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연한 고양이
최은영 외 지음 / 자음과모음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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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시점 짧은 소설

작은 이웃과 가까워지는 열 편의 짧은 소설

 

 

이 책은 고양이와 관련된 아주 짧은 단편소설 10편을 모은 작품집이다.

내가 좋아하는 소설가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길래 이렇게 한 권으로 그 작가들의 글을 모아 읽을 수 있다니~ 하며 기쁜 마음으로 읽었다.

더구나 나는 개 보다는 고양이가 좋은데, 평소 좋아하는 작가들이 대부분 고양이를 키우고 있다는 공통점을 알게되니 왠지 더 반갑기도 했다.

네 마리 고양이를 만난 것이 인생의 가장 큰 행운이라 생각한다는 최은영 작가의 '임보일기' 는

아끼던 고양이와 사별 후 주차장에서 구조한 고양이를 임시보호하면서 느끼는 감정들을 담은 작품이다.

임시보호란 그야말로 임시보호다. 고양이를 아끼고 사랑하지만, 그래서 위험에 처한 길냥이를 지나칠 수 없어 구조하지만, 키울 수 없는 상황에서 적당한 가족을 찾을 때까지 임시로 보호하는 기간... 짧다면 짧은 기간이었지만 함께 한 시간은 온통 진심이었다.

그녀는 이 끝이 어떨 것일지를 다 알면서도, 다시 시작하려 하는 사람이었다. ...

더 정을 주지 않으려고 이름조차 짓지 않 았는데도, 피부를 맞대고 맥박을 느낀 다정한 존재의 무게가 가벼울 수는 없었다. (p.21)

 

동사의 위기에서 구조한 한 줌 고양이를 2년 만에 '혹시 타고 다니는 건 아니냐'고 의심받는 거대 고양이로 키워냈다는 조남주 작가의 '테라스가 있는 집' 은 고양이의 실종과 만남을 한 커플의 결혼과 파혼으로 연결하여 운명과 일상을 이야기하고 있는 작품이었다. 운명이라고 생각했던 사람과 헤어졌을 때 거짓말처럼 고양이가 돌아왔다.

유성을 만나고 결혼을 결심하고 준비하던 모든 시간이 꿈같았다. 어쩌면 이제까지의 삶에서 가장 무겁고 중요한 일이 홀린 듯 흘러와버렸다. 유성과 지나 자신, 또 결혼 생활 자체에 대해 꼼꼼히 알아보고 검토해서 결정한 것이 아니다. 횡단보도 앞에 서 있는데 신호등의 초록불이 들어오기에 건넜다. 꼭 이번 신호에 건너야 하는 것도 아닌데, 목적지가 길 건너에 있는 것도 아닌데, 그러고는 그 발걸음에 스스로 운명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p. 37)

방심한 모습으로 낮잠을 자는 고양이를 좋아한다는 정용준 작가는 '세상의 모든 바다' 에서 사라져 가는 마을에 홀로 남아 바다에 갔다는 부모님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백설과 떠돌이 트럭기사 무운의 인연을 고양이가 이어주고 있는 작품이다. 순박한 사랑과 자연의 조화에 대해 느끼게 하는 소설이다.

마음 약한 사람이 실망을 이기지 못해 우울하게 얼굴이 내려앉은 듯 파스칼의 표정이 딱 그랬다. (p. 54)

이제 인연이 닿지 않는 친구는 궁금하지 않지만 그 집 고양이는 가끔 생각난다는 이나경 작가의 '너를 부른다' 는 한 소녀가 고양이에게 하는 독백이다. 언니가 돌보던 길냥이들의 대장격인 '그림자' 라는 고양이에게 잃어버린 언니의 복수를 이야기하는 소녀의 슬픈 고백이다.

그림자야, 언니는 네가 특별하댔어. 솔직히 나는 잘 모르겠다만 언니는 그렇게 믿었어. 그러니 정녕코 네게 신통한 능력이 있어 사람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면

간곡히 바라건데 내 소원을 좀 들어주렴. ... 그러니까 꼭 좀 부탁해. 그러니까... 그러니까 이제 그만 나와. (p.76)

 

20년차 집사라는 강지영 작가의 '덤덤한 식사' 는 화자가 고양이 영혼이다. 길냥이 어미를 잃고 용감한 형제의 도움으로 생명을 이어가던 냥이가 전염병으로 죽었으나 그 영혼이 형제의 곁을 맴돌며 지켜본다. 동물병원에 살게 되었으나 녹록치 않은 현실에서 덤덤히 살아가는 자신의 형제를...

너는 다나에게 발톱을 세우지 않았다. 그저 흔해빠진 겁쟁이 고양이가 아니란 걸 증명하기라도 하듯 바늘과 가루약과 처방식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 너는 10퍼센트에 속하는 고양이였지만 자신의 생존조차 덤덤하게 받아들였다. (p. 87)

 

고양이 눈, 고양이 입, 고양이 소리, 사람들은 비난조로 말하지만, '저 피사체 좀 치워버리라' 는 그의 말처럼 그것이 결코 비난의 도구가 될 수 없음을 이제는 누구라도 알듯 저자도 알게 된듯 박민정 작가는 '질주' 에서 피사체가 되었던 20살 새내기 여대생의 상처를 들춰낸다. 이제 상처가 아니라는 듯. 하지만 여전히 잊지 않고 있다는 건 생생한 기억이 여전히 상처라는 증거 아닐까....

암막커튼을 쳐 컴컴한 방 어딘가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주인이 건사하지 못한 고양이는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내며 여기저기 쏘다녔다.

어둠 속에서 윤성 선배가 뱃살이 늘어져 보일 만큼 뚱뚱한 고양이의 뒷목을 잡고 들어 올리며 했던 말을 잊지 못한다. 이것 좀 어디 갖다 버려라. (p.97)

 

지난 봄에 꽃나무를 잡고 자는 고양이 얌이를 만났다는 김선영 작가는 '식초 한 병' 에서 얌이의 꽃나무를 잡고 자는 장면을 그대로 담아낸다. 작가들에겐 인상적인 장면 하나가 작품 하나로 풀어내질수도 있구나 싶은 것이 신기했다. 누구에게도 곁을 내주지 않는 고양이 얌이는 사실 누구에게나 곁을 내주고 있는 고양이 이기도 했다. 아무렇지 않은 얌이의 행동은 작가의 마음도 아무렇지 않게 풀어준 듯 했다.

내가 살던, 내가 알던 사람들과 멀리 떨어져, 내가 세상 이편에서 그토록 하고 싶었던 일을 하는 시간이다. 어린 내가 나보다 더 어린 동생의 학비를 대라는 엄마의 말에 접어야 했던 일이었다. 안락한 일상을 유지해줄 것 같은 남자를 만났으나 나보다 더 안온한 일상을 원하는 남편 때문에 미루어졌고, 뒤이어 오로지 나에게 의지하는 한 생명을 맞고 키우느라 또 눌러야 했다. 소설을 쓰겠다고 했을 때, 아무도 귀담아듣지 않았다. 특히 남편은 이제야 그런 걸 해서 뭐 하냐고 괜히 헛힘 쓰지 말라고 했다.

얌이는 지금 어떤 시간일까, 어젯밤 얌이의 울음소리는 더욱 애잔했다. (p. 123)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삶은 그다지 무겁지도 슬프지도 불행하지도 않을지도 모른다. 얼마든지, 얼마든지. (p. 131)

 

빵집 앞 풀숲에서 발견된 검은 새끼 고양이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는 김멜라 작가는 '유메노유메' 에서 인간으로 변한 고양이 유메의 이야기를 한다.

유메는 고양이와 인간을 넘나들며 미애의 꿈에 찾아와 미애를 위로했다.

까많고 말랐던 새끼 시절, 잠든 미애의 가슴에 올라와 한없이 여린 숨결로 미애의 외로움을 달래주던 그 밤들처럼. (p. 152)

 

묘령 열다섯 살 고양이와 살고 있다며 이 문장이 오랫동안 과거형이 아니게 되기를 바란다는 양원영 작가는 '묘령이백' 에서 이백살이 넘은 고양이 이야기를 한다. 자신의 고양이가 어느새 할머니 나이가 됐지만 오래도록 함께 하고 싶어하는 작가의 바람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저승차사가 데려가야 하는 반려동물들 영혼 중에서 유일하게 데려가지 못하는 묘령이백이 ㅎㅎ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저승사자가 되려면 성격이야 어쨌든 심성이 착해야 하는데, 심성이 착하니 성격이 아무리 괴팍해도 동물의 미련을 쉬이 끊질 못하는 것이다. 생전 닳을 만큼 닳아 사람을 싫어하는 차사도 예외는 없다. 애초에 놈들에게 모질게 구는 자들은 지옥에 끌려가 없기도 하고.

동물들의 영혼은 인간보다 순수하고, 때 묻지 않고, 특히 반려동물이라는 놈들은 제 주인이 저를 그렇게 학대해도 주인만 생각하는 미련한 놈들 천지다. 갓난쟁이와 아이들 영혼을 회수하는 부서와 더불어 차사들이 오래 버티지를 못한다. (p. 157)

여전히 건강해서 아무튼 나는 기쁘다. 기뻐하는 내가 참 싫다. 언젠가 네가 묘령천으로 불리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바라는 내가 참 싫다. 놈을 뒤로 하며 나의 한심함을 지독하게 곱씹는 것이다. 대체 고양이가 무엇이기에. (p. 169)

 

길에서 고양이를 만나는 날은 기분이 좋고, 우주 어딘가에 고양이들이 모여 사는 행성이 있다고 믿는 사람이라는 조예은 작가는 '유니버셜 캣샵의 비밀' 에서 지구의 고양이들을 원래 행성으로 보내준다. ㅎㅎ

그날, 전 세계 곳곳에서 날아오르는 별똥별들이 목격되었다. (p. 189)

단편치고도 초경량 단편들이다 보니 순식간에 읽게 되는 이 작은 소설집은 때로는 따듯했다가 때로는 슬펐다가 때로는 처참했다가 때로는 다독여주다가 때로는 웃음짓게 한다. 고양이들이 독자를 들었다놨다 한다.ㅋㅎㅎ 그렇게 공공연히 볼 수 있는 고양이들을 공공연히 지나칠 수 없게 만든다. 무심한 존재는 가벼이 지나치게 되지만 다정해진 존재는 무게감이 생기기 마련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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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와 함께 떠나는 소아시아 역사문화산책 - 터키에서 본 문명, 전쟁 그리고 역사 이야기
조윤수 지음 / 렛츠북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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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거석문화의 웅장함을 보여준 괴베클리 테페,

히타이트 제국의 도시 하투샤

최초의 동서양 전쟁이 일어났던 트로이,

산 정상에 무덤이 있는 넴루트

바빌론,미타니 문명의 한 자락이었던 안티오크까지!

 

 

저자는 외교관으로 미국, 러시아, 독일, 싱가포르, 쿠웨이트, 터키에 근무했었다고 한다. 2014~2017 주 터키대사를 마지막으로 37년간의 외교관 생활을 마치고 지금은 글을 쓰고 강의를 하며 지내고 있다고 한다. 외교관이라... 그야말로 꿈의 직업이 아닌가 싶다. 우리나라를 대표해서 다른나라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굉장히 멋있는 일 같고 새로울 것 같고 뿌듯할 것 같다.

젊어서는 일부러라도 많은 경험을 하라고 하지 않던가. 그래서 대학생이 되자마자 하고 싶은 일이 배낭여행이 아니던가. 그런데 37년간의 외국생활이라... 그것도 외교관으로서... 생각할수록 참 부럽다. ㅎㅎ

터키는 소아시아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그냥 별 생각없이 역사책에서도 소아시아라고 나오면 음~터키! 하며 그냥 읽었었는데, 새삼스럽게 생각해보니 하나의 국가를 왜 소아시아라는 대륙명칭으로 부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 책을 읽고 든 생각은, 아마도 터키에 거의 모든 문명의 기원이 있어서 그런게 아닐까 싶다. 터키는 역사적으로 굉장히 의미깊은 나라이다. 메소포타미아문명과 이집트문명 사이에서 고대그리스문화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으며 비단길을 통해 동양과 유럽을 연결시켰던 땅이다. 이 땅에 고대문명의 다양한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그야말로 문명의 집합소 처럼. 하나의 대륙으로 불러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만큼 다양한 역사의 흔적을 갖고 있었다. 서양입장에서 보면 가장 가까운 아시아이자 아시아의 모든 곳 모든 것 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좀 의아스럽기도 하다. 동양과 서양이라고 할때 내가 한국인의 입장에서 봐서 그런지, 동양은 극동아시아 서양은 유럽 으로 인식된다. 중동아시아라고 하는 것까지는 왠지 그냥 아시아 같긴 하다. 그런데 터키는 굉장히 예외적인 곳이다. 고대시대엔 트로이로서 고대그리스시대엔 페르시아로서 고대로마시대엔 동로마로서 지속적으로 유럽과 함께 역사를 만들어온 땅인데 새삼스럽게 동양이라고 뚝 떼어내 버린 느낌이 든다. 터키가 오스만제국이 되지 않고, 이슬람화 되지 않았다면 아마도 유럽의 땅으로 인식되지 않았을까? 동양과 서양의 구분은, 다른 대륙들과는 달리 연결된 유라시아 대륙으로서 동양과 서양의 구분은 아무리 봐도 종교적 구분 같다는 생각이 든다. 기독교 대 이슬람교. 성서라는 한 뿌리에서 출발한 영원한 앙숙같은 형제사이랄까.

여하튼 고대역사에 관심이 많던 나로서는 반가운 책이었다.

책의 본격적인 내용이 나오기 전에 제시된 터키의 유적 지도는 정말 감탄스러웠다. 이 넓은 땅에 이토록 골고루 온갖 문명,문화가 다 있다니! 정말 가보고 싶은 곳이 한두군데가 아니다.

저자는 대사로 있으면서 터키의 여러 발굴 현장을 다닐때 발굴단장이나 박물관장들의 설명을 직접 들을 수 있었다. 일반인이었다면 만나지 못했을 분들과 함께 발굴현장을 볼 수 있었다니 얼마나 좋았을까. 게다가 터키에 불고 있는 한류열풍 덕분에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도 환대를 받는 경험까지 할 수 있었다고 하니 참 좋은 시절에 좋은 구경을 하셨다.

또한, 대사이기에 고대문명 발굴에 한국의 연구자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아준 적도 여러번이고 터키로 밀려온 시리아 난민을 위해서도 한국을 대표해 여러 편의를 제공해주었다는 내용을 읽으니 외교관이라는 직업이 참 다양한 일을 할 수 있구나 싶고 정치적인 문제 뿐만 아니라 문화와 국가이미지관리면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해주어야 하는 중책이구나 싶었다. 그러면서 다른 나라에 계시는 한국인 외교관들은 어떤 활동들을 하실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저자는 외국의 문명을 보며 한국의 역사와 연결짓고자 하는 시도를 여러번 하고 있었다. 터키의 교류와 발굴 경험을 바탕으로 고구려, 발해, 백제, 가야의 발굴과 나아가 동서 문화 교류에도 진전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 또한 여러번 표현하고 있다. 외국의 문명이 먼저이고 더 나은 것처럼 보는 것보다, 외국의 문명이 그러할때 우리의 문명의 모습은 어떠했는지 함께 보고자 하는 생각은 참 좋은 것 같다. 다만 학문적 토대가 약한 것은 좀 아쉽다. 하지만 저자는 역사학자가 아니므로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국내 역사학자들이 더 분발해줘야 할 몫이다. 그러고 보니 국내 고고학 연구는 어느 수준까지 와 있는지도 궁금해진다. 많이 알려졌는데 나만 모르는 건가;;;

터키 유적은 정말 파도파도 계속 나오는 보물단지 같은 곳이다. 앞으로도 얼마나 파야 할지 모를 만큼 많은 곳에 그 보물들이 산재해 있다.

이 책에 나오는 그 유적들의 사진들이 반가우면서도 좀더 자료가 많았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기도 했다. 그만큼 궁금한 곳이 많았다.

발굴초기인 괴베클리 테페 의 거석, 신석기 문명의 차탈회위크, 트로이 전쟁의 다른 관점, 아시리아의 식민도시였던 퀼테페, 철기의 제국이었던 히타이트의 하투샤, 미다스왕과 알렉산더 대왕의 흔적을 볼 수 있는 프리기아 고르디움, 크로이소스 왕의 사르디스, 아르메니아의 우라르투 반 등의 곳에서 고대 문명의 발자취를 볼 수 있었고,

이즈미르와 에페소스, 파묵칼레,와 히에라폴리스, 보드룸과 안탈리아, 가지안테프와 라오디게아, 아다나와 타르수스, 넴루트와 트라브존 에서 고대그리스,로마의 흔적을 너무나 진하게 느낄 수 있었고,

디브리아 와 콘야, 카파도키아와 사프란볼루, 앙카라와 이스탄불 에서 고대문명 대비 잘 알려지지 않은 셀주크제국과 오스만제국의 흔적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그야말로 터키는 석기시대부터 현재까지 새로운 문명,문화가 없었던 때가 없었다고 할만큼 모든 시대를 품고 있었다.

너무나 다양했고 너무나 찬란했던 문명과 문화는 어디로 갔을까?

유적과 유물로 국가산업의 25%가 관광산업에서 부를 창출하는 터키에서 정치적 혼란과 불투명한 미래는 어떤 방향을 제시하고 있을까?

과거를 먹고사는 현재의 터키에 가보고 싶어하는 사람으로서, 그 과거를 너무나 궁금해하는 사람으로서 터키는 역사의 나라다.

하지만 부를 창출하는 역사를 갖지 못하는 나라의, 앞만 보고 달리고 있는 나라의 국민으로서 터키 사람들은 어떤 미래를 꿈꾸고 있을지 갑자기 궁금해진다.

유럽의 문화를 선도하고 경쟁했던 나라임에도 지금은 과거의 역사로만 회자되는 터키는 그리스나 이집트처럼 몰락한 정도는 아니지만 몹시 불투명해 보인다. 그래서 안타깝고 아쉽다. 터키는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정말 굼금한 나라다.

지도와 사진 자료가 빈약하고, 내용도 학문적이 아닌 개인적 감상수준이지만 이 책이 불러일으키는 터키에 대한 호기심만으로도 읽어봄직한 책이었다.

아~ 가보고 싶다! 터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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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에서
스티븐 킹 지음, 진서희 옮김 / 황금가지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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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여러모로 스티븐 킹 답지 않은 작품이다.

짧은 편이고 범죄 스릴러도 아니고 빨리 해결을 하고 싶은 빨리 끝을 보고 싶은 긴박함을 느끼게 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스티븐 킹 다운 소설이기도 하다.

짧은 내용이기에 더 단숨에 읽어가게 하는 몰입력과 끝이 다가올수록 끝이 나지 않기를 바라게 되는 반대적 긴박감이란 스티븐 킹 같은 대작가의 능수능란함이 없다면 어려웠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1947년생의 우리나라 나이로 일흔세가 넘은 어르신이 그 어떤 편협함도 갖지 않고 인간애와 인류애를 보편개념으로 인식하고 계시다는게 존경스러웠다.

여름에 읽었던 '아웃사이더' 에서 미국내의 진통제 중독으로 인한 마약중독에 대해 거침없이 표현했던 부분들을 기억한다.

길게 이어지는 작품목록에서 어떻게 그토록 끊임없이 작품을 상상하고 작품속에 현실을 녹아내는지 새삼스럽게 감탄한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 짧고 굵게 마음을 훅 치고 간다.

어느날 갑자기 내가 사라지게 된다면 나는 어떤 사람이고 싶은가?


스콧은 이달 초만 해도 마침내 체중계 위에 올라갈 용기가 생겨 너무나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사실 아주 기뻤다. 그런데 그 이후로 꾸준하게 체중이 줄자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불안하긴 해도 그냥 약간 걱정스러웠을 뿐이었다. 불안이 공포로 바뀐 건 옷 때문이었다. 이 옷 문제는 이상한 차원을 넘어 엄청나게 기괴했다. (p. 18)


스콧은 42세의 중년 싱글남이다. 아내와 이혼후 고양이 한마리와 사는데 경제적으로 윤택한 편이라 환경이 좋은 택지지구에 산다.

195센티미터의 큰 키에 허리벨트위로 툭 불거진 배는 109킬로그램의 몸무게를 굳이 말하지 않아도 짐작하게 하는 큰 덩치다.

그런데 어느날 부터인가 몸무게가 줄어든다. 그것도 매일매일 딱 0.5킬로그램씩.


딱히 활력적이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삶이 무료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야말로 평범하던 일상에 벌어진 상황에 대해 적응하기 혼란스러웠을때 옆집에 새로 이사온 커플의 개 두마리가 자꾸 스콧의 마당에 와서 똥을 싸고 간다. 그런데 그 이웃은 자기네 개는 그럴리가 없다고 항의한다. 스콧이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했을때 그 이웃은 여전히 냉랭하다.


"당신이 이겼어요"

"이건 정말이지, 누가 이이고 말고의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요"

......

"개가 똥 몇 번 쌌다고 동물 관리국 사람한테 갈 생각은 추호도 없었어요. 매콤씨. 이봐요. 난 단지 서로 좋은 이웃으로 지냈으면 해요.."

"아, 좋은 이웃이라는 사람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 우리도 잘 알고 있어요" 그녀가 말했다. "여기 이 동네에서 말이에요"

......

'이 동네에서 좋은 이웃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 알고 있다고.....' ...... '대관절 그게 무슨 뜻이지?' (p. 42, 43)


자신에게 벌어진 문제만도 머리가 복잡할 때 스콧은 이웃에게 벌어진 문제를 갑자기 알게 된다.

자신만의 문제에 매몰된다 해도 답이 없어 더 답답해졌을 수 있을 상황에서 이웃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며 오히려 자신의 할일 과 하고 싶은 일을 찾게 된다.

그는 생각한다. '정작 나서서 뭐든 의견을 말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는 점에' 대해서.

왜지? 왜 이웃들은 이 커플을 이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거지?


스콧이 내년에 붉게 표시해 놓은 일정은 딱 하루였다. 5월3일. 마찬가지로 붉은 글씨로 된 한 글자가 보였다. '0'. 그가 글자를 지우자 5월3일은 다시 검은색으로 바뀌었다. 스콧은 3월31일을 선택하고 직사각형의 일정란에 '0'을 써 넣었다. 감소하는 속도가 더 빨라지지 않는다면 지금 예상하기로 몸무게가 바닥 나는 날이 바로 그날이었다. 속도가 빨라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스콧은 그 와중에도 인생을 만끽하기로 했다. 그게 자기 자신에 대한 도리라고 느꼈다. 어쨌든, 가망이 없는 상태에 처한 사람들 중 전적으로 기분이 좋다고 말할 수 있는 이가 그리 흔할까? 스콧은 이따금 노라가 알코올 중독자 모임에서 배워 온 어느 격언을 생각했다. 과거는 역사이고 미래는 불가사의다. 그의 현재 상황과 아주 잘 어울리는 말이었다. (p. 97)


예전에 티비 방송에서 탤런트 김자옥이 자신의 암 에 대해 말했던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자신은 '암'이라는 질병에 대해 감사하다고. 교통사고처럼 부지불식간에 갑자기 세상을 뜨는 것보다 '암' 처럼 병에 걸려 세상을 뜨는 것은 자신의 마지막을 천천히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고마운 일이라 생각한다고.

그 말에 나는 굉장히 공감했었다. 어차피 사람은 누구나 다 죽는다. 그렇다면 자신의 죽음을 준비할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일 아닐까?!

스콧은 자신의 체중이 '0' 이 되는 날을 표시한다. 그런데 그 날이 점점 앞당겨지고 있다. 이유도 모르고 정확한 마지막 날도 모르지만 여하튼 얼마 안 남았다는 느낌이 든다. 그런데 의외로 덤덤하다. 환상적인 버킷리스트를 만들어 새롭게 뭘 하려고 들지도 않고 침울하게 날짜만 세며 집안에 박혀 있지도 않고 그저 일상을 산다.

일상.

일상을 망가뜨리지 않는 다는 것은 사실 굉장히 의미 깊게 다가온다. 아무렇지 않지 않지만 아무렇지 않게 그저 일상을 산다는 것. 내 마지막을 생각하기에 좀더 제대로 일상을 산다는 것. 하루하루의 시간을 차곡차곡 잘 쌓는다는 것. 몸무게가 주는 만큼 시간의 무게를 늘린 다는 것. 일상의 무게가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그렇게 일상이 주는 감동이 의외로 찐...했다.


스콧은 컴퓨터를 켜고 '0'의 날'을 3월15일로 앞당겨 놓았다. 두렵지 않다면 어리석은 것일 터. 그는 두려웠다. 한편 궁금하기도 했다. 다른 감정도 느꼈다. 행복? 이 기분이 행복일까? 그렇다. 미친 소리일지 몰라도 그건 분명 행복이었다. 확실히 그는 어떤 연유에서건 자신이 선택받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닥터 밥은 그거야말로 미친 소리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스콧은 그렇게 생각하는 게 정상이라고 믿었다. 자기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인데 뭐 하러 괴로워하랴? 그걸 받아들이면 어때서? (p. 105)


스콧은 자신의 '0의 날' 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나름 즐긴다.

그리고 그동안 무심하게 봐왔던 이웃들을 바라본다. 그리고 이제야 이웃들속으로 들어간다.

그렇게 온 동네가 거부한 레즈비언 옆집커플에 대해서도 똑같이 이웃으로 받아들이는데 아무런 저항감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다른 이웃들의 왜곡된 시선이 의아하고 아쉽다. 그래서 그는 점점 더 옆집 커플에게 관심이 간다.

남들이 이해 못하는 그 커플을 이해하고 싶고 자신에게 벌어진 이해못할 상황을 이해하고 싶다.

그래서 생전 처음 마라톤에 도전하기로 한다. 온동네가 주시하는 레즈비언 디어드리, 레스토랑 주인 디어드리, 한때 육상선수라서 동네마라톤 1위 후보자인 디어드리에게 내기를 제안한다.


"그래도 우리가 진짜 이웃이 될 수는 있겠죠. 제가 당신에게 설탕 한 컵 빌릴 수 있고 당신도 우리 집에서 버터 한 덩이 빌릴 수 있는 정도만요. 혹시 우리 둘 다 우승을 못하면 무승부예요. 변하는 게 아무것도 없을 겁니다" (p. 113)


"이 일을 왜 그토록 중요하게 여기는 거죠? 제가...... 우리가 당신에 남성성을 위협하기라도 하나요?"

'아뇨, 이게 중요한 이유는 내가 내년에 죽기 때문이에요'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죽기 전에 적어도 한 가지는 바로잡고 싶으니까. 결혼 생활은 이미 파탄이 나서 바로잡기 어렵고, 백화점 웹사이트 일도 영 가망이 없어요. 그 사람들은 자기네 사업이 자동차 시대에 발맞추지 못하던 공장들과 똑같다는 걸 모르거든요' 스콧은 그런 내막까지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녀는 이해할 수 없을 테니까. 그도 그럴 것이, 스콧 자신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데 디어드리가 어떻게 이해하겠는가?

"그냥 중요하니까요" 마침내 스콧이 대답했다. (p. 115)


스콧은 마라톤을 처음 뛰어 본다. 겉보기엔 덩치가 산만한 비만하저씨가 마라톤을 뛴다는 것 자체가 완주불가능성을 확신하게 한다.

하지만 스콧은 마라톤을 뛰며 경험한다.

바람도 아니고 희열도 아니다. 고양이었다. 자기 자신을 초월하여 더 멀리 상승하는 감각.

책의 원제이기도 한 Elevation 의 뜻은 고도 이다. 높은 곳이란 말이다. 상승 승진 뭐 이런 뜻이기도 하다. 위 문장을 읽으며 '고양' 이라는 번역에 대해 원서에는 Elevation 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스콧의 감정을 이해하며 더 나은 한글표현이 뭐 없을까 생각해보았다. 생각나는 단어가 없었다. 안타깝고 아쉬웠다. 뭔가 더 적절한 단어가 있었다면 스콧의 감정을 저 느낌을 뭔가 더 적절하게 표현하고 싶은데... 번역자의 고뇌가 새삼 느껴지는 부분이었달까;;; 알것 같은데 느낄 수 있는데 뭐라고 표현할 수가 없네~


스콧은 그의 삶에서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했던 행복감을 만끽하고 있었다. 다만 '행복'이라는 말로는 부족했다. 스콧은 자신이 가진 체력의 극치를 경험했다. 신세계였다. 그는 만사가 다 이와 통한다고 생각했다. 이 고양과 연결되어 있다고 말이다. 죽음이라는 것이 이런 느낌이라면 우리는 죽음을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p. 136)


죽음의 문턱에서 느끼는 행복

어쩌면 죽는 다는 것을 알게됐기에 행복도 새삼스럽게 알게 되는 것 같다.

사실 늘 있었던 행복인데... 네잎 클로버만 찾다가 세잎 클로버에서 갑자기 의미를 찾게 되는 건 죽음이라는 자극제가 꼭 필요한 걸까...

나보다는 더 죽음에 가까워보이는 노작가가 말하는 죽음은 왠지 경건한 마음으로 다시한번 곱씹게 된다. 나도 모르게...


"그게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완벽하게 이해돼요"

스콧이 고개를 끄덕였다.

......

"그게 말이죠." 스콧이 대답했다. "무섭지는 않아요. 아주 초반에는 겁이 났죠. 그런데 이젠...... 모르겠어요...... 괜찮은 것 같아요"

디어드리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하지만 그녀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난 그말도 이해가 되요" 그녀가 말했다. "그렇죠" 그가 말했다. "분명 그럴 거에요" (p. 160)


"우린 말하지 않아요. 제가 뭘 하면 되는 거죠 스콧?"

그는 할 수 있는 모든 이야기를 다 했다.

......

"어떤 느낌이야, 스콧? 자네는 어떤 기분이 들어?"

스콧은 헌터 힐을 달려 내려갈 때의 기분을 떠올렸다. ...... 그의 몸이 일단 최대 능력을 발휘하자 모든 세포에 산소가 채워지던 그 순간을.

"고도에 오른 기분이 들어요." 마침내 스콧이 말했다.

그는 디어드리 매콤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빛나는 눈동자가 그의 얼굴을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그녀는 왜 그가 자신을 선택했는지 아는 것이 분명했다. (p. 182)


서로 상관없다고 여겨지는 사람들 사이에 유대감이 생기고 연대감으로 연결되고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순간을, 분명 글로 읽고 있음에도 글이 아닌 글로 쓰지 않은 그 너머의 무엇으로 이해하게 되는 기분은 뭐랄까... 좋았다... 내가 소설속 인물들의 친구가 된것 처럼...


스콧에겐 '0의 날' 이 왔다. 그것도 생각보다 빠르게.

하지만 혼자가 아니었다. 이웃이 있었다.

공동체 문화가 부서진 현대에 가족마저도 갈등의 관계가 되버린 현대에 '이웃' 에 초점을 맞춘 작품들이 근래 눈에 들어오는 것은 사회적 변화일까? 내 개인적 관심일까?

'오베라는 남자' 소설에서 오베 할아버지의 츤데레 매력에 이웃들이 퐁당 빠져들었었는데, '고도에서' 작품에서 스콧의 평화로움에 이웃들이 흠뻑 젖어든다.


드론이 찍은듯한 잔디밭의 사람들이 보이는 표지에서 소설을 다 읽고 나서야 커다란 사람의 그림자가 눈에 들어온다.

겉지를 벗겨보니 하드커버에 가득한 푸른 하늘과 흰 구름이 딴 세상 같다.

그 딴 세상속에 스콧이 살고 있기를, 고도에서 우리를 보고 있기를, 스콧이 보면 미소지을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바래본다.



뿌리깊은 차별과 혐오를 넘어,

화해와 포용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대작가의 통찰이 담긴 신작 경장편소설. (표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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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에게 말을 걸다 - 난해한 미술이 쉽고 친근해지는 5가지 키워드
이소영 지음 / 카시오페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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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해한 미술이 쉽고 친근해지는 5가지 키워드

유명 전시회와 미술관 관람을 좋아하지만,

작품 감상에는 서툰 미.알.못.을 위한 쉽고 재밌는 교양 미술

 

 

앞서 읽었던 미술관련 책이 영 꽝이었던지라 다른 책, 제대로 된 미술교양서가 필요했다.

미술을 자신만의 잘난척 감상에 빠져있는 글로 풀어내는 것이 아니라, 아무나 읽어도 누구나 이해할 수 있게 미술을 알려주는 책, 바로 이 책 같은 책!

표지부터 마음에 든다. 화가인듯한 할아버지가 자화상을 그리고 있다. 그런데 그림속에 다른 자화상들과 그림속에 거울속 화가의 모습이 있다. 그림속에 그림이 있고 그 그림까지도 친근하게 다가오는 표지그림을 보며 화가에게 말을 걸고 싶어진다. 그렇게 이 책은 첫장부터 마지막장까지 내내 미술에게 말을 걸수 있도록 중간역할을 잘 해주고 있었다.

저자는 미술교육과 미술사를 전공하고 미술 에세이를 통해 미술을 대중에게 친근하게 만드는 방법을 늘 연구하는 사람인듯 하다. 미술에 대한 선입견을 부정하지 않고 그럴수 있다고 충분히 이해한다고 하면서 그러한 선입견을 부드럽게 깨트려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려 한다. 익숙한 그림과 낯선 그림을 함께 보여주고 익숙한 것은 뒷얘기를 낯선 것은 신선한 재미를 알게 해주면서 미술은 생각보다 쉽고 일상적인 것이라고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

이런 제안을 드리고 싶어요. 각자의 방식으로 미술관 전시를 즐길 것. 사진 촬영이 허용된다면 인증 사진을 마음껏 찍고, 작품 사진과 셀카도 찍고 싶은 만큼 찍을 것,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은 선에서 자유롭게 즐길 것, 그런 자신에게 눈살을 찌푸리는 미술 권위주의에 빠진 자가 있다면 마음 속으로 세 번째 손가락을 곧게 펴서 날릴 것. "저는 미술을 잘 몰라서요" 라는 겸손한 말은 생각하지도 말 것. (p. 15)

미술관이나 전시회에 가고 싶지만 괜히 주눅들고, 미술관련 책을 읽어도 뭔소린지 잘 모르겠을 때 저자의 제안을 기억해야 겠다. 그리고 자신있게 내 맘대로 관람하고 느껴야 겠다. 누군가 옆에서 아는척하고 잘난척하는 미술권위주의자가 있다면 마음속으로 세번째 손가락을 곧게 펴서 날리며.

이 책은 크게 2part 로 나뉜다.

1part에서는 미술을 어렵게 느끼지 않도록 움추러든 어깨를 펴게 해주고

2part에서는 5가지 방법을 통해 구체적으로 미술과 친해질 수 있도록 해준다.

미술 감상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미술 작품은 다만 우리에게 다양한 질문을 던질 뿐입니다. 비오는 날을 바라보는 수재민들의 마음과 사막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이 다를 수밖에 없듯이 각자의 상황에 따라 작품이 다르게 보이는 것은 당연합니다. 우리는 작품 안에서 한참 동안 머물거나 해매다가, 자신이 나오고 싶은 문으로 나오면 되는 것입니다. (p. 22)

 

 

이 책을 읽으며 처음 보게 된 그림, 보자마자 반해 버린 그림 ㅎㅎ

1part 를 읽으며 이 그림을 보는 순간 이 책에 대한 친근함이 훅 올라갔다.

당시 얌전하고 권위적인 초상화가 주로 그려졌다고 하는데, 이 화가는 자신의 얼굴을 활용해 다양한 표정을 연구하여 기존 초상화와는 다른 재밌는 초상화를 많이 남겼다고 한다. 그렇다고 이 화가가 당시에 우스운 평가를 받던 화가도 아니었다. 루이16세의 초상화가로 살면서, 루이16세가 처형당하기 직전까지도 그의 초상화를 그렸던 궁중화가였다고 한다. 궁중화가는 화가중에서도 인정받는 화가만이 될 수 있었다. 권력의 옆에서 권위가 무엇인지 알만큼 아는 화가가 자신의 자화상을 이렇게 그려냈다는 것이 흥미롭고 재미있다. 보는 사람을 위해 그림이 쉬워질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이런 쉽게 느껴지는 그림을 통해 미술에 한발 더 다가가지게 되기는 한다. 저자의 이 책에 대한 의도가 이 그림을 통해 확연히 느껴지는 것 같아서 이 그림이 더욱 좋았다.

저는 우리가 미술과 친해지면 두 가지 이유에서 좋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우리가 힘들고 슬프고 쓸모없는 존재라고 느낄 때 비효율적인 시간 속에서 탄생한 예술은 우리를 응원합니다. 두 번째로 미술과 친해지면 삶이 더 나아집니다. 많은 기업에서 마케팅에 미술을 활용하고, 예술가들을 탐구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이유는 일을 포함한 자신의 삶이 더욱 성장하기를 바라서일 겁니다. (p. 30)

이제 part2에서 본격적으로 미술과 친해져 본다.

미술과 친해지는 키워드로 저자는 5가지를 알려주고 있다.

일상 - 알고 보면 일상 곳곳이 작품이다

작가 - 시작은 단순하게, 좋아하는 작가 한 명 부터

스토리 - 명작은 다양한 스토리 속에서 빛나는 법

시선 - 멀리 보고, 겹쳐 보고, 새로운 시선으로

취향 - 취향은 결국 무수한 실패의 결과

일상 곳곳에 있는 작품 이야기를 하면서 다양한 로고로 활용되는 미술작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고디바초콜렛, 스타벅스 로고, 테트리스 게임속 그 성당, 나이키 로고, 뮤지션의 앨범 커버 속 그림 등 일상에서 충분이 느낄 수 있는 미술의 다양한 예들은 알던 것은 더 자세히 모르던 것은 이것도?! 하면서 읽는 재미가 있었다. 그중에서도 개인적으로 세이렌의 조각 그림이 기억에 남는다. 대부분 세이렌을 표현한 그림들은 인어모습이다. 그런데 기원전300년 경의 테라코타 는 새의 모습으 하고 있었다. 그러보 보니 노래로 사람을 홀리는 세이렌이 새의 모습을 하는 것이 인어보다 더 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스 고전을 여럿 읽었다고 읽었는데 인어만 기억하고 있었다니... 이런;;;

 

 

예술가 들이 즐겨 마셨다는 압생트 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는데, 물론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고흐의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그런데 압생트의 별명이 '초록 요정' 이었다고 한다. 초록병의 소주가 생각나서 왠지 압생트 라는 술마저 친근하게 다가온다. ㅋㅋ

저자는 미술과 친해지는 방법으로 좋아하는 화가 한명을 정해서 알아나가는 방법을 권한다. 저자 본인은 고흐를 좋아했다고 한다. 좋아하는 화가 한명은 그 화가의 친구나 지인 화가들로 이어지고 동시대의 화가로 이어지며 앞시대 뒷시대의 연결고리가 있는 화가들로 범위가 넓어지고 이런식으로 확장되다 보면 미술사의 맥락까지 이어가게 된다고 한다. 괜찮은 방법같다. 나도 고흐를 좋아하는데, 그림만 보고 좋아했던 '꽃 피는 아몬드 나무' 그림이 동생 테오의 첫아기, 그러니까 고흐 자신의 첫 조카 탄생을 기념한 그림이었다는 것을 알고 나니 그 그림에도 더 애정이 간다.

 

 

여성화가들에 대한 책인 [내가 화가다] 라는 책을 좋게 읽었었는데, 그 책을 통해 수잔 발라동 이라는 모델이자 화가를 알게 됐었다.

로트레크 가 그린 수잔 발라동의 초상도 봤던 그림인데, 이 책을 통해 부제가 '만취에서 깨어난 후' 라는 것을 알고 보니 그림이 또 다르게 보인다. 평탄치 않았던 그녀의 삶의 단면을 느낄 수 있는 그림이라 생각했었는데, 독한 술까지 더하니 느낌이 왠지 더 진해진다고나 할까... 르누아르가 그린 꾸며낸 수잔 발라동과 로트레크가 그린 실제모습 그대로의 수잔 발라동은 그림만으로도 다른 느낌을 준다. 그녀를 화가의 길로 끌어주고 응원해주었던 로트레크의 그림에서 수잔 발라동의 삶이 보다 더 진실하게 드러나는 것을 보면 그림이란 글이 주는 감동과는 또다른 감동을 주는 예술임에는 분명한 것 같다.

제임스 티소 와 아이 둘의 이혼녀 캐슬린과의 사랑이야기는 티비프로그램에서 본적이 있다. 그런데 티소의 그림들이 여성을 정말 아름답게 표현하는데 중심을 둔 유미주의 였다는 것을 알고 그림을 다시 보니 옷주름 하나 레이스 하나에도 정성을 들였다는 것이 새삼 눈에 보인다. 그리고 정말 예쁘다.

 

 

명화라고 불리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명화자체로서의 스토리로도 후대의 화가들이 명화를 이용하는 방식을 통해서도 여하튼 오래도록 사랑받고 인정받는 명화들에는 특별함이 있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밤 풍경의 명화로 손꼽히는 존 앳킨슨 그림쇼의 그림을 알게 되어 좋았다. 그가그린 밤 풍경은 그 어둠의 색채가 정말 남달랐다.

 

 

 

모든 문화 예술은 상호적입니다. 많은 화가들의 그림은 곧 시대를 관통하며 살다간 예술가가 느낀 다양한 사유의 결과입니다. 그래서 그림 속에는 시대의 경제, 시민의식, 심리학, 물리학, 자연과학, 철학과 같이 당대의 문화가 남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물을 감상하며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가 얼마나 길고, 넓고 농밀한지 느끼게 됩니다. (p. 218)

 

이 책에는 화가들의 삶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와서 더 재미있게 읽힌다. '걸어가는 사람' 이라는 조각으로 유명한 자코메티가 조각을 작게 만드는 이유, 마네의 아스파라거스 와 컬렉터의 재치, 칸딘스키와 뮌터의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 프리다 칼로의 고통... 그중에서도 조선을 방문했던 서양화가들이 그려낸 조선의 모습과 고흐가 그린 바니타스 그림은 처음 보기도 했고 다른 그림들 보다 더 와닿기도 했다.

 

 

 

누군가에게 여행은 일상의 도피이고,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눈을 갖게 하는 과정입니다. 에밀 놀데, 휴버트 보스, 엘리자베스 키스, 세 화가에게 있어 100여 년 전 한국 여행은 또 다른 세계로 향하는 문이었습니다. 저는 제가 사는 마을을 그들이 한국을 바라보듯 진심어린 시선으로, 시간 내여 바라본 적이 있는가 생각해 봅니다. 글을 시작할 때 언급한 문장을 다시 소환해 봅니다. 여행의 발견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는 것, 이 말의 참 뜻은 어쩌면 매일 보는 익숙한 풍경도 새롭게 볼 수 있는 자가 곧 최고의 여행자라는 의미 같습니다. (p 262)

 

서양화가가 아름답다고 감탄했던 원산의 풍경속에 홀로 커다란 짐을 이고 있는 아낙네의 뒷모습이 짠하고, 인생무상과 삶의 덧없음을 뜻하는 라틴어 바니타스를 나타내는 그림으로 해골이나 독특한 사물들을 그렸던 화가들의 그림 중 고흐의 해골 그림은 그의 인생과 겹쳐지면서 담배의 쓴향기가 풍겨오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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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1시 45분, 나의 그림 산책 - 혼자 있는 시간의 그림 읽기
이동섭 지음 / 홍익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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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는 시간의 그림 읽기

이밤, 나를 위로하는 그림이 필요하다 (표지 中)

 

 

"누구에게나 잠이 오지 않는 그런 밤이 있다." 라는 저자의 말에 공감하며

"누구에게도 위로받지 못한 마음을 다정하게 안아주는 그림을 읽는다." 를 경험하고 싶었다.

나는 혼자 만의 시간이 꼭 필요한 타입이다. 혼자 만의 시간은 재충전의 시간이자 자유의 시간이다. 그런 시간을 그림과 함께 보내보고 싶었다.

그런데... 표지 그림 부터 나에겐 좀 삐걱거림이 느껴지는 책이었다...

화가 폴 세잔은 "고독은 나와 어울린다. 고독할 때만큼은 아무도 나를 좌지우지할 수 없다"고 했다. 나는 고독을 뜻하는 'solitude'를 '자가의 영혼을 가지려는 태도 soul+attitude' 로 받아들인다. 혼자 있어 즐거우면 고독이고 고통스러우면 외로움인 것이다. 세잔은 남프랑스 엑상프로방스의 고향 마을에서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풍경을 관찰하며 보냈다. 자연의 독창적인 일부가 풍경이 되고, 풍경은 세잔의 내면으로 흘러들어와 이미지로 압축되고, 그의 캔버스는 위대해졌다. 그것은 외로움을 극복한 고독의 결실이었다. (p. 23)

 

 

나는 세잔의 그림을 멋있다고 생각했었고 고독vs외로움 에 대한 비교차이를 다른 책들에서도 보면서 공감했었다.

그런데 세잔이 그린 '세잔 부인의 초상' 을 보며 '예술가보다 예술가 부인으로 살기가 더 어렵다' 고 '우울함을 느낀다' 며 '내 가까이 있는, 내가 마음으로 아끼는 이들이 저런 눈빛이면, 이유는 묻지 않고 맛있는 고급 요리를 사줘야 겠다' 는 다짐을 한 저자의 표현들을 보며 이 초상의 표정이 과연 밥 한끼로 해결될 일인가 싶었다. 고독을 즐기며 그림을 그리는 화가남편 옆에서 숨겨진 여자로 살면서 남편이 그려준 자신의 이런 표정을 한 초상화를 보며 이 여인은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세잔은 자신의 부인을 이렇게 우울하게 그려내면서 과연 어떤 마음이었던 것일까? 여전히 고독을 즐긴 것일까? 차라리 세잔의 정물화 만 알았던 것이 나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영양제는 혼자 있는 시간

혼자 있는 시간은 지친 내 마음에 영양을 보충해주는 시간이자 반복되는 일상에서 살짝 비켜나는 시간이다. 요즘의 내게 독서는 비타민, 음악은 마그네슘, 식물 가꾸기는 철분이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미디어는 이런 영양제를 더 맛있게 섭취하게 만드는 조미료? 그래서 과다 사용하면 역효과니 조심! (p. 50)

이 짧은 글 옆에 표지 그림이 나온다

 

 

 

 

표지에는 일부만 실린 이 그림의 제목은 '엽서를 쓰는 모델' 이다. 표지를 보면서 왜 하필 여자가 벌거벗고 뭔가를 쓰는 그림을 '새벽 1시45분, 나의 그림 산책' 이라는 책의 표지로 썼을까 의문이 들었다. 새벽 그시간은 감상에 젖어 뭔가를 끄적이기 좋은 시간이긴 하다. 그런데 이 여자는 새벽 1시45분과 어울리지 않고 그림산책 과도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데 왜?

51페이지에 나오는 그림 전체를 보니 그림 왼편에 이 모델이 그려진 그림이 보인다. 아마도 이 모델은 화가가 자신을 그리는 중간 쉬는 타임에 잠시 뭔가를 썼나 보다. 그리고 다시 모델로서 화가 앞에 섰겠지... 누드모델로 일하는 도중에 난 잠깐의 시간에 누구에게 글을 썼을까? 그 엽서는 보내졌을까? 그림 자체는 좋았다. 그런데 이 그림이 저자에게는 영양제와 같은 그림인걸까? 글과 그림이 매칭되지 않는 부분은 책의 도처에서 느껴진다. 물론 이런 느낌은 지극히 내 주관적인 느낌이다.

나도 저자와 비슷하게 독서는 비타민, 음악은 마그네슘, 식물 가꾸기는 철분처럼 여기며 산다. 혼자 있는 시간에서 영양을 얻으며 그 양분으로 이렇게 블로그에 서평도 올리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시간은 이 그림의 누드모델이 가졌던 엽서쓰는 시간과 연결이 되는 걸까? 좀더 영양제 같은 그림이 없었던 걸까?

여름 바캉스의 로망

세관 공무원으로 일하며 독학으로 그림을 그렸던 앙리 루소는 환상적인 열대 풍경으로 일약 스타가 되었다. 그의 대표작 <꿈>에는 저 멀리 보름달이 떠 있고, 초록의 풀들과 옥색의 꽃, 주황빛 열대 과일들이 가득하다. 숨 쉴 틈 없이 빽빽하게 식물들이 엉켜 있는 밀림에서 한 여인이 금색 피리를 불고 있다. 동그랗게 눈을 뜬 사자와 코끼리, 노란 날개를 펼친 이름 모를 새, 그리고 소파에 앉아 있는 여인이 그 소리에 취한 듯 보인다. 말로는 온전히 설명할 수 없는 미묘함과 꿈꾸는 듯 환상이 가득하다. 피카소와 많은 평론가가 이 작품을 격찬했는데, 원시림 한가운데에서 어떻게 여인이 소파에 앉아 있을 수 있는지 당황해 하는 사람들에게 루소가 말했다. "소파 위에서 잠들어 있던 여인은 밀림 속으로 운반되어 땅꾼의 피리 소리를 들으며 꿈을 꾸는 중이오" 도시의 작은 방에서 잠들었는데, 깨어보니 열대림? 도시에 사는 우리의 여름 바캉스의 로망도 이와 같지 않을까? (p. 65)

 

 

도시의 작은 방에서 잠들었는데 깨어보니 열대림 이라는 것이 여름 바캉스의 로망이라고?

도시의 작은 방에서 잠들었는데 깨어보니 벌거벗고 혼자 소파에 누워있고 옆에선 뱀이 기어다니는데 땅꾼이 뱀을 춤추게 하듯 피리를 불고 우거진 풀숲에선 사자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고 있는데 이 그림을 보며 여름 바캉스의 로망을 꿈꾸었다고? 내가 이 여인이었다면 너무 공포스러울것 같은데!

소파위에서 잠들었던 여인이 밀림 속으로 운반되어 땅꾼의 피리소리를 들으며 꿈을 꾸는 중이라고?

납치해와서 환각에 빠지도록 주술을 걸고 있다고 말하는 게 더 맞는 상황 아닌가? 햇빛 한점 제대로 들지 않는 우거진 밀림에서 불어주는 땅꾼의 피리소리가 과연 꿈을 꾸게 할 수 있는 걸까? 내가 이 여인이었다면 한시라도 빨리 돌아가고 싶을 것 같은데!

예술을 몰라서 이런 무식한 소리를 하는 거라고 누군가는 말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예술에 무지하긴 한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무지한 채로 이해되는 예술이 좋다. 이렇게 공포를 꿈이나 로망으로 이해하는 것 보다는!!!

즐거움으로 깊어지는 작품도 있다. 모네의 친구이자 동료 화가인 오귀스트 르누아르는 가난했지만 그림은 언제나 밝았다. 살아가는 일이 불행한데, 굳이 그림까지 불행을 그릴 필요가 없다고 그는 믿었기 때문이다. 밝고 행복하여 가벼워 보이는 일상의 소중한 가치가 르누아르의 그림에 담겨 있다. 좋은 작품이 무거울 수는 있지만, 무겁다고 좋은 작품은 아니다. (p. 71)

르누아르의 삶을 자세히는 모르지만, 르누아르는 여성혐오 와 여성비하 발언으로 유명한 화가이다. 가장 널리 알려진 말로는

"나는 여성 작가나 변호사, 정치가들을 괴물이다 다리 다섯 달린 송아지라고 생각한다. 여성 예술가들은 그냥 우스운 존재에 불과하다. 그러나 나는 여자 가수나 댄서는 좋아한다" 이다.

르누아르의 그림은 색감이 예뻐서 예전엔 좋아했었다. 하지만 그림을 좀 보고 그림관련 책을 좀 보다 보니 르누아르의 편협한 사고방식이 너무 과하다 싶을때가 많았다. 동시대의 여류화가를 무시하는 것은 기본이고 그의 그림 속 여자들은 주로 춤을 추는 무희거나 여종업원 이었다. 르누아르가 추구한 행복에는, 르누아르가 추구하는 아름다움에는 같은 인간으로서의 여성은 없었다. 예쁜 장식품 같은, 꺾고 싶은 꽃같은 남성의 소유물만 있을 뿐.

그런데 저자는 르누아르의 작품으로 즐거움이 깊어진다고 한다. 물론 취향차이다. 그러나 무겁다고 좋은 작품이 아니듯이 겉보기에 밝아보인다고 행복한 작품은 아니다.

 

 

이 책에서 거의 유일하게 좋았던 부분은 고흐의 편지에 담긴 스케치 그림을 본 것이었다.

고흐의 그림을 여럿 봤지만, 편지 속에 그린 스케치그림은 처음 보았는데, 그 그림들이 나중에 어떤 작품이 되었는지 아는 것이었기에 스케치가 더욱 의미있게 다가왔다. 편지에 이렇게 정성스레 그림을 그리고 있는 고흐를 생각하니 그의 인생이 더 짠해지기도 했지만, 이 정성어린 스케치가 채색한 그림보다 더 잘그린것 처럼 보일 정도로 실력이 너무 좋아서 고흐가 더 좋아졌다. 진심은 스케치만으로도 통하는 것 같다.

저자는 131페이지에서 한량처럼 살겠다는 농담어린 진심처럼 제대로 된 한량 같다.

약력을 찾아보니 한양대 광고홍보학과를 졸업후 파리로 유학을 가서 사진,조형예술, 비디오아트, 예술과 공연미학 등을 배웠다고 한다. 예술인문학자로 살면서 인문학을 예술작품으로 쉽고 재밌게 알리는 글을 쓰고, 문화와 예술을 중심으로 다양한 장르를 융합시키는 강의를 하고 있다고 한다. 예술인문학자라...

다양한 종류의 예술을 배우고 글을 쓰고 강의를 하는 저자의 삶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은 없다. 그러나 '오늘 혼자 있을게요' 라고 말하며, '사람들과 잘 지내려면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고, 그때 그림은 참 매력적인 동반자가 되어주었다'는 저자의 프롤로그가 좋았다. '이 책과 함께 오롯이 혼자서 충만한 시간을 보낼 수 있기를, 그리하여 당신의 하루하루가 조금은 더 행복해지길 바란다' 는 저자의 프롤로그 마무리를 이 책을 통해 느낄 수 있길 바랬다.

그러나 그림 산책을 하고 싶었던 나의 기대와 달리 그림이 너무 적은데다 글과 연결되지 않기 일쑤였고, 새벽 1시45분 이라는 시간이 주는 감성은 맥락없는 개인 감상에서 그쳤다. 저자가 받은 위로에 공감이라도 할 수 있었다면 나의 위로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름 의미는 있었을 텐데 저자와 나의 감성은 하늘과 땅 사이처럼 멀고 먼 듯 했다. 그렇게 혼자 있는 시간을 그림으로 위로받으려던 나의 기대는 완전히 허물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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