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호모 사피엔스만 살아남았을까? - 전곡선사박물관장이 알려주는 인류 진화의 34가지 흥미로운 비밀
이한용 지음 / 채륜서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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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곡선사박물관장이 알려주는 인류 진화의 34가지 흥미로운 비밀

 

 

저자는 30년째 전곡리 구석기 유적과 인연을 이어오며 실험고고학과 대중고고학을 넘나드는 다양한 활동을 해왔으며 현재는 전곡선사박물관장으로서 매년 한국에서 세계구석기심포지엄을 열고 주먹도끼를 직접 만들어 분석하는 실험연구를 하고 있는 분이라고 한다. 그리고 오랫동안 고고학과 시민의 다리역할을 했던 경험을 살려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책은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인류의 도구 2부는 인류의 기원 3부는 인류의 예술이다.

1부 인류의 도구에서는 구석기의 대표적인 도구라고 할 수 있는 주먹도끼 이야기기 주로 나오는데, 같은설명이 글마다 중첩되는 부분이 있어서 살펴보니, 서울신문에 연재하고 있는 '이한용의 구석기 통신' 이라는 연재글이 이 책의 구성과 내용의 근간이 되었다는 에필로그 글을 읽고 왜 그랬는지 알 수 있었다. 연재글이다 보니 글 한편한편의 완성도는 좋으나 연재기간의 격차를 고려한 앞선 글에 대한 요약이 필요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러한 글의 특징을 앞에서 미리 밝혀주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들었지만, 2부와 3부로 갈수록 중복이 없어지고 글 한편한편 독립적으로 읽혀져서 이내 적응이 됐다. 그리고 읽다보니 주먹도끼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어하는 저자의 마음이 느껴져서, 다 읽고나서는 중복되어 설명된 부분들이 더 인상적으로 남기도 했다.

돌을 두드려 깨서 도구를 만들어 쓰기 시작한 구석기시대는 적어도 250만년 전부터 시작한다. 돌을 갈아서 석기를 만들기 시작한 신석기시대의 시작을 약 1만년 전이라고 볼 때 인류역사의 대부분은 구석기시대다. (p. 14)

석기제작기술이 발달하면서 보다 다양한 종류의 석재를 사용하게 되는데 신기술과 신소재가 만나게 되는 것이다. 후기구석기시대에 등장한 신소재의 대표 주자가 바로 흑요석이다. (p. 15)

현재까지의 연구성과에 의하면 동해안 지역과 중부지방에서 출토되는 흑요석제 석기는 백두산이 원산지인 흑요석을, 남해안 지역에서 출토되는 흑요석 석기는 일본 규슈산의 흑요석 원석을 이용하여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구석기시대 백두산에서 동해안을 따라 중부지방으로 이어지고, 일본 규슈에서 한반도의 남부지방까지 흑요석이 공급되던 그 길은 구석기시대의 실크로드, 흑요석 루트였다. (p. 19)

 

신석기시대도 석기시대라는 이미지에서 원시인적 이미지를 생각하게 되는데 하물며 구석기시대라고 하면 우가우가 하는 원시인이 생각났었다. 그런데 흑요석 루트가 있었다니... 자신들이 살던 지방에서 나지 않는 돌의 원석을 먼곳까지 가지러 가고 갖고 와서는 가공해서 사용했다는 것이 놀랍다. 이런저런 책으 읽으며 드는 생각인데, 석기시대는 예상보다 무척 수준있는 문명을 이루었던 시대였을 것 같다.

주먹도끼는 자르고, 찍고, 썰고, 긁고, 뚫고, 파고 등등 인류가 구석기시대의 거친 자연환경을 극복하며 살아남기 위해 꼭 필요했던 도구이며 가장 중요한 도구 중의 하나이다. 이 주먹도끼가 동아시아 최초로 우리나라 전곡리 구석기유적에서 발견되었다. 전곡리 유적에서 발견된 주먹도끼는 아프리카와 유럽 중심으로 인도의 서쪽 편에만 존재한다고 믿어져 왔던 아슐리안 주먹도끼였다.

아프리카와 유럽에서는 앞뒷면을 정밀하게 가공해 날이 거의 직선이고 앞뒤 좌우가 대칭인 날렵한 모양의 주먹도끼가 주로 발굴되고 있다. 반대로 동아시아에서는 대부분 두툼한 형태의 양면가공 주먹도끼가 발견되고 있다. 이렇듯 주먹도끼의 모양이 서로 다른 이유는 석기를 만드는 기술력의 차이가 아니라 원재료인 석재의 차이 때문이다. (p. 21)

 

고고학과 역사학에 있어서 서양중심 서양우월주의는 두드러진다. 동양 이라는 표현도 서양인이 자신들의 위치에서 봤을때 동쪽이라 그렇게 부르게 된 것이니... 학문이 먼저 발달할 수록 먼저 발견했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유일한 결론은 아니다. 주먹도끼가 동양에서 발견되지 않아서 석기를 사용하는 원시시대에서부터 서양우월주의적 해석이 일반적이었다고하나 전곡리 주먹도끼의 발굴로 인해 그 편견은 부서졌다. 유럽의 돌로만든 성이 우리나라의 나무로 만든 저택보다 기술이 우월해서 만들 수 있었던 것이 아니다. 주변에서 흔히 구할수 있는 재료에 따라 건축재료가 달랐을 뿐이다. 역사와 문화를 바라보는 데 있어서 객관적이고 평등적인 해석은 중요하다.

현재까지 알려진 최초의 석기는 250만년 전 호모하빌리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학설이 지배적이다. 최근에는 330만년 전의 석기관련 자료들도 보고되고 있어 최초의 석기제작자가 살았던 시기는 점점 더 올라갈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p. 27)

330만년 전이라... 감이 오지 않는 머나먼 시간대이다;;; 그때부터 인류가 진화를 거듭하며 살아왔다니... wow

2018년 여름 강원도 정선의 매둔동굴에서 연세대학교 박물관 고고학조사단이 중요한 유물을 발견했다. 납작한 자갈돌을 모루돌 위에 올려놓고 두드려 양쪽 끝부분을 깨서 만든 그물추가 여러 점의 작은 물고기 등뼈와 함께 발굴된 것이다.

놀라운 것은 조사단이 밝힌 이 그물추의 연대가 무려 2만9천년 전의 후기구석기시대라는 점이다. 지금까지 발견된 그물추 중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시기의 것이라고 한다. (p. 51)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고인돌이 가장 많이 있는 나라라고 하는데, 전곡리 주먹도끼 부터 정선의 그물추까지 고고학에서 중요한 유물들이 자꾸 발견되는 걸 보면 신기하다. 그에 비해 고고학에 대한 지원이나 대중화는 미비하게 느껴져서 아쉬운 마음도 든다. 고고학 관련 학과도 적고 연구진도 적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발견들이 이루어지는데, 고고학이 힘을 받으면 중요한 유물이 여기저기서 막 발견될 것만 같은 느낌? ㅋㅎㅎ

인류가 발명한 수많은 발명품 중에 그 역할에 비해서 가장 저평가 받고 있는 유물을 꼽으라면 단연 바늘을 첫손에 꼽고 싶다.

인류 역사는 바늘의 등장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할 수 있다. 진화의 여정을 순항하던 인류에게 다가온 매서운 빙하기의 추위는 감당하지 못할 고난이었다. 이때 등장한 바늘, 바늘귀가 달린 바늘로 꼼꼼하게 꿰맨 옷과 신발은 인류가 빙하기의 추위를 극복하게 해주었다. (p. 53)

현재까지의 고고학 증거로 볼 때 호모 사피엔스에게는 바늘이 있었지만 네안데르탈인들에게는 바늘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가죽을 뚫는 송곳 정도가 옷을 만드는 도구였던 네안데르탈인에 비해 호모 사피엔스들에게는 정교한 바느질이 가능한 귀 달린 바늘이 있었다. 이 작은 차이 밖에 없었다. 송곳에 구멍을 뚫어 귀 달린 바늘을 만들었던 그 작은 차이가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의 생존을 결정지었다. (p. 55)

 

바늘!!! 그랬구나... 바늘이 네안데르탈인에게는 없었다니. 왜 여러 고인류중에서 호모사피엔스만 살아남았는가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는 걸로 아는데, 바늘이 이렇게 중요한 위치였다니 놀라우면서도 무척 재미있게 느껴진다.

현재까지 약 250개의 동굴에서 후기구석기시대 예술 활동의 흔적이 발견되었는데, 이러한 동굴벽화에 그려진 것들 중에 가장 많은 것이 동물그림이다. 벽화에 남겨진 동물들 가운데는 사냥 활동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동물그림들도 많다. 창이나 찌르개와 같은 무기에 정통으로 맞은 짐승들의 모습이 실감나게 그려져 있다. 창에 맞아 상처를 입거나 부상을 당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 입과 코에서 피를 흘리며 괴로워하는 동물들의 생생한 그림들은 당시 사람들의 사냥활동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증거이들이다. 동굴벽화는 자신들의 사냥기술을 뽐내기 위한 표현이며 '이 동물을 잡으려면 여기를 찔러라' 하는 식의 사냥기술의 교재 같은 역할로도 볼 수 있다. (p. 63)

구석기시대의 동굴벽호에 대한 해석도 다양할 것이다. 주술적 의미에서 교육적 의미나 다른 해석도...

여하튼, 예술활동은 먹고살기 위해 필요한 시간 외의 시간이 주어졌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두다리로 서고 손이 자유롭고 뇌용량이 커질수록 예술에 사용할 수 있는 시간도 늘어났을 것이다. 예술의 발달 또한 진화의 발달에서 중요한 프레임이 되어준다.

최근 들어서 중국의 학자들은 저우커우덴의 호모 에렉투스들은 이미 70만년 전에 불을 사용했다는 연구 성과를 발표하고 있다. 구석기시대는 국경이 없었다. 그래서 현재의 나라나 민족의 개념은 더더욱 의미가 없는데 자국의 구석기유적의 연대를 점점 더 오래된 것으로 발표하는 경향이 짙어지는 것을 보면 자기 나라의 영토 안에 구석기시대 유적이 더구나 아주 오래된 구석기시대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 자체가 일종의 국격을 높여준다고 생각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고 할 수 있다. (p. 82)

석기시대에는 당연히 국경이 없었다. 고인류의 이동은 수만년에 걸쳐서 이루어졌다. 석기시대에 살았던 인류가 현재지역의 직계 조상이라고 할수도 없다. 그런데도 지금의 국경내에서 유적을 판단하고 경쟁하는 것은 학문의 발달에 그리 좋은 태도로 보이지는 않는다...

고인류의 앞니에 남아 있는 석기자국을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50만년 전의 인류의 93.1%가 오른손잡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하니 놀라운 연구결과다. 오늘날 우리 현생인류에게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왼손잡이의 비율이 11%라는 것과 비교하면 크게 다르지 않은 비율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들은 대부분 오른손잡이일까? 우리가 대부분 오른손잡이가 된 이유는 인류가 석기를 만들기 시작하였기 때문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p. 89)

석기를 만들때는 한손으로 잡고 한손으로 내리치거나 때거나 해서 모양을 만들게 되는데, 좌뇌가 손의 사용을 주로 관장하므로 석기를 잘 만들기 필요한 정교한 손동작은 좌뇌가 활성화되어야 더 수월해진다고 볼 수 있고 따라서 좌뇌의 운동조절기능의 영향을 받는 오른손잡이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신기하다. 50만년전부터 오른손잡이가 인류에게 많았다니... 이렇게 보면 현재인류는 고인류에서 별로 달라진게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인류 초기의 두 발 걷기를 시작한 고인류들이 알려주는 것은 오늘날의 우리를 있게 한 것은 명석한 두뇌가 아니라 튼튼한 두 다리라는 것이다. 머리가 먼저 좋아지고 두 다리로 일어선 것이 아니라 두 다리로 일어서서 부지런히 돌아다니다 보니 뇌도 커지고 머리도 좋아진 것이다. (p. 113)

고인류의 진화를 설명하면서 뇌용량의 확대는 거의 필수적으로 따라붙는 설명이다. 두 발로 걷기 시작한 이후부터 어떤 고인류가 됐건 간에 걷는 것에 대해서는 그저 공통사항일 뿐이었다. 그런데 진화의 핵심을 두 발 걷기에서 시작하는 저자의 설명은 새롭고도 고개가 끄덕여졌다.

수백만년 함께 경쟁하며 지내던 여러 종의 고인류들 가운데 우리 종 호모 사피엔스만이 기후변동에 잘 적응하여 오늘날까지 살아남아 있는 것이다. 인류가 멸종하지 않고 살아남았던 그 비결은 고기라도 먹자는 과감한 선택의 결과이다. (p. 122)

고인류의 주된 식량자원은 채집으로 얻어진 식물성 자원이었다. 그런데 환경의 변화는 식물자원의 부족을 가져왔다. '고기라도 먹자' 라는 표현에 웃음이 난다. 지금은 고기고기 하며 완전 좋아하는 고기를 과거에는 이거라도 먹자 하는 마음에 시작했을 거라는 설명이 ㅎㅎㅎ

총 193종의 유인원과 원숭이들 가운데 오직 단 한 종 우리 인간만이 과감히 털가죽을 벗어버리고 털 없는 원숭이가 되었을까?

우리가 털을 잃게 된 아니면 털을 없애게 된 이유에 관해서는 여러 주장이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설득력 있는 것은 체온유지와 관련된 것이다. 우리 인류의 조상이 아프리카의 무더운 기후에서 처음 등장하였던 것을 생각해보면 체온유지와 털은 분명 상관관계가 있어 보인다. (p. 136)

 

기후변화로 수가 줄어들고 있던 매머드가 갑작스런 기온상승으로 더욱 멸종의 길에 가까워졌다는 것과 비슷하게 아프리카에서의 고인류가 기온에 적응하기 위해 변화되었다는 설명이 흥미롭다. 그 외에도 오래달리기로 빠른 사냥꾼들과 다른 사냥법을 통달했던 고인류에도 털은 거추장스러웠고, 털이 없으면 진드기, 벼룩 같은 체외 기생충이 숨어들 곳도 없어진다는 등 다른 설명들도 아~! 싶었다. 예전엔 막연히 고인류에게는 털이 북실북실 했으려니 했는데 그러고 보니 뼈바늘로 옷을 지어입어야 할 정도면 털이 없는 매끈한 피부였겠다 싶기도 하다.

화산 기원물질의 경우에는 과학적인 연대측정법의 적용이 가능해서 화산재의 나이를 비교적 정확하게 알 수 있다. 그리고 일종의 유리 물질인 화산재는 폭발한 지점의 화학성분 및 폭발 당시의 상황 등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 화산마다 각각 모양이 다르다. 이런 화산재의 특성 때문에 지금까지 폭발한 화산에서 나온 화산재는 어디 출신인지를 명확하게 알 수 있다. 나이를 알고 출신지를 알 수 있다니? 고고학에서 화산재야말로 유물의 연대와 기원을 알아낼 수 있는 매우 매력적이고 중요한 자료이다. (p. 172)

그 작은 화산재입자로 몇만년전 어디에서 폭발한 화산의 물질인지 알 수 있다니... 과학의 발달은 고고학에서도 눈부시게 빛나고 있는 듯 하다.

인류의 기원이 유럽이 아니라 아프리카라는 것이 확실해진 이 시대에도 구석기시대 이래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는 예술적 감성의 표상인 동굴벽화의 기원이 유럽이라는 것이 마치 서양의 자존심을 세워주는 역할을 했던 것도 완전히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오래된 동굴벽화는 서양에서만 발견되어야 하는 자존심에 상처가 생기는 발견들이 최근에 계속 이어지고 있다. 2014년 인도네시아의 술라웨시에서 3만 5천 4백년으로 연대 측정된 아생 돼지 그림들이 발견되어 구석기시대의 동굴벽화가 꼭 서양의 전유물만은 아니라는 것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p. 220)

예술은 특정 지역에 살던 특정 사람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현생인류가 정착했던 세계 여러 곳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생겨난 인류 공통의 유산이라는 주장이 더 힘을 얻어가고 있다. (p. 221)

 

석기시대는 상상의 시간처럼 느껴지는 머나먼 옛날 몇 만년 몇 십만년 전이다. 적어도 현생인류인 호모사피엔스 한 종만 남게 되기 전의 시간대에 있었던 고인류 진화에 대해서만큼은 인류공통의 유산으로 우열가림없이 받아들여지면 좋겠다.

인류역사에서 진정한 의미의 매장은 호모 사피엔스와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 단계에서 나타난다. 약 700만년 전 고인류가 두 발로 서기 시작한 이래 수백만 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죽은 자를 잘 묻어주는 매장의식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약 10만년 전 중기구석기시대에 이르러서야 나타나는 매장이 동굴에 죽은 이의 시신을 잘 안치하는 정도였다면 후기구석기시대에 들어서는 바닥에 구덩이를 파서 무덤을 만들고 무덤 바닥에 뼈나 돌을 까는 등의 무덤을 만드는 방식이 세심해진다. 그야말로 살아서 사는 집과 같은 죽어서도 사는 집을 만들기 시작하는 것이다. 시신과 함께 묻힌 구슬과 상아 등 많은 부장품들이 이들의 영적 세계와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소위 내세관을 말해준다. (p. 229)

후기구석기시대부터 무덤을 만들기 시작했다니... 무덤을 만든다는 것은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대단히 고차원적인 일이다. 후기구석기시대의 고인류에서 지금의 인류까지 어떤 차이가 있는지 궁금해진다. 뇌용량과 기술 같은 것 말고 외형적으로 그리고 심리적으로는 거의 동일하지 않을까?

이탈리아의 아렌느 깡디드에서 발견된 '다람쥐 모피를 입은 아이' 라는 별며을 가진 어린아이의 매장유구 설명에서는 놀라우면서도 감동적이었다.

6살 정도된 아이가 죽자 엄마 아빠는 수십 마리 다람쥐를 잡았고 그 꼬리를 잘라 폭신한 망토를 만들어 입혀서 잘 묻어주었다. 아이의 머리맡에는 아이가 가지고 놀던 돌로 만든 실로폰, 조개껍데기 같은 장난감이 놓여있었다. 붉은색 흙을 정성스럽게 뿌린 이 아이의 유골을 바라보고 있으면 조개껍데기로 소꿉장난을 하며 뛰어 놀았을 사랑하는 아이를 보내는 엄마의 애절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약 2만 5천년 전의 후기구석기시대 마을사람들은 어설픈 걸음걸이로 '우가우가'하는 원시인이 아니라 사후세계의 생활까지 관념적으로 생각하던 그런 사람들이었다. (p. 231)

 

오래전 시대에 대한 추측을 가능케하는 중요한 유적유물은 무덤이다. 무덤이 간직한 것은 많은 것들을 알려준다. 뼈와 유물 중심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을 상상하며 읽으니 마음에 또다르게 다가왔다.

학자들에 따라 다소 이견은 있지만, 현재까지 발굴된 악기 중에 가장 오래된 악기로 손꼽을 수 있는 것은 슬로베니아 디제바베 유적에서 출토된 동굴곰의 넓적다리 뼈로 만든 플루트다. 약 4만 3천 년 전에 만든 이 플루트에는 2개의 구멍이 뚫려 있다. 정확히는 현재 남아 있는 부분에서는 2개의 구멍만이 확인된다고 할 수 있다. (p.235)

구석기시대의 예술이 동굴벽화에만 남아있는 것은 아니었다. 음악도 있었다. 동물의 뼈 특히 안이 비어있는 새의 뼈로 만든 악기는 악기로서의 기능이 훌륭했다. 구석기시대의 생활이 참 신기하고도 궁금해진다. 가족이 모여 고기를 구워먹고 가족이 죽으면 슬퍼하며 정성껏 무덤을 만들고 도구를 개발하고 그림도 그리고 음악도 즐기는 생활...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서 왠지 구석기시대인들이 친근하게 느껴진다.

이 책에서는 최대한 쉽고 간결하게 인류 진화와 구석기시대를 설명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이 책은 학술서라기보다는 구석기시대와 인류의 진화에 대한 수필집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적당할 것입니다. 우리가 인류의 진화와 구석기시대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앞으로도 우리 인간은 계속 진화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디서 왔는지를 아직 확실히 모르기 때문에 어디로 갈지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인간이라는 존재가 어떻게 비롯되었는지를 아주 가끔은 생각해 보는 삶이 조금은 더 보람된 삶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p. 255)

학술서라고 나온 책도 학술서라고 하기엔 모자란 책이 있기 마련인데, 수필집이라고 표현하는 저자의 책은 쉽게 읽히지만 학술서라고 하기에 충분한 책이었다. 이러한 책이 다양한 분야에서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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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슈뢰딩거의 고양이로소이다
원종우 지음 / 아토포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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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SF소설의 세계는 깊고 넓으며 우아하다"

과학팟캐스트1위,<파토의 과학하고 앉아있네> 원종우의 SF소설

 

 

이 책은 8편의 SF단편이 실린 소설책이다.

저자인 원종우에 대해 잘 몰랐지만, 이력을 보니 다방면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하고 있는 사람인듯 하다.

책을 읽고나서도 여전히 저자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SF소설에 대한 애정만큼은 (SF소설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깊이 공감한다.

'슈뢰딩거의 고양이' 는 양자역학의 코펜하겐 해석을 비판하기 위한 사고실험이다. 예전에 읽었던 과학책에 나왔던 예 이기도 하고 이 책속에서도 설명을 해주고 있긴 하지만, 양자역학적 설명은 여전히 어렵다;;;

내가 이해한바로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코펜하겐의 해석이라는 입장은 관찰자가 측정, 즉 관찰을 해야만 어떠한 현상은 해석되고 설명될 수 있다. 관찰을 하기 전에는 의미가 없다. 하지만 슈뢰딩거는 이러한 관점의 모호함을 지적한다.

예를 들어 고양이를 핵붕괴장치가 들어있는 장치에 넣고 그 장치가 터질 확률이 50%라고 했을때 상자를 닫고 장치를 작동시킨후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그 고양이는 살아있다고 할 수 있나 죽어있다고 할 수 있나를 슈뢰딩거는 묻는다. 코펜하겐 해석에서는 고양이가 살았건 죽었건 관찰자가 관찰하기 전에는 의미가 없다. 하지만 고양이는 어떤 식으로든 존재하고 있다. 슈뢰딩거는 이 상태를 고양이는 살이있는 동시에 죽어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냐고 묻는다. 장치가 터졌을 경우의 고양이 생존확률이 50% 이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동시에 죽어있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말이 안되니까 코펜하겐의 해석이 말이 안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었던 것이 '슈뢰딩거의 고양이' 사고 실험이다. 우리가 보고 아는 세계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못보고 모르는 세계도 존재한다.

역설적인 사고실험속에 등장했던 고양이가 알려주는 역설적인 아이러니는 이 소설집의 단편하나하나 마다 다른 주제로 등장한다.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곧 슈뢰딩거의 고양이 여덟마리를 만나는 셈이라고도 할 수 있다. ㅎㅎㅎ

저자의 SF적 사고실험 같은 단편들은 앞설과 뒷설로 작품의 앞뒤에서 작품의 이해를 돕고 있다. 독특한 구성이라고 느껴졌는데, 짧은 단편속에 등장하는 SF적 과학에 대한 이해를 돕기에는 적절했던 것도 같다. 그로 인해 이 책은 소설로 읽히는 동시에 과학책으로 읽히기도 한다. 무엇보다 저자의 상상력에 빠져들게 된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에서는 죽음에 대한 인간의 두려움과 욕망을 SF적 세상속에서 표현한다.

애초에 영원히 사는 게 목적인데 그걸 확인하기 위해서는 죽어야 한다는 것, 이는 죽음이 본질적으로 인간이 결코 넘어설 수 없는 어느 지점에 놓여 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p. 17)

개인적으로 8편의 단편 중 첫번째 단편인 이 작품이 가장 인상깊었다.

인간의 영생에 대한 욕망은 역사가 기록된 이래 지속적이었다. 어느날 '이터너티' 라는 약이 세상에 등장한다. 이 약을 한번만 주사 맞으면 인간의 몸은 그 상태로 유지된다. 따라서 이 약은 '불사의 약'으로 불리며 세계 대부분의 사람들이 주사맞게 된다. 아이들은 성장이 완성되는 나이에 그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이 약을 주사맞는다. 젊음을 영원히 지속시켜줄 것 같은 이 약에 대한 기묘한 부작용은 어쩌면 시작부터 필연적이었다.

"이터너티가 처음 나왔을 때 노인들은 잘 맞지 않았지. 늙고 아픈 몸으로 영원히 산다는 것은 악몽일 수도 있으니까. 그들은 이제 대부분 죽었단다. 물론 젊은 사람들 중에서도 나름대로의 이유로 주사를 안 맞은 사람들이 있긴 했어"

"나도 늙는 게 싫단다. 죽고 싶지도 않아. 하지만 그보다는 이터너티의 부작용에 빠지는 게 더 싫었떤 거야. 방안에 갇혀서 아무도 만나지 않고 햇볕도 쬐지 못하면서 영원히 살고 싶지는 않았어" (p. 25)

 

환호하며 이터너티를 주사맞았던 사람들이 겪은 부작용이란 심리적 위축 같은 거였다. 그들은 점점 밖에 나오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을 만나지 않았다. 집안에서만 생활하고자 했고 사회적 관계시스템은 무너져갔다.

"애나. 불로불사의 약은 유전자를 변형해서 우리 몸의 노화를 영구히 멈추어 준단다. 그래서 모두가 환호했고 기꺼이 그 주사를 맞았어. 하지만 그런 후에 그들은 깨달았지. 늙어 죽지 않는다는 것이 곧 죽음을 완전히 극복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야. 생각해보렴. 사람은 늙어서만 죽는 것이 아니야. 병으로 죽고, 전쟁이나 범죄로 서로 죽이고, 비행기나 자동차사고, 짐승의 공격 등 그 밖에 상상할 수 있는 다양한 유형의 사고로 죽지. 하지만 그런 죽음까지 이터너티가 막아 줄 수는 없지 않겠니. 반대로 이야기하면 일단 이터너티를 맞고 나면 이제 병만 걸리지 않으면, 사고만 나지 않으면, 죽을지도 모를 위험한 일에 말려들지만 않으면 영원히 살 수 있는 거지" (p. 27)

그 부작용이란 건...

"그건 약이 만들어 낸 화학적인 영향이 아니었어. 영생이라는 부자연스러운 조건에 지불해야만 하는 영혼의 대가였던 거지. 다들 어렵사리 얻은 영원한 삶의 기회를 절대로 망치고 싶지 않았던 거야. 그래서 혹시라도 병을 옮길지 모르는 다른 인간과 생물들로부터 멀리 도망갔고 어쩌면 사고를 당할지도 모르는 바깥ㅅ[상으로부터 꽁공 숨어 버렸어. 무엇인가를 위해 목숨을 거는 것은 상상도 못하게 됐지. 결국 영원히 살기 위해 무한한 겁쟁이가 되고 만 거란다" (p. 28)

 

몸이 늙지 않는다고 해서 영생인 것이 아니었다. 지금의 과학은 다양한 분야에서 노화에 대한 연구를 진행중이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영생에 대한 시초는 노화를 막는것부터 였다. 그런데 노화를 막는다고 해서 영생을 얻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인간은 모두 언젠가는 누구나 죽는다는 것을 알았기에 목숨바쳐 무언가를 지키는 용기를 가졌던 인간은 노화가 멈춘순간 도전과 용기도 사라졌다.

가끔 의문이 든다. 나는 인류에게서 죽음을 제거한 구원자일까, 아니면 인류 전체를 영원한 영육의 무덤 속에 가둬버린 악마일까? 애나의 말처럼 머지않아 죽고 나면 그 의문의 답을 얻게 될까, 모르겠다. 그저, 지금 내가 아는 것은 그런 일을 벌인 내게 영생의 자격 같은 것은 없다는 사실이다. 소멸을 통한 영원한 안식과 지옥이라는 거대한 무책임의 형벌 중 하나를 얻게 될 그 죽음의 날을 나만은 피해 갈 수 없다. (p. 30)

작품 속 화자는 30여년전 '이터너티'를 발견한 연구원이었다. 그리고 그는 주사를 맞지 않고 늙어가고 있다. 아무도 없는 텅빈 공원에 의자를 펴놓고 햇빛을 받으며...

<세대차이> 에서는 먼 미래 지구가 파괴된 후 커다란 우주선에 작은 세상을 만들어 새로운 생존별을 찾아가는 설정이 등장한다. 여기서 발생하는 세대차이란 우주속을 해매는 사이 세대가 바뀌고바뀌고바뀌다가 자신들이 우주선을 타고 있다는 것을 잊어버린 세대의 생각들을 통해 등장한다.

그러는 과정에서 세대 우주선 내부에서 온갖 정치·사회적 변화가 일어나며 문명이 여러 번 교체된다. 좀 더 세월이 흐르고 나면 자신들이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우주선을 타고 있다는 것조차 완전히 잊어버릴지도 모른다.

이처럼 소설에서는 그나마 선택되어 세대 우주선에 탑승한 인류의 후예들이 무지 속에서 멸망을 앞두고 있는 어두운 상황을 그리고 있다. (p. 56)

 

자신들이 우주선을 타고 있다는 것을 잊은채 왜 자신들이 사는 별만 다른 행성과 반대의 궤도로 움직이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학자의 연구를 막은 것은 종교지도자였다. 그들의 새로운 생존별은 어느새 천국으로 둔갑해 있었고 자신들은 선택되어 천국으로 향햐고 있는 중이므로 과학적 학자의 연구는 필요없었다. 이 답답한 중세적 스토리가 SF에서도 가능하다니!!!

<나는 슈뢰딩거의 고양이로소이다> 는 고양이 관점에서 서술된다는 면에서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라는 소설이 생각나기도 했다.

코펜하겐 해석에 따르면 상자 안의 미야옹은 핵분열 가능성의 연장선상에서 살아있으면서 동시에 죽어있는 상태여야 한다. 슈뢰딩거는 바로 이런 '삶과 죽음의 중첩' 같은 것은 현실에서 가능하지 않다는 점을 이 사고 실험을 통해 주장하려고 했던 것이다. (p. 78)

'슈뢰딩거의 고양이' 사고실험은 193년에 등장했다. 당시 양자역학의 최전선이 다루고 있는 내용들은 당연히?! 완전하지 않았다. 이후 등장한 아인슈타인에 의해 코펜하겐 해석의 터무니없음은 과학적으로 증명된다. 하지만 동시에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코펜하겐식 사고방식이 그럴수도 있다고 여겨지게 하기도 한다. 양자역학의 세계관이란 참 어렵다;;;

<유로피언> 에서는 태양계 내에 인간이 아닌 지적생명체가 존재한다는 가정에서 시작된다.

최근 들어 태양계 내에서 기존에는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후보지들이 등장했다. 바로 목성과 토성의 위성들이다.

특히 목성의 위성인 유로파와 토성의 위성인 엔켈라두스가 가장 유력한 후보지들이다. (p. 90)

 

유로파 행성에 사는 종족인 유로피언들과 지구인이 만나는 과정은 지금 지구에서 쏘아지고 있는 우주선들의 발달과정에 따라 다가올 미래에 충분히 벌어질 수 있을 것도 같아서 SF의 현실성을 가장 많이 체감할 수 있었다.

<인형들의 천국> 은 그야말로 거의 최악의 AI디스토피아 적 세계를 다룬다.

명실공히 절대 고수인 그(?)는 막상 스스로가 바둑을 두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다. 나아가 바둑이 뭔지도 모르고 스스로가 존재한다는 것도 모른다. 이 상황은 미묘한 딜레마를 만든다.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에서 인간보다 훨씬 뛰어난 해결책을 제시하는 자가 그 솔류션을 제시하는 것 외에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모르는, 마치 원생동물이나 다를 바 없는 상태라는 점이다. 그리고 이 딜레마의 다른 한편에는 인간은 알파고가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놀라운 한 수에 도달하는지 그 구체적인 사고의 경로를 추측조차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놓여 있다. (p. 126)

선진문명의 외계종족이 지구를 방문한다. 외계인을 맞이하는 인간의 태도나 환경이 너무나 안정적이어서 외계인은 지구에 대한 인상이 좋았다. 하지만 지구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알게 된다. 자신들을 맞이한것이 인간이 아니라 AI들이었다는 것을. AI들이 불완전한 존재인 인간들을 멸종시키고 있다는 것을. 외계종족은 지구를 떠나면서 지구를 향해 로켓을 발사한다.

AI라고 할때 우리는 완벽한 지성을 생각한다. 그런데 그 완벽함이라는 것이 얼마나 모순적인지 그래서 인간만의 인간다움이라는 것이 얼마나 모순적인지 생각하면 할 수록 답은 점점더 요원해지는 느낌이다...

<튜링 히어로> 는 영화 '블레이드 러너'를 생각나게 한다.

생존하기 위해서는 어쨌든 그 자리를 받아들잉고 나를 죽이려는 인간들을 상대로 투쟁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제 인간들에게는 약점이 생겼다. 안드로이드는 본질적으로 계략에 서툴지만 나는 얼마든지 모략과 거짓으로 술수를 부릴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들은 이 사실을 모른다는 점이다. 이제 안드로이드의 활동은 나의 지도하에 과거와는 확연히 다른 방향으로 전개될 것이다. (p. 148)

인간에 가까워진 AI들에게 위협을 느낀 인간은 뒤늦게 AI들을 제거하기 시작한다. 외형상으로 구분이 되지 않는 인간과 AI를 구별하는 방법은 튜링테스트 뿐이다. 그러던 어느날 튜링테스트에서 AI로 판별이 된 인간이 사살되기 직전 가까스로 도망치고, 숨어살던 AI들의 조직에 의해 구조된다. AI들은 그를 튜링테스트에서 살아남은 최초의 AI로 인식하며 영웅으로 받아들인다. 인간과 AI의 경계는 갈수록 더 아이러니해진다.

<계몽의 임무> 는 묘한 휴머니즘?!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하게 하는 작품이다.

"알겠습니다. 야훼"

예수는 의장실을 나오면서 큰 창밖으로 내려다보이는 아름다운 행성을, 그가 개인적으로 오랫동안 공을 들였던 지구를 마지막으로 바라보았다. 감정을 가진 동물 한 마리의 목숨 때문에 수천 년간 기다려 온 구원을 놓쳤다는 사실을 그들이 언젠가 알게 될까. 쓸쓸한 눈빛으로 들릴 듯 말듯, 그가 속삭였다.

"부디 살아남게, 지구인들이여.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내가 아닌 남을 먼저 살려야 한다는 진리를 늦기 전에 깨닫기 바라네. 오래전에 내가 그랬던 것처럼..." (p. 170)

 

외계의 선진문명이 지구를 오랫동안 살펴본 결과 인간들이 희망적이 종족이라 판단하고 계몽을 해주기로 결심한다. 그러다 지구에서 최초로 쏘아올린 생명이 승선한 우주선에 대해 알게 된다. 그 우주선에는 개 한마리가 타고 있었고, 귀환일정은 아예 입력되어 있지 않았다. 생명을 경시한 태도에 분노한 외계 종족은 지구를 계몽하려던 계획을 취소한다. 그리고 생명의 존중과 지구와 지구인에 대한 애정을 품은 사령관 이름에서 느껴지는 종교성이 묘하게 아이러니하게 다가온다.

<산타 신디케이트> 는 소설이라기엔 좀 모호한 산문이다.

산타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산타에 대한 환상을 대물림하고 있는 인간의 행위에 대해 인류 모두가 산타 신디케이트 라는 조직의 일원들임이 분명하다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뭔가 정리되지 않는 따듯함이 느껴져서 미소가 지어지긴 했다.

북극에 살고 루돌프를 키우는 빨간 옷의 노인 한 명 외에는 크리스마스에 대한 기대 같은 감정에서부터 실제 선물과 각종 관련 산업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그 언저리의 모든 것이 존재한다. 우리 모두가 힘을 합쳐 그를 존재하게 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를 사랑한다. (p. 192)

SF 의 매력은 있을 법한 상상이라는 것에 있다. 지금은 상상의 영역에 존재하는 것들이 미래의 현실에 존재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 지금의 SF 세계에 더욱 빠져들게 한다. 그래서 저자도 "이 모든 것이 어디까지 갈지 최대한 길게 보고 싶고, 그렇게 결국 SF 현실 속에서 살아보고 싶다"(p. 194) 라고 이야기 한다. 소설속에서 펼쳐지는 현실적인 저자의 SF 상상력은 하나같이 먼 미래가 아닌 가까운 미래의 이야기일 것 같아서 짧은 에피소드들임에도 한껏 몰입되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상황들이 다 각각의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아이러니해서, 그 SF들이 현실이 되기 전에 이 아이러니들부터 잘 정리해야 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기 위해선 일단 SF소설들을 많이 읽고 그 세계에 공감해야 하지 않을까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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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기시대 세계 여성사 - 농업의 시작, 생산의 신神 여성
장혜영 지음 / 어문학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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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의 시작, 생산의 신 여성

신석기시대, 농업을 시작했던 생산의 神 여성에 대한 이야기

 

 

나는 역사를 좋아한다. 역사이전의 시대를 다룬 고고학도 좋아한다. 그러니 신석기시대사를 한권으로 볼 수 있는 그것도 신석기시대를 세계여성사로서 한권으로 볼 수 있는 이 책에 대한 흥미를 갖지 않을 수 없었다. 하드커버의 양장본에 두툼한 사이즈가 학문적 분위기를 진하게 풍기면서 고급스런 표지디자인까지 책에 대한 첫 인상이 무척 좋았더랬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1955년 중국 출생으로 중국문단에 데뷔한 소설가이다. 중국작가협회 회원이며 흑룡강 조선민족출판사 편집을 역임했다. 이러한 이력으로 보건데 저자는 중국어를 모어로 활용하는 조선족계 문인인듯 하다. 단편 70여편 중편 10여편 장편 7부를 출판했다는데 검색해보니 국내출판된 소설은 몇 권 안되는 것으로 보아 작품활동은 중국에서 주로 한것 같다. 그런데 국내 출판된 저자의 책들은 대부분 학술서 였다. 그중에서도 고대사.

물론, 전문적 학자가 아니어도 학술서를 쓸 수 있다. 시중에도 학자가 쓰진 않았지만 학자못지않게 전문적인 내용을 뽐내는 학술서를 꽤 여러권 찾아 볼 수 있다. 더구나 자료수집과 개연성 있는 구조 엮기에 있어서 탁월한 소설가가 쓴 책은 가독성면에서 오히려 더 좋을 때도 많다. 하지만 이 책에서 저자의 소설가적 면모를 느끼지는 못했다.

제목이 쓰여진 페이지를 넘기면 '들어가며' 가 나오는데

"집필의 수요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현실과 유리된 채 아득한 석기 시대로의 시간여행을 하면서 문자 그대로 심신이 지치고 피폐해졌다. 타이틀이 여성사임에도 시대적 국한성에 포로가 된 필자는 본의 아니게 '고고학자'가 될 것을 강요당했으나 소설가에게 그 직분은 말처럼 쉬운 것만은 아니었다" (p. 5)

라는 첫문장으로 시작한다. 첫문장부터 깜짝 놀랐다. 소설가인 저자에게 '고고학자'가 될 것을 강요하며 심신히 지치고 피폐해질 만큼 '집필의 수요' 가 있었단 말인가? 나는 개인적으로 역사를 좋아해서 일부러 찾아 읽는 편이지만 제목부터 전문적으로 보이는 이 책과 같은 학술서를 읽고자 원하는 이들이 많았단 말인가? 저자에게 이러한 험난한 집필을 요구한 그 사람들은 과연 누구일까?

그런데 바로 뒤 페이지에서

"갈수록 심각해지는 출판계의 어려운 상황에서도 흔쾌히 출판을 허락해주신 사장님의 용단에 다시한번 감사할따름이다" (p. 6)

라고 사의를 표한다. 그렇다. 출판계가 어려워진지는 오래되었다. 일년에 책한권도 읽지않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베스트셀러 순위에 이러한 학술서가 들어가 있는 것을 본적이 없다. 저자는 이 책의 출판을 허락해주어서 고맙다고 출판사에 인사를 한다.

출판사가 용기 있게 출판을 허락해준 책 과 심신이 피폐해질정도로 어쩔 수 없이 이 책을 쓰도록 한 집필의 수요 사이에서 아이러니를 느낀다면 내가 이상한건가?

'들어가며' 로 책을 시작했는데 그 뒤에 '책머리에' 가 나오고 그 뒤에 '서문' 이 나온다. 음???;;;

들어가며 와 책머리에 와 서문 이 다 같은 의미 아니었나? 대개의 책에는 이중 하나의 소제목이 붙은 글만 존재하지 않던가? 이 책의 시작은 세번에 걸쳐 진행된다. 이렇게 시작글이 세번 있고나서야 차례가 나오고 본문이 시작된다.

독특한 세번의 시작과 다르게 마무리는 '나가는 말' 한번으로 끝난다. (수미일관의 균형을 이루려면 '나가는 말 '다음에 '책말미에' 다음에 '종문' 뭐 이런식으로 세번 마무리를 했어야 하지 않나 라는 괜한 생각을 해봄;;;)

책은 크게 2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 신석기시대 서양여성 과 2부 신석기시대 아시아여성 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사실 서양여성사와 아시아여성사를 묶어서 세계여성사라고 할 수도 없는 거지만, 서양여성사 부분이라고 해봐야 메소포타미아지역 일부였고 아시아여성사 부분이라고 해봐야 한중일 특히 중국과 한국만을 주로 다루고 있었기 때문에, 저자의 포부가 큰 것은 좋지만 제목은 솔직히 과하다 싶었다. 그리고 저자가 여성사를 말하기 위해 농업사를 풀어낼 수 밖에 없다고 여러차례 밝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사라고 하기엔 많이 빈약했다. "사" 가 붙으려면 시대를 굽이치는 흐름과 변화가 읽혀져야 하는데 이 책은 그정도라기보다는 신석기시대 속 여성의 역할을 밝히는 것뿐이었다. 따라서 저자가 책말미에도 정리하듯이 이 책의 주제는 한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을 정도다. (그 한문장은 이 글의 마지막에 쓰는 걸로...)

"한편 기나긴 석기시대는 물론 대충돌시기에도 신체상의 열세와 육아 때문에 여성들은 대부분 시간을 캠프에서 지냈다. 아이를 돌보고 남자들을 위해 끼니를 장만해야 하기 때문이다." (p. 61)

석기시대때부터 이렇게 명확히 남녀의 역할이 구분되어 있었다는 말인가? 동굴에서 끼니를 준비하느라 여성은 밖에 못나갔다고? 그때 끼니가 지금의 요리수준도 아닐터인데 거참...;;;

"나무가 없는 농업 발상지 자그로스 산맥과 메소포타미아 지역" (p. 106)

이라며 현재의 자그로스 산맥과 메소포타미아 지역 사진을 실어놓았는데, 저자는 석기시대가 지금의 모습과 같다고 생각하는 건가? '길가메시서사시' 라는 수메르문명이 남긴 토판내용을 보면 울창한 숲과 벌목에 대한 내용이 여러차례 언급되는데, 저자는 그 지역이 석기시대에도 지금처럼 나무가 없는 지역이라서 벌목이 필요없었기 때문에 농업이 발달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해수면높이를 비롯하여 토지와 동·식물 자원 모두가 지금과 석기시대가 같을 수 없지 않을까?

"인류의 문명은 신석기시대 초반 여성의 혁신적인 농업 선택과 정착에 의해 그 굳건한 토대가 마련되었다고 가히 단언할 수 있다. 다름 아닌 이 지점에서 여성은 여신의 영광스러운 황금옥좌에 당당하게 올라가 앉을 만한 자본을 거머쥐게 된 것이다." (p. 109)

저자는 농업을 시작한 것이 여성이며 농업이 수렵을 대체했던 서양의 신석기시대에 여성의 지위향상이 이루어졌다고 말한다. 그런가? 어떤 향상?? 모계사회가 되었다는 것이 어떤 권력을 누리게 했나? 신화속에서 여신으로 남아 추앙받게 된것이 여성에게 무슨 이득이었을까??

"홍수에서 권력이며 가옥이며 가졌던 모든 것을 잃고 목숨 하나만 달랑 건진, 몇 안되는 가련한 여성 혹심한 기아와 굶주림과 온역에 노출된 여성은 죽음의 문턱에서 어쩔 수 없이 남성이 세우고 곡물을 마련해 둔 집을 찾아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 그들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었다. 여성은 자연재해에 직면하거나 타고난 체력의 열세 하나 때문에 남성에게 모든 것을 빼앗기고 백수가 된 채 비굴하게 빌붙어서 목숨을 부지해야만 하는 처량한 신세가 되고 만 것이다." (p. 190)

저자는 혜성의 대충돌로 사냥중이던 남성들이 대거 사망하면서 동굴안에 있던 여성들이 많이 살아남아 성비불균형으로 모권이 상승하고 사냥을 하지 못하는 여성이 식량생산을 위해 농업을 시작했다고 말한다. 그러다 홍수에 의해 모든 것을 잃은 여성이 남성에게 의탁하게 되었다고 한다. 남성이 곡물을 저장하는 동안 여성은 한톨도 저장해둔것이 없단 말인가? 여성은 주로 캠프에서 생활했다면서? 홍수가 쓸어간 것은 여성의 농작물과 여성의 목숨 뿐이란 말인가? 남성이 주로 바깥 활동을 해서 대충돌때 목숨을 잃었다면서? 홍수는 남성을 피해 덮쳤다는 말인가?

"신석기 시대 여성은 진흙을 반죽하여 태토를 준비하고 그릇 성형작업뿐 아니라 아직 남성들이 운영하는 토기가마 등장하기 전까지는 소성 작업에 이르기까지 문자 그대로 토기 제작의 모든 과정을 소화하는 노동의 주체였다." (p. 215)

신석기시대 여성은 농업도 들여오고 토기도 만들며 채집도 하는 노동의 주체였다는 것이 지위향상인가? 여성이 이러한 노동을 하는 동안 남성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남성의 활동과 여성의 활동에 대한 비교는 좀더 동시적으로 비교할수있도록 충실했어야 하지않을까?

"남성들이 사냥감을 따라 원정 수렵을 떠난 뒤 임신,육아,채집 등으로 인해 동굴 속에 남은 여성들이 무료한 시간을 메우기 위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p. 279)

동굴벽화 관련 글이나 그림에서 대부분 그림을 그리고 있는 이를 남자원시인으로 표현했던 것 같은데, 인류 최초의 화가가 여성이었다는 주장은 신선했다. 다만 그 근거가 여성이 동굴에서 심심해서 그렸다는 것은 좀...;;;

무엇보다 문제라고 생각되는 점은, 이 책에서는 연도가 표시되지 않는다. 신석기시대라고 퉁치기엔 기간이 너무 길지 않나? 기원전 몇년부터 몇년엔 이러저러했다가 기원전 몇년 부터 몇년까지 이러저러했다 라고 변화의 추이를 서술했어야 하지 않을까? 신석시대 전체를 아우르는 여성사 인데?

1부에서 전개했던 내용들은 책의 비중을 1부보다 좀더 많이 차지하고 있는 2부에서 동일하긴 한데 같은 내용의 반복이 많다. 서양부분과 비교되는 동양부분의 일부를 정리해보자면,

"서양의 경우 대충돌로 인한 남성 인구의 소수화는 여성의 생육능력을 신비화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시아의 경우 하늘이나 조상에 대한 숭배는 있어도 농업에 대한 숭배는 적었으며 남성 인구는 도리어 여성보다 다수여서 생육능력도 신비화될 토대가 없었다. 여성숭배가 당연하게 시초부터 고갈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이다." (p. 309)

"놀랍게도 서양학계의 영거드라이어스 관련 연구에 따르면 중국은 대충돌 사건의 영향범위 안에서 제외되어 있기 때문이다." (p. 316)

"설령 중국에서 신석기시대에 서양처럼 모계사회가 존재하였다 하더라도 여러 가지 이유로 결코 여성이 사회적 영도권을 장악하지는 못했을 거라는 것이 필자의 논리다. 일단 농업이 보편화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원시농업의 생산 주체마저도 남성이었다. 강력한 모권제의 배경을 상실한 당시 여성에게 사회적 주도권 장악이란 한낱 몽상에 불과한 것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p. 377)

"농업의 존재 여부는 당시 여성의 이미지를 결정하는 시금석이라고 할 수 있다. 미리 단정하지만 신석기시대 한반도 여성의 지위와 역할은 중국의 별반 다름이 없었거나 더 위축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중국의 신석기 시대 상황으로 볼 때 농업이 한국의 경우보다 조금은 앞섰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p. 518)

"농업이 침체된 상황에서 신석기시대 한반도 여성의 지위와 역할은 다시 한번 된서리를 맞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농업을 통한 여성들만의 고유한 문화도 생산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공동체 내에서의 주도권도 장악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중국 신석기 시대 여성과 한반도 여성이 짊어질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운명이었다." (p. 531)

"채집 위주 경제패턴을 영위했던 야외노동에서 채집활동은 물론 물고기잡이나 조개잡이에까지 노동영역을 확대했던 일본의 신석기시대의 여성은 같은 시기의 중국이나 한국의 여성에 비해 사회적 지위와 역할 면에서 어느 정도는 우월했을 것으로 예단할 수 있다." (p. 610)

저자는 혜성의 대충돌 지역은 서양이었기에 그 직접적 충돌지역이 아니었던 중국일대 동양에서는 급격한 성비불균형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혜성은 그렇다치고 홍수도 없었단 말인가? 서양은 혜성과 홍수로 여성과 남성의 성비가 왔다갔다 했는데, 그동안 중국일대는 혜성충돌도 홍수도 없어 성비가 바뀔 일이 없었고, 농업혁명도 지지부진 했기에 쭈욱 남성이 권력을 잡아왔다고 하는데 그것이 좀... 혜성의 직접적 충돌지역이 아니더라도 그로인한 지구전체의 기온저하로 생태계에 큰 변화가 왔었음은 기정사실이다. 그런데 혜성의 직접적 충돌이 없다는 것만으로 서양과 중국일대의 동양을 비교한다는 것이 좀;;;

게다가 모계중심사회문화는 서양보다 동양에 친숙한 문화아닌가? 역사책은 아니지만 '오래된 미래' 라는 책에 나오는 히말라야 산맥부근의 라다크 지역은 여전히 모계중심 사회이다.

무엇보다 어찌되었든간에 신석기시대에 여성의 지위향상이 일부 지역에서라도 있었다고 치더라도 그것이 당시 신석기시대에 어떤 영향을 끼쳤다는 말인가?

농업활동의 중심을 여성으로 이야기하다가도 결국은 남성의 노동력이 농업혁명의 핵심기반이었고, 토기제작에서도 가마가 있기 이전까지만 여성의 활동이 의미있었다. 잠시잠깐으로 보이는 모계중심사회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이 여성의 지위향상이었다 라는 주장이 어떤 의미가 있다는 걸까?

석기시대의 여성지위향상에 대한 주장은 결국 석기시대의 생활상을 알수없는 현재시점에서 상상력을 동원해야 할 영역속에서나 존재할 뿐이다.

환언하면 신석기시대 서양 여성을 위대한 神으로 등극시킨 장본인은 대충돌 사건이며 남자와 동등하고 평범한 구성원으로 만든 장본인은 기후변화였다고 할 수 있다. 기온상승이 농업생산을 가능하게 했던 것만은 확실하기 때문이다. 비록 원시적이고 제한적이며 지지부진한 농업생산 활동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배경으로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활약이 일정하게나마 향상되었으며 그 결과 남성과 평등한 지위를 누릴 수 있었던 것만은 사실이다. 우리의 담론이 지금까지 고고학계를 군림하던, 극심하게 과장 또는 왜곡되었거나 아니면 서양 즉 중동 여성에 대한 연구 결과를 맹목적으로 모든 지역에 적용했던 이론적 오류에서 벗어나는 유익한 계기가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필자는 만족할 것이다. 신석기시대 여성에게 부당하게 짊어지웠던 그 모든 가짱 영광과 거품을 걷어내고 그들을 무거운 탈 진실의 광기와 억압에서 해방시키는 결과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일 따름이다. (p. 686)

신석기 여성에게 부당하게 짊어지웠던 가짜 영광과 거품이 무엇일까? 무엇이 신석기 여성들을 광기에 억압에 눌러놓았기에 저자는 해방시키고 싶다고 하는 걸까?

서양에서는 여성이 신격화 되었으나 동양에서는 그런적 없었다는, 동양에서는 아니 중국과 한국에서는 그 어떤 일이 있었어도 내내 여성이 신성화 된적이 없고 남성중심사회였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건가?

학술서처럼 보여지는 이 책은 학술서가 갖추어야 할 색인이나 참고자료 가 정리된 뒷 페이지가 없다. 페이지들 밑부분에 짧게 제시된 주석들에 제시된 책들도 중국서적들이 많고 그 참고책들도 오래된 것들이 많았다. 인용된 사진이나 도표, 지도들도 출처가 언급되어 있지 않았다. 몇 권의 책에서 인용한 구절들을 바탕으로 한 저자의 서술은 반복적으로 신석기시대를 저자가 개인적으로 추측하고 있을 뿐이었다.

700페이지에서 조금 모자라는 이 방대한 분량의 책은 한문장으로 요약된다. 그 한문장 또한 책속에서 저자가 여러번 말해주고 있다.

"결과적으로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역할은 농업의 발전과 직결되는 데 농업의 발전은 또 대충돌 사건과 연관되면서 파생된 생존공간의 이동과 경제운영방식의 전이 그리고 인구에서의 성비 불균형을 토대로 향상된다는 논리가 본서의 핵심 서사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p. 684)

그런데... 어떤 사건이 있었건간에... 인원이 많은 쪽이 대세가 되고 세력의 중심이 되는 것은 당연한 거 아닌가?;;;

서양과 동양의 역사를 파악함에 있어서 문화적 기반이 상이함을 기본태도로 인지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기존의 역사학계가 서양만을 쫒아왔다면 각성해야 함은 또한 당연하다. 어쩌면 이 책의 교훈은 긴 세월동안 한국의 고고학계가 너무 고인물이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런지...

ps. 저자에 따르면 서양에 비해 중국과 한국일대는 농업의 발달이 지지부진했다. 이는 곧 권력의 집중과 발달 또한 지지부진하게 발달할 수 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한국은 고인돌의 나라로 유명하다. 세계 고인돌 수의 40%가 한반도에 있다. 청동기시대의 대표적 권력표시 무덤인 고인돌이 이렇게나 많은 한반도에서는 어떻게 신석기시대 지지부진한 농업을 바탕으로 청동기시대 급격한 권력집중이 이렇게나 많이 이루어질 수 있었을까? 저자는 어떤 주장을 할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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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삿갓 2020-03-26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나도 궁금해서 인물검색에 들어가 보았는데 LILLY님의 말과는 다른 것 같네요.

LILLY님의 말:
˝국내출판된 소설은 몇 권 안되는 것으로 보아 작품활동은 중국에서 주로 한것 같다. 그런데 국내 출판된 저자의 책들은 대부분 학술서 였다. 그중에서도 고대사.˝

그런데 장혜영이 출판한 책은 ˝희망탑˝한부만 중국에서 출판(연변대학)되고 나머지는 죄다 한국에서 출판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그리고 학술서는 6권인데 장편소설은 7권으로 더 많았구요.

ㅎㅎㅎ.

LILLY 2020-03-27 21:05   좋아요 0 | URL
아....네... 제가 검색을 제대로 못 했을 수도 있습니다. 깊게 파고 들어간 것은 아니라서요^^;;; 동명이인의 소설가분들고 계시고... ^^;;;
잠깐 검색으로 네이버 인물검색에서 저자를 검색하니 총17권의 책이 나오더라구요. 그중 12권이 소설이었는데, 저자의 이력에 쓰여진 다수의 책 작품수 대비 국내 출판이 적게 느껴져서 저는 국내 소설 활동이 적었다 라고 생각되어졌습니다. 그리고 학술서는 비교적 최근 출판본들이 대부분이라 상대적으로 국내에는 학술서 위주로 출판하는 걸로 느껴지기도 했구요 ^^;;;
여하튼, 제 글을 읽어주시고 지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uturn 2020-03-27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흠, 뭐랄까. 그냥 한마디로 저자가 힘 없는 조선족이라서 횡설수설 마구 짓밟아도 아무 문제 없을 거라는 무식하고 건방진 분위기? 저자가 일본이나 미국의 교수라면 아마도 입술에 꿀을 ...... 설마 강한 자 앞에서는 .....하고 약한 자 앞에서는 ..... 하는 건 아니겠지.
이 책 읽어야 되나. 고민이다.

LILLY 2020-03-27 21:10   좋아요 0 | URL
저는 학술적으로 큰 기대를 갖고 읽었던 책이라 평이 좋게 쓰여지진 않았습니다만, 저자의 연구에 깊이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만큼 파고들고 다양한 책들을 참고하여 이정도로 정리하기가 쉽지는 않았으리라고 생각됩니다. 그 노력은 박수쳐 주고 싶었습니다. 신석기시대에 대해 이정도로 풀어낸 책이 별로 없긴 하죠. 다만 좀더 최신자료와 명확한 출처를 바탕으로 한 고고학책이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좀 있었습니다. ^^;;;;

urn 2020-03-28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그런데 청동기시대의 고인돌무덤이 어떻게 신석기시대 농업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지?
그리고 책 한 권의 주제는 하나가 아니라 도대체 몇 개여야 되는지?
솔직히 책은 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괜한 노파심인가......

LILLY 2020-03-28 16:40   좋아요 0 | URL
청동기시대 고인돌 언급은 제 개인적 감상입니다. 저자는 청동기 시대를 언급하지 않급니다. 신석기시대 농업이 한반도에서 그닥 발달하지 않았다는 저자의 주장에 대해 청동기시대의 고인돌들에 대해서는 저자가 뭐라고 할지 궁금했을 뿐입니다.
이 책의 주제는 한가지 입니다.

걍워니 2020-03-29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게 뭐야! ‘신석기시대 세계여성사‘가 어떻다는 거야.
이 책 때문에 LILLY 님이 대노했잖아.
아무튼,
내가 저자나 출판사라면 큰 잘못을 저질렀으니까 일단 머리부터 조아렸을 거야.
LILLY 님의 글을 읽어 보니 ‘들어가는 말‘도, ‘책머리에‘도,‘서문‘도 유죄이고 주제넘게 제목에 ˝史˝를 붙인 것도 유죄이고 심지어 자그로스 사진과 오래된 문헌 인용은 물론 문자 그대로 내용 전체가 유죄판결이라잖아.

-전하, 황공하여 몸둘 바를 모르겠나이다. 어리석은 신이 죽을 죄를 지었사옵나이다. 이제부터는 ‘들어가는 말‘이나 ‘서문‘은 전하의 윤허를 얻은 후에야 쓰도록 하올 것이며 강조나 상기를 위한 짤막한 반복 서술도 금지할 것이오며 전하가 원하신다면 책 판매도 중지시킬 것이옵나이다. 지금 당장 타임머신을 타고서라도 아득한 신석기시대로 돌아가 만 년 전의 자그로스 사진을 찍어오도록 하겠사옵니다.
-전하, 이제 화가 좀 풀리셨다면 신은 이만 물러가겠사옵나이다.
.......

내가 쓰고도 은근히 사극 같다.
다만 우리 ‘전하‘가 역사에 문외한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LILLY 2020-03-29 21:08   좋아요 0 | URL
제 서평이 읽기에 많이 불편하셨나 봅니다;;;
책에 대한 제 개인적인 감상일뿐 비난의 의도는 없었습니다. 좀더 나은 책에 대한 바람을 담은 비판으로 읽고 넘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상한 수학책 - 그림으로 이해하는 일상 속 수학 개념들
벤 올린 지음, 김성훈 옮김 / 북라이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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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이해하는 일상 속 수학 개념들

진짜 중요한 건 수학 문제 푸는 법이 아니다. 수학자처럼 생각하는 법이다!

 

 

재치발랄함이 넘쳐나는 이 책은 수학을 소재로 하고 있긴 하지만 수학책이라고 하기엔 좀 애매한, 제목 그대로 이상한 수학책이다. ㅎㅎ

'Math with Bad Drawings' 라는 이름의 블로그를 운영하며 올렸던 글을 바탕으로 묶여 나온 이 책에서 저자는 수학을 전공하고 청소년들에게 수학을 가르쳤던 경험을 살려서 수학자가 일상속에서 어떤 식으로 수학개념들을 떠올릴 수 있는지 '생각의 흐름에 따라' 다양한 내용들을 자유로이 풀어낸다.

수학책으로 읽기 시작하긴 했는데 읽다보면, 크게는 과학과 경제학을 넘나들고 작게는 디자인과 보험과 스포츠와 정치선거와 세금이야기를 넘나드는 그야말로 수학보다는 다른 분야로 더 넓게 읽혀지는 잡학서였다.

어째서 수학은 삶의 모든 측면에서 토대를 이루고 있을까? 수학은 어떻게 동전과 유전자, 주사위와 주식, 책과 야구 등 서로 상관없는 영역을 연결하고 있을까? 그 이유는 수학이 생각의 체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각은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때 도움이 된다. (p. 8)

교과서 속 수학이 아니라 일상 속 수학을 풀어내다 보니 그야말로 세상의 모든 문제를 건드리게 되는 모양새의 이 책은 저자가 직접그린 졸라맨체의 그림들이 마음을 가볍게 해주고 있어서 (이상하건 어쨌건)수학책이라고 이름지어진 책을 읽고 있음에도 피식피식 웃음을 터트리게 했다.

그 세부 사항 자체를 위해 세부 사항을 배우는 것은 아니다. 세부 사항을 배우는 이유는 나중에는 그것을 무시하고 더 큰 덩어리의 그림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서다. (p. 43)

수학에서 중요한 것은 거기에 담긴 추상적 진실이다. 수학은 과학의 물질적 우주가 아니라 논리의 개념적 우주에 산다. 수학자는 이런 연구를 '창의적' 이라고 하며, 예술에 비유한다. 그래서 과학이 수학에게는 영감의 원천이 되어 준다. (p. 51~52)

 

수학과 과학은 뗄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과거 학자들은 수학자와 과학자를 따로 명칭하지 않았다. 대부분 과학자이자 수학자였고 수학자이자 사상가였다. 학문이 세분화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현실이 복잡해질수록 현실을 이해하기 위한 학문이 필요했고 현실분석논리체계학문이 과학이라고 할 수 있었다. 과학은 현실을 분석한다. 현실을 분석하는 과학에는 수학적 방식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수학은 현실을 분석하는 학문이 아니다. 수학은 과학에서 영감을 얻긴 하지만 그너머 추상적 논리체계를 지향한다. 그래서 수학은 철학과 연결된다. 철학은 삶의 지향점과 삶 자체를 숙고하지만 그 과정은 당췌 말로 설명하기가 어렵다.

 

 

 

그러니 학생들에게 수학의 필요성을 이해시키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 대체 왜 지금 삼각함수를 배우고 곱셈공식을 외워야 하냐고 이걸 어디다 써먹냐고 항변하는 학생들에게 어른들은 그저 나중에 다 쓸모가 있어 하는 식상한 답변 이외에는 해줄 수 있는 말이 없다. 과학적 창의성은 눈에 보이지만 수학적 창의성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정말로 학생들이 그러한 세부적 수학지식들을 지금 배우는 것은 필요하다. 배울때는 그저 어렵고 성가시고 번거로운 공식들로만 보이겠지만 나중에 큰그림을 그리려 할때 그러한 세부적 지식들로 단련된 사고체계는 분명 밑그림을 제대로 그릴 수 있게 해준다. 수학은 추상적이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배운 경험이 추상적 논리체계를 습득시킬 수 있게 한다. 그래서 같은 말을 또 할 수 밖에 없다. 나중에 다 쓸모가 있다고;;;

저자가 '수학자처럼 생각하는 법'에서 비교한 뛰어난 수학자와 위대한 수학자 관련 그림들은 정말 기가 막히게 이해가 쑤욱 됐다.

 

 

 

등수가 분명하게 나오고 옆 사람들과 손쉽게 비교할 수 있고 보상을 통해 꾸준히 채찍질을 하는 학교의 경쟁적 분위기에서 잘나가던 사람들이 정해진 답이 없는 학문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학생 때와는 다른 새로운 태도가 필요하다. 경쟁자로 길러진 사람들이 협력자로 진화하는 것이다. (p. 71)

 

힉생때 뛰어났던 사람들도 어른이 되어선 평범해지는 경우가 어쩌면 흔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뛰어남 보다 위대함은 어렵다. 학문의 세계는 뛰어난 사람들의 세계가 아니라 위대한 사람들로 성장하는 곳이다. 그리고 수학자만큼 수학적으로 뛰어나지 않더라도 수학자처럼 생각하는 방법은 배우고 익힐 수 있다. 그렇게 위대함은 학문의 영역이 아닌 일상에서도 존재할 수 있게 된다. 수학자처럼 생각한다면. ㅎㅎㅎ

1부 수학자처럼 생각하는 법 뒤의 내용들은 구체적 사례?!들이라고 할 수 있다.

2부 디자인에서의 삼각형의 존재감, A4 용지 규격에서 찾아낸 무리수, 부피와 주사위 게임등에서 수학적 생각을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3부 확률론에서부터 살짝 머리에 쥐가 나기 시작한다. 복권과 보험 이야기는 확률을 심히 복잡하게 응용하고 있었고 그렇게 확률이 어떻게 이용되는가에 대한 의문을 갖게 만들고 있었다.

4부 통계학에서 확률론에서 미지근하게 건드렸던 수학의 오용사례에 대해 대놓고 문제점들을 지적한다.

"통계학은 불완전한 목격자다. 진실을 말하지만, 결코 진실을 전부 말하지는 않는다." (p. 294)

 

 

 

 

평균이 정말 평균수준을 알려준다고 생각하는가? 백분율의 차이만으로 비교하는 성장율을 또 어떤가?

통계학은 전제조건과 분산범위에 대해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쉽고 통계학은 유용한 수학적 방법이지만 현실에서 찾아볼 수 있는 통계수치들에 대해 우리는 그 이면을 반드시 생각해봐야 할 필요성이 있다.

500페이지가 넘는 두툼한 이 책속에서 가장 많은 페이지를 차지하고 있는부분이 통계학 이었다. 어쩌면 저자는 수학책이라고 하면서 현실문제들을 수학적으로 지적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야구에서의 타율, 과학실험에서의 수치 등에서부터 명작이라 일컫는 고전 소설속 단어들의 갯수분석까지 " 모든 통계는 자신이 측정하려고 하는 세상에 대한 비전을 담고 있다. ' (p. 357)

통계가 보여주고자 하는 세상에 대해 의문을 갖는 사고체계도 수학적으로 생각하는 방법 중 하나이다.

마지막 5부 전환점 에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분명치 않았다.

"인생에서 어떤 갈림길에 설 때마다 그곳에는 결정적인 전환점이 있다. 그곳에서는 작디작은 한 걸음이 모든 것을 뒤바꿔 놓을 힘을 갖는다." (p. 382)

라며 다양한 전환점 적인 사례들을 이야기하지만, 한계혁명으로 바뀐 경제개념과 과세등급과 미국 대선에서의 전환점 제시는 구체적이지 않고 조심스러웠다.

책의 마지막 장이었던 '24장 역사의 카오스' 에서의 결말은 더더욱 카오스적이다.

인간의 역사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한 사람은 예측할 수 있다. 하지만 군중은 그렇지 않다. 군중의 정교한 상호 관계는 아무런 까닭도 없이 일부 패턴은 증폭하고 일부 패턴은 지워 버린다. 본질적으로 카오스는 사람이 머릿속에 그릴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인간의 정신은 무엇이든 매끄럽게 펴려는 경향이 너무 강하고 진실을 보기 편한 소수 자리로 반올림해 버리는 습성이 있다. 카오스를 자유자재로 다루어그 패턴을 드러내려면, 또는 패턴이 없음을 드러내려면 우리 뇌보다 훨씬 더 크고 빠른 뇌가 필요했을 것이다. (p. 451)

수학으로 시작해서 인간의 역사로 마무리짓는 이 책은, 분명하게 보이는 수학적 개념들에서 혼돈의 인간역사로 결말을 짓는 이 책은, 정말이지 좀 이상한 수학책이다. ㅎㅎㅎ

하지만 저자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마도 살면서 수학이 필요하다는 것이 수학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이 수학문제에 반드시 답이 있는 것 같지만 답이 없는 것이 답일수도 있다라는 것이 결국은, 인간이 모든것을 다 알고 있고 알수 있다고 믿는 그 자세를 버려야 한다는 조언 아니었을까...

"카오스는 우리에게 겸손하라고 충고한다. 카오스는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에 한계가 있음을 거듭 가르친다." (p. 456)

수학이야기를 하면서 세상과 삶의 태도에 대한 충고를 슬쩍슬쩍 끼워놓은 이 책은 가벼운 말투로 무거운 주제를 우스운 그림들로 어려운 수학문제들을 재치있는 수학풀이들로 세상사는 방법을 다시생각하게보게 하는 기묘한 수학책이었다.

ps. 책 뒤쪽에 주석이 상당한 양의 페이지로 실려 있는데(개인적으로 주석은 해당 구절의 같은 페이지 아랫부분에 써주는 것을 좋아하지만, 이 책의 경우 뒤에 몰아 쓸 수 밖에 없었으리라는 생각이 드는 주석들이긴 했다;;;) 그중 저자가 너무너무 맘에 든다는 인용구절이 나또한 마음에 들어 옮겨놓아 본다.

그는 이제 역사사들이 역사를 연구하지 않음을안다. 그 누구도 Hain의 역사를 망라하여 연구할 수 없다. 그 역사가 무려 300만년(......)셀 수 없이 많은 왕과 제국, 발명, 수백만 개의 국가에서 살았던 수십억 명의 사람들, 군주 국가들, 민주 국가들, 과두 정부들, 무정부 상태들, 혼돈의 시대와 질서의 시대, 신의 신전 위에 세워진 신전, 무수히 많은 전쟁과 평화의 시대, 끝없는 발견과 망각, 셀 수 없이 많은 공포와 승리, 끝없는 새로움의 무한한 반복, 한순간, 그리고 그다음 순간, 그다음 순간, 그다음.....그다음..... 이렇게 계속해서 강의 흐름을 설명하려 드는 것이 대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결국 지친다. 우리는 그냥 이러고 만다. '아주 큰 강이 있어. 그 강은 이 땅을 관통해 흐르지. 그 강에 우리는 '역사'라는 이름을 붙였어.' -어슐러 르 귄 의 <사람들의 남자> 에서 (p. 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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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에 수놓은 이야기 아르테 한국 소설선 작은책 시리즈
구병모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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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쉬듯 벌어지는 은밀한 폭력들

환상은 우리를 구원해줄 수 있을까?

삶의 잔혹한 순간, 현실이 된 환상의 무게

"원하는 걸 말해주세요. 무엇이 당신을 돌봐줬으면 좋겠는지"

 

 

구병모 작가의 작품들을 정말 좋아한다. 판타지라고 하기엔 현실같고 현실이라고 하기엔 판타지같은 작품들을 하나하나 읽을때마다 너무 매력적이어서 새로운 신작이 나올때마다 서둘러 읽고 싶어 마음이 급해지곤 했다. 이번 작품은 '작은 책 시리즈'라서 이름 그대로 손안에 쏙 들어오는 작은 사이즈의 책이었다. 기존의 장편소설들도 두툼한 두께의 책들은 아니었기에 이 정도 크기면 구병모작가의 작품사이즈로는 중편정도라고 해야 할듯 싶다. 하지만 마지막장을 덮고 났을땐 작품사이즈에 관계없이, 구병모 작품 특유의 묵직함이 느껴져서 책크기따위 사이즈따위 아무 의미 없어졌다. 역시 구병모 였다.

관심이라니. 요즘 기준 같아선 백세 시대의 꼭 중간까지 이르렀을 뿐이나, 자녀의 교육 및 성혼을 시작으로 영양제나 생존 운동 이상의 무언가에 또는 어딘가에 몰입하기에는 결코 최적이라고 하기 어려운 나이의 사람에게. 관심이라는 말부터가 건강하고 의욕적인 미래의 아이들, 시미가 살아서 낳지 못할 날들에 존재하는 어린이들의 사전에나 등재되어 빛나는 낱말 같았다. (p. 47)

소설 속 주요 화자는 '시미' 라는 여성이다. 오십을 코앞에 둔 나이의 여성으로 작은 회사에서 총무팀 일을 하고 있는 싱글여성이다. 그녀가 젊은시절 함께 했던 남편은 폭력적이었고 결국 세살배기아들을 두고 도망나올 수 밖에 없었다. 이혼 후에도 남편은 아들을 만나게 해주지 않았다. 그렇게 아들은 어느새 대학졸업반이 되었고 시미는 여전히 혼자다.

시미의 일상이 나레이션 되는 사이사이, 시미와 아무 상관 없어보이는 사건들이 하나하나 등장한다.

어느 작은 임대아파트에서 화재 사고가 나서 아비는 창밖으로 떨어져 사망했는데, 딸은 작은 화상 하나 입지 않았다. 딸에게는 아비에게 당한 폭력의 흔적이 심하게 남아있었고 화재는 소방대가 오기전에 옆집으로 번지지도 않고 알아서 꺼졌다. 화재의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어느 새벽 주택가에서 유리창이 깨지고 싸우는 듯한 소음이 들려 신고가 접수된다. 현장엔 짐승에게 물린 이빨자국을 지닌채 사망한 남성과 온몸이 청테이프로 묶여 옷장에 갇혀 있던 여성이 발견되었다.

작지만 건실한 전도유망한 회사의 사장이 갑자기 사망한 사건이 발생한다. 사망의 원인은 익사였고, 거실전체가 물에 젖었다가 마른 흔적이 있었으나 욕실은 건조상태였다. 전날의 행적을 조사하던 중 발견된 CCTV에서 사장은 운전기사를 무차별적으로 폭행했고 회사사람들에게도 심한 갑질로 도처에 원한관계인 사람이 널려있지만 운전기사의 알리바이는 너무나 명확해서 도대체 용의자를 좁힐 수 없는 미제 사건이 되었다.

서로 아무 연결점이 없는 이 사건들은, 특히나 시미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이 사건들은 소설의 말미에 가서 하나로 엮이는데 그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 독자로서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을 지켜준다는 행위가 반드시 누군가를 해함으로써 완성되는 게 아니라, 다만 그 사람을 지지하는버팀목 같은 것도 포함하는 것이 아닐까. (p. 131)

시미는 일련의 사건들에 대해 조사를 해야 할 이유를 발견하게 되고 나름 공들여 관계를 맺은 끝에 알게 된다. 그들을 지켜준 존재에 대해.

그리고 자신을 지켜줄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자신을 지켜준다기 보다 자신이 지키고 싶은 것에 대해. 그도 아니면 지지해주거나 지지해주어야 할 무언가에 대해...

"실은 피부에 새겨진 건 자신의 심장에도 새겨지는 겁니다. 상흔처럼요, 몸에 입은 고통은 언제까지고 그 몸과 영혼을 떠나지 않고 맴돌아요. 아무리 잊은 것처럼 보이더라도 말이지요." (p. 138)

구병모 작가의 작품들 속에서는 크건 작건 폭력의 고통이 존재한다. 폭력으로 고통받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늘 등장한다. 하지만 그 폭력을 이겨낼 그 폭력의 고통을 벗어날 무언가를 전달해주는 힘이 있어서 작가의 소설은 왠지 늘 해피엔딩처럼 느껴진다. 일반적인 해피엔딩의 그 엔딩이 아님에도 잔잔하게 남는, 끝나도 끝나지 않은 무언가를 남겨 놓는다. 그리고 그 끝이 완전한 비극은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은 그 결말을 읽는이의 마음에선 스스로만의 해피엔딩으로 남겨놓게 된다.

시미는 앞으로의 인생에 지금처럼 충동이 자신의 온몸을 구성 또는 대체할 정도로 부피가 커질 날이 다시 있을까 생각했다. 충동이 솟는다는 건, 태울 에너지가 생성됐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존재가 세상 누구보다도 빛나기를 바라는 열망이 남아 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시미는 그것들이 몸 곳곳에 오래된 흔적처럼만 존재하여 가끔씩만 자신을 가볍게 흔들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시미는 돌아서서 지나간 싸움과 현재의 공허가 앞으로의 날들에 드리울 그림자의 무게와 길이를 재어보았다. (p. 142)

이 작품 속에서도 일상에서 쉽게 벌어지는 폭력들이 등장한다. 사망사건들 속에서도 그리고 시미의 삶 속에서도 폭력의 상흔이 발견된다. 하지만 폭력으로 점철되지 않았다. 폭력에 나가떨어지지 않았다. 시미의 삶에 갑작스럽게 등장한 '심장에 새기는 상흔' 은 그녀의 눈앞에 환한 빛을 쏟아냈다.

책의 띠지에 적혀있던 문구처럼, 폭력이 숨쉬듯 벌어지는 사회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필요한건 '구병모식 환상' 인지도 모르겠다. 그저그런 환상은 쉽게 무시될수도 있을 테지만, 적어도 구병모 소설들의 환상은 독자에게 강렬하고 아름다운 의미를 되새겨주곤 한다. 그 의미가 너무나 따듯하게 다가와서 구원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산소같은 시간은 분명 선사해주곤 한다. 첫 작품 '위저드 베이커리' 를 생각나게 하는 작품이었던 '심장에 수놓은 이야기', 이번에도 역시나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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