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세상을 공부하는 시간 - 4차 산업혁명을 둘러싼 열세 가지 지적 탐험
손승현 지음 / 더난출판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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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이력은 독특한 편이다. 신문방송학과를 나와서 KBS에서 라디오 PD를 10년간 하다가 법학을 새롭게 공부하여 변호사가 되어 활동중이다. 테크놀로지와 미디어 전문 변호사로 일하게 되어 자의반 타의반 으로 새로운 세상을 공부하게 되었고, 그 이야기를 담은 것이 이 책이다.

이 책은 일단 예쁘다 ㅎㅎ 표지도 예쁘고 글 중간중간 삽입된 그림도 예쁘다. 문체도 예쁘다. 구어체로 서술되고 있어서  읽다보면 바로 옆에서 조곤조곤 설명해주는 느낌을​ 받게 된다. 표현도 예쁘다. 자신의 생각을 드러낼때도 최대한 배려하며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표현하고 있다.


새로운 정보를 알려주는 책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 것 같다. 정보를 알려는 주되 저자 본인이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겉핡기 식으로 취합 정리만 한 정도의 책과 저자 스스로가 제대로 이해한 후 본인이 소화시킨 내용을 풀어주는 책. 이 책은 후자다. 설명을 듣는 사람 입장에서도 설명해주는 사람이 제대로 알고 설명해줄 때와 대충 알고 설명해줄 때 확연한 차이를 느낄 수 있기 마련인데, 저자는 본인이 공부한 것을 잘 소화해서 읽는 이도 잘 소화할 수 있도록 쉽게 설명해 주고 있다.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격변의 시대를 그 어느 때보다 외로운 '개인'으로 살아내야 할 우리를 위한 고맙고 유용한 지침서다' 라는 추천사에 완전 동의한다. 참 고마운 책이다.


저자는 새로운 세상 속 연결의 의미를 상상하는 데 영감을 줄 수 있는 여러 가지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을 다 읽고 난 뒤에는 따로 시간을 내어 공부하지 않더라도 4차 산업혁명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최소한의 개념은 머릿속에 기억될 수 있도록 썼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잘 쓴 책이라도 결국 읽는 이의 몫이 더 큰 법, 새로운 세상을 궁금해하고 알고 싶어 할 때 비로소 이 책의 가치가 더욱 확연히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부제는 '4차 산업혁명을 둘러싼 열세 가지 지적 탐험' 이라고 되어 있다. 하나하나 챕터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부분을 정리해봤다.

아날로그x디지털 - 태어날 때부터 일상에서 개인용 컴퓨터와 휴대전화, 인터넷 등 디지털 기기를 자연스럽게 사용해온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 와 아날로그 환경에서 태어났지만 이후 학습을 통해 디지털 기기의 사용법을 배우고 익힌 디지털 이민자 세대 는 사고방식에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어느 쪽이든 다가올 새로운 세상에 대해서는 패러다임을 전환 시킬 수 있는 사고방식을 가져야 한다. 우리가 직면하게 될 새로운 시대의 패러다임은 간단히 말하면 '초연결' 이라고 한다. 4차 산업혁명은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교차하는 곳에 있고, 그래서 4차 산업혁명의 다른 이름은 '융합혁명'이다.

까다로운x복잡한 - 현재 우리의 사고는 '일단 쪼갠 후 다시 조립하는' 방식으로 굳어져 있다고 한다. 일명 환원주의. 지금까지는 이 방식이 세상을 이해하는데 잘 통했다. 조각을 끼워 맞추는 과정이 그다지 어렵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가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을 이해하기 위해 습관적으로 취하는 방법도 나누고 쪼개서 그 구성요소인 빅데이터,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로봇공학 등으로 각각 분석하고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사고방식은 이제 한계를 보이고 있다. 하나하나 쪼개놓고 보면 복잡하지 않더라도, 그 구성 요소들이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서로 연결되어 영향을 미치면 전체는 복잡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복잡해지는 이유는 전 지구가 놀라운 속도로 서로 연결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예전처럼 사고하는 습관을 '멈추는' 것이다. 우리는 궁극적으로 우리를 둘러싼 시스템이 서로 연결되고 상호작용하는 입체적인 구조 전체를 볼 수 있어야 한다.

노드x링크 -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심리적 거리' 와 '물리적 거리' 의 상관관계가 점점 약해지고 있다. 지구 반대편에 사는 어떤 사람이 바로 옆집에 사는 내 이웃보다 가까울 수 있다는 말이다. 네트워크 사회는 현재 안정적인 상황에 놓여 있지 않다. 권력이 재집중되려는 순간마다 저항하는 개인들이 분별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심리스 서비스x커스터마이징 - 새로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새롭고 훌륭한 콘텐츠를 제공하느냐보다 사람들이 얼마나 편안하고 재미있게 아날로그와 디지털 세상을 넘나들도록 해주느냐의 문제다. 새로운 기술을 알면 창의적인 아이디어도 떠오를 거라는 믿음은 함정이다. 우리가 진짜 보아야 할 것은 이미 우리의 일상 속 어딘가에서 새로운 연결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공유경제x실패유전자 - 다가올 세상에서 우리는 시행착오나 실패 없이 새로운 무언가를 얻는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비록 실패했지만 무언가를 배울 수 있었다는 것보다는 실패 자체도 필요하다. 지금까지는 아니었더라도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세상에서는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가고, 큰 실수만 안 해도 칭찬받는 개인, 조직, 사회에겐 미래가 없다. 실패로부터 안전한 것보다 실패를 통해 끊임없이 배워야 할 때이다.

빅데이터x직관 - 중요한 것은 누가 기술을 더 잘 다루느냐가 아니라 세상에 널린 빅데이터 중 어떤 데이터를 골라 어떻게 활용하느냐 이다. 그렇다고 앞으로는 데이터가 직관보다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양자택일에 익숙한 사고 습관부터 경계할 필요가 있다.

사고의 범주화x패턴인식 사고 - 앞으로 인간이 인공지능보다 우위에 설 수 있는 분야가 두 가지 있는데, 패턴인식 과 복잡한 의사소통 능력이라고 한다. 중요한 것은 유추능력

창의성 패턴x확장 가능한 협력 - 저자는 창의성의 패턴을 더 많이, 더 자주 만난 곳은 책이라고 한다. 수업, 멘토링 등의 형식적인 프로그램은 거의 효과가 없다. 뛰어나 성과를 내는 인재는 경험, 관찰, 성찰, 독서, 토론을 통해 스스로 성장한다. 그들이 뛰어난 사람들과 큰 도전에 둘러 싸여 있는 한 말이다. 직관은 우리 뇌의 무의식 레벨의 수많은 단계를 동시에 관통하면서 의식 레벨로 순식간에 튀어 오른다. 미래의 선물 같은 우연한 연결을 기대하며 다양한 경험을 쌓고, 무언가에 완전히 사로잡혀 빠져드는 것, 이 두가지가 힌트다.

스스로 학습x입체적 구조화 - 인류 역사의 궤도는 점진적으로 성장한 것이 아니라, 겨우 200년 전에 있었던 '어떤 갑작스러운 엄청난 일'에 의해 거의 수직적으로 뒤바뀌었다. 슈밥이 우리에게 4차 산업혁명을 선언한 것은 꽤 느닷없는 일이었다. 왜냐면 아직 3차 산업혁명이 진짜 3차 산업혁명이었는지에 관한 논의도 제대로 끝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실 그 논의는 제대로 시작되지도 않았다. 4차 산업혁명이 진짜 4차 산업혁명일까 라는 질문이 가능하려면 먼저 3차 산업혁명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

네트워크 효과x플랫폼 비즈니스 - 네트워크를 이해하고 활용하는 능력은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가장 강력하고 실용적인 무기가 될 것이다.

파레토 법칙x롱테일 법칙 - 정답도 없이 연결된 새로운 세상에서는 얼핏 모순되어 보이는 사실도 서로 다른 층위에서 함께 얽혀 공존할 수 있다. 절대적으로 옳거나 그른 것들은 점차 줄어들고 관계 속에서 상대적으로 좋거나 나쁜 것들이 늘어날 것이다.

낯선 사람과의 공유x동료생산 - 지난 시대 경제의 중심이 희소성 이었다면 적어도 당분간 경제의 중심은 공유와 신뢰일 것이다. 만일 소중한 데이터를 발견했다면 누구보다 먼저 내어주기를. 다른 사람이 내어주기 전에, 이왕이면 가진 것 중 가장 좋은 것 부터

지능 폭발x인간과 기계의 공생 - 하필 인공지능이 못 하는 일들은 대부분 우리가 부가가치를 만들어내기 어려운 일들이다. 패턴인식이나 복잡한 의사소통 같은 분야는 인공지능이 잘 못하면서 인간도 누구나 잘하는 일은 아니다. 지금 눈앞의 작은 성공만을 보고 나아가다 보면 작은 봉우리에 발이 묶은 등반가의 처지가 되기 십상이다. 용기를 내어 때로는 돌아가는 길도 선택하면서 시행착오를 무릅쓰고 산을 올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어느 길 하나만을 고집하지 않는 유연함과 길이 아니더라도 돌아 나올 수 있는 회복탄력성이 중요하다.


이 책을 읽으며 좋았던 점 중 하나는, 지금 미래를 위해 언급되어 지고 있는 어려운?! 용어들을 거의 다 다루며 쉽게 설명해주고 있다는 것이었다. 현실에서의 적용 사례로 이해를 돕고 외국과 한국을 비교해 주기도 한다. 다양한 학자들의 의견도 꼼꼼이 보충해 주고, 이론과 실험도 적절이 섞였다. 두루두루 편안하게 읽히면서도 다가오는 새로운 세상을 공부하는데 정말 유용한 책인것 같다.


저자는 4차 산업혁명이 여전히 낯선 사람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는 책을 쓰고 싶었다고 한다. 단지 지식을 얻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이기를, 실제로 새로운 세상으로 한 걸음 내딛게 하는 책이기를 바란다고 했다. 나는 저자의 의도와 바램이 충분히 전달되는 책이었다고 생각한다. 다가오는 연결과 공유의 시대에 저자가 먼저 자신이 열심히 공부한 내용을 공유하며 독자와 새로운 세상을 연결시켜 주고 있는 것 같아서 고마웠다. 나도 한동안 잊고 있었던 블로그를 다시 시작하게 된 이유가 내가 읽은 책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였는데, 좀더 열심히 해봐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이렇게라도 조금이나마 하고 있는 것이 갑자기 뿌듯하고 기분이 좋아진다. 좀더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봐야 겠다는 고민이 생겼지만 설레는 고민이다. 정보를 주는 책을 읽으며 이렇게 마음이 따듯해질 수 있다니 ㅎㅎ 책을 읽는 내내 좋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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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식물을 키웁니다 - 내 하루를 싱그럽게 만들어주는 그리너리 라이프
김현경 지음 / 빌리버튼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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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하고 작은 사이즈의 책을 보고 제목을 봤을땐 집에서 식물을 키우는 초보자를 위한 안내서가 아닐까 라는 예상을 했었다.

하지만 이 책은 에세이였다.

저자 소개가 간략하고 사진도 없지만, 내용을 읽어봤을때 저자는 30대 초반의 결혼한지 1년된 프리랜서 여성이다.

책을 읽고나니 이 책의 내용은 표지그림이 말해주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편안하게 책을 보며 쉬는 자세로 화분을 바라보고 있는 그 시간. 바로 그 시간들을 담은 에세이였다.


저자는 잡지사 에디터로 일하다가 퇴직하고 프리랜서 에디터로 일하며 재택근무 하는 시간이 긴 편이라고 한다.

미니멀라이프 인테리어로 깔끔한 집은 어딘가 비어있는 느낌이 들었고, 그 자리에 식물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느끼는 감상들을 소박하게 담은 글들은 읽다보면 때론 웃음이 나기도 한다.


화분하나를 사는데도 살까말까 망설이고 장점과 단점을 적어가며 고민고민 하는 소심함은 식물을 집안에 들여놓고 나서도 잘자라는 건지 아닌지 노심초사하는 자세로 이어지며 그러면서도 자꾸 점점더 식물의 개수가 늘어나는 만큼 마음의 평안도 늘어가는게 눈에 보이는 에세이였다.


식물의 얘기를 담고 있지만 그럼에도 주인공은 식물이 아니라 저자 본인이다. 식물을 키우며 느끼는 감상 속에 가족과 친구, 회사 와 사람들의 이야기를 버무려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저자와 식물 사이의 관계와 다르지 않음을 이야기 한다.


화분 몇개 키우는데도 이러한데 나중에 아이를 낳아 키울땐 어쩔고 싶어서 저자가 벌써 걱정되기도 한다.

커리어를 쌓고 통장에 잔고를 늘리는 일만의 일에 매몰되기 보다는 적절한 일과 취미를 병행하면서 누리는 쪽을 선택하고 자신이 원하는 방향의 삶을 살아가는 모습에선 세대차이가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엣말이 무색하게 요즘은 5년만 되도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시절이다. 요즘 세대의 라이프 스타일에 대해서 나와 다르다고 해서 틀리다고 말해선 안되는 것이므로 오히려 배웠다고 말하는게 좋겠다. 그들의 삶의 방식이나 가치관에 대해서.


짧고 편안한 에세이라서 금방 읽기는 했는데, 글로 묘사하는 만큼 그림이나 사진같은 보충자료가 있었으면 좋았을 것 싶은 아쉬움이 남았다. 이 책의 분위기상 컬러플한 사진은 별로고 색연필이나 연필로 그린 식물그림 정도는 그 식물을 묘사하는 글 옆에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나도 화분을 들일 때마다 잘 키워야지 싶다가도 어느새 익숙해진만큼 시들어진 화분을 보곤 미안해 하곤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고 나니 다시 또 화분을 들이고 싶어진다. 게다가 계절도 봄이니 밝아지는 햇살 만큼 우중충해 보이는 집안을 바꿔줄 화분을 조만간 들여놓을 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서 식물 키우는 방법을 배운건 아니지만 궁금해진 식물은 몇가지 생겼으니 그것부터 찾아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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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한국인의 삶
서영해 지음, 김성혜 옮김, 장석흥 / 역사공간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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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전까진 서영해 라는 인물에 대해 전혀 몰랐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진 유럽사회에서 독립운동을 하신 분이 계시다는 것도 전혀 몰랐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진 유럽에서까지 한국의 역사왜곡에 힘썼던 일본의 극악한 활동을 전혀 몰랐다.

몰라서 부끄러웠고 죄송스러웠지만, 이제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서영해 선생은 1920년 부터 1947년까지 27년 동안 프랑스를 비롯해 스페인, 스위스, 벨기에 등을 무대로 독립운동을 한 분이다.

1902년 부산에서 한약방을 운영하는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 3.1 만세운동에 참여했다가 18세의 나이로 상하이로 망명했다. 독립운동가들과 교류하며 당시 국제외교의 중심지였던 프랑스로 유학을 선택한다. 그의 유학은 처음부터 독립운동을 목표로 한 것이었다. 1920년 프랑스에 도착하여 11년 학교교육과정을 6년만에 마치고 대학에 진학한다. 그러나 1925년 부친의 사망으로 학교를 중퇴하고 프랑스 신문에 실린 한국 폄훼 기사에 대한 반박글을 기고하면서 기자로서 첫발을 내딛는다. 이후 임시정부와 꾸준한 정보교환 및 유럽사회에서의 독보적 독립활동의 영역을 구축하며 활발히 활동하다가 광복후 임시정부 주요인사들의 입국이 거부되는 동안 기다렸다가 1947년에야 고국에 입국한다. 그러나 당시의 혼란한 정파싸움과 친일파들의 활개치는 음모속에 정치와는 거리를 두고 교육활동을 하며 지내게 되고 다시 외교활동차 외국으로 나가던 중 상하이에서 억류되어 이후의 행적은 알 수 없게 된다. 그는 프랑스어를 비롯해 영어, 독일어, 스페인어, 중국어, 일본어, 라틴어 등 7,8개 국어를 구사했고, 고대철학부터 현대철학, 문학, 정치사상, 종교, 역사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서 해박한 지식을 가진 이였다. 또한 그는 한국독립운동의 불모지와 같던 유럽에서 20년 넘게 독립운동을 지켜낸 주역이었다. 그는 작가로서, 기자로서, 국제정세 전문가로서, 임시정부의 외교관으로서 평생 한국의 독립을 위해 고군분투했다. 그의 독립운동은 외롭고 힘든 가시밭길이었지만, 한평생 한국의 독립운동 뿐만 아니라 평화주의자로서 최선을 다한 인물이었다.

1929년 프랑스에서 불어로 이 책이 출간된 당시 프랑스인들은 이 책을 통해 새로운 한국을 발견한 것처럼 놀라울 정도로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간행과 함께 1년만에 5쇄를 낼 만큼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저자는 당시 프랑스 대통령에게도 헌정했었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프랑스인들의 한국관은 일본이 왜곡한 내용으로 고정되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프랑스인들은 중국의 오랜 속국이던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으며 비로소 문명을 접할 수 있었던 나라로 여기는 정도였다고 한다. 이 책에서는 4,200년의 역사를 지닌 한국이 고유한 문화를 발달시켜오다가, 일본의 침략을 받아 불행히도 나라를 잃었으나 한국인들이 용기를 잃지 않고 자유와 평화를 위해 전개한 독립운동을 담아내고 있었고, 프랑스인들에게 이 책은 소설이 아닌 사실로 다가가 한국의 역사문화와 독립운동의 진실을 전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책은 '어느 한국인의 삶' 이라는 소설 작품 과 뒷부분에 잘 알려지지 않은 서영해 라는 인물에 대한 미니평전 같은 해설이 붙어 있어서 이해하는 데 자료가 충분하여 좋다. 소설 자체는 3부로 되어 있다. 1부는 박선초 라는 가상의 독립운동가의 일제치하 초기의 독립운동활동에 대해, 2부는 박선초가 회상하는 어린시절의 에피소드들을 통해 한국 고유의 문화와 전통 그리고 옛이야기까지 조금씩 언급하며 한국에 대한 이해를 돕고, 3부는 다시 현재시점의 박선초라는 인물의 3.1운동 과 죽음에 이르기까지 서술된다. 3부에는 독립선언서 전문이 실려 있어서 역사적 사실과 소설적 허구를 넘나드는 글의 구성이 돋보이고, 당시 프랑스에 우리나라의 독립선언서가 읽혀질 수 있었다는데에 큰 의미가 있지 않나 싶었다.


'어느 한국인의 삶'이라는 소설을 쓸때 참고자료로 활용했던 책이 '한일관계사료집' 이라고 한다. 한일관계사료집은 1919년 임시정부에서 펴낸 책으로 국제연맹회의에 우리 민족의 독립을 요청하기 위해 만든 책이라고 한다. 아쉽게도 완질로 전해지고 있는 것은 단 1질 뿐인데 이마저 미국의 콜림비아대학 극동도서관에 있다고 한다. 한일관계사료집 의 중심엔 안창호 선생이 있었다. 안창호 서영해 같은 분들이 제대로 평가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서 새삼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임시정부가 독립을 준비하면서 초반에 한 일이 역사서 편찬이었다는 것은 그보다 옛날 나라의 주인이 바뀔때마다 왕조의 역사서가 먼저 편찬되었다는 것은 나라의 기틀을 바로잡는데 역사부터가 시작이어서가 아닐까? 광복 후 우리나라가 친일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역사를 바로 세우지 못해서 아직도 이렇게 혼란스러운 것을 보면 역사의 중요성은 더욱 실감해야 할 일이다.


세상은 누구도 알아서 먼저 나를 알아 주지 않는다. 나라와 나라 사이도 마찬가지이다. 외국은 알아서 우리나라를 이해해 주지 않는다. 누구라도 먼저 알려준 내용에 대해 무심히 믿고 넘어갈 뿐이다. 그래서 일본이 활발하게 유럽사회에 퍼트린 한국의 왜곡된 이미지가 여전히 남아 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우리를 아는 만큼 남들은 절대 모르는 건데, 우리는 남들도 알아서 우리만큼 우리를 알아줄 거라 착각한다. 그 어렵던 시절에 단 한분이었을지라도 단 몇권의 책과 간헐적 신문기고글에서라도 우리나라를 제대로 알리고자 했던 서영해 선생의 활동이 없었다면 우리는 광복후에도 더 힘들지 않았을까? 지금도 여전한 일본의 역사왜곡에 우리는 얼마나 잘 대응하고 있을까? 일본과 맞대응 하는 소모전 보다는 유럽이던 미국이던 다른 사회에 우리나라를 제대로 인식시키는 활동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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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평화의 역사, 최대한 쉽게 설명해 드립니다 누구나 교양 시리즈 3
게르하르트 슈타군 지음, 장혜경 옮김 / 이화북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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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평화라는 단어는 이란성 쌍둥이 같다. 서로 다르면서도 항상 붙어 다닌다.

이 책은 야누스처럼 다른 두 얼굴의 쌍둥이 전쟁과 평화에 대한 책이다.

저자는 학자는 아니고 저널리스트 이다. 학자가 아니다보니 문체가 가벼운 편이고 저널리스트이다 보니 관심사가 방대하다. 그래서인지 잡지를 읽듯이 쉽게 읽히는 장점과 깊이가 얕은 단점이 공존하는 책이다. 하지만 대중서로 전쟁과 단점과 평화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는 용으로는 이정도면 썩 괜찮은 편이 아닐까 싶다.

저자는 전쟁이 인간의 전매특허인것 같다며, 역설적이게도 인간은 그 완벽한 비인간성을 통해 완벽히 인간적이라서, 인간에 내재한 전쟁의 요인을 탐구하고 전쟁을 인간 스스로 책임져야 할 악행으로 피할 수 있는 행위로 파악하는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이 책을 쓴 것 같다.

내용은 인간의 폭력성에 대한 관찰로 시작하면서 세계 최대3대 전쟁 (30년전쟁-1차세계대전-2차세계대전) 순서로 전쟁의 이유와 전쟁의 실상을 드러내고 현재 진행중인 (앞선 전쟁과는 달라진) 전쟁의 양상을 살펴보면서 앞으로의 전쟁모습을 예상하고 평화로운 미래를 위한 준비로 마무리 되고 있다. 제목은 전쟁과 평화의 역사라고 되어 있지만 사실상 전쟁의 역사인 셈이다. 그런점에서 평화의 역사는 이렇게도 없었나 싶어 새삼 씁쓸해지기도 했다.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며 따라서 자연의 법칙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런데 자연의 일부이면서도 자연에 저항하고 자연을 넘어설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점에서 인간의 비극은 시작된다. 전쟁을 하는 종(인간과 일부 유인원종)은 사냥 충동과 지능이 결합된 능력을 갖추었다. 지성을 갖춘 것이다. 전쟁을 자연성의 일부로 볼 수는 없지만, 인간 본성에 내재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전쟁에 대한 증오와 평화를 향한 동경 역시 인간의 본성에 뿌리내리고 있다. 이러한 모순때문에 인간의 역사는 전쟁과 평화의 역사라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본성적인 면에서 볼때 남자아이들의 놀이에서 전쟁놀이가 이어져 왔다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남자아이라면 누구나 전쟁놀이를 즐겨한다. 전쟁놀이는 사회화의 한 과정이기도 했다. 지금은 전쟁놀이가 컴퓨터상의 전쟁게임으로 대체되었다. 역사적으로 볼때 고대문화에서 놀이는 전쟁과 엄격하게 구분되지 않았다.  사냥, 놀이, 제물, 전쟁 등은 비슷한 의미로 사용되어졌다. 하지만 고대에는 전쟁이 어느 정도의 격식을 갖추었기에 약탈이나 인간 사냥, 암살 같은 행위와는 다른 것으로 여겨졌다. 전쟁은 고귀한 것이었고, 신의 총감독을 받는 보편적인 힘겨루기였다. 중세까지는 기사도 정신으로 명맥을 유지하다가 현대에 와서는 그런 숭고한 의미마저도 없어졌다. 어쩌면 전쟁은 놀이의 모습을 갖추었을때는 그나마 인간적이었다가 게임이 되었을때 비인간적이 되버린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 대면하는 놀이방식의 전쟁에서는 눈으로 직접 보고 차마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서로 대면하지 않는 게임에서는 적을 보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살생을 할 수 있으니... 그래서 현대 전쟁이 더 무서운 것이겠지

서양에서의 전쟁은 종교와 뗄 수 없는 역사를 공유한다. 종교는 인간의 선한 면이 승리하도록 돕지만, 승리 라는 말 자체가 이미 전쟁을 전제로 한다. 사랑과 폭력의 공존, 종교는 처음부터 자기 모순을 안고 시작되었다. 다른 신을 허용하지 않는 유일신에서의 신의 이기주의는 타 종교에 관용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 면에서 다신교인 흰두교와 아예 신이 없는 불교를 종교로 갖는 지역에서 전쟁이 덜 일어났다는 점은 의미 있다. 또한 종교와 권력에 관계에 있어서도 동양의 성직자들은 명망은 누렸지만 세속적 권력은 갖지 않았고 서양에서는 종교가 권력을 독점했기 때문에 전쟁과 권력 그리고 종교의 관계는 필수불가분의 관계가 될 수밖에 없었다. 원칙적으로 종교와 법은 하나였고, 법은 전쟁범이었던 것이다. 종교는 군법의 성격을 띠었고 종교와 법은 칼로 지키는 것이었다.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한뿌리인 구약은 곧 전쟁의 역사서 이기도 한 셈이다. 신의 왕국이 오지 않는다면 이 세상에 신의 왕국을 건설하려는 그들의 임무는 여전히 현재진행형 인듯 하다. 하지만 성전으로 꾸민 전쟁의 실체는 순수한 신앙심이 버려진 후안무치의 탐욕과 인간 멸시의 현장일 뿐이었다. 이 세상의 평화가 바로 종교의 사명일 텐데 종교적 전쟁이 이 세상의 평화에 기여한 적이 없다는 사실은 참 아이러니하다.

전쟁은 국가에 의해, 국가를 위해, 국가에 맞서 실행되는 조직화된 폭력이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종류의 폭력이 존재하지만 그 대부분은 전쟁 이라 불리지는 않는다. 전쟁은 수천 년에 걸쳐 여러 민족이 접촉하도록 했고, 낯선 사람 다른 민족과의 정신적 접촉을 강요했다. 이렇게 본다면 학문의 역사가 폭력의 역사이기도 했다. 그렇게 접촉하면서 세상을 우리 와 남 으로 나누고 선 과 악 으로 나누고 가치 있는 사람 과 가치 없는 사람 으로 나누는 식의 분류는 결국 내가 아닌 남에게서 우리가 아닌 그들에게서 인간적 권리를 박탈해 버리는 결과를 낳으며, 설사 그렇지 않다 해도 상대를 나보다 열등한 존재르 취급하게 했다. 이러한 분류는 전쟁 속에 더욱 확산 되었다. 제3세계 국가들끼리 갈등이 잦은 것도 열강들이 자기들 멋대로 그어 놓은 국경선 때문이다. 식민지였다가 독립된 나라들도 허울 뿐인 독립이었을 뿐 지배층은 바뀌지 않았다. 우리편과 남의편으로 갈라진 현실을 지원하는 은폐된 식민 정책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전쟁은 적을 인간으로 보지 않을 때 전면전의 양상을 띠게 된다. 각 집단이 상대 집단 구성원을 최대한 많이 죽이려고 하는 이유는 내전 이후 수적 우세를 차지하기 위해서다. 따라서 내전은 대량 학살로, 종족 말살로 치닫는 경향이 강하고, 만약 내전이 끝까지 갈 경우에는 집단의 존립 자체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 아프리카에서 계속되는 내전의 모습을 '덩치 큰 두마리 살진 고양이가 떠난 지금 쥐들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라는 비유적 표현이 너무도 적절하게 읽혀졌다. 더구나 내전의 실제적 원인이 자원 즉 경제적 이유 때문이라는 것은 더욱 끝이 보이자 않게 한다. '전쟁은 전쟁을 낳는다. 전쟁은 사회라는 신체에 전이되는 암과 같다' 라는 저자의 표현에 저절로 공감이 된다.

테러리즘은 냉전 종식과 더불어  시작된 전 세계적인 질서 개편에 따른 한가지 현상이라고 한다.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는 과정에는 무질서가 따르기 마련이고, 전통적인 국가 간의 전쟁이 일어나던 시대는 지나갔지만, 테러단체들은 세계화의 부산물인 것이다. 구시대의 국가 안전이 무너지고 자본주의 시장이 세계로 보급되는 과정에서 나온 뜻하지 않은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세계가 현대화 된다 해도 그러 인해 사회가 동일화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다양한 현대성 이 존재할 것이다. 각기 다른 형태로 현대적인 다양한 정부와 생활 방식들이 평화롭게 공존 할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세계의 탈국가화는 전쟁의 탈국화와 궤를 같이 하고, 전쟁은 민영화되어 군사 기업의 용병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에서 돈이 벌리는 장사는 멈추어지지 않을 것인데?!

모든 전쟁의 배후에는 경제적 이해관계가 숨어 있기에 전쟁은 '밥그릇 싸움' 이라고 할 수 있다. 땅과 지하자원, 시장이 걸린 중요한 사업인 것이다. 군대를 폐지하는 것이 세계 평화를 앞당길 수 없고, 평화주의만으로는 평화가 유지될 수 없다. 평화를 사랑하는 국가는 평화를 원치 않는 국가에 영락을 맡기는 꼴이 될 뿐이다. 저자가 말하는 해법은 어쩌면 약간 허무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저자는 평화가 유지되려면 평화를 사랑하는 국민이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평화도 국민이 그것을 인정하고 열광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전쟁을 원치 않는다면 자연히 전쟁도 사라질 것이니, 이런 평화를 향한 민주적 의지를  심기 위해서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평화는 하늘에서 그저 떨어지는 산물이 아니기에 민주적 제도, 가족, 학교, 종교단체, 정당, 기업, 문화단체 등이 나서서 평화 교육에 앞장서야 한다는 것이다.

전쟁은 정치의 세계에서 가장 잔인한 의지 표명, 달리 말해 정치의 파산 선고라는 저자의 표현에 공감한다. 저자가 정리하는 전쟁의 원인은 첫째, 전쟁은 천연자원이 매장되어 있는 땅에서만 자라는 열매라는 것. 둘째, 서구의 부자나라들이 제3세계에 현대화의 압력을 행사하고 급진적 변혁을 강요하기 때문이라는 것. 세째, 환경, 더 정확하게 말해 급속도로 악화되고 있는 환경 조건도 전쟁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평화에도 연습이 필요하다며, 자신의 이해관계를 관철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전쟁은 공격자의 승리로 끝난 비율이 20퍼센트에 불과하다는 것으로 전쟁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한다. 전쟁 극복은 국경의 극복을 통해서 가능하므로, 평화를 위한 모두의 일상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민주주의 교육, 다시 말해 타협의 교육이 필요한 때라고 다시한번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책은 마무리 된다.

무거울 수 밖에 없는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어렵지 않게 읽히는 책이었다. 책 한권으로 어떤 큰 해법을 얻을 수는 없겠지만, 결국 중요한 건 후세대의 교육이라는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는 해법에 조금은 아쉬우면서도 ,누구나 가능한 방법이기도 하므로 그러한 인식이 확산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과거에서 잘못을 배우고 현실에서 고쳐나가며 미래를 만들어가는 것도 인간의 본성이므로 평화의 시대도 점점 더 가능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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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의 글쓰기
최병관 지음 / 지식여행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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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책은 과학자나 이공계 학생들, 그리고 과학기술계에 종사하거나 과학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쓰여진 책이다.

저자가 과학자들을 대상으로 글쓰기 수업을 진행하면서 느낀 것이 과학자들 중에는 글쓰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이들이 체계적으로 글쓰기를 배울 기회가 없었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과학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실용적인 글쓰기 책을 쓰기로 마음먹고 무엇보다 저자만의 경험을 담은 책을 출간하고자 이 책을 썼다고 한다. 


글쓰기 라고 하면 문과생들이나 하는 일이고, 연구와 실험이 중심인 과학자들은 글을 못 써도 상관없다는 일종의 통념이 있어왔다. 과학자중에서도 글쓰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은 타고난 재능이라고 여겨졌다. 그러다 보니 아예 글을 쓸 생각을 하지 않고, 글쓰기에 대해 배우거나 연습해보려는 노력도 하지 않아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이 생기고 결국 글쓰기를 싫어하게 된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다행히 글을 쓰는 과학자들이 늘고 있다.


과학 글쓰기는 소설이나 시, 희곡 등 문학적 글쓰기와는 달리 타고난 재능보다는 집중적인 훈련이나 학습을 통해 방법이나 기술을 습득할 수 있다고 한다. 글재주가 부족한 과학자라 하더라도 글쓰기 학습을  통해 얼마든지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다. 과학자의 글은 문학이 아니라 실용적인 글이기 때문이다. 과학 글쓰기는 객관적 사실을 독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정확하게 표현하면 된다.


과학자들은 책을 통해 대중의 지적 욕구를 채워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과학자들이 책을 써야 대중들이 과학자를 기억하고 그 사람의 연구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된다. 과학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자신의 연구 성과를 대중과 소통하고 널리 알려야 하는 시대이다. 과학 글쓰기는 과학자로서 그동안 사회로부터 받은 혜택을 돌려줄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과학자로서의 책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들만의 리그가 아닌 대중과의 융합을 위해서라도 과학자가 쓴 책은 더 나와야 한다.


무엇을 써야할지 막연해 하는 과학자들에게 저자가 해주는 조언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들이다.

과학자니까 자신이 연구한 분야를 쓰면 되고, 연구한 내용들 중에서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가지고 생활에 밀착되어 있는 주제들을 다루면 된다고. 하지만 아무나 쓸수는 없는 과학책, 과학자가 쓸 수 있는 과학책을 쓰면 된다고.

하지만 과학적 사실을 다루면서도 전문적이지 않게 쓰라고 하니 또 막막해할 과학자들을 위해 저자는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조언한다.

스승으로 삼을 법한 과학 글쓰기 선배들을 소개하고, 짜임새에 대해 설명하고, 그림과 도표를 충분히 활용하며, 스토리로 엮으라고 얘기 한다. 자신만의 경험을 생각하면 자신만의 스토리는 생각보다 많을 수 있다. 또한 과학자는 수업을 하는 경우가 많으니 수업때 말하듯이 편하게 쓰라고 얘기한다. 혼자가 어려우면 처음엔 공동저술을 해도 좋을 것이라고 응원한다.


이 책은 글쓰는 방법에 대한 책은 아니다. 글쓰기는 쓰고 수정하고 쓰고 수정하면서 나아지는 것인데 책을 읽은 이가 글을 쓴다 한들 저자가 첨삭해서 수정해줄 수 없는 바에야 구체적인 작법을 설명하기도 애매했을 것 같기도 하다. 이 책은 글쓰기를 해보라고 추천하는 책이다. 시작을 두려워하지 말고 시작해보라고 응원하는 책이다. 무엇보다 과학자들이 써온 다양한 책들을 소개하면서 충분히 읽을 참고자료들을 소개한다. 구체적인 글쓰기 방법을 배울 수는 없을지라도 책속의 책을 발견하는 것만으로도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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