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사적인 프랑스 - 프랑스인 눈으로 ‘요즘 프랑스’ 읽기 지구 여행자를 위한 안내서
오헬리엉 루베르.윤여진 지음 / 틈새책방 / 201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프랑스인 눈으로 '요즘 프랑스' 읽기

                                       

감히 말할 수 있다. 당신의 머릿속에 박제된 프랑스는 이제 버리시라. 부모가 가난해도 괜찮은 교육을 받을 수 있고, 어디에 가든 생산적인 정치적 논쟁이 있으며, 이민자를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나라는 없다. 여전히 당신이 프랑스를 이렇게 떠올린다면, 그건 수십 년 전 이야기다. 

 (표지 中)

 

뒷표지에 씌여진 인용구를 보며 생각했다. 내게도 프랑스가 저런 이미지로 있었나? 프랑스를 그렇게 배울 점 많은 선진국으로 부러워하고 있었나?

사실 나는 그렇지 않았다.

프랑스에 가본 적은 없지만, 가끔 보는 해외뉴스와 어쩌다 보는 책속의 프랑스 모습에서 우리가 배울점이 많은 나라라는 이미지를 느껴본 적은 없었다.

오래된 문화유산 건물이 많은 만큼 냉난방이나 엘리베이터를 설치할 수 없어 불편한 곳, 길가의 오물을 밟지 않기 위해 하이힐을 만들어 신고, 온갖 악취를 피하기 위해 향수를 만들어 뿌리던 나라, 혁명의 도시였으나 여전히 정치적 혼란이 가득한 나라, 불어에 대한 자긍심이 강한 나머지 불어를 모르는 외국인에게 불친절한 나라 로 알고 있었다. (사실 그래서 유럽여행 갔을 때도 프랑스 는 안갔다;;;)

앞표지에 씌여진 <우리는 프랑스에서 무엇을 배워야 할까?> 라는 문장을 보면서도, 우리가 프랑스에서 배워야 할 게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배운다기 보다는... 프랑스의 역사는 서유럽의 역사에서나 의미깊지 동양과는 관계없고, 경제대국도 아니고 선진기술국도 아닌데다가, 칸느영화제 같은 작가주의적 작품들만 좋아하는 귀족적 취향을 고집하려 하는 문화적 배타성을 가진 나라로서의 이미지가 더 강했다. 그리스나 이탈리아만큼 정치/경제 등 모든 면에서 거의 폭락하여 문화유산을 팔며 사는 정도는 아니지만 프랑스도 파리의 문화유산 말고는 딱히 떠오르는 게 없는 상태로 지속되다간 이탈리아 수준이 되는게 아닐까 싶은 걱정스러운 나라였다.

그런데 저자는 프랑스인으로서 한국에 살며 한국인들이 프랑스를 굉장히 우러러보는 느낌을 많이 받았었나 보다. 그래서 그렇지 않다고 프랑스의 속살을 있는 그대로 보여 주겠다고 이 책을 쓴것 같은데, 나는 프랑스를 선망의 대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인지 저자의 의도가 와닿지는 않았다. 다만 프랑스를 알고 싶었다. 비록 한 사람의 지극히 사적인 프랑스라 할지라도 프랑스는 궁금한 나라였다. 서양의 역사관련 책을 즐겨 읽는 내게 프랑스는 역사적인 의미를 강하게 지닌 나라이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읽고나서 프랑스에 대한 이미지가 훨씬 좋아졌다. 더욱 궁금해졌고, 무척 가고 싶어졌다. 내가 가진 부정적 이미지들도 (저자의 의도와는 정반대 입장에서의 시작이었겠으나;;;) 많이 옅어졌다. 프랑스는 생각보다 한국과 굉장히 비슷한 점이 많은 나라여서 읽으며 여러부분에서 놀랐다.

예전에 홍세화작가의 <나는 빠리의 택사운전사> 라는 책을 읽으며 처음으로 프랑스에 대해 호감을 느꼈었다. 조국에서 버려진 이방인을 품어주고 그 이방인이 프랑스인들의 '똘레랑스'를 느끼게 해준 것에 대해 멋지다는 생각을 했었다. 오랜만에 이 책을 통해 다시한번 프랑스 라는 나라에 대해 호감이 생겼다.

호감이 생기다 보니 잊었던 뉴스들도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파업이 잦지만 불편하다고 욕하지 않고 파업의 정당성을 용인해주고 불편함을 감수할 줄 아는 시민의식이 있는 나라, 대학이 평준화 되어 있어서 입시경쟁이 치열하지 않은 나라, 바칼로레아 라는 대입자격시험 문제의 철학성에 온국민이 관심을 갖는 나라, 그리고 혼외자녀에 대한 복지가 잘 되어 있는 나라.

어렸을 때부터 보통 '커플은 같이 산다' 는 인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프랑스인들이 동거를 자연스럽게 생각한다. 동거를 쉽게 할 수 있는 사회적인 배경도 있다. 우선 '결혼이 먼저' 라는 인식이 없다. 사랑하는 사이라면 꼭 결혼을 하지 않고도 함께 살거나 아이를 가지는 것을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분위기다. 그러다 보니 프랑스에서는 결혼하지 않은 커플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가 50퍼센트를 넘어서는 상황까지 왔다. 게다가 프랑스에는 팍스 라는 제도가 있다. 팍스는 이성, 혹은 동성 커플이 계약을 통해 결혼한 배우자와 거의 비슷한 지위를 법적으로 인정 받을 수 있는 '대안적 가족 결합 제도' 다. ... 매년 결혼하는 커플과 팍스로 맺어진 커플 수가 엇비슷할 정도니 지금은 꽤 보편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p. 53~54)

혼외 자녀에 대해 동등한 법적 지위와 혜택이 보장될 수 있다면 우리나라도 인구감소나 버려지는 세계최대해외입양수출국 이라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프랑스는 가정문화가 한국과 많이 비슷해 보였다. 부모자식관계나 가족간의 결속력이 개인주의적 문화와는 또 다르게 가족공동체분위기도 강해 보여서 신기했다. 프랑스 가정처럼 이 가족의 범위를 혼인외의 관계까지 넓힐 수 있다면 참 좋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랑스에서는 부모가 경제적으로 허락하는 한 자식을 많이 챙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릴 때뿐만 아니라 성년이 돼도 마찬가지다. 자식이 다른 지역으로 전학하거나 취직하는 등 특별한 사유가 없다면 부모 집에서 함께 산다. 일찍 독립하는 편인 미국 문화와는 확연히 다르다. 오히려 한국 문화에 더 가깝다. 다만 한국과 다른 점은, 자식이 독립해서 경제적으로 자립해도 부모님에게 용돈을 드리는 경우가 없다는 것이다. 한국은 부모에게서 많은 것을 받는 대신, 나중에 자식이 성인이 되면 이를 되갚는 방식인 것 같다. 하지만 프랑스에서 자식은 평생 받기만 한다. (p. 63)

진심 부러웠다. 한국의 가정이 자식을 빚쟁이로 만들고 있는 것을 들킨 것 같아 부끄럽기도 하고, 프랑스에서 자식은 평생 받기만 한다는 말이 진짜 너무 부러웠다.;;;

프랑스 여성 인권은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늦게 향상된 편이다.

맞벌이를 하더라도 실질적으로는 주로 여자가 가사를 병행하는 분위기였다. 여자들에게는 사회 진출의 기회가 생겼지만, 부담은 두 배가 돼 버린 셈이었다.

프랑스는 완벽한 평등 사회가 아니라, 여전히 평등 사회를 위해 노력하는 나라다.

프랑스 배우은 브리지트 바르도가 열렬히 식용견 반대 운동을 한 덕에 한국에서는 프랑스 사람들이 '동물권'에 굉장히 관심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원래 프랑스는 동물보호법이 잘 갖춰진 나라가 아니다. 반려동물 학대도 '다른 사람 앞에서만 하면 안 된다' 는 법이 있었는데,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학대하는 것까지 법적으로 막지는 않았다. (p. 72~80)

개의 배설물은 오히려 한국 사람들이 잘 치우고, 프랑스 사람들이 더 무심한 것 같다. 이건 아마 묘한 자존심 때문인 것 같다. 개의 배설물을 치우는, 그러니까 '시중'을 드는 게 못마땅한 것이다. 도대체 누가 누구의 주인인지 모르겠다는 느낌을 받는 모양이다. 반면 한국에서는 지금까지 치우지 않은 개의 배설물을 딱 한 번 본 정도다. 프랑스에서는 길을 가다 보면 방치된 개의 배설물을 쉽게 볼 수 있다. (p. 340)

 

역사가 오래된 나라일 수록 가부장적 문화가 많이 남아있는 것 같다. 프랑스처럼 역사와 문화가 찬란했던 나라일 수록 기존 세력이 오래 유지되온 곳일 수록 오히려 여성인권과 동물권등 다른 소수에 대한 권리는 그닥 발전하지 못 했다. 저자가 여러번 강조하던데, 프랑스 남자는 그리 로맨틱 하지 않다고 한다. 저자가 보기엔 한국 남자들이 훨씬 로맨틱한 행동을 많이 한다고 ㅎㅎ

나는 보신탕을 먹지는 않지만, 브리지트바르도는 좀 유난맞다고 생각하곤 했다. 나름 우리 고유의 식문화 아닌가? 동남아건 중국이건 각 나라의 문화에 따라 희한해 보이는 음식을 먹는 건 당연한 거다. 서양 음식도 우리가 봤을 땐 이상한게 많다. 그런데 그 여배우는 한국만 뭐라고 한다. 거참...

내 나이 또래인 30~40대 프랑스인들은 외국 문화의 영향을 상당히 많이 받았다. 어린 시절 우리 집이 딱 그랬다. 당시 우리 집에는 '누누(베이비시터)'가 두 명이 있었는데, 오전 누누는 일본인이었고, 오후 누누는 미국인이었다. 그 '누누'란 사람을 말하는 게 아니다. 오전 누누는 일본 애니메이션, 오후 누누는 '미국드라마'였다. TV에서 오전에는 주로 일본 애니메이션을 방영해 주고, 오후에는 미드를 방영해 줬기 때문에 우리는 그 프로그램들이 '누누'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p. 117)

문화의 나라 프랑스에서 TV프로그램들은 거의 일본만화와 미드였다니 충격이었다. 게대가 영화의 나라 프랑스에서 '스크린쿼터제'로 자국의 영화상영을 보호해야 할 정도로 영화산업에서도 밀리고 있다고 한다. 영화뿐만 아니라 라디오에도 '음악쿼터제'가 있어 자국의 음악을 일정시간 틀어야 할 정도로 외국음악들이 더 많이 틀어진다며 한국에서는 라디오에서든 카페에서는 한국의 대중음악이 대부분 나오고 있는 것에 저자는 오히려 감탄을 하고 있었다.

'샹송' 이 프랑스 고유의 음악이라고 알고 있엇는데, '샹송'은 프랑스어로 그냥 '노래'라는 뜻이라고 한다. 프랑스 사람들에게 '샹송을 좋아한다'고 말하면 무슨 뜻인지 몰라 어리둥절해 할 것이라고;;;

최근 프랑스 서점에 가 보면 예전보다 자기계발서가 꽤 늘어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원래 프랑스 사람들은 자기계발서를 잘 읽지 않았는데, 최근에는 그 분야 독서 인구가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여전히 가장 많이 팔리는 분야은 문학이다. 전체의 22.7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 (p. 144)

프랑스에는 마을마다 작은 서점이 많다고 한다. 책선물도 많이 하고 성의있는 선물이라는 생각이 있어 더욱 좋아한다고 한다.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고 대화를 많이 하는 분위기는 정말 부러웠다. 가족과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에 보드게임을 주로 하며 건전하게 노는 것도 신기했다.

프랑스는 한국과 비교하면 치안이 그다지 좋지 않다. '프랑스는 안전하지 않다'는 느낌이 항상 있다. 한국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프랑스 사람들이 한국에 오면 다들 한국을 안전한 나라라고 생각할 것이다. 서울에서는 밤늦게까지 거리를 돌아다녀도 상대적으로 안전한 편이다. 프랑스에서는 특정 지역에 가거나, 늦게 돌아다니거나, 심지어 특별히 본인 잘못이 없어도 좀 위험한 사람을 마주치면 신변에 위협이 가해지는 경우가 많다. (p. 157~158)

이 책 뿐만이 아니라 다른 책에서도 종종 한국이 안전하다는 외국인의 느낌을 여러번 읽은 적 있다. 카페에 핸드폰을 놓고 화장실에 가도 훔쳐가는 사람 없고, 길거리에 소매치기도 없고, 정전이 됐을때 털리는 가게도 없는 한국이 서양인들이 봤을 땐 정말 안전해 보인다는 것이 신기했다. 우리에게 너무나 당연한 일상이 그들에게 당연하지 않다는 것은 ㅎㅎ. 그러고 보니 영국에 갔을 때 레스토랑에서 지인들과 저녁을 먹는데 습관처럼 핸드폰을 물컵 옆에 두고 식사를 하는 내게 현지에 사는 지인이 핸드폰을 가방에 넣으라고 했었다. 핸드폰 주인이 앉아 있어도 그냥 집어가는 사람들이 많다고;;;

데이터를 살펴보면 중산층 이상 가정에서 자란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는 별로 떨어지지 않았다. 반면 저소득층 학생들의 학력 저하가 두드러진다. 빈부 격차가 심화됐기 때문이다. 원칙적으로 학생들은 부모 소득과는 관계없이 동일한 교육을 받으며 자라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p. 182)

한국 사람들은 프랑스 교육 제도를 너무 좋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학생들을 존중하는 수업이 이뤄지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 학생들은 열띤 토론을 벌인다고 상상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정말로 전혀 그렇지 않다. 수업 분위기는 한국이랑 비슷하다. 학생들은 대체로 수업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프랑스 학생들도 서로 눈치를 보면서 선생님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으려 한다. 아예 수업에 관심이 없는 경우도 많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오랫동안 학교에 있어야 하기 때문에 수업을 지겨워한다. (p. 191)

원칙적으로는 모든 대학이 평등한 수준의 교육을 제공하고 대학 간의 위계가 존재하지 않지만, 어디까지나 '위니베르시테'끼리의 이야기다. 엘리트 교육에 해당하는 특수 대학 '그랑제콜'은 입학 시험을 본다. 그랑제콜은 프랑스 교육부의 정식 교육기관이 아니다. 엘리트 교육을 지향하는 대학 중 협의회에 가입한 학교들을 일반적으로 그랑제콜로 인정한다. 그랑제콜은 입학하려면 프헤파(그랑제콜 입시 준비반)를 거쳐야 한다. (p. 211)

등록금이 거의 무상에 가까운 위니베르시테와는 달리, 그랑제콜은 학비도 매우 비싸고 긴 기간 동안 공부해야 하기 때문에 저소득층 학생들은 입학을 시도할 생각조차 못한다. (p. 218)

 

저자는 한국의 학생들에게는 아직 신분상승?!의 사다리가 존재하지만, 프랑스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얘기한다. 한국사회가 더 기회가 많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대학은 평준화가 기본이긴 한데 아예 신분상승이 가능한 몇몇의 특수대학이 있고 그 대학을 나온 사람들이 사회의 엘리트층이 되는 것이 고착화 되어 있었다. 그야말로 있는 자들의 그들만의 세상이 구분되어 있는 것이다. 한국보다도 오히려 더 명확하게 선을 긋고 있는 것이다. 솔직히 좀 놀랐다...

프랑스에서 미국식 이름은 가난하고, 상급 교육을 받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신분 상승을 하겠다는 야망조차 없는 사람들의 표상이나 다름없다. 반면 일반 바칼로레아를 딴 학생들의 이름에서는 '가랑스' 콘스탄스' 같은 전통적인 프랑스 부르주아 이미지의 이름이 많이 나왔다. 바칼로레아 점수로 이름을 분류해 보았을 때도 마찬가지 결과가 나왔다. 높은 점수로 통과한 학생들 집단에서는 부르주아적인 이름이, 낮은 점수를 얻은 집단에서는 다국적 이름이 나왔따. 인종 관련 통계는 금지되어 있고 이력서에도 집안 배경을 적지 않지만, 사실상 이름으로 그 사람의 환경을 추측할 수 있기 때문에 이름으로 인한 차별 역시 엄연히 존재한다. (p. 217)

서양의 대부분은 이름을 돌려가며 쓴다. 우라나라 처럼 이름에 대한 창의성이 존재할 수 없다. 이름으로 정해진 단어들이 아예 있는 식이다. 그래서 같은 이름도 많고 1세2세식의 이름이 있게 된다. 이름은 곧 가문을 드러낸다. 귀족계급이 없어진지 오래지만 서양에서는 이름만으로도 그 사람의 출신이 어느 정도 드러날 수 밖에 없다. 역시 한글이 짱이다. ㅎㅎㅎ

정치에 대한 관심과는 달리 선거 때 투표율은 상당히 낮다. 정말로 정치에 관심이 많다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정치에 염증을 느끼고, 지친 사람이 많아서 그런 것 같다. 이런 사람들은 옛날 노인들이 모이는 동네 바 같은 곳에 모여 앉아 정치를 비판하면서도 정작 투표를 하러 가지는 않는다. 자신과 뜻이 비슷한 정당에 당원으로 가입하는 사람들도 흔치 않다. 이미 정치에 지치고, 상황이 더 나아질 거란 희망을 품지 않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p. 240)

다른 나라 사람들과 얘기해 보면 프랑스 사람들 다수가 좌파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실제 다수를 차지하는 건 '말하지 않는 우파'다. 보수 성향을 띠고 있지만, 의견을 표현하지 않을 뿐이다. 그래도 젊은 사람 중에는 좌파가 많은 편이지만, 프랑스는 고령화가 진행된 '늙은 나라'이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보수의 나라가 됐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이미 가진 것이 많고, 자기 손에 쥔 것을 잃을 까봐 우파를 지지한다. 젊었을 때는 좌파를 지지했다가도 나이가 들면 변하기도 한다. (p. 256)

 

실업율이 높은 경제에 불안해하고 음모론과 가짜뉴스가 판을 치고 민생에 관심없는 정치인들에게 환멸을 느끼고 있는 것은 프랑스와 한국이 무척 비슷해 보였다. 나라가 늙으가며 우파가 되어간다는 것이 몹시 슬프다...

프랑스의 행정 서비스는 정말, 정말 최악이다. 그야말로 '지옥같은 행정'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이유를 들어보면 누구나 납득할 것이다. 우선 일 처리가 너무 느리고, 행정 기관의 운영 시간도 짧다. 게다가 행정기관이 너무 많고 복잡하다. (p. 285)

원래 부지런한 사람이더라도 프랑스 공무원이 되면 달라진다. 남들은 일을 안 하고 미루는데, 혼자 일 처리를 다 하다 보면 부당함을 느끼고 지레 포기하게 된다. 결국 적당히 게으르게 일하면서 휴가나 즐기는 방식으로 바뀐다. (p. 286)

행정절차가 불편한 것은 단지 행정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 때문만은 아니다. 제도 자체가 잘 정비되어 있지 않아 시민들이 몇 번씩 일 처리를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p. 291)

프랑스 경찰은 누구에게나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요구하고 검사할 수 있다. 모든 나라의 경찰에게 이런 권한이 있는 것은 아니다. .. 나는 단 한번도 신분증 검사를 당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아랍계 사람들은 정말 빈번하게 당한다. .. 모든 경찰들이 인종 차별주의자인 것은 아닌데, 일단 극우파 비율이 높기 때문에 앞서 말한 부조리한 현상이 나온다. 그래서 백인인 프랑스 사람들조차도 경찰에 대해서는 대체로 나쁜 인식을 가지고 있다. .. 일반적으로 경찰보다는 군인에 대한 이미지도 좋고 더 친숙하다. (p. 295~299)

 

프랑스에서 행정공무원은 갑이고 민원인은 을이라고 한다. 공무원이 제대로 처리를 해주지 않으면 민원인은 달리 해결할 방법이 없다고 한다. 시스템 개선도 원활하지 않아서 대기표를 받기 위해 길가에 매트리스를 깔고 하염없이 기다리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동사무소에 가서 소리만 질러도 상급공무원이 나오는 우리네와 무척 달랐다. 경찰과 군인의 이미지에 대한 부분을 읽으며 군부독재를 겪지 않은 역사를 가진 나라라는 것이 이렇게 다른 이미지를 가져올 수 있구나 싶기도 했다.

우리 부모님 세대의 프랑스인들은 왜 젊은 세대가 안정적인 삶을 선택하지 않는지 의아해 한다.

하지만 우리 세대는 우리가 은퇴할 나이가 되었을 때 프랑스라는 국각가 지금 수준의 삶을 보장해 줄 거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지금도 이미 프랑스의 국제적 지위는 많이떨어졌고, 더 이상 세계를 선도하는 압도적인 강대국이 아니다. 앞으로 더 잘할 것이다? 세계적인 경쟁에서 살아남아 앞으로는더 나아질 것이다? 프랑스 청년들에게 그런 희망이나 신뢰가 없다. 국가를 믿기 보다는 그냥 우리끼리 알아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p. 310)

 

노년세대와 장년세대 그리고 청년세대의 생각의 차이가 우리네와 흡사하여 외국이건 우리나라건 거기서 거기구나 싶기도 했다. 이걸 안심해야 하는 건지 우울해야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대기업들은 국가에 받은 혜택에 책임감을 가지고, 국가와 국민들에게 기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프랑스 대기업들은 그럴 생각이 없는 것 같다. 항상 이윤만을 좇아서 인건비가 싼 나라에 공장을 짓고, 프랑스 내에서는 사람들을 고용하지 않는다. .. 한국 대기업을 보면, 상대적으로 프랑스 대기업보다는 사회 공헌을 더 많이 하는 것 같다. 설령 기업에서 스스로 원해서 하는 게 아니라 규제 때문이라고 해도 말이다. 일단 프랑스 기업과 비교했을 때, 자국 내에서 더 많은 고용을 책임지고 있다. 프랑스 대기업들은 애국심 없는 자본가 마은드에 가깝다. (p. 380)

타인의 시선으로 우리를 본다는 것인 이렇게 큰 차이점을 느끼게 한다. 우리나라 대기업이 훨씬 낫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한국인들은 뭐라고 할까? 그렇다고 편을 들어줄까? 아니라고 프랑스가 낫다고 반박을 할까? 좀 궁금해진다. ㅎ

예전에 내가 <반지의 제왕>을 읽었을 때, 거기에 나오는 호빗족을 보면서 꼭 프랑스 사람들 같다고 생각했다. 익숙한 자기 마을에만 머물로, 가 봤던 곳에만 가려는 습성이 정말 닮았다. 게다가 뭔가 열심히 하지 않고 즐겁게 먹고 마시는 모습까지 더하면 딱 전통적인 프랑스 사람이다. (p. 397)

나는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정말 좋아한다. 책도 좋아하고 영화도 좋아한다. 북유럽신화를 바탕으로 구성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엇는데, 프랑스 인이 자기네 나라사람들을 호빗족 같다고 말하니까 신선했다. 일단 체격차이가 너무 나서 ㅎㅎ 프랑스에 대한 정말 새로운 감흥이었다.

유럽의 역사는 굉장히 얼키고 설켜 있어서 국가별 역사로 떼어 놓기가 어렵다. 프랑스의 역사라고 따로 떼어 배우기 보다는 유럽의 세계사가 곧 프랑스의 역사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 유럽의 역사에서 민족과 국가는 큰 의미가 없었다. 워낙 섞여서... 지금의 국경은 2차대전 이후 정해진 것이다. 그 이전에 유럽은 국가단위 보다는 여전히 마을단위 공동체단위의 삶을 영위하는데 익숙하던 곳이었다. 이 책에서 프랑스 에 대한 곳곳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여전히 마을단위의 문화를 느낄 수 있다. 그점은 우리와 상당히 다르다. 하지만 수도 파리 중심의 나라 프랑스, 정치경제적 위기 속 청년세대의 고민, 교육제도의 불합리 속에 엘리트층의 세습 등은 우리네와 너무나 닮아 있어서 유럽같지 않고 그냥 가까이 있는 나라처럼 느껴졌다. 비슷하다는 느낌은 바로 호감으로 발전하여 프랑스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 일으킨다. 나중에 프랑스에 가게 된다면 훨씬 친근한 마음으로 프랑스사람들을 바라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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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이 정치를 꼭 알아야 하나요? - 세계적인 정치철학자 미리암 할머니가 들려주는 교과서 밖 생생한 정치 이야기
미리암 르보 달론 지음, 이정은 옮김 / 글담출판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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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정치철학자 미리암 할머니가 들려주는 교과서 밖 생생한 정치 이야기

학교생활, 배우고 가르치는 일, 친구 관계, 직업찾기... 청소년의 삶 모든 게 정치예요!

교과서 속 주요 정치 개념을 대화로 쉽게 풀어낸 청소년 교양서 (표지 中)

 

제목만 보고 머리를 절레절레 흔드는 청소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정치? 하면서 어른들이 하듯 욕부터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실물 책을 보고 나면 읽어볼까~ 싶은 생각이 들 것 같다.

이 책은 시집크기의 작고 얇은 책이다. 즉, 책 사이즈 부담없고, 대화체로 씌여있어서 읽기에 부담없고, 아는체 하기 딱 좋은 핵심들만 뽑아 놓은 책이라 청소년의 지적 교양 수준을 은근히 올려 줄 수 있는 책이다 보니 이 정도쯤이야 하며 손에 잡을 법한 책이다.

저자는 한나 아렌트와 비견될 만큼 유명한 여성 정치철학자 라고 한다. 한나 아렌트는 죽는 날까지 현실정치에 치열한 목소리를 냈는데, 이분은 그 뒷 세대라서 그런지 2006년부터 어린이를 위한 책을 종종 펴내고 계신다고 한다. 이 책은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큰손녀와의 대화에 힘입어 기본 틀을 잡게 된 책인 듯 하다. 아는 것 많고 친절한 할머니에게 찬찬이 설명듣는다는 느낌을 받으며 읽게 되는 책이다.

이해할 수 없는 게 있어요. 사람들은 끊임없이 정치에 대해 말해요. 굉장히 중요한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요. 그런데 동시에 정치에 대해서 나쁜 이야기만 해요. 정치가들은 '부패'했고 시스템 안에서 기계적으로 일할 뿐 사람들의 삶은 전혀 돌보지 않는다고요. 우리는 이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거나 고칠 수 없는 것처럼 보여요.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왜 정치를 알고 관심을 가져야 하죠? 차라리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고 그냥 우리 삶만 챙기며 사는 것이 낫지 않나요? (p. 15)

본문 1장 첫번째 질문부터 그야말로 뼈때리는 질문이다. 청소년들이 혹시나 하며 책을 펼쳤는데 역시나 하며 책을 덮지 않도록 첫번째 질문부터 훅 들어온다. 정말 궁금하지 않은가? 어른들도 언론에서도 항상 욕만 퍼붓는 정치에 대해, 청소년들은 잘 모름에도 불구하고 왠지 피곤하고 지치는 느낌이 드는데, 어른도 아닌 청소년이 왜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 이 첫번째 질문에 관심이 간다면 이 책은 끝까지 단숨에 읽어내릴 수 있다. ㅎㅎ

우리는 함께 살잖아요. 또한 우리는 모두 자유롭고 동등하기 때문에 함께 행동해요. 이런 게 정치라면 어째서 대장이 필요하지요? 왜 그 사람들한테 복종해야 하지요? 누가 그 사람들한테 명령할 권리를 주지요? 그 사람들의 권력은 어디까지인 거예요? (p. 24)

직접민주주의라 불리는 고대그리스에서 부터 시작된 민주주의에 대한 설명은 간접민주주의라 불리는 현대의 민주주의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그리고 정치와 정치가를 구분할 수 있게 하고, 정치가가 절대권력자가 아님을 이해하도록 해준다. 너무나 당연한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어른들도 종종 잊어버리는 듯 하다. 그들이 절대권력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권력은 사물이 아니라 관계란다. (p. 31)

20세기의 위대한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이렇게 말했단다. "권력은 본질적으로 종속 관계가 아니다" 라고 말이야. 권력은 서로가 합의한 방식으로 함께 행동하는 인간의 능력을 의미해. 어느 한 사람만의 권력이 아니라 '공동'의 권력이지. 누군가가 권력자의 위치에 있다거나 어떤 사람이 권력을 쥐거나 또는 행사한다고 말할 때, 그건 그 사람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그들의 이름으로 행동할 권리를 부여받았음을 뜻해. 이런 맥락에서 보면 권력에 대한 정의는 종속적이지 않고 수평적이지. 즉 동등한 사람들 사이의 유애, 관계를 말하는 거야. (p. 36)

그런데 우리는 왜 나눔의 뜻을 잊어버리고 종속 관계로만 권력을 떠올리게 된 걸까요? (p. 39)

 

작고 얇다고,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소녀와 할머니의 대화라고 얕고 어설픈 지식을 알려줄 것이라는 걱정은 넣어두자. 고대의 역사와 근대의 철학까지 시의적절하면서도 해박하게 요점만 간단히 설명해 준다. 멋진 할머니시다. 중간중간 손녀의 질문들은 한결같이 날카롭고 예리하다.

더 이상 우리 인간이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면서 세상은 과학적이고 수학적이며 무한한 세계로 바뀌었고, 인간은 과거의 기준을 잃어버렸어. 고대 그리스인이 살던 예전 세상은 사라졌지.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도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인 세계가 온 거야. 자연히 인간도 더 이상 중심이 아닌 자연 질서의 한 위치로 편입되면서 이제 정치적 생물로 생각되지 않았어. 그래서 고대 그리스인들이 이상적이라고 여겼던 도시국가는 더 이상 인간이 자신의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사회가 아니게 되었지. 결국 인간은 살아남기 위해 서로 연합할 수밖에 없는 개인으로 인식되기에 이르렀어. (p. 50)

정치는 인간의 역사속에 생겨났다. 정치라는 말도 개념도 고대에서 생겨났다고 하지만, 기원후부터 중세라 불리는 시기에는 의미가 없어진 말이었다. 왕정과 신정이 권력의 중심이었을 때의 정치는 정치가 아니었다. 하지만 계급과 종교관련된 예민한 부분을 굳이 언급하지 않고 짧고 굵게 사회과학적으로 정치개념의 변화를 설명하는 방식이 청소년들이 읽기엔 오히려 명료해 보여서 좋았다.

왜 사법부는 행정부나 입법부처럼 권력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권위라는 말을 쓰지요? (p. 73)

그랬나? 사법부는 권력이라 하지 않고 권위라고 썼던가? 지금 우리나라는 사법부가 휘두르는 권력문제로 난리중인데;;;

민주주의는 사회가 변화하면서 그에 맞춰서 조금씩 달라진단다. 그래서 우리는 사회에 맞는 새로운 방식, 그러니까 민주주의의 전제가 되는 커다란 원칙에 더욱 잘 들어맞고 적합한 행동과 실천 방식을 만들어 낼 수 있단다. (p. 92)

모든 제도는 항상 당대의 현실에 맞게 변하기 마련이다. 정치도 민주주의도 마찬가지다. 민주주의는 변화해 왔다. 지금의 민주주의 현실은 어떤지, 어른과 청소년의 생각의 간극이 얼만큼일지 문득 궁금해진다.

오늘날 민주주의 지도자는 아주 까다로운 상황에 처해 있단다. 옛날 지도차처럼 신권을 부여받은 존재도 아니고, 개인숭배의 대상이 되는 독재자나 전체주의의 우두머리도 아니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을 결집할 만한 어떤 특정한 이미지를 보여 주어야 하거든. (p. 102)

읽을수록 청소년이 아니라 어른이 읽어야 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들게 하는 대목이 많다. 오늘날 민주주의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리더십은 어떠해야 할까? 평범하면 뽑히지 않거나 뽑혀도 일반인과 뭐다르냐고 욕할테고, 카리스마가 잘못 넘치면 오만하고 독불장군같다 욕할테고, 유순하고 평화로와 보이면 이리치이고 저리치이며 우유부단하다고 욕할텐데;;;

민주주의가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기를 기대하지만, 그것이 유지되려면 시민이 끊임없이 활동해야 해. 민주주의는 적극적이고 책임감 있는 시민을 요구한단다. (p. 123)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위험 중 하나가, 시민들이 현재 이루어지는 정치에 낙담하고 실망해서 아무 약속이나 늘어놓는 선동가 같은 사람에게 아예 공동의 일을 맡겨 버리는 거야. 사람은 위기나 변화에 놓이면 주체적으로 생각하기보다는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그 사람만을 따르고 싶은 마음이 강해지거든. (p. 127)

 

민주주의 사회에 사는 시민이라면 모두가 알아야 할 내용이다. 너무나 당연한 내용인데 너무나 자연스레 잊고 사는 내용이다. 아무래도 이 책은 청소년 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많이 읽어야 할 것 같다.

교육은 단지 지식만 전달하는 일이 아니란다. 시민의 자질을 구축해 주지. 교육을 통해서 우리는 민주주의가 항상 다시 시작하는 것, 새로 만들어 내야 하는 것이라는 사실, 그리고 시민도 그 일을 해야 할 책임을 지고 있다는 점을 이해하게 돼. 이건 엄청난 에너지와 끈기를 요구하긴 하지만, 기운 빠지는 일은 전혀 아니란다! (p. 133)

이 책은 미래의 시민을 위한 책이다. 지금의 민주주의에 문제가 있고 지금의 정치에 불만이 많다면 더더욱 미래에는 보다 나은 모습으로 변화해 가야 할 텐데, 그 미래는 지금의 청소년이 만들어갈 시대이다. 그래서 이 책은 청소년이 알아야할 최소한의 하지만 진지하게 정치상식을 풀어내고 있다. 이 책의 내용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미래시민들에게 우리는 한수 배워야 할때가 올지도 모른다. 그때가 오기를 몹시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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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가해자들에게 - 학교 폭력의 기억을 안고 어른이 된 그들과의 인터뷰
씨리얼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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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폭력의 기억을 안고 어른이 된 그들과의 인터뷰

"세상에 착한 일진이 어디 있어요? 일진이면 일진이고, 좋은 애면 좋은 애지"

왕따였던 어른들이 전하는 '그날 거기' 그리고 '지금 여기'

같은 아픔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표지 中)

 

귀여운 표지그림과 편안한 느낌을 주는 색감을 가진 이 예쁜 책의 제목은 '나의 가해자들에게' 이다.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느낌으로 가슴에 꽂히는 이 제목이 한동안 책장을 넘기지 못하게 했었다. 표지만 한참을 쳐다보다가 책장을 넘겼고 책장을 넘긴 순간 앉은 자리에서 끝까지 읽었다. 그리고 또 한참을 앉아있어야 했다...

이 책은 '씨리얼' 이라는 유투브 영상 콘텐츠 제작팀에서 기획하여 올린 인터뷰 영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제한된 영상 속에 미처 다 담지 못한 인터뷰이 들의 내용을 가감없이 모두 실었다고 한다. 인터뷰이들의 목소리는 책속에서 그대로 글자가 아닌 소리가 되어 들려오는 듯 했다. 그래서인지 진솔한 그 말들이 한마디한마디 마음에 닿았다. 옆에 있었다면 손을 잡아주고 등을 어루만져주고 눈을 맞춰주고 싶었다.

학창시절 왕따였던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다. 그리고 그 어른들은 아직도 그 상처를 완전히 극복하진 못했다. 하지만...

더 이상 우리는 혼자가 아니니까 괜찮다고, 학생들도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려 주고 싶다고 했다. 한때 자기 자신이 너무 싫어 자살까지 생각했던 그들은 누구보다 따뜻하고 당당하며 용기 있는 어른이 되어 있었다. (p. 7)

영상 속에서 실제 자신의 얼굴을 공개하며 자신이 겪은 일을 고백하는 어른들의 모습에 수많은 댓글이 달렸다. 간혹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또 상처가 되는 댓들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공감과 응원의 말을 했고, 특히나 현재 학생들이 단 댓글은, 지금 현재 왕따를 당하고 있다는 댓글을 단 학생들의 말은 더 묵직한 아픔을 주었지만, 용기낸 어른들의 인터뷰를 보며 모두가 조금씩 나아지려고 노력하고 있는 듯 했다. 인터뷰를 한 사람들도 아직 다 아물지 않은 상처에 여전히 버겁지만 스스로의 용기는 누구보다 자기자신에게 큰 힘이 되고 있다고 했다.

그럴 때는 잠시 책을 덮고 마음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어린 나'의 등을 조용히 쓰다듬어 주며 "고생했어. 버텨 줘서 고마워" 라는 말을 건네길 바란다. 그게 바로 이 책을 세상에 내놓은 이유이기 때문이다. 이제, 충분히 사랑받지 못했던 어릴 적 나를 넘치게 사랑해 줄 차례다. (p. 8)

아직 그때의 자신을 넘치게 사랑해주지 못하고 있는 어른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냈다. 그들의 용기에 정말 힘껏 박수를 보내고 싶다.

"왜 하필 왕따를 다뤘어?"

이 인터뷰집은 그 어려운 말을 불특정 다수를 향해 꺼내기로 용기를 낸 출현자들의 이야기다.

출연자 10명을 포함한 설문조사 402명의 응답자 중 96퍼센트가 그때의 기억이 현재의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답했다. 소외를 경험한 이들 대부분이 무너졌던 존엄성이 회복되지 않은 채 어른이 되어 버린 것이다. 크고 작은 트라우마와 함께. 그렇다면 우리는 이 트라우마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

<왕따였던 어른들> 프로젝트는 그래서 시작됐다.

우리 자신을 치유하고 싶다는 마음도 마음이지만, 우리와 같은 일을 아무도 겪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더 컸다. 가해자가 학교 폭력을 멈추길 바랐다. 방관자들이 최소한 옳지 않은 것에는 목소리를 낼 수 있으면 했다. 만약 둘 다 불가능하다면 손이라도 내밀고 싶었다. 지금도 교실 책상 위에 엎드린 채 혹은 화장실에서 많은 시간을 보낼 친구들에게, 우리가 여기 함께 모여 있다는 걸 보여 주고 싶었다.

이 책을 통해 따뜻한 연대를 경험할 수 있길 바란다. (p. 12~15)

 

인터뷰를 진행한 프로젝트 기획자의 설명을 읽으며, 책을 접하기 전 유투브를 잘 안보는 나로서는 몰랐던 영상의 위력을 새삼 느끼며, 세상은 참 많이 변했구나를 느끼기도 했다. 모든 것이 영상이 되는 시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으로 완전해질 수 있는 시대에 책만 보는 것도 영상만 보는 것도 다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어쨌든, 20분여의 동상이 불러낸 큰 호응이 이렇게 책으로 나올 수 있는 시대인 것은 그래도 무척 다행인것 아닐까.

책은 크게 세 파트로 나뉜다. 여자반, 남자반, 방과후.

여자반에서는 여학생들이었던 어른들의 경험담이, 남자반에서는 남학생들이었던 어른들의 경험담이, 방과후에는 영상이 올라가고 난 후의 후기가 이야기 된다. 책을 다 읽고 영상을 찾아서 살펴보았다. 마음이 참.... 복잡했다...

"제일 듣기 싫은 게 "어릴 때 일인데, 뭐. 장난이었지. 뭘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냐" 이거랑 "그때는 상황상 어쩔 수가 없었어" (p. 53)

흔한 말들이 주는 상처 속에 흔한 사과의 말은 한번도 없었다. '미안하다' 는 단 네 글자의 말...

그래도 아직 힘든 게 있다면, 사람들 앞에서 얘기할 때 눈물부터 나는 거예요. 목소리도 떨리고. 내가 이야기를 하면 아, 사람들이 나한테 너무 관심을 갖진 않을까, 야유를 하진 않을까, 이게 참 두려워요. (p. 79)

이 책은 학교폭력을 당한 사람들의 인터뷰를 담은 책이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학교폭력 뿐만이 아니라, 약자였을때 당한 폭력에 대한 트라우마는 결국 비슷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학교폭력을 당하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폭력에 대한 상처가 있는 사람이 읽으면 여기저기서 많은 공감을 하게 된다.

솔직히 지금 아픔을 겪고 있는 친구들 스스로가 정답은 알 것 같아요. 단지 환경과 상황과 남들의 시건이 문제여서 그렇지, 분명 여기서 벗어나고 싶다거나 뭘 하고 싶다고 하는, 본인 스스로 정한 답들이 있을 거예요. 그러면 머뭇거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상처는 일단 생기면 오래가니까 본인을 먼저 생각했으면 좋겠고요. 그리고 꿈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꿈이 아니면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라도 괜찮으니까 둘 중 하나는 꼭 가졌으면 좋겠어요. 그게 삶을 살아가는 원동력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꼭 그랬으면 좋겠어요. (p. 217)

도망가고 싶으면 도망가도 돼요. 학교 안 다닌다고 안 죽어요. 이 친구들이 세상의 전부는 아니거든요. 도망간다고 해서 도망가는 게 아니거든요. 내가 나를 제일 먼저 생각하면 돼요. 나만 살면 돼요. ... 도망치는 게 아니에요. 피할 수 있다면 피했으면 좋겠어요. 꼭 맞서 싸워서 이기지 못한다고 문제 있는 사람이거나 약한 사람은 아니니까요. 그냥 현재 상황에서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일 뿐이죠. (p. 220)

 

내가 선택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을 선택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일단 나부터 살고 볼 일이다. 법을 어긴다거나 남을 해하는 일이 아니라면 어떻게든 일단 나만 생각해야 한다. 그래야 살 수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행동을 취한다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벗어나는 가장 핵심적인 일이다.

가해자들도 어떻게 사는지 안 궁금해요. 내 인생 이만큼 미치게 괴롭혔으면 됐지... 권선징악이 되면 좋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저주하겠죠. 이제 누굴 원망하고 증오하는 것에 지쳤어요. 그럴수록 나 자신만 더 힘들어지고 피폐해져서 그만뒀어요. 잘살든 말든 관심 없어요. 이런 생각을 하기까지 오래 걸렸죠. 오로지 '나'에 집중하며 살아가니 가능해지더라고요. 즐거운 일들, 하고 싶은 일들, 좋아하는 것들을 찾아가고 늘려 가니 나를 찾게 되고 채울 수 있게 됐어요. (p. 257)

심리서나 힐링서들을 읽어보면 대부분 비슷한 조언들을 한다. 가해자를 위해 용서하라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였던 나를 위해서 용서하라고... 하지만 그게 그리 쉽지 않다. 절대 용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용서까지는 할 수 없어도 가해자들을 지워내는 것 정도는 필요하다. 쓰레기봉투를 끌어안고 냄새나냄새나 하면서 괴로워하기 보다는 쓰레기봉투를 버려야 한다. 일단 이것만 해도 숨통이 트이고 남은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된다.

나는 학교폭력을 직접 경험하거나 간접적으로도 경험한 적이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친구가 몇명 안된다해도 적어도 학창시절을 보내던 그 당시에는 옆에 항상 친구들이 있었다. 그런데 조금더 꼼꼼이 기억을 해보니 나는 본적이 있었다. 중학교때, 쉬는 시간마다 반에서 늘 혼자 앉아 있던 아이를, 학교에서 단체버스 타고 놀러갈 때마다 옆에 앉기 꺼려하던 아이를, 어느날 학교에 안왔는데 누구도 그 아이가 왜 학교를 그만둔건지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을... 소문만 무성할뿐 직접 눈으로 학교폭력을 본적도 없고 왕따를 시키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생각해본적도 없었는데... 나는 방관자였던 걸까? ... 그저 별다르게 기억할만한 큰일한번 없이 소박한 학창시절을 보냈다고만 생각했는데... 내 주변에도 있었던 걸까? 피해자들이? 몰랐다고 해도 미안하고 알았다고 해도 미안한 일...

내가 자라던 때는 학교폭력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폭력이 자연스럽던 시대였다. 학생들 간의 폭력은 차치하고, 대걸레자루를 휘두르는 선생님들이 당연했고, 검문에 아무나 잡아가는 공권력이 당연했으며, 상명하복의 폭력이 당연하던 시대였다. 그래서인지 그때는 그렇게 학교폭력이 부각되지 않았던 것도 같다. 온통 폭력의 시대였고 그것이 당연하던 시대였다.

지금은 적어도 폭력이 당연한 시대는 아니다. 학교폭력이 공개되면 강력한 처벌도 가능한 시대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폭력을 당한 피해자의 상처가 작아지는 것은 아니다. 과거이건 현재이건 상처의 크기는 비교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미래의 상처는 똑같은 상처로 만들면 안된다는 것 아닐까? 상처가 없는 미래를 만든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 상처는 있을 것이다. 다만, 예방주사 혹은 처방약 정도는 만들어갈 수 있는것 아닐까? 그러기 위해서 함께 상처를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공감대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 책의 목소리를 들어봐야 할 것이다. 눈이 아닌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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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연의 로스트 타임 - 지연된 정의, 사라진 시간을 되찾기 위한 36개의 스포트라이트
이규연 지음 / 김영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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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연된 정의, 사라진 시간을 되찾기 위한 36개의 스포트라이트

참혹하고 추악하더라도 진실을 대면하는 것, 그것이 탐사 저널리스트의 일이다

무지와 무관심, 기만과 폭력으로 지체된 정의를 불러내기 위해 지옥에서 천국을 상상하는 탐사 저널리스트의 이야기 (표지 中)

 

 

나는 TV를 거의 보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 우리집 테이블은 정규방송만 나올뿐 유선티비나 케이블티비나 인터넷티비 같은 것이 아예 연결되어 있지 않다.

나는 기사를 자주 보지만 기자 이름을 기억하는 편이 아니다. 그래서인지 뭔가 후속기사를 기다렸다가 찾아본다던가 까지는 하지 않고 언론사와 기사제목을 봐서 내용을 훌어보는 정도로 사회소식을 접해 왔다. 그리고 그것이 잘못된 습관임을 이 책을 읽으며 반성했다.

책날개에 씌여있는 저자에 대한 소개글을 보면 저자는

탐사 저널리스트, 중앙일보 탐사기획 에디터, JTBC 초대 보도국장을 거쳐 현재 탐사기획국장으로 탐사 프로그램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제작 및 진행을 맡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 책은 그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나온 책이다. 나는 그 프로그램을 본적이 없지만, 보았다 할지라도 책으로 다시 읽는 것은 영상을 보는 것과 또다른 느낌이리라 생각한다.

저자가 말하는 이 책은

묻혀 있는 진실을 발굴하고 마지막 한 조각까지 짜맞추며, 공익 탐정으로 탐사보도의 길을 개척해온 한 탐사 저널리스트의 분투기이며 성장기다. 세상은 무관심으로 파괴된다. 직접 마주한 현장은 생각보다 참혹했고 그 곳에서 너무나 많은 사람이 울고 있었다. 밝혀진 진실이 우리를 할퀴더라도 그 진실은 확인하지 않은 의혹보다는 값지다.

그랬다. 이 책은 읽는 내내 마음이 할퀴어지는 책이었다. 아픈 책이었고 슬픈 책이었다. 하지만 읽지 않을 수 없었고, 읽어야만 하는 책이었다.

이 책은 머리만 알았던 동물의 발끝까지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었다. 코끼리 코만 봤던 사람에게 코끼리 전신을 그리게 해주는 책이었다. 그렇게 사회의 겉모습만 봐왔던 내게 속모습을 보여주는 책이었다. 이면을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었다...

표지에 써있듯이 책속엔 36건의 탐사보도의 내용이 실려있다. 그 내용들은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던 헤드라인을 거의 모두 포함하고 있었다.

조두순 사건, 대구 어린이 황산테러 사건, 버닝썬, 최순실, 세월호, 가습기 살균제, 루게릭병, 빈곤의 마을 난곡, 이영학, 황우석, 지존파, 5.18, 간첩사건, 평양, 북한식당 종업원 단체 탈북사건, KAL기 폭파사건, 방사능 피폭, 메르스, UFO, 미인도 진위논란, 화성연쇄살인, 전두환, 인혁당 사건 까지 제목을 보는 순간 하나같이 흡 숨이 막히는 사건들이었다.

모두가 알고 있는 그 사건들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는 것만큼만 알고 있던 나는,

기사가 뜨고 폭풍같은 반응이 들끓던 그 정점까지의 소식만 기억하는 나는,

그 후일담에 대해 너무 무지했구나 싶었다.

정점에서 뚝 끊긴 소식이후 오히려 처음보다 더 나락으로 떨어진 사람들의 눈물을 너무 몰랐구나 싶었다.

해결이 되었건 되지않았건 지속적인 관심이 얼마나 중요했을지 깨닫게 되서 죄송스럽고 죄송스러웠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탄생 과정에는 잔혹한 동화가 숨어 있다. 1998년 가을, 마산에서 일어난 일이다. ...

직장을 잃고 끼니 걱정을 하던 아버지가 보험금을 노리고 아들의 손가락을 잘랐다. 당연히 아버지의 무모함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먼저 나왔다. 바로 이어, 가난한 사람에게 최소한의 생계는 국가가 보장해주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했다. 김대중 정부는 이를 받아들여 이른바 '손가락 법'을 만든다. 이것이 지금의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다. 이 사건을 보면서 '정책의 창' 모델이 생각났다. 사회 문제 흐름과 정치 흐름이 결정적 이벤트의 출현으로 하나로 합쳐질 때 정책의 창窓이 열린다는 것이다. 빈부격차 심화라는 사회문제 흐름과, 김대중 정부 출현이라는 정치 흐름이 '손가락 절단 자작극'이라는 이벤트를 계기로 결합하면서 기초생활보장제도가 탄생했다는 설명이 가능하다. (p. 17)

 

책의 첫장 첫줄부터 당혹스러웠다. 사회발전과 경제발전에 따라 자연스럽게 발달해온 복지제도라고 생각했던 것이 이런 잔혹동화가 계기였다니...

뒤이어 나오는 '대구 어린이 황산 테러사건'은 더 가슴아프다. 어린아이가 동네에서 황산테러를 당했다는 정도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그것만으로도 끔찍했는데... 6살 소년의 몸 겉에만 뿌린 것이 아니라 고개를 젖혀 목안으로 붓기까지 했다고 한다... 소년은 죽었고, 범인은 잡히지 않았으며, 부모는 범인을 지목했지만, 경찰은 증거불충분으로 조사하지 않았다... 그리고 2015년 7월 31일자로 살인 공소시효 폐지법이 발효됐지만, 이 사건은 법 발효 20여일 전이라 재소사 할 수 있는 사건에 포함되지 못했다. 태완이의 죽음은 그렇게 영원히 미제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탐사 보도의 중요 요소 중 하나는 '독자적인 시각'이다. 출입처가 있는 기자들은 출입처의 시각에 매몰되기 쉽다. 굴을 파고 들어가 출입처에서 나오는 목소리를 받아쓰려는 습성이다. 반면 출입처에 얾매이지 않는 탐사 보도는 그 굴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시각으로 진시리에 접근해야 한다. 일반 보도 기자의 타성에서 벗어나라고 탐사 보도가 있는 것 아닌가. (p. 38)

저자는 스스로 출입처 조직 내부의 프레임에 빠졌던 과거를 털어 놓으며 기자의 본분에 대해, 탐사 보도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깨닫고 읽는이도 다시 깨닫게 한다. 출입처 조직 구성원도 아닌 출입기자가 이러할 진대, 조직안에서 끊임없어 자성의 목소리를 내는 임은정 검사의 인터뷰는 일제치하 독립운동가 못지않게 외롭고 위험해 보였고, 안타깝고 아쉬우며 결국 화가 났다....

"검찰은 법을 집행하고 적용하는 기관이지 법을 적용받는 기관이 아니에요. 그 법을 집행할 의지가 있는 실질적으로 지휘권을 가진 분들이 내부에서 갑질을 하고 있기 때문이죠. 스스로 자제해야 하거나 또 다른 갑을 만들어야 하는데, 또 다른 갑은 없고 최상의 갑이 그 짓을 하는 거니까 브레이크가 없어요" (p. 41)

상부의 지시를 거스르고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어떻게 될까. 임 검사는 인사와 징계보다 더 무서웠던 것은 외로움이라고 했다.

"옆에 있는 사람들이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이긴 한데, 함께 행동해주지 않으면 목격자가 되어주지 않으면, 적어도 사건이 됐을 때 목격자가 되어주지 않으면 피해자는 혼자 죽어요. 이것이 검찰의 현실이기도 해요." (p. 43)

 

최근 검찰의 무소불위 권력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개혁의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그 목소리가 검찰 내부 갑들에게는들리지 않는가 보다.

미국에서 뭔가 배워오는 것을 좋아하진 않지만, 검찰 제도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미국 검찰은 3개조직으로 분권되어 있다. 그래서 내부의 경쟁적 인식과 사건 해결에 대한 의지면에서 한국과 많이 다르다. 한국은 거의 완벽한 피라미드 체제다. 제일 위의 한명에게 무조건적 충성을 하는 것이 관습화되어 있는 조직이자 법을 휘두르는 조직이다. 누가 반항할 수 있겠는가? 그런 검찰과 정치권이 손잡으면 그야말로 국민누구도 아무도 모르게 그들만의 세상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여지껏 그래왔기에 한국의 법정의와 정치현실이 이 지경이 된 것이다.

임은정 검사가 피해자로 혼자 죽어가면 안될 텐데... 조직내에서 임검사의 옆에 지지자가 목격자가 동행해주어야 할텐데... 아직은 몹시 외로워 보인다...

하지만 인터뷰말미의 임검사의 말은 여전히 희망을 잃지 않는 임검사의 목소리가 귓가에 남는 듯 하다.

"잠든 사람은 깨울 수 있어도 잠든 척한 사람은 깨울 수 없다. 더이상 잠든 척할 수 없는 시대가 왔습니다. 검찰이 이제 비로소 잠이 깬 척하면서 눈을 뜨고 있는 상태가 아닐까요."

임 검사는 자신이 몸담은 검찰 조직과 언제까지 대결을 할까. 인터뷰 중에 이런 말을 한 것으로 기억한다.

"아마 검찰을 나올 때까지 계속되겠죠" (p. 44)

 

임검사가 검찰조직내에서 승승장구 하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그저 정년퇴임할때까지 무사히 잘 있어주기만이라도 응원해본다...

과학언론 전공으로 문학박사 과정을 밟을 때였다. 과학철학 과목을 수강했다. 과학철학자 칼 포퍼의 주장이 흥미로웠다. 그는 과학과 사이비 과학의 감별법을 제시했다. "반증할 수 없으면 과학이 아니다" 칼 포퍼틑 마르크스주의를 사이비 과학이라고 진단했다. 마르크스주의가 들어맞는다는 사례는 무수하게 제시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주장이 잘못됐다는 사례는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신화 역시 과학이 아니다. (p. 200)

칼 포퍼의 과학철학을 공부하지 않았던 나로서는 저 인용문장만 같고 칼포퍼가 맞다고도 틀리다고도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뒤에 이어지는 내용을 읽고는 왜 저 인용문을 말했는지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이 뒤에 황우석 박사가 신화로 불리던 사건이 전개되고 그 뒤는 모두가 알다시피 사기극이었다. 당시 MBC 의 PD수첩에서 황우석 신화에 흠집을 내려 했을때 전국민적 분노가 방송국에 쏟아졌다. 하지만 제보가 이어졌고 결국 용기는 신화를 깨트렸다. 과학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는 무지적 맹목성이 정치적인 과학자의 쇼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고 앞으로도 조심해야 할 부분이다.

대부분의 사건들은 개략적이나마 사건들에 대해 사전지식이 있었는데 딱 하나 UFO에 대한 이야기는 금시초문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일반인이 멀리서 본것도 아니고 공군전투기 조종사가 추적까지 해서 실물 UFO를 보았고 기록까지 남아있는 사건은 굉장히 흥미로웠다. 게다가 미국 CIA 창설이 미국에 UFO가 추락한 사건에 대한 은폐뒤 2개월 후에 창설됐다는 것도, 이래서 FBI 와 별도 조직으로 있는 건가 싶으면서 신선했다.

오래된 과거의 팩트를 수집하는 것은 여간 어렵지 않다. 자료가 적고, 무엇보다 사람들의 기억도 희미해진다. 당대의 권력자는 수치스러운 기억을 지우거나 조작한다. 입을 막기도 한다. 우리는 지워지거나 더럽혀진 자료나 증언과 싸워야 한다. 또 누군가의 입을 열게 해야 한다. 어려운 작업이라도 결국 탐사 언론인이 휘슬을 불어야 하는 이유는 명맥하다. 잊힌 역사는 결국 더 뒤틀려지니까. (p. 424)

읽으면서 탐사 보도는 일반 보도와 정말 다르구나 싶었다. 그리고 이슈메이커 같은 기사보다 장기간의 조사끝에 발표되는 후속기사에 더 관심을 가져야 겠구나 를 절실히 느꼈다. 탐사 보도가 아무리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도 독자가 읽지 않으면, 세상에 퍼지지 않으면 그또한 묻히는 역사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묻히는 역사는 우리 모두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역사를 뒤틀게 만드는 행동이 될 것이다.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적어도 뒤틀지는 말아야 할 것 아닌가. 과거만 보고 살자는 말이 아니다. 잘못된 과거가 현재를 좀먹고 미래를 파괴하는 것은 막자는 말이다. 제대로 알기 위해 기자도 독자도 모두 끊임없아 알아내야 하는 시대다. 그리고 알 수 있는 시대다. 적어도 알고도 모른체 하지는 말고, 잘못 알고 있는 것은 제대로 고쳐알아가며 살아야 겠다.

표지에는 '너무 늦은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라고 씌여 있지만, 너무 늦더라도 정의를 밝혀내고 알게 된다면 정의는 바로 세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너무 늦지 않도록 각성하자는 주의를 주는 멘트였겠지만, 그래도 마음 아프다. 저 멘트를 피해자들이 한다면 정말 그럴 수 있기 때문에... 하지만 피해자들도 제보자들도 용기를 내어 인터뷰하고 끝까지 싸우고 있는 이유는 너무 늦어도 정의를 되찾을 수 있기를 희망하기 때문일 것이다. 믿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적어도 우리가 먼저 포기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잊지 않고 함께 응원해주는 우리가 되기를 그런 사회가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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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몽드 비판 경제학 -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다음 세대를 위한 경제 교과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획, 이푸로라 옮김, 성일권 감수 / 마인드큐브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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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다음 세대를 위한 경제교과서> 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제목과 달리 경제학!서 라기 보다는 경제현실분석서 로 읽혀지는 책이었다.

'진실을, 모든 진실을, 오직 진실만을 말하라' 는 무척 멋진 언론관을 가지고 있다는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의 자매지이자 국제관계 전문시사지인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가 기획한 책이라는데, 이 시사지는 국내에서 <르 디플로> 라는 애칭으로 발행되고 있다고 한다.

책은 서문부터 신자유주의 경제에 대한 포문을 연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이 권력의 핵심으로 자리잡아 사회과학계를 장악하게 된 것이 주요 이유라 할 것이다. 이후 경제 현상의 해석에 있어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의 입김은 더욱 세졌고,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기 위해 더 높은 방어벽을 세웠다. 문제의 원인은 항상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이 이들의 일관된 주장이다. (p. 9)

금융위기의 원인은 신자유주의 에 있다는, 아니 그보다도 신자유주의를 주창하는 사람들 때문이라는 것은 책 내용 여기저기서 자주 반복된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이 쓰신 '감수자의 말'코너에서도 이런 분위기는 연결된다.

국가경쟁력 지수는 한 국가의 경제 성장이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 능력을 따지는 상대적 지표라고 하지만, 해마다 국제 민간포럼기구인 세계경제포럼(WEF)에서 발표하고 있다. 개최지인 휴양지의 이름을 따서 이른바 다보스 포럼이라고 불리는 WEF 회의장에는 세계의 유력 기업인들, 경제학자들, 정치인들, 국제경제기구 관계자들이 몰려든다. 공식적인 국제기구인 유엔이나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IMF), 세계무역기구(WTO)에서 오랜 자료수집과 분석을 거쳐 국가경쟁력 지수를 내놓는 것이 아니라, 대기업 친화적인 민간 이익단체가 '기업을 위한, 기업에 의한, 기업의'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 달성을 위한 각 항목들을 점수화하여 이를 국제경쟁력이라는 이름으로 분찰하지만, 아무도 이를 문제 삼지 안고 너무나 당연하게 여긴다. 엄밀히 따져보면 국부를 쌓은 국가경쟁력이 아니라, 기업의 이익을 도모하는 기업경쟁력인 셈이다. (p. 13)

이 대목을 읽고 기가 막혔다. 국가경쟁력 지수 가 기업인들이 만든 기업목표 성장지수 였다니 너무 웃기지 않는가? 국민들은 모른다고 치자. 국가정치핵심가들은 알 것 아닌가? 언론인들은 알 것 아닌가? 그런데 국가경쟁력지수 라는 표현에 대해 다들 동의하는 건가? 그래서 이 지수가 어떻게 산출되는 건지 굳이 알려주는 것없이 바로 지수를 수치로 사용하고 인용하는 것인가? 이건 거의 오보 수준 아닌가?

하긴 '4차 산업혁명' 몸살을 앓은 한국에서 그 용어가 세계적이지도 않고 다른 나라에서는 그닥 회자 되지 않았으며 정식 명칭도 아니라는 것은 얼마나 알려져 있을까? 이 '4차 산업혁명' 이라는 말도 다보스포럼에서 처음 표현되었다. 그들만의 세상에서 그들의 목표설정으로 만들어진 용어를 한국에서는 이것 아니면 죽을듯이 미래산업의 핵심으로 유행되었다. 왜일까?

지금까지 우리가 듣고 배운 '경제학 교과서' 는 우리 사회의 99%를 이루는 '우리의 것' 이 아니라, 1%에 불과한 '그들의 것'이었다. 우리는 그들이 그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우해 쓰고, 말하고, 밑줄치고, 그럴듯하게 학문적 성과로 포장한 '허튼 이론들'을 마치 경전인양 받아들였다. 수적으로는 1%에 불과하지만 자본, 권력, 국제사회, 미디어와 여론을 장악한 그들은 때로는 동업자로서, 때로는 경쟁자로서 개방화, 자유화, 세계화, 규제완화, 자유무역의 가치를 설파하며 우리의 삶을 옥죈다. 그들이 은밀하게 곳곳에 살포한 '허튼 이론들' 은 마치 마약의 치명적 독성처럼 우리의 삶을 무한경쟁의 '성장 중독'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한다. 우리 사회의 공동체 정신과 환경을 해쳐온 '그들만의 독점적인 성장모델'이 우리에게 그토록 깊이 파고든 까닭에서다. (p. 14)

'서문' 과 '감수자의 말' 이 어찌나 구구절절 옳은지 책의 핵심은 이 앞장 몇 페이지에 다 있는게 아닐까 싶은 정도였다.

'노벨 경제학상'은 노벨상이 제정된 해로부터 60여 년이 지난 1969년에 처음 수여되었다. 이 상은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으로 만들어진 상이 아니다. 다른 노벨상들과 달리 이 상은 '알프레드 노벨을 기념하는 스웨덴 중앙은행 경제학상'이 정식 명칭이다. 노벨은 유언을 통해 국적을 불문하고 '인류에 크게 이바지한 사람'에게 노벨상을 수여할 것이라고 정한바 있다. 그러나 스웨덴 중앙은행이 상을 수여한 사람의 상당수는 서양 출신이다. 게다가 경제학상 수상자들의 경제모델이 경제적 이윤을 창출하는 만큼 인류에 충분히 이바지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경제학은 역사가 길지 않은 학문이며,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의 절반 이상이 현재 생존해 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로 지명된 경제학자의 82%가 미국 국적이다. 그에 반해 유럽 국적을 가진 수상자는 독일1명, 영국3명, 프랑스1명, 그리고 노르웨이인 1명으로 극히 낮은 비율을 차지한다. 엄밀히 말하자면 노르웨이인 과 프랑스인 이 두 사람은 박사 학위를 미국에서 취득했다. 개발도상국 수장자는 인도출신 1명 뿐인데, 그는 영국과 미국에서 활동했다.

수상 후보자의 이력을 살펴보면, 1970년대 후반부터 미국 국적의 수상자 수가 증가하는 한편 신자유주의 경제와 기술적 분석이론, 금융 분야의 비중이 커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노벨상을 통해서 경제과학을 표방한 이들은 금융세계화를 옹호하고 시장의 효율성에 관한 이론을 펼쳤으며,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권장하기도 했다. 반면 정부의 시장개입은 부작용을 이유로 반대했다. 그들은 과학계와 공공의 영역에서 서구 중심, 더욱 정확히는 미국 중심의 시장 경제를 집단으로 이상화했다. 그런 움직임은 1980년대에 두드러지게 나타났고, 국제기구(IMF)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해나갔다. (p. 34)

노벨상이 서구 중심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노벨 경제학상이 노벨상도 아니고 90%가까이 미국 경제학자들이 받은 상이라는 것은 몰랐었다. 사실 노벨상 시즌이 되면 왜 우리나라는 노벨과학상이 없냐 하거나 노벨문학상을 노려봄직한 문학가들을 살펴보는 정도 외에 다른 내용은 국내에서 거의 회자되지 않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의 삶은 사실 경제와 가장 크게 연관되어 있는데, 그 경제를 주무르는 세계의 분위기를 너무 모르고 살았구나 싶다. 대충은 짐작했지만 이 정도 일줄은 몰랐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 이 생각난다. 그때 왔던 IMF 관련자들은 경제사냥꾼들 같았다. 세계은행이라고 불러야 하는게 아니라 미국은행이라고 불러야 하는게 아닐지...

언론을 통해 경제 현안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고 정부 정책에 자문을 제공하는 대학 교수들이 은행이나 대기업으로부터 금전적 보상을 받는 것은 아주 흔한 일이다. (p. 45)

경제학 대학 교수가 자산관리 컨설팅기업의 자문위원이고, 경제학 교수가 주요기업의 경영이사로 있는 일은 생각보다 흔한 일이었다. 그들은 그렇게 겸직을 하거나 은퇴후 기업으로 보직변경을 하면서 상임고문료나 강연료를 고액으로 받고, 연구소 지원비를 받기도 한다. 이론이 뒷받침해주는 기업의 경영논리는 어느새 나라의 경제정책에 반영되기 일쑤이다. 우리가 배운 경제학 이론이 과연 맞다고 할 수 있겠는가? 아니 질문을 바꿔야 한다. 누구에게 알맞은 경제학이론들이었던가?

 

 

이 책은여러모로 무척 시각적인 책이다. 경제학이론이나 마르크스경제학 등을 시각적으로 정리 표현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이런 정리 자료는 몇 가지가 더 나오긴 하는데, 이런식의 정리가 신선하게 읽혔다.

정치적 상상의 핵심부에 자리 잡은 신자유주의 이념은, 부의 재분배 없이도 빈곤을 해소할 수 있다는 환상을 부채질했다. 또한 누군가가 감수해야 하는 가난의 주된 요인은 다른 이들이 독점하고 있는 부에 있음을 망각하게끔 했다. (p. 127)

기업가에게 부여된 영웅적인 창조가의 이미지와는 달리, 실질적인 고용을 창출해내는 것은 특정 주체가 아닌 전반적 경제의 활동, 즉 경기다. 이 같은 (이념적 이해 관계를 반영하고 있는) 오해의 결과로, 지난 30년에 걸쳐 줄곧 경제정책의 초점은 경기 그 자체가 아닌 불량한 '창조의 대리인'인 기업에 혜택을 베푸는데 잘못 맞춰져 있었다. 거시경제 정책이 유럽연합의 규제라는 굴레에 묶여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와중에 기업들은 부담금과 세금 감면 이라는 횡재를 누리기도 했다. 실업자가 계속 늘어만 가는 현실이 놀랍지 않은 이유이다. (p. 163)

이 책은 경제학 이론들을 설명해 주는 책도 아니고, 현실경제에 대한 문제점은 지적하나 답을 알려주는 책도 아니고 그저 다시 질문해 볼 것을 은근히 요구하고 있다. 책은 내게 묻는다. 당신이 알고 있는 경제학은 무엇인가?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는가? 현실경제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몰라서 망각하고 왜곡된 정보로 오판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볼 것을 요구하고 있는 듯 하다. 그래서 읽으면서 뜬구름을 잡으려는 듯 답답하기도 하고 어렵기도 하고 정리가 되질 않아 힘들기도 했다.

내가 읽으면서 가장 난감했던 것은 시각적 자료들이었다.

책장 한두장마다 컬러판 사진들이나 그림들이 가득하다. 쉽지 않은 내용을 말하고 있는 책이 시각적 자료가 많은 것은 의외였는데, 그 시각적 자료들이 다 그 페이지의 내용들과 대체 무슨 연관이 있는건지 모르겠어서 당황스러웠다. 예를 들어 아시아경제개발을 이야기하면서 과거 한국이 국가주도 산업을 육성했던 내용을 말하는 도중에 들어간 사진이

 

 

 

이것이다. 이 사진이 한국의 경제개발과 대체 무슨 관계가 있는 걸까?

사진의 인용은 사실 표지부터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표지그림은 50페이지에 나오는데, 그 부분의 내용이 비주류경제학자들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것과 종이가면은 무슨 상관인 걸까? 대부분은 내용상의 맥락과 상관없다고 여겨지는 그림들이 많앗지만 때로는 내용 전체의 핵심을 은유하는 듯한 사진들이 있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한번 보고 바로 알아챌 수 없었다. 왜 이 사진이 인용되었을까? 생각하다가 이 내용을 함축하는 건가? 하고 다시 생각해봤을때 꿰어 맞춰지는 느낌이었을 뿐...

나의 이런 느낌은 '옮긴이의 말'을 읽고 나서 조금 이해가 되었다.

당초 프랑스에서는 바칼로레아(대학입학 자격시험)를 준비하는 고등학생이나 경제에 입문하는 대학생들을 겨냥해 출판됐다는 점에서 이 책을 좁게는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다음 세대를 위한 지침서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 (p. 395)

프랑스의 바칼로레아에 나오는 철학적 질문은 유명하다. 온국민이 매년 그 문제를 궁금해하며 기다린다고 할 정도로 바칼로레아 에서 나오는 질문은 당시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굉장히 함축적인 질문들이라고 들었다. 혁명과 자유와 철학의 나라인 프랑스 언론기사의 문체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바칼로레아 식으로 씌여진 경제비판서를 읽었으니 나한테는 영 익숙치 않았던 것이다. 나는 문제점을 정확히 꼬집어 주고 대안을 제시해주는 구체적인 학문서들이 적당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해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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