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없는 세계
미우라 시온 지음, 서혜영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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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사랑에 열정을 다하는 이들의 따사로운 성장의 기록

"사랑의 라이벌은 인간이 아니라 풀이었습니다"

 

 

애기장대

이 책을 읽고나면 주인공 이름은 까먹어도 이 식물의 이름은 기억하게 된다.

길가 아무데나 아무렇게나 자라고 있어서 일반인들이 보면 이름을 모르는 수많은 잡초로 여겨지는 그런 풀들의 하나일텐데... 이 책의 주인공은 애기장대 풀인가 싶을정도로 책을 다 읽고나면 애기장대풀을 연구하는 식물학자가 된 기분이다.

애기장대는 식물연구를 위한 모델식물이라고 한다. 발아해서 다음 씨가 맺힐 때까지의 1세대 기간이 약 6주로 짧고, 화학물질을 쓰면 다양한 형태의 돌연변이체를 간단히 만들 수 있으며 또 크기가 작아서 유리 용기 안에서 쉽게 재배할 수 있고 게놈 사이즈가 작다는 등의 이유로 식물 연구를 위한 모델 식물로 많이 활용된다고... 검색해서 사진도 봤는데... 음... 정말 평범한 풀이었다...

소설의 시작은 심야식당과 비슷한 분위기를 풍긴다. 심야식당 이라는 작품을 본 것은 아니지만, 대충 어떤 내용인지는 주워들은게 있는데 이 작품의 남자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후지마루는 요리사가 꿈인 청년이고 이 청년이 선택한 식당은 특별하게 다정한 음식들이 가득한 그런 식당이다.

몇 번쯤 엔푸쿠테이에 들러본 후, 후지마루는 이 식당에서 일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맛이 훌륭했다. 신기한 기예를 뽐내지는 않았지만, 정성껏 만든 마음이 전달되어 온다. 강요하지 않는, 깊이가 있고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을 맛이다. 허름한 외관과 식당 주인의 무뚝뚝함에도 불구하고 맛은 기대 이상이었다. 가격도 적당했다. 요리사로서의 기개와 실력이 느껴지는 식당이라고 후지마루는 결론지었다. (p. 13)

후지마루는 엔푸쿠테이 라는 식당에서 일하게 되는데, 이 엔푸쿠테이라는 식당은 번화가라기 보다는 골목식당이라는 느낌의 식당으로 테이블 수도 많지 않지만 단골이 많은 식당이다. 그리고 이 식당 가까이에 T대학이 있는데 그 대학을 다니는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식당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렇게 이 식당의 단골중에 그녀가 있었다.

후지마루는 시선을 내려 고무 슬리퍼를 신은 모토무라의 얇은 조개껍데기 같은 발톱을 보면서 화제를 찾았다. 하지만 아무튼 상대는 기공 무늬 티셔츠를 입은 여자다. 찾을 것도 없이 화제는 '식물'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잖아도 식물에 대해서는 알고 싶은 게 많았던 참이다. 후지마루는 얼굴을 들고 말했다.

"연구실분들은 식물을 연구하고 있다고 했지요. 저도 채소를 좋아해요. 주방에서 채소를 손질하고 있을 때, 넋을 잃고 그 단면을 바라보고 있다가 대장한테 야단을 맞곤 해요"

"네, 식물은 정말로 신기하고 아름다워요" 모토무라는 웃는 얼굴이 됐다. (p. 42)

 

작품 초반의 분위기로는 이 둘은 정말 천생연분이다. 후지마루는 채소를 썰다가 식재료들의 균형잡힌 구성들을 새삼 발견하며 감탄을 하고 ' 그때마다 후지마루는 생명체를 먹는 거구나, 하고 느낀다. 이렇게 아름다운 구조와 몸을 가진 채소, 생선, 고기 같은 것을 먹으면서 우리는 살고 있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어쩐지 무서운 느낌도 든다. 후지마루는 말로는 잘 표현할 수 없겠지만, 결국 요리란 건 생과 사를 잇는 멋진 행위라고 생각한다(p.18) ' 는 식물도취적 생각에 빠져들 수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모토마루는 예상보다 훨씬 더 식물에 빠져있었다. 특히, 애기장대풀에.

후지마루는 한 번 더 현미경을 들여다봤다. 생명 활동의 증거를 빛으로 발하고 있는 죽은 세포들의 무리. 작은 잎 안에 존재하는, 아름답고 쓸쓸한 은하.

"후지마루 씨" 하고 부르는 소리에, 후지마루는 모토무라에게 몸을 돌렸다. 모토무라도 후지마루를 똑바로 보고 있었다.

"저는 후지마루 씨의 마음에 응할 수 없어요" (p. 93)

"식물에는 뇌도 신경도 없어요. 그러니 사고도 감정도 없어요. 인간이 말하는 '사랑'이라는 개념이 없는 거에요. 그런데도 왕성하게 번식하고 다양한 형태를 취하며 환경에 적응해서 지구 여기저기에서 살고 있어요. 신기하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모토무라가 너무나도 담담하게 들려주는 말을 들으며, 후지마루는 식물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 쪾이 더 신기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사랑이라고 하는 애매모호한 뭔가를 내세우지 않으면 번식할 수 없는 인간이 더 기묘하고 기분 나쁜 생물이 아닌가, 하고.

"그래서 저는 식물을 선택했어요. 사랑 없는 세계를 사는 식물 연구에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마음을 먹었어요. 누구하고든 만나서 사귀는 일은 할 수 없고, 안 할 거에요"

아아. 후지마루는 크게 숨을 내뱉었다. 모토무라씨는 식물이라는 은하의 소용돌이에 빠져든 사람이다. 글쎄 봐봐, 모코무라씨의 눈. 파란 빛에 비친 잎사귀의 세포 그 자체가 아닌가. 우주처럼 칠흑 같은 눈. 하지만 자세히 보면 그 안에 반짝이는 빛이 깃들어 있다. 분열하고 증식하는 에너지. 연애도 사랑도 아닌 것에 자극을 받으면서 죽을때까지 긴긴 시간을 달려 나아간다. (p. 96)

 

후지마루는 좀 이르다 싶던 순간에 고백을 했고 역시나 차였다. 하지만 낙담하기는 커녕, 모토무라를 비롯해서 같은 연구실의 멤버들을 좀 더 관찰하기로 마음 먹는다. 마쓰다 연구실 사람들은 도대체 왜 식물 연구에 그토록 열중하는 걸까? 후지마루가 식물연구소의 사람들을 관찰하기로 마음먹은 다음 페이지부터 화자는 후지마루에서 모토무라로 변경된다.

마쓰다 연구실에는 교수인 마쓰다를 중심으로 연구원인 가와이, 선배 대학원생인 이와마, 대학원생 2년차인 모토무라, 후배 대학원생인 가토 가 있다. 모토무라가 화자가 되면서 이들에 대한 설명이 좀더 구체화 되고 그렇게 연구원들의 세계를 좀더 현실감 높게 그려내고 있다.

그들은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결국 자신이 있을 곳을 찾아냈다. 뭔가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그 사람이 걸어가는 길을 비춰주는 경우가 있구나, 하고 그들을 보면서 모토무라는 실감한다. 너무나도 천진한 생각일지 모르지만, 애기장대 연구에 몰두하면서 거기서 즐거움을 느끼고 있는 모토무라는 취미든 일이든 사람이든, 사랑을 기울일 수 있는 대상이 있는 것이야말로 인간을 지탱하는 힘이 아닐까 하고 거듭 생각한다. 그러자 신기하게 생각되는 건 역시 식물이다. 뇌도 신경도 없는 식물은 사랑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사랑 같은 게 없어도 빛과 물만 있으면 그것을 식량으로 하여 얼마든지 성장하고 살아갈 수 있다. 먹을 것이 있다는 것만으로는 결코 만족하지 못하는 인간과는 '산다'는 것의 의미가 전혀 다른 것 같다. 아무리 연구해도 넘을 수 없는, 식물과 인간 사이에 패여 있는 깊은 틈을 느낀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식물의 신비를 연구하는 것은 인간의 신비를 아는 것과 통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마치 식물이 사람의 모습과 행동과 사랑을 바라보며 "너희들은 어떤 생물이지?" 라고 질문을 던지는 것 같다고나 할까. (p. 229~230)

모토무라가 식물에 대해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은 읽으면서 공감되는 부분이 많다. 나는 살면서 점점 더 식물의 위대함을 느낀다. 나이들수록 식물의 생명력에 놀라움을 느끼곤 한다. 어떻게 자신의 번식환경을 알고 계절을 알고 생체리듬을 조절할까... 시간의 흐름에도 계절의 흐름에도 무뎌져 갈때 식물이 알려주는 그 흐름들은 생각없이 그저 살아지는 시간속에서 깜짝 깜짝 놀라게 하는 각성을 주곤 한다. 하지만 모토무라가 연구하는 내용이 자세히 서술될때마다 내가 지금 연구서 혹은 논문을 읽고 있는 건가 싶으면서 머리가 핑핑 돌기도 한다;;;

실험에 짜인 줄거리는 없어. 연구에 기일 같은 건 없어. 깜빡 실수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선입견 없이 잘 관찰하고 성실하고도 공정하게 계속 사실을 기록한다. 실패로 끝난다고 해도 생각을 거듭해서, 이 세계의 이치에 조금씩 다가가기를 계속한다. 자신의 수명이 다하는 날까지 "왜" 라고 질문을 던지며 수수께끼의 근본을 향하여 계속해서 연구한다. 그것이 실험이며 연구다. (p. 349)

모토무라의 성장은 일본의 순수과학 연구자들의 시간을 엿보게 한다. 실생활에 바로 적용되지 않는 학문이라 할지라도 이렇게 온 생을 다 바쳐 오로지 탐구정신 하나만으로 연구에 몰입하는 과정은 일본에 노벨상이 그렇게 많았던 이유를 설명해주고 있는 느낌도 든다. 일본인들 특유의 내적지향성이랄까 여튼 약간 비사교적으로 보이는 성향도 조금 느끼게도 한다. 그렇게 내가 지금 소설을 읽고 있는 것인지 무엇을 읽고 있는 것인지 헤깔릴때가 종종 있다;;;

신기하다고 생각한다. 언어도 없고, 기온이나 계절이라는 개념조차 없는데도, 식물은 정확히 봄을 알고 있다. 온도계나 일기장을 사용하지 않고도, '이건 초겨울의 따듯한 날씨가 아니라 진짜 봄이다. 슬슬 여느 해와 같이 활발하게 생명 활동을 할 시기가 왔다' 라고 판단하고 기억한다. 반대로 인간은 뇌와 언어에 지나치게 사로잡혀 있는 건지도 모른다. 고뇌도 기쁨도 모두 뇌가 내놓은 것이고, 그것에 휘둘리는 것은 물론 인간이기에 맛볼 수 있는 묘미겠지만, 관점을 바꿔놓고 보면 인간은 뇌의 포로라고 할 수도 있다. 실은 화분의 식물보다도 더 좁은 범위에서밖에 세계를 인식할 수 없는, 자유롭지 못한 존재. (p. 352)

모토무라는 반성했다. 꾸준하게 한 발 한 발 살피며 나아가는 것을 장점으로 삼은 나머지, 지나치게 방어 자세가 되어 있었다. 실점이 없게 신중하게만 하려고 한 나머지, 무엇이든 자신이 직접 파악하고 통제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빈틈없이 하려고만 하다 보니 너무 작아졌다. (p. 359)

실험이란, 식물이란, 이 얼마나 흥분되는 일인가. 이제 그만둘 수 없을 것 같다. 그만두고 싶지 않다. 사는 것을 그만둘 수 없듯이, 학부생 때 '왜?' '알고싶어' 하며 묻고 바랐던 것은 낭비도 잘못도 아니었다. 나는 알고 싶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지구 위에서 나와 함께 살고 있는 신기하고 매력적인 존재, 식물을 알고 싶다. 앞으로도 계속 알아가기 위하여 연구자로 살아갈 거다. (p. 406)

 

모토무라가 인간이 아닌 식물을 사랑한다고 해서 뭔가 계기가 된 사연이 있는 것은 아니다. 평범한 학창시절과 무난한 집안 배경을 가진 사람이다. 그저 어렸을 때부터 식물을 좋아하고 집요하게 파고드는 성향을 타고난 사람일 뿐이다. 하지만 모든 연구원들이 다 그렇게 연구만을 위해 살고 그외 모든 관계들에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것은 아닐텐데... 마쓰다 연구실 에서 식물연구를 하는 사람들은 전부 다 오로지 식물만을 생각한다. 아무래도 인간중에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연구원이 되기 위해 태어나는 사람이 존재하는가 보다.;;;

그렇게 모토무라의 실험일기가 소설의 반이 넘게 서술되다가 끝에 가서 화자가 다시 후지마루로 바뀌는데, 그 계기는 두번째 고백을 하고 두번째로 차이면서 부터다.

모토무라를 이해하기 위한 후지마루의 시간은 흡사 인간애를 통달하는 득도의 입장을 갖게 하는 느낌이다. 착해도 착해도 너~~~무 착한 거지.

그래도 후지마루는 이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마쓰다 연구실에 출입해왔다. 그동안 알게 된 것은 '이 사람들은 식물과 식물 연구를 지나치게 좋아해' 라는 것이다. 아마 연구자의 연인이나 가족은 '이 사람, 또 다시 뭔지 영문을 알 수 없는 연구에 빠져 있어' 라고 어이없어 할 때가 있지 않을까. 그 정도로 가까운 사이가 되어보지 못한 후지마루로서도, '정말인가. 내가 모토무라 씨 안에서는 식물보다도 아래인 거냐' 라고 생각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식물과 인간을 놓고 인간이 식물보다 당연히 위라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식물 연구자라면, 점심 식사를 배달하는 근처 식당의 종업원과 식물 중에서 식물 쪽에 더 많은 시간과 주의를 기울이는 건 당연한 일이다. 으흐흑, 역시 사랑의 패잔병은 괴롭다. 그러나 후지마루는 모ㅌ무라가 이야기하는 애기장대에 대한 이야기를 얌전히 경청한다. 그것이 모토무라의 성의라는 걸 잘 알고 있고, 무엇보다도 후지마루 자신이 애기장대를 비롯한 식물과 식물에 대한 연구를 점점 더 좋아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p. 415)

후지마루는 굉장히 낙천적이다. 사랑의 패잔병은 괴롭다면서 전혀 괴로워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모토무라에 대한 관심도 사그라들줄 모른다. 요리에 대한 열정은 모토무라의 식물에 대한 열정과 동급이다. 둘은 자신들의 분야에서 성장 중이다. 다만 그 성장의 길이 열차의 선로처럼 일정한 간격을 유지한채 평행선으로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랄까...

잘 말할 수 없어서 답답하다. 모토무라는 잠자코 후지마루를 바라보고 있다. 후지마루는 필사적으로 생각을 말로 그려내보려고 했다.

"그 열정을, 알고 싶은 마음을, '사랑' 이라고 하지 않나요? 식물에 대해서 알고 싶어 하는 모토무라 씨도, 이 교실에 있는 사람들이 알고 싶어하는 대상인 식물도, 모두 같아요. 사랑으로 연결되어 있는 세계를 살고 있어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아닌가요?" (p. 457

"가끔 생각해요. 식물은 광합성을 하며 살고, 동물은 그 식물을 먹고 살고, 그 동물을 먹고 사는 동물도 있고..... 결국, 지구상의 생물은 모두 빛을 먹고 살고 있구나 하고요" 웃음 짓는 모토무라의 눈에는 희망을 닮은 빛이 비쳤다. (p. 458)

우리는 모두 빛을 먹고 살고 있다. 언젠가 죽어서 흙이나 재가 되어도, 인류가 멸종되어도, 지구 위에서 분명 앞으로도 빛을 먹고 사는 생명의 순환이 계속될 것이다. 정말로 신기하다. 각각의 생명체가 갖고 있는 정묘한 매커니즘이. 식물이나 동물은 왜 태어나는지, 태어났는데 왜 또 모두 죽음을 맞이하는지. 그리고 가는 길에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데도, 왜 모두 어둠이 아니라 빛을 식량으로 살아 가는지.

후지마루는 행복한 기분이 되어 잠든다. (p. 459~460)

 

이해함으로써 편안해 지는 걸까... 이해하면 사랑의 실패는 상처가 되지 않는 걸까... 상처가 되지 않을만큼만 사랑한 걸까... 이해하기에 그냥 그 상태로도 사랑할 수 있는 걸까... 사랑이긴 한걸까... 사랑이란 무엇인 걸까... 후지마루는 왜 행복한 걸까;;;

식물소설이다 보니 식물에 대해 새로 알게 된 내용도 있었는데, 버섯과 딸기에 대한 내용이었다.

어디서부터가 시물이고 어디서부터가 인간을 포함한 동물인지 엄밀히 선을 긋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유전학에 근거하여 조사한 결과, '움직이지 않으니까 식물이다' 라고 생각되어왔던 버섯이 진화의 코스로 볼 때 동물에 가까운 종으로 판명됐듯이, 현재로서 식물 연구는 '생물학' 혹은 '생물과학' 이라는 큰 묶음 속에서 보는 경우가 많다. (p. 153)

"그 씨앗 같은 거, 그게 실은 열매야. 딸기의 씨앗은 그 씨앗같이 보이는 것의 속에 들어 있어" (p. 242)

 

남자 주인공이 식당종업원이다 보니 음식에 대한 느낌도 빼놓을 수 없는데, 개인적으로 "계속해보겠습니다" 라는 황정은 소설이 생각났다. 3명의 주인공 중 한명인 남자주인공이 작은 식당을 하고 음식을 만드는데 그 소설에서도 음식은 따듯함의 상징이다. 후지마루의 음식도 비슷하다. 많은 소설에서 음식은 따듯하고 그리운 무언가를 담은 것으로 표현되지만, 음식에 큰 관심이 없고(하지만 잘 먹고 많이 먹는다;;;) 그런 느낌의 음식에 대한 기억이 없는 나로서는 음식이 꼭 그래야 하나 싶기도 했다.

직접적인 대면관계보다 온라인상에서의 비대면관계가 늘어가는 사회 속에서 그러한 비대면관계에 익숙한 밀레니얼 세대가 요즘 관심을 높여가는 분야가 집에서 키우는 식물이라던데.. 그래서 단순히 식물을 키우는 방법보다는 식물을 통한 감상을 담은 에세이들이 최근 많이 나오고 있는데... 이 소설도 그런 흐름의 연장인 걸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 소설은 일종의 청정소설 이다. 깨끗하고 순수하고 맑고 투명한 청정 그자체로 시종일관 굴곡없이 평온하게 흘러간다.

이 소설은 굉장히 착한소설 이다. 인물도 착하고 배경도 착하고 내용도 착한 더이상 착할 수 있나 싶게 착하디 착한 소설이다.

'사랑 없는 세계' 라는 제목에서 약간 비운의 사랑을 예감했는데 의외의 사랑이 펼쳐져서 신기해하며 읽은 작품이다. 이런 소설도 가능하구나 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 묘한 소설이다.

식물 가득한 표지그림이 마음에 들었는데, 다 읽고 나니 이 책의 진정한 주인공들이 그려져 있는 표지였다. 딱 하나, 선인장이 빠진게 아쉽다. 둥근 선인장이 꼭 그려져 있어야 할 것 같은데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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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의 왕
니클라스 나트 오크 다그 지음, 송섬별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9년 12월
평점 :
절판


<레미제라블>과 <양들의 침묵>의 환상적인 만남

인간의 탐욕과 원초적 본성을 파헤친 스웨덴판 셜록 홈스



프레데릭 배크만의 작품들을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었는데, 그가 극찬한 놀라운 데뷔작 이라고 해서 관심이 갔던 책이다.

저자의 소개글을 보니 1979년생인 작가가 2017년 발표한 데뷔작인데, 출판되자 마자 흥행한 책이라고 한다. 후속작인 <1794> 또한 2019년에 출간되자마자 여러나라에 판권이 팔렸다는데, 책을 읽고나니 왜 그런지 알수 있었고 후속작도 어서 번역본이 나왔으면 바라게 되었다. 데뷔작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완성도 높은 대단한 작품이었다.


사족으로... 저자의 이름이 '니클라스 나트 오크 다그' 인데 '밤과 낮'이라는 의미를 지닌 '나트 오크 다그' 는 현존하는 스웨덴 최고의 귀족가문으로, 이 성은 가문의 문장인 금색과 푸른색으로 위아래가 나뉜 방패에서 유래했다는 설명이 저자소개에 함께 씌여 있는 것을 보고 굳이 이 부분을 알려야 했을까? 싶으면서 유럽에서 귀족가문이란 여전하구나 싶기도 하고 기분이 묘했다. 여하튼, 귀족가문에 걸맞은?! 품격?!있는 작품이긴 했다.


이 소설의 원제인 <1793> 년은 유럽에서 혁명의 시기였다. 귀족에게나 서민에게나.

하지만 스웨덴에서는 혁명이 없었다. 1789년 프랑스에서 혁명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을때 스웨덴은 주춤했던 왕정이 복구되었고, 제1차 2차 세계대전으로 유럽의 권력이 재편될때 스웨덴은 철저히 중립을 지키며 전쟁에 참여하지 않으면서 권력재편이 전격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현재 입헌군주제를 유지하는 국가로서, 대세에 따라 왕이 존재하되 통치하지 않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왕권은 약화되었다. 그러나 혁명으로 역사가 뒤집어진 것은 아님을 이 책을 읽은 후 이런저런 검색을 하면서 알았다. 스웨덴의 역사를 조금 알고 나니 작품 속에서 혁명의 기운이 사그라들었던 정황이 좀더 복합적은 의미로 다가왔다.


책의 시작에 앞서 소설의 배경이 되는 마을지도가 나오는데, 지도를 보고 있자니 정유정 작가가 생각났다. 지도로 시작하는 정유정 작가의 소설은 탄탄한 구성을 자랑하는데, 이 소설도 그런 면에서 비슷했다. 프레데릭 배크만의 책을 읽으며 스웨덴 소설 정서가 한국인 정서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었는데, 이 소설을 읽고나니 서양소설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위화감 없이 읽히는 것이 점점 더 스웨덴 소설에 흥미가 생긴다.


소설은 총 4부로 구성되는데 1부 1793년 가을 살인사건이 발생한 시점에서 2부 1793년 여름 사건 전의 시점으로 갔다가 3부 1793년 봄으로 더 거슬러가서 사건의 외적인 상황들을 서술하면서 여름 가을을 거쳐 자연스럽게 4부 1793년 겨울로 이어진다.

출판사의 홍보문구 처럼 혁명의 기운을 품은 시절 빈민촌, 경찰, 가짜이름 등은 레미제라블을 떠올리게 하고, 감금, 폭행, 살인, 싸이코패스 등은 양들의 침묵을 떠올리게 하며, 두 명의 남성이 주체적으로 사건해결에 나선다는 점에서 셜록 홈스를 생각나게 하지만, <늑대의 왕> 은 그 작품들과 달랐다. 매번 예상을 뒤엎는 독특한 추리소설이었다. 역사소설이 아닌데 역사를 알게하고 로맨스 소설이 아닌데 사랑의 감정이 내내 흐르는 묘한 스릴러 였다.


1793년 스톡홀름의 온갖 쓰레기가 떠다니는 호수에 팔다리가 절단된(심지어 혀가 잘리고 눈까지 파내어진) 시체가 떠오른다. 그리고 이 사건은 경찰청의 사정상 청장의 친구인 변호사 세실 빙에 에게 의뢰된다. 그리고 세실 빙에는 시체를 건져낸 방범군 미켈 카르델에게 공조할 것을 요청한다. 모든 것에서 이성적인 빙에와 달리 카르델은 모든 상황에서 주먹이 먼저 나가는 타입이었다.


시계를 완전히 해체한 뒤, 그는 모든 작업을 역순으로 반복했다. 손을 떼자 익숙한 째깍째깍 소리가 나기 시작했고, 그 순간 지난 여름 이래 백 번째로 그는 생각했다. 세상은 바로 이렇게 돌아가야 한다. 이성적이면서도 이해 가능한 방식으로. 모든 부품들에 제자리가 있고 그 부품들의 궤적은 어떠한 영향을 남길지 정확히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p. 21)


세실 빙에는 이런 사고방식의 사람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그의 생각처럼 돌아가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는 현재 페결핵 환자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태였고 아내가 있는 집을 떠나 혼자 병증을 견디며 하루하루를 버티는 중이었다. 그래서 삐쩍 마르고 창백한 그는 '인데베토우의 유령' 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인데베토우는 치안본부다. 우리네 경찰청)


빙에는 마음을 다스리려 눈을 감았다. 잠시간 그의 의식은 완전한 침묵 속 책들이 질서정연하게 꽂혀 있는 정신 속 도서관으로 이동했다. 그는 오비디우스의 책 한권을 뽑아 아무 페이지나 펼치고 읽었다. '옴니아 무탄투르, 니힐 인헤리트' 모든 것이 변하지만 사라지는 것은 없다. 위로를 주는 말이었다. (p. 24)

"빙에 씨, 혹시 '호모 호미니 루푸스 에스트' 라는 말의 의미를 아십니까"

"플라우투스가 포에니전쟁에서 남긴 말이지요. '사람은 만인에게 늑대다" (p. 92)

"한때 저에게 그리스 고전에 정통한 개인교사가 있었습니다. 지팡이를 아주 교묘하게 쓰는 바람에 저는 아이스킬로스를 탐구하며 상당히 오랜 시간을 보냈지요. 에우메니데스라는 이름을 우리말로 번역하면 '자비로운 이들' 입니다. 신화에서는 현명한 자들이 복수의 세 여신인 에리니에스의 분노에 사로잡히지 않고자 그들을 그런 이름으로 불렀다고 합니다" (p.123)


서양인들의 작품에서 그리스로마고전이 인용될 때마다 얘네들은 기원전 것을 대체 얼마나 우려먹는 건가 싶으면서도 여전히 인용될 만큼 완성된 작품들을 그 옛날 부터 익혀온 것이 부러워지기도 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그리스고전을 좋아하다보니 반가운 마음이 앞선다. 또한 서양역사를 순차적으로 읽는 중이다보니 라틴어 고어와 역사에 대한 인용에서도 역시나 반갑다. 왠지 그냥. ㅋㅎㅎ


당신이야말로 진짜 늑대입니다. 지금까지 본 것만으로도 당신이 늑대인 건 분명하지만, 만에 하나 제 짐작이 틀렸다 해도 당신은 조만간 완연한 늑대로 다시 태어날 겁니다. 늑대 무리와 함께 달리려면 늑대들의 법칙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걸 명심하십시오. 송곳니가 생기고, 포식자의 눈빛을 띠겠지요. 피에 굶주린 본능을 거부하려 아무리 노력해도 당신 주변에서 피 냄새가 악취처럼 피어오를 겁니다. 시간이 흐르고 당신의 이가 피로 벌겋게 물들고 나면 당신도 내 말이 옳았단 걸 알게 될 겁니다. 당신의 송곳니는 깊이 파고들 겁니다. 어쩌면 당신이 둘 중 더 힘이 센 늑대가 될지도 모르지요. (p. 96)


수사하면서 만난 한 영국상인은 빙에를 보고 늑대라고 말한다. 힘센 늑대같은 살인범보다 어쩌면 더 힘센 진짜 늑대라고.

소설속에서 늑대같은 야만성과 폭력성을 가진 사람들이 여럿 나오지만, 그 어떤 폭력적 수단을 단 한번도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냉철한 이성으로만 판단하는 빙에를 보고 소설 초반에서 이미 진짜 늑대라고 한다. 읽는 내내 빙에는 늑대같은 모습을 한번도 보여주지 않지만, 영국상인의 말은 소설의 마지막 문장에서 묘하게 실현된다.


"오늘 아침 눈을 뜨는 순간부터 운수가 좋을 것 같더라니" (p. 150)


크리스토페르 블릭스는 17살의 청년이다. (이 시절 유럽에선 이 나이면 군대도 갔다오고 결혼도 하는 그런 나이였다;;;) 왕이 벌인 명분없는 전쟁의 참상에서 살아남아 스톡홀름에 온 이 순진한 시골청년에게 친구인 쉴반 은 빚으로 빚을 갚는 사기꾼으로서의 삶을 알려준다. 그리고 아침에 눈을 뜬 순간부터 운수가 좋을 것 같던 그날부터 둘의 인생은 꼬이기 시작한다. 그날의 행운으로 쉽게 번 돈은 나중에 목숨빚으로 돌아오게 된다.


'돈을 좀 꾸어주십시오' 그말에 나는 당황했지. '여윳돈이 있기는 하지만 왜 하필 나를 찾아왔지?' 그러자 청년이 이러더군. '유태인이시니까요' 블릭스, '유태인' 이란 수백 년 전부터 고리대금업자를 가리키는 말로 쓰였지. 그전까지 내가 살면서 단 한번도 남에게 돈을 꾸어준 적 없다는 사실은 그래서 아무런 상관도 없었어. 내가 유태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누구든지 나에게 돈을 꾸러 왔고, 돈을 빌려주는 게 유태인의 본성이라고 믿었기에 감사조차 표하지 않았어. 나를 찾아온 사람들은 돈이 필요할 때는 그렇게 재빠르더니 내가 동정심으로 빌려준 돈을 갚을 땐 그렇게 굼뜰 수가 없었어. 그러다 이게 내 직업이 되었다는 걸 깨달았어. (p. 187)


사기는 사기에 의해 망하고, 엄청나게 불어난 빚 때문에 청부업자에게 쫒기다 잡혀 간 곳에서 채권자는 블릭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서양소설에서 유태인에 대한 묘사는 이상할정도로 한결같다. 잔혹한 고리대금업자. 그런데 이 고리대금업자의 운명론적 직업론은 이 소설속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통한다. 그들의 삶도 다르지 않았다. 어쩔수 없는것 같으면서도 그렇지 않은 묘한 논리랄까. 이 논리에서 벗어나는 인물이 딱 셋인데 빙에, 카르델 그리고 안나 다. 채권업자에게 잡혀 팔려간 곳에서 블릭스는 괴물의 지시를 받아 괴물같은 짓을 하게 된다.


이 저주받은 시대에 그녀는 아이를 낳을 것이고, 사내아이인지 여자아이인지 모르는 이 아이를 그녀는 길러낼 것이다. 이 아이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를 것이다. 건강하게 자라서 세상을 불의도 악의도 없는 곳으로 만들 것이다. 이 아이가 자라서 또 아이를 낳고 그 아이들이 대를 이어 어려운 싸움을 계속할 것이다. 이 아이가 바로 증오로 가득한 이 세상을 향한 그녀의 복수가 될 것이다. 사내아이라면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이름을 따 칼 크리스토페르 라고 이름을 붙일 것이다. 여자아이라면 이제는 존재하지 않으나 영영 잊히지 않을 사람의 이름을 따서 안나 스티나 라는 이름을 갖게 될 것이다. (p. 329)


홀어머니 밑에서 가난하지만 깨끗하게 살아온 안나는 열병으로 어머니를 잃고, 자신을 범하려던 청년의 부모에 의해 창녀로 고발된다. 당시는 동전 몇푼이라도 벌기 위해 몸을 파는 창녀가 넘쳐났고, 그 창녀들을 잡아다가 교화소에 넘긴다는 명목으로 폭력이 횡행했고, 그렇게 잡혀간 교화소에서 또다시 매춘과 폭력에 짓눌리다 삶을 마치게 되는 인생이 흔한 시대였다. 안나는 매춘을 하지 않았으나 매춘을 한다는 명목으로 고발당했고 교화소에 넘겨졌고 폭력에 내몰렸다. 끝까지 지켜온 순결을 결국 교화소에서 잃었고 그렇게 잉태된 아기를 그녀는 없애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탈출했고 블릭스를 만났다.


세실 빙에는 몇 시간 전 카르델에게 털어놓은 비밀을 다시 떠올리고 있었다. 현장에 빙에가 나타났을 때 화를 낸 것은 그가 아니라 아내였다. 빙에는 오로지 하염없는 슬픔밖에는 느끼지 못했는데 그 사실이 아내의 화를 더 돋우는 것 같았다. 당장 하사를 침대에서 끌어내리고 피투성이가 될 때까지 두들겨 패면서 격한 감정을 드러냈어야 했을까? 그러나 빙에는 폭력이 이성에 앞서는 일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 와 생각하니 어쩌면 사랑은 어느 지점에서 폭력으로 바뀌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빙에가 가 닿을 수 없는 지점이었다. 저 멀리서 달을 보고 울부짖는 외로운 울음소리가 들렸다. 조지프 대처가 남긴 마지막 말이 떠올라 빙에는 몸을 떨었다. '당신이야말로 진짜 늑대입니다... 시간이 흐르고 당신의 이가 피로 벌겋게 물들고 나면 당신도 내 말이 옳았단 걸 알게 될 겁니다' (p. 390)


빙에는 카르델과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와중에 다양한 것을 알게 된다. 귀족들의 추악한 습성과 군인들의 의미없던 죽음과 왕정에서 벌어지는 숨겨진 권력다툼과 그리고 사랑에 대하여... 그가 범인을 찾아갔을 때 범인은 빙에를 환영하며 자백한다. 넓다 못해 광활한 영지위에 쓰러져 가는 저택에서 철저히 혼자 살던 괴물에게도 사랑이 있었다.


늑대들로 가득한 세상에서 당신만큼은 예외입니다. 시대를 잘못 타고난 우월한 종류의 인간이지요. 누구나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와중에 당신은 정의와 이성을 수호하고자 하니까요. '엑스트라 포스텐'에서 당신의 이름을 맞닥뜨리고 당신이 누구인지 알게 된 순간 제게는 모든 것이 분명해졌습니다. 제 여정이 끝나는 자리에 당신을 데려다놓은 것은 신의 섭리입니다. 당신은 언제나 피고인으로 하여금 자신의 입장에서 진술할 기회를 주는 것으로 유명하지요. 그러니 제가 진술을 마친 이후에 일어나게 될 일은 제 책임인 동시에 당신이 이룬 일이기도 합니다. (p. 438)


나는 범인에게 속았다. 소설을 읽는 내내 내 예상은 매번 틀렸다. 귀족들의 음탕하고 잔혹한 사건인가 싶다가 아니었고 도와주지 않을 것 같은데 도와줬고 이사람들이 이렇게 살수 있나 싶은데 살았다. 범인은 자신의 괴물적 범죄를 시대적 혁명의 불씨로 만들고자 했다. 감히!. 하지만 빙에는 진실을 꿰뚫었고 범인에게 속지 않았다. 하지만 그 사실이 묘하게 기쁘지가 않다.


북쪽 광장은 눈에 덮인 채 방치되어 있었다. 광장 한가운데에는 구스타프 아돌프의 새 동상이 꽝꽝 언 덮개로 감싸인 채, 완성되어 공개되기를 이 년째 기다리고 있었다. 이 동상이 왕조의 첫 기마상이 될 것이라고들 했다. 빙에는 멈춰 선 채 덮개에 가려져 형체를 알기 힘든 이 동상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유령 같은 윤곽선을 가진 이 동상은 마치 요한테스 발크가 감라스탄에 풀어놓고자 하는 죽음의 신이라도 되는 듯 광장 한가운데 위협적으로 우뚝 솟아 있었다. (p. 451)


역사에서 혁명이 항상 올바른 불씨로 시작됐던 것은 아니다. 역사는 우연적 발화로 필연적 사건이 만들어지곤 했다. 유럽 대륙이 혁명으로 들끓을때 스웨덴의 기울어져 가는 국력과 처참한 국민들의 생활 사이에는 혁명의 기운이 퍼지고 있었다. 누군가 성냥불만 켜도 산불이 일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디서도 불씨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죽음의 신을 불러들이는 것이 옳았을지 아니었을지 빙에는 선택했지만 나는 여전히 선택할 수가 없다. 무엇이 더 나았을까...


'난롯가의 불빛 속 미켈 카르델을 돌아보며 미소 짓는 빙에의 이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라는 마지막 문장은 이 작품의 가장 뒤통수치는 격의 반전 문장이었다. 자신의 피로 물든 늑대는 과연 늑대인가? 이 소설 속에서 진짜 늑대의 왕은 누구였을까? 세실 빙에였다고 확답을 할 수 없다는 것이 이 소설의 매력 중 한가지다. 이 작품은 그 무엇으로도 규정하기 어려운 의문들을 남기는 기묘한 소설이었다. 그리고 멋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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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생 공부법 - 입시 위너들의 단기간 고효율 학습 노하우
박동호.김나현.이기준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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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 위너들의 단기간 고효율 학습 노하우

'열심히' 하는 것과 '잘' 하는 것은다르다

어떤 시험에서도 최상위권의 성적을 얻는 비법

 

 

수험생도 아닌데 봐야할 시험이 있는 것도 아닌데 딱히 목표의식적인 공부를 하고 있는 것도 없는데 공부법 책을 읽다니 내가 선택해놓고나서도 웃음이 났다. 그래서인지 의외로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다. 수험생들에게 공부열심했던 선배들이 진심을 다해 조언해주는 교양프로그램을 보듯이, 공부하려는 학생도 공부법을 알려주는 학생도 그 노력이 예뻐서 보는 내내 미소를 지으며 흐뭇하게 ㅎㅎ

이 책의 저자 3은 현재 의대 본과생인 학생들이다. <의대생 TV> 유투브 채널을 운영하며 만난 사이로 각자의 공부비법과 과외나 학원에서 가르쳤던 경험을 모아모아 공부법을 정리했다. 의대생이 되기위한 공부법이자 의대생들이 쓴 공부법이기도 한 것이다.

저자는 공부의 왕도는 없지만 효율적인 공부법은 분명 있다며 어떻게 하면 자신에게 가장 효율적인 공부법을 찾아내고 이를 통해 성과를 거둘수 있을지를 찾아내는 과정중에 이 책의 내용들을 참고해볼 것은 권한다.

저자가 3명이라서인지 본문도 3장으로 구성되는데, 2장의 스터디 플래너의 경우 확실히 여학생에게 유리한 방법임이 눈에 확 들어왔다. 그 꼼꼼한 플래너 사진들을 보며 감탄을 하면서 2명의 남학생과 1명의 여학생인 저자중 이 플래너를 누가 썼는지 확연히 알 수 있었다. 정말 대단하다는 말 밖에는 ㅎ

1장의 핵심은 근성과 끈기다. 의대생의 공부법이 특별하다기 보다는 꾸준한 노오오오력 이 돋보였다. 1장 뒤의 학습자료실 에서는 다양한 추천영상과 추천교재 그리고 이런저런 Tip 들을 알려주고 있었는데, 학생들이 보면 아주 쏠쏠한 자료가 될 듯하다.

2장의 핵심은 계획과 실천이다. 그 방법이 스터디 플래너 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저자가 알려주듯이 플래너는 다이어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학습의 도구로서 몇분의 시간으로 플래너를 활용해야지 꾸미는 목표로 다이어리화 하면 안된다. 각자의 스타일에 맞게 계획-실천-평가 를 스스로 실천하는 데 유용하기는 하지만 (여학생과 남학생을 성별로 나누어서는 안되지만 현실에서 어쩔수 없이 눈에 띄는데로 판단해보자면) 꼼꼼하지 않은 남학생들은 사용이 어려울 수도 있어 보인다.

3장의 핵심은 효율 이다. 공부에 집중하는 법, 암기하는 법, 멘탈 관리하는 법 등 저자들이 공부하면서 사용했던 방법들을 알려주면서 자신에게 맞는 효율적인 공부법을 찾아낼 것을 조언한다.

이 책은 물론 여러 경로를 통해 제시되는 공부법들을 옷으로 말하면 기성복과도 같다. 기성복은 대다수 사람들의 체형을 고려해서 만들어지는데 사람마다 체형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딱 맞는 기성복을 고르기는 어렵다. 하지만 브랜드의 특성을 알면 어떤 브랜드가 대체로 내 몸에 잘 맞는지를 알고, 그래도 필요한 부분은 수선을 맡긴다든지 해서 내 몸에 딱 어울리는 옷을 만들 수 있다. (p. 248)

공부법도 마찬가지다. 시중에 널려 있는 것이 온갖 공부법들을 담고 있는 책들이다. 이책도 읽어보고 저책도 읽어봤지만 그래도 여전히 공부법이 담긴 책을 찾아 읽는 학생이 있다면 아마도 작심삼일식으로 실천해 봤기 때문이 아닐까? 자신에게 맞는 공부법, 자신에게 효율적인 공부법은 결국 자기자신만이 알아낼 수 있다. 공부법을 담은 책들이 완벽한 꿀팁들을 알려줄 것이라 생각지 말고 책의 도움을 조금 받아 꾸준하게 실천해나가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내가 학생때 이 책을 읽었다면 어땠을까? 공부를 더 잘 했으려나~

인생을 좀 살고 나면 공부비법이 아니더라도 자신이 잘하는 부분에서 자신만의 비법을 만들게 되기 마련이다. 내가 지금의 내 상황과 관련없는 이 책을 읽으며 여유있게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것도 다 이런 연륜때문이 아니겠나 싶다. 그리고 꼭 공부비법이 아니더라도 그 마음과 자세는 다시한번 복습할 수 있기도 했다. 자신에게 떳떳에게 열심히 하면 뭐가 되도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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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심리학 - 마음과 행동을 결정하는 사회적 상황의 힘
로버트 치알디니.더글러스 켄릭.스티븐 뉴버그 지음, 김아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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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과 행동을 결정하는 사회적 상황의 힘

생각과 감정, 행동을 지배하는 인간관계의 과학

사람의 심리와 행동을 가장 넓게 탐구하는 '심리학의 제왕'

사회심리학의 100년 연구를 집대성한 우리 시대의 고전

 

이 책은 기본적으로 전공서적이다. 대학 강의실에서 교수가 학생들에게 강의할 때 사용되는 전문 학술 도서인 셈이다. 하지만 사회심리학 전공 도서라면 예외일 수 있다. 사회심리학이라는 분야 자체가 심리학으로 한정 짓기에는 다루는 영역이 너무나 넓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회에 대해 궁금한 이들이라면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게 바로 사회심리학이다.

전공 서적 같다는 선입견만 버리시라. 그럼 그 열매는 인생에 두고두고 남을 만큼 달콤하고 귀할 것이다. 나 역시 이 책을 밑줄을 그어가며 몇 번이나 탐독했는지 모르겠다. 이런 책에는 무작정 추천한다는 건방진 말 대신, 세상에 나와주어 고맙다는 진심 어린 감사의 말을 전해야 한다. -추천사 中

 

방송이나 강연에서 얼굴을 익힌 김경일 교수가 극찬을 하는 책이기에 궁금했다. 그의 강연을 재밌게 들었었기에 호감이 생겼었다. 추천사 첫문장에서 이 책은 전공서적이라고 대놓고 무게감을 주는 듯 하지만 추천사 말미로 갈수록 그런 선입견을 버리고 인생책으로 두고두고 곁에 두고 읽으라며 강추하는 이 책은 과연 어떤 책일까 기대감이 올라갔다.

이 책은 사회심리학이라는 분야에 통합적으로 접근하는 틀을 제공함으로써, 독자들에게 무질서 속의 질서를 발견하는 지적 유희와 사회를 읽는 안목을 선사한다. (p. 11)

사회심리학은 '지상 최대의 쇼' 라기보다 놀랍고 논리적이며 유익하기까지 한 '지상 최대의 이야기'라고 할 만하다. 독자들도 이 말에 동의할 수 있기를 바란다. (p.15)

 

서문에서 밝히는 저자의 의도는 이 책을 덮고 날 즈음 확실하게 재확인된다. 700여 페이지의 하드커버인 이 책을 다 읽고나면 사회심리학이란 무엇인지 약간은 감이 잡히는 기분이다. 그리고 전공서적으로서도 기초와 구성이 탄탄하지만 일반 대중이 읽기에도 무리가 없는 책임을 (다만, 두께가 두께이니만큼 시간은 꽤 걸린다;;;;) 깨닫게 된다. 사람 과 사회 를 연구하는 심리학 은 곧 우리의 일상이 아니던가 ㅎㅎ

총 14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각 장마다 독립적으로 읽어도 무방하다. 각 장의 구성은 비슷한데, 유명사례를 통한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사람'-'상황'-'상호작용' 의 3단계로 풀어나가면서 학문적 용어와 연구결과들을 충분히 담고나서 요약으로 마무리한다. 그리고 이 요약 의 마지막 문장에서 다음 장으로 연결하는 한마디를 언급하는 센스로 각 장을 연결짓는다.

1장> 일상의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 에서 해리포터의 작가로 익숙한 이름 J.K롤링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녀는 가난하고 힘든 시절 속에서도 꿋꿋이 소설을 썼고 여러 출판사에서 거절당하다가 마침내 출판된 책이 대박을 터트려 백만장자에 올랐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갑자기 부를 획득했을때 그 부를 나눌 생각을 하지 않는데, 롤링은 시작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기부를 하고 있다. 기부를 너무 많이 한 나머지 <포천>의 억만장자 목록에서 빠질 정도였다고 한다. 그녀는 왜 그랬을까? 사회심리학은 이렇듯 사람을 이해하고자 하는 질문에서 비롯된다.

심리학자는 여러 명의 목격자가 있는 살인 사건을 맡은 수사관과 같다. 목격자 가운데 사건을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히 아는 사람은 없다. 눈이 먼 여성은 다투는 소리를 들었지만 누가 방아쇠를 당겼는지 볼 수 없다. 귀가 먹은 남성은 살인 사건이 일어나기 직전에 누군가가 방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았지만 총소리는 듣지 못했다. 아이는 그곳에서 보고 들었지만 세부 사항을 혼동하는 경향이 있다. 목격자들에게 문제가 하나씩 있지만 모두 집사가 범인이라고 입을 모은다면 총에 집사의 지문이 묻었는지 확인해 보는 것이 타당하다. 수사관과 마찬가지로 사회심리학자는 그 자체로 완벽하지 않지만 합쳐놓으면 흥미로운 사례가 될 수 있는 증거들과 항상 마주한다. 수사관은 증거와 직감 사이를 넘나든다. 즉 증거가 직감을 끌어내고, 그 직감이 새로운 증거에 대한 조사로 이끈다. 사회심리학자 역시 실험실과 실제 상황 사이를 오간다. 이렇게 다양한 증거를 결합해나가며 더욱 확실한 결론에 이른다. (p. 62)

'장님 코끼리 만지기' 라는 속담이 떠오른다. 다리를 만진 장님은 코끼리를 기둥같다 하고 코를 만진 장님은 코끼리를 관 같다 하고 배를 만진 장님은 코끼리를 벽 같다고 한다. 하지만 코끼리 그림 한장을 볼 수 있는 사람이 한명만 있어도 이 장님들의 말은 모두 사실임을 알 수 있다. 사회심리학자가 총합하는 사람과 사회에 대한 연구결과들도 이런 코끼리 그림 한장을 그려내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1장이 가장 전공서적같은 느낌을 주는데 39p의 사회심리학의 주요 이론적 관점을 정리한 표와 61p의 사회심리학의 주요연구방법을 정리한 표 때문이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그렇게 표로 정리해주니 훨씬 보기 좋았다. 이렇게 다양한 사회심리학의 원리들은 일상에서 사람들과 잘 지내는 법에 대한 단서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박식한 사람이 되도록 도와준다면서 이제 구체적인 사회심리학으로 들어간다.

2장>행동을 결정짓는 2개의 축, 사람과 상황 에서는 마틴 루서 킹 으로 질문을 던진다. 무엇이 평범한 그를 비범하게 만들었을까.

2장에서는 사회심리학자들이 '사람', '상황', '사람과 상황의 상호작용' 이라는 말을 어떤 의미로 사용하는 소개하면서 사람과 상황의 매혹적인 상호작을 탐색하기 시작하는데 이러한 기본적인 탐색틀은 마지막장까지 계속 사용된다. 그리고 사회적 행동을 이해하기 시작한 2장을 바탕으로 3장에서는 사람들이 자신의 사회적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탐구할 것임을 예고한다.

3장> 자신과 타인 이해하기 에서는 힐러리 클린턴 을 예로 든다. 너무나 상반된 평가를 받고 있는 그녀는 과연 차세대 리더일까 탐욕스러운 권력가일까

사회적 행동을 제대로 해석하기 위해서는 인지의 역할과 생각의 작용 원리를 알아야 한다. 하지만 가장 최근의 연구들이 생각의 작용 원리를 밝혀내면서, 우리는 사회적·문화적 존재로서 인간이 마주하는 복잡하고 매혹적인 난제들 역시 이해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사회심리학과 인지과학을 이어주는 연결 고리들은 그야말로 쌍방향 도로처럼 꾸준한 흐름을 양쪽에 전달해준다. (p. 164)

3장에서 내게 가장 유익했던 내용은 '자기통제감' 관련한 내용이었다. 자존감과는 또다른 '자기통제감'은 내게 사람을 이해하는 프레임을 조금 더 확장시켜 주었다.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는 기초를 마련했으니 이제 자신을 타인에게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4장> 자신을 어떻게 내보일 것인가 에서는 '프레드 데마라' 라는 희대의 사기꾼 을 통해 뭇 사람들이 마음을 훔친 사기꾼의 비밀을 캐보고자 한다.

프레드 데마라는 고등학교 중퇴자에 차를 훔친 도둑이자 군대에서 탈영한 도망자였다. 그런데 그는 20여년간 때로는 박사로 때로는 성직자로 때로는 의사로 때로는 교도관으로 행세하며 최고의 지위를 누리는 것을 의심받지 않았다. 심지어 그가 사기꾼이라는 것이 드러났음에도 다시 그 자리로 돌아와 일해달라는 요청이 있고 여전히 그를 사랑하다는 약혼녀가 있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저자는 데마라의 여정을 연구하면서 다른 학문분야와 연결된 사회심리학의 여러 측면을 발견할 수 있었다며 자연스럽게 다음장으로 넘어간다.

5장> 설득 메커니즘 에서는 저지르지도 않은 살인을 자백한 '피터 라일리' 사건을 예로 들어 어떻게 그런 자백이 가능했을지 질문한다. 이 사건은 우리나라 영화 '재심' 을 떠올리게 한다.

캐고, 캐고, 또 캐고, 취조관들은 온갖 방법을 동원해 라일리의 기억을 상기시켰다. 처음에는 희미하게 떠오르다가 나중에는 기억이 조금 더 생생해졌다. '정신적 장벽'을 깨부수도록 끈질기에 몰아붙인 조사관과 함께 라일리는 머릿속에 떠오른 장면을 살피며 살인 사건의 세부 사항에 들어맞는 행동의 과정을 짜 맞추었다. 여전히 구체적인 점들이 확실치 않았지만 끔찍한 범죄가 일어난지 약24시간 만에 마침내 피터 라일리는 자필 진술서에 서명하고 죄를 공식적으로 자백했다. 진술 내용은 조사관이 라일리에게 제시하고 라일리가 정확한 사실로 받아들이게 된 설명을 그대로 따랐다. 라일리가 취조받기 시작햇을 때는 조금도 믿지 않던 사실들이고, 나중에 밝혀진 사건들에 비추어보아도 진실과 너무나 동떨어진 내용이었지만, 진술서는 그렇게 작성되었다. (p. 217)

고문을 당하지 않았음에도 라일리는 그자신이 살해범이라고 믿게 될 만큼 설득에는 매커니즘이 있었다. 이 책의 각 장들이 대표적 에피소드로 시작하긴 하지만 본문은 그 에피소드를 풀이하는데 있지는 않다. 그보다는 그 기초적 질문에 답하기 위한 심리학적 개념과 연구결과들을 통해 사회심리학을 이해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에 이 책은 교재로서 효용성이 높다.

설득의 매커니즘을 설명하기 위해 태도의 속성을 고전적 조건 형성와 조작적 조건형성, 관찰학습, 유전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태도의 행동의 일관성을 높이는 4가지 요인으로 지식, 개인적 관련성, 태도 접근성, 행동의 의도를 설명하면서 태도를 이해한 후 설득이란 무엇인지 설명해나간다. 이 설득에 대한 내용에서 사회적 승인까지 연결되는 학문적 내용들은 모르지 않았던 내용임에도 학문적으로 접하는 체계성을 여실히 느끼게 해준다. 매 장들마다 다 그렇다.

저자는 자신들의 입장과 반대되는 정보를 본 다음에도 처음의 태도를 고수한 다른 경찰들의 특성에 대해 뭐라고 말해야 할까? 라고 물으며 굳이 하나 제안하자면 '인간' 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인간 에 대해서 다음장에서 파고든다.

6장> 사회적 영향력 에서는 사이비 종교에 빠졌던 '스티브 하산'의 일화로 시작한다. 사람들은 왜 사이비 종교에 빠질까?

사이비 종교는 하산을 전도해 끌어들이고, 신자로 보유하는 과정에서 하산이 집단의 바람에 순응해 사회적 승인 얻기 라는 목표를 달성하게 만들었다. 하산에게 영향력을 행사해 집단으로 끌어들이려 할때 사이비종교 신자들은 교단에 들어오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 내적 개입과 헌신을 할 수 있다고 설득하면서, 하산이 교단의 영향력에 순종함으로서 자아상 관리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하산은 이 종교에서 자신을 속이고 유해한 환경에 가두었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달은 후 사회복지에 헌신하는 삶으로 다시 나아갈 방법을 알게 되었다. 그후로 하산은 계속 자신의 이상에 헌신해왔다 전국적으로 유명한 사이비 종교 탈출 상담가로 급부상해 자신이 사용하는 효과적 기법을 설파하고 있다. 늘 그렇듯 정보를 실제로 적용하려 할 때는 새로운 지식을 우리 삶에서 어떻게 활용할지 과학적으로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 구체적 생각으로 다음 장에서는 '관계맺기' 에 대해 이야기 한다.

7장> 관계 맺기와 우정 에서는 달라이라마와 친구가 된 도망자 '하인리히 하러'의 일화를 소개한다. 인도의 영국인 포로수용소에서 도망쳐 나온 하러와 그의 동료 페터 아우프슈나이터는 걸어서 티베트에 다다랐고, 티베트 사람들이 살아있는 부처로 여기는 달라이라마가 사는 라사에 이르렀다. 모든 티베트인에게 존경받는 13세의 영적 지도자에게 티베트 사람들은 감히 접근하지 못했지만 이방인이었던 도망자 외국인은 친구가 되었다. 어떤 사람과는 친구가 되고 어떤 사람과는 친구가 되지 못하는 요인은 무엇일까?

저자는 관계맺기와 친구 관계에 대한 사회심리학의 연구는 금지된 도시의 어린 왕과 외국인의 우정 뿐만 아니라, 미시간주의 그랜드래피즈나 아칸소주의 리틀록처럼 멀지 않은 곳에서 친구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데 유용한 단서를 제공한다며 우정에서 사랑으로 넘어간다.

8장> 사랑과 낭만적 관계에서는 코끼리와 비둘기의 전쟁 같은 사랑이었던 프리다 칼로 와 리베라 디에고 의 사랑으로 질문을 던진다. 연인이나 부부가 지극히 행복한 관계를 지속하거나 그와 반대로 고통스러운 결별을 맞게 만드는 요소는 무엇인가?

인류역사를 통틀어 여성은 항상 후손에게 직접 신체적 자원을 제공해왔다. 여성들은 아기를 배속에 품고, 젖을 먹이고, 그 후에도 몇 년 동안 생존에 중요한 도움을 준다. 따라서 아주 오래전부터 남성들은 짝을 선택할 때 건강과 번식력을 따지는 편이 이로웠다. 이때 나이와 신체적 매력은 여성의 건강과 번식력을 짐작하게 하는 단서인 셈이다. (p. 393)

여성은 조금이라도 연상인 남성과 결혼하려는 경향이 있고, 남성은 10대이건 30대이건 60대이건 자신들의 나이에 관계없이 20대 여성을 선호한다. 왜냐하면 번식에 최적의 몸상태를 가진 연령대의 여성이기 때문이다. 사랑이니 낭만이니 분석해봤자, 원시시대부터 현대까지 인간의 욕망은 사실 크게 변한것도 아니지 않을까 싶다. 번식이 곧 생존이라는 것은 영원히 변치 않을 테니 말이다.

여하튼, 8장에서는 사회심리학과 다른 학문의 많은 연결점을 다시 한번 확인한 (신경심리학, 생물학, 역사학, 정치학, 인류학 등등) 저자는 남녀가 내리는 선택이 경제심리학과도 관련된다며 9장으로 넘어간다.

9장 친사회적 행동 에서는 유대인들을 살린 어느 일본인의 위대한 희생 이라며 '스기하라 지우네' 를 예로 든다. 1940년 리투아니아 일본대사 였던 스기하라에게 200여명의 폴란드 유대인들이 도움을 요청한다. 나치정부와 일본정부가 동맹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스기하라는 이 유대인들에게 비자를 발급한다. 그는 왜 모두가 외면했던 유대인들을 도왔을까?

스키하라에게 출국비자를 발급받은 수천명의 유대인은 일제 치하의 상하이에 몰려있던 훨씬 많은 유대인 난민 대열에 합류했다. 일본 정부는 1942년 초 상하이에 있던 유대인을 몰살하라는 나치의 압박에 저항하고 전쟁이 끝날 때까지 단호한 태도로 일관했다. 왜 그랬을까?

우리와 동맹 관계인 나치가 당신들을 왜 그토록 혐오하고, 우리는 왜 당신들을 해치려는 그들의 시도에 저항해야 할까? 학자인 랍비 사츠케스는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랍비 칼리슈는 인간 본성에 대한 지식에 힘입어 하나의 대답으로 두 질문에 답할 수 있었다. "그것은 우리가 아시아인이기 때문입니다... 당신들과 마찬가지로" 이 주장은 짧지만 심금을 울렸다. 일본 장교들의 머릿속에 있던 '우리'라는 개념을 새롭게 정의함으로써 유대인에게 도움이 될 2가지 관념에 주목하게 했기 때문이다. 그중 하나는 일본에서 오랫동안 논란이 된 이론이었다. 이 이론은 고대 유대교와 일본의 종교 신도 사이에서 발견되는 놀라운 유사성을 설명하고자 했다. 즉 이 이론은 이스라엘의 '사라진 10개 지파' 중 일부가 아시아 대륙을 거쳐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인과 혼인하고 혈통과 신앙을 퍼뜨렸다는 견해였다. 랍비 칼리슈가 이 발언으로 강조하고자 한 두번째 핵심은 지배민족인 독일인이 '열등한' 아시아인과 유전적으로 다르다는 나치의 주장이었다. 랍비 칼리슈는 '우리'에 대한 일본 장교들의 개념을 재정립하려 했다. 그리하여 이제 '우리'라는 개념에는 스스로 그렇게 주장하는 나치 대신 유대인이 포함되었다. (p. 421~422)

 

스기하라에 이어 상하이 주둔군이었던 일본군대가 유대인 주거지를 말살하지 않은 배경을 설명한 이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좀 혼란스러웠다. 책에서 유대인 학살 이야기가 나올때마다 서양인 입장에서 사죄의 태도를 취하긴 하지만, 대놓고 얘기한 이 일화만 보자면 랍비는 사기꾼이고 일본인은 자신들의 서구지향적 태도를 드러낸 우스운 사고방식이 느껴졌다. 이것에서 유대인을 조롱하고 오리엔탈리즘적 동양인(일본인) 판단이라는 느낌을 받았다면 나만 이상한걸까?

하지만 일본인 군대에 대한 태도와 달리 일본인 '스기하라' 에 대한 경외감은 이 장을 벗어나 책 사이사이 계속 등장한다.

"기억하시겠지만 저는 사무라이 집안 출신입니다" 일본의 사무라이 전통은 늘 무사의 전통을 의미했으므로 기자는 그 대답에 당혹스러워하며 더욱 캐물었다. 스기하라는 사무라이가 전장에서 맹렬하게 돌격해 싸우는 것으로 유명하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1940년 7월에 문 앞에 나타나 밖을 둘러싼 유대인들은 대결 상대가 아니었다. 오히려 무방비 상태의 희생자였다. 사무라이 행동원칙에는 이런 경우에 적용되는 무사도가 있었다. "상처 입은 새가 옷 속으로 날아들면 사무라이는 목숨을 걸고 그 새를 지켜야 한다. 고양이에게 던져주어선 안된다" (p. 439)

조선인은 왜 일본의 대결 대상이었나? 조선을 쳐들어온 것은 사무라이 집단이었다. 그들의 무사도는 왜 조선인에게는 적용시키지 않았나? 멀쩡하던 새를 상처를 내고 도륙한 것은 고양이 집단 사무라이들이었다. 이타심의 아이콘으로 일본인을 내세워야 할 만큼 대표사례가 없지 않을텐데 저자는 왜 스기하라를 존경하고 사무라이 집단을 경외하는가? 교재로 삼은 이 책에서 이 일화를 이 장을 설명하면서 과연 일본인의 전쟁책임에 대해서는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 그냥 쉰들러리스트를 예로 드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가장 사회적이지 않은 국민성을 가진 일본인을 '친사회적 행동' 단원에서 대표 사례로 삼은 것은 읽는 내내 불편하고 아쉬웠다

10장> 공격성 에서는 맨슨 패밀리의 살인 사건을 다루면서 무엇이 그들을 희대의 살인마로 만들었는지 묻는다.

10장의 핵심적 교훈은 다음과 같다. 공격성은 다른 사람들을 짓밟고 그 대가로 공격성이 돌아오게 만드는 '무분별한' 것이다. 하지만 다중 살인처럼 무분별해 보이는 행동도 그 근본적인 사회적 동기를 촉발하는 사람과 상황 요소의 상호작용을 분석함으로써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사회심리학적 시각으로 공격성을 이해하려는 과정에서 다시 한번 사회심리학과 다른 학문들의 연관성을 많이 발견했다. (p. 508)

저자는 매 장마다 사회심리학과 다른 학문과의 연결성을 중시하는데, 뒤로 갈수록 그 학문분야는 점점 더 넓어진다. 이러한 확장은 14장에서 읽게될 이 책의 결론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11장> 편견, 고정관념, 차별 에서는 KKK단원 이었던 C.P.엘리스 와 시민권 운동가였던 앤 애트워터 의 놀라운 반전으로 시작한다. 둘은 인종차별주의자 KKK 단원과 흑인인권운동가 로서 적대적일수밖에 없는 사이였지만, 어떤 일을 계기로 둘도 없는 친구사이가 된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편견 섞인 감정, 고정관념이 담긴 생각, 차별적 행동에는 몇 가지 중요한 목표가 있다. 편견, 고정관념, 차별은 자신의 집단을 보호하고 지지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고, 사회적 인정을 제공할 수도 있으며, 개인과 사회의 정체성을 개선할 수도 있다. 또한 정보가 너무 많은 사회적 환경을 탐색할 때 정신적 노력을 아낄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한다. (p. 522)

지역회의에서 각 집단의 대표격이었던 두 사람에게 회의 주최자가 제안을 했다. 둘이 공동의장을 맡으라고. 둘은 협력해야 했지만 처음엔 불가능해 보여다. 하지만 KKK집단에서는 애트워터와 함께 일한다는 것 자체가, 흑인집단에서는 KKK단원과 함께 일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시 되었고, 그렇게 각자의 집단에서 소외되는 과정에서 두 사람은 각각의 공동체를 그리고 서로를 객관적으로 보게 되었다. 사회적 동물로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집단 구성원으로 생각하기 쉽다. 따라서 다음 장에서는 집단을 이해하고자 한다.

12장> 집단과 리더십 에서는 FBI · 엔론 · 월드컴 에서 일어났던 일을 통해 조직의 치부를 폭로한 내부 고발자들의 최후로 시작한다. 각각의 집단에서 그 집단의 잘못된 선택을 폭로한 소수의견은 그 집단을 망가뜨렸다는데 초점이 맞추어져서 개인으로서는 고난을 맞았다. 왜일까? 잘못한 것은 집단이었는데.

사실 한 사람의 행동이 아무렇게나 모인 낯선 사람들 무리에 체계를 만드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평화로운 온라인 공동체에서 반사회적인 한 사람이 말썽을 부리며 몰려다니는 무리의 시초가 될 수 있듯, 친사회적인 한 사람이 공동체에 도움이 되는 행동을 꽃피우는 씨앗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한 사람의 영향력이 집단을 통해 발휘되는 방식은 복잡하다. (p. 574)

핵심은 가장 유능한 지도자는 환경에 맞춰 자신의 전략을 조정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요컨대 리더십의 발생과 마찬가지로 리더십의 효율성 역시 사람(잠재적 지도자)과 상황(집단)의 상호작용에 따라 결정된다. (p. 613)

 

저자는 12장에서도 사회심학에서 조직과학과 연결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며 13장에서는 사회심리학이 개인 및 개인 간의 상호작용 뿐 아니라 더 큰 집단과 사회 차원의 상호작용을 이해하는 데도 상당히 유용함을 알게 될 것이라며 13장으로 연결한다.

13장> 사회적 딜레마 에서는 이탈리아와 방글라데시의 상반된 미래 라며 그나라들이 했던 대비되는 선택을 이야기한다. 세계의 인구는 현재에도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1971년 이탈리아와 방글라데시는 둘 다 인구밀도가 높은 나라였다. 방글라데시는 인구밀도가 전에도 높은 나라였고 지금은 더 높아져 있다. 하지만 이탈리아는 최근 인구 증가율이 0에 가까운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방글라데시는 비옥한 나라였지만 인구의 증가로 황폐해져가고 있고 이탈리아는 한때 적국이었던 나라들의 EU 에 가입하여 활발한 교류로 여전히 풍요를 누리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왜 세계 국가들이 유럽의 사례를 따르지 않을까? 라고 질문한다. 이 사례에 어떤 사회적 딜레마가 있을까?

사실 세계적 문제들은 개인의 자기 본위적이고 자기 기만적인 경향이 집단의 더 큰 이득과 충돌해 나타난다. 각각의 문제는 사회적 딜레마의 형태로 볼 수 있다. 사회적 딜레마는 모든 사람이 이기적인 선택을 해 집단 전체가 손해를 보지 않는 한 개인이 이기적 선택으로 이익을 얻는 상황을 말한다. (p. 619)

사회적 함정은 복잡한 체계에서 어떻게 질서가 생겨나는지 보여준다는 점에서 지적으로 흥미롭다며 저자는 세계적 관점을 구현하려 한다. 단순히 신기술로는 풀 수 없는 문제들의 해결법을 밝히기 위해 부디 심리학자, 생물학자, 경제학자들이 협력하기를 바라고 있다. 따라서 14장의통섭은 이 책의 결론으로 필연적인 내용들이었다.

14장> 사회 심리학의 종합 에서는 세기의 연설 뒤에 가려진 이상한 음모라며 마틴 루서 킹의 연설을 예로 들어 사회 심리학들을 종합해 설명하고 있다.

1장에서 언급했듯 사회심리학은 심리학의 다른 영역들과 다양하게 관련된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성인에게서 공격성, 이타주의, 사랑 등이 본래의 성향과 과거의 경험에서 어떻게 발달했는지 알아봄으로써 사회심리학이 발달심리학과 수많은 연결점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성격심리학과의 관련성은 모든 단원에 포함돼 있고, 개인 내면의 성격 특성이 어떤 식으로 끊임없이 사회 환경과 상호작용하는지 생각하면서 발견할 수 있다. 환경심리학과의 관련성은 더위와 공격성, 인구과잉, 환경파괴의 관계를 논의할 때 드러났다. 또한 모든 장에서 임상심리학과의 관련성을 확인하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인지심리학과의 관련성은 모든 단원에서 발견된다. 신경과학은 반드시 필요한 학문 분야다. 사회심리학은 뇌과학과 행동과학의 모든 분야와 중요하게 관련된다. 더 넓은 수준에서 보면 사회심리학은 심리학의 경계를 벗어나 다른 학문들과도 연결된다. 유전학, 생화학, 사회학, 인류학, 경제학, 정치학, 동물행동학, 생태학 과도 연관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p. 692~693)

사회심리학과 연결되지 않는 학문이 없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사회심리학은 통섭의 학문임을 저자는 강조한다. 따라서 사회심리학은 연구한다는 것은 다른 학문들과 함께 진행해야 함을 책의 본문을 통해 내내 증명하고 있다. 그렇게 함께 연구해 가는 과학적 호기심이 언젠가는 우리 모두가 마침내 자유로워졌다고 선언할 수 있게 만들 것이라며 이 책을 마무리한다.

사회심리학 교재로서 이렇게 탄탄하기도 쉽지 않을 전개와 엮음은 어렵지 않은 가독성과 더불어 이 책의 가치를 높여주고 있었다. 100 연구를 집대성한 심리학의 고전이니만큼 고전적인 내용이 많은 것은 아쉬우면서도 기초 심리학 교재이기에 당연하다는 생각도 했지만 한가지 수정했으면 하는 바램을 가졌던 부분은 426페이지의 제노비스 사건 이었다. 제노비스 신드롬 혹은 방관자 효과 를 탄생시킨 이 사건은 한 여성의 잔혹한 살해 사건에 이웃 주민들의 냉혹한 무관심으로 유명해진 사건이고 이 책에도 그렇게만 언급되어 있다. 하지만 간단한 검색에서도 확인되듯이 이 사건이 확대된 것은 일종의 오보였다.

https://terms.naver.com/entry.nhn?cid=51065&docId=2176169&categoryId=51065

사건 발생 40여 년 후인 2007년, 이 사건을 다룬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언론의 보도가 엄청나게 과장되었다는 걸 밝힌 논문이 『아메리칸 사이칼로지스트(American Psychologist)』에 실렸다. 사건의 목격자가 38명이 있었다는 건 사실이 아니며, 일부 목격자들도 여자의 비명을 듣고 창밖을 어렴풋하게 보긴 했지만 그것이 살인 사건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학생들에게 드라마틱한 연구 사례로 우화적 기능이 있어 계속 오류가 교재에 반복되고 있다는 게 논문 필자들의 주장이다.

크게 과장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사건이 이른바 ‘방관자 효과(傍觀者 效果, bystander effect)’의 사례로 그 가치까지 잃을 정도는 아니다. 신고가 없었던 것은 ‘차가운 사회’, ‘무감각한 시민정신’, ‘인간성의 소실’ 때문이라기보다는, 누군가 다른 사람이 이미 경찰을 불렀을 거라는 추측이 다수를 차지했기 때문에 아무도 경찰을 부르지 않은 비극적인 결과를 낳았으리라는 것, 이게 바로 방관자 효과다.

네이버 지식백과

저자는 왜 이 내용을 수정하지 않았을까? 방관자 효과를 알게 한 이사건의 진실도 짧게는 덧붙여 줄 수 있지 않았을까? 그때는 이렇게 알려져서 이렇게 연구됐고 이런 결론을 얻었지만 사실은 이런 배경이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심리적 효과는 유효하다 는 식으로.

무엇보다 가장 불편하고도 의문시 됐던 인용은 6장-사회적 영향력 에서 예로 든 사이비 종교가 통일교 였는데 그 내용을 전개하는 과정중에서 저자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 개인적으로 의아했다.

하산은 통일교 신자였다. '무니스(Moonies-교주 문선명의 추종자를 조롱해 부르는 별명)'로 더 잘 알려진 통일교의 지도자는 문선명 목사였다. 사람들은 문 목사가 자신과 가족의 배를 불리고 권력을 키우는 데 눈이 멀어 사이비 종교를 창시한 한국의 갑부 사업가 라고 비난했지만, 추종자들은 그가 지상에 신의 왕국을 건설하는 사명을 띠고 온 새로운 메시아라고 여겼다. (p. 266)

내가 통일교 신자인것도 아니고 사이비종교를 편들 생각은 전혀 없지만, 왜 하필 한국인이 만들어낸 종교였는가? 이러한 전공서적에서! 사이비 종교가 어디 한둘이었나? 기독교계의 한 교파인 모르몬교에서 종말론을 맹목적으로 믿던 비정상적 집단도 있었고, 일본의 옴진리교도 있었고, 하다못해 중세의 종교재판에서 일어났던 마녀사냥도 종교와 사회적 영향력을 연구하는 예로는 충분했을텐데?!

게다가 뒤이어 나오는 일본인 스기하라의 이타심 관련해서는 앞서 언급한 나의 불편함을 토대로 더욱 불편함이 고조되었다. 한국인을 예로 든 일화는 통일교 이고 일본인을 예로 든 일화는 유대인구조자 다. 이 대비가 나만 불편한가? 저자는 정말 몰랐을까? 이 대비에서 드러나는 영향력을?

일반적으로 전문가의 지시를 따르는 행동은 현명하다고 간주되고, 권위자가 곧 전문가인 경우가 많다. 따라서 사람들은 의사 결정을 위한 어림법(지름길)으로 권위를 이용한다. 어떤 문제에 대해 권위자가 가장 많이 안다는 가정은 효율적 판단으로 이어질 수 있다. 직접 열심히 생각할 필요 없이 권위자의 조언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없이 권위에 의존하는 행동에는 위험이 따른다. 이렇게 지름길을 이용하다 보면 권위자의 본질이 아니라 권위의 상징물에 반응해 행동할 가능성이 있다. (p. 283)

이 책은 교재라고 첫장 첫줄에서 언급되었다. 저자는 이 분야의 권위자다. 그러니 6장 사회적 영향력에서 저자가 설명했듯이 저자가 예로 든 일화들의 파급력을 저자가 몰랐을 리 없다. 이 책은 훌륭한 책이다. 하지만 그 훌륭함을 조금은 깎아내리는 2가지 예시로 인해 저자의 관점에 조금은 의문이 남는 책이었다. 그리고 저자와 같은 권위있는 전문가가 펴내고 교재로 사용되고 우리나라 학자가 극찬한 이 책이 수업현장에서는 나와 같은 불편함을 호소하는 학생들에게 왜곡돼지 않게 이해되는 설명이 깃들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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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가 되기 싫은 개 - 한 소년과 특별한 개 이야기
팔리 모왓 지음, 공경희 옮김 / 소소의책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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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년과 특별한 개 이야기

 

 

1957년에 출판된 원제가 [ The Dog Who Wouldn't Be ] 인 이 작품은 소설은 아니다. 허구로 쓰여진 소설이 아니라 작가의 유년시절을 담은 추억담이다. 하지만 에세이라고 하는 것도 어울리지 않는다. 저자와 함께 한 특별한 개 머트 의 생애를 따라 스토리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풍경좋은 자연에서 어린 소년과 개의 우정을 담은 이야기라고나 할까 ㅎ

작품의 출판년도가 오래되긴 했지만 옛이야기처럼 읽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시간을 초월해서 읽히는 매력이 있는 책이었다. 교감에 관한 추억은 원래 그런 뭔가가 있지 않은가. 그런 뭔가가 가득한 책이다. ㅎㅎ

저자인 팔리 모왓은 캐나다 독자들이 가장 사랑하는 자연주의 작가라고 한다. 1921년생인 저자는 세계대전을 겪은 세대다. wow

넓다 못해 광할한 대지의 나라 캐나다에서 거의 100여년전 태어난 작가가 보낸 유년시절은 지금보다 훨씬 더 자연친화적이었을 것이다. 책을 읽다보니 이주민에게 정착지를 정부에서 무상으로 주던 때라고 하니 아주아주 자연적인 환경이었을 것이다. 그런 환경에서 자라서 그런지 그의 작품들도 대부분 자연을 담은 작품들이라고 한다. 이 책을 읽고나니 자연을 담았으나 읽다보면 자연보다 그 속에 살고 있는 생명과 그 생명과의 교감을 표현하고 있을 것같은 느낌이 강하게 든다.

옮긴이의 번역서들을 보니 메디슨카운티의다리, 모리와함께한화요일, 파이이야기, 행복한사람 타샤튜더 등 옮긴 책들이 비슷한 느낌을 주는 작품들이었다. 작가도 자신들만의 분위기가 있지만 번역가들도 그런 분위기를 가진 번역가들이 종종 있다. 자신의 번역분야를 가진 번역가의 작품은 믿을만 하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하는데 그런 면에서 옮긴이의 이력이 마음에 들었다.

이 작품은 초딩나이의 팔리와 함께 했던 개 머트의 이야기 이다. 제목이 개가 되기 싫은 개 라고 해서 일종의 동물판타지 소설인가 싶었는데, 개인 머트가 자신을 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기 보다는, 저자가 머트를 너무 아끼고 사랑하고 특별하게 생각하다보니 개 이상의 어떤 존재로 여겼던 마음을 담은 표현인 듯 하다. 개들이 자신이 개라고 생각한다기 보다는 사람이 개로 이름짓고 개로 보는 것 아닌가 개들은 그냥 자기자신일 뿐이다. 머트는 개 이지만 팔리 에게는 그냥 개 가 아니라 머트 라는 특별한 존재인 것이다.

어릴 때 머트는 개로 살면 미래가 없다고 결정했던 것 같다. 그래서 모든 행동을 고집스레 하면서 개 아닌 다른 존재가 되기 시작했다.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개로 믿지 않았지만, 멍청한 개들이 흔히 그러듯 자기를 사람으로 생각하지도 않았다. 머트는 개와 사람, 양쪽 모두에 가까워 보였지만 또한 그 어느 쪽도 아님을 보여주었다. 태도가 독특했다면 외모 또한 특이했다. 보통 세터 종과 전혀 다른 체격이었지만, 모든 면에서 알려진 어떤 종과도 달랐다. 뒷다리를 포함한 후반신이 전반신보다 몇 인치 높았고, 동시에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확실히 기울었다. 머트의 눈이 한데 몰려서 시선을 봐도 알 수가 없었다. 귀가 좀 크고 비뚤지만 두상이 널찍하고 머리끝이 높고 둥그랬다. 아주 잘생기지는 않았지만, 특이하게 기품이 있는 기묘한 모습이었다. (p. 24~25)

머트는 딱히 어느 종 이라고 알아채기 어려운 그냥 잡종견이었다. 게다가 외모는 일반 잡종견들보다 더 볼품없는 편이었다. 하지만 어린 소년 팔리는 머트를 강아지때부터 키우면서 머트의 머릿속을 훤히 꿰뚫어볼 정도로 머트의 마음을 읽어내게 된다. 소년에게 머트는 아주아주 특별한 개였다. 묘하게 생겼는데다가 하는 행동도 독특했던 머트를 보면서 소년은 개가되기 싫은 개라고 생각했다. 그냥 아주아주아주 특별한 머트 였다.

머트는 어딜 가든 기억을 깊이 새겨놓았다. 격노의 고함소리 같은 생생한 기억이든, 치매 같은 우중충한 색감의 뿌연 기억이든, 머트는 돈키호테의 분위기를 풍겼고, 그런 분위기에서 우리 가족과 10년 넘게 살았다. (p. 31)

사람 중에서도 돈키호테 같은 사람은 흔치 않다. 개들 중에서는 더 흔치 않지 않을까? 머트는 개들 중에서 돈키호테였다.

사냥개를 기르고 싶었던 소년의 아버지는 머트를 키우는 내내 만족스럽지 못했지만 사냥철이 되어 새사냥에 나섰을때 머트에게 홀딱 반하고 만다. 머트의 사냥 능력은 다른 개들과 달랐다. 주인이 쏜 총에 맞고 떨어진 새들을 물고 오는 일반 사냥개와 달리 머트는 다친 새들을 제압하여 물고 왔고 물로 도망친 새들도 물고 왔고 은신처에 숨은 새와 다른 사람이 쏘았으나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쳤던 새까지 모조리 물고 왔다. 소년의 아버지와 동네 일대에 머트는 신화가 되었다. 아주 재밌는 일화들을 퍼뜨리며 ㅎ

외지인이 머트의 가격 높은 품종의 사냥개를 자랑하며 사냥실력을 뽐낼때 듣다못한 동네 사람이 머트 이야기를 했고 믿지 못하자 소년의 아버지 직장으로 몰려왔었다. 소년의 아버지는 사냥철이 아님에도 사냥준비하듯 총을 꺼내고 동작을 취한 후 머트에게 "탕 탕 가져와" 라고 말했다. 머트는 전속력으로 동네를 질주하여 새를 물고 왔다. 총기류 무기점 가게의 진열장 속에 있던 박제 된 새를!!! 외지인은 내기에서 졌다. ㅋㅋ

머트는 다른 면에서도 독특했다. 가족이 이사하여 새 동네에서 개들의 텃세가 심해 싸움을 붙여 올때 머트는 참을만큼 참다가 더이상 피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머트는 이번에는 싸워야 딘다는 걸 금방 깨달았다. 그래서 민첩한 동작으로 훌러덩 눕더니 네 다리를 미친 듯이 자전거 바퀴 돌리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꼭 2인용 자전거를, 똑바로가 아니라 거꾸로 타는 것 같았다. 또 특이한 사이렌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미치광이의 통곡 비슷했다. 다리의 움직임이 빨라지면서 고음의 사이렌이 커졌고, 결국 가스터번이 전속력으로 작동하는 듯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허스키 네 마리는 이 기묘한 행동을 보고 갑자기 동작을 멈추었다. 허스키들은 머트와 3미터쯤 멀어지자 일제히 몸을 돌려 체면을 내던지고 자기 집 뒷마당으로 달아났다. (p. 103~104)

머트는 동네 개들을 평정한 후 고양이 들도 제압했다. 개들을 피해 울타리사이를 고공산책하는 고양이들은 자신들과 똑같이 울타리 사이 높은 곳을 걷는 커다란 머트를 맞닦드려야 했다. 심지어 머트는 사다리도 타고 올라갔고 나무까지 올라갔다. 물론, 내려올때 가끔 소방대원의 도움을 받아야 되긴 했지만. ㅋ

오카나간 강을 건너는 여객선에서 한 승객이 머트에게 던진 악의적인 눈빛은 잊지 못할 것이다. 그런 눈빛을 던질 만도 했다. 머트가 접좌석에 앉아 고글을 이마 위로 올리고 6리터들이 통에서 체리를 꺼내 먹고 있었다. 체리를 하나하나 먹을 때마다 주둥이를 들고 뱃전으로 고개를 돌려 태연하게 씨앗을 푸른 강물에 휙 뱉었으니. (p. 174)

가뭄철 대지의 먼지가 흩날릴때 자동차를 타고 조금만 달려도 먼지 한가득을 뒤집어 쓰고 가야 하다 보니 창문을 열려면 고글을 필수 였다. 소년의 아버지는 머트에게도 고글을 사주었고 어느새 머트는 혼자서 고글을 올렸다 내렸다 할 수 있게 되었다. 자동차 창문으로 고글을 쓴 개가 머리를 내밀고 구경하는 것도 진 풍경일텐데 머트의 과일 취향은 소년과 너무 닮아서 체리를 좋아했고 먹다보니 씨를 뱉는 법도 터득하게 되었다. 고글을 쓴 개가 체리를 알아서 꺼내먹으며 삐죽거린 입으로 씨앗을 뱉어내는 장면을 상상하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저자의 머트에 대한 에피소드들은 하나같이 저절로 웃음짓게 하는 이야기들이었다.

할아버지는 자연주의자이자 수집가였고, 독수리 알부터 공룡 뼈까지 자연의 모든 것은 집에 둘 가치가 있다고 믿는 옛날식 믿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또 동물을 알 방법은 같이 살아보는 것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난 할아버지의 조언에 따랐고, 애송이 과학자로 나선 첫 탐험에서 소의 해골과 검은 뱀 두 마리를 수집해서 집에 가져와 침대 밑에 자리를 마련했다. (p. 175)

온 가족이 자연친화적이었다. 소년이 뱀을 가져오든 거북이를 데려오든 다람쥐를 잡아오든 소년의 집에선 모두 함께 살 수 있었다. 가장 재밌었던 에피소드는 소년이 여섯살때 물고기를 잡아서 집에 가져왔는데 어디 둘까 하다가 변기에 풀어 놓았었다는 것이다. 변기를 열었는데 물고기가 헤엄치고 있는 것을 본 (가족중에서 유일하게 자연친화적이지 않았던) 할머니는 격노했다. ㅋㅋ

소년은 숲에서 수리부엉이도 구조하여 함께 살게 됐는데 학교까지 따라 와서 곤란해지곤 했었다고 한다. 부엉이 두 마리와 고글쓴 머트와 함께 아버지 차를 타고 이동할 때면 부엉이들은 뒷좌석에서 번갈아 날개를 펼쳐 비행 모습을 취하고 그 앞엔 고글 쓴 머트가 창밖 구경을 하곤 했다는데 이 장면 또한 저절로 상상이 되면서 이런 어린 시절을 보냈으니 저자의 글들은 다 자연을 담을 수 밖에 없었겠다 싶기도 했다.

읽는 내내 머트의 특이한 취향들과 소년의 독특한 자연사랑 때문에 웃음짓게 하는 이 작품은 자연을 사랑하고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이 읽으면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처럼 자연 친화적이지 않은 곳에서 살며 집에서 동물을 키워본 경험이 없는 사람이 읽어도 충분히 따듯한 책이었다. 머트는 교통사고로 생을 마쳤지만 저자는 이 작품으로 머트를 영원히 살게 해놓았다. 정말 특별한 개로 자리매김한 머트가 무지개다리 너머 청명한 숲에서 뛰어다니고 있을 것만 같다. 그러다 피곤해지면 기우뚱한 자세로 초점을 모르겠는 시선을 한채 고글을 쓰고 체리씨를 뱉어내고 있을 것 같다. 개가 아닌 것처럼 ㅎㅎ

-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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