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장 내 삶에 새기는 부처 - 《법구경》 따라 쓰기 명저필사 3
법구 엮음 / 일상이상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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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사랑하는 부처의 <법구경>,

내 손글씨로 완성하는 나만의 인생책!

긴 글을 읽지 않는 시대라서일까, 다양한 종류의 명언록이 유행하는 것 같다.

명언록은 왜 읽을까? 짧고 강한 깨달음을 쉽게 얻기 위해서?

아무 좋은 명언이라도 너무 쉽게 얻는다면 너무 쉽게 잊지 않을까... 그렇다면 작은 노력을 더해 보자. 이를테면 필사 같은 것.

이 책은 부처의 말씀들을 엮은 법구의 <법구경>에서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문장들만 선별해 소개했습니다. 또 책의 전체 내용이 기승전결로 이어지도록 구성했습니다. 이 책에 실린 문장들의 필사를 마치면 <법구경>의 주옥 같은 문장들과 핵심 내용을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을 겁니다. (p. 6)

부처의 말씀인건 알겠는데 솔직히 <법구경>이라는 책에 대해선 잘 몰랐다. 다행히도 명언에 앞서 <법구경>이라는 책과 이 책의 저자에 대한 해설이 있었다. 그에 앞서 부처의 삶과 사상에 대해서까지도.

<법구경>은 서기 원년 전후에 인도인 법구가 부처가 생전에 남긴 말씀을 엮어 만든 책입니다. 이 책은 부처가 설법으로 남긴 말씀을 423개의 시로 전하고 있는데, 오늘날에도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는 불경이기도 합니다. 이 책은 불교의 수행자가 지녀야 할 덕목에 대한 경구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주요 내용은 집착과 욕심, 미움 등을 멀리하고, 선한 행위로 덕을 쌓아 깨달음을 얻으라는 것입니다. (p. 14)

부처에 불경에 경구에 깨달음에... 이 책이 너무 어마어마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은 명언 41문장의 아주 얇은 책이다. 41페이지도 아니고 41문장 말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머리카락이 희어졌다고 어르신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하염없이 나이만 먹었다면 어르신이 아니라 늙은이에 지나지 않는다. 진리를 추구하고 생명을 사랑하며 자기 자신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 더러움으로부터 벗어난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어르신이 아니겠는가. (p. 60)

짧은 문장 옆엔 필사의 공간이 있다. 명언이라고 불리는 문장들도 현학적이거나 어렵지 않은 평범한 문장들이다. 하지만 명언이 왜 명언이겠는가. 평범한 말임에도 잊고 살던 우리에게 깨달음을 주며 고개를 끄덕이게 하니 명언이라 하지 않겠는가. 깨달음은 어찌보면 그리 멀리 있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멀고 험한 인생의 여행길에서 현명하고 사려 깊은 사람을 만나거든 그와 친구가 되어 함께 가라.

그러면 모든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벗을 만나지 못한다면 외롭고 힘들겠지만 차라리 혼자 가라.

어리석은 자들과 무리 지어 가는 것보다는 차라리 혼자 가는 것이 낫다. (p. 78)

별것 아닌 것 같은 말이 갑자기 와닿을 때가 있다. 누군가에겐 평범한 문장이 내게는 명언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41개의 짧은 문장들이지만 문장들을 하루 하나 혹은 어쩌다 한번 필사하다 보면 그런 순간이 올지도 모르겠다. 문득 깨달아지는 순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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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두면 쓸모 있는 경제학 상식 사전 알아두면 쓸모 있는 시리즈
테이번 페팅거 지음, 임경은 옮김 / CRETA(크레타)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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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무쌍한 세상을 낱낱이 드러내는 경제학, 한 권으로 꿰뚫기!

우리가 사는 사회는 자본주의 사회이고 모든 것은 '돈'으로 이해가능해진다. 하지만 의외로 '돈'과 '돈의 흐름' 혹은 '법칙' 등에 대해 묶어말하자면 이른바 '경제'에 대해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알자면 어렵고 모르자니 답답하고 찜찜한 이 '경제'라는 것에 대해 상식으로라도 좀 알고 싶고 알아야 하는 사회에 살고 있으니 책으로 조금이나마 배워보자면 어떤 책이 좋을까...

이 책은 우리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경제 관련 주요 개념들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자 한다. 경제 공부가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어디서부터 시작할지 막막하다는 점이다. 때로는 온갖 변수와 복잡한 개념이 등장해 어렵게 느껴진다. 이 책은 각 장의 흥미로운 주제마다 필수 개념을 먼저 설명하고 이를 바탕으로 해당 주제를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차곡차곡 살을 붙이는 방식으로 구성했다. (p. 9)

이 책의 목적은 나의 필요에 부합했다. 그저 기초적이고 얕은 상식 수준의 경제학을 좀 배워볼수 있다면 좋겠다 싶었는데 읽다보니 이 책은 의외로 깊이도 있었다. 50가지 주제에 대해 따로 읽으면 개념 중심적으로 관심 있는 개념을 이해할 수 있을 테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차례로 읽기를 권하고 싶다. 은근히 자연스러운 흐름이 있는 책이었기 때문이다.

경제학 상식 에서 가장 중요하면서 가장 기초적인 개념이 무엇일까? 화폐다. 따라서 이 책의 첫 주제는 당연히 '화폐'다. 이어서 경제성장, 수요와 공급 등 익숙한 단어들임에도 대충 알았던 개념들에 대해 경제학적으로 짧고 굷게 설명되어진다.

자유 시장과 자본주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두 용어는 가리키는 대상이 다르지만, 흔히 같은 의미로 혼용된다. 자본주의는 토지, 자본, 기업의 사유화를 중시하는 경제 체제다. 따라서 자유 시장 자본주의는 사유 재산제와 기업의 사적 소유권을 보호할 때는 정부 개입이 필요하지만, 개별 시장 규제에는 정부가 '불간섭'해야 한다는 접근 방식을 취한다. 자유 시장 자본주의는 경제 효율성과 고성장으로 이어지지만, 정부 규제와 세금이 없이는 결국 자본가가 독점력을 누리고 지대地代를 추구하는 매우 불평등한 사회가 되기 쉽다. (p. 61)


저자의 말마따나 자유시장과 자본주의는 혼용된다. 자유시장이지만 모든 것이 자유이기만 하다면 질서가 없을 터 어느 정도의 규제또한 필수다. 그 역할을 국가 혹은 정부가 하기 마련인데, 국가 혹은 정부란 권력이고 권력은 자본과 또한 밀접한 관계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유시장의 혜택을 과연 누가 더 누릴까? '최근 수십 년 동안 국가들이 낮은 법인세를 내세워 투자를 유치하려고 노력하며 꽤 치열한 감세 경쟁이 벌어졌다. 기업들은 법인세 감세로 이득을 봤지만, 전체 투자액은 그리 늘어나지 않았다. (p. 91)'

경기침체니 불황이니 하는 표현들이 익숙해진 사회에 살면서도 어느새 무감해졌나보다. 이제 그냥 그러려니 한달까. 때론 금리니 인플레이션이니 하는 말들이 너무 멀어보인달까. 하지만 모르고 살면 손해인데...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리를 인상해도 되지만, 금리가 오르면 경제 성장률이 떨어진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5%에 달하는 물가 상승률과 경기 침체를 동시에 겪었다. 각국 중앙 은행들은 금리를 0.5%로 인하했다. 그 결과 저축자들의 형편이 나빠졌고, 임금 상승률을 능가하는 물가 상승률 때문에 많은 노동자의 실질임금이 하락했다. 2022년에도 여러 중앙은행이 비슷한 딜레마에 직면했다. 인플레이션을 완화하려고 금리를 올리면 경기 침체를 초래할 위험이 있다. 이는 균형 잡기 어려운 줄타기와 같다. (p. 107)

최근 몇 년 동안 각국 중앙은행은 대체로 물가 상승률 2%를 목표로 잡았다. 그들은 제로 인플레이션이나 여러 위험을 몰고 올 디플레이션보다는 차라리 적정 수준의 인플레이션이 낫다고 판단한다. (p. 117)

실업률과 물가가 동반 상승하는 상황에서 중응은행의 통화정책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p. 121)

미국의 전 대통력 해리 트루먼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이웃이 직장을 잃으면 경기 침체고, 내가 직장을 잃으면 불활이다' (p. 127) 은근 참 명언이 아닐 수 없다. 나같은 소시민은 그저 내 저축 통장의 금리와 내 주택대출의 이자에만 신경쓰며 살기에도 급급하다. 하지만 때로는 경제뉴스를 보며 거시적인 생각도 해보려 노력해야할 것 같다. 지금 경기가 어떠한가 금리가 어떠한가 경제정책이 어떠한가를 이해려고 노력할 때, 그렇게 '침체'된 경기 속에서 아등바등 살면서도 왜 이런가 생각하며 살 때, 갑작스런 '불황'의 순간을 마주하더라도 덜 당황스러울 것이기 때문이다. 혹은 그런 갑작스런 '불황'의 순간을 짐작하고 그런 상황이 되기 전에 상황을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웃이 직장을 잃는 것도 안타깝지만 내가 직장을 잃는것도 안되지 않겠는가...

중국이 미국 자산 매입을 중단하면 어떻게 될까? 달러 공급량이 수요량을 능가해 달러 가치가 하락할 것이다. 그 결과 미국 상품은 상대적으로 저렴해지고 중국 수입품은 비싸진다. 달러 가치는 미국의 중국에 대한 경상수지 적자가 해소될 때까지 하락할 것이다. 바로 이 이유로 중국은 종종 미국 자산을 기꺼이 사들인다. 이로써 중국은 미국에 재정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더 중요하게는 중국 경제 성장의 큰 원천인 수출 경쟁력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p. 170)

현실적으로 정부 정책에만 기대어 경쟁력을 높이기란 어렵다. 생산성 향상은 대개 민간 기업의 혁신에서 비롯된다. (p. 174)

미국과 중국간의 무역전쟁은 오래됐고 점점 치열해지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무역전쟁이 아니었다. 서로간의 국내 경제에 큰 영향력을 갖고 있었다. 그러니 서로 섣불리 뭘 할 수 없는 거다. 세계 경제가 거의 그렇다. 생각보다 세계적으로 각 국의 경제는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국가와 기업간의 관계도 기업과 노동자의 관계도 그렇다. 알자면 복잡하고 모르자니 손해이니 어쩌겠나 조금이라도 알아가며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어렵더라도;;;


일반적으로 국가가 침체기에 들어서 인플레이션이 잠잠해지고 화폐 가치가 지나치게 상승하면, 중앙은행은 금리를 인하하거나 통화량을 늘리는 완화적 통화정책을 추구한다. 그러나 유로존에서는 유럽중앙은행이 국가마다 다른 통화정책을 적용할 수 없다. 따라서 유로화의 결정적 단점은 유로존 국가들의 평균 성장세를 쫓아가지 못하는 국가엔 유럽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이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p. 211)

불평등은 자본주의에서 필요악이고 심지어 바람직한 요소라는 말까지도 하는데, 중요한 문제는 불평등을 수용할 만한 수준이 어디까지냐다. 여기에 쉬운 답은 없다. 하지만 지난 수십 년간 불평등의 정도가 높아지면서 이처럼 까다로운 문제들이 속속 제기되기 시작했다. (p. 220)

인상된 최저임금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고용이나 실업에 커다란 악영향을 끼치지 않고, 경제에 자연스럽게 녹아든다는 걸 알 수 있다. (p. 231)

이민이 국내에 미치는 영향은 수없이 연구 대상이 되어 왔지만, 결론은 대개 엇갈린다. 아무튼 이민으로 비숙련 노동자의 임금이 낮아질 수 있으나 그 영향은 아주 제한적인 경우가 많다. (p. 293)

경제학 핵심 개념 뿐만 아니라 국내 경제 정책이나 세계 경제 흐름에 대해서도 기초적인 상식을 쌓을 수 있는 책이었다. 가짜뉴스들이 판치는 시대에 누군가의 몰상식한 주장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내상식을 채워놓는 수밖에 없다.

경제학은 단순히 돈에 관련된 경제에서 이제 인간의 심리와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행동경제학까지 세분되어 발달되었다. 따라서 경제에 관련된 상식도 돈에 대한 이해를 넘어 인간에 대한 분석까지 그 범위가 확장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그 세분화되고 확장된 그런 세계를 우리가 어찌 알수 있겠는가, 이렇게 상식수준으로라도 알아놓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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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은 어디까지 설명할 수 있는가 - 현대 물리학의 존재론적 질문들에 대한 도발적인 답변
자비네 호젠펠더 지음, 배지은 옮김 / 해나무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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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중우주, 빅뱅, 만물의 이론......

아이디어와 과학을 혼동하지 말라E

Existential Physics 라는 원제를 번역기에 넣으면 '실존 물리학'이라고 나온다. 실존주의 혹은 실존철학의 그 실존에 물리학이 접목되었다라... 이상한가? 그런데 어찌보면 굉장히 자연스러운 접목이다. 역사에서 특히나 서양역사에서 종교와 과학은 그 어떤 학문분야보다도 실은 서로 굉장히 밀접한 연관 속에 발달해왔기 때문이다. 존재의 근원을 어디서 어떻게 찾는가 라는 질문들에서 이 두 분야는 서로 다른 답을 내놓고 있는 것 같지만, 글쎄... 이 책을 읽어보면 좀 다른 입장을 취하게 될 것도 같다.

저자는 독일의 과학자로 2006년부터 블로그에 '물리학계의 잘못된 관행을 비판하는 글을 쓰기 시작'했으며 이후 다양한 매체에 과학을 대중화할만한 기사를 꾸준히 올려온 것같다. 그렇게 '10년 이상 대중을 상대로 여러 활동을 하면서 물리학자들이 문제의 답을 정말 기가 막히게 잘 찾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렇게 찾은 답에 사람들이 왜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를 설명할 때는 정말로 형편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p. 9)' 그러나 과학이 계속해서 대중들과 소통하지 못한다면 다시말해 '지식을 우리끼리만 가지고 있으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p.11) 된다는 것을 저자는 깨달았다. '인간의 경험에 관해 물리학이 알려주는 것들을 물리학자들이 앞장서서 설명하지 않으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이들이 끼어들어 우리가 만들어낸 암호 같은 용어를 유사과학 증진에 써먹을 것이다. (p. 11)' '그러나 이 책의 목적은 단순히 유사과학의 정체를 밝혀내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이 책에서 영적이 개념 중 어떤 것은 현대 물리학과 완벽하게 양립할 수 있으며, 심지어 어떤 아이디어는 현대 물리학의 지지를 받기도 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p. 11,12) 간단히 말해서, 이 책은

현대 물리학이 제기하는 거대한 물음에 관한 책이다. (p. 13)

이 책은 거대한 물음을 서슴없이 떠올리고, 그 답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들을 위한 책이다. (p. 14)

프롤로그에서 이처럼 당당하게 포부를 밝혀놓고는 너무 거창하다 싶었는지 곧이어 슬며시 '경고'도 있지 않는다.

'나는 불가지론자이면서 비종교인다. 조직화된 종교 단체의 일원이 된 적도 없고 그런 단체에 속하고 싶다는 마음을 한번도 품어본 적이 없다. 그러나 종교적 신념에 반대하지 않는다. (...) 그들의 의미 탐구가 과학적 사실을 존중하기만 한다면 말이다. (p. 15)'

사실 내가 이 책에 흥미를 느낀건 거대한 프롤로그보다 솔직한 이 '경고'였다. 서양역사에서 기독교가 워낙 다방면에서 오랜 세월 동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보니 기독교인이 아니라고 말하는 서양인을 보면 나는 좀 신기하다. 서양인들은 과학자도 종교인이 많으니까 말이다. 서양인이지만 나와 비슷한 입장을 취하는 과학자가 설파하는 '실존'에 대한 질문이라... 흥미롭지 않은가?! ㅎㅎㅎ

차례를 보면 이 책이 얼마나 커다란 실존적 질문을 던졌는지 한눈에 확인이 된다.

과거는 정말 어딘가에 존재하는가

물리학은 우주의 시작과 끝을 밝혀낼 수 있는가

물리학적으로 젊음을 되돌릴 수는 없는가

우리는 그저 원자가 든 자루일 뿐인가

정말 다른 세계에 또 다른 내가 존재하는가

물리학은 자유의지를 부정하는가

우주는 우리를 위해 만들어졌는가

우주는 생각하는가

인간은 예측 가능한 존재인가

그래서 이 모든 것의 목적은 무엇인가

총9장으로 구성된 이 9개의 질문과 에필로그의 마지막 질문까지 어떤가? 정말 대단한 질문들이지 않나?

너무 어려워보인다고 지레 겁이난다면 이 책을 읽는 팁 하나를 추천하고 싶다. 각 장의 마지막 페이지에 있는 '간단한 답변' 먼저 읽고 본 챕터를 읽는 것이다. 질문이 어려워 보이니 답부터 알고 설명을 읽으면 왠지 더 아는 것 같은 기분적 착각이 하나의 팁 이랄까. 그리고 무엇보다 이 '간단한 답변'이 정말이지 아주 간단하다. ㅎㅎㅎ


지금 고개를 들어 구름을 보고 있다면, 당신이 실제로 보는 것은 수백만분의 1초 전의 구름이다. 사실 이 정도면 큰 차이는 아니지 않나? 우리는 8분 전의 태양을 보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그 8분 동안 태양이 크게 바뀔 일은 없으므로 빛이 이동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해서 큰일이 날 것은 없다. 지금 북극성을 보고 있다면, 그 북극성은 실은 434년 전의 모습이다. 그럼 아마 당신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래서, 그게 뭐 어쨌다고?

어떤 사건이 발생한 순간과 그 사건을 관찰하는 순간 사이의 시간차를 단순히 인식의 한계 탓으로 돌리고 싶은 마음도 들 것이다. 그러나 그 의미는 뜻밖에 지대한 결과를 낳는다. 다시 말하지만, 문제는 시간의 흐름이 보편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p. 27)

시간의 흐름은 보편적이지 않고 우주의 그 어떤 정보도 사라지지 않고 어떤 식으로든 계속 존재한다. 우리의 증명방식은 우리가 알고 있는 법칙들로만 가능하다. 하지만 우리는 모든 방법을 다 알고 있지 못하다. 당연히. 그러니 과거는 정말 어딘가에 존재하느냐고 평행우주식으로 묻는다면 과학은 이렇게 답할 수밖에 없다. '현재까지 성립된 자연법칙에 따르면 과거와 현재, 미래는 모두 같은 방식으로 존재한다. (p. 51)' 라고. 하지만 이 존재의 방식이 우리가 드라마에서 보던 그 방식은 아니다.

과학의 목적은 세상을 유용하게 서술할 방법을 찾는 것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유용함'이란 새로운 실험의 결과를 예측할 수 있게 해주거나, 이미 존재하는 관측을 정량적으로 설명한다는 뜻이다. 설명은 단순할수록 더 유용하다. 우리는 다양한 방식으로 과학 이론의 설명력을 정량화할수 있다. (...) 우주론은 이런 작업을 자주 수행하는 분야 중 하나다. (p. 57)

그러니 쌓여진 데이터를 사용하여 물리학이 우주의 시작과 끝을 밝혀낼 수 있는가? 어쩌면 가장 과학적 답변이 나올 것 같은 이 두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사실 좀 허무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애당초 과학을 왜 하는가? (p. 77)' 라며 과학 무용론을 말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니 더욱 과학적 연구를 해야 한다고 답하는 과학자들의 입장에 고개를 끄덕여주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빅뱅은 없지만 주기가 있는거죠?" (p. 89) 나도 이게 미친 소리 같다는 거 안다. 그러나 이 얘기는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것과 양립할 수 있다. (p. 90)'

과학은 생각보다 관대하다. ㅎㅎㅎ

우리는 중력이나 시공간에 대하여 엔트로피를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지 사실상 모른다. 그런데 엔트로피는 우주의 진화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p. 109)

인간의 뇌 안에서 기억이 형성되는 과정은 그보다 훨씬 더 어렵지만, 마찬가지로 우리 뇌에 흔적을 남기는 낮은 엔트로피 상태로 거슬러 가볼 수 있다. (...) 요약하자면, 시간의 흐름이나 현재의 순간에 관한 우리의 경험 때문에 굳이 지금 사용하는 이론들을 바꿀 필요는 없다. (p. 118)

물리학적으로 젊음을 되돌릴 수는 없는가 라는 질문은 의외로 타임머신 적으로 설명되지 않았다. 그보다는 엔트로피와 관련한 우주적 설명이었는데... 여하튼 중요한 건 '더 나은 설명을 찾는 것은 분명 가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게 반드시 필요하다거나 심지어 가능할 거라고 생각할 이유는 없다. (p. 131)' 라는 굉장히 쏘쿨한 유연함 같다. 이러한 유연함은 때론 너무 흐리멍텅해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저자는 때로 단호한 입장을 보이기도 한다. 예를 들면, 뒤이은 질문 인간이 그저 원자로 분석되는 어떤 물질적인 것들이 합쳐진 그러니까 일종의 '원자가 든 자루일 뿐인가'라는 질문같은 것에에 대해서 말이다.

나는 인간의 의식이 뇌 안에 있는 수많은 입자의 상호작용으로부터 발생한다는 가능성을 거부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그들은 의식에 관해서라면 어떻게든 무엇이든 달라야 한다는 생각에 집착하는 것 같다. 그리고 과학적인 정신을 가진 이들도 영혼이라는 단어만 쓰지 않을 뿐, 실제로는 영혼을 믿는다. 그들은 신비롭고 설명할 수 없으며, 자신들의 존재를 특별하게 만드는 '추가적인 어떤 것'을 찾고 있다. (p. 139)

지금까지 우리가 수집해온 증거들에 따르면 전체는 부분들의 합일 뿐이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p. 140)

하지만 역시나 마무리는 유연하게.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모든 것과 양립할 수 있다. (p. 156)' 이다. 이어지는 질문들에 대해서도 왠만해선 이 입장이 크게 달라지진 않는다. 그러나 양립할 수 있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옳다는 것은 아니다.

당신은 다중우주의 모든 가지에서 죽지 않을 수 있겠지만, 당신의 생존 확률(또는 공통의 생존 확률)은 표준 해석에서와 마찬가지로 줄어든다. 이것이 아무도 양자 자살을 감행하지 않는 이유다. 양자 자살이 그들이 생존하는 우주의 개수를 줄일 것이기 때문이다. 관측에 한해 보자면 다세계 해석은 기존 해석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무한히 많은 당신의 복제본이 가능한 대안적 삶을 모두 살아가며 존재한다고 믿고 싶다면, 그렇게 믿어도 된다. 그 믿음은 과학과 전혀 충돌하지 않는다. (p. 187)

정말 다른 세계에 또 다른 내가 존재하는가라고 묻는다면 양자역학적으로 저자는 위와 같이 답할 수 있겠지만, '우리의 복제본이 다중우주 안에 존재한다는 아이디어는 과학적이지 않다. (p. 199)' 고 말한다. '믿고 싶다면 얼마든지 그래도 좋다. 그러나 이 가설이 옳다는 증거는 없다. (p. 199)' 과학은 많은 것을 밝혀냈지만 아마도 밝혀내지 못한 것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그러니 대중에게 과학이라고 널리 퍼진 과학적 아이디어에 대해 과학적으로 옳다그르다는 과학자들이 좀더 노력해서 설명해주는게 바람직하지 않겠나.

개인적으로 나는 그 말이 자유의지는 존재하지 않으며 상황종료라는 뜻이라고 말하겠다. 나보다 현명한 많은 이가 지적했듯이 자유의지는 그 자체로 일관성이 없는 아이디어이므로 용기 내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당신의 자유의지가 자유로우려면, 다른 무엇도 그 의지의 원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만일 아무것도 원인이 아니라면(프리드리히 니체의 말대로 '원인 불명의 원인'이라면) 당신도 그 의지의 원인이 될 수 없다. 당신이 '당신'이라는 말을 어떤 의미로 쓰든지 간에 말이다. 니체가 요약한 대로, 그것은 '지금까지 나온 것들 중에 최고의 자기 모순이다.'나는 니체의 말에 동의한다. (p. 205)

물리학은 자유의지를 부정하는가? 라는 질문에 앞서 과학과 철학이 질문을 공유하려면 '정의'가 중요하다. 자유는 무엇인가? 자유의지는 무엇인가? 하지만 이런 정의적 질문에 과학이 답할 필요는 없다. 그러니 애초에 답보다 질문이 더 중요할 수 있다. 우주는 우리를 위해 만들어졌는가 라는 질문은 질문이 말이 안되니 답도 딱히 명확할 수 없다. 그리고 사실 '모든 의문에 답을 내놓은 과학 이론이 나올 수는 없을 것이다. (p. 264)' 과학에서 질문은 중요하지만 먼저 질문을 골라내는 기준이 필요할 것 같다.

우리 뇌 안의 신경세포들 간의 연결망이 우주 안 물질의 분포 거텍톰과 닮아 보인다 해서 우주는 생각하는가 라는 질문을 정말로 저자가 받았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이 질문도 질문 자체가 사실 말이 안된다고 생각되었다. 다행히 저자는 장황하지 않게 답을 주고 있다. '간단히 말해서, 우주는 생각하지 못한다. 너무 크기 때문이다. (p. 269)'

의식이 물리적인 '것'이 되기를 원한다면 그것의 물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설명해야 한다. 양손에 케이크를 들고 있기를 원하면서 동시에 먹고 싶어 하면 안 된다. (p. 291)

무엇보다 중요한건 역시 '정의'문제다. '답을 줄 수 있는 문제는 어떤 것인지, 그리고 무엇을 답으로 간주해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데에는 과학철학자들의 조언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의식 연구는 철학의 영역을 떠났다. 이제 의식은 과학 문제다. (p. 296)' 난 저자가 이토록 철학적 질문들만 담아 놓은 이 책을 쓸수 있을 정도이면서 왜 여전히 과학철학자가 아니라 물리학 연구자인지 잘 모르겠다. 뭐... 철학적 질문에 대한 과학자의 답변과 과학철학의 영역은 다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어느새 마지막 질문에 다다랐다. 인간은 예측 가능한 존재인가? 예측이라면 물리학의 영역일테고 존재라면 이 책을 관통하는 실존의 영역이다. 더구나 AI의 시대에 인간행동의 예측은 더더욱 중요해졌다. 하지만 우리는 앞에서의 질문들에서처럼 질문부터 하느라 간과한 것이 있다.

인공지능 장치에 어떤 윤리를 코딩해서 입력할지 고민하는 것은 분명히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지금 AI에 관한 가장 시급한 문제는 AI의 윤리가 아니라 '우리의'윤리다. (p. 328)

우리는 인간의 뇌를 시뮬레이션하는 문제 대신에, 인공 뇌에게 질문할 권한이 누구에게 있는지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예측 가능성의 한계를 이해하는 것은 단순한 수학적 흥미를 넘어 현실 세상에서의 응용으로도 중요하다. (p. 335)

'그래서 이 모든 것의 목적은 무엇인가' (p. 337)

과학에는 다른 측면이 있다. 과학은 이전에는 이해는커녕 상상조차 못했던 가능성을 향해 우리의 눈을 뜨게 해준다. 경이로움을 앗아가기는커녕, 새로운 경이로운 것을 더 많이 제공한다. 과학은 우리의 마음을 확장시킨다. (p. 340)

따라서 저자는 과학자들이 일반 대중들과 더 자주 교류하고 더 많이 공유하여 '과학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과학의 이해가 어떤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지 더 많이 얘기해야 한다. 연구자들이 청중의 질문에 대답하도록 하는 대신, 어려운 시기에 과학적 통찰의 도움을 받았던 이들에게 듣고 배워야 한다. (p. 342)' 고 말한다. 어쩌면 이 책은 일반 대중보다도 과학자들이 더 읽어야 하는 책일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그러니까, 맞다. 우리는 놀라우리만치 놀랍지 않은 은하의 나선 팔 바깥쪽에 있는 창백한 푸른 점 위를 기어다니는 원자가 든 자루다. 그러나 우리는 그 이상의 존재이기도 하다. (p. 346)

인간도 경이롭고 우주도 경이롭다. 그 둘을 연결하는 것이 물리학인가보다. 경이로운 질문에 대해 때로는 종교가 아니라 과학에 물어봐야 할 필요도 있겠구나를 느끼게 해준 책이었다.

ps. 과학 이론적 설명이 많은 만큼 책 뒤편에 핵심 용어 설명이 있는데 다른 말들 보다도 나는 '창발성'이라는 단어가 참으로 신기했다. 검색해보면 사전적 정의도 있겠으나 저자의 설명도 덧붙여 남겨놓아 본다.

[창발성 emergent 사물, 성질 또는 법칙이 그 구성 요소 그리고 구성 요소의 행동 수준에서 정의되거나 발견되지 않을 때 창발적이라고 한다. 만일 창발적 사물이나 성질, 법칙이 구성 요소의 행동과 성질로부터 유도될 수 있으면 약한 창발성이라고 한다. 전혀 유도되지 못한다면 강한 창발성이다. 자연에서 강한 창발성으로 알려진 예는 없다.] (p. 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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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의 고독한 행복 아포리즘 시리즈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지음, 우르줄라 미헬스 벤츠 엮음, 홍성광 옮김 / 열림원 / 2024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쇼펜하우어에 대한 염세주의라던가 비관주의 라던가 하는 오해를 없애기위해서라도 이런 책이 널리 읽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짧은 문장 몇개 만으로도 그의 철학이 얼마나 따듯한지 느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재를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소중함도 깨달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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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의 고독한 행복 아포리즘 시리즈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지음, 우르줄라 미헬스 벤츠 엮음, 홍성광 옮김 / 열림원 / 2024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불행해지지 않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매우 행복해지기를 요구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의 행복은 우리를 이루는 것, 즉 인격에 좌우된다.
얼마전에 EBS오늘읽는클래식 시리즈로 나온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 삶이 불쾌한가> 라는 교양입문서를 읽고나서 쇼펜하우어에게 관심이 생겼다. 그렇다고 그가 쓴 정통철학서를 찾아 읽기는 부담스럽고 그렇다고 그를 염세주의자로 가볍게 오해하는 대중서들을 읽기도 안내키고 그러다가 쇼펜하우어의 본고장 독일에서 직접 대중을 위해 기획하고 엮은 책이 번역되어 나온 것을 알게 됐다. 더구나 번역자가 쇼펜하우어의 철학서 원전을 포함한 다수의 독일 철학서를 번역했다니 이보다 더 믿을만하겠나 싶어졌다. 냉큼 읽기 시작했다.

엮은이 우르줄라 미헬스 벤츠는 브레히트, 아도르노, 벤야민 등 세계적인 지성들의 책을 소개해온 독일의 유명 출판사 ‘주어캄프’ 편집자 출신으로 쇼펜하우어의 핵심을 담은 266개의 문장을 엄선했다. 번역자는 쇼펜하우어를 ‘연민과 온정의 철학자’로 명명하며 독자들이 익혀야 할 쇼펜하우어의 숨겨진 정수를 전달한다. 이 책은 총 7부 구성으로 1, 2, 3부는 한 사람이 자신만을 위해 추구해야 하는 행복과 가치의 방향성을 제시하며 4, 5, 6부는 자연물을 포함한 타자와의 관계에서 지혜롭게 대처하기 위해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 지침을 담고 있다. 마지막 장인 7부는 인간의 필멸성과 끝내 우리가 맞이할 죽음을 바라보는 쇼펜하우어만의 아름답고 차분한 통찰로 끝맺는다.

전문가가 아닌 이상 철학서를 읽기도 어려운데 그 핵심을 담은 문장만 골라 놓은 책을 읽는 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하여 배경지식을 좀 갖추고 읽는 것이 좋을터, 그럴때 나는 책 뒤편의 작가연보와 해설을 꼼꼼이 읽고난 후 본문읽기를 시작하는 편이다. 이 책도 그 순서로 읽었더니 한결 나았다. 특히나 '연보'가 상당히 긴 편이라 쇼펜하우어의 일생을 꽤많이 파악할 수 있어 좋았다.

읽은 순서에 따라 해설[연민과 온정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라는 글에 대해 먼저 정리하고 난후 본문을 정리하려 한다.
아르투어 쇼펜하우어(1788~1860)는 근대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전개된 이성주의 철학에 정면으로 도전한 사상가이다. 무엇보다도 그는 헤겔의 관념론에 정면으로 반대하는 의지의 형이상학을 주창한 인물로 중요하다. 그의 글은 나중에 생철학, 실존철학과 수많은 작가들, 그리고 프로이트와 융의 심리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 책은 19세기의 가장 독창적이고 도발적인 사상가들 중 한 명인 쇼펜하우어의 전체 저작인 [충분근거율의 네 겹의 뿌리에 대하여],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자연에서의 의지에 대하여], [윤리학의 두 가지 근본 문제], [소품과 부록](국내 번역에서 [쇼펜하우어의 행복론과 인생론]), 그리고 편지에서 행복, 진리, 삶의 의지, 마음의 선함, 현명함, 구원과 관련되는 주제를 다룬 핵심 문장을 정선해서 실은 것이다. (p. 197~198)
쇼펜하우어는 좀 천재적인 면이 있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다양한 언어를 빠르게 익혔고 30세 이전에 이미 자신의 철학의 정수를 담은 대표작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출간했으며 잠시 대학강단에 섰지만 이내 철학은 그렇게 배울 수 있는게 아니라며 은둔의 철학자의 길에 들어섰다. 그는 평생 쉼없이 공부했고 연구했고 사유했고 그 결과물을 글로 써서 세상에 알리려고 노력했다. 대개의 비운의 천재들이 그러했듯이 쇼펜하우어의 역작들도 당시엔 인정받지 못하다가 수십년이 지난 후에야 새롭게 발견되었다.
쇼펜하우어는 칸트의 이성 비판이 이룬 결과가 피히테, 셀링, 헤겔 같은 철학 교수들에 의해 왜곡되고 있음을 비판한다. 그러면서 쇼펜하우어는 칸트가 범한 오류를 지적하며 그의 오류를 보완하는 자신의 이론을 제시한다. 이런 점에서 그는 이 논문을 '일시적이고 헛된 이념을 좇아 사라져가는 자기 세대의 사람들이 아니라 후손들과 인류를 위해'썼다며 대담한 선언을 했다. (p. 199)
대개의 천재들이 그러했듯 쇼펜하우어도 사회성은 좀 많이 부족했던 것 같다;;;
이 저서가 근대 철학의 진수를 보여주는 뛰어난 작품성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외면받은 것은 번번이 오해받은 '의지'개념 탓이기도 하다. 쇼펜하우어 철학에서 의지는 이성의 힘이 아니라 삶에의 맹목적 본능, 충동, 욕망 등을 가리킨다. 그는 인간만이 이 진리를 반성적, 추상적으로 의식할 수 있고, 인간이 실제로 이것을 의식할 때 철학적인 사려 깊음이 생긴다고 말한다. 그에게 현상은 표상을 의미할 뿐 그 이상의 무엇도 아니다. 어떤 종류든 모든 표상, 즉 모든 객관은 현상이다. 쇼펜하우어는 표상이 아니고 표상과는 전적으로 다르다는 의지를 사물 자체로 본다. 모든 표상, 모든 객관은 의지가 현상으로 나타나 가시화된 것, 즉 의지의 객관성이다. 의지는 모든 개체 및 전체의 가장 심오한 부분이자 핵심이다. 의지는 맹목적으로 작용하는 모든 자연력 속에 현상하고 숙고를 거친 인간의 행동 속에서도 현상한다. (p. 200)
EBS오늘읽는클래식 시리즈로 나온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 삶이 불쾌한가>를 쓴 저자는 이렇게 말했다. 쇼펜하우어의 이 책은 제목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반이상 이해한 거라고. 그가 말하는 '의지' '표상' '현상'등에 대한 개념을 이해한다는 것은 철학을 공부하는 사람도 아닌 일반 대중에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나마 역자가 전공분야라 위 정도의 문단으로 잘 요약해줄 수 있었던게 아닐까 싶다.


주저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의 부록에 불과한 [소품과 부록]이 뜻하지 않게 세속적 성공을 거두면서 쇼펜하우어의 명성이 점차 높아져 갔다. 사람들은 이제 뒤늦게 쇼펜하우어의 주저에 관심을 가졌다. 마치 눈사태가 난 것처럼 사람들은 쇼펜하우어에 새삼 열광했다. 그 전에 36년 동안 극단적인 냉대를 당하던 것과는 정반대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그리하여 이 에세이집은 출판사의 예상과는 달리 시대를 뛰어넘어 오늘날까지 널리 대중의 사랑을 받는 작품이 되었다. 이는 오랜 세월 동안 무명의 시간을 보낸 쇼펜하우어가 좌절과 시련을 겪고 은둔생활을 하면서 갖게 된 삶의 지혜가 문장 속에 고스란히 녹아 들어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p. 205)
쇼펜하우어의 철학적 개념인 '의지'말고 우리식대로 편하게 말하는 그 의지로 표현하자면 쇼펜하우어는 의지의 철학자라고 할 수 있다. 평생 누가 알아주건말건 자신의 철학을 우직하게 발전시켜 나갔고 끝내 빛을 보게 되었으니.
그의 견해에 의하면 도덕은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보는 동고同苦에서 성립한다. 쇼펜하우어는 이것이 바로 도덕과 윤리의 토대라고 주장한다. (p. 205)
쇼펜하우어 철학에서 이 '동고'라는 개념은 핵심적이다. 이 개념만 알아도 쇼펜하우어의 철학에 대해 염세주의니 비관주의니 냉소주의니 하는 말은 못할것이다. 그의 철학에는 온정과 연민이 흘러넘친다. 그는 '동고'를 중요시하므로.
일반적으로 다양한 신앙을 가진 종교인들이 대개 이 세계를 비참한 눈물의 골짜기로 보지만, 그들은 시공간의 세계 바깥에 존재한다고 믿는 어떤 것에 대해서는 도덕적으로 긍정적으로 보고 자비로운 것이라 말한다. 하지만 쇼펜하우어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초월계를 맹목적이고 목적도 없으며 도덕과 무관한 힘이나 충동으로 보았다. 그것이 현상계에 나타날 때는 맹목적인 충동으로 나타나며, 현존하는 실체나 각 대상물은 그 충동이 구현된 모습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주장하면서 쇼펜하우어는 인간을 통합하는 주된 열쇠가 이성이며, 윤리의 기초는 합리성이라는 칸트의 견해를 반박한다. (p. 206)
나중에 본문에서도 다시 언급되겠지만 쇼펜하우어는 보이지도 않고 알수도 없는 세계보다는 지금 살고 있는 현실에서의 삶을 중요시했다. '지금 여기'를 중요시한다는 점에서 동양철학을 깊이 연구한 철학자의 내공이 보인다고도 할 수 있겠다.
쇼펜하우어는 인생이란 어차피 불행하고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보면서도, 또한 바로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현재를 즐기고 인생의 향유를 삶의 목적으로 삼는 것이 위대한 지혜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오직 현실만이 실재하며, 다른 모든 것은 단지 사고의 유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p. 211) 쇼펜하우어는 중요한 것은 현재라고 말하는 데 그치지 않고 미래에 대한 근심은 종종 무익하고 과거에 대한 미련은 항상 무익하다고 설명한다. (p. 212)
그렇다고 과거를 모르는 것처럼 뻔뻔하게 미래가 없는 것처럼 무작정 살라는 말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현재이긴 하지만 과거도 현재였고 미래도 현재가 되므로 지금 현재를 중요하게 여기라는 말은 단순한 쾌락이나 비관하고는 다른 의미다. 본격적인 철학서도 아니고 이 짧은 해설로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겠는가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명문장들을 읽기전에 해설을 꼼꼼히 이해해보려 노력한 후 읽는다면 훨씬 더 가치 있게 본문을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본문은 그야말로 쇼펜하우어의 명문장들의 향연인데 차례에서 볼 수 있는 소제목들이 그 핵심을 또 추려낸 문장들이라고 볼 수 있다.
1.우리의 요구와 통찰력 사이의 올바른 관계에 대해 생각하자면 '우리의 행복은 우리를 이루는 것에 달려 있다'라고
2. 우리 자신은 우리 행위의 수행자이다 라면 그러니 '자신만의 믿음으로 스스로를 위로해야 한다'라고
3. 원형, 의식하기, 보다 높은 예술 을 알고자 한다면 '그대 스스로를 위해 생각해야 한다'라고
4. 자연의 목소리 속에 있는 세계의 중심 을 이해한다면 '회복은 자연의 산물이다'라고
5. 자신과 타인과의 교제에 관하여 생각해본다면 '객관적인 목적만을 추구하는 사람만이 위대하다'라고
6. 내적 충동과 실제로 성취된 시간 속엔 '우리에게는 두뇌보다 더 현명한 무언가가 있다'라고
7. 우리 참 존재의 불멸성에 대해 생각하면 '죽음이란 삶을 담는 커다란 저수지다'라고 
주제적 질문과 그에 대한 답이 함께 제시되어 있는 것이 차례속 소제목들이었다.

그렇다면 이제 명문장들 속에서도 내 마음에 남은 문장들을 몇가지 추려보는 것으로 마무리해야 할 것 같다.
수입을 적게 또는 전혀 필요로 하지 않는 나라가 가장 행복하듯이, 사람도 내적인 부가 충분하고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 외부로부터 필요한 것이 적거나 전혀 없는 자가 행복하다. 외부로부터의 공급은 비용이 많이 들고, 종속하게 만들고, 위험을 초래하고, 성가신 일이 생기게 하며, 결국에는 자신의 토양에서 나오는 생산물을 나쁜 방식으로 대체하는 것에 불과하다. 다른 사람, 일반적으로 외부로부터 어떤 점에서든 많은 기대를 해서는 안 된다. (p. 55)
쇼펜하우어는 '행복이란 자기 자신에게 만족하는 사람의 것이다'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은 자꾸 되뇔 필요가 있다.' (p. 25) 라고 말했다. 참으로 맞는 말이다.
타인의 눈에 어떻게 비치느냐에 따라 어떤 사람의 가치와 무가치가 결정된다면 비참한 삶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영웅이나 천재의 삶도 그의 가치가 명성에, 즉 타인의 갈채에 의존한다면 역시 비참한 삶이다. 오히려 모든 존재는 그 자신 때문에 살아가고 존재한다. 그 때문에 또한 무엇보다도 그 자체로 독자적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p. 66)
쇼펜하우어의 문장들을 읽다보면 불교적 해탈의 논리가 자주 엿보인다. 스스로도 동양철학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아무리 장서가 많더라도 정리되지 않은 도서관은 책의 수는 얼마 되지 않아도 정리가 잘된 장서만큼 효용이 없다. 지식도 이와 마찬가지다. 아무리 풍부한 지식이라도 자신의 사고로 철저히 다듬은 지식이 아니라면 양은 훨씬 적어도 다양하게 숙고한 지식만큼 가치가 없다. 알고 있는 지식을 모든 방면으로 조합하고, 모든 진리를 다른 진리와 비교해야 비로소 자신의 지식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하고, 그 지식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알고 있는 것만 면밀히 숙고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무언가를 배워야 한다. 그런데 이중에서 면밀히 숙고한 것만 정말로 안다고 할 수 있다. (p. 70)
개인적으로 가장 크게 와닿은 문장이었다. 나는 책을 읽고 다른 책들과 비교하며 내 생각을 정리해서 서평쓰는 일에 그야말로 진심이다. 내가 이걸로 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어느땐 하루종일 손목이 저리도록 정리하고 있는 나를 보며 스스로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하나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그래야 책을 읽은 것에 만족이 느껴진다. 내 행복의 한가지 방법이다. 그 방법을 대단한 철학자가 맞다고 해준 것 같아서 꽤많이 위안이 됐다.
개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당신은 내 주인이 아니라 나의 짧은 생애를 지옥으로 만든 악마다' 개를 쇠사슬에 묶어두는 자는 누구든 이런 봉변을 당해도 싸다! (p. 102)
쇼펜하우어는 개를 쇠사슬에 묶어놓고 기르던 귀족이 개에게 친한척 손을 내밀었다가 물렸다는 에피소드에 위와같은 말을 덧붙였다. 쇼펜하우어는 평생 독신으로 반려견과 함께 살았다. 그는 동물에게도 연민과 온정을 넘치게 생각하는 철학자였다. 당시 많은 철학자들이 인간 외의 모든 생명체에 대해 무시했던 것과는 달리 말이다.
인간은 자연에서 하나의 오점으로서 존재하고 있다! (p. 107)
자연에 속해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생명체들과 달리 인간만이 행하는 행동들이 있다. 쇼펜하우어는 그때 이미 '인류세'를 예감했던 것일지도.
우리는 타인을 자기 행동거지의 모범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나와 타인의 처지, 상태, 사정이 같지 않고 따라서 두 사람이 같은 행동을 해도 둘은 결코 같을 수 없다. 충분히 숙고하고 날카롭게 통찰한 후에 자신의 성격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 독창성은 실천의 문제에서 필수적이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행하는 일이 있는 그대로의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다. (p. 125)
바람직한 행동을 모범삼지 말라는 소리가 아니다. 거의 생각없이 따라는 하는 모방에 대해서 하는 말이다. 인간은 모두 독자적으로 스스로 숙고하여 행동해야 함을 강조하는 말이다.
우리는 자신이 갖고 있지 않은 것을 보면 곧잘 '이게 내 것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어 아쉬움을 느낀다. 그 대신에 우리는 가끔 '이게 내 것이 아니라면 어떨까?'라고 물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내 말은 우리가 가진 것을 잃어버리면 어떤 기분이 들까. 하는 측면에서 바라보도록 노력하라는 것이다. 이때 잃어버리는 것은 재산, 건강, 친구, 애인, 배우자, 아이, 말, 개 등 무엇이든 상관없다. 대체로 잃어버리고 나서야 그러한 것의 가치를 알기 때문이다. (p. 128)
질문의 전환이라니, 좋은 방법인것 같다.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 이런 질문의 전환을 스스로 하며 산다면 삶이 조금은 더 편안해 질 것 같다.
접촉하는 모든 사람의 가치와 존엄성에 객관적인 평가를 하지 말라. 그가 가진 의지의 열악함이나 지성의 협소함도, 개념의 불합리도 고려하지 말라. 전자는 그에 대한 증오심을, 후자는 그에 대한 경멸감을 일깨울 수 있기 때문이다. 단지 그의 고뇌와 고난, 불안과 고통만 눈여겨보아라. 그러면 항상 그에게 마음이 끌릴 것이다. (p. 146)
쇼펜하우어는 '동고'가 넘치는 온정과 연민의 철학자가 맞다!
삶의 모든 과정은 단 한순간만 '존재한다'일 뿐이고, 그다음에는 영원히 '존재했다'가 된다. 우리는 밤마다 하루씩 다 빈곤해진다. 우리의 가장 깊은 곳에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생명의 샘이 있다는 믿음이 없다면, 우리는 이토록 짧게 끝나는 생에 분노할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현재를 즐기고 그것을 삶의 목적으로 삼는 것이 가장 위대한 지혜라는 이론을 펼 수 있다. 다시 말해 오직 현실만이 실재하며, 다른 모든 것은 단지 사고의 휴의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와 마찬가지로 그것을 가장 위대한 어리석음이라 칭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다음 순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 꿈처럼 완전히 사라져 버리는 것은 결코 진지하게 추구할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p. 188)
수천 년간의 죽음과 부패에도 아직 아무것도 소실되지 않았다. 자연이 나타내는 내적 존재 그 어떤 것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우리는 매 순간 기분좋게 외칠 수 있다. '시간, 죽음, 부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함께 있다' (p. 194)
이 책을 읽으면서 깨달았다. 나는 맥락없이 좋은 문장들만 나열한 책이 오히려 어려운 사람이구나;;;
소설적 서사가 됐건 논리적 맥락이 되었건 읽으며 앞뒤 전후로 이해해가는 과정 속에서 깨달아지는 책이 편한 나로서는 아무리 명문장이라 하더라도 툭툭 끊기는 이 책을 읽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시집을 못 읽나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쇼펜하우어에 대한 염세주의라던가 비관주의 라던가 하는 오해를 없애기위해서라도 이런 책이 널리 읽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짧은 문장 몇개 만으로도 그의 철학이 얼마나 따듯한지 느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재를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소중함도 깨달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흥행?!을 기원하며 이만.


-리뷰어스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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