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일의 한국의 사찰 답사기
신정일 지음 / 푸른영토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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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학자이자 도보여행가 라는 저자는 일년의 반이상을 우리나라 방방곡곡 산천답사하면서 보낸다고 한다.

빠른 교통수단을 이용하여 목적지를 직고 휘리릭 다녀오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을 두 발로 꾹꾹 눌러걷다 오는 답사는 그 흐름이 차분할 수 밖에 없다. 게다가 과거의 흔적을 더듬는 답사는 자연속에 어우러져 있는 답사는 사찰과 뗄려야 뗄수 없는 코스가 되기 마련이다.

저자는 중학생 시절 출가를 결심하고 화엄사를 찾아갔다고 한다. 그곳에서 두어 달동안 나무하고 밥하고 빨래하는 것을 거드는 허드렛일을 하며 지냈는데, 스님이 절보다는 세상에 나가는 것이 좋겠다고 하여 출가를 접었다는 이야기로 책을 시작한다. 절에 들어가고자 하였으나 절에 들어가지 못했고, 절에 들어가지 못했으나 절을 떠돌며 사는 삶이 되었다는 이야기. 그렇게 저자와 사찰은 길고 긴 인연으로 연결되었다.

저자는 정말 여기저기 열심히 다닌듯 하다.

전라남도 완주 화엄사를 찾아가 원효와 의상이 수행한 천삼백 년 역사의 신라 고찰을 보며 원효와 의상의 수행이야기와 하앙식 건축법으로 지어진 국내 유일 목조 건축물 이야기를 하고

전라남도 곡성 태안사를 찾아가 구산선문의 도도한 수행처였던 것임을 생각하며 고려 개국공신 신숭겸의 충절과 녹슨탄피의 상처를 되새기기도 한다.

경상북도 봉화 청량사를 찾아가 퇴계의 자취와 공민왕의 흔적을 기억하고

경상남도 창녕 관룡사를 찾아가 신라8대 종찰에서 조선초기 까지 이어지는 불교건축으로서의 고찰을 살펴보기도 한다.

경기도 양평 용문사, 상원사, 사나사 를 둘러보며 천삼백년 역사를 지켜본 은행나무 앞에서 세월의 무게를 느껴보기도 하고

전라남도 해남 미황사에서 국토 최남단단에 위치한 불교문화유산의 자취를 밟아보기도 한다.

경상남도 합천 청량사에서는 통일신라시대에 있었던 천개의 불상을 상상해보고

충청남도 청양 장곡사에서는 고려시대 불교 석물의 미를 찾아보기도 한다.

강원도 동해 삼화사에서는 수행처로서의 사찰을 느끼고

강원도 춘천 청평사에서는 고려식 정원에 어린 원나라 공주의 사연을 옛이야기 하듯 풀어놓기도 한다.

전라남도 장흥 천관사에서 개발의 상처를 아쉬워하고

전라남도 화순 운줏에서 조광조의 개혁과 민중의 혁명을 떠올려 보기도 한다.

경상북도 상주 남장사, 북장사에서 신라 명승 고찰로서의 전통을 찾고

경기도 남양주 수종사에서 다산 정약용과 천주교의 역사를 다시 세워보기도 한다.

경기도 여주 고달사, 신륵사 에서 고려시대의 화려했던 시간을 생각하고

충청남도 공주 동학사, 갑사에서 통일신라시대의 불교문화를 유추해보기도 한다.

전라북도 완주 봉서사, 송광사, 위봉사에서 보기 드문 천장그림 비천무의 유려함에 감탄하고

경기도 양주 회암사에서 조선시대 불교 중흥을 잠시 떠올려 보기도 한다.

전라남도 영암 무위사, 도갑사에거 월출산의 영험한 기운을 느끼고

경기도 안성 청룡사, 석남사에서 숭유억불정책의 조선시대에서도 유서깊은 불교문화를 유지해온 경기 명찰을 되새겨 보기도 한다.

이렇게 하나하나 사찰이름들을 적어보니 정말 길다;;; 그만큼 들어본 이름 보다는 못들어본 이름이 많아서 나중에라도 기억해보고자 한곳한곳 이름들을 불러보고 싶었다.

바다가 주는 느낌과 산이 주는 느낌이 다르고, 산에 오르는 느낌과 사찰에 오르는 느낌이 또 다르다. 무엇보다 사찰이 주는 고요함 속에 역사의 흔적을 느끼게 되면 종교적 깨달음이 아닐지라도 과거의 시간이 주는 배움이 있기 마련이다.

비록 스토리가 끊기고 문맥에 맞는 사진자료가 부족한데다 지도가 전혀 없어서 위치조차 가늠이 되지 않았지만, 전국 곳곳에 우리의 역사를 품고 있는 사찰들을 알게 되는 것 만으로도 여행하듯 가볍게 읽게 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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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의 음식을 먹는 여자들
로셀라 포스토리노 지음, 김지우 옮김 / 문예출판사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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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실화를 바탕으로 전쟁의 단면과 이면,

인간의 모순된 욕망을 포착해낸 작가 로셀라 포스토리노

"그날, 하얀 벽으로 둘러싸인 식당에서 나는 히틀러의 시식가가 되었다"

 

 

히틀러의 시식가이자 유일한 생존자였던, 실존인물 마고 뵐크의 고백을 바탕으로 쓴 이 소설은 이탈리아에서 출간 즉시 1개월간 3만부 이상이 판매되었으고, 현재까지 전 세계 46개국에서 번역 출간되며 50만부 이상 판매되었다고 한다.

짧다면 짧다고 할 수 있는 기간동안 이 작품이 세계 곳곳에 퍼져나갔다는 소개글을 보며,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가 곳곳에 퍼져있다는 것이 새삼 느껴졌다. 여전히 히틀러 라는 이름은 그냥 스쳐지나가지지 않는 이름이고, 그를 소재로 한 글은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왕을 대신하여 음식을 먹어주던 시녀들이 있었음을 우리는 역사에서 알고 있다. 그런데 독재정치하에서 그런 일이 있었으리라는 생각은 왜 여태 못해봤을까 싶다. 한 사람의 지배자, 그를 위한 많은 준비들, 그를 향한 많은 위험들, 어찌보면 너무나 당연하게 히틀러라는 인물에게는 그의 음식을 먼저 먹어보는 사람들이 필요했을 것이다. 남자들은 전쟁터에 보내야 하니 음식을 먹어주는 일은 남아도는 여자들이어야 했을 것이다.

로자는 결혼한지 얼마 안된 새댁이다. 그런데 신혼생활을 1년도 못하고 남편은 나치군에 입대했다. 함께 살던 베를린은 폭격을 당했고, 시부모가 살고 있는 작고 조용한 시골마을로 내려가 남편을 기다리며 지내던 중 갑작스레 군인들이 그녀를 찾아온다. 영문도 모른채 끌려간 곳엔 다른 여성들도 있었고, 그녀들 앞에는 음식이 놓인다. 그 마을엔 히틀러의 비밀벙커가 있었고, 그가 먹을 음식에 독이 들어있는지 판단하기 위해 미리 먹어줄 사람들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 음식을 먹을 10명의 여성이 끌려왔다. 전쟁중이었고 먹거리가 부족하던 시절 그 음식들은 쉽게 맛볼 수 없는 귀한 음식들이었지만, 먹고싶은 욕망과 살고싶은 욕망은 갑자기 충돌하게 된다. 사람은 먹어야 살 수 있는데, 먹으면 죽을 수도 있는 음식을 먹으며 살아야 하는 혼란.

여자들은 배부른 악어처럼 눈물을 흘려댔다. 어쩌면 그것도 소화 과정의 일환일지도 모른다. (p. 15)

악어가 먹이를 먹기전 눈물을 흘린다는 '악어의 눈물'은 사실 악어의 생리적 현상일 뿐인데, 위선적 거짓된 눈물로 자주 인용된다. 배고프지만 자신이 잡아놓은 먹이를 위해 애도의 눈물을 먼저 흘려주고 먹이를 먹는 것 같은 악어, 그 악어의 눈물.

그런데 식당에 끌려온 여자들은 음식을 먹고 배부른 악어처럼 눈물을 흘렸다. 먹고나서 흘리는 그 눈물부터 이미 욕망이었던 것일까? 무엇에 대한 욕망일까? 자신을 위한 애도? 먹은 것에 대한 두려움? 과연 그녀들이 악어들이긴 한걸까?

그렇다. 나는 딱 봐도 전쟁에 길들여진 순수 아리아 혈통의 젊은 여인이었다. 100퍼센트 순수 국산물이니 그들 입장에서는 남는 장사임이 틀림없었다. (p. 21)

히틀러를 위해 일하고 그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은 모든 독일인의 의무였다. 하지만 요제프는 내가 총이나 폭탄이 아니라 독이 든 음식을 먹다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조용한 죽음이었다. 영웅이 아니라 개 같은 죽음이었다. 하지만 어차피 여자에게 영웅적인 죽음은 어울리지 않는다. (p. 22)

우리는 매일 죽음을 마주해야 했다. 하지만 우리가 직면하는 위험은 살아 숨 쉬는 모든 인간이 일상적으로 직면하는 위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p. 71)

 

시식용 여자들도 순수한 독일인이어야 했다. 개죽음만도 못한 죽음을 맞게 될 지라도, 독이 든 음식을 먹게 될지라도, 그러한 죽음이 용인되는 조건은 오직 하나, 순수혈통 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하지만 어떻게 죽느냐라는 죽음의 의미에 대해 사람들은 많은 생각을 한다. 순수혈통 독일인 젊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히틀러 대신 미리 음식을 먹는 여자들도 저마다 자신의 역할에 대한 생각이 달랐다.

로자는 죽을 때까지 나치를 반대했던 아버지를 생각했고, 폭격으로 숨진 어머니를 생각했고, 나치군이 되었으나 후회의 편지를 보내는 남편을 생각했다. 그리고 친구하나 없는 외지인으로 갑자기 병영에서 히틀러의 음식을 먹고 있는 자신의 처지를 생각했다. 그 무엇도 이해되는 것이 없었다. 그렇게라도 살아 있는 것과 매번 음식을 먹을때마다 느껴야 하는 공포는 생존본능과 죽음에 대한 욕구 사이에서 일상이 되어 갔다. 혼돈이 일상이 되어가는 것 어쩌면 그것이 전쟁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총통은 그뿐 아니라 가축을 도축하는 것이 너무 잔인한 행위라 고기를 먹을 수 없대 (p. 81)

히틀러의 요리사가 이야기하는 히틀러의 모습은 인간적이다. 고기를 먹지 않고 파이를 좋아하고 어린이를 사랑하며 변비를 걱정하는 사람의 모습을 한 사람이다. 요리사는 그를 위해 요리하고 그가 한 요리를 먹는 여자들에게도 친절하다. 하지만, 로자가 여자들 무리에 친구로서 자리잡기 위해 우유를 훔치고 군인에게 들키고 요리사가 자신이 준것이라 말해주어 구해준 뒤부터 요리사는 그녀들에게 등을 돌린다. 생과 사를 오가는 상황에서도 인간관계는 맺어지지만 쉽게 맺어진 인연은 쉽게 끊어진다. 하지만 쉽게 끊어지는 인연일지라도 끊어질때는 다 아프다.

내겐 그 몇 달간의 기억이 별로 없다. 어느 날 크라우젠도르프로 향하던 버스 차창 너머의 잔디밭 사이로 솟아나온 보라색 토끼풀 빼고는. 보라색 토끼풀을 보는 순간 나는 수도승 같은 일상에서 깨어났다. 봄이 온 것이다. 나는 그리움의 대상이 없는 향수병을 앓았다. 그레고어에 대한 그리움만은 아니었다. 나는 삶이 그리웠다. (p. 130)

남편이 실종됐다는 통지서가 오고부터 로자는 더욱 제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나마 사망통지서가 아닌 것으로 위안 삼으며 시부모님을 부모님처럼 여기며 가까스로 친해진 동료들을 친구처럼 여기며 매일 병영으로 출근해서 음식을 먹고 퇴근하는 삶을 살았다. 그렇게 사는 동안에도 계절은 바뀌었고 누구를 기다려야할지도 모르면서도 기다리며 사는 삶 속에 정작 로자가 기다렸던 것은 자신의 삶이었고 사랑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사랑인지 욕정인지 모를 관계를 갖게 된 한 남자로 인해 혼란은 가중된다.

그레고어가 내가 어떻게 사는지 몰라도 내 삶은 변함없이 지속되었다. 어머니가 나를 학교에 내버려두고 집으로 가버렸을 때도, 어머니한테 선물로 받은 새 만년필을을 잃어버렸을 때도 그랬다. 그때 나는 누군가 내 만년필을 훔쳤거나 실수로 자기 필통에 집어넣어버렸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동무들의 가방을 뒤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머니가 사준 놋으로 만든 새 만년필을 잃어버렸는데 어머니는 그 사실을 까많게 모른 체 내 침대를 정리해주고 스웨터를 개주었다. 나는 내 실수 때문에 너무나 괴로웠다. 괴로움을 견디기 위해서는 어머니를 조금 덜 사랑하는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비밀을 지켜야 했다. 어머니에 대한 나의 사랑을 지키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어머니의 사랑을 배신하는 것이었다. 어머니의 사랑을 견딜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 사랑을 배신하는 것이었다. (p. 242)

로자에게 비밀이 생긴다는 것은 괴로운 것이었다. 그 괴로움을 견디는 방법은 그 비밀을 지키는 방법은 배신하는 것이었다. 로자에게 히틀러의 음식을 먹으며 살아간다는 것은 실종된 남편외에 다른 남자가 생겼다는 것은 자신을 배신하는 것이었다. 자신을 배신해야 자신을 덜 사랑할 수 있었다. 삶을 덜 사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생긴 비밀스런 관계에 로자는 자신의 삶을 의지했다. 결국 살기 위한 배신이었다. 어떤때는 맹렬하게 삶을 놓고 싶다가 어떤때는 도저히 삶을 놓을 수 없는 본능 속에서 로자는 결국 욕망에 순응했다.

우리는 무기 없는 군인이자 신분 높은 노예였다.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 그 무엇이었고 실제로 라스텐부르크 밖에서는 아무도 우리의 존재를 몰랐다. (p. 301)

지난 몇 년 동안 내 눈에는 모든 영웅적인 행동이 어리석어 보였다. 나는 신념을 지킨다는 명목하에 앞에 나서는 모든 사람들이 창피했다. 특히 정의를 위해 나서는 이들을 볼 때는 더 그랬다. 그것은 낭만적인 이상주의의 잔재에 지나지 않았다. 현실과는 동떨어지고 순진해빠진 거짓 감정이었다. (p. 322)

 

히틀러에 대한 폭파사건이 있고 전투에서의 패배가 늘어갈수록 시식하는 여자들에 대한 환경도 옥죄어 들어왔다. 그녀들의 존재는 애매했고, 애매한 상황속에서 벌어진 뜻밖의 사건은 정의롭지 않았다. 친구의 행동은 어리석어 보였지만, 그 친구를 잃었을때 가장 큰 상처를 받은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로자였다. 다들 한 사람의 부재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였고 로자에게는 그 상황조차도 상처였다. 다른 사람들이 당연하게 넘기는 것을 로자는 당연하게 넘길 수 없었다. 하지만 드러낼 수도 없었다. 모든 것을 로자는 비밀에 묻었고 비밀이 늘어날 수록 배신도 늘어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자기자신도 배신하면서 로자에게 남은 것은 과연 무엇일까... 로자에게 배신과 욕망은 어쩌면 같은 이름이었다.

나를 제외한 전 인류가 정말로 죽음 대신 비참한 삶을 사는 것을 선호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목에 바위를 매단 채 모이 호수 바닥에 가라앉는 대신 궁핍하고 외로운 삶을 선택할지는 모르겠다. 나를 제외한 전 인류가 전쟁을 자연스러운 본능이라고 생각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인간은 미친 종족이다. 그런 종족의 본능을 충족시켜서는 안된다. (p. 359)

전쟁은 인간을 미치게 하고, 미친 인간의 본능은 파괴시켜야 한다. 전쟁이 끝나고 로자는 자신의 본능과 욕망을 충족시키지 않기 위해 최대한 노력한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꾸역꾸역 살아남았는데 전쟁이 끝나고서 오히려 자신의 욕구를 부정하는 로자를 보면서 전쟁이 그녀를 미치게 한 걸까? 아니면 뒤늦게 제정신을 차리게 한 걸까? 알 수 없었다.

누군가를 잃었을 때 느끼는 고통은 순전히 자기 자신을 위한 감정이다. 다시는 그 사람을 못 보고 다시는 그 사람의 목소리를 듣지 못할 거라는생각을 못 견디는 자기 자신 때문에 힘든 거다. 고통은 이기적인 감정이다. 내가 화가 난 이유는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p. 402)

나는 지금껏 그 모든 일에 대해서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작정이다. 살면서 유일하게 배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생존하는 방법뿐이었다. (p. 405)

 

로자는 실종됐던 남편이 돌아오자, 죽어가던 남편을 헌신적으로 보살피며 결국 살려놓고 헤어졌다. 남편이 새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늙어가는 내내 로자는 혼자였다. 이기적 고통을 자신만의 비밀로 만들고 그 비밀때문에 스스로를 부정하면서도 로자는 그저 살아남았다.

나는 로자를 이해할 수 없었다. 가해자가 아님에도 가해자로 살고자 하고, 피해자이면서도 피해자가 아닌 삶을 선택했다. 전쟁은 가해자와 피해자를 명확히 나눌 수 없게 만든다. 로자도 어느 한쪽의 입장으로 설명할 수 없는 존재다. 하지만 그녀가 가진 진실이 그녀를 사지로 몰아넣었을지 이해와포용으로 상처를 아물게 했을지는 모를 일이다. 그러나 로자는 끝까지 고통을 생생하게 기억하며 그저 생존한다. 그렇게까지 살아낸 인생이 대체 무슨 의미란 말인가... 화가 나기도 했다.

로자의 선택이 주는 혼란은 본능과 욕망사이에서 더욱 혼잡해진다. 무엇이 본능이고 무엇이 욕망인지 구별할 수 없어진다.

살고자 하는 본능과 음식에 대한 욕망은 히틀러의 음식이라는 것과 독이들었을지 모른다는 공포사이에서 배치되고, 친구라고 생각했던 이들과 친구의 실체에 대한 무지는 관계의 진실성에 대해 알수 없게 하고, 남편에 대한 사랑과 다른 남자에 대한 욕정은 사랑의 본질이 무엇인지 헤깔리게 한다. 이 모든 것들에 대해 로자는 그저 침묵하고 생존한다. 답답하다고 욕하기엔 전쟁의 참상이 공포스럽고 용기내보라고 응원하기엔 현실의 잔인성이 충분히 두렵다. 독일인은 나쁘고 유태인은 불쌍하다는 간단한 명제는 사실 참이 아니다. 그렇다고 거짓이랄 수도 없다. 그 참과 거짓 사이에 로자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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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과학다반사 - 세상 읽는 눈이 유쾌해지는 생활밀착형 과학에세이
심혜진 지음 / 홍익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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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읽는 눈이 유쾌해지는 생활밀착형 과학에세이

일상에 과학을 더하면 세상은 더 특별해진다

 

 

과학을 좋아하지만 왠지 전문적인 과학책은 아직 손이 가지 않는다. 그래서 과학을 쉽게 읽게 하는 과학대중서를 좋아하는 편이다.

이 책은 과학대중서 중에서도 특별히 더 쉬운 책이었다. 표지문구처럼 아마도 생활밀착형이라서?! ㅎㅎㅎ

저자는 과학연구원도, 과학전공자도 아니지만 어려서부터 과학을 좋아하고 과학강사로도 일해봤고 지금은 과학책과 요리책을 사모으는게 취미라는 저자소개글로 보아 생활형 칼럼니스트 같다. 과학전문분야를 잘 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과학접근에 부담이 없었던 저자는 주변에 과학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을 알고 어린 학생용이 아닌 일반 어른 감성이 투영된 과학대중서를 쓰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저자가 알려주는 과학이야기들의 원리는 어린 학생들도 이해할법한 내용들이지만 그 원리들을 확인하는 감성은 어른용인 책이 탄생했다. 예를 들어, 삼투압현상을 이야기할때 학생용이라면 식물이 물을 빨아들이는 작용이나 계란과 식초를 이용한 실험등으로 설명하겠지만 이 책에서는 김장용 배추를 이야기한다고나 할까^^

과학적 원리설명을 이야기하기 위해 일상을 예로 든 것이 아니라, 일상을 이해하기 위해 과학의 원리를 찾아본 것이라 과학이라기 보다는 일상에 대한 호기심측면에서 접근하다 보니 잡지를 읽듯 훌훌 책장이 잘 넘어갔다.

카페인은 식도를 통과한 순간부터 45분 이내에 소장에서 흡수되어 몸 전체에 퍼지고, 한두 시간 안에 혈중 농도 최고치에 이른다는 것을 읽고, 카페인이 필요한 시간에 맞춰 커피를 마셔야 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봉숭아물을 들이면 마취가 안된다고 들었던 믿거나 말거나 식 정보를, 수술 후 마취한 환자의 상태를 손톱 색으로 파악했던 옛날에 퍼졌던 낭설일뿐 의학기술이 좋아진 지금은 마취하려면 봉숭아물들인 손톱을 뽑아야 한다는 걱정을 날렸고

어릴때 무심히 봤던 연탄의 구멍들이 산소의 통로로서 화력강화를 위한 것이었다는 것을 새삼 알았다.

난 오이를 좋아하는 편이지만 은근 오이를 굉장히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이상했는데 오이의 쓴맛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유전자 문제라는 것을 것이나

우리가 '맛' 이라고 알고 있는 것의 대부분은 사실 '향' 이라는, 즉 딸기맛 바나나맛 이라는 건 사실 어불성설이고 딸기향 바나나향 이 맞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기도 했다.

배양육 이야기를 읽으며 최근 읽었던 '클린미트' 라는 책이 떠오르기도 했고

사계절이 뚜렷한 지역에 사는 이들이 살이 찔때 배부터 나오는 이유가 추위에 적응해온 인류의 유전자 때문이라며 저자가 자신의 뱃살을 인정할때 공감하기도 했다.

멘톨껌을 좋아하는데 이때의 시원함이 피부의 냉점 수용체에 의해 뇌가 그렇게 느끼는 피부의 감각이라는 것도 신선했고

청각장애인이지만 세계적인 타악기 연주자 에벌린 글레니의 이야기에서는 온몸으로 소리를 듣는 느낌이 왠지 느껴질것 같기도 했다.

무더운 아프리카에서 진화해온 인류는 몸 전체에 땀샘이 퍼져 있어 추위에는 불리하지만 고양이나 개에겐 땀샘이 거의 없어서 추운 야생에서 견딜 수 있다는 이야기는 전에 읽은것 같은데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을 상기하게 됐고

가을엔 대기가 건조해져 수분이 사라지면서 하늘이 더 파랗게 보이는 것이라는 내용을 읽으며 하늘의 색으로 공기의 건조함을 파악할 수 있겠구나를 새삼 떠올리기도 했다.

여름의 우박과 507년이나 살아온 조개이야기도 재밌었고, 전부 일것 같은 육각형 눈 결정은 많아야 1000번 중에 한번 나타나는 것이고 무지개색의 색은 몇가지냐고 물었을때 '셀수 없이 많다'가 정답이라는 것도, 사람의 몸무게 가운데 3kg 가량은 세균의 무게라는 것도 재밌었다.

목이 마를 때 바닷물을 마시면 안 되는 이유가, 바닷물을 마시면 바닷물이 혈액 속으로 흡수될 테고, 내 몸 세포보다 혈액이 더 짜지고, 싱거운 쪽에서 짠 쪾으로 물이 이동하니까 세포에서 혈액 속으로 물이 나오고 그렇게 물이 방광으로 모아지고 물이 필요해 바닷물을 마셨는데 오히려 몸속의 물이 밖으로 빠져나가는 상황을 맞닥뜨리게 된다는 설명을 읽으며, 그냥 짜서 못먹는 것이 아니었구나 싶은게 왠지 웃기기도 했다.

이렇게 생활 속에서 이것도 과학이었네? 아니 이것도? 하는 재미가 느껴지는 이 책을 읽고 나면 과학이 굉장히 친숙한 학문으로 느껴질 것 같다. 과학이 어렵다는 인식의 장벽을 넘고 나면 좀더 깊이 있는 과학책도 읽게 되지 않겠는가. 과학은 과학인데 키득키득 웃어가며 단숨에 읽게 되는 이 책의 매력은 일상에서의 과학 딱 그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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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의 변명·크리톤·파이돈·향연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 플라톤의 대화편 현대지성 클래식 28
플라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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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그림이 친숙하다. 자크 루이 다비드 의 <소크라테스의 죽음> 이라는 그림이다.

자크 루이 다비드의 선명한 그림들이 좋아서 그의 작품 여럿을 보다가 이 그림도 종종 보긴 했지만, 눈치채지 못했던 것을 얼마전 어떤 강연에서 듣고 아~! 했다. 소크라테스가 재판을 받던 때의 나이는 칠십이다. 그림에서도 머리가 허옇다. 그런데, 그의 신체는 젊은이의 매끈한 근육질 몸매였다. 진리는 영원불멸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서 그렇단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정말 오~! 그렇다. 손가락을 위로 치켜드는 것만 생각했었다. 저 손가락 모양은 라파엘로의 그림 <아테네 학당> 이라는 그림에서 플라톤이 하늘을 가리키고 있는 것과 같은 의미다. 이상적인 이성을 추구하는 소크라테스와 그의 제자 플라톤은 같은 곳을 지향했다고 할 수 있을까? 크게 보자면 그럴수도 있지만, 자세히 보면 꼭 그렇지는 않다. 나는 소크라테스의 이상과 플라톤의 이상은 다르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물론, 이 한권만으로 판단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 책의 원저자는 플라톤이다. 그리스어로 쓰여진 원전을 번역한 책이다.

플라톤의 책들은 서양철학의 기본서라고 할 수 있다. 서양철학의 모든 것은 플라톤 철학의 주석에 불과하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국내에 원전 완역본이 유통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게다가 유명한 것들 몇 가지 외에는 다 번역되어 있지도 않다. 플라톤의 책도 그러할진데 다른 고대철학자들의 저서들은 원전 완역본이 더 흔치 않다. 체계적으로 원전 완역본들이 나와줬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플라톤 책들을 읽었던 경험이 있다. 같은 책을 반복해서 읽는 편은 아닌데, 다른 번역본으로 보니 새로웠다.

처음엔 숲출판사에서 나온 천병희 선생님의 번역본들을 읽었었다. 고대철학 원전번역본 중 대중서로는 천병희 선생님의 번역이 가장 술술 잘 읽힌다.

그러다 정암학당을 알게 되서 단행본들로 나온 플라톤 원전 번역 시리즈를 몇 권 읽었다. 철학 전공자들이 연구하고 토론해가며 번역하여 주석이 본문의 양과 비슷할 정도로 해석에 심혈을 기울인 것이 장점이다.

그리고 현대지성 클래식 시리즈로 나온 이 책을 읽게 됐다. 천병희 선생님의 책이 시처럼 읽히고 정암학당 책이 사전처럼 읽힌다면 이 책은 소설처럼 읽힌다고나 할까. 가장 현대적인 언어로 번역되었고, 주석도 같은 페이지 하단에 위치한데다 비교적 상세한 편이라 초보자가 읽기에도 편하게 읽을 만한 책이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 은 '변명' 이란 단어에 담긴 부정적 뉘앙스로 '변론'으로 옮길 때가 많다. 어떤 역자는 '소크라테스는 단순히 고발된 혐의 내용을 반박하면서 무죄 판결을 받아내려 '변론'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고발에 함축된 자기 삶 전체를 향한 물음과 도전에 '항변'하고 있다. 소크라테스로 대변되는 삶의 방식, 그러니까 철학과 철학적 삶 자체에 관한 '변명' 인 셈이다' 라고 주장한다. '변명' 이나 '변론' 둘 다 일리가 있으나 역자는 오랫동안 다수의 독자에게 익숙한 [소크라테스의 변명]으로 제목을 정했다. (일러두기 中)


본문을 시작하기 전에 제목에 대한 역자의 당부가 써 있는데, 개인적으로 나는 '변론' 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천병희 선생님은 '변론' 으로 제목을 정하셨고, 정암학당 본은 '변명' 으로 제목을 정했다. 정암학당 강의를 들은적이 있는데, 거기서 '변명' 으로 정한 이유는, 변명 이라는 단어의 한자를 뜻 풀이하면 의견은 명명백백하게 밝히는 것 이라서 원래의 의미를 살려 그렇게 정했다고 한다. 하지만, 애초에 일본에서 외국 번역 책들이 들어오던 시기에 '변명'으로 들어와서 대중적인 제목이 '변명' 이 된 것이고, 우리나라에서 통용되는 의미상 변명은 핑계와 거의 같은 의미로 이해되기 때문에, 나는 '변론' 이 바른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소크라테스의 변명- 크리톤 -파이돈 은 소크라테스의 재판 - 감옥 - 사형집행일 이라는 사건 순서로 연결된다. 이런 연결성을 보자면 사실 뒤에 '향연' 은 소크라테스의 재판과 동떨어져 있긴 한데, 소크라테스 철학의 정수를 보여주는 것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라 함께 한 책으로 묶이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읽으며 그 논리적 맥락에 다시한번 감탄한다. 당시 민주정은 제대로 된 민주정이 아니었다. 권력을 잡은 이들의 입장에서 젊은이들에게 올바른 것이 무엇인지 자꾸 되묻는 소크라테스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그 모든 진실을 알면서도 재판정에서 '변명'을 하지 않는다. 오직 진실만을 말한다. 그렇게 진실만을 말해서 유죄판결을 받는다. 재판은 시작되기 전부터 이미 답정너였다.


설마 그들이 진실을 말하는 사람을 말 잘하는 사람이라고 표현한 것은 아니겠지요. 그들이 그런 의미로 말한 것이라면, 나는 내가 말 잘하는 웅변가라는 것에 동의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뜻으로 말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앞에서 이미 말했듯이, 그들이 말한 것 중에서 진실은 거의 없거나, 실질적으로 전무하기 때문입니다. 반면, 여러분은 나에게서 오직 진실만을 듣게 될 것입니다. (p. 11)


진실을 듣는 것을 불편해 하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에서 진실을 말하는 자는 위험하다.


그러자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나를 따라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아주 부유한 가문의 자제들이어서 시간적인 여유가 많은 청년들입니다. 그들은 내가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지며 대화하는 것을 옆에서 듣는 것을 아주 좋아하고, 종종 나를 흉내 내면서 자신도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지며 대화하곤 합니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기에, 그런 과정에서 무엇인가를 안다고 착각했던 수많은 사람이 사실은 거의 또는 전혀 모른다는 것이 드러나는가 봅니다. 그래서 그런 질문들을 받은 사람들은 자신에게 화를 내지 않고, 소크라테스라는 아주 무서운 전염병 같은 자가 있는데, 그자가 청년들을 타락시키고 있다고 말하며 내게 화풀이를 합니다. (p. 23)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뭔가를 많이 알아서 지혜로운 사람인 것이 아니라고 여러번 이야기 한다. 오히려 지혜롭다는 사람들을 찾아가서 배워보려고 이런 저런 질문을 던졌는데, 질문하고 대화하다 보니 상대방은 지혜롭지 않은데도 본인이 지혜롭다고 착각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소크라테스는 적어도 자신은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들보다는 적어도 지혜롭다고 하는 것이다. '무지의 지' 따라서 소크라테스가 질문을 하고 다닐수록 그에게는 적이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무지를 드러내게 하는 소크라테스가 어찌 편하겠는가?


나는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여러분을 위해, 곧 여러분이 내게 사형을 평결함으로써, 신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선물에 죄를 짓지 않게 하려고 변론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비웃겠지만, 만일 여러분이 나를 사형에 이르게 한다면, 그런 후에는 내 역할을 대신할 다른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이 나라는, 고귀한 혈통을 지닌 데다가 힘이 있긴 하지만 몸집이 크고 다소 둔하고 느려서 등에를 붙여 정신이 번쩍 나게 해야 하는 말 같기 때문입니다. 신께서는 나 같은 사람에게 등에의 역할을 하라고 이 나라에 꼭 붙여놓으시고는,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 옆에 꼭 붙어서 종일 끊임없이 설득하고 책망하여 정신이 번쩍 나게 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p. 39)


하지만 아테네 사람들은 등에를 떼어내버렸고, 바로 후회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의 이름은 역사에 깊이 각인되었다. 소크라테스는 죽는 순간까지 등에의 역할을 소홀히 하지 않았기에.


소크라테스의 변론은 총 3차로 이루어져 있다. 1차는 고발된 혐의에 대한 변론이고 이 변론 후 아테네 사람들인 배심원 500명이 유죄 판결을 내린다. 이 판결을 듣고 2차 변론을 하면서 소크라테스는 유죄인정은 커녕 자신에게 상을 줘야 하는 거라고 당당히 요구한다. 2차 변론에서는 본인이 생각하는 형량을 제시할 수 있는데, 소크라테스의 2차 변론을 듣고 배심원들은 그냥 유죄가 아닌 사형을 선고해버린다. 3차 변론은 사형선고를 알게 된후 마지막으로 하는 소크라테스의 변론이다.


여러분을 비판하는 자들을 사형에 처해서, 자기 삶이 올바르지 않다고 누군가가 비판하는 것을 막으려고 한다면 크게 잘못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비판을 모면하려는 시도는 가능하지도 않고 고상하지도 않습니다. 가장 고상하고 쉬운 길은 여러분을 비판하는 사람들의 입을 막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가장 선량한 사람이 될 수 있을지 직접 관심을 갖고 스스로 그렇게 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곳을 떠나기 전에 내게 사형을 선고한 여러분에게 해주는 예언이 바로 이것입니다. (p. 55)


소크라테스는 반성하지 않는 삶을 살면 안된다고 끝까지 강조한다. 하지만 아테네 시민들은 귀를 막았고, 소크라테스의 입을 막았다. 그렇게 아테네 민주정은 무너졌다.


[크리톤] 은 몇 페이지 안되는 짧은 분량이다. 소크라테스의 친구인 크리톤이 사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갇힌 소크라테스를 찾아와 탈옥을 권유하는 내용이다. 아마 여기서의 내용이 왜곡되어 '악법도 법이다' 라는 소크라테스가 하지 않은 말이 소크라테스의 명언인 것처럼 퍼진 듯 하다. 하지만 이 책을 제대로 읽으면 악법도 법이라서 지키려다 소크라테스가 사형을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선택을 한 것이다. 그리고 죽음 에 대한 철학적 결론도 그러한 선택을 뒷받침 했다.


[파이돈] 에서 소크라테스의 죽음 에 대한 철학적 생각을 자세히 알 수 있다. 감옥에 갇혀 있다가 드디어 사형집행일이 되자 소크라테스의 마지막을 함께 하기 위헤 친구와 제자들이 모였다. 자신을 걱정하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그들에게 소크라테스는 철학자에게 죽음이 얼마나 괜찮은 것인지 설명한다. 이승에서의 삶이 얼마나 철학적이었느냐에 따라 영혼의 길과 저승에서의 시간은 희망적이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죽음 이후의 시간에 대해 기대하는 바가 크다. 여기서 나오는 '영혼' 에 대한 논증과 '저승' 에 대한 논증은 죽는날까지 제자들과 대화를 주고받으며 논리를 입증시키는 소크라테스식 교육의 진수를 느끼게 해주면서, 나중에 종교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지 짐작하게 한다. 그리고 '상기설' 에 대해 나오는데, 우리가 배워 알게 되는 것들이 실은 단지 기억해내는 것이라는 이론은 플라톤의 <국가> 에서 더 자세하고 명확하게 체계를 잡게 된다.


[향연] 은 '에로스' 에 대한 대화로 유명하다. 그런데 여기서의 '에로스' 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그 에로스가 아니다. 시작은 에로틱하게 출발하지만, 마무리는 진정한 지혜로 매듭지어지면서 '향연'이니만큼 취객의 난동으로 마무리 된다.


'향연' 의 화자는 아폴로도로스 인데, 아가톤의 향연에 참석한 소크라테스 와 함께 있었던 아리스토데모스에게 들은 이야기를 자신의 친구들에게 들려주는 형식이다. 즉 직접들은 것이 아니고 간접적으로 들은 것을 다시한번 간접적으로 들려주는 것이다. 결국 정말 그런 대화가 있었는지 알수 없다는 말이다. 같은 말이라도 사람을 거쳐가다 보면 바뀌는게 일반적인데, 소크라테스의 말을 아리스토데모스가 듣고 아리스토데모스의 말을 아폴로도로스가 듣고 아폴로도로스의 말을 친구들이 들었을때, 소크라테스의 말은 과연 어느정도 그대로 옮겨졌다고 할 수 있을까?


소크라테스는 단 한권의 책도 쓰지 않았다. 책으로 남기면 읽는 이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직접 대면하고 일대일로 대화하면서 제대로 깨우치게 되는 것만을 중요시 여겼다. 우리가 아는 소크라테스의 지혜들은 다 플라톤의 책들에서 시작된다. 플라톤의 책들에서 소크라테스가 등장하고 대화체로 서술되지만 진짜 소크라테스의 말은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소크라테스가 과연 소크라테스일까 플라톤일까? 게다가 '향연' 은 이 복잡한 건넘건넘과 술자리 라는 이중의 장치로 인해 그 진의를 더욱 아리송하게 만들고 있다. 물론, 그래서 플라톤의 재치가 돋보이는 문장들도 많긴 하다. 취중진담일까 취중농담일까? 어쩔 수 없이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진다. 그래서 플라톤의 철학이 아직도 연구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가톤이 비극경연대회에서 우승한 것을 기념하여 지인들을 초대하여 향연을 베푼다. 그런데 참석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제의 과음으로 또 술을 먹는게 힘드니 재미난 주제에 대해 이야기 하기로 한다. 바로 에로스에 대한 예찬

파이드로스는 에로스 신이 가장 오래되고 가장 공경받아 마땅한 신이라 하고, 파우사니아스 는 천상의 에로스와 범속의 에로스로 구분하여 천상의 에로스를 예찬한다. 의사인 에릭시마코스는 건강에 빗대어 조화로움을 강조하고, 아리스토파네스는 희극작가라서 그런지 남녀추니를 등장시켜 원초적 본성에 대한 본능으로서의 에로스를 강조한다. 아가톤이 가장 아름답고 훌륭한 것으로서의 에로스를 극찬하자 소크라테스는바로 에로스에 아름다움이 결핍되어 있음을 아가톤에게 질문을 던지면서 수긍하게 만든다. 그리고 자신은 예찬은 할줄 모르고 오직 진실만을 말할 줄 아는 사람인지라 에로스에 대한 진실을 차근차근 풀어낸다. 여기서 디오티마의 사다리가 등장한다. 에로스 신에 대한 기원에서 시작하여 범속의 에로스보다 천상의 에로스를 높게 보고 본능의 에로스도 인정하지만 에로스의 아름다움이 진리추구 인 것으로 정리되는 대화의 연결은 술자리에서 나온 논증들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의 논리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가 말을 마쳤을 즈음 술취한 알키비아데스가 들어와서 애처로운 시비를 건다. 아테네 최고의 미남이자 아테네 최고의 배신자 알키비아데스에 대한 사전지식이 있는 상태에서 [향연]을 읽으면 플라톤의 풍자를 더욱 웃으며 읽게 된다. 술주정인듯 질투어린 시기인듯 알키비아데스의 넋두리가 끝나기무섭게 다른 취객들까지 들이닥쳐셔 향연은 그야말로 거나한 술판이 되고 만다. 앞서 이야기 했던 에로스의 진리는 어디로 갔나 싶지만, 마셔도마셔도 취하지 않고 끝까지 자리를 지킨 단 한사람, 소크라테스의 태도에서 플라톤은 에로스를 구현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고전은 정말 고전의 매력이 있어서인지, <소크라테스의 변명-크리톤-파이돈-향연> 으로 구성된 책을 다른 판본이긴 하지만 이 책으로 3번째 읽은 것인데, 그래도 재밌다. 참 신기하다. 읽었던 것이기에 아는 내용이 대부분이었지만, 새롭게 알게 되는 주석들이 많아서 더 좋았다.


개인적으로 소크라테스 철학의 책 구성을 <에우튀프론- 소크라테스의 변론-크리톤-파이돈> 과 <향연-메논-파이드로스> 로 하면 어떨까 싶다. 에우튀프론은 소크라테스가 재판정에서 기다리면서 에우튀프론과 '경건함' 에 대해 나눈 대화인데, 저술시기와 상관없이 배경시간이 연결되고, '탁월함' 에 대한 대화인 메논 과 '미와 사랑' 에 대한 대화인 파이드로스를 향연과 함께 읽은 후 <플라톤의 국가> 를 읽으면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 대화편들에 소크라테스가 등장하고 '국가' 에도 소크라테스가 등장하지만, '국가' 는 플라톤 철학의 결정체 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앞서 읽은 대화편들이 소크라테스에서 플라톤으로 넘어가는 것을 자연스럽게 보충해준다. 무엇보다 플라톤의 '국가' 는 공부해가며 읽어야 하는 책이다 보니 다른 대화편들을 읽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어차피 원전을 그대로 읽을 수 없기에 번역본을 읽어야 하는데, 그렇다면 원전번역본의 완성도는 본내용의 이해에 큰 영향을 끼치기 마련이다. 소설을 읽듯 매끄럽게 읽히는 번역과 친절하면서 충실한 주석들이 마음에 들었다. 저자의 다른 번역본도 출판사의 다른 고전 시리즈도 왠지 기대가 된다.

오랜만에 제대로 된 고전을 읽은 기분이 뿌듯하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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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로니카의 눈물
권지예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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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소설을 읽고 싶은 날이었다. 그래서 소설을 골라들었다.

'이상문학상, 동인문학상 수상작가 권지예 10년 만의 소설집' 이라는 띠지의 홍보문구에서, 아...상을 탄 작가구나... 아... 10년만에 이면 신인작가는 아니겠구나... 그런데 왜 이렇게 이름이 낯설까 싶었다.

소설을 좋아하지만 많이 읽는편이라고 하기엔 부족한 나는 아마도 이름이 널리 알려진 작가들의 작품 위주로 읽어왔나 보다. 솔직히 현실적으로 가장 편안하고 무난한 선택이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좋아하게 된 작가들은 알려지지 않은 작품들도 찾아 읽게 되곤 했다.

이 책은 6편의 중단편 작품이 실린 소설집인데 대부분의 단편집들이 그러하듯 문예지들에 발표됐던 작품들을 모은 것이다. 내가 문학전공도 아니고 문예지를 구독할 만큼 문학에 조예가 깊은 것도 아니니 이렇게 소설집으로 나오고 나서야 알게 된다. 그리고 다시 깨닫게 된다. 우리나라에 정말 글 잘쓰는 작가들이 많구나!

처음 들어본 작가였지만, 이름을 확실히 기억할 수 있을만큼 자기색깔도 뚜렷하고 글도 무난하게 잘 쓰는 작가였다. 1997년에 등단했다는데.... 아이쿠 이런 너무 오랫동안 모르고 있어서 괜시리 미안해진다.;;; 표지 그림 속 럭셔리해 보이는 저 여인은 누구일까... 일단, 베로니카는 아니었다. ㅎㅎ

첫번째 작품은 [베로니카의 눈물] 은 쿠바를 배경으로 한다.

한국인 작가인 모니카는 쿠바로 여행을 떠난다. 몇달 묵으면서 글을 쓰려고 아파트를 빌렸다. 그 아파트 관리인이 베로니카였다. 일흔이 넘은 쿠바할머니 베로니카는 쿠바와 쿠바인을 대표하는 성격들을 드러낸다. 가난하지만 행복한 하지만 가난해서 의기소침해지는... 불쑥불쑥 들이닥치는 베로니카와 글을 쓰기는 커녕 삼시세끼 먹는 것부터가 문제인 모니카의 좌충우돌 엮이는 시간들은 모녀인듯 모녀아닌 모녀같은 남남 사이다.

모니카! 슬픈 얼굴 하지마! 돈이 다가 아냐. 난 아침에 눈 뜨면 정말 행복해서 노래해. 우리도 사는 데 물론 스트레스 많이 받아. 어느 곳에서든 인생이 늘 행복한 건 아닐 거야. 모니카! 봐봐, 돈은 중요하지만 인생은 돈이 다가 아니잖아. 그럼 어찌 사는가가 중요해. 사랑이 제일 중요하지. 내 마음에는 사랑이 가득하거든. 가난하지만 행복하다구. 오오! 미 꼬라손! 미 아모르! 미 비다! (오오 내 심장, 내 사랑, 내 인생이여!) 그녀의 목소리와 눈빛에 물기가 돌았다. (p. 60)

모니카, 중요한 일이라고 너무 집착하고 애쓰지 마. 그런 건 인생에서 중요하지 않아. 인생은 그저 흐르는 거야. 그냥 힘을 빼고 흐름에 몸을 실어. 춤을 출 때처럼. 우린 그래서 모두 츰을 잘 추지. 여긴 쿠바야!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어. 그냥 파도에, 리듬에, 인생의 시간에 몸을 실어. 긴 걸레로 거실을 닦던 베로니키가 갑자기 걸레를 팽개치고 신나는 노래를 부르며 살집을 출렁대며 춤을 추었다. (p. 77)

 

하지만 쿠바도 사람 사는 곳이었고, 쉽게 맺어진 관계는 쉽게 비틀어졌으며,가난에 익숙한 사람과 가난이 불편한 사람은 진심이 닿지 않았다.

그동안 여행중에 5성급 호텔에 머문 적도 있었는데 뷔페 식당에 그런 과일들이 나왔었다. 그런데 파인애플은 너무 작고 시었고, 멜론은 푹 무른 늙은 오이처럼 전혀 달지 않았다. 열대과일에 대한 나의 기대는 그때부터 깨졌다. 그런데 이젠 오렌지마저도.

"아, 오렌지 오랜만에 먹으니 너무 맛있고 시원하다. 아 행복해! 정말 맛있지? 모니카, 응? 쿠바 과일이 최고라니까."

그녀는 세상을 모르는 우물 안 개구리. 지금 그녀가 맛나게 먹는 초록 오렌지가 그녀에겐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오렌지다. 나는 세상의 많은 과일을 맛보았고, 비교할 수 있는 혀를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이런 혀를 장착하고 현재 이 나라에 살고 있는 나는 불행하다. (p. 67)

 

쿠바에서의 시간들은 무엇이었을까? 2년이 지난 후 서재를 정리하며 쿠바에서의 시간을 베로니카의 눈물을 떠올리는 모니카는 마음이 불편하다. 그동안 쿠바에 대해서는 어떤 이야기도 쓰지 못했다. 그런데 무심코 펼친 책 속에서 모니카는 발견한다. 베로니카의 눈물이 무엉이었는지...

[낭만적 삶은 박물관에나] 에서는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 이번엔 파리다.

누구나 파리를 낭만의 도시로 생각해버린다. 파리는 낭만의 상징이고, 또 파리의 상징은 에펠탑이니까. 쯧! 에펠탑 밑에만 있으면 무조건 낭만적이 되는 줄 아나. 그런데 상징이란 무서운 거다. 에펠탑이 눈에 보임으로써 비로소 파리에 있는 자신의 존재감을 느끼게 되니 말이다. 그것도 왠 뜬금없는 낭만적 존재감? (p. 112)

재이는 이런저런 일로 근근이 생활을 꾸려야 한다. 모든 것이 생존모드다. 8년전 파리에서 시작은 그렇지 않았는데...

지금은 키스하는 연인들 사진을 찍는 중이다. 파리에서 키스를 부를 만한 장소가 어디 있을까 검색하다가 '낭만적 삶의 박물관' 이라는 곳을 알게 된다.

낭만적 삶의 박물관이라니. 도대체 낭만의 삶이란 뭐야? 그 박물관에는 낭만적 삶을 죄다 수집해서 진열하고 있는 걸까.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낭만주의 화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데, 세기의 낭만적 커플이었던 작곡가 쇼팽과 작가 조르주 상드의 유품들을 모아놓은 곳으로 더 유명했다. (p. 120)

쇼팽과 조르주 상드의 손을 본떠 조각한 작품을 보니 처음 파리에 왔을 때 그 조각작품처럼 기다랗고 하얀 손을 가졌던 남자가 생각난다. 그리고 키스의 사처도. 낭만의 도시 파리에서 낭만을 파괴당했던 기억.

재이는 아파트를 나와 강변도로를 걸어 미라보 다리로 향했다. 가을이 깊어가는지 바닥에 떨어져 뒤구는 플라타너스 낙엽이 꼭 썩은 손처럼 보였다. 우울하게 안개비가 내리는 전형적인 파리 날씨다. 재이는 진봉에게 이렇게 물어볼 작정이다. 아직도 로맨티시스트야? (p. 141)

낭만은 무슨 얼어죽을. 낭만이 밥먹여주냐 하며 재이는 살았지만, 재이의 이야기를 읽으며 '낭만적 삶의 박물관' 에 가보고 싶어지는 걸 보면, 파리에 낭만이 있기는 있는 것 같기도. ㅎㅎ

[파라다이스 빔을 만나는 시간] 은 한 여자의 독백이다. 대학때 만나 선배를 형이라 부르던 그대로 부부가 되어 늙어서도 형이라 부르는 부부의 모습이 생경하면서도 신선했다. 남편이 암으로 세상을 뜨고 아내는 함께 가려했던 쿠바에 혼자 여행을 떠난다. 남편이 남긴 유품을 누군가에게 주기 위해.

그 겨울은 어찌나 눈도 자주 오고 추웠던지. 봄엔 꽃무늬 조각보, 여름엔 초록 조각보 였던 땅의 풍경이 군데군데 눈 녹아 더럽고 때 탄 무명 조각보처럼 보이는 게 안타까웠어요. (p. 147)

크리스마스에도 눈이 내리지 않는 겨울이 없는 곳, 쿠바에서 수현이 알게 된 진실은 한국땅에서 봤던 더럽고 때 탄 무명 조각보 같은 것이었다.

파라다이스 빔이라고요? 내게 그 말을 가르쳐준 건 당신이었어요. 마시란 해변의 낙조를 바라보며 형이 묻곤 했잖아요. 좋아? 응, 좋아! 내가 대답했고, 얼마만큼? 천국처럼? 형이 또 물었죠. 내가 금방 대답을 못하면 당신이 말했죠. 생에서 만나는 이런 빛나는 순간을 파라다이스 빔 이라고 한대. 수현아.(p.182)

쿠바에서 돌아온 후 강민수 없는 한수현은 잘 지내고 있다. 지금은.

혼자라도 행복하다 가 아니라 혼자라서 더 행복하다고 깨닫고 있다. 지금은.

그리고 이제 뒤늦게라고 유품을 전달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파라다이스 빔을 알려주었던 그 사람에게.

[플로리다 프로젝트] 는 대를 잇는 모녀의 불행을 다루면서도 왠지 그렇게 불행하지만은 않은 느낌적인 느낌을 준다.

돈 많은 일해과 비교당하는 가난한 모녀의 신세. 여행을 하고 싶지만 돈이 없어 눈치만 보며 주눅 든 엄마를 볼 때마다 조롱당하는 기분. 가난이 익숙해서 두렵지는 않지만... 그건 냄새나는 낡은 신발 같은 것. 어쩔 수 없이 신고 다니긴 하지만 당장이라도 벗어버리고 쾌적하고 디자인도 예쁜 새 신발을 신고 싶은 욕망. 서은은 자신 안에서 자라는 욕망의 싹을 냉정하게 자를 수 없었다. 오늘도 새벽이 되도록 노트북 앞에 앉아서 커서만 바라보았다. (p. 218)

친구의 부탁으로 우연히 가게된 미국세미나. 미국에 간 김에 하기로 한 여행. 서연(딸) 과 현주(엄마) 는 서로 다른 생각으로 여행지에서 서걱거리지만 곧 알게 된다. 같은 상처를 갖게 됐다는 것. 서연의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진실을 알게 된 현주의 선택이 어두운 현실을 밝혀주는 것인지 현실성 없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나도 응원하고 싶다. 서연은 미투를 하게 될런지.

[카이로스의 머리카락] 에서 말하는 카이로스는 아마도 기회나 특별한 시간을 의미하는 고대그리스의 신을 말하는 듯 하다. 기회의 머리카락이라... 기회를 움켜 잡았다는 것일까 잡지 못했다는 것일까.

로크룸섬의 누드비치를 지날 때였다. 갯바위에 누워 선탠을 하거나 돌아다니는 벌거숭이들이 언뜻 군집 원숭이들처럼 보였다. 일행들은 누드 남녀들을 찍으려고 모두 뱃전으로 몰려 난리법석을 떨었다. 찍은 사진들을 서로 비교해보며 노골적으로 품평을 하는 나이 든 남녀들의 모습이야말로 노골적으로 옷을 입은 원숭이들처럼 보였다. (p. 240)

결혼25주년을 기념하며 12박13일의 발칸 9개국 여행이라는 패키지 여행을 간 부부는 함께 여행간 사람들의 면면 들을 통해 여행의 피곤함과 여행의 신선함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그중에서도 부부끼리 온 3커플의 관계는 비슷한 연배에서 나눌법한 대화들로 자신들이 어떤 기회를 잡아오며 살았는지 되뇌이게 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내가 좋았던 부분은 이 커플이 사는 법이었다.

'따로 또 같이' 이것이 그들 부부의 공존 스타일이다. 돈독하게 우정을 나누는 오랜 친구처럼, 신뢰를 쌓은 사업 동반자처럼, 애증과 연민이 공존하는 모자처럼 그들의 삶은 공동운명체로서 그럭저럭 굴러가는 듯 했다. 그 거리감이 깨질때, 오히려 더 가까워질수록 문제가 생긴다. 여행이 위험한 건 그런 이유일 것이다. (p. 265)

그래서 여행은 아무나하고 같이 가면 안된다. ㅎㅎ

[내가 누구인지 묻지 마] 은 이 소설집에서 가장 어울리지 않는 작품이었다. 앞선 작품들은 다 여행과 관련된 것이었는데, 장소도 다 외국이었는데, 이 작품만 그렇지 않아서 개인적으로 다른 소설집을 낼때 묶었어야 더 좋지 않았을까 싶었다. 굳이 인생을 여행으로 비유하자면 못 엮을 것도 없겠지만 그래도 이 작품은 영 어울리지 않았다.

한 번도 실패해보지 않은 인생에서, 그는 실패에서 일어서는 방법을 배울 기회가 없었다. 희망은 헛되어 보이고, 그건 차라리 고문이었다. 불안과 공포가 엄습했다. (p. 293)

한번도 실패해보지 않은 인생이 어디 있겠나 싶으면서도 그런 인생들이 있다. 그런 인생들은 단 한번의 실패에 바로 무너져 내린다. 그들에게 그런 인생은 여행같은 것이었을까? 마음먹으면 떠날수 있는?

소설을 읽다보면 작가의 말에서 편안하게 속을 드러내는 작가도 있고 넘치는 의욕을 내뿜는 작가도 있는 반면 작가의 말 쓰는 것을 몹시 싫어하는 작가들이 있다. 이 소설집의 저자는 후자 쪽이다.

작가가 제일 쓰기 싫은 글이 책 말미에 붙은 '작가의 말' 이다. 작품으로 말하면 되었지, 사족이란 생각 때문이다. 소설이라는 우주에서 한세상을 생생하게 살았던 이야기를 인간 세상으로 내보내며, 나는 책의 운명을 속으로만 잠깐 빌어줄 뿐이다. 책도 인생처럼 나름대로 생로병사를 겪을 거고, 비문을 새기는 건 어쩌면 독자들의 몫이기에. (p. 330)

하지만 나는 '작가들의 말' 을 읽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작가가 이 작품을 쓸때 어떤 생각으로 어떤 마음으로 어떤 계기로 쓰게 됐는지 알고 싶고 궁금하다. 내가 읽은 느낌과 작가의 마음이 같을 수 없다. 같아지려고 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더욱 온전히 느끼기 위해 나는 때로 작가의 말이 필요하다. 작품속에서 내가 읽어내지 못했던 작가의 생각을 콕 집어 이야기해주기를 원한다. 하지만 소설가들은 작가들은 너무 많은 것을 독자의 몫으로 넘기곤 한다.

표지속 여인은 누구였을까

쿠바의 베로니카도 모니카도 아니고, 파리의 재이도 아니고, 영종도의 수현도 아니고, 플로리다의 서연이나 현주도 아니고, 발칸반도의 이복순도 아니고, 원룸의 이름없는 여자도 아닌것 같은데, 저 여인은 누구란 말인가.

여하튼 저 여인은 여행을 떠나는 자가 아니라 돌아온 자다. 선글라스를 낀 뒷모습에서 저 여인이 정면에 마주하고 있는 것은 현실이다. 여행지가 아니라. 내가 느끼기엔 그렇다. 누군가는 이 책을 보고 여행이 떠나고 싶어졌다고 했지만, 나는 반대였다. 그렇게 나는다시돌아온, 꽤 괜찮은 작가를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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