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작 - 잠 못 드는 사람들 / 올라브의 꿈 / 해질 무렵
욘 포세 지음, 홍재웅 옮김 / 새움 / 201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노벨상 수상시즌이 되면 우리나라에서는 노벨문학상 예상수상자들에 대한 기사가 꽤 많이 나온다.

노벨문학상은 하나의 작품에 주어지는 상이 아니라 연륜있게 작품을 발표해온 작가에게 주는 상이다 보니 나이지긋하신 분들이 후보가 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에서 시즌마다 언급되던 오래된 시인인 고은 시인이 성폭력 사건에 연루된 것이 밝혀진 이후로는 후보로 거론할 만한 작가가 없는 것인지 올해엔 외국작가들에 대한 후보기사만 나왔는데 그중 가장 많이 언급된 작가가 욘 포세 인것 같았다. 게다가 올해는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두명이다 보니 여러 작가들이 후보로 거론되었는데 그 작가들이 하나같이 모르는 작가였다는 난감함;;; 여튼 그중에서도 욘 포세 의 작품이 가장 내 눈길을 끌었다.

욘 포세 는 노르웨이의 작가이자 극작가로 최근 몇년간 노벨문학상 수상의 유력한 후보로 자주 언급되는 작가였다고 한다. 비록 올해의 수상은 불발이었지만 자꾸 거론되다 보면 곧 수상을 할지도 모르겠다. 노벨문학상이 아니더라도 세계유수의 상들을 많이 받은 작가라고 하니...

작가는 주로 극작가로서 인정을 많이 받아 그의 연극이 세계적으로 공연되고 있다고 한다. 희극에 비해 소설은 주력분야가 아닌듯 한데 '2007년 잠 못 드는 사람들', '2012년 올라브의 꿈' , '2014년 해질무렵' 세 편의 중편 연작을 하나로 묶어 출간한 '3부작'으로 북유럽문학상을 탔다고 하니 극작가로서도 소설가로서도 꽤 많이 인정받는 작가인가 보다.

비교적 아담사이즈의 소설책, 파스텔톤의 예쁜 표지가 왠지 페이퍼북원서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심플한 제목의 이 책은 굉장히 독특했다.

희극작가라고 해서 연극적인 문체라던가 주고받는 대화체가 꽤 많이 나오지 않을까 예상했는데 오히려 그 반대였다.

소설인데.... 마침표 없다. 맺고 끊음이 없이 문장이 계속 이어지는 느낌이다.

구두점이 없는 소설이 처음은 아니었다. 그리고 요즘은 소설 속 대화라고 해서 반드시 따옴표 안에서만 말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 소설은 그냥 문장으로 길게길게길게길게 주우우우우욱 연결되는 방식이... 뭔가 다르다. 완전 다르다. 그냥 뭐라고 꼬집어 말할 수 없지만 어쨌든 다르다. 독특하다. 어디서 시작한건지 어디서 끝나는건지 구분이 안될 정도로 그냥 계속 이어진다. 화자의 변경도 공간의 표현과 시간의 이동도 그냥 다 계속 연결된다. 예를 들어 내용의 일부를 옮겨 보자면,

아버지 시그발이 결혼식에서 연주를 할 거라는 사실을 아슬레가 알게 되었을 때, 그는 따라가도 되는지 물었다

그래, 그래도 되지 싶구나, 아버지 시그발이 말했다

된다는 말밖에 할 수 없지 싶다, 그가 말했다

피할길이 없거든, 너 역시 연주자가 될 테니까, 그가 말했다

그리고 아버지 시그발은 그건 이런 거란다, 내가 연주자이고 연주자가 되어야 한다면, 그렇다면 그건 원래 그랬던 것이고, 나는 이미 좋은 연주자였으며 연주를 하는 한 나는 이미 뛰어난 연주자였던 게지, 그리고 네가 연주자가 된다면, 그럼 넌 이미 연주자인 게야, 거기엔 조금도 다른 여지가 없어, 네가 연주자가 된다면, 네 아들 역시 마찬가지야, 그건 놀랄 일이 아니란다, 내 아버지인 늙은 아슬레와 할아버지인 늙은 시그발 두 분 모두 연주자셨으니까, 연주자가 되는 건 우리 가문의 운명이야, 연주자가 되는 게 비운으로 여겨진다 해도, 그래, 그런 게야, 라고 아버지 시그발이 말했다, 네가 연주자라면, 그래, 그럼 넌 이미 연주자란다, 그런 게지, 그래, 내 생각엔, 그다지 다른 여지가 없어, 그래, 라고 아버지 시그발이 말했다, 그 운명이 어디에서 오는가 하면, 나는 슬픔이라고, 무언가에 대한 슬픔이거나 아니면 그냥 슬픔이라고 답할 게다, 음악 속에서 그 슬픔은 가벼워질 수 있고 떠오를 수 있게 되는 거고 그 떠오름은 행복과 기쁨이 될 수 있어, 그래서 음악이 필요한 것이고, 그래서 나는 연주를 해야만 하는 거지, (p 48...)

 

동어반복의 리듬은 있으나 마침표는 없다.

소설 3편 모두에서 단 한번도 찍히지 않는 마침표!

끊어지지 않는 문장을 시작하면 멈출 수가 없다. 끊어지지 않아서인지 계속 읽게 된다.

웅장한 서사라던가 세밀한 묘사라던가 풍부한 감정이 드러나는 것도 아닌데 읽다보면 굉장히 빠져든다. 어느새 몰입하게 된다. 신기한 소설이다. 정말 묘하다.

'3부작' 은 한 남녀의 사랑이 중심 줄거리이긴 하다.

한 여자의 일생이 담긴 인생 이야기 이기도 하다.

한 집안의 연대기적 운명이 이어지는 이야기 이기도 하다.

가난과 폭력이 숨겨진 어떻게 보면 약간 스릴러적 요소가 있는 이야기 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냥 흐른다. 얼키고설키는 것이 아니라 차근차근 이어지는 것도 아니라 그냥 흘러가진다.

뜨거운 사랑이 아닌 것 같았는데 일생동안 단 한번의 사랑으로 지속되었고

주체적이지 못한 여자의 삶처럼 보였는데 항상 스스로 선택을 한 것이었고

죽고 나서 끝난 연주인줄 알았는데 음악은 운명처럼 이어졌고

살인사건이 분명함에도 잔인하게 느껴지지 않는

어찌보면 죽음에서 시작해 죽음으로 마무리되는 소설인데도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삶으로 계속 이어지는 느낌을 주는 오묘한 철학을 품고 있는 소설이었다.

'잠 못 드는 사람들' 에서 어린 연인이 거리를 헤매다

'올라브의 꿈' 에서의 이별이

'해질 무렵' 에서의 만남으로 연결 되는

'잠 못 드는 사람들' 에서 새로운 삶을 꿈꾸던 희망이

'올라브의 꿈' 에서 비참하게 부서지지만

'해질 무렵' 에서 그럭저럭 평온한 삶으로 이어지는

'3부작' 이라는 소설은

세편이 모두 죽음으로연결되지만, 죽음을 관통하는 삶의 무언가를 남기는 소설이었다.

이 무언가를 뭐라고 해야 할까....

죽음은 비참했지만 슬프지 않고 삶은 일상적이었지만 행복하지 않고 사랑은 떠났지만 음악은 귓가에 남은... 갑자기 고요한 바다가 보고싶어지는 이 소설을 어떠했다고 정리할 수 있을까...

마침표가 없는 소설이라 그런지 감상에도 마침표를 찍을 수가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고학의 역사 - 인류 역사의 발자취를 찾다
브라이언 페이건 지음, 성춘택 옮김 / 소소의책 / 201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류 역사의 발자취를 찾다

인류의 기원과 고대문명, 그리고 현대의 과학적 발굴까지 고고학이 밝힌 인간의 역사!

인간이 만든 위대한 유산과 미지의 세계를 찾아 떠나는 고고학 여행 (표지 中)

 

<소소의 책> 출판사에서 나온 <철학의 역사> 라는 책을 무척 재밌게 읽었었다. 쉽고 간결하면서도 역사로서의 철학적 맥을 잘 잡은 책이었다.

00의 역사 가 시리즈였나 보다. <고고학의 역사> 라는 책이 나온 것을 본 순간 너무너무 읽고 싶었고, 역시나 읽을만한 좋은 책이었다.

게다가 하드커버의 표지가 일관성있게 디자인되어서 시리즈로 책장에 꽂아 놓으면 그 아우라가 너무 멋질 것 같다는 사심이 생긴다. ㅋ

아무래도 이 시리즈의 책을 쭈욱 찾아 읽어야 겠다는 생각이... ㅎㅎㅎ

역사책을 읽다보면 고고학적 유물이야기가 안 나올 수가 없다. 하지만 고고학에 대해서는 그닥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고고학 이라는 왠지 옛스러운 분위기를 내는이 학문은 오히려 가장 최신의 학문에 가깝다. 역사적 사건이나 자료는 꾸준히 이어져 왔으나, 실제의 유적지를 발굴하고 유물을 조사하는 고고학이라는 분야는 근대에 새롭게 생긴 학문이다. 도굴과 탐험이라는 비학문적 시작에서 다양한 학문과의 접점을 지닌 고고학이 자리잡게 되기까지 이 책에서는 다양한 학자들의 에피소드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풀어내주고 있다.

고고학은 왜 중요할까? 고고학이야말로 수백수천 년, 그리고 엄청나게 오랜 시간 동안 인간 사회의 변화를 연구하는 단 하나의 방법이다.

무엇보다도 고고학은 우리 인류를 찾게 해준다. 고고학은 아프리카에서 인류의 공통 조상을 밝히고, 인간의 서로 같은 점과 다른 점을 알려준다. 우리는 놀랍도록 다양한, 모든 곳의 사람들을 연구한다. 고고학은 인간이다. (p. 21)

 

40챕터로 이루어진 이 책에서 1챕터는 이 책의 서문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 (저자는 친절하게도 제일 앞에 한국어판 기념 서문을 따로 써주었다.)

고고학에 왜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와 고고학의 태동 그리고 변화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면서 고고학의 중요성을 '인간'을 연구하는 학문이라는 점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살작 고개 갸우뚱 하게 하는 고고학과 인간학 과의 연결성은 책을 덮을 때 즈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초기 고고학의 발견들은 주로 이집트 유적지에서 였다. 종교개혁과 계몽주의 그리고 르네상스를 거친 유럽사회에서는 자유와 새로운 과학적 발견들에 들뜨고 자본의 성장이 주는 부유함에 지적 탐구의 열망이 커지고 있었다. 호기심을 가진 유럽인들이 가까운 이집트로 여행가서 본 피라미드와 고대이집트신화의 잔재들은 모험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바빌론과 니네베의 발굴은 성경의 기록을 사실로 확인시켰고 수메르 문명을 세상에 등장시켰다. 종교와 신화가 유물과 유적으로 입증되면서 '인류의 기원'에 대한 호기심은 커져갔고, 정말 인류의 역사가 기껏 6,000년 이라는 시간밖지 되지 않는지 성경의 시간을 의심하게 되었다.

지질학과 종교는 날카롭게 충돌했다. 기독교의 가르침에 따르면 신은 일련의 신성한 행위를 통해 지층들을 창조했다. 몇 번의 창조가 있었고, 그 사이에 카타스트로프(대재앙)도 있었다. 그런 대재앙 중에서 어떤 것은 동물의 멸종을 불러왔으며, 그중 가장 나중에 일어난 사건이 노아의 홍수였다. 성서에 따르면 사람과 절멸 동물은 서로 아무런 관계도 없다. 그럼에도 고고학이 성장하면서 아주 오래된 지질층에서 사람과 절멸 동물이 공존했다는 증거가 적지 않게 나온 것이다. (p. 73)

나는 '진화론' 이 가정 먼저 종교와 충돌했다고 생각했었다. (그 전의 과학적 발견들은 종교와 늘 타협해서 살아남았기 때문에...) 그런데 그 전에 고고학과 지질학이 있었다. 석기와 인간의 뼈와 동물의 뼈가 함께 발견되고, 유물발굴을 위한 땅을 파내려가면서 확인되는 지질학적 증거들은 그 어떤 과학보다 첨예하게 종교의 신화를 건드리기 시작했다. 초기의 발견들은 당대의 학자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무시당했다. 하지만 자꾸자꾸 나오는 증거들은 곧 이론이 되어 갔다.

영국의 유명한 지질학자 찰스 라이엘(1797~1875)은 스미스의 유산에서 더 나아갔다. 라이엘은 유럽 전역에서 지질 연쇄를 연구하고, 19세기의 과학 고전 중 하나를 집필했다. 1830년에 출간한 [지질학 원론]은 지질 변화를 현재에도 그대로 작용하고 있는 자연 과정으로 형성되었다고 설명했다. 이로써 사람이 6,000년보다 훨씬 더 오래전에 기원했다는 주장이 가능해졌다. 그러나 교회는 여전히 강력했고, 라이엘은 책에서 인간의 기원이라는 가시 돋친 이슈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조심했다.

다른 많은 위대한 과학적 발전과 마찬가지로 라이엘의 눈부신 연구는 다른 분야의 현장 연구자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그중에는 젊은 생물학자 찰스 다윈(1809~1882)도 있었다. 다윈은 1831년부터 1836년까지 5년간 과학 연구 조사를 위해 비글호를 타고 여행하면서 [지질학 원론]을 읽었다. 다윈은 남아메리카에서 지각이 아주 오랜 시간 동안 형성되었음을 관찰했다. 화석을 수집하고 현대의 동물, 특히 새를 관찰하면서 '생물 종'이 점진적으로 변화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런 관찰을 바탕으로 진화와 자연선택이라는 혁명적 이론을 제시한 것이다. (p. 74~75)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은 인류의 기원에 대한 논란에서 고고학을 중심무대에 올려놓았다. 고고학자와 지질학자들은 인간이 지구상에서 절멸 동물과 함께 살았음을 확인시켜주었다. 그리고 이제 다윈의 자연선택과 진화이론은 동물과 다른 생명체가 시간이 흐르면서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설명해주었다. 다윈이 제시한 새로운 이론은 현대 세계와 절멸 동물이 살았던 이전 세계 사이에 있던 장벽을 무너뜨렸다. 그 어떤 끔찍한 홍수나 거대한 멸종도 19세기 과학자들을 이전에 동물과 인간이 살던 지형경관에서 떼놓지 못했다. 절멸된 동물과 사람이 지구상에 동시에 살았다는 데 더 이상 의심의 여지는 없었다. 1859년은 과학계 일반이나 고고학에서 거대한 전환점이었다. (p. 78~79)

 

다윈이 비글호를 타고 여행하면서 확인한 동물들의 변화를 통해 진화론이 나온 것이 아니었다. 그 이전에 이미 새로운 증거들에 대한 의문들과 그 의문들에 대한 답을 제시하는 여러 이론들이 있었다. 다윈은 그 이론들을 공부했고 그래서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지질학 뿐만 아니라 1798년에 출간된 맬서스의 [인구론]도 다윈에게 결정적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맬서스는 사람을 포함한 동물 개체군, 곧 인구는 식량 공급 한계선까지 팽창한다고 주장했는데, 다윈은 이 주장에서 더 나아가 인간의 진보란 자연 과정의 일부이며, 그 기제는 자연선택이라는 점진적 과정이라고 보게 되었다고 한다. 이제 인류의 기원은 한참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되었다. 그렇게 새로운 질문이 탄생하게 된다. 어떤 형태의 인류가 있었을까? 그 사람들은 언제 살았을까? 현생인류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사람들은 인류 화석과 고고학 발견물을 쉽게 이해할 수 있고 타당하다고 여기는 진보의 틀에 집어넣었다. 단일산 선상의 인류 사회진화론은 고고학이 제시하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과거를 설명하는 편리한 틀이 되었다. (p. 86)

초기의 발견들은 시간적 줄세우기가 무척 중요하게 여겨졌다. 한단계한단계 차근차근 발달해 왔다고 하는 것이 이해하기도 쉽고 설명하기도 쉬웠다. 하다못해 지금도 인류의 기원을 설명하는 그림으로 침팬지에 가까운 원시인류의 구부정한 모습에서 조금씩 조금씩 일어서고 걷는 현생인류로 변화한 한장의 그림이 자주 인용된다. 하지만 이것이 잘못됐다는 것은 진즉에 밝혀졌다. 크게 보면 차근차근 발달해 온 것이겠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오랜 세월 함께 공존해 왔다. 앞단계에서 뒷단계로 발전한 것이 아니라 쇠퇴와 부흥이 섞이는 중에 공존하며 살다가 지금 우리가 살아남은 것 뿐이다.

유물 분석 전문가가 되려면 특별한 인성도 필요하다. 유물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면 특히 더 그러하다. 끝없는 인내와 흔히 잘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세세한 특성을 물고 늘어지는 열정과 과거에 대한 사랑이 필요한 작업이다. (p. 113)

생각해보니 과거를 읽어내는 작업은 정말 고된일 인것 같다. 창의적인 생각들로 새로운 발견을 해내는 다른 학문들과 달리, 이미 지나간 시간들의 흔적을 제대로 읽어내기 위해 온갖 자료들을 다 파악하고 연결성을 찾고 이해하는 작업은, 먼지날리는 현장의 모험심 가득한 고고학을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숨겨져 있는 고고학자들의 노력을 되새기게 한다. 이제 박물관에 가면 작은 돌조각 하나 이어붙인 그릇 하나를 보더라도 그들의 노력에 감사해야 겠다는 생각이;;;

초기의 고고학적 발견들이 학자들에 의해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뜻밖의 발견들에 대한 에피소드들을 읽을 땐 약간 소설적 재미가 느껴지기도 한다.

집으로 돌아온 사우투올라는 동굴을 발굴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아홉 살인 딸 마리아도 따라가게 해달라고 졸랐다. 아버지와 딸이 지켜보는 가운데 일꾼들이 곡괭이와 삽으로 퇴적층을 파기 시작했다. 마리아는 이내 땅 파는 일만 구경하기가 따분해져서 동굴 깊숙이 들어갔다. 그런데 갑자기 낮은 공간에서 "토로스, 토로스" 곧 "황소, 황소다"라는 외침 소리가 들려왔다. ... 마리아가 19세기의 위대한 고고학 발견 중 하나를 해낸 것이었다. 낮은 천장에 그림이 그려진 알타미라의 방은 빙하시대 짐승들의동물원과도 같았다. (p. 138)

1940년, 놀라운 발견이 이어졌다. 학교에 다니는 소년들이 몽티냐크 마을 근처에서 토끼 사냥을 나갔는데, 개 한마리가 토끼 굴에 빠지고 말았다. 소년들은 땅속에서 들리는 개 짖는 소리에 토끼 굴을 넓히고 힘겹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소년들이 그 아래의 커다란 방에서 야생의 황소와 들소 등 여러 동물 무리를 그린 장엄한 벽화와 마주했다. 이 소식을 들은 브뢰이유는 곧장 그곳 라스코 동굴로 향했다. (p. 141)

 

이 동굴들의 벽화도 발견 당시에는 그렇게 오래전의 그림이라고 믿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위작이라는 의심까지도 받았었다. 하지만 다른 증거들과 과학적 방법의 발달로 그 가치를 인정받게 되는 것을 보면서, '진실은 언젠가는 밝혀진다' 라는 명제를 생각했다면 과한걸까?! 그래도 바래본다! ㅎㅎ

중국인들은 중국의 역사가 복합적이고 끊임없이 진화했음을 알고 있었다. 왕조가 나타나고 멸망하기를 되풀이했지만, 문명은 유지되었다. 그러는 데는 서기전 1500년 즈음까지 올라가는 독자적인 중국 문자 체계의 도움도 있었다. 그림 상징으로 시작되었지만 점차 문자로 발전하여 서기전 500년 이후에는 정부 관리들이 광범위하게 사용했다.

유럽은 대체로 그와 다른 역사 과정을 겪었다. 문헌 기록은 로마 시대, 그리고 서기전 54년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골족을 정복하면서 시작되었다. 그 이전의 것은 모두 고고학의 방법으로만 연구할 수 있다. ... 유럽의 고고학자들은 문헌 기록에 의지하지 않고 발굴과 지표조사법을 발달시켰으며, 브로치나 핀 같은 작은 유물에 주목했다. (p. 223)

 

동서양의 역사진행과정은 참 달랐구나를 새삼 또 느낀다.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양의 역사는 문명발생이후 문명이 유지되었고 역사로 이어졌다. 하지만 서양은 문명과 역사가 중간중간 끊겼고 여기저기 산발적이었다. 그래서 고고학의 변모과정도 다른 듯 하다.

서양의 역사에 대한 고고학적 이야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긴 하지만, 다른 문명에 대한 이야기들도 많이 나온다. 아프리카의 짐바브웨, 남아메리카의 마야, 동남아시아의 앙코르와트, 북아메리카의 인디언, 중국의 진시황릉 등 세계적인 유적지에 대한 발굴이야기들은 흥미롭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했다....

여하튼 고고학의 발전은 각각의 나라에서 각각의 문명에서 전 세계적인 통합연구로 점차 범위를 확장해 나가게 된다. 그렇게 고고학은 점차 인류학이 되어 간다.

고고학의 발전에서 1949년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의 개발은 획기적이었다. 이 측정법은 5만년이 넘은 표본에는 방사성탄소가 극미량만 남아 있어 측정에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5만년 이내의 역사에 대한 연대만을 측정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유물들의 유사성을 바탕으로 연대를 측정하던 것에 비하면 그야말로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발견이었다. 하지만 이 방법이 완전한 것은 아니었다. 환경의 영향으로 생물체 내의 방사성탄소의 농도는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보완책이 필요했다. 해결책은 방사성탄소연대를 나이테 연대와 비교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몇백만년이 넘는 과거의 시간을 조사할때는 '포타슘-아르곤 측정법'을 이용한다고 한다. '포타슘-아르곤 연대측정법'은 바위에 들어 있는 방사성 포타슘이 방사성 아르곤으로 붕괴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측정하는 방법이라는데 이 방법은 수십만년 전 이라고 생각했던 인류 진화의 편년표를 크게 확장시킬 수 있었다.

고고학적 발견들과 지리학의 증거들은 진화론을 촉발시켰고 화학자의 기술이 고고학의 연대를 측정하는 기법으로 이용되었다. 과거의 시간들은 과학을 이용하여 고고학적으로 증명되고 있고, 이러한 확인들은 새로운 질문들을 생성해낸다. 이제 고고학은 문명과 역사를 밝혀내는 것을 넘어서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인류의 변화를 연구하게 되었다. 보물을 찾아내던 고고학은 이제 작은 석기조각의 의미까지 탐구하게 되었다. 또한 고고학은 발굴하는 즉시 파괴되는 유적발굴에 대한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을 발전시켜가고 있다.

고고학자는 오랫동안 힘들고 많은 돈이 드는 발굴을 하지 않고 유적을 연구하고 싶어 하는 꿈을 갖고 있다. 보통 '리모트센싱'이라고 알려진 '비발굴고고학'은 땅을 파지 않고 유적과 주변을 연구한다. 다시 말해 유적을 파괴하지 않는 연구법인 것이다. 리모트센싱은 항공사진에서 시작되었는데,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중요한 고고학의 방법이 되었다. 오늘날 우리는 구글어스, 위성사진, 항공레이더와 지표투과레이더 같은 기법으로 지표 아래를 들여다보기도 한다. 그렇게 전체 경관을 조사할 수 있는 것이다.

현재 고고학에서 잘 알려진 학자들 중에는 더 이상 땅을 파려 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발굴은 실제로 고고학 유적을 파괴하는 것임도 잘 알고 있다. 물론 특정 질문에 답하기 위해, 그리고 연대 측정 증거를 얻기 위해서라도 선택적 발굴이 필요하다. 그러나 오늘날의 발굴은 더 작은 규모로, 느린 속도로 세심한 계획 아래 이루어지고 있다. (p. 365~366)

 

대부분의 학문은 발전할 수록 그 속도가 빨라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발전할 수록 느려지는 학문이 있다. 바로 고고학이다.

초기에 성급한 발굴로 파괴된 유적이 많았다. 도굴과 불법매매도 많았다. 도시개발로 영영 다시 볼수 없게된 유적도 많다. 전쟁과 인간의 의도적인 행위로 파괴되고 있는 유적도 있다. 고고학은 물질적인 증거를 바탕으로 하는 학문이다. 그 증거들이 없어지면 영영 알 수 없게 된다. 밝혀낼 수 없게 된다. 그래서 고고학의 가치가 확인될 수록 발굴은 조심스럽고 최대한 천천히 진행하게 되었다. 곡괭이로 파헤치던 땅을 붓으로 살살 흙을 흩어내게 되었다. 며칠 몇달 만에 마치던 탐사를 몇년의 계획을 세워 천천히 조금씩 하지만 세세히 하게 되었다. 그렇게 발견과 보존은 함께 생각해지게 되었다. 지정된 곳에서의 발견에서 그치지 않고 전체적인 맥락에서 이해하게 되었다.

우리는 현재 지구온난화의 시기에 살고 있다. 다만 이 변화는 주로 1860년 이후 인간의 활동으로 생긴 변화다. 고고학자들은 장기간의 역사적 시각에서 기후 변동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며, 이는 오늘날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우리가 좋아하든 그렇지 않든, 우리는 허리케인이나 가뭄 같은 극단적인 기후 사건이 더 빈번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오래전에 사라진 도거랜드의 주민과 같지만, 이것은 전 지구적 규모에서 그러하다. 해수면 상승을 맞아 작은 수렵민 무리는 이동했다. 그러나 오늘날 커다란 도시에 사는 인구는 그럴 수 없다.

문명이 기후 변동에 취약하다는 사실은 고고학에서 결코 새로운 일이 아니다. 이렇게, 그리고 다른 많은 방식으로 고고학은 우리 자신에 대해,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도전을 어떻게 마주할 것인지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준다. (p. 383, 384)

 

역사적 사건에서 교훈을 얻는다고들 많이 이야기 한다. 인간의 행동에 대한 반성에서 깨우침을 얻는다고들 이야기 한다.

하지만 고고학적 발견들에서도 인류의 발자취를 통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 인류가 어떤 환경에서 어떤 수단을 통해 살다가 사라졌는지 확인하는 것을 통해 지금 잘못하고 있는 것들을 찾아볼 수 있다. 사회적 관계와 자연적 변화에 대해 어떻게 대처했는지 확인하는 것을 통해 지금 하고 있는 잘못들이 계속된다면 미래는 어떻게 될지 그려 볼 수 있다. 사라진 것들을 통해 사라질 것들을 예방할 수 있다.

고고학자의 발견과 주장들은 당대의 편견에 늘 부딪쳐 왔다. 당대의 편견이라는 것도 실은 당대의 지성이었는데도 지금 우리는 그것이 편견이었다는 것을 안다. 지금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도 후대가 보면 선조들의 어리석음이 될 것이다. 우리의 어리석음이 지나친 편견이 되기 전에 고고학에 좀더 관심을 기울여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를 좀더 제대로 알아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고고학은 고리타분한 옛날 이야기가 아니라 좀더 나은 미래를 준비하는 바탕이 될 수 있음을 알아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영국 고고학자가 풀어낸 서양중심의 고고학의 역사도 재미있었지만, 동양 그리고 우리나라의 고고학의 역사도 이 책처럼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이 나왔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논어 - 인생을 위한 고전, 개정판 명역고전 시리즈
공자 지음, 김원중 옮김 / 휴머니스트 / 201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주 예~~전에 논어를 읽어보려고 시도한 적이 있었다.

한자의 음과 해석이 달려 있는 책을 샀었다.

하늘천따지 하듯이 한자의 음을 따라 읽어보고, 뜻모를 한문문장을 해석한 한글문장을 읽으며 책을 읽다가.. 사실은 끝까지 다 읽지 못했다.

고사성어 풀이처럼 옛이야기로 읽혀지는 것도 아니고, 좋은말 같기는 한데 밑도끝도없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듯한 문장들이 연결되지 않고 매번 끊어져 있다보니 그 숨겨진 뜻을 해석하기에는 영 능력이 딸려서 무슨 소리인지도 모르겠는 책이 영 재미가 없어 그냥 중간에 접었다;;;

그러다 작년엔가... 최인호 작가의 소설 공자 를 읽었다.

논어의 말씀을 바탕으로 한 공자의 인생을 재구성한 소설을 읽으며 한 인간으로서의 삶과 제자들과의 대화로서의 논어의 문장들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나니 다시 한번 논어 를 시도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동안에 읽어온 책들도 꽤 되니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내심 기대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 논어개정판이 새로 나온 것을 보니 욕심이 났고, 다시 도전하여 이번엔 당당히 완독을 하는 뿌듯함을 경험했다. ㅎㅎ

새로 나온 논어개정판은 일단 표지가 멋있다. ㅋ

하드커버가 주는 고급스러운 느낌과 중국한학에 정통한 역자에 대한 신뢰와 각 장마다 소제목과 해설을 붙여 배경지식을 알려주는 것까지 모두 좋았다.

공기반 소리반 이 아니라 본문만 주석반 이라고 할 정도로 상세한 주석들도 읽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고전을 읽는데 중요한 것은 그 문장 자체의 의미도 의미겠지만, 현대적 해석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주석에서 한자의 뜻풀이 뿐만 아니라 중국 대표 유학자 주희의 해석과 조선의 대학자 정약용의 해석 그리고 현대적 해석은 어떻다라는 부분까지 알려주고, 때로는 그 문장에 숨겨진 일화까지 소개해 주고 있어서 지금 읽어야 할 고전으로서 논어를 선택한 이들에게 큰 도움이 될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논어>를 읽는 내내 나는 소크라테스가 떠올랐다. 둘은 굉장히 흡사한 면이 많았다.

일단 생몰연도가 비슷하다. 소크라테스는 기원전 470~399 , 공자는 기원전 551~479 로 둘 다 기원전 5세기의 학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러고 보면 동양과 서양은 역사적으로 굉장히 비슷한 속도로 발전해 왔다. 아무 상관 없어 보이는 먼 지역에서 이렇게 비슷한 성장을 해온 인류의 역사는 참 신기하다)

소크라테스도 제자와의 대화를 통한 교육적 효과를 중시하여 저서를 남기지 않아 그의 제자들이 스승을 기억하며 책을 펴냈고,

공자도 제자와의 대화를 통한 교육적 효과를 중시하여 저서를 남기지 않아 그의 제자들이 스승을 기억하며 책을 펴냈다.

소크라테스도 당대의 고대그리스정치에 대한 쓴소리를 숨기지 않았고 제자의 신분을 따지지 않았고

공자도 당대의 정치에 참여하려고 늘 애쓰며 비판을 숨기지 않았고 제자의 신분을 따져 받지 않았다.

소크라테스도 당대에서는 과거인 호메로스시절의 학문과 예술에서 배우며 숭상했고

공자도 당대에서는 과거인 요순임금시절의 학문과 예술에서 배우며 숭상했다.

소크라테스와 공자 둘다 자신이 직접 서술한 책이 없다보니 후대에 해석의 여지가 많아 자꾸 회자될 수 밖에 없었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둘 다 당대의 인정을 받지 못했고, 죽고 나서야 인정을 받았다. 그것도 아주 큰 인정을.

둘 다 당대에 인정받고 정치적으로 성공했다면 지금처럼 이름을 남길 수 있었을까? 아니었을 것이다. 당대에 인정받지 못했기에, 당대에 실패한 교육자이자 학자였기에, 후대에 그때 그 가르침을 몰라본 반성의 후회에서 더욱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그때 그 가르침을 따르지 못해 처절한 사회의 혼란을 겪고 난 후에야 비로소 후대에 더욱 스승으로 모셔진 것일 것이다. 그때 그 말씀들이 배우고 또 배워도 배울만한 것이었기에 널리 퍼지고 아직도 배우고 있는 사람들이 있게 된 것이다. 그렇게 고전이 된 것이다.

공자가 살던 시대에서 '유세' 라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당시에는 왕이 있고 그 왕에게 조언을 해주고 싶은 학자들이 왕을 만나 자신의 의견을 열심히 피력해야 했는데 그것을 '유세' 라고 했다. 공자는 정치에 참여하고 싶은 욕구가 큰 학자였고 열심히 왕들에게 유세를 다녔으나 그 어느 왕에게도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어떤 왕에게는 학자로서의 대우도 제대로 받지 못할 때도 있었다. 공자의 의견에는 항상 백성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왕들에게는 필요하지만 불편한 주제일 수 있었다. 그래서 왕정이 약해지고 귀족들, 학자들, 양반들이 세력을 잡아가기 시작하던 시기에 공자의 말씀이 퍼질 수 있었다. 왕의 권력이 전부가 아님을 피력해야 하는 시절이 되어서야 공자의 가르침은 연구될 수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민권이 생긴 것은 아니었으나, 적어도 권력이 나누어져야 할 때 <논어> 가 필요했다. 권력이 다가 아니고 먼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논어> 는 결국 왕에 대한 견제 세력이 되었다. 어쩌면 그래서 지금도 <논어> 를 읽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느 시대이건 항상 사람이 먼저 사람다워져야 하는 것이니까.

내가 <논어> 읽으며 한 이러한 생각들이 논어의 본래의 주제와는 다를 수도 있다. 하지만 짧은 문장 들 그 속에 숨겨진 의미들을 세세히 파악하는 이 책을 읽으며 오히려 나는 전체적인 의미에 대해 자꾸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어떤 짧은 문장들은 누군가에게 인생지침으로 삼을 만한 명문장들이겠지만, 나는 몇몇 문장들을 건진 것보다 논어의 의미에 대해 공자의 삶에 대해 나름대로 이해하게 된 것이 좋았다. 책장에 꽂아놓고 오며가며 볼때마다 '내가 이 고전을 읽었지' 하는 뿌듯함을 느끼게 될 것 같아 좋았다. 나중에 다시 읽을땐 겁먹지 않고 편안하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가끔 생각날때 중간중간 표시해둔 부분만 읽게 될 것도 같다. 여하튼 소장각인 책을 또 하나 얻었다. ㅎㅎㅎ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왜 지금 고전인가 - 서양고전 입문자를 위한 안내서
네빌 몰리 지음, 박홍경 옮김 / 프롬북스 / 2019년 10월
평점 :
절판


서양고전 입문자를 위한 안내서 / 하룻밤에 끝내는 고전 공부의 기초

왜 고전은 우리 삶과 세계에 중요한가 / 어떻게 고전을 공부할 것인가

엘리트의 지식에서 대중의 교양으로! 세계적 석학과 리더들은 왜 그토록 고전을 읽고 권할까? (표지 中)

 

제목이 주는 무거움과 다르게 책이 무척 작고 얇아서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다.

표지에 써있는 것처럼,

왜 고전이 현재에도 중요한지, 어떻게 고전을 공부해야 하는지, 세계적 석학들은 왜 계속 고전을 권하는지, 서용고전을 제대로 입문하고 싶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안내를 제대로 받고 싶었다.

그런데 읽을 수록 이게 뭐지? 싶었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서양고전 입문자를 위한 안내서라고 볼 수 없었다. 그리고 왜 지금 고전을 읽어야 하는지 알려주는 책도 아니었다.

무거워진 머리로 앞 표지를 다시 보았다.

원제가 CLASSICS : WHY IT MATTERS 였다.

고전 : 왜 중요한가 로 해석된다.

즉, 고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책이다.

초보자들에게 고전입문을 하게 해주는 책도 아니고, 지금 이 시점에 읽어야 할 필요성을 알려주는 책도 아닌 것이다.

출판사에서 이 책을 담당한 담당자에게 묻고 싶다. 이 책 내용을 읽어 보았는지? 읽어보고 한글판 제목을 정한 것인지?

내용을 안 읽어 보았다면 책에 성의가 없는 것이고, 내용을 읽어보았다면 제목만으로 독자를 낚은 것인데, 어느 쪽이 더 욕을 먹는 상황일까?

내 개인적 성향은 차라리 성의가 없는 게 낫지, 제목으로 몇 마디 문구로 낚아 놓고 읽을 수록 독자를 당황하게 하는 것이 더 나쁘다고 생각한다.

책의 저자는 영국 엑세터대학 고전고대사학 교수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내용중 영국을 편애하고, 유럽역사가 세계역사라는 서양인 우월적 사관이 수시로 드러나고 좀 불편했다.

그리고 본문 첫장 첫번째 줄에 나오는 저자가 말하는 고전이란 < 고대 지중해 세계의 사회와 문화, 그리고 그 세계의 문학, 예술작품 > 이라고 정의 내린다. 내가 생각했던 고전의 폭보다 너무 좁은 의미의 정의여서 첫장 첫줄부터 이건 뭐지? 싶었다.

이 같은 현실적 위협은 영국을 제외한 국가들에 설립된 많은 대학에서 고대 관련 연구 전반을 문헌학자와 관련 학과에 맡기는 대신 고대사는 역사학과에, 고대 철학은 철학자들에게, 사료 연구는 고고학에 맡긴 데서 확인할 수 있다. 다행히 고전학은 격변을 피해 19세기 학교와 대학에서도 명망 높은 학문으로 인정받았으며 역사처럼 비교적 최근에 등장한 경쟁자들 틈에서 구별된 역할을 맡아 오늘날 학문으로서의 위치와 위상을 형성했다. (p. 30)

<1장 고전이 마주친 문제> 에서 저자는 고전을 연구하는 자신을 비롯한 고전학자들의 위상을 문제삼는다.

<2장 과거의 추적 > 에서는 고전학자들이 과거를 추적하려면 학문간의 장벽을 무너뜨리고 고대에 대한 불가피하게 단편적 견해를 놓고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교환하며 다양한 견해를 탐새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를 이해하고 있는 지금도 살아 숨 쉬는 그리스, 로마의 여러 흔적을 이해하려면 고전학자들이 그 이해를 도와주고, 고대가 수용되며 재발견된 방식을 해석해줘야 한다. 훗날의 울림보다는 고대에 온전히 몰두한 고전학자를 포함한 모든 고전학자는 수용의 역사와 고전의 이해에 미친 영향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과거의 고전은 절대로 현재의 피난처가 될 수 없으며 언제나 흔적을 남긴다. (p. 145)

<3장 현재의 이해 > 에서는 본격적으로 고전학자의 역할을 제시하며 고전학자의 중요성을 부각시킨다.

과거에 발생한 사건을 통해 우리는 진실하고 믿을 만한 지식을 얻을 뿐만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얻을 수 있다. (p. 152)

고전고대의 연구는 예측 가능하면서도 예측 불가능한 인류와 동일한 방식으로 인간에 대한 지식과 이해를 넓힌다. (p. 172)

고대는 우리가 맹종하며 따라야 할 모형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미래에 다시 만들고 싶은 요소를 나타내는 측면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고대의 지식을 활용해 보다 신중하게 생각할 수 있다. (p. 177)

미래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단순히 목표, 가능한 목적지를 상상하는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과거는 악몽의 이미지를 제공하여 우리가 무엇을 피하고 싶은지를 깨닫게 한다. (p. 178)

고전은 우리의 자원과 가능성을 확장하고 이 시대와 기본적인 가정을 조망할 훌륭한 위치를 제공한다. 고전은 이류가 물려받은 유산의 일부이면서도 인간의 의미, 우리가 된다는 것에 대한 전부를 질문하도록 이끈다. (p. 181)

 

<4장 미래의 예상 > 에서 투키디데스나 에드워드 기번을 예시로 들며 고전(그리스 로마 시대의 유산)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따라서 현재에도 미래에도 고전연구는 필요하다고 말한다.

과거의 역사에서 배우고 배운 것을 현재에 생각하며 미래를 변화시키는데 활용하는 게 좋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 수준의 깨달음 아닌가? 고전에는 배울점이 많다는 쉬운 얘기를 어찌나 어렵게 하는지;;; 게다가 고전의 중요성을 일반 대중에게 말하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고전을연구하는 고전학자의 중요성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더 크게 느껴진다. 배울점 많은 고전을 연구하는 고전학자들을 응원하는 내용이 본론인 것이다.

과연 이러한 내용의 책을 일반독자가 읽고 왜 지금 이 시점에 고전이 필요한지 깨달을 수 있을까?

과연 이러한 내용의 책을 읽고 서양고전 입문을 할 수 있을까? 심지어 여기서 말하는 서양고전은 그리스로마에 국한되어 있는데 그것이 올바른 범위인가?

하룻밤에 고전공부의 기초를 끝내고 싶어서 이 책을 읽은 독자 중에 과연 고전공부의 기초를 배운 사람이 있는지 궁금해진다.

 

고전을 그리스로마에 제한시키지 않고 문학과 철학과 역사 를 두루두루 살펴주었다면,

추천할 만한 책들이 무엇이며 어떤 순서대로 읽으면 좋다는 조언을 해주었다면,

고전은 무엇을 고전이라 부르며 왜 고전이라 부르는지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었다면,

서양고전과 동양고전을 좀더 객관적인 입장에서 비교해 주고 저자가 생각하는 서양고전으로서의 가치를 좀 더 분명하게 알려주었다면,

그러한 고전들을 왜 지금 읽어야 하는지 시대적 의미를 좀더 현대적 관점에서 알려주었다면,

이러한 입문자들이 가질법한 생각들에 대해 좀더 쉽게 설명해 주었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운 마음이 크게 남는 책이었다.

나는 책을 좋아한다. 많은 사람들이 책을 좀더 많이 읽었으면 하는 바램을 항상 가지고 있다.

그래서 책에 대해 왠만하면 늘 호감을 가지고 대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내용과 맞지 않는 제목과 홍보내용을 봤을때 감정이 욱 하고 올라올 때가 있다. 잘못된 첫인상으로 접한 책에 대한 실망으로 독서에 대한 흥미 자체가 떨어질까봐... 그래서 책을 내시는 분들이 좀더 신경써주셨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문화를 알면 중국이 보인다
윤창준 지음 / 어문학사 / 201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에겐 가깝지만 먼 나라가 두곳있다. 중국과 일본. 지리적으로는 가까우나 심리적으로는 멀다고나 할까.

같은 자본주의 체제이나 식민지배의 상처를 준 일본과 역사속에서 내내 형님국으로 있다가 함께 식민지배를 당했으나 공산주의국가가 되면서 멀어진 중국.

두 강국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낑겨 있는 한국은 심지어 세계 유일의 분단국이다.

한국이 경제강국이 되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세계 열강들의 눈치를 보며 살벌하게 생존해나가야 하는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닥 주변국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조금 알고 있는 거라고 해봐야 근대 이전 역사속의 모습이나 최근의 해외뉴스속 모습이나 유명한 관광지 정도?!

저자의 말처럼 1992년 우리와 중국이 수교하기 전까지 한국은 중국과 철저히 단절되어 있었고 그만큼 서로를 알지 못한채 세월을 보냈다.

해방이후 40여 년간의 단절과 여전한 분단국의 현실 속 다른 체제의 국가로서 중국은 그저 관광지로서만 다가올 뿐이었다.

가난한 공산주의 국가에서 미국과 나란히 G2의 세계경제대국으로 급속도의 성장을 이룬 중국에 대해 우리는 아직도 옛날옛적의 (왠지 우리나라보다 못하다는 인식의) 중국을 기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나라를 알아간다는 것은 문화를 먼저 이해하고 접근하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일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은 무척 시의적절하게 다가왔다.

이 책은 다양한 분야에서의 중국의 모습을 알려준다.

지리환경, 자연환경, 행정지리, 인문지리, 언어, 문자, 명절, 기념일, 음식문화, 차문화, 음주문화, 종합예술, 금기항목등, 혼인문화, 장례문화, 이혼문제, 여성의 지위 등 환경에서 시작해서 실생활을 거쳐 현재의 모습을 큼직큼직하게 설명해 준다.

다른 책들에 비해 글자도 크고 글간격도 넓게 되어 있는데다 중간중간 자료들이 꽤 많이 있어서 쉽고 편안하게 술렁술렁 잘 읽힌다. 잡지보는 느낌?!

초반에 다양한 지도들이 나와서 중국의 환경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대륙 전체 모양을 보면 가로가 더 길지만 사막과 고원을 제외하고 거주지역만을 놓고 보면 남북으로 긴 형태라는 것을 그래서 북방문화 와 남방문화 로 크게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나는 땅덩어리가 워낙 넓어서 사방문화?로 대충 알고 있었다,;;; 이 두 문화의 구분 기준은 '벼농사의 가능'여부 라고 한다. 북방에서는 벼농사가 불가능해서 밀농사를 지었고 남방에서는 2모작, 3모작까지 가능했다.

전체지형적으로 서쪽이 높고 동쪽으로 올수록 낮아지는 형태라 중국을 흐르는 대부분의 강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른다고 한다. 강을 따라 번영한 문명의 흐름도 강줄기를 따라 확장됐을 것을 생각하면 세계4대문명중 동양단독문명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황하문명에 대해 다른 문명과 서로 교류가 가능할 수 있었겠구나 싶은 생각이 처음 들었다.

만리장성 부분도 새로웠다. 미국에서 우주선을 쏘아올리고 우주인들이 지구 밖에서 봤을때 인공적인 건축물은 만리장성 밖에 안 보이더라 라는 말이 나는 진짜인줄 알았다. 그런데 중국에서 우주산업을 발달시켜 우주선을 쏘아올려 지구 밖에 나가 보니 만리장성은 보이지 않았고 그동안 자신들을 속여온 미국의 거짓말에 이제는 속지 않을 만큼 발전한 기술보유국임을 자부한 인터뷰가 있었다고 한다. 달나라에서 보이던 보이지 않던 지구상에서 존재하는 최대의 건축물이 만리장성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테지만 좀 씁쓸한 기분도 들었다.

만리장성의 목적이 북방의 유목민족이 말을 타고 넘어오지 못하게 하기 위한 방벽이었다는 것을 새삼 읽고 보니, 서유럽의 역사에서 유목민족을 막아낼 방벽이 없어서 침탈을 당했던 건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최근 읽고 있는 로마사와의 연결성도 떠올라 유목사가 갑자기 궁금해지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지도를 보면 호랑이 형태라고들 이야기 한다. 중국의 지도는 수탉에 비유된다고 한다. 책에 실린 지도를 테두리라인만 살펴보니 정말 그랬다. 중국땅이 수탉이었다니! 새로운 발견이었다. ㅎㅎ

중국이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G7 즉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캐나다 이탈리아 일본 등 일곱 나라의 인구를 합한 것보다도 더 많은 인구라는 것을 읽고 나니 정말 많구나 싶었다. 인구가 많고 땅덩어리가 넓으면 정말 지배하기 힘든 건데 중국이 왕정에서 일당독재의 공산주의국가로 갈수밖에 없었겠구나 싶기도 했다. 그 많은 사람들과 그 넓은 땅덩어리를 말많고 탈많은 민주주의체제로 운영할 수 있을까?

중국인구가 많아서 여전히 한가정한자녀 정책인줄 알았는데, 2015년 이후 한가정두자녀 로 변경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인구가 많아도 감소추세로 접어들고 있으므로 인구가 줄어든다는 것은 그래서 노령화인구가 더 많아진다는 것은 역시 많은 문제를 가져오나 보다.

중국인의 대부분은 한족이지만 다양한 소수민족이 함께 구성원을 이루고 있다. 지도를 보니 대개 변방에 위치한 소수부족들의 생활권은 11개국가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는 중국의 위치를 새삼 느끼게 해주었다. 중국인보다 네팔인, 미얀마인, 몽골인에 가까울 것 같은 그들의 문화와 국경을 생각해보면 국경은 지형의 가름이 제일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위적인 국경은 전쟁을 통해 가능하지만 그렇게 지어진 국경은 의외로 그렇게 많지 않다. 대부분 자연이 구분한 지형에 의해 구분선이 생겼고 국경이 되었다. 국경과국경 사이에 위치한 부족들의 생활모습은 혼합의 형태일 수 밖에 없고 그러한 다양성이 앞으로도 지켜질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한자의 기원은 갑골문자라고 배웠었는데, 최근 도문(도자기에 새겨진 문자)이 발견되면서 중국은 고고학 방면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고 한다. 지금까지 발견된 도문은 도자기 파편에 문자 하나씩만 있어서 일종의 표식으로 여겨지지만 문장을 이룬 도문이 발견되면 그래서 그 도문이 최초의 한자로 인정받는다면, 한자의 역사는 지금으로부터 약 6800년 전으로 소급되는 거라고 한다. 중국은 다방면에서 서양보다 우위를 차지하려고 열심이다. 다 좋은데 고구려 역사는 건드리지 말지... 우리의 역사까지 자기네 역사로 만들어버리려 하는 것은 좀 많이 아쉽다...

갑골문자의 발견과정도 재미있었다. 소둔촌의 농민들이 밭을 갈다 자꾸 땅속에서 짐승의 뼈조각이 나오자, 동네 한 귀퉁이에 이들을 모아두었다고 한다. 어느 날 한 농부가 팔을 낫에 베어서 피가 흐르자, 약이 없던 농부는 혹시하는 마음에 이 뼈조각을 갈아서 팔에 발랐는데 이튿날 피가 멈추고 상처가 아물기 시작했고 이 소문이 순식간에 퍼져 이 뼈조각을 용의 뼈 즉, 용골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하여 아프면 갈아서 먹고 바르고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귀한 역사적 사료는 1899년 왕의영이라는 관리의 눈에 띄기전까지 그렇게 소모되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많은 조각들을 발견하여 한자의 기원을 밝히는데 큰 도움이 되었으나 그전에 사라진 조각들에 대한 아쉬움은 클 수밖에 없을 듯 하다. 사실 이런 일화들은 세계 곳곳에 비일비재 하다. 귀한 것인줄 모르고 함부로 대했던...

한자의 이야기도 재미있었지만, 명절과 풍습에 가면 더 잘 읽힌다. 명절은 우리와 거의 비슷했다. 하지만 복 자를 거꾸로 붙인다던가, 우리가 만두라고 부르는 것이 중국에서는 만두가 아니라던가, 주마등의 실제 사진 같은 것들은 신기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 라는 말이 경극에서 정말 어떤 의미인지 처음 알았고, 과일 선물로 배 는 해서는 안된다는 것과 숫자 8을 정말 좋아하고, 술과 안주만 파는 술집은 없고, 결혼식에 주례도 없다는 것과 전족의 악습이 성적쾌락추구에 있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전족을 하면 작은 발로 걷느라 뒤뚱거리게 되고 이러한 걸음걸이는 질 근육을 비정상적으로 발달시켜 남성들에게 커다란 성적흥분을준다고 한다)

중국의 다양만 면모를 알게 해주는 이 책은 중국을 분석하는 책은 아니다. 중국에 대한 일종의 지대넓얕 이라고나 할까.

지금의 중국을 보는데 알아두면 좋을, 중국사람을 대할 때 알아두면 좋을 상식들을 풍부하게 알려주는 책이다. 쟁점을 파악하고 의미를 분석하는 책들도 필요하지만 때로는 가볍게 상식의 폭을 넓혀주는 이런 책들도 여행하듯 읽으면 기분전환도 되고 재미도 있고 좋은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