 모자라 접종을 못받는데 미국인들은 약이 넘쳐도 접종을 거부한다는 뉴스를 보며 혹여 과학을 무시하고 맹신의 무엇이 오고 있는 건 아닐지 새삼 걱정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패스트 시대에도 코로나 시대에도 예술은 그 중간지대에서 여전한 치유의 힘을 발휘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그 예술의 힘이 어떻게 발현되느냐에 따라 새로 다가오는 무엇의 모습도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을 가져보기도 한다.

'병든 바쿠스'로 데뷔해서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으로 생을 마감한 카라바조의 삶은 화가들 중에서도 가장 드라마틱하지 않았을까? 저자가 서문에서 '빛'을 강조한 만큼 카라바조로 책을 시작하는 건 자연스러웠다. 강렬한 어둠과 빛의 대비에 대해선 카라바조가 으뜸 아니겠는가. 그런데 '카라바조가 병든 자신의 모습을 바쿠스에 투영했던 것은 천재 예술가와 광인이라는 이중적인 삶 가운데서 침몰하고 말았던 자신의 삶에 대한 자기실현적 예언의 증거였을지도 모른다. (p. 29)' 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피해망상에 사로잡힌 환자들이 치료를 받지 못하고 방치되었을 때 폭력적 행동을 보인다. 그의 광기는 과연 조현병에서 비롯된 것이었을까? (p. 30)' 라는 문장은 충격이었다. 조현병의 증상에 들어맞는 카라바조의 행적과 작품속에 투영된 그의 정신세계를 읽고 나니 심리학으로 미술을 본다는게 이런 거구나 싶어서 이 책의 첫 장 부터 책속에 빨려들어갔다.

'심리학과 관련해 렘브란트가 우리에게 남긴 유산은 <자화상> 시리즈에 있다. (p. 52)' 는 문장을 뒷받침해주는 렘브란트의 그림들을 보며 렘브란트의 쉼없는 자아성찰이 새삼 대단해 보였고, '심리학의 렌즈로 페르메이르를 바라보면서 나는 여인들이 시간을 보내는 모습과 개인적인 공간에 주목한다. (p. 93)' 를 읽으며 그동안 페르메이르 그림에서 나는 여인들을 주목해서 본적이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터너의 회화는 심리학과 관련된 두 가지 주제를 제기한다. 색채 지각의 매커니즘과 색채가 정서에 미치는 영향이 그 하나이고, 후기 작품들을 가득 채우고 있는 습기와 증기에 관련한 터너의 무의식이 두 번째다. (p. 116)' 영국의 대표적 화가라 할 수 있는 터너의 회화에서 터너의 트라우마를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은 놀라웠고, '모네야말로 행복의 상징 아닐까 (p. 142)' 수련 그림을 그닥 좋아하지 않던 나로서는 모네의 '행복'이 처음으로 실감되기도 했다.

'유미주의 운동을 펼쳤던 휘슬러는 작가인 오스카 와일드와 뜻을 함께했다. (p. 189)' 호전적인 화가였던 휘슬러의 그림들이 '색채' 중심이라는 것을 통해 색채와 심리학을 연결짓는 내용도 흥미로웠지만 화가의 의도와 달리 유명해진 그의 어머니의 초상 제목이 '회색과 검생의 편곡1번' 이라는 점이 '유미주의'와 연결되는 구나 싶어서 오스카 와일드의 소설을 읽으며 이해되지 않았던 유미주의가 조금은 이해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 그림은 '그러나 정작 휘슬러의 의도는 모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사회적 가치와 도덕성의 잣대로부터 예술 해방을 부르짖은 그에게, 이 그림의 주제는 색과 구도의 조화였다. (p. 184)' 휘슬러를 목사를 만들려고 하다가 군인을 만들려고 하다가 가출한 휘슬러가 화가가 되었을 때에도 어머니의 열정은 아들과 조화되지 못했다. 그런 모자관계를 뒤로하고, 어머니를 보라고 그린 그림이 아니라 색과 구도를 보라고 한 그림이 모성애를 강조한 그림으로 인기를 얻은 아이러니를 보며 대중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유미주의'가 과연 어떤 의미일까 싶어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다시 떠올려 보기도 했다.

작가주의적 주관이 뚜렷했던 휘슬러처럼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예민하지 않을까 하는 선입견을 생각하게 한다. 더구나 지리적 조건때문에 유럽 예술의 발전이 더뎠고 햇빛이 모자란 북반구의 기후에서 그러한 예민함은 더하지 않았을까. '긴 겨울을 동반하는 북구의 기후와 고르지 못한 일조량은 빛에 민감하고 세련된 그림을 그리던 화가의 삶을 잠식했다. 뭉크의 화풍이 그의 상처받은 정신으로부터 자라난 것이었다면, 크뢰위에르의 자연주의적 화풍은 조울증에 침식당하고 말았다. (p. 206)' 조울증과 조현병으로 고통받았던 뭉크의 그림은 그림 자체로도 어두웠지만 북해의 다채로운 빛을 표현하는 데 주력했던 크뢰위에르도 정신질환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렇다고 북구의 화가들이 모두 그랬다는 것은 아니다. '2016년 옥스퍼드 사전은 '휘게'를 올해의 단어 리스트에 올렸다. (p. 224)' 저자는 휘게라는 단어를 생각나게 하는 북구의 화가들도 소개한다.

'창조적 예술가들은 외부 자극에 대체로 예민하기 마련이다. 유독 남달랐던 것으로 보이는 하메르스회나 글렌 굴드의 정신세계는 기질적 예민성과 내향적인 성격이라는 심리학적 주제를 생각해보게 한다. (p. 241)' 그림을 보며 글렌 굴드의 피아노 연주곡을 찾아 듣게한 하메르스회의 그림들은 외로웠지만 마음을 잡아끄는 무언가가 있었다. '휘슬러의 작품 속 색의 구성이 이루어낸 예술에 동의했다는 점에서 하메르스회는 유미주의자였다. (p. 248)' 라는 문장과 하메르스회의 흑백톤 그림들을 보면 '유미주의'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그런 것과 반대되는 것인가 싶기도 했다. 아름다움을 어디서 찾는가가 관건이라면 휘슬러와 하메르스회가 선보인 아름다움은 눈으로 볼수 없는 것들이었다.

'젖은 날의 빛과 대기가 연출하는 서정에 품었던 차일드 하삼의 관심은 우리가 간과하기 쉬운 춥고 흐린 날의 풍경을 갈무리해두었다. 갈색으로 물들어가는 눈 덮인 보스턴 공원의 황혼과 비에 젖어 반짝이는 뉴욕의 밤경치는 감성 충만한 작품인 동시에, 날씨가 우리의 기억력과 판단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심리학적 주제를 생각하게 한다. (p. 267)' 미국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화가의 그림을 보며 흐린날의 기억력 상승을 연결짓는 시도는 심리학자만이 할수 있는것이 아닐까 ㅎㅎ 또한 많은 그림들에서 저마다의 치유효과를 떠올리는 것도. '존 슬로안의 그림은 '공간이 갖는 치유 효과'라는 화두를 던진다. (p. 285)'

'시간적 거리, 미국과 유럽의 지리적 거리, 하물며 영국의 청교도와 벨 에포크 파리의 퇴폐성 사이에 놓인 문화적 이질감에도 불구하고 드가와 호퍼 사이에는 분명한 공통분모가 있다. 실내의 햇살 속에 얼어붙은 듯 정지한 나신의 여인들은 호퍼의 주제 중 하나이고, 이는 드가의 관음증적 시선과 닮았다. 우리는 무대를 바라보듯, 혹은 열린 문을 통해 훔쳐 보듯 호퍼의 실내를 들여다본다. (p. 305) 19세기의 드가와 20세기의 호퍼가 보았던 것은 함께 있으나 외로운 사람들이었다. (p. 306)' 임상심리학자의 일이란 것이 사람들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치유를 고민해야 하는 것이어서 그런지 저자가 보여주는 그림들에선 나름의 심리적 문제를 건드리는 것들이 있곤 했다. '미국적 사실주의 혹은 미국적 인상주의 (p. 312)' 의 화가인 호퍼가 국내에서 유독 인기가 높은 이유는 무엇일까? '호퍼의 말기작인 '철학으로의 여행'은 부부의 친밀하고 사적인 순간을 포착하지만, 몇 가지 의문을 제기한다. (p. 323)' 심리학으로 보는 그림은 이제 철학적 세계로 연결된다.

'색채 일변도의 추상미술 세계는 자칫하면 마음이 삐딱해지고 흥이 사그라들어 난해할 수도 있지만, 정지한 듯 움직이는 색채의 울림은 기억 속 이야기를 가만히 불러낸다. 최소한의 형태와 최소한의 색채를 사용한 로스코의 캔버스는 조용하지만 저항할 수 없는 매력이다. 같은 그림이지만 매번 다른 이야기를 풀어내고, 지난 시간의 감정과 조우하는 어떤 순간들은 치유의 힘을 발휘한다. (p. 332)' 마크 로스코의 색면화는 특유의 명상적 분위기로 유명하다. 하지만 나는 직접 본적이 없어 그런지 그 명상감이 그림의 거대한 크기가 주는 압도감 때문일지 단색이 주는 색채감 때문일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직접 볼 기회가 있다면 '그림과의 거리 45센티미터 (p. 340)' 라는 화가가 직접 요구한 감상법을 실천해보고 싶다. 나의 감상과 무관하게 로스코가 대단한 화가이긴 한가 보다. 그의 등장으로 20세기 미술의 중심이 파리에서 뉴욕으로 옮겨왔다는 것을 보면.

'로스코가 색채로 감정을 표현했다면 트웜블리는 선으로 생가과 감정을 표현했다. (p. 367)' 그림이 철학적으로 표현되면 추상미술인것 같다. 그리고 철학책이 읽기 어려운 것처럼 추상미술은 보기 어렵다. 나의 이해를 벗어나는 영역 같다고나 할까. 하지만 이 책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추상미술가는 이런 내게 희망을 남겨 주었다. '미국의 설치 작가 제임스 터렐은 빛에 물성을 부여하고 빛의 공간 내부에 관객을 위치시킨다. 그리하여 우리가 '본다'는 현상의 본성에 관해 재고해보도록 한다. 빛과 공간이 만들어내는 착시를 통해 그가 관객에게 제안하는 것은 두 가지다. 색채와 연합된 빛은 환상적인 기분을 유도하고 때로는 명상에 빠져들도록 한다. 빛과 공간이 엮어내는 시각적 착시를 통해 우리가 사물을 보는 습관적인 방식을 의심해보게 만든다. 나아가 사물을 지각하는 새로운 방식에 눈뜨게 한다. (p. 384)' 터렐의 작품은 책속에서 작은 그림으로만 보고 있어도 명상적 무언가가 전달되는 기분이었다. 더구나 한국 원주의 뮤지엄 산 이라는 곳에 그 전시관이 있다고 하니 직접 가 볼 수 있고 체험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왠지 업된 기분으로 마지막 장을 덮을 수 있었다. 멀고 먼 나라에 있는 그림들은 멀고먼 추상미술 이겠거니 싶었지만 가까이 있는 곳에 있는 추상미술은 직접 보면 왠지 조금은 이해될 것만 같은 기분이랄까.ㅎ

전문가가 알려주는 심리학적 그림 보기가 좋았지만, 익숙했던 작가들의 새로운 그림을 볼수 있어 좋았고 아예 몰랐던 작가들의 좋은 그림을 볼수 있어 좋았지만, 내용에 나오는 그림이 책속에 다 나오는 것은 아니고 내용과 좀 떨어진 위치에 그림이 배치되어 있곤 한데다 도판도 썩 보기 좋은 편은 아니라서 이 책을 그림감상용 책으로 보면 곤란함을 느낄 것 같다. 하지만 그림을 본다기 보다는 '그림의 마음' 또는 '화가의 마음' 그렇게 '미술의 마음'을 읽는다는 생각으로 본다면 무척 인상깊은 책으로 기억될 것이다.

-리뷰어스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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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는 어떻게 인류를 변화시켰을까? 혁명 시리즈
칼렙 에버레트 지음, 김수진 옮김 / 동아엠앤비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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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는 인류를 변화시켰다‘ 라는 이 한문장을 이렇게 상세하게 증명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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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는 어떻게 인류를 변화시켰을까? 혁명 시리즈
칼렙 에버레트 지음, 김수진 옮김 / 동아엠앤비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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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는 인간의 발명품이다.

숫자는 인류의 이야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간의 정신을 담고 있다.

<숫자는 어떻게 인류를 변화시켰을까?>라는 제목을 보면서 내가 관심이 갔던 부분은 '어떻게' 였다. 하지만 책을 읽다보니 저자가 알려주는 포인트는 '어떻게' 라는 설명이라기보다는 '변화시켰다' 라는 주장이었다. 그런 점에서 'Numbers and the Making of us' 라는 원제를 오랫동안 쳐다보게 됐다. '숫자 그리고 우리의 형성'이라는 원제는 인류의 진화에 있어서 '숫자'와의 '관계'에 대한 저자의 관심을 표현하고 있는 것 같다. 결과적으로 먼저 말하자면, '숫자는 인류를 변화시켰다' 라고 정리할 수 있겠다.

인류 문화의 역사 전체에서 대부분은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숫자가 존재하지 않았다. 수량을 언어와 상징적 기호로 표현하는 숫자가 등장하면서 인간의 조건에는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이 책에서 나는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일어난 그러한 변화가 지금 우리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돌아보고자 한다. (p. 17)

저자는 언어학적 기반을 바탕으로 인류학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교수이다. 따라서 숫자에 대해서도 언어적으로 인류학적으로 접근한다. 저자에 의하면 '숫자라는 인지적 도구는 언어적 도구에 포함된 하위 도구 이다.' (p. 29 참고) 그리고 인류의 수에 대한 타고난 감각에는 한계가 있지만 '선천적인 한계는 숫자라는 도구를 통해서만 뛰어넘을 수 있다. (p. 32)' 저자는 숫자가 인류에 끼친 영향에 대해 언뜻 당연하게 보이는 이 두가지를 학문적으로 심층 분석하고 증명한다.

전 세계의 주요한 숫자 표기법은 공통점을 보인다. 즉, 어떤 방식으로든 모두 10배수, 또는 5배수를 기반으로 한다. 이러한 결과를 이끌어내는 해부학적 동기는 명확하다. 우리 신체에서 규칙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수량은 숫자를 만드는 방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사실은 3장에서 살표보는 바와 같이 구어 숫자는 물론, 표기 숫자의 기초가 된다. 우리의 손가락과 발가락은 이처럼 최소한 수천 년 동안 숫자를 구조화하는데 광범위한 역할을 하였다. (p. 66) 특히 손가락과 손이 유용했다. (중략) 문자 탄생의 서광이 비치던 시기에 등장한 숫자는 표기문자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p. 67)

문자가 먼저였을지 수량표기 기호가 먼저 였을지 명확하게 확인할 순 없지만 일정한 규칙으로 막대기를 그어 표시하고 손가락을 표기하는 것은 구석기유적에서부터 이미 발견된다. 인류가 수에 대한 개념을 이미 갖고 있었지만 표시하는 방법을 나중에 문자로 만들어낸 것일까? 라는 생각에 대해 저자는 인류고고학적 분석을 통해 '세계 언어의 숫자단어에서 보이는 손가락 중심의 특징만으로도 숫자가 원래 존재하던 개념이고 여기에 이름이 붙여진 것일 뿐이라는 믿음을 다시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는 사실이다. (p. 86)' 라고 말하며 수의 개념은 타고나는 것보다는 인류가 발전시킨 발명에 가깝다는 주장을 증명해보인다. 이렇게 동물과 구분되는 인류만의 확장된 수의 개념을 발전시킨 주요 원인으로 숫자라는 표시방법의 발명을 꼽는다.

세계 언어의 문법은 1, 2, 3을 정확히 구별하며, 그밖에 수량은 대략 표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아래에서 볼 수 있듯이, 이러한 경향이 등장한 배경으로는 신경생물학적 근거를 생각해볼 수 있다. (p. 106) 언어의 문법은 수를 강조하며, 더 큰 막연한 수량에서 작고 정확한 수량을 구별하는 데 집중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문법벅 수는 우리 뇌 구조의 기능적 측면을 반영한다. 즉, 우리의 뇌가 본래 타고난 기능은 더 작은 수량을 정확히 구분할 수 있을 뿐이다. (p. 123) 강력한 수체계를 통해 기대할 수 있는 잠재적인 이점에 관하여 나는 우선 그러한 체계의 채택을 문화 또는 언어의 '진화'와 동일시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해두어야겠다. (p. 244)

저자는 언어의 분석과 다양한 실험분석을 통해 숫자라는 개념과 인류의 수개념에 대한 차분한 증명을 전개한다. 때로는 설명으로 때로는 반례를 통해 자신의 주장을 전개해나가는 것을 읽으며 이 책은 굉장히 과학적 방식으로 서술되었구나는 느낄 수 있었다. 일종의 대중적 논문같달까... 여하튼, '수 개념은 문화와 언어의 전승을 통해 습득 또는 학습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만일 수 개념이 유전적인 것이 아니라는 가설이 사실이라면, 기초적인 수리 개념은 인간의 두뇌에 내재한 것이 아니라, 정신활동의 소산이 된다. (p. 139)' 라는 문장은 이 책의 핵심내용으로 보이는데 이 주장을 위해 저자는 아마존 부족의 예시를 두루 활용한다. 아마존 부족의 예시를 설명하며 저자가 보인 태도가 바람직해 인상적이었다. '그들 문화의 기록되지 않은 역사 속 어딘가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분명 이들에게도 숫자라는 놀라운 인지적 도구의 차용으로 누릴 수 있는 이점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 은 숫자의 도움 없이도 오랜 세월을 거치며 성공적으로 생존하고, 주변의 생태계에 탁월하게 적응해왔다. (p. 155)' 즉, 저자는 과거의 기록이 완전하지 않기에(사라진 기록들이 오히려 더 많을 수 있다) 남아있는 기록만으로 섣부른 판단을 내리는 것을 조심하며 따라서 숫자를 사용하지 않는 아마존 부족이 있다고 해서 그 부족이 미개하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한다. 원시부족 연구에 있어 그들을 미개하다고 보는 관점과 그들만의 문화적 필연성을 존중하는 관점은 분명 다른 연구결과를 도출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의 논의가 적어도 인류의 역사와 우리의 현재 삶 속에서 숫자의 의미와 역할을 살펴보고자 했던 더 큰 목표는 어느정도 부합하였을 것이다. (중략) 숫자는 인간의 수리적 사고의 정밀성을 한 차원 높여준다. 이러한 발전은 자연스러운 뇌의 발달로 인한 산물이 아니다. 셈법을 비롯한 기타 관련 기술을 이어온 특정한 문화에서 발전한 결과물이다. 이러한 전통과 기술은 궁극적으로 숫자단어에 의존한다. (p. 181) 숫자는 인류의 이야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간의 정신을 담고 있다. 숫자는 수량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변화시켰다. 그러나 숫자는 단지 우리의 인지능력뿐만 아니라,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의 경험을 형성해왔다. (p. 231)

저자는 주로 과거의 유적과 유물과 원시부족과 동물을 통해 숫자의 형성이 인류의 진화에 어떤 영향을 주었진지 기원적 설명을 하지만 우리가 알수 없는 멀고먼 과거뿐만이 아니라 현재에도 여전히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말한다. 수체계를 너무나 자연스럽게 당연하게 사용하고 있는 지금 우리에게 숫자의 영향은 어디서 느낄 수 있을까 생각해보는 것도 의미있을 것 같다.

최근 학자들은 위계적 정부의 발전과 마찬가지로 주요 위계적 종교의 발전은 그러한 장소에 사람들이 모여든 결과 발생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주장이 사실이라고 가정하면, 이것은 복잡한 수 체계의 혁신으로 농업기술이 발달하고, 궁극적으로 우주에서 인간의 역할에 대한 새로운 관점, 즉 지구의 기원과 지구에 사는 존재에 대한 새로운 관점으로 이어졌음을 암시한다. 그렇다면, 수 체계의 발전이 신의 개념을 창조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이러한 발전이 신의 존재를 깨닫는 계기가 된 것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추측은 더 큰 규모의 인구집단에서 새로운 유신론적인 종교 전통이 인과적으로 발생하였다는 주장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렇다면 이처럼 더 큰 인구집단에서 유신론이 형성되는 이유는 무엇일까?(p. 268)

수개념이 인류의 지적 성장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에서부터 타고난 어림수 개념과 숫자라는 도구를 사용했을 때의 차이점을 비롯해 언어적 인류학적 수개념에 대한 비교등 흥미로운 분석들이 많았지만 이러한 수체계의 발전이 종교까지 연결될줄은 몰랐다. 저자는 '신과 사제 계급으로 조직된 종교적 믿음은 큰 집단을 이뤄 모인 사람들이 도덕과 이타심을 통해 서로 협력하는 데 필요한 매개체였다. 농경의 중심지와 이와 관련한 도시화의 도래 이후 문화의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부족과 같은 더 작은 크기의 집단에서보다 비친족을 포함한 많은 구성원은 공유하는 신뢰에 의존해야 했다. 이와 달리, 소규모 부족 집단에 속하며 수렵채집으로 생계를 잇는 사람들은 친족관계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따라서 이들 사이에서는 조직적인 노력 없이도 신뢰와 협력을 위한 자연스러운 동기를 형성할 수 있었다. (p. 268)' 라며 '상징성'에 주목한다. 이러한 관점은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책을 생각나게 하기도 했는데, 소규모 집단에서의 직관으로 해결되던 것들이 대규모 집단에서는 실체 없는 다양한 '상징'적 매개체들이 필요하다는 개연성을 새삼 돌이켜보게 했다. 숫자라는 기호는 사실 실체가 없다. 볼수없고 만질수 없는 그런 것이다.

이 책에서 나는 수량의 상징적 통합인 숫자가 인간의 발명품이라는 주장을 펼쳐왔다. 수량은 자연에 존재하며, 매미의 재생산 주기, 거미의 다리수, 음력주기처럼 규칙적으로 관찰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규칙적인 수량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숫자는 인간이 창조하기 전에는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았다. 이 주장은 영아들과 숫자가 없는 문화에 속한 사람들, 그리고 우리와 유전적으로 가까운 종의 동물들을 대상으로 한 최근 실험 결과로 뒷받침된다. 우리가 살펴보았뜻이, 이 모든 증거는 명확한 결론으로 수렴된다. 우리는 대부분의 수량을 정확하게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을 타고난 것은 아니지만, 수량을 어림짐작할 수 있고, 작은 수량은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능력으로는 자연에서 발견되는 일정한 수량이라 하더라도 대부분의 수량을 수적으로 구분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람들이 모든 수량을 정밀한 방법으로 일관되게 평가할 수 있게 된 것은 숫자, 즉 특정 수량을 표현할 수 있는 혁신적인 기호의 발명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p. 276)

하나의 가설을 세우고 다양한 예시로 검증하며 결론을 도출해내는 과정을 읽다보면 흡사 어떤 보고서를 읽고 있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매 장마다 질문으로 시작해서 결론으로 마무리되는 방식은 읽으면서 설득되는 가장 명확한 서술방식이지만 묘하게 불분명하게 다가오는 본문들은 아마도 숫자가 이미너무 익숙한 것이라도 그럴지도 모르겠다. 익숙한 것에 대해 의문을 품고 새삼스럽게 증명하는 과정은 일면 쓸데없어보이는 작업일수도 있다. 하지만 몸집을 불려가던 숫자의 단위가 이제 디지털 세계에서 소수점아래로 쪼개져가는 시대로 변화된 것을 보면서 우리의 수체계는 아직도 변화무쌍한 무언가를 품고있기에 그 기원적 발상에서부터 다시 차근차근 생각해보는 작업은 분명 의미있는 작업일 것도 같았다. 숫자는 인류를 변화시켰다. 그러나 숫자가 인류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것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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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시간 - 바다에서 이루어진 역사적 순간들, 바다가 결정지을 우리의 미래
자크 아탈리 지음, 전경훈 옮김 / 책과함께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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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 이루어진 역사적 순간들,

바다가 결정지을 우리의 미래

Histoires de la Mer 라는 프랑스어 원제를 번역시켜보니 '바다의 이야기' 라고 나온다. 이 책은 바다를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긴 하다. 하지만 그저 이야기라기 보다는 바다를 중심에 놓고 풀어내는 역사서이자 바다의 중요성을 상기시키는 현실분석서이자 미래를 준비하는데 필요한 바다의 역할을 알려주는 제안서 이기도 하다. 그 모든 것들이 바다가 묵묵이 보내온 '바다의 시간'들이기도 하다.

태초에 바다가 있었다.

저자는 130억년 전부터의 바다의 기원에서 출발한다.

인간의 역사가 시작되기 이전 바다의 역사가 먼저 있었다. 바다에서 생명의 출발이 있었고 바다에서 역사적 전환점들이 있어왔다. 땅위에 사는 우리네 인간은 인간의 모든 문명이 땅에서 이루어졌다고 여기기 쉽지만 저자는 아니라고 바다에서 시작되었고 바다에서 변혁되었다고 풀어낸다. 우리는 땅위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저자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우리는 바다위에서 살아왔구나 하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 산 사람, 죽은 사람, 그리고 바다로 다니는 사람" - 아리스토텔레스- (p. 43)

기원전 9500년에 이르러 지구의 그 어떤 곳보다도 먼저 중동 지역에서 거대한 혁명이 일어났다. 그곳 사람들이 처음으로 이동생활을 접은 것이다. 이들은 오늘날 사람들이보통 이야기하는 것과 달리 어떤 한 바다 가까이에 정착했다. 이들은 우선 요르단 계곡에 자리를 잡고(오늘날의 사해 가장자리에) 예리코를 건설했다. 이것이 인류 역사 최최의 도시이며, 이 최초의 도시는 항구도시였다. (중략) 이렇게 볼 때 정착생활과 농경이 발전한 것은 모두 바다를 통해서였다. (p. 49)

'바다의 민족들'에게는 메소포타미아인이나 이집트인과 달리 바다를 통제하는 제해권이야말로 생존의 문제였다. 왜냐하면 이들은 자기 땅에서 생활에 필수적인 물품들을 생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다른 민족들은 삶에 잉여적인 물품들만 수입했다. (p. 55)

아리스토텔레스가 저런 말을 했던가? 하긴 고대의 역사를 보면 누군지 모를 침략자들은 다 바다에서 왔다. 미케네 문명에도 크레타 문명에도 이집트 문명에도 바다사람들은 위협적이었고 문명을 종식시킬만큼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었다. 땅에는 흔적이 남을지라도 바다에는 흔적이 남을수 없어서인지 바다사람들의 역사는 사실상 추적해 올라가기가 불가능에 가깝기에 더 궁금하고 신비롭게 느껴진다. 익숙한 문명지라고 생각했던 최초의 문명인 수메르 문명을 바다중심적으로 보는 것은 의외로 그럴법하고 신선한 관점의 전환이었다. 이런저런 역사서를 읽으며 유목민족에 대한 궁금증이 늘어나곤 했었는데 바다민족들까지 합해지고 나니 문명의 발생과 발달은 늘 결핍과 이동에 의해 이루어졌음이 새삼 진하게 다가왔다. 역사가 정착지 중심으로 발생하고 발달하기 이전에 그 기원을 따져보는 것은 분명 의미있어 보였다. 저자는 말한다. '로마제국은 바다에서 흥했고, 바다에서 망했다. (p. 81)' 라고. 로마제국 관련 역사서를 읽다보면 지도를 펼쳐놓고 이도시 저도시 짚어가며 땅과 도시들을 살펴보게 되는데 바다에서 흥하고 망했다니 흥미롭지 않은가. ㅎㅎ

18세기 말 갑자기 모든 것이 변했다. 한때 개척자들의 것이 되었던 바다는 이제 다시 닫혀버리고 말았다. 새로운 에너지원(석탄과 석유)과 새로운 추진 방식(외차와 스크루)을 사용하는 선박들이 기존의 운송 방식을 전복하고, 산업화, 경쟁, 분업을 촉진했으며, 사람과 사상, 공산품과 원재료와 농산물의 대규모 이동을 이끌었다. 이제 바다는 이미 여러 세기 이전부터 그러했듯이 점점 더 무거워지고, 점점 더 확산되며, 점점 더 위협적으로 변하는 인간의 존재를 감내하게 되었다. 세계 경제가 도약했다. (p. 125)

역사가 현재로 가까이 올수록 전쟁은 많아지고 다양해졌다. 그 전쟁들을 저자는 익숙한듯 새롭게 그리고 간략하게 풀어낸다. 그리고 '언제나 그러했듯이, 이번에도 모든 것은 바다에서 결정되었다. (p. 147)' 라고 정리한다. 따지고보면 틀린말은 아니다. 십자군전쟁도 미국독립전쟁도 세계대전도 모두 그 치열한 육지전 뒤에 깔린 바다의 역할들이 있었다. 그동안 눈여겨 보지 않았던 바다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는 저자의 논리는 쉽게 읽히면서도 고개 끄덕이게 하는 부분들이 많았다. 그리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시대인 현재에도 여전히 바다는 중요한 운송로이자 패권쟁탈지 였다.

결국 역사상 처음으로, 경제와 군사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가 경제적으로 바다를 지배하지 않게 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결과적으로 세계 지정학에 중장기적 변화를 일으키지 않을 수 없다. (p. 178)

또한 어제와 오늘의 독재국가들이 해양 강대국이 되기를 주저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설사 그들에게 기회가 없었다 해도 그러하다. 독재국가들은 바다에서 잃게 될 것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p. 208)

로마제국이 지중해를 주름잡고 대영제국이 대서양과 인도양에서 활개치고 미국이 태평양을 손아귀에 넣었던 시절엔 세계 패권국이 곧 바다의 지배자였다. 하지만 현대시대는 그렇지 않다. 다양한 이권 다툼 속에 각자 다른 권력을 가진 나라들이 속속 올라서고 있다. 그중엔 한국도 한자리 차지하고 있었다. 해양강대국과 민주국가의 연결성은 흥미로운 지점이었다. 그리고 저자의 삶의 터전인 프랑스가 바다와의 관계가 적었기에 한계가 있었다는 역사에 대한 설명도 흥미로운 분석이었다.

중국, 미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인도넨시아, 싱가포르, 베트남, 한국, 일본이 이러한 변화의 승리자가 될 것이다. 적어도 이들 나라의 해안 지역은 그러할 것이다. (중략) 의심할 바 없이 모든 바다에서, 모든 공간에서 다른 모든 나라를 능가하고 경제적인 초강대국으로 떠오를 나라는 한동안 없을 것이다. (p. 226)

저자는 유럽대륙의 특히 독일과 프랑스의 대륙지향성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당분간 바다의 패권국은 과거처럼 하나의 국가가 되진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야말로 당분간이다. 중국의 급부상은 그 당분간의 미래가 얼마나 가까울지멀지 결정할 가장 큰 요인이 될 것임을 저자는 빠트리지 않는다. 그밖에도 다양한 바다 관련 변화요인들을 하나하나 설명하면서 바다의 지정학적 미래를 조금은 예측할 수 있는 조언도 덧붙인다. 무엇보다도 바다의 미래를 위해 인류가 알아야 하고 노력해야 할 것들을 설명하는 부분(이 책의 결론이라고 할만한 책의 뒷 내용들)을 읽다보면 저자의 걱정을 우리 모두가 함께 해야한다는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기나긴 역사를 차근차근 풀어내면서 결국 저자가 하고 싶었던 말은 이 한 문장이다.

바다를 보호해야 한다. 행동해야 한다. 가능한 모든 층위에서. (p. 283)

저자는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이 바다를 다르게 보고, 바다를 더 잘 알고 싶은 생각이 들기를 바란다. 이제는 소비자의 태도가 아니라, 서로를 존중하고 서로엥게 이끌리는 협력자의 태도로 바다를 대해야 한다. 여전히 지각없는 약탈자로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미래를 향해 배를 몰고 가는 뱃사공의 자세로 바다를 존중하고, 바다에 경탄해야겠다. (p. 301)' 라고 책을 마무리한다. 인류의 역사에서 바다가 하는 필수불가결한 역할을 우리는 그동안 너무 간과해오지 않았나 싶다. 단순히 환경보호적 측면에서가 아니라 '미래를 향해 배를 몰고 가는 뱃사공'의 시선으로 바다에 대해 좀더 숙고해 볼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과거엔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해 왔다. 하지만 이제 바다를 지배하는 약탈자가 아닌 다른 역할을 세계가 나누어 가져야 할 때이다. 우리에게 바다는 어떤 곳인가? 무엇을 생각해야 할지 감이 안 잡힌다면 저자의 통찰을 참고해볼 것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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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 식물책
윤주복 지음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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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식물 공부를 처음 시작하는 누구나 쉽게 익힐 수 있도록

주변에서 흔히 만나는 1,164종 식물 정보를 알기 쉽게 담았습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동물을 참 좋아한다. 그에 비해 식물은 그냥저냥... 동물원에 가면 움직임도 관찰하고 먹이도 주며 활동하는 재미가 있지만 식물원은 걷고 구경하고 여기저기서 사진찍자는 부모들의 요구에 지쳐서 더욱 아이들에겐 식물보다는 동물이 더 호감이 가는 대상일 것이다. 나도 그랬던 것 같다. 어른이 되서도 초반엔 하다못해 티비다큐를 보더라도 동물생태계의 에너지에 더 관심이 가곤 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식물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꽃도 좋고 나무도 좋고 알면알수록 식물이 더 신비롭게 느껴졌다. 계절이 바뀔때마다 꽃사진을 찍고 있는 나를 보면서 새삼 나이가 들었구나 싶기도 했다. 아 그래서 어르신들이 계절마다 그렇게 산으로 들로 꽃구경이니 단풍구경이니 다니셨던건가 싶기도 하고 ㅎㅎㅎ. 여하튼, 식물이 좋아지니 식물책도 찾아보게 되었다.

애완동물에서 반려동물로 호칭의 변경이 다 변경되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일때 반려식물이라는 단어도 등장했다. 애완식물이라는 말은 없었으니까 '반려' 라는 의미가 널리 확산되면서 그 대상도 넓어진것 같다. 반려식물과 함께 살기엔 내손에 죽어나간 화분이 하도 여러개라 집안에 무언가를 들이기보다는 밖에 나가서 구경하는게 훨씬 마음이 편하다. 그런데 마음먹고 이런저런 구경을 하다보니 의외로 동네길이며 뒷산에 다양한 식물이 살고 있었다. 그 식물의 이름이 무엇인지 어떤 특징을 지녔는지 알고 싶지만 의외로 식물관련 책들은 특별한 식물들을 주로 다룬 것들이 많았다.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식물들에 대해 짧고 굵지만 다양하게 알려주는 책, 그런 책이 필요했는데 <쉬운 식물책> 이 딱 그런 책이었다.

이 책은 식물 공부를 처음 시작하는 누구나 주변에서 흔히 만나는 관상수, 가로수, 산나무, 야생초, 화초, 고사리식물, 곡식, 채소 등을 모두 찾아볼 수 있도록 만든 책으로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1,164종의 식물을 골라 실었습니다. (중략) 사진도 같이 실어서 찾기 쉽게 구성하였습니다. 그리고 식물을 설명하는 글은 초보자도 이해할 수 있도록 가능한 한 쉬운 낱말을 사용하였습니다. -책머리에 中-

이 책은 구성이 정말 알차고 깔끔하다. 책을 시작하기 전에 [쉬운 식물책 사용 설명서] 라고 해서 이 책을 사용하는 팁을 알려주고, 세세하게 본 내용을 들어가기에 앞서 [식물의 이해] 라는 정리를 통해 기초 지식을 간략하지만 탄탄하게 잡아준다. 책의 뒤쪽에는 [용어해설] 과 [식물 이름 찾아보기] 가 꼼꼼하게 덧붙여져 있어서 그야말로 '쉬운식물도감' 이라 부를만 하다. 무엇보다 풍부한 사진자료가 정말 보기 좋았다.

차례도 심플하다.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식물들은 대부분 꽃으로 눈에 띄기 마련이고 꽃은 대부분 봄과 여름에 핀다. 따라서 차례는 봄과 여름에 피는 풀꽃과 나무꽃 그리고 화초와 논밭작물 및 그외식물들로 구분되어 있다. 사진과 식물이름들만 대충 훑어보아도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를 정도로 굉장히 다양한 식물들이 빼곡하게 페이지를 채우고 있다. 이 책속에 등장하는 식물이름을 다 외울수야 없겠지만 책장에 비치해두면 두고두고 찾아보며 든든할 것 같다.

정보를 담은 책은 아무래도 최신정보를 담았느냐가 중요하기 마련인데 그런 면에서도 이 책은 훌륭하다. 식물의 분류에서 외떡잎 식물과 쌍떡잎 식물의 분류는 학교다닐때 익숙했던 분류이다. 그런데 최근 DNA 검사를 통해 원시적 형질을 가진 식물들을 따로 분류할 필요가 생겨서 '기초속씨식물군과' 과 '목련군'으로 일부가 분리되었다고 한다. 처음 읽는 내용이었다. 이뿐만 아니라 익숙한듯 새로운 식물들이 새록새록 눈에 들어오고 꽃과 열매를 함께 볼 수 있기까지 하니 무엇하나 흠잡을 곳이 없는 책이었다.

처음 읽을 때는 식물 하나하나 숨가쁘게 읽기 바빴지만 앞으로 여러번 찬찬히 읽고 또 읽고 싶은 책이다. 꽃이 한창이고 나뭇잎이 한창이고 열매가 한창인 계절에 밖에 나갔다 들어오면 이 책에 자꾸 손이 가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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