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명우의 한 줄 사회학 EBS CLASS ⓔ
노명우 지음 / EBS BOOKS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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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물정의 사회학자와 함께

우리가 사는 세상에 관한 지식을 완성해가는 즐거운 기획

사회학이란게 뭘까? 얼핏 인간에게 너무나 당연한 학문같으면서도 막상 생각해보면 잘 모르겠는 것이 사회학인것 같다. 호모사피엔스가 동물로 남지 않고 인간으로 특화된 것은 특유의 사회성 때문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는 문장만큼이나 굉장히 당위적 문장이다. 그러니 한번쯤 제대로 사회학적 사고를 해보고 싶었다. 사회학자가 한줄로 사회학을 정리해줄 것 같은 이 책을 펼치게 된 이유다.

속담은 사회학자보다 세상 경험을 더 많이 했고, 그래서 사회를 구석구석 더 잘 알고 있고, 직접 경험했기 때문에 생생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평범한 사람이 만들어냈고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 전수된 지식 체계라는 점이 장점입니다. 속담은 학문적 언어가 아니라 민중의 언어로 표현된 사실상의 사회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p. 26)

가깝고도 먼 학문인 사회학을 가깝고도 쉽게 설명하기 위해 사회학자가 골라낸 것은 '속담'이었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한 줄 사회학' 은 곧 '속담'이었던 것이다. 저자는 12개의 속담을 사회학적으로 풀어낸다.

저는 사회학자로서의 제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사회학자가 아닌 사람과의 만남이 매우 중요하다 생각했습니다. 학교 안에만 있으면 안 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캠퍼스를 벗어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생생한 해석을 들을 수 있는 곳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그리고 그 발길이 닿은 서울시 은평구 연신내 골목길에 '니은 서점'이라는 작은 서점을 차렸습니다. 니은 서점은 제가 세상 사람들에게 책을 추천하는 사회학자의 공간이자 사회학자가 토속민의 언어, 골목길의 언어를 익히며 세상 사람과 교류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p. 31)

대학과 대학원 그리고 해외유학까지 교수가 되기 위한 과정은 그야말로 엘리트코스를 밟아야 가능하다. 저자는 그러한 코스를 거쳐 사회학 교수가 되었으나 학문이 학문인만큼 자신을 학교안이라는 울타리에 안주시키지 않고 세상으로 나와 사회를 보려고 노력한 것 같다. 사회학자가 운영하는 서점이라... 가보고 싶다. 나는 서점을 참 좋아하는데... 여건만 된다면 작은 서점 하나 차려놓고 내가 읽었던 책을 추천해주며 살고 싶은 것이 소망이라면 소망인데... 그게 참 어려운 일이라서... 저자의 서점이 무척 부러울 따름이다...

사회학은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줄 수도 없고 출세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학문도 아니지만,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한 뒤 보다 인간이고 싶을 때, 산다는 것의 의미를 파악하고 싶을 때, 어떻게 살아야 내가 올바르게 살 수 있을지 궁리할 때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사회학자인 저는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르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속담을 통해 저에게 도움을 주시고, 저는 사회학의 렌즈를 통해 세상에 대한 더 풍부한 해석을 여러분에게 제공하면서 우리가 함께 <한 줄 사회학>을 완성할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p. 35)

저자는 사회학을 전공하고 연구하고 가르치는 사람이면서도 본인이 학문으로만 접하는 사회학에 대해서 스스로를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르는' 사람일 수 있다며 첫번째 속담풀이를 시작한다. 뒤이어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서울 가서 눈 감으면 코 베어 간다'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주인이 받는다' '개도 텃세한다' '친구 따라 강남간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개천에서 용 난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웅덩이를 흐려놓는다'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 한다' 는 속담들을 사회적으로 풀이한다.

사회학자도 잘 모른다는 사회에 대해 우리도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르는' 사람일 수 있지만

'자리가 사람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부패와 위선을 한두번 경험한게 아니고

도시 사람들만의 사회적 분위기와 예의가 어떻게 깍쟁이처럼 혹은 '눈 감으면 코 베어' 갈 정도로 차갑게 느껴지는지 모르지 않다가도

SNS 세상에서 '발 없는 말이 천리' 가 아니라 만리 억리를 순식간에 가는 것에 대한 위험성을 망각하고 살고 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사회 안전과 안정의 상실에 대해 무뎌지고

데이터는 내가 쌓아주는데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주인이 받는' 것이 남의 얘기인줄로만 알며

둘 만 모여도 느껴지는 '텃세' 를 체감하면서도

'친구 따라' 기꺼이 강남뿐만 아니라 그 어디든 따라하고 따라하기도 한다.

비교가 흔해진 시대에서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것은 당연하지만 티를 못내는 사회가 되었고

'개천에서 용이'나는 시대도 시대도 지났는데

온 세상을 흙탕물로 만들어 버리는 '미꾸라지' 한 마리를 잡지 못해 오늘도 우리는 비오 안오는데 바짓단을 흙탕물로 적시며 걸어가고 있다.

어찌보면 당연하고 쉽게 말해온 '속담'에 대해서 이렇게 사회적으로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이 어쩌면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로 들릴 수도 있지만

'상상력은 우리를 무지와 무력의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울 것입니다. 사회학은 개인의 무능력과 무지함이 결합해서 빚어지는 체념에 개입하는 공적인 시도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원하는 미래 사회를 생각하는 상상력입니다. (p. 333)' 라며 저자는 사회학적 사고를 시도해볼 것을 권유한다.

읽다보면 철학과 심리학을 오가는 사고실험이나 사회분석들이 사회학이라는 학문적 경계를 더 모르겠는 안개속으로 들이미는 것 같기도 하지만 어쩌면 그 모든 것이 사회학의 범주인지도 모르겠다. 개인이 생각할 수 있는 성찰의 논리적 정점의 학문들을 엮어서 개인이 아닌 개인이 구성하는 사회를 들여다보는 것은 필요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긴 하다. 하지만 인간이 사회를 이루며 살아오는 내내 축적된 그 지혜들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으니 그것이 '속담'이었다. 쉬운 속담을 사회학적으로 어렵게 풀어내는 시도는 해봐도 좋고 안해봐도 사는데 아무 지장은 없다. 다만 한낱 속담이 '지혜'라는 것 그 지혜가 사회를 이해하는데 얼마나 탁월한지 새삼 느껴보고 싶다면 저자의 사회학적 속담풀이를 읽어봐도 괜찮을 것이다. 그러고 나면 우리는 '사회적 지혜(=속담)'를 수월히 사용하는 사회학적 사고방식을 이미 하고 있음에 사회를 이루고 사는 개인 한명한명이 모두 사회학자인 셈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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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괴자들
정혁용 지음 / 다산책방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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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보일드 누아르 소설의 새로운 스타일과 감각

[침입자들] 정혁용 신작 장편소설

<침입자들> 이라는 소설을 재밌게 읽었기에 그 다음 작품인 <파괴자들>을 주저없이 선택했다. 의문의 택배기사 K를 주인공으로 하는 <침입자들>은 K라는 캐릭터에 대한 예고편이었다면 이번 <파괴자들>은 본편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K의 본업과 과거가 드러나면서 <침입자들>과 연결되는 것으로 보아 작가는 어쩌면 시리즈물을 기획하고 있는건가 싶기도 했다. 그리고 자잘한 소제목들을 꼼꼼이 달아놓는 것으로 보아 연재물로 쓰는 방식을 택한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여하튼 80년대 홍콩누아르를 생각나게 하는, 폭력 속 인간미가 돋보이는 장르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주인공K시리즈는.

기억이란 묘한 것이다. 가까운 것이 흐릴 때도 있고, 먼 것이 선명할 때도 있다. 대개의 기억은 왜곡되거나 굴절된 채로 남고, 동료와의 기억은 선명한 쪽이다. 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만큼 묻었다. 지우지는 못했다. 잊히는 기억이 대부분이지만 어떤 기억은 잊으려 해도 잊을 수가 없다. 마음에 상흔으로 남은 기억은 지워지지 않는다. 그래서 묻는다. 애써 묻을 뿐이다. 아마, 동료도 그랬을 것이다. 그날 카페에서 헤어지면서 우리는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두 번 다시 만날 일은 없을 거라고. 우리는 서로에게 그런 존재였다. (p. 10)

동료가 있었다. 많은 전쟁이 있었고 많은 죽음이 있었다. 동료라고 부를 만한 사람은 이제 한 명 남아 있다. 서로 어디서 무엇을 하고 사는지 모르지만 특별한 경험을 공유한 만큼 특별한 동료. 그 사람이 안나였다. 그런 안나에게서 연락이 왔다. 부탁이 있다고 했다. 거두절미하고 K는 안나가 보내준 주소로 출발했다.

우리는 동료였지 친구가 아니었으니까. 그곳에서는 대개 친구를 만들지 않았다. 언제 잃을지 모르기 때문에. 인간은 대부분의 일에 익숙해진다. 설령 사람을 죽이는 일이라도. 하지만 결코 익숙해질 수 없는 일이 있다면 친구를 잃는 일이다. 우리는 신참이 아닌 베테랑이었고 친구를 사귀기엔 그곳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낸 사람들이었다. (p. 34)

친구가 아니라면서도 K는 동료를 잃는 일에 익숙해지지 못했다. 용병. K와 안나는 용병으로 한 팀이었다. 그리고 다른 팀원들이 있었다. '안나는 1티어와 동급의 알파였지만, 러시아 출신이었고 팀원은 한국인,중국인,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파키스탄인, 구르카족 출신이었다. 고위험의 허드렛일은 대개 우리 팀 몫이었다. 팀의 정식 명칭은 시그마였지만 별명은 '안나의 애새끼들' 이었다. (p. 39)' 읽다보면 많은 장면들이 왠지 익숙하다. 그동안 드라마나 영화에서 봤던 장면들이 떠오르곤 한다. 작가 스스로도 '이 소설에는 많은 영화와 드라마에 대한 오마주가 있습니다. 알아보는 재미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p. 318)' 이라고 말하고 있다. 예전에 유행했던 주윤발식 홍콩누아르 까지 가지 않아도 <태양의 후예>라던가 <더K2> 라는 드라마 또는 용병과 군인 이나 재야의 능력자가 활약을 펼치는 영화들이 생각난다. 하지만 식상하진 않다. 그런 분야 특유의 긴박함과 몰입감에 빠져서 호로록 읽히는 재미가 있는 소설이다.

"마리라는 아이를 부탁해" (p. 40)

이유는 묻지 않았다. 들어줄 거라면 물을 필요가 없다. (p. 41)

<침입자들>에서도 그랬지만 이 작품에서도 K의 대화법은 독특하다. 심드렁하게 툭툭 내뱉으면서도 사람을 안심시키는 묘한 매력이 있다. 무엇보다 K는 누구에게도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그저 OK한 일에 대해서는 끝까지 갈 뿐이다. '마지막에 헤어질 때도 안 하던 짓을 했다. 악수의 손을 내민 것이다. 젠장, 더럽게 어색했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할 수 없이 손을 내밀었다. "고마워 케이" 안나가 손을 잡고 가볍게 흔들었다. (p. 46)' 서로에게 목숨빚이 있는 사이이고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르고 이번일 또한 목숨걸고 해야 할 일인데 악수조차 더럽게 어색한 사이, ㅋㅋ 그게 딱 K이고 그것이 딱 이 소설의 분위기이다. 폭력이 난무하고 잔인한 장면 사이에서 묘하게 키득거리며 읽게 되는.ㅎㅎㅎ

"실례가 안 된다면 어느 방에 계신지 여쭤봐도 될까요?"

"6층 맨 끝 방입니다"

"6층 맨 끝 방이요?"

"문제가 있습니까?"

"아닙니다. 그 방에 초대 받으신 분은 아주 오랜만이라서요" (p. 52, 53)

안나가 K를 불러들인 곳은 묘한 저택이었다. 동네 자체도 이상했다. 무엇보다 저택에 모여 있는 사람들... 서로의 직업도 나이도 본명도 모르는 사이이지만 '6층 맨 끝방'이라는 것만으로 K의 이미지가 정리되는 곳, 정작 K 본인은 몰랐고 알고 싶지도 않았지만 말이다.

전쟁터에서 친구를 만들지 않는다. 그것이 내 철칙이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친구란 만드는 게 아니었다. 만들어지게 되는 곳이었다. 아무리 철칙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이 무너지는 곳이 거기였다.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이 죽어갈수록 자신의 내면도 조금식 죽어간다. 전쟁의 진짜 무서움은 죽음이 아니다. 차라리 죽음은 나을지 모르겠다. 서서히 죽어가면서 계속 죽음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 그것이 진짜 무서움이다. 때로 먼저 간 전우들을 부러워 하는 건 그때문이다. 그들은 적어도 잠들기는 했으니까. (p. 65)

잠들지 못하는 밤을 보내며 끊임없이 전쟁터를 떠돌아다니는 것이 차라리 편한 K는 이 이상한 저택에서 안나를 통해 동료의 죽음을 전해 듣는다. 이제 안나의 부탁 말고도 K가 이 곳에 있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긴 셈이었다. 그리고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어제 만난 장이라는 친구가 이런 말을 하더군. 여기는 재미있는 곳이라고, 지옥치고는 말이야"

"그 친구의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어. 하지만 이놈에게는 아니야. 인터넷도 전화도 안 되는 고립된 저택, 고립된 마을. 경찰도 절대 오지 않는 곳"

"맞아. 놈에게는 천국의 문이 열린 거야" (p. 95)

'넌 아무리 궁금해도 상대가 말해주기 전에는 결코 묻지 않는 사람이잖아. 사람이란 이상한 거야. 묻지 않는 사람에게는 말해주고 싶거든. 그래서 동료들도 너에게 많은 얘기를 한거겠지. 아마 동료들의 개인사는 네가 가장 많이 알고 있을 걸. 묻지 않는 사람에겐 본능적으로 안심을 하는 게 사람인가 봐. 새어 나갈 일이 없을 것 같거든. (p. 108)' K의 묻지 않는 이런 성격은 이 작품에서도 빛을?! 발한다. 사람들은 K에게 이야기를 하고 K는 그들이 말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알아낸다. 이곳은 지옥이고 따라서 K가 있을 만한 곳인것 같긴 하다. 하지만 저택에서 하루하루 보낼 수록 의문은 쌓여가고 마침내 K도 물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이 얘기는 묻고 싶지 않았지만 할 수 없이 물어야겠군. 도대체 너의 계약이란 게 뭐지?" (p. 116)

저택을 둘러싼 주변 인물들과 갈등이 펼쳐지면서 K의 과거도 설명되어지는데 "아버지가 특수부대 출신이었죠. 조기교육이랍시고 일곱살때부터 가르쳤고, 절 완성한 건 교관이었던 티모센코였습니다." "그중에서도 칼이 일품이라고요? 케이의 의미가 나이프(Knife)의 K라더군요" (p. 197) 라는 문장을 통해 전작 <침입자들> 과 확실히 같은 K임이 밝혀진다. <침입자들> 에서는 티모센코의 전화로 시작되고 끝났다면 <파괴자들>에서는 안나의 전화로 시작되고 끝이 나는 셈인데, 거기에 마리 라는 새로운 인물까지 늘어났다. 아마도 다음 작품에서는 K의 이 확장된 인간관계를 통해 새로운 사건이 펼쳐지지 않을까 싶다. 지금처럼 다양한 영상매체들이 있기 전 비디오세대로서 홍콩누아르에 익숙했던 사람들이라면 정혁용 작가의 K라는 주인공을 중심으로 한 이 시리즈를 무척 흥미진진하게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시리즈가 아닐수도 있고 따로따로 읽어도 즐기는데 아~무 지장이 없긴 하지만 시리즈로 K라는 인물을 계속 만나게 되길 기대해본다. 침입자들 에서 파괴자들이었으니 다음은 수호자들? 해방자들? 이런건 어떨지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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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녀의 세계 - 사랑한 만큼 상처 주고, 가까운 만큼 원망스러운
김지윤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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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 만큼 상처 주고, 가까운 만큼 원망스러운, 모녀의 세계

"진정한 자기애는 엄마를 아는 것에서 시작한다!"

김지윤 소장의 강의영상을 본적이 있다. 통통 튀는 재기발랄함과 쉽게 풀어내는 공감높은 에피소드들이 가볍고 재밌으면서도 은근 정곡을 찌르는 내용들이 있어서 인상적이었다. 자기계발 강사치고 본인의 짠한 사연풀이를 안 하는 사람이 없지만 김지윤 강사는 그런 도입부가 없어서 더 좋기도 했다. 그런데 그렇게 밝고 당차보이던 그녀가 '엄마가 돌아가시고 13년, 나는 단 한 번도 엄마의 무덤을 찾지 않았다. (p. 12)' 라고 고백했다. 이 책의 첫번째 연재글 속 이 문장이 내눈을 강타했다. 눈길을 뗄 수 없었다. 그렇게 '나쁜 년, 미친 년, 불효막심한 년' 이라는 첫번째 에피소드 제목에서부터 나는 위안받았다. '그렇게 상담실을 탈출한 뒤, 나와서 조금 걸었다. 어지러웠지만 면죄부를 받은 심정이었다. 그래, 일단 나쁜 년은 아닌 걸로. 그냥 마음 아픈 년인 걸로. (p. 17)' 에서 저자가 받은 면죄부를 나또한 받은 기분으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특히 나는 상당히 상처받은, 평범하지 않은 엄마를 가진 딸이었으며, 그렇게 아이를 낳고 나 자신도 엄마가 되는 모든 과정 속에서 너무도 많은 문제와 마주하고 이를 극복해나가야만 했다. 딸에서 엄마가 되기까지 무엇 하나 쉬운 것이 없었다. 하지만 깨달았다. 어려움을 극복한 만큼 행복해진다는 사실을 말이다. (p. 6)

저자는 자신의 모녀 관계 및 그동안 자신이 보아온 다양한 모녀관계에 대해 그 특수성과 그로 인한 험난함을 풀어낸다. 애증과 조율과 독립이라는 세개의 챕터로 구분되어 있지만 읽어보니 모녀와 (나의)엄마와 (엄마인)나 이렇게 세 파트로 구분되어지는 내용들이었다. 결론부터 정리해서 말하자면 힘든 모녀 관계의 원인을 따져보고 (나의)엄마가 왜 그랬을까 생각해보면서 (엄마가 된)나는 독립된 인간으로 성장해 나오는 과정이랄까. 그러니까 이 책은 '모녀의 세계' 라기 보다는 '엄마의 세계'다. 나의 엄마에 대해 그리고 엄마가 된 나에 대한 이야기.

부부의 세계만큼이나 복잡한 관계가 또 있으니 바로 모녀의 세계다. 고부간의 갈등은 그간 수많은 아침 드라마와 일일 드라마에서 진행된 스파르타식 교육 덕분에 어느 정도 공론화가 되었다. 하지만 모녀 관계는 아직 미지의 세계다. 모녀의 세계는 그 어떤 관계보다 많은 갈등을 내포하고 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당신이 엄마가 힘들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비단 당신과 당신 엄마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p. 23)

부부관계, 고부관계, 부모와 자녀사이, 시댁갈등 및 맞벌이가 늘면서 장서갈등까지 가족이라는 좁은 테두라 안에서 있을 수 있는 거의 모든 관계에서의 갈등과 충돌이 드러나고 얘기되면서도 유독 모녀사이에서의 문제는 그동안 문제화되지 않았다. 친정엄마 라는 단어에 내포된 따듯하고 포용적인 이미지에 공감하지 못하고 친구같은 딸이라는 표현에 감춰진 폭력에 대해서 이제 꺼내놓을때가 된 것일까. '매일 떠오르는 작열하는 태양과도 같이 딸의 곁에 머무는 엄마... 아, 딸은 정말이지 태양을 피하고 싶다. (p. 25)' 에 웃프게 혹은 아프게 공감하는 딸들이여 이제라도 독립하라!

저자는 '나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엄마'라고 부를 때 느끼는 그 감정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나의 엄마는 일반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일상에서 불리는 엄마라는 단어가 주는 정서를 잘 모른다. (p. 57)' 라고 하면서도 '엄마의 투병을 함께하며 이런 생각을 하곤 했다. 사랑하는 사람의 예견된 죽음과 갑작스러운 죽음, 둘 중 무엇이 더 나을까, 무엇이 덜 슬플까, 무엇이 더 슬플까. 의미 없는 질문이었다. 어떤 형태라 하더라도 둘 다 가늠할 수 없는 절대 적인 슬픔일 테니까. (p. 79)' 라면서 엄마에 대한 사랑과 슬픔을 이야기한다. 그렇게 인정하고 이해하여 받아들이게 된 자신의 모녀관계를 바탕으로 다른 모녀관계에 대한 토대를 닦아주려 주려 한다.

장녀로서의 희생, 왜곡된 남성관, 아바타같은 딸... 등등 '평범하지 않은 엄마'를 이해하기 위한 과정은 자신이 엄마가 되고나서야 가능해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엄마같은 엄마가 되지 않겠어 이든 (보통의 엄마같은) 엄마다운 엄마가 되겠어 이든 내가 보살핌 받아야 했던 시기에 받지 못한 것은 내가 보살핌을 해주어야 하는 대상이 생겼을때 비로소 서로 상호보완적 이해가 가능해지게 된달까. 그렇게 내 아이를 키우는 '그 시간은 내가 나를 양육하는 시간 (p. 143)' 이 될 수 있고 그제서야 '나'는 엄마라는 태양을 피하는 방법을 알게 된다고나 할까...

지극히 사적인 관계일 수 있는 모녀관계 나아가 가족관계는 사실 굉장히 사회문화적으로 영향을 많이 받는 관계이다. '내가 이 병에 대해 가장 큰 충격을 받았던 부분은 화병이 파리나 뉴욕에서 성장한 사람들은 쉽게 걸리지 않는, 한국 고유의 국지적인 토속병이라는 사실이었다. (p. 213)' 그러니까 한국사람이라고 다 화병에 걸리는 것이 아니라 한국에서 나고자란 한국사람이 화병에 걸린다는 말이다. 왜? '한 인간이 성장하고 처한 거대한 배경이자 맥락인 사회적·문화적 특수성을 배제할 수 없(p. 213)'기 때문이다. 더구나 화병은 주로 여성이 잘 걸린다. '화병이라는 특수성을 가진 민족의 딸이자 엄마들이 부정적인 감정을 잘 표현하기란 퍽 어려운 일이다. (p. 213)' 모녀관계의 이해에 있어서도 화병의 맥락은 이해할 필요가 있다. 화병을 대물림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분노해야 할 때 분노할 줄 아는 엄마와 그냥 툭하면 화를 내고 아이들에게 화풀이하는 엄마는 각각 전혀 다른 부류의 인간이다. 정당한 분노는 불의를 마르게 하지만 습관적인 화풀잉는 사랑을 마르게 한다는 것, 잊지 말고 기억하자. (p. 220)

모녀갈등에 대한 책도 찾아보면 꽤 찾을 수 있긴 하다. 몇 권 읽어본 적도 있다. 하지만 유독 책임감이 강한 유형의 딸들은 왠만한 갈등은 참고 살며 아바타처럼 이용당하다가 화병을 이어받곤 한다. 그러나 이러한 딸들이 자식을 낳았을 때 인생의 커다란 변곡점을 맞이한다. 내아이를 대하는 나의 모습은 즉각적으로 나를 강타하면서 다른 방향에서의 책임의식을 불러일으킨다. 그제야 내아이를 위해서라도 엄마라는 태양으로부터 멀어질 결심을 하게 된다. '엄마는 자녀를 사랑하지만 스스로 완벽하지 않은 부족한 존재이기도 하다. (p. 260)' 는 사실을 내 엄마에 대한 용서로 이해하진 못하더라도 내 아이에 대한 자신의 부족함을 깨달으며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내 아이의 엄마로 자리잡고 내 엄마로부터 독립하면서 '나'를 스스로 양육할 수 있게 된다.

이 책은 그렇게 스스로 잘 양육한 저자의 경험담이자 아직 스스로 양육하기 보다 누군가에게 종속되어 있는 많은 딸들에 대한 응원기이다. 모녀의 관계는 '출산과 육아' 라는 여성으로서의 경험이 주는 유대관계로 인해 다른 가족관계보다 더 치밀하고 은밀하게 얽혀 있기 마련이다. 그 얼키고설킨 실타래를 싹둑 잘라버리기 보다는 (자르라고 해도 사실 싹둑 잘라내지 못할 딸들이 훨씬 더 많을 것이기에) 한올한올 풀어가다보면 마침내 자신의 손에 동그랗고 예쁘게 말린 실뭉치가 쥐어질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짧은 책 한권으로 모녀의 세계를 단박에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모녀의 세계도 있다는 것을 공감하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는 큰 위안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모녀관계에서 힘듦을 경험한 적이 있다면 저자 특유의 생기발랄함이 넘치는 '감정 독립 처방전' 인 이 책을 읽어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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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는 클라스 : 인문학 편 - 고전·철학·예술 차이나는 클라스 7
JTBC <차이나는 클라스> 제작진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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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차고 유익한 책이에요. 인문학의 기초서로 좋을듯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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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는 클라스 : 인문학 편 - 고전·철학·예술 차이나는 클라스 7
JTBC <차이나는 클라스> 제작진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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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삶을 성찰하기 위한 지식과 지혜를 찾아서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문명의 뿌리를 탐구하다

방송을 잘 안보다 보니 JTBC의 <차이나는 클라스>를 직접 본적은 없다. 하지만 주변에서 회자되는 강연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면 늘 궁금하곤 했다. 그러다 이 시리즈의 일곱번째라는 이 책을 만났다. 양정무 김헌 등의 익숙한 필진과 아리스토텔레스, 중세, 그리스 신전, 신화 등 평소 관심있던 주제들이라 더욱 눈길이 갔다.

책은 크게 두 파트로 나뉜다. [지속 가능한 문명을 만든 지식] 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 중세의 문화, 그리스 신전의 건축, 지리의 힘 을 다루고, [삶의 지혜를 일깨우는 예술과 문학] 에서는 미술하는 인간, 신화의 권력, 단테의 신곡, 괴테의 작품세계를 다룬다. 그러니까 유럽 역사와 인문학의 토대를 이루는 기초적 주제들을 두루 다루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쓴 글을 보면 플라톤의 이데아론에 대해 '이것은 모두 매미소리다'라고 한 부분이 있거든요. (p. 19)

플라톤은 수학과 기하학에 대한 피타고라스 학파의 개념을 받아들이면서 완전한 진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 있다고 확신하게 됐습니다. (p. 23)

큰 틀에서 플라톤의 철학이 기하학적이고 수학적이라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생물학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p. 28)

(아리스토텔레스는) 신의 존재를 믿었지만 종교적 신, 인격적 신이 아니었습니다. 자연과 우주의 질서의 정점에 있는 최고의 존재를 신이라고 생각했어요. (p. 33)

서양고전과 철학, 역사 책을 읽으며 플라톤 저작들을 몇 권 읽었었다. 플라톤 저작을 읽을 땐 그게 그렇게 대단해 보이더니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설명을 읽고보니 아리스토텔레스가 더 엄청 대단해 보인다. 이데아론을 매미소리라고 치부하는 아리스토텔레스를 품어준 플라톤이 대인배이긴 했겠으나 다방면의 업적을 남긴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야말로 천재라 할 만했다. 뒤의 내용에서도 아리스토텔레스가 자주 소환되고 하는 걸보니 점점 더 이 고대인물에게 관심이 간다.

19세기 독일을 중심으로 한 계몽주의 사상가와 역사가들은 자신들의 성취를 자랑하기 위해 앞선 시대를 모조리 부정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중세 시대를 한마리도 둥클레 에포케(Dunkle Epoche), 즉 암흑의 시대, 암흑기라고 정의해버리죠. 일본 역사학자들이 이 말을 그대로 베껴 쓰면서 한국 역시 중세를 암흑기로 알게 된 것입니다. (p. 53)

식민사관이라고 할거까지 없겠지만 세계사 지식에 있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들은 수정이 필요한 부분이 상당히 많은 것 같다. 무엇보다도 일본의 판단에 의해 세워진 세계사의 기준들이나 명칭들에 대해서.. '중세 천 년의 빛과 그림자' 라는 주제는 동일 제목의 책이 있을 정도로 중세를 대표하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중세가 분명 암흑기적 요소가 많긴 하지만 그 시대에도 분명 다양한 발전이 있었다. 무엇보다 이슬람권에서의 발달이 두드러지는데 특히 인상적이었던 표현이, '흔히 동양에서는 '자 왈' 이라고 하면 응등 공자를 떠올리기 마련이잖아요. 그런데 서구 세계에서는 1255년 이후부터 책에 '철학자가 말하기를' 이라고 적혀 있으면 자연히 아리스토텔레스라고 생각할 정도였어요. (p. 83)' 였다. wow 여윽시 아리스토텔레스!

서양은 문명의 변혁기가 되면 항상 발전의 모델을 정합니다. 그게 서양 문명의 기본 속성이에요. 이상적인 모델을 정하고 모델의 좋은 점을 잘 찾아서 그것을 토대로 문명을 발전시켜가는 것이죠. 마침 그리스 영토로 들어갈 수 있게 된 시점과 유럽의 문명 변혁기가 우연히 맞아떨어지 거예요. (p. 94)

이슬람 세력 지배하에 있던 그리스땅이 유럽으로 회복되면서 귀족자제들의 '그랜드 투어'는 그리스지역까지 확대되었고 이에 '건축적 숭고미를 폐허로부터 찾은 것 (p. 101)' 이 그리스신전을 급부상하게 만든 요소였다. 그렇게 유럽의 모든 도시엔 그리스 신전화한 건물이 서게 되었는데 로마주의의 대표자 조반니 피라네시와 그리스주의의 대표자 빈켈만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흥미로웠다. 또한 성화를 그리기 위한 벽이 중요했던 로마시대 건축물이 벽을 중요시 했다는 것과 기둥중심의 그리스건축물과의 대조도 재미있었다.

지금 우리가 주로 사용하는 지도는 영국식 지도입니다. 특히 제임스 쿡 이후 영국에서 제작된 세계 지도와 아주 유사하죠. 즉 영국이 가장 강성했던 19세기에 만든 지도를 21세기에도 쓰고 있는 셈입니다. (중략) 사실 굉장히 큰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유럽 중심의 세계관, 특히 영국의 제국주의적 야망이 담겨 있는 지도이기 때문이죠. (p. 158, 159) 우리가 그동안 영국식 지도에 주로 의존해 세계를 바라봤던 게 문제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아가 한국사회전체가 서구 중심주의의 오염된 지리 정보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왜곡된 지도를 사용해 온 것에 대해 반성하고 대안을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요? (p. 162) 실제로 6대주 라는 개념은 유럽 중심적인 사고에서 비롯한 지식입니다. 유럽과 아시아를 나누어 별도의 대륙으로 보는 것은 좀 이상하지 않나요? (p. 163)

그렇다. 지도에서 대륙을 나누어야 한다면 유럽과 아시아는 하나의 대륙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을 그동안 왜 문제 삼지 않았을까... 우리가 서양인도 아닌데 말이다. 실제 크기는 영국과 한반도가 거의 비슷하다는데 우리는 왜 우리땅을 항상 작게만 여기는 것일까... 지리에 대한 지식은 힘이고 권력이 맞는 것 같다. 저자가 절절히 토로한 지리교육 부재의 아쉬움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지리에 대해 새로운 것을 알게되어 기뻤는데, 1154년의 알 이드리시의 세계 지도에 신라가 표시되어 있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1402년 태종시대에 만든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에 아프리카의 희망봉이 그려져 있다는 것이 가장 놀라웠다. 포르투갈의 항해자가 희망봉을 발견한 것이 1488년 이라는데 조선시대의 지도가 더 먼저 그곳을 알고있었다니~! 그런데 이 지도가 우리에게 없을 뿐더러 연구도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고 하니... 이런... '어쩌면 한국 학계와 사회는 그동안 영국이 주입한 왜곡된 지리적 상상력의 식민지였을 수도 있습니다. (p. 167)' 라는 문장이 안타깝게 공감된다....

초기 인류에게 그림은 일종의 언어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같은 언어를 쓰게 되면 공동체적 지식과 경험을 공유할 수 있겠죠. 그림도 마찬가지입니다. 호모사피엔스는 그림을 그림으로써 서로 소통하고 정보를 교환할 수 있었고, 후대에 자신들의 경험을 전달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p. 191)

미술과 생존을 연결시키는 사고방식은 무척 흥미로웠다. 네안데르탈인의 벽화를 처음 봤는데 호모사피엔스의 그림과 비교하며 일종의 '언어'로서의 역할로 풀어내는 것을 보고 예전에 다른 책에서 호모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의 성대구조가 달라 언어의 구사능력에 차이가 있었다는 것이 생각났다. 집단사회에선 예나 지금이나 '소통'이 중요한 것을... 여하튼, 선사시대의 주먹도끼의 미학적 요소와 라스코 동굴벽화의 실제적 모습은 무척 인상깊었다.

한마디로 신화는 권력유지의 수단이자 권력 쟁취의 도구였죠. (p. 216)

특히 흥미로운 사실은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자신의 권력을 만들고 지켜나가기 위해 똑같은 신화를 활용했다는 겁니다. 바로 아킬레우스의 이야기가 포함된 트로이아 전쟁 신화입니다. (p. 220)

신화 속 이야기가 이미 역사 속에서 벌어진 걸 알고 있기에 '아, 모든 게 신의 뜻대로 실현된 것이구나' 라고 착각하게 되죠. 이런 것이 문학의 마법적 속성인 겁니다. 이런 식으로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예언까지도 이뤄질 거라는 환상을 갖게 만들죠. (p. 258)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정복과 아우구스투스황제의 권력에 대해 모르는 바는 아니었으나, 이소크라테스의 범그리스주의가 알렉산드로스에게 연결되고 그의 태몽이 어떤 의미였는지 알게된 것은 무척 재미있었다. 무엇보다 알렉산드로스의 스승으로 아리스토텔레스가 또 등장하니, 이 책의 주인공을 뽑으라면 아마도 아리스토텔레스 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여하튼, 신화와 역사를 교묘히 연결지은 고대인들의 이야기를 읽고나니 감탄하면서도 좀 씁쓸하다.

단테가 <생각하는 사람>의 모델이기도 해요. 그래서 작품의 원제가 <시인>이었어요. 로댕은 단테를 흠모해서 <신곡>을 탐독했고 작품을 창작할 때도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p. 263)

단테의 초상화를 남긴 보티첼리, 평생 단테를 연구하고 강의에 일명 '단테 학자'라 불린 보카치오도 있죠. 심지어 괴케는 '<신곡>은 인간의 손으로 만든 최고의 걸작'이라고 찬미했을 정도에요. (p. 264)

원제는 이탈리아어로 '라 코메디아 디 단테 알리깅리', 즉 단테 알리기에리의 코메디아'라는 의미예요. (중략) 단테는 '코메디아'라는 단어에 우리가 전통적으로 생각하는 희극이라는 장르가 아니라 특별한 희미를 넣었어요. 단테가 쓴 편지글을 보면 '코메디아는 비참함에서 시작하지만, 행복으로 열매를 맺는 글' '나는 슬픈 시작에서 행복한 결말로 이루어진 그런 작품을 쓰겠다. 그래서 코메디아라고 부르겠다' 라는 대목이 등장합니다. (중략) 코메디아라는 용어에 그런 뜻을 담은 겁니다. (p. 275)

수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는 단테의 <신곡>은 그의 망명 생활기간동안 쓰여진 것이라고 한다. 단테가 계속 권력의 정점에 있었다면 우리는 그의 작품을 못봤을지도 ㅎㅎ 그러나저라나 <신곡>이라는 제목도 19세기 중반 일본작가가 붙인 것이라고 한다. 이때 일본작가가 단테의 희극 내지는 단테의 코메디 라고 이름붙이지 않았다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려나 하는 웃픈 생각을 하면서도 원제의 의미가 얼마나 제대로 알려져 있을까 하는 생각에 또 씁쓸해진다. 여하튼 이 작품이 가장 신기하게 다가온 점은 내용보다도 '운율과 강제를 통해 노래처럼 읽히는 글로 썼다. (p. 276)' 는 것이었다. '방금 말한 운율 운용의 규칙이 <신곡>의 1만 4233행 전체에서 같은 형식으로 반복됩니다. 그뿐 아니라 1만 4233행 전체의 각 행을 11음절로 맞추기도 했어요. (p. 277)' 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 긴 작품을 노래로 외우는 사람이 은근히 많다고;;; 피렌체어로 읽을 수 없는 나로서는 느낄 수 없겠지만 여하튼 대단하다 싶으면서도 호메로스가 생각났다. 그리고 만약 읽게 된다면 '연옥'에 좀더 관심이 갈것 같다. 그동안 없던 '연옥'개념을 만들어내면서 현실에서의 실용성(혹은 시대의 요구에 부응한 것)을 얼마나 잘 종교화했는지 생각해봐야 겠다.

괴테의 작품은 평범한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첫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p. 320)

이전까지는 이성, 집안, 국가의 중대사가 중심이었다면, 괴테의 시대부터는 개인의 마음속에서 벌어지는 미묘한 감정의 변화까지 작품의 세계로 끌어들인 거예요. (p. 322)

괴테의 작품에 대한 새로운 배경지식을 얻은 것도 참 좋았는데 '괴테는 이 책(파우스트)이 출판되길 원치 않는 상태로 죽었어요. 그런데 그의 뜻과 달리 계속 출판됐고 덕분에 이렇게 여러분과 다양한 해석을 해볼수도 있었네요. (p. 336)' 라는 내용을 읽으며 괴테의 생각이 무엇일지 궁금해졌다. 아우구스투스가 그토록 마음에 들어했던 <아이네이스>도 작가 본인은 출판을 원치 않았다던가... 허난설헌도 자신의 수많은 작품을 불태워달라고 했던가... 자신들의 작품을 남기지 않고 싶어한 작가들의 생각도 갑자기 궁금해지고...

여하튼, 아주 모르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잘 알지도 못하는 인문학 분야들에 대해 쉽고 재밌게 배울 수 있어서 유익했던 책이었다. 이 시리즈의 '클라스' 가 좀 남다른것 같긴 하다. '차이나는 클라스' 인정~! ㅎㅎ

- 리뷰어스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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