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린 사람들 창비세계문학 68
제임스 조이스 지음, 성은애 옮김 / 창비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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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현대소설의 문을 연 위대한 작가 제임스 조이스가 그려낸

음울하고도 매력적인 더블린의 초상

 

제임스 조이스(1882~1941) 는 아일랜드 태생으로 소설뿐만 아니라 음악, 미술 등 현대의 모든 예술 분야에 큰영향을 끼친 모더니즘 작가라고 한다. 그의 작품은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독자들에게도 난해하기로 정평이 나 있고, 대중들에게 큰 인기를 얻진 못했지만, 영문학 연구 분야에서는 필수코스라 할 만큼 활발히 회자되고 있다고 한다.


[더블린 사람들] 책에는 열다섯편의 단편이 실려있는데, 1904년에서 1907년 사이에 개별적으로 집필, 출간된 것을 모은 것으로 원래의 집필순서와 별개로 화자 혹은 주인공의 나이순으로 작품들이 배열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각각의 단편들임에도 화자가 바뀌는 장편으로 읽혀질 정도로 시간의 흐름이 자연스럽다.


[더블린 사람들] 의 작품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작가와 아일랜드에 대해 조금 알아두는 게 좋을 것 같다.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은 당시의 아일랜드 상황을 묘사하고 있기 때문에 아일랜드의 수도인 더블린에 대한 역사적 상식이 살짝 도움이 된다.


작가가 태어난 아일랜드는 영국이 아니다. 사실 나는 영국과 아일랜드을 구분하는 개념이 없었던 것 같다;;; 영국과 아일랜드와의 관계나 역사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했다. 영국이 연합국이라는 것도 몰랐던 것 같다. 영국하면 떠오르는 그 섬이 그냥 영국인줄 알았다. 하지만 영국은 브리튼 본토와 웨일스,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 4개지역으로 크게 나뉘는 연합형태의 국가다. 영국 옆 커다란 섬이 아일랜드인데 그 중 북쪽 부분만 영국이고 아래쪽 아일랜드는 엄연한 독립국이다. 아일랜드는 영국의 연합국이었으나 사실상 식민지취급을 받았고 끊임없는 갈등 끝에 1922년 독립했다. 식민지라고 해도 우리나라가 일본에게 착취당한 것 같은 식민지는 아니었으나, 아일랜드 출신에 대한 무시가 공공연히 이루어져서 나름 설움이 많이 쌓였던 관계라고 한다. 이 책속의 단편들이 쓰여진 시기는 아일랜드 독립전이라서 아일랜드의 수도인 더블린내에 퍼진 반영vs친영 감정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작가는 아일랜드 출신이면서도 평생을 해외를 떠돌며 살았고, 그가 떠돌던 시기의 해외는 대부분 전쟁상황이라서 그런지 조국에 대한 감정이 어느 한쪽으로 분명히 드러나진 않는다.


화자의 나이순으로 배열된 작품이다보니 첫 작품의 화자는 어린 소년이다. 당시의 교육은 종교기관이나 성직자들에 의해 주로 이루어졌던 것 같다. 소년을 가르쳐주던 신부의 장례식을 보는 소년의 시점인 <자매>,

엄격한 학교 수업을 땡땡이 치고 두 명의 소년이 일탈의 외출을 하는 <어떤 만남>,

사춘기의 소년이 짝사랑하는 소녀에 대한 마음이 보이는 <애러비>,

이제 막 여학교를 졸업한 소녀티가 남아 있는 아일랜드 처녀의 가족에 대한 책임감을 다룬 <이블린>,

대학교를 다니는 아일랜드 청년의 소외감을 다룬 <경주가 끝난 후>,

서른 안 팎의 건달청년의 불안함이 보이는 <두 건달>,

직장에서 자리잡아 갈때 하숙집 딸과의 결혼에 몰리는 남자의 이야기 <하숙집>,

한 가정의 가장이 겪는 어설픔에 대한 <구름 한점>,

가장으로서 지치고 알콜중독자가 되가는 <대응>, 친자식처럼 기른 양아들의 집에서 겪는 죽음의 그림자 <진흙>,

독신남의 사랑에 대한 오해 <가슴 아픈 사건>,

중년 남자들의 선거 이야기 <선거사무시리의 아이비 데이>,

딸의 공연비를 제대로 받아내려 노력하는 <어떤 어머니>, 은혼식까지 치룬 남편의 종교에 대한 <은총>,

노할머니자매가 연 크리스마스파티의 여흥과 추억속 첫사랑의 죽음에 대한 <죽은 사람들> 을 차례대로 읽다보면

소년이 자라서 첫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고 친구들과 어울리며 방황도 하다가 결혼도 하고 삶에 찌들어 알콜에 기대가는 남자가 보이기도 하고, 꿈이 있는 소녀였지만 가족의 옆을 지키고 아들딸을 억척스럽게 키워내고 가정을 잘 간수하며 음악을 즐기고 품위를 지키며 늙어가는 여자가 보이기도 한다.

작가가 그려내는 더블린 사람들의 모습은 대체로 무기력하고 의미없이 시간을 죽이고 겉모습에 보이는 품위를 따져가며 음악과 예술을 즐기는 사람들 같다. 특히 화자가 남자일때는 작가의 모습이 투영된 것 같은 느낌을 받는 부분이 많았다. 이어지지 않는 단편들임에도 비슷한 남자들이 자꾸 묘사되는 건 결국 작가 자기자신의 모습이 아닐까

<하숙집> 이라는 단편에서 하숙생과 딸과의 은밀한 관계를 눈치챈 엄마와 하숙생과 자신을 결혼시키려 하는 엄마의 생각을 눈치챈 딸의 생각을 묘사한 부분이 나는 작가가 자신의 조국 아일랜드를 생각하는 양가감정을 묘사한 것처럼 읽혀졌다.

 

그녀는 솔직하게 질문했고 또 폴리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물론 둘 다 어색하긴 했다. 그녀는 자기가 그 소석을 너무 대범하게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알고도 묵인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 싫어서 어색했고, 폴리는 그런 문제를 언급하는 것이 늘 자신을 어색하게 할 뿐 아니라, 순진하면서도 알 건 다 아는 자기가 엄마의 관용 뒤에 도사린 의도를 벌써 감지하고 있었다고 엄마가 생각하는 것을 바라지 않기 때문에도 어색해졌던 것이다.


더블린 에 대한 작가의 감정은 <구름 한점> 이라는 작품에서 가장 많이 느낄 수 있었다.

나름 안정적인 직장과 신혼생활에 갓난아기를 둔 챈들러는 런던에서 활동하다 잠시 고국을 방문한 친구를 만나러 가면서 생각한다.

 

성공하고 싶으면 떠나야 했다. 더블린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한걸음 한걸음 걸을 때마다 그는 런던에 더 가깝게, 자신의 맨숭맨숭하고 비예술적인 삶으로부터 점점 더 멀리 나아갔다...

하지만 기대를 품고 만난 런던에서 활동중인 기자 친구는 다른 말을 한다.

 

고국에 돌아오니까 굉장히 좋다. 정말이야. 다정하고 더러운 더블린에 발을 딛는 순간 훨씬 기분이 좋아졌어

자신을 런던으로 줄을 이어줄 친구는 쓸데없는 소리만 하다가 약속이 있다며 가버렸다. 챈들러는 생각한다.

 

자기 자신의 삶과 친구의 삶의 대비가 뼈저리게 느껴졌고, 그게 그에게는 부당하게 보였다. 갤러허는 출신이나 학력이 그보다 열등했다. 그는 기회만 주여진다면 자기 친구가 해낸 것보다, 혹은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나은 것, 겉만 번지르르한 기자 생활보다 더 고귀한 어떤 것을 해낼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무엇이 그를 가로막고 있는 것인가? 그의 안타까운 소심함! 그는 어떤 식으로든 자신을 정당화하고, 자신의 사내다움을 주장하고 싶었다. 그는 갤러허가 자신의 초대를 거절한 배경을 알 수 있었다. 갤러허는 선심 쓰듯 아일랜드를 한번 방문한 것과 마찬가지로, 그에게 우정을 은혜로 베푸는 거였다.


[더블린 사람들]을 읽으며 든 생각은, 영국의 식민지였다고는 하나 노예와 같은 착취를 당한 것은 아니고,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문화권을 가진 사람들인데 사는 처지의 차이로 인한, 다시말하면 아일랜드 사람들과 영국 사람들 사이의 심리는 번영에서 밀려난 도시와 중심의 자리를 차지하고 번영에 번영을 거듭하는 도시 사이에 느껴지는 위화감 같은게 아닐까 싶었다.


이 책에서 가장 길어서 단편 보다는 중편이라고 할 수 있는 <죽은 사람들> 에서 잘 나가는 중산층 가정의 가장 게이브리얼 하는 말은 꼭 작가가 하는 말 같았다.

 

새로운 세대가 우리들 한가운데서 자라나고 있습니다. 새로운 사상과 새로운 원칙에 따라 움직이는 세대죠. 이 세대는 이 새로운 사상의 열기에 대해 진지하고 열광적이며, 그들의 열정은 잘못된 방향으로 갈 때조차도 대체로는 진정성이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회의적인, 또 이렇게 표현해도 된다면, 사유로 고통받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따금씩 저는 이 새로운 세대가, 교육받은, 혹은 과잉교육을 받은 세대이지만, 그 이전 시대에 속했던 그러한 인간미, 환대, 다정한 해학 같은 자질들을 결여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고 저어됩니다. 오늘 저녁, 과거의 그 모든 위대했던 가수들의 이름을 들으면서, 고백하건대 저는 우리가 그때보다 덜 넉넉한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 시절들은 과장해서 말하지 않고도 넉넉한 시절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런 시절이 돌이킬 수 없이 가버렸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오늘 같은 모임에서 우리가 그런 시절에 대해 자부심과 애정을 갖고 여전히 이야기를 나누고, 지금은 죽고 없지만 세상이 그 이름을 선뜻 죽게 만들지는 않을 그런 훌륭한 사람들의 기억을 여전히 가슴에 간직할 것이라고 희망해봅시다.


작가가 이 작품을 쓸 당시 아일랜드는 수백년간 영국의 통치를 받아오고 있었고, 지속적인 차별로 가난에 허덕였는데, 저자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양질의 교육을 받고 외국생활을 하고 있는 젊은 청년이었다. 조선후기 실학파처럼 조선말 개화파처럼 일제치하초기 신흥사상가들처럼 조국을 사랑하지만 조국의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는 갈등이 짐작되었다.


작가가 묘사하는 무기력하면서도 아일랜드인으로서의 긍지를 잃지 않는 모습과 가난하면서도 여흥을 즐기는 모습과 끈끈한 가족애의 모습이 우리네 정서와 흡사하여 외국작품임에도 게대가 장편도 아닌 단편임에도 큰 거리감 없이 읽혀졌다. 그나이에 가졌을 법한 감정들도 공감되고 현실상황에 바탕을 둔 감정들도 백여년의 시간차가 느껴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죽은 사람들>이란 작품은 아일랜드 인으로서의 양가감정이 가장 많이 가장 잘 드러나고 있어서 여운이 긴 작품이었다. 작가가 봤을 때 더블린 사람들은 '죽은 사람들' 일까, 작가 자신이 아내의 추억속에 죽은 첫사랑처럼 '죽은 사람'일까, 죽은 사람은 한 명인데 왜 제목이 복수형일까...

장편과 달리 단편을 쓸 때는 클라이맥스에서 갑자기 뚝! 끝내야 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는데, 현대소설의 문을 연 작가라는 호칭에 걸맞게 그러한 작법이 두드러진 작품들이었다. 기존에 나왔던 작품들이지만 새롭게 번역해서 나온만큼 매끄러운 번역도 좋았고, 개인적으로 단편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 장편을 선호하는데, 한국작가들의 단편보다 더 공감이 잘되는 외국단편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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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미의 시방상담소 - 뭣 같은 세상, 대신 욕해드립니다
김수미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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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 이만치 위로 요만치 김수미표 고민 요리법

"말해봐, 뭔데"

 

 

내내 집에만 있고 무거운 분위기의 요즘 책 한권으로 이렇게 마음이 가벼워질 수도 있네 ㅎㅎ

김수미표 시원스런 고민상담 활약상을 모은 이 책은 일상적인 고민들에 대해 일상적일 수 있는 답변을 김수미식 표현으로 비일상적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재미가 있다.

책표지 날개에 국민 욕쟁이 할머니 라고 표현해 놓았던데, 정작 이 표현을 김수미는 좋아할까?

언젠가 욕쟁이할머니식당이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었다. 나는 당췌 이해할수가 없었다. 내돈내고 밥사먹으면서 굳이 XX야 쳐먹어라 소리듣고 먹는게 기분이 좋은가?? 나는 친절하고 상냥한 멘트가 좋지 그 어느 경우에도 욕먹고 기분좋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없다. 이런 식당에서의 욕쟁이할머니는 그냥 아무한테나 막 이유없이 욕을 하는 컨셉이었던것 같은데, 김수미표 욕은 그렇지 않았다.

티비예능에서 몇번 본적 있는데, 말을 좀 거칠다 싶게 시원스럽게 하는 거지 욕을 일상화 하는 욕쟁이는 아니었다. 욕을 할때는 욕을 할만한 상황이 있어서 욕을 하는 것이었다. 주변인식에 눈치가 보여 하고 싶어도 내뱉지 못하는 말을 김수미는 그저 자신있게 거침없이 내뱉을 뿐이었다. 이런 모습을 욕쟁이할머니라고 표현하는 것이 나는 왠지 비하하는 느낌이라서 별로다. 김수미표 욕은 욕이라기 보다는 거침없는 인간미 넘치는 말투 같은데 말이다.

어쨌든 이런 시원스런 말투의 71세 할머니가 다양한 고민들을 들으며 때로는 공감을 해주고 때로는 화를 내며 때로는 욕을 하는 상담해결들은 그 어떤 고민이건 마음을 가볍게 해주는 매력이 있었다. 가볍다고 해서 진지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그 누구의 그 어떤 고민에도 진심으로 대해주는 모습이 참 따듯해 보였다. 같은 대답을 해도 그 대답을 해주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듣는 사람의 마음은 달라진다. 김수미스럽다는 형용사가 가능할 정도의 개성을 가진 김수미이기에 그걸 아는 상담자들이 위안을 얻게 된다.

분명 고민상담이 맞는데 자꾸 키득키득 웃으며 읽게 되서 왜 그런지 사례 하나를 옮겨본다.

'저는 집에만 들어가면 왜 그렇게 씻기 귀찮을까요? 저녁 먹고 씻자, 과제 하고 씻자, 드라마 한 편 보고 씻자, 하다가 12시 넘으면 '아 몰라 내일 아침에 씻지 뭐'하고 이불 덮고 자버려요. 그리고 다음날 아침, 개기름 낀 피부를 보면서 후회합니다. 이 귀차니즘 어떻게 고쳐요?'

귤껍질 위에 파운데이션 한번 발라 봐. 어떻게 되나. 보이냐? 그게 네 미래다. 나는 나이가 칠십한 개인데 집에 들어가자마자 제일 먼저 하는 게 샤워야. 싹 씻고 화장한 거 뽀독뽀독 깨끗하게 지워내. 그래서 피부 건강 나이 테스트하잖아? 서른하나라고 나와. 이렇게 부지런해도 조금씩 망가지는 게 피부야. 근데 넌 뭐하냐. 일부러 피부를 썩히고 있어. 백날 말해서 뭐 해. 너 그냥 화장 지우지 마. 귀찮은데 왜 지워. 그렇게 한 3년만 더 하면 얼굴이 아주 우둘투둘 귤껄질처럼 될 거다. 땀구멍 넓어져서 아주 100원만 해질 거다. 무서우면 집에 들어갈때 신발 벗자마자 욕실로 바로 들어가. 물 틀고 세수헤! (p. 27~28)

 

소오~~~~름!!!

이 상담자분 바로 귀차니즘 고쳤을 것 같다. ㅋㅋㅋ

읽으면서 보니 칠십한살 이라는 나이가 되는 동안 인생굴곡 꽤 심하게 겪으신 것 같다. 하지만 중요한건 늘 변치 않고 부지런히 자기일을 해오셨다는 거다. 그리고 자신이 그렇게 살아왔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있기에 자신감을 갖고 말을 한다. 말에는 책임이 뒤따르는 법이다. 김수미의 말은 자신이 책임질 수 있는 말이기에 그게 설령 욕일지라도 거침없이 할 수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얼핏 생각해보면 본업은 배우인데, '전원일기' 의 일용엄니 말고 떠오르는 캐릭터가 없다. 캐스팅 당시 할머니의 나이도 아니었다는데 줄곧 할머니로만 살아온 인생이다. 그리고 지금은 완전한 할머니이다. 배우로서보다는 요리로 이름을 날렸고 지금은 누구도 할 수 없는 욕쟁이캐릭터로 종횡무진 활약중이시다. 그런데 배우로서 그러한 과정이 마냥 좋기만 했을까?

어쨌든 그녀는 여전히 예쁘다는 칭찬을 가장 좋아하고 여전히 새벽5시에 일어나 하루일과를 시작하는 여전히 당찬 여자 김수미다.

그리고 칠십한해를 만들어온 그녀의 노력이 쌓이고 쌓여 젊었을 때보다 점점 더 빛나고 이제 정말 스타가 되신것 같아서 멋지다.

'김수미의 시방상담소'에 내고민은 없었지만 누군가의 고민은 분명 이 책속의 고민요리법으로 마음의 짐을 조금은 가벼이 할 수 있을 것 같다.

열심히 살면 언젠가 뭐가 되도 된다! 라고 나또한 믿는다. 그래서 오늘도 열심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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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분의 일을 냅니다 - 사장이 열 명인 을지로 와인 바 '십분의일'의 유쾌한 업무 일지
이현우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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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게 내고, 다 함께 벌어, 똑같이 나눈다.

이렇게 참신한 방법으로 먹고사는 사람도 있다니...

때로는 녹록지 않지만 꽤 잘 살아가고 있는

'월급 받는 자영업자'의 이야기

 

 

누군가의 에세이를 이렇게 웃어가며 읽어본 적이 있던가?! 유머책도 아닌데 초반부터 빵빵 터지는 재치코드에 나도 모르게 계속 키득거리며 읽게 되는 책이었다. 사장이 열 명인 을지로 와인 바 '십분의 일'의 유쾌한 업무 일지 라는 이 책은 청년들의 발랄함과 새로운 공존의 인간미가 넘쳐흐르고 있었다.

다행히 우리는 운이 좋았다. 우리의 아지트 같았던 '십분의 일'은 점점 여러 손님들의 아지트가 되었고 몇 개월이 지나자 본전치기를 넘어섰다. 우리는 여전히 여럿이서 함께 운영중이다. 그렇다. 우리는 성공했다.

로 끝내고 싶은데 그러기엔 지금까지 이 안에서 벌어진 구질구질한 일들이 너무 많다. 한 사람이 가게를 해도 매일매일 에피소드가 쌓일 텐데, 열 명이서 가게를 운영하고 있으니 오죽할까. 3년 동안 매일같이 열 명이 동시에 말하는 카톡방을 들여다봤다. 한달에 한번씩은 열 명이 주인인 가게에 모여, 모두가 1인1표를 행사하는 민주적인 회의를 한다. 그걸 대략 30번쯤 했다. 이제 민주주의고 뭐고, 다 지겹다. 가끔은 민주주의가 정말 인간에게 적합한 제도가 맞는지 진지하게 의심한다. 인류 역사에서 왜 그렇게 많은 독재자가 등장했는지 조금은 이해된다. 총회를 한답시고 둘러앉아 메뉴에 올리브를 추가하냐 마냐를 두고 1시간 동안 지지고 볶고 있는 멤버들을 보고 있으면 올리브기름이라도 끼얹고 가게를 통째로 태워버리고 싶은 충동마저 느낀다. 목재여서 활활 잘 탈 게 분명하다.

한편으로 난 멤버들을 사랑한다. 일을 하다 문제가 생겼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우리 멤버들이다. 가게에 사고가 나면 가장 먼저 달려오는 것 역시 우리 멤버들이다. 과연 이들이 없었다면 내가 십분의 일을 운영하고 있었을까. 그럴리 없다. 애초에 장사 같은 건 별로 생각해본적 없었으니까. (p. 6~7)

 

프롤로그에서부터 느껴지는 저자의 오르락내리락은 끝까지 계속 삶의 희노애락을 와인바운영을 통해 느끼게 해준다. 그것도 아주 유쾌하게 ㅎㅎ

저자는 드라마 막내PD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다들 부러워할 것 같은 그 직장에서 막내PD의 생활은 녹록지 않았는데 무엇보다 저자와는 맞지 않았던 것 같다. 1년여만에 그만두고 인도로 여행을 떠났다. 그런데 저자는 인도여행을 다녀와서 뭔가 깨달았다거나 힐링했다거나 다시 시작할 에너지를 충전했다거나 등등의 식상한 결론을 얻지 않았다.

"여행은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못했다. 돌아왔을 때, 나는 진짜 백수가 되어 있었다"

이게 리얼 아닐까? 퇴사하고 여행 몇달 다녀온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는 현실. 그저 불안한 백수라는 것.

이런 미화하지 않는 진심이, 결과을 알고 시작하는 책에 대한 부러움을 상쇄시키고 있었다. 잘 나가는 와인바 사장이 된 것에 대한 부러움에 왠지 지고 시작하는 기분으로 읽게 되는 책이지만 읽다보면 그럼그렇지 하는 묘한 안도감이랄까 ㅎㅎㅎ

<최후의 제국>은 아누타 섬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집중적으로 다뤘다. 이들이 지니고 있는 사랑, 협동, 공생 등을 모두 아우른 단어가 바로 '아로파' 다. (하와이로 넘어가면서 아예 인사말이 됐다. 알로하~)

"우리 아누타 섬처럼 다 같이 버는데 수익은 똑같이 나누는 마을 하나 만들면 어떨까? 마을을 만들어서 그 안에서는 돈에 구애받지 않고 각자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거야!" (p. 37)

 

저자는 학생시절부터 이런저런 모임을 자주 만들고 활동하던 사람이었다고 한다. 드라마작가가 되겠다고 글을 써보려 했지만 잘 써지지 않았고 다시 들어간 회사에서 다시 퇴사를 생각하던 즈음 학생때 했던 스터디멤버들을 만나 술한잔 하던 자리에서 '아로파' 가 등장했다.

2013년쯤 티비에서 <최후의 제국> 이라는 다큐를 했었다고 한다. 이 작품은 자본주의의 한계를 짚고 그 이후의 대안 경제를 모색하는 내용이었는데, 그중 남태평양에 살고 있는 한 부족의 이야기가 중심이었고 그 부족이 아누타섬사람들 이었다.

그렇게 처음 7명이 모였고, 저자가 퇴사를 하면서 구체적으로 가게장소를 물색하게 되고 어떤 가게를 어떤식으로 운영해나갈지 논의하게 된다.

"각자 월급의 10%를 월 회비로 내자"

저자는 백수이지만 다른 멤버들은 각자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 무언가를 시작하려면 출자금이 필요했고 규칙이 필요했다.

초기비용으로 천만원씩을 내고 운영비로 각자 소득의 10%를 월회비로 내기로 했다. 이 월회비 규칙은 여전히 지켜지고 있다고 한다. 중간중간 멤버가 열명이 되기도 하고 9명이 되기도 하고 새멤버가 들어오기도 했지만, 여전히 각자의 소득의 10%를 회비로 낸다. 그리고 영업이익은 똑같이 1/n 으로 나눠 갖는다.

저자는 솔직하게 자신이 당시 백수가 아니었다면 자신의 월급 10%를 회비로 내는 모임에 선뜻 참여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인정한다. 하지만 다행히?! 저자는 백수였고 가게운영을 맡게 되면서 회비에서 월급을 받는 것으로 백수탈출을 함과 동시에 10%를 내는 공동사장이 되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난덕이라고 말하지만, 그렇게 시작한 가게를 3년째 운영중인 저자도 남다른 사람임은 분명해보인다.

우리는 각자 취향도 이곳에서 하고 싶은 것도 모두 달랐다. 하지만 일상에서 벗어나 무언가 새로운 일에 뛰어들고 싶다는 욕구는 같았다. 그런 공통점이 우리를 하나로 묶어줬다. 한여름 뜨거웠던 그 자리는 우리가 단순히 가게를 만들기 위한, 창업을 위한 모임이 아니라는 걸 되새겨주었다. (p. 102)

창업을 위한 시작이 아니었다. 돈을 벌자가 먼저가 아니었다. 정안되면 6개월만 일단 운영해보고 접자는 합의로 시작한 가게였다.

그저 마음맞는 사람끼리 모여 함께 무언가를 해보자가 시작이었다. 결과가 같아보일지라도 다른 시작은 지속적인 운영에 분명 다른 메시지를 전달할 것이다.

발품팔아 가게자리를 찾아 손수 인테리어 공사를 하고 첫손님이 왔을때 '여길 어떻게 알고왔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설픈 사장이었지만, 어느덧 2018년 봄 두번째 가게 '빈집:비어있는 집' 을 오픈하고, 2019년 보엔 세번째 와인바 '밑술' 을 같은해 여름엔 네번째 브랜드인 게스트 하우스 '아무렴 제주' 를 만들었다. 그리고 열심히 운영하고 입소문을 타며 성업중이고 점점 더 확장해가며 멤버 각자의 꿈을 이룰 수 있는 공동체 '아로파' 가 되길 꿈꾸고 있다.

개인주의 시대라고 하지만 찾아보면 다양한 형태의 공동체가 탄생하고 있는 것이 또한 이시대의 새로운 모습이지 않을까 싶다. 그 새로운 도전이 이렇게 활기찬 결과를 맺는 것을 보니 내일도 아닌데 뿌듯하고 그렇게 함께하고 있는 멤버들이 기특해보인다. 앞으로도 '청년 아로파'의 도전이 계속되길 응원해본다.

요즘도 많은 분들이 나에게 묻는다. 정말 열 명이서 계속 같하세요? 네, 여전히 같이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대답할 수 있어 감사할 따름이다. (p. 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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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나도 식물이 알고 싶었어 - 정원과 화분을 가꾸는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식물 이야기
안드레아스 바를라게 지음, 류동수 옮김 / 애플북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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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과 화분을 가꾸는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식물 이야기

사소하지만 절대적인 식물에 대한 상식 82

 

 

번역본은 한국어판 제목이 잘못 붙여진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 책은 한국어판 제목 자체가 번역여부와 관계없이 일단 마음에 들었다.

Woher wissen Wurzeln, wo unten ist? Wissenswertes und Kurioses rund um den Garten 이라는 독일어를 검색해보니 '뿌리는 아래의 위치를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정원 주변의 흥미로운 사실과 호기심' 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즉, 이 책은 정원식물에 대한 책이고 표지의 제목 옆 부제로 잘 설명되어지고 있다.

이 책이 또 마음에 드는 이유는 예쁘다는 것이다. 내용에 어울리는 식물그림들이 세밀화로 첨부되어 있다. 사진이 아니라 세밀화라서 더 부드럽게 예쁘다.

저자는 독일의 원예학자, 식물학자이자 저술가, 강연가로 활동중이라고 한다. 본문 내용 중간중간 본인을 정원사로 뿌듯해하며 표현하는 부분들이 친근하면서도 식물을 사랑하는 마음이 전해지면서 따듯하게 읽혀지기도 했다.

식물에 대한 지식과 기본적인 정원 관련 지식을 이 책에 간결하게 정리해보았다. 자료를 뒤적거리며 조사하는 일이 이렇게 큰 기쁨을 안겨준 것도 흔치 않았다. 각 주제는 묻고 다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내가 다소 임의로 선별한 것이라 결코 완벽하지 않으며, 나중에 마음껏 확장해도 된다. 이 책을 본 뒤에 뭔가에 호기심을 느껴 식물과 정원 관련 연구에 한번 제대로 몰두해보겠다는 마음이 생갈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단언컨데 여러분은 나와 비슷한 길을 걸어 식물, 정원 그리고 자연에 대한 매혹을 다시는 떨쳐내지 못하리라! (p. 6)

저자는 프롤로그에서부터 식물과 정원에 대한 애정을 뿜뿜 드러낸다. 미국이나 유럽은 땅덩어리가 넓어서 집집마다 정원이 있는 것들을 자주 볼수 있지만 사실 우리나라에 정원을 갖고 있는 집은 흔치 않다. 하지만 아파트에 살더라도 화분 한두개쯤은 들이게 되는 법, 정원이 없어도 이 책이 알려주는 상식들은 은근 유익할 것이다. 무엇보다 평소 식물에 대한 경외감을 갖고 있던 나로서는 여러모로 배울점이 많은 책이었다.

식물은 나무껍질이나 바깥쪽 세포들도 성질이 바뀌어 뿌리를 형성할 수 있다. 그 세포들은 어린 시절의 유연성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그게 종을 유지하는 데 여러 면에서 유리하기 때문이다. (p. 21)

동물은 고등하게 발달해 있을수록 세포 하나하나가 그만큼 더 특화되어 있다고 한다. 다시말해 세포의 성질이 거의 정해져있다는 말이다. 다리가 될 세포는 다리가 되고 팔이 될 세포는 팔이 된다. 하지만 식물은 환경에 따라 유연하게 변형할 수 있다. 줄기를 만들던 세포가 뿌리를 만들수도 있고 땅속에 있다가 땅위로 나오게 되는 순간 새싹을 틔워낼 수도 있다. 식물은 뇌가 없다. 하지만 식물은 온몸이 뇌인것 같다. 역시 식물은 경이롭다.

나무 한 그루가 분해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릴수록 숲의 여러 식구들은 거기서 더 많은 자기 몫을 챙길 수 있으므로, 이 과정은 생태계를 위해서 더 값진 시간이 된다. 어떤 존재 하나가 와서 그 모든 것을 이른바 한입에 다 먹어치워 버리지만 않는다면, 자연이라는 무대의 수많은 등장인물은 이 먹이사슬에서 배제될 일이 없다. 그러므로 낡은 책장을 땔감으로 써버리고 새 책장을 사기에 앞서, 원목으로 된 그 오래된 책장을 사포질해 새로 칠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은지 고민해볼 가치가 있을 것이다. (p. 31)

식물관련 책이므로 당연히 자연친화적 태도일 수밖에 없다. 환경을 생각하면 인간은 정말 사악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자연에서 모든 것을 한입에 다 먹어치워버리는 존재는 오직 인간뿐이므로.

현존하는 최장수 나무는 캘리포니아에 있는 소나무속의 일종인 브리슬콘소나무인데, 그 나이가 5,066세로 밝혀졌다고 한다. 이 밖에도 재미있거나 알아두면 유용할 것 같은 자료들도 잘 정리되어져 나온다. 그리고 항상 헤깔리던 건데, 과일과 채소는 명료하게 구분할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저자는 말한다. 명확히 구분하려 하기보다 그냥 맛있게 먹으라고 ㅎㅎ

어디가 위고 어디가 아래인지 아는 것은 식물에게 목숨이 달린 중요한 일이다. 그걸 알아야 뿌리 시스템은 온전히 형성할 수 있다. 뿌리는 그 세포 속에 묵직한 것, 소위 평형석이란 걸 갖고 있다. 이것은 일종의 전분 알갱이로,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의 세포액보다 더 무겁다. 이 알갱이는 지구 중심을 향하는 중력의 법칙에 따라 방향을 잡는다. 평형석 덕분에 식물은 지상에서 성장하는 한 어느 방향에서 빛이 오는지, 또 어느 방향에서 물과 지지물 및 영양분을 얻을 수 있는지 '알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식물이 빛이라는 자극을 전혀 얻지 못할 때에도 마찬가지다. (p. 38)

 

평형석이라고 부르는 것이었구나... 식물은 빛을 향해 가는 것은 육안으로 확인 가능하지만 빛이 없는 땅속에서 뿌리가 길을 찾아나가는 것은 평형석 덕분이었다. 중력이 없는 우주에서 실험을 해보면 싹이 트는 식물은 모든 방향으로 자라난다고 한다. 평형석이 뚜렷한 방향을 잡지 못해 사방으로 뿌리를 뻗는 다는 것이다. 그러다가도 지구에 도착하면 뿌리는 몇 시간내로 방향을 잡는다고 하니 역시 식물은 대단하다. 참고로 평형석은 동물과 인간도 갖고 있고 이로인해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이런 면에서 볼때 식물학의 가장 유명한 오류는 장미다. 장미는 가시를 지니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대다수 장미가 지니고 있는 것은 바늘이다. (p. 67)

식물에서 가시라 함은 목질부 싹의 심이 웃자라 문들어진 것이라 말하자면 작은 곁순과 같은데 이것은 잎과 꽃이 되는 게 아니라 끝이 뾰족하게 된 것이고, 바늘은 목질부 싹의 껍질이 웃자란 것이라고 한다. 가시는 목질부에서 새싹 하나를 완전히 뜯어내는 일과 같아서 잘 제거가 되지 않는 반면 바늘은 훨씬 쉽게 꺽인다고 한다. 장미가시를 똑 떼면 잘 떨어지지 않나. 가시가 아니라 바늘이라서 였던 것이다! 동화속 등장하는 가시장미는 바늘장미로 바꿔 불러야 할 지도 모르겠다. ㅎ

과일나무는 실제로 낮 시간의 길이를 계산할 수 있다. 빛의 총량은 특정 단백질을 통해 특정된다. 이 단백질은 빛이 작용하면 형성되고 어두울때는 분해된다. 그리고 그 양이 충분하면 기온이 충분히 따뜻하다는 조건이 갖추어졌을 때 꽃을 벌어지게 한다. (p. 82)

식물은 알면 알수록 굉장히 체계적인 자동화 시스템 같다. 하지만 인간이 만들어낸 날씨의 오류로 인해 식물의 시스템은 오류를 일으키곤 한다. 겨울에 피어난 봄꽃을 보면 왠지 짠하다.;;;

생명체로 북적거리는 자연은 윤리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생존의 법칙만 따를 뿐이다. (p. 102)

생태계에 인간윤리의 잣대를 들이댈 수는 없다. 그건 굉장히 부자연스러운 생각이다. 우리는 자연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뿐 판단할 수는 없다.

관상용으로 들어온, 늦은 시기에 아주 풍성하게 꽃을 피우는 품종들이 씨앗을 너무 빨리 형성하는 것은 문제가 된다. 이미 수백만년 전부터 이곳에 토박이로 살아온 품종들을 몰아내는 게 문제다. 생태계에는 이렇게 밀려나는 식물들만이 아니라 그 식물들에 특화된 가루받이 곤충들 그리고 그 식물을 먹이로 삼는 적들도 함께 살아가고 있다. 특히 가루받이 곤충들은 새로 이주해온 식물 품종들과는 관계를 맺지 않으려 하고 맺지도 못한다. 생태계를 훼방 놓지 않으려면 모든 의식있는 정원사가 나서서 이런 외래종 식물들의 씨앗이 성숙하지 못하도록 해야하며, 진 꽃은 지체하지 말고 잘라주어야 한다. '제대로 된' 정원사는 이런 식으로 환경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p. 110,111)

'제대로 된'정원사인 저자는 토박이 품종을 지키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읽으면서 나도 공감했다. 생태계의 교란은 식물계에서도 동물계에서도 외래종에 의해 수시로 일어날 위험성이 있다. 동물계에서의 교란은 눈에 보이므로 심각함이 쉽게 인지되지만 더 위험함 것은 어쩌면 보이지 않는 식물계에서의 교란인것 같다. 토종식물계가 흔들리면 토종곤충계과 토종동물계도 흔들린다. 그리고 그때가서야 인간이 알게 되는 것이다.

잡초란 특정 장소에서 자라는 식물로, 그 땅의 소유자인 인간이 결코 원하지 않는 존재다. 엄밀히 말하면 아름답기 그지없는 장미도 옥수수밭에서는 자라면 잡초다. (p. 112)

잡초란 개념이 이렇게 상대적이었는지 새삼스러웠다. 그리고 잡초라는 명칭이 얼마나 인간중심적인 것이었는지 새삼 깨달았다. 독과 향기에 대한 설명에서도 그랬다. 인간에겐 독이지만 새에겐 먹이였고 인간에겐 향기이지만 곤충에겐 독일 수 있었다. 식물을 알아갈수록 인간이 참 부끄러워진다.

아무튼 성가신 잡초들은 우리가 좋아하는 꽃들과 채소들을 무자비하게 뒤덮는데. 그래서 우리는 대응조치를 취한다. 더 편한수단, 예컨대 화학약품을 만드는 공장에서 나온 제초제 같은 것을 쓰면 잡초 제거외의 생태계 파괴라는 비싼 값을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오해 마시라. 김매기는 내가 좋아하는 정원일이 아니다. 그러나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다. 그래서 그렇게 몸을 구부려 김을 매는 동안 나는 항상 이렇게 생각한다. '어머니 대지는 나의 여신이다. 그 여신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나는 이렇게 깊이 머리 숙여 절하지 않을 수 없다' (p. 115)

농사에 대해서는 제초제라던가 하는 화학제 사용을 논외로 두고 적어도 정원이나 화분에만큼은 사용을 하지 않아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농사에 사용되는 제초제에 대해서는... <침묵의 봄> 책에서 읽었던 사항들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것 같아 다시한번 마음이 무거워진다...

장미 꽃다발에서 향기를 누리고 싶다면 싱싱한 모양새는 포기하고, 꽃병에 꽂아두면 꽃잎이 금방 시드는 품종을 구해야 할 것이다. (p. 121)

꽃다발로 가장 선호하는 장미꽃다발! 이 꽃다발 속 장미는 개량 품종이고 개량품종은 향기가 없다고 한다. 향기는 없으나 오래 싱싱하도록 개량하고 시들지 말라고 꽃잎에 왁스까지 뿌린다고 한다. 시들줄 모르는 장미에 대한 요구가 많아질수록 장미향기는 추억이 된다. 그러고보니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장미꽃다발에 코를 묻고 향기를 음미하는 모습도 연기?! 갑자기 꽃집에 가서 장미에 코를 대보고 싶다.ㅎㅎ

오늘날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최고급 난초로 손꼽히는 품종 하나도 대량 생산품이 되어버렸다. 한때 나도풍란은 '여왕급' 난초로서 경이와 찬탄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오늘, 어떤 생각없는 화훼 전문가가 내뱉은 말 한마디가 귀에 쟁쟁하다. "바라건대 다시는 따분하기 짝이 없는 나도풍란으로 장식할 일이 없기를" 서글프지 않은가? (p. 147,148)

서양에서 난은 희귀품종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비싼값에 들여오고 죽으면 또 들여오고 했었는데, 대량복제가 가능해지면서 식상한 식물이 되어버렸다고 한다. 관상용이라는 목적으로 어느정도까지 식물의 교란을 허용해야 할지 갑자기 궁금해진다. 한때 유럽주식시장을 점령했던 튤립에서 배울수 있었던 것처럼 식물의 희귀성도 돈으로 가치를 매겨 정하는 것의 최종피해자는 인간 아닐까.

앞서 언급했다시피, 원예식물은 원예식물로 머물러야 하며 통제 없이 자연계로 들어가서는 안된다. 즉 자체적으로 씨앗이 퍼지거나 기는줄기로 증식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이는 근심을 정원 담장 너머로 퍼뜨리는 일이 될 것이다. (p. 172)

정원식물은 정원안에서만 잘 가꾸자! 자연을 존중하고 환경을 보호하는 것은 일단 내집정원 내집화분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는 일임을 이 책을 통해 좀더 진지하게 느낄 수 있었다.

사소하다고도 할 수 있지만 기초적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저자가 알려주는 82가지 식물상식들은 식물에 대한 소중함을 각성하는데 도움되는 좋은 조언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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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온도 - 얼어붙은 일상을 깨우는 매혹적인 일침
이덕무 지음, 한정주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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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붙은 일상을 깨우는 이덕무의 매혹적인 일침

그 누구와도 닮지 않은 동양 최고의 문장가의 여덟 가지 비결

 

 

저자는 자칭 이덕무의 덕후라고 한다. 고전연구가로서 다수의 책을 펴냈으나 특히 이덕무에 관한 책을 여러권 냈다. 그리고 이덕무 마니아를 자처하는 저자의 마무리 덕질은 이덕무 평전이 될 것이라 다짐하며 책을 시작한다.

이덕무(1741~1793) 는 영·정조 시대의 인믈로 북학파이자 백탑파 였다. 시인이자 에세이스트?!로 많은 양의 글을 써 남겼고, '책만 읽는 바보=간서치' 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선비이기도 하다.

나는 '간서치' 라는 명칭이 전부터 마음에 들었었다. 안소영 작가의 <책만 읽는 바보> 라는 책을 읽고 이덕무와 그의 벗들에게 친근감이 느껴져서 더 알고 싶은 인물이기도 했다. 이덕무에 대해서도 알 수 있을 것 같고 이덕무의 시에 대해서도 알 수 있을 것 같은 이 책에 대한 기대가 컸다. 그런데...

이 책을 무어라고 해야 할까... 이덕무 시론을 만들고 싶은 찬미모음 이라고 해야 하려나...

100여편의 이덕무의 시를 싣고 있는데 시 자체를 해설해주는 글은 한 편도 없다.

이덕무의 시를 써놓고 이덕무의 시가 어떤점이 훌륭한지 얼마나 훌륭한지 칭찬하는 것에 몰두하여 시 자체에 대한 감흥은 느낄 수가 없었다.

이덕무의 시를 써놓고 시란 어떠해야 하는지 시어는 어떠해야 하는지 따라서 이덕무가 얼마나 대단한지 늘어놓지만, 시 자체를 잘 모르겠으니 공감하긴 어려웠다.

이덕무의 시를 써놓고 당시의 벗들과의 교류에 대해 이야기하고 이덕무의 씨를 써놓고 중국학자들의 평이 얼마나 좋았는지 자랑하고 이덕무의 시를 써놓고 감탄에감탄을 거듭하는 글을 읽다보면 이덕무의 시도 이덕무 라는 인물 자체도 오히려 잘 모르겠다.

 

 

 

 

예를 들어 위의 사진에서 보듯이, '길을 가다가' 라는 이덕무의 시 자체에 대한 설명 없이 갑자기 시의 색깔을 찾고 그것을 바탕으로 이덕무의 시가 아름다움의 극치라는 결론을 내리는 저자의 글에 나만 공감을 못하는 걸까? 책속의 모든 글이 이런식이었다. 나는 이덕무의 시 자체를 제대로 느끼고 싶어 이 책을 읽었는데, 저자는 시 자체에 대한 설명은 하지 않는다.;;;

교과서처럼 밑줄 쫙 그어가며 이 단어는 무슨 뜻이고 이 구절은 어떤 의미이며 이 문장은 어떤 음율이다 라고 설명해달라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시 하나하나마다 그 시의 배경이나 그 시가 쓰여진 이덕무의 상황이나 그시에 깃들여진 이덕무의 마음이나 뭐 그런 해석을 해줬어야 하는것 아닐까?

시 한편도 아니고 때로는 이덕무의 시와 이덕무가 옮긴 벗들의 시와 이덕무가 좋아했던 중국시와 이덕무에 대해 쓴 벗들의 글까지 한번에 여러개를 주르륵 인용한 부분이 많은데, 이런 부분을 읽고 개인적으로는 약간 뜬금없게 느껴지는 저자의 예찬론을 읽다보면 내가 지금 어떤 글을 읽고 있는건지 모르겠다는 생각뿐이다.

저자가 이덕무의 덕후인 것은 알겠으나, 이덕무를 정말 제대로 알리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면 개인적인 감상을 바탕으로 한 찬양에 그칠 것이 아니라

이덕무의 작품 하나하나 최선을 다해 분석하고 이해하고 자료를 뒷받침해서 독자에게 이덕무의 가치와 이덕무 시의 가치를 공감가도록 풀이해줬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크다. 현대시라면 개인적 감흥에 따라 해석하기 나름일 수 있지만, 조선시대의 시인데 아무래도 배경지식이 좀 필요할 것 같은데 그 당시의 시를 온전히 감상할 수 있는 팁을 얻을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다시 생각해도 여전히 너무 아쉽다...

나의 시적 능력이 부족하여 저자의 역할을 크게 기대하고 읽은 책이었지만 내 예상과 다르게 흘러간 내용이었는지라 나중에 나에게 시심이 충만해졌을때 저자의 감상은 패스하고 이덕무의 시 자체만 차분히 다시 읽어봐야 겠다. 조선시대 책덕후 이덕무의 시를 내가 제대로 해석할 수 있을런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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