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하의 반격 - 이미 시작한 인류 재앙의 현장
비에른 로아르 바스네스 지음, 심진하 옮김 / 유아이북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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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시작한 인류 재앙의 현장

인간만 모르는 운명의 시계가 빨라진다

 

 

표지에 커다란 빙하의 사진이 인상적이다. '빙산의 일각' 을 생각나게 한다.

빙하가 녹고 있다고 인류 재앙이 시작됐다고 하는 표지의 문구들과 빙하의 사진이 어울려 지구온난화로 인한 빙하문제를 거론하는 책인가 예상했었다. 빙하의 반격을 액면그대로 빙하의 녹음으로 인한 인류재양으로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뜻밖의 내용들이 나의 식상한 예상들을 뒤엎었다.

저자는 '노르웨이의 빌 브라이슨'으로 불릴만큼 노르웨이 사람들에게 친숙한 연구자이자 저널리스트라고 한다.

노르웨이는 지도의 위치상 빙하와 겨울과 친숙한 나라이다. 그만큼 더 잘 알고 더 깊이 체험하고 있을 것이었다.

1년 내내 눈이 내리지 않고 온도가 0도 가까이 떨어지지도 않는 위도상 남쪽 지역으로 처음으로 가게 돼서야, 나는 눈, 얼음 혹은 영구동토의 형태로 얼어있는 지구의 부분인, 빙권을 재발견하게 되었다. 인구 밀도가 높고 태양이 작렬하는 인도 북부와 방글라데시의 갠지스 고원에서 40도에 가까운 온도에서 땀에 흠뻑 젖게 돼서야 나는 얼마나 빙권이 중요한지를 알게 되었다. 1년 중 가장 무덥고 건조한 시기 동안 이 지역의 사람들을 생존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렇다, 그를이 갠지스 고원에서는 보이지도 않았을 바로 저 멀리 히말라야 높은 곳에 있는 산 속 얼음과 눈이었다. 몬순이 오기 전 몇 달 동안 서서히 메말라가는 강들을 호우가 채워주지 못할 때, 지구의 지붕에서 녹아 흐르는 눈과 빙하가 강이 완전히 메말라 갈라지지 않도록 돌봐주고 있었다. (p. 17)

빙하의 곁에서 일년의 반이상이 겨울인 곳에서 사는 저자가 눈도 내리지 않는 일년의 반이상이 여름인 나라에 가서야 새삼스럽게 빙권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다, 사람은 다 자기가 살고 있는 곳 자기가 아는 것 안에서 생각할 수밖에 없는 동물이다. 다른 생각을 하려면 다른 곳에 가서 다른 사실을 알아야 한다. 더운 나라에는 비가 많이 내린다. 우기다. 하지만 그 다음은 건기다. 그 많던 빗물은 다 어디로 갔을까? 사람들은 대부분 빗물이 강물이 되어 인간에게 필요한 물을 대준다고 생각하지만, 아니었다. 사람들의 생존에 직결된 물을 제공해 주는 것은 얼음과 눈과 빙하였다.

빙권이 기후에 그렇게나 중요한 이유는 빙권이 하얀색이기 때문인데 라틴어로는 알베도라고 한다. 알베도라는 용어는 태양빛이 지표면에서 얼마나 반사되는지를 나타내는 비율이다. 태양으로부터복사된 에너지는 파장 길이, 지표면의 특징, 어떤 각도로 지표면에서 반사되는지에 따라 달려있따. 지표면에서 반사되는 태양복사에너지의 양은 온도에 큰 영향을 미친다. (p. 36)

알베도 효과는 얼마나 중요한 걸까? 오늘날 지귀의 평균온도는 섭씨15도 정도이다. 계산식에 의하면 만약 지구가 완전히 바다로만 덮여 있다면 알베도는 0.06으로 굉장히 낮을 것으로 본다. 그렇다면 지구의 평균온도는 27도 정도가 될 것이다. 이렇게 지구의 온도가 현재보다 12도 높아진다면 지구의 대다수 지역은 사람이 살 수 없는 지역이 될 것이다. 만약 지구가 완전히 하얀빛으로 뒤덮인다면 알베도는 1에 가까워질 것이고 평균온도는 대략 영햐 40도 정도로 떨어질 것이다. (p. 37)

 

산위의 눈이 녹고 극지방의 빙하가 녹아 하얀 면적이 줄어들 수록 알베도는 높아지고 그렇게 온도가 올라가면 또 눈이 녹고 빙하가 녹는다. 온실가스도 문제겠지만 알베도 효과 측면에서 바라본 온도 상승은 또다른 위기감을 느끼게 했다.

겨울의 왕국을 향한 긍정적인 경험들을 가진 나에게는 안데르센과 루이스가 그랬듯이 겨울의 왕국을 무섭고 위험하고 악의 기운이 머무는 곳으로 묘사하는 동화나 이야기가 이상하다. 안데르센의 책에서는 악랄한 눈의 여왕이... 루이스의 나니아연대기에서는 하얀 마녀가... 오늘날의 디즈니 영화 겨울왕국... 이런 이야기는 분명 겨울이 주는 긍정적인 면을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채 겨울을 짜증 난다고 여기는 국가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썼을 것이다. 눈이 길가에 쌓이고 사람들이 얼음 위에 넘어져서 팔과 다리가 부러지는 그런 겨울만 본 사람들 말이다. (p. 46)

저자가 자라온 노르웨이의 겨울환경에 대해서 한참을 풀어놓길래 왠 추억담이 이렇게 긴걸까 싶었는데 괜한 이야기들이 아니었다. 저자의 성장속 계절은 대부분 겨울이었고 그 겨울은 결코 위험하거나 부정적이기만한 계절이 아니었다. 겨울, 추위의 중요성이 동화에서조차 왜곡되고 있는 것에 아쉬워 하는 저자의 마음이 책을 다 읽고 덮을 즈음 나에게 전달되었다. 심지어 추위를 너무나 못견뎌하는 나이지만, 추위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빙권이 지구를 지배하던 시절(약 250만년 전)에 인류의 친척인 호모-계열의 종만 탄생한 것이 아니었다. 우리가 속한 현생인류인 호모사피엔스도 극도의 추위와 건조의 시절에 등장했다. 북극은 무자비한 추위에 휩싸였고 유렵, 시베리아, 북아메리카의 대부분 지역이 얼음으로 뒤덮였던 빙하기였다. (p. 159)

우리의 선조들에게는 참 생존하기 어려웠을 시절이었음은 분명한데, 바로 이 어려운 시기에 새로운 변종이 승자가 된 것이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다른 종은 종 전체가 사라지거나 새로운 변종이 분화되어 틈새를 찾아 나서며 생존을 이어나가기도 했다. 인류의 종이 진화하는 과정에서 보이는 한 가지 경향은 새로운 종류의 기술의 도움으로 생존 능력을 키워왔다는 것이다. (p. 160)

인류는 정착해 거주 생활을 시작하고, 농업으로 생계 수단을 바꿔 우리가 문명이라고 부르는 발전으로 이어졌다. 인류의 역사에서 이 극적인 변화는 빙권의 변화와 동시에 이루어졌다. 이러한 변화는 연이은 기후 전환이 발생하는 빙권에 의해 초래되었을지도 모른다. (p. 162)

 

책의 절반을 넘어가도록 '빙하의 반격' 무엇일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원제를 보니 'Frostens Rike' 노르웨이어 번역을 해보니 '서리의 왕국' 이었다.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서리의 왕국' 이 왜 '빙하의 반격' 이 됐단 말인가? 그런데 위 챕터를 읽고서 비로서 깨달았다. '서리의 왕국' 도 '빙하의 반격' 도 지구의 역사와 인류의 변천사에 대한 관점을 바꾼 의미라는 것을. 저자는 지구와 인류의 역사에서 빙하의 역할을 주체적 기둥으로 세워놓고 이야기들을 풀고 있었던 것이다. 왜 '노르웨이의 빌 브라이슨' 이라고 불렸는지, 책을 절반이상 읽고서야 알아챌 수 있었다.

1만2800년 전에 갑자기 기후가 변하게 된다. 생명을 촉촉이 적셔주던 소나기는 사라지고 기후도 건조해지고 추워졌으며 숲은 더 이상 예전처럼 자애롭지 못했다.

온도는 몇 도가 내려갔고 10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마치 빙하기가 돌아온 듯 했다. 몇천년간이나 온난하고 습도가 있는 기후 덕분에 동물과 식물이 성장하기엔 최적의 환경이었던, 어쩌면 인류 역사에서 가장 풍족하게 살았을지도 모르는 시절이 갑작스러운 식량부족 사태에 부딪힌 것이다. 숲이 주던 달콤한 열매에 익숙하던 사람들은 먹을 만한 다른 식량을 찾아내야만 했다. 누군가는 굶주림으로 아사에 이르렀지만 조금 더 운이 좋았거나 조금 더 현명했던 사람들은 인류를 새로운 생활양식, 농업으로 이끌었다. 이처럼 1000년 넘게 지속된 건조한 시절인 영거 드라이아스기가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인류 최초의 농부를 탄생시켰다. 1000년이 지난 후 기후가 차츰 나아지자 인류는 새로운 농업 방식을 도입하여 다른 종들도 경작이 가능하도록 발전시켰다. 인류는 여러모로 더 건강에 좋고 노동력이 덜 드는 일일 수 있는 수렵채집사회로는 돌아가지 않았다. 인류는 새로운 기술을 사용하기 시작하면 '다운그레이드'하여 발전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어쨌든 농업은 더 많은 인류에게 식량을 배분할 수 있는 방식이었다. 인구집중은 인류가 수렵채집을 하던 시기에는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농업을 함에 따라 함께 사는 일이 가능해졌다.

문명으로 가는 도약의 단계에 북극의 빙권이 허리띠를 졸라매게 하는 어려운 시기를 만들어 남쪽에 기후위기를 초래했다.

홀로세 시기에 우리 인류가 선택한 건 새로운 종으로의 진화가 아니었다. 진화엔 어마어마한 시간이 걸리는 일인데 인류 종은 등장 이후 그 오랜 시간을 살아내지도 못했으니 진화할 수도 없었다. 그 대신 전혀 새로운 유형으로 진화를 이루어냈는데 행동양식을 변화하며 적응해 가는 문화적, 사회적 진화이다. 인류는 새로운 기술을 사용하고 새로운 거주의 방식을 도입한 것이다. (p. 164~170)

 

진화에는 어마어마한 시간이 걸린다. 우리는 식물과 동물들에게서 진화의 흔적을 발견한다. 나는 인류도 그렇게 진화해 온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저자의 설명을 읽고 나니 생각이 좀 달라졌다. 인류는 아니 인류만 진화를 멈춘 것이다. 인간외의 다른 생명체들이 온몸으로 부딪혀 환경에 적응하며 스스로를 바꾸는 진화를 해나갈때, 인류는 어느 순간 스스로를 변화시켜 적응하는 것이 아닌 도구를 사용한 적응으로 방법을 바꾸었다. 도구의 사용이 인류의 발전이라고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만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구가 발달할수록 인류 자체는 퇴보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고대 인류 문명의 발달 수준이 발견될때마다 깜짝깜짝 놀라곤 했는데, 그럴 일이 아니었다. 인류는 진화하지 않았기에 변하지 않았기에 예나 지금이나 고도로 발달된 문명이라고 부르는 사회를 만들어냈던 것이다. 외계인이 갑자가 지구에 인류를 뚝 떨어뜨리고 간 것처럼 갑작스럽게 진보된 인류의 문명이 늘 의아했는데 갑자기 묘하게 다 설명받은 느낌이었다.

빙하가 환경과 특히 건조한 계절에 물 공급에 미치는 지대한 영향에도 불구하고 지구상의 어떤 국가도 빙하자원을 보존하기 위한 법을 제정하지 않았다. (p. 206)

영구동토층이 녹기 때문에 발생하는 가장 큰 위험은 엄청난 양의 탄소가 대기 중으로 방출되어 불가역적인 온난화를 가속화시킬 거라는 점이다. (p. 218)

인류가 등장하여 초식동물의 개체 수를 전멸시켰을 때 지형은 변화하기 시작했다. 전에는 풀이 있던 곳은 오늘날엔 모기, 관목, 이끼가 자라는 숲이 되었다. 그리고 이는 유일한 변화가 아니었다. 눈이 덮인 지역도 변화했다. 동물들이 먹이를 찾기 위해 눈을 파헤치면 한기가 땅에 스며들어 여름에 녹았던 영구동토층이 다시 얼어붙을 수 있었다. 동물들이 사라지면 눈은 평화를 누리지만 땅은 전처럼 깊은 곳까지 얼 수 없다. (p. 226~227)

 

빙하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산위의 눈이나 암석빙하의 해빙도 문제였고, 무엇보다 영구동토층이 녹고 있는 것은 더 큰문제로 보였다. 지구엔 겨울이 필요하다. 이러한 겨울을 돌려주는 데 초식동물의 도움이 무척 중요한 것을 처음 알았다. 자연엔 동물들이 뛰어다녀야 한다. 겨울엔 눈이 와야 하고 극지방엔 빙하가 있어야 한다. 지구온난화, 온실가스, 빙하가 녹는다는 것을 기후환경문제로만 이해했을 때와, 이 책을 통해 지구형성과 인류변천에서 빙하의 그리고 겨울의 영향력을 깨닫고 이해했을 때 생각보다 큰 격차가 느껴졌다. 기후적문제가 오히려 작게 느껴질 정도였다. 빙하가 이렇게 인류의 생존과 직결되 있었다니 그야말로 제대로 뒤통수 맞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인류가 어떤 적절한 도구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인류는 다른 방식으로 적응할 수 있을 것이다. 빙하의 반격은 이미 시작됐다. 지구를 다시 서리의 왕국으로 변모시켜줘야 할 때다.

겨울의 왕국은 다시 돌아올 수 있다. 역사에서 수차례 그래 왔던 것처럼. (p. 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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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어록 - 인간과 권력의 본질을 꿰뚫는 문장들 사기 (민음사)
김원중 지음 / 민음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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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권력의 본질을 꿰뚫는 문장들

[사기]를 완역한 동양 고전의 대가 김원중 교수가 가려뽑은

[사기]의 핵심어록

 

 

[사기]는 '본기' '세가' '표' '서' '열전' 으로 구성되어 있는 중국고전으로, ‘본기’는 연대순으로 제왕의 언행과 업적을 기술하고 있고, ‘세가’는 제후국의 흥망성쇠와 영웅들의 업적을 기술하였으며, ‘표’는 연대별로 각 시기의 중대 사건을 기록하였고, ‘서’는 각종 제도의 연혁을 기록하였으며, ‘열전’은 다양한 대표적 인물들의 활동을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사마천은 창조적으로 이 다섯 가지 부분을 종합하여 하나의 완전한 통일체계를 완성시켰는데 [사기] 전체는 총130편으로, 사실 지나치게 방대하여 읽어볼 엄두를 내기가 좀처럼 힘든 고전이었다.

이 책이 비록 원전번역서는 아니지만, 원전번역을 했던 저자가 가려뽑은 어록이라고 해서 믿음도 가고 분량도 부담스럽지 않은 구성이라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해볼 수 있었던 책이다. 무엇보다 검정의 하드커버 책 자체가 멋짐을 풍기고 책장 한장한장 검정테두리 쳐진 분위기가 또 고급스러움을 더하는 책이라 디자인적으로도 고전의 품격이 느껴지는 것 같아 마음에 들었다.

[사기]의 저자 사마천(BC 145? ~ BC 86?)은 전한시대의 역사가로 중국 최고의 역사가로 칭송받는다. BC 91년에 완성한 [사기]를 펴내기까지 인생이 순탄치많은 않았다. 어린시절부터 고전문헌을 구해 읽도록 가르친 아버지덕에 지적 기반이 탄탄했고 성장후 아버지에 이어 천문역법과 도서를 관장하는 태사령이 되었기에 황실 도서에서 다양한 자료수집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당시 황제인 무제의 노여움을 사서 BC99년 사마천의 나이 48세 되던 해에 궁형(거세)을 받고 투옥되었음에도 저술을 계속했다고 한다. BC95년 황제의 신임을 회복하여 환관의 최고직인 중서령이 되어 계속 문서를 다룰 수 있었기에 [사기]를 완성할 수 있었다. 그리고 [사기]완성 2년 후에 사망하였다. 그야말로 역작이 아닐 수 없다.

전설상의 황제시대부터 사마천이 살았던 한 무제 때까지 2000여 년을 다룬 [사기] 는 중국고대사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다. 동양역사서를 읽는다면 꼭 읽어야 할 책이 [사기] 일텐데, 그중에서도 대중적으로 가장 유명한 '열전' 은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연상시켜서 [사기]를 읽게 된다면 아마 '열전' 부터 시작하게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해본다.

[사기]는 사마천의 시선이 굉장히 많이 투영된 역사서라고 한다. 역사적 인물들에 대한 사마천 자신의 평가가 굉장히 많이 들어가 있기에 그러한 사마천의 글속에서 이 책의 어록들이 뽑힐 수 있었다. 책은 읽기에 굉장히 편한 구성을 갖추고 있다. 왼쪽 페이지에 어록 오른쪽 페이지에 관련해설이라 펼쳐진 페이지에서 어록하나하나 마다 완독가능하다 보니 언제 어느때 어느 부분을 읽어도 괜찮다.

 

 

오른쪽 페이지의 내용은 때로는 해설이고 때로는 역사적 배경이며 때로는 옮긴이의 평가가 들어있기도 하다. 대부분이 옛이야기처럼 어느시대 누구에게 이런일이 있었는데~ 하는 서술이 많아서, 때로는 왼쪽 페이지의 촌철살인에 때로는 오른쪽 페이지의 옛이야기에 마음이 오가다 보면 어느새 책한권을 쓰윽 다 읽게 된다. 이 양쪽 페이지의 핵심주제는 소제목으로 써있어서 매 페이지마다 이 소제목들에 대해서만 잠깐씩 생각해보아도 다양한 성찰을 할 수 있기도 하다.

읽다보니 중국 역사에 대한 상식도 조금 알게 되는 게 있었는데 로마역사를 읽고 있어서인지 묘하게 중첩되는 부분이 있어서 신기했다.

"오제(五帝)란 중국 고대의 전설에 나오는 다섯 명의 제왕이다. 황제, 전욱, 제곡, 요, 순 이 그들이다. [사기]의 방대한 세계는 [오제본기]에서 시작된다." (p. 47)

로마의 태평성대 시절도 오현시대라 일컫는데, 중국고대사의 태평성대는 오제시대 이다. 고대시대 평화는 오황제로 완벽해지는 것일까? ㅎ

그리고 권세가의 집에는 늘 많은 식객들이 머물렀고 그 식객들 중 유능한 인재가 뽑히는 경우도 꽤 많았다. 공자도 누군가의 식객이 되어 자신을 알아줄 권세가를 찾아 평생 떠돌아 다녔다. 이런 지식인들은 항상 정치인들에게 자신의 유능함을 알려줄만한 '유세' 를 해야 했는데, 지금의 선거유세가 여기서 유래했다. 그런데 로마에도 클리엔테스 라고 해서 자유민들이 귀족에게 다양한 지원과 보호를 받는 신의적 관계가 있었다. 그리고 경제적으로 어려워졌을때는 귀족으로부터 식량지원도 받았다. 그리고 이 클리엔테스는 당연히 귀족의 정치적 지지세력이자 측근 인재가 되기도 했다. 이또한 왠지 고대중국의 식객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처음 받았다. 고대에서의 상하관계는 이런식으로 완성되는 것일까? ㅎㅎ

그런데 고대중국과 고대그리스로마는 큰 차이점이 하나 있었다.

"예란 법보다 우선 - 근본은 예이고 법은 그 하위 개념이다" (p. 281)

고대비극 [안티고네]가 생각났다. [안티고네]는 오빠의 장례문제를 두고 현재 인간왕이 정한 금지법과 인간으로 살아오며 전해내려온 관습법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다루고 있는 비극이다. 고대서양에서는 인간이 만든 법과 옛부터 전해오는 법 사이에 안티고네와 같은 갈등이 있었다. 그런데 중국사서인 [사기]에서 사마천은 '예가 법도다 우선' 이라고 못박는다. 이것은 문화의 차이인것일까?... 흐음... 뭔가 비교해본다는 것이 의외로 재미있는 것인데, 동서양 비교는 자칫 개인적 편견에 빠지기 쉬우므로 더 많은 객관적 근거들을 찾아보고 해야할 것이니 여기서 패~쓰.

여하튼 이 책은 명언집을 읽는 느낌도 들고 역사서를 읽는 기분도 들고 옛이야기를 읽는 재미도 있는, 다양한 면에서 짧고 굵은?! 책이었다.

어록이다 보니 아무래도 명언들이 많았는데 몇 가지 옮겨 놓아본다.

작은 예절에 얽매인 사람은 영화로운 이름을 이룰 수 없고, 작은 치욕을 마다하는 사람은 큰 공을 세울 수 없다고 합니다. [노중련·추양열전] (p. 32)

조량은 "돌이켜 자기 마음 속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것을 총(聰)이라 하고, 마음 속으로 성찰할 수 있는 것을 명(明)이라고 하며, 자신을 이기는 것을 강(疆)이라고 합니다." (p. 63)

지혜로운 사람도 천 번 생각하면 한 번의 실수가 있으며, 어리석은 사람도 천 번 생각하면 한 번은 얻는 것이 있습니다. [회음후열전] (p. 104)

나라가 장차 흥하려면 반드시 상서로운 징조가 나타나고, 군자는 쓰이고 소인은 배격당한다. 나라가 장차 망하려면 어진 사람은 숨고 어지럽히는 신하들이 귀하게 된다. [초원왕세가] (p. 110)

천하에 재해가 없으면 성인이 있다 해도 그 재능을 펼 데가 없으며,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화합하고 뜻을 모으면 어진 사람이 있어도 공을 세울 수 없다. [골계열전] (p. 238)

거처할 때는 그의 가까운 사람들을 살피고, 부귀할 때는 그와 함께하는 사람을 살피며, 영달할 때는 그가 천거한 사람을 살피고, 궁핍할때는 그가 하지 않는 일을 살피며, 가난할 때는 그가 갖지 않으려 하는 것을 살펴보십시오. [위세가] (p. 242)

영달할때 그가 천거하는 사람을 보라는 것은 자기 사람을 심느냐 그렇지 않느냐를 보라는 것이다. 궁핍할 때 하지 않는 일은 진짜 싫어하는 혹은 할 수 없는 일일 것이며 그 사람의 사정이 나아져도 그 일은 시킬 수 없다는 말이다. (p. 243)

사마천은 자신의 작업을 공자가 저술한 것만큼 위대한 차원으로 했으며 자신의 불운과 공자의 불운을 동일시하여 기록하고자 한 것이다. (p. 319)

사마천은 [화식열전]에서 춘춘 말기부터 한나라 초기까지 상공업으로 치부한 사람들을 다루고 있는데, 이 시기의 상공업 발전의 면모를 볼 수 있어 '화식'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화'는 재산, '식'은 불어난다 는 뜻으로, 재산을 늘리는 방법이다. 사마천은 상업이야말로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원류이며 이들 직업 모두를 함께 중시하는 진보적 면모를 보였다. 사실상 '중농억상'의 전통적인 가치관을 벗어난 것이다. (p. 373)

속담에 '책으로 말을 모는 자는 말의 뜻을 다 이해할 수 없고, 옛날 법도로 지금을 다시르닌 자는 일의 변화에 도달할 수 없다'라고 하였으니, 법도만을 따르는 공으로는 세속을 초월하기 어렵고, 옛날을 본받는 학문으로는 지금을 다스리기 어려운 것이오. [조세가] (p. 386)

온고지신도 좋고 옛 성현의 말씀도 좋다. 그러나 그것이 지금 이 시대와 영합할 뿐 뛰어넘고 다스릴 수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냐는 것이다. (p. 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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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작은 도시의 유쾌한 촌극
스티븐 리콕 지음, 허윤정 옮김 / 레인보우퍼블릭북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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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극 sketch

1. 우발적이고 비상식적이서서 웃음거리가 되어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2. 아주 짧은 단편적인 연극

 

 

책의 뒤표지에 '촌극' 에 대한 설명이 써있다.

저자 스티븐 리콕(1869~1944)은 그의 사후 최고의 유머 문학 작품을 쓴 캐나다 작가에게 주는 '스티븐 리콕 유머상' 이 만들어질 만큼 캐나다의 대표적 유머작가라고 한다.

이 두 가지 정보만으로도 이 작품이 저자 특유의 유머가 넘치는 풍자문학임을 알 수 있다. 읽고나니 신랄한 풍자보다 낄낄거리게 되는 유머가 더 매력적인 재미난 소설이었다. 무엇보다 산뜻한 노란표지가 예뻐서 마음에 든다. ㅎㅎ

소설의 시작은 캐나다의 작은 도시 마리포사 를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화자는 대도시 뉴욕에 버금가는 도시라고 한껏 치켜세우며 마리포사 곳곳을 묘사하는데 마을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지는듯 하는듯 생생하지만 그 모습은 분명 대도시는 아니다.ㅋ 그리고 이 소설의 핵심적 인물이자 이 마을의 핵심적 인물인 호텔주인 스미스씨가 첫 주인공이다.

사람들은 이제 천장이 높고 창문이 있는 평범한 식당에서 식사하지 않을 겁니다. 그 사람들을 지하로 내려보내서 창문 하나 없고 사방에 톱밥이 날리고 영어를 모르는 웨이터들이 있는 방에 들어가게 하는 거에요. 지난번에 대도시에 갔을 때 그런 곳들을 봤습니다. 음... 그런 장소를 '호프'라고 부르더군요. 그리고 가벼운 식사를 하려는 사람들은 '카페'를 원합니다. 늦은 시간에 오는 사람들은 '룸살롱'이라고 부르는 또 다른 장소를 찾는데 그곳은 아예 문을 닫지 않아요. (p. 22)

스미스씨의 호텔의 주력사업은 호텔숙박이 아니라 호텔바이다. 그런데 이당시 캐나다에는 야간주류제한법이 있었나 보다. 스미스씨의 사소한 착오로 호텔바의 주류면허가 취소될 위기에 처한다. 그리고 스미스씨는 그 위기를 카페와 호프를 새로 시작함으로써 이겨낸다. 스미스시 호텔은 더욱더 마리포사의 명소가 되었다.

호프와 카페를 마리포사 사람들에게 설명하는 표현이 재밌었다. 뭔가 사람을 더 바보로 만드는 느낌인데, 이러한 저자의 유머코드는 수시로 등장하고 읽다보면 어느새 적응되서 계속 키득거리게 된다.

이발사 제프씨는 신문을 정독하며 온갖 소식에 정통한 사람이었다. 사실 그는 그 어떤 정보보다도 주식에 관심이 많았는데, 광산주식에 투자하다 어느날 거금을 손에쥔 부자가 되게 된다. 하지만 이 부를 누릴 새도 없이 또다른 투자에 관심을 돌리게 되는데... 그러던 어느날 제프씨에게 왠 편지가 도착한다.

그로부터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제프는 '쿠바 도지 개발 회사'에서 보낸 큰 소포 꾸러미를 받았다. 이 회사는 제프의 소식을 알고 있었다. 자기를 어떻게 알게 되었냐고 따지는 것은 제프같이 겸손한 사람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행동이었다. 전 세계 자본가들은 하나이고 같은 세계에 속한다. 제프는 카네기나 록펠러 같은 사업가들과 JP모건 같은 은행가들이 모두 서로 알고 있는 게 당연한 이유를 깨달았다. 어쨌든 이 쿠바 사람들은 공정하고 직설적이었다. 그들은 제프에게 편지를 써서 자기네 회사로 바로 들어와 임원이 되어달라고 제안했다. 이 쿠바 사람들은 주저하지 않았다. 그들이 보낸 편지는 쿠바에서 아니 뉴욕의 우편 사서함에서 온 것이지만, 뭐 쿠바든 뉴욕이든 매한가지다. 그들은 보증을 요구하지 않았다. 빠른 우편환이든 은행 환어음이든 수표든 그냥 돈을 보내라고만 했다. 한 달도 되지 않아 마리포사 사람들은 모두 제프가 '쿠바 땅에 발을 들여놨고' 아마도 그해 안에 50만 달러를 벌어들일 것으로 생각했다. (p. 61~63)

당연히 사기였다. 광산주식에서 멈췄으면 좋으련만... 일확천금은 이발사 제프씨를 세계적 자본가의 대열에 올려놓았다가 빚을 갚기 위해 더 오랜 시간 면도를 해야 하는 이발사로 돌려놓았다. 이런 웃픈 사연은 지금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마리포사에는 호수가 아나 있고 증기유람선도 한 척 있다. 화창한 7월의 어느날 마을 사람들은 유람선 나들이로 들떠 있다. 호수를 건너 작은 섬에 도착해서 야유회를 즐기고 다시 마을로 돌아오는 길 배가 가라앉기 시작한다! 그런데...

 

구조원들이 증기선이 있는 곳에 도착했을 때는 거의 탈진한 상태였다. 증기선 바깥으로 몸을 기울이고 있던 남자들이 구조원들에게 밧줄을 던져 구조원들을 한 사람씩 모두 증기선으로 끌어올리고 나니 구조선은 곧바로 물밑으로 가라앉았다. 구조 성공! (p. 102)

배가 가라앉고 있는 상황에서 증기선 사람들은 그닥 불안해 하지 않는다. 마을구조대청년들이 증기선 사람들을 구조하려 보트로 노저어 오는동안 탈진하자 증기선 사람들이 그들을 구조해준다. ㅍㅎㅎ 사실, 이 호수는 가장 깊어봐야 180cm 이고 침몰?지점은 마을에서 불과 1.6킬로미터 구역이었다. 구조하러 오는 사람들 족족 증기선 사람들에 의해 구조되고 증기선은 스미스씨의 활약으로 다시 마을로 잘 돌아간다. ㅍㅎㅎ

다음 주인공은 드론 사제 이다. 40여년간 목회를 진행해온 그의 희망은 하느님의 더 위대한 '증거'를 만드는 것, 간단히 말하면 '횃불'이 더 활활 타오르도록 불을 붙이는 것이었다. 이 드론 사제로 말할것 같으면,

 

어떤 사람들은 대학을 떠나면 그걸로 교육이 끝나는 것 같다. 드론 사제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잔디밭에 그리스어책을 가지고 나와 30분간 읽는 여유를 누리지 못하면 길을 잃은 기분이 든다고 곧잘 말했다. 그런 독서는 분명히 그의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는 두되활동이다. 드론 사제는 그리스어를 모국어처럼 느끼는 듯했다. 종종 듣는 얘기에 따르면 그 잔디밭에 함께 앉아 있던 사람들이 그에게 그리스어를 좀 번역해달라고 할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그는 그 청을 거절했다고 한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그리스어는 번역이 불가능했다. 그리스어를 번역하면 잃어버리는 게 너무 많으므로 시도하지 않는 편이 나았다. 그런 시도은 아예 하지 않는 것이 훨씬 현명했다. 그래서 많은 고전학자들이 그렇게 생각하고는 그리스어를 원문으로 읽고 싶어 하는가 보다. (p. 107~108)

처음 읽을 땐 몰랐는데 옮겨 적다 보니 은근 신랄하다. 그래도 웃기는게 먼저다. ㅋ

드론 사제의 희망을 담은 횃불을 활활 태우기 위해 그는 교회를 새로 짓기로 한다. 먼저 있던 작은 교회를 부수고 나온 돌들은

"독실한 마음으로 건설업자에게 팔아버렸다"(p. 117)

교회를 짓긴 했는데 빚더미위에 지어진 것이라 위태위태했다. 그 빚을 갚기 위해 '행운의 편지' 방법을 이용해보기도 하고 바자회, 상영회, 강연회 다양한 행사를 주최해보았지만 하는 족족 빚만 더 키울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신도 한명의 제안으로 회오리 캠페인이라는 것을 하게 되는데, 조직이 잘 구성된 것 같았지만 성금이 모이지 않았다. 캠페인

"분과 위원장과 위원 중 다수가 영국 국교회 소속이 아니었다"(p. 136)

게다가

"사실상 모든 사람이 위원회에 들어가 있으면 캠페인 대상을 찾기가 몹시 어려워진다. 위원장들과 위원들이 서로서로 모금 운동을 벌이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그들은 원래 자발적인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p. 140)

성공회 교인이 아닌 사람들이 성금모금 위원회를 만들고 거의 모든 사람이 위원회 회원이라 성금을 모금할 회원이 없었다. 뭐한 거임? ㅍㅎㅎㅎ

"교회가 갑자기 언덕 위에서 타오르는 횃불이 되면서 교회 간판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건물이 앞으로 폭삭 내려앉았다." (p. 150)

드론 사제가 새로 지은 교회가 마을의 횃불이 되긴 했다. ㅎㅎ 그는 첩첩산중 이 난관을 어떻게 넘었을까? 여기서 스미스씨의 활약은 또다시 등장한다.

이런 일이 현실에서 없었을까? 소실이니 웃고 넘기는 것이지 현실에서 만나면 엄청 기막혔을 것이다. 하지만 이또한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음을 우리는 모르지 않는다.

마을에 있는 외환은행 직원인 펍킨 청년은 어느늘 마을 판사 페퍼리 씨의 딸인 제나에게 첫눈에 반한다. 페퍼리 씨는 이 청춘남녀의 연애에 걸림돌이었는데, 이분에 대한 이미지를 잘 알수 있는 사례를 하나 들어보면

 

판사는 아들 문제에 대해서는 자기 공치사를 하지 않았다. 닐은 그 지역 전체에서 가장 훌륭하게 자란 소년이었다. 덩치가 매우 커서 고작 열일곱 살밖에 안 됐을 뿐인데도 미시나바 경마에 참여했다. 게다가 닐은 영리했다. 어찌나 영리한지 공부할 필요가 없었다. 너무 영리한데 머리를 전혀 쓰지 않아서 마리포사 고등학교에 다닐 때 수학은 뒤에서 1등을 차지했다. 판사가 그 이유를 설명하는 걸 열번 도 넘게 들었다. 닐은 정말 영리한 아이인데 다른 아이들이 집에서 공부하는 저녁 내내 마리포사 하우스에서 당구를 쳤기 때문에 그런 성적을 받았다고 한다. (p. 165)

마을판사같은 고위직의 직업을 가진 아버지를 둔 아들의 훌륭함 또한 우리는 익숙하게 알고 있다. 하지만 주인공은 닐이 아니므로 다시 청춘남녀로 돌아가서, 제나와 펍킨의 만남은 운명적이었다. ㅎ

드론 사제가 있는 교회에서 펍킨이 제나 옆에 앉아 '행운의 편지'방식으로 10센트를 요청하는 편지를 똑같이 베껴 쓰면서 제나와 처음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느낀 감정은 굳이 자세히 설명하지 않겠다. 둘이 쓴 편지가 거의 여덟 통에 이르렀을 때 둘은 서로의 글씨체가 너무나 닮아서 거의 구분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다만 펍킨의 글씨는 둥글둥글하고 제나의 글씨는 뾰족하며, 펍킨은 수직으로 반듯하게 쓰고 제나는 기울어진 모양으로 쓰는 게 달랐다. 그것 말고는 필체가 너무나 비슷해서 세상에 이보다 더 신기한 우연은 없었다. 물론 숫자는 필체가 서로 달랐다. (p. 183~184)

펍킨과 제나는 숫자 7을 쓸때는 다르지만, 글씨를 쓸때는 너~무 필체가 닮았단다. 옮기면서 다시 읽어봐도 이 사랑은 정말 운명이다! ㅋ 이 사랑에 서로 점점더 빠져들지만 펍킨에겐 제나에게 말하지 못하는 고민이 있었다. 바로 자신의 부모님에 대해 말할 수 없었다.

펍킨은 왜 부모님이 오지 못하게 막는 것일까? 도대체 왜? 그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그는 부모님이 부끄러웠다. 그것도 몹시 부끄러웠다.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마리포사에 나타나 이곳 친구들이 부모님을 보게 되고 부모님이 판사의 집에 가는 장면을 상상하면 창피해서 기절할 것만 같았다. (p. 191)

왜일까? 부모님이 어떻길래?

뭐? 내 말뜻을 오해했다고? 부모님이 가난해서 부끄러워하는 게 아니었냐고? 맙소사. 그렇지 않다. 오히려 펍킨은 부모님이 부자여서 부끄러웠따. 여기서 부자란 마리포사 사람들이 말하는 그런 부자를 의미하지 않는다. 마리포사에서 부자란 단지 회랑이 있는 저택을 짓고 원하는 것을 다 가질 수 있을 정도의 돈이 있는 사람을 뜻한다. 반면 펍킨이 생각하는 부자는 자동차, 리츠 호텔, 고급요트, 여름 휴양지 섬과 같은 온갖 호화로운 것들을 가진 사람을 의미한다. (p. 192)

그냥 부자도 아니고 어마어마한 재벌가인 집안의 외아들인 펍킨! 그가 부모님이 마리포사에 오지 않았으면 하는 이유는

"페퍼리 판사가 모건과 록펠러에게 종신형을 선관다는 말을 얼마나 자주 들었는지

마리포사 고등학교 교장인 머들슨 씨가 연봉을 1500달러 이상 받는 사람은 누구든 공공의 적이라고

우체국장인 트렐로니가 이 사회에서 한 해에 1300달러 이상 버는 사람은 사회에 위험한 존재라고

그런 사람들이 모두 마리포사에 있었다. 그들이 자기 아버지를 얼마나 경멸할지 바로 상상이 갔다! (p. 194)

무엇보다 제나는 다이아몬드를 정말 싫어해서 그걸 몸에 걸치지 않겠다고 가난해도 자수성가해서 그녀를 위해 어떤 난관도 극복할 수 있는 남자하고만 결혼하겠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때 펍킨이 제나의 말에 아무 대꾸도 하지 못하자 제나는 시무룩해져서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p. 195)"

펍킨의 마음이 얼마나 괴로웠겠는가~~~

하지만 이 운명적인 사랑이 결혼에 골인할 수 있도록 하늘이 도왔는지 은행에 도둑이 드는 사건이 벌어지고 펍킨은 영웅이 되어 용기를 얻고 청혼한다. (불도켜지 않은 어두컴컴한 새벽 도둑사건에서 펍킨과 은행건물 경비원은 어둠속에서 서로의 덩치와 비슷한 도둑을 보았고, 도둑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며 당연히 잡히지 않았다.ㅋㅋㅋ)

 

제나가 펍킨의 청혼에 '예'라고 대답한 것 외에 무슨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펍킨이 돈 얘기를 했을 때 제나는 요조숙녀처럼 훌륭하게 받아들였고, 다이아몬드를 언급했을 땐 그를 위해 그 예물을 몸에 걸치겠다고 했다. (p. 221)

펍킨은 제나에게 감사해했다. 다이아몬드를 받아줘서 고마워~~~ ㅍㅎㅎ

"그때 마침 거리에서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부우웅 하는 굉음이 들려왔다. 환상적인 리무진 승용차가 얼마 안되는 3000달러의 연봉을 받는 판사의 집쪽으로 다가와서는 집앞에 멈췄다. 차가 서자 긴 물개 가죽 코트를 입은 남자가 신이 난 얼굴로 차에서 휙 내렸다. 그 코트는 전혀 사치를 부린 게 아니며 순전히 쌀쌀한 가을 저녁 날씨 때문에 걸친 것이었다. 당연히 짐작하겠지만, 펍킨의 아버지이였다. 대도시 석간신문에서 아들이 죽었다는 기사를 보고서 자동차로 이곳에 온 것이다. 그들을 따라서 수사관들과 비상 인력들을 가득 실은 특별 기차 한 대가 함께 왔지만, 펍킨의 아버지가 오는 도중에 아들 피터가 살아 있다는 전보를 받고서는 모두 돌려보냈다." (p. 222)

그리고 펍킨의 아버지는 페퍼리 판사를 만났다!

더 이상의 스포는 소설의 재미를 위해 멈추는 걸로 ㅎㅎ

소설의 마지막 사건은 스미스씨의 주대표 선거 이야기이다. 예나 지금이나 선거전이란 참...

 

그들은 농부를 만날 때마다 그 집에 들어가서 같이 식사를 했다. 식사가 끝나면 마차로 데리고 가서 술을 한잔 줬다. 그렇게 완전히 확보한 자유당의 표는 그 농부가 보수당원과 식사를 하고 나면 다시 보수당으로 바뀌었다. 사실 개인의 진정성을 농부에게 보여주는 방법은 오로지 그 집에 들어가서 같이 식사하는 것뿐이다. 식사를 하지 않으면 그 농부는 표를 주지 않는다. 그것은 공인된 정치적 시험이다.

무소속 후보인 에드워드도 여기저기서 보이긴 했다. 그는 선거 유세 마차들이 지나간 뒤에 날리는 먼지 속을 돌아다니며 농가 이곳저곳을 방문했다. 농부들 한명 한명에게 자신은 뇌물을 주지 않고, 돈도 쓰지 않고, 일자리도 제공하지 않는 공약을 내건다고 설명했다. 그러면 농부들은 하나같이 그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고는 다음 농가로 가는 방향을 알려줬다. (p. 249)

 

자유당과 보수당 (그리고 무소속)의 선거 유세는 나름 치열했다. 스미스씨는 특유의 재능을 충분히 발휘했다. 그런데 소설의 시작에서 스미스씨는 글자를 읽을 줄 모른다는 것을 저자는 일찌감치 알려준다. 하지만 거부 스미스씨는 마을의 굵직한 사건들의 핵심적 인물로 특별한 활약상을 보여왔고 이제 정치계에도 진출하고자 한다. 이런 스미스씨 에게서 묘한 기시감이 느껴지는 건 나뿐일까? ㅎ

표지에서는 '어디엔가 존재할 법한 가상의 도시 마리포사' 라고 했는데, 검색해보니 캐나다에 '마리포사' 라는 작은 마을이 실제로 있었다. 저자의 마리포사는 정말 가상의 도시인것일까? 실제도시를 두고 마을 이름또한 풍자한 것일까? 이 질문은 좀더 생각해 봐야겠다.

여하튼 읽는 내내 유쾌했고 마차가 다니고 증기선이 오가던 시절이지만 사람들의 모습은 지금과 다를바 없이 느껴져 친근하게 다가왔는데 다 읽고나니 조금은 씁쓸해졌다. 이런게 풍자문학의 매력인것인지도.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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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침없이, 토론! - 이슈와 친해지는 20가지 찬반 논쟁 토론하는 10대
김범묵.박정란 지음 / 북트리거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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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와 친해지는 20가지 찬반 논쟁

YES! NO! 드루와, 드루와!

 

 

다 읽고 나니... 일단 북트리거 출판사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청소년 도서 중에서 최근 이곳처럼 양질의 도서를 꾸준히 내고 있는 곳이 드물다. 북트리거 출판사의 청소년 책을 여러권 읽어왔는데, 매번 좋았다!!

이번 책은 사회이슈 내용이다.

제목에도 토론이 들어가고 표지에도 토론을 잘하고 싶은 청소년에게 꼭 필요한 책이라고 써놓았지만, 꼭 토론을 위해서 읽어야 하는 책은 아니다.

찬반 토론에 대한 간접경험으로도 물론 유익한 책이지만, 개인적으로 그 내용들이 좋았다.

현재 진행중인 사회적 이슈 20가지에 대해 청소년의 수준에 맞춰 잘 이해시켜주고 있는 것도 좋았고, 찬성과 반대 양쪽 입장을 다 읽어봄으로써 어느 한쪽 입장이 되기보다는 양쪽의 긍정적 면을 수렴할 수 있는 종합적 사고를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아서 좋았다.

물론, 책속에 나온 주제들로 친구들과 찬반 토론을 직접 해본다면 더 재밌고 유익할 것이다.

20가지 이슈들은 청소년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함께 토론해볼 법한 좋은 주제들이었다.

한국식 나이, 유지해야 할까?

카페의 '카공족', 이대로 괜찮을까?

신조어, 사용해도 될까?

개고기 식용, 합법화해야 할까?

드론, 상용화해야 할까?

인터넷 실명제, 도입해야 할까?

게임중독, 질병으로 분류해야 할까?

원격의료, 허용해야 할까?

초소형 카메라, 판매를 금지해야 할까?

GMO완전 표시제, 시행해야 할까?

흉악범죄 피의자 신상, 공개해야 할까?

동성결혼, 합법화해야 할까?

공인탐정제도, 합법화해야 할까?

부모의 자녀 체벌, 금지해야 할까?

사형집행, 부활해야 할까?

일본제품 불매운동, 참여해야 할까?

반려동물 등록제, 강화해야 할까?

학생부종합전형, 폐지해야 할까?

노인 기준 연령, 상향해야 할까?

남북통일, 반드시 해야 할까?

주제들만 훑어 봤을땐 당연히 이쪽이지 하고 한쪽으로 생각이 기우는 주제들도 분명 여럿있었다.

하지만 막상 찬반 양쪽 입장을 다 읽고나면 그게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책의 구성도 참 친절하다. 먼저 각 주제별로 주제의 이해를 돕는 설명을 자세히 해주고, 토론을 하기 전에 생각해 볼꺼리들을 제시해준다. 더불어 도움이 되는 자료들을 QR코드로 찾을 수 있게끔 해놓았다. 찬반 양쪽 입장을 번갈아가며 읽고나면, 토론갈무리하기 라고 양쪽의 입장을 고려한 주제결과정리까지 깔끔하게~! 게다가 책 뒤에 교과서 관련단원정리 를 해놓아서 이 내용들이 언제 어느 교과서 어떤 단원에 들어가는지 파악할 수 있게 해주니 이또한 아주 실용적이다.

개학이 예정일에서 3주나 연기된 사상초유의 긴 겨울방학을 보내고 있는 요즘, 이런 책으로 지적 긴장감을 올려보는 것은 어떨까!

단, 의견이 다르다고 싸운다거나 상대방의 말이 안끝났는데 자르고 들어간다거나 하는 등의 실수를 하지 않도록 경청과 존중의 에티켓은 미리 숙지하자!!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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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버그 - 보이지 않는 적과의 전쟁
맷 매카시 지음, 김미정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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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적과의 전쟁

'2050년, 3초에 1명의 인류가 슈퍼버그로 사망할 수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전국이 흉흉한 시절이다.

바이러스? 박테리아? 무엇이 다르지? 슈퍼버그는 뭐지?

이 흉흉한 때에 보이지 않는 적과 전쟁중인 이 때에 정작 나는 이 보이지 않는 적에 대해 아는게 없다는 것을 책을 제목을 보자 새삼 깨달았다.

슈퍼버그는 1960년대 이전에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고, 1990년대 까지도 산발적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의사들의 잘못된 항생제 처방 관행과 함께 항생제를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상업적 농업이 박테리아들에게 우리의 소중한 약품들을 노출시켰고, 그 결과 박테리아들은 그 약효를 무력화시키는 법을 알아냈다. 인간에게 치명적인 감염의 주요인인 슈퍼버그는 어디에나 존재하고 있다. (p. 11)

'슈퍼버그' 는 항생제에 내성이 생긴 박테리아를 지칭한다. 항생제를 먹어도 죽지 않는 균이 슈퍼버그다. 슈퍼버그는 점점 고질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고 한다. 항생제는 감기만 걸려도 쉽게 처방받는 약이다. 그런데 이 항생제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이 항생제가 우리몸에서 정작 없애야 할 균을 없애지 못하게 된다면? 균은 진화하고 있다. 그런데 항생제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왜일까? 저자는 그 현장을 생생히 담아내고 있다.

무척 의학적인 책이긴 하나 저자는 스토리텔러의 소질이 다분했다. 항생제의 역사적 주요발견들과 현재의 이야기를 번갈아 하며 이야깃거리를 흥미롭게 풀어가고 있는데, 시작은 1차대전 중 플레밍의 페니실린 발견부터다. 플레밍은 폐기한 페트리 접시에서 이 곰팡이를 우연히 발견했지만 1년만인 1929년 페니실린 분자에 관한 연구를 포기했다. 이 연구가 재개된 것은 또 한번의 세계대전을 겪은 후가 된다.

널리 이용 가능한 항생제를 처음으로 만든 사람이 플레밍과 공동 연구자들이라고 알려졌지만, 그건 정확한 사실이 아니다. 그들의 연구계획이 1945년의 페니실린 생산과 유통으로 이어진 것은 맞지만, 인류는 알면서든 모르면서든 수천 년간 항생제를 써온 것으로 밝혀졌다. (p. 32)

고대 미라에서 중국전통약재에서 항생제 성분이 검출된다고 한다. 정확한 명칭이나 균의 성질을 모를지라도 고대부터 인류는 다양한 치료약을 만들고 사용해왔고 그 중엔 분명 균을 죽이는 항생제도 있었다.

일부 항생제는 기생충과 진균도 죽일 수 있지만, 바이러스에는 거의 효과가 없다. 그래서 의사들은 감기 환자에게 항생제를 잘 처방하지 않는다. 감기 증상은 대체로 바이러스에 의해 유발되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박테리아와 바이러스가 다르다는 것을 1930년대까지 인식하지 못했다. 바이러스는 식물, 동물, 인간, 박테리아 등 다른 유기체 내부에서 복제되며 대체로 항생제가 듣지 않는다.) (p. 34)

세균을 영어로 박테리아 라고 하는데 세균은 일종의 생물이라고 한다. 단세포적 세균. 따라서 세균은 번식도 하고 독립적 성장도 한다고.

하지만 바이러스는 생물이 아니라서 스스로 번식할 수 없기에 숙주세포와 만나야 실제 번식이 가능하다고 한다.

즉, 박테리아는 세포로서 단독존재할수 있다면 바이러스는 세포 안으로 침입해 기생존재할 수 있다.

따라서 박테리아는 단세포 생물로서 최초의 생물이라 할 수있고 바이러스는 나중에 진화의 과정에서 생성됐다고 볼 수 있다고 한다.

감기도 독감도 코로나도 바이러스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그런데 감기나 독감에 걸려서 병원에 가면 항생제를 처방받는다. 왜일까? 그런데 항생제를 먹으면 또 효과가 있긴 하다. 이건 또 무슨 조화인가? 바이러스에 항생제는 효과가 없다면서? 이건 늘 궁금해하던 건에 이 책에서도 이 답은 찾지 못했다. 하긴 뭐 이 책은 박테리아에 대한 책이니까 당연히;;;

궁극적인 문제는 많은 항생제의 수익성이 낮다는 것이다. 아이디어 수준에서 신약의 생산과 시판 단계까지는 여러 절차를 거쳐야 하며 거기에는 10억 달러 이상이 소요된다. 항생제의 경우 몇 가지 특성 때문에 이윤이 적다. 항생제는 대체로 환자가 아플 때만 단기로 처방되며, 훌륭한 새로운 항생제라도 머잖아 그에 대한 내성이 발생하게 된다. 항생제 내성은 시기의 문제일뿐 반드시 생긴다. (p. 39)

그렇다. 별수 없이 돈문제 였다. 어쩔 수 없이 또 돈문제였다. ...

항생제 신약을 어렵게 개발해도 내성이 생기면 다른 약이 필요해진다. 항생제 내성은 반드시 생긴다고 한다. 그런데 점점 더 항생제 개발 연구비는 줄었으면 줄었지 늘지 않는다고 한다.

결국 연구자들의 몫이 커질 수 밖에 없다. 제약회사들의 연구진만 믿고 있어선 안된다. 대학이나 연구소에서의 기초 연구가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세로운 박테리아를 연구자들이 발견하면 그 결과를 이용해 신약개발로 연결시킬 수 있다. 기초 연구 파이팅!

나는 항생제 개발에 관한 강연과 워크숍에 수십 차례 참석했지만, 박테리아의 변이가 너무 빨라서 아무리 놀라운 항생제 신약도 따라갈 수 없다고 언급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것은 의학계의 일급비밀이었다. (p. 44)

항생제 개발에 열성적인 제약사도 없는데 심지어 박테리아 변이의 속도를 항생제 신약개발의 속도가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니. 어쩌란 말인가 ㅠㅠ

이 답답한 상황속에서 고군분투하는 항생제 개발기가 본문에서 내내 펼쳐진다.

저자는 나치의 생체실험과 미국내 의학자 터스키기의 생체실험을 언급하면서 의료행위에 있어서의 윤리문제를 먼저 제기한다.

이러한 참혹한 과거로부터 임상실험의 안전장치제도가 생겨나기 시작했고, 이러한 제도들은 때로 연구자들에게 걸림돌처럼 여겨지기도 하지만 환자와 연구자 모두를 위해서 결국 필요했음을 저자가 깨닫게 되는 과정을 통해 독자도 함께 성장하게 되는 듯 하다.

플레밍이 최초의 항생제를 우연히 발견한 이야기는 과학에 관심이 싹트고 있는 아이의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하지만, 최초의 항진균제를 발견한 사연 역시 똑같이 흥미롭다. 그 이야기의 주인공은 대부분의 과학책이 생략하는 바람에 요즘 대다수의 젊은 의사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명민한 두 여성이다. (p. 115)

이 개발과정에 관한 이야기는 과학도나 의대생, 레지던트에게 가르쳐지지 않는다. 이 역사이 단편이 잊힌다는 건 교육자로서의 우리가 실패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알렉산더 플레밍에 대해서는 누구나 알지만, 엘리자베스 헤이즌과 레이첼 브라운에 대해서 아무도 모른다. (p. 118)

 

두 여성 과학자는 흙속의 한 박테리아가 항진균제를 만들어내고 있음을 발견했고, 신약이 개발되었고, 갑자기 부자가 되었으나 비영리 단체에 연구비로 지원했다. 평생 공동연구를 하며 두 가지 항생제를 더 발견했다고 한다. 저자의 항생제 개발연구진행기 사이사이 나오는 항생제의 역사들은 역사라고 하기엔 비교적 최근일이긴 하지만 절묘하게 저자의 연구와 결합되면서 읽는 재미를 더해주고 있으면서도 알아야 할 사실들을 함께일깨워준다.

동물에게 항생제를 무분별하게 쓰는 관행은 슈퍼버그 출현의 주요인 중 하나였다. 동물 안에 사는 박테리아들이 우리가 가진 최고의 약물들에 노출되면서 그것들을 피할 방법을 학습하는 까닭이다. 최근 18개 주에서 100명 이상에게 발병한 감염의 최종 원인은 예기치 않게도 강아지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감염된 개들 거의 전부가 애완동물 가게에서 팔린 것들이었고, 최소 한 차례 항생제를 투여 받은 이 개들 속에 살던 치명적인 슈퍼버그가 새 주인에게 옮겨간 것이었다. (p. 172)

공장식 축산은 그 어떤 동물에 대해서도 그 어떤 결과물을 위해서도 하루빨리 사라져야 할텐데... 그것이 얼마나 인간에게 큰 부메랑으로 되돌아올지 언제 깨닫게 될까...

항생제 관리자는 대개 감염 질환 전문의나 약사로서 그들의 소임은 항생제의 적절한 사용을 권장함으로써 슈퍼버그의 확산을 줄이는 데에 있다. 다음에 병원에서 항생제를 처방받는다면 항생제 관리자의 승인이 있었는지 물어봐야 할 것이다. (p. 185)

현재 의사 대부분은 자신이 행한 처치의 종류(그리고 비용)에 따라 보수를 받는데 감염병 전문의들은 실질적인 처치를 하지 않는다. 우리는 전문 자문을 제공하는 지적 전문의인데 의료수가제도는 우리의 자문에 엄청난 수요를 쫓아가지 못하고 있다. 감염병 분야는 두뇌 유출을 경험하고 있고, 그 정도가 해마다 심해지고 있다. 젊은 의사들은 전임자들보다 감염질환에 관심이 덜하다. (p. 235)

 

의료제도가 다르다 보니 책을 읽으면서 우리네와 많이 다른 진료행위들이 색달랐다. 나는 의사라고 하면 다 환자를 진단하고 처방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미국은 그렇지 않았다. 그러나저러나 의대에서 비인기과들이 생겨나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지식을 창출하려면 데이터가 필요하며, 그것은 좋든 싫든 인체실험에서 나와야만 한다. (p. 299)

인체에 쓰이는 약은 결국 인체에 시험해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임상시험이 중요하다. 그래서 임상시험을 하기까지 굉장히 여러 관문을 통과해야 함을 이 책을 통해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여러 안전장치를 통과하고 나서도 부작용이 있는 약은 있을 수 있다. 완벽한 약이란 없다. 하지만 병은 점점더 완벽해지고 있는듯하다. 끊임없이 새로운 적이 나타나는 의료현장은 그야말로 전쟁터 인듯 하다...

우리의 슈퍼버그 연구는 대부분 항생제 개발과 임상시험에 초점을 두지만, 진단도 그만큼 중요한 역할을 한다. 더 나은 검사는 더 정확한 진단을 의미하며 결국에는 더 정확한 항생제 처방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환자들은 계속해서 불필요한 약에 노출되며, 이는 진단이 불확실할 때 주로 발생한다. 우리는 훌륭한 진단 장비를 사용함으로써 의문을 제거하고 의사들이 항생제가 필요하지 않을 때 항생제를 중단시킬 자신감을 느끼게 해주려는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 비용을 대야 한다. (p. 316)

항생제도 진단의료장비도 결국 비용이 든다. 그리고 그 비용을 감안하고서도 개발에 나서줄 누군가를 찾는 것까지 연구진들이 해내고 있었다.

그의 연구는우리가 항상 알고 있었던 사실, 흙 속의 항생제를 찾기에 가장 좋은 장소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다. 그의 연구팀은 건초더미를 전부 뒤지지 않고도 바늘을 찾아내는 법을 알아냈다. (p. 322)

과학자들은 작은 페트리 접시에서 성장할 수 있는 1%의 미생물만연구해왔고 나머지는 포기했다. (p. 339)

 

이 책을 읽다보면 흙이 굉장히 중요한 것임을 깨닫게 된다. 박테리아 연구에 있어서 흙은 중요한 자원이었다. 미생물은 대부분 흙에서 찾아냈다. 하지만 실험실의 패트리 접시에서는 흙에서 발견한 박테리아의 99%가 자라지 못한다고 한다. 그리고 최근 한 연구팀에서 흙속 미생물을 배양할 새로운 방법을 찾아냈다. 그들의 연구가 좋은 결실을 맺기를 응원 또 응원중이다.

저자는 일관적인 서술을 하는 것 같으면서도 아닌것도 같다. 항생제의 발전과정과 이런저런 슈퍼버그들과 다양한 환자들의 사례를 들면서 이런저런 연구와 임상실험들 이야기를 하면서 뭐랄까 처음도 없고 끝도 없는 느낌이다. 어떤 슈퍼버그에는 어떤 약이 효과가 있고 그 환자는 다 나았는지 그 연구는 어떻게 진행됐는지 알지 못한채 이것저것 섞여있는 상태로 또다시 저자의 다른 새연구계획서 착수로 글은 마무리된다. 다시말해 이 책은 내내 ing 만 있는 책이다.

비전문가인 역자에게 이 책의 번역이 곧 학습의 과정이었듯이 독자 여러분에게도 이 책이 슈퍼버그 문제에 눈을 뜨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에 대한 일각의 비이성적인 반응을 보면서 문제해결의 출발점은 인식이라는 사실을 새삼 실감하게 되는 요즘이다. 질병을 일으키는 박테리아, 진균, 바이러스는 변이를 거듭하며 우리 곁에 늘 존재해왔다.

역사를 돌이켜볼 때 대중의 관심과 인식만이 제도와 관행의 변화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항생제 사용과 내성 발생 비율이 높은 편에 속할 뿐 아니라 항생제 내성 발생률에 영향을 끼치는 가장 큰 요인인 인구밀도까지 높은 한국에 사는우리에게는 이러한 인식이 더욱더 필요하다고 본다. (p. 390~391)

 

옮긴이의 말에 많이 공감이 갔다. 비록 이 책이 어떤 성과를 드러내고 있는 책은 아닐지라도 제대로 된 출발점을 제시할 수 있는 '올바른 인식'을 주는 책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한 과정을 열심히 현재진행중인 현장의 그들에게 새삼 감사하면서도 앞으로도 계속해달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게 좀 미안해지기도 한다.

때로는 임상실험준비에 버거워 하고 때로는 환자들의 고통에 아파하고 때로는 임상실험 참여자들의 질문에 적절한 답을 하지 못하며 혼란스러워 하기도 하지만 저자는 솔직하게 그런 과정을 보여준다. 이런 저자를 성장시켜주고 있는 동료이자 멘토인 월시 박사는 현대판 슈바이처 같은 느낌을 주는 대단한 사람같다. 그리고 저자도 그 모습을 배워가려고 열심인 것을 보며 꼭 그렇게 되시라고 응원하게 된다.

어찌 생각해보면 인류가 사피엔스종이 된 때부터 진화를 멈춘건 인간뿐인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정체되어 있는 신체를 공격하는 바이러스와 박테리아는 끊임없이 진화해 왔다. 흙속에 공기속에 그렇게 눈에 보이지 않게 존재하고 있는 것들이 때로는 적으로 때로는 치료제로 늘 우리곁에 존재하고 있다. 인간은 늘 뒤늦게 발견하고 있을 뿐이다. 과연 미래는 어떤 병과 어떤 약의 전쟁터가 될지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저 이 무거움을 견디며 연구자들이 계속 잘 발견해주기를 바라는 수밖에... 그런 연구자들을 응원하기 위해서라도 많은 사람들이 이 보이지 않는 전쟁에 관심을 갖고 잘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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