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나에게만 가혹할까 - 자신에게 유독 엄격한 사람들을 위한 죄책감 버리기 연습
사이토 사토루 지음, 기즈키 지아키 엮음, 장은주 옮김 / 심플라이프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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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게 유독 엄격한 사람들을 위한 죄책감 버리기 연습

"모든 죄책감은 필요 없습니다!"

나를 사랑하는 법보다 미워하지 않는 법을 먼저 배워라

 

 

저자는 일본의 정신과 의사로 50여년간 활동해 오면서 관련 저서들을 여러권 낸 심리저서 작가 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일본책들을 좋아하지 않아서 잘 읽지 않는편인데, 대중심리서들은 종종 공감해가며 읽게 된다. 아무래도 가까운 지역 문화권에서 살아온 세월이 서로의 심리를 서양보다는 비슷하게 느껴지게해서 그런가보다.

50여년간 환자들을 치료해왔다면 나이지긋하신 분일텐데 책은 시종일관 간결하고 깔끔하다. 자기말이 옳다며 구구절절 조언을 늘어놓지도 않고, 이런 환자도 있었다하며 상담사례를 자랑하는 것도 아닌, 그동안 축적된 활동들을 기반으로 한 자신의 생각을 소제목마다 서너장으로 간략하게 정리하고 있다. 무엇보다 문체가 시원시원해서 좋다.

오랫동안 현역에서 활동해온 의사로서 나는 단언한다. 모든 죄책감은 필요 없다. (p. 19)

본문 시작 첫줄에서부터 저자는 시원스럽게 말한다. 이해한다 위로한다 그럴수있다 정도가 아니라 딱 잘라말한다. 죄책감은 필요 없다고. 왠지 첫줄부터 속이 뚫리는 기분이다.

사람들이 중독으로 치닫는 데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숨은 이유가 있다. 본심을 꽁꽁 숨겨둘 수도, 그렇다고 대놓고 드러낼 수도 없으니 자신을 괴롭히며 어떻게든 살려고 몸부림치는 것이다. (p. 26)

무언가에 중독된 사람에게는 대인공포증이 있다. 그들이 음식이나 술을 조절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것들을 가까이하면 '인정받느냐 받지 못하느냐' 하는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냉장고는 말이 없고 술병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p. 127)

 

알콜중독치료를 오래 하다 보니 개인의 상처 그리고 가족의 문제로 까지 범위가 자연스럽게 확장하게 됐다고 한다. 그렇게 여러 사례를 보고나서 저자가 얻은 결론은 무언가에 중독된 사람들도 실은 나름대로 열심히 살고 있었다는 것이다.

냉장고는 말이 없고 술병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니. 캬~! 명언 아닌가!

어머니가 진짜 자신의 욕망을 감춘 채 현명한 어머니, 착한 아내 로봇이 되고, 아버지가 돈 벌어오는 직장인 로봇이 되면 아이도 진짜 자신의 모습을 꼭꼭 숨긴 채 착한 아이 로봇이 된다. 아니면 로봇이 되기 싫다고 반항하며 문제 행동을 일삼거나 부모에게 원망의 화살을 돌릴지도 모른다. '현모양처' '성스러운 어머니' 는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허상이며 이미지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성모가 될 수 없을 뿐더러 성모를 목표로 할 필요도 없다. 이 세상에 완벽한 어머니는 존재하지 않는다. (p. 34)

아무리 사랑하는 연인, 부모, 친구일지라도 못마땅하고 밉고 짜증나는 순간이 있을진대 유독 어머니와 자녀 사이에서만 부정적인 감정을 용납하지 못하는 우리 사회가 나는 더욱 비정상적이고 비뚤어져 보인다. (p. 150)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라고 흔히들 이야기 한다. 그런데 왜 어머니는 완벽한 존재로 생각하려 하는가? 어머니도 사람인데.

당신이 타인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의식하고 있다면 요구이고, 절반 정도 의식하고 있다면 호소이다.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아니 의식하고 싶지 않은 메시지는 증상이라 불린다. (p. 36)

증상의 진단여부는 전문가의 몫이므로 요구와 호소 정도만 생각해 보자. 나는 누구에게 얼마나 요구하고 있는가? 혹시 호소하는 대상이 있진 않은가? 나에게 무언가를 요구하는 사람이 있는가? 혹시 요구하지 못하고 호소하고 있는 것을 내가 무시하고 있는 건 아닌가?

사랑은 혼자서도 잘 지낼 수 있을 때 해야 하는 것이다. 돌봄을 받고 싶다면, 돌봄을 주고 싶다면 요양원 같은 곳에서 만나는 편이 좋을 것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서로가 서로의 행복을 빼앗고 인생을 망치는 길은 피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p. 55)

요양원! 읽다가 빵 터졌다. 저자의 직설어법 정말 마음에 든다. 그렇다 사랑은 돌봄이 아니다.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것이 아닌다. 완전한 혼자와 혼자가 만나는 것이어야 문제가 없다.

정신과 의사로서 단언하건대 인간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p. 61)

나도 자주 말인데, 인간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내가 이렇게 해주면 변할 것이라고 믿으면 반드시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 그 발등을 스스로가 찍은 것인줄 모르고 상대방을 탓할때 관계는 정상적일 수 없다. 상대를 변화시키려 애쓰면 안된다. 어떤 사람인지 잘 파악하고 그저 받아들이거나 받아들이지 않거나 선택할 수 있을뿐.

아무도 나를 사랑해주지 않는다고 슬퍼하기 전에 먼저 누구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자. 사람은 자신을 사랑하는 만큼 타인에게 사랑받는다. 자신을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은 타인의 아픔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타인을 사랑하는 능력도 매우 뛰어나다. (p. 75)

나르시스트가 되라는 말이 아니다.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이 나르시즘과 동의어가 아니라는 것을 아는 순간부터 진정한 자기애는 제대로 시작될 수 있다.

삶의 기준을 너무 높이 잡으면 거기에 맞춰 살기 위해 늘 허덕일 수밖에 없다. 나는 사람들이 이런 생각에서 벗어나 좀 가벼워지면 좋겠다. 우리가 생각하는 번듯한 인생, 의미있는 인생 따윈 어디에도 없다. 애초에 나도, 당신도 어디에나 있는, 어디에 있든 상관없는 평범한 인간이다. '나는 특별해. 나는 개성이 넘쳐' 라고 발버둥 쳐봤자 그 점에는 변함이 없다. 모두 거기서 거기다. (p. 85)

다시한번 빵 터졌다. ㅋㅋ 그렇다. 다 거기서 거기다. 자신을 소중히 여기라고 해서 자신만 특별하다고 생각하라는 것은 아니다. 세상 사람 다 평범한 사람들이다. 누구나 생각하는 그런 이상적인 삶을 사람은 아마 한명도 없을지도.

'어른이 되어라' '더는 과거에 연연하지 말라' 고 공허한 조언을 늘어놓을 마음은 없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더욱 자유로워지고, 선택지가 많아진 상태라는 사실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p. 94)

진정한 어른이 된다는 것은 '선택' 을 스스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이미 어른이 되어 있을 수도.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버림받을지 모른다고, 외톨이가 되어 고독해질지 모른다고 겁낼 필요도 없다. 아무도 당신이 생각하는 만큼 당신에게 신경쓰지 않는다. 나에게 나만큼 관심 갖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남들이 당신에게 보냈던 기대나 요구의 시선은 어쩌면 당신 스스로 자신에게 바랐던 기대와 요구였을지 모른다. (p. 105)

내가 없어도 회사는, 세상은 잘만 돌아간다. 내가 돌봐주지 않아도 그 사람은 잘만 살아간다. 내가 없으면 안 된다는, 자기중심적인 생각에서 벗어나자. 그래야 지금부터라도 어딘가의 부속품, 누군가의 수족에 만족하는 삶이 아닌, 내 욕망이 중심인 진정한 성인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p. 158)

 

이또한 내가 자주 하는 표현이다. '아무도 너에게 네가 생각하는 만큼 신경스지 않아!' '네가 없어도 다 잘 돌아가!'

나 아니면 안된다는 생각은 핑계일 뿐이다. 겁을 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용기를 내야 어른이 된다.

읽는 족족 아주 시원시원하다.

개인이 책임져야 할 수많은 책무 중에서 하나만 골라 하면서 자신이 모든 일을 다 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어른, 나만 힘들다고 투정 부리는 어른이 지금 우리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어름들의 모습이 아닌지 돌아봐야 할 것이다. 나이를 먹는다고 저절로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어른이 힘든 이유는 나이 먹는 걸 두려워해야 하는 이유는 그만큼 책임져야 할 일이 많아지기 때문임을 잊지 말자. (p. 162)

이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어른들의 모습을 제대로 표현해준 구절이 아닐까 싶다. 해야할 책무들이 여러가지 인데 그중 하나 겨우겨우 하면서 세상 모든일을 하는것마냥 티내는 어른들로 가득한 세상임을 뉴스한꼭지만 봐도 바로 알 수 있다. 아니 하나도 제대로 못하는 어른들조차 많다. 나이만 먹는다고 저절로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닌데.. 나이먹었다고 어른이라며 세상에 큰소리 내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런 어른들 볼때마다 정말 부끄럽기 그지 없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남자라는 존재는 여성을 '성스러운 어머니' 와 '음탕한 작부' 로 구분하며 두 이미지가 한 여성 안에 통합되는 것을 두려워해왔다. 성스러운 어머니는 음탕해선 안되고 음탕한 작부는 어머니여서는 안 되었다. 이런 어머니에 대한 환상은 어머니들이 자기 자신을 위해 살아가는 것을 어렵게 만들었다. '어머니의 품'을 잊지 못하는 남자들은 모교를 졸업하고, 모기업에서 응석받이 사내아이를 연기하며 퇴근길에 들른 술집에서 마마라고 불리는 접대여성에게 위로받는다. 아내를 엄마라고 부르며 남편과 아버지라는 남자 역할 대신 가족 내 나이 든 아이로서 일생을 마치려 한다 남자들이 어머니에게 갖는 이런 갈망을 포착하게 되었을 때 여성들은 모성 본능이라는 신화의 견고한 덫에 갇히고 만다. 이제 그만 어머니를 놓아주면 어떨까? 나를 위해 무조건 희생하는 성스러운 존재가 아닌, 개인적인 욕망을 가진 한 인간으로 인정해주면 어떨까? 그동안 우린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한 인간에게서 너무 많은 것을 빼앗아왔다. (p. 116~118)

약간 감동스러웠다. 이제 그만 어머니를 놓아주자니... 그동안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한 인간에게서 너무 많은 것을 빼앗아왔다니... 이런 표현 아마도 처음 읽는 것 같다. 저자에게 <82년생 김지영> 이나 <엄마를 부탁해> 에 대한 서평을 요청하면 뭐라고 써주실지 갑자기 기대가 된다.

'혼자 있을 수 없는 사람'은 상대를 지배하지 않으면 불안해한다. '혼자 있을 수 있는 사람'은 무언가에 의존하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다. 따라서 상대를 속박할 필요가 없다. 나를 사랑하라고 강요할 필요도 없다. (p. 172)

'혼자 있을 수 있는 사람' 에 저요저요 손들뻔 했다. 이놈의 인정욕구;;; 역시 심리서를 더 읽고 더 배워야 한다. ㅋ

나는 혼자 있을 때 더 편한 사람이다. 그렇다고 저자가 말하는 혼자 있을 수 있는 사람의 장점을 두루 갖췄다고 볼수는 없지만 일단 출발은 좋은 거 아닌가 ㅎ 난 혼자 있을 수 있는 사람이니까^^

성격을 바꾸고 싶다면 내가 원하는 성격을 가진 사람들과 교류하면 된다. 친숙한 인간관계를 내려놓고 낯선 사람을 만나는 것이 두렵겠지만 변화에는 늘 과감한 용기가 필요한 법이다. 당신도 분명 스스로 삶의 방식을 바꿀 수 있다. 언제든 당신이 원하는 자신이 될 수 있다. 말로만 누군가를 부러워하지 말고 아주 작더라도 행동으로 변화를 실천해보자. (p. 214)

성격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성격을 먼저 바꾸고 사람들을 만나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저자가 말하는 방법이 일종의 역발상처럼 읽혔다. 시간을 잘 지키는 사람이 되고 싶으면 맨날 늦는 사람들 만나지 말고 시간을 잘 지키는 사람을 만나면 자신도 시간을 잘 지키게 된다는 것이다. 누군가 부러운 성격을 가진 사람이 있어서 나도 저 사람같은 성격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 사람과 친구하라는 저자의 조언이 왠지 새롭다.

문제의 본질에서 자꾸 눈을 돌려선 안 된다. 함께 있어 서로 상처 주기만 하는 관계라면 아무리 가족이라도 차라리 붕괴되어버리는 편이 낫다. 누군가의 인생을 희생해 지켜야 할 만큼 화목한 가족이라는 환상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무너져 버리기 직전의 가족이 어떤 힘으로 버티고 있는지, 그 본질을 들여다봐야 한다. (p. 230)

개인의 상처를 파악하다 보면 가족의 문제가 언급이 안 될 수가 없다. 저자가 여러번 언급하는 '화목한 가족이라는 환상' 에 대해 구구절절 옳습니다라고 동의하며 가족이라는 것이 꼭 혈연관계로 맺어지지 않을 수 있는 다시말해 정신적의지가 되는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에도 깊은 공감을 하며 읽었다.

욕망에 충실하더라도 타인과 서로 공감하며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다. 당신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한 욕망은 타인과 조화롭게 유대를 맺으며 살아가기를 갈망하기 때문이다. 당신이 당신 자신에게 반하고 또 반할수록 타인을 향한 깊은 애정이 솟아 나와 외로움이 사라질 것이다. 인생에 정해진 레일은 없다. 일정한 모델도 없다. 스스로 '이정도면 됐다'라고 만족할 수 있는 레일을 깔고 그 위를 걸어가면 된다. 자신의 욕망을 인정하고 긍정하며 살아가면 더는 주변에 '이래라저래라' 사사건건 간섭하는 사람들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당신의 모습에 사람들이 저절로 입을 닫을 것이기 때문이다. (p. 270)

누군가에게 반하기만 하지 말고, 이젠 나에게 반하라! 그러면 주변의 잔소리들이 입틀막 할 것이다.

첫장부터 마지막장 까지 묘하게 웃으며 읽게 되는 책이었다. ㅎㅎㅎ

책을 다 읽고 표지뒷날개의 책들을 보니 반가운 책들이 여럿이었다.

<자존감 수업> 으로 친절하게 자존감 up 을 하고 <삶의 무기가 되는 심리학> 으로 실전 팁을 배우고 <나를 아프게 하는 사람은 버리기로 했다> 로 내 관계를 돌아보고 나서 <나는 왜 나에게만 가혹할까> 를 읽고나니 왠지 조금은 어른이 된 듯 마음이 한뼘쯤은 성장한 기분이다. 심리서를 여럿 읽어왔지만 앞으로도 꾸준히 좀더 읽어야 겠다. 이또한 어른이 되는 방법이 아닐까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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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쏙 세계사 - 인류 탄생부터 소련 해체까지 역사를 바꾼 300장면을 만나다
릴리스 지음 / 지식서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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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탄생부터 소련해체까지 역사를 바꾼 300장면을 만나다

 

 

나는 어려서부터 역사가 참 좋았다. 학교다닐때도 역사시간 세계사 시간을 좋아했다. 그리고 여전히 꾸준히 역사책을 읽는다.

그림은 잘 몰라서 어렵기만 했는데 자꾸 보다보니까 점점 좋아진다. 역시 아는만큼 애정도 생긴다. 그래서 점점더 그림을 찾아서 보게된다.

이런 내가 좋아하는 역사와 그림이 한권에 모아진 이 책은 나로서는 당연히 탐나는 책일수밖에 없었다.

올컬러 그림들과 적당히 두꺼운 세계사를 함께 하는 맛은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저자는 중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다 미술사 강연을 하면서 파워블로거이기도 하다는데, 지금은 미술과 역사를 결합한 강연등 폭넓은 활동을 하신다 한다.

책을 읽다보면 글쓴이의 분위기가 진하게 느껴지는 책이 종종 있는데 역사책 치고는 드물게 이 책에서 그런 느낌이 들었다.

뭐랄까.. 연륜이 쌓인 선생님이 세계사를 설명해주는 것을 듣고 있는듯한 기분으로 읽게 되는데, 학창시절 이런 선생님을 만났으면 참 좋았겠다 싶다. 아쉽게도 내가 역사 세계사 과목을 좋아했다고 해서 선생님들까지 좋았던 것은 아니라서;;;

자칫 지루할 수도 있는 역사풀이를 한두장마다 컬러 그림들로 눈요기를 하며 읽으니 지루한줄 모르고 술술 읽게 된다.

다만 긴 기간을 한 권으로 압축 요약하다보니 너무 건너뛰어서 아쉬운 부분도 있고, 연결되는 내용을 일단 풀어내다보니 시간을 어느정도 흘러지나갔다가 다시 거슬러올라가서 또 지나오다가 하는 부분들이 많아서 의외로 헤깔리지 않게 정신차리고 읽어야하는 책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역사서를 여럿 읽다보니 이 책을 읽으며 떠오르는 생각들이 좀 있었는데,

석기문명 관련해서는 '괴베클리테페' 를 비롯한 유적들이 기존의 학설을 뒤집을만한 연구로 진행중이므로 신석기혁명이나 농업혁명이 우리가 배웠던 이론에서 반대로 바뀔 수도 있다는 첨언이나

마리 앙트아네트 왕비 서술에서 프티 트리아농 에서 머물며 소젖을 짜고 농작물을 재배했다고 한 몇줄 아래 화려한 치장에만 관심이 있어 매일 도박과 파티에만 빠져 살았다는 조금은 모순된 서술에 대한 정리가 필요해 보인다.

저자가 언급했듯이 당시 프랑스의 재정적자는 미국독립전쟁지원비 때문이었고 궁정 경비는 전체예산의 6%에 불과했는데, 이 6% 중 루이16세가 더 사치를 하지 않았을까? 당시 프랑스인들에게는 미워할 대상이 필요했던 것이다. 마리 앙트아네트 왕비에 대한 왜곡된 평가는 점점 정정되고 있는 경우(노출을 꺼려 했을뿐 소박하게 농가의 삶을 살았고 화려한 의상에 대한 초상화는 귀족들의 폄하와 무시에 대응하기 위한 존재감표시 방법이었으며 빵어쩌구 하는 말은 하지도 않았다)들을 보고 있으므로 이 부분을 좀더 참고했으면 싶다.

미워할 대상이 필요했다면 영웅시할 대상이 필요한 시절도 있는법이다. 이경우의 대표적 사례가 잔다르크 이다. 잔다르크 에 대한 설명에서는 기존 인식처럼 완전 영웅서사로 서술되었으나 최근 읽은 '미스터리 세계사' 에 따르면 잔다르크는 허위와 날조로 만들어진 영웅신화였다. 정설을 바꿀 필요까지는 없지만 이설에 대한 첨언이 있다면 좀더 객관적인 역사서술이 되지 않을까 싶다.

세계대전전쟁을 서술하면서 528페이지에 콜비츠의 조각상 <피에타> 사진이 클로즈업 된 것으로 실려 있다. 하지만 이 조각상의 진가는 이 조각상이 전시된 공간과 함께 봐야 느낄 수 있다. 조각상 자체만으로도 전쟁으로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슬픔이 전해지지만 전시된 공간과 함께 보면 그 먹먹함이 더 진하게 다가온다. 전쟁의 잔인함이 더 진하게 느껴진다...

 

 

세계사를 축약해서 짧게 읽는 것이 좋을 때도 있고 한 사건이나 한 시대를 집중해서 읽는 것이 좋을 때도 있지만, 역시 가장 좋은 것은 그림, 사진, 지도 같은 이미지들과 함께 읽는 것인 듯 하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매력적이다.

우리가 말하는 세계사는 서양사이다. 그 수천년의 역사를 한권으로 읽을 수 있고 그 서술분위기가 누군가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것 같고 집중력이 흐트러지기 전에 컬러풀 그림들로 분위기 전환이 수시로 되는 이 책은 세계사를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 무척 유용한 책이될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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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들 - 장애인의 성과 사랑 이야기
천자오루 지음, 강영희 옮김 / 사계절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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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신체와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온몸을 힘차게 밀어 찾아 나가는

따뜻한 체온과 완벽한 교감의 순간

가장 첨예한 질문을 안고

가장 뒤늦게 도착한 사랑이야기

내 사랑이 이상한가요?



김원영 변호사의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을 읽었을 때 그동안 누구도 장애인 문제를 이렇게 꺼내놓은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울 정도였다.

스스로가 장애인으로서의 삶을 살아왔기에 할 수 있는 말들이라서 그 누구의 말보다 진실함이 절절하게 다가왔었더랬다.

그리고 이 책을 알게 되었다.

읽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사회에서 자신을 실격당한 자들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읽어야 하고 알아야할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대만인 저자가 대만내에서의 장애인 문제를 '성과 사랑' 을 주제로 다양한 인물들을 인터뷰하고 자료를 취합하여 풀어낸 대중서와 연구서의 중간즈음에 위치한 책이다. 원제는 '암흑의 나라' 라고 한다. 장애인들의 욕망은 그동안 빛이 비추는 사회에선 드러낼 수 없었던 그렇게 비자의적으로 어둠속에 갇혀 있었던 문제였다. 어둠이 있기에 빛이 더욱 환하게 빛날 수 있는 것일진대 빛을 만끽하며 살아온 우리가 어둠에 대해 이제는 제대로 생각해보고 고마워해야 하지 않을까.


타이완에서 장애인의 성을 둘러싼 다양한 쟁점을 소개하는 이 책을 읽기전 글로 소개하는 김원영 작가의 마음이 어땠을지... 소개글에서 이미 이런 주제를 언급하는 것에 대한 용기랄까 결의같은 것이 느껴져서 읽기전부터 어서 이런 책이 좀더 편하게 읽혀지고 알려질 수 있는 시대가 오기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우리의 교육 체계와 사회복지기관, 사회 여론이 여태까지 장애인을 무성애자나 성별을 지운 존재로 취급하면서 일률적인 짧은 머리, 여럿이 함께 자는 군대식 잠자리, 집단 탈의, 집단 목욕 등의 형태로 돌봄의 편의를 추구해왔고, 그들의 욕망을 건드릴까 봐 제대로 된 성교육을 행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해결 방법을 제시하라는 건 더더욱 어불성설이다. 그럼 성 문제가 터진다면? 그냥 보고도 못본 체한다. (p. 22)


오랜 세월 장애인의 성적 충동은 일종의 금기사항이었다. 이들은 무성애자로 취급되었다. 생명을 갖고 태어난 이상 성별이 있는 것이 당연하고 성별은 생존의 욕구처럼 당연하게 본능의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것이것만 나또한 그저 그들을 보살핌이 필요한 무성애적 존재로 생각해 왔음을 이 책을 읽으며 부끄럽게 깨달았다. 그리고 편의적으로 시설에서 돌봄을 당한다는 것이 어떤 것일지 생각했을 때 나도 모르게 몸서리쳐졌음을 부끄럽게 인정한다...


장애는 개인의 불행이지만, 그 불행을 어떻게 대면하는가는 한 사회가 '장애' 라는 것을 어떻게 인식하고 대하는지를 반영한다. 은연중이든 노골적이든 장애에 대한 인식에 차별이 있는지, 일상에 무장애 공간이 얼마나 되는지 등을 포함해서 말이다. (p. 25)


이 책을 읽는 내내 마음불편한 부끄러움을 느낀 내가 갖고 있는 인식은 그동안 내가 받아온 교육을 드러낸다. 우리 사회는 어떤 교육을 해왔는가?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한반에 장애인 친구 한명 있는 것이 그렇게 이상하지 않았다. 특별학급이라고 장애인반이 있기도 했다. 그런데 중학교때까지만 해도 한반에 함께 존재했던 그들이 고등학교 대학교에 올라갈 수록 눈에 띠지 않았다.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하물며 지금은 초등학교에 장애인친구가 있는 경우를 거의 본적이 없다. 이들의 교육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걸까??


그들은(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들) 성인이 된 지적장애인 자녀들을 어린아이 취급한다. 이 '아이들'이 성별 개념이 있는지, 사랑과 애정 관계가 필요한지 등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어쩌면 감히 생각하지 않으려는지도 모른다. (p. 39)

아이를 돌보는 사람들이 그동안 우왕좌왕하며 걸어온 길에 실수가 오해가 있었을지는 몰라도 최소한 거기에는 아이가 울퉁불퉁한 길을 걷지 않게 하려는 선의가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아이가 아무것도 모르길 바란다. 그저 고통받지 않기를 바라는 게 설마 잘못된 일일까? (p. 50)


학교에서 받아주지 않는 아이들 중에서 부모가 살뜰히 집안에서 보살피는 경우는 그나마 나은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정성어린 보살핌을 제공하는 부모들조차도 자신들의 자녀가 성인이 되었음을 인지하는 경우는 굉장히 드물었다. 그저 평생 '아이' 로만 존재한다. 하지만 이 '아이' 안에도 성호르몬이 존재한다.

자녀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대부분 다 선의이다. 그저 자식 잘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하지만 일상에서 부모의 마음이 자식의 욕구와 부딪히는 경우는 다반사이다. 독립적 주체가 되기 힘든 장애인들의 경우는 오히려 더 억압받을 수 밖에 없게 된다. 하지만 어느쪽도 함부로 잘못됐다 말할 수 없다.


성교육은 단지 '노no'라고 말할 줄 아는 것에만 그쳐서는 안 되고, 그 이면의 정서적 연결과 유대 관계 형성에 대해서도 가르쳐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교사들은 늘 이 점은 소홀이 한 채 올바른 관념만을 이끌어내려 애쓰고, 학생들은 그런 교육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렇게 힘겨루기를 반복하다 쌍방이 지쳐 나가떨어지면, 결국 '학생이 멍청해서' 라는 변명으로 결과를 합리화한다. 이처럼 쌍방이 망하는 길을 걸어온 셈이다. (p. 45)


성교육의 부실함은 장애아들에게만 있어온 것은 아니다. 그냥 일반적인 학교에서도 성교육은 여전히 부실하고 난해하다. 범죄예방 측면에서 성교육을 다루면 성은 곧 범죄가 되고 생물학적 측면에서 성교육을 다루면 성은 그저 무의식적 본능이 된다. 성과 사랑을 연결하고 성과 유대감을 연결하는 성교육의 부실함은 사랑을 영화처럼 낭만덩어리로 만들거나 사랑을 무서운 범죄연결고리로 만들수 있다. 그래서 요즘은 사랑도 아니고 일단 썸부터 시작하는 사랑예행연습이 필요한 시대가 되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지적장애인에게도 성적 필요가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이는 이론이 아니라 진실한 경험이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진실한 경험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건 지적장애인이 성폭력을 당하는 비율이 다른 어떤 장애인보다 높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험악한 사실 앞에서 단순히 '신체의 자기결정권 존중' '성의 자유로운 추구'만 주장한다면 돌보는 사람들의 우려는 불식될 수 없으리라. (p. 92)


성폭력범죄에서 지적장애인의 비율이 상당히 높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일 것이다. 시설에서의 집단 사례라도 발각되면 뉴스에서 화젯거리로 삼는 기간만 관심이 쏠렸다가 흐지부지... 그러다 또 똑같은 사건이 발생하는 악순환... 이런 상황에서 지적장애인의 성적 욕망에 대한 논의는 당연히 뒤로 밀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비장애인들이 저지른 잘못을 장애인들에게 책임지우는 결과를 초래한다. 비장애인들의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장애인들의 성적욕망을 억압한다는 것이 과연 자연스러운 흐름인걸까? 책임과 윤리는 모든 인간지 갖춰야 할 덕목이다. 어느 한쪽에만 과하게 요구할 수는 없다.


시각장애인을 '환자'와 '불구자'로 보는 데 익숙한 우리는 의학과 손상의 관점에서 그들에게 필요한 건 그저 의식주와 의료, 장애없는 환경일 뿐 사랑과 우정, 친밀한 인간관계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영국의 다발성 경화증 환자 투탄 하나포드가 "남자는 늘 여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안다고 착각한다. 마찬가지로 비장애인은 늘 장애인의 필요를 안다고 착각한다" 라고 말한 것처럼 말이다. (p. 115)


명언이다. 우리는 늘 내가 상대방의 요구를 제대로 알고 있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말 그대로 착각인것을;;;


'건강하고' '온전한' 신체만이 성과 사랑을 누릴 자격이 있는 건 아니다. 건강하지도 온전하지도 못한 신체는 그저 '다를' 뿐이다. 장애를 가진 신체에 대해 사람들이 갖는 '동정' '공포' '기형' 이라는 편견은 악의에서 나왔다기보다는 단순히 낯설어서인지도 모른다. (p. 129)


낯섬도 문제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익숙해지고 자연스러워지면 좀더 편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이다. 옮긴이가 대만에 거주할때 휠체어를 탄 사람들이 많이 보여서 낯설었다고 한다. 그런 환경에서도 저자는 장애인처우에 대한 문제의식이 강한데 우리사회에서는 휠체어든 다른 장애든 장애인들을 만나는 경우자체가 드물다. 드문만큼 만나면 한번쯤 더 눈길을 주고 더 쳐다보고 지나간다. 그런 문화부터 바뀌어야 할텐데... 장애인들이 자연스럽게 돌아다니는 사회가 말처럼 쉽지가 않다 참...


낯선 생활과 소통의 어려움 때문에 국제결혼은 쌍방이 고립되었다는 무력감을 느끼기 쉽지만 외국인 배우자가 직면하는 압박과 고통은 훨씬 더 클 것이다. 만약 선택할 수만 있다면, 인륜지대사를 그리 좋다고 여겨지지 않는 상대와 치르고 싶은 사람은 없으리라. 고향을 떠나온 그들은 이후이 세월 동안 진실한 사랑에 대한 갈망은 가슴 깊이 묻어둔 체 지내다 결국에는 거의 잊고 산다. 하지만 언젠가 혼란스러운 욕망이 불쑥 수면 위로 떠오른다면 가정이 서로를 옥죄는 감옥이 될지도 모른다. (p. 155)

"아들을 외국인 신부와 맺어주는 한이 있더라도 휠체어에 앉은 여자는 맞을 수 없다" (p. 189)


책을 읽으며 놀랐던 부분이 동남아 외국인 신부 에 대한 이야기였다. 대만에서는 장애인 남성이 동남아 신부를 사오는 경우가 꽤 많은 듯 하다. 우리나라 농촌총각들이 동남아 신부를 사오듯이... 여하튼 그래도 여건이 되고 남성인 장애인은 신부를 사.올. 수라도 있다. 하지만 여성 장애인은??

모든 사회엔 계층이 생기는 것이 당연한 것일까... 사회 약자층이라고 여겨지는 장애인 사회에서도 더 약자층은 존재했다. 그나마 남성장애인의 성적욕망은 어떤식으로든 해소점을 찾고 있었다. 하지만 여성장애인은 스스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성적욕망은 둘째치고 가사와 출산을 정상적으로 하지 못할 것 같은 여성장애인은 어렵게 인연을 만나도 거부당한다. 같은 장애인 남성에게조차 버려진다.


손천사는 자위와 성욕 충족 등 순수하게 생리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성을 애매하게 보고 금기시하는 주류 사회의 태도에 도전하고자 한다고 말이다. 그들은 오직 이성적인 소통을 통해 더 많은 사람에게 장애인의 필요를 이해시켜야만 장애인이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가질 수 있다고 여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언론은 그들의 신념에 그다지 흥미가 없고 보도는 늘 선정적으로만 흐른다. (p. 247)

"인정해요. 우리는 욕망을 이용해 장애인을 도와요. 그들이 욕망을 삶의 힘으로 바꿀 수 있게 격려하지요. 서비스를 받은 많은 사람들이 그런 역량을 펼쳐 나가는 것을 실제로 보기도 하고요. 욕망이 좋은 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나요? 왜 우리는 이렇게 성과 욕망을 두려워하죠? (p. 262)


책의 뒷부분에는 장애인의 성적욕구를 풀어주는 무료자원봉사단체 손천사 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야말로 놀라움 그 자체였다. 일본의 유료서비스업체 화이트핸즈 와 프랑스의 APPAS, 스위스의 SEHP, 이탈리아의 LoveGiver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장애인의 성적 욕망을 해소해주는 사례들을 보면서 복잡다단한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게다가 손천사를 만든 황즈젠은 장애인이면서 동성애자 이다. 첩첩산중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그는 장애인의 성문제 관련 최전선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며 자신을 드러내는데 거리낌이 없다. 생각해보면 왜 그러면 안된다고 느끼는 것인가? 그냥 다 다른 사람일 뿐인데...


장애인의 성을 이해하는 것은 사회가 그들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이해하는 일일 뿐 아니라, 사회가 어떻게 '정상'을 규정하고 '차이'를 대하는지를 연구하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이 부분에 대해서라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너무나 미천한 수준이다. 인간됨과 관련한 한 차례의 도전이 이제 막 시작되려 한다. (p. 273)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당장 필요한 건 법이나 제도의 개혁이 아니라 성 관념의 해방인지도 모른다. 성의 범람이 아니라, 지식과 마음의 해방말이다.

성적 욕구를 전적으로 문제시하고 불안해하는 태도야말로 더 넓고 자유로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뛰어넘어야 할 마음의 문턱이다. 신체는 인류가 자아를 장악하는 도구이자 외부와 소통하는 수단이다. 단지 육신이 존재하는 곳일 뿐만 아니라, 인간이 세계로 진입하는 중요한 통로다. 타인의 고통과 기쁨에 공감하고, 사회의 명와 암을 이해하는 일은 모든 사람이 반드시 배워야 하는 과제다. 머지않은 미래에는 모든 사람의 성이 보장받거나 해방될 필요없이 누구나 다 유일무이한 육체를 통해 사랑과 욕망의 한가운데서 속박이나 족쇄, 죄책감이 아니라 진실한 쾌락을 얻었으면 한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모든 장애인에게 돌려주자. 이는 인도주의적인 동정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을 펼쳐 보이는 일이다. (p. 303)


장애는 크게 신체적 장애와 지적 장애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또 선천적 장애와 후천적 장애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신체적 과 후천적 장애에 대해서는 그나마 장애인으로서는 비장애인처럼 용인될 여지가 크다. 하지만 선천적 게다가 지적 장애이기까지 하면 이경우의 장애인은 거의 사람취급 못받는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이들의 성적 욕망이라니 얼마나 낯선 주제인가 게다가 동성애이기까지 하다면 얼마나 어려운 주제인가

이 어렵고 낯선 주제를 삶으로 살아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이 책을 읽다보면 그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공감할 수 있게 된다. 공감은 낯섬을 넘어서는 지지기반이 되어줄 것이다. 그런 지지기반이 모이고 모여서 더 넓은 토대를 만들고 그 토대가 확장되다 보면 이 사회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구별이 낯설어지는 인식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


사계절 출판사는 동화책과 청소년책으로 익숙한 출판사였다. 그런데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이라는 책을 낸 출판사여서 신선했었는데, 뒤이어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들] 이라는 책까지 내는 것을 보고 기대감이 오른다. 앞으로도 녹록치 않은 출판시장에서 사회적 약자층에 대한 관심을 거두지 않기를 응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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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풀한 수학자들 특서 청소년 인문교양 7
김승태.김영인 지음 / 특별한서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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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와 현대를 넘나들며 펼펴지는 발칙한 수학 여행

수학 여행을 즐기며 배우는 수학사

 

 

이 책은 청소년용 수학사 책이다.

고대의 수학자들로 탈레스, 피타고라스, 유클리드, 아르키메데스, 디오판토스, 히파티아를

중세의 수학자들로 하이얌, 피보나치, 타르탈리아&카르다노, 네이피어, 데카르트 를

근대의 수학자들로 오일러, 가우스, 코시, 모르간, 칸토어, 와일즈 를 소개하고 있다.

수학자들의 이름을 보면 느껴지겠지만 수학교과서에 등장하는 이론들을 밝혀낸 수학자들이다.

따라서 교과서에 등장하는 이론들에 대한 기초 개념과 그 이론이 등장하게된 수학자들의 삶의 한 장면에 중심을 두고 간단간단하게 서술된다.

탈레스가 고대그리스에서 고대 수학의 기초를 세우고

피타고라스학파에서 피타고라스정리가 어떻게 등장했고

유클리드 고대시절 얼마나 대단한 기하학을 정리해냈고

아르키메데스가 유레카 라는 무게일화 말고도 어떤 일을 했고

디오판토스 가 수학의 기호를 도입함으로써 얼마나 편리해졌고

히파티아가 고대 유일의 여성수학자로서 얼마나 위대했는지 설명한다.

페르시아 수학자 하이얌의 3차방정식과 피보나치 수열이 얼마나 아름답고

타르탈리아 & 카르다노 의 방정식 대결이 얼마나 어이없고

네이피어가 만들어낸 로그 와 데카르트가 만들어낸 좌표가 얼마나 유익한지 설명한다.

오일러는 장애를 극복했꼬 가우스는 천재적이었고

코시는 절대부등식을 모르간은 대수학을 칸토어는 집합론을 선구적으로 발전시켰고

와일즈는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풀어냈음을 설명한다.

부록으로 조선시대 중국의 사신이 도발한 수학문제를 해결한 조선의 수학자 홍정하, 마방진을 만든 최석정을 소개하고

중국의 수학자 조충지 와 이선란 그리고 일본의 수학자 다카기 데이지 도 소개한다.

알아야 할 수학자들이고 익숙하면서도 완전히 알고 있지는 못하는 수학개념들이므로 이렇게 쉽게 풀이된 청소년 수학대중서가 필요하긴 하다.

그러나 고글이라는 가상인물의 등장과 함께 시간여행을 하는 문섭이는 초등학생 같다. 고글의 갑작스런 등장은 개연성이 없고 쉽게 설명해주는 건 좋은데 초등학생용 문체에 개념들은 중학교 1~고1의 수학정리들을 소개하고 있어서 영 애매하다. 초등학생이 읽으면 수학개념이 어렵고 청소년이 읽으면 어린이책을 읽는 느낌에 흥미를 느끼지 못할 것 같은...

초등학생이 읽는다면 편하게 읽으면서 이런 수학자들이 있었다 하며 이름을 알아두는 정도로 넘기고, 청소년이 읽는다면 주인공인 고글과 문섭의 시간여행은 패스하고 수학자들의 삶과 개념들에만 집중하며 읽는 것이 그나마 이 책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일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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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바침 - 결코 소멸되지 않을 자명한 사물에 바치는 헌사
부르크하르트 슈피넨 지음, 리네 호벤 그림, 김인순 옮김 / 쌤앤파커스 / 2020년 2월
평점 :
절판


결코 소멸되지 않을 자명한 사물에 바치는 헌사

 

 

제목 그대로 책에 바치는 저자의 마음을 표현한 글들은 책을 좋아하는 나로서도 지극히 공감가는 산문들이었다.

결코 소멸되지 않길 바라지만 어쩌면 소멸할지도 모르는 책에 대한 공경

나는 디지털 독서의 장점 또는 종이를 사용하지 않는 출판의 생태적 이점에 대한 설명은 다른 이들에게 맡기려 한다. 그러기에 나는 종이책에 대한 애착이 너무 큰 사람이다. 글을 깨친 뒤로 내게 세상을 열어준 것은 파일이 아니라 책이었다. 책은 내 동반자이자 내 동거인이었고 조력자이면서 친구였다. 지금 이 순간가지도 그 사실엔 변함이 없다. 나는 몇 권의 책을 집필함으로써 내 인생의 가장 대담한 꿈을 이루었고 지금도 이루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책이 언젠가 내 곁을 떠나게 되면, 내가 잃어버리게 될 것들을 이 책에서 한번 열거해보려 한다. 물론 모든 것을 완벽하게 열거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책을 옹호하는' 새로운 논거를 발굴해낼 생각도 없다. 그보다는 기이하게도 우리 모두가 아주 당연시 여기는 책을 둘러싼 문화 현상 전반에 주목하려 한다. 너무나도 친숙한 나머지 책이 없어진 후에야 비로소 깨닫게 될 그 모든 것에. (서문 p. 21)

저자가 이 책에 대한 구상을 하게 된 이유를 서문에서 말과 자동차의 비유로 설명하니 굉장히 실감나게 다가왔다.

19세기 말 서구의 대도시들은 온갖 종류의 마차로 가득 차 있었다. 시내곳곳에 말이 있었다. 런던의 경우 30만 마리의 말이 매일 귀리 1,200톤과 건초 2,000톤을 먹어 치웠고 말 한 마리당 하루에 약 15킬로그램을 배설했다. 사람들은 도시가 곧 말똥에 뒤덮일 것이라 걱정하면서도 모든 운송과 이동은 말과 마차를 통해 이루어졌다.

자동차가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자동차가 말과 마차를 대체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않았다. 누가 말과 마차대신 자동차를 이용하겠냐며 자동차를 거부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안다. 누구도 자동차 없는 세상을 생각하지 못한 다는 것을.

저자는 전자책의 등장을 자동차의 등장으로 비유한다. 그렇다면 말과 마차에 해당하는 종이책은 정말 사라질 것인가?

나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저자처럼 만약 그럴 수도 있다는 위기감에는 공감하기에 저자가 절절이 풀어놓는 책에 대한 헌사에 나또한 마음을 뺐길 수 밖에 없었다. 사라지기 전에 사라질지도 모를 것에 대한 진심어린 헌사랄까.

>> 몸체에 대하여 ··· 새책, 헌책, 큰 책과 작은 책, 아름다운 책, 훼손된 책, 불완전한 책, 주석을 붙인 책

>> 사용에 대하여 ··· 좋아하는 책, 알맞은 책, 부적절한 책, 비싼 책과 싼 책, 발견된 책, 선물 받은 책, 사인된 책, 독점된 책, 빌린 책, 분실된 책, 훔친 책, 두고 간 책, 버린 책, 금지된 책, 학대받은 책, 불살라진 책

>> 전문성에 대하여 ··· 독본, 사전, 서평용 견본, 초판본, 낭독회용 견본, 책공예

>> 모여 있는 책들 ··· 공공 도서관, 개인 도서관( 비축, 신분, 수집, 보관), 서점, 헌책방, 이동 도서관, 책장

저자가 잃어버리게 될 것이라 예상하는 것들은 책에 대한 경험들이다. 저자는 엄청난 장서가이고 수집가이다. 그가 책을 모으며 느껴왔던 책에 대한 생각들은 책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느껴봤음직한 기분들이었다. 그가 만난 책들에 대한 인상을 담은 글들은 그가 가지고 있는 책들에 대한 찬미가이기도 하다. 이렇게 책이 소중한데 책이 사라진다면 얼마나 안타깝겠는가. 나로서는 무엇보다도 자신만의 서재를 갖고 책장을 갖고 책을 갖고 있을 수 있는 저자가 참 부러울 따름이었다.

나는 나만의 책장 나만의 서재를 갖는 것이 꿈이라고 표현해야 할 정도로 현실성이 낮다. 책을 많이 읽는 편이지만 빌려보거나 빌려보지 않는 책은 보관할 수가 없어서 최소한만 소유하고 나머지는 다양한 방식으로 처분한다. 때로는 그렇게 선별해야하는 것이 마음 아플 정도로 나도 책에 욕심이 많지만 어쩔 수없다.

대학에 가서야 도서관이라는 장소를 처음 가보았는데 그야말로 황홀경이었다. 그렇게 넓은 공간에 그렇게 많은 책들이 질서정연하게 있는 모습을 보니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었다. 학교를 다니는 내내 도서관은 나에게 가장 소중한 공간이었고 위안의 장소였다. 그래서 지금은 도서관사서들이 정말 부럽다. 서점주인도 부럽지만 매출에 대한 부담이 아무래도;;;

책을 볼때 나는 줄을 친다거나 글을 적는다거나 하지 않는다. 필요한 부분엔 포스트잇을 붙여 표시하고 책장도 구겨지지 않도록 조심한다. 그래서 내가 읽고 난 책은 거의 처음수준의 새책에 가깝다. 내 소유의 책인데 왜 그렇게 아껴가며 조심스럽게 읽는지 나도 내가 잘 이해가 안가지만 내게 책은 그만큼 늘 소중하다. 그래서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이 누군가에 의해 훼손된 것을 발견하면 그렇게 마음이 안좋을 수가 없다. 많이 읽혀서 닳은 것과 함부로 관리해서 훼손된 것은 엄연한 차이가 난다. 게다가 도서관 책인데 줄치고 메모하는 사람들은 이해할 수가 없다. 다 읽고 나면 반납하고 다시 볼것도 아니면서 왜 그러지? 화가 난다.

그렇다고 내가 새책만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헌책은 헌책 나름의 매력이 있다. 이미 헌책이라고 알고 구입했으므로 어느정도의 훼손은 이미 감안했기 때문이다. 이경우엔 책의 소유주였던 사람이 책을 읽으며 남긴 흔적들에 대해 나도 읽다가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되곤 한다. 그렇게 누군지 모를 타인과 같은 부분에서 공감을 하게 되면 반갑기까지 하다.

저자는 책을 수집하면서 경험한 일화가 아주 다양하지만 내 책장 하나 갖지 못한 처지의 나로서는 언감생심 이다. 좋아하는 작가, 의미가 있는 판본, 절판 되기엔 너무 아까운 책들등 수집하고 싶은 조건들은 많지만 선물받은 책들도 다 읽고 나면 다시 선물해야 할 판에 수집이라니... ㅠㅠ

그러고 보니 어렸을 적부터 나는 책선물을 종종 받았었다. 내 친구들이나 지인들은 생일이면 내게 늘 책을 선물했다. 왜였을까? 내가 그런 티를 냈던가?? 흐음... 내가 기억하는 내 모습보다 좀많이 내 주변엔 늘 책이 있었나 보다... 그나저나 그 책들은 다 어쨌을까... 아마도 이사를 거듭하며 나도 모르게 버려졌을 테지만... 지금도 문득 생각나는 책들이 있어 아쉽다.

한정된 공간에 책을 두어야 하다보니 왠만해선 책을 잘 버리지 않는 나로서도 책을 버릴때가 생기는데 얼마전에야 대학때 전공서적을 버리면서 책장사이에서 그림엽서 한장을 발견했었다. 어찌나 반갑던지 ㅎㅎ 잊고 있던 시간들이 그 엽서 한장으로 잠시나마 내게 행복감을 주었다. 책이란 이런 식으로도 기쁨을 주는 것인데...

오늘날 우리가 노동하는 동물로서 말을 포기했듯이 언젠가는 인쇄된 책을 실제로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된다 해도, 그것이 결코 우리가 좋은 텍스트 없이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런 상황은 상상할 수조차 없다. (p. 186)

책은 일차적으로 텍스트 전달 수단이다. 문자가 있기 전에도 구전으로 전해오는 텍스트들이 있었듯이 종이책이 없어진다 해도 의미있는 텍스트들은 다른 방식으로 전해질 것이다. 하지만 나는 텍스트 전달 수단으로서도 종이책이 좋다. 디지털북은 보기에 눈이 아프다는 신체적 어려움도 있지만, 인쇄된 책들은 저마다 텍스트 너머 다른 의미까지 전달해준다. 책의 크기, 재질, 색상, 인쇄형태, 촉감, 향기 등등 텍스트를 읽는 것에 더해 물질적인 종이책이 전해주는 이러한 것들은 텍스트만 전달해주는 전자책이 결코 알려줄 수 없는 것들이다. 어찌보면 인쇄된 책은 종합 예술품인 것이다.

"그것은 전주곡일 뿐, 책들을 불태우는 곳에서 결국에는 사람들도 불태울 것이다" (p. 112 - 하인리히 하이네)

잘못된 권력들은 늘 책들을 불태우고 지식을 독점하려 했다. 당연히 다음 수순은 사람들이었다. 텍스트가 적힌 물질로서 책이 불에 태워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던 시대에는 사람들의 현실도 눈으로 확인이 가능했다. 만약 대부분의 텍스트들이 전자화되고 눈에 직접적으로 실체로서 보이지 않게 된다면 권력의 실체도 권력이 해치는 사람도 눈에 안보이게 되는 것이 아닐까? 버튼 하나로 데이터를 날려버리듯이 버튼 하나로 사람들을 제거할 수 있게되지 않을까? 그것이 우리가 만드는 미래여서는 안되지 않을까?!

마차가 자동차가 되고 자동차가 무인이 되고 그러다 아직 이름지어지지 않은 다른 형태의 이동수단이 생겨날지라도 종이책은 늘 인간과 함께 였으면 좋겠다고 그럴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젖병이 달린 철사엄마보다 젖병이 없는 인형엄마에게 안겨있기를 더 좋아했던 아기침팬지 실험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텍스트는 그 지식의 유용성 자체와 함께 종이책이 주는 의미가 분명히 있다고 믿는다. 모든 것이 디지털화되고 가상화될지라도 사람사이의 포옹과 유대감이 없어지지 않을 것처럼 종이책이 주는 포근함 또한 영원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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