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을 만나 행복해졌다 - 복잡한 세상과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심리법칙 75
장원청 지음, 김혜림 옮김 / 미디어숲 / 2020년 3월
평점 :
절판


복잡한 세상과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심리법칙75

심리하이 알려준 발상의 전환과 작은 기법으로 세상살이가 수월해진다

 

평소 나는 심리학에 관심이 많아 관련 도서를 꽤 읽은 편이다. 그래서 심리학 법칙을 모아 놓은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는 솔직히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이미 여러 심리학 법칙에 대해 듣고 읽은 바가 있어 새로운 게 있을까 싶었고, 바이블처럼 많은 법칙을 한꺼번에 엮어 내용의 깊이가 얄팍하지 않을까 싶었다. 대형서점 서가에 숱하게 올려져 있는 다른 심리학 서적들처럼 한 가지 심리 실험 결과를 부풀리고 저자의 고집스러운 주장으로 뻥튀기해서 마치 이것만 알면 온 세상이 다 만만해진다고 달콤하게 속삭이거나, 무언가 그럴듯해서 고개를 끄덕이게 하지만 막상 실생활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그런 책 중 하나일거라고 지레짐작했다.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저자의 해석과 적절한 예시가 제시되어 머릿속에 쏙쏙 들어올 뿐만 아니라 읽어갈수록 뭔가 세상 이치를 조금은 알게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옮긴이의 말 中)

 

어쩜 이렇게 내마음을 콕 집어 옮겨놓으셨는지!

책을 시작하기에 앞서 읽게되는 옮긴이의 말은 책을 다 읽고나서 무릎을 치며 고개끄덕이게 된다. 맞네 맞어 옮긴이의 말이 맞았어!!

나도 심리학 서적이라면 꽤 읽은 편이라 큰 기대는 없었는데, 옮긴이의 말을 읽고 완전 구미가 당기기 시작했다.

이 책의 저자가 중국인이라서 중국인이 쓴 심리서는 처음이다 싶어 읽기 시작했는데, 이 책은 굉장히 편리한 심리실용서였다.

대개의 심리서들은 힐링이나 위안을 주기 위해 상담사례들을 인용하거나 자신의 경험을 풀어놓거나 하는 치유서들과 대중적인 심리법칙들을 설명하는 대중이론서이거나 할텐데, 이 책은 누구나 겪어봤음직한 상황들에 어떤 심리법칙들이 숨어있는지 판별해주는 심리법칙 사전같은 느낌이었다.

75가지의 법칙들은 간단간단한 설명으로 쉽게 이해가 되는 동시에 공감이 되기때문에 내 마음을 알고 상대방을 이해하고 관계를 인정하고 사회생활을 편안하게 하면서 삶에 여유를 찾게 도와주고 있었다.

무엇보다 이 심리법칙들은 하나같이 다 이름만 제대로 몰랐을 뿐이지 전혀 모르던 것들은 아니란 점이 이 책의 실용성을 더욱 높여주고 있었다.

이게 이런 이름의 법칙이었어? 하면서 그렇지 이럴때가 있지 하며 읽고나면 언젠가 비슷한 상황을 맞닦뜨렸을때 이 책이 생각날것 같다. 아 이거이거 읽었던 상황인데 이게 왜 이런 기분이 들더라... 하면서 책을 다시 찾아 읽고나면 실수를 줄여줄 수도 있을 것 같다.

같은 음료, 같은 이름에 단지 번역된 글자만 달랐을지만 소비자들은 각각 다른 정서적 반응을 보였다. 이는 의심의 여지 없이 '쿨레쇼프 효과'를 생생하게 보여 준 사례다. 이 사례는 각 다국적 기업의 현지화 전략을 끌어내는 데 큰 의미가 있었다. 오늘날까지 미국의 수많은 비즈니스스쿨에서 현지화 전략의 사례로 소개하고 있다. (p. 36)

코카콜라 이야기다. 1920년대 초 코카콜라가 중국시장에 들어왔으나 반응은 참담했다. 그런데 1980년대 다시 들어온 코카콜라는 중국음료시장을 이끌게 되었다. 바로 이름 때문이다. 처음에는 코카콜라를 음절만 따서 번역을 해놓은 이름이라 뜻풀이를 하는 한자를 쓰는 중국사람들이 봤을 때 너무나 이상한 조합의 한자이름이었다. 당췌 무슨 음료인지 알수 없는 어려운 이름의 음료는 마시기 어렵다는 이미지를 쌓아갔다면, 새로 시장에 진입할땐 可口可樂 이라는 뜻풀이가 좋은 이름으로 광고하자 소비자들은 바로 다른 반응을 보였다. 중국인이 저자이니 이런 사례도 알게되어 재밌었다.

'걷어차인 고양이 효과'는 재미있는 우화에서 유래되었다. 한 가시가 저녁 연회에서 주인에게 꾸중을 들었다. 그는 매우 화가 난 채 자신의 장원으로 돌아왔고 제시간에 자신을 맞이하지 못한 관리에게 한바탕 화를 냈다. 관리는 마음속에 울화가 치밀어 집으로 돌아온 후 별것 아닌 이유로 자신의 아내에게 한바탕 욕을 했다. 억울한 아내는 아들이 침대에서 깡충깡충 뛰는 것을 보고 아들의 뺨을 한대 때렸다. 그후 영문도 모르고 뺨을 맞은 아이는 기분이 극도로 나빠져 옆에서 뒹굴로 있던 고양이를 발로 찼다. 심리학자들은 이런 우화를 이용하여 전형적인 감정의 전염을 묘사했다. (p. 66)

심리법칙이라는게 사실 별거 아니다. 우리나라 속담에서 있지 않은가. '종로에서 뺨맞고 한강에 가서 눈흘긴다' 고 감정의 전염을 일상에서 쉽게 접하는 경우들이다. 자주 접하는 만큼 심리법칙으로까지 나왔을 땐 이것만 기억하면 된다. 감정은 전염된다!!!

그러니 내 감정이 누군가에게 전염될것 같다거나 상대방의 감정이 내게 전염되는 것 같으면 그것이 전염중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전염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로크 법칙과 벼룩 효과는 상호 보완적이다. 벼룩 효과는 낮은 목표 설정으로 사람의 능동성을 떨어뜨린다고 말하는 반면, 로크 법칙은 너무 높거나 현실과 맞지 않는 목표는 적극성을 떨어뜨린다고 말한다. (p. 101)

코끼리를 어렸을때 아기코끼리가 뽑아내지 못할정도의 말뚝에 밧줄로 묶여놓기 시작하면 어른코끼리가 되어도 그 말뚝 그 맛줄에 매여있다고 한다. 어른코끼리에게 그 말뚝은 나뭇가지 수준이었을텐데 감히 그럴 엄두를 못내는 것이다. 하지만 너무 과한 목표를 세워놓아도 문제다. 아무리해도이룰수 없는 목표는 좌절감만 줄 뿐이다. 목표는 필요하다. 다만, 합리적인 수준의 목표설정이 중요한 것이다. 심리법칙은 한쪽으로만 해석되지 않는다. 사람의 심리는 한쪽으로만 설명할 수 없다. 양면을 다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비단 목표에서만 거론되는 것은 아니다.

영국에는 '성공이 성공을 번식한다' 라는 속담이 있다. 이는 또한 '성공은 성공의 어머니'라고도 불린다. 우리는 평소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은 자주 들어도 '성공은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마태효과는 이 사회에서 가장 냉혹하고 무정한 규칙으로 실패자들이 강인한 의지를 갖고 있을지라도 빠져나갈 수 없게 만든다. 결국 실패에서 빠져나오는 사람은 아주 소수이며 대부분 성공의 길은 의심의 여지 없이 성공 자체에서 비롯된다는 것.

성공한 사람들은 성공했기에 자신감이 가득하고, 그 자신감 덕분에 더욱 성공한다. 그러나 실패한 사람들은 실패했기 때문에 열등감을 느끼고, 그 열등감으로 더욱 실패한다. (p. 122)

 

'우는 놈 떡하나 더준다' 고 했다. 안울고 착한 아기가 오히려 떡하나를 더 못먹고 울고 투정부리는 이가기 떡하나를 더 받아먹는 세상이다.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 라는 말은 다수의 실패자들을 위로하기 위한 말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성공하는 사람이 계속 성공하는 것이 쉽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다만 외면하고 싶을 뿐이다.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가 되는 일은 개천에서 용나듯 힘든 경우이지만 그럴수도 있다는 희망으로 버티는 것이다. 하지만 때로는 냉정한 현실도 직시해야 하는 법이다.

만약, 성공이 당신을 보살펴 준다면 그것은 당신의 스승이니 당신의 꿈을 지켜라.

만약, 실패가 당신을 괴롭힌다면 그것은 당신의 스승이니 당신의 꿈을 지켜라.

만약, 돈과 권력이 당신을 유혹한다면 그것의 가치가 전자보다 클지라도 당신의 꿈을 지켜라.

만약, 꿈이 당신을 포기한다면 스스로 반성해라. 그리고 빨리 발견해라. 사실 당신이 꿈을 포기하고, 그것을 주워다가 날려 버리면 어쩌면 성공은 가까운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p. 137)

 

성공경험이 더큰 성공을 불러온다는 것을 알기에 아이들을 가르칠때도 한문데 맞던 아이 두문제 맞게 해주고 두문제 맞고나면 세문제 맞게 해줌으로써 언젠가 열문제 다 맞을수 있도록 작은 성공경험을 쌓아주라고 한다. 성공이 또 성공을 불러오기는 하지만 성공만 성공을 불러올 수는 없다. 그런 성공들은 작은 실패에도 와르르 무너지기 마련이다. 튼튼한 성공은 반드시 실패를 경험해야 만들어질 수 있다. 냉정한 현실에서의 실패가 결코 좌절로만 남지 않을 수 있는 이유다.

초두 효과나 최신 효과는 모두 극단적인 인지 방식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다른 사람돠 어울려 살아갈 때, 초두 효과와 최신 효과를 이해하고 적절히 사용해야 하며, 이러한 심리적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사람을 사귈 때는 모든 면에서 깊이 타인의 상황을 이해해야 하고 단편적인 인상으로 섣불리 평가하지 말아야 한다. (p. 151)

첫인상이 강할때도 있고 마지막 인상이 강할때도 있다. 첫인상의 낙인을 오래 기억하는 것과 최근에서의 인상을 강하게 기억하는 것은 때때로 다르다. 이또한 양면을 다 살펴봐야 사람과의 관계에서 실수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문간에 머리 들여놓기 효과'는 작은 요구를 통해 큰 요구를 들어주게 되는 '문간에 발 들여놓기 효과' 와는 상반된 개념이다. 먼저 무리한 요구를 말하고 이어서 비교적 간단한 요구를 말하면 상대는 무리한 요구를 거절하는 대신 간단한 요구를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p. 230)

여러 심리법칙들이 나오지만 나는 상반되는 개념들에 자꾸 눈길이 갔다. 만약 내가 기분 나쁠때 읽었다면,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라고 화낼수도 있었을 것이다. ㅎㅎ 하지만 양쪽의 법칙들을 다 알아야 어떤 경우에는 머리를 먼저 들이밀고 어떤 경우에는 발을 먼저 들이밀어야 하는지 알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블리스의 실험은 오랫동안 이어져 온 하나의 오해를 깨뜨렸다. 그것은 바로 오랜 시간 부지런히 연습하면 반드시 능숙해진다는 것이다. 앞서 실험에서 세 그룹 중 부지런히 연습해 능숙해진 첫번째 그룹의 성적은 머릿 속에서 가상으로 연습한 세번째 그룹보다 좋지 않았다. 이는 기계적이고 반복적인 일이 가져오는 결과는 미리 반복적으로 계획하고 이미지화한 경험과는 비교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설명한다. 따라서 무슨 일을 하든 치밀한 계획이 필요한 이유는 계획성이 숙력도보다 훨씬 더 가치 있기 때문이다. (p. 277)

블리스의 실험이란 세 그룹의 학생들에게 20일동안 다른 방식으로 농구 슛 하는 기술을 훈련하도록 요구했는데, 20일동안 매일 슛하는 훈련을 한 그룹과 20일간 어떤 훈련도 하지 않은 그룹과 첫날 훈련경험을 매일 20~30분씩 상상속에서 슛 훈련을 했고 20일 마지막날 슛 성적을 조사했을때 마지막 그룹의 성적이 가장 뛰어났던 것을 말한다. 이 실험의 결과를 얼핏 보면 '일만시간의 법칙' 이 무의미한 건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무의식적으로 제대로 된 동작인지 아닌지도 모른채 연습한 것이 얼마나 효과가 있겠는가? 자신의 훈련동작을 생각하고 고쳐보고 하는 이미지트레이닝만으로도 나아졌는데 생각으로 고쳐보고 고친 동작으로 훈련했다면 얼마나 더 나아졌겠는가? '일만시간의 법칙' 에는 분명 반성하고 고쳐가는 시간이 포함되 있을 것이고, '블리스의 정의'란 연습에는 반드시 계획과 수정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효율성은 그냥 오지 않을 테니까.

앵커링 효과니 월렌다 효과니 요나 콤플렉스니 돼지 게임이니 낯선 이름들에 걱정할 필요 없다. 읽고나면 거의다 아~! 하는 것들이다.

이런저런 심리서들이 참 많고 주저리주저리 긴 해설들도 참 많지만, 때로는 이 책처럼 간결한 심리법칙들이 필요할 수 있다.

어렵고 복잡한 마음의 문제들은 그 문제들을 상담해주는 책을 읽어야 겠지만, 조금 귀찮고 성가신 문제들에 대한 자잘한 고민에는 이 책이 알려주는 심리법칙들이 꽤 쓸모 있을 것이다. 여하튼 가볍게 읽을만한 알쓸심(알아두면 쓸모있는 심리법칙) 들이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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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간 물리학자 - 명화에서 찾은 물리학의 발견 미술관에 간 지식인
서민아 지음 / 어바웃어북 / 202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명화에서 찾은 물리학의 발견

프레넬 법칙, 나노입자, 엔트로피, 메타물질, 불확정성의 원리, 그래핀까지

명화를 통해 만물의 이치를 탐구하다

 

 

표지에 한 남자의 자화상이 있다.

액자에 클로즈업 된 그의 얼굴 그리고 눈 에 빛이 연결되 있다. 눈에서 빛이 나오는 것일까 눈으로 빛이 들어가고 있는 중일까

그 빛은 뒤표지의 거울과 연결되고 빛은 다채로워짐과 동시에 한줄기로 통일된다.

이 남자는 빛 과 자화상 을 연결했을 때 떠오르는 화가, 렘브란트 다.

그리고 빛 과 그림은 과학과 미술의 연결을 확실하게 이어주고 있는 중요한 매개체다. 그림이 이렇게 과학적이었나?!!!

정말 재미있게 읽은 책이다.

간만에 책을 읽으며 새로운 것을 알아내는 재미를 쏠쏠이 느끼게 해준 책이었다.

물리학자로 카이스트 교수인 저자가 해외연구소에서 공부할때 가까운 미술관에서 위안을 얻고 여전히 바쁜 실험연구 사이사이 일요일에 그림을 그리며 쌓은 미술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어울릴것 같지 않은 물리학과 그림을 자연스럽게 엮어내고 있다.

읽는 내내 '생각의 탄생' 이라는 책이 생각났더랬다.

과학자들의 천재성을 예술적 영감과 연결지어 예술교육을 강조한 그 책에 등장하는 먼나라 천재과학자들보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에서 과학과 미술을 이렇게 재밌게 엮어낸 저자가 내게는 '생각의 탄생' 의 현현 처럼 느껴졌다. 무엇보다 많이 알고 있는 것이 분명해보이는 사람이 전혀 그런티내지 않고 누구나 이해할법한 자연스러운 설명과 풀이를 해주는 책을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데, 그런점에서 저자의 서술은 굉장히 편안하게 몰입하게 해주어 감사했다.

저자가 보여주는 그림들은 유명한 그림이 많아서 처음 보는 그림이 그다지 많지 않았음에도 처음 보는 것인양 새로운 것을 과학적으로 알게 해주어 명화에서 신선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특히 르네상스 이후 화가들의 과학적 소양에 따른 그림의 변화가 무척 새롭게 다가왔다. 역시 아는만큼 보인다. ㅎㅎ

피테르 브뢰헬의 어두운 그림에서 나는 중세암흑기를 느꼈다면 저자는 태양흑점감소로 인한 날씨의 변화를 읽어낸다. 저자가 알려주는 '소빙하기 시대' 는 서양역사를 읽을때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될 것이다.

조지오 오키프의 그림이야기를 하며 미국대륙횡단도로 '루트66' 지도가 나왔을 때는 '분노의 포도' 라는 소설이 생각나서 한동안 소설속 여정을 떠올려 보게 되기도 했었다. 그러고 나니 뉴멕시코주의 자연을 사랑한 오키프의 그림이 더 친근하게 다가왔고, 그 그림들 속 파란 하늘에서 빛의 산란을 설명하는 저자의 과학적 풀이가 새삼 재밌게 읽혀지기도 했다.

리쿠르고스 컵이라는 4세기경의 로마컵 사진을 처음 봤을 땐 색이 다른 두개의 컵인줄 알았는데, 하나의 컵인 것을 알고 놀라웠다. 컵 안쪽에 빛을 쪼이면 컵의 색이 변한다는 것을 그 컵을 사용했던 로마인들은 알았을까? 알았을 가능성이 높긴 하다. 이 컵의 제조 기법이 스테인드글라스 기술의 근간이 되었다고 하니... 스테인드글라스도 그냥 예쁜 색유리로만 봤었는데,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의 안과 밖 사진을 함께 보고 나서야 그 진가를 깨달았다. 이제 스테인드글라스작품을 보게 되면 밖에 나가서 한번 더 보게 될 것 같다. ㅎㅎ

영국의 대표 풍경화가인 컨스터블은 구름을 잘 그리기 위해 기상학을 공부하고, 무지개를 잘 그리기 위해 뉴턴의 광학을 독학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가 그린 그림은 정말 하늘만 그렸음에도 멋진 작품이 되는 구름을 잘 담아내고 있었다.

표지에 나왔던 렘브란트의 자화상 이야기는 렘브란트의 굴곡진 삶과 함께 읽으니 좀 슬프기도 했지만, '빛의 삼각형' 영역을 알고 나서 다시 자화상을 볼때마다 그 삼각형 찾는 재미가 쏠쏠했다.

한국화를 포함해 동양화에는 없고 서양화에만 있는 것이 있다. 바로 '빛' 과 '그림자'다. 동양화는 대상과 작가의 정신·관념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동양화를 그린 화가들은 실제 대상의 형태나 대상이 놓인 상황을 보이는 그대로 정확하게 묘사하기보다는 대상이 갖는 의미나 개념, 즉 관념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볼 수 있다. 실제 풍경을 그린 산수화에서도 종이의 바탕을 모두 채색하지 않고, 주된 산세, 나무,동물 등 그림의 주제가 되는 사물을 중심으로 그렸다. 인물화는 주제인 인물이 그림 중앙에 크게 자리하고 배경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럼 동양화에는 거리감과 입체감이 전혀 없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동양화는 물감의 농담과 선의 굵기, 또는 상대적인 크기 등을 다르게 하여 형태와 거리감이나 원근감을 표현했다. 동양에서는 인물을 그리는 경우는 드물었고, 산수화나 화조화가 회화의 주돤 분야였다. 이는 그 시대를 지배하던 학문의 가치와 긴밀한 관련이 있다. 동양에서는 아름다움의 근원이 자연에 있다고 생각했다. 동양의 유토피아적 이상 세계를 그린 <몽유도원도> 나 민화 <십장생도>에는 인물이 등장하지 않는다. 서양에서 '빛' 과 '하늘' 은 신을 의미한다. 서양화에 빛과 하늘이 무수히 그려진 데 반해, 동양화에는 하늘에 대한 개념이나 빛이 직접 묘사된 경우가 없다. (p. 117)

동양화의 서양화는 참 다르다. 무엇이 더 우수하다고 따져볼 필요는 없다. 그냥 다른거다. 그런데 그 다름이 나는 참 마음에 든다. 서양화의 변화는 '신'을 어떻게 표현해내느냐 로 추이를 따져볼 수 있다면 동양화에는 아예 '신'이 없었다. 문화와 철학이 다른 것이다. 갑자기 동양화에 애정이 솟으려 한다. ㅎ

그네 타는 여인 그림으로 신윤복의 그림과 프랑스의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의 그림을 함께 보니 동서양의 퇴폐미?! 가 비교되면서 신선한 감상을 느끼게 해주기도 했다.

이 책에서 가장 관심이 갔던 화가는 요하네스 베르메르 였다. 그의 삶에 그의 그림이 모두 다 그렇게 신비스러운지 몰랐다. 베르메르의 그림은 많이 전해지지 않지만 전해지는 작품들이 대부분 다 유명하다. 그래서 봤던 그림임에도 불구하고 <우유 따르는 여인> 그림에서 구멍난 창과 그 구멍을 통해 비추는 빛까지 섬세한 표현을 했다는 것을 클로즈업 해서 책에서 보고 나니 감탄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의 그림이 마치 스튜디오에서 소품과 인물만 바꾼 채 그린 것처럼 비슷한 구도와 형식이 반복된다는 것을 읽고나니 식상하기는 커녕 더욱 그림에 호기심이 일었다. 무엇보다 평생 살았던 곳을 그린 <델프트 풍경> 이라는 작품을 저자가 구글맵에서 찾아낸 현재의 델프트 사진과 비교해보니 화가의 고향에 대한 애정이 새삼 느껴지면서 그의 삶이 더욱 궁금해지기도 했다. 가장 유명한 그림이라고 할 수 있는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 라는 영화가 있던데... 물론 창작물이긴 하지만 그래도 보긴 봐야 겠다.

사육제<謝肉祭)는 '카니발'을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이탈리아어로 '카르네발carne vale(고기여, 그만)' 이 어원인 카니발은 사순설을 앞두고 실컷 먹고 즐기는 축제를 가리킨다. 부활절 전 40일간을 사순절이라고 하는데, 기독교 사회였던 유럽에서는 이 기간에는 금식하고 참회화며 경건하게 생활했다. (p. 180)

카니발이 이런 뜻이었나! 어원은 알게 될때마다 참 재미있다. 고기여 그만 이라니 ㅋㅋㅋ

찰스 다윈의 진화론과 발생학에 관심이 있었던 클림트는 이렇게 눈으로 볼 수 있는 작은 세상에 감명을 받았고, 지속해서 자신의 작품에 인간의 배아와 세포 등을 패턴으로 만들어 담아냈다. 클림트가 그린 세포는 생명의 시작이자 곧 작은 우주 그 자체다. 클림트는 이러한 접근으로 인간 본성과 생명 근원에 대한 물음과 그 답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었다. (p. 196)

클림트의 그림은 화려한 황금색으로만 기억했었는데 앞으로 다시 보면 베아와 세포등을 찾게 될 것 같다.

빈센트 반 고흐는 37년이라는 짧은 삶을 살았다. 그 가운데 화가로 산 기간은 고작 10년이다. 그는 10년 남짓한 세월 동안 무려 900여점의 작품을 남겼다. 그 가운데 200여 점은 죽기 두세 달 정도의 짧은 기간에 그려졌다. 고흐는 살아생전 단 한 점의 그림밖에 팔지 못했다. (p. 203)

고흐의 삶과 고흐의 그림은 늘 그림감상 그 이상의 뭔가를 전달해 준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딴 미술관을 가진 몇 안되는 화가로 지금 자리매김 하고 있는 것으로 그나마 그에게 위안이 되길 바라게 된다.

고흐는 코발트블루와 크롬옐로 물감을 무척 좋아했다고 한다. 재료상에 따라 성분의 차이로 미세하게 색의 차이가 났기 때문에 고흐는 특정 회사의 코발트 물감만을 고집했다는 것을 보면 화가의 눈은 다르긴 다른가 보다.

샤갈이 그림에서 즐겨 쓰던 색은 우리가 빛의 삼원색이라고 알고 있는 빨강, 파랑, 초록과 색의 삼원색인 사이안, 마젠타, 노랑이다. 빛의 삼원색과 색의 삼원색은 다음과 같은 상관관계가 있다. 빛의 삼원색인 빨강, 파랑, 초록을 섞으면 생성되는 이차색이 색의 삼원색이 된다. 즉 파랑+초록은 청록색(사이안), 빨강+파랑은 자홍색(마젠타), 빨강+초록은 노란색(노랑)이 된다. 그렇다면 왜 이 색깔들이 기본색이 되었을까? (p. 225)

빛을 인지하는 망막에서 반응하는 색들을 원추세포와 간상세포의 색에 따른 민감도를 통해 색을 인지하는 사람의 색에 대한 인지설명은, 그림을 볼때 화가가 어떤 색을 선택하는가에 대한 생각을 한번쯤 다시 해보게끔 해주었다. 샤갈은 참 여러모로 특출난 화가이긴 하다.

이것도 맞고 저것 또한 맞다. 또 맞지만 동시에 틀리기도 한다. 이 모든 아이러니한 상황에 항상 저 멀리에서 둥근 달이 빛나며 그림 속의 모든 상황을 따스하게 안아준다. 어쩌면 이 달빛은 꿈을 내려다보는 루소의 눈일지도 모른다. (p. 247)

앙리 루소가 자신의 꿈을 표현한 그림들 속엔 달이 있었다. 둥근달에 대한 저자의 감상과 루소의 꿈에 대한 영감을 저자 자신이 직접 그린 그림을 보며 환상적인 자연과 이질적인 인간을 하나의 화폭에 담아낸 루소의 그림이 새롭게 보이기도 했다.

태평양 서부 마셜 제도 서북쪽에 '비키니'라 불리는 아름다운 섬이 있다. 현재 이 아름다운 섬에는 아무도 살지, 아니 살지 못한다. 비키니섬에서 1946년부터 1958년까지 총 23차례 핵실험이 진행됐다. 비키니 섬에서 핵실험이 있은지 얼마 안 돼, 파리 패션쇼에서 배꼽을 드러낸 파격적인 디자인의 수영복이 공개됐다. 수영복의 인상이 비키니 섬에서 진행된 핵실험만큼이나 충격적이라고 해서 이 수영복에 '비키니'라는 이름이 붙었다.(p. 273)

비키니 라는 이름에 이런 배경이 있는 줄이야;;; 이제 비키니 수영복을 보면 왠지 다른 충격을 받게 될 것 같다...

예술가와 과학자에게 가장 필요한 건 현실 너머 새로운 것을 꿈꾸는 능력, 상상력일지도 모른다. (p. 288)

빛의 정체에 대한 과학자들의 논쟁은 식을 줄 몰랐다. 하지만 실험적으로 검증된 사실을 반박하기는 어려웠다. 결국, 빛은 파동이면서 입자라고 결론 내리며 논쟁은 종결되었다. 물론 '빛의 이중성'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전혀 간단하지 않았다. (p. 302)

전혀 접점이 없을 것 같은 두 분야, 미술과 물리학이 '빛' 이라는 공통의 화두를 놓고 고민하고 논쟁하며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패턴의 풍파를 겪으며 발전해왔다는 것이 참으로 놀랍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빛에 관한 과학 이론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 탄생한 신인상주의도 있었으나, 예술과 과학이 오래전부터 서로 공생관계였음을 부정할 수 없다. 회화는 '무엇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라는 공통된 대명제를 놓고 철학적인 고민을 거듭하며 성장해왔다. 그 고민의 궤가 물리학과 상당히 닮아있다. (p. 308)

 

화가들은 점점 더 과학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어쩌면 그 반대인지도 모르겠지만.

파블로 피카소와 살바도르 달리 등 많은 입체파 및 초현실주의 화가들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그림은 이제 눈에 보이는 것을 그리는 것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그려내는 쪽으로 변화한 상태였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도 존재하나 보이지 않을 뿐인 것에서 존재하는지조차 잘 모르는 것까지 표현하게 된다.

과학과 예술은 알면 알수록 서로 밀접한 관계였음이 놀라울 따름이다.

빛은 한 편의 그림이 태어나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림의 생애를 보여준다. 과학의 힘을 빌려 우리는 한 편의 명화가 걸어온 길을 재조명할 수 있게 되었다. (p. 357)

고흐는 물감에 섞인 원소나 불순물의 상대적인 농도에 따라 발색이 달라진다는 점을 간파하고 원소의 특정 비율이 일정하게 유지된 물감을 고집하기도 했다. 기름에 색을 내는 가루를 섞어 물감을 만드는 방식은 11세기 무렵부터 기록에 남아있으나, '유화' 라고 부를 만한 정도의 물감 개량은 얀 반 에이크로부터 시작됐다. 에이크는 기름과 안료의 적절한 배합을 통해 유화 기법을 완성시켰다. (p. 370)

고흐의 해바라기를 시들게 한 범인은 다름 아닌 미술관의 LED조명이었다. LED조명은 고흐의 노란색을 어둡게 변색시켰다. 거듭된 연구로 LED가 결정적으로 고흐 그림을 변색시킨 범인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미술관은 이제 공학자들과 함께 푸른빛은 많이 방출하지 않으면서도 그림을 밝게 비출 수 있는 LED조명에 대한 연구와 그림 보존 방법을 함께 고민하게 되었다. (p. 385)

 

테라헤르츠파의 분석기법은 실로 놀라운 발견이었다. 이제 그림 속에 숨은 그림을 원화를 훼손하지 않는 상태에서 복원해낼 수 있을 정도다. 과학의 발달은 명화속 숨은 비밀들을 속속이 밝혀내면서 새로운 이야기들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특히 뭉크의 <절규> 그림에 얼룩이 있었다는 것도 몰랐던 나로서는 그 얼룩이 무엇인지 밝혀낸 이야기를 읽으며 더욱 신기할 따름이었다.

얀 반 에이크 의 그림은 그저 놀랍다고 표현할 수 밖에 없는 정교한 실제감을 자랑한다. 마치 손에 만져지는 듯한 옷 하나하나 머리카락 하나하나의 표현들이 어찌나 섬세한지... 그런데 그가 유화기법을 완성시킨 사람이었구나.. 물감의 배합도 결국 과학과 닿아 있었다.

고흐의 해바라기가 더 시들지 않도록 공학자들은 분명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명화의 복원과 보존은 첨단 과학의 선두기술을 응용하고 있었다. 옛것을 살려내는 신기술이라니... 뭔가 더 의미있어 보인다. ㅎㅎ

인류 역사에서 중요한 예술작품이 때때로 훼손되기도 하는데, 이러한 행위를 '반달리즘'이라고 한다. 반달리즘은 문화유산이나 예술, 공공시설, 자연경관 등을 파괴하는 행위다. 게르만 민족의 하나인 반달족은 5세기 초 유럽의 민족 대이동기때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을 정복하고, 아프리카로 건너가 반달 왕국을 세웠다. 반달족이 로마를 점령하는 과정에서 문화와 시설을 무차별적으로 파괴한 데서 유래한 용어다. 폭넓게는 낙서나 무분별한 개발 등 공공시설이나 자연경관을 훼손시키는 행위도 반달리즘에 포함된다. (p. 399)

로마사를 읽고 있는 중인데 로마유래 용어가 나오니 눈이 번쩍 뜨인다. 반달리즘도 로마에서 유래된 단어구나... 5세기 부분을 읽을때 좀더 주의깊게 살펴봐야 겠다. 여하튼, 반달리즘은 심각한 문제이긴 하다. 기원전 유구한 문화가 파괴된 분쟁지역이 떠올라 가슴아프다...

그림을 보다가 과학을 읽다가 서로 연결되는 지점에서 아~! 깨닫는 묘미가 가득한 책이었다. 미술관에 간 지식인 시리즈 6권이던데, 다른 시리즈들도 찾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모처럼 눈과 머리가 호강한 듯한 기분을 주는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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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대중의 탄생 - 흩어진 개인은 어떻게 대중이라는 권력이 되었는가
군터 게바우어.스벤 뤼커 지음, 염정용 옮김 / 21세기북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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흩어진 개인은 어떻게 대중이라는 권력이 되었는가

SNS 시대, 모든 것이 개인화된 지금도 대중은 여전히 권력의 중심에 있다

 

 

Vom Sog der Massen und der neuen Macht der Einzelnen 이라는 원제를 번역기에 돌려보니 '대중의 끌어당김 과 개인의 새로운 힘' 이라고 나온다. 독일어를 잘 모르니 이게 제대로 된 번역인지는 모르겠으나 독일어판의 원제는 대중과 개인을 연결짓는 부분에 있어서 한국어판 제목보다는 책 내용을 좀더 충실히 반영한 제목이라고 생각된다. 이 책은 대중이란 어떤 개념이고 개인은 대중과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를 고찰하고 있다.

저자가 두명이라서인지 내용을 절반쯤으로 나누었을때 앞부분과 뒷부분의 관찰시점과 관심대상이 좀 달라지는 느낌을 받는다. 아무래도 앞부분은 1978년부터교수이셨다는 노학자 군터 게바우어, 뒷부분은 1975년생인 젊은학자 스벤 뤼커 의 서술이지 않을까 싶다. 내용상의 표현방식은 큰 차이는 없지만, 논리전개를 위한 예시들의 사용에 있어서 앞부분은 과거 사건들을 뒷부분은 최근 사건들까지 포함하고 있어서 시점 차이가 두드러지고, 앞부분은 연륜이 뭍어나는 맥락이 있다면 뒷부분은 여기저기 튀는 산발적인 전개가 느껴지는데, 여하튼 이 책은 굉장히 독일적인 책이다.

예전에 어떤 강연에서 들었던가.. 어떤 인터뷰에서 읽었던가.. 하여튼 독일에서는 책이 많이 읽히고 독서모임도 활발하고 저자와의 강연프로그램도 많은 것에 대해 한국인이 칭찬을 했는데, 독일인의 답변은 의외였다. 책을 많이 보는 것이 TV프로그램이 너무 재미없어서 라고 했다. TV프로그램들이 예능은 거의 없고 드라마도 별로 없는데 온갖 시사정치토론 프로그램들이 그렇게 많다고 한다. 그에 대비 한국의 TV 프로그램은 정말 다양하고 무엇보다 엄청 재미있는게 많다는 점이 문제라면 문제랄까 ㅎㅎ 이 책을 읽으며 이런 예전 생각이 난 것은, 이 책은 그런 독서토양을 가진 독일인들이 읽기에 적당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독일의 철학자가 독일의 국내상황을 '대중과 개인' 이라는 주제에 맞춰 독일인에게 설명해주고있는 이 책은 독일을 제외한 나라에서 얼마나 범용적으로 적용가능할지 잘 모르겠다. 내용을 전개해나감에 있어서 독일의 학자들 이론 몇 가지가 자주 인용되는데 그 이론들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상태에서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기에는 좀 무리가 있었다. 특히나 '엘리아스 카네티' 라는 학자가 누군지 어떤 이론을 펼쳤는지 모르겠으나 이 책에서 이 학자의 이름과 저서는 수시로 언급된다. 마치 이 책이 카네티의 기존 이론에 대한 반론을 제시하기 위한 책인 것처럼.

하지만 현재에서의 대중과 개인의 관계와 의미는 과거와 분명 달라졌기에 이에 대한 설명이나 이해가 필요한 시점이기는 하다. 따라서 이 책이 대중이론을 새롭고 분명하게 제시해주지 않는다고 해서 가치가 낮아지는 것은 아니다. 대중이론이 왜 필요하고 어떤 문제들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지 차근차근 따져보는 것 만으로도 이 책의 시도와 의도는 적절하고 또 의미있었다.

대중이 무엇인지는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순전히 수량으로 규정해서 대중의 특수성을 제시하기란 불가능하다. 대중을 형성하기 위해 특별히 많은 사람이 모일 필요조차 없다. 대중은 실제의 사안, 의도, 정서, 평가를 결합시키는 데서 생겨난다. (p. 45)

수많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한 장소에 모이는 것이 대중 형성의 첫 단계다.

대중이 성장하는 두 번째 단계는 수많은 사람들이 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대중은 이제 실제의 행동, 몸을 움직이고 구호를 외치는 것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상력을 통해서도 생겨난다. 이것이 대중 형성의 세 번째 단계다. 대중은 생각 속의 대중으로 변한다.

행동이 생각과 결합되는 순간에 대중은 잠재력을 얻을 수 있다. 참가자들 사이에서 자신이 지금 무언가를 바꿀 수 있는 대중의 일원이라는 의식이 생기는 것이 대중 형성의 네번째 단계다. (p. 50~53)

 

대중은 누구를 지칭하는가, 대중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에 대하여 저자는 1968프랑스와 1989독일의 통일을 예로 들어 대중의 특성을 정리해보고 있다. 그리고 조금은 뜻밖의 결론을 내린다.

결국에는 역사를 서술하는 사람은 승자들이 아니다. 나중에 정해질 '승자들' 과 '패자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우발적인 사소한 사건들의 주인공인 말없고 이름 없는 다수가 역사를 서술한다. 이 다수는 위대한 개인의 행동을 모범으로 삼는 공식적인 역사 서술에 의해 '목적의 세계(니체)'로 옮겨진다. 다수는 이렇게 해서 하나의 '의미'를 얻고 후세가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실제의 역사는 '권력자의 비서들'에 의해 기술되지 않는다. 실제의 역사는 '말없는 사람들의 행동에 대한 증거들에 근거를 두고 기록되는 대중의 역사'다. (p. 78)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은 일종의 관용구 처럼 쓰이는 말이 아니었나. 우리가 읽는 역사책들은 누군가가 쓴 기록들이다. 따라서 승자 위주의 기록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기록이 되기까지 그 기록을 남길 수 있게 한 실제적 상황에서의 역사주체들에게 중심을 둔다. 기록된 역사를 만들어낸 실제적 역사의 주인공은 소수의 영웅들이 아니라 기록되지 않는 다수의 사람들, 바로 대중이다.

대중을 특정한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현상적으로나 구조상으로 특징지을 수 있는 행동 방식들의 복잡한 가닥들의 다발로 인식할 수 있다. 표면적으로는 단순해 보이지만 여러 층에 걸쳐 있는 복잡한 사안이 이 모든 것을 알려준다. 대중은 매우 다양한 원리로 움직일 수 있다. 이 때문에 대중을 그 구조에 따라 구분하고 분류하고, 기능을 발휘하는 특성들을 서술하고, 그들의 활동 구조와 그 형태의 특징을 보여주는 것이 합당해 보인다. (p. 115~116)

대중이라는 말이 등장하기 전에는 민중, 백성, 농민, 하층민 등으로 표현되는 역사속에서의 다수는 낮은 계급을 의미해왔고, 역사가 서술하는 그들은 하나의 집단으로 묶여지는 특정되지 않는 모두를 포함한 큰 의미 없는 불특정한 다수였다. 하지만 이제 그 다수를 역사로만 기술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물론, 역사속에서도 지금까지와는 다른 해석이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계급이 없어졌지만 계층은 오히려 다양해 졌고 개인이 두드러지기 시작하자 개인이 모인 집단도 다변화되기 시작했다. 20세기는 대중의 시대이고 21세기는 개인의 시대로 편하게 표현할 수 있는게 아니라, 현재는 개인과 대중의 복잡한 관계를 파악해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2016년의 독일 통일 기념 연설에서 수상 메르켈은 예전의 구호 '우리가 국민이다'를 다시 꺼내 문장을 이렇게 바꿔 표현했다. '모두가 국민이다' 얼핏 간결한 이 표현은 구호의 원래 의미를 다시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1989년에 이 구호가 결코 포괄하는 뜻이 아니라 동독의 당과 정치인들을 겨냥했던 것임을 이미 살펴보았다. 사실 메르켈은 결코 순진하게 모두를 포괄한다고 선언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페기다(독일의 극우성향 반잉슬람단체로 2015년 '우리가 국민이다' 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극우운동을 펼침) 시위대가 1989년의 구호를 해석한 의도를 겨냥했던 것이다. 메르켈의 입장에서는 그 해석을 시급히 반박할 필요가 있었다. 메르켈은 1989년의 구호를 새로 바꿔 표현함으로써 간접적으로 이렇게 전한 것이다. 당신들은 통일 전환기 이후의 독일의 근간을 이루었던 국민적 합의와 동떨어져 있다. 당신들은 모두의 일원이 아니며, 당신들은 우리와 관련이 없다! 앙겔라 메르켈의 연설에서 처음에는 모두를 포괄하는 모범처럼 보이는 것은 사실은 이중 대중의 전형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다. (p. 133)

대중은 다른 대중에 맞서는 것을 통해 형성된다는 '이중 대중' 에 대한 설명을 풀어나가던 중에 나온 메르켈 총리의 일화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정치인들의 수사법은 정말 알고나면 이마를 탁 치게 될때가 많다. 이 책은 독일의 내부적 상황을 예로 들어 풀고 있기 때문에 독일인들이 읽으면 재미있게 읽었을 것 같다. 통일 후 동독인들의 상황과 IS사태 후 난민들의 상황은 독일내에서 심각하게 분석해야 할 사안이었을 것이기에 독일에서의 대중의 의미는 우리와는 또다르게 풀이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시대적 상황이 대중의 모습을 만들기 때문이다. 유일한 한국사례로 2016년의 광화문 광장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저자의 논리 전개에 큰 의미는 없다. 따라서 한국의 대중에 대한 이해는 한국인 학자가 풀어내야 하지 않을까.

포퓰리스트들의 리더들은 '입법자'의 이 중요한 역할은 결코 수행하지 않는다. 그들은 국민 누구나 경시당했던 경험을 기입할 수 있도록 공란만 제시할 뿐이다. (p. 165)

난민의 물결이 밀려오기 오래전 구동독 지역의 생활 공동체들은 정치인들로부터 의례적인 격려의 말을 들었었다. 그들은 구호의 손길로 생각해왔던 국가가 자신을 돌봐주리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많은 공동체들에서는 난민들이 도착하기 전에도 이미 사정이 나아졌다고 말할 수없을 정도였다. 처음에는 일자리가 상실되었고, 그 후에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넌 동독의 제도인 사회 시설들과 문화를 누릴 기회 등이 폐지되었다. 그들은 난민들에게 정서적으로 관심을 기울이는 것을 자신에게서 최종적으로 애정을 거둬들인 것이라고 해석한다. 예전의 '기득권층'은 자신의 고향 도시에서 국외자로 변해버렸다. (p. 176)

대중은 끊임없이 새로워지는 무수한 사회적 접촉을 통해 날마다 친밀한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활동을 한다. 포퓰리즘은 남들과의 사회적 접촉을 마치 오염의 한 형태나 되는 것처럼 기피함으로써 상시적인 위급 사태를 일으켜 이 일상성을 파괴하려 든다. (p. 180)

 

대중에 대한 이해를 하는데 있어서 빠질 수 없는 단어가 포퓰리즘 아닐까. 선동적인 소수자에 의해 휩쓸리는 대중의 약한 모습을 우리는 익숙하게 보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포퓰리스트들에게 흔들리고는 한다. 독일에서 구동독의 시민들과 난민들의 문제는 책을 읽으며 내가 느끼는 것과 현저히 다를 심각성을 띠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비슷한 사례는 우리 주변에도 흔하다. 소외층이 더 소외되고 그렇게 더 소외되는 층이 더더 보수집단이 되어가는 것은 포퓰리스트들에게 이용당할 뿐 현실은 나아지는 것이 없는데... 안타까울뿐...

대중행동과 그 장소 사이에서는 어떤 의미에서든 서로 힘을 강화해주고 감정을 고조해주는 작용이 일어난다. 어차피 취약해진 공간에서 벌이는 집단 난동은 그곳을 더욱 무가치하게 만들고, 슬럼화를 가속화하며, 결국에는 더욱 격렬한 난동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대중운동은 주요한 공공 공간들의 상징적 위력도 함께 누린다. 그들은 이 위력에서 이득을 얻는 동시에 '국민적 상징'인 그 장소의 역사에 새 장을 추가함으로써 그 위력을 강화시켜주기도 한다. (p. 184)

1장에서 4장 까지는 대중이란 무엇이고 개인이란 그 속에서 무엇인지 파악하고자 했다면 5장부터는 분위기가 약간 바뀌어서 대중을 파악할 수 있는 다른 지점들을 하나하나 살펴보고 있다. 시작은 '공간' 이다.

대중의 성격과 공간은 밀접한 관계에 있다. 광장에서 평화적으로 축제처럼 벌이던 시위와, 폐쇄된 일정 공간에서 억압받으며 불길처럼 일어난 시위는 분명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

6장에서는 에로스와 고립을 을 살펴보며 대도시와 대중이 어떻게 묘사되는지 19세기의 작가 에른스트 호프만, 에드거 앨런 포, 샤를 보들레르의 작품을 통해 파악해 본다. 대중의 모습은 미학적은 시각으로도 새롭게 이해될 수 있었다. 소설이나 시에서 미학적으로 파악하고 나면 다음은 영상매체 아니겠는가. 7장에서는 영화와 인터넷으로 범위를 넓혀 가상의 대중들을 파악해 보고 있었다.

가상세계는 마약과 같은 기능을 한다. 지금은 컴퓨터 너드nerd라는 의미로 쓰이는 유저user라는 단어는 원래 마약 중독자를 나타냈다. 이 이야기에서 거리에 나서 항의를 적극적으로 표시하는 실제의 대중은 각자가 따로 모니터 앞에 앉아 있는 대중, 디지털 원주민으로 대체된다. 네트워크에서는 감염의 원리에 따라 작동하는 전형적인 대중역학이 관찰된다. (p. 258)

인간 유저가 진짜 신분을 모르는 소셜봇의 메시지에 감염당하면 허구의 대중에서 실제의 대중으로 변하는 것이다. (p. 268)

언제나 일부 소수의 사람들만이 모두를 대변했다. '여론의 파멸'에 대한 한탄은 종종 세인들의 의견에 미치는 영향력 상실, 특히 예전에는 단독으로 누가 어떤 것에 관해 공적으로 말할지 결정했던 그런 사람들이 미치는 영향력 상실에 대한 것으로 보인다. 인터넷이 대중을 조각으로 분열시킨다는 말이 맞다면, 이 새로운 사태는 정보의 다각화에 유리한 작용도 했다. 소위 모두가 일치해서 관심을 기울였다며 뒤늦게 이성적으로 찬양되는 '하나의' 여론을 되찾으려는 꿈은 인터넷에 의해 모두에게 제공되는 의견의 다양성을 미화하는 것만큼이나 고지식한 태도다. (p. 263)

독자층은 새로운 종류의 대중이다. 독자층은 대중이 근대에 들어 띠게 되는 한 형태이다. 독자층은 가상적인 동시에 실제적인 것으로 규정한다. 독자층은 비록 몸소 만나는 일은 없다 해도 상당수가 동일한 유행을 따르고, 동일한 신문과 잡지를 읽고, 그렇게 해서 동일한 의견이 형성되는 것을 통해 각자의 일체성이 생겨난다. 이 새로운 종류의 대중은 일부 영역에서는 과거의 대중을 몰아내며, 그밖의 영역에서는 그들과 공존한다. 독자층이라는 가상의 대중은 물리적 대중 형성을 대체하는 대신 강화해줄 수도 있다. (p. 270)

과거의 투쟁적 구호 '당신은 어느 편에 가담하는가?' 는 오늘날에는 틀림없이 '접속하는가'로 끝날 것 이다. 내가 어느 편에 가담하는지는 내가 어떤 인터넷 사이트를 방문하는지에서 알아볼 수 있다. (p. 276)

 

그나마 소설이나 영화에서 드러나는 대중의 모습은 파악이라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인터넷이라는 가상 공간이 생기는 순간 대중은 실제 대중과 가상대중이 혼합되면서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된다. 어느쪽이 진의를 가진 대중인지 알수 없다. 가상의 공간에서는 기계적인 여론몰이도 가능해진다. 하지만 그렇게 기계적인 여론이 다시 실제적인 대중의 의견을 바꿔놓게 되기도 한다. 대중이 항상 행동하는 것은 아니다. 일단 읽으며 행도하기 전의 독자층은 그야말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존재층이다. 이들의 움직임에 따라 대중의 규모나 의견이 달라질 수 있다. 대중에 대한 파악은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다.

대중이 탈개인화되어 있지 않다고 해서 대중문화가 무해해지거나 더 나빠지지도 않는다. 그러나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대중이 너무나 세련화되고, 개인화되고, 주관화되어 있어서 주체의 유일성에 의존하는 전통적인 동일철학의 폭넓은 개념들이 현대사회의 개인들에 관해 서술하고 규범적으로 판단할 가능성조차 내놓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대중은 이질성과 내부 차이를 허용하는 것만이 아니다. 심지어 이질성과 내부 차이를 해방으로서가 아니라 규범화하는 새로운 형태로서 요구하기까지 한다. 대중문화는 바로 이 비동질적 대중에 기반을 두고 있다. (p. 287)

현대사회에서 대중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곳이 정치사회적인 분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보다는 팬덤문화에서 대중을 더 많이 찾아볼 수 있다. 8장에서는 대중문화 비평을 통해 대중의 모습을 풀어보고 있다.

오늘날의 대중 현상으로서의 개인주의는 하이데거의 세인에 대한 규정-'누구나 타인이며 아무도 자기 자신이 아니다'- 을 정반대로 뒤집는다. '누구나 자기 자신이며 아무도 타인이 아니다' (p. 294)

윙거의 '더 높은 형이상학적 질서'에 대한 설명은 이상하게도 하이데거의 '본원적 존재'와 마찬가지로 무기력하고 공허하다는 느낌을 준다. 그렇지만 두 이론의 바로 이러한 양상이 독자층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 비록 파시스트들은 윙거와 하이데거를 별로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당연하게도 이 두 이론은 막 대두하기 시작한 파시즘과 결합한다. 윙거의 '더 높은 질서'에 대한 지적은 그의 글의 가장 빈약한 부분이기는 하지만, 바로 이것이 뉴라이트 측의 숨은 의미로 변했다. (p. 301)

 

저자는 다양한 이론들을 살펴보며 현재에 적용가능한 대중이론을 찾아보려고 노력한다. 하이데거 의 철학개념들도 종종 인용이 되는데, 처음 인용될땐 하이데거에 우호적인 걸까 싶어서 우려가 되었으나 뒤로 갈수록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면서 안심했다. 여하튼 이렇게 보고 저렇게 봐도 현대의 대중이론은 하나로 정리할 수 없다는 것이 결론이라면 결론이랄까.

오늘날 대중 속의 개인들의 행동을 규정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 질문이 중요한 이유는 이 개인들의 행동이 대중의 속성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역으로 개인들도 대중에 의해 변화된다. 따라서 두 번째 질문은 이런 것이다. 대중은 그 구성원들에게 어떻게 작용하는가? 한낱 개인이 대중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일은 없고, 대중이 구성원들에게 곧바로 작용하는 일도 없다고 간주해볼 수 있다. 전자의 경우에 사람들은 전능한 지도자를 요구할 것이며, 후자의 경우에는 대중을 역사적 세력으로 이해할 것이다. 대중과 개인들은 오히려 어떤 역동적인 사안을 통해 다방면에 걸쳐 서로 결합되어 있다. (p. 327)

새로운 대중의 중요성이 현재로서는 인격 개념을 그대로 남겨두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은 확실해 보인다. 사회적 정체성과 주관적 정체성의 구분은 갈수록 희미해진다. (p. 361)

 

대중속에 개인이 묻혀있는 시대는 지났다. 그렇다고 개인들만 따로따로 있는 시대라고 할 수도 없다. 개인들은 이합집산하며 이런 대중이 되었다가 저런 대중이 되었다가 한다. 그러한 대중의 규모는 빙산의 일각처럼 보여진 대중보다 보여지지 않은 대중이 훨씬 크다. 게다가 가상의 대중과 실재적 대중은 서로 상호작용하며 서로를 변화시킨다. 대중과 개인은 서로 끌어당기고 있으며 개인의 힘과 대중의 힘은 우열을 가리기 힘들게 되었다. 새로운 대중이 탄생한 것인가, 어떤 대중인지 모르기에 새롭다고 표현해야 하는 것인가. 중요한 것은 올바른 개인이 올바른 대중이 된다는 기본 아닐까...

-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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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어디에서 왔니 - 탄생 한국인 이야기
이어령 지음 / 파람북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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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어디에서 왔니? 라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그 물음표와 느낌표 사이에서, 이제껏 우리가 몰랐던 우리 모두의 '출생의 비밀'이 밝혀진다.

시대의 흐름을 통찰하고 변혁시켜 온 정신사의 궤적과 한국 사회의 방향을 제시해 온 이어령의 시대적 선언!

 

 

띠지의 사진을 왜 저런 포즈로 찍으셨을까;;; 종교 교주 같은심;;;

이어령 선생님 이름을 안들어본 사람보다 들어본 사람이 더 많지 않을까?

꾸준한 활동을 하고 계시는 것도 놀라운데, 아흔이 가까운 나이에 새로운 시리즈 집필을 시작하셨다니 더욱 놀랍다. 게다가 그 시리즈 제목이 무려 '한국인 이야기' 이다.

00인 이야기 라는 제목을 들으면 대부분 로마인이야기 라는 책 제목을 떠올리게 될 것 같은데, 나또한 그러하여 이 책이 소설적 역사이야기 인줄 알았다. 역사적 사건 자체보다 그 역사를 살아온 사람 즉, 한국인에 초점을 맞추어 연대기식으로 이야기를 풀어주시려나 기대했다. 그런데... 예상을 완전히 벗어난 책이었다. -0-

책은 태명 이야기로 시작된다. 태명이 굉장히 오래전부터 늘 있어온 관습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아니었나 보다. 이어령 선생의 북콘서트 후 책에 사인을 해주던 자리에서 쑥쑥이이름으로 사인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고서야 선생은 태명에 대해 알게 되신듯 하다. 그리고 태명이라는 것이 한국인만의 것임을 논증하기 시작한다.

한자가 들어오기 전 당연히 우리는 우리말로 이름을 지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글자가 없어 그 뜻이나 소리를 이두식 한자로 표기할 수 밖에 없었다. 신라 시조 '박혁거세' 라는 이름부터 그렇지 않은가. <삼국사기>에는 박혁거세의 이명으로 '불구내' 라는 기록이 보인다. 주석에서도 광명이세 로 밝혀져 있듯이 '빛으로 세상을 밝힌다' 는 뜻이다. 그러니까 박혁거세를 토박이말로 환원하면 '불구내'는 '밝누리(놀이)'가 아니라 '밝아누리'였을 가능성이 크다. 혁거세를 한자의 뜻으로 풀어보면 '밝을 혁' 과 '누리 세'로 그 뜻이 부합한다. 그러니까 혁거세는 원래 이름의 뜻을 옮긴 훈차요, 불구내는 그 이름의 발음을 적은 음차 라고 보면 된다. (p. 19)

태명으로 시작하여 이름에 대해 한글 이름과 한자 이름의 역사적 사례를 들어가며 설명하시는데, 한글에 대해 이분만큼 정확히 아시는 분은 많지 않을 것이므로, 일단 믿고 읽게 되는 내용들이었다. 지금은 굉장히 자연스럽게 퍼져있는 태명이 한국인들이 만들어낸 진짜 오리지널 한류라는 것에 대해서도 처음 알게되는 내용들이었다. 2001년쯤에서부터 태명짓는 문화가 시작되었다고 그렇게밖에 안됐나 싶어 놀랐다.

아시아는 성을 중시하고 유럽은 이름을 중시한다고 한다. 그래서 이름 표기 순서가 다르다. 아시아에서도 특히 한국과 중국은 성씨를 중요시 여겨 한국은 세계에서 성이 가장 적은 수에 속하고 인구가 그렇게나 많은 중국도 인구의 85퍼센트 안팎이 100개 이하의 성씨로 구성되어 있을 만큼 성씨는 갯수는 많지 않은데 비해 일본은 성씨에 대한 의식이 희박하여 성씨와 이름을 자주 바꾸고 새로 짓고 하다보니 30만 종의 성씨가 있다고 한다. 이름의 문화만 보더라도 서양과 동양 그리고 한국과 일본이 엄청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인간과 생명과 자연을 보는 차이가 바로 이 한 살 나이 차이에서 비로된다. 천년만년 다른 문화와 문명 그리고 앞으로 올 미래의 세월에 큰 차이가 생겨난다는 사실이다. 최첨단 초음파 기술이라 할지라도 앞 못보는 심봉사를 따르지 못하는 이유는 예나 지금이나 모태의 생명 공간을 들여다보는 것은 사람 눈의 수정체도, 카메라의 렌즈도 아니라는 것. 그것은 오직 생명의 예지를 지닌 '마음의 눈' '영혼의 눈' 이라는 점이다. (p. 63)

저자는 한국인 고유의 배내 문화에 대해서도 장점을 부각시킨다. 한국나이는 서양식 만 나이와 혼용되어 헤깔리기 일쑤이지만, 태아를 생명으로 존중하여 태어나자마자 1살로 치는 태도는, 태아를 생명으로 존중하지 않고 0살로 치는 서양식 태도보다 더 바람직하다는 점에 동의한다.

걷고 뛰는 두 발의 힘이 오늘의 인간과 그 문화 문명을 만들어 냈다고 하면 비웃음을 살지 모른다. 하지만 누구도 부정 못하는 것은 물건을 만들고 다루는 기술은 손에서 나왔을지 모르지만,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그 행동의 힘은 발과 다리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가정이다. 인간은 직립 보행을 하면서 자유로워진 두 손으로 도구를 만들고 사용하는 문화 문명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손으로 쥐고 잡는 능력 때문에 짐승과 다른 인간이 되었다고 한다면 침팬지, 고릴라, 오랑우탄, 긴팔원숭이 같은 유인원들이 먼저 인간으로 진화했어야 옳았다. (p. 83)

사람을 가장 많이 닮은 침팬지나 고릴라도 하루에 기껏 길어야 3킬로미트 밖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채집 시대의 원인류는 하루에 30킬로미터 이상을 걸었다는 것이다. 손이 아니다. 이동성을 가능케 한 바로 그 발과 다리가 오늘의 인간과 그 문화 문명을 만들어낸 주역이었던 것이다. (p. 84)

 

수긍이 가는 내용이었다. 손이 아니라 발이 인간을 유인원에서 독립시켰다. 그리고 쿵푸와 가라데는 손을 사용하지만 태권도는 오직 발만 이용하는 운동이다. 태권도가 갑자기 달리 보인다. 최근 걷기 가 유행인데 이또한 달리 보인다. 쇠젓가락으로 콩을 집을 수 있는 민족도 한국인데 유일하다는데 심지어 발까지!! 저자의 한국인 장점논리에 점점더 빠져든다. ㅎㅎ

출산후 미역국을 먹는 문화도 한국인만의 고유한 산후조리법이라고 한다. 서양에서 미역은 바다속 잡초 취급당했고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출산과 미역국은 생소한 조합이었다. 하지만 미역의 산후조리능력은 과학적으로 검증되고 있다. 뱃속 태아를 소중히 여기고 산후조리를 미역국으로 보신했던 한국인은 애초에 생명을 주시는 삼신할머니 문화부터 달랐다.

일찍이 이능화 선생이 <조선무속고>에서 지적한 것처럼 (삼신할머니 의)'삼' 은 한자의 삼(三)이 아니라 태(胎)를 뜻하는 우리 고유의 말이라고 밝힌 바 있다. 맞는 말이다. 요즈음 말로도 탯줄을 자르는 것을 '삼 가른다'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도 삼신을 '三神'이라고 해온 것은 '생각'을 '生覺' , 사랑을 '思郞' 으로 써온 한자 중독증의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삼신의 뜻을 토박이말로 바꿔놓으면 꼬부랑 고개의 꼬부랑 할머니가 된다. (p. 120)

드라마 도깨비에서 등장했던 삼신할머니의 다채로운 모습(할머니 아가씨 등등)은 한국에서만 가능했던 표현이라고 한다. 타 문화에선 상상도 못했던 생명신의 모습이라고 ㅎㅎ 몽고반점도 한국인의 경우 발생률이 97퍼센트대로 세계에서 가장 높다고 하면서 한국인의 부지런함과 응원열정을 연결짓는데 묘하게 설득되어진다. 우리에겐 너무나 자연스럽고 친숙하지만 타문화에서는 그렇지 않아 보이는 것이 의외로 많다는 것이 책을 읽어나갈수록 신선했다.

인터넷에서 캐낸 한국인 이야기다. IMF의 환란 때 떠돌던 유머인 것 같다. 경제난으로 일가족이 고층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자실을 시도한다. 그런데 한 사람도 떨어져 죽은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알고보니 아버지는 기러기 아빠였고, 어머니는 바람난 주부에, 딸은 날라리 였다. 거기에 큰아들은 제비족이었고, 둘재 아들은 비행소년, 막내는 덜떨어진 아이였다는 이야기다. 한국사람이라면 이러한 우스갯소리를 듣고 웃지 않을 사람이 없겠지만 외국인은 아니다. 유머 감각이 없어서가 아니라 아무리 번역을 잘해도 '기러기아빠' 나 '제비족' 그리고 '바람난다' 같은 독특한 한국어의 속어를 이해하지 못할 거다. 더구나 '날라리' 나 '비행'의 동음이의어는 음운 체계가 달라 번역조차 불가능하다. (p. 145)

저자는 전공을 살려 한국어의 장점을 여러면에서 부각시키는데 읽을때마다 한글의 위대함은 감탄스럽다. 고전서만 고집하지 않고 인터넷을 검색하며 다양한 글을 인용하시는 모습도 굉장히 인상적인데, 저자가 퍼온 저 유머를 읽으며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한글은 정말 위대하다!

말의 힘은 대단하다. 젖을 빨던 아이가 음식을 '씹'는 아이로 성장하고, 오즘 '싸'고 똥 '싸'던 아이가 오줌 '누'고 똥'누'는 아이로 바뀐다. 이렇게 똥오줌을 '가리게'되면 가랑이 사이에 족쇄처럼 채워졌던 기저귀를 떼게 된다. 쉬쉬와 응가와 끙가 같은 절묘한 소리와 패턴을 분석해보면 태명과 상통한 면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쉬쉬' 는 잇소리다. 간지러운 잇몸에서 막 이가 나려고 하는 바로 그 치음이다. '응가'는 응애하고 태어날 때 숨 쉬던 목구멍에서 나오는 소리고, '끙가'는 그보다 더 힘을 줘야 하는 쌍기역 소리다. 이렇게 미세한 차이가 젖먹이 똥싸개아이에게 전달되면, 이제는 자의로 배변을 할 수있는 힘이 생겨난다. (p. 161)

한글이 위대한 것은 표현방식도 그렇지만, 애초에 그 글자로 적을 수 있었던 우리말의 표현이 다양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우리말의 표현은 정말 글자 하나차이로 성장을 표현해 낼 수 있을 다채롭다. 우리말과 우리글이 제대로 번역될 수만 있다면 외국인들이 정말 깜짝 놀랄텐데...

제주도 지역을 제외하면 한국은 요람 문화권에서 벗어난 거의 유일한 민족이라고 할 수 있다. 애를 업어 기르는 포대기는 밀착형 육아문화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애를 업고는 바다에 들어가 물질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제주도만이 아이를 구덕에 넣어 기르는 걸 봐도 짐작이 간다. (p. 172)

2,000년 전 로마의 정치인 세네카는 스와들링에 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부모는 아직 유약한 정신을 가진 아기들에게 약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을 견뎌내도록 강요한다. 그들은 울고 발버둥치려 하지만, 아직 미성숙한 그들의 몸이 곧게 자라지 않고 굽을 까 봐 단단히 천으로 묶어둬야 한다. 그런 다음 차근차근 교양 교육을 시키는데, 만일 이 말을 듣지 않고 거부하면 겁을 주어야 한다' 아기를 천으로 꽁꽁 감싸주는 스와들링은 아이가 힘들어해도 강요해야 한다고 했다. 아이가 말을 듣지 않으면 겁을 줘서라도 뜻을 이뤄야 한다는 폭압적 부모론이다. 적어도 세네카의 말 속에 아기의 인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p. 186)

부르는 언어가 다르고, 믿는 종교가 다르고, 감고 두르는 방법이 저마다 다르더라도 유럽의 스와들링 풍습만은 어디를 가나 똑같았다. 공간적으로 모두 스와들 문화권에 속하는 유럽권 지역이다. 멀리 4,500년 전 고대로부터 17세기 이후 스와들링에 관한 비판이 이뤄지기 이전까지 스와들링은 아무런 문제 제게 없이 모두가 공유하는 육아방식이었다. 그리고 여전히 스와들링 풍습은 전 세계적으로 뿌리 깊게 남아 행해지고 있다. (p. 194)

 

한국인만의 포대기와 기저귀문화의 장점을 이야기 하면서 서양에서 이루어졌던 스와들링 육아법을 읽으며 깜짝 놀랐다. 기저귀가 없었다니;;; 기다란 천으로 미라처럼 묶은채 요람에 떨어뜨려 아기혼자 재우면서 용변을 볼때마다 갈아준것도 아니라니;;; 뱃속에 있을 때는 생명으로 여기지도 않았고, 태어나서도 사람으로 여기지 않아 보살핌이 없는 문화가 역사에 분명 영향을 미쳤을 것 같은... 그런데 한국인만의 독특한, 안고 업어 재우는 밀착형 육아의 스킨십문화는 서구로 건너갔고, 현재 한국에선 서양식 스와들과 분리형 육아를 선호하고 있다니 이무슨 안타까운 일인가... 나도 길거리에서 아이를 앞에 정면을 보게 하여 매달고 다니는 젊은부모들을 보면 머리와 팔다리가덜렁거리고 있는 아기를 보면 불안함이 느껴진다. 가슴에 꼭 안아주거나 등에 푹 업어주는게 더 좋을 것 같은데...

언어학자들은 이 의성어가 가장 발달한 말로 한국어를 꼽는다. 우리가 전 세계에서 가장 의성어를 많이 쓴다는 건 이미 객관적 통계로도 밝혀진 바 있다. 정식으로 사전에 나와 있는 것만 8,000개다. 일본은 2,200개, 독일은 우리의 7퍼센트 수준인 541개이니 말하 것도 없다. (p. 237)

다채롭게 표현할 도구가 많다는 것은 문화의 다양성을 높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한류 드라마나 한국 아이돌이나 한국 영화가 점점 세계적으로 널리 인정받고 있는 것은 이러한 문화가 바탕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봉준호 감독 축하축하 ㅎㅎ)

일본도 옛날에는 같은 한자 문화권으로 돌잡이 문화가 같았지만, 그것을 보유하고 발전시켜 지금까지 지속하는 것은 한국뿐이다. 요즘 일본에서는 책을 잡는 풍속이 없다. 지금은 한국인이 일본인보다 책을 덜 읽는지는 모르지만, 한국어를 보면 책과 연관된 단어가 많다. 일본 사람은 '쓰구에' 라고 하지만 한국 사람은 '책상'이라고 한다. 우리는 남편을 서방(書房), 'Library Man'이라고 부르지 않는가. 자기 남편을 '책방'이라고 부르는 나라가 또 어디 있겠는가? 그만큼 책으 귀하게 여긴 민족인 거다. (p. 274)

한국의 좌식문화를 상징하는것이 바로 앉아서 받는 돌상이다. 우리 돌잡이는 앉아 있고, 일본의 돌잡이는 같은 좌식문화인데도 돌상을 앉아서 받지 않고 서서 걷는다. '앉다' 와 '서다' 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미국 미술사학자 파노프스키에 따르면 비록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기는 하나 중세에 만들어진 버질의 동상은 좌상이었다. 그런데 르네상스에서 그것이 입상으로 바뀌게 된다. 중세의 '앉은 자세' 와 르네상스기의 '선 자세'는 대립된 시대정신을 반영한다. 서 있는 자세가 전투적, 행동적, 외향적인데 반해, 앉아 있는 자세는 평화적, 명상적, 내향적인 것에 가깝다. (p. 275)

 

돌잡이 문화가 한국에만 있었구나... 남편을 책과 연결시켜 서방님이라고 불렀다니, 남편은 책만 읽는 사람이었던건가 ㅎㅎ 여하튼, 좌식문화의 평화적 연결도 돌잡이 문화의 미래희망성도 다 긍정적으로 다가왔다. '잡는다' 는 의미가 들어있는 돌잡이문화가 있는 한국인만이 기회를 잡고 사랑을 잡고 운명을 잡고 나아가 세계를 잡는 '잡는다'는 의미를 가장 제대로 아는 민족이라는 저자의 표현에 그저 미소를 지을 수 밖에 ㅎㅎㅎ

'3'이란 숫자는 세계 어디에서나 특별한 의미가 있지만, 한국인만큼 셋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드물다. 그건 그냥 돈이나 물건을 세는 수의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서 맨 처음 수를 알고 그것을 손가락으로 보여준 것이 바로 셋이라는 수다. 서양아이들이 동전 던지기로 승부를 결정할 때, 동쪽 아시아의 아이들은 가위바위보로 내기를 한다. 이항대립이 아니라 삼항순환의 오묘한 사고 체계를 공유하는 거다. 그것도 일본 아이들은 동전 던지기처럼 단판으로 하는데 한국의 아이들은 보통 삼세판이다. (p. 283)

그렇다. 숫자 3 참 좋아한다. ㅎㅎ 저자는 이 숫자 3을 세살까지의 중요성과 연결지으며 다시한번 한국인만의 태교문화와 육아문화와 생명존중 문화의 우수함을 이야기한다.

어머니가 밖에 나가면 서양 아이들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회상하는 그 방대한 마르셀 푸르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ㅇ르 찾아서>의 맨 첫머리가 그렇게 시작한다. 한국의 소설에서는 눈 씻고 보려고 해도 그런 이야기를 쓴 소설을 찾아보기 힘들다.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한국의 아이들은 '나들이'란 말을 알기 때문이다. 나들이의 집합 기억이 그와는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는 거다. (p. 305)

서양문화에서는 일반적인것 같은 분리불안이 한국에서는 성립하지 않을 것 같은 육아방식에서의 신뢰감은 고향의 추억과 한국인만의 호미의 재발견을 거쳐 할머니 의 이야기로 마무리한다. 꼬부랑 할머니에서 시작해서 열두 고개를 지나 꼬부랑 할머니로 끝나는 셈이다. 이 꼬부랑은 인간이 만든 직선길이 아닌 자연이 만든 길이기에 곧 신이 만든 길이 되기도 한다고 말한다.

부모는 과거다. 내가 훗날 부모가 되면 부모의 과거였던 시간이 내 훗날 미래의 시간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 옛 이야기의 의미다. 수천 년을 이어온 옛이야기, 그때 내 말이 있었고, 내 말이 또다시 수천 년을 이어 아이의 옛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어머니에게 옛이야기를 들은 아이는 이야기하는 사람으로 바뀌고, 그 아이의 아이로 또다시 이어진다. 과거가 미래가 되고, 미래가 또다시 과거가 되어 미래로 탄생한다. 요즘 잘 쓰는 말로 '오래된 미래'라는 당착어법이 생겨난다. (p. 381)

과거는 현재의 자양분이 되고 현재는 미래의 기반이 된다. 옛이야기들은 쌓이고 쌓이면서도 크게 변하지 않고계속 이어진다. 세월이 흐르고 세대가 바뀌어도 이어지는 것, 저자는 이러한 것들을 찾아내고 있다. 한국인만의 옛것이 얼마나 훌륭한지 자긍심을 북돋우며 오래된 것을 잊지 말고 활용하여 미래를 만드는데 활용하도록 연결짓고 있다.

'오래된 미래' 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티벳 저쪽 산골마을 라다크의 현실을 다룬 오래된 미래는 어두운 현실을 비추는 단어였다. 미래 보다는 오래된 에 방점이 찍혔달까. 하지만 저자가 말하는 오래된 미래는 그 의미가 아니다. 오래되었지만 소중한 한국인만의 고유한 장점을 대를 이어 계승할 수 있기를 바라는 희망이다. 오래된 을 바탕으로 한 미래에 방점을 찍는다.

저자가 들려주는 '한국인 이야기' 는 이제 탄생 했을 뿐이다. 앞으로 어떻게 성장시킬 지 모르겠으나, 역사서가 아닌 다양한 내용을 아울러 '한국인 이야기' 라는 제목을 쓰고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것은 저자이기에 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노령과 병환으로 십년만에 완성됐다는 이 '탄생'을 시작으로 마지막 권까지 지적 활동을 멈추지 않으시길 응원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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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사랑이 처음인데요 - 사랑이 막막한 십 대를 위한 심리학 이야기
이남석 지음, 유지별이 그림 / 북트리거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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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막막한 십 대를 위한 심리학 이야기

십 대의 성(性)과 사랑에는 심리학이 필요하다

 

 

북트리거 출판사에서 나오는 청소년 책들을 여러권 읽어봤는데, 다 좋았다. 과학, 인문, 사회, 정치 관련한 내용을 청소년들이 읽기에 쉽고 재밌으면서 톡톡 튀는 감성까지 두루 갖춘 책들로 책을 읽기 싫어하는 청소년들에게 독서의 즐거움을 느낄수 있는 한방을 빵~! 날리는 듯한 늘 기대이상이었던 책들이었던지라, 새로 나온 이 책에도 관심이 갔다. 하지만 시작전부터 솔직히 조금 불편하기는 했다. 십대의 사랑이라...

저자는 심리학을 전공하고 심리강연과 상담을 하고 있는 현업 심리학자다. 청소년심리에 관심이 늘 있어왔는지 청소년의 고민에 조언을 해주는 책으로 쓴 것이 이 책이 처음은 아니다. 자녀들은 궁금해하지만 부모들은 피하고 싶은 주제인지라 시작하기전 마음이 조금은 무거웠는데, 작고 얇은 책으로 일러스트까지 곁들여진 예쁜 책이라서 손에 잡자마자 쑥 읽히는 책이었다.

우리는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연애는 무엇이고, 독이 되는 연애는 무엇인지 고민해야 해요. 저는 청소년기에 사랑을 반드시 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다가오는 사랑을 피하며 꼭 하지 말아야 할 이유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행복한 사랑을 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었따면 일부러 피할 필요는 없어요. 자신의 삶과 행복을 중심으로 놓았을 때 사랑을 하는 것이 맞다면 그렇게 해야지요. 저의 우려는 내가 중심이 아닌, 다른 사람의 시선을 중심에 놓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행복은 모르겠고, 일단 연애는 좋다니까 호기심이 생기네. 한번 해볼까?' 라는 십 대의 생각은 '행복은 모르겠고, 청소년기에 연애는 좋지 않으니 무조건 나중에 하라고 말해 버리자' 라는 어른의 생각처럼 문제가 있어요. (p. 10)

청소년들의 사랑에 대해서는 말하기가 영 불편한 것이 나도 어느새 꼰대가 되어가나 보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편이지만, 길가다가 마주치는 청소년들의 연애모습은 내가 현실감이 없나 싶은 생각이 들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나몰라라 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아서 일단 알아야는 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보다도 청소년들이 더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이 책이 조금이라도 그들에게 진심어린 조언으로 다가갔으면 싶은 마음이 있다.

만약 주변에 착한 아이 콤플렉스에 빠진 사람이 있다면, '착하다' 라는 말을 해줘서는 안 돼요. 대신에 '너는 행복해야 하는 사람' 이라는 말을 더 많이 해줘야 해요. 스스로도 상대방을 위해 착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나 자신을 중심에 두고 생각하는 습관을 길러야 해요. (p. 21)

이 책은 착한 아이 콤플렉스 부터 애착까지 사랑을 시작하는 청소년들이 쉽게 오판할 수 있는 행동들에 대한 조언으로 시작한다. 무엇보다 착한 아이 콤플렉스 에 대한 첫 내용이 가장 와닿았다. 청소년들은 아직 어른들의 보호아래 성장중인 미성년자다. 누군가의 보호아래 있다는 것은 보호자의 의견에 생각이 좌우될 경향이 크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의견에 좌우될 수 있다는 것은 보호자가 아니어도 옆에 있는 사람에 의해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고 그 누군가가 연애의 상대일때는 더욱 판단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중요한 것은 자기자신을 중심에 두고 생각하는 것이다. 부모가 어떻게 생각할지 애인이 어떻게 생각할지 친구가 어떻게 생각할지가 아니라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아채는 연습은 굉장히 중요하다. 나를 소중히 여기는 습관이 들어야 어른이 되어서도 스스로를 잘 보호할 수 있게 된다.

청소년들의 사랑에서 있을 법한 사랑의 형태, 스킨십에 대한 고민, 책임의 문제, 이별의 아픔까지 저자는 시종일관 따듯하고 친절하면서 진솔하게 이야기한다. 사이사이 내담자들의 사례도 곁들여가면서 청소년들이 이 책을 읽을 때 마음의 문을 열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신경쓰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주변에 조언을 구할 수 있도록 알려주고 싶어하는 저자의 마음이 이 책을 읽는 청소년들에게 전해졌으면 좋겠다.

부디 이 책이 여러분의 시행착오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랑의 원리를 제대로 알고 사랑을 해야 행복할 수 있어요. 행복할 수 있는 원리를 알고, 그 방법을 선택하고, 실행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여러분의 더 나은 선택과 실행을 응원합니다. (p. 162)

에필로그에서 저자는 자신의 사랑과 결혼에 있었던 시행착오를 솔직히 이야기하면서 누구나 다 그렇게 시행착오를 겪으며 성장하는 것임을 말하고, 이미 시행착오를 거쳐 그 시행착오가 실패라고 여기고 있을 청소년에게 다독임과 응원을 보내고 있다.

이 책은 어려운 이론도 없고 내용이 짧으면서 공감도도 높고 글말미마다 뼈때리는 조언도 짧게 정리해놓아서 책을 가까이 하지 않던 청소년이라 할지라도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무엇보다 사랑은 호기심이나 욕망이나 희생이 아니라, 사랑이란 어떤 형태이건 자기자신을 중심에 놓고 상대방과 함께 아름답고 행복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을 그래서 더없이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것을 강조해 주고 있어 좋았다.

내가 생각할 때 청소년기의 사랑은, 사랑을 굳이굳이 해보려고 혹은 굳이굳이 하지 않으려고 의식하는 것보다는 자연스럽게 하게 되면 하고 말게 되면 마는 것으로 부담을 내려놓았으면 좋겠다. 다만, 하게 된다면 적어도 이 책이 알려주는 에티켓 정도는 알고 시작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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