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허 (완역판) - 그리스도 이야기 현대지성 클래식 10
루 월리스 지음, 서미석 옮김 / 현대지성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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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50년간 소설 분야 베스트셀러 1위!

아카데미 최다 수상작 <벤허> 의 모태가 된 원작 소설을 만나다


BEN-HUR : ATALE OF THE CHRIST 는 루 월리스(1827~1905) 작가의 1880년에 출간된 기독교 역사소설이다.
영화를 본 적은 없지만, 벤허 하면 격렬한 로마식 전차경주가 펼쳐지는 흑백장면이 자동적으로 떠오를만큼 유명한 영화로 제목이 낯익은 소설이었다. 하지만 이 소설이 이렇게까지 기독교적인 작품인지는 몰랐다. 부제가 그리스도 이야기 인것도 몰랐다. 종교에 성서에 무지한 나에게 벤허는 그저 오래된 소설이었다. 흑백영화같은 소설이었다. 원전번역고전을 좋아하기에 읽게 된 책이었다. 그런데 읽고나니... 여러모로 엄청난 책이라는 것은 분명히 알 수 있는 작품이었다.

히브리어에서 Ben 은 '~의 아들' 이라는 의미로 벤허는 HER 가문의 아들 이라는 뜻이다. 벤허의 인생과 그리스도의 인생이 묘하게 맞물리면서 전개되는 이야기는 성서 못지 않은 종교성와 역사책 못지 않은 역사성을 조화롭게 엮어내고 있어서 800여페이지라는 엄청난 분량을 소설로서 몰입할 수 있게 해주고 있었다. 다만, 책의 가장 앞부분에 있는 역자서문이 옥에 티라고 생각된다. 작품이나 작가보다 더 깊은 종교인의 자세로 써낸 서문은 나같은 비종교인이 읽기엔 좀 거북해서 이 책의 의미를 좁히는 느낌을 주었다. 서문이 주는 편견없이 이 작품을 읽는 것이 훨씬 이 책의 가치를 높여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이야기는 동방박사 세명의 만남으로 시작되는데, 그리스인 인도인 이집트인 으로 이루어진 동방박사들의 구체적 재현이 흥미로웠다.


이곳에서 먼 서쪽에는 결코 잊을 수 없는 나라가 있습니다. 세상에 무척이나 많은 것들을 주었고, 사람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을 안겨 주었기 때문이지요. 그렇다고 해서 예술, 철학, 웅변, 시, 전쟁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 여러분, 그 나라의 영예는 완전해진 글자로 길이 빛나게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찾아내어 선포하게 될 그분께서 바로 그 나라의 언어를 통해 온 세상에 알려지시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말하고 있는 나라는 바로 그리스입니다. 저는 아테네 사람 클레안테스츼 아들 가스파르 입니다.  (p. 31)

저는 멜키오르 라고 합니다. 저는 지금 여러분께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지는 않았더라도 적어도 가장 먼저 문자를 가진 언어, 즉 인도의 산스크리트어로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저는 인도인입닏. 저희 민족은 지식을 탐구하고, 그것을 세분화하여 발전시킨 최초의 민족이지요.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난다 해도 종교와 유용한 지혜의 원천으로서 4베다는 살아남을 것입니다. (p. 36)

저는 이집트 사람 발타사르 라고 합니다. 저희 민족은 자랑할 것이 많지만 한 가지만 소개하지요. 역사는 저희 민족과 더불어 시작되었지요. 저희가 최초로 여러 가지 일들을 기록으로 남겨 후대에 전했으니까요. 그래서 저희에게는 구전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입으로 전하는 시 대신에 확실한 사실을 전하죠. 오 멜키오르 형제, 바라-브라만의 베다나 브야사의 우팡가보다도 오래되었고, 오 가스파르 형제, 호메로스의 시가나 플라톤의 형이상학보다도 오래되었습니다. 중국의 경전이나 역대왕조와 마야 부인의 아들 부처의 경전보다도 오래되었고 히브리인 모세가 등장하는 창세기보다도 오래되었지요. 인간의 기록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 바로 저희 민족 최초의 왕 메네스의 기록이랍니다. (p. 43)
이 세명의 동방박사들은 성령의 별을 쫒아 한자리에 모이게 되었고, 빛의 안내를 받아 구유속 아기를 경배드리게 된다.
그리고 마구간의 말구유 라는 것이 비천한 곳에서의 성스러운 탄생을 비유하는 것인줄 알았는데, 소설을 읽다보니 당시의 유대인들의 여행 관습에 의해 굉장히 자연스러운 환경 속 거처였음을 알게 되어 신기했다.


동방박사들은 그 자리에 엎드려 아기에게 경배했다. 그들이 보기에 아기는 여느 아기와 다를 바 없었다. 머리 위에는 후광이나 왕관 같은 것이 없었다. 살짝 벌어진 입으로 말이 흘러나오지도 않았다 그들의 환성과 기원과 기도를 들었을 텐데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보통 아기처럼 등불의 불길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이 아기는 그들이 그렇게 멀리까지 찾아온 구세주였다! 그들은 일말의 의심 없이 경배하였다. 왜일까?
그들은 이제까지 우리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로 알고 있는 그분이 보낸 징표를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은 그것으로 충분하여 그 길에 대해 아무것도 묻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p. 119)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를 만난 다음장은 스물한 해를 건너뛴 시점에서 벤허 이야기가 시작된다. 나는 작가가 건너뛴 이 스물한해가 너무나 궁금한데;;; 구세주로 태어나 경배받은 아기의 성장이 어땠을지 너무 궁금한데... 이렇게 한문장으로 건너뛰다니 너무너무 아쉬웠다. 성서에는 이 성장사가 나오려나?
종교의 창시자라고 알려진 인간인 붓다 나 마호메트의 경우 인간으로서 성장사가 이미 알려져 있다. 인간으로 자란 후 성장하여 종교적 깨달음을 얻어서인지 인생이 전체적으로 대부분 밝혀져 있다. 그런데 태어나면서부터 메시아로 지정받은 (인간인) 예수의 성장사는 알려져 있지 않다. 왜일까? 인간으로서의 삶은 왜 마지막 모습만 알려지고 성장사는 알려지지 않았을까?
여하튼 이 소설의 주인공은 벤허 이므로 배경인물인 예수의 모습은 잠깐씩 나올 뿐이니 나의 궁금증은 저자의 서술 의도에 포함되지 않았을 수 있으므로 어쩔 수 없이 패~쓰.


디오니소스를 걸고 맹세컨데 도대체 유대인이란! 모든 사람과 만물이, 심지어 하늘과 땅도 변하지. 하지만 유대인은 절대 변하지 않아. 앞으로 나아가지도 뒤로 물러서지도 않고 그대로 머물러 있지. 태초의 선조들 모습 그대로야. 이 모래에 원을 하나 그려볼 테니 봐! 유대인의 삶에 또 뭐가 있는지 말해 보라고. 그저 돌고 또 돌기만 한다고. (p. 134)
네가 정말 안됐어, 율법학교에서 회당으로, 그리고 다시 성전으로 가겠지. 별 가능성은 없는 삶이지. 하지만 나는... 로마인 앞에 어떤 가능성들이 펼쳐져 있는지 보라고 (p. 135)
이제 그만 현명해져. 어리석은 모세의 율법이나 전통 따위는 잊어버리라고. 현실을 직시하라고. 운명의 여신 파르카이의 얼굴을 똑바로 보라고. 그러면 너에게 말해 줄 거야. 로마가 바로 세계라고. 유대에 대해 물어봐. 그러면 이렇게 대답해 줄 거야. 유대는 로마의 뜻에 달려 있다. (p. 140)

벤허와 메살라는 어렷을 적 친구였다. 하지만 로마로 유학을 가서 완전한 로마인으로 성장하여 돌아온 메살라는 완전한 유대인으로 자란 벤허와 가치관이 정반대인 사이가 되었다. 로마인에게 좋은 가치들도 있었을텐데, 온갖 안좋은 것들만 골라 익혀온 메살라의 자만심은 벤허의 경건한 종교를 비웃고 깍아내렸다.


로마에서는 시인, 웅변가, 원로원 의원, 궁전 사람들 너나 할 것 없이 풍자라고 하는 것에 온통 미쳐 있다더구나  (p. 151)

 옛 친구에게서 반가운 해후가 아닌 쓰라린 상처를 받고 돌아온 벤허에게 벤허의 어머니가 표현하는 로마인들을 보며 나는 저자의 문체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뭐랄까... 굉장히 로마풍이라고나 할까 ㅎㅎㅎ. 풍자 라는 단어를 본 순간, 얼마전 읽은 찰스 디킨스의 문체가 떠올랐다. 벤허의 저자인 루-월리스와 찰스 디킨스는 거의 동시대 사람이다. 그 시대 작가들 문체는 다 이렇게 풍자적이었을까? 벤허의 서술방식도 은근 풍자적이다. 예전 무성영화를 설명해주는 변사처럼 혹은 그이전 세세한 장면하나하나를 서민적으로 풀어내놓던 판소리꾼처럼 이 소설 또한 제3자가 하나하나 설명해주고 목소리를 변형해 인물들의 말을 대신해주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읽다보면 어떤 순간에는 얼쑤! 혹은 저런! 하는 추임새를 말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여하튼 그 다음날 사건이 터진다. 새로운 총독 행렬을 구경하던 벤허의 방앞 기왓장이 미끄러 떨어지며 총독을 맞추었고, 총독은 살해혐의를 씌워 벤허집안을 하루아침에 몰락시킨다. 메살라는 총독과 한편이 되어 벤허집안을 무너뜨리고 재산을 나누어 갖는다. 그리고 벤허는 갤리선 노잡이 노예로 끌려간다. 그리고 노예로 끌려가던 길에서 잠시잠깐 인간 예수의 인상적인 호의를 경험한다.


노잡이 노예로 배에서 5년을 보내는 동안 어엿한 청년으로 자란 벤허는 새로운 사령관의 목숨을 구해주게 되면서 양자로 입양되어 아리우스2세가 되어 고향으로 금의환향하게 된다. 다시돌아오게된 벤허는 아랍인 일데림 족장과 동방박사의 한명이었던 발타사르의 이야기를 통해 메시아에 대해 알게 된다.



벤허는 어떤 차이점을 깨닫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의 비참함과 그들이 겪는 절망적인 상황은 종교와는 전혀 관련이 없었다. 사람들의 한탄과 탄식은 신을 향한 것이 아니었다. 브리튼의 참나무 숲에서는 드루이드교 사제들이 사람들의 신봉을 받고 있으며, 갈리아와 독일과 북유럽 사람들 사이에서는 오딘과 프레이야가 여전히 신으로 추앙받고 있다. 이집트는 악어와 아누비스를 숭배했고, 페르시아는 여전히 아후라마즈다와 아리만을 섬기면서도 악어와 아누비스 숭배를 받아들였다. 열반의 희망을 품고 있는 인도인들은 브라흐만의 암흑의 길을 정진한다. 아름다운 그리스인들의 마음은 철학에 머무르면서도 호메로스의 영웅적 신들을 노래한다. 반면에 로마에서 신들만큼 흔해 빠지고 값싼 존재는 없었다. 세상을 지배하던 로마인들은 숭배와 봉헌의 대상을 마루엏지도 않게 이 제단에서 저 제단으로 변덕스럽게 바꾸었고 수많은 신들을 세워놓고 즐거워했다. 불만스러운 점이 있다면 신들의 수였다.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신들은 다 차용해 놓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황제들을 신으로 떠받을며 제단을 만들어 거룩한 의식까지 지냈기 때문이다. 그랬다, 민중의 불행한 처지는 종교 때문에 빚어진 것이 아니라 지배자의 실정과 수탈과 헤아릴 수 없는 폭정에서 빚어진 것이었다. 사람들이 도탄에 빠져 벗어나기를 간절히 빌고 있는 지옥 같은 상황은 지독하게도 본질적으로는 정치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p. 390)

당시의 다른 종교들에 대해 한 묘사가 인상적이었다. 고전을 읽다보면 당시의 종교들에 관심을 안 가질 수가 없는데, 그 종교들을 저마다 다르게 표현하는 것을 읽을때 나는 늘 여러가지 생각이 든다. 유대교의 유일신은 화려한 로마가 보기에 답답해보였을 수 있고, 정신없는 로마의 다신교는 유일신의 유대교에서 보자면 어처구니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의 문제들은 종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기에 벤허는 종교적 생각에서 시작했으나 점차 현실적 방안을 모색하게 되고 그 방법은 결국 정치적 선택일수밖에 없으며 그렇다면 메시아는 왕이어야 했다. 유대인이 바라던 메시아는 왕의 모습이었고, 왕은 권력의 대체일 뿐이었으나 인간의 방법만 생각할 수 있던 때로서는 다른 방법은 믿을 수 없었다. 벤허의 중립적인 태도와 메시아의 개념에 대한 갈등은 곧 이 책의 핵심이자 종교의 핵심일 믿음의 문제를 상기시킨다.


그렇다고 이 소설이 종교적이기만 한것은 아니다. 나름 삼각관계 로맨스도 펼쳐지는데, 동방박사 발타사르의 딸 이라스 와 벤허 집안의 집사였던 시모니데스의 딸 에스더 는 벤허에 대한 상반된 모습을 보여주며 여성의 이미지에 대해서도 상반된 이미지를 구현한다.

이집트 여인 이라스에 대한 묘사는 교활한 클레오파트라를 연상시키고(클레오파트라를 이렇게 악녀 이미지로 표현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좀 유감스럽지만 서양인 입장에서는 자연스러운 표현이라는 것은 안다;;;)  유대인 처녀 에스더는 순종과 복종의 결정체다. 그리고 사실 벤허가 에스더를 여동생처럼 여기겠노라 말한 순간부터 아무리 이라스의 매력에 끌려도 결국 에스더에게 갈 것임은 예상할 수 있었다. 유대인들의 역사에서 여동생은 곧 아내가 되지 않던가.


벤허는 일단 개인적인 복수에는 성공한다. 메살라와의 전차경기에서 이김으로써 명예와 재산을 되찾는다. 이제 본격적으로 로마에 대한 복수를 생각하기 시작한다. 이 전차경기를 전후해서 벤허는 개인에서 종교인으로 변화해간다.



"복수야말로 유대인의 당연한 권리요 법입니다"  (p. 488)

소설을 읽어나가며 신기했던 것은 유대교와 이슬람교가 굉장히 비슷하게 느껴졌다는 점이다. 율법을 철저히 지키고, 신분계급도 철저히 유지하며, 상하관계에서의 순종과 복종은 엄격하고, 복수는 당연하다. 따라서 로마에 대한 복수를 위해 그 복수를 실행해줄 왕을 위해 군대를 모으고 훈련시켜나가는 모습은 그 두 종교의 유사함을 더욱 느끼게 했다.


종종 나오는 표현인 " 왕께서는 초라한 모습으로 오실 것입니다. 가난하고 의지할 데 없는 모습으로, 따르는 이 없이, 군대도 없이, 도성이나 성채 없이 말입니다. " 라는 메시아의 출현에 대한 기대는 발타사르 에게는 영혼의 왕국으로 시모니데스에게는 유대나라의 왕국으로 인식되어지는데, 이러한 인식의 차이가 얼마나 큰 엔딩의 차이를 가져오는지 마지막에 가서야 깨달을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깨달음은 벤허를 비롯한 소수에게만 이루어지면서 성서의 역사는 소설에서 펼친 역사와 맞물려 떨어진다.


사람들은 꿈이 밤에 잠잘 때만 꾸는 거라고 하지만 제대로 알 필요가 있다. 우리가 이룩한 모든 결과들은 저절로 예정된 것이고, 저절로 예정된 것들은 모두 깨어 있는 꿈속에서 만들어진다. 꿈을 꾸면 노동에서 해방되고 포도주를 마셨을 때처럼 활기가 넘친다. 우리가 노동을 마다하지 않는 것은 노동 자체 때문이 아니라 꿈꿀 기회를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꿈은 늘 단조로운 일상에 들어 있어서 듣지 못하고 알아채지 못할 뿐이다. 사는 것은 곧 꿈꾸는 것이다. 오로지 죽어 무덤에 묻힌 후에야 꿈이 사라진다. 벤허와 같은 시대 같은 장소에서 같은 상황에 처했다면 누구라도 그렇게 했을 테니 벤허의 행동을 보고 비웃지 말기를. (p. 596)

벤허가 왕의 모습으로 메시아를 맞이하기 위해 준비하며 예루살렘을 바라보는 중에 하는 생각들을 저자는 비웃지 말기를 당부한다. 깨달음을 얻지 못한 인간은 누구나 그럴 수 있다고. 하지만 나는 저자의 당부보다 저자가 말하는 꿈에 대한 표현들이 인상적이었다. 종교가 인간에게만 있는 것처럼 영혼의 존재와 꿈의 존재도 인간에게만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에 꿈과 종교와의 관계성에 대한 생각도 흥미롭게 해보게 되기도 했다.


지금도 내 생각은 변함없다네. 우리 신앙의 차이점을 알겠네. 자네는 인간의 왕을 만나러 가는 길이고 나는 영혼의 구원자를 만나러 가는 길이지. (p. 651)

철학자들은 신앙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전혀 없기 때문에 영혼이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는 정도까지는 이르지 못할 걸세. 그래서 영혼의 존재이유에 대해서 전혀 모를 수밖에 없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각기 알맞은 정신을 갖고 있다네. 오로지 인간에게만 미래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이 자네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나? 하나님이 인간에게만 그러한 힘을 주신 이유는 우리가 더 나은 내세를 위해 창조되었다는 것을 알게 하시려는 거라고 생각하네. (p. 655)

그러면 이제 실제적인 문제가 남는군. 우리가 그분을 어떻게 알아볼 것인가 하는 문제지. 만일 그분이 헤롯과 같은 왕일 것이라고 계속 생각하는 한 자네는 당연히 왕홀을 쥐고 황제의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을 계속 찾아다니겠지. 반면에 내가 찾는 그분은 가난하고 보잘것없고 평범한, 겉으로 보기에 다른 사람과 그다지 다를 바 없는 사람이시라네. 그리고 그분이 그렇게 단순한 분이 아니라는 것을 표징으로 알아보게 되겠지. 그분은 나와 온 인류에게 영원한 삶으로 가는 길을 보여주실 것이네. 영혼의 아름다운 순수한 삶 말이지. (p. 657)

소설 속에서 가장 유대교적인 인물은 이집트인 발타사르 이다. 발타사르의 발언들은 일정하게 종교적이다. 그리고 가장 비유대교적인 인물은 발타사르의 딸인 이라스 이다. 이라스는 시종일관 이집트의 신들과 로마의 문화를 찬양한다. 메시아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은 사람은 처음부터 끝까지 발타사르가 거의 유일했다. 하지만 그의 신실한 믿음은 그에게 가장 가까운 존재인 그의 딸에게는 전파되지 않았다. 이러한 아이러니한 상황을 작가는 의도한 것일까?


여하튼, 목수의 아들 예수가 요한에게 세례 받고 그리스로도 선포된 후 3년이 지난 시점에서 시작되는 마지막 장은 벤허와 예수의 부활의 장이다.

3년 동안 벤허는 예수의 언저리에서 그의 말과 행동을 주시하며 언제든 그를 유대의 옥좌에 앉힐 수 있게끔 뒤에서 만반의 준비를 갖춘다. 하지만 예수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어보이고 벤허는 혼란스럽다. 죽은줄 알았던 어머니와 여동생이 나병환자로 예수앞에 엎드리고 치유되는 기적을 보며 벤허는 더욱더 예수가 실천하려는 가치에 대해 고심하게 된다.



우리는 늘 인간보다 뛰어난 것에서 하나님을 찾으려고 한다. 나사렛 사람이 미문에서 그냥 반대편 문으로 걸어 나갔다고 이라스가 투덜거린 경우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 이야기의 핵심은 그분이 세속적 욕망에 사로잡힌 인간의 행태를 완전히 뛰어넘었다는데 있다. (p. 742)

"난밤 저들이 그분을 잡아 재판한 수 새벽녘에 빌라도 앞으로 끌고 갔지요. 빌라도는 두 번이나 그분이 죄가 없다며 넘겨주기를 거부했지만 저들의 저항이 완고하자 마침내 손을 씻으며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당신들 뜻대로 하시오' 그러자 저들이 대답했습니다"

"저들이, 제사장과 사람들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 사람의 피에 대한 책임은 우리와 우리 자손들이 질 것이오" (p. 766)

"대장님, 지금 속고 있는 분은 저희나 동지들이 아니라 당신입니다. 나사렛 사람은 왕이 아닙니다. 그는 자신을, 우리를, 이스라엘을 저버렸어요. 그는 미문에서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다윗의 옥좌를 거절했습니다. 그는 왕이 아닙니다.자유를 위해서라면! 당신과 합류하겠습니다."

지금이 벤허에게는 일생일대의 고비였다. 그 제의를 받아들여 한 마디만 했다면 역사는 다르게 흘러갔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에 의해 결정된 역사일 것이다. 그런 일은 결코 없었고,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되었다. 벤허는 혼란에 휩싸였다. 지금은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 었지만 나중에야 그분 덕이라는 것을 깨달게 되었다.  (p. 777)

 

예수를 죽인 것은 로마가 아니었다. 동족집단의 선택이었고 율법학자들의 판결이었다. 유대인 왕의 자리에 앉지 않는 예수를 보며 유대인들은 찬미하던 존재에게 돌을 던지고 욕설을 뱉어낸다. 자신들의 왕이 될 것이 아니라면 믿음을 가질 수 없다고 등을 돌린다. 그렇게 동족이들이 등을 돌리는 것을 보며 벤허가 다른 선택을 했다면 이 작품은 정말 그냥 소설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성서의 줄거리를 그대로 따라가는 듯 하다. 따라서 종교와 역사를 버무린 약간의 허구성은 소설이라고 하기에도 역사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위치에 이 작품을 위치시킨다. 예수의 죽음 5년 후 네로황제때 그리스도에 대한 박해가 시작된다는 소식에 벤허의 가족은 그동안 축적된 벤허의 재산이 어떻게 쓰여야 할 지 깨달았고 그렇게 지하교회의 태동을 알리며 소설은 마무리된다. 하지만 소설 속에서 재현된 불신과 갈등의 태동은 이후 역사를 아는 지금 읽기에 더욱 씁쓸하기만 했다. 종교적 분쟁은 이후 역사에서 그리고 지금까지도 여전히 잔혹하게 이어지고 있기에 소설속에서라도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마어마한 작품을 쓴 작가의 삶도 소설적인 면이 많았다. 미국남북전쟁에서 북군을 지휘하며 워싱턴을 지켜냈고 링컨 대통령의 암살공범 재판에 재판관으로 참여했으며 변호사와 정치가 외교관으로서 이력과 함께 작가로서의 명성도 높였다. 이 작품이 대단한 성공을 거두게 되면서 월리스의 일생동안, 그가 무신론자였다가 소설을 쓰기 위한 배경자료 수집 차 성지를 방문했다가 종교에 귀의하게 되었다는 일화로 시달렸다고 한다. 그러나 월리스 자신은 이 이야기를 부인하며 자신은 무신론자라기보다는 기독교에 대해 별 관심도 없었고 무지했으며 벤허를 쓰기 전에는 성지에 가본 적이 없었다고 고백했다고 한다. 그리고 기독교에 대해 공부하면서 그 결과로 나온 것이 바로 <벤허> 였다고 한다. 그래서 이 작품은 비종교인이 읽어도 크게 위화감을 갖지 않게 쓰여진듯 하다. 처음부터 과한 종교성을 드러냈다면 이렇게 성공하지 못하지 않았을까? 읽다보면 천천히 자연스럽게 종교적 믿음에 대해 뭔가 느끼게 된다. (그런 점에서 역자의 서문은 차라리 빼거나 뒤로 물렸으면 싶은 바램이 있다;;;)


여하튼 이 작품은 종교성을 뺀 스토리만으로도 영화를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서사가 있고, 성서를 읽기 전에 이 책부터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종교성도 있다. 그리고 기왕 읽는다면 완역본인 이 책으로 읽는 것을 권하고 싶다. 고전이 왜 고전으로 계속 읽히는지 다시한번 느끼게 해준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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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난 후의 서평글이라서

리뷰 카테고리 에 올렸어야 했는데;;;

페이퍼 카테고리에 올리고 나서

수정을 하려고 보니 변경이 안되어

리뷰에 새 글로 올림;;;

 

https://blog.aladin.co.kr/758481150/115080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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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자의 인문학 서재 - 경제학은 세상과 어떻게 연결되는가 경제학자의 인문학 서재
박정호 지음 / 더퀘스트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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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은 세상과 어떻게 연결되는가

경제학의 쓸모 X 인문학의 사유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갖고 있는 프레임으로 세상을 본다.

그 프레임은 살면서 쌓아온 경험들과 배워익힌 지식과 지혜로 만들어진 것일 것이다.

따라서 각자의 프레임은 다 다를 수밖에 없으며 그러므로 때로는 다른 이의 프레임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필요하다.

이 책은 경제학자인 저자가 자신의 인문학적 소양을 바탕으로 역사, 문학, 예술, 문화, 정치, 사회 등 다른 분야들을 경제학적 프레임으로 풀어낸 책이다. 경제학자가 아닌 내가 경제학자의 시선을 따라가보는 것은 신선하면서도 익숙한 내용들이라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1장에서는 경제학을 설명하기 위해 역사나 정치경제등 다른 사건들을 예로 들었다면 2장부터는 역사와 예술과 사회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경제학적 개념들을 인용해 설명해주고 있다. 지나치게 전문적이거나 어렵지 않아서 읽기 무난했고 딱히 순서나 흐름에 얽매이지 않고 읽어도 괜찮을 내용들이었다. 경제상식도 높이고 지대넓얕식의 인문학 상식도 높일 수 있는 책이랄까.

정확히 말하자면 빌 게이츠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돈을 번 것이 아니라 '자유재'를 '경제재'로 바꾸어 돈을 번 인물이다. (p. 35)

자유재와 경제재 이야기를 하며 예로 든 인물이 빌 게이츠다. 빌 게이츠는 IT업계의 거부 이지만 그가 처음부터 그가 만든 프로그램을 돈을 받고 팔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가 새로 창조해낸 것도 아니었다. 그가 위대한 것은 프로그램의 개발자여서가 아니라 인식의 전환을 이끌어 냈기 때문이었다. 프로그램은 돈을 주고 사야하는 것이라는 것을 시작한 인물이 그였다.

함무라비 법전의 조항들은 4,000년 전부터 정부의 가격통제가 존재했다는 것을 증명한다. 경제학 이론에서는 자원배분을 자유시장에 맡기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고 이야기하지만, 현실에서는 고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정부가 특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경제에 개입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p. 44)

함무라비 법전에 경제 관련 조항이 거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수메르 토판들이나 이집트 기록들에서 기록의 시작은 재물이 들고나는 것을 위해서였으니 어찌보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역사책을 읽을 수록 사람사는 건 참 수천년간 별로 변한게 없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는데, 경제에서도 그랬네...

 

그 누구도 기축통화를 건드릴 수는 없었다. (p. 53)

 

스위스가 세계대전에 휘말리지 않고 중립국의 위치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스위스 화폐가 기축통화 역할을 했기 때문이었다. 전쟁이 나면 물자의 수송이 더 중요해지지만 경제적 교류는 원활할 수가 없다. 누가 승전국 패전국이 될지 모르는 상태에서 어느 나라의 돈을 받아야 할지 판단하기 어려워진다. 그래서 누구도 침범하지 않을 교류의 장소 교류의 수단이 필요했고, 그 조건을 충족시킨 나라가 스위스였다. 그리고 지금도 세계는 자국의 통화를 기축통화로 만들기 위해 노력중이다. 기축통화가 된다는 것은 어느쪽으로부터도 침공받지 않는 완벽한 안전지대가 된다는 의미이다.

정교한 금융기법이 절실했던 금융회사들의 필요와 물리학자와 수학자들이 안정된 일자리를 찾아 떠돌아다니게 된 시대 상황이 맞물리면서 현재의 금융공학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p. 62)

냉전시대 경쟁적인 우주산업은 많은 물리학자들과 수학자들을 필요로 했으나 냉전이 종식되자 그들은 실업자가 되었다. 그들을 받아준 곳은 금융계였다. 금융이 커져가던 시대에 계산하고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공급과 수요가 이렇게 딱 맞아떨어지다니. 많이 배운이들은 여전히 많이 벌 수 있게 되었다.

개성상인들은 이러한 복식부기의 간편함을 깨닫고 자신들만의 회계장부인 사개치부법에 이를 활용해왔다. 이는 복식부기의 원리를 처음 생각해낸 이탈리아 베네치아 상인보다 200년이나 앞선 것이었다. 오늘날 재무회계 처리방법과 유사한 부분이 많다는 측면에서 우리 민족의 회계 역사나 기술이 서양의 그것에 비해 결코 짧지 않음을 알 수 있다. (p. 93)

무역하면 유럽이므로 회계도 유럽에서 엄청 발달했을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았다. 거래처가 세계곳곳의 여러나라가 아니라고 해서 그 관리방법까지 미약한 것은 아니었다. 일제 강점기에 서양의 회계처리 방식이 전래되기 전까지 사개치부법은 유사한 방식으로 잘 활용되어 왔었다.

원래 주식은 위험을 줄이기 위한 목적으로 시작됐다. 때로는 주식이 위험을 줄이는 방편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떠올려 볼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p. 99)

주식 하면 투기 가 떠오른다. 하지만 주식회사의 처음은 위험분산이었다. 가장 위험한 투자처가 된 주식이 아니라 가장 안전한 투자방식이었던 주식을 생각해 봐야 한다는 저자의 말에 동의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일찍부터 서구 열강들과 교역해야 했던 상하이의 상인들이나 동남아 여러 지역을 비롯해 멀리 중동 지역까지 교류했던 광저우 지역의 상인들이 모두 유대인과 비슷한 거래 행태를 보인다는 점이다. 이처럼 다양한 문화권과 접촉해야 했던 상인들은 어느 국가이든 상관없이 모두 보편적이고 표준화된 방식을 따랐다. (p. 110)

다양한 거래처와 교류한다는 것은 오히려 표준화된 거래방식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사람 사는 것이 다 비슷해질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예나 지금이나 다 비슷한거다.

순장 문화는 절대왕권이 공고히 다져지지 않았던 고대사회에서 국왕들이 자신의 신변을 지키기 위해 고안해낸 위험회피 전략이었다. (p. 117)

순장에 대해 그저 권력의 과시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순장문화는 경제적 용어로 말하자면 위험회피 전략이 맞았다. 왕이 죽었을때 측근들이 다 살아있다면 왕의 자손이 위협을 받게 되고, 왕이 죽을때 같이 죽는 다는 것을 아는 이상 어떻게든 왕을 오래 그리고 잘 보필해야 하므로, 순장은 일석이조의 왕권강화방법이었다.

과거 영미권 국가에서는 토지를 소유한 사람들에게만 선거권을 부여한 바 있다. 소작농에게 지주계층과 동일한 형태의 선거권이 부여된 시기는 19세기 말에 들어서였다. 또한 비록 귀족은 아니지만 토지를 소유한 사람들에게는 마치 귀족처럼 가문의 휘장을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흔히 이러한 계층을 젠트리라 부른다. (p. 124)

옛날엔 땅을 가진자만이 귀족에 준하는 권리를 인정받았다. 지금은 건물을 가진자가 권력을 갖는다. 젠트리피케이션?!

신대륙에 끌려와 노예가 된 수십만 명의 흑인들이 소수의 유럽인들에게 저항하지 않았던 이유도 이와 같다. 유럽인에게 저항했을 때 돌아오는 대가는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성공했을 때 얻게 되는 결과는 어차피 본국으로 돌아가기 힘든 상황에서 다소간의 휴식 내지는 안락함에 지나지 않았다. 더군다나 신대륙에 남아 있으면 또 다른 유럽인들이 언제 다시 찾아올지 모를 일이다. 이러한 상황은 저항으로 인해 얻게 될 편익보다 비용이 훨씬 크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p. 137)

저자는 경제적으로 합리적은 선택을 이야기하며 흑인노예들의 상황을 예로 들지만, 이러한 상황을 경제적인 면으로만 판단할 수는 없다. 우리의 독립운동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합리성으로만 따지기엔 역사는 희생과 용기로 점철된 시간들이 분명한 획을 긋고 있다.

지금으로 따지면 조공은 만주족과 명나라를 대상으로 한 일종의 중계무역이라고 할 수 있다. (p. 141)

역사드라마나 영화 같은 것을 보면 대개 무리한 조공의 요구로 힘들어하는 우리민족의 이야기들이 자주 나온다. 하지만 조선시대 조공은 흑자무역이었다. 형님국에 아우국이 조공을 바치면 형님국은 받은 것보다 훨씬 많이 주어야 했기에 조선은 1년에 3번 조공을 원할때 명나라는 3년에 1번 조공을 원할 정도였다. 조공에 대한 실리성은 분명 알아둬야 할 상식이라고 생각한다.

로마의 이러한 전략을 현대에는 미국이 계승하고 있다. 미국은 포로가 된 자국 군인을 구출하거나 그들의 유해를 찾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p. 148)

라이언일병구하기 라는 영화를 보진 않았지만 스토리만 들었을때 뭐 이런 멍청한 선택이 있나 싶었다. 한명을 구하기 위해 여럿이 죽어야 하는 상황이 대체 산술적으로 말이 되는가 말이다. 하지만 로마때 그러했듯 미국에서는 라이언일병구하기가 반드시 필요했다. 거대국가일수록 자국의 군인을 보호하려는 상징성이 없다면 누가 군인이 된다고 나서겠는가?

산타클로스를 오늘날과 같은 친숙한 이미지로 각인시킨 건 코카콜라 회사였다. 1931년 코카콜라 회사 로고와 동일한 색깔인 빨간색 옷과 콜라 고품 모양을 본뜬 흰 수염을 단 산타클로스를 등장시킨 광고를 내 보냈다. (p. 156)

헐 몰랐다. 코카콜라를 겨울에도 그렇게 마시도록 한 것이 산타클로스였구나. 코카콜라보다 훨씬 커진 이미지성을 가진 산타클로스의 모습이 코카콜라에서 시작됐었구나. wow 마케팅이란!

경제학은 돈을 버는 방법을 고민하는 학문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돈을 효과적으로 잘 쓰는지'를 고민하는 학문이다. (p. 182)

경제학자인 저자에게 지인들이 돈버는 방법좀 알려달라고 농담반진담반 많이들 물어왔나 보다. 저자는 경제학의 학문적 특성을 다시한번 강조한다. 경제학은 이윤을 고민하는 학문이 아니라 만족감을 논의하는 학문이라고. 사실 경제적인 사람이다 라는 표현은 알뜰하다는 의미였는데 나도 경제학자라면 돈버는 방법까지 아는줄 알았다. ㅍㅎㅎ

단순히 음악에 적합한 배경을 까는 수준에 머물렀다면 음악과 영상을 완벽히 접목해 하나의 독립적인 작품으로 탄생시킨 것은 1975년 발표된 영국의 록 그룹 퀸 의 <보헤미안 랩소디>가 최초였다. 퀸이 이 영상을 제작한 이유는 음악을 전달하는 새로운 매개체를 만들기 위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들은 단지 BBC방송국의 인기프로그램에서 자신들의 신곡을 소개해줄 영상을 제작하려 했다. (p. 225)

퀸 이 뮤직비디오를 탄생시켰구나! 역시 대단한 그룹이다!! 비록 그것이 지금의 뮤직비디오를 생각하고 만든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음악과 영상이 조화로운 작품으로 만든것은 어쨌든 퀸이 최초였다.

소중한 문화유산을 경제적 논리를 갖고 따진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지만 문화유산의 가치 평가에서도 경제원리가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p. 254)

외규장각의궤 를 예롤 들어 저자는 소득탄력성과 공급탄력성을 설명한다. 문화유산에 가격을 책정하는 것은 힘든 일이긴 하다. 하지만 프랑스에서 외규장각의궤를 가져오기 위해 벌였던 협상은 결과적으로 경제협상이자 산업협상이었다.

미술관에서 미술품을 보이지 않는 창고에 보관하는 것은 얼핏 비경제적인 행위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실 이는 미술관과 미술관 운영자의 이윤을 극대화해주는 가장 주요한 전략이다. (p. 257)

예술에 대한 예시들로 설명되는 경제적 개념들은 특히나 더 흥미로웠는데, 미술관에 전시되는 작품보다 보관하는 작품이 더 많은 것이 당연한 선택일 수 있다는 것을 저자의 설명을 읽고서야 알았다.

그런데 사실 대공황이 유효수요의 부족으로 발생한 최초의 사례는 아니다. 모차르트 역시 유효수요 부족으로 인해 피해를 본 대표적인 인물이다. (p. 321)

모차르트는 음악으로도 유명하지만 다른 사례들로도 참 인용이 많이 될 수 있는 인물인듯 하다. 모차르트는 귀족층을 대상으로 활동하긴 했지만 당시는 싱흥중산층이 부상하고 있던 시기였고 그래서 모차르트도 귀족보다는 자유분방한 신흥 부유층을 타깃으로 삼고 귀족을 풍자하는 '마술피리' 나 '피가로의 결혼' 같은 작품을 만들었지만 아직 시기상조였다. 신흥 부유층은 음악에 투자할 여력까지는 아직이었다. 모차르트는 경제적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난로세를 회피하기 위해 벽난로를 없앴던 납세자들은 창문 또한 없애기 시작했다. 세금을 내느니 차라리 어둡게 살겠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당시 지어진 건물들 중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건물들을 보면 크기에 비해 창문수가 현격히 적은 기형적인 형태로 건설된 건물이 많이 남아 있다. (p. 356)

영국에 있던 세금중에 창문세라는 것이 웃기기 보다는 창문세를 안내려고 창문을 없거나 작게 만들었던 납세회피자들이 너 기가막힌다. 예나 지금이나 세금 안내려고 부리는 꼼수들은 참...

철과 구리 같은 금속으로 화폐를 만들게 된 것은 당시 금속 광산이 전부 왕의 소유였기 때문이다. (p. 389)

실물자산이 화폐로 사용되는 것은 왕에게 아무런 이득이 없었다. 금속은 무기제작에도 활용도가 높았다. 또한 금속으로 만든 화폐또한 왕만이 만들 수 있는 것이었기에 금속화폐의 등장은 어쩌면 필연이었다.

흔히 인플레이션은 개별 경제주체에게 커다란 고통을 가져다주는 요인으로 인식된다. 그런데 해방 이후 우리 경제에서는 이와 같은 인플레이션이 분배 정의를 실현하는 데 일부 기여하게 되었이니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필리핀은 농지개혁와 근대화, 산업화에 실패해 아직도 15대 지주 가문이 국부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p. 399)

혼란기에 어떻게 질서를 잡아내느냐가 지금을 만들었다. 남한의 농지개혁법은 의외로 수천년간 이어온 지주계급을 해체하는 결과를 만들어 냈다. 물론, 그것을 만든 이들은 몰랐겠지만 말이다.

사실 시장경제 매커니즘 면에서 볼 때 다산 정약용이 살아온 시대적 환경이 애덤 스미스의 시대적 환경보다 더 명확하지 못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다산이 보여준 통찰력에 더욱 높은 점수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p. 422)

다산 정약용의 일화들은 여기저기서 언급되지 않을 수가 없다. 어찌보면 조선시대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같다고나 할까...

로마시대에는 군인들의 급료를 소금으로 지불하기도 했다. 소금을 뜻하는 라틴어인 살라디움saladium이 봉급을 의미하는 salary 의 어원이 된 연유도 여기에 있다.

영국은 랭커스터, 맨체스터, 윈체스터 등과 같이 지명의 어미에 '체스터'가 붙은 역우가 상당수다. 체스터는 병영지를 나타내는 라틴어인 castra 에서 유래된 것이다. 즉, 영국에서 체스터로 끝나는 지역들은 로마제국 시절 로마의 가장 변방지역을 지키는 병영지였던 곳이다. (p 401)

사유재산은 라틴어로 프리바투스 privatus 라고 부르는데, 이는 '나누었다' 와 '약탈하다'라는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이 말은 사유재산 제도가 전쟁으로 인해 얻은 전리품을 나누어가지는 문제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전개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p. 402)

 

영어의 어원은 라틴어에서 많이 왔을 수밖에 없겠지만, 영어는 모르고 역사는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런 어원 이야기가 나오면 재밌고 새롭고 좋다. ㅎㅎ

잊지 말아야 할 점은 각 지역마다 혹은 국가마다 특정 재화나 서비스를 인식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사실이다. 그 때문에 거래의 득실 또한 우리의 셈법이 아닌 다른 셈법에 의해서도 계산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p. 454)

세계의 교류가 아무리 활발해지고 가까워져도 비슷해지지는 않을 것 같다. 오랜 세월 축적되어온 고유한 것들이 있다. 그 고유한 다름은 교류의 토대이자 필요가 된다. 따라서 교류는 계속되고 경제도 계속될 것이다. 다양한 셈법을 익히는 자가 더 많은 이득을 취하게 될 것은 당연하다. 그 다양성을 이해하는 방법은 결국 이 책처럼 통섭의 학문을 배우고 익히는 데서 시작되지 않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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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의 의자 (10주년 기념 특별판) - 숨겨진 나와 마주하는 정신분석 이야기
정도언 지음 / 지와인 / 202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숨겨진 나와 마주하는 정신분석 이야기

 

 

카우치라 불리는 길다란 눕는 쇼파가 표지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일명 프로이트의 의자다.

심리학책은 여럿 읽었는데, 정신분석 책은 굉장히 오랜만이다. 사실 심리학과 정신분석의 구분을 잘 모르겠기도 하다.

심리학은 마음 같고 정신분석은 의식 같아서, 심리학은 심장같고 정신분석은 뇌같지만, 요즘은 둘다 뇌과학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상호보완되는 학문들이라 따로 구분이 가능한가 의아해지기도 한다. 여하튼, 정신분석 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연관단어 1위로 프로이트가 떠오르기 마련인지라 이 책은 심리학책이 파도처럼 넘치는 요즘 시대에 정신분석학으로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런데 사실 나한테만 신선하게 다가온 것이지 이 책은 10년동안 꾸준히 읽혀온 책이라고 한다. 이번 책은 10주년 기념판으로 '정신과 의사들을 정신분석하는 마음의 명의와 함께 내 무의식을 찾아가는 여행' 이라는 홍보문구가 띠지에 써있었다. 비밀독서단이 '자존감을 높여주는 책'으로 선정한 책이기도 했었다는데, 비밀독서단을 애청했던 나로서는 왜 기억하지 못했을까 싶은 당황스러움이;;;

여하튼 저자는 국내 정신분석학의 대가이다. 국내 최초의 '국제정신분석가' 이자 정신분석가를 양성하고 교육하는 지도 분석가 라고 한다. 서울대병원교수로 30년 넘게 재직하며, 환자 분석과 정신분석가 교육에 앞장섰고, 정신과/신경과/수면의학 전문의로서 각종 미디어에서 대한민국 명의로도 꼽힌 바 있다고 한다. 가히 국내 정신분석학에서는 연륜과 깊이를 두루 갖춘 대표전문가라고 할만한 이력이다. 이러한 자신의 경험을 축적시켜 풀어낸 책인데다 최신 개정판이라 정신의학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읽어봄직한 책이다. 무엇보다 굉장히 쉽게 풀어낸 대중서이다. 모르는이에게 어려운 말로 전문성을 뽐내는 얕은 사람이 아니라 모르는이가 알만큼 쉽게 풀어낼 수 있는 전문성을 갖춘 능력자가 진정한 대가 아닐까.

책은 총 4장으로 구분되는데, '숨겨진 나를 들여다보기' 에서 정신분석학이란 무엇인지 살펴보고 '무의식의 상처 이해하기' 에서 세세한 감정들을 정신분석적으로 이해하고, '타인을 찾아 끝없이 방황하는 무의식' 에서나의 무의식을 점검해보며 '무의식을 대하는 다섯가지 기본 치유법' 에서 나의 정신을 위한 치유를 살짝 살펴본다.

정신분석은 소위 상담이라고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작업입니다. 내가 내 생각을 말하면 분석가는 언어로 표현한 텍스트를 해석해서 그 의미를 파악하고 나에게 돌려주거나 스스로 의미를 알아차리도록 도와줍니다. 인간은 결국 감성적인 동물입니다. 자신이 이성적이라고 믿는 사람일수록 마음속에 문제가 많습니다. 마음도 몸처럼 치료가 필요합니다. 치료를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아픈지를 잘 들여다봐야 합니다. 정신분석이란 바로 그 마음을 확대해서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귀한 렌즈입니다. (p. 22~23)

심리학 위안 치유 힐링 등은 다 상담으로 연결된다. 타인과 하던 자기자신과 하던 여하튼 상담이 일반적인 귀결지점이다. 저자는 첫장부터 정신분석을 심리적 상담과 구분짓는다. 이렇게 '첫번째 이야기' 에서는 정신분석학에 대한 기초적인 개념들을 이해할 수 있는 내용들이 설명된다.

프로이트는 마음을 의식, 전의식, 무의식으로 나누었다. 마치 커다란 땅덩어리를 나눈 것 같다고 해서 이것을 '지형이론' 이라고 한다고 한다. 하지만 지형이론 만으로는 해석에 한계점을 느꼈고, 프로이트는 고심끝에 '구조이룬'을 내놓는다. 구조이론은 인간의 마음을 마치 세 명의 사람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는데, 그들의 이름은 이드, 자아, 초자아 이다. 이후 정신분석은 지형이론과 구조이론을 조합하여 발전되어 왔고 후대 학자들에 의해 또다른 방법들이 추가되어 오고 있다.

현대 정신분석학은 오래된 프로이트의 이론만을 그대로 따라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신분석학에 대한 비평은 상당 부분 오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비평을 하는 사람들의 눈길은 프로이트가 살아 있던 100년 전의, 그것도 초기 이론에 가 있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정신분석학은 성적 욕망만 논한다"는 식의 비판이 어이없게 나오는 것입니다. (p. 77)

흔히 다른 학파들에서 21세기인 지금도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프로이트 생존의 관점 중 일부인 '리비도 이론'만을 가지고 공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는 시대착오적인 행위입니다. 타 학파와 달리 현대 정신분석학은 이론과 기법에서 프로이트 생전의 '이드 심리학' 이후에 안나 프로이트와 하인츠 하르트만의 주도로 이루어진 '자아 심리학', 멜라니 클라인과 영국 분석가들이 주도한 '대상관계 이론', 하인츠 코헛의 '자기 심리학', 스트빈 미첼 주도의 관계 정신분석학, 상호주관성 이론, 윌프레드 비온의 이론, 존 볼비의 애착 이론, 자크 라캉의 이론 등등에 의해 넓어지고 다양해지고 깊어졌습니다. 앞으로도 더 많은 변화들이 있을 것으로 예측되고, 그러한 활발함이 정신분석학의 세계를 더 넓고 깊게 해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p. 277)

 

내 정신분석학에 대한 상식도 프로이트의 성적욕망론 수준에 멈춰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무지였으며, 다양한 이론들이 발견되고 발달되어 오고 있음을 이 책을 통해 배울 수 있었다. 그렇다고 이 책이 이론서인 것은 아니다. 이론에 대한 부분은 길지 않으며 대부분은 이해를 돕는 수준에서 친절하게 풀이된다.

완전히 검거나 완전히 흰 '선명한' 인생은 없습니다. 건강하고 행복한 인생에는 검은색과 흰색의 중간인 여러 채도의 회색들이 필요합니다. 통합되지 않고 대립된 상태로 저장된 선명한 이미지들만 마음에 지니고 있으면 세상이 온통 갈등 구조로 보여 살기가 힘들어집니다. 내 마음이 언제나 싸움터라고 생각된다면 자신이 세상을 몇 가지 색으로 구분하고 있는지를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내가 가지고 있는 마음의 색을 들여다보는 것, 그것이 정신분석이 우리를 치유하는 방법입니다. (p. 83)

정신분석도 결국은 나를 치유하는 방법의 하나이며, 그 치유의 방법으로서 렌즈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정신분석 렌즈를 소개하고 난 저자는 이제 그 렌즈로 감정들을 하나하나 살펴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감정들을 정신분석적으로 이해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저자의 렌즈로 들여다보는 감정들은 불안, 우울, 분노, 공포, 좌절, 망설임, 열등감, 시기심, 질투 이다.

망설임을 정신분석 용어로는 '양가감정' 이라고 합니다. 동일한 대상에 대해 동시에 두 가지 상반되는 감정을 느끼거나 태도를 보인다는 뜻입니다. (p. 147)

일상적인 감정들이고 친숙한 단어들인데 정신분석적으로 들여다보는 감정들의 이해는 그간의 심리학적 풀이들과는 비슷한듯 달랐다. 저자는 감정을 이해시켜줌으로써 그 감정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도 알려준다.

'인생상담' 과 '정신분석' 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내 인생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몰라서 왔는데 나도 모르는 것을 어떻게 치료자라고 해서 금방 알고 방향을 지시할 ㅜ 있겠습니가? 정신치료나 정신분석은 짐작으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정신분석은 내가 말한 것에 근거해서 치료자가 나를 이해하고 이해한 것의 의미를 해석해서 나에게 되돌려주는 과학입니다. 귀 기울여 듣지 않는 치료자는 위험합니다. 그러니 혼자 있을 때도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를 잘 듣는 연습을 꾸준히 하십시오. 그러면 길이 보입니다. (p. 172)

심리적인 문제를 느껴 정신과를 찾아가는 일이 예전보다는 쉽게 용인되는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심리적 상담과 정신적 치료는 좀 다르다. 거기에 정신분석은 또 다르다. 나에게 필요한 방법을 찾는 것도 다 시행착오가 필요하다.

여러분 앞에 분석가가 있다고 스스로 상상해보세요. 그와 대화함으로써 내가 대상을 찾아 방황하는 현재는 내 과거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거울을 어떻게 닦아내느냐에 따라 내 미래가 달라질 것입니다. (p. 179)

렌즈를 손에 쥐었다고 해서 다 잘 보는 것은 아니다. 잘 닦아내고 초점을 잘 맞춰야 제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보는 것은 내가 보는 것이다. 나만 잘 볼 수 있다. 결국 내가 핵심이다.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다.

고독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인간은 고독을 통해서 자랍니다. 세상 일이 모두 즐겁고 남들과 어울리는 것으로 모든 것을 성취할 수 있다면 고독은 진정으로 병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내면세계를 통합하고 정리하기 위해서는 혼자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나의 내면세계를 탐구하기 위해 정신분석가의 카우치에 누워서 하는 일도 따지고 보면 매우 고독한 작업입니다. 분석가의 작업도 오랜 기간 분석받는 사람의 내면세계와 홀로 직면해야 하니 고독하지 않다고 할 수 없습니다. 애착만으로 물든 관계는 멀리 못 갑니다. 고독이 없는 성숙은 가볍습니다. (p. 190)

loneliness 와 solitude 의 구분은 옛날부터 굉장히 공감하고 좋아하는 개념이다. 외로움과 고독은 다르다. 고독이 없는 성숙은 가볍다. 참 좋은 문장이다.

사랑은 열정적 행위입니다. 혼자 있을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사람일수록 열정적인 사랑을 원합니다. 사랑에 의존할 수 있어서입니다. 열정적 사랑은 일종의 중독 상태입니다. 중독이라 말하는 것은 시간이 갈수록 사랑의 모양이 더 열정적으로 변하길 원하지만, 사랑은 오히려 반대 방향으로 가는 내성이 생기고 관계가 소원해지면 금단증상으로 고통을 받게 되기에 그렇습니다. (p. 208)

그랬구나... 나는 여태 살면서 열정적인 사랑은 소설이나 영화에서나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로서는 도저히 현실에서 그런 감정을 느낄 수 가 없었기 때문이다. 스타에 대한 팬심이나 이성에 대한 몰입에도 그닥 흥미없었다. 하지만 왜 그랬는지 이 단락을 읽으며 깨달았다. 나는 혼자 있는 것을 늘 즐기는 편이었는데, 이런 성향으로서는 열정적인 사랑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ㅎㅎ

용서는 절대로 상대의 죄를 사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가 한 짓을 잊는 것도 아닙니다. 용서란 내 상처의 원천이자 원한과 복수의 대상인 상대 자체를 마음에서 버림으로써 나를 치유하는 과정이자 결과입니다. (p. 219)

용서의 의미는 심리학 책들에 나오는 내용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책은 심리적인 감정들을 많이 다루고 있으면서도 위안이나 힐링, 치유 보다는 이해를 돕고 있다.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이 어찌보면 심리적 위안 위로 힐링 치유 등의 기본 토대일 것이다. 다양한 감정들의 이해는 그 토대를 충실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우리는 현재를 당연히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과거를 완벽하게 정리하고 미래를 잘 계획하면 그만큼 더 행복할 것이라고 착각하며 현재를 소비해버립니다. 현재를 사는 것은 일단 현재를 인식하는 것입니다. 내 생각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현재에 집중해서 마음의 주인이 되는 것을 '마음챙김'이라고 합니다. 마음에서 태어나서 곧 사라져버리는 생각, 느낌, 이미지 그리고 몸의 감각에 시시각각 주의를 기울이는 행위입니다. '마음챙김'은 원래 불교에서 나온 개념으로 정신의학에서 받아들여 실용적으로 개발해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내 마음 흐름의 지배자가 되자는 시도아지 노력입니다. 내 마음의 흐름을 옳다고 또는 그르다고 평가하지 말고, 그저 물처럼 살펴보고 경험하면 됩니다. (p. 228)

심리학이라고 불리건 정신분석학이라고 불리건 여하튼 중요한 것은 내가 나를 잘 살펴보는 것이다. '지금 여기' 를 제대로 인식하고 그 안에서 내 마음을 잘 들여다보는 것, 그곳이 상담실이 됐건 프로이트의 의자가 됐건 의식과 무의식의 흐름속에 이드와 초자아가 충돌하는 사이사이 느껴지는 감정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그 연습을 돕는 많은 책들 중에 이 책도 한자리 떡하지 자리잡을 만한 책이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한마디로 말하면 '갈등의 심리학'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갈들은 삶의 동반자입니다. 갈등은 태어나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우리 곁에 늘 있습니다. 시달리지 않고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그 갈등의 순환 고리를 탐색하고 의미를 이해하고 새로 다듬어야 합니다. 그러한 작업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입니다. (p. 274)

책의 뒤에 부록으로 '마음 공부를 하고 싶은 이들을 위한 안내서' 라고 다양한 책들을 소개시켜 주고 있는데, 읽고 싶은 책들이 여럿 눈에 띄어서 이 책을 읽은 수확중의 또하나가 이기도 했다.

리뷰어스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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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원하는 것을 나도 모를 때 - 잃어버린 나를 찾는 인생의 문장들
전승환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잃어버린 나를 찾는 인생의 문장들

지친 우리에게 필요한 건 내 마음을 알아주는 한 문장이다

 

 

띠지에 이런 홍보문구가 써 있었다.

'150만 독자가 사랑한 <책 읽어주는 남자> 전승환 작가의 첫 번째 인문 에세이'

그리고 표지 뒤쪽에 추천사를 써주신 분이 따듯한 시로 유명한 이해인 수녀님과 <시를 잊은 그대에게> 라는 책으로 인상깊었던 정재찬 교수님 이었다.

<책 읽어주는 남자> 라는 채널명을 알고 있었는데... 그 글들이 모여 이렇게 한권의 책이 되고 심지어 이해인 수녀님과 정재찬 교수님께 추천사를 받을 수 있다니... 저자가 새삼 부러웠다. 좋은 글귀로 사람들의 지친 마음을 치유하는 북 테라피스트라고 마음 큐레이터 라고 자신을 소개할 수 있는 것도 부러웠다.

그렇다. 어쩌면 지금은 한 권의 책을 다 읽어내는 것도 어려운 시대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한 권의 책이 아니라 하나의 문장으로 대신하는 시대가 되고 자신이 쓰지 않아도 다른이의 책 속에서 진주같은 문장을 찾아내어 소개하는 것으로도 한 권의 책이 되는 세상이 된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한문장이 아니라 한권을 추천하는 북큐레이터가 되고 싶다. 한 권의 책을 다 읽고 내가 좋았던 그 한권의 책을 다른 이도 완독할 수 있도록 그 책을 진심을 다해 소개하는 북큐레이터가 되고 싶다. 그래서 나는 책을 읽고 서평을 쓴다. 누군가에게 내 서평이 그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을 갖게하길 바라며...

여하튼 이 책은 참 예쁜 책이다. 표지도 예쁘고 내용도 예쁘고 마음도 예쁜 온통 예쁜 책이다.

저자가 다른 책에서 예쁜 문장들을 많이 인용해 놓았으니, 나는 저자의 문장들 중에서 예쁜 문장들을 조금 골라보았다.

그렇게 불쑥 슬픔이 찾아올 때, 제겐 마음을 달래는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더 외로워지는 겁니다. 의자에 앉아 책을 펼치고 오롯이 혼자가 되어, 마음에 울림을 주는 이야기나 문장을 찾는 거죠. 그러다 뭔가 쿵 마음에 와닿을 때면, 나도 모르게 펑펑 눈물이 납니다. (p. 15)

불쑥 슬픔이 찾아올때 마음을 달래는 방법이 더 외로워지는 것이라는 말은 의외로 굉장히 힘이 되는 문장이다. 외롭다는 것은 혼자라는 것 따라서 외로움이 힘들땐 누군가와 함께 하는 것이 위로가 되는 방법일 것 같지만, 때로는 더더 외로워지는 것이 힘이 될 때가 있다. 지극히 혼자가 되어봐야 외로움의 끝에 가봐야 외로움을 벗어날 수 있다. 애매하게 함께하게 되면 같이 있어도 외로움을 느낀다. 더 외로워지는 것이 마음을 달래줄 때가 있다. 그리고 그 순간 옆에 책이 놓여있다는 것이 어쩌면 저자와 나의 유일한 공통점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나는 책을 읽으며 펑펑 눈물이 나는 적은 없다;;;)

슬픔과 고통의 형태가 다양하기에, 우리에게는 다양한 형태의 위로가 필요합니다. 스스로 위로하는 것도 필요하고, 다른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아야 할 때도 있습니다. (p. 17)

사람 생김새가 다양한 만큼 슬픔과 고통의 형태도 다양할 것이다. 감정은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감정이어도 사람마다 다 다른 감정이다. 같을 수 없다. 그것을 몰라서 우리는 때때로 오해하고 실수하는 게 아닐까? 나의 슬픔과 너의 슬픔은 같은 슬픔일 수 없다. 슬픔이라는 하나의 명칭은 결국 하나일 수 없다. 감정의 형태가 다양한 만큼 위로의 형태도 다를 수밖에 없다. 이 다양성을 새삼 생각하게 한 이 문장이 나는 참 좋았다.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게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p. 44)

 

저자가 인용한 백석 시인의 <흰 바람벽이 있어> 라는시의 일부이다.

외롭고 높고 쓸쓸한 이 여기서 나왔었구나... 내가 좋아했던 안도현 시집의 제목 중 외롭고 높고 쓸쓸한 이라는 시집이 있었다.

안도현 시인이 백석 평전 이라는 책도 냈었는데... 백석 시인을 정말 좋아했었구나... 백석평전 을 읽어봐야 겠다....

우리는 현재에 충실하지 못할 때 후회하게 됩니다. (p. 52)

후회란 지나간 과거에 대해서 느끼는 감정인 것인줄 알았다. 그런데 이 문장을 읽고 보니 좀 다르게 다가왔다. 한 문장의 기준 시점을 과거에 두느냐 현재에 두느냐에 따라서도 사고방식이 달라지게 되는 것 같다. 후회란 지나간 시간에 대한 감정이 아니라 현재에 대한 감정이라고 생각하니 좀더 실체감 있게 다가왔다.

그때 필요한 것은 좀 더 힘내라는 말이 아니라 지금도 괜찮다는 말, 나의 존재 자체를 있는 그대로 긍정해주는 말입니다. (p. 130)

위로의 말 중에서 가장 흔하게 하는 말이 '괜찮아 괜찮아질거야 잘될거야 힘내' 같은 말들이 아닐까

하지만 때로는 그 말들이 위로가 되지 않는다. 괜찮을 거라는 말을 들어도 전혀 괜찮아지지가 않는다.

그때는 괜찮다 힘내 라는 말 보다는 옆에 있어주고 들어주고 살짝 어깨를 토닥여 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게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고 지금 그대로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안 괜찮아도 괜찮다!'

씁쓸해하며 계속 길을 걷는데, 길 위에 툭 튀어나온 가로수의 뿌리가 눈에 띄었습니다. 그러자 평소엔 눈에 보이지 않던 가로수의 뿌리 부분에 대해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가로수는 비록 전기톱과 가위에 깎여 모두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땅속 깊은 뿌리만큼은 제각각 다른 모습으로 단단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던 것이지요. (p. 173)

흉하게 잘려나간 가로수들을 보며 가로수를 왜 저렇게 해놓았을꼬 하며 무심하게 지나쳤었다. 그런데 뿌리라니! 뿌리에 대해서는 정말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눈에 보이는 비슷한 모양새를 한 가로수들도 뿌리는 정말 다 다르게 생겼을 것이다. 다 다른 방향으로 뻗어 나갔을 것이다. 역시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을 생각한다는 것은 늘 묘한 울림과 위로를 준다.

니체가 말하는 영원회귀란 게임처럼 계속해서 과거로 돌아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라, 지금의 선택이 바뀌지 않은 채로 계속해서 영원히 반복되어도 좋을 만큼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지금 여기' 의 시간이 우리에게 유이하며 가장 중요하다는 뜻이죠. 아모르파티, 네 운명을 사랑하라는 니체의 가르침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p. 188)

니체의 책을 제대로 읽어본 적은 없다. 궁금하긴 하지만, 니체의 책을 읽고나면 다른 책은 다 무의미해진다는 얘기들이 있어서 가장 나중으로 미뤄둔 책들이다. 그래서 잘 모르지만, 저자가 인용한 니체의 질문이 그리고 저자의 대답이 의미있었다. 지금의 선택이 바뀌지 않아도 좋을만큼 만족스러운 현재를 살라는 것만큼 최선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까

마흔이 넘어서 알게 된 사실 하나는 친구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거예요. 잘못 생각했던 거죠. 친구를 덜 만났으면 내 인생이 더 풍요로웠을 것 같아요. 쓸데없는 술자리에서 시간을 너무 많이 낭비했어요. 맞출 수 없는 변덕스럽고 복잡한 여러 친구들의 성향과 각기 다른 성격, 이런 걸 맞춰주느라 시간을 너무 허비했어요. 차라리 그 시간에 책이나 읽을걸. 잠을 자거나 음악이나 들을걸. 그냥 거리를 걷던가. 이십 대, 젊을 때는 그 친구들과 영원히 같이 갈 것 같고 앞으로도 함께 해나갈 일이 많이 있을 것 같아서 내가 손해 보는 게 있어도 맞춰주고 그러잖아요. 근데 아니더라고요. 이런저런 이유로 결국은 많은 친구들과 멀어지게 되더군요. 그보다는 자기 자신의 취향에 귀 기울이고 영혼을 좀 더 풍요롭게 만드는 게 더 중요한 거에요. (p. 241~242)

저가가 인용한 김영하 작가의 에세이 <말하다> 의 일부분이다. 예전에 이 책을 읽었었다. 이 책과 <보다> <듣다> 3편이 시리즈였는데, 보다 와 말하다 까지만 읽고 그쳤었다. 작가의 잘난체가 너무 심해서 너무너무 재수없어서 더 읽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무리 유명해도 그의 소설도 읽지 않았었다. 어쩔 수 없이 <오직 두 사람> 이라는 소설집을 읽었어야 했는데, 읽고나니 역시나 소설도 작가의 인성을 보여주는 듯해서 다시 이 작가의 책을 손에 드는 일은 없으리라 생각한 작가였다. 말하다 라는 책은 전체적으로 보면 별로였는데, 이렇게 일부분만 떼어놓으면 좋아보일 수도 있구나 싶은 것이 새삼 문장력을 실감케 했다. 김영하 작가가 마흔이 넘어서 알게 된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적어도 마흔은 넘어야 저 구절에 공감할 수 있다. 나이란 그렇게 먹어가는 것이다. 나이 먹어야 알게 되는 것을 몰랐기에 젊었던 것이다. 그때 미리 알았더라면 싶은 것들은 다 그때 몰랐기에 지금 알게될 수 있는 것들이다. 몰랐기에 깨달을 수 있다. 후회할 필요없다. 사람사는게 다 비슷하기 마련이다. 젊었을때 친구도 술도 없이 보낸 세월이 나이들어 과연 좋은 추억이 될 수 있을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저 문장이 와닿을만큼 어느새 늙어버렸다. ㅎㅎ

책 내용중 아쉬웠던 부분이 하나 있는데, '역사상 가장 용감했던 모험가 중에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있습니다.(p. 146)' 부분이었다. 콜럼버스는 모험가가 아니라 침략자 였다. 모험가로 신대륙을 탐험한게 아니라 경제적 이득을 위해 새로운 땅을 착취한 사람이었다. 정말 모험가였다면 그가 아메리카에서 저지른 행동들은 말이 되지 않는다. 모험은 발견에서 그치고 발견된 곳을 존중했어야 한다. 하지만 콜럼버스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는 모험가가 아니다. 나는 콜럼버스를 모험가라고 칭하는 글을 볼때마다 마음이 불편하다. 저자도 다른 모험가를 예로 들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책 속에 읽었던 책들이 나오면 반갑고, 읽었는데 기억하지 못했던 문장들을 다시 보면 또다른 의미로 다가오고, 안읽었던 책이 나오면 관심가고, 책 전체를 읽고 싶지 않더라도 인용된 문장들만으로도 좋을 수 있는 책이었다. 누군가에게 책을 선물한다면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부담없이 선물하기 딱 좋은 책이라고나 할까.

무엇보다 이 책은 겨울에 읽어야 한다.

왠만하면 아주아주 추울때 읽으면 더욱 좋다.

왜냐하면 따듯한 온기가 넘쳐나는 책의 매력을 제대로 느끼려면 겨울과 추위는 필수조건이기 때문이다.

창밖에 눈이 내리면 더욱 좋고, 눈이 아니라 비여도 좋겠다. 어쨌든 흐릿하고 서늘한 어느날 기분이 좀 쳐져 있을 때 약간 어스름한 방에서 편안한 자세로 앉거나 누운채 옆에 차한잔 놓고 혼자서 이 책을 펼쳐보면 '아.. 좋다...' 싶을 것이다. 저자의 차한잔을 받게 될 것이다.

우리 차 한잔 할까요.

세상의 추위에 차갑게 얼어붙은 당신에게

마음을 담아 따듯한 차 한잔 드리겠습니다.

비록 모든 걱정을 털어낼 순 없겠지만

그 차 한잔으로 작은 여유와 행복을 찾기를,

그래서 세상을 다시 씩씩하게 살아갈

용기를 찾기를. (p.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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