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태도가 과학적일 때
이종필 지음 / 사계절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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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천재의 시대는 끝났다!

이 충격적인 단언으로 시작한 현대 한국 물리학자의 묵직한 질문

'우리는 이 시대를 어떻게 이해하고 어떤 대비를 할 것인가?'

'우리의 태도가 과학적일 때' 라는 말은 지금 이 시기에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가 과학적이어야 한다는 의미일까 우리의 태도가 과학적일 때여야만 무언가를 알아챌 수 있다는 의미일까. 제목의 말뜻이 시기를 가리키는 것이든 태도를 가리키는 것이든 여하튼, 현시대는 과거 그 어느때보다 과학의 발전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시대임은 분명하다.

2020년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온라인 수업이 진행되자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문득 나는 내 교양과학 수업 영상을 다른 학생들이나 일반인도 볼 수 있으면 어떨까 생각했다. 그러나 이를 당장 실행에 옮기기에는 현실적인 문제들이 많았다. 내가 선택한 우회로는 우선 수업 때 이야기한 내용을 원고로 정리하는 작업이었다. (p. 9)

물리학을 전공하고 교양과학을 가르치면서 저자는 '한국형 천재의 시대는 끝났다'는 주제의 강연을 여러번 했고 수업중에도 관련 내용을 풀어낸 적이 있다고 한다. '교양과학'은 대학에 개설된 과목이지만 사실 '교양'자 붙는 것 치고 일반 대중에게 적합하지 않은 것은 없다. 그러나 영상이 흘러넘치는 시대에도 '공유'의 문제에는 한계가 있고 그 한계를 뛰어넘는 것은 아직은 여전히 '책'이라는 점에서 왠지 모를 아이러니가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저자가 느낀 아이러니는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에서 믿어 의심치 않았던 승리를 보지 못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니까 나는 모든 고등교육을 20세기에 끝낸 셈이다. 그런 내가 지금 알파고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대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수 있을까? 2016년의 그 봄날에 나는 아직도 풀지 못한 어려운 숙제를 하나 떠안게 되었다. (p. 20)' 그 숙제를 하는 과정중에 이 책도 나올 수 있었으니 저자는 아마도 숙제를 열심히 하는 편인것 같다. ^^

아직도 나는 답을 모르겠다. 다만 그 답을 구하는 데에 도움이 될지도 모르는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알 수 있었다. 이제 한국형 천재의 시대는 완전히 끝났다는 사실이다. (p. 27) 한국형 천재가 조금이라도 유용했던 이유는 그 모든 교과서와 참고서와 사전과 계산기를 일일이 다 들고 다닐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내용을 머릿속에 꽉꽉 집어넣고 누가 물어보면 언제든지 척척박사처럼 답을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이 천재였다. 4차 산업혁명이 디지털로의 통합이 이루어지는 시대를 연다는 건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p. 33)

'한국형 천재'를 저자는 잘 외우고 기억하는 암기형 인간으로 지칭한다. 하지만 손안에 컴퓨터를 갖고 다니는 시대에 더이상 단순한 암기는 능력이 될 수 없기에 한국형 천재는 끝났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보다는 그 지식을 활용하는 능력이 더 중요해졌다고. '새로운 분야가 끊임없이 생기고 있다. 옛날의 카테고리만으로는 분류할 수 없을 수도 있다. (p. 42)' 고. 따라서 '전문적인 지식 자체보다 지식을 만들어내는 어떤 기제, 즉 지식 창출의 플랫폼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그러니까 총체성이 발휘되어야 할 지점은 모든 지식을 습득하는 수준이 아니라 플랫폼을 작동시켜 지식 창출 자체를 코디네이션 또는 큐레이션 하는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p. 52)' 를 강조한다. 나이가 들수록 기억력이 떨어져 슬프지만 아직 검색이나 종합능력만큼은 쓸모있다고 생각하는 나에게 희망찬 메세지가 아닐 수 없다. 내가 지금 뭔가 해낼 수 있다까지는 아니어도 아직은 쓸모가 있는 인간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ㅎ 여하튼, 저자는 이런 측면에서라도 과학을 더 중요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수학도 기구도 중요하지만 우리 논의의 맥락에서 다시 말하자면 과학은 역사상 가장 훌륭한 지식 창출 플랫폼이다. (중략) 여태 우리는 과학조차 잘 외우고 있어야 할 특정한 지식으로만 여겨 왔지만 알파고 시대에는 지식 창출의 플랫폼이라는 과학의 본질이 더욱 중요하다. 무슨 일을 하든, 어쨌든 가장 성공적인 모델부터 살펴보는 게 당연한 수순이다. 언제부터인가 과학을 '21세기의 필수 교양'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p. 55)

저자는 과학의 본질이 '지식 창출 플랫폼'이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왜 과학이 어렵게 느껴져 왔는지 묻고 '원래 어려워요' 라고 한결같이 대답해왔다고 답한다.

왜 과학은 원래 어려울까? 특히 우리에게 과학이 어려운 이유는 우리 것이 아니어서 그렇다. (p. 63)

과학이 우리 것이 아니라는 것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과학이라는 학문이 멀고먼 외국에서 들어온 학문이라는 것이고 또하나는 과학은 본질적으로 인간이 아닌 자연에 관한 지식을 다루기 때문이라고. '인간에 관한 지식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에게 낯설다. 자연을 잘 기술하기 위해서는 자연의 언어, 또는 우주 본연의 언어를 써야 한다. (중략) 우주의 언어는 인간에게 아주 낯설다. 그래서 과학이 어렵다. (p. 69)' 하지만 이토록 어려운 과학을 이제 굳이 다 알 필요가 없는 시대가 됐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알고 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이해하고 활용하느냐 이다.

과학은 전복의 학문이라는 말이 있는데, 완전한 전복이 가능하려면 그전에 최고 수준으로 엄격한 보수주의자가 되어 기존 체계가 살아남을 일말의 가능성까지 따져 본 명세서가 나와야만 한다. 따라서 과학자들은 엄격한 보수주의자이면서 동시에 열렬한 혁명주의자이다. 과학자들에게 이 둘은 서로 대립되지 ㅇ낳는다. 후자가 되기 위해서조차 전자가 필요하다. 과학자들이 가장 혁명적인 이유는 가장 보수적이기 때문이며, 가장 보수적인 이유는 가장 혁명을 갈망하기 때문이다. (p. 124)

바로 어제 읽은 책이 과학사 관련 책이었는데 천재라 불리는 과학자들이 가지고 있었던 똥고집에 혀를 내두르며 답답했었다. 하지만 위 문장을 읽고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한 보수성이 꼭 필요한 거였구나... 책에서 얻은 답답함을 책으로 풀어내는 경험, 참 좋다. 역시 책은 두루두루 많이 볼 일이다. ㅋ

"Nullius in verba"

이 말은 라틴어로, '어느 것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말라' 또는 '남의 말 쉽게 믿지 말라' 정도로 옮길 수 있다. (중략) 이 문장은 영국의 유서 깊은 과학자 단체인 왕립학회의 모토이기도 하다. 나는 항상 교양과학 수업 첫 시간에 이 말을 소개한다. (p. 150)

이 책에서 핵심문장을 꼽으라면 바로 저 라틴어 문장일 것이다. 우리가 태도가 과학적이어야 할때 필요한 말이기도 하고 우리의 태도가 과학적이기 위해 필요한 말이기도 하다. NIV로 줄여 부르면서 저자는 이 라틴어문구를 책속에서 자주 언급하고 있다. 짧게 말하자면 '의심하라' 라고나 할까.

지금까지 우리는 도구에만 관심을 집중했다면 이제부터는 가치부터 고민해야 한다. (중략) 결국 과학을 한다는 것은 나의 시각, 나의 철학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그로부터 자율적이고 주체적으로 정보를 얻는 과정이다. 이는 우리를 둘러싼 제반 환경에 대한 통찰을 얻는 첫걸음이다. 주변 환경에 대한 주체적인 통찰, 나는 이것이 문명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p. 155)

저자는 17세기 과학혁명을 통해 근대과학이 정립된 것이 인류 문명의 변곡점을 찍은 것이었다면 지금 이시대 4차 산업혁명과 팬데믹을 겪는 이 시점도 문명사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면 변곡점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니 과학이 또 중요해지는 것이다. 이 시대에.

한국에서 아직 과학이 발달하지 않은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우리 스스로가 우리를 둘러싼 주변을 주체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통찰을 가지려는 의지가 부족했던 것이 가장 근본적인 이유가 아닐까 싶다. (p. 166) K-방역의 성공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문제를 주체적으로 파악하고 해결하겠다는 과학적인 마인드의 성공이다. (p. 168)

세월이 흐를수록 전문분야는 점점 더 좁은 영역에서 고도화되기 마련이라 괴담과 신중함을 판별하는 데 개개인의 NIV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여전히 NIV의 정신을 포기할 수는 없다. 그나마 한 가지 위안이 될 만한 점도 있다. 정보통신기술의 혁명 덕분에 우리는 안방에 앉아서도 전 세계의 수없이 많은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p. 174)

과학의 힘은 결국 축적된 정보의 힘이다. 정보가 축적되지 않는다면 후대 사람들은 선대의 시행착오를 계속 답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보의 축적은 수많은 사람들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협력해야 가능하다. 이 과정에서 일종의 집단지성이 작동한다. 즉, 과학은 수많은 사람들의 초협력이 빚어낸 집단지성이다. (p. 177) 초연결성이 한국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혼자 잘하던 시대는 끝났다" (p. 193)

지금까지의 한국 과학은 기술적인 측면에 중점을 두고 당장 눈앞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급급해 왔다. 하지만 지금의 한국은 더이상 생계수준에서만 판단하지 않아도 될 만큼 빠르게 성장했다. 저자는 K방역의 성공에서 한국과학의 희망을 보았다. 빠른 정보통신기술로 넘쳐나는 가짜 정보들 속에서 NIV의 자세로 혼자 옥석을 가려내는 것은 어려울지 몰라도 서로의 오류를 점검하고 고쳐주는 집단지성에서는 더나은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그래서 저자는 한국형 천재는 끝났다라고 말한 것이다.

팬데믹에 대처하는 서구사회의 모습을 보면서 과연 이런 통념이 어디까지 적용되는가 하는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p. 252) 영국과 함께 유럽에서 많은 확진자와 사망자를 낸 프랑스, 이탈리아에서도 비슷하다. 유럽 선진국들에서는 일반 국민들의 과학적 문해력이 평균적으로 높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적어도 이번 팬데믹 기간 동안에는 무너졌다. 반면 한국에서는 오히려 정반대에 가까운 일들이 벌어졌다. (p. 253) 강압적인 봉쇄와 통제에 의존하지 않고서도 과학적이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방역에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준 나라는 한국이 거의 유일하다. (p. 265) 지금까지 거의 대부분의 영역에서 남들이 정해놓은 규칙을 따르기만 했던 우리가 새로운 규칙을 만들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K방역의 성과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역설적이게도 대부분의 국내 언론이 K방역을 깎아내린 반면 외신들은 이구동성으로 한국의 성공사례를 폭포수처럼 기사로 쏟아냈다. (p. 266)

이런저런 교양과학의 이야기들 속에서도 시종일관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과학적 태도' 이고 '희망' 이었다. '자유로운 개인인 동시에 공동체에 기여하고자 하는 시민 (p. 269)' 의 모습을 K방역에서 보여준 한국인들에 대해 외국에선 '과학에 대한 높은 이해가 대유행을 막는 데에 큰 도움이 됐을 것 (p. 266)' 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고 한다. 기초과학이 탄탄하지 못한 국내 사정에 비추었을 때 '과학에 대한 높은 이해'가 없을 수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K방역의 성공에서 'NIV와 초협력 (p. 269)' 의 토대를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저자는 여기서 '새로운 희망'을 느꼈다며 이 책을 마무리한다. 나또한 저자가 느낀 희망에 기대고 싶어진다. 팬데믹은 있어선 안될 사건이었지만 나중에 돌이켜봤을때 한국의 또다른 성장을 가능케 한 시발점이 될 수 있기를. 이 바람이 가능해지려면 우리는 좀더 과학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일단 시작은 과학책을 읽는 것부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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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멩코 추는 남자 (벚꽃에디션) - 제11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허태연 지음 / 다산북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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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적 스피디한 전개는 작가의 필력을 증명한다"

스페인으로 '진짜 가족'을 찾아 나선 한 남자의 플라멩코 정복기

뭔가 상을 받았다고 하면 다시 되돌아보기 마련, 책도 그렇다. 영화는 무슨 영화제에서 상받았다는 영화치고 재미난게 잘 없던데 소설은 상받은 작품들이 대부분 고개 끄덕이게 하는 부분들이 있어서 모른 척 지나쳤던 책들이라도 상을 받았다고 하면 다시 찾아 읽어보곤 한다. 이 책은 11회 혼불문학상 수장작이라고 한다.

띠지에 적힌 홍보문구처럼 이 책은 드라마적 전개가 쑥쑥 읽히는 가독성 좋은 소설이었다.

주인공은 67세의 굴착기 기사 허남훈 씨다. 그는 26년간 거의 쉬지 않고 굴착기로 땅을 다지듯 자신의 인생도 잘 다져왔기에 이제 슬슬 은퇴를 고려하고 있다. 그런 그가 오랜만에 책장에서 먼지 털며 꺼내든 것은 26년전 자신의 굳은 다짐을 써내려갔던 노트 한권이었다. 그 노트 첫장엔 '청년일지' 라고 써놓았더랬다.

마흔셋에 아내를 만나 마흔넷에 선아를 얻은 후 일지의 작성은 뜸해졌지만, 거기에 젊은 시절의 각오가 담겨 있다는 것을 남훈 씨는 잊은 적이 없다. 구체적으로 무슨 말을 어떻게 썼는지는 기억이 희미해도, 남은 생애 꼭 이루고픈 목표들을 적어뒀다는 건 분명히 알고 있었다. (p. 19)

노트를 사기 직전 마흔둘의 남훈씨는 알콜중독자로 응급실에서 눈을 떴다. 퇴원하자마자 문구점으로 가 제일 비싼 노트를 샀다. 그 노트에 차곡차곡 써내려간 자신의 다짐들을 의지삼아 지난 세월 굳건하게 새로운 인생을 살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은퇴를 생각하는 나이가 됐을때 버킷리스트 처럼 그 노트에 써두었던 자신의 과거 목표들을 하나하나 완수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벌컥벌컥 화를 내던 성질머리를 다스리고 후줄근하던 옷차림을 멋진 신사로 거듭나게 할 정장도 폼나게 새로 맞추고 어린 시절 꿈이었던 새로운 언어 배우기에도 도전을 시작했다. 그리고 플라멩코!

처음으로 맞춤 양복을 재단하면서 불편할까 걱정하는 그에게 재단사가 건넨 말, '춤이라도 추실 수 있게 해드리지요. (p. 61)' 가 그의 귀에 꽂혔다.

'청년일지' 속 목표들을 하나하나 실천하기위해 애지중지 아끼던 굴착기를 넘기고 매일 하던 일을 쉬면서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새로운 몸짓을 익히면서도 그가 손대지 못하고 있는 노트 속의 한문장이 있었다.

1995년 12월 15일, 보연이를 데려다 내 손으로 키우자. 내가 가지 못한 대학도 꼭 보내야지. (p. 154)

26년전 그 다짐을 보며 남훈씨는 도망쳐왔던 지난날을 떠올리는 것이 괴롭고 마뜩지않아 미루고미루고미루던 중이었다. 사실 지금의 아내와 늦둥이 딸은 모르지만 그에겐 전처와의 사이에서 딸이 한명 있었다. 하지만 딸 보연이가 여섯살때 이혼한 후 연락을 끊은 터라 마흔살이 다된 딸이 어디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사는지 알지 못했다. 목에 걸린 가시처럼 노트 속 마지막 한 문장은 내내 남훈씨 마음에 걸려 있었다.

'스페인으로 '진짜 가족'을 찾아 나선 한 남자의 플라멩코 정복기' 라는 뒤표지의 문구를 봤을때 스페인으로 가서 잃어버렸던 가족을 찾는 이야기인가 싶었는데 아니었다. 남훈씨에겐 스페인에 살고 있는 가족이 없다. 가족은 모두 그의 근처에 한 도시에 살고 있다. 스페인으로 가족을 찾아 나섰다기 보다는 스페인어를 배우고 플랑멩코를 추며 스페인으로 여행을 다녀옴으로써 가족애를 돈독히 하는 그런 정도의 연결고리라고 볼수 있다. 스페인은.

허남훈 씨라는 한 아버지의 인생사 굴곡을 따라 펼쳐지는 가족의 이야기는 낯설지 않기에 술술 읽히고 만남과 헤어짐 혹은 상처와 보살핌 이라는 드라마적 요소와 적절히 어우러져 가족의 범위가 확장되는 해피엔딩으로 자알 마무리된다.

크게 무리없이 읽히는 편안한 소설책에서 거슬렸던 부분이라면 작품 끝에 해제처럼 붙어있는 '혼불문학상 심사평' 이었다. '심사위원 대부분의 의견은 안타깝게도 최종심에 올라온 작품의 수준이 다소 떨어지고 고르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혼불문학상>의 위상을 재정립하고 더 젊은 문학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발판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으고 그에 합당한 작품을 찾기 위해 장고에 들어갔다. (p. 269)' 다시말해 상을 줄만한 뛰어난 작품이 없었기에 오랜시간을 들여 고르고 골라 그나마 상을 준 작품이 <플라멩코 추는 남자> 라는 소리다. 기왕 상 준거 굳이 이런 사족 붙일 거 뭐있나? 이래놓고 뒤에가선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작품이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 (p. 271)' 라고 해봤자 크게 위안이 될 것 같진 않다. 어떤 문학상에서 심사위원을 맡는 작가들도 따지고 보면 그닥 훌륭한 작품이나 베스트셀러를 쓰지 못한 작가들도 있기 마련이던데 심사위원이라는 타이틀을 목에 걸었을때 내뱉는 문체가 나는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여하튼, 이 책은 따듯한 가족이야기 이다. 매정한 뉴스에 마음이 씁쓸해지고 차가운 사회에 마음이 허해질때 이 작품과 같은 가족이야기는 은은한 화롯불처럼 마음 한편을 뭉근하게 뎁혀 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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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의 흑역사 - 세계 최고 지성인도 피해 갈 수 없는 삽질의 기록들 테마로 읽는 역사 6
양젠예 지음, 강초아 옮김, 이정모 감수 / 현대지성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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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 지성인도 피해 갈 수 없는 삽질의 기록들

천재 과학자들의 바보 같은 실수들이 빚어낸 유쾌한 과학의 역사

사전에서 [실수] 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1. 조심하지 아니하여 잘못함. 또는 그런 행위.

2. 말이나 행동이 예의에 벗어남. 또는 그런 말이나 행동. 상대의 양해를 구하는 인사로 쓰는 경우가 많다.

라는 풀이가 나온다. 실수는 의도치 않은 것일 경우가 많고 당연히 실패와도 다르다. 하나의 진리를 찾아내기 위해 과학자들은 많은 실수와 실패를 거듭하여 연구하고 실험하고 검증할 것이다. 그런 경험들을 통해 후학이 배울 수 있는 것들도 많을터, 이 책을 통해 좀더 재미있는 과학자들의 실수담을 읽을 수 있기를 기대했다.

'과학 거장들의 실수' 라는 중국어 원제의 제목이 한국어판 제목 '과학자의 흑역사'로 제목에 큰 변형을 하지 않은 것도 좋았다. 하지만 읽으면서 느끼게 된건 애초에 원제 자체가 본문과 좀 어울리지 않는 제목이었달까;;;

책의 구성은 천문학자의 흑역사 / 생물학자의 흑역사 / 수학자의 흑역사 / 화학자의 흑역사 / 물리학자의 흑역사 로 과학의 각 분야로 크게 나누어 학자들을 등장시킨다. 각 학문내에서 학자들이 서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분야별로 구분지어 놓은 것은 적절하다 싶다. 각 부분적으로는 과학사적으로 읽히는 부분도 있지만 과학사 보다는 그냥 학자별 에피소드의 열거로 읽히는 책이다. 천재적인 학자들이 과연 어떤 실수를 했을까?? 를 궁금해하며 읽었지만 과학자들의 실수라기 보다는 편견이나 아집 혹은 고집의 모음이었다.

호킹은 자신의 연구에서 힌트를 얻었을 것이라 오해한 나머지 스타인하트 라는 학자의 명예를 바닥에 떨어뜨린 후 사실을 알고서도 사과하지 않았고,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연구에서 오류를 증명한 프리드만을 강하게 비판하다가 수용한 후에도 거칠게 동의했으며,

르베리에의 가설만 철썩같이 믿은 많은 천문학자들은 그의 예언이 틀렸다는 것을 확인하기까지 수십년의 세월을 있지도 않은 행성 '벌컨'을 찾아 헤맸다.

에딩턴은 자신의 권위를 이용해 젊은 학자 찬드라세카르의 이론이 설 자리를 없애버렸기에 블랙홀 연구는 30여년 뒤처지게 되었고,

퀴비에는 놀라울 정도로 성실했기에 비교해부학의 권위자가 되었으면서도 용기내지 못하여 진화론을 부정하고 현재에 안주했으며,

델브뤼크는 단순명료한 진리를 추구하다가 편견에 빠져 중요한 연구방향을 무시했다.

모노는 철학 범주에 속하는 개념어와 과학적 연구의 세부사항을 구분하지 못하여 DNA연구자들을 비난했고,

노벨상을 받은 콘버그는 개인적 이익 묹로 불명예를 자초했으며,

베이트슨은 실증주의 철학 입장에서 과학연구를 하려다가 유전학 발전의 장애물이 되었다.

어떠한 위대한 과학자도 모든 과학 문제를 풀어낼 수는 없다. 언젠가는 그 당시에 가장 곤란한 문제 앞에 멈출 때가 온다. 그리고 나중에는 잘못된 것이라고 밝혀지는 이론과 생각을 내놓을 때도 있다. 그러나 그런 이론들이 미래의 과학자들이 한 걸음 전진할 수 있게 받쳐주는 디딤돌이 된다. 이것이 역사의 한계성이 갖는 필연이다. (p. 168)

당대 명성이 높던 가우스도 자신이 어렵게 손에 넣은 것들을 잃을지 모르는 모험은 하지 않기 위해 비유클리드 기하학에 입장을 취하지 않았고,

수학을 개조했으니 물리학도 개조할 수 있다며 뛰어든 수학자 힐베르트는 호되게 쓴맛을 보아야 했으며,

푸엥카레와 아인슈타인은 서로의 심리적 경쟁때문에 생전 서로에 대한 언급을 단 한번도 하지 않을 만큼 고집스런 태도를 보였다.

프리스틀리는 산소를 발견해놓고서도 플로지스톤을 향한 맹목적인 믿음 때문에 자신의 연구가치를 제대로 알아채지 못했고,

돌턴은 자신의 원자론을 수정하지 않기 위해 실험으로 입증된 법칙에 대해 회의적이고 부정적인 태도를 취햇으며,

멘델레예프는 자신의 주기율표를 지키기 위해 몇몇 원소의 원자량을 수정하여 자신의 주기율에 맞추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누가 먼저냐 라는 우선권 문제에서는 과학자들 끼리 서로의 입장만을 고수했고,

애국심 강했던 독일과학자 하버의 독가스는 사상 최악의 희생을 가능케 했으나 하버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했으며

오토 한은 자신의 연구가 원자폭탄을 만들어내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갈릴레이가 파도바에서의 안정적인 연구생활을 버리고 고향 피렌체로 돌아간 것은 현명하지 않은 선택이었고,

뉴턴은 한정된 실험 사실에서 보편적인 추론을 도출했기에 색수차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으며,

베크렐은 실험과 관찰만 중시하고 가설을 세우는 것을 무시했기에 방사선 연구를 제대로 이어가지 못했다.

사기극이 아닐까 싶던 N선 연구에 프랑스 과학자들이 진심으로 몰입했던 것은 과학과는 관계없는 민족적 자존심이라는 감정때문이었고

마이컬슨은 죽을때까지 상대성이론을 인정하지 않는 보수적 관점을 유지했으며,

패리티 보존법칙을 고수하던 물리학자들은 그 법칙에 예외가 있음을 실험으로 증명되었을때도 곧바로 수용하려 하지 않았다.

간단히 말하면, 이 책에 나오는 대부분의 (저자의 표현으로는) 실수담들은 거의다 과학자들의 보수적 태도와 권위적 사고방식과 자신의 이론만 옳다는 똥고집 의 향연들이었다. 한치의 양보도 없는 그 고집스런 태도들을 답답하게 읽으면서 천재적 과학자의 흑역사에 킥킥대보려던 나의 희망은 물거품이 되었다. 이 책의 제목은 '과학 거장들의 실수'라기 보다는 '천재들의 똥고집 혹은 과학자들의 보수성'이라고 하는게 더 맞지 않았을지...

물론 아무리 고집을 부리고 완강히 거부해도 새로운 발견들이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갈 때마다 과학자들의 옹고집은 과거에 묻힐 수 있었다. 하지만 과학자들이 좀더 개방적이고 소통하는 자세로 협업을 했더라면 위대한 과학의 역사에서 불필요하게 소모된 시간들은 훨씬 줄어들지 않았을까... 이렇게 생각해보니 이 책속에 등장하는 과학자들의 일화들이 그들에게 모두 '흑역사'가 맞긴 하다. 여하튼, 이 책이 전해주는 메세지를 책속에 인용된 문장 하나로 요약한다면, '권위로 논증하는 예는 셀 수 없이 많고, 권위가 저지른 잘못도 흔하다. -칼 에드워드 세이건 (1934~1996)' (p. 60) 이 가장 적절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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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나 (양장) 소설Y
이희영 지음 / 창비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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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영혼을 찾으러 왔습니다."

'나'에게서 '나'로 돌아갈 시간, 단 일주일!

이런저런 서평단 활동을 해봤지만 대본집 형태로 가제본을 받아본 것은 처음이다. 대본형태이지만 소설책이다. 무엇보다 블라인드 대본집이라 작가가 누구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읽으니 더욱 흥미진진하게 느껴진다. [완득이] [우아한 거짓말] [페인트] [알로하, 나의 엄마들] 등 소설Y 시리즈로 나올 책이라는데, <아몬드> <위저드 베이커리>를 잇는다는 이 영어덜트 소설의 작가는 과연 누구일까?

어느 날 버스 사고 후 영혼이 빠져나오게 된 열여덟 살 한수리와 열일곱 살 은류. 일주일 내로 육체를 되찾지 못하면 영혼 사냥꾼 선령을 따라 저승으로 가야 하낟. 창창한 미래를 향한 계획이 가득한 수리는 육체로 돌아갈 생각뿐이고, 어딘지 비어 있는 듯한 류는 육체에 관심이 없다. 선령의 말에 따르면 영혼이 빠져나오고 육체에 결계까 쳐진 것은 스스로가 영혼을 거부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일주일 뒤 크리스마스 전까지 수리와 류는 육체로 돌아갈 수 있을까?

늘 시작되는 패턴이었다. 여느 때와 다름 없는 아침, 일상의 시작이었다. 알람소리에 눈을 뜨고 계획대로 움직이는 수리, 그런데 이런 수리를 보고 있는 이가 있다. 바로 수리의 영혼!

"선령이야. 사냥할 선에 영혼 령, 한마디로 살아있는 영혼을 사냥하는 이들이지. 사령을 데려오는 저승사자들과는 전혀 다른 일을 한다고." (p. 9)

갑작스런 버스 사고로 수리의 영혼은 육체에서 떨어져 나왔다. 그런 영혼에게 선령이 나타나 알려준다. 육체로 돌아갈 수 있는 기한은 단 일주일 이라고.

다행히 버스사고로 다친 곳은 없었다. 정신을 잃어 응급실에서 깨어나긴 했지만 멀쩡했다. 아니 멀쩡해 보였다. 육체는! 수리의 영혼은 자신의 육체를 보며 다시 돌아갈 궁리를 열심히 해보지만 무엇때문인지 결계가 걷히지 않는다.

내가 유령 상태로 남아 있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육체가 자신의 영혼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대로 사흘 뒤면 나는 저 선령을 따라 이 세상을 떠나고, 한수리는 영혼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게 된다. 장난스럽게 내뱉었던 말이 현실이 되어 진짜 영혼 없는 삶을 사는 것이다. (p. 11)

영혼없는 대답, 영끌로 모아야 할 무엇 등 우리는 일상에서 수시로 영혼을 잃어버리곤 한다. 하지만 그 영혼을 정말로 잃어버리다니!

한수리는 그야말로 완벽한 고2 여고생 이었다. 공부 잘하고 모범적인 학교 생활에 맛집 여행 등의 사진으로 인스타에서도 좋아요를 엄청 많이 받는, 한마디로 엄마에게 소개시켜주면 안될 친구로 통하는 그런 아이였다. 그런데 자신의 육체가 자신의 영혼을 거부하고 있다. 발을 동동거리고 화를 내다가 차츰차츰 되돌아보게 된다. 그 완벽함이 정말로 자신이 원하는 것이었던가?

"그냥 사는 거야. 주어진 환경에 맞게. 물이 흘러가고 달이 차오르듯이, 그렇게 말이야."

주어진 환경에 맞게, 물이 흘러가고 달이 차듯이 살아간다? 그것만큼 마음 편한 삶이 또 있을까. 아무런 근심조차 없다는 뜻이잖아. 그럼 지금껏 영혼이 있을 때는 그렇게 살지 못했다는 뜻인가. 고작 열일곱의 나이에 인생의 무게 운운하는 것도 참 서글픈 일이다. (p. 35)

한 날 한 시에 같은 버스사고로 튕겨진 영혼이 또 하나 있다. 열일곱살 고1 남고생 은류.

하지만 은류의 영혼은 도통 자신의 육체로 돌아가는 것에 관심이 없다. 수리가 자신의 육체를 따라다니며 24시간 지켜보는 동안 류의 시선이 따라다닌 것은 자신의 육체가 아니었다.

수리는 몹시 조금해하며, 류는 아주 태연합니다. 이렇게 극과 극의 영혼이 동시에 육체를 이탈한 일은 정말 이례적입니다. 그만큼 제 피곤이 가중된다는 사실 또한 알아주시길 바랍니다. 만약 남은 사흘 안에 개성이 또렷하다 못해 흘러넘치는 두 영혼이 육체로 돌아가지 못한다면 제가 직접 저승으로 인솔할 수밖에 없습니다. (중략) 인간의 십 대는 마치 타들어 가는 폭탄의 심지같습니다. 보고 있으면 심장이 매 순간 아주 쫄깃해지실 겁니다. (p. 93)

찢어진 청바지에 후드티를 입고 하얗다 못해 창백한 피부에 보랏빛이 감도는 기묘한 눈동자로 보고 피처럼 붉은 입술로 말하는 선령은 영혼사냥꾼이다. 오싹한 냉기를 풍기며 수리와 류의 영혼 곁에서 상황을 알려주고 약간의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구체적인 조언은 일절 하지 않는다. 저승사자로 있다가 강등되어 내려온 선령이라는 자리가 영 탐탁치 않았는데 두 십대 영혼들을 지켜보자니 생각보다 꽤 괜찮은 일 같다.

왜 저를 영혼 사냥꾼이라 했는지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한 번이라도 호랑이에게 쫓겨 본 사슴은 압니다. 자신이 얼마만큼 빨리 달릴 수 있는지, 가는 다리에서 얼마나 강한 함이 솟구쳐 나오는지를, 때로는 위기가 그 사람의 참모습을 보여주니까요. (p. 193)

선령, 한수리, 은류 이 3명의 오고가는 대화 속에 차차 드러나는 그들의 삶과 속내가 드라마틱하게 순식간에 읽혀지는 소설이었다.

서평단 미션으로 가상 캐스팅도 해보고 나니 장면 하나하나가 머릿속에 그려지는 것도 같다. 이 재미난 작품을 쓴 작가는 과연 누구일까?

겉표지의 해시태그 힌트로 보건데... [페인트]의 이희영 작가 아니면 [페이지터너]의 박혜련 작가가 아닐까 싶긴 한데... (다 읽고 나서 개인적으로 추측되는 사람은 박혜련 작가?! ^^) 10월1일에 공개된다고 하니, 산타의 선물을 기대하는 크리스마스 이브의 기분으로 며칠을 기다려보련다. ㅎㅎ


ps. 10월1일 블라인드에 가려졌던 작가가 밝혀졌다! [페인트]의 이희영 작가였다!! wow~!!!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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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오디세이 - 돈과 인간 그리고 은행의 역사, 개정판
차현진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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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탄생부터 금융의 미래까지

중앙은행 베테랑 뱅커가 들려주는 금융 이야기

역사를 좋아해서 이런저런 다양한 종류의 역사책을 찾아 읽는 편이다. 학문적으로 탐구한 책도 있고 대중적으로 쉽게 풀이한 책도 있고... 세상엔 어찌나 읽고 싶은 책이 많은지 ㅎㅎ 여하튼, 그런 다양한 역사서들을 읽다보니 어떤 주제에 따라 역사를 흥미롭게 풀어낸 비전문적 역사글쟁들이 꽤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다만 대다수가 외국저자들이란 것이 못내 아쉬웠었는데 금융 이라는 생소한 분야에서 국내 저자의 흥미로운 역사서가 새로 나왔기에 궁금했다. 이력을 보니 저자는 한국은행에서 잔뼈가 굵은 국내 금융계의 산증인 같았다.

초판에서 밝혔듯이 이 책은 기존 경제학 교과서에 대한 도전이다. 교과서에는 중앙은행과 은행과 돈을 불가분의 관계로 설명한다. 현재의 금융 시스템을 묘사하는데 급급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화폐는 은행과 중앙은행이 없었을 때부터 존재했다. 그런 점에서 경제학 교과서들은 허구다. 우연과 필연이 뒤섞여 발전해 온 금융경제 시스템을 정확히 이해하려면 고정관념이나 도그마들을 배제한 채 돈, 은행, 중아은행의 원형질을 하나하나 벗겨야 한다. 그러려면 금융을 이해하는 데 배경이 되는 인간과 사회를 둘러싼 역사와 철학을 이해하는 것이 필수임은 물론이다. 특히 역사 지식의 중요성은 미켈란젤로가 조각하는 데 필요한 해부학적 지식의 중요성에 맞먹는다. (p. 5) -들어가는 말 中-

모든 학문의 기초는 역사적 이해가 탄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기에, '돈의 역사가 곧 인간의 역사'라면서 역사 지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저자의 기본 마인드에 공감했다. 10년만의 개정증보판이라며 본문내용을 전면 재검토 및 수정보완했다는 점에서도 기대감을 품게 했다. 돈/ 은행 / 사람 이라는 3부작의 흐름은 때론 역사적으로 때론 사건적으로 흥미롭게 읽히는 부분이 많았다.

'서양에서 돈은 '경제적 가치를 표현하는 물건'이라고 본다. 반면 동양에서는 '다른 물건의 가격을 표현하기 위해 사회구성원(또는 최고권력자)들이 정한 약속'이라고 본다. (p. 41)' 처럼 돈이라는 개념의 시작부터 동서양을 넘나들며 역사적으로 풀어내려는 시도도 좋았고 '전 세계적으로 주화의 앞면을 '헤드'라고 부르는 이유는 거기에 보통 군주의 얼굴이 새겨졌기 때문이다. (자동차나 건물과 달리 돈에서는 '앞면'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p. 64)' 라던가 '달러는 아메리카 대륙 여러 곳에서 공통으로 쓰는, 국적없는 계산단위가 되어버렸다. 프랑Franc, 마르크Mark 드오가 달리 이탈리아의 리라lira나 달러dollar를 소문자로 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p. 70)' 또는 '존 로에 대한 증오감이 얼마나 컸던지, 그가 썼던 '은행'이라는 말도 프랑스에서는 용납되지 않았다. 오늘날 프랑스계 은행들이 은행이라는 말보다 금고, 신용, 협회, 계산소와 같은 말을 쓰는 것은 존 로의 후유증이다. 프랑스는 전통적으로 금융인에 대한 신뢰도가 낮다. (p. 181)' 등의 상식을 넓혀주는 이야기들은 재미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화폐의 도안에 아주 관심이 많다. 등장인물과 글자의 모양에 관해서는 수많은 의견이 따라붙는다. 반면 역사의식과 국가관은 없다. (p. 74)' 라던가 '금융의 역사나 생리를 조금이라도 공부한 사람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을 우리나라 공무원은 모른다. 부끄러운 일이다. (p. 252)' 혹은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과연 은행업을 제대로 이해한다고 할 수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공무원보다 은행업을 잘 안다고 하기 어렵다. (p. 256)' 등의 표현은 좀 위험한 시각이 아닐까 싶었는데, '하지만 재무부와 조선은행 직원들은 (이승만) 대통령의 이런 큰 뜻을 알아채지 못했다. (중략) 외환보유액이 세계8위 수준에 이른 이 즈음에 여전히 양기관이 사소한 다툼을 계속한다면, 최빈국 대통력 이승만이 지하에서 울지 않을까? (p. 380)' 에서 할말을 잃었다.

게다가 '결코 신성하지 않았던 신성로마제국'이라는 소단원에서는 역사적 상식에 좀 어긋나는 해석을 보여주기도 한다. '교황 레오3세는 크리스마스 미사에 참석한 카롤루스를 일으켜 세운 뒤 그를 '로마제국의 황제'라고 불렀다. 갑작스러운 사태에 카롤루스는 짐짓 놀라는 표정을 지었지만, 사실은 사전 밀약의 결과였다. 카롤루스가 일개 왕에 머물러 있는 것보다는 비잔틴 제국의 황제와 동격이 되는 것이 그 자신과 교황 모두에게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정교유착의 결과로 서기 800년 즉흥적으로 출현한 것이 신성로마제국이었다. 별로 신성하지 않았으며, 로마와 관계없는 프랑크족의 왕국이었다. (p. 100~101)' 는 내용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 대부분의 역사서나 검색내용에서 서기800년 로마제국의 황제가 된 이는 샤를마뉴대제이고(라틴어식으로 읽으면 카롤루스, 독일식으로 읽으면 카를, 프랑스식으로 읽으면 샤를 인데 다 같은 이름의 동일인이다) 그가 세운 나라는 프랑크왕국으로 (지금의 프랑스영역)칭해진다. 그리고 신성로마제국이라는 명칭은 962년 오토대제 등극이후 지금의 독일영역을 가리킨다. 물론, 일부 역사학자들은 샤를마뉴 때부터를 신성로마제국의 시작이라고 보기도 한다. 하지만 검색으로 흔하게 얻을 수 있는 결과는 대부분 샤를마뉴대제-프랑크왕국, 신성로마제국-오토대제 다. 역사적 이해에 혼란을 가져올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역사적 지식으로 풀어내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았을까 싶다.


금융의 역사에 대해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이길 바랬지만 초반에 역사를 두루 살펴보던 방향은 점점 더 미국은행의 역사로 집중되고 있었다. 더구나 책의 마지막 장을 전범재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고는 하나 히틀러의 은행가로서 나치에 부역했던 샤흐트의 천재적 능력에 감복하며 '샤흐트는 중앙은행 총재로서, 그리고 경제관료서 그 모범을 보였다. (중략) 이 어려운 시기에 그런 능수능란한 사람, 어디 없을까? (p. 411)' 로 마무리하는 것을 보며 이 책이 갖고 있는 프레임에 대해 걱정스런 마음이 들기도 했다.

세계경제가 어려워지고 있는 이때 금융에 대한 관심은 그 어떤 때보다 높아졌지 않을까 싶다. 많은 이들이 책보다는 영상으로 관련 정보들을 얻고 있는 시기에 한 경제유투브에서 추천된 이 책이 다시 회자되고 증보판이 나올 수 있었다는 것은 책의 활성화 측면에서는 선순환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쉽고 편하게 읽히는 책속에 깃든 편향적 프레임까지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독자로서 조심해야 할 것 같다. 그렇게 가치중립적으로 객관적으로 읽어나간다면 그동안 잘 몰랐던 경제적 상식들을 역사적으로 배울 수 있는 책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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