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길들임의 역사 - 인류의 생존을 이끈 선택과 협력의 연대기
앨리스 로버트 지음, 김명주 옮김 / 푸른숲 / 2019년 12월
평점 :
절판


인류의 생존을 이끈 선택과 협력의 연대기

길들여진 종의 역사에 대해 더 많이 알수록 미래의 계획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Tamed" = 길들여진 이라는 원제에는 주어가 없다. 무엇이 무엇에 길들여졌다는 것일까?

'길들임' 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인간이 주체가 되고 인간 이외의 모든 것이 객체가 되는 식으로 생각했을 수 있다. 그것이 인간중심적 사고방식을 가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익숙한 방향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면 그 방향을 바꿔야 함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 책에서는 10종의 길들여진 것들의 기원을 추적한다. 개, 밀, 소, 옥수수, 감자, 닭, 쌀, 말, 사과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류 를 다룬다. 인간에게 가장 친숙한 가축과 식량의 기원을 쫒다보면 인간과 자연이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지 강하게 느껴진다. 어찌보면 당연한건데, 문제는 그 연결성이 새삼스럽다는데 있다고나 할까... 그렇게 인간이 자연을 너무 멀게 두고 생각하는 것이 부자연스러운 것이라고나 할까...

특정한 늑대를 가축화된 종으로 변형시킨 일에 의식적인 의도는 크게 작용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둘의 관계는 일종의 공생관계로 시작되었을 것이다. 이 장을 시작할 때 언급한 이야기처럼 상호 이익에 기반을 둔 느슨한 동반자 관계. 심지어 그 과정을 추동한 쪽은 늑대였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그 갯과 동물들이 어떤 교활한 마스터플랜을 가지고 있었다고 상상할 것까지는 없다. 단지 음식 찌꺼기를 찾기 위해 쓰레기 더미를 뒤질 뿐이었다해도 인간 곁을 어슬렁거리는 일이 많아지면서, 늑대들은 인간이 자신들을 처음에는 이웃으로, 그런 다음에는 동반자로 받아들이도록 무의식적으로 훈련시켰을 것이다. 두 종의 성공적인 동맹은 양측의 타고난 성향에 의존했을 것이다. 서로에게 의지가 있어야 했다. (p. 55)

개의 유전자의 99.5%가 회색늑대와 같다고 한다. 개는 늑대였다. 하지만 사람도 그러하듯 개들도 늑대들도 성격은 천차만별일 것이다. 개는 식용으로 가축이 된 동물이 아니다. 따라서 신석기 이전부터 맺어진 이 관계는 애초부터 공생관계에 가까웠다. 악어와 악어새 같은. 마지막 빙하기가 절정에 이르렀던 2만 1천년 전에서 1만 7천년전 사이, 유라시아 전역의 동물들이 스트레스 상황에 놓였을때, 모두가 춥고 배고팠을때, 수렵채집인의 야영지 가장자리에서 쉽게 구할수 있었던 먹이가 일부 늑대 무리에 변화를 가져왔을 수도, 혹독한 날씨 속에 늑대의 경계심이 수렵채집인들의 경보기로 사용됐을 수도 있다. 여하튼, 그렇게 가축이 된 늑대인 개는 점점 인간과 친해지고 그렇게 가축이 되지 않은 늑대는 점점 인간과 멀어졌다. 자연스럽게.

개와 인간의 관계시작부터 인간의 의도적 길들임이라는 프레임은 어긋나기 시작한다.

밀은 따지고 보면 풀이다. 별 볼 일 없는 풀. 누가 봐도 먹을거리로 보이지 않는다. 언뜻 보기에 야생풀의 작은 씨앗은 음식으로 그다지 매력이 없다. 견과류나 과일처럼 더 매력적인 다른 씨앗들이 많지 않나. 이들은 먹기 좋게 만들기 위해 힘들여 노력할 필요가 없는, 그 자체로 맛있는 음식들이다. 도대체 1만 2500만년 전 무슨 일이 일거나고 있었기에, 사람들이 풀처럼 별 볼 일 없고 매력없는 식물을 식량원으로 보게 되었을까? 무엇이 우리 조상들로 하여금 그런 식물에 의존하게 만들었을까? 게다가 하필 왜 그때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p. 125)

신석기혁명 하면 농업혁명 즉 인간이 곡물을 재배하고 따라서 안정적 식량공급으로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고 사유재산과 계급이 축적되기 시작한 원인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인류가 빵을 만들어먹던 시기는 신석기혁명이 일어나기 훨씬 전 부터 였다고 한다. 비록 재배는 하기 전이었지만, 들판에 자생적으로 자란 곡물류의 풀들에서 채집하고 가루로 빻아 빵을 만들어 먹었다고 한다. 어쩌다 구석기시대에 풀의 씨앗들이 주식이 되었을까? 어쩌다 채집해 먹던 것을 기르기 시작했을까?

1만3천년 전이 되자 북반구의 빙상이 후퇴하면서 고대 빙하의 파편들은 산맥의 높은 곳에만 남았다. 기후는 점점 온화해져 갔다. 식물에게 유리해진 조건은 단지 따뜻한 기온과 증가한 강우량만이 아니었다. 대기에도 중요한 변화가 생겼다. 1만5천년~1만2천년 전에 빙하기가 끝나면서,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농가가 상승했다. 이렇게 되면 많은 식물 유형에서 생산성이 50퍼센트 높아지고, 회복성이 좋은 풀조차 생산성이 15퍼센트 증가한다는 사실이 실험을 통해 밝혀졌다. 기후가 온난해지면서 식물이 번성하자 풀은 의존할 수 있는 영양소 공급원으로 떠올랐다. 그야말로 수확만 하면 되는 천혜의 밭이 눈앞에 펼쳐져 있는 셈이었다. 그렇게 보면 야생풀이 식량으로 선택된 것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늘 그 자리에 있고, 의존할 수 있고, 양도 많았으니 말이다. 그때 문제가 생겼다. 1천년 넘게 겨울이 계속된 것이다. 지구에 기온이 하락한 이 시기를 신드리아스기라고 부른다. 1만2900년 전~1만 1700만년 전 신드리아스기에 세계적 한파로 식량 자원에도 심각한 영향이 있었음이 틀임없다. 따라서 사람들이 식량 공급을 스스로 통제하려고 시도한 것은 절박함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신드리아스기의 한랭화로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작물재배로 눈을 돌렸지만, 앞서 1천년 동안 따뜻함과 풍요가 가져다준 변화를 누렸던 사람들은 한파로 생긴 부족을 더 크게 느꼈을 것이다. 마지막 빙하기의 정점을 지나 세계가 따뜻해졌을 때 인구가 불어나기 시작했지만, 이때는 아직 농업이 생기기 전이었다. 농업이 인구증가를 가져왔다기보다 인구증가가 어떤 식으로든 수렵채집에서 농업으로의 변화를 추동했을 가능성이 있다. 아마 인구 증가로 자원 압박이 생기고 있을 때 하필 신드리아스기가 온 것일지도 몰랐다. (p. 126~128)

농업이 먼저가 아니라 사회변화가 먼저였다는 것은 여러 유적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괴베클리 테페 유적은 1만2천년 전에 건설된 것으로 농업인이 아니라 수렵채집인들이 만든 제사유적지이다. 이 유적의 발견은 신석기 초기 인류 사회 발달에 관한 이론에 균열을 일으켰다. 또한 신석기는 한 곳이 아니라 멀리 떨어진 곳들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었다. 이것은 자연과 기후변화가 아니고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인간이 의도적으로 농업을 시작하고 농업을 통해 곡식을 먹고 곡식이 쌓여 부가 축적되고 부를 바탕으로 한 종교와 계급이 생성된 것이 아닐 수 있다. 구석기에도 빵을 만들어 먹었고 기후변화는 채집에서 재배로 불가피한 전환을 유도했다. 인간이 재배를 시작한 것이 아니라 재배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에 재배를 한것이라는 차이는 생각보다 엄청나게 큰 차이다.

목축, 즉 동물 무리를 돌보는 일은 유목 및 수렵채집 생활 방힉과 농업게 기반한 정착 생활 방식 사이의 중간에 해당한다. 하지만 수렵채집에서 목축으로의 이행은 매우 신속했을지도 모른다. (p. 173)

중유럽의 신석기 유적에서 출토된 고대 소뼈들을 보면, 시간이 흐를수록 크기가 작아질 뿐 아니라 어린 소의 개체수가 증가한다. 이는 목축의 초점이 고기 생산으로 옮겨 왔음을 암시한다. (p. 179)

한 가축 품종이 멸종하면 그것이 가지고 있는 모든 '유전적 유산' 도 사라진다. (p. 186)

 

소는 우유부터 고기와 노동까지 활용도가 높은 가축이었다. 따라서 필요성에 따라 종을 인위적으로 인간이 원하는 쪽으로 바꾸고 통합해 왔다. 그렇게 야생의 소들은 멸종되어 갔다. 경제성 측면에서는 우수한 품질의 소만 가축으로 대량생산하는 것이 좋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은 굉장히 안일하고 근시안적인 접근이다. 다양성이 사라진 종들은 이들에게 저항력이 없는 바이러스과 병원균을 만났을때 순식간에 멸종당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단일화된 종을 주요 식품으로 의존하고 있는 인류는 엄청난 타격을 받게 될 것이다. 야생은 이기적 인간을 위해서라도 필요하다는 아이러니가 납득된다.

콜럼버스 이전의 아메리카가 한편으로는 천혜의 에덴동산이요, 또 한편 잠재력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유럽인의 영감이 필요한 혁신의 공백 상태였다고 보는 것은 옳지 않다. 아메리카 원주민 사회는 풍부하고 다양한 혁신의 역사를 보유하고 있었고, 아메리카 대륙은 완전히 독립적인 가축화 및 작물화 중심을 포함했다. 콜럼버스 이전까지, 아메리카 대륙의 사회 대부분은 규모가 크고, 도시화되어 있었으며, 이미 농업에 의존하고 있었다. (p. 203)

아메리카 대륙의 유럽화는 세계사적 축복일까? 세계사적 재앙일까? 그들의 멸종이 과연 인류사적 발전과정에서 어쩔 수 없는 것이었을까? 문화대 문화로 만나서 교류했다면 인디언의 지혜와 잉카/아즈텍 문명의 새로움은 서로에게 더 유익한 자극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작은 땅덩어리의 유럽이 커다란 남북아메리카 대륙을 삼켜버린것을 너무나 당연시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은 적어도 서양인이 아닌 우리는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중세식물학자들은 새로운 식물을 만날 때마다 고대 그리스인, 특히 플리니우스와 그와 동시대인인 디오스코리데스에게 도움을 구했다. 그들이라면 분명 모든 것을 기술해두었을 테니까. 새롭고 이국적인 모든 것을 '터키의 것'으로 간주하고 이름 붙이는 경향 때문에 진짜 기원이 가려진 것은 비단 옥수수만이 아니다. 그러한 경향은 지금까지도 남아 있다. 아메리카가 고향인 새 멜레아그리스갈로프보를 우리는 아직도 '터키(칠면조)'라고 부르지 않는가. (p. 206)

중세인들의 아집은 참 여러면에서 고집스럽다. 그들이 몰랐던 신대륙은 인도여야 했고, 그들이 몰랐던 식물은 고대의 책에 나와있는 그 무엇이어야 했다. 사실 '중세' 라는 말 자체도 이상한 단어라고 한다. 유럽에만 통용되는 단어다. 대부분의 역사는 왕조로 구분되고 왕조 이후는 근대와 현대 정도로 구분한다. 어떤 시대 가 아닌 ~세 라는 표현은 유럽만을 위한 표현이다. 나라로 구분되지도 못하고 왕조로 구분되지도 못하는 혼란과 혼잡의 유럽 역사만을 위한 단어다. 세계사의 프레임은 여러모로 변해야 한다.

우리는 과거의 특정 시기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무언가를 기대해서는 안 되고, 우리 조상들이 얼마나 정교한 문화를 가졌는지에 대해서도 과소평가하면 안 된다. 장소에 따라서는 유목 생활을 유지하는 편이 합리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환경조건과 자원을 감안할 때 한 곳에 정착하는 것이 완벽한 방법인 장소들도 있었다. 인간의 행동은 지역 생태에 맞추어 변하기 마련이다. (p. 243)

종의 발달이건 인류의 발달이건 문명의 발달이건 우리는 일직선으로 편리하게 정리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모든 발달은 생각보다 많이 동시다발적이었고 공존해오면 변화했다. A에서 B로 B다음에 C로 발달하는 것이 아니라 A B C 가 동시에 있었고 서로 영향을 주다가 a b 로 변화하면서 결국 a' 만 살아남는 식이다. 획일적 프레임은 모든 면에서 버려야 할 때가 많다.

환경은 한 동식물이 사는 물리적 환경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생물학적 환경도 있는데, 그 생물과 상호작용 할 가능성이 있는 다른 모든 생물학적 실체가 여기 포함된다. 바이러스, 세균, 균류, 다른 동식물 등. 그런 실체들의 대다수가 위협을 가한다. 그리고 그런 잠재걱 적들은 항상 더 나은 공격방법, 위협에 처함 유기체가 진화시킨 방어책을 피할 더 나은 방법을 진화시키고 있다. 이른바 진화적 군비경쟁으로, 방어자가 공격자를 따라잡지 못하면 어떻게 될지는 불 보듯 훤하다. (p. 277)

산업화된 농업으로 품종의 범위를 좁혀 거대한 지역을 단일 재배로 채우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아일랜드 감자 대기근' 이라는 역사적 경험이 증명한다. 이렇게 좁혀지고 선택되어진 육종으로 탄생되는 유기체들은 태생적으로 허약하기때문에 더욱 위험하다고 저자는 경고한다. "육종가는 변이를 새로 창조하지 않는다' 라는 저자의 문장이, 진화에서 이루어지는 창조를 인간이 하고 있는 것같은 착각을 깨트리기엔 아직 약한 걸까?

어떤 면에서 보면, 유전자 변형을 둘러싼 우려와 잇따라 가해지는 놀랍도록 엄격한 규제들은 문제를 악화시킬 뿐이다. 규제 기관의 요구에 맞추려면 큰 미용이 든다는 점에서 규제는 사실상 금지나 마찬가지다. 이렇게 되면 오직 덩치 큰 다국적기업들만이 유전자 변형에 투자할 수 있다. 그 결과 혁신의 진정한 창구가 막혀 소수의 큰 기업들만 바라볼 수밖에 없다. (p. 313)

닭은 완전유전체 서열이 분석된 최초의 가축동물이라고 한다. 이 책의 장점은 최신책이라는 것인데, 기원을 밝히는 문제에 있어서 과학의 발달을 바탕으로 한 DNA분석은 최근 아주 유용한 방법이고, 이 책에 나오는 대부분의 전개는 이 방법을 통한 결과들로 이루어진다. 닭의 유전자 분석이야기를 하며 나오는 유전자변형 문제는 생각보다 복잡하다. 단순히 반대냐 찬성이냐로 가를 것이 아니다. 여하튼,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 에 대한 오래된 질문에 대한 답은 나왔다. 알이 먼저다.

서아시아의 밀과 동아시아의 쌀, 그리고 아마도 중앙아메리카의 옥수수까지, 모두 신드리아스기를 계기로 인류와 손을 잡고 수백 년 또는 수천 년 동안 이어지는 동맹을 맺었으리라 생각해 볼 수 있다. 의존할 수 있는 자원인 곡류는 식생활에서 더 중요해졌고, 결국에는 주곡이 되었다. 경작은 그 다음이었을 것이다. 이는 우리에게 익숙한 역사관과는 매우 다른 관점이다. 독창성과 창의력에 힘입은 승리의 전진이 아니라, 어쩌다보니 그렇게 된 일. 어려운 시기에 처해 어쩔 수 없이 생활 방식을 바꾸어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고 순응한 사람들. 아시아의 정반대쪽에서 동시에 곡류가 주곡이 되고 그런 다음 경작이 이뤄진 상황도, 선택이 아니라 기후 악화가 가져온 필연으로 본다면 충분히 납득이 된다. (p. 361)

쌀의 기원을 찾아 올라가다보니 결국 밀과 옥수수와 다 만나게 된다. 신석기혁명이 혁명이 아니게 된달까. 곡류 뿐만이 아니라 토기도 훨씬 이전 시기의 유적지에 발굴되는 것을 보면 농업이 복잡한 사회의 발달을 추동했다는 오래된 개념은 자꾸 뒤집히게 된다. 그리고 좀더 영양높은 쌀을 만들어내는 시도들은 유전자변형의 논란과 만나게 되고, 석기시대 변종과 변이와 잡종을 통한 주곡의 변화를 보며 유전자변형과의 차이에 대해 혼란을 겪게 된다. 그렇다고 저자가 유전자변형 찬성론자라는 것은 아니다. 찬성이냐 반대냐의 문제가 아니다. 제대로 된 이해가 먼저다. 저자는 그 이해의 프레임을 넓혀주고 있었다.

기원전 4000년 대 말로 접어들면서 스텝 목축인들의 이동 범위는 점점 더 넓어지고 있었다. 기원전 4000년대의 첫 몇 백년 동안 좋았던 기후가 다시 악화되었던 것이다. 큰 동물 무리에게 풀을 충분히 뜯게 하려면 더 광범위한 목초지가 필요했다. 이는 새로운 생활방식, 새로운 문화의 출현을 촉진한 것으로 보인다. 목축인들은 반정착생활로는 더 이상 삶을 지탱할 수 없었기에 가축 무리와 함께 이동할 필요가 있었다. (p. 413)

선사시대에 스텝 유목민의 확산은 동쪽과 서쪽에 존재했던 사회들에 서로 다른 영향을 끼친 듯하다. 중국에서는 유목민들이 정착 사회와 융합한 것으로 보이지만, 서쪽에서 그들은 다른 유목 목축인들이 점유한 땅을 침입했다. 그리고 마치 도미노효과처럼 이들을 점점 더 서쪽으로 밀어냈다. (p. 415)

 

말의 기원을 쫒아 올라가면 유목민들과의 접접은 필연적이다. 서양역사의 주축인 로마사에서 유목민들의 등장과 퇴장은 굉장히 강렬한 흔적들을 남기는데, 알수록 그들의 문화는 정말 궁금해진다. 말또한 야생말이 멸종되다 시피 했는데, 중국에서 야생말 재도입 시도를 성공적으로 진행중이라는 내용을 읽으며 중국이 정말 다양한 분야에서 엄청나게 발전중인 것이 새삼 또 느껴지기도 했다. 중국은 미래준비를 경제와 산업으로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종은 기원 장소에서 가까운 곳에서 가장 높은 다양성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 돌연변이를 축적한 시간이 가장 길기 때문이다. 따라서 알이 굵은 열매가 열리는 사과나무들은 적어도 3백만년 동안 텐산산맥의 숲에서 자라고 진화해온듯 했다. (p. 444)

역사상 가장 유명한 사과인 에덴동산의 사과는 전혀 사과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신화적인 무언가를 부르는 말치고는 이상해서 일종의 서사 장치로 보인다. 원본에도 사과라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에덴동산에서 자라는 금단의 열매, 뱀이 여자에게 먹어보라고 꼬드긴 것은 '답부아tappuah'라는 과일이다. 이 헤브루어는 사과를 뜻하지 않으며, 이 이야기의 탄생지이 팔레스타인의 뜨겁고 건조한 기후에서 자라는 사과 품종의 개발은 최근의 일이다. (p. 450)

 

중국의 텐산산맥에 있는 사과나무 숲은 사과종자의 보고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종들이 그러한 보고를 갖지 못하고 멸종의 위기를 맞았으니 이 지역이 더욱 중요하게 보호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절로 생긴다. 재배종 사과도 재배종으로 멈추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재배종들은 근처의 야생종들과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고 상당한 유전자 이동이 가능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즉, "사과를 길들이는 행위가 길들여지지 않은 사과종의 진화에도 영향을 미친 것이다" 라는 사실은 우리가 길들였다고 생각하는 종들이 실은 얼마나 달라질수 있는지에 대해 인간이 너무 간과하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우고 있다.

그리고 성경에 나오지 않는 사과, 성경이 쓰여지던 당시에 없었던 사과,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는 신화에 대해서 종교적 맹목성에 대해서 또한번 답답함을 느낀다. 사과 뿐만이 아니라 '길가메시 서사시' 를 읽으면 더 많은 오류들이 드러나는데... 읽지를 않는다. 사람들은...

아프리카는 전 세계 유전적 다양성의 약 85퍼센트를 보유한, 유전적 다양성이 가장 높은 곳이었으니, 이는 이 대륙이 우리 종의 고향이라는 좋은 증거였다. (p. 477)

오래된 유럽 토착민인 네안데르탈인과의 교잡 시점은 5만년전~6만5천년 전 으로 추정된다. 현생인류가 아프리카 밖으로 확산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시점이다. 비아프리카인들은 평균 2퍼센트 정도의 네안데르탈인 DNA를 가지고 있는 반면, 아프리카 계통 사람들의 유전체에는 네안데르탈인 DNA가 거의, 혹은 아예 없다. (p. 482)

하지만 우리의 현생인류 조상들과 엮인 것은 네안데르탈인만이 아니었다. (p. 483)

변종 유전자의 도입과 확산은 새로운 돌연변이가 발생하거나 집단 내에 존재하던 돌연변이가 갑자기 유용해지면서 시작될 수 있지만, 유연관계가 가까운 다른 집단과의 이종교배를 통해서도 시작될 수 있다. 사과에서부터 인간까지, 우리 모두는 유전체에 잡종 기원의 증거를 지니고 있다. (p. 498)

종 길들이기는 서로 다른 많은 장소에서 여러 차례 일어났다. 그런 장소 가운데 상당수가 산악 지대였다. 산악 지대는 다양성이 풍부한 경향이 있는데, 고도에 따라 물리적 조건이 달라지는 탓이다. 하지만 작물과 가축이 되기 위해서는 타이밍이 맞아야 했을 뿐 아니라 인간과 장단이 맞아야 했다. 인간이 생활 방식을 바꾸려는 시점에 인간의 개입에 긍정적으로 반응한 종, 그것이야말로 이 결정적 결속이 맺어지게 만든 승리의 조합이었다. 사실 의식적인 의사 결정이 모종의 역할을 한 경우는 별로 없었다. (p. 502)

우리가 '인위선택'이라고 불러온 행위는 실은 인간이 매개하는 자연선택에 지나지 않는다. (p. 503)

 

인류의 기원은 사실 자주 바뀌었다. 새로운 화석이 새로운 뼈가 나올 때마다 새로운 종들이 늘어나고, 새로운 인류의 조상들이 생길수록 관계도는 복잡해져 갔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자연도 그렇고 인간도 그렇고 다양성의 인정 이다. 다양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는데, 그 다양성을 없애가는 현대는 위험할 수 밖에 없지 않을지...

역사는 우리의 폭력성이 지난 세기에 비해, 그리고 그 전의 몇 백년에 비해 평균적으로 줄었음을 보여준다. 아직은 충분하지 않지만, 우리는 분명 평화롭게 함께 사는 방법을 터득해가는 중이다. (p. 517)

얼굴 모양의 '여성화'는 홀로세까지 계속되었다. 테스토스테론의 수치의 변화가 얼굴 모양의 이런 변화를 매개했을 가능성이 있는데, 만일 그렇다면 양성 모두에서 나타나는 더 가냘프고 여성적인 두개골은 인간 집단이 커짐에 따라 사회적 관용이 자연선택되면서 생긴 부산물일 수 있다. (p. 520)

공격성이 적은 남성들이 번식에 성공할 확률이 더 높다면, 그 형질이 집단 내로 빠르게 퍼질 것이다. 인간 사회가 진화함에 따라, 그리고 우리 조상들이 더 조밀하게 살게 되고 나아가 생존을 위해 광범위한 관계망에 의존하기 시작했을 때, 우리는-의도하지 않게-우리 자신을 길들였을 것이다. (p. 521)

인간의 '자기 길들임'을 둘러싼 논의는 정치적·도덕적 해석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되었다. 생물학적 개념은 언제든 이런 식으로 오용될 수 있지만, 사실 진화에 도덕적 차원은 존재하지 않는다. 일어난 일이 일어난 것은, 그저 자연선택이 그 시점에 그 환경에서 기능을 잘 수행하는 적응들을 선호하고 나머지를 추려냈기 때문이다. (p. 523)

우리는 종을 한 덩어리로 불변하는 존재로 보는 덫에 빠지기 쉽다. 인간이 살아가는 짧은 시간의 틀에서는 한 종에서 다른 종으로의 변화를 보는 것이 쉽지 않다는 사실이 그런 생각을 강화한다. 하지만 종은 물론 불변의 존재가 아니다. 이는 진화의 교훈이다. 우리는 그 사실을 화석에서, 살아 있는 생물들의 구조에서, 그리고 DNA에서도 본다. 종은 항상 변한다. 한 개체군 내의 특정 유전자형의 빈도는 새로운 돌연변이 없이도, 유전자 이동과 자연선택을 통해, 그리고 다른 종의 DNA가 도입됨으로써 변한다. 이 춤을 만들어내는 것은 종의 구성원들과 그들을 둘러싼 환경 사이의 상호작용인데, 어떤 환경에서든 그 상황에 더 나은 변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환경이란, 물리적 환경뿐 아니라 한 유기체가 상호작용을 하는 다른 모든 종을 포함하는 생물학적 환경도 포함한다. (p. 530~532)

 

역사서를 읽다보면 깜짝깜짝 놀랄때가 많은데 바로 잔혹함과 잔인함과 폭력성 때문이다. 과거의 일상적 폭력은 점차 줄어들어 왔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서 호모사피엔스로 오면서 두개골 모양이 우락부락에서 부드럽게 변했듯이, 인간의 외형적 변화와 함께 인간의 내형적 형질도 변화되어 왔다. 즉, 인간도 변하고 있다. 우리는 불변의 존재가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자연을 너무 함부로 대하고 있다. 자연을 마음대로 변화시켜도 우리는 불변한다는 듯이. 하지만 그렇게 변한 자연에 의해 인간은 변하게 될 것이다. 어떻게 변하게 될지 지금 상황에서는 무섭지 않은가? 맞은 놈은 발 뻗고 자도 때린 놈은 발 뻗고 못 자는 법인데... 인간이 자연을 얼마나 후려치고 있는지 원...

과학기술이 민간기업체보다는 대학에서 연구되고 개발되는 것이 근본적으로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대학은 기득권이 영향을 미칠 여지가 훨씬 적다. 대학의 과학자들 대부분은 인류의 공공선이라는 목표와 신념으로 연구한다. 그들은 자기비판적이고, 스스로를 내세우지 않으며, 자금 제공자가 아무리 부추겨도 과장된 주장을 거부한다. 수익에 집중하는 관리자들로서는 불만이겠지만, 이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태도다. 공공 기금으로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일해서는 안 된다. 호기심이 이끄는 대로 따를 자유, 공공선을 위해 일할 기회를 찾을 수 있는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 (p. 534)

저자의 의견에 완전 공감한다. 노벨상 시즌이 될 때마다 우리나라 과학계를 폄하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존을 위해서 과학자들에게 연구의 기반을 마련해 주어야 할때다. DNA 분석과 유전공학은 이미 되돌릴 수 없는 대세가 되었기에, 이를 제대로 활용하려면 기업이 손을 뻗치기 전에 공공연구의 토대를 준비해야 한다. 우리는 이미 많은 종을 멸종시켰다. 그리고 앞으로도 멸종은 늘어날 것이다. 과연 그 사이에서 인류는 잘 먹고 잘 살 것 같은가? 생물 다양성은 반드시 존중되어야 한다. 야생을 살리는 것은 단순히 자연보호 차원이 아니라 인류 생존의 문제다.

어떤 생태계든, 어떤 종이든, '미래대비' 는 다양성과 그 안에 포함된 변이에서 나온다. 종의 역사, 지구 생명의 역사를 보면 알 수 있다. 우리가 생물 종에 너무 많은 제약을 가할 경우, 물리적 환경 변화뿐 아니라 이례적인 병원체의 공격 등, 미래에 변화가 닥쳤을 때 종이 적응할 수 있는 잠재력은 심각하게 제한된다. (p. 542)

우리는 진화와 생존이라는 같은 게임을 하고 있다. 우리의 운명은 다른 종들의 운명과 불가분의 관계로 묶여 있다. (p. 543)

우리는 우리와 협력하게 된 종들만을 돌봐서는 안 된다. 어느 때보다 더, 우리는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을 가꿀 필요가 있다. 자연의 나머지 부분에서 우리를 분리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그런 상호관계를 받아들이는 방법, 야생과 싸우는 대신 더불어 번성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야말로 이번 세기의 과제가 아닐까? (p. 547)

 

<총균쇠>,<사피엔스>에 이어 인류 역사에 새바람을 일으킬 책이라는 홍보문구에 과한 기대를 걸면 곤란하다. 내게 총균쇠 는 문명의 발달에서 상호연관성을 깨닫게 하고 지리적 중요성을 알게 했고, 사피엔스는 농업혁명이 과연 인간에게 유익한지 되물으며 인류의 발달이 얼마나 많은 파괴를 바탕으로 한 것인지 반성하게 했다. 그리고 이 책은 과학적 DNA분석 기법을 통해 그 모든 내용을 증명하면서 우리가 길들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도 자연의 일부라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새삼 각인시켜 주고 있었다. 총균쇠 나 사피엔스 만큼 가독성이 좋다고 할 순 없었지만, 10가지 종을 다루면서 그 이상의 내용을 전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우리의 미래를 준비함에 있어 중점을 두어야 할 자세가 무엇인지 알려주고 있는 것도 훌륭했다. 다만, 10가지 종을 넘어 좀더 포괄적인 문명사 전개를 해주었으면 싶은 아쉬움은 조금 있었다. 그래서 다른 종 혹은 좀더 폭넓게 다룬 후속편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가져본다. 여하튼, 여러모로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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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채우는 그림 인문학
유혜선 지음 / 피톤치드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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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막막할 때 그림을 보다

인문학적으로 사고하고 예술적으로 상상하라

 

 

저자는 자기계발분야 베테랑 강사다. 대중강연을 많이 하는 강사들은 자기만의 컨텐츠 개발을 위해 다양한 자료수집을 하는 것으로 아는데, 저자는 그림에서 많은 영감을 얻는 사람인것 같다. 저자는 자신이 만났던 사람들과 자신의 사연을 바탕으로 그림과 엮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한가지 이야기당 한가지 그림을 보여주는 식인데,

신뢰하지 못할 후배이야기를 하며 제임스 엔소르의 <가면에 둘러싸인 자화상> 을

보부아르와 '블루스타킹' 이라 불렸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하며 에두아르 마네의 <올랭피아> 를

삶에 열정적인 여성변호사 를 보며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의 <책 읽는 여자>를

컬러리스트로 활동하는 지인을 보며 산드로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을

자신이 빠져들었던 니체를 이야기하며 에드바르트 뭉크의 <프리드리히 니체>를

학교내 청소노동자의 일화를 이야기하며 파울 클레의 <두려움의 엄습III>을

성공한 CEO를 보며 알브레히트 뒤러의 <모피코트를 입은 자화상>을

명품과 품위 이야기를 하며 헨리 베이컨의 <출발>을

대중강연자로서의 고충을 이야기하며 에드바르트 뭉크의 <사춘기>를

평온하게 살던 부잣집 마나님에서 젊은 남자에게 끌리는 방황을 격는 여성이야기를 하며 자크 루이 다비드의 <남성 나체>를

강의 노동자로서의 자신의 일상을 이야기하며 앤서니 프레드릭 센디스의 <메데이아>를

연애지상주의자였던 지인의 이야기를 하며 카미유 클로델의 <중년>을

행복한 노부부를 보며 구스타브 카유보트의 <오르막길>을

방탕한 재벌3세 이야기를 하며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교황 이노센트 10세의 초상>을

성공했지만 외로운 싱글 여성과 평온하지만 고단한 주부의 이야기를 하며 빈센트 반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을

나쁜남자 이야기를 하며 폴 고갱의 <영혼이 지켜본다>를

불행한 가정생활 속 여성을 이야기하며 페르낭 크노프의 <내 마음의 문을 잠그다> 와 아메데오 모딜리아니의 <부채를 든 여인을>을

승진에서 누락한 여성이야기를 하며 에드워드 콜리 번 존스의 <심연>을

은퇴후 가족과 불화를 겪었던 남성의 일화를 이야기하며 일리아 레핀의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를

무용을 배웠던 어린시절을 이야기하며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시골무도회>를

취준생이지만 삶을 즐기고 있는 젊은이 이야기를 하며 폴 고갱의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를

래퍼가 된 아들과 공감을 위해 노력하는 엄마의 이야기를 하며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각자의 일로 바쁜 부부 이야기를 하며 구스타프 쿠르베의 <돌 깨는 사람들>을

가족을 위해 희생했던 여성의 이야기를 하며 줄 바스티엥 르파주의 <건초 만드는 사람들>을

술을 마시면 성격이 활달해지는 사람이야기를 하며 프란스 할스의 <유쾌한 술꾼>을

나이든 엄마 이야기를 하며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와르의 <어머니의 초상>을

아버지에 대한 후회어린 기억을 이야기하며 폴 세잔의 <화가의 아버지>를

악몽을 꾸었던 이야기를 하며 헨리 퓨젤리의 <악몽>을

성공한 줄 알았으나 그렇지 못했던 친구의 이야기를 하며 에드바르트 뭉크의 <뱀파이어>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한스 홀바인의 <대사들>을

수직적 삶과 수평적 죽음을 이야기하며 피트 몬드리안의 <빨강, 파랑, 노랑의 구성>을

동창생들과의 수다속에 등장한 구스타프 클림트의 <다나에>를

좋아하는 블루색에 대한 이야기 속에 바실리 칸딘스키의 <스타이 블루>를

색채심리전문가 의 행복이야기를 하며 앙리 마티스의 <삶의 기쁨>을

괴짜 철학자 지인 이야기를 하며 페테르 파울 루벤스의 <바쿠스 축제>를

가든파티에서 건배 일화를 이야기하며 디에고 발라스케스의 <술꾼들, 바쿠스의 축제>를

현대인의 삶에 대한 저자의 아쉬운 마음 속에 프랑수아 부셰의 <퐁파두르 부인의 초상을>을

친구들과의 호텔파자마파티 일화를 이야기하며 장 앙투안 와토의 <키테라 섬의 순례>를

보여주었다.

다양한 그림들을 보는 것은 늘 재미?!있다. 그런데 이 책의 제목이 '그림 인문학' 아닌가? 그런데 어디 인문학이 있는거지? 이 책은 그저 지극히 개인적인 그림감상 에세이였다. 이야기마다 인문학적 통찰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림마다 그림 자체의 의미를 통한 인문학적 사고를 한 것도 아니고, 그저 저자가 한 생각들과 저자가 느끼는 그림들을 저자 마음대로 묶어가며 쓴 에세이일 뿐인데 제목이 과하다 싶었다. 게다가 오탈자가 너무 많아서 편집자의 성의부족도 아쉬웠다. 무엇보다 그림에서 느끼는 감상들이 나와 너무 달라서 공감이 안되다 보니 더욱 저자의 글이 와닿지 않았다. 그림은 물론 보는 사람마다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하지만 저자는 그림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한 것이므로 그것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은 좀... 차라리 그림에 대한 미술적 해석과 자신의 해석을 함께 실었다면 또 모를까... 지극히 주관적인 감상은 글의 의미마저 퇴색시킬 수 있다.

'나를 채우는 그림' 혹은 '내가 그림에서 배운 것' 또는 '나는 그림을 통해 삶을 배웠다' 정도의 개인적 감상이라는 의미의 제목을 달았다면 좋았을 텐데... 미술감상에세이를 인문학책으로 읽기엔 많이 모자란 책이었다. 하지만 익숙한 그림 보다 새로운 그림들이 많이 보였던 점은 좋았다

 

 

 

 

몰랐던 그림인데, 저자와 다른 감상을 느꼈지만, 이 그림들을 알게 되서 좋았다.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의 <책 읽는 여자> 와 에드바르드 뭉크의 <프리드리히 니체>

 

봤던 그림들이지만 다시 봐도 또 좋았다. 일리야 레핀의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 와 앤서니 프레드릭 샌디스의 <메데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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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알고 싶은 영어책 : 순한 맛 - 수백만 영포자가 믿고 배우는 유진쌤 기초 영문법 바른독학영어(바독영) 시리즈 1
피유진 지음 / 서사원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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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만 영포자가 믿고 배우는 유진쌤 기초 영문법

"다시 시작해보세요. 당신은 충분히 해낼 수 있습니다!"

 

가장 쉬운 영문법 책을 찾는 사람들, '왕기초' 나 '영포자' 용 책도 너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하지만 '아이용' 이 아닌 '어른용' 으로 나온 영문법 학습서 라고 해서, 그렇다면 나도 가능할까??? 싶은 마음에 책을 펼쳐 들었다. 나는 영어울렁증에 거의 영포자에 가까워서, 언젠가 외국인이 질문하나 했다고 비오듯 땀을 흘리는 티비광고속 인물에게 깊은 공감을 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일단 책을 펼치면 이 책을 사용하는 방법에 대해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명사 / 관사 / 형용사 / 전치사 / 동사 로 크게 나뉘어 지며, 각 장마다 사용법이 또 상세히 설명되어 있고, 대단원 사이사이 소단원 끝날 때마다 Q&A 를 정리해놓아서 정말 상세하게 친절한 책이라고 볼 수 있다.

명사로 시작하는데

 

 

그림과 옆에 단어 들이 써있다. 음? 뒷장으로 넘어가 본다. 계속계속계속 그림과 단어들이 써있다. 아~! 적으라는 거구나. 그랬다. 내가 사용편을 대충 읽은 거다.;;; 그리고 쓰여진 단어들을 죽 훑어보는데 자꾸 웃음이 난다. 아는 단어가 많은데? 내가 영어를 잘했나? 그럴리가!!! 그렇게 이 책의 절반 이상이 명사에 할애되어 있고, 그 명사들을 읽고 쓰다보면 영어자신감이 절로 생겨난다. 영어 단어 많이 알고 있었네?!

다음은 관사 다.

 

 

 

앞에서 배운 명사들을 바탕으로 단수와 복수 그리고 관사를 붙인 것을 숙어처럼 읽고 쓰다보면 반복적임이 금새 눈에 띈다.

다음은 형용사

 

 

 

익숙해진 명사들 앞에 관사까지 붙은채 사이에 형용사가 자연스레 끼어들어 있다. 사실 여기까지 오면 슬슬 끝이 보이는데도 문법을 하고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고 근자감만 자꾸 커진다. ㅎㅎ

그리고 전치사

 

 

 

이제 문장형태가 나온다. 명사 다음으로는 전치사 부분의 분량이 꽤 두터운 편이다. 문장의 형태도 반복적이다 보니 어렵지 않은 문장 몇개쯤은 그냥 외워진다.

마지막으로 동사

 

 

 

많이 쓰이는 동사 몇개를 이용하여 기본형의 문장들이 동사별로 반복되고 내용은 몇장되지 않는다. 그렇게 어느새 한 권이 끝나고 나면 '진도가 끝났습니다. 이제 어떻게 공부해야 할까요?' 라는 다음 공부에 대한 안내가 나온다.

 

 

 

원서를 읽어도 좋고,미드를 봐도 좋고, 다른 영문법 책을 봐도 좋다고 한다. 이 책의 장점은 일단 영포자에게 영어가 이렇게 쉬웠나 싶은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그렇게 영어 해볼만 하겠는데? 싶은 마음으로 다음 방법들을 좀더 편안해진 마음으로 도전해볼 수 있게 한다. 영문법책을 백퍼 이해해본 적 없는 내가 정말 영문법 책을 이렇게 쉽게 끝까지 다 본 것이 맞는가~? ㅍ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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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욱의 고고학 여행 - 미지의 땅에서 들려오는 삶에 대한 울림
강인욱 지음 / 흐름출판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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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땅에서 들려오는 삶에 대한 울림

역사와 유물을 바라보는 색다른 패러다임,

삶과죽음, 과거와 현재를 종횡하는 새로운 지성의 세계



역사를 좋아해서 이런저런 책을 읽다보면 필연적으로 만나게 되는 분야가 고고학이다. 하지만, 역사해설서는 많아도 원전 역사서는 많지 않듯이 고고학적 자료 인용은 많아도 고고학에 대한 책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얼마전 읽은 '고고학의 역사'라는 책이 고고학을 인간에 대한 학문이라고 정의한 것에서 고고학의 매력을 한층 더 느끼게 됐었는데, 국내 저자가 쓴 고고학 책 또한 고고학을 인간의 삶을 헤아리는 학문이라고 서술해나가는 면면의 따스함과 통찰력이 느껴져서 반갑고 고맙고 좋았다.


우리의 과거에 대한 기억은 죽음으로 수렴이 되어 망각이 되고, 망각되어 버린기억은 다시 유물이라는 몸으로 부활합니다. 고고학자에게 유물이란 다시 살아난 기억의 편린입니다. 이렇게 죽음을 통하여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고고학입니다.

저는 이 책에서 유물을 통해 과거 사람들과 더 가깝게 만나보고자 합니다. 미지의 땅을 찾아가 수많은 유물과 과거의 사람들을 만나 느낀 감동을 여러분께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발굴 현장에서 돌아오는 차 안에서 혹은 흐릿한 등불 아래에서 메모했던 저만의 노트를 이제 꺼네 보이겠습니다. ( 서문 中)


번역서 중에는 그래도 고고학 책이 좀 있던데 국내학자의 고고학책은 잘 없어서 국내 학계에 고고학이라는 학문이 있기는 있나 하며 의아해했었다. 고고학은 국내의 역사에 국한 된 것이 아니다. 주제에 따라 세계 곳곳의 학문과 연결되는 학문이다. 하지만 서양고고학 대비 국내에 기반을 둔 고고학에 대해서는 너무 알려진 것이 없다고 느껴지던 차에 저자의 책을 만나게 되어 반가웠다. 그리고 저자가 고고학을 대하는 자세가 무엇보다도 고마웠다.


우리의 생은 철길을 달리는 기차에 비유되곤 한다. 그 철길 끝을 향해 멈추지 않고 달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정차하는 종착역이 바로 우리가 죽는 순간이다. 그곳에서 우리를 맞이하는 것이 고작 무덤이라는 걸 상상해보면, 씁쓸해하면서도 슬픈 마음이 들 때가 있다. ... 분명한 건 누구도 그에 대한 답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때문에 나는 현재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과정이 없다면 결과는 나오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현재가 없다면 미래도 없을 것이다. (p. 44,45)


고고학의 발견은 대개 무덤에서 이루어진다. 사람이 아무리 화려하게 살았어도 죽어서 가는 곳은 무덤 뿐이다. 물론, 무덤에도 차이가 있긴 하지만... 그러한 무덤들이 알려주는 과거는 현재를 다시 알게 하고 그렇게 인식하는 현재는 미래를 만들어 간다. 고고학은 단어에서 느껴지는 옛스러움이 의외로 어울리지 않는 학문일수도 있겠다 싶다.


조로아스터교가 가지고 있는 고고학적 의미 그리고 거기에 담긴 불의 상징은 이제까지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했다. 그 이유는 역설적으로 조로아스터교의 교주 자라투스트라를 세상에 널리 알려준 니체의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때문이다. 실제로 니체의 이 책은 조로아스터교나 자라투스트라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p. 50)


서양의 역사를 고대그리스로마로 시작해서 알아나가다 보면 근동이라 불리는 터키땅에서 이루어진 역사에 연결될 수 밖에 없고 다시 메소포타미아와 연결될 수밖에 없는데, 그 흐름을 이어가다 보면 중간중간 자꾸 만나게 되는 지점이 페르시아문명이다. 페르시아의 종교로 조로아스터교를 알게 되었으나 기독교에 끼친 영향을 느끼면서 궁금해진 종교였으나 자세히 파고드는 시간을 갖지 못했었는데, 책을 읽다보니 의도적이지 않았던 니체와 의도적이었던 히틀러로 인해 조로아스터교가 널리 알려진 이름대비 제대로 알려진 부분은 거의 없다는 저자의 아쉬움에 공감이 되었다.


지금도 유라시아 곳곳에 있는 성황당의 일종인 오보라 불리는 제사터에서는 음복을 하고 그릇을 깬다. 이런 풍습을 '훼기(그릇을 훼손함)' 의 일종이라고 하는데, 저승을 이승과 정반대로 생각하는 데에서 비로된 것이다. 즉, 현실에서는 온전한 그릇이라면 그 그릇을 깨거나 구멍을 뚫어서 저승의 용도로 바꾸는 것이다. 한반도 곳곳에서 발견되는 고인돌을 발굴하면 산산조각이 나 있는 토기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수천년의 제사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이다. (p. 63)


이 책은 고고학적 발견을 중심으로 한 책이 아니라 고고학의 가치를 통해 삶을 반추하는 에세이적 성격이 강하긴 하지만, 위 내용처럼 고고학적 재미를 쏠쏠히 찾아내는 재미가 있는 책이었다. 토기의 파편들은 오래되어 깨진것이 많겠지만 일부러 깨트린 것도 많다는 사실이, 그렇게 이승과 저승을 구분짓는 사고방식이, 그렇게 오래되어온 제사 풍습이 왠지 친근하게 느껴졌다. 이승의 용도와 저승의 용도를 달리 한다는 것, 고고학이란 그 중간을 연결해주는 학문인가 싶기도 하고 ㅎㅎ


에티오피아에서 발견된 최초의 고인류 이름이 루시 인것은 역사관련 책에서 종종 들었던 이름이었는데, 이 이름이 당시 고고학자들이 현장에서 발굴 작업을 할 때 듣던 노래인 비틀즈의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 에서 연유한 것이었다고 한다. 아프리카에서 발견되었으나 아프리카 이름을 갖지 못한 그 여인의 원래 이름은 무엇이었을까...


인류의 역사가 마약들과 함께 했지만, 멸종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지혜 때문이었다. 지혜는 단순한 지식과 다르다. 지혜는 누구나가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식이라는 것에 사유, 성찰, 그리고 자기의 절제가 더해져야만 지혜는 생겨난다.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으로 지혜로운 삶일까? 오늘도 나는 그 고민을 하며 살아가는 중이다. (p. 87)


'루시' 라는 이름을 준 비틀즈의 노래는 줄여서 LSD 라고 쓸 수 있는데, 이것은 당시 유행하던 마약의 이름이기도 하다고 한다. 비틀즈가 그 약의 환각을 경험한 후 지은 노래라고 하는데, 마약은 사실 예로부터 계속 있어왔다고 한다. 그것을 약으로 쓰던 때와 환락으로 쓰던 때의 차이가 고고학적으로도 드러난다. 저자가 알려주는 통찰들은 이렇게 고고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삶의 지혜를 전해주려 한다. 아주 겸손하게. ㅎ


뮤즈를 위한 신전이 지금의 대학이나 박물관과 비슷한 기능을 하게 된 것은 기원전 3세기였다. 당시 프톨레마이오스는 알렉산더 대왕의 장관으로 지내다가 왕의 죽음과 함께 이집트에 자신의 왕조를 개창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뮤제이온'이라는 예술의 공간을 마련해 이곳에서 예술과 학문, 음악이 함께 이루어지도록 했다. 이것이 바로 박물관의 시작이었다. 세계 최대 규모로 알려졌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도 프톨레마이오스가 건립한 뮤제이온의 일부였다. 이렇듯 고대의 예술과 역사, 나아가 박물관도 음악을 매개체로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p. 96)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은 정말 자주 들어봤는데... 도서관 자체로 단독체 인줄 알았는데 뮤제이온의 일부였다는 것이 새삼스러웠다. 알렉산더 대왕은 참 여러모로 역사적인 인물인듯 하다. 그가 정말 좀더 오래 살았더라면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하는 쓸데없는 역사의 가정을 또 생각해보게 된다.


샤먼의 도구로서 청동방울을 본격적인 악기로 발달시킨 나라는 중국이었다. 1977~1978년에 발굴된 전국시대의 증후을묘에서는 65개의 다양한 크기로 만들어진 편종이 발견되었다. 이 편종이라는 악기는 작은 망치로 때려서 소리를 내는데, 각각의 종에서도 때리는 위치에 따라서 조금씩 음색이 변한다. 서양에서는 피아노가 사용되기 시작한 건 12세기가 지나서부터였다. 그런데 피아노와 음역이 유사한 악기가 중국에서는 이미 2500여 년 전에 사용되고 있었던 셈이다. (p. 101)


과거의 영화가 현재까지 지속되는 것은 실로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고대문명의 발상지 중에서 현재까지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곳은 한 곳도 없다. 세월은 흥망성쇠의 증거를 끊임없이 보여준다. 나는 중국의 역사라고 하는 것이 사실 한 나라의 역사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중국은 땅덩어리가 워낙 넓은 하나의 나라로 인식되기는 하지만 땅이 넓은 만큼 다양한 문명이 있다가 사라졌다. 그것이 서양의 고대도시국가들처럼 세세한 자취를 남기지 않았다고 해서 중국 이라는 하나의 역사로 본다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하튼, 중국땅에서 이루어진 최초는 상당히 많다. 악기도 그렇다. 하지만 문제는 항상 그 다음이 아니겠는가...


음악에 대한 고고학적 이야기를 읽는 와중에 발해의 음악이 당시 중국과 일본에 크게 유행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고조선의 '공무도하가' 또한 고조선을 멸망시킨 한무제 덕분에 남아있게 된 것을 보면서 고대 한반도 북쪽 땅의 역사가 점점 더 궁금해진다. 게다가 중국이 만리장성을 쌓으면서까지 최대한 피하려고 했던 흉노족이 고조선과는 교류가 활발한 편이었다고 한다. 중앙아시아 초원지대의 유목민족과 한민족과의 연결지점들도 참 많이 궁금해지고... 이런 측면에서는 통일 여부를 떠나 남북 고고학계가 힘을 합친다면 의미있는 역사적 발견을 많이 할수 있을 것 같은데.... 아쉬울 따름이다.


한나라도 처음에는 진시황처럼 무력으로 흉토를 꺾으려 했다. 백등산 전투(패배)이후 한나라의 정책은 바뀌었다. 한나라는 무력으로 흉노에 대응하기보다는 다양하고 아름다운 색깔의 선물로 흉노의 마음을 홀리기 시작했다. 흉토가 중국의 아름다움에 빠져있을 때에 중국은 물밑작업을 계속했다. 조공을 바치며 흉노를 안심시켰고, 다른 한편으로는 흉노를 이간시켜 남흉노를 중국으로 귀의시켰다. 동시에 서역의 나라들과 연합하여 흉토의 경제적 기반을 차단했다. 이른바 실크로드가 등장한 것이다. 결국 1세기경에 흉노는 완전히 붕괴되었고, 그 일파는 유라시아 서쪽으로 사라졌다. 2000년 전 유라시아의 최대 군사강국이었던 흉토를 무너뜨린 것은 강대한 군사력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을 간파하고 흔들던 중국의 화려한 사치품들이었던 것이다. 단조로운 초원의 빛깔에 싫증을 내어 아름다운 빛깔을 탐한 결과가 나라의 멸망이라니. 진정한 경국지색은 이런 것이 아닐까. (p. 124)


유목민족은 떠돌아다니는 민족이었던 만큼 역사적 사료를 많이 남기지 않았고, 따라서 신비로운 시간으로 남아있는 역사이다. 로마사를 읽다보면 스키타이족 흉노족 등 초원을 가로질러 달려오는 유목민족을 강렬한 이미지로 만나게 되는데, 이렇게 중국에서 흉노족을 바라보니 또 다르다. 역사는 역시 연결하며 읽어가야 하는 학문임을 또다시 느낀다. 이렇게 중국문화를 경험하며 일부는 흡수되고 일부 세력들이 유럽으로 건너와 사치와 분열에 빠진 로마를 보았을 때 과연 그들의 문화가 위대해보이기만 했을까? 그들의 땅에 자신들의 나라를 세우고 싶었을까? 유목민족들은 로마를 멸망시키지 않았고 적절히 갈취했고 갑자기 떠났다. 북방에서 남하해온 게르만족 고트족과 동방에서 달려온 유목민족의 시선은 분명 달랐을 것 같다.


저자가 시베리아 발굴장에 갔을 때 제일 힘들었던 것은 모기 였다고 한다. 추위가 풀리면서 녹아내린 바닥들은 모기에게 최선의 생태지가 되서 엄청난 모기때가 생긴다는데 시베리아 사람들은 여러 음식에 고수풀을 넣어 먹고 다양한 잡초를 태우는, 다소 원시적으로 보이는 방법으로 모기를 쫓는걸 선호한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고수풀의 원산지는 지중해라는 것도 함께 알려준다. 즉, 고대부터 교류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상당히 넓은 지역을 기반으로 이루어졌던 것을 새삼 또 느끼게 된다.


이제까지 많은 연구는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쑥과 마늘의 의미를 통과의례, 빛과 하늘의 신화, 곰과 호랑이의 토템 등 다양하게 해석해왔다. 그런데 단군신화의 진짜 의의는 바로 유라시아의 보편성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핀란드에서 태평양 연안의 캄차카까지 곰과 관련된 신화가 없는 부족은 없다. 그리고 이 모든 지역에서는 기나긴 겨울을 지나 등장하는 알싸한 곰마늘의 향을 느낄 수 있다. 어쩌면 곰마늘의 맛과 향에서 단군신화에서 잊혀진 또 다른 이야기를 발힐 수 있을 것다. (p. 139)


향수의 발달은 아무래도 악취를 없애기 위한 것이 오래된 전통이었나 보다. 프랑스 향수의 시작이 길거리에 널려있는 분변냄새를 피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시취를 없애기 위한 향들은 좀 더 다양한 모습으로 함께 해 왔다. 향유, 몰약, 침향 등등.... 향신료 또한 향기와 함께 말할 수 있는 것일텐데, 유럽쪽엔 고수였다면 동양쪽은 마늘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쪽져 있는 마늘 말고 풀의 형태로 보이는 곰마늘은 생각보다 훨씬 대중적인 풀이었다. 곰마늘이 퍼져있는 이야기를 읽으며 단군신화에 국한 되어 있는 마늘에 대한 이미지가 살짝 달라지는 것 같기도 했다.


패총은 조개무덤이다. 그리고 일종의 생활쓰레기장이다. 따라서 고고학자라면 패총은 필수코스인지도 모르겠다. 일상생활이 이루어진 곳에서 발견되기 마련인 패총 속엔 생선뼈 동물뼈가 함께 있어서 뼈 자체만으로는 큰 가치가 없다할지라도 당시의 음식이나 기후 등 환경을 알 수 있는 중요 자료가 될 수 있다. 그런데 1990년 대 초 저자가 벌교 근처에서 발견된 패총이야기를 하면서 당시만 해도 국내에 관련 전문가가 없어서 자세한 분석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말한다. 국내 고고학의 상황을 엿본 듯 해서 마음이 안타까워지기도 했다.


3000천년 전 두만강 유역의 사람들에겐 침술이 굉장히 널리 퍼져있었다고 한다. 뼈로 만든 침과 침통이 발견되었을 때 바늘이라기엔 바늘귀가 없어서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한참 후에야 밝혀졌다고 한다. 그것이 '침'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두만강 일대의 청동기 시대 무덤 곳곳에서 이러한 침통과 바늘이 다수 발견되었고 고구려 사람이 침을 잘 놓았다는 기록도 사료에 있는 것으로 보아 한반도 북방 사람들은 침술을 상당히 발달시켰던 것 같다. 침술의 원조는 중국이 자신하듯 중국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원조가 어찌됐건 자체적인 발달의 역사는 있을 수 있다. 완전한 100% 전승 전래 라는 것이 사실 말이 안되는 것일 수도 있지 않나? 중국과 붙어 있는 북한지역의 역사는 정말 갈수록 궁금해지고 그래서 또 아쉬워지고 그렇다...


개발을 위해 땅을 파다가 유적이 나오면 발굴을 하는 것을 '구제발굴' 이라고 한다. 경제개발이 서둘러 행해지던 때에는 이러한 구제발굴도 사실 제대로 이루어지진 않았다. 따라서 개발로 인해 얼마나 많은 유적이 사라졌는지는 파악조차 힘들다. 저자가 대표적으로 예를 드는 '풍납토성' 의 이야기는 잘 몰랐었는데 알고 나니 더 마음이 안좋아지긴 한다... 하지만 좁은 땅덩어리에 많은 사람이 살면서 경제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보존과 개발의 경계는 늘 위태위태할 수 밖에 없는게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이후 1954년에 세계 각국은 전쟁으로 부터 문화재를 보호하는 취지에서 헤이그 문화재보호조약을 체결했다. 전쟁으로 다른 나라를 침략해도 그 나라의 문화재를 불법으로 없애거나 약탈할 수 없다는 것이 골자였다.... 이렇듯 전쟁의 참상을 겪으면서 대안으로 제시된 헤이그조약이지만, 실제로는 제1,2차 세계대전에서 열강들이 약탈한 문화재를 돌려주지 않아도 되는 근거가 되었다. 즉 헤이그조약은 국제사회에서 약탈된 문화재를 반환할 수 있는 간으성을 사전에 차단해버린 셈이다. 실제로 세계대전이 끝나고 식민지 국가들은 대부분 독립했지만, 문화재의 제대로된 반환은 거의 없었다. (p. 204)


헤이그 라는 도시는 참 기묘한 느낌을 주는 도시인것 같다. 우리역사에서는 밀사를 보냈던 곳으로만 기억하고 있었는데, 이 책을 보다 보니 문화재 관련해서도 한 획을 그은 도시 였다. 전쟁과 약탈은 어찌보면 한몸인데, 그 거대한 몸체가 행동한 결과를 이렇게 강국들끼리 조약을 체결하고 다른 약소국들은 다 그냥 지켜만 봐야 하는 것은 세계 역사에서 너무나 자주 등장해서 이젠 뭐 식상할 정도다... 그 식상함이 우리역사에도 일어났으니...


일제 강점기에 한국의 고분들은 혹독하게 도굴 당했다. 경주의 신라고분을 제외하고 눈에 보이는 고분들은 대부분 도굴 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욱 놀라운 건 일제강점기에 일본의 고고학자들은 전시용으로 그렇게 호화롭게 발굴을 했으면서도 이후 대부분의 무덤에 대해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일본인들이 무덤을 경쟁적으로 도굴하는 것도 당시의 일본총독부는 수수방관했다. 결국 일제는 제대로 된 문화재를 관리할 상황이 아니었음에도 호화로운 겉치장에만 열중했던 것이다. 자신들보다 먼저 제국주의를 일구어낸 서구열강을 흉내 냄으로써 자신들의 식민지 지배를 합리화하기 위해서 말이다. (p. 209)

일본이 한반도와 만주의 문화재를 약탈한 이유는 단순한 유물의 수집이 아니라, 일본 민족의 기원이 북방 어딘가에 있었다는 설을 주장하기 위함이었다. 이는 근동지역을 약탈한 서구 열강이 유럽 문명의 근원인 성서를 증명하기 위해서 나선 거라고 주장하는 의도와 일맥상통한다. ... 기마민족설은 역설적으로 일본이 패망한 후에 본격적으로 유행했다. 일본인들은 아시아 전체를 정복할 것이라는 정부의 허황된 선전 아래 전쟁에 내몰렸다. 그리고 전쟁에 패망하면서 다시 섬으로 쫓겨났다. 갑자기 빈털터리가 되어 버린 일본인들을 위로해준 것은 일제의 전장을 따라다니며 발굴하고 문화재를 약탈해 조사했던 고고학자들이었다. (p. 219)

경주 신라 고분에 대한 일제의 관리는 형편없었다. 1920년대, 일제는 경주에 철도를 건설하고 부속 건물들을 사용하면서 필요한 토사를 황남동 고분군 일대에서 채취했다. 어떻게 한 국가의 왕족 무덤을 건축자재로 쓰기 위해서 없앤다는 발상을 할 수 있을까 싶지만, 당시에는 수천 기의 무덤이 그렇게 사라지고 있었다. (p. 295)


일본은 전쟁속에서 참 많은 것을 얻어간 나라이다. 다양한 실험으로 인체분야 뿐만 아니라 과학적 발견도 있었는데 역사에서까지 그랬구나 싶은 것이.... 하지만 진실을 덮는 그러한 발견들 속에서 학자의 양심이라는 것조차 지키지 않는 일본인들의 뼈속깊은 믿음이 무섭게 느껴지기도 한다. 후지무라의 조작사건과 침묵했던 학자들의 이야기는 더더 그들의 집단적 왜곡인식의 폐해를 보여준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일제강점기 때 선사시대와 역사시대의 주거지는 제대로 발굴된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금석병용기(청동기와 신석기시대가 함께 나왔음을 의미)' 라는 용어가 쓰이는 계기가 되었다. 이 말은 원래 유럽에서 사용되었는데, 신석기시대에서 청동기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를 일컫는 말이었다. 하지만 일제는 이 용어를 한국인들의 미개함을 증명하는 도구로 사용했다. 즉, 금석병용기를 '청동기를 수입해도 여전히 미개한 상태에서 석기를 쓰는 시대' 라는 의미로 사용했다. 한반도의 사람들은 미개하고 그 문화적 역량이 정체되어 있기 때문에 중국에서 청동기가 도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석기시대로 살았다는 뜻이다. 일본의 이 식민 패러다임을 깨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가 층을 달리해서 존재했음을 밝히면 된다. (p. 225,226)

한국전쟁이 끝난 지 4년 밖에 안되는 시점에서 북한 고고학은 일제의 식민사관을 청산하면서 그 기세를 높였고, 1960년대에는 고조선 연구에 착수했다. 그 결과 중고등학교에서 상식처럼 배우는 '고조선은 비파형동검을 사용하여 돌널무덤을 만들었다' 는 사실도 밝혀내다. 이렇듯 층위적인 발굴과 중첩의 확인은 고고학의 교과서를 다시 쓰는 계기가 될 정도로 중요하다. (p. 226)


지금 우리가 상식처럼 배우는 '빗살무늬토기=신석기시대' , '민무늬토기=청동기시대' 라는 것은 발굴로 증명된 것이고 이러한 발굴로 일본의 잘못된 식민 패러다임을 깨트린 것은 북한의 발굴단 이었다. 북한의 발굴단은 회령 오동의 수혈주거지를 발굴하고 그 주거지들에 중첩이 있음을 함께 발견했으며 황해도 지탑리 유적에서 빗살무늬토기층과 청동기시대 문화층을 불리시켜서 그 지긋지긋하던 금석병용기설을 폐기하고 청동기시대의 존재를 주장하게 되었다고 한다. 한국전쟁 직후에는 여러 면에서 북한 지식층이 앞서 나갔다. 하지만 강압적 통합의 정시사 속에 북한은 멈추었고, 분열과 비난의 정치사 속에 더디었던 남한의 발달은 늦었지만 빨랐다. 현재 시점에서 역사적 협력의 필요성이 다시한번 뼈저리게 다가온다.


인더스 문명은 기원전 1500년경에 갑자기 사라졌다. 도시는 발달했지만, 궁전이나 무덤 같은 유적은 없었다. 발견된 무덤들은 대부분 너무 소박해서 계급의 차이를 알아내는 것도 힘들었다. 더욱 놀라운 점은 이 유적지에는 사원이나 군대의 흔적도 없었다는 점이다. (p. 238)


세계4대문명 하면 저절로 튀어나오는 곳들 중의 하나가 인더스 문명이다. 나는 인더스 문명이 막연하게 인도위쪽 강가 에서 시작됐고 그 문명이 지금의 인도로 이어졌다고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인더스 문명은 현재 파키스탄에 위치하며 그 기원과 멸망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문명이었다. 고대문명은 밝혀지지 않은 만큼 많은 이야기가 기대되기 마련인데 인더스 문명에 대해선 정말 알려진게 너무 없구나 싶은것에 새삼 놀랐다.

인더스 문명 못지 않게 신비로운 문명으로 현재 중국땅의 '홍산문화' 이다. 중국에는 역사적 유물 유적지도 정말 많은데, 홍산유적지는 특이한 것이 대형 제사유적지는 발견되었는데 주변에 성터나 마을이 발굴되지 않았다고 한다. 즉 제사만 지내는 성스러운 지역인 것으로 이 문화 또한 기원전 2700년 이후 갑자기 사라졌다고 한다.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러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고고학은 굉장히 판타지적 재미가 있다. 거대한 제사터라... 괴베클리 테페가 생각나기도 하고...


고고학자에게 명성은 마치 헤엄치는 고래와 같다. 고래는 오랜 기간 물속에 잠겨 있다가 때가 되면 수면으로 올라와 숨을 분출한다. 너무 오랫동안 수면 밑에 있어서도 안 되지만 수면 위에 계속 머물러서도 안 된다. 너무 오래 수면 위에 있다면 결국 사냥꾼들의 표적이 되기 때문이다. 가끔 수면 위에서 따뜻한 햇살을 바라보는 건 좋지만 고래가 살아야 할 곳은 물속이듯, 결국 고고학자의 가장 큰 즐거움은 혼자 외롭게 유물을 바라보는 중에서 피어나야 한다. (p. 265)


고고학자의 고래에 대한 비유가 마음에 와 닿았다. 공명심으로 거짓과 왜곡을 일삼는 학자들에게 이런 즐거움을 느끼게 할 수 있었다면 참 좋았을 텐데 말이다...


사람들이 고고학을 좋아하는 이유는 유물이 주는 여러 가지 창의적인 상상력 때문일 것이다. 박물관 전시품 안에 있는 유물을 보면서 사람들은 서로 다른 생각을 한다. 고고학에서는 하나의 유물을 하나의 관점으로만 보지는 않는다. 또한 새로운 유물은 게속 발견되고 그에 대한 해석 역시 계속 바뀐다. 이렇듯 고고학에는 정답이 없다. 고고학은 매일 바뀌어가는 일상 속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아가는 우리의 삶과 닮아 있다. (p. 277)

고고학이 다른 어떤 학문보다 미래를 지향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새로운 자료로 과거들을 공부하기 때문이다. 고고학이 미래를 지향하는 학문인 이유는 기술이 발전할수록 고고학은 더욱 더 진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흔히 고고학을 마치 먼지구덩이의 유물만을 꺼내는 고물상과 같은 존재로 생각한다. 유물이 예전 것이기때문에 고고학자들도 고리타분할 것이라는 생각은 마치 노인들을 질료하는 병원의 의사도 똑같이 늙고 기술은 낡았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추측과 같다. 실상은 다르다. 고고학은 첨단과학의 각축장이다. 역사를 대상으로 하는 과학 중에서 가장 첨단 기술을 도입하는 것이 바로 고고학이다. (p. 305)

고고학은 인간의 흥망성쇠와 그 운명을 같이하는 학문이다. 인간이 생존을 거듭하며, 자신의 현재와 과거를 느낄 수 있는 지각이 사라지지 않는 한 고고학은 이어진다. 인류가 멸망하지 않는 한 고고학은 계속된다. (p. 310,311)


저자가 말하는 고고학은 젊어서 좋았다. 고고학자로서의 순수한 기쁨과 유물 유적에 대하는 호기심과 역사인식·사람에 대한 공정성이 매력적으로 녹아 있는 문장들이 편안하면서도 울림이 있어 좋았다. 고고학적 지식을 얻는 것도 좋지만 고고학에 대한 지혜를 얻어가는 재미를 주는, 여러모로 참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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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 중용이 필요한 시간 - 기울지도 치우치지도 않는 인생을 만나다 내 인생의 사서四書
신정근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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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울지도 치우치지도 않는 인생을 만나다

인생의 절반쯤 왔을 때 읽어야 할 [중용]60수의 힘

 

저자의 이름은 못외웠어도 '마흔, 논어를 읽어야 할 시간' 이라는 책 제목은 정말 많이 들어봤다. 사오년전쯤 분명 읽었던 것 같은데 내용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렇게 기억이 안나는 걸로 보아 저자가 사십대에 썼던 논어 책을 제대로 못 읽은 것 같으니, 저자가 오십대에 쓴 중용 책은 잘 읽어봐야겠다 싶었다.

최근에 '논어' 원전 완역본을 읽었는데, 그때도 이전에 읽었던 논어 관련 책이 기억이 안나서 그때는 내 기억력의 문제겠거니 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나서 알았다. 내 기억력도 문제는 문제지만, '마흔, 논어를 읽어야 할 시간' 은 논어 책이 아니었던 것이다. '오십, 중용을 읽어야 할 시간' 이 중용 책이 아닌 것처럼.

이 책은 중용에 대한 해설이나 번역을 중심으로 한 책이 아니다. 동양철학을 전공하고 가르치고 있는 교수인 저자가 오십대의 나이에 생각해봄직한 화두들에 대해 중용의 몇 구절을 인용하여 인생강의를 하고 있는 책이다. 따라서 중용의 구절들이 순서대로 차근차근 나오면서 중용을 중심으로 내용이 풀어지는 것이 아니라, 저자의 의도에 따라 필요한 부분만 순서상관없이 부분적 발췌를 해서 그 부분을 예로 들어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중용을 잘 알고 있는 학자이기에 할 수 있는 말 들이기는 하나, 중용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이 책을 읽고 나서 중용에 대해 배웠다고 말할 수는 없게 되는 것이다. 내가 '마흔, 논어를 읽어야 할 시간' 을 읽고서도 논어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 것처럼.

하지만 중용 자체를 목적에 두고 읽는 것이 아니라, 오십대에 생각해보면 좋을 내용들을 인생조언처럼 여기며 이 책을 읽는다면 편안하고 수월하게 읽히는 책이다. 삶의 연륜이 꽤 쌓인 나이이긴 하나 아직 '지천명'을 깨닫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릴때 고전의 몇 마디 말로 풀어내는 저자의 이야기들이 더 내려놓고 더 배우는 마음자세를 갖게끔 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렇게 읽다보면 '중용' 을 제대로 읽어볼까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중용 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뭔가 중간적이고 중심적이고 그래서 묵직하고 편안한 그런 느낌을 받게 되는데, 사실 중용은 춘추 전국 시대의 혼란한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는 책이라고 한다. 중국 역사에서 가장 혼잡하던 세력의 다툼 속에서 탄생한 중용은 그래서 더욱 나라의 중심을 군주의 중심을 개인의 중심을 강조하게 됐던 것인듯 싶다. 그래서 저자가 제일 처음 인용한 중용의 구절이 '소은행괴' 이다.

[중용] 하면 평온하고 차분한 이야기가 나오리라 예상할 수 있다. [중용]은 극단이 판을 치는 '소은행괴'의 세상에서 주위에 널려 있고 누구라도 실천할 수 있는 평범의 가치를 재조명하고 있다. 쉰의 나이도 조명이 쏟아지는 특별하고 화려함보다 공기처럼 편안하고 일상처럼 부담 없는 보통에 다시 눈이 가는 때다. 보통이 결국 오래가기 때문이다. [중용] 과 쉰의 나이는 평범함에서 잘 어울린다. (p. 21)

사회가 혼란할 수록 다양한 인간군상이 눈에 띄기 마련이다. 중용이 필요했던 춘추전국 시대는 공감력 없고 괴상한 행동을 하는 소은행괴들의 세상이었던 것이다. 중용은 공자의 손자인 자사가 지은 책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이 책에 인용된 구절들 중에는 공자의 말씀도 많이 들어있는 것으로 보아 손자가 할아버지의 가르침을 제대로 연구했구나 싶기도 했다. 사실 한 시대를 주름잡았던 사상은 후대로 갈수록 반론을 만들어내기 마련이다. 공자의 사상은 당대에 실패했기에 후대에 확산되었다. 공자의 가르침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서 시대를 그렇게 망가트렸구나 하는 후회가 다음 시대는 제대로 바른 세상을 만들어보리라는 기대가 공자의 가르침을 이어져 오게 한 것이 아닐까. 그때와는 또다른 소은행괴들이 판을 치는 현대에서 나이들어갈 수록 중용의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저자의 생각이 그렇게 이여져 있는게 아닐까.

숨은 것보다 더 잘 드러나는 것이 없고 미약한 것보다 더 두드러진 것은 없다. 그러므로 자기주도적인 사람은 혼자 있는 상황에서 삼간다. (p. 44)

[중용]에서는 이중의 역설을 통해 나는 '자신을 알고 있는 나'를 속일 수 없다는 사실에 직면하게 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는 공적 공간에서 주의하는 만큼이나 사적 공간에서 주의하지 않을 수 없다. ... 이에 대해 유학이 사람에게 숨 쉴 공간을 주지 않는다고 볼멘소리를 할 수 있지만 자신을 전일적으로 통제하려는 도전으로 볼 수도 있다. (p. 47)

 

유학은 대부분 개인개인의 수양을 강조한다. 사실 한사람한사람이 다 각각 제대로 된 한사람한사람이면 그 사람들이 모인 사회는 저절로 올바른 사회가 될수밖에 없다. 그래서 끊임없이 올바른 한사람한사람이 될 것을 공자왈맹자왈 에서 언급되고 있는 것 같은데...

당시 사람들이 중용대로 살기에 관심을 두지 않아 문제가 생기는데도 이를 모르니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중용대로 살지 못하는 이유를 찾아보고 또 왜 중용대로 살아야 하는지 사람들을 설득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중용]이 쓰인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p. 60)

공자는 중용대로 살 수 있지만 한 달 동안 지속하기가 쉽지 않다는 말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다. 따라서 공자가 중용대로 살자고 제안하면서 자신도 장기적으로 지속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하는 이유를 살펴보고자 한다. (p. 61)

 

중용을 설파하는 공자님도 중용대로 사는 것이 한들을 지속하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니... 그럼 공자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범부들은 어쩌란 말인가? 중용을 배우란 말인가 배워도 소용없다는 말인가? 이 뒷 내용을 정말 주의깊게 읽었는데 어려운 이유는 나와도 해결법은 나오지 않았다. 어려운 이유는 말해주지 않아도 알고 있는데;;; 역시 중용을 완역본으로 읽어야 하는 걸까...

내가 자식으로 부모에게 뭔가를 바란다면 그런 태도로 자식을 키우면 되고, 부모로서 자식에게 뭔가를 바란다면 그런 태도로 부모를 모시면 된다. 핵심은 내가 자식으로서 또는 부모로서 무엇을 바라느냐에 달려 있다. 내가 바라는 바가 분명하지 않으니 자식과 부모에게 어찌해야 할 줄을 몰라 쩔쩔매게 된다. (p. 90)

책을 읽으며 가장 마음에 드는 구절이었다. 좋은 말이었다. 내가 부모로서 자식에게 뭔가를 기대할때 나도 자식으로서 그런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고, 내가 자식으로서 부모에게 뭔가를 기대할때 내가 내 자식에게 그런 부모가 되어준다는 것이 정말 좋은 생각이었다.

하늘이 명령한 것을 본선이라 하고, 본성에 따르는 것을 도리라고 하고, 도리를 터득하는 것이 교육이다. (p. 107)

천명지위성 天命之謂性 솔성지위도 率性之謂道 수도지위교 修道之謂敎

'천명지위성'은 사람이 천에게 명령을 받은 대로 살아야 하고 그 명령의 내용이 바로 사람의 본성이라는 맥락으로 읽힌다. 사람은 천이 명령한 본성을 실현하면 사람다운 사람이 되고, 그러지 않으면 사람답지 않은 사람 또는 짐승보다 못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아울러 사람은 천이 자신에게 무엇을 명령했는지 알아야 한다. 즉 지천 知天 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맹자의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천명은 사람에게 인의예지의 네 덕목을 본성으로 실천하라고 명령했다고 할 수 있다. 천에서 성으로 연결되고 나면 사람은 솔성의 과정으로 나아간다. 천이 명령한 인의예지의 본성이 이끄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바로 사람의 도다. 성이 도로 연결되고 나면 사람은 수도의 과정으로 나아간다. 사람은 솔성으로 실천하면서 도를 넓혀가는 것이다. 그렇게 넓히는 길이 바로 나를 가르치고 남을 이끄는 교가된다. (p. 108,109)

 

이 구절이 [중용]에서 제일 첫 머리에 나오는 구절이라고 한다. 책의 중간즈음에 등장하지만, 첫 구절은 기억해 놓고 싶었다.

[중용]에는 중용이 없다. 우리는 책 이름을 들으면 그 안에 이름에 어울리는 내용이 많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중용]은 그렇지 않다. [중용]에는 중용이라는 개념이 자주 쓰이지 않을 뿐 아니라 중용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풀이한 내용도 없다. 그렇다 보니 [중용]을 읽고 나더라도 중용이 뭔지 분명하게 들어오지 않는다. 이 때문에 [중용]이란 책이 [대학] [논어] [맹자] 에 비교해서 어렵다고 한다. (p. 113)

이 책에는 [중용]책이 없어서 '중용' 이 없다 치더라도, [중용] 책에도 '중용'이 없다니 그렇다면 '중용'은 어떻게 배울 수 있단 말인가...;;; 저자는 그래서 예로부터 [중용]책에 대한 해설서가 많았고 주희 라는 학자의 책이 가장 널리 알려졌다하고, 정약용의 책도 의미있는 풀이라고 하는데, 필부로서 중용을 깨우치기는 더 요원하게만 느껴진다...

제사는 유학을 종교로 볼 수 있는 중요한 이유가 된다. 제사는 산 사람이 죽은 사람을 만나고 교류함으로써 죽은 자를 주기적으로 소환하여 공동체에서 영원히 기억되게 하는 활동이다. 유학에는 사후 심판과 천당이라는 개념이 없다. 죽은 사람이 살아생전 행적에 따라 영혼이 구원되는 절차가 없다. 죽으면 육체적으로 소멸할 뿐 아니라 영적으로 철저히 잊힐 수 있다. 제사, 특히 명절 제사보다 일 년 단위로 지내는 기제사가 중요하다. 제사에서 향을 피워 영혼을 부르고 술을 따라 육신을 불러 제상에서 혼과 백이 만나게 된다. 제사상을 보고 후손이 자리하니 결국 조상과 후손이 만나게 된다. 이렇게 죽은 조상은 주기적으로 자신이 살았고 후손이 살고 있는 곳으로 돌아온다. 후손이 축문으로 일 년간 있었던 일을 고유하면 조상과 후손이 같은 소식을 공유하게 된다. 이렇게 제사를 되풀이하면 세상은 산 사람이 독점하는 곳이 아니라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이 교류하는 장이 된다. 이를 통해 조상은 죽어도 죽제 않게, 즉 영원히 살게 된다. 따라서 제사는 동아시아 문화에서 유한한 인간이 무한한 생명, 즉 영생을 누리게 되는 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p. 218)

세계4대종교 라고 하면, 기독교,불교,이슬람교,유교 라고 말한다. 그런데 사실 유교는 종교는 아니고 철학 혹은 사상이나 동양문화권에서 종교와 같은 전통적 믿음이라 4대종교로 부르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제사에 대해 이렇게 읽고 보니 유교의 종교성이 느껴면서 이해가 됐다. 그리고 한명 혹은 소수의 몇명만 누리는 영생이 아닌 인간이라면 누구나 누리는 영생이라는 평등개념이 몹시 혁명적으로 보였다. 천당과 지옥이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이승과 저승이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가능하고 모두에게 연결된다는 생각은 종교적인 측면에서 생각하면 정말 대단한것 아닌가?!

[중용]은 성인을 다섯 가지 측면에서 설명하고 있다. 한마디로 말하면 좋을 텐데, 다섯 가지라니 좀 복잡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복잡할 수밖에 없는 것이 성인은 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인이 신이라면 절대자, 전지전능 등으로 간명하게 규정할 수 있다. 성인은 신이 아니지만 범인과 다르다. 이런 성인의 특성을 설명하자니 이런 면도 있고 저련 면도 있다는 식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다. (p. 265)

첫째는 '총명예지'다. 성인의 첫번째 특징으로 앎을 내세우고 있다. 둘째는 '관유온유'다. 그것은 바로 부드러움이다. 셋째는 '발강강의'다. 기백이다. 넷째는 '재장중정'이다. 성인은 위엄이 있고 점잖으며 곧고 바르다. 기품이 넘치고 공정하다. 다섯째는 '문리밀찰'이다. 조리가 있고 디테일에 강하니 사태를 차근차근 구분하여 잘 풀어갈 수 있다.

이처럼 성인은 다섯 가지 덕목을 갖추고 있으니 사람이 노력 끝에 이른 최고의 단계라고 할 수 있다. (p. 266,267)

 

중용의 도가 무엇인지 궁금하였으나 성인이 어떤 사람인지 읽어내며 끝났다. 세상 모든 사람이 성인이 될 수는 없을 것이나, 나이 오십이 넘고나면 모두가 성인이 될 마음으로 중용을 공부해야 한다는 뜻이려나...

저자는 [중용]이 아름답다 하였다. 후대 학자들이 다양한 풀이를 끊임없이 했다는 것은 그만큼 [중용] 자체는 함축적이고 애매모호하다는 얘기다. 한자 자체가 뜻글자라서 한글처럼 문장으로 이해되기 보다는 한구절한구절 한단어한단어 해석해 나가며 이해해야 하는데, 그 한자들로 이어진 문장들 단락들이 하늘에 구름인듯 바다위 파도인듯 눈에 읽히나 손에 잡히지 않는 그런 의미를 지니고 있으니 시처럼 아름다울 수도 있겠다 싶긴 하다. 하지만 나는 그런 두루뭉수리한 풀이보다는 명확한 해석이 필요한 사람인지라 저자가 전해주는 아름다움을 미처 제대로 느끼지 못하였다. 아무래도 중용 한문장한문장 풀이해주는 책을 읽고나야 이 책의 묘미도 제대로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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