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풀 사이언스 - 아름다운 기초과학 산책
나탈리 앤지어 지음, 김소정 옮김 / 지호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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퓰리처상 수상 작가 나탈리 엔지어가 안내하는 즐겁고 유쾌한 과학의 세계

과학을 사랑하는 작가가 알려주는 과학의 진정한 재미

아름다운 기초과학 산책

 

 

번역된 책을 읽을때 원서의 제목과 한국어판의 제목 사이에서 원래의 제목이 더 나았던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 책은 한국어판 제목이 더 마음에 든다. 원래는 The Canon - A Whirligig Tour of the Beautiful Basics of Science : 규범 - 아름다운 과학의 기초에 대한 공전 이 제목이지만 '원더풀 사이언스'라는 제목이 훨씬 더 잘 어울린다. 기초과학의 다양한 분야를 산책하듯 읽게되는 이 책은 정말 사이언스를 원더풀 하게 느끼게 해주는 책이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과학 작가 라는 저자는 다양한 매체에 다양한 과학관련 글을 쓰는 사람이다. 과학자가 아니라 과학작가 라서 그런지 글을 정말 잘 쓴다. 그러니 과학기사로 퓰리처상까지 받았겠구나 싶고. ㅎㅎ 그리고 정말 과학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왠만한 과학자보다 과학에 대한 애정이 더 많은 것 같다. 그 마음이 책을 읽는이에게 자연스럽게 전해지고 있어서 이 책을 읽은 독자라면 아마도 과학에 대한 애정이 없다가도 생겨났을 것 같다. 물론, 나는 원래 갖고 있던 애정이 더 높아진 경우다. ㅎㅎ

과학 발전의 미래는 응용과학의 활용이 아닌 기초 과학에 얼마만큼 투자하느냐에 달렸다. 오늘날 국회가 배정하는 과학 예산은 너무 적어서 천재나 우연한 발견에만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현행 과학자들을 보듬어 살피고 미래의 꿈나무들이 자랄 터전을 마련해주자. 과학 친화적인 환경을 조성하고 많은 어린 학생들이 과학 분야에 진출할 수 있도록 격려해주자. (p. 22)

누구나 과학을 알아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노래를 부르고 놀이를 하자고 하는 이유와 같다. 이런 것들은 재미있다. 재미있는 것은 좋은 것이다. 과학박물관이 재미있는 이유도, 아이들이 과학을 좋아하는 이유도 모두 그 때문이다. 과학은 재미있다. (p. 26)

이 책은 과학의 활동적인 아름다움과 진가를 인정받게 하기 위한 작은 시도이다. (p. 29)

 

여느 책보다 긴 서문에서 저자는 과학에 대한 애정을 마구마구 드러낸다. 이 재미있는 학문을 많은 사람이 알아야 하는게 당연하다고 시종일관 유쾌상쾌발랄하게 서술하는 저자의 글을 읽다보면 왠지 함박웃음을 짓고 큰 목소리로 반짝반짝 눈을 빛내며 '재밌지?' 하고 동의를 구하는 듯한 저자와 마주하고 있는 기분이 든다. 나는 물론 저자의 말들마다 고개를 끄덕이고 박수까지 쳐가며 '재밌어요!!!' 하고 동의해줄 참이다. 참 기분좋게 읽히는 과학책이다.

기초과학에 대한 예산부족과 자라나는 꿈나무 육성 환경에 대한 아쉬움은 '코스모스의 칼 세이건'을 생각나게 했다. 칼 세이건도 과학에 대한 솟구치는 애정을 담아 글을 쓰고 연구하면서 내내 예산관련담당자들을 쫒아다녀야 했다. '코스모스'도 참 아름다운 책이었다.

이 책을 쓰는 과정에서 직접 이야기를 나누거나 전화나 이메일로 의견을 교환하면서 이 나라 유수의 대학과 연구소에서 근무하는 수백 명이 넘는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과학자들은 찾았으면 하고 바라는 세계가 아니라 찾아낼 세계를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나는 소소의 큰 얘깃거리에 대해 다수의 작은 질문들을 하는 방식을 택했다. 비과학자들에게 과학을 알려주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많은 지식을 폭넓게 다루는 것이 아니라 몇 가지 주제를 깊게 다루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내가 전에도 들어봤던 것 같은 이야기들을 하고 있었다. 그 느낌이 근사했던 이유는 과학자들의 말을 통해 내가 알고 있던 기본적인 과학 지식들이 나만의 자의적이고 특이한 주장이 아니라는 근거와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p. 32~35)

저자는 수많은 과학자들에게 질문하고 이야기를 듣고 어떻게 더 잘 전달할까 고민하며 이 책을 썼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스스로도 과학에 대한 애정을 다시한번 더 진하게 확인했을 것이다. 때로는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다가 때로는 전문적인 과학이론을 설명하는 이 책은 과학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 읽어도 읽을만하게 자연스러운 흐름과 강약조절이 되어 있다. 그렇게 '찾았으면 하고 바라는 세계가 아니라 찾아낼 세계를 받아들이고 있는' 수많은 과학자들을 만나게 해준다.

저자는 기초과학 중에서 9 가지 주제를 선택했다. 과학적으로 생각하기, 확률, 척도, 물리, 화학, 진화생물학, 분자생물학, 지질학, 천문학

<과학적으로 생각하기 : 유체 이탈 체험>

과학은 단순히 사실의 집합이 아니다. 과학은 마음의 상태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이며 본질을 드러내지 않는 실체를 마주하는 방법이다. 가장 정교한 발톱으로 문제를 공격해 느낄 수 있고 음미할 수 있는 조각으로 갈기갈기 찢는 기술이다. (p. 38)

과학자들은 모든 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진실이 있으며, 그 진실을 다른 이들과 공유하고 그들이 납득하는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굳게 믿는다. 원한다면 우리는 이 진실을 주관적 진실이나 의견, 혹은 '계속해서 좋아하는 것이 변하는 변덕스러운 태도'와 반대되는 듯으로 '객관적' 진실 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p. 43)

객관적인 진실이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그 진실을 우리가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은 너무도 간명한 과학의 아름다운 진리로, 그 아름다움의 깊이는 거의 한량할 수가 없다. (p. 45)

과학자들은 똑똑해 보일 때도 있고 멍청해 보일 때도 있는 법이니 그것 때문에 걱정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언제나 진실해야 한다. 보고서의 결론은 언제나 정당한 것만이 담겨 있어야 한다. (p. 61)

 

과학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유체이탈체험을 하듯이 나를 나 아닌 다른 존재처럼 새롭게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를 신체에너지적 측면에서 분석할 수도 있도 진화생물학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과학은 모든 것을 상상케 하고 모든 것을 발견하게 한다. 하지만 과학은 오직 진실만을 객관적으로 말하는 학문이기에 정직하고 정당해야 한다. 과학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세상은 차갑고 각박해지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이고 정의로운 세상이 될수도 있다. 물론, 과학을 진심으로 생각할때만 가능하겠지만.

사람들은 위대한 과학 혁명이란 기존 지식을 완전히 뒤지어엎는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대다수의 위대한 과학이론은 기존 이론들을 통합하고 완벽히 흡수해 더 큰 진보를 이룩해왔다. (p. 66)

과학은 불확실하다. 왜냐하면 과학자들은 정말로 어떤 것을 완전히 반박할 수 없게, 중성미자만큼의 의심도 남지 않게 증명을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또 과학자들은 그런 시도도 하지 않는다. 대신에 과학자들은 틀린 부분이 아주아주 적은 가장 그럴듯한 설명을 찾을 때까지, 경쟁하는 가설들을 제거해나간다. 되도록이면 틀린 부분이 가장 적은, 가장 좋은 가설을 찾을 때까지. (p. 70)

오해의 근원을 세밀하게 조사해나가는 과정이 그리 즐겁지는 않겠지만 그렇게 해서 실수는 멍청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오해와 실수에도 분명 어떤 논리적인 이유가, 논리적이지 않다면 적어도 우스꽝스러운 이유가 있다. 더구나 어떤 과정을 거쳐 자신의 생각이 형성되었는지를 알게 되면 필요할 때마다 그 생각을 수정하고 개선하고 재가공할 수 있으며 기존 생각을 과학이 추구하는 진리에 가까운 생각으로 바꿀 수도 있다. (p. 84)

 

갑자기 발견되는 것은 없다. 아무것도 몰랐는데 깨달아지는 것은 없다. 모든 것은 다 작건 크건 앞선 과정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아르키메데스의 유레카도 그가 이미 과학자이고 물질과 부피에 대한 기초개념을 알고 있었기에 목욕탕에서 유레카를 외칠 수 있었던 것이다. 과학은 연결하고 통합하고 오류를 제거해나가는 삶의 한 방식이 될 수 있다. 과학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과학자에게도 과학자가 아닌 사람에게도 필요하고 또 좋은 것이다.

<확률 : 누구를 위한 종형 곡선인가?>

"우리 뇌는 확률적으로 생각하도록 되어 있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주관적이고 감상적인 방식이 완전히 머릿속에 박혀 있죠. 이런 사고방식이 굉장한 추진력을 주는 경우도 있지만 판단력을 흐려 완전히 그릇된 판단을 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확률적 사고방식에 익숙해지기 위한 좋은 방법 중 하나는 주관이 대단한 위세를 떨치고있는 영역에 확률적 사고를 적용해 보는 것이다. (p. 99)

"통계를 가지고 거짓말 하기는 쉽다. 그러나 통계 없이 거짓말 하기는 훨씬 쉽다" 또한 '통계에 말을 걸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이 있다. 많은 과학자들은 통계를 향해 간단한 질문을 던져보라고 제안한다. 통계가 제시하는 수치, 조사결과, 상관관계가 말이 되는지, 다시 말해서 객관적인 진실과 일치하는지 질문해보는 것이다. (p. 121)

통계 자료가 있으면 어떤 맥락의 자료인지 파악하고 배경 정보를 앞으로 가져와 살펴볼 수 있어야 한다. (p. 124)

 

인간의 뇌는 은근 변화를 싫어한다. 하던데로 계속 하고 싶고 생각하던 데로 계속 생각하고 싶고 어쩌다 일어나는 일은 예외로 지워버리고 싶어한다.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되는 일에 대해 확률과 통계적 근거가 제시된 반론은 그제서야 뇌에 객관적인 진실을 전달한다. 물론, 확률과 통계를 곧이곧대로 다 믿어서는 안된다. 예를들어, 한 마을의 평균소득을 조사했는데 대부분이 극빈자층이고 단 한명의 워렌 버핏 이 있어서 미국 상류층의 평균소득과 같은 수치가 나왔다면 우리는 이 숫자를 믿어서는 안될 것이다. 확률과 통계는 그 배경정보를 꼼꼼이 확인해보았을때 의미있는 정보가 된다. 과학은 의미있는 정보들만을 골라낸다.

<척도 : 크기와 놀다>

겉만 봤을 때, 우리 인간은 시간이나 날짜, 계절, 연도라는 독특한 시간 단위와 우리가 직접 보고, 만지고, 측정할 수 있는 도구와 관련해서 삶을 바라보게끔 진화한 것 같다. 왜냐하면 우리는 언제나 그것들을 가지고 일해야 하고, 그것들은 우리의 삶을 만들어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도구이기 때문이다. (p. 128)

보이지 않는 시간도 보이는 물체의 크기도 우리는 저마다의 단위들로 표현하고 측정한다. 시간은 우주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는 광활한 크기가 되기도 하고 십억분의1초인 아토초라는 소립자들의 시간으로 쪼개지기도 한다. 한눈에 담을 수는 없어도 눈에 보이는 거대한 물리적 공간을 측정할 수 있듯이 눈에 보이지 않는 세포의 미세한 크기도 측정할 수 있다. 인간이 만들어낸 다양한 척도는 인간세상을 인간의 이해가능한 범위로 알맞게 재단해 주는 듯 하다.

<물리 : 그리고 내게는 공허가 가득 차 있네>

물리학은 기본적은 물질과 힘을 탐구하는 과학이기에 과학 공부를 시작하는 첫 번째 과목이 될 자격이 충분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은 생물을 시작으로 과학을 배우게 된다. 생물을 배우면 그 다음은 화학을 배우며 물리는 접하는 것은 졸업할 무렵이 되어서다. 어린 학생들에게는 쉬운 것부터 어려운 것 순으로 가르쳐야 한다는 보수적인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과학자들 중에서는 물리를 먼저 가르치고 생명과학은 나중에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여러 과학자들은 물리학은 생물학과 화학을 위한 기초 학문인데, 콘크리트로 기초를 세우기도 전에 벽을 쌓아 올리고 지붕을 얹는 일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또한 제대로 가르츠기만 하면 물리학이 분명히 배울 가치가 있는 다른 과목들에 비해 특별히 어렵지도 않다고 말한다. (p. 155)

저자또한 위 과학자들의 의견에 찬성한다고 말한다. 그렇구나 싶으면서도 사실 물리학이 어려웠던 나로서는 쉽게 찬성이라는 말이 나오진 않는다. 학창시절에 과학을 좋아해서 화학, 생물, 지구과학은 다 재미있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물리는 도저히 잘 되지 않았다. 지금의 학생들에게는 물리가 쉽게 가르쳐지기를 바랄 뿐이다.;;;

형태도 없는 것에서 우리가 원자라고 부르는 영광의 구름이 생겨났으며 먼지와 재로부터 우리가 알고 있는 과정을 거쳐 별이 태어났다. 원자들은 자신들의 영역에만 머물 생각이, 외로운 원소로 남을 생각이 전혀 없다. 원자들은 활발하게 다른 원자들과 손을 맞잡아 이 세상이 분자들로 넘쳐나게 만들며, 화학은 당당하게 열역학 법칙을 면전에서 비웃으며 선언한다. 우리는 생명르 만들어낼 줄 안다고! 이제 화학의 세계로 넘어가보자. (p. 205)

<화학 : 불, 얼음, 스파이 그리고 생명>

우리가 사는 지구에는 화학이 가득하다. 물질은 온도에 따라 고체, 액체, 기체라는 세 가지 상태로 존재하고 태양이나 불을 땔 때 나오는 에너지로 한 분야의 원자 배열을 바꾸어 다른 분자로 만들 수 있다. "이 세상에 115명밖에 없다면 얼마나 지루하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 115개의 원소만 있다면, 115개의 원자가 이 세상에 있는 물질의 전부라면 얼마나 재미없겠습니까. 이야기할 것이 아무것도 없겠죠. 하지만 우리 세상은 그렇게 지루한 세상이 아닙니다. 115가지 원소로 거의 무한에 가까울 정도로 다양한 분자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겁니다. 화학은 분자에 관한 학문입니다. 우리도 분자이지요. 화학은 정말로 인간적인 학문입니다" (p. 210)

화학의 기본 주제는 분자와 분자를 한데 묶고 결합시켜 그 분자만의 특성을 만드는 화학결합이다. (p. 212)

생명체가 탄소를 기반으로 하는 화합물로 이루어져 있는 이유는 탄소가 생명을 유지하는 데 가장 적합한 분자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탄소는 융통성과 친화력을 두루 갖춘 강하고 뛰어난 지략가이다. (p. 227)

 

화학은 내가 제일 좋아했던 과학분야였다. 나는 질서정연한 그 규칙들이 좋았다. 원소 하나만 배열을 바꿨는데 전혀 다른 물질이 되는 것이 신기했다. 화학은 실험의 학문이다. 과학실에서 색색의 불꽃들을 구경하는 것도 좋았다. 교과서로 배우지 않게 되어서도 미세먼지부터 요리까지 일상의 곳곳에 화학이 있었다. 어쩌면 이 책의 제목인 canon 에 가장 잘 어울리는 과학은 화학이 아닐까.

<진화생물학 : 모든 몸들의 이론>

당신이 생각하는 신이 어떤 형태를 띠고 있건 간에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체들을 연결하는 근원적인 원리를 깨닫는 데는 종교적인 문제로 고민할 이유가 전혀 없다. 우리 주위에서 보는 생명,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생명은 우리보다 앞선 형태의 생명체가 진화해온 것이고, 우리보다 앞선 생명체들도 그보다 앞선 생명체들이 진화한 결과이다. 새루온 종들은 그 범위와 능력이 거의 전능에 가까운, 어떠한 자격도 보완물도 안전장치도 변호자도 필요없는 자연선택이라는 위대한 힘을 통해 진화해온 생명체들이다. (p. 253)

진화론의 태동은 종교와 직접적인 마찰을 빚었다. 서양에서 종교는 오랜 세월 인간의 삶을 지배해왔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그러한 종교가 들어온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어쩌면 진화론에 가장 편견없이 접근할 수 있는 토대가 우리에게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진화생물학 이라는 분야가 우리에게 낯선 학문이 되어 있는 걸까... 뒤는 돌아보지 않고 오로지 앞만 보며 성장해온 시간들 때문인 걸까? 과거를 거슬러 오르는 진화 보다는 미래를 앞지르는 유전공학 쪽으로?

진기한 생물들로 가득 찬 자연의 캐비닛 어디를 뒤지건 진화가 아무렇게나 마음대로 대충 만든 것은 하나도 없다. 자연의 많은 부분이 일부러 디자인한 것처럼 보이다면 그것은 실제로 디자인되었기 때문이다. 외부에서가 아니라 내부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지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애쓴 결과이다. (p. 291)

"생물들에게는 자기들만의 역사가 있지요. 자연선택은 생물들이 조상들에게 물려받은 재료만을 가지고 일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돌고래가 아가미를 갖는 방향으로 진화가 일어나는 일은 없으며 거북 등껍질에서 티타늄을 발견하는 경우도 없을 겁니다. 완전한 무에서 박쥐를 만들어낼 수도 없지요" (p. 293)

초기 생명체들의 화석 증거는 안타깝게도 사실상 전혀 남아있지 않다. 처음 자신들을 복제하기 시작한 생명체의 모태를 이룬 분자들이 어떤 물질을 포함하고 있건간에 단단한 부분이 없었기 때문에 퇴적물 속에 흔적을 전혀 남길 수 없었다. 자신이 가진 화학물질을 외부 환경에서 분리해내는 데 성공하고 나와 내가 아닌 것을 구분하는 탄력적인 지방질 막을 만들어 '이제 나는 세포다'라고 소리칠 수는 있었지만 최초의 생명체들은 미래의 일까지 생각하기에는 아직 너무나도 어렸다. 그러나 어쨌거나 생명체는 탄생했고 한 가지 점만은 분명하다. 생명은 너무나도 살아 있음을 사랑하기에 일단 삶의 첫 발을 내디딘 후로는 한 번도 사는 것을 멈춘적이 없다. (p. 307)

 

여타의 과학들이 그러하듯이 진화생물학도 갑툭튀는 없다. 앞선 것이 있었기에 뒤엣 것이 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쌓여가는 것들로 점점 각자 다른 것들로 진화해 왔다. 내게 고조의고조의고조의 선대조상이 나의 핏줄이라 해도 멀고 먼 관계로 여겨지듯이 한번 갈라지기 시작하면 점점더 멀고 멀고 달라지는 진화의 과정은 놀라운 분야이다. 눈에 보이는 화석이 진화의 처음을 알려줄 순 없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세포들이 점덤 더 진화의 처음을 알려주고 있다. 과학은 정말 신기하다.

<분자생물학 : 세포와 부속품>

세포들의 유전암호를 조사해본 결과 우리는 오늘날 지구상에 존재하는 세포들이 여러 개의 조상에서 각자 갈라져 나와 다른 경로를 밟아온 후손들이 아니며 모든 세포가 하나의 공동 조상 세포에서 나온 후손들임을 알고 있다. 세포들의 내부 구조도 같은 사실을 말한다. 세균 세포이든 옥수수 세포이든 초파리이든 간에 생명체들의 세포 구조는 모두 같다. 어떤 장소에서 서식하건 간에 세표는 자신이 생명체의 보편적인 기본단위이며 그토록 완벽하게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이유를 확실히 알려주는 일련의 특징들을 확연하게 드러내 보인다. (p. 317)

어떤 생물학 책에도, 세포는 생명체의 기본 단위이자 살아 있는 생명체로 볼 수 있는 물질의 최소 단위라고 나와 있다. (p. 318)

우리는 가장 나은 세상일지는 모르지만 완벽하지는 않은 세상에서 살고 있다. 세포가 분열하고 DNA가 복제될 때마다 실수가생긴다. (p. 353)

 

미국에서의 기초과학 분류는 우리나라와 달라서 이 책의 소단원들이 이런 제목들인건가?;;; 지구과학, 생물, 화학, 물리 이렇게 구분되어져 있던 기초과학에 대한 분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물리와 화학은 그대로인데 생물과 지구과학은 이 책에서 각각 두 분야로 나뉘어 설명된다. 진화생물학과 분자생물학 그리고 지질학과 천문학. 어쨋든 과거적인 것과 미래적인 것이 나누어진 느낌이다. 4가지 과학중에 생물과 지구과학이 기초라서 쉽고 물리와 화학이 상위학문이라 어렵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니었다. 물리와 화학은 오히려 현재학문이고 생물과 지구과학이 과거와 미래를 포함하는 상위학문이었다.

여하튼, 세포들의 이야기는 마치 레고블럭 같았다. 세포라는 기본 단위는 같은데 모여있는 모습들은 천차만별인것이. 어쩌면 당연하게도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나아진 세상일수는 있으나 완벽해진 세상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리고 사실 완벽해는것이 좋다거나 완벽해져야겠다는 생각도 없다. 점점 더 나아지는 것이 자연스럽고 바람직한 방향이 아닐까.

<지질학 : 세계의 조각들을 상상하기>

만약 온 세상이 당신의 연구 주제라면, 당신은 정말로 다재다능해야 할 것이다. 지질학자들은 정말로 많은 학문 분야를 섭렵해야 한다. 지질학자들은 현장 연구도 해야 하고 연구실에서 실험도 해야 하며 물리학, 생태학, 미생물학, 식물학, 고생물학, 복잡성 이론, 역학은 물론이고 컴퓨터 모델링도 한다. 지질학자들은 단백질 화학자들과 함께 3차원 입체 영상 만들기로 경쟁을 할 정도이다. 지질학자들은 야외 활동도 좋아한다. (p. 361)

이 책을 읽으며 과학은 정말 복잡다단하게 서로 얽혀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독립적인 학문은 없다. 전부 다 서로 연결된다. 과학자들은 모두 다 참 다재다능해야 하는 것 같다.

지구는 거대한 열 엔진이고 자신을 식히기 위해 영원히 노력하는 불타는존재이다. 예일 대학교 지구 물리학과의 데이비드 베르코비치 교수는 지구는자신의 에너지를 끊임없이 우주로 방출하는 커다란 뜨거운 공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지구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지구의 핵은 끊임없이 자신의 열을 외부로 벗어던지고 핵을 빠져나간 열은 우리들이 속한 장소를 벗어나 냉랭한 우주로 빠져나가버린다. 아, 그러나 규칙대로 하는 것이 언제나 쉬운 일은 아닏. 우라늄과 토륨 같은 방사성 원소의 붕괴로 생긴 열은 핵에 끊임없이 열을 전달해줄 뿐 아니라 열의 대류 현상이라는 형태로 핵에서부터 두꺼운 지구 내부를 지나 부서지기 쉬운 연약한 지각까지 올라온다. (p. 366)

현재 판의 개수는 큰 판이 일곱 개 내지 열 개 정도, 작은 판이 스물다섯 개에서 서른 개 정도라는 주장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판의 개수를 알아내는 일은 판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판이 향하는 곳은 어딘지, 두 판이 충돌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알아내야 하는 것에 비하연 덜 어렵다. (p. 375)

판을 움직이는 원동력은 질실할 것 같은 뜨거운 열을 밖으로 바출하려는 지구의 끊임없는 노력이다. 지구에게는 열을 식힐 수 있는 방법이 몇 가지 없다. 지구는 전도를 통해 소량의 열을 외부로 방출한다. 지구는 또한 화산 폭발이나 온천, 가스 분출 같은 직접 열을 발산하는 방법으로도 소량의 열에너지를 외부로 내보낸다. 그러나 지구가 열을 방출하는 주요 수단으로 삼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대류이다. (p. 376)

지구 내부에서 일어나는 대류는 핵주위를 뱅글뱅글 도는 소규모 형태도 있고 맨틀의 넓은 지역을 아우르는 대규모 형태도 있다. 때로는 맨틀을 완전히 가로질러 올라온 다음 얇은 해양 지각을 뚫고 해양 속으로 콸콸 솟아져 나와 지구의 솔기를 터뜨려 버리는 대류도 있다. (p. 377)

 

지구는 쉬지 않고 활동하는 엔진이라는 것을 소멸할때까지 영원히 불타는 존재라는 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내 짧은 두 다리로 걸어다니는 곳들은 온통 평평해서 커다란 지구가 동그랗다는 것을 까맣게 잊고 살게 된다. 그리고 이 책에서 알려주듯이 지구의 실체를 접하고 나면 새삼스럽게 깜짝 놀라게 되는 것이다. 지구는 생명체처럼 쉬지 않고 숨을 쉬고 있고 잠드는 순간도 없이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 지구 존재 자체가 알수록 참 신비롭다.

지금까지 지구상에 나타났던 생명체 가운데 99퍼센트는 이미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우리 인류는 이상하게도 지구와 교류하는 일에 서툴고 독단적이다. 그러나 지구와 지구의 생명체는 우리보다 훨씬 큰 존재들이다. 지구와 지구가 품고 있는 생명체들은 우리하고는 상관없이 하던 일을 계속할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이곳에서 완전히 철수해서 우주에 있는 어딘가를 향해 정해진 여정이라곤 전혀 없는 휴가를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 (p. 394)

그러게나 말이다....인류는 어쩜 그렇게도 지구와 교류하는데 서툴고 독단적일까... 그게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는 것을 인류만 모르고 전부 다 알고 있지는 않을까;;; 그런데 사실 인류 스스로 생각하는 만큼 인류는 위대하지 않을 텐데... 지구와 지구의 생명체가 훨씬 큰 존재들인데... 인류는 그 존재들을 까맣게 잊고 산다.... 영원히 평평한 땅을 밝고 살수 있다는 듯이...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까맣게 잊고 지구가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까맣게 잊고 말이다....

<천문학 : 천상의 피조물들>

행성-움직이는 별-을 뜻하는 영어 'planet'은 사실 그리스어로 '방랑자'라는 말에서 유래했다. (p. 398)

천문학은 인류의 가장 거대한 미개척지에 대해 연구한다. (p. 400)

완고한 관료집단과 싸워가며 기이한 천문학 현상의 원인을 밝히고 외계 문명의 흔적을 찾아내려는 여성 천문학자의 이야기인, 조디 포스터 주연의 1997년도 영화 <콘택트>를 본 적이 있따면 푸에르토리코의 산기슭에 곧게 서 있는 유명한 아레시보 전파 망원경의 모습이 눈에 익을 것이다. (p. 402)

 

천문학의 ㅊ 만 나와도 칼 세이건이 떠오른다. 천문학의 ㅊ 도 몰랐던 내게 천문학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주었던 책 '코스모스' 덕분이다. 코스모스를 읽고 보게 된 영화 <콘택트> 는 정말 아름다운 영화였다. 요즘 아이들이 보면 촌티나는 CG에 질색할지도 모르지만, 내게는 그 순수한 열정이 너무나 아름다워 보였다. 조디 포스터가 예쁘다고 생각해본적이 한번도 없었는데 영화를 보는 내내 너무 예뻤다. 과학에 대한 순수한 마음을 지닌 과학자는 모두 그렇게 예쁠 수 있나 보다.

여러 가지 면에서 먼 우주를 들여다보는 일은 먼 과거의 환영을 쫓는 일이다. (p. 406)

은하들은 스스로 움직이거나 멀어지지 않는다. 벨트를 계속 풀고 있는 것은 은하가 아니라 우주 그 자체이다. 그런데 아무리 얼굴이 파래지도록 풍선을 분다 한들, 우주가 팽창한다는 이야기가 쉽게 이해되는가? 눈에 보이는 은하가 움직인다는 거은 이해가 가도 우주 자체가 커지고 있다니, 그게 대체 무슨 의미일까? 무엇보다도 우주가 그냥 비어 있는 거대한 공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좀처럼 받아들이기 힘들다. 더구나 팽창하는 것이 우주 자체라면 우주는 대체 어디에서 팽창해 나가고 있는 것인가? 우주는 또 다른 우주 속에서 팽창해 나가고 있는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어째서 우리 우주를 들러싼 우주가 우리 우주로 스며들지 않는 걸까? 다른 우주 속에서 팽창하는 우주라니,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풍선에 공기가 가득 차면 터져버리듯 우리 우주도 터져버리지 않을까? 뭐, 사실 천문학자들도 이런 문제에 이렇다 할 답변을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p. 416)

우리가 어떤 장비와 센서를 만들어내든지 우리는 영원히 우리 우주 너무를 감지해내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천체물리학의 영역이 아니라 형이상학의 영역이다. (p. 419)

 

천재적인 수학자가 무한개념을 연구하면서 미쳐버린 것을 소설속에서 읽은 적이 있다. 천재적인 천문학자가 별과 우주만 바라보다가 현실에서 멀어져 가는 것을 영화에서 본적이 있다. 인간의 사고 범위안에 무한한 우주는 담을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책의 서문에서 읽었던 구절이 생각난다. 과학자들은 찾았으면 하고 바라는 세계가 아니라 찾아낸 세계를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는 말. 무한한 우주는 인간의 생각에 맞춰지기 위한 공간이 아니다. 인간은 그저 무한한 우주를 받아들일 뿐이다. 그러고 보니 주제들의 배치를 탁월하게 정렬한 저자에게 다시 한번 감탄하게 된다.

우리는 모두 별의 부스러기로 되어 있다. 오늘날 우리 생명체들은 단 하나의 살아 있는 별에 의지해 살아가고 있지만, 생명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우리 태양 이전에 존재했던 다른 태양들의 죽음이 필요했다. (p. 425)

원반의 중심부에 가까울수록 기체들은 우주로 날아가고 뜨거운 온도를 이겨낼 수 있는 암석과 금속만이 남았다. 태양계 안쪽에 있는 수성, 금성, 지구, 화성 같은 내행성이 암석과 금속으로 된 핵을 갖는 지구형 행성이 된 이유이다. (p. 433)

 

우주는 정말 신비로운 공간이다. 과거에도 살았고 지금도 살고 있고 앞으로도 살아갈 지구라는 곳이 인류라는 생명체가 태양이라는 별이 모두 다 별의 부스러기에서 출발했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내행성의 단단함과 외행성의 거대한 크기가 모두 기체라는 새삼스럽게 신기하다. 윤회의 고리가 있는 듯한 우주의 리듬은 정말 상상 그 이상이다.

우리가 밤하늘에서 육안으로 관찰할 수 있는 곳은 대부분 우리 은하에 한정되어 있지만 우리의 우주는 고작 그 정도로 그치지 않는다. 은하마다 우리와 통신할 수 있는 문명이 한 개밖에 없다 해도 이론적으로 우리의 전화를 받을 수 있는 문명이 우주 전역에 수십억 개는 더 있다는 뜻이니 희망을 갖자. 누가 알겠는가? 외계 문명을 이룩한 생명체들이 우리보다 훨씬 뛰어나 은하 간 여행이 가능한 완벽한 웜홀을 만들어 지금 우리를 향해 오고 있을지. 제발, 제발, 언제 어느 때라도 좋으니 이곳을 한 번 들려주기를. 약속할 수는 없지만 그대가 올 때까지 온 마음과, 온 헤모글로빈과, 90조에 달하는 모든 체세포들과, 공생하는 세균들과 함께, 우리가 만들어낸 우리 자신의 곤경에서 벗어나 살아남을 수 있도록 노력할 테니까. (p. 442)

저자가 이 책을 펴낸 것은 2007년 이다. 코스모스의 감동을 그대로 품에 안은채 뛰어난 외계생명체가 웜홀로 지구를 방문하는 저자의 상상에 일면 동참하면서도 동시에 '어벤져스-인피니티 워' 영화에서 처럼 진보한 기술이지만 악한 외계생명체가 웜홀로 지구를 침공하는 장면을 떠올리게 되는 지금은 2020년이다. 과학이 발전하면서 상상력이 줄어든다거나 디스토피아를 생각하게 된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기초과학 없이는 그 어떤 시작도 할 수 없듯이 과학이 아무리 많은 것을 밝혀낸다 해도 시작의 순수함을 잊지 말자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과학의 첨단 기술에 깊이 빠져들때마다 가끔은 빠져나와 기초과학 산책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왜냐하념 과학은 아름다우니까 그야말로 원더풀 사이언스니까.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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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여자들은 침묵하지 않았다
크리스티나 달처 지음, 고유경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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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할 수 없다

직업을 가질 수 없다

정부가 하는 일에 반대할 수 없다

하루에 100단어 이상 말할 수 없다

오직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지금 우리는 '순수'라는 이름 아래 침묵을 강요당하고 있다"

표지 中

 

 

언어학과 음성학 교수이면서 짧은 단편소설들을 꾸준히 발표해 온 저자의 첫 장편소설인 이 작품은 차라리 SF소설이었으면 좋았을껄 싶을 정도의 현실감을 지닌, SF가 아니라 현실에서 있을법한 가상이라 더 공포감을 주는 소설이었다.

정치에 관심없고 선거에 감흥없이 바쁘게 살다보니 어느새 세상은 여성의 손목에 카운터를 채우고 하루에 100단어 이상 말하면 전기충격을 가하는 세상이 되어 있다면? 여성의 모든 권리를 빼앗은 것을 전통을 되살렸다 말하고 여성의 모든 것을 억압하는 것을 순수하다 라고 말하는 세상이 되어 있다면?

하루 100단어를 체크하는 전기충격기를 손목에 차고 있지 않을지라도 지금 현실 곳곳에서 소설속 '순수운동'의 작은 형태들이 이미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소설에 대한 몰입감은 남달랐다.

진은 인지언어학 박사였다. 그렇다 과거형이다. 1년전까진 그랬다. 손목에 카운터가 채워지기 전까지는.

사춘기의 큰아들과 장난꾸러기 쌍둥이 아들 그리고 막내 여섯살 소니아 4남매의 엄마이자 패트릭의 아내로 살고 있는 지금 진 에게 과거 그녀가 무슨 일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녀가 살림에 소질이 없건 토론을 좋아하건 책을 좋아하건 연구를 좋아하건 그런건 아무 상관도 없다. 문자를 읽지도 쓰지도 못하고 재산과 여권도 가질 수 없고 최대한 입다물고 지내야 하는 지금은. 진 이라는 존재는 없어졌다.

순수운동은 흔히 바이블 벨트라고 알려진, 종교의 지배를 받던 남부 지역 어딘가에서 퍼지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벨트는 코르셋으로 변형되어, 나라의 '팔다리' 지역을 제외한 모든 곳을 뒤엎었다. 민주주의의 유토피아였던 캘리포니아, 뉴잉글랜드, 태평양 북서부, 워싱턴 DC, 텍사스의 남부 관할 구역과 플로리다까지, 바다와 가까운 지역까지는 순수운동의 스펙트럼이 미치지 못하는 듯했다. 하지만 코르셋은 곧 전신 수영복으로 변했고, 결국 하와이까지 닿았다.

우리는 그것이 점점 다가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p. 35)

 

단 한번의 대통령 선거로 미국이 뒤집어졌다. 그러나 새 대통령이 당선 후 시행한 제도들은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이미 탄탄하게 서서히 착착 진행되고 있던 것들이 새 대통령과 함께 가시화된 것 뿐이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진과 같은, 사회외 정치에 무감했던 모든 사람들에게 처절한 현실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 제일 열 받은 게 누구인 것 같아? 이 나라에서"

"아프리카계 미국인?"

"다시 맞춰봐"

"게이?"

"아니, 이 멍청아. 바로 정통 백인 남자들이야. 아주 머리 끝까지 화가 나 있지. 자기들이 무기력한 기분이 들거든" (p. 40)

 

공교롭게도 이 책을 읽기 바로 전에 읽은 <정치적 부족주의> 라는 책이 연결될 수 밖에 없었다. 트럼프 당선 이후 미국이 처한 혼란을 명확하게 분석한 이 책에서 트럼프 당선의 뒷배는 바로 백인노동자층이었다. <정치적 부족주의>에서는 그동안 이민자와 유색인종과 성소수자들을 포용해오던 미국에서 정작 소외된 층은 배우지 못하고 가난한 백인노동자들이었음을 뼈아프게 지적하고 있었다. 미국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분열을 직시하는 미국인의 책을 읽고, 어쩌면 지금 미국의 상황을 극대화한 가상 현실을 배경으로 한 미국인의 소설을 읽으니, 지금 미국에서는 정말 다양한 방법으로 잘못된 현실을 지적하는 목소리들이 넘쳐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은 시대를 반영하기 마련이다.

갑자기 충격이나 고통 따위가 걱정되지 않았다. 만약 내가 술과 말로 감각을 마비시키기라도 한 듯 분노를 터뜨리며 계속해서 소리를 지른다면, 손목에서부터 시작된 전기가 온몸에 흐를까? 그게 나를 뻗게 할까? 아마 아닐 것이다. 낙태를 허락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유로 우리를 죽이진 않을 것이다. 우리는 필요악이니까. 이용당하면서도 잠자코 있어야 하는 물건이 되었으니까. (p. 53)

진 은 하루하루가 버겁다. 하루가 다르게 순수운동에 물들어가는 큰아들을 보는 것도 그 어떤 일에도 묵묵히 감내할 뿐 나서지 않는 남편을 보는 것도 순수운동에 맹목적으로 순응하는 이웃집 여자를 보는 것도... 그중에서도 가장 힘든건 막내딸 소니아 가 말을 하지 않는 것, 100단어는 커녕 하루 한 단어도 말하지 않았다고 학교에서 상을 탔다고 자랑하는 그 자랑도 말로 할 수 없어 처음엔 아이가 왜 신이 난건지 알수 없던 그런 순간들이다. 그렇게 책이 사라진 학교에서 가사실습만 배우다 이 아이가 커서 엄마가 되고 아내가 되었을때의 미래...

"일종의 전통이에요, 엄마. 옛날처럼요"

"옛날? 대체 어느 옛날? 고대 그리스? 수메르? 바빌로니아?"

"음, 글쎄요. 고대 그리스 시대에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에 관한 개념이 있긴 했지만,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해요. 수렵 채집 시대를 생각해봐요. 생물학적으로 우리는 서로 다르니까요"

"우리?"

"남자와 여자잖아요, 엄마" (p. 87)

 

남자아이들의 학교엔 책이 있긴 했다. 하지만 그 책에서 가르치는 것이란, 남성과 여성은 근본적으로 다르고 역할이 다르므로 차별이 당연하다는 것이었다. 그러한 내용은 종교와 결합되어 교육이라는 이름아래 아이들을 세뇌시키고 있었다. 냉장고에 우유가 떨어졌을때 큰아들 스티븐은 우유를 사오라는 엄마의 말에 '그건 엄마 일' 이라고 분명히 선을 긋는다. 진 은 그렇게 속수무책으로 감당할 수 없는 현실들을 보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대통령의 형이 스키사로로 뇌를 다쳐 말을 못하게 되자 고위관료가 진 을 찾아온다. 진 이 그 분야의 전문가였기 때문에.

"매클렐런 박사님. 첫 번째 기능은 예의 범절 추적기에요"

"뭐라고요?"

"우리는 카운터가 부드럽게 주의를 환기하는 장치라고 생각해요. 그냥 건전하게 지낸다면 모든 게 정상적으로 작동할 겁니다. 난잡한 언어도 없고 신성모독도 없다면요. 실수해도 괜찮아요. 하지만 위반할 때마다 할당량이 10개씩 줄어들 거에요. 곧 익숙해질 겁니다. 두번째 기능은 박사님의 협조가 좀 더 필요해요. 하루에 한 번, 박사님이 원하는 시간에 이 버튼을 눌러 팔찌에 대고 말하면 됩니다. 여기 마이크가 있어요. 새로운 기능이 여러분의 기분을 좋게 하고 기본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p. 136)

 

진 은 거절 했다. 딸아이의 카운터를 제거해 달라는 요청을 받아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새로운 모델의 카운터를 들고 다시 진 을 방문 한다. 그 카운터의 기능은 더 악랄했다. 진은 딸아이가 그들이 말하는 그 예의범절(여자란 어때야 한다는..)을 하루에도 수시로 외워야 하는 새 카운터를 자신과 딸아이 손목에 채울 수는 없었다. 끔찍했다. 진은 그들의 제안을 수락한다. 일을 다시 시작하면서 진은 이 연구에 뭔가 다른 목적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아들을 비난하고 싶은 적도 너무 많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괴물은 절대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잘못 인도된 프랑켄슈타인처럼, 그들은 하나하나씩 천천히, 항상 자신이 더 잘 안다고 생각하는 미치광이의 인위적인 창조물로 만들어진다. (p. 342)

"당신 잘못이 아니야"

로렌조가 말했다. 하지만 내 잘못이 맞다. 다만 내 잘못은 목요일에 모건의 계약서에 서명했을 때 시작된 게 아니다. 20년 전에 시작되었다. 내가 처음으로 투표하지 않았을 때부터. 너무 바쁘다는 핑계로 시위에 참여하거나 포스터를 만들거나 의원들에게 전화를 걸 수 없다고 재키에게 수없이 말했었던 그때부터였다. (p. 348)

 

목소리를 내지 않는 다는 것이 어떤 부메랑으로 되돌아오는지 목소리를 낼 수 없을 때가 되어서야 진은 처참하게 깨달았다. 점점 더 변해가는 아들을 보면서 그렇게 그들의 목적이 이루어져 가는 것을 보면서 그냥 이대로 있을 수 만은 없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그리고 이미 늦었다고 생각했을때 자신보다 먼저 '저항' 을 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현대판 바벨탑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신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는다. TV 출연을 즐기고 맹목적인 추종자들과 함께 권력의 맛을 봤으면서도 여전히 더 많은 걸 원하는, 사람들의 눈에 아주 잘 보이는 그 남자의 손에 의해 혼란이 일어날 것이다. 이제 곧 자기 손에서 지옥이 시작될 거라는 걸 전혀 모르는 남자. (P. 405)

소설속에 등장하는 새 대통령의 이미지는 정말 트럼프의 이미지와 굉장히 흡사하다.(선동적인 언어부터 모델와이프까지) 남자는 일을 하고 여자는 육아와 가사를 전담하며, 남자는 말을 하고 여자는 묵묵히 들어야 하며, 남자는 한발 앞에 나서고 여자는 두발 뒤에 병풍처럼 웃고 있어야 하며, 남자는 재산과 자유를 갖고 여자는 남자의 소유물이 되는 것이 신의 뜻이며 자연의 섭리라는 순수운동은 능력있고 가부장적인 남자와 모든 것에 순종적인 아내가 있는 가정을 원하는 백인노동차층의 요구와 굉장히 흡사하다.

이 소설은 내게 미국의 현실비판서로 읽히는 동시에 영화 인디펜더스 데이 처럼 그려졌다.

실어증을 앓고 있는 사회처럼 되버린 미국 이야기 이면서 동시에 실어증을 치료하는 연구 에서 시작된 (실어증을 유발하는 생화학 무기가 만들어낼) 미국이 세계의 목소리를 덮는 미래를 막는 영웅이 등장하는.

사랑하는 독자 여러분, 궁극적으로 이 이야기를 판단할 여러분에게 감사드린다. 여러분이 이 책을 재밌게 즐겼으면 좋겠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책이 여러분을 조금은 화나게 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 분노가 여러분에게 여운을 남겼으면 좋겠다. (p. 511)

저자의 바람은 이루어졌다. 적어도 내게는 ㅎㅎ

나는 손에서 놓지 못할 정도로 재미있게 이 책을 읽었고 읽고 나서 화가 났으며 그 분노가 남긴 여운에 아직도 책의 내용을 생각하는 중이다. 그리고 현실을 보는 중이다. 침묵은 부당함을 용인하는 것으로 탈바꿈하곤 한다. 잘못은 잘못이라고 말해야 한다. 누구의 목소리도 함부로 묻혀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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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부족주의 - 집단 본능은 어떻게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가
에이미 추아 지음, 김승진 옮김 / 부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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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 본능은 어떻게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가

좌파vs우파의 구도가 끝나고 부족별 재배열이 시작됐다

표지 中

 

 

대단히 명석한 책이었다.

책에 명석하다라는 표현이 이상할수도 있지만 정말 그랬다.ㅎㅎ

미국의 현실에 대한 정치적 판단이 담긴 책이었지만, 저자의 분석을 통해 미국 뿐만 아니라 다양한 정치적 상황들을 이해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해주고 있는 책이었다. 굉장히 분명하고도 단호하게.

저자 에이미 추아는 예일대 로스쿨 교수인데 그간 써온 책들을 (다 읽어보진 않았지만)대략 훑어보니 법 관련이라기 보다는 대부분 논쟁적인 지점들을 드러내주는 책들이었다. 이 책을 읽고 생각해보건데 앞선 책들도 굉장히 흥미로울것 같다. 하지만 저자의 이름을 널리 알린건 의외로 자녀 훈육법을 다룬 '타이거 마더' 이다. 참 다방면에서 열정적인 사람인 것 같다.

어쨌든 이 책은 지금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정치적 상황들에 대한 새로운 프레임을 제공해준다. 책 제목이 알려주듯이 '정치적 부족주의'

인간은 살면서 다양한 집단에 속하게 되는데 어느 집단에 속하느냐에 따라 상황 대처법이 달라지게 된다. 흔히 생각할 수 있는 국가나 민족 등 커다란 집단이 흔들리고 있는 지금 주의깊게 살펴봐야 할 것은 작게 쪼개진 부족들이다. 그것도 동일 정치적 목적으로 모이게 된 부족들.

인간에게는 부족 본능이 있다. 우리는 집단에 속해야 한다. 우리는 유대감과 애착을 갈구한다. 그래서 클럽, 팀, 동아리, 가족을 사랑한다. 완전히 은둔자로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 수도사나 수사도 교단에 속해 있다. 하지만 부족 본능은 소속 본능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부족 본능은 배제본능이기도 하다. (p. 8)

책을 여는 첫 문장무터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그렇다. 그동안은 부족의 동일성에 관심을 가져왔다면 이제는 부족의 배제본능에 눈을 돌려야 할 때이다. 우리는 왜 서로를 배척하는가?

인종은 미국의 빈민을 갈랐고 계급은 미국의 백인을 갈랐다. 지금도 트럼프 당선의 배경이 된 부족적 정치를 많은 사람이 이해하지 못하고 다음과 같이 어리둥절해한다. 어떻게 이토록 많은 미국의 노동자 계급이 트럼프에게 '사기를 당할'수 있었을까? 어떻게 저소득층 미국인들이 트럼프가 자신과 같은 부류가 아니라는 사실을 간과할 수 있었을까?미국 엘리트들이 놓친 점은 트럼프가 취향, 감수성, 가치관의 면에서 실은 백인 노동자 계급과 비슷했다는 사실이다. (p. 13)

이 책은 기본적으로 미국의 지금 상황을 만들어온 패착을 분석하고 있다. 하지만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 미국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아온 한국의 정치적 상황들도 상당부분 비슷하게 해석할 수 있었다.

위기감을 느끼는 집단은 부족주의로 후퇴하기 마련이다. 자기들끼리 뭉치고 더 폐쇄적, 방어적, 징벌적이 되며, 더욱더 '우리 대 저들' 의 관점으로 생각하게 된다. 오늘날 미국의 모든 집단이 적어도 어느 정도는 이런 느낌을 갖고 있다. 백인도 흑인도 라틴계도 아시아계도 남성도 여성도 기독교도도 유대교도도 무슬림도 이성애자도 동성애자도 진보도 보수도 다들 자기 집단이 공격받고 괴롭힘을 당하고 학대받고 차별받고 있다고 느낀다. 물론 어느 집단이 자기가 위험에 처해 있고 억압 때문에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고 느끼는 것은 종종 다른 집단의 비웃음을 산다. 너희보다 우리가 받는 박해와 차별과 억울함이 훨씬 큰데 무슨 소리냐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게 정치적 부족주의다. (p. 18)

모두가 서로에게 자신들이 더 차별받고 있다고 느끼는 상태... 이것만으로도 많은 부분들이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민족을 초월하는 국가 정체성을 형성하고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을 동화시키는 데 이례적으로 성공한 미국의 독특한 역사는 미국이 그 외의 세계를 보는 방식에 틀을 제공했고, 미국의 외교정책에도 근본적인 영향을 미쳤다. 미국이 군사적, 외교적으로 개입하는 대상 국가들의 인종, 민족, 분파, 부족적 분열을 간과하는 것은 단순힌 무지, 인종주의, 혹은 자만심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에서는 온갖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이민자들이 '미국인'이 될 수 있었는데, 수니파와 시아파, 아랍인과 쿠르드인은 왜 그런식으로 '이라크인'이 될 수 없단 말인가?(p. 32)

저자는 그동안 미국이 개입했던 나라들 즉 베트남, 아프가니스탄, 이라크를 예로 들며 왜 미국이 승리하지 못했는지 원인을 찾아내고자 한다. 그리고 미국이라는 '수퍼집단'이 왜 그런 판단을 내렸던건지 신랄하게 평가한다. 그동안의 판단미스들은 지금의 미국 상황을 만들어냈고 미국은 다양한 부족으로 쪼개지고 있는 중이다.

시장 지배적 소수 민족은 정치적 부족주의를 촉발하는 가장 강력한 촉매 중 하나다. 빈곤한 다수 대중이 있는 개발도상국에 시장 지배적 소수 민족이 존재할 경우, 예측 가능한 결과가 뒤따른다. 거의 불가피하게 강렬한 민족적 증오가 발생하고, 이는 소수 집단의 자산을 징발, 약탈하는 폭동과 폭력으로 번지며, 인종 청소로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이런 여건에서 '제약 없는 자유 시장' 정책을 추구하면 상황을 크게 악화시킬 수 있다. 소수 집단의 부를 더 증가시켜서 다수 대중의 분노를 한층더 키우고 더 많은 폭력을 불러올 수 있을 뿐 아니라, 이런 정책을 취하는 정권에 대한 분노로도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일이 베트남에서 벌어졌다. (p. 65)

막대한 자원을 투입한 베트남전에서 미국은 결국 승리하지 못했다. 미국은 자유를 선물하기 위해 베트남에 갔지만, 베트남 사람들이 바라던 자유가 아니었기에 베트남사람들은 미군과 독립전쟁을 치룬 셈이었다. 미국이 주려던 자유는 미국식 민주주의 와 시장경제는 베트남 사람들 모두에게 돌아가는 헤택이 아니라 상위 소수사람들에게만 유리한 것이었고, 게다가 그 소수 사람들은 중국출신 화교인들이었다. 공산주의대 민주주의 라는 프레임으로만 판단했던 미국이 보지못한 베트남 내부의 상황은 한국전쟁 전후의 상황을 생각나게 했다. 광복 후 친일파 제거 없이 들여온 미국식 정치는 결국 한국전쟁을 낳았다...

아프가니스탄의 문제는 단지 급진 이슬람이라는 종교의 문제만이 아니다. 그것은 민족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것은 어느 집단이건 일단 권력을 잡으면 자신의 지배를 쉽게 내놓으려 하지 않는 법이라는 부족 정치의 근본 원칙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p. 81)

아프가니스탄은 분쟁지역이라는 이미지로만 희미하게 알려진 곳이다. 우리는 미국처럼 분쟁지역에 개입하는 입장이 아니라서 세계 곳곳의 분쟁뉴스에 그리 민감하지 않다. 그리고 그 분쟁은 그저 이슬람 세력의 종교분쟁으로 대충 여겨져 왔다. 하지만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분쟁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도 시작점이 보이지 않는 엎지락뒤치락 하는 당파싸움이 과격한 형태로 표출된 것이었다. 한순간 미국이 어느 한쪽에 주도권을 쥐어준다고 해서 유지될 수 없는...

베트남과 아프간에서 그랬던 것처럼 미국은 곧 자신이 도우러 간 바로 그 사람들로부터 증오를 사면서 이길 수 없는 전쟁에 발을 들여놓았음을 깨달았다. 중동 한복판에 자유 시장 민주주의의 빛나는 모델이 생겨나기는 커녕 미국은 이곳에 ISIS가 생겨나게 했다. (p. 102)

독재의 잔재가 남아 있는 탈식민지 국가들에게 급격한 민주화는 재앙적인 결과를 낳곤 했다. 미국이 부족 정치에 눈감은 것은 아프간에서 탈레반을 일으키는 데 일조했듯이 이라크에서 ISIS를 일으키는 데 일조했다. (p. 126)

 

이라크 전쟁 또한 이유도 결과도 희미하게 다가오는 분쟁이었다. 그런데 아프간과 탈레반, 그리고 이라크와 ISIS 사이에 어떤 정치적 의도가 있었는지 읽고나니 저절로 탄식이 흘러나왔다. '냉전 때도 그랬듯이 승리주의에 취해 있던 10년 동안 미국은 부족정치의 강력한 힘을 고려하지 못했다' 라는 저자의 말은 중동에서의 실패가 부메랑이 되어 미국의 현재를 타격한 배경도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다.

'테러리스트의 전형적인 특질'이나 '테러리스트적 성격'을 짚어 내고자 하는 시도의 문제는 개인에 초점을 맞춘다는 데 있다. 테러리즘은 무엇보다 집단 형상이며 부족정치의 살인적인 표출이다. (p. 130)

부족주의는 탈인간화를 통해 공감과 감수성을 마비시킨다. 부족주의는 사람들로 하여금자기 집단이 헌신하는 목표에 유리한 방식으로 세상을 보게 만들어서 현실을 대대적으로 왜곡할 수 있다. 또 집단 정체성은 순응의 압력을 일으켜 사람들이 혼자서는 상상해 본 적도 없는 일들을 하게 만든다. 개인의 책임은 집단 정체성으로 녹아들고 집단 정체성에 의해 부패한다. 그렇게 해서 잔혹하고 끔찍하 행동을 찬양하고 그런 행동에 가담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p. 143)

빈곤이 늘 폭력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극단주의를 파악하는 데서 핵심은 빈곤 자체가 아니라 집단 간 불평등이다. (p. 144)

막대한 집단 불평등을 배경으로, 극단주의 집단은 일원들에게 정확하게 기존의 사회 제도가 제공하지 않았던 것을 제공한다. 부족, 소속감, 목적의식, 증오하고 죽여도 되는 적, 기존의 양극화를 뒤지을 기회, 치욕을 우월함과 승리고 바꿀 기회 등, 이것이 알카에다와 ISIS가 사용한 공식이다. 그들은 단순히 종교적 이데올로기만 설파하는 게 아니다. 그들은 집단 정체성을 통해 일원들에게 지위와 권력을 제공한다. (p. 147)

 

테러 부족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저자의 설명은 종교적인 문제로만 판단했던 테러에 대해 이해의 폭을 넓혀 주었다. 폭력의 발화점은 부족함이 아니라 부당함이라는 것도 지금의 현실을 이해하는데 큰 시사점을 준다.

남미 사회는 기본적으로 '피부색 지배 정치' 사회다. 사회 계층의 구성을 보면 신장이 크고 피부색이 하얗고 유럽 혈통인 지배층이 맨 위에, 신장이 작고 피부색이 짙고, 토착민 혈통인 대중이 맨 아래에 있고, 그 사이에 수많은 단계가 있다. (p. 157)

차베스는 가난한 사람들의 마음을 얻었다. 베네수엘라에서 오래도록 무시받아 온 다수의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안음으로써 차베스는 사랑받는 지도자가 될 수 있었고 그들은 차베스의 결점을 충분히 그냥 넘어가 줄 용의가 있었다. (p. 171)

 

중동 보다 더 멀리 느껴지는 남미의 베네수엘라는 더 복잡한 사회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오랜 식민지 기간 끝에 남미의 지배층은 유럽 백인이 되었다. 하지만 인도 카스트 제도와 또다른 피부색에 따른 구분은 놀라울 정도로 차별적이었다. 차베스의 장기독재를 가능하게 했던 것은 다수 민중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차베스가 죽고 여기저기서 장기독재의 후유증이 터지고 있는 베네수엘라는 지금 사실상 파탄국가가 됐다. 그리고 차베스와 비슷한 다수의 선택이 미국에서 벌어졌다.

베네수엘라에서처럼 미국에서도 많은 사람이 '기득권'(정치, 경제적 지배층)과 자신은 매우 다르고 심지어 자신에게 위협적이라고 생각한다. 베네수엘라에서처럼 미국에서도 당선 가능성이 극히 낮아 보이던 후보가 정치 경력도 없는 상태에서 기득권을 공격해 '혁명'이라고까지 불린 움직임을 이끌면서 대통령이 됐다. (p. 177)

물론 차베스의 혁명은 사회주의적인 것이었고 도널드 트럼프의 혁명은 전혀 그렇지 않아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미국의 포퓰리즘은 반자본조의적이지 않다. 미국의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증오하지 않는다. 많은 가난한 이가 부를 원하며 적어도 자녀들이라도 부를 가질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현 시스템이 그들에게 불리하도록 '조작'되어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말이다. 흑인이건 백인이건 라틴계이건 간에 가난한 노동자 계급 미국인은 옛날식의 아메리칸 드림에 굶주려 있다. (p. 178)

 

너무 아이러니 하지 않은가? 백인 남성우월주의로 똘똘뭉친 거대부자 트럼프의 지지 세력이 미국의 빈민들이라는 것이.

물론 여기서의 빈민은 백인이다. 백인 엘리트층이 기득권이 되어 포용을 외치고 하나의 미국을 내세우며 통합을 요구할때 유색인종과 여성과 성소수자의 권리를 확장하고 있을때 소외되어 왔던 유일한 계층이 있었다. 바로 배우지 못하고 가난한 백인인 다수의 미국인들, 트럼프처럼 많은 것을 갖고 싶다는 아메리칸 드림을 간직한 사람들 말이다.

저자는 불평등을 만든 부족적 간극을 확인할 수 있는 미국내 다양한 세력들을 소개하는데,

'점령하라'운동, 소버린 시티즌, 갱단과 마약의 수호성인인 '죽음의 성녀' 라는 민속신앙, 번영복음, 나스카, 프로레슬링 등에서 미국의 부족적 형태들을 살펴볼 수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번영복음 에 대한 부분은 국내에서도 쉽게?! 찾아지는 형태라서 읽으며 마음이 참... 안좋았다. 답답하기도 하고...

요컨대 '백인 미국인'은 하나의 집단이 아니라 둘로 분열되어 있다. '농촌/중서부/노동자 계급'인 백인과 '도시/연안 지역'의 백인 사이에는 상호작용도, 공통점도, 상호 간의 결혼도 너무 없어서, 이들 사이의 차이는 사회과학자들이 말하는 '민족적ethnic'차이라도 볼 수 있을 정도다. 그들은 자신이 상대와 반대되는 정치 부족에 속해 있다고 생각한다. (p. 207)

미국의 부족주의는 도널드 트럼프를 갑자기 백악관으로 밀어 올렸다. 이 부족주의를 이해하고자 한다면 불평등이 미국 백인들 사이를 어떻게 분열시키고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 중서부의 백인이 보기에 '연안 엘리트'는 시장 지배적 소수 집단이다. 그리고 많은 개도국에서 보았듯이 시장 지배적 소수 집단은 반드시 민주주의에 의한 반발을 불러온다. (p. 208)

 

경제가 성장하고 사회가 성숙할때 다수의 사람들은 자신들보다 못하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을 포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삶은 유지는 커녕 나빠지고 있는데 그동안 불쌍하다 싶었던 사람들이 잘살게 되는 것을 보면 혼란에 빠지게 된다. 물론 그것이 객관적인 기준에서 평가되지 않고 주관적인 기준에서 이해될때 결과는 더욱 나빠진다. 내가 가지고 싶었던 것이 나는 가지지 못했는데 남이 가진 것을 보며 분노한다. 문제는 남도 가지지 못했다는 것인데, 서로의 눈에는 더이상 그것이 제대로 보이지 않게 된다. 포용과 통합의 나라 이민자의 나라는 이제 불평등과 분열의 나라가 되고 있다.

미국은 전례 없이 부족적인 불안감이 만연한 시기에 들어섰다. 200년 동안 미국의 백인은 논란의 여지없이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지배적인 다수였다. 하나의 정치적 부족이 매우 압도적으로 지배적일 때는 마음대로 남들을 박해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매우 너그러울 수도 있다. 더 보편 지향적이고 더 계몽적이고 더 포용적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미국에서는 어느 집단도 지배력을 안전하게 확보하고 있지 못하다. 모든 집단이 공격받는다고 느끼고 다른 집단의 공격 대상이 됐다고 느낀다. 일자리나 기타 경제적 이득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국가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자격에 대해서도 그렇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주의는 집단 간의 제로섬 경쟁으로, 순수한 정치적 부족주의로 퇴락한다. (p. 224)

 

저자는 직설적으로 미국의 정치적 부족주의를 세세히 지적하며 걱정한다. 하지만 끝까지 낙관의 희망또한 놓지 않는다.

과거 모든 이민의 파도마다 미국의 자유와 개방성이 승리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번 만은 다르다'고 말하면서 유대를 잃고 실패하는 첫 세대가 될 것인가? 그렇게 해서 미국이 무엇이었는지, 미국인이 누구였는지를 잊을 것인가? (p. 260)

미국을 하나로 묶어주는 것은 아메리칸드림이다. 하지만 이것은 과거의 실패를 부인하기보다 인정하는 종류의 드림이어야 한다. 실패는 희망에 기초해 지어진 나라, 언제나 무언가 더 할 일이 있는 나라의 스토리라인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꿈은 현실이 아니다. 하지만 현실이 될 수 있다. 아메리칸 드림은 자유의 약속이고 이 땅에 닿은 모든 개인을 위한 희망이다. 하지만 이것은 미국이 늘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미국인들이 스스로에게 되뇌는 신화를 현실에서 실현시켜야 한다는 촉구이기도 하다. (p. 262)

 

미국적인 미국의 가치를 담은 시 한편 - 랭스턴 휴스 의 <미국이 다시 미국이 되게 하자> 로 마무리하는 이 책은 저자가 미국에게 던지는 자성의 목소리이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한국의 정치현실에도 적용시킬 수 있는 울림이 컸다. 여러 면에서 지금 읽어야 할 시의적절한 훌륭한 책이었다.

ps. 세페이지 넘게 감사한 사람들의 이름을 가득 써놓고, 본문의 어떤 장보다도 긴 70여페이지에 달하는 참고문헌을 보면서 참 열심히 쓰는 사람이구나 싶었다. 이러한 인재와 이러한 책이 있다는 것도 미국이 지금의 어려운 난관을 헤쳐나가는데 희망이 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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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눈
딘 쿤츠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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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를 뒤흔든 역주행 베스트셀러

끔찍한 악몽이 덮친 4일간의 이야기

 

 

스티븐 킹과 함께 서스펜스 소설계의 양대 산맥으로 불린다는 딘 쿤츠의 작품을 나는 좀 많이 늦게 알았다.

'사일런트 코너' 라는 작품으로 처음 접했는데, 그 한 권만으로도 이미 팬이 되기에 충분할 만큼 매력적이었다.

미국 언론은 그를 일컬어 '스티븐 킹이 소설계의 롤링 스톤즈라면, 딘 쿤츠는 비틀스다' 라고 극찬했고 롤링 스톤스는 '미국 최고의 서스펜스 소설가'라고 칭송했다고 하는데, 정말 그러한 찬사가 아깝지 않은 작가였다.

많이 읽어보진 않았지만 딘 쿤츠의 작품은 짜임새가 알찬 것 같다. 명확한 인과관계를 큰 틀로 짜놓고 세부적인 사건들을 엮어가는데 다 읽고 나면 똑 떨어지는 맛이 일품이다. 액션, 서스펜스, 미스터리, 로맨스, 초자연적 요소가 조화롭게 어우러져서 읽을수록 점점더 몰입하게 된다.

이 작품은 단 4일간의 기록을 담았지만 하루하루가 어찌나 박진감 넘치는지 다 읽고 나면 며칠을 몇년같이 살아낸 주인공의 심정에 자연스럽게 동화되는 느낌이다.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해피엔딩이라 좋다. ㅎㅎ

다른 아이를 대니로 착각한 건 오늘이 처음이 아니었다. 몇 주 전 다른 차에서도 대니를 보았다. 차를 타고 지나가다 우연히 본 학교 운동장에서도, 사람 많은 거리에서도, 영화관에서도 대니를 보았다. 최근에는 대니가 살아 있는 꿈에 계속 시달렸다. (p. 12)

크리스티나 에번스 는 30대 중반의 매력적인 여성으로 라스베이거스에서 쇼를 만드는 제작자로 활동하고 있다. 남편과 이혼 후 홀로 대니를 키우면서 어느 한쪽도 소홀히 하지 않았던 그녀에게 일년전 큰 사건이 발생했다. 캠프에 갔던 아들 대니가 주검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큰 사고라 했고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이 심하니 시체를 보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관계자의 의견에 따라 확인하지 않고 매장했다.

쓰라린 고통과 비극, 끝없는 슬픔에서 벗어나 이제 전도유망한 앞날로 빛나는 지평선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마침내 살아갈 가치가 있는 미래가 보였다. 앞으로는 어떤 나쁜 일도 일어날 것 같지 않았다. (p. 76)

위와 같은 문장을 읽으면 항상 떠오르는 노랫말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너무나 상심했고 슬펐으나 치열하게 일만 하는 것으로 버텨왔던 크리스티나에게 드디어 사회적 성공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이제야 조금은 자신의 미래에서 어둠이 걷히는 듯 싶었다. 하지만 바로 이때 그녀에게 자꾸 이상한 일들이 연이어 발생한다.

"경찰 따위 겁나지 않아. 제길. 우리가 누군지, 어디 가서 찾아야 하는지 당신이 어떻게 알고 말하겠어? 경찰은 아무것도 찾을 수 없을걸. 전혀. 그걸로 끝이지. 어디선가 우리의 꼬리를 밟는다 해도, 빨리 손 떼라고 압박하면 그만이야. 이건 국가안보 사업이라고, 친구. 아주 큰 사업이란 말이야. 정부는 마음만 먹으면 규칙을 어길 수 도 있어. 결국 정부가 만든 거니까" (p. 192)

티나(=크리스티나)는 엘리엇 스트라이커와 가까워진다. 비슷한 상처를 지닌 두 남녀는 서로에게 한눈에 반한다. 티나는 최근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에 대해 엘리엇과 상의하게 되고 엘리엇은 그녀를 도와주려던 중 집에 괴한이 들이닥친다. 괴한이 하는 말로 미루어 보건데, 티나와 그녀의 아들 대니에게 벌어진 일은 그냥 사고가 아니었다. 변호사 엘리엇은 과거 육군 정보부에서 일했던 경력이 있다. 그 경력이 십수년이 지난 시점에 다시 발휘될 줄이야.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티나는 깊은 충격을 받았다. 영적인 세상? 환상? 투사 경험? 그녀는 초능력이나 초자연적인 현상 따위는 믿지 않았다. 이제껏 믿지 않는다고 여겨왔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자신이 꾼 꿈이 다른 세계가 보내는 신호일 가능성을 진지하게 따져보고 있다. (p. 212)

아들인 대니의 죽음에 석연찮은 점이 있음을 깨닫게 된 티나와 엘리엇은 거대 배후세력과 음모가 자신들 앞에 펼쳐졌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티나가 자신에게 벌어지는 초자연적 현상에 대한 의구심이 이해와 수용으로 변해가는 과정은 독자로 하여금 티나와 마찬가지로 믿지 못할 현상을 믿게끔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이런 말이 있죠. '웃음은 고통받은 이들을 위한 연고이자 절망에 맞서는 최선의 방어고 우울증에 듣는 유일한 약이다'"

"누가 한 말이에요? 셰익스피어가 한 말인가요?"

"그루초 막스가 한 말일걸요" (p. 243)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미국의 희극배우가 했다는 인용구를 보면서 '태양의 후예'라는 드라마 속 송중기의 이미지가 엘리엇과 겹쳐졌다. 살떨리는 위기의 상황속에서 농담과 유머의 효과에 대해 ㅎㅎ

"있죠, 마치..... 밤 자체가 우리를 보고 있는 것 같아요...... 밤과 그림자와, 어둠의 눈이요." (p. 249)

차갑게 얼어붙을 것 같은 냉기와 한줌의 빛도 들지 않은 어둠속에서 어떤 존재가 티나와 엘리엇을 지켜보고 있는 느낌, 그 불길함이 안타까움으로 변하는 깨달음의 순간 티나는 그 '어둠의 눈' 과 한편이 된다.

그는 동료 모두가 애국심에 불타오르는 우파일 거라 예상했다. 첩보 분야에 좌파들이 배치되다니, 이럴 수가. 그러다 케네벡은 깨달았다. 극좌와 극우는 기본적으로 같은 목표 두 가지를 공유한다는 사실 말이다. 둘 다 이 사회를 원래 생긴 그대로가 아니라 더욱 질서정연하게 만들고 싶어하고, 강력한 정부가 국민을 중앙집권적으로 통제하길 바랐다. 물론 자세히 보면 좌파와 우파가 생각이 다르지만, 그들의 유일한 논쟁점인 '과연 누가 지배계층이 되는가'는 일단 중앙집권화가 이루어진 다음 일이었다. (p. 297)

거대 배후세력과 정부가 연결된 만큼 권력에 대한 비판이 빠질 수 없다. 그리고 그 변하지 않는 논리에 새삼 좌절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지배층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한두사람 그저 평범했던 소수의 사람들이 그들을 위협할 수 있음을 소설은 증명한다.

이 둘은 대체 누구지?왜 어딘가 구석에 박혀서 숨어 있지 않는 거지? 왜 무서워 벌벌 떨지 않는 거지? 크리스티나 에번스는 평범한 여자일 뿐이다. 전직 쇼걸이라고! 알렉산더는 쇼걸이 평균 이상으로 똑똑할 수 없다는 걸 믿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스트라이커가 제아무리 육군 정보부에서 일했따 하더라도 그건 아주 오래전 일 아니던가. 그렇다면 대체 저들의 이런 힘과 배짱과 인내심은 어디서 나오는 거지? 분명 두 사람은 알렉산더가 알지 못하는 이점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따. 그가 알 수 없는 유리한 점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게 뭘까? 그들이 가진 이점이 뭐냔 말이다. (p. 399)

아무렇게나 살인을 지시하는 싸이코패스는 절대 가질 수 없는 이점, 절대 느낄 수 없는 감정! 죽을때가지 알지 못할 그 감정! 평범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품고 사는 바로 그 마음!

리첸이라는 중국인 과학자가 미국으로 망명을 했고. 그는 중국에서 10년 만에 새로 개발한 가장 중요하고 위험한 생물무기 정보가 담긴 디스켓도 가지고 왔지. 그 물질은 우한 외곽에 있는 DNA 재조합 연구소에서 개발되어 '우한-400'이라는 이름이 붙었소. 그 연구소에서 만들어진 인공 미생물 중 400번째로 개발된, 독자 생존이 가능한 종이었기 때문이오. (p. 435)

이 책의 띠지에 써인 홍보문구가 '40년 전 '코로나19'를 예견한 소설, 단독 한국어판 출간' 이었다. 아마도 위 단락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코로나 바이러스와 저 우한-400은 좀많이 다르다. 그래서 지금의 코로나 사태를 40년 전에 예견했다고 하기엔 과한 면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 속에 우한 이라는 지역명이 등장하고 그곳에 연구소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격적이었다. 코로나 사태를 통해 처음 지명을 알게 된 나로서는 우한 이라는 곳이 이미 그런 위험성을 지닌 장소로 알려져 있었다는 것이 정말 충격이었다.

이 책은 40여년 전에 나온 소설이다. 1981년에 발표된 작품이다.

그러나 1996년에 작가가 시대변화를 반영한 개정판을 냈고 그것이 번역된 작품이라서인지 그렇게 오래전에 발표된 작품이라는 시간차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바로 지금의 현실 이야기인것처럼 생생했다.

비교적 초기에 발표되었던 작품 중 하나이다보니 약간 어설픈 부분이 살짝 있긴 했지만 이 소설의 강력한 흡인력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현재까지도 왕성하게 작품 발표를 하는 대가의 작품은 최근작이 아주 완벽한 짜임새를 자랑하지만, 40여년 전 초기작이 이정도라니 그저 감탄할 따름이다.

역시 딘 쿤츠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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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두나무 작업실
소윤경 지음 / 사계절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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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윤경 에세이

경기도 양평에 있는 집이자 작업실인 호두나무 작업실에 살고 있는 저자는 순수미술과 그림책의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중인 화가이다.

흑백 세밀화로 그려진 표지가 너무 예뻐서 눈길이 갔다. 게다가 화가가 쓴 에세이라고 하니 책속에서 간간이 그림도 등장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세밀화의 예쁜 표지껍질을 벗겨내면 이 책의 숨겨진 진짜?!표지와 제목이 등장한다.

<붓끝을 따라가는 화가의 하루하루>

평온한 시골의 전원풍경을 배경으로 한 꾸밈없는 저자의 옆모습 사진은 이 책의 분위기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진이다.

그림을 그려서 먹고사는 직업을 가진 저자의 하루하루를 읽다보면 여유라기 보다는 만족을 외로움이라기 보다는 고독을 여하튼 소박하지만 즐기는 삶에 대해 느끼게 된다.

막상 글을 쓰기 시작하자 두려움이 고개를 들었다. 그림은 아무리 사실적으로 그린다 한들, 그 누구도 그것을 현실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반면에 글은 매우 직접적인 전달 방식이다. 한평생 그림 뒤에서 은둔하듯 살아온 내가 민낯 같은 사적인 얘기를 풀어내야 한다니, 부담스러워 현기증이 났다. (p. 5)

이 책은 시골에 살며 그림 그리는 일을 하는, 한 오지 여행자의 생활 수기라고 보면 될 것이다. 어딘가에서 화가의 삶을 꿈꾸고 있을 누군가에게 건네는 작은 응원이 될지도 모르겠다. (p. 7)

 

집필을 시작하고 몇 년의 시간이 흘러간 후에야 완성한 책이라고 한다. 저자는 에세이 출간 제의를 받고 기뻤다고 한다. 그동안 책내용에 맞는 그림을 그리느라 책을 꾸준히 접해 왔고 칼럼도 간간이 쓰고 강연도 종종 해왔음에도 자신의 일상을 담은 에세이를 출판한다는 것은 기쁨과 동시에 걱정이었을 것도 같다. 아무래도 본업은 글이 아니라 그림이므로. 하지만 저자의 책은 짧으면서도 정갈하게 다듬은 흔적이 역력했고 화가의 생활에 대한 추상성을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성으로 내려오게 하여 사는게 뭐 그리 다르지 않음을 느끼게 해주었다.

무언가 가고 나면 또 다른 것들이 생을 채워가리라. 그것들이 모두 지나가고 인생이 얼마나 짧은 여정이었나를 회고하는 나이가 되면 아지랑이처럼 모든 것들이 피었다 사라지는 허무한 꿈이려나. (p. 38)

의욕충만하고 생기발랄한 나이는 아니지만 그렇기때문에 중년의 인생이 알려주는 것들을 쓸 수 있었을 것이다. 나도 갈수로 느끼는 거지만 연륜은 그 어느 분야에서도 나름의 가치를 발휘하는 듯 하다. 살다보니 정말 그렇다, 나이 좀 먹어봐야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어려운 것, 낯선 경험들을 겪고 나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삶의 자신감을 얻게 된다는 걸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이젠 억지스러운 용기보다는 익숙한 일상들이 더 중요해지는가 보다. 남 보기에 예쁜 옷보다 내 몸에 익숙하고 편안한 옷이 좋은 것처럼. 해낸 일은 잘한 것이 되고, 하지 않은 일도 크게 후회로 남지 않는다. (p. 51)

책속에는 그림보다 저자의 사진이 자주 등장한다. 그 일상의 사진이 저자가 사는 환경 덕인지 자연친화적 분위기를 물씬 풍겨서 에세이글의 분위기와 자연스럽게 어울리면서 편안함을 전달해 준다. 하지만 역시 눈길을 끄는 것은 화가로서의 모습이 엿보일때였다. 내가 모르는 분야의 모습이니까.ㅎㅎ

 

 

어떤 경로로든 책들은 끝도 없이 쌓여간다. 집 공간을 차지할 만한 가치를 가진 책들만 남겨진다. 실로 많은 분량의 서적들을 부정기적으로 처분하곤 한다. 책들을 정리하며 내가 하는 일에 회의가 들때가 있다. 누군가의 시간과 노력, 생명을 가졌던 나무가 버려진다. 나는 과연 누군가의 책장에서 오래도록 버틸 수 있는 그림책을 만들고 있는 걸까. 수십 년 뒤에도 사라지지 않을 의미 있는 작업을 하고 있는 걸까. 나로서는 알 수도 어쩔 수도 없는 일이다. 스스로에게 의미있는 생이면 족하리라. (p. 114)

 

평소 책을 많이 읽는 편이다 보니 나도 부정기적으로 책을 처분하곤 한다. 공간은 한정되어 있으니 책이 어느정도 쌓였다 싶으면 남길 책과 떠나보낼 책을 분류해야 한다. 그럴 때마다 책 한권 한권 에게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든다. 한 권의 책이 나오기까지 얼마나 여러 사람의 노고가 쌓였을 것인가... 하지만 우리집에 그 노고를 다 모셔둘 수 있는 공간이 없으니 안타깝지만 보낼 책은 보내야 한다;;;

시골집에 혼자 있으면 무섭지 않느냐고 사람들이 묻는다. 원치 않는 인간관계에 시달리고 헛되이 시간을 버리는 것이 더 무섭다. 그들도 나도 서로 다른 별에서 온 외계인일 뿐이다. (p. 191)

보리 라는 반려견과 외딴 집에 사는 것에 저자는 만족을 느끼는 듯 하다. 집이 곧 작업실이라해서 계속 일만 하는 것도 아니고 작업실이 곧 집이라 해서 계속 늘어져 있는 것도 아닌 것 같아 감탄스러웠다. 작업일지대로 일을 하고 꼬박꼬박 운동을 하고 텃밭도 가꾸고 그림보다도 여행을 좋아하는 모험심까지 갖춘 저자도 나도 다 서로 다른 별에서 온 다른 존재라고 여기면 그 뿐이다. 각자의 삶을 기성복처럼 맞출 필요는 없는거니까.

그림 그리는 사람은 자신이 파둔 굴속에 처박혀 세월을 보낸다. 굴 밖에 사는 사람들은 그런 굴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지나쳐 간다. 하지만 그 굴속에서 그림을 그리고 재미난 공상에 빠져 시간을 보낸다는 건 은밀한 축복이다. (p. 210)

책을 읽어갈수록 표지가 전해주는 세밀화와는 다른 그림을 그리는 화가겠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림책을 안본지 오래되서 저자가 그려넣은 일러스트가 있는 책을 본 기억은 없지만 살짝 등장하는 저자의 그림들을 보면서 더욱 ㅎㅎ

 

 

글 간간이 자신에 대한 묘사들이 있었는데, 책 마지막장에 등장하는 저자의 정면사진을 보면서 깜짝 놀랐다. 뽀글뽀글 파마머리의 조금은 펑퍼짐한 중년의 아줌마인줄 알았는데 왠걸 전혀 아니셔서 ㅎㅎ

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라는 직업세계에 대해서도 알게 되고 책과 그림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볼 수 있게 하는 에세이였다. 개인적으로 느낀 가장 큰 여운은, 자신에게 맞는 삶을 선택해 사는 사람의 일상을 봄으로써 내가 그러한 삶을 선택한다면 혹은 선택했었다면 이라는 질문을 던져보게 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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