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나의 자서전 - 김혜진 소설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24
김혜진 지음 / 현대문학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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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응시를 통해 혐오를 비추는 불빛,

패배가 만들어내는 뜨거운 눈빛

 

 

<딸에 대하여> 라는 작품을 통해 김혜진 작가를 알게 됐다. 그리고 팬이 되었다.

'어비' 라는 작가의 단편을 읽고, 이번에 <불과 나의 자서전> 을 읽고 나니, 작가만의 색깔이 분명하게 느껴졌다.

작가의 다른 작품을 더 읽어봐야 겠지만, 작가의 작품들 속에선 일관되게 전해지고 있는 주제가 있었다.

소외된 혐오와 패배한 것처럼 보이는 젊음.

하지만 작가는 소외된 혐오를 중앙에 배치하고 패배한 것처럼 보이는 삶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며 그것들을 직시하게 만든다.

그리고 쉽게 희망적이라고 말할 수 없는, 그렇다고 쉽게 절망적이라고 포기할 수도 없는, 삶의 진솔함을 묵직하게 드러낸다.

낡은 동네의 한 건물 철거현장에서 소설은 시작된다.

안타까움과 미안함, 후회와 죄책감 따위의 감정을 느낀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감정이라 할 만한 것들이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서 이상할 지경이었습니다. 마침내 이곳이 사라지는구나. 오히려 그곳에 서 있는 동안 내가 느낀 건 그런 실감이었고, 오늘 정말 그 일이 일어날까 하는 의 심이었습니다. (p. 11)

남일동이라는 동네의 상징적이었던 장소 제일약국건물의 철거현장에 굳이 찾아갔었던 것은, 없어질듯 없어질듯 없어지지않고 내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던 그 장소가 정말 사라질 수 있는 것인지 직접 눈으로 확인해야만 하는 실감이 필요해서였다. 현재적 실감은 감정에 앞서 반드시 필요했다.

내가 유년 시절을 보냈던 그 남일동이 그 시절 어머니에게 두려움이었다는 것을 나는 그로부터 시간이 훨씬 더 오래 지난 뒤에 깨달았습니다.

그곳에서 어린 나를 키우는 것이 어머니에게는 내내 아슬아슬하고 조마조마한 일이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p. 24)

 

서른살 홍이는 3년전 갑작스레 발병한 두드러기로 인해 회사를 그만두고 집에서 지낸다. 하릴없이 백수로 지내고 있긴 하지만 홍이의 속이 태평하지 않다는 것은 그녀의 피부발진이 보여주고 있었다. 남일동의 제일약국에 약을 사러다닌다는 이유로 홍이는 남일동을 내내 배회하고 있다. 그러다 주해모녀를 만나게 된다. 어린 딸 수아를 홀로 키우는 엄마 주해를.

다들 몰라서 가만있는 줄 아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거지. 입바른 말만 하는 사람을 누가 좋다고 해. (p. 41)

어머니의 말은 홍이에게 와닿지 않았다. 하지만 주해를 처음 만난 날 홍이는 3년만에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속을 털어놓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된다.

왜인지 남일동을 생각하면 애잔하고 안쓰러운 마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곳은 한 번도 제대로 빛난 적이 없다는 생각 탓입니다. 남일동을 생각하면 처음부터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는 곳에 처박히듯 방치되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p. 51)

소설을 읽는 내내 남일동에 대한 묘사는 내가 나고자란 동네를 생각나게 했다. 수십년이 지났어도 그닥 변하지 않은 곳... 남일동 같은 곳을 나또한 알고 있달까...

주해라면 뭐든 솔직하게 답할 텐데도 대놓고 뭔가를 묻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멀리 떨어져서 추측과 의혹을 부풀리는 것이 사람들에겐 더 익숙하고 편한 방식이었을 겁니다. (p. 52)

누군가 새로 이사를 와서 반갑게 인사하며 잘 지내보자고 할때 선뜻 그러자고 손내미는 사람이 요즘 얼마나 될까? 그저 스쳐지나가는 잠깐의 모습만 보고 이런것같더라 저런것같더라 하며 수근대는 방식을 왜 선호하는 것일까...

내 눈엔 모두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로 보였습니다. 친절이나 호의를 받을 줄 모르는 사람들, 선의나 진심에 찬물을 끼얹는 이들, 무레와 몰상식이 몸에 밴 인간들. 그러니까 외지 사람들이 남일도, 남일도 할 때 그 남일도의 진짜 모습을 마주한 기분이었습니다. (p. 56)

가로등이 없어 어두컴컴한 길에 가로등 설치를 요구하고, 한번도 마을버스가 올라온 적 없는 산동네에 마을버스노선을 만들려고 청원서를 들고 사인을 요청하는 주해에게 동네 사람들은 냉대하고 박대할 뿐이었다. 불편한 자신들만의 삶의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려는 그 고집을 뚫고 마을버스가 들어왔을때 정작 가장 많이 타고다닌 것은 자신들이었으면서.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사람들은 주해를 찾았습니다. 그럼 누구한테 말을 해? 시작한 사람이 책임을 져야지. 이 집 새댁이 여기 책임자 아니요?

부탁이나 요청이 아니고 거의 강요나 강제로 보이는 그 사람들의 요구사항을 주해는 모두 들었습니다. 임시로라도 나아질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고 했고 제 것을 내어주고서라도 사람들의 성난 마음을 달래려고 했습니다. (p. 92)

 

주말에 약국사거리에서 주해가 안쓰는 물건을 펼쳐놓고 앉아있던 것을 시작으로 한두사람 모여들더니 '마녀시장'이라는 유명세를 얻어 찾아오는 사람들로 북적이게 됐을때, 주해옆에 하나둘 모여들어 장사하던 동네사람들은 점점 더 당연한듯 주해에게 뭔가를 요구했다.

홍이 씨, 그렇게 해서 사람들 마음을 어떻게 얻나요?

사람들 마음을 얻어야 해요?

주해는 내 팔을 잡고 소곤거렸습니다.

홍이씨, 난 여기서 오래 살고 싶어요. 여기 아니면 갈 데도 없고요. 알잖아요. 내가 이러는 거 다른 사람들 좋으라고 하는 게 아니에요. 내가 필요해서 하는 일이에요. 내가 원해서 하는 일이라고요. 난 정말 잘하고 싶어요. (p. 95)

 

주해는 그저 그 낡고 후미진 동네에서 살고 싶은 것 뿐이었다. 그저 자신의 삶을 살고 싶었던 것 뿐인데, 동네 사람들은 곁을 내주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더 뻔뻔스럽게 당연하게 받기만 할 뿐이었다. 그러다 재개발계획 소문이 퍼진다. 늘 그랬듯 계획만 세우다 어그러질것이라 홍이는 생각했지만 주해모녀는 아파트로 이사할 꿈에 부푼다. 하지만 주해를 괴롭히는 사람들은 동네 밖에서도 찾아왔다.

누가 그래? 그 새댁이 그래요? 도서관이고 버스고 다 시에서 결정하고 시행하는 일이지. 어디 한 사람 힘으로 되는 것인가. 별소릴 다 듣네. 어디 가서 괜히 그런 말 꺼내지 말아요. 동네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 떠난 주해 모녀에 대해 냉담하게 굴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마음을 얻자고 안간힘을 쓰던 주해가 바보처럼 여겨질 정도였습니다. 그렇게까지 하면서 주해가 가지려고 했던 것이 고작 이 동네에 머무르는 것이었다고 생각하면, 남일동에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집이 없다는 불안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나로선 결코 알 수 없는 주해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합니다. 아니, 따져보면 나도 이곳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어쨋거나 나 역시 끝까지 주해를 믿지 못했으니까. (p. 162)

남일동에서 학교를 다니며 따돌림을 당했던 중3때의 기억은 홍이가 회사생활을 하면서 왕따당하는 박대리의 옆을 지키게 만들었고 그 결과를 홍이의 피부는 여전히 되새기는 중이었다. 그 사이에 만났던 주해모녀를 통해 홍이는 더더더 남일동이 두려워졌는지도 모르겠다...

불길은 몸부림치듯 높이 더 높이 솟구쳤습니다. 그 순간에는 어둠을 이기며 몸집을 부풀리는 그 불이 조금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아니, 차라리 그 불이 여기 이 남일동 전체를 휩쓸어버리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점점 커지고 더 커지고 누구도 손쓸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해져서 저 남일동을 모두 집어삼켰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이 무시무시한 남일동을 무너뜨릴 수 있는 방법이 더는 없다는 생각을 나는 했던 것입니다. (p. 167)

한 사람 한사람 안에 한번 똬리를 틀면 이쪽과 저쪽, 안과 밖의 경계를 세우고, 악착같이 그 경계를 넘어서게 만들던 불안을, 못 본 척하고, 물러서게 하고, 어쩔 수 없다고 여기게 하는 두려움을, 오래전 남일동이 내 부모의 가슴속에 드리우고 나에게까지 이어져왔던 그 깊고 어두운 그늘을 정말이지 지워버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p. 168)

 

여기까지 읽고나서야 제목을 다시 살펴봤다. 불과 나의 자서전...

홍이에게 남아 끊임없이 홍이를 괴롭히는 남일동의 흔적을 불은 태워버릴 수 있을까...

한 번씩 그 밤에 드럼통 바깥으로 넘쳐흐를 듯 넘실거리던 불꽃을 떠올리면 남일동이 허물어지는 것을 기필코 봐야겠다는 오기가 살아나고 그 마음이 점점 번지고 커지는 것을 감당할 수가 없게 되어버립니다. 그리고 오늘 정오에 남일동의 남은 주택들이 철거됩니다. (p. 170)

철거현장에서 시작해서 철거현장으로 돌아오는 홍이의 기억을 함께하는 동안, 주해모녀가 살았던 1년남짓한 시간이 남일동에 남겼던 흔적을 함께 더듬는 동안, 주해의 당당함과 홍이의 두려움이 상반되지 않고 동시에 아프게 다가와서 어찌해야할 바를 몰랐다.

불의 자서전은 짧게 끝났다면 산동네 남일동은 이제 철거됐다면, 홍이의 자서전은 현재진행중이다. 그리고 주해의 삶도...

하지만 읽는 내내 알고 있었다. 꺼졌다 생각했던 불씨는 숨어있기 마련이며 철거되고 새로 세워진 재개발동네가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그래서 더 홍이와 주해의 남은 시간들이 벌써부터 힘겹게 다가왔다.

하지만 또한 알고 있다. 어쨌든 홍이도 주해도 나도 모두 살아있고, 삶이 지속되는 한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1983년생으로 2012년에 등단한 젊은 작가가 이토록 뚜렷한 사회에 대한 인식을 갖고 있다는 것이 놀랍고도 반가웠다. 앞으로도 무척 기대가 된다.

김혜진 작가의 작품 속 인물들의 눈빛과 그 인물들의 삶이 보여주는 불빛은 함께 살아가야 할 이 사회에 꼭 필요한 빛들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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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냐도르의 전설 에냐도르 시리즈 1
미라 발렌틴 지음, 한윤진 옮김 / 글루온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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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종족의 왕자

서로 다른 야망

하나의 운명

 

 

오랜만에 판타지 소설이다. 판타지인만큼 드래곤, 엘프, 데몬, 인간 네 종족이 등장하고, 그 외에도 기이한 존재들과 마법 그리고 현실적이지 않은 환경이 등장한다. 거기에 전쟁과 평화 그리고 사랑과 야망이 소용돌이치는 판타지 세계가 등장한다.

사랑... 야망... 그렇다. 이 판타지 소설엔 사랑과 야망이 등장한다. 판타지 소설에서 에로틱한 장면이 묘사되는 경우는 흔치 않았던 것 같은데... 이 작품은 사건 사이사이 에로틱이 등장한다. 어른용 판타지 소설이랄까 ㅎㅎㅎ

돌의자에 앉은 대마법사가 그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었다. 의뭉스러운 미소가 마법사의 입가에 걸렸다.

"난 네가 이곳을 찾아온 이유를 알고 있지. 내 친히 네가 원하는 권능을 하사하겠노라. 그렇지만 대신 네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성품, 그러니까 불굴의 의지를 가져갈 것이다"

왕자에게 손을 얹고, 그가 지닌 불굴의 의지를 거둬 간 마법사는 왕자를 드래곤으로 변신시켰다. (p. 10)

"내가 불에 저항할 수 있도록 해 주시오." 왕자가 간청했다. 이에 대마법사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왕자에게 그가 지닌 미모를 요구했다.

"네 피부는 그 무엇으로도 뚫을 수 없는 단단한 가죽이 되리라. 앞으로 드래곤의 화염도, 인간의 칼도 너를 해치지 못하리니, 네 눈에서 쏘아진 치명적인 눈빛만으로 타 종족을 굴복시키리라. 이제 그 권능은 바로 네 것이다."

그렇게 북부 왕국의 왕자는 추악한 데몬의 형상을 한 채 집으로 되돌아갔다. (p. 11)

"부디 데몬족의 사악한 눈빛이 내게 통하지 않게 해 주시고, 그들을 죽일 수 있는 검을 만드는 재능을 내려 주시오"

마법사는 한눈에 그에게 요구해야 할 대가를 알아차렸다. 그건 바로 왕자가 느끼는 사랑, 유머, 삶의 의욕과 같은 감정 이었다. 그렇게 서부 왕국의 왕자는 누구보다도 아름답지만 도도하고 쌀쌀맞은 엘프가 되어 제 왕국으로 돌아왔다. (p. 12)

"아무 힘도 원하지 않소" (p. 14)

 

에냐도르 대륙을 통치하는 네 왕국이 있었다. 네 왕국의 인간 군주들은 점점 욕망에 부풀어 다른 왕국를 침범하여 이루는 통일을 꿈꿨다. 왕들은 대마법사에게 왕자를 보내 필요한 힘을 얻어오도록 했다. 그 대가로 그들은 가장 소중한 것을 잃었다. 그렇게 인간의 네 왕국은 드래곤 왕국, 데몬 왕국, 엘프 왕국으로 재 탄생했다. 마지막 인간왕의 왕자는 대마법사에게 가서 그 어떤 힘도 요구하지 않았고, 때문에 그의 왕국 인간들은 힘없는 노예로 전락했다. 하지만 대마법사는 뜻밖에도 이 인간왕자에게 마법능력을 주면서 예언을 남긴다. 에냐도르의 전설이 시작되었다.

세대를 거듭하던 전쟁 속에 데몬은 드래곤족을 종속시키고 엘프는 인간족을 종속시켜서 양대 구도가 형성되었다. 엘프족은 수시로 인간마을에 와서 적당하게 잘 자란 장자를 징집해 갔다.

트리스탄은 고아다. 카이 대신에 징집에 내보내질 목적으로 키워진 소년. 열일곱살이 되었을때 엘프족에 징집되던날, 마법사라고 오해를 받게 된 카이의 여동생 아그네스도 끌려 가게 된다. 마법사는 바로 카이였는데.

트리스탄은 노예로 끌려가는 중에도 아그네스를 보호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다 등에 심하게 채찍질을 맞게 되고 그 상처를 치료해준 마론과 가까워진다. 마론은 동생대신 노예로 끌려온 남장여자였다. 아그네스는 엘프궁으로 보내지고 트리스탄은 병영으로 보내지는데, 그 사이 카이는 형제처럼 자란 트리스탄과 여동생 아그네스를 구출하기로 마음먹고 집을 떠난다.

초보마법사로 우여곡절끝에 염소와 그레타 라는 하녀와 동행이 되고 그러다 드래곤 소녀 스흐오크와 데몬 소년 툴 까지 합세하게 되는 동안, 트리스탄은 병영에서 엘프족에게 대항했다가 처형의 위기에 몰리고 그순간 드래곤 한마리가 날아와 그를 살린다. 그 드래곤 사피라에 의해 트리스탄은 자신이 왜 드래곤의 화염속에서도 다치지 않고 사피라가 왜 자신을 찾아왔는지 알게 된다.

"불구대천의 숙적이 서로 표식을 나누어 가질 것이다. 그리고 그 표식을 얻은 자, 파수꾼이 되리라. 파수꾼은 각 왕국의 지배자가 되어 다스리니니, 데몬, 드래곤, 인간, 엘프가 진실이라는 하나의 핏줄로 이어지리다" (p. 383)

한편, 엘프궁으로 잡혀갔던 아그네스가 갇힌 감옥 옆방에는 이상한 존재가 있었다. 감옥관리자인 엘프가 매일 죽이러 오는데, 다양한 방법으로 죽어도 잠시후면 다시 되살아나는 불사의 존재. 그는 마법사 엘리야 였고, 아그네스에게 묘한 감정을 느끼게 된 엘프왕자 이스타리엘이 아그네스를 보호하려다 엘리야의 탈출을 돕게 된다. 이스타리엘은 궁을 떠나면서 원치 않는 결혼을 앞둔 쌍둥이 여동생 이조라에게 사랑의 물약을 선물로 준다.

"뭐, 알겠어요. 특정 상황에 부닥치면 각성하는 능력을 타고난대요. 이런 네 명의 기형아... 아니, 특이체질들이 각각의 종족마다 한 명씩 동시에 등장하면, 에냐도르에 새 시대가 열린대요. 엘프와 데몬족은 그걸 몹시 우려하고 있다죠. 이 두 종족이 다른 왕국의 통치권을 빼앗은 지배자이기 때문이지요. 그들은 변화를 꺼려요. 이런 이유로 데몬족은 그들 가운데 아름다운 아이가 태어나면 죽여 버린대요" (p. 409)

카이가 만난 데몬왕자 툴은 아름다운 용모를 갖고 태어나 힘들게 살아남은 소년이었다. (이조라와 이스타리엘 쌍둥이는 감정이 없는 차가운 엘프족과 다르게 인간의 감정을 지닌 것을 숨긴채 살아왔다.) 카이는 묘한 조합의 일행들과 함께 트리스탄과 아그네스를 찾으러 가는 여정에서 다양한 정보를 습득하며 마법사로서도 성장하게 된다.

엘리야는 탈출하면서 아그네스의 목걸이를 보게 되는데 그 목걸이가 트리스탄것이었음을 알고 트리스탄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트리스탄을 찾아가는 길에 카이 일행과 만나게 되고 트리스탄이 드래곤과 함께 병영에서 탈출했음을 알게 된다. 그렇게 모두의 목적지가 한 곳으로 향하게 되는데...

"예로부터 에냐도르의 네 종족은 핏줄을 통해 재능이 이어졌다. 하지만 파수꾼이 되려면 정해진 시기에 때맞춰 표식을 얻어야 한다. 제 종족과 적대적 관계에 놓인 종족의 대리인이 남긴 상처를 통해서. 나는 이스타리엘에게 표식을 새겼다. 엘프는 트리스탄에게, 그리고 트리스탄은 용에게 표식을 남겼지. 그렇기에 트리스탄 또한 드래곤과 함께 슈발벤하인으로 날아간 거다. 그 용은 파수꾼들이 어디에서 화합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는 것 같구나"

"그 말은 이제 당신이 네 번째 파수꾼인 데몬을 찾을 거란 뜻도 되겠네요. 내 말이 맞나요? 당신이 그 데몬을 어디서 찾아야 할지 내가 확실히 알고 있다면 어쩌겠어요?" (p. 470)

 

카이일행이었다가 헤어진 데몬족 툴 이 그 소년이었다. 다음 보름달이 뜨기전에 네명의 파수꾼이 예언의 장소에 모여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그 시대는 통합과 평화의 시작이 될 터였다.

가장 먼저 슈발벤하인에 도착했던 트리스탄은 엘리야가 떠난 후 보호마법이 사라져 위기에 처한 왕궁을 구하기 위해 방황중이었던 이조라공주를 만난다. 자신의 약혼자 이름이 새겨진 검을 들고 있는 트리스탄을 보고 그가 약혼자라고 생각한 이조라는 이스타리엘이 주고간 사랑의 묘약을 나눠마신 후에야 그가 인간임을 알게 된다. 하지만 둘은 이미 뜨거운 사랑에 불타올랐고, 트리스탄이 고백한 마론에 대한 마음에 슬픔을 갖게 된다.

트리스탄이 잠시 자리를 비운때 엘리야 일행이 도착하고 이조라공주는 예언의 전모를 알게 되지만, 그 일행속에 마론이 등장하면서 이조라는 자신의 실수를 처절히 깨닫게 되어 엘리야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예언의 실현과 사랑의 파국이 예상되면서 책은 마무리 되는데...

그렇다. 이 작품은 에냐도르 이야기의 1권인 셈이다.

상세한 배경설명과 인물설명이 이어지고 여기저기 포석이 제대로 깔리면서 이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겠구나 싶을 때 딱 끝나는!!

540여페이지가 만들어놓은 서막은 제대로 흥미진진하게 올려졌다. 두번째 이야기 <에냐도르의 파수꾼> 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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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로하, 나의 엄마들 (양장) 여성 디아스포라 3부작
이금이 지음 / 창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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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제본 서평이벤트에 당첨되어 받은 책이라 작가가 누구인지 처음엔 몰랐다. 그리고 얼마전 정식 출판된 소식을 통해 작가를 알게 되었다.

이금이 작가는 동화책에서 익숙했던 이름이었다. 아니 동화책이라기엔 좀더 깊은 감동이 있는데 뭐라고 해야하나....흐음...

여하튼, 짧지만 진한 여운의 이야기들을 들려주던 작가의 긴~ 스토리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접해봤는데... 정말 놀라웠다.

놀라운 몰입력!

시작하자마자 한페이지한페이지 놓치기가 아쉬워서 잠시잠깐씩 책을 내려놓아야 할때마다 마음이 급했다. 어서 다음장을 읽어야 하는데 싶어서.

드라마적 몰입력의 힘이 정말이지 대단히 강한 작품이었다.

드라마나 영화를 볼때, 뻔하다 흔하다 싶으면서도 어느새 마음졸이며 인물의 감정에 공감하고 스스로를 촌스럽다 생각하면서도 울컥하며 눈물흘리고 좀 신파적이다 생각하면서도 저절로 몰입하게 되는 이야기들이 있다. 그렇게 가슴떨리게 빠져들고 진한 감동에 먹먹해지는 드라마들이 있다. 이 소설이 그랬다.

가제본 표지에 적혀 있는 키워드가 #하와이 #여성연대 #100년전 #세여자이야기 #놀라운몰입도 인 이유가 있었다. 딱 그랬다.

일제강점기 하와이 사탕수수밭에 노동자로 건너갔던 사람들의 이야기, 그중에서도 그 노동자들과 결혼한 사진신부들의 이야기인 이 작품은 그야말로 누군가의 인생 그 자체였다.

"맞습니더. 미국 땅인데 섬이라 카데예. 거 가면 돈을 쓰레받기로 쓸어 담는다 캅니더. 그뿐아이라 옷이고 신발이고 나무에 주렁주렁 달려 있어가 맘에 드는 기를 따서 입고 신으면 된다 캅니더. 날씨는 또 우떻고예. 사시사철 늦봄맨키로 따시니 겨울옷이 필요없다 아입니꺼" ( p. 7)

김해의 작은 산골마을에 종종 들르던 보따리 장수가 '포와' 결혼이야기를 꺼냈다. 열여덟살 버들이는 의병이던 아버지를 잃고 일본군 말발굽에 오빠도 잃고 동생들과 어머니와 힘겹게 살아가던 때였다. 당장 먹고살기도 힘들고 의병의 딸로 결혼은 더더욱 먼이야기 같았는데, 포와로 시집가면 공부까지 할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마음이 설렌다.

여자가 한번 시집가면 그 집에 뼈를 묻는 게 조선의 법도였다. 버들은 홍주를 생각하면 바늘에 손이 찔려 피가 번진 자수보가 떠올랐다. 아무리 수가 잘 놓였어도 피가 묻으면 쓸모없어진다. 홍주는 잘못도 없이 한순간에 피 묻은 자수보 같은 팔자가 된 것이다. ( p. 14)

버들의 가장 친한 친구 홍주는 양반족보를 산 마을부잣집의 귀하게 자란 외동딸이었다. 하지만 진짜 양반가문과 혼사를 맺고 싶었던 아버지에 의해 만난 신랑은 병든몸이었고 결혼한지 몇달만에 과부가 되어 친정에 돌아오게 된다. 홍주어머니는 버들에게서 들은 '포와'이야기에 자신의 딸을 사진신부로 보내기로 마음먹는다.

"내는 조선이 왠수다. 힘없는 나라 때민에 남편도 잃고 자식도 잃은 기라. 포와는 조선이 아이니까네 지킬 나라도 없을 거 아이가. 거 가서는 오로지 느그 생각만 하면서 신랑캉 얼라 놓고 알콩달콩 재미지게 살그라. 그기 오직 내 소원이다" (p. 36)

"애기씨들도 여서 더 낫게 살 수 있으면 뭐 할라꼬 부모 형제 떨어져 그 먼 데로 가겠습니꺼. 여서 지대로 몬 살겄어가 새 시상 찾아가는 기 아입니꺼?송화한테 측은지심 품고 여서도 포와 가서도 동기맨키로 잘 지내이소. 나이도 동갑이라예" (p. 44)

딸 앞에서 모질게 마음먹고 말하는 어머니의 소원을 마음에 품은 버들과 허울뿐인 조선의 법도를 벗어나려는 홍주는 무당의 딸로 손가락질 받으며 자란 송화와 함께 하와이(=포와)로 가는 배에 오른다. 셋 다 포와에 대한 희망에 부풀었지만, 조선에서 살기 힘든 처지를 단박에 없애주는 낙원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사진신부가 들어오기 시작한 게 구년째야. 대부분 우리 여관에서 묵었어. 다들 처음엔 초상난 것처럼 울고, 돌아간다고 난리를 쳐도 결국은 그 신랑하고 살아. 돌아갈 여비도 없고 결혼 안 하면 여기서 쫓겨나는데 어쩌겠어. 색시들도 여기까지 왔으니 신랑이 성에 안 차도 마음 붙이고 열심히 살아. 그럼 좋은 날 있을 거야" (p. 86)

낯선 땅에서 만난 사진신랑들은 사진과 너무 달랐다. 나이도 속였고 재산도 속였고 사는 형편도... 모두 다 속였지만... 이미 혼인신고가 된, 그리고 말도 통하지 않는 땅에서 기댈 수 있는 유일한 남편이었다. 결혼식은 초상집처럼 울음바다였다. 그렇게 눈물 속에서 새로운 생활이 시작되었다.

농장주들은 대규모로 농사지어 설탕과 파인애플을 수출했다. 하와이가 미국령이 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수출할 때 높은 관세를 물지 않기 위해서였다. 농장주들은 처음엔 원주민을 노동자로 썼는데 수가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유럽 사람들을 고용했지만 그들은 뜨거운 날씨와 힘든 노동을 견디지 못했다. 농장주들의 눈길은 아시아로 향했다. 처음 불러들인 중국인들은 계약 기간이 끝나자 대부분 농장을 떠나 미국 본토로 갔다. 그다음에 온 노동자들은 일본인들이었다. 그들 또한 계약 종료 후 본토로 가거나 임금 인상과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파업을 자주 벌였다. 조선인 노동자는 1903년에 첫발을 디뎠다. 그 뒤 이민이 금지된 1905년까지 칠천명 넘게 왔지만 이십만 명이 넘는 일본인 노동자에 비하면 적은 수 였다. (p. 89)

"교회에 가면 세상 돌아가는 일도 듣고, 조선 소식도 알고, 또 사람들하고 어울릴 수 있으니까 다니는 사람들도 많아" (p. 91)

하와이에 노동자로 간 사람들은 스스로의 선택이지 강제징용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할만하진 않았다. 농장주들은 채찍을 휘두르며 가혹하게 일을 시켰고 힘없는 나라의 노동자들은 나라를 뒷배로 둔 파업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뼈가 으스러져라 노동해서 스스로 기반을 닦아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는 사이 조선의 상황은 나빠져만 갔고 해외노동자들의 구심점엔 교회가 있었다.

"내사 마 조선에 돌아갈 맘 없다. 여거 내 딸들 맘껏 핵교 보내고 자유껏 살 기다. 조선한테 쥐뿔 받은 기 업지만서도 내가 와 발 벗고 나서는가 하면 고향 떠난 우리한테는 조선이 친정인 기라. 친정이 든든해야 남이 깔보지 몬한다 아이가. 일본인 노동자들이 툭하면 파업하는 기 우째서겄노. 힘센 즈그 나라가 뒤에 떡 버티고 있어가 노동자들이 하올레하고 맞짱 뜰 수 있는 기다" ( p. 197)

"내사 마 여 올 때는 내한테 해 준 기도 없는 그깟 조선 망해 삐리든 말든 상관없었는 기라. 그란데 아를 놓고 보이 그기 아이데. 나라가 일본한테 맥혀가 있으면 내 자식도 곁방살이 하는 집 얼라 맨키로 평생 주눅 들어가 살 기 아이가. 당장 밥 한 숟갈 들 묵어도 독립하는 데 힘을 보태야 않것나. 까막눈 무지랭이도 조선 사람이면 다 그레 생각한다 아이가" (p. 232)

하와이에 노동자로 살고 있던 사람들과 함께 하게 되면서 버들은 나라에 대해서도 사람들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깨닫게 된다. 하와이에서도 독립운동은 전개되고 있었다. 지금도 흔히들 말하지 않는가? 외국나가면 다 애국자 된다고 ㅎㅎ 그냥 여행하러 외국나갔을때도 외국에 있다는 것 자체가 조국에 대한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하물며 일제강점기때는 오죽했을까.

하지만...

"가시아바이나 정호 오삼춘 목숨 헛되지 않게 할라믄 반다시 싸워야 하갔구만. 내레 자식 앞에 당당한 아바지가 되고 싶어. 정호가 낸중에 아바지는 그때 어디세 뭬 하고 계셨댔시요, 하고 물으믄 할 말이 있어야 하지 않간? 내레 지금 안 가면 평생 후회하믄서 살기야. 그럴 수는 없지 않네. 정호야, 아바지레 일본놈 싹 다 무찌르고 나라를 되찾아 올 테니까니 오마니하고 씩씩허가 잘 지낼 수 있지?" (p. 269)

사탕수수밭 노동자들의 삶은고됐다. 사진신부들의 삶이 신랑들과 나이차이만으로 우울했던 것은 아니다. 노동자들 중에는 건실하게 삶을 꾸려가는 사람도 있어지만, 술과 도박과 폭력을 일삼는 노동자도 많았다. 타지에서 어린 신부들이 맞이한 현실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하물며 버들의 남편인 태완은 그와중에 독립운동에 몸바치고 있었다. 이래저래 여성들의 삶은 어머니의 삶으로 점철되면서, 자식을 살리고자 하는 어머니의 강인한 생명력 그 하나만이 삶의 목표가 되어갔다.

와히아와의 한인 교회는 두 개였다. 원래부터 있었떤 감리교회와 이승만이 세운 기독교회. 감리교단과의 갈등으로 호놀룰루에 한인기독교회를 세웠던 이승만은 한인이 많이 사는 와히아와에도 교회를 열었다. 와히아와는 동지회 회원들의 단결력이나 이승만을 향햔 충성심이 호놀룰루보다 더 강한 곳이었다. ( p. 281)

버들은 동지회 사람이 독립단 사람을 만나거나 교류를 하면 벌금을 물리다는 홍주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그냥 만나면 얼마, 깊은 교류를 하면 얼마 하는 식으로 벌금 액수까지 매겨져 있었다. ( p. 288)

독립을 향해 힙을 합쳐도 모자랄 판에 갈등은 심화되어 갔다. 이승만에 충성하는 사람들은 이승만을 우상화하며 충성심을 열성적으로 표현했고 반대파에 대한 폭력도 서슴없이 행했다. 버들은 그 어느 교회에도 다니지 않았으나, 함께 사진신부로 왔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승만교회에 다니면서 버들에게 등을 돌렸다.

"첨엔 과부 돼가 어진말로 돌아왔을 때 젤로 싦었던 기 사람들 한테 동정 받는 기였제. 인자 서방한테 소박 맞았다꼬 혀 차고 수군거려 쌓아 가기 싫다. 그라고 사업할라 카면 어느 한쪽에 발 담가가 있는 기보다 자유로운 기 낫다 아이가. 버들아, 우리 열심히 돈 벌어가 부자 되자" (p. 303)

우여곡절끝에 버들과 홍주는 세탁소사업을 벌이게 되고 송화도 합류하게 된다. 하지만 셋이 함께 행복했던 시간은 짧았다. 너무 짧았다. 그간의 기나긴 고생들에 비하면 정말 너무 짧았다...

젋은이들 뒤로 파도가 밀려오고 있었다. 그들은 파도를 즐길 준비가 돼 있었다. 바다가 있는 한, 없어지지 않을 파도처럼 살아 있는 한 인생의 파도 역시 끊임없이 밀어닥칠 것이다. 버들은 홍주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저쪽에서 아이들을 따라다니는 송화를 바라보았다. 함께 조선을 떠나온 자신들은 아프게, 기쁘게, 뜨겁게 파도를 넘어서며 살아갈 것이다. 파도가 일으키는 물보라마다 무지개가 섰다. ( p. 324)

아마도 이쯤에서 마무리되는 소설들이 많았던 것 같다. 고난을 겪고 조금씩 나아지려 할때 stop

하지만 이 소설은 달랐다.

현재 시점으로 이어지는 스토리에서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왜냐하면 2020년 지금의 삶도 그리 녹록치 않고 파도는 여전했으므로...

한인들과 미국인들은 나이뿐 아니라 이름을 적는 방식도 달랐다. 자기 이름보다 성을 먼저 쓰는 한인들은 개인보다 가족을, 가족보다 나라를 우선으로 생각한다.(우리 아버지 같은 사람 말이다) 날짜를 표기할 때도 연도가 먼저다. 오늘보다 과거나 미래를 더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우리 엄마 같은 사람 말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중요하다. (p. 334)

그런가.. 성씨를 먼저 쓰고 연도를 먼저 쓰는 것이 이렇게 생각되어질 수 있구나...

훌라 선생님은 우리게게 춤뿐 아니라 알로하 정신과 레이의 의미도 가르쳐 주었다. 어디서나 흔히 들을 수 있는 '알로하'라는 말은 단순한 인사말이 아니었다. 배려, 조화, 기쁨, 겸손, 인내 등을 뜻하는 하와이어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든 말이었다. 그 인사말 속에는 서로 사랑하고 배려하고 존중하며 기쁨을 함께 나누자는 하와이 원주민의 정신이 담겨 있다고 했다.

레이 또한 단순한 꽃목걸이가 아니었다. 누군가를 두 팔로 안는 것과 같은 의미의 레이는 사랑을 뜻했다. 원주민들의 풍습이었던 레이는 레이 데이가 있을 정도로 널리 퍼진 문화가 되었다. (p. 354)

이 책에 왜 '알로하' 가 들어가야 했는지 이 구절을 통해 절절이 전달되는 듯 했다. 그저 말뜻풀이였는데 그 자체로 충분했달까...

레이의 끝과 끝처럼 세 명의 엄마와 나는 이어져 있다. 나는 또 어느 곳에 있든 하와이, 그리고 조선과도 이어져 있다. 가슴이 뜨거워졌다.

아스라이 펼쳐진 바다에서 파도가 달려오고 있었다. 해안에 부딪힌 파도는 사정없이 부서졌다. 파도는 그럴 걸 알면서도 멈추지 않는다. 나도 그렇게 살 것이다. 파도처럼 온몸으로 세상과 부딪히며 살아갈 것이다. 할 수 있다. 내게 언제나 반겨 줄 레이의 집이 있으니까. (p. 384)

크... 정말 더할나위 없는 똑 떨어지는 작품이었다.

'세여자' 라는 소설이 있다. 이 작품과 같은 시기의 세여자를 다룬 소설인데, 실화적 소설이라 무척 감명깊게 읽었더랬다. 여기서의 세여자는 공산주의자로서의 인생을 보여주고 있어서 역사적으로도 드문 장면들을 많이 알게 해준 좋은 작품이었다.

'알로하, 나의 엄마들' 속 세 엄마들 이야기도 실화적 소설이라 여겨도 무방해 보인다. 역사에 이름이 남지 않았을지라도 당시 대부분의 삶이 그러했으리라 짐작이 되기에... 무엇보다 사투리 그대로 씌여져서 읽다보면 마치 영화를 보듯 드라마를 보듯 실제감과 입체감이 느껴져 더욱 실화처럼 다가왔다.

세여자를 다룬 소설은 이 두 작품 외에도 더 있는데, 세명이라는 숫자가 가장 다층적인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일까? 작가들이 세명을 선택하는 것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도 하게 된다...

여하튼,

가슴 뭉클한 가족 이야기... 그닥 좋아하지 않는 편이었는데... 이 작품은 정말이지... 너무나 뭉클하게 다와서...

오랜만에 진짜 가슴벅차게, 찐하게 읽은 좋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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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
대프니 듀 모리에 지음, 변용란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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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될 운명인 아이는 불어오는 모든 바람에 예민하다"-대프니 듀 모리에

 

 

대프니 듀 모리에(1907~1989) 는 "레베카' 라는 작품을 통해 알게 됐다.

레베카! 정말 멋진 작품이었다. 로맨스를 그토록 스릴러적 긴장감으로 읽어본적이 있었던가?!

원작 소설에 반해서 보게된 뮤지컬은 더 좋았다. 소설을 읽을땐 남녀 두 주인공의 감정에 푹 빠져 읽었었는데, 뮤지컬을 볼땐 댄버스 부인의 압도적인 카리스마가 정말 압권이었다.

그 후 대프니 듀 모리에 의 단편집인 이 책 '인형'을 읽게 됐다.

'서스펜스의 여제' '최고의 이야기꾼' 으로 불린다는 20세기 영국의 가장 대중적인 작가 중 한명으로 일생 동안 꾸준히 작품을 활동을 했다는데, 이제야 읽게 되었다는것이 아쉬웠을 정도로 너무 좋은 작품집이었다.

나는 국내 단편소설을 읽을떄 단편 특유의 난해함?!에 내용 전부를 공감하고 이해하기 어려울 떄가 많았다. 하물며 외국 단편은 더더욱;;; 그래서 외국 소설의 경우 장편이 늘 손에 잡기 편하곤 했다. 하지만 대프니 듀 모리에 의 단편들은 달랐다. 앞이나 뒤가 갑자기 뚝 잘린 느낌의 단편들이 아니라 하나하나 완성된 작품으로 충분한 소설적 재미가 가득했다. 외국 단편집을 이렇게 빠져들어 읽어보긴 또 처음이었던 것 같다.

게다가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은 모두 1926~1932년 사이 그러니까 대프니 듀 모리에의 경력상 매우 초창기에 쓰여진 작품들이다. 공식 작품 연보에 드러난 발표순서가 아닌 순수한 의미의 작품 탄생 순서를 따라 실었다는 열세 편의 작품들은 다 25세 이전에 쓰여졌다는 것인데, 정말 천재적인 작가임에 분명하다. 거의 백여년전에 쓴 작품들이 이토록 현대적일 수 있다니... 애드거 앨런 포 의 단편집을 읽을 떄보다 더 강렬한 서스펜스와 스릴을 느낄 수 있었기에 왜 작가의 이름이 그동안 왜 국내에서 유명세를 타지 않았던 것인지 의아했다. 내가 잘 몰랐던 것일수도 있지만, 여하튼 정말 놀라운 감각을 지닌 작가였다.

거대한 바다는 하얀 포말을 일렁이며 절벽에 부딪치면서 항구 주변의 바위를 휩쓸었고, 그러는 사이 계속해서 불어오는 동풍이 들풀을 쓰러뜨리고 뜨거운 하얀 모래를 사방으로 흩뿌리며 희미한 운무 사이를 휘젓고 다녔고, 초록색 파도는 악마처럼 섬을 제멋대로 뒤덮었다. <동풍> p. 14

그런 섬이 있는지 없는지 알려지지 않은 작은 섬에 작은 마을이 있었다. 거센 동풍을 피해 커다란 배가 한 척 정박하게 되고, 그 배의 선원들은 작은 마을에 동풍이 일으킨 폭풍우보다 더 거센 파란을 일으킨다. 하지만

그렇게 낮이 가고 또 다른 밤이 지나고, 또 다른 하루가 밝았다. 태양은 빛나고 바다는 전율하며 부서지고 바람이 불었다. 고기를 잡으러 항구를 떠난 사람은 없고, 땅을 일구는 사람도 없었따. 풀밭은 갈색으로 변해 죽어가고, 몇 안 되는 나무들도 말라서 축 늘어진 이파리를 떨구면서 섬엔 그늘이 없어진 듯 했다. <동풍> p. 20

동풍이 불어 바다에 배를 띄울수 없었던 며칠간, 의문이 범선이 머물던 그 며칠간 마을은 태풍의 눈 속에 있었던 듯 평화로운 것처럼 보였지만, 동풍이 멈추었을떄 마을은 제 모습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들은... "대형 범선은 아침 썰물을 빌려 떠나버렸다" <동풍> p. 24

한 남자가 한 여자를 보자마자 사랑에 빠져버렸다. 하지만 그 여인은 알듯 알듯 없었고 가까워질듯 하면서 멀었다. 그녀의 이름은 리베카.

나는 무기력함을 느꼈다. 내 처지가 우스꽝스러웠다. 하지만 나더러 어쩌란 말인가? 그녀는 나에게 하나의 광기, 집착이 되었다. <인형> p. 48

리베카도 이 남자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남자는 느꼈었다. 하지만, 그녀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대상은 그가 아니었다.

생기도 없고 유리알처럼 고정된 그의 눈은 결코 흔들림 없이 나를 응시했다. 축축한 선홍빛 입술은 비웃음을 머금었고, 매끄러운 검은 머리칼은 뺨 위로 흘러내렸다. 그는 나사로 작동되는 일종의 기계였다. <인형> p. 52

한 성당의 주임 사제인 제임스 홀러웨이는 매력의 결정체 같은 존재였다. 외모도 탁월했고, 목소리는 울림이 있었으며, 매너와 재치 또한 타의 추종을 불허할만한 수준이었다. 그리고 누구보다 그 자신이 자신의 그 매력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모든 순간 모든 장소에서 모든 일에 대해 자신만만했다. 그러던 어느날 한 요양원에서 설교를 하던 중

"예수님께서 우리 같은 인간의 모습으로 지상에 내려오셨다는 사실을 우린 잊고 있습니다. .. 그리스도처럼 철저하게 인간이셨던 분은 아무도 없습니다. ... 그분의 감정이 인간의 감정이었음을 가리키는 확고한 증거가 가득합니다. ... 그분의 마지막 외침 또한 인간의 음성이 아니었습니까?" 약간 숨이 가빠진 신부는 말을 멈추었다. 환자들은 확실히 감동을 받은 듯했고 그는 또 한번 승리를 거두었다.

그런데 먼 구석 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화에 전혀 참여하지 않고 있던 심술궂은 얼굴의 노인이었다.

"그리스도는 신의 아들인 걸로 알고 있소" 노인이 말했다. 어색한 정적이 흘렀고 잠깐이지만 신부는 약간 어안이 벙벙했다.

이윽고 그가부드럽게 말했다. "맞습니다. 그렇지요" 그러나 너무 늦은 대답이었다. 마법은 깨져버렸다. 그는 패배감을 느끼며 그곳을 떠났다. <그러므로 이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 p. 75

 

하지만 제임스는 결코 흔들리지 않았고, 다시 자신의 매력에 풍덩 빠져들었다.

그는 아름다운 자신의 목소리에 홀딱 반했다. 마침내 그는 잠시 뜸을 들였다가 최고조의 승리감에 벅찬 음성으로 강론을 마쳤다. 세상은 그의 것이었다. 마지막 손짓과 함께 그는 의기양양하게 고개를 돌렸다. "그러므로 이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 <그러므로 이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 p. 92

작가는 서스펜스에만 능한 줄 알았더니, 블랙 코미디적 유머감도 훌륭했고 남녀의 심리비교도 탁월했는데,

남자는 어쩌다 특별한 이유 없이 탈출해야 한다는 걸 그녀는 절대 깨닫지 못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런 외출은 그에게 자유로운 기분을 안겨 주기 때문에 되풀이되었다. <성격 차이> p. 93

하지만 그녀가 분개하는 것도 바로 그 부분이었다. 그녀는 모든 것을 공유하고 싶어 했다. 그녀는 그와 따로 떨어져서 무언가를 한다는 걸 결코 상상할 수도 없었다. 게다가 그녀는 묘하게 그의 생각을 읽을 줄 알았다. <성격 차이> p. 94

 

예전에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라는 책 제목이 상징하는 남녀의 차이점에 대해 비교묘사하는 것이 유행하던 떄가 있었는데... 저자는 이미 단편에서 그 차이를 분명하게 느낄 수 있게 하는 작품을 썼다. ㅎㅎ

그녀는 자신이 혐오스러웠으며, 자신이 한 말을 증오했고, 내심으론 전혀 다른 말을 하고 싶었다.

그는 버럭 소리쳤다. 방을 나온 그는 집 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내가 하려던 말은 그게 아닌데, 내가 하려던 말은 절대로 그게 아닌데' 라고 그는 생각했다. <성격 차이> p. 107

 

남녀는 아주 사소한 일에서 시작된 말다툼에서 아마도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넌 듯 하다. 지금의 현실에서도 남녀가 수시로 그러하듯이 ㅎ

한 남자가 7년의 약혼기간을 기다려 사랑하던 여자와 드디어 결혼했다. 이 둘은 가진 것 없는 초라한 시작이었지만, 둘이 함께 노력하면 미래는 행복이 넘쳐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소박하게 떠난 신혼여행 첫날 낭만적인 밤을 꿈꾸며 숲속에 야영 텐트를 쳤다.

하지만 갑작스런 폭풍에 텐트는 주저앉았고, 길가에 세워둔 차는 그 안에 실려 있던 짐과 함께 도난당했으며, 길을 헤매다 결혼반지 까지 잃어버렸다. 그렇게 허름한 여인숙에서 첫날밤을 보내고 다음날 서둘러 일자리를 찾아보았는데

"달링, 나 일자리를 찾았어"

"정말 멋지다!" " 나도 일자리를 구했어. 근무 시간은 9시부터 7시까지야"

"설마 진심으로 하는 말은 아니겠지!"

"왜! 뭐가 문젠데?"

"내 근무시간은 7시부터 9시까지. 달링, 난 액튼에 있는 은행의 야간 일꾼이야" <절망> p. 120~121

 

작품 제목이 <절망> 이다. 그런데 읽으며 얼마나 키득거렸는지 모른다.

7년을 기다려 결혼했는데, 첫날밤도 함께 하지 못한채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구한 일자리 시간이... ㅍㅎㅎㅎ

한 여자의 독백이 시작된다. 묘한 차림의 이 여성의 외모 묘사로는 어떤 일을 하는지 누구에게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처음엔 알 수 없었다.

잘 들어. 잉크 묻은 손가락으로 수첩을 들고 있는 우스꽝스럽고 왜소한 기자 양반, 내가 이야기 하나를 들려줄 거야. 어쩌면 사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 잘 듣고 당신 입맛대로 인용해서 [일요일 개소리] 특별판에 큰 글씨로 실어도 좋아. 메이지의 고백, [무엇이 나를 이 직업세계로 이끌었는가] <피카딜리> p. 126

의외로 여성은 자신의 사랑이야기를 털어놓는다. 한남자를 너무나 사랑했고, 그의 사랑을 믿어 의심치 않았기에 그가 하라는 모든 일을 순종적으로 했다. 하지만 그는 그녀를 떠났고, 방황하던 그순간 그녀 눈에 띈 것은

"참 나, 신의 계시가 곧장 내 머리 위에 큼지막하게 적혀 있떠라고, 승강장 끄트머리에 불꽃같은 글씨체로 말이야. '피카딜리로 가실 분은 붉은 등을 따라가시오" <피카달리> p. 142

작품 제목을 봤을떄 짐작했어야 했음에도 그러지 못하고 읽었을 만큼 이야기 풀어나가는 솜씨가 탁월했다. 그리고 이 작품은 아마도 피카딜리를 아는 영국인이 읽었을 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을 유머일 것이다.

한 소녀가 오랜 기숙사 생활을 조신하게 하는 동안 어엿한 숙녀가 되었다. 그녀는 어른이 되었고, 많은 일들이 펼쳐질 것이라 기대하며 고향 어머니집에 돌아왔는데, 자신을 맞이하는 어머니의 태도가 전과 같지 않았다. 그리고 그 옆에는 늘 모녀와 함께 였던 존 삼촌이 있었다.

그렇다. 존 삼촌은 어머니에게 유용한 존재이고 다정했지만, 꽤 나이가 많아서 마흔을 훨씬 넘겼다. 가엾은 늙은이 존 삼촌! 여름에 두 분이 파리를 거쳐 칸에 가는 길에 잠시 들렀을 때 팡시옹에 함께 지내던 친구 하나가 그에 대해서 뭐라고 했더라? "저 사람이 너희 어머니가 키우시는 집고양이야?" 얼마나 근사한 표현인지! <집고양이> p. 146

그녀는 존삼촌이 집고양이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머니가 전과 다르게 딸을 대하듯이 존삼촌도 전과 다르게 그녀를 대했다. 냉랭해진 어머니와 다르게 갑자기 친근감있게 다가왔다.

그는 상기된 얼굴에 다소 흥분한 표정이었고, 영문을 알 수 없는 태도로 그녀에게 손짓을 했다. 그가 말했다. "어서 와라, 즐겁게 지내야지. 고양이가 자리를 비웠을 떄 말이다......" p. 153

결국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이런 것이었다. 복잡하고 사악하기 이를 데 없는 친밀한 관계의 부도덕한 이면. 사랑스러움도 없고 로맨스도 없었다. 그녀도 자기 차례가 되면 이렇게 어머니와 똑같은 가면을 쓴 채 거짓으로 점철된 가혹한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집고양이> p. 163

 

아름답고 조신한 숙녀가 되어 집에 돌아와 겪는 며칠 동안 이 어린 숙녀는 곧 깨닫게 된다. 그녀가 꿈꾸던 어른으로 사는 살이 결코 꿈꿀 만한 것이 아니란 것을.

이런 작품을 작가가 25게도 안되던 때 썼다니.. 그시절에도 지금처럼 웃픈 현실이었나 보다.

여성작가라서인지 아무래도 작품들 속에 여성화자가 많이 등장한다. 그리고 여성의 심리를 다양한 측면에서 섬세하게 잘 묘사한다.

메이지 라는 젊은 여성이 있다. 하루하루 근근이 살아는 중이지만, 그러한 하루하루가 그녀 본인도 편치는 않다.

"이봐요, 나도 한때는 당신처럼 젊고 예뻤다우, 나한테 저녁 식사를 대접하고 돈도 넉넉하게 챙겨주는 신사들도 많았지. 그렇게 먼 옛날 일도 아니야. 언젠가 당신도 늙고 추해지면 어떤 심정인지 알게 되는 날이 있을 거야. 그때가 오면 지금 나와 똑같이 당신도 여기 서서 사람들에게 자신을 구걸하게 될걸" <메이지> p. 185

하지만 어느 시대이든 젊은이들은 늘 젊기떄문에 이러한 말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메이지도 그랬다.

석달간 독일에 출장간 남편을 돌아오기로 한 날 설레는 마음으로 남편맞이 준비를 하는 여성이 있다. 하루종일 행복에 들떠 준비하던 그녀에게 친구의 울음 섞인 전화가 걸려온다. 당장 달려가 친구를 위로해주긴 하지만 여전히 그녀의 마음은 둥둥 떠있다.

문가에 서서 그녀가 얼굴을 환하게 빛내며 행복하게 말했다. "괜찮아. 오래가는 아픔은 없어" <오래가는 아픔은 없다> p. 202

남편이 올 시간이 되어 급하게 떠나며 그녀는 친구에게 위로의 말을 남기지만... 남편이 돌아온지 몇시간이 채 안됐을 떄 그녀는 자신이 했던 말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그녀는 남편을 기쁘게 하고 싶은 마음에 초조하게 미소를 지었지만, 무언가가 예리하고 작은 칼날처럼 그녀의 심장을 찌른 뒤 이리저리 비틀었고, 그녀의 머릿속엔 그 말이 계속 되풀이해 떠올랐다. "괜찮아, 오래가는 아픔은 없어, 오래가는 아픔은 없어" <오래가는 아픔은 없 다> p. 211

사람은 늘 정말 한치앞도 모르는 존재다. 그리고 남의 일이 자신의 일이 될줄은 더더욱 예상치 못한다. 저자는 블랙코미디에도 소절이 넘쳐난다.

달려가는 거리가 늘어남에 따라 그의 이마에 빨갛게 햇빛에 화상을 입은 자국이 우스운 모양으로 생겨났는데도 그녀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남자 역시 그녀가 쓴 베레모 아래로 까만 곱슬머리가 예쁘게 삐져나온 것은 보았지만, 콧등에 두들긴 파우더가 더덕더덕 뭉쳐 있는 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들은 사랑에 빠져 있었다. <주말> p. 214

그들은 서로 애칭으로 부르며 특별한 언어로 대화를 나누었다. 둘 다 혀짤배기소리를 하며 입술을 삐죽이지 않고는 문장을 맺지도 못했고, 말끝마다 발을 동동 구르며 손뼉을 쳤다. p. 216

 

사랑에 빠졌을 떄 그 순간 상대방의 단점은 보이지 않고 장점만 보인다. 서로를 유치한 애칭으로 (소설 속에서는 찍찍이 와 까칠이 ㅎㅎ) 부르며 혀짧은 소리를 내는 것은 서양이나 동양이나 예나 지금이나 비슷한가 보다.

가끔씩 그녀는 남자의 이마에 생긴 일광 화상 얼룩을 흘끔흘끔 쳐다보았다. 그는 여자의 콧등에 뭉친 파우더 얼룩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더 이상 사랑하는 사이가 아니었다. <주말> p. 225

그들이 서로 사랑인줄 몰랐을 떄 사랑에 빠져들었듯이, 그들이 서로 사랑이 식인줄 몰랐을 떄 그들은 사랑하는 사이가 아니었다. 그리고 이 남녀가 함께 한 시간은 불과 단 한번의 '주말' 이었다. ㅋㅋㅋ

그녀가 처음 그 골짜기를 본 것은 꿈속이었고, 깨어나면서 몇몇 장면만 스치듯 떠올랐다가 낮 동안 바삐 지내며 쉽사리 기억이 희미해지고 잊히기를 반복했다. <해피밸리> p. 229

데자뷰를 경험하듯 그녀가 꿈에서 만났던 사람을 만나고 그와 간 곳에서 익숙한듯 낯선 장소를 경험한다. 일종의 시간여행 같은 이 작품은 판타지를 읽는 기분도 느끼게 하는데 저자가 판타지 소설을 썼어도 재밌었을 것 같다.

<점점 차가워지는 그의 편지> 라는 작품은 한 남자의 편지로 진행되는 작품인데, 편지를 읽으면서 이 남자가 여자의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렸을 떄와 사랑에 빠졌을 떄와 그 마음이 식었을 때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짧은 편지글만으로도 충분이 미루어 짐작이 되었다. 저자의 센스가 정말 감탄스러웠다.

중국에서 보낸 3년이라는 세월은 저의 예절과 대화술을 완전히 망쳐놓았기에 틀림없이 제가 끔찍이도 서툴고 어핵해 보였을 것입니다. p. 248

과도하게 문명화되어 성욕마저 과도한 이 나라에서 벗어나, 플랜테이션의 평화와 안정감 속으로 되돌아기 전까진 난 숨도 쉴 수 없을 듯 합니다.

(B부인에게 남겨진 전화 메시지 'X.Y.Z씨는 오늘 중국으로 출항했음' <점점 차가워지는 그의 편지> p. 274

 

책에 수록된 마지막 단편인 <인생의 훼방꾼> 은 '아전인수'가 무슨 뜻인지 정말 제대로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작품이었다. 그냥 소설을 읽는 것뿐인데도 몰입이 되다보니 어찌나 기가막히던지... 그야말로 헐!

내가 알고 싶은 건 바로 이것이다. 내 인생은 어디부터 잘못되었을까? 온갖 사람들에게 그토록 친절하게, 내가 얼마나 진심을 다해 너그럽게 대했는데 어쟤서 그것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이 나는 전혀 이득을 보지 못할까? 처음부터 끝까지 언제나 나는 내 자신을 마지막 순서로 두고,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앞세웠다. 그런데도 저녁 시간인 지금 나 홀로 앉아 내 주변 사람들의 얼굴을 차례로 떠올려보면, 그들의 표정은 전혀 다정하지 않고 어쩐 일인지 쫓기는 듯한 얼굴이다. 하나같이 나를 제거하려고 애쓰는 것 같다. 그들은 그림자로 남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의사는 내가 너무 신경이 곤두선 상태로 살고 있다면서 수면제를 한 병 주었다. 어제, 또 한 번 진료 약속을 잡으려고 전화를 했더니 반대편 목소리가 말했다. "죄송하지만 야들리 박사님은 휴가중이십니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나는 의사 목소리를 알아들었다. 그가 다른 사람 목소리를 가장하고 있었다. 왜 나는 이렇게 불운하고 불행한가? 내가 무슨 짓을 했다고?<인생의 훼방꾼> p. 318~319

 

 

ㅍㅎㅎㅎㅎ

처음 시작은 긴장감 쫄깃한 스릴러 작품으로 시작했는데, 읽다보니 스릴러 보다도 살짝 비틀린 유머가 가득해서 여기저기 키득거리며 읽었다. 정말 이런 재미를 느끼게 될줄은 전혀 예상못했는데!

'레베카' 라는 쫀쫀한 로맨스를 읽엇을 떄의 감상을 토대로 비슷한 분위기의 단편들이지 않을까 싶었었는데... 정말 반전 대반전이었다. 마지막 장을 덮었는데도 다음 작품이 또 있었으면 싶은 마음이었다. 작가의 다른 작품들이 정말 궁금해진다.

외국 작가의 단편집에서 만족감을 느껴본 적 없던 사람이라면 정말 강추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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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울어진 교육 - 부모의 합리적 선택은 어떻게 불평등을 심화시키는가?
마티아스 도프케.파브리지오 질리보티 지음, 김승진 옮김 / 메디치미디어 / 2020년 3월
평점 :
절판


부모의 합리적 선택은 어떻게 불평등을 심화시키는가?

우리는 어쩌다 헬리콥터 부모가 되어버렸을까?

 

 

세상이 복잡해질수록 학문도 다양해지는 듯 하다. 학문마다 갈래가 점점 더 세부적으로 갈라지는 것을 보면.

예를 들어, 경제학 이라고 하면 정말 공급과 수요, 수출과 수입 같은 경제적 단어가 떠오르지만, 경제학자들의 연구분야는 점점더 다양한 학문과 접목되고 있다. 그렇게 다양하게 세부적으로 갈라지다보면 결국은 서로서로 연결된다. 거의 모든 학문이 통섭의 학문이 되어가고 있는 요즘이니 어쩌면 당연하게도. ㅎㅎ

이 책의 저자들은 경제학자이지만 그중에서도 '양육의 경제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이다. 양육, 교육의 문제는 점점 더 경제와 밀접하게 연결되고 있다. 교육의 핵심주체인 부모들은 다양한 경제적 요인에 영향을 받으며 자식을 위한 교육적 선택을 한다. 그 연관관계를 심층분석하는 이 책을 읽다보면 교육이 정말 굉장히 경제적?! 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Love, Money & Parenting - How Economics Explains The We Raise Our Kids (사랑, 돈 그리고 육아 - 경제학이 어떻게 우리가 아이들을 키우는 방법을 설명하는지) 라는 원제의 이 책이 알려주는 핵심은 현재의 '기울어진 교육'의 원인을 이해하고 그 해결점을 모색하기 위한 인식을 공유하는 데 있다.

우리는 아이를 키우면서 처하게 되는 환경이 부모의 양육선택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는 것을 이 책의 목표로 삼았다. 이 책은 부모들에게 이렇게 저렇게 해야 한다고 조언하는 책이 아니라 부모들이 실제로 하고 있는 행동의 기저에서 작동하는 요인이 무엇인지 파악하고자 하는 책이다. (p. 10)

저자가 본문에서 여러번 강조하듯이 이 책은 육아서가 아니다. 더 나은 양육법을 알려주는 책이 아니라는 의미다. 책을 읽다보면 좋아보이는 양육법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그때마다 저자는 강조한다. 양육과 경제의 다양한 연관성을 분석하고 있는 것이므로 그것을 우열로 받아들이지 말라고, 그리고 안좋아보이는 육아법에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그러니 양쪽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는 데 이 책을 활용해야지 한쪽으로 치우쳐 판단하지 말것을 자주 주지시킨다.

양육 방식 개념을 이해하는 데 우리가 주되게 참고한 것은 발달심리학 분야에서 매우 중요한 다이애나 바움린드의 연구다. 바움린드는 양육 방식을 독재형 양육, 허용형 양욱, 권위형 양육 의 세 가지로 구분했다. (p. 48)

이 책에서 우리는 권위형 양육의 요소와 독재형 양육의 요소가 결합된 유형을 일컬어 '집약적 양육'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것이다. 즉, '집약적 양육'은 아이의 삶에 매우 강하게 개입하는, 고도로 관여적인 유형의 부모 행동을 포착하는 용어다. (p. 61)

 

독재형/허용형/권위형 이 세가지 양육방식은 본문에서 수시로 언급되는 개념이므로 알아두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집약적 양육' 은 일명 헬리콥터부모의 증가추세를 이해하는데 필수적인 용어이므로 이또한 알아두어야 한다.

이 책에서 우리는 경제학적 접근 방식을 사용해 부모의 양육 행태를 실제로 결정짓는 인센티브들이 무엇인지, 또 경제적 인센티브가 변화하면 양육 방식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알아보고자 한다.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은 시대별로, 국가별로, 또 국가 내에서 각 사회적·경제적 집단별로 부모들이 채택하는 양육 방식이 어떻게 다른지에 대한 포괄적인 패턴을 알아보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부모의 의사 결정을 추동하는 주요 동기는 자녀에 대한 사랑과 애정이다. 하지만 독재형 양육의 사례에서 많이 볼 수 있듯이 양육이 꼭 아이의 즉각적인 행복을 최대화하는 쪽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왜 사랑과 애정에 의한 결정이 즉각적으로 아이를 불행하게 하는 쪽으로 내려질 수 있는지 이해하려면, 자녀에 대한 부모의 관심과 염려가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를 띠는지 더 깊이 알아볼 필요가 있다. (p. 65)

모든 부모는 아이를 사랑하고 따라서 아이가 성장했을때도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 교육은 자녀의 그러한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선택의 순간들에서 방향이 정해지기 마련이다. 따라서 독재형이건 허용형이건 권위형이건 부모들은 똑같이 자녀들에게 말한다. '다 너를 위한 일이라고'

하지만, 그 선택이 정말 아이를 위한 것이었는지는 굉장히 복합적으로 해석되기 때문에, 아이도 부모도 그 선택이 정말 행복의 조건이었는지 쉽게 말할 수 없다. 이 책은 굉장히 넓은 범위에서 다양한 분석을 통해 결론을 정리해 나가는데, 그 분석들이 대부분 고개를 저절로 끄덕이게 했다.

경제적 불평등이 심하면 집약적 양육이 채택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리고 경제적 불평등을 만드는 상황들은 시대별, 국가별 등등의 집단별로 상이하다. 그 다양한 상황들을 살펴본 결과, "우리가 제시하고자 하는 일반적인 주제에 부합한다. 부모가 아이와 상호작용하는 데 들이는 시간의 변화에서 알 수 있듯이 양육의 집약도와 관련해 큰 전환이 벌어졌고, 이 전환은 경제 불평등과 교육에 대한 투자 수익이 증가하고 더 일반적으로 양육 방식이 아이의 장래를 더 막중하게 좌우하는 방향으로 경제적 변화가 벌어진 시기에 발생했다. 이러한 경제적 변화의 결과, 부모는 아이의 학업 성과를 점점 더 걱정하게 되었고 더 집약적인 양육을 하는 것으로 반응했다. 즉, 아이가 학업 성과를 더 잘 낼 수 있을 법한 양육 방식을 선택했다. 따라서 헬리콥터 부모의 부상은 변화된 경제적 환경에 부모가 합리적으로 반응함으로써 나타난 결과라고 해석할 수 있다." (p. 135)

경제적 불평등이 교육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경제적 불평등은 국가별로 차이가 크기 때문에 저자가 예로 드는 국가들의 상황을 읽다보면 지금 한국의 교육현실과 비교하게 되어 여러가지 생각이 들기도 했다.

불평등이 높은 나라에서는 근면성이, 불평등이 낮은 나라에서는 독립성과 상상력이 부모가 생각하는 중요한 가치로 꼽히는 경향이 크다. (p. 141)

동일한 사회적·경제적 조건을 가진 두 부모를 비교했을 때 불평등이 낮고/낮거나, 더 누진적인 조세 시스템을 가지고 있고/있거나, 더 너그러운 사회적 지출을 하는 나라에 사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허용적인 부모일 가능성이 더 높고 권위형이거나 독재형일 가능성은 더 낮다. (p. 179)

교육에 대한 투자 수익이 높은 나라들에서는 권위형이나 독재형 부모의 비율이 높다. 반면 교육에 대한 투자 수익이 낮은 나라는 부모들이 더 허용적인 경향이 있다. (p. 182)

 

경제적 불평등이 비교적 낮은 국가일지라도 독재형 부모가 많은 (예외적 이라고 볼 수 있는 유럽의) 국가가 있다. 바로 프랑스와 스페인이다. 그런데 교육에 투자한 만큼 자녀가 미래에 얻게 될 수익을 생각해보면 프랑스와 스페인의 상황은 설명이 되어진다. 어느 경우가 되었든, 양육 방식은 부모가 직면하는 인센티브에 크게 좌우된다는 이 책의 주장은 점점 더 확실한 근거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불평등이 심해질 때 양육 격차가 증가한다면 사회적·경제적 여건이 가장 좋은 아이와 가장 낮은 아이의 학업 성취는 더 벌어질 것이고, 그리하여 계층 이동성이 낮아질 것이며, 그리하여 다음 세대의 불평등이 더 심해질 것이다. (p. 221)

집약적 양육이 경제수익을 보장하게 되면 될수록 부모가 줄 수 있는 여건에 따라 양육격차는 점점 더 벌어질 수밖에 없다. 양육격차가 양육의 덫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수도 있다. 그래서 저자는 "양육격차의 근본 원인을 찾아내고 경제 불평등이 증가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알아보아야 한다." (p. 222) 고 말한다. 그리고 양육격차를 줄일 수 있는 다양한 방안들을 모색해야 한다.

종교가 없는 부모는 종교가 있는 부모보다 허용형이 될 가능성이 상당히 컸다. (p. 262)

종교가 있는 부모의 45%가 젠더 편향적인 반면, 비종교적인 부모 사이에서는 27%만이 젠데 편향적이었다. (p. 298)

여권의 확장은 '남성의 특권'에서 '아동의 필요'로 강조점이 이동한 것과 연관지어 해석해볼 수 있다. 이 변화를 추동한 요인은 경제에서 인적 자본과 교육의 중요성이 매우 높아진 것이었다. (p. 311)

학교교육이 아이에게 경제적으로 더 나은 삶의 전망을 열어주기 시작했고, 아이를 사랑하는 부모는 아이를 일터가 아니라 학교에 보내는 것으로 이 인센티브에 반응했다. (p. 331)

아동노동 금지가 널리 법제화된 데는 아동 학대에 대한 인도주의적 우려도 영향을 미쳤겠지만 노조가 노동시장에서 경쟁을 제한하고자 했던 것이 더 주요한 동인이었다고 불 수 있다. (p. 344)

 

종교와 교육, 여권확장, 아동노동에 대해서 경제적으로 분석한 내용을 읽다보니 신선한 프레임들이 눈에 들어와 좋았다. 다양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한 분석결과들을 설명함에 있어 저자가 시종일관 객관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어 읽는 내내 내용들에 대한 신뢰도 탄탄해져 갔다.

집약적 양육은 부유하고 교육 수준이 높은 계층에 집중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이 지속되어 전근대 사회에서처럼 계급 간 구별과 분리가 심화된다면, 우리는 새로운 계급사회로 가게 될 지 모른다. 계급 간 구분은 양육의 집약도에서만이 아니라 전체적인 가치 체계에서도 드러나게 될 것이다. 가치관과 태도가 계층에 따라 다시 분화되고 있는 것은 걱정스러운 추세이며 민주 사회에 새로운 문제를 제기한다. 민주사회는 평등한 기회라는 이상, 그리고 사회적 이동성과 더 폭넓은 정치적 참여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제적 요인이 사회를 구성하는 유일한 결정 요인은 아니다. 우리가 정치적인 의지를 가지고 내리는 선택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경제적 요인이 불평등 심화와 계층 이동성 저하를 가속화하는 시대에, 민주 사회는 더 평등한 기회를 촉진하는 정책적 선택들을 내림으로써 이런 경향에 대응할 수 있다. (p. 388)

 

결국 선택의 문제다. 경제도 정치도 시민 한명한명이 선택권을 갖고 있다는 것이 어쩌면 유일한 해결책인건지도 모르겠다.

학교와 가정은 어느 정도 영향을 주고받으며 서로에게 맞춰간다. (p. 392)

북유럽은 학교들 사이에 질적인 차이가 거의 없고 진로 계열이 거의 나뉘지 않으며 대부분의 학생이 양질의 대학 교육 기회를 갖는다. (p. 393)

'걸려 있는 것이 많은' 시험의 존재는 불평등 수준이 낮은 편인 프랑스나 한국에서도 집약적 양육이 많은 이유를 설명해준다. (p. 395)

(중국의 입시제도) 가오카오가 기회의 면에서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평하게 한다는 개념은 과장이다. 가령 도시와 농촌을 비교해보면, 평균적으로는 전체 중국 학생 중 절반 정도가 인문계 고등학교로 진학하지만 상하이 같은 부유한 대도시에서는 이 비중이 많게는 97%까지 달한다. 수업의 질도 도시 학교들이 더 좋다. 도시 중산층은 아이를 비싼 학원에 보낸다. 또한 교육 수준이 높은 부모는 아이가 공부하는 것을 더 잘 지켜보고 도울 수 있다. 그 결과, 가오카오 시험 결과에 상당한 사회적·경제적 격차가 나타난다. 아이에게 더 좋은 교육을 시키기 위해 농촌에서 도시로 이주하는 것이 어렵다는 점도 도농 격차를 심화하다. (p. 404~405)

동아시아 문화에서는 '독립성'이 서구에서와 다른 의미를 갖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 부모가 아이에게 독립성을 길러주는 방식은 아이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게 두는 것이라기 보다 아이가 성인처럼 알아서 자기 일을 잘 할 수 있다고 믿어주는 것이다. (p. 411)

 

책에 나오는 나라들의 교육적 상황들이 각자 너무 달랐다. 스웨덴에서는 유치원생들에게 글자를 가르치는 부모를 아동학대수준으로 바라보고, 핀란드에서는 제일 조금 공부하지만 제일 성적이 우수하고, 스페인과 이탈리아 그리고 프랑스는 유럽국가들의 평균적 교육 상황과 달랐고, 영국과 미국 그리고 중국과 한국은 교육적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는 위험요소가 있으면서도 그문제를 바라보는 인식들이 달랐다. 그리고 그 상황들을 분석하는데 있어서 경제적인 관점은 굉장히 유용했다.

한중일 세 나라는 비슷한듯 달랐지만 '독립성' 에 대한 저자의 설명이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듯 보였다.

어쩌면 이렇게도 다 다른지... 읽을 수록 북유럽의 교육환경이 부러워지면서도 워낙 문화적·정치적·사회인식적 차이가 크다 보니 섣불리 북유럽식으로 하자고 말하기도 어려워보였다.

우리는 좋은 부모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제안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우리는 어떤 양육방식이 다른 양육방식보다 내재적으로 더 우월하다고 보지 않는다. 경제학자로서 우리는 모든 양육 방식이 상충적 교환관계를 갖는다고 본다. (p. 434)

이 책 전반에 걸쳐 주장했듯이 양육 선택은 우리가 살면서 내리는 가장 중요한 의사 결정이고 사회에섯 불평등의 양상이 어떻게 변천해갈지를 좌우할 주요 요소다. 그러므로 조세, 재분배, 교육 등과 관련된 정책 논쟁은 그런 정책이 양육에 미치게 될 영향을 비중 있게 고려해야 한다. 불평등 및 계층 이동성과 관련해 우려할 만한 경향이 많이 존재하지만, 신중하게 고안된 정책들로 이런 경향을 상쇄하거나 역전시킬 수 있다. (p. 452)

 

책은 크게 3부 10장 으로 이루어져 있고 각 부 마다 소결 이 정리되어 있어서 유용했다. 마지막 10장은 이 책에 대한 전반적인 결론들을 모은 내용이면서, 경제학자의 시선으로 본 양육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집단별·양육형태별 결과들을 통해 미래는 어떠해야 할지 그리고 어떻게 만들어갈 수 있는지에 대한 희망을 심어주고자 하고 있어서 그 지향점이 보기에 참 좋았다.

지금의 교육이 기울어져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리고 그 기울어짐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도.

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힘들게 뛰지 않도록 어서 평평한 운동장을 만들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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