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35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 지음, 송병선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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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아메리카 환상문학의 심장,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

"비오이 카사레스는 나의 진정한 그리고 비밀스러운 스승이었다."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 (1914~1999) 는 아르헨티나 사람이다. 1932년 열여덟 살의 비오이 카사레스는 서른 두 살의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와 처음 만나 지적이고 문학적인 모험의 동반자로 평생을 교류했다고 한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보르헤스 생전에는 잘 인정받지 못하다가, 1986년 보르헤스 타계후 비로소 재조명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보르헤스의 이름은 꽤 여러번 들었던 이름인데,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는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그런데 거의 평생을 보르헤스와 교류하며 함께 쓴 작품이 많아서인지 그만의 작품은 뒤늦게 재조명된 것 같다. 보르헤스는 왜 생전에 비오이 카사레스를 밀어주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1944년부터 1967년까지 비오이 카사레스는 소설집 여덟 권을 출간했다. 그는 1972년에 그때까지 쓴 단편소설들을 [사랑 이야기] 와 [환상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모아 놓았다. 이번 단편선에 수록된 작품은 모두 [환상 이야기] 에 수록된 이야기들이다. 나이로치면 30~50대에 쓴 단편들로 가장 전성기때 쓰여진 작품들이 아닐까 싶다. 비오이 카사레스의 작품들은 '환상적 사실주의' 가 특징이라고 하는데, 그게 뭔지는 책을 읽어보면 어렴풋이 느낄 수 있게 된다.

아르헨티나는 스페인의 영향이 짙게 배인 나라다. 19세기에 스페인들에게 점령당한 후 원주민들은 밀려났고, 스페인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이 자리잡아 언어는 스페인어 이고 국교는 카톨릭이다. 세계2차대전 이후 '페론' 독재 시기가 있었고, 이후 군부와 독재와 개혁 사이에서 혼란을 거듭해오던 시기에 비오이 카사레스가 살았고, 작품을 썼다. 나는 개인적으로 작가의 작품을 이해하려고 할때 작가가 살았던 시대적 배경을 중요시하는 편이다. 이 책에 실린 작품이 쓰여졌던 시기는 독재와 혁명의 혼란기였고, 스페인이주민이 원주민을 무시하던 때였고, 다양한 차별적 성향이 만연하던 때였다. 그리고 같은 아르헨티나 사람인 체 게바라가 죽은 년도가 1967년이다. 아르헨티나는 짧은 안정기와 긴 혼란기를 반복하고 있던 곳이었다.

14편의 단편들이 거의 시간순서로 배치되어 있는듯 하니 읽어갈수록 저자의 작품변화도 눈여겨 볼만하다.

몇 년 동안 나는 그녀를 잊을 수 없었다. 이별로 인한 고독보다는 단절로 인한 고통스러운 순간이 더 좋았는데, 그것은 그 순간을 그녀와 함께 보냈기 대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 순간들을 살펴보았고, 자세히 되돌아보았으며, 되살리려고 했다. 이렇게 고통스럽게 곰곰이 생각하면서, 나는 지나간 일들을 새롭게 해석할 수 있다고 믿는다.

<파울리나를 기리며> -p. 16

'나' 는 파울리나를 사랑한다. 파울리나도 '나'를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파울리나는 갑자기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한다. '나'는 떠났고 2년후 돌아왔을때 집으로 찾아온 파울리나와 재회한다. 그러나 사실 파울리나는 2년전 살해당했다.

아마도 같은 세계는 무한히 많을 것이다. 약간의 변화만 있는 세계도 무한하며, 서로 다른 세계도 무한할 것이다. 지금 내가 토로 요새의 감옥에 갇혀 쓰는 것은 내가 이전에 이미 썼던 것이며, 앞으로도 영원히 계속 쓰게 될 것이다. 책상에서, 종이에, 감옥에서 쓸 것이며, 이런 모든 것은 완전히 똑같을 것이다. 무한한 세상에서도 내 상황은 똑같을 테지만, 아마도 내가 갇힌 이유는 점차로 숭고함을 상실하여 결국 추잡하고 천하게 될 것이다. 또한, 내가 쓰는 글은 아마도 다른 세상에서 명언에 버금가는 부정할 수 없는 탁월한 것이 될 것이다.

<하늘의 음모> -p. 69

알베르토와 모리스는 친하지 않은 친구 사이다. 의사인 알베르토에게 어느날 모리스가 만나고 싶다는 연락을 해온다. 그리고 알베르토가 찾아갔을 때 모리가 경험한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모리스는 다른 세계에 다녀왔으나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알베르토는 다수의 세계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한다.

오리베는 루시아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화자는 이렇게 말한다. "눈에 띌 정도로, 거의 연극을 하다시피 침울해져 있었다" 실제로 오리베는 훌륭한 배우 같았고, 자신이 맡은 배역을 분명하게 상상했으며, 자신이 연기하는 인물과 자기 자신을 혼동하곤 했다.

<눈의 위증> - p. 122

'나' 는 비야파네 의 유고집을 출간하며 비야파네가 숨기려 했던 것이 분명한 어떤 사건의 실체를 확인하게 된다. 비야파네 는 어떤 여행에서 젊은 시인 오리베를 만났다. 오리베가 살해당한 후 오리베에 대한 이야기를 펴냈던 비야파네의 글은 사실 거짓이었다. 루시아의 아버지는 오리베를 죽였고, 오리베는 그것을 알았음에도 기꺼이 받아들였다. 비야파네의 장화에 묻은 눈이 증거였다. 하지만 비야파네는 시인의 요청을 받아들인 것이기도 했다.

"지옥으로 갔어요." 바보들의 입에서는 진실이 나온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게 살인자는 우리 쪽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이 사람이 음산한 외모의 소유자이자 파리에서 즐겁고 행복한 시기를 보대던 코우토씨였을까? 사람들은 아니라고 믿는다. 그는 악마, 진정한 악마였다.

<이상하고 놀라운 이야기> -p. 166

'나' 는 랑케르와 올리비아를 소개 받는다. 랑케르는 '신' 들은 믿지만, 기독교의 '하나님'은 믿지 않는다. 어느날 파티에서 랑케르의 논리에 격분한 사람과 결투를 하게 되고 랑케르는 죽는다. 그런데 살인자들은 사실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조용하고 차분한 시기를 보냈지만, 거스를 수 없는 갑작스러운 우연의 공습으로 혼란스럽고 영웅적인 절정의 순간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싶다. 아마도 다른 사람들은 이것이 비천한 무명작가의 전혀 철학적이지 않은 외침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내가 비천한 무명의 사람이기에 하나 이상의 끔찍한 사건에 관해 증언할 수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고, 심지어 의미가 있다고 반박하고 싶다.

<남의 여종> - p. 169)

우르비나는 플로라를 사랑하게 된다. 그런데 주변에서 플로라는 미쳤거나 사생활이 문란하다고 험담하는 사람들이 많다. 플로라는 비밀이 많다. 우르비나는 플로라의 비밀이었던 루돌프를 만나게 되고 실명까지 하게 되는데, 루돌프는 아프리카 피그미족이 축소시킨 소형인간이었다. 플로라는 우르비나를 버리고 자신의 난쟁이 남자에게로 갔다.

사랑하는 라울, 생각 전송이라는 것을 아나요? 당신이 내 말을 믿을 수 없다고 여긴다면 그건 슬픈 일이에요. 하지만 사실대로 말하자면, 당신이 무엇을 하든 나를 슬프게 만들어요. 호세피나 같은 개에게, 혹은 당신 같은 사람에게, 또는 당신 아내에게 생각을 전송하고 꿈을 전송하는 것은 모두 같은 하나의 것이지요.

<파리와 거미> -p. 245

라울과 안드레아는 사랑해서 결혼했고 단란한 가정을 꾸미기 위해 열심히 일했다. 라울은 와인가게를 운영했고 안드레아는 하숙집을 운영했다. 그런데 어느날 부터 라울은 이상한 꿈을 꾸기 시작한다. 꿈속에서 안드레아는 불륜을 저지른다. 라울은 꿈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안드레아를 의심하기 시작하고 둘의 사이는 점점 멀어진다. 그러다 안드레아는 자살을 하고 라울은 하숙인인 한 여자에게서 '생각전송' 을 당했던 것임을 알게 된다.

내가 확실하게 말하는데, 여기 있는 고양이는 라비니아야. 나는 먼저 레토와 함께 느끼고 경험했는데, 그건 라비니아였어. 같은 것과 유사한 것은 엄청나게 달라. 네가 설명해 달라고 하면, 나는 니체를 비롯한 많은 사람이 말하는 영원한 회귀를 떠올려 주고 싶어. 지금은 암고양이로 제한된 영원한 회귀만 생각하도록 해. 고양이를 원래 이루고 있던 요소들이 호텔이 타면서 흩어졌는데, 갑작스러운 우연 때문에 그것들이 모여 똑같이 된 것이라고 할 수 있지.

<그늘 쪽> -p. 284

'나'는 여행하던 중 우연히 옛 친구 '베블런'을 만난다. 그리고 베블런이 왜 그곳에 머물게 되었는지를 듣게 된다. 베블런은 레다를 사랑했다. 그러나 레다에게는 남편도 있었고 애인도 있었다. 그러나 레다도 베블런을 사랑한다고 한다. 둘은 여행을 떠나고 베블런이 레다를 떠났을때 호텔에 화재가 발생했다. 베블런은 고향으로 돌아왔고 하인이 재산을 탕진하고 도망간 것을 알고 좌절했을때 새로운 일자리가 들어온다. 그일을 하기 위해 온 곳에서 화재에서 죽은 것은 고양이 뿐이라며 레다에게서 편지가 온다. 둘은 만나고자 했지만, 레다가 사고로 죽는다. 베블런은 고양이를 다시 만난 것처럼 레다를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레다를 기다리는 중이다.

그 일화는 그렇게 끝을 맺었다. 씩씩하고 활기차며 무감각한 성격의 신사인 스탄들 사니첼리를 제외한 사망자는 더는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사자와 가까운 곳에 있었지만, 사자의 영향을 받아 인간의 영혼 깊숙한 곳에 있는 고대의 동물적 본성을 따랐다. 그들은 공격적이고 잔인했으며, 비겁했고 멍청했다. 시청 직원들이 맹수를 생포하자, 모든 사람의 안에서 다시 인간의 기준과 척도가 널리 퍼졌다. 의심의 여지 없이 그 기준은 위선으로 더러워졌지만, 마찬가지로 동정심과 용기로 찬란하게 빛났다.

<팔레르모 숲속의 사자> - p. 299

어느날 동물원에서 사자가 탈출했다는 뉴스가 나온다. 어떤 사람은 나갔고 어떤 사람들은 나가지 않은채 집에서 먹고 마시고 희롱하며 창밖을 살폈다. 그러다 아이가 숲에 갔다는 것을 알게 되어 아이를 구하기 위해 용기를 낸 순간 사자는 잡혔고 누군가는 죽어있었다.

좋건 나쁘건 무슨 일이라도 일어나길 바랐다. 강도 높은 삶에 익숙해진 탓인지, 나는 게으르고 나태한 삶을 살아갈 수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밤이었다. (p.312)

"메기는 죽었어요" (p. 320)

<오징어는 자기 먹물을 고른다>

한 마을에 무료한 일상속에 사소해보이던 변화가 품고 있던 진실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들이 알게 된 것은 외계인이 왔었다는 것. 본적은 없지만 안타깝게도 죽었다는 것. 그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계속 생각만 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고 했어요. 계속 생각하는 것이 죽은 것보다 더 낫다고 말했어요. 불멸성으로서의 생각은 확실히 보장되어 있다고 했어요. 내가 외운 그의 말을 그대로 반복하면, 나는 실수를 범하지 않고 그의 생각을 전하게 될 거에요. 그는 인간이 물질과 영혼으로 이루어진 이상한 결합체며, 항상 파ㅗ기와 죽음이 물질적으로 위협하고 있다고 했어요. 그러고는 자기가 어떻게 그 일을 진행했는지 하나하나 말해주었어요.

<열망> - p. 352

나와 엘라디오는 친구다. 마을에 있는 모든 청년들이 밀레나를 사랑한다. 밀레나는 엘라디오와 결혼한다. 그런데 부부생활이 행복하지 않다. 어느날 엘라디오는 죽고 엘라디오의 막내동생 디에고는 나에게 엘라디오의 비밀을 말해준다.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밀레나는 엘라디오의 '틀'을 부수었고, 밀레나를 사랑하게 된 디에고와 결혼했다. 나는 엘라디오가 만든 '틀'을 전시한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일은 계획을 수립하는 것이었다. 의심의 여지 없이, 그는 자신이 무한히 살 것이며, 항상 모든 것을 할 시간이 있으리라고 믿었다. 비록 그의 직업은 과거와 관련되었지만 항상 미래에 호기심을 느꼈다.

<위대한 세라핌> - p. 361

알바레스는 건강이 안좋아져서 요양차 여행을 떠난다. 호텔에서 만난 사람들은 피곤했고 건강이 좋아지기는 커녕 어느날 주변엔 유황냄새가 진동을 하고 물은 썩기 시작하고 사람들은 종말을 믿지 않는다. 알바레스는 종말을 예감하며 절대 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행동을 선택한다.

염려나 배려와는 거리가 먼 부인은 재빠르게 애국적 내용의 불평을 들려주었어. 아르헨티나 사람이 보이는 것과는 달리 깃털을 꽂은 원주민이 아니며, 부에노스아이레스에는 외국 소설이 들어온다는 말이었어. (p. 412)

"그건 회복될 수 없는 순간들이야. 즉시 과거로 들어가기 때문이지. 진짜 순간들인데, 그것은 또 다른 세상의 것이야. 그곳에서는 자연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아" (p. 414)

한 도시에 이틀 혹은 사흘간 머무르는 대신, 나는 내 여정의 다음번 목적지로 가장 빠른 비행기를 타고 여행했어. 하루에도 여러 차례 시곗바늘을 앞으로 돌리거나 뒤로 돌려야 했지. 그런 시차로, 그리고 피로 때문에, 나는 모든 것, 그러니까 시간과 나 자신이 비현실이라고 느끼게 되었지. (p. 425)

<기적은 복구되지 않는다>

나와 그레베는 기차역에 너무나 일찍 도착한 나머지 함께 커피를 마시게 된다. 나는 여행에서 같은 인물이 동시에 다른 곳에 존재하는 듯한 경험을 이야기하고 그레베는 카르멘과 사랑했던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카르멘은 죽었으나 다시 만났던 경험을 이야기 한다.

"가야 할 길을 손바닥처럼 잘 알고 있군요" 구스만은 마음속으로 기쁘게 이런 찬사를 음미하면서 그럴 만하다고 여기고는, 자기가 길을 잘못 들어선 것이 아닌지 의심을 품었다. .. 하지만 그 길은 힘들게 절약한 몇 분이라는 시간을 허비할 위험을 내포하고 있었다. ... 그는 이 길로 가는 게 맞는지 물어보려고 했다. 그러나 그는 묻지 않고 지나쳤고, 자기가 자신의 새로운 이미지, 그러니까 바틸라나가 제안한 것처럼 길을 잘 아는 사람의 이미지를 지키려고 마음먹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름길> - p. 439

구스만은 동료 직원인 바틸라나와 차를 타고 출장을 가는 중이다. 갑자기 차가 고장나서 도움을 청하러 간 곳에서 둘은 감금되고 구스만 혼자 탈출하게 된다. 구스만은 자신이 겪은 일을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얼마전에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의 일등실은 모두 이점을 상실했어요. 심지어 금과 유사하게 그 가치만 보존하는 속물근성까지도 말이에요. 하지만 나는 결점 때문에, 그러니까 내 나이 때의 사람들에게서 발견되는 치유할 수 없는 흠 때문에 이등실 승객이 될 마음은 없답니다.

<일등실 여자 승객> p. 464

이 책에서 가장 짧은 이 단편은 단 4페이지이고 여자승객의 독백이다. 이등실 승객 위주로 돌아가는 상황과 일등실이 대우받지 못하는 현실을 개탄하면서도 끝까지 일등실만을 고집하는 여자승객의 마지막 대화이다.

이 책에 대한 작품들 면면 모두 한번에 이해할 수 있는 내용들은 아니었다. 읽다가 저자에 대해 조사해보고 읽다가 작품에 대해서 찾아보고 읽다가 옮긴이의 말 부터 읽어보고 해가면서 오랜 시간을 들여 읽었던 책이다. 하지만 옮긴이의 말 보다 더 적절한 평을 쓸 수 없어서 옮기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그의 문학은 환상문학에서 사실주의로 혹은 그 반대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이 두 흐름은 공존했다. 이것이 바로 이 단편선에 수록된 작품들이 보여 주는 일반적인 특징이다. 비오이 카사레스는 완전히 확실한 세상에서 믿을 수 없는 사실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 환상문학의 사실주의 경향에 해당한다고 지적하면서, 환상문학의 서술 방식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 앞에서 우리는 환상적인 이야기를 만들어 내서 추측에 도전하거나, 아니면 다른 사람들과 함께 당혹해서 혼란스러워하는 것들을 공유한다" 비오이 카사레스에게 환상문학이란 현실은 논리적이고 정돈되었다는 것을 의심하는 도구, 즉 의문을 던지면서 안정된 질서에 틈을 만들고 또 다른 통일성을 엿보게 하거나, 혹은 단순히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드러내면서, 우리를 혼란스러워하게 만드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옮긴이의 말> - p. 4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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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의 헌법 - 국회의원 박주민의 헌법 이야기
박주민 지음 / 새로운현재(메가스터디북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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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국회의원 박주민의 헌법 이야기

헌법 130조문 기본 골격부터 최근 사회 이슈와의 연결성까지

법알못도 쉽게 이해하는 '국민이 알아야 할 최소한의 헌법'

헌법 꼭 알아야 하냐고요? 몰라도 살 수 있지 않냐고요? 네, 몰라도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알면 나와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여러 일들 중에서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더 현명하게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어떤 일에 힘을 모으고, 어떤 일에 분노해야 마땅한지를 가려낼 수 있게 합니다.



한집에 상식책 한권을 반드시 구비해야 한다면 이 책을 전국방방곳곳가가호호 놓아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ㅎㅎ

법은 왠지 무겁고 어렵고 무서운데.. 게다가 법중의법 헌법이라니! 생각만해도 움추러드는;;; 그런데 왠걸 의외로 너무 간단하고 기초적인데다 재미있다~!


헌법을 그냥 읽어보는 것만으로도 여러 정보를 얻을 수 있어요. 생각보다 우리 일상에 적용되는 유용한 정보가 많거든요. 그뿐 아닙니다. 사회를 보는 눈도 달라질 거라고 제가 장담합니다. 더군다나 읽기가 그리 어렵지도 않아요. 헌법이라고 하면 두꺼운 법전 한 권 정도는 되는 방대한 분량일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죠. 아닙니다. 헌법은 아주 짧아요. 조문이 굉장히 적어서 누구나 금방 읽을 수 있어요. 이 짧은 법이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다른 모든 법의 기본이 되는 거예요. (p. 7)


헌법의 역사는 생각보다 짧았다. 지금의 헌법은 1988년판이다. 그 이전 시대는 법을 초월한 무법지대였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정치사 대비 법의 역사는 길지 않았다. 결국 법의 발전은 우리 사회의 민주화의 발전과 맞물려 있었다. 어찌보면 당연한 것일수도 있지만, 이렇게 얼마 안됐다고 생각하니 좀 서글프기도 하고, 그래서 여전히 시끄러울 수 밖에 없구나 싶기도 했다. 정착됐다고 보기엔 아직이라...

헌법은 전체 130개 조항이 열 개의 장으로 나누어져 있다고 한다. 간단히 말하면 헌법은 A4용지에 130줄 정도 치면 다 쓸 수 있을 정도로 길지 않다는 얘기다. 130줄 이면 2장안에 다 프린트 될 정도의 양이다. 마음만 먹으면 금새 읽어버릴 수 있는 이 130개 조항에 대하여 저자는 알기쉽게 설명해주고 있었다. 시사적인 예들로 설명해주는 풀이들이 머리에 쏙쏙 들어온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 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1948년 7월12일에 제정되고 8차에 걸쳐 개정된 헌법을 이제 국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 1987년 10월 29일 (p. 20)


교과서마다 제일 앞장에 국민교육헌장이 쓰여있고 그 전문을 외워야 했던 시대가 있었다. 이름은 국민교육헌장이었지만 학생들에게 무조건적 충성맹세를 시키는 듯한 내용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그런데 하나의 긴 문장으로 되어 있는 헌법전문을 외웠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삶에 정말 중요한 것은 법이다. 헌법은 본문에 앞서 전문을 두고 있는데, 전문이 저게 다다. 저 전문 내용에 모든 헌법의 기초가 녹아들어 있다.

우리나라의 건국연도를 1919년으로 하느냐 1948년으로 하느냐 논란이 있다는 기사를 읽었었다. 그땐 왜 그걸가지고 그렇게 왈가왈부하나 싶었는데... 헌법전문에 3.1운동을 계승한다고 써있는데, 1948년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무식하거나 철면피라는 걸 알게 됐다. 그들이 왜 1948년을 주장하느냐. 1919년 건국은 일제강점기를 포함한다. 하지만 1948년으로 하면 일제강점기가 빠진다. 일제강점기가 빠지게 되면 친일행위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없게 된다. 건국년도는 우리나라 법기준점을 세우는데 의외로 중요한 것이었음을 저자의 설명을 통해 알게 되었다. 1948년 주장하는 사람들은 매국노에 다름아니다.


제1조 1)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p. 32)


아무리 법상식이 없어도 대부분 알고 있는 헌법항목이 1항과 2항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공화국' 이라는 말에 대해서 새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민주주의이념이건 다른이념이건 거의 대부분의 나라들이 공화국임을 말하고 있다. 공화국이란 중국 주나라 여왕 축출후 백성들이 왕을 세우지 않은 채 백성과 신하들이 서로 화합하여 나라를 잘 다스렸던 것에서 '왕이 없는 상태에서 다수의 참여와 합의로 정치가 이루어지는' 共和 라는 말이 생겨났다고 한다. 영어에서도 로마시대때 왕정폐지후 '나라는 우리 모두의 것 res publica' 에서 republic 라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동양이나 서양이나 비슷한 어원을 갖고 있는 공화국의 역사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되어 좋았다. 민주공화국이건 공산공화국이건 왕이 없는 체제는 다 공화국인 것이다. 왕은 없다. 누구도 왕이 될 순 없다. 이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우리는 군신관계에서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의외로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 헌법은 평화주의 헌법으로 분류되어 있어요. 무조건 전쟁을 하면 안 된다는 건 아니지만 우리가 먼저 침략하는 전쟁은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일부 정당의 국회의원들이 북한과의 긴장이 높아지면 북한을 공격하자고 한다거나 북한을 공격하기 위해서 핵을 갖다 놔야 한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다 헌법을 모르거나 무시하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국회의원이 헌법을 무시하는 말을 너무 쉽게 하는 거죠. (p. 47)


헌법 3조, 4조, 5조 에서는 북한과 통일에 대한 규정이 있다. 평화와 공존의 원칙이 있음에도 무식한 발언을 하는 국회의원들이 너무 많다. 국회는 입법기관이다. 국회의원의 본업은 법안을 만드는 것이다. 법안을 만들려면 법을 잘 알아야 할텐데 법알못 국회의원들이 참 많다. 딴짓좀 하지 말고 법공부나 열심히 제대로 하면 좋으련만...


제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p. 72)


헌법의 이 한줄에서 많은 기본법들이 탄생한다고 한다. 평등권, 행동자유권, 자기결정권 등 국민입장에서 가장 중요할수 있는 기본권이 다 이 조항에서 시작한다. 이 기본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헌하려고 했지만 개헌이 안되었다고 한다. 책을 읽으며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자 하는 법안들이 얼마나 막히고 있는지 알게 될 때마다 참...답답했다.


제19조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 (p. 108)


헌법에서 사용하는 양심은 바른 마음, 도덕적인 마음을 의미하는 게 아니에요. 법관이 재판할 때 '법률과 양심에 따라' 라고 하는 것도 바른 마음에 따라서 한다는 뜻이 아니에요. 헌법재판소의 표현을 한번 볼까요? 헌법재판소에서는 양심을 "어떤 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함에 있어서 그렇게 행동하지 아니하고서는 자신의 인격적인 존재가치가 허물어지고 말 것이라는 강력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 라고 말합니다. 간단히 얘기해서 법률에서 쓰이는 양심은 바로 신념입니다. 그러니까 양심의 자유란 국민 각자가 자기의 신념을 가질 자유가 있다고 해석하면 됩니다. (p. 109)

양심과 신념과 이념이 혼합되어 정확하게 규정되진 않지만, 그래서 더 양심이라는 표현이 얼마나 중립적이고 포괄적인지 어렴풋이 깨닫게 되기도 했다.


제27조는 형사소송법 중 재판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모든 국민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하여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되어 있다고 되어 있는데, '법관에 의하여' 라는 부분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배심원제가 들어올수 없는 거라고 한다. 그래서 '법원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 로 헌법개정안을 냈는데 자유한국당의 반대로 안 됐다고 한다. 검사든 변호사든 심지어 판사까지 자기네들 손아귀라고 자기네들이 조종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국민이 배심원이 되는 배심원제를 반대한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드는 건 나뿐일까...


기소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우리나라에서는 검사만 기소를 할 수 있어요. 이걸 '기소독점주의라고 합니다. 요즘 공수처 설치에 대해서도 말이 많습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를 줄여서 공수처라고 하는데, 판사나 검사, 고위직 공무원을 전담해 수사하는 기구에요. 그런데 설치하냐 마냐도 쟁점이지만, 설치를 찬성하는 사람 중에서도 공수처에 어떠한 권한까지 줄지에 대해서도 다툼이 있어요. 대표적인 게 '기소권' 입니다. (p. 137)


저자는 기소권이 검사의 권한 중에서 제일 무서운 것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기소를 해야 재판을 받는데 기소를 안 하면 재판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죄를 범해서 수사를 했는데도 기소를 안해버리면 끝이고, 죄의 성립이 모호한대도 기소를 해버리면 범죄인 만드는건 순식간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검사가 어디 소속인지를 보면 참 신기한게 검찰은 행정부 소속이라고 한다. 입법부도 사법부도 아니고 행정부 소속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 검찰은 법무부의 외청이라고 할 수 있는 검찰청 소속 공무원이다. 따라서 검찰개혁이 사법부를 건드리는 것마냥 표현하는 사람들은 말도안돼는 소리를 하고 있는 거다. 검찰은 행정부 소속이고 행정부 수반이 개혁하는 것이 당연한 곳이다. 오히려 검찰의 수장이 행정부 수장의 말을 안듣는것이 그렇게 초법적 위치에 있으려고 하는것이 정말 문제인거다. 검찰이 자기네가 소속된 행정부에 반항하니 이때다 싶게 입법부인 국회에서 일부국회의원들에게 조종되는 것이다.


제29조 1) 공무원의 직무상 불법행위로 손해를 받은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 또는 공공단체에 정당한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이 경우 공무원 자신의 책임은 면제되지 아니한다. 2)군인, 군무원, 경철공무원 기타 법률이 정하는 자가 전투,훈련등 직무법행과 관련하여 받은 손해에 대하여는 법률이 정하는 보상외에 국가 또는 공공단체에 공무원의 직무상 불법 행위로 인한 배상은 청구할 수 없다. (p. 143)


국가배상법과 관련된 헌법조항이다. 여기서 '보상' 과 '배상' 이라는 단어에 주목해야 한다. 보상은 잘못이 없을 때 주는 것이고 배상은 잘못했을 때 주는 것이다. 따라서 일본이 보상금이라고 주면 우리는 받을 수가 없는 거다. 배상금이라고 줘도 받을까말까한데.

이 조항관련해서 안타까운 개헌무산사례를 또 접했다. 이 조항을 이용해서 베트남전쟁에서 희생된 사람들에게 소액만 주는 관행이 이어져 왔다고 한다. 그래서 문재인 대통령이 개헌안에서 이 조항을 삭제하려고 했다고 한다. 전쟁때도 아니고 나랏돈이 아깝다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에게 푼돈을 주는 것은 용납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이 조항을 없애려고 했다는데, 결국 개헌이 안됐다고 한다. 왜 개헌이 안됐는지는 너무나 빤히 보이는 놈들 때문이다.


왜 노동의 권리가 아니라 근로의 권리일까요? 그냥 노동의 권리나 일할 권리라고 하면 되지 왜 성실히 일할 권리라고 말할까요? 이상하지 않아요? 예를 들어서 사람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하면 되지 잘생긴 사람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하는 것처럼 이상한 거죠. 그래서 문재인 대통령의 개헌안에서 일할 권리라는 의미를 담아서 근로를 노동이라는 단어로 바꾸려고 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사회주의 헌법이라고 비난을 했어요. 특히 자유한국당에서요. 우리나라는 노동자가 대부분인 나라인데도 '노동' 이라는 단어 하나에도 빨갱이라고 색깔을 덧씌우면서 이렇게 공격을 해댑니다. (p. 151)

32조1항을 보면 최저임금제 얘기도 있어요. 헌법에서 최저임금제를 다루고 있다는 사실 처음 아셨죠? 가끔 경제 논객이나 일부 국회의원들이 최저임금제 하는 나라가 전 세계에 얼마 없는데 왜 우리나라에서 이 제도를 하는지 모르겠다고 주장하잖아요? 정치인이 헌법도 안 읽고 그런 말 하면 안되죠. 최저임금제, 헌법에서 하라고 해서 헌법대로 하는 겁니다. (p. 153)


헌법 32조와 33조는 근로자의 지위나 권리, 근로자의 권리의 한계를 정하고 있는 조항이다. 그런데, 근로란 성실하고 근면하게 일한다 즉 열심히 일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그냥 일한다가 아니라 열심히 일한다... 세계 어느나라에서도 사용하지 않는 개념이라고 한다. 대한민국은 노동자의 나라다. 모두 다 노동을 해서 먹고산다. 그런데 '노동' 이라는 단어조차 아직도 색깔논쟁에 빠져 이용되고 있는 현실이 정말 갑갑할 따름이다. 왜 말을 그냥 말 자체로 받아들이지 않고 잘못된 이미지를 덧씌워 이용하려고 하는건지... 에혀...열심히 일하는 근로자뿐만 아니라 그저 일하는 노동자의 개념이 더 일반적이고 포괄적인 것을...

최저임금제 얘기 읽다가 헛웃음이 나왔다. 이거 원 법알못이 국민들에게 많은게 아니라 국회의원들에게 더 많은거 아닌가 싶어서... 남들이 낸 좋은 법안 반대하느라 법공부 할 시간이 없는건가? 그들은 법안을 한건이라도 제대로 만들어보기나 했을까? 이래서 선거를 투표를 잘 해야 하는데...


최근에 왜 남자만 병력 형성의 의무를 져야 하는지에 대해 논쟁이 심해지고 있어요. 군대 갔다 온 남성들이 취업이 안돼서 그 원인을 찾아보니 남자들이 군대 가 있는 동안 여자들이 토플, 토익 점수 따고 취업 준비를 하더라는 겁니다. 남자는 그 중요한시기를 군대에서 보낸다는 거죠. 그래서 여자도 군대에 가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말을 합니다. 여자도 군대를 가야 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제 대답은 이거예요, 내가 힘들다고 해서 왜 다른 사람도 같이 힘들어야 하나요? 그 사람도 안 힘들도 나도 안 힘들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게 더 바람직한 거 아닌가요? (p. 175)

서로가 좋을 수 있는 플러스적인 해결 방법이 있음에도 내가 힘드니까 너도 힘들어야 한다는 식의 제로섬적인 해결 방법에 매달릴 필요가 있을까요? (p. 177)

요즘에는 군가산점제 대신 성비 균형을 맞추기 위한 플러스 알파 채용을 하고 있습니다. 여성이 너무 적으면 여성을, 남성이 너무 적으면 남성을 추가적으로 채용하는데 플러스 알파 채용의 혜택을 남자도 많이 봅니다. 왜냐고요? 남자들에게는 좀 미안하지만 여자들이 시험을 더 잘 본다고 하더군요. 결국 성별 균형을 위한 플러스 알파 채용에서 남자들이 더 많이 혜택을 보고 있는 상황도 발생한다고 합니다. (p. 179)


군가산점제 위헌판결이 내려졌을때 정말 말들 많았었다. 병역기간이 갈수록 짧아지고 있긴하지만 여전히 징병제인 우리나라에서는 계속 말이 나올수 밖에 없는 문제이다. 그런데 제로섬적인 해결방법에 혈안이 되 있는 현실을 저자의 글을 통해 찬찬히 읽다보니 정말 그렇구나 싶었다. 소모적인 논쟁이 어디 이것뿐이랴마는 좀더 생산적인 혜안을 가진 이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국회의원 숫자가 많아지면 국회의원 한 사람의 특권과 권력이 세지는 게 아니라 약해지겠죠. 국민 입장에서는 국회의원 월급 반으로 깍고 보좌관 수 반으로 줄이는 대신 국회의원 수 두 배로 늘리는 게 더 현명한 선택일 수 있어요. 국회의원 수를 두 배로 늘리면 300명 중의 하나가 아니라 600명 가운데 하나가 돼요. 그러면 권한도 600분의 1로 쪼개지잖아요. 이런 점에 대해 한번 고민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p. 186)


국회의원들이 하도 본업은 안하고 싸움만 하는 것처럼 보이니 피곤해진 국민들은 국회의원들이 늘어나는 것이 달갑지 않게 여겨진다. 하지만, 소수일수록 특권은 많아진다. 다수일수록 힘은 분산된다. 게대가 우리나라의 인구대비 국회의원수는 무척 적은 편이라고 한다. 자신의 소속구 주민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비싼 월급 세금으로 주며 팽팽 노는 것처럼 보이는 국회의원들 월급 깍고 수를 배로 늘리면 국민 무서운줄 알고 눈치보며 좀 열심히 일하지 않을까? 정말 욕심하는 제안이다. 그런데... 국회의원수를 늘리고자 하는 시도도 막히겠지?;;;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조약을 체결하고 비준할 때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선전포고를 하거나 국군을 외국에 파견할 때 등도 국회 동의가 필요하고요. 그래서 남북판문점선언에 대해서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하는 거예요. ... 국회에서 동의를 해줘야 헌법에 의해서 체결된 선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동의가 필요해요. 또 재정적 부담 측면에서도 국회 동의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국회가 아직 동의 안 해줬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10.4선언도 동의 못 받았고, 김대중 대통령 때 6.15 남북공동선언도 결국 국회 동의를 못 받았어요. '판문점선언을 이행하려면 돈이 엄청나게 들 거다 퍼주기다 돈낭비다' 라고 말하는 분들도 있어요. 그런데 조선일보 2014년에 연재했던 '통일이 미래다' 라는 기사만 봐도 통일이나 남북경제협력은 경제적으로 남는 장사거든요. 박근혜 전 대통령도 '통일은 대박'이라고 했잖아요. ... 개성공단에 들어갔던 한국 기업들 어때요? 개성공단에 다시 안들어가겠다고 하는 기업 없습니다. 다들 개성공단 재개해서 다시 들어가게 해달라고 해요. 5억 달러 투자해서 30억 달러를 갖고 왔습니다. 경제협력을 하면 우리가 손해 볼게 없어요. ... 경제협력 할 때 드는 돈은 낭비가 아니라 투자입니다. (p. 223)


국가를 생각하는 입장에서 국민을 대변하는 입장에서 판단하는 게 아니라 정권실세에게 유리한 말을 하느라 어느땐 경제적으로 유익하다 했다가 어느땐 낭비다 라고 하는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보수언론이나 정치가들이 정말 한심스럽다. 대체 왜 그들의 말을 듣고 그들의 말을 믿는 사람들이 있는 걸까...


제65조 4) 탄핵결정은 공직으로부터 파면함에 그친다. 그러나, 이에 의하여 민사상 형사상의 책임이 면제되지는 아니한다. (p. 229)

탄핵으로 공직에서 파면되었다고 해서 민사상 또는 형사상 책임이 없어지지는 않아요. 박근혜 대통령이 파면된 후 형사재판을 받고 있잖아요. 탄핵으로 다 끝나는 게 아니예요. 태극기집회에 나가는 분들이 '탄핵해서 쫓아냈으면 됐지 왜 또 재판에 세우냐' 라고 말하잖아요. 헌법에 파면이 끝이 아니고 재판 다 받아야 한다고 되어 있기 때문에 박근혜 대통력이 재판을 받는 겁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가혹해서 그런게 아니에요. 헌법을 읽어봤으면 그런 말 안 할 텐데 말이에요. 다들 어렵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한번 읽어보았으면 합니다. (p. 231)


인정이고 온정이고 법앞에선 아무 효력이 없다. 그건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다. 이시대의 장발장들도 여전히 수두룩 하다. 하지만 죄를 지으면 재판을 받아야 한다. 누구만 특정해서 봐줄수는 없는 거다. 더구나 큰 잘못을 해서 탄핵을 당한 사람이면 더더욱. 왜냐하면 법이 그러니까. 법에 그렇게 하라고 나와있으니까. 법조항들을 읽으면 읽을수록 우리 생활과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지 깜짝깜짝 놀라게 된다.


제69조 대통령은 취임에 즈음하여 다음의 선서를 한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대통령 취임 때 선서하는 모습 본 적 있죠? 그런데 놀라운 게 있습니다. 이때 읽은 취임 선서문이 헌법에 아예 쓰여 있다는 거예요. ... 그래서 이 헌법이 대단하다는 거예요. 선서문까지 정해놨잖아요. 따옴표까지 딱 쳐서. 그런데도 국민들이 이 헌법을 읽어보질 않아요. 이렇게 많은 것들이 헌법에 정해져 있고 헌법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 걸 모르다니 정말 아쉽습니다. (p. 241)


아쉬운 정도가 아니라 안타깝기 그지없는 현실이다. 헌법엔 정말 많은 것들이 규정되고 있었다. 우리는 그 규정들 속에서 살고 있으면서도 정말 너무 몰랐구나 싶었다. 읽어보니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읽어보자 헌법!!!


제103조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굉장히 중요한 조항입니다. 우선 여기서 말하는 양심은 앞에서 다룬 것처럼 '착한 마음'이라는 의미가 아니에요. 이때의 양심은 신념을 의미합니다. 독립하여 재판한다고 함은 주로 법원 외부의 압력으로부터 독립적임을 의미해왔습니다. 그런데 얼마전 문제가 된 사법농단의 경우 이것이 매우 좁은 생각이었음을 알게 해주었어요. 정말로 재판이 독립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외부뿐만 아니라 내부의 영향력도 차단해야 하기에 특히 법원행정처와 같은 기구를 해체하고 법관의 인사권을 대법원의 손으로부터 풀어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 이런 내용의 법원조직법 개헌안이 국회에 제출되어 있는데 아직 제대로 논의가 안 되고 있어요. (p. 295~296)


또또또 논의가 안되고 있단다. 아놔 대체 법안논의는 언제 하는 건가?


자유한국당은 경제민주화 조항인 119조를 수정해서 국가의 규제나 조정권을 약화시켜야 한다고 해요. 저는 국가가 적절히 시장에 개입하고 조정하는 게필요하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p. 332) 정부가 시장에 관여하지 않는 나라는 없어요. 관여하는 게 기본이고 관여하지 않으면 시장은 사라져버립니다. 그런데 시장에 대한 규제를 하려고 하면 사회주의자다, 공산주의자다 하면서 공격해요. 이렇게 시장에 관여하지 말라고 하는 사람들은 사실은 현재 경쟁에서 이기고 있는 사람을 계속 이기게 하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일 수 있습니다. 소위 시장지상주의자라는 사람들은 대부분 시장을 돌아가게 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사실 시장에서 현재 이기고 있는 기업을 계속 이기게 하려는 경우가 많아요. 우리 시장에서 현재 이기고 있는 것은 거의 재벌이기에 사실상 재벌에 대한 규제는 하지 말라는 거예요. 재벌이 계속 해서 이길 수 있게 해주려고 재벌 손대지 말라고 하는 거죠. (p. 336)

시장을 위해서도 외부에서 시장에 관여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헌법도 시장에 대한 정부의 관여를 허용하고 있어요. 이런 게 사회주의, 공산주의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p. 337)


세계유일의 분단국가의 국민으로 산다는 것은 참 손해보는 게 많다. 모든 논리가 여전히 빨갱이 라는 단어앞에서 무너진다.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고 조정하는 것이 재벌을 규제하고 조정하는 유일한 법적 방법인데 서민과 소상공인을 보호하는 방법인데 그 반대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재벌의 손을 들어주고 있는 것이 누구인지 제발 좀 제대로 알았으면 좋겠다...


제128조 1) 헌법개정은 국회재적의원 과반수 또는 대통령의 발의로 제안된다. 2)대통령의 임기연장 또는 중임변경을 위한 헌법개정은 그 헌법개정 제안 당시의 대통령에 대하여는 효력이 없다. (p. 348)

앞서 얘기한 대로 문재인 대통령이 낸 개헌안에 대통령 중임제로 변경하는 내용이 있었어요. 이거에 대해서 처음에 자유한국당이 뭐라고 했어요? 문재인 대통령의 장기 집권 계획이라고 비난했었잖아요. 그런데 헌법에 이렇게 써놓았어요. 대통령의 임기를 연장하거나 중임변경을 할 때는 개정 제안 당시의 대통령에 대해서는 효력이 없다고요. 임기변경이나 중임변경의 경우는 개정안 낼 당시의 대통령에게는 적용이 안 된다고 못 박아놨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장기집권을 합니까? 말이 안 되죠. 국민들이 헌법을 모른다고 생각하니까 그렇게 아무 소리나 하는 거예요. 이제 우리는 헌법을 읽었으니까 그런 말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그건 헌법에 어긋나는 말이라고 반박하세요. 국회의원이 헌법도 모르고 그런 소리 하면 되겠냐고 하면 됩니다. (p. 349)


언론이 얼마나 왜곡했던가? 법조항을 밝히지도 않으면서 위법인것처럼 오도하는 일이 얼마나 많았나? 모든 국민이 두꺼운 법전 공부를 할 필요는 없다. 할수도 없다. 그 어려운걸 누가 어떻게 왜 읽겠는가;;; 하지만 헌법은 다르다. 짧고 굵고 강렬하다. 세세한 법률들은 검사 변호사 판사들이 잘 알면 된다. 자문을 구하려면 법조인과 상담하면 된다. 그러나. 기본법률상식으로 헌법정도는 알아둘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는게 좋을 것 같다. 책을 읽으며 헌법이 생각보다 너무 기본적인 내용들이라 의외였고, 이 짧은 문장에서 그토록 어려운 법들이 줄줄이 파생된다는 것에 놀랐다. 헌법조항마다 붙여 놓은 설명이 구구절절 옳은말이 너무 많아서 다 옮기지 못함이 아쉬울 정도다. 헌법을 국민이 알면 그 헌법대로 제대로 된 법안을 만들어내라고 국회의원들에게 더 바른 소리를 할 수 있지 않을까? 법은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들만의 세상속 규칙도 아니다. 법은 국민 모두를 규정한다. 국민이 헌법을 키우고 그렇게 키운 헌법에 의해 국민이 제대로 보호받기를 바라는 저자의 마음에 깊이 공감하고 감사하다. 이렇게 잘 알려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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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행방 새소설 3
안보윤 지음 / 자음과모음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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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볼 수 있는 안테나이자 안내자인

신비한 나뭇가지 '반'이 마주친 무수한 손들

인간이 만들어낸 죽음들에 대한 단단한 응시

우리 모두가 기억하게 될, 슬픔에 대한 묵직한 기록

 

 

자음과 모음 <새소설> 시리즈의 3번째 책인 이 작품은, 현재 한국문학의 가장 참신하고 첨예한 작가들의 시선을 담는 소설 시리즈 라는 점에서 창작과 비평의 <소설Q> 시리즈와 대비된다. 소설Q 시리즈 또한 '내일을 향한 질문, 젊은 문학의 새로운 발견' 이라는 기치아래 젊은 작가들의 주목할 만한 작품을 선보이고 있는 경장편 시리즈이기 때문이다. 작은 크기의 하드커버라는 외적인 모습도 비슷한데, 국내 소설 출판의 쌍두마차격인 두 곳에서 젊은 작가들을 발굴하고 이렇게 다양한 작품을 내주고 있으니 독자입장에서는 감사할 따름이다.

작가는 처음 소설을 구상할 때 만들어진 죽음에 대해 쓰고자 했다고 한다. 인재가 불러온 참사가 어디 한두건이었나... 저자가 고3때 뉴스로 접했던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 사건을 중심으로 곳곳에서 튀어나오는 죽음들은 묵직하게 가슴을 짓누르지만 눈돌리지 못하도록 저자는 읽는이의 시선을 단단이 고정시킨다.

지워진 것에는 지워질 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때로는 사라진 기억을 존중해줄 필요가 있었다. (p. 8)

주혁에겐 근래 십오년간의 기억이 거의 없다. 그저그런 날들의 연속이었다. 마지못해 살아있는 날들이었다. 그러나 사라진 기억을 존중해주기 위해서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기억이 끊긴 그 지점으로 되돌아가게 되는 그 연결이 두려울뿐... 그 기억하지 못하는 시간속에 어느날 주혁의 손에 나뭇가지 하나가 들려온다. 그런데 이 나뭇가지가 예사롭지 않다. 어느날 눈을 떠보니 누나의 집에서 이상하게 생긴 나뭇가지를 들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누나는 정리정돈과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예상치 못한 곳에 적절치 못한 형태로 놓인 물건들이 수도 없었다. 부모는 그런 누나를 평생에 걸쳐 한심해했다. 부모가 누나에게서 손을 떼는 과정은 지극히 자연스러웠다. 어린 시절에는 누나의 가방과 서랍 속을, 누나가 성장함에 따라 옷장과 방과 학교생활을 차례로 포기해나가는 식이었다. 누나가 성인이 되자 부모는 그녀의 이력과 인생 전체를 포기했다. 누나는 꾸준히 엉망이었고 부모는 일관성 있게 냉정했다. (p. 27)

소설에서 누나가 등장하는 장면은 아주 드물다. 그런데 이 부분, 누나에 대한 서술이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꾸준히 포기해나간다는 것... 그게 대체 어떤 걸까...

벌써부터 몸이 시렸다. 전단지를 받기 싫어 주머니에 손을 쑤셔 넣는 사람들과 노골적으로 귀찮아하는 상인들, 혹시 아이가 지나쳐 간 건 아닐까 온몸이 송곳처럼 예민해지는 순간들을 다시금 견뎌야 했다. 아이가 사라진 뒤 우철과 그의 아내는 너무 쉽게 무시당했고 너무 자주 조롱당했고 이 모든 걸 너무 오래 견뎌왔다. (p. 58)

우연찮게 신점을 봐주게 된 주혁은 열여덟살 딸이 가출하고 5년째 찾아해매는 부부를 만난다. 만나게 될 거라고 말해주었지만, 그때 누군가의 죽음이...

매일 야근을 강요당해도 괜찮았습니다. 직장인 대부분이 그러고 사니까요. 오히려 집에 전화를 걸어 야근이야, 라고 말할 때의 온당한 피로감이 좋았습니다. 제가 비로소 사회인이 된 것 같은, 사회 중심축의 절묘한 조각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p. 82)

물론 알고 있습니다. 주연 누나는 좋은 사람이에요. 선의로 가득 찬 사람이죠. 저를 위해서 한 일이라는 것도 알아요. 그래서 더 괴로웠습니다. 다 포기하고 도망쳐버리고 싶을 때마다 제가 얼마나 비겁한 인간인지, 열일 제쳐두고 저를 위해 뛰고 있는 주연 누나가 원망스러울 때마다 제가 얼마나 이기적이고 제멋대로인 인간인지 깨달았니까요. (p. 94)

지독한 선의로 무장한 그 입을 영원히 막아버릴 수만 있다면, 모든 게 다 너를 위한 행동이었따고 말하는 그 혀를 잘라버릴 수만 있다면. (p. 96)

 

직장내 성희롱 소문의 중심에 서게 된 강연은 그저 평범한 직장인이고 싶었다. 누구보다 열심히 했고 인정받고 싶었다. 그런데 동료의 선의아닌 선의로 어느순간 성희롱 피해자로 둔갑되 있는 자신의 존재가 버거워졌다. 주혁에게 찾아왔을때 아무도 죽지 않는다는 대답에 오히려 절망한다...

어린애가 태어나. 작고 귀중하지만 아직은 쓸모없지. 어린애는 아주 사소한 점 같은 거야.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냥 존재하기만 하는 점. 어른들이 그 점을 이어서 선을 만들지. 대개는 부모가 하는데, 형편없는 부모는 비뚤어진 선을 그어 (p. 109)

사실 선이라는 게 원래 그래. 삐죽빼죽하고 아무 데나 부딪히고 구부러지거나 부러지기도 쉽고, 다 나름대로의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성장하는 거지. 팔뚝에 힘이 붙으면 애들은 자기 마음에 드는 선을 몇 개든 그려낼 수 있어. 그럼 어엿한 면이 되는 거지. (p. 110)

면은 선보다 크고 넓지만 불안정한건 마찬가지지. 그럼 또 미숙한 단면인 채로 이리저리 부대끼는 거야. 입체감이 생길 때까지. 원뿔이 되거나 정육면체가 되거나 구가 되거나 할때까지. (p. 110)

도형. 삼십대엔 입체도형을 하나 갖게 돼. 근데 그게 참 보잘것없거든. 가까스로 세워놔도 쉽게 찌부러지는 애물단지지. 그래도 노력해온 게 있으니 다들 그걸 지키고 싶어 해. 인간으로서의 시작은 이제부터라고 봐야지. 지킬 게 생기면 인간은 끈질겨지거든. (p. 111)

사십대엔 말이야.... 입체도형 안에 자기가 원하는 걸 넣을 수 있지. 가족이나 직장처럼 구체적인 것도, 의지나 희망처럼 추상적인 것도 전부. 도형안엔 가장 소중한 걸 넣어야 해. 그래야 여생 동안 그걸 지키면서 도형을 늘려나갈 수 있거든.

그런데, 어떤 인간은 도형을 망가뜨리고 말아. 터지고 납작해진 것을 움켜쥐고 죽을 때까지 살기도 해. 자신의 도형뿐 아니라 타인의 도형까지 짓밟고 망가뜨리면서 죽지도 않고 뻔뻔하게 살아. (p. 112)

 

태어나선 점이었다가, 십대엔 선이었다가, 이십대엔 면이 되고, 삼십대엔 입체도형을 만들고, 사십대에 그 입체도형안에 소중한 것을 채워넣기 시작하지만, 모든 인간이 다 그 입체도형을 만들 수 있는 건 아니라는 비유가 멋지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 도형안에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다는, 도형 자체도 없다는 주혁의 독백이 소중한 것을 잃은 채 처절하게 몸부림치고 있는 속내를 숨기며 내뱉는 한숨처럼 귓가에 들리는 듯 했다.

열한 명의 아이들을 불러 괴롭힘을 책망하는 일은 별 소용이 없을 게 분명했다. 괴롭힘이라는 단어 자체가 어른의 것이었다. 아이들은 영주가 지적한 다음에야 자신들의 행동이 괴롭힘의 일종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것이다. 자신의 행동이 정의되고 나면 사람들은 그것을 바꾸려는 노력보다 그것을 정당화시키기 위한 일에 더 몰두한다. 아이들은 당연히 괴롭힘의 이유를 아이에게서 찾으려 할 테고, 이후 벌어질 일은 불 보둣 뻔했다. (p. 118)

새로 이사간 곳 유치원에서 기존의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여섯살 딸을 위해 주혁의 아내인 영주는 아이들의 엄마들을 포섭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다. 기존 엄마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자, 욕심나는 사람이거나 필요한 사람이 되고자, 편리한 사람이라도 되고자 바쁘게 움직였고 그런 영주를 주혁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게 1박2일의 캠프에 가기 싫어하는 아이를 등떠밀어 보냈다. 그런데...

동생은 늘 남들보다 한마디가 많은 사람이었다. 해원은 동생을 떠올릴 때마다 동생의 얼굴보다 저 문장이 먼저 떠오르는 게 못내 아쉬웠다. (p. 147)

무리 안에 포함되는 것. 모두와 같은 방향으로 헤엄치는 것. 어른이 되는 과정은 그처럼 간단했다. 그리고 그것은, 해원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었다.(P. 156)

 

해원의 동생은 해원과 정반대의 사람이었다. 초등학교땐 미술특별활동 시간에 미술대회 나가는 아이들에게만 신경쓰는 미술선생님한테 항의하고, 해양단 학생단체에서 6학년 조장이 역할을 잘 못한다고 4학일때 조장을 맡는가 하면, 고등학교땐 전교1등에게 몰아주는 수행평가결과에 시위를 하고, 대학교땐 모피입지말자며 대학로에서 나체시위를 했다. 간호사로 첫 출근한 직장에서 병원비리와 선배간호사들의 태움을 내부고발하여 쫒겨나고 겨우겨우 취직한 요양병원에서도 내부비리를 캐내다 화재사고로 목숨을 잃는데 화재범으로 몰리기까지 한다. 해원은 동생을 늘 이해할 수 없었다. 제발 가만히 좀 있으라고 늘 말했다. 그런데 동생의 죽음이후 해원은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된다. 동생이 화재범이 아니라 불법감금되 있던 환자를 구하다 죽었다는 주혁의 말을 듣고 더이상 동생의 말들을 외면할 수 없게 된다.

이제 길 위로, 자신에게 허락된 유일한 장소인 길 위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황량하고 쓸쓸한, 어떠한 기대도 희망도 없는 형벌의 장소로. (p. 171)

그래선 안 됐다. 주혁은 깨끗한 곳에 있고 싶지 않았다. 밝은 곳도 평평한 곳도 싫었다. 주혁은 거친 길 더러운 길만을 골라 거리를 떠돌았다. 더 불편하고 더 지저분한 곳, 더 끔찍한 곳으로 자신을 내몰았다. (p. 186)

 

본의아니게 신점을 봐면서 만나는 사람들의 사연은 하나같이 지독한 죽음들이다... 그 지독함을 벗어나지 못해 자신을 내몰고 있던 주혁의 시간들도 처절하기 그지 없었다. 무심코 알려준 아기의 죽음을 겪은 서연의 동생 주경에게 주혁은 죽이고 싶을 만큼 미운 존재였다. 이혼으로 버려진 집에서 아빠의 알콜중독과 폭력에 내몰렸던 시간에서 구해주고 키워준 누나 서연의 상처를 그렇게 무심히 말해준 주혁으로 인해 주경은 서연을 잃을뻔 했다. 그리고 그런 주경이 찾아온날 그런 주경의 주먹을 받으며 주혁은 그냥 그렇게 끝나고도 싶었다. 하지만...

나한테서는 뭐가 보였어? - 아저씨요? 별로요 - 별로? - 아무것도 안 보였어요. 아저씬 그냥 파랗던데요. (p. 103)

십오년만에 아내였던 영주를 만나기로 결심하고 주혁이 간 곳은 제주도로 출발하는 배를 기다리는 인천의 선착장... 책의 중간에 나왔던 파랗고 파랬던 이미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너무나 당연스레 연상이 되어서 마음아팠다... 시작과 끝을 동시에 품은 소설의 마지막 문단은 "벚꽃향이 지독한 사월이었다" 로 시작한다. 그 사월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너무나 당연스레 알게되는 것이 정말 지독히도 끝까지 죽음을 응시하게 만들고 있었다.

죽음에 대해 설명해두고 싶은 게 있다. 죽음에는 본디 독립된 형체가 없다. 죽음은 세상 모든 것의 이면이므로 그 자체만으로는 어떤 형태도 갖지 못한다. 무언가가 먼저 존재하지 않으면 숨소리 하나 걸칠 수 없는 게 죽음이다. 그러니 당연히 성스럽지도, 불가사의하지도 않다. 사신이라니 얼토당토 않은 소리다. 죽음은 일종의 결과값이고, 그것은 논리의 영역이지 신의 영역이 아니다. ... 죽음은 형체도 근원도 없으므로 막아설 수도, 밀어낼 수도 없다. 그러나 죽음을 불러내는 자들이 있다. (p. 220)

죽음을 불러내는 자들.... 그들은 인간이라고 저자는 분명히 말하고 있다. 만들어진 죽음을 하나하나 보여주면서 그 죽음을 누가 만들었는지 등장하지 않은 원인제공자들이 누구인지 알게 한다. 작품속에 나오는 죽음들은 우리가 몰랐던 죽음들이 아니다. 이미 알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은 죽음들이다. 가정내의 문제, 이웃과의 문제, 직장에서의 문제, 사회구조적인 문제까지 원인제공자들의 시작은 무심하고 소소한 행동들이었다. 죽음을 전혀 예상하지 않은 아주 사소한 행동들이었다고 말한다면 저자는 되물을 것이다. 정말 몰랐냐고. 그렇게 소설속에서 내내 묻고 있었다. 이 죽음들을 정말 계속 모른채 할 것이냐고.

<새소설> 시리즈로 알게된 작가였는데, 기억에 남는 수작이었다. 앞으로의 작품들도 몹시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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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종유감 - 금수저, 깜깜이, 쓰앵님…‘학종’은 왜 공공의 적이 됐을까?
이천종 지음 / 카시오페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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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수저, 깜깜이, 쓰앵님~ '학종' 은 왜 공공의 적이 됐을까?

'정시 확대' 냐, '학종 개선' 이냐? 논란의 '학생부종합전형' 현 위치를 진단하고 명과 암을 들여다보는 학종 팩트체크

 

 

저자는 20년간 기자생활을 해오고 있는, 현재는 세계일보에서 교육팀장을 맡아 교육정책을 다루는 기사를 쓰고 있는 기자다. 그리고 세 아이의 아빠다.

이 시대의 부모라면 누구나 입시문제에 예민하다. 유치원생이건 고등학생이건 여하튼 대학을 가야할 자녀를 두고 있는 부모라면 '학종' 은 그야말로 뜨거운 감자다.

기자의 능력을 십분 발휘하여 온갖 기사들과 논문 및 자료들을 바탕으로 '학종' 을 체크한 이 책은 '학종'에 대한 유감스러운 마음을 긍정이건 부정이건 여하튼 다양하게 흩어져 있는 '학종' 에 대한 목소리를 일목요연하게 담아내고자 노력하고 있었다.

학벌사회 한국에서 입시는 민심의 역린이다. 용의 턱밑에 거꾸로 난 비늘을 다루는 그 자리는 독이 든 성배다. 군사정권의 총칼도 무력했고, 민주화 이후 숱한 개혁도 허사였다. 입시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정권의 목을 겨눈다. (p. 10)

그랬다. 사회가 어찌흘러가든 민심은 매번 휘몰아치진 않았다. 항상 뜨겁게 거리로 쏟아져 나오진 않았다. 하지만 딱 하나 '입시문제'에 대해서만은 예민하게 반응했다. 내가 먹고살기 힘들면 힘든만큼 내가 누려보았다면 누린만큼 내자식은 잘 살길 바라는 마음은 가장 뜨겁게 민심의 중앙에서 타오르고 있었다.

>>> 1장 - 학종 톺아보기

>> 키워드 하나, 금수저

국민들이 입시에서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은 공정성이다. (p. 33)

극성스러운 교육열을 자랑하는 교육특구의 대학진학률이 낮다는 역설은 해마다 되풀이되는 현상이다. 왜 그럴까? 이유는 재수생에서 찾을 수 있다. ... 이 지역 학부모들은 그런 재수 비용을 감당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소득이 높은 지역일수록 자녀에 대한 기대 수준이 높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학종이 아니라 정시로 가면 일반고는 초토화될 것이라고 경고하는 전문가도 많다. (p. 45)

고소득층이 수능을 더 선호한다고 보는 것도 물론 맞다. 하지만 진실에 가까운 진단은 금수저에게는 지필시험이든 정성평가든, 시험에서는 흙수저보다 유리하다는 것이다. (p. 47)

 

금수저/흙수저 라는 말이 처음 등장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쓴웃음을 지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

금수저와 흙수저의 격차가 벌어질 수록 적어도 제도에서만큼은, 출발선만큼은, 보이는것에서만큼은 똑같은 위치이기를 더 바라게 되었다. 그것이 공정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공정한가? 어차피 어떤 방식이든 금수저에게는 상관이 없다. 그들만의 리그에 흙수저는 손톱만큼도 끼어들기 힘들다. 그렇다면 모두가 똑같은 공정성을 찾기보다 금수저는 논외로 두고 다양하게 금수저를 공격?!할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이 좀더 현실적인게 아닐까?

>> 키워들 둘, 깜깜이

생기부 기재 요령에 모호한 예외사항을 둬서 사실상 사각지대를 방치하는 일도 심심찮게 있다. 이러다 보니 학생들은 학종의 성패를 좌우하는 생기부 기록의 공정성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p. 81)

동일한 학생부종합전형이라고 하더라도 대학별로 중점적으로 평가하는 요소가 다를 수 있고, 같은 요소에서도 세부 평가항목이 다르기 때문에 합격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대학별 중점 평가요소를 정확하게 분석하는 것이 필수 (p. 89)

전문가들은 학종 공정성 논란을 해소하기 위해 대학 공통의 학생부평가기준과 고교 유형별, 지역별 평가 결과를 공개하자고 주문한다. 학종에 대한 채점기준과 결과를 공개하자는 것으로, 대학이 학종 결과를 오픈하면 수험생과 학부모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는 논리다. 그러나 대학들은 난색을 표하고 있다. 정성평가의 기준을 공개하면 그것이 사교육 시장의 타깃이 되리라는 주장이다. 또 수험생 개인정보를 공개하는 것은 법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p. 90)

학종은 제도의 도입 배경과 취지만 놓고 보면 흠잡을 게 별로 없다. 고교교육 정상화와 대학의 창의인재 확보, 교육 당국의 4차 산업혁명시대 미래인재 육성 등 삼박자를 두루 갖춘 제도다. 문제는 '기승전 대입'의 한국 사회에 적용되는 과정에서 맹점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p. 92)

 

또 공정성 문제다. 고등학교 현장에서 선생님들에 대한 신뢰도가 바닥이다 보니 수험생들의 입시를 좌지우지할 생기부에 대한 신뢰도 또한 바닥이다. 학생들은 학종의 바탕이 되는 생기부를 선생님들이 공정하게 기재하는 지 믿을 수가 없고, 선생님들은 입시에 유리한 생기부 기재방법을 몰라 갈팡질팡 중이고, 대학은 학종판단의 기준을 오픈하지 않은채 자신들의 학교를 빛내줄 인재찾기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기준기준기준 이 기준 잡기가 대체 가능이나 할런지...

>> 키워드 셋, 쓰앵님

대치동이라는 동네의 학부모 교육열이 유독 높은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이들 스스로 입시를 통해 전문직으로 성공한 경험이 있기에 학력을 통해 학벌을 상속하려는 경향이 강하다는 점이다. ... 의사와 변호사, 대기업 임원처럼 고소득 전문직이긴 하지만 이들이 자녀들에게 거대한 부를 상속할 만큼 재벌급이 아니라는 점이 과도학 교육열로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재벌급 부유층은 자녀가 공부를 못 하면 해외 유학이나 상속 등을 통해 우회할 수 있는 길이 많아 입시에 애면글면하지 않는다. (p. 106)

중산층이 없어졌다는 말은 이미 오래전부터 들려왔다. 상류사회와 하류사회만 존재하는 듯 심화되는 양극화가 일상이 되었다. 하지만 상류사회 초입에서 어정쩡하게 대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 아닐까? 학벌이라는 동앗줄을 부여잡고 반드시 상류사회에 진입하겠다는 욕망에 이미 상류사회구성원인 것처럼 가면을 쓰고 '쓰앵님~'께 무릎꿇으며 애원하고 있는 게 아닐까? 이미 상류사회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쓰앵님' 따위 안중에도 없는데.

>>> 2장 학종을 바라보는 세 시선

>> 뿔난 학생과 학부모

대입제도 개편이 고교 서열화 해소와 대학 입시 공정성 강화 등 기회 균등 쪽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p. 148)

결국 학생부 중심은 신뢰성 부족과 수험생 부담 가중의 문제, 수능 중심은 고교교육의 비정상화 문제, 대학별 고사는 고교 진학지도 혼란 등의 문제가 불거지며 한계를 드러냈다. 정책 일관성 부족으로 우리 사회에 교육개혁 피로감만 키웠다. ... 고교교육 정상화, 대입제도 단순화, 대입 공정성 확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인재 양성과 같은 서로 다르거나 엇갈리는 가치를 모두 품에 안으려는 과욕이 부른 참사다. 모두에게 인정받고 싶어하는 '착한 사람 콤플렉스' 때문이기도 하다. '모두를 만족 시킬 수 있는 교육정책은 없다' 라는 한계를 인정했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절충과 타협이 난무했다. (p. 151)

대합입시제도는 대학에서 보면 학교에서 공부할 신입생을 선발하는 절차에 불과하다. 학생에게는 희망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시험일 뿐이다. 그렇지만 한국에서는 다르다. 학벌사회인 한국에서 대학은 촘촘하게 서열화돼 있다. 어느 대학에 가느냐에 따라 사회적 지위가 달라질 개연성이 아주 높다. (p. 155)

 

'환장할 우리 가족' 이라는 책에서 환장하게 하는 학벌에 대해 우리나라가 학벌사회가 된 것은 국가가 해주지 못하는 복지를 기업이 해줘왔기 때문이라는 내용을 읽어며 무릎을 때렸다. 맞다. 국가가 해주지 못하는 고용안정성과 국가가 해주지 못하는 노후대책과 국가가 해주지 못하는 학자금과 국가가 해주지 못하는 주택대출이 대기업에만 들어가면 해결되었다. 일반서민으로서는 대기업에 들어가는 것이 만사형통인 방법이었다. 그런데 IMF 이후 모든 것이 변했다. 이젠 대기업이 그 무엇도 보장해주지 못했고, 그사이 성장했어야 할 국가복지는 여전히 바닥인 상황에서 부모세대의 학벌경험은 어쩔수없는 미련으로 상속이 되고 있었다. 한국의 경제발전사는 다른나라와 완전 다르다. 한국에서의 대기업의 위치는 다른나라와 완전 다르다. 학벌사회의 문제는 결국 생계의 문제였기에 가장 민감하게 대응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입시'일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복지를 생각하지 않고 모든 문제를 아우르려는 교육정책은 늘 도로아미타불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언제까지 제자리걸음만 할 것인가...

>> 착잡한 교사

동양 전통문화는 유교와 시험 위주 능력주의가 합해진 것이다. 유교사회에서는 권위자들의 글을 잘 외우는 것이 최고였다. 그래서 학자들이 사회에서 가장 존경을 받았다. ... 수나라가 무력으로 정권을 잡은 후에 젊은 엘리트들이 반란을 일으키는 것을 막기 위해서 과거제도를 만들었따. 권위자들의 글을 열심히 외워서 과거에 급제만 하면 누구나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다고 세뇌하기 시작했다. ... 이 과거제도 덕분에 지도층이 권력을 유지하기가 아주 쉬워졌다. 또 그 전 권력자들의 글을 비판하는 일 없이 그저 잘 외우는 사람들이 과거에 급제했기 때문에 지도층의 말을 아주 잘 따라서 국가의 수직적 위계를 수월하게 유지했다. (p. 181)

사지선다식 정답이 있으면 모든 아이가 똑같이 생각해야 한다. 튀는 자가 세상을 바꾸는데, 우리는 반대로 모난 돌이 정 맞는다. 튀면 안 되니까 남 눈치를 본다. 사지선다는 공평한게 아니고 모든 학생을 평균으로 만드는 거다. 진짜 실력을 찾아내는 게 공정하지. 어떻게 시험이 공정할 수 있나. 외우는 것으로는 혁신 없다. 무조건 외우게 해서 줄을 세우는 게 어떻게 공정한가. 동양에서는 학벌이라는 게 있어서 실력이 없어도 성공할 수 있다. 그래서 월스트리트에서 투자를 안한다. 월스트리트에서는 CEO가 얼마나 능력 있고 회사 매출이 얼마나 올라가는지를 보고 투자한다. (p. 182)

 

우리에겐 억압과 폭정의 역사가 많다. '시험' 은 지배자에게 유리한 제도다. 경제적으로 급성해야할 시기에는 국민모두를 평균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시급했다. 하지만 사회는 변했다. 지배자에게 유리한 제도에 대해 의심해 볼 수 있고 평균보다는 다양성이 필요해졌다. 능력을 줄세우기로 판단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어떻게든 과정을 평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정성평가가 현실적으로 가능할지 여전히 의구심이 들기는 하지만 시대적 흐름인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 답답한 입학사정관

평가 기록을 활용하는 입장인 입학사정관이 바라본 수업, 평가 기록의 내실화 방안은 무엇일까? 입학사정관들은 스펙이나 다양성보다는 방향성과 지향성을 찾아가는 학생들의 탐색, 교사 개인의 역량에 영향을 받지 않는 기재 방법에 대한 고민, 대학 서류평가 시스템의 지원, 입학사정관과 교사 간 대화의 소통의 시간 확충 등을 꼽았다. (p. 204)

입학사정관들이 생기부의 신뢰성이 낮은 이유 1순위로 꼽은 것이 교사별 개인차다. (p. 208)

입학사정관들의 주장이나 인식처럼 학종이 일반고 학생에게 유리해 금수저 전형이 아니라는 연구도 적지 않다. 지방 일반고 학생들이 인프라의 격차를 극복하고 서울 주요대학에 합격하는 데 학종이 유리하고, 수능은 그 반대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학종이 '금수저 전형'이라는 비판을 반박할 때 자주 등장하는 데이터다. (p. 215)

 

결국 신뢰의 문제다. 학생이나 학부모나 대학은 교사들이 작성한 생기부를 믿지 못하고, 학생이나 학부모나 교사는 입학사정관의 판단을 믿지 못한다. 여전히 궁금한 것은 입학사정관 이라는 사람들은 대체 누구일까 하는 것이다. 제도적으로 공인되는 자격증 같은 게 있지 않은 입학사정관 이라는 직업은 어떻게 얻을 수 있는 것인가? 어떤 사람들이 입학사정관이 되는 것인가? 입시의 방법도 중요하지만, 학종이 존재하는 한 입학사정관 들에 대한 자격요건도 판별해야 하지 않나? 교사들은 적어도 일정수준의 능력을 가졌다고 테스트를 통과한 사람들이다. 전세계에서 한국만큼 교사의 수준이 높은 나라가 드물다고도 한다. 그런데 입학사정관은? 그들은 누구인가?

>>> 3장 대형 사건에서 찾는 입시 코드

>> 조국 파문, 그리고 입학사정관제와 학종 / >> 숙명여고 사건으로 다시 보는, 내신 / >> 자사고 전쟁과 고교 서열화

굵직한 사건들을 다시 보면서, 가진자들의 세계와 무리한 욕심을 가진 사람과 올바르지 못한 비전을 가진 정치가가 어떻게 사회를 망쳐왔는지 다시한번 씁쓸하게 되뇌어야 했다. 이런 사건들이 터질때마다 서열화을 욕하면서도 그 서열에 끼고 싶어하고 비리를 욕하면서도 그 혜택을 받아보고 싶어지고 정보를 찾지 않은 게으름을 정보를 가진 자들을 욕함으로써 해소하려고 한다. 그러나 교육은 이렇게 단편적인 비난들을 그때그때 처리하는 방식으로 개편되어져는 안된다. 교육은 그야말로 백년지대계 아닌가.

획일적 입시 너머를 꿈꾸는 학종의 그 좋은 취지는 현장에 제대로 안착하지 못한 채 가진 자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학종이 선물한 '고교교육 정상화' 라는 성과도 빛이 바래간다. 고교교육 정상화를 명분으로 학종 옹호론을 펴는 교사들은 학부모들에게 기득권 수호 집단으로 비친다. 공정성의 깃발 아래 활활 타오르는 정시 확대론으로만 사람들이 몰린다. 정시확대론이 맞는다면 그 길로 가면 되겠지만, 그 역시 역사의 수레바퀴를 뒤로 돌리는 일이다. 학종이든 정시든 금수저에게 유리하다는 게 진실에 가깝다. 수능이든 학종이든,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유불리가 갈린다. 나도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내 아이들이 시험으로 평생 악몽에 시달리거나, 금수저를 물지 못한 제 신세를 한탄하는 모습만은 보고 싶지 않다. (p. 301)

 

소수의 몇몇 사람만 배울 수 있던 시대에서 의무교육시대가 되었고, 소수의 몇몇 사람만 갈 수 있던 대학에 대부분의 사람이 갈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중학교 입시가 사라지고 고등학교 까지 뺑뺑이 돌리며 평준화교육이 안착되었으니 이제 남은 것은 대학 뿐이다. 일열로 순위를 매기던 제도에서 다양한 방법이 가능하게 한 제도로 변하고 있다. 항상 욕해왔지만 의외로 교육과 입시는 나름 바른길을 찾아왔다. 한국식 문화가 반영된 한국식 학종은 이제 만들어지기 시작하는 중이다. 유감스러운 것은 분명하나 그보다 선행되어야 할 자세는 팩트체크일 것이다. 모르는 채 선동되기 전에 제대로 알고 이용할 수 있도록 마음먹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어차피 그들만의 리그에 끼어들지 못할 거라면 나만의 우리만의 리그를 제대로 만들어 그들을 소외시키는 통쾌함을 기대하고 싶다.

ps. 표지가 참 마음에 드는 책이었다. 생각해보니 카시오페아 책들은 대부분 표지디자인이 참 좋았다. 이 책의 표지도 멋지지만, 미술에게 말을 걸다, 아트인문학, 비울수록 사람을 더 채우는 말그릇 등 내가 읽었던 이 출판사의 책들은 하나같이 표지가 내용과 잘 어울리면서도 세련되고 색감이 좋았다. 이미지에 혹하는 경향이 있는 나로서는 앞으로도 카시오페아 책들의 표지에 혹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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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사랑스런 옛 물건 - 낙랑시대 상다리부터 대한제국 베이킹 몰드까지, 유물을 만끽하는 새로운 감상법
이해인 외 지음 / 책밥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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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랑시대 상다리부터 대한제국 베이킹 몰드까지,

유물을 만끽하는 새로운 감상법

사랑받아 마땅한 우리나라 유물이야기

 

 

티비를 잘 보는 편은 아니지만, 좋아하던 프로그램 중의 하나로 '천상의 컬렉션' 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우리나라 보물에 대한 소개를 때로는 드라마틱하게 때로는 예술적으로 때로는 유쾌하게 보여주는 방식이 좋았다.

책으로 나왔다길래 책으로도 찾아보았었다. 입체적으로 느껴지는 영상보다는 못했지만 한번에 모아보는 재미가 있어 책또한 좋았다.

나는 박물관을 좋아하는 편이다.

유리면을 사이에 두고 바라보는 옛물건이 때로는 신기하기도 때로는 멋지기도 하면서 의외의 상상력을 자극시키는 곳이 박물관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천상의 컬렉션' 에 소개된 보물들처럼, 박물관에 가서도 유명하고 멋진 그야말로 보.물.들에만 관심을 가졌던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상판은 없어진채 남은 상다리 하나로도, 의자인지 탁자인지 모를 원통 하나로도 얼마나 소중한 가치를 찾아낼 수 있는지 이 책은 느끼게 해주고 있었다. 작고 예쁘게 소박하고 사랑스럽게 유물을 감상하는 마음을 느끼게 해주고 있었다.

고려사람들은 모임을 위한 향을 따로 사용할 정도로 향을 사랑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향로가 꽤 많이 남아 있나 보다. 고려 하면 청자! '청자 사자장식 뚜껑 향로' 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뚜껑위에 올라앉은 사자를 볼텐데, 저자는 사자 뒤태에서 잔망미를, '청자 투각 칠보무늬 향로' 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화려한 투각에 집중할때, 저자는 향로를 받치고 있는 다리가 자세히 보면 토끼라는 것을 찾아낸다.

'백제 금동 대향로' 에서 사람들이 화려함에 감탄할때 저자는 향이 퍼지는 장면을 상상하며 한폭의 산수화를 그려내고, 신라시대의 '토우장식 항아리' 에서 토우들의 몸짓으로 스토리를 상상한다. 10센티미터의 작은 조선시대 '백자 향꽂이' 에서 거친 파도속의 용오름과 향내 풍기는 해무를 연상하고, 귀한 청자로 의자와 난간을 만든 것을 보며 고려시대 화려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을 연상한다.

스토리를 상상하면서도 처음보는 신기한 물건들도 눈에 띄었다. 신라시대 토기가 그것도 작은 토우들이 장식된 토기들이 유행했었다는 것도 처음 알았고, '모깔개' 라고 우리나라식 카페트의 역사가 나름 오래되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태피스트리 기법으로 짜여진 직물의 그림은 정말 감탄스러웠다. 요새 향초를 사용하며 '윅트리머' 라는 가위를 처음 알았는데, 조선시대 초심지가위를 보며 이미 그때!!! 싶기도 하고, 낙랑시대 '금동 곰모양 상다리' 를 보며 낙랑시대 유물을 처음 구경하기도 했다.

쇠뿔을 얇게 오린 뒤 뒷면에 채색하는 제작법인 '화각'이라는 우리나라에서만 사용되던 기법을 이용한 물건들도 처음 보고, 커피를 좋아하셨다는 고종이 드셨을 달다구리를 만들기 위한 베이킹몰드도 처음 봤다. 여성들만 노리개를 달고 멋을 내는 줄 알았더니, 남성들의 장신구 '패옥'을 관복입은 초상화속에서 살그머니 찾아낸 것도 재밌엇다.

옆모습만 보던 청자를 위에서 보니 보자기가 그려져 있는 것이, 매병을 뚜껑과 한 세트도 제작하는데 뚜껑을 덮을 때 파손방지를 위해 병 입구에 보자기를 씌운 후 뚜껑을 덮었던 것을 재치있게 표현한 것이라는 것을 알고 보니 그 청자가 더 멋스럽게 보이고, '백자 철화 포도 원숭이 무늬 항아리'에서 커다랗게 넝쿨진 포도송이들 사이에서 스치듯 흘려그려진 작은 원숭이 찾는 것도 유쾌하고, '분청자 물고기 무늬 편병' 에서 다른 물고기들과 역방향으로 헤엄치는 물고기에 대한 주인공 설정도 재밌었다.

백제시대 사용됐다는 다리가 많이 달린 벼루, 가로 80센티미터가 넘는 거대한 벼루, 도통 사용법을 모르겠지만 유려한 곡선무늬가 멋진 붓씻는그릇 등 신기한 것에서 두루마리 종이를 담아놓는 지통에도 섬세하게 새겨진 그림들이 저자의 말처럼 미니 병풍 같았던 대나무지통까지, 신라에서 이어진 섬세한 금세공기법이 돋보이는 고려시대 금제 장신구 부터 어린 남자아이들이 썼던 두건인데 호랑이 얼굴을 형상화해서 너무 귀여웠던 호건까지, 화려한것과 소박한것 모두를 아울러 시대를 넘나드는 옛물건들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작고 예쁜 이 책을 보고 나니 박물관에 가고 싶어진다.

이번에 박물관에 가면 크고 유명하고 화려하고 멋진 것들 뿐만 아니라, 작고 소박하고 눈에 띄지 않는 그런 물건들을 잘 살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보다보면 저자가 찾아내지 못한 '사랑스러운 옛물건' 을 내가 찾아낼수도 있을 듯하다. 찾아내지 못하더라도 그 물건을 사용하던 장면이나 대상에 대해 상상해보는 시간을 갖는다면, 지루하고 따분한 이미지의 박물관이 재미있고 환타스틱한 곳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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