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척도
마르코 말발디 지음, 김지원 옮김 / 그린하우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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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적 인간이라고 불리는 다 빈치야말로 우리가 풀고 싶은 궁극의 미스터리다' 라는 이다혜 작가의 추천사처럼 '레오나르도 다 빈치'라는 이름은 이름 그자체로 이미 상상의 세계로 이끄는 힘을 지녔다. 그러니 다 빈치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이라는 이 작품에 혹 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이탈리아 소설가로 범죄소설에서 재능을 발휘 중인 작가의 작품이라서 그런지 한편의 범죄드라마를 보는듯 촘촘한 구성이 탁월했다.

소설을 시작하기에 앞서 스포르차 가문의 가계도가 나오고 등장인물들 한명한명을 세심하게 설명해주는 데도 이름이 익숙해지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다. 비슷비슷한 중세 이탈리아의 이름은 정말이지 여전히 외워지지 않는다;;;

10년 전, 레오나르도는 자신이 사석포를 개발하고, 지하로 강과 해자를 파고, 난공불락의 성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하는 긴 편지를 갖고 루도비코 일 모로 앞에 나타났다. 그 편지의 제일 아래쪽에 그는 자신이 그림도 좀 그린다고 덧붙였다. 이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다 빈치는 그가 직접 발명한 리라 다 브라치오를 연주하는 음악가로서의 능력 때문에 밀라노로 불려온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특히 하나의 문장이 루도비코 일 모로의 머리에 깊이 박혔다.

저는 각하의 아버님에 대한 행복한 기억과 빛나는 스포르차 가문의 불멸의 명성, 영원한 영예를 기리는 청동 말을 만들겠습니다. (p. 47)

 

1493년 가을 레오나르도는 스포르차 가문의 밀라노에서 섭정 중인 루도비코의 후원아래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중이다. 그 프로젝트 중에는 10년전 편지에서 호언장담했던 청동말 조각상 제작도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10년째 진척이 보이지 않는 이 청동말에 대해 루도비코의 인내심은 바닥나고 있었다.

프랑스군에는 달마티아인이나 네덜란드인 용병이 없었다. 사실 용병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그들은 언어와 목적을 공유하고 샤를8세에 대한 충성심으로 똘똘 뭉친 강력한 병사들 집단이었다. 두번째로 이탈리아의 용병 대장들이 세련되어지고 그들의 아들들이 어떤 경우에는 귀족이나 외교관이 되었던 반면, 당시 프라으에서는 사회적 승격이 전혀 불가능해 프랑스 병사들은 계속해서 병사들이었다. 다른 사람의 백성들과 마주하면 그들을 죽이고 그걸 통치자에게 내세우지 않는 그런 사람들이었다. (p. 56)

로마제국이 무너지고 이탈리아는 도시들로 쪼개진채 여전히 사분오열된 상태였다. 로마제국때부터 들여온 용병은 이제 완전히 이탈리아 곳곳에 자리잡아 자체군대는 없다시피 할 정도였다. 그리고 소소한 전쟁은 신분도 뒤집었다. 로마가 무너지고 천년 후의 이탈리아 한 도시국가인 밀라노 이야기를 읽다보니 로마제국쇠망사의 일부가 떠오른다. 그리고 여전히 안타깝다.... 여하튼, 그에 비해 프랑스는 자신들의 군대가 있었고 무엇보다 대포가 있었다. 전쟁에 무지하고 무능한 프랑스왕은 나폴리 침공을 계획중이었고 밀라노의 루도비코는 그 자금을 빌려주고 있었다.

"제가 왜 미사에 참석해야 합니까? 전도사가 복음서에 쓰여 있는 내용을 읽는다면 가겠어요. 하지만 제 귀에 들리는 건 전도사들이 자기 머릿속의 망상을 신의 뜻이라고 착각하고 떠드는 소리뿐이에요. 피렌체의 사보나롤라 수사나 이곳 밀라노의 지오아키노 수사처럼요" (p. 85)

소조는 확실히 그림보다 쉽다. 3차원으로 만드니까 보고 느끼는 것을 그대로 복제하기만 하면 된다. 고대 그리스인들의 조각상은 장엄한 반면 그림은 우스꽝스러운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3차원으로 만드는 것이 더 쉬우니까, 안 그런가? 하지만 2차원으로 만들려면 기술이 필요하다. 음영법과 원근법을 알아야 한다. (p. 88)

 

다 빈치는 여러 면에서 시대를 뛰어넘는 선구적 면이 있었다. 물론 이 책은 소설이고 다빈치가 종교에 대해 저렇게 말했다고 확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런 저런 기록에서 다빈치가 종교활동을 열심히 하지 않았으니 작가가 이렇게 쓴 것이 아닐까?

소조와 그림에 대한 생각은 아하~! 싶었다. 고대그리스와 고대로마조각을 보며 그저 감탄만 했었는데... 회화보다 조각이 발달했던 이유를 저렇게도 생각할 수 있었구나!

"별에서 아주 많은 걸 읽으실 수 있으니 참 좋으시겠습니다. 마지스트로 암즈로지오. 저에게는 별이 북쪽 방향을 알려주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거든요"

"당신의 관찰은 그저 필멸의 존재인 육체만을 고려할 뿐이지만, 나는 영원의 첫 번째이자 가장 분명한 현현인 별을 고려하오. 당신이 육체에서 본 걸 내가 별에서 본 것과 비교하려 하지 않았으면 좋겠군" (p. 133)

 

그림값도 못받고 청동말 주조도 못하고 이런저런 답답한 상황속에 있던 다빈치에게 시체검안을 하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갑자기 성안 뜰에서 시체가 발견된 것이다. 그런데 루도비코의 절대적 신뢰를 얻던 점성술사는 질병으로 인한 죽음이라 하고 해부학적 지식이 있던 다빈치는 살해라고 상반된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이런 다빈치의 입장은 그에 대한 신뢰도가 낮아지고 있던 루도비코에게 또하나의 의심을 제공하게 된다.

프랑스왕이 보낸 사절단, 서로의 이익을 계산해야 하는 정치적 관계, 갑자기 등장한 시체, 가짜 신용장, 위조 화폐, 그리고 또다른 죽음, 거기에 종교적 음모까지 해결될듯 해결될듯 꼬리를 물고 다른 사건으로 연결되는 이야기의 흐름은 다빈치 라는 인물의 매력에 더해 범인을 추적해나가는 묘미가 있었다. 다빈치는 추리에도 천재성을 발휘한다.

"우리는 그분이 모든 것의 척도라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무언가를 측정하기 위해서는, 그 가치를 알기 위해서는, 뭔가로 그걸 사야만 합니다. 그걸 측정하기 위해서는 진정한 통화가 필요해요. 그래야 그 가치를 판단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걸 측정할 유일하게 정당한 통화는 바로 신이에요!" (p. 308)

"우리는 자라면서 세상의 모든 동물을 추월하고 지배하게 되고, 그래서 태생이 아니라 자라고 배우는 것을 우리가 인간의 척도로 삼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연과 다른 사람들을 관찰함으로써 배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는 일과 우리가 믿는 것, 무슨 일이 일어날지 우리가 예상하는 것을 비교해보지 않으면 사람의 지성과 판단력이 건전하게 자라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사람의 실수에 깨달음을 얻는 유일한 방법은 자연 그 자체를 척도로 삼아 자신을 비교하는 것뿐입니다. 사람과 달리 자연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까요" (p. 346)

 

서로의 가치판단 기준이 다를때 사람은 어느 정도의 사건까지 벌일 수 있게 되는 것일까?

그리고 서로가 서로를 파멸시키기 위한 척도는 과연 필요한 것일까?

역사적 인물을 소재로 삼았으나 역사서가 아니라 소설인 이 작품을 읽다보면 당연히 그 시대를 상상하게 된다. 때로는 실재이고 때로는 허구인 장면들이 하나의 이야기로 모아지니 더 재미있게 읽혀졌다. 셜록 홈즈의 추리소설 한편을 읽고난 기분이 드는 깔끔한 사건 해결에 왠지 다빈치가 또다른 사건을 해결하는 다음 작품도 나오지 않을까 기대하고 싶어진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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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제의 기술 - 유혹의 시대를 이기는 5가지 삶의 원칙
스벤 브링크만 지음, 강경이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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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심리학에서 배우는 내려놓는 삶의 즐거움

유혹의 시대를 이기는 5가지 삶의 원칙

 

 

덴마크에서 가장 신뢰받는 대중 철학자이자 심리학자라는 저자가 쓴 이 책은 언뜻 자기계발서처럼 읽히기도 한다. 이러이러하게 살아야 한다 거나 5가지 삶의 원칙이라거나 하는 식의 내용 때문이기도 하고 'THE JOY OF MISSING OUT' 라는 원제는 '내려놓는 것의 즐거움 이랄 수 있을 것인데 '절제의 기술'이라는 어떤 기술을 알려주는 듯한 한국어판 제목때문이기도 하다. 여하튼 200여 페이지의 작고 얇은 이 책은 비교적 빨리 읽히는 책이었다.

현대 심리학은 주로 개인이 자기 통제력을 발휘하는 맥락에서 절제를 다룬다. 물론 이러한 심리적 접근법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좀 더 다양한 측면을 함께 다룬다. 바로 심리학과 철학, 윤리학, 정치학, 미학이라는 관점을 통해 유혹의 시대를 이기는 다섯 가지 삶의 원칙을 소개하려 한다.(p. 18)

절제라는 단어는 개인적인 욕망억제적 느낌을 준다. 그래서 절제의 기술이라 하면 개인적 마음수련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하지만 저자가 말하는 절제는 개인적인 측면이 아니었다. 저자의 포부대로 철학, 윤리학, 정치학, 미학이라는 다양한 분야가 응축되기엔 전개되는 내용이 짧아서 제대로 느낄수는 없었지만 여하튼, 중요한것은 개인적인 차원이 아니라 공동체적 차원을 중요시 여긴 다는 것이다.

첫 번째 원칙은 '선택지 줄이기'이다. 이 원칙은 심리적 관점에서 자기 통제력을 구체적으로 발휘하는 법과 연결된다. 우리 마음에는 '쾌락 쳇바퀴'라는 비극적 시스템이 있다. 새로운 쾌락이나 더 나은 선택지를 찾는 대신, 선택지를 줄이면 된다.

두 번째 원칙은 '진짜 원하는 것 하나만 바라기' 이다. 실존주의 철학자 쇠렌 키르케고르는 '마음의 순결함은 단 한가지만 바라는 거이다' 라고 말했다.

세 번째 원칙은 '감사하고 기뻐하기' 이다. 윤리적 관점에서 타인과 맺는 관계를 다룬다. 특히 절제(소프로시네)를 윤리적 삶의 핵심 요소로 보았던 고대 그리스 철학의 덕 개념과도 연결된다.

네 번째 원칙은 '단순하게 살기' 이다. 절제의 사회적, 정치적 측면을 다룬다.

다섯 번째 원칙은 '기쁜 마음으로 뒤처지기'이다. 미학적 관점에서 절제는 단순하며, 그렇기에 아름답다. (p. 18~21)

 

저자가 제시하는 다섯 가지 원칙이 다섯 가지 분야에서 도출되었다. 이제 하나하나 살펴볼 차례다.

원칙1> 선택지 줄이기 - 내 삶의 한계에 대해 깨달을 심리적 준비

연구자들은 인간의 삶에서 중요한 것은 추상적 개념의 자기 절제만이 아니라, 세상과 타인에 대한 신뢰라는 결론을 내렸다. 달리 말해 자기 절제 능력이란 오롯이 개인의 의지에 달린 인격 특성이라기보다는 상황과 환경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이 새로운 실험은 미셸이 했던 첫 번째 실험의 가치를 떨어뜨렸지만, 그와 동시에 새로운 의미를 덧붙였다. 한 개인의 성공은 개인적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다양한 차원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의 내면적 심리 특징만이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나 양육 환경 등 그를 둘러싼 여러 조건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이다. (p. 32)

마시멜로 실험은 유명해서 많이들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한 심리학자가 마시멜로를 주는 어른의 조건에 변화를 주었다. 신뢰할만한 어른인가 아닌가에 따라 아이들의 마시멜로 인내 결과는 유의미하게 달라졌다. 마시멜로를 기다린다는 것은 개인적인 절제 뿐만 아니라 마시멜로를 제시하는 어른 즉 환경에 의해서도 크게 좌우되었다. 드라마의 반전 결과를 본듯 이 실험의 결과는 무척 신선하게 다가왔다.

기본적으로 덴마크가 이룬 높은 수준의 평등과 복지, 타인에 대한 신뢰가 높은 행복지수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언급한 삶에 대한 낮은 기대 역시 꽤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북유럽에는 '얀테의 법칙'이라는 게 있다. 얀테의 법칙은 간단히 말해 '내가 대체 뭐라고?'라는 태도를 바탕으로 한다. 자기 분수를 잘 알고 자만하지 말아야 하며, 성공에만 목매는 일은 다소 천박하다고 여기는 생각이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이러한 얀테의 법칙과 삶에 대한 낮은 기대 덕에 덴마크 사람은 다른 나라 사람보다 실망과 실패를 잘 견디는 것 같다. (p. 47)

사계절이 뚜렷하다기 보다 늘 추위가 긴 나라, 좁은 땅 척박한 자연환경 속에서 거친 삶을 살아야 했던 민족, 덴마크 사람들이 '얀테의 법칙'을 체득하게 된 원인이었을까? 그런데 왜 한국 사람들은 '내게 어떻게 이래?' 라는 태도를 바탕으로 갖게 되었을까;;;

트럼프는 특히 '나는 패배를 믿지 않는다'라는 장(노먼 빈센트 필이 쓴 <긍정적 사고의 힘 이라는 책 에서)을 열렬히 사랑한 나머지, 자신이 패배할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듯하다.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그는 자신이 힐러리 클린턴에게 패할 경우 그 결과에 승복하겠다고 약속하는 일조차 당당하게 거부했으니 말이다. 민주적인 절차와 제도를 전혀 신뢰하지 않는 끔찍한 태도였다. (p. 50)

트럼프가 필의 긍정적 사고에서 배운 것은 일종의 자기기만이다. 긍정적 사고를 통해 자신만을 위한 또 하나의 현실을 창조해내는 것이다. (p. 51)

 

트럼프는 거의 세계적인 공공의 적이 된 것 같다. ㅎㅎ 정치분석 책은 물론이고 이런 심리·철학서 뿐만아니라 소설에서까지도 요즘 읽는 책마다 자꾸자꾸 등장한다. 그리고 항상 욕을 먹는다. 아주 오~래 살건가 보다. ㅎ

행복은 누구에게도 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상태가 아니라, 우리 주변의 타인들에게 올바르게 매여 있는 상태다. (p. 54)

우리가 쉴 새 없는 유혹의 문화 속에서 사는 한, 그런 개인적인 노력은 대부분 실패하기 마련이다. 우리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문화를 가꾸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앞으로 이 책에서 계속해서 다룰 주제다. (p. 62)

 

원칙2> 진짜 원하는 것 하나만 바라기 - 더 많이 경험하지 않아도 되는 실존적 이유

덴마크 시인 피트 헤인의 시 < 다 바라지 말아야 한다>

다 바라지 말아야 한다.

너는 그저 한 부분일 뿐.

너는 세상 속 한 세상만을 소유한다.

'그 세상'을 온전하게 만들어야 한다.

단 하나의 길을 선택하라.

그리고 그 길과 하나가 되어라.

다른 길들은 기다려야 한다.

우리는 늘 돌아온다.

문제로부터 숨지 마라.

바로 지금 여기에서 그 문제에 맞서라.

유한함이야말로

세상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이다.

네가 존재하고, 행동하고, 겪어야 하는 것은

바로 '지금' 이다.

그게 유한함이다.

우리는 절대 돌아오지 않는다. (p. 68)

 

때로는 길고 자세한 설명보다 짧고 끊어지는 시 한편이 더 깊게 공감이 되곤 한다.

키르케고르는 종교 사상이기에, 선 또는 순결한 마음을 보증하는 존재가 신이라고 말한다. '선은 그 자체로 보상이다. 맞다. 그것은 언제나 틀림없는 말이다. 그만큼 확실한 것이 없다. 신이 있다는 사실만큼이나 확실하다. 왜냐하면 선한 일을 추구하는 것이 그 자체로 보상이라는 말과 신이 존재한다는 말은 결국 같은 말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키르케고르는 선한 일을 하는 것이 그 자체로 보상이자 목적이라는 생각과 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서로 연결한다. 우리는 그가 말하는 신의 개념에 동의할 수도,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건 키르케고르가 우리 사회에 점점 널리 퍼지는 도구화 현상을 날카롭게 비판한 것만은 틀림없다는 점이다. (p. 74)

키르케고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면 우리의 마음 너머엔 더 큰 세상이 있으며, 그 세상에서는 사적인 소망과 취향과는 관계 없이 객관적으로 좋거나 나쁜 것만이 있다는 진실을 깨닫게 된다. (p. 96)

 

키르케고르의 사상을 읽어본 적은 없다. 그리고 종교사상가 라는 점에서 그의 책을 읽어도 다 이해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저자가 전달해주고 하는 점은 알것도 같다. 삶의 방향이나 의미를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다른 객관적인 차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

원칙3> 기뻐하고 감사하기 - 경제학이 알지 못하는 인간의 윤리적 가능성

키르케고르는 사람들에게 백합과 새를 스승으로 삼아 무어보다 침묵을, 말을 삼가는 법을 배우라고 간청한다. 우리가 침묵의 기술을 배워야 하는 이유는 우리에게 말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언어가 없다면 침묵을 배울 이유가 없다. 침묵을 배울 때 비로소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이는 법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p. 111)

절제도 지나치면 해롭다. 절제가 신성불가침 원칙이나 금욕이 되면 절제하는 사람 자신뿐 아니라 주변 사람에게도 견디기 힘든 일이 되고 만다. 그러니 절제도 절제해야 한다는 것을 늘 기억하자! (p. 129)

윤리는 추상적이고 지적인 게임이 아니라 실천적 모험이다. 행동의 문제다. 그리고 그 행동을 절제하는 문제다. 윤리적으로 행동할 수 있게 해주는 절제라는 품성을 갖추려면 건강하게 잘 가꾸어진 감정이 필요하다. (p. 130)

 

욕망은 경제와 밀접하다. 경제가 만들어낸 산물은 지속적으로 새로운 것을 선택하게 하고 욕망을 부추긴다. 저자는 경제에 휘둘리지 말것을 조언한다. 그렇다고 욕망을 억누르라는 것은 아니다. 윤리는 왠지 종교적 철학적 금욕적 느낌을 주지만 저자는 윤리적 절제를 건강한 품성에서 찾고자 한다. 건강한 품성은 스스로 알아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일관되게 개인적 차원을 넘어선다.

원칙4> 단순하게 살기 -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한 정치적 결정

지구상 가장 부유하고 가장 안전한 나라에서, 비교적 부족한 것 없이 살아가는 나 같은 사람이 이런 주장을 펼치는 건 다소 위선적인 일이 아닐까? 욕망을 좇는 대신 절제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다른 사람을 가르치려 드는 엘리트주의적이고 특권적인 태도가 아닐까?누군가는 '부족한 게 없는 당신 같은 사람들이야 그럴 수 있겠지!''라고 비난하지 않을까? 물론 타당한 반응이다. (p. 150)

솔직하다. 이런저런 수치에서 선두권을 차지하고 있는 북유럽 나라 덴마크에서 교수로 살면서 남부러울 것 없이 사는 저자에게 누군가 이런 질문들을 할법 하지 않은가? 저자가 먼저 이 의문점을 인정하고 함께 생각해보자는 태도에서 나는 왠지 여유감을 느꼈다. 뭔가 많이 가져서 느껴지는 여유감이 아닌 다른. 그리고 저자는 곧바로 답을 찾는다.

이 책에서 나는 개인이 절제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는지를 주로 다루었다. 하지만 이런 논의는 개인적 차원뿐 아니라 집단적 차원에서도 이루어져야 한다. 사실 중대한 결정은 집단적 차원에서 내려지기 때문이다. (p. 153)

저자는 지속적으로 자신이 가진 개인적 조건들이 아닌 다른 것을 보도록 유도한다. 개인적 절제는 스스로에게 좌절감을 안겨줄 때가 많지만 시스템적 절제는 다르다. 그리고 그러한 환경은 개인이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구글에서 '단순하게 살기'를 검색했는데, 대부분 스칸디나비아풍 가구를 파는 웹사이트나 실내 디자인 웹사이트로 연결되었다. 잠시 그 사이트를 둘러본 결과,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바로 단순하게 살려면 매우 많은 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p. 161)

재밌지 않은가? 단순하게 살기 위해 매우 많은 돈이 필요하다는 아이러니한 상황은 자본주의 하에서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아닐 수도 있다. 잘못 받아들여서 일수 있지 않을까? 절제와 검소를 추구하는 단순하게 살기 운동이 왜 하나의 유행처럼 번진 것일까?

2300년 전쯤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에게 무척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바로 '경제의 목적은 무엇인가?' 하고 말이다. 철학자 제롬 시걸과 아리스토텔레스 두 사람 모두 경제의 목적이 점점 더 많은 것을 갖는 데 있지 않다고 답한다. 오히려 좋은 삶을 살 수 있도록 경제적 어려움에서 우리를 해방하는 데 있다고 본다. 따라서 우리가 경제를 이야기할 때 좋은 삶이 무엇인지에 대해 논의하는 과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p. 162)

고대 철학은 현대인이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근본적 질문들을 먼저 선점했다. 하지만 그 근본적 질문들은 세대를 거듭하면서 계속 새로운 답을 찾아낼 뿐 정답은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경제가 발달할수록 개인적 소비선택만 늘어나는 것 같다. 그러니 단순하게 사는 것도 뭔가 새로운 것을 더 사는 것으로 종결되기 쉽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산속으로 들어갈 수는 없지 않은가? 저자는 '공동체의 삶을 책임지는 적극적 자유'를 말한다.

절제의 기술은 어떤 의미에서는 단순하게 살기 운동의 핵심 요소이기도 하다. 단순하게 사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개인의 행복을 위해서도,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도. 하지만 현실에서 단순하게 살기 운동은 지나치게 엘리트주의적이고 개인주의적이었다. 단순하게 살기란 절대 단순하지 않다. 정말 단순하게 살려면, 개인이 상당한 경제적, 문화적 자원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내려놓아야 할지 제대로 알려면, 토론을 하거나 민주적인 제도를 활용해도 좋을 것이다. 개인적인 삶 역시 타인이나 사회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항상 유념하자. 개인과 집단을 이분법적으로 봐서는 안 된다. 둘은 사실상 상호 의존하고 있다. (p. 167)

우리 아아들이 절제의 기술을 터득하기 위해서도 적절한 교육이 필요하다. 누구도 저절로 절제의 기술을 터득하지는 못한다. (p. 169)

적극적 자유를 누리려면 성숙한 시민의식이 필요하고, 개인적으로도 통찰력과 비판 능력을 갖춰야 한다. 또한, 자유는 연대 의식도 포함한다. 사실 연대 의식이야말로 이 책에서 다루는 주요 주제다. 절제의 기술은 더 힘든 상황에 있는 다른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내 앞에 놓인 무언가를 기쁘게 내려놓는 마음이다. (p. 170)

 

원칙5> 기쁜 마음으로 뒤처지기 - 일상이 즐거워지는 삶의 미학적 형식

혹시 '조모 JOMO, Joy Of Missimg Out'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는가? 오늘날 널리 퍼진 유행어인 '포모 FOMO, Fear Of Missing Out'의 반대말이다. 우리는 내려놓는 일과 뒤처지는 일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p. 176)

내려놓음, 지금, 여기 를 강조하는 저자의 글을 읽다보면 같은 것을 강조하시는 법륜스님이 자꾸 생각난다. 저자의 원칙들은 불교적 분위기를 풍기기도 하지만 저자는 그럴까봐 끊임없이 개인적 차원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얼마든지 계속 원해도 된다고 유혹하는 세상에서, 우리가 무언가를 기꺼이 내려놓는 절제력을 기르고 의지력을 키우는 일이 가능할까? 아마 몇몇은 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간접적인 방식이 더 도움이 된다. 그러니까 개인적 차원에서 의지력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둘러싼 제도와 조직, 기술, 가족 등으로 이루어진 사회적, 문화적 환경을 새롭게 바꾸는 것이다. (p. 187)

환경을 바꾸려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 정치적인 선택들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사회적, 문화적 환경은 개인들의 선택이 모여 만들어진다. 자연스러운 분위기 같은 거랄까.

개인은 수많은 선택지를 손에 쥔 소비자가 되어 제공된 메뉴에서 이것저것 선택해 삶을 조립한다. 그 결과 그냥 자연적으로 의례적으로 이루어지는 일은 이제 거의 없다.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는 오늘날처럼 의례의 영향력이 줄어든 현상으로 인해, 개인이 생애 전환기에 잘 대처하도록 돕는 사회적, 심리적 토대를 잃어버린 건 아닌지 묻는다. (p. 189)

사회의 탈 의례화는 바꿔 말하면 개인과 공동체 사이의 유대가 약해졌다는 의미다. 철학자 앤서니 홀리웨이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의례를 존중하는 것이야말로 보편적인 도덕 가치라고 주장한다. 물론 모든 의례에 도덕적인 가치가 있다는 말은 아니다. 의례화가 어느 정도 이루어진 사회여야 도덕성도 발달할 수 있다는 말이다. (p. 190)

오늘날 많은 사람이 혁신과 파괴에서 희망을 찾으려 한다. 하지만 무조건적인 혁신이나 파괴는 우리 삶의 모든 형식과 한계를 없앨 뿐이다. 삶에 도움이 되는 혁신적 사고를 하려면 우리가 사는 시대와 장소를 역사적인 관점에서 이해할 줄 알아야 한다. (p. 194)

개인들에게 자기 앞날을 위해 마시멜로를 쌓아두라고 가르치는 대신, 주변 사람과 마시멜로를 나누어 갖는 행동을 권장하고 보상을 해줘야 한다. (p. 198)

절제의 기술을 배우는 일은 단지 공허한 금욕주의를 연습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모두 충분히 행복과 여유를 누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일이다. (p. 200)

 

 

한명한명의 개인들이 자기자신만을 생각하며 모든 것을 판단한다면 당연히 공동체적 삶은 지양될 것이다. 한명한명의 개인들이 건강한 품성을 갖고 적극적 시민의식을 함양하여 함께살기 위한 절제를 할 수 있을때 그야말로 이상적인 공동체적 삶은 지향될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개인들이 어떻게 해야 많아질 수 있을까... 자각? 교육? 둘다 필요하긴 할 것이다. 그런데... 가능할까?... 가능해지면 좋겠다!

ps. 표지그림을 아무리 봐도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 나는 자꾸 '마라의 죽음'이라는 그림이 떠올라서 책에 몰입하는데 방해가 되어 개인적으로 좀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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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턴의 아틀리에 - 과학과 예술, 두 시선의 다양한 관계 맺기
김상욱.유지원 지음 / 민음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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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서 과학을 보는 물리학자

과학에서 예술을 읽는 타이포그래퍼

창의력은 서로 다른 분야들 간의 소통에서 피어난다!

과학과 예술, 두 시선의 다양한 관계 맺기

 

 

타이포그래퍼 유지원 작가와 물리학자 김상욱의 콜라보로 신문에 연재 진행했던 칼럼을 모아서 보강한 것으로 나온 이 책은... 참신했다!

서로 번갈아 가며 주제단어를 고르고 그 주제에 대해 예술가는 과학을 과학자는 예술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그 흐름이 무척 자연스러워서 읽다보면 두 사람이 번갈아가며 썼다는 것을 잊어버리곤 해서 이건 누구글이지? 하고 다시 앞을 찾아보곤 했다. 요즘말로 티키타카 케미가 아주 훌륭하달까. ㅎㅎㅎ

물리는 언제나 보는 것에서 출발한다. 미술은 물질의 예술이다. 물리는 물질의 과학이다. 현대미술은 인간이 임의로 만든 의미와 가치에 대한 강박적 결과물로 보인다. 인간이 말하는 의미나 가치는 물리적 우주 속에 실재하지 않는 상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작가는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모든 것은 작품이 될 수 있다. 미술은 존재하지 않고, 미술가가 존재하는 이유다.

물리는 미술이다. 물리가 답이 있는 질문을 다룬다면 미술은 답을 반드시 필요로 하지 않는다. 물리의 상상이 올바른 답을 얻기 위한 것이라면 미술의 상상은 질문 그 자체를 위한 것이다. (김상욱 프롤로그 - 미술은 물리다 p.4~7 中)

 

이 책을 읽으며 김상욱 교수의 글솜씨에 반하고 심미안에 반했다. 과학자가 이렇게 예술을 많이 그리고 깊이 알고 더불어 즐기다니... 생물,지구과학,화학,물리 중에서 물리는 도저히 근접할 수 없는 과학이었는데 김상욱 교수의 물리학책은 왠지 재미있을 것 같아서 다음에 도전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의 두 저자가 속한 과학기술 단체에서는 가끔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함께 미술관에 간다. 이때 미술 작품을 보는 김 교수님과 나의 관점이 특별히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둘다 '어떻게'를 먼저 질문한다. 회화에서는 화학의 질문이 되기도 하고, 설치작의 스케일이 아주 커지면 공학의 질문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어떻게'의 문제를 해결하고 나면, '왜'그렇게 했는지 작가의 상황과 의도와 마음에 한층 다가서게 된다. (유지원 프롤로그- 세 가지 질문 p. 10 中)

타이포그래피 라는 단어를 처음 알게 됐다. 시각디자인 중에서도 글자체 전공이 있었다니... 몰랐다. 글자체가 디자인의 영역이었구나;;; 유지원 교수가 알려주는 글자체의 세계는 신기했다. 이렇게 다양했나? 이 작은 차이에 그렇게 큰 의미가? 하다못해 마침표 점 하나에도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는;;; 김상욱 교수의 글이 워낙 쉽게 이야기해주는 편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유지원 교수의 글이 오히려 어려울 때가 있었다. 하지만 창의적 사고는 확실히 예술가에게서 더 느껴지는 것 같긴 하다.

같은 표제어에 대해 한 사람이 이야기 하면 다른 한 사람이 뒤를 잇는다. 때로는 상반된 의견같기도, 때로는 보완하는 의견같기도 하면서 결국은 하나의 글로 합쳐도 무방한 그런 어울림이 만들어진다.

1. 관계맺고 연결된다는 것

이야기> 유] "알게 된다는 것은 돌이킬 수도 없는 일이어서 알기 전과는 나의 의식이 비가역적으로 달라진다. 그러면 이야기도 달라진다. '아는 만큼 안 보이'기도 한다"

김] "인간의 뇌가 세상을 이야기로 인식하다 보니, 세상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특성이 생겼는지도 모른다. 의미를 부여하는 능력은 언어를 창조하고, 언어는 추상적인 의미마저 만들어 내고, 결국 우리는 존재하지도 않는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종이 된것은 아닐까?

소통> 유] "소통이란 생명 그 자체이고, 때로 개체의 목숨을 초월해서 관철되기도 한다"

김] "인간은 소통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제대로 소통한다는 것은 기적이다"

유머> 유] "유머란 어떤 일에 몰두하다가도, 여유를 갖고 주위를 넓게 둘러보며 균형을 잡는 힘이다. 한 발 물러서면 시야가 넓어진다"

김] " 유머는 사람들 사이의 차이가 야기하는 불편을 호감으로 바꾼다. 유머 없는 행복보다 유머 있는 불행이 낫다. 유머 없이 사는 것보다 더 불행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편지> 유] "이어지고 싶은 열망을 담아서, 글자는 그리움을 기다림 속에 실어 날랐다"

김] "친애하는 마그리트 작가님께"

시> 유] "시는 그래픽적 이미지가 된다. 좌우가 반전됨으로 해서 인간은 음성으로부터 더 멀어지며, 서술적 텍스트로 읽혀지기를 거부한다"

김] "물리는 시 다. 사물의 이치는 때로 단 한 줄의 수식이나 한마디 문장으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을 '우주의 시'라 부른다"

우주는 엔트로피의 증가, 즉 죽음을 선호한다. 이런 우주에서 생명은 돌연변이이자 이단아다. 그래서 우주도 중요하지만 생명은 소중하다. 소중한 존재는 그 자체가 궁극이지만 중요한 존재는 궁극에 도달하기 위한 방편이다. 우리는 소중한 생명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사람이 새와 함께 사는 법은 새장에 새를 가두는 것이 아니라 마당에 풀과 나무를 키우는 일이다. 모든 생명이 그러하다. (p. 97)

한사람이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면 다른 이는 보이는 만큼 안다고 대응하고, 객관적인 유머에는 주관적인 유머로 대응하기도 한다. 한사람이 편지 속 글자의 의미를 파악하면 다른이는 화가에게 편지를 쓰기도 하면서 서로 소통하고 시적 운율을 공유한다. 이 두사람이 주고 받는 글을 읽다보면 왠지 예술을 감상하는 기분이 든다.

2. 현상을 관찰하고 사색하는 마음

결> 유] "이 질서정연한 생명의 흐름들이 오랜 세월을 거쳐 가시화한 자국이 곧 '결'이 아닐까?

김] "칸딘스키는 음악을 '보여'주려 했다. 음악은 결맞은 파동이다. 결맞은 파동은 양자역학이 가지는 기이함의 근원이다. 양자역학에서는 파동을 '보면' 결이 어긋난다. 이렇게 음악은 추상이 되었다"

자연스러움> 유] "'자연스러움'이란 '자연 그대로의 상태'라기보다는 인간이 받아들이는 관념이다"

김] "물리학자의 시각에서 존재하는 모든 것은 자연스럽다. 자연법칙에 어긋나는 것은 아예 존재조차 할 수 없으니까"

죽음> 유] "종교를 가진다는 것은 인류의 과학과 지성으로도 다 설명하지 못하는 현상들이 우주와 자연에 잔존함을 기꺼이 인정하는 겸양의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종교를 갖지 않은 나는 그 위로를 예술에서 받는다."

김] " 생명이 흔치 않은 것이라면 죽음은 자연스러운 상태에서 생명이라는 특수한 상태로 잠시 가서 머무는 것뿐이다"

감각> 유] "재료'머티리얼'의 어원은 모든 것을 낳는 어머니인 라틴어 '마테르mater'에서 왔다. 한편, 다소 이성적이고 기하학적인 형상인 '패턴'의 어원은 아버지인 라틴어 '파테르pater'다. 어머니'재료'와 아버지 '형상'은 우리의 눈에 하나로 섞여 감각되고, 우리의 뇌에 지각되어, 마침내 우리로부터 '감정'이라는 자식을 배태해 낸다.

김] 인간의 감각은 더 정교한 기계의 검증을 받아야 하며, 인간의 의식은 더 정확한 수학의 확인을 받아야 한다. 자연의 진실은 종종 인간의 감각과 의식 그 너머에 있기 때문이다."

보다> 유] "과학과 기술이 망원경과 현미경 등 보이는 스케일을 확대하는 도구를 통해 인간 시력의 한계를 넘어 가시 범위를 확장해 준다면, 그림은 실제 현상을 재배열함으로써 물리적 공간 속 인간 신체의 한계를 넘어 재편된 시공간을 볼 수 있는 능력을 인간에게 부여해 준다"

김] " 현대 물리학은 인간의 감각을 뛰어넘어 보는 것에서 시작했다. 양자역학은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아니, 보기 전에 대상은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주장한다. 보는 것이 대상을 만들어 낸다고 볼 수도 있다"

가치> 유] "예술에는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가치도 있지만, 순수형식주의적이고 작가적인 가치라는 것이 있다"

김] "과학의 눈으로 볼때, 물질로 이루어진 우주에 인간이 말하는 의미나 가치는 없다. 중력에 의한 물체의 낙하 자체는 아름다운 일도 불행한 일도 아니다. 낙하하는 것이 낙엽일때 아름답고, 유리잔일때 불행하다. 가치는 인간이 임의로 부여하는 것이다"

기계에 대응해서 자연과 우주의 섭리에 순응할때 '인간적'이라고 하고, 동물에 대응해서 자연과 본능에 저항하는 문명적 의지를 '인간답다'고 한다. '인간적'과 '인간답다'가 이렇듯 반대에 가깝게 놓이니, 인간의 관념인 '자연스러움'도 반어, 즉 아이러니를 종종 발생시킨다. (p. 118)

미스 반 데어 로에는 '적을수록 낫다 Less is more' 경구로도 유명하다. 바르셀로나 파빌리온 건물 안에서 나는 이 '레스'의 의미를 완전히 새롭게 체득한 것 같았다 그 '레스'는 덜어 내어 부족한 것이 아니라, 고도로 집약되어 최후까지 남은 것이었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이어서 모더니즘이 가치 있다기보다는, 이성과 합리를 '제대로' 가동시킬 때 좋은 모더니즘이 나오는 것이었다. (p. 148)

 

인간적 이라는 말은 얼마나 이중적인가? 덜어내는 것이 아니라 가장 나은 상태로 남겨두는 것의 차이는 또 얼마나 반대적인가? 이처럼 해석의 범위를 넓혀주는 것은 전혀 다른 분야의 관계맺기를 통해 가능해질 것이다. 마치 이 책처럼 과학과 예술의 관게맺기 처럼.

안다는 것은 본 것을 기억하는 것이며,

본다는 것은 기억하지 않고도 아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어둠을 기억하는 것이다.

오르판 파묵의 소설 <내 이름은 빨강>에 나오는 글이다. 오스만투르크제국의 세밀화가들에게 그림이란 본 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규칙대로 그려야 하는 것이다. 규칙을 어기도 새로운 시도를 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했다. (p. 171)

 

<내 이름은 빨강> 분명 읽은 책인데, 저 명 문장이 왜 기억에 남지 않았을까;;; 살인사건의 범인을 쫓느라, 오가는 편지의 주인공을 되뇌이느라, 문장들에 미처 신경쓰지 못하고 읽었었나 보다. 이런...;;;

3. 인간과 공동체의 탐색

두 문명> 김] "그리스 문명의 가장 위대한 유산은 사실 파르테논 신전이 아니라 '개인으로서의 인간'을 발견한 것이다"

유] "한국인인 내게 고대 그리스보다도 더 낯선 사고 체계가 동아시아의 전통 수학 속에 있었다"

언어> 유] "독일어에서는 '책을 읽는 일'과 '포도를 수확하는 일'에 '레젠lesen'이라는 같은 단어를 쓴다. 낯선 언어는 서로 다른 것들 간의 뜻밖의 연결을 만들어 낸다."

김] "언어로 모든 것을 다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은 왜 수학과 예술이 존재하는지 설명해 준다. 우주는 인간의 언어와 이해 방식이 아니라 수학과 물리학의 방식으로 기술된다. 인간이 언어로 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을 예술로 할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꿈> 유] "초현실적인 마음의 공간을 산책하는 칼 나브로의 전시는 어쩌면 폰트가 꾸고 있는 꿈일지 모르겠다"

김] "초현실주의와 양자역학이 같은 시기에 탄생한 것이 우연일까"

이름> 유] "우주와 자연은 인간 신체의 감각과 지각 속에 재편되어 받아들여진다. 다양한 언어를 경험한 정신의 과학적 효용과 묘미도 여기에 있다"

김] "이름이 존재를 보장하지 못한다. 더구나 이름은 자의적이다. 하지만 이름은 존재에 의미를 준다"

평균> 유] "평균을 산출하는 단편적인 잣대로는 규정되기 어려운 잠재적인 재능들을 돌보아야 한다. 교육은, 특히 교양 미술 교육은 그렇게 가야 한다"

김] "평균은 숫자이자 과정이다. 평균이 집단을 대표하지 못하고, 부의 분포가 지나치게 치우치면 그 사회는 불안정해진다"

파르테논 신전은 대리석으로 되어 있다. 그리스인들은 몰랐겠지만, 대리석은 생명의 돌이다. 지구의 지각은 대개 산소와 규소가 결합한 규산염과 알루미늄, 철 같은 금속의 화합물이다. 대리석은 석회암이 변성되어 만들어지는데, 석회암에는 탄소가 들어 있다. 탄소는 지구상 생명체를 이루는 핵심물질이다. 따라서 대리석은 대게 과거 생명체의 일부였을 가능성이 높다. 물질의 근원인 원자를 연구하는 나 같은 물리학자는 대리석에서 생명을 느낀다. (p. 198)

서구의 알파벳들이 1차원 선 위에 가지런히 놓이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면, 동아시아 글자들은 한자든 한글이든 2차원적 면적을 한 칸씩 채워 갔다. 한자는 그리스 언어와 달리, 글자의 뜻을 정확히 인식하는 문자학이 문법보다 발달했다. 유럽 언어들에서 알파벳 철자들이 단어로 응집되어 의미를 형성했다면, 동아시아 언어들에서는 하나의 소리 덩어리가 하나의 의미 단위를 이루며 인식되었다. (p. 207)

 

이 책의 글은 딱 두 곳 빼놓고 항상 유지원 교수의 글이 먼저 시작되고 김상욱 교수의 글로 마무리되는데, 그 두 곳 중 한곳이 '두 문명' 에서 였다. 티비 방송에서 김상욱 교수가 그리스 여행갔을때를 잠깐 본적 있는데 그 천진한 웃음이 갑자기 생각이 난다. 파르테논 신전에서 생명을 느꼈기 때문이었을까? ㅎㅎ

두 문명의 차이를 글자로 분석해보는 부분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글자 뿐만 아니라 소리도 시간도 글자처럼 1차원과 2차원으로 달랐다. 이것이 동서양의 사고방식에도 분명 영향을 주었을텐데...

4. 수학적 사고의 구조

점> 유] "필기도구의 단면이 찍은 작은 점들과 그 단면이 그은 작은 선들이 조합되면서 서로를 낳고 조화를 이루며 한 벌의 글자 공동체를 이룬다"

김] "쇠라의 그림을 돋보기로 보면 무심한 점들의 집단을 볼 수 있다. 그의 그림에서 따뜻함을 느끼려면 거리를 두고 보아야 한다. 이렇게 따뜻함은 적절한 거리에서 생겨난다"

구> 유] "구를 분할하고 조립하는 과정에서 확인하는 것은 끊임없는 직각으로부터 문제해결의 돌파구를 찾으며 안도하는 마음, 직각의 정적인 안정감과 구의 동적인 율동감 사이에서 균형의 기쁨을 찾는 우리의 마음이었다"

김] "인간이 사는 세상은 구형의 원자가 모여 삼라만상을 이룬다. 입체파 화가들이 깨달았듯이, 그 모든 것들은 구의 정신을 오롯이 품고 있다"

스케일> 유] "우리가 매몰된 한계 많은 신체와 지각만이 유일한 척도라는 독단을 벗어나는 것은, 지구와 우주의 한 생명 구성원으로서 우리 인간 종의 도리다"

김] "원래 작아서 작은 것과 멀리서 보아 작은 것은 같지 않다."

자코메티의 작은 조각상은 디테일이 없다. 너무 작아서 디테일을 넣을 공간 자체가 없다. 나중에 자코메티는 작은 조각상의 거대한 버전도 제작한다. 애초 크기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서인지, 작은 조각상을 그냥 확대한 형태로 만든다. 놀랍게도 이 인물상은 고독한 인간의 내면을 보여 준다. 작은 조각에서 손발의 구체적 위치등은 중요하지 않다. 작은 것을 그대로 확대하니 없던 느낌이 탄생한 것이다. (p. 312)

국내에서 자코메티 전시가 열렸을때 나는 가보지 못했다. 그런데 다녀온 지인이 생각보다 조각이 작더라 하는 말을 했었다. 자코메티의 조각은 큰것에서 작은것이 아닌 작은것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 의미있게 다가왔다. 다시 전시회가 열리면 그땐 놓치지 말고 다녀와야 겠다.

5. 물질의 세계와 창작

검정> 유] "같은 색도 사람마다 미묘하게 다르게 받아들이고 판단한다. 심지어 색들은 빛의 파장만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인간 감정과도 반응한다"

김] "검정은 끊임없이 흑체복사를 한다. 다만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 인생이 어두운 것만은 아니듯, 검정도 검지만은 않다"

소리> 유] "우주에 완전한 침묵이란 없다. 모든 것은 노래한다. 전자도, 원자도, 세포도, 생명도, 뇌도, 동물도, 건물도 노래한다. 우주 전체가 노래한다"

김] "물속에 들어가면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다. 사람의 귀는 공기 중에서 진행하는 소리를 감지하도록 설계되었다. 소리가 나는 대로 들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재료> 유] "색채의 재료 속 다양한 성분들은 색이 바닥재 위에 꼭 붙어서 오래오래 변치 않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버티도록 돕는다"

김] "원자 수준에서 보면 석회석, 달걀, 식물성 기름, 석탄, 인간, 흙, 태양은 서로 다르지 않다. 아니, 눈에 보이는 세상의 모든 다양한 것들은 서로 크게 다르지 않다. 모든 것은 원자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도구> 유] "우리는 도구를 기술적인 보조물 정도로 여기기 쉽다. 그러나 도구는 세상의 틀을 다시 짜고, 세상과 관계를 맺는 우리 자신을 변형시키기도 한다"

김] "과학에서의 혁명도 종종 도구와 관련된다. 하지만 과학에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도구의 혁명이 중요할 때가 있다"

인공지능> 유] "기계는 인간 몸의 고유한 가능성을 우리가 의식조차 못하도록 박탈해 갈 수 있다. 어쩌면 이를 예민하게 감지해서 우리 신체의 건강한 균형과 행복을 보존해 재는 것이 인간 예술가들의 한 역할이 될 수도 있을 터다"

김] "결국 인공지능이 그린 그림이 예술품이냐는 질문은 논리나 예술이 아니라 정치적인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상전이> 유] "온도가 달라지면 열의 양만 차이 나는 것이 아니다. 온도는 속도와 관계가 있다."

김] "흥미롭게도 현대미술의 상전이가 일어나던 시기에 물리학에서도 상전이가 일어나고 있었다. 몬드리안의 혁명이 완성되던 때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은 시공간에 생명을 부여했다"

복잡함> 김] "사실 질서와 완전한 무질서는 완벽하게 정의될 수 있다는 점에서 비슷한 구석이 있다. 복잡함은 질서와 무질서 사이의 어딘가에 있다"

유] "우리가 진정 배워야 할 교훈은 그 시대의 기술에 적극 대처해 이전에는 가 보지 않은 아름다움에 도달한 자세다"

한 언어가 담을 수 있는 양상은 제한적이기에, 다른 다양한 각도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있다 그래서 아직 언어를 습득하기 전의 아기들은 오히려 주위의 현상에 대해 주의력과 포용력이 높고 호기심이 열려 있다. 그런데 이후에는 모국어가 포착하는 현상에만 관심을 집중하게 된다. 언어는 생각을 특정한 방향으로 몰고 간다. (p. 369)

소통하기 위해 언어를 만들어낸 인간은 언어를 벗어나는 것은 이해하지 못하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다는 생각이 든다. 언어는 사고방식을 만든다.

고고학적 연구에 따르면 구석기인에게 이런 그림은 여가활동의 결과가 아니었던 것 같다. 벽화가 그려진 동굴은 주거공간이 아니라 신성한 장소였으며, 동물 그림은 주술적 의식의 결과물이거나 종교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구석기인은 자신과 동물의 영적 교감을 중시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아마도 자신을 자연과 완전히 분리된 존재로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인것 같다. 많은 문화권에서 동물과 인간이 결합된 신화가 존재하는 이유다. (p. 379)

구석기시대 동굴벽화가 심심해서 시작됐다는 주장을 하던 책이 생각나서 또다시 실소가 나온다. 아... 그 책 생각하기 싫은데...;;;

E.H.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는 이런 문장으로 시작된다. "미술art'이라는 것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미술가들이 있을 뿐이다"

어떤 결과물이 미술품인지 판단하는 근거는 결과물이 아니라 그 결과물을 만든 주체에 있다는 것이다. 미술가는 반드시 인간이어야 할까? (p. 394)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 를 언젠가는 꼭 읽어보리라 생각하고 있긴 한데 그 어마무시한 두께에 아직 시작을 못하고 있다. 보통 첫 문장은 소설에서 의미있게 뽑혀져 나오곤 하는데, 미술사 책의 첫 문장이 저렇게 멋있다니... 흠... 정말 언젠가는 꼭 읽어봐야지;;;

이 책은 에세이다. 심지어 저자가 두 명이고 심지어 매 글마다 주제도 달라진다. 도저히 짧게 정리할 수 없는 책이었다. 하지만 경이로웠다. 과학자가 예술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가 과학에서 예술적 영감을 얻는 것이 아니라, 과학자가 예술을 느끼고 예술가가 과학을 생각하는 글을 읽다보면 그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이토록 감각적인 에세이는 정말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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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절과 기분
김봉곤 지음 / 창비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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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단편소설 한 작품이 수록된 가제본을 받았다.

40여페이지의 짧은 단편이었는데... 이 얇고 가벼운 책이 주는 무게감이 남달랐다.

뭐라고 해야할까... 적절한 표현이 도저히 떠오르질 않는데... 아릿하면서 미묘하고 섬세하면서 슬프기도 한... 여하튼, 몇페이지 만으로도 눈길을 사로잡는 개성적인 문체를 가진 작가로 다가왔다.

나는 이날이 생각보다 늦게 찾아온 것에 잠시 놀랐을 뿐 얼어붙는다거나 주저앉지는 않았다. 나, 이제 그 정도 맷집은 있다고. (p. 5)

작가로 등단하여 첫 소설집이 나온 '나' 에게 구여친 혜인이 축하의 문자를 보내온다.

등단 소감에도 소설에도 잡문에도, 제발 좀 알아달라고 봐달라고 온갖 떼를 다 써놨는데 모를 수가. 그건 때론 대수였고 대체로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그럼에도 혜인에게만큼은 꼭 내 입으로 직접 말하고 싶었다. 알아도 상관없고 몰라도 상관없는 사람 천지였지만, 혜인에게는 꼭 그렇게 하고 싶었다. (p. 7)

'나'는 전화를 걸어 오랜만에 혜인과 만나기로 한다.

오랜 친구와의 만남은 이토록 허무하고, 쉽고, 단박에 잡혔다. 안부도 기별도 없이 용건만 말하고 끊었지만 그게 부족했다거나 미안하지 않았다는 점마저 익숙했다. (p. 8)

작가가 표현하는, 일상에서 흔하게 일어남직한 상황에 대한 문장들이 참 좋았다.

서로에 대해 잘 안다는 것, 그건 때때로 끔찍했지만 끔찍함마저 포함한 그 사실이 나는 소중했다. (p. 11)

사랑하는 사이라서 함께하는 사이라서, 그렇게 서로 너무나 잘 안다고 생각하는 사이라서 느껴지는 그 감정을 이렇게 써낼 수 도 있구나...

그녀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엄습하는 감정은 부끄러움이었다. (p. 15)

그 시절의 사람들이 지금의 나를 모르고 관심도 없다는 사실은 내 용기이기도 했다. (p. 16)

 

그 시절의 사람들은 때론 인위적으로 때론 자연적으로 멀어졌다. 혜인도 그 시절의 사람이었다. 하지만 혜인에게만큼은 다르고 싶은 '나'

반가운 마음이 가장 먼저였지만 그애가 걸어온다는, 별것 아닌 사실에, 머릿속 문장에, 나는 살짝 울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p. 24)

오랜만에 연락해도 농담할 수 있는 사이, 갑자기 만나잔 약속을 잡아도 반가운 사이, 그렇게 만났을때의 기분은 어떻게 인사를 나눌지 어떤 말을 먼저 건넬지 당황스럽다 못해 울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이지만, 막상 코앞에서 얼굴을 마주하고 아무렇지 않게 인사하는 순간 그 기분은 눈 녹듯 사라진다. '그래 이거였지!' 하면서.

그때 -그곳이 지금- 이곳과 너무 비슷하거나 달라졌을 때, 내 속에서 무언가가 솟아나곤 했으나 이제 원기억 마저 희미해진 이곳에는 겹쳐지는 것도 길어낼 것도 그 어떤 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나도 이제 그때,가 떠오르지 않는 나이가 되었구나, 조금 소침해졌다. (p. 33)

이 기분 알 것 같았다.

스무살 신입생때 학교를 누비며 만나던 시간들, 그리고 서른이 훌쩍 넘어 각자의 자리에서 더이상 추억을 회상할 일도 없이 살다가,

그때 그곳에서 다시 만났지만 지금 이곳은 그때 그곳이 아니라는 현실감...

"니는 니가 기다리는 것만 기다릴 줄 알잖아"

선문답 같은 말이었지만, 어쩌면 어디서 주워들은 말을 내게 그냥 던지는 건지도 몰랐지만, 어째서인지 나는 혜인의 그 말에 어딘가 꿰뚫린 기분이었다. (p. 35)

 

그간의 묵힌 감정들을 가벼운 대화로 털어버리는 사이 나온 말, 선문답 같은 이 말이 '나'를 꿰뚫은 이유.. 그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중요한 말을 하러 부산에 내려왔지만 결국 그 말을 하지 못하는 '나'에게 선문답처럼 던진 혜인의 말은 아마도 사는 동안 가끔 '나'에게 문득문득 생각날 것 같다...

듣기 싫은 소리를 듣기 싫었고, 껄끄러워지고 싶지 않았고, 화내고 싶지 않았기에 나는 내가 없어지는 쪽을 택했다. 내가 선명해지는 동시에 내가 사라지는 기분은 아주 근사했다. (p. 39)

'나' 가 전해주는 기분들은 때로는 추억처럼 때로는 후회처럼 때로는 결심처럼 때로는 안도처럼 왠지 공감이 갔다. 묘하게...

슬픈 것과 사랑하는 것을 착각하지 말라고, 슬픈 것과 사랑하지 않는 것을 착각하지 말라고 생각했고, 아무여도 아무래도 좋을 일이라고도 잠시 생각했다. (p. 45)

결국 하고자 했던 말은 하지 못한채 돌아오는 기차안에서 하는 '나'의 생각이, 혜인은 특정한 대상이 아니라 '나'의 정체성이 자리잡지 못했던 그 시절 불특정 다수를 지칭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하기도 했다.

뛰는 심장의 무늬를 구별하고 싶지 않았다. 어떤 답을 찾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열차가 멈추기 전까지 이 진동이, 흔들림이 계속되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p. 46)

'시절과 기분'에서 '나'와 해준은 게이커플이다.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기 전에 만났던 혜인 이라는 인물을 통해 느끼게 되는 '나'의 시절과 기분은 이미 과거다. 중요한 것은 누구나 똑같이 심장이 뛴다는 것이고, 지금 뛰고 있는 심장에 솔직하게 사는 것이다.

김봉곤 이라는 작가이름을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여기저기서 인정받고 있는 떠오르는 젊은 작가였다. 데뷔와 동시에 커밍아웃한 게이 소설가 1호로 불리는 작가, 솔직하게 퀴어소설을 쓰고 있는 작가였다.

그리고 작가의 새로운 작품이 발표되면 궁금해질 이름으로 내게 남게 되었다. 이 작품이 포함된 소설집 '시절과 기분' 이 나오면 한권의 책으로 다시 한번 읽어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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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월
존 란체스터 지음, 서현정 옮김 / 서울문화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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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1984>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다'- 데일리 익스프레스

띠지 中

 

 

2019 부커상 후보작에 오르면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는 이 소설의 작가는 영국의 언론인이자 저술가라고 한다. 소설 뿐만 아니라 회고록, 논픽션, 칼럼등 다양한 매체에 다양한 형식의 글을 발표하는 이력으로 보아 필력이 남다를 것 같기도 하다.(부커상은 맨부커상과 다른듯... 영국 부커사가 제정했던 부커상은 맨그룹이 스폰서로 함께 하면서 맨부커상이 되었다. 부커상이라고 부커사에서 별도로 또 상을 주는 건가...;;;)

벽-상대-바다 의 3부로 구성된 소설을 읽다보면 처음엔 군복무중인 병사의 병영일지를 읽는 것 같고 중간엔 휴전선을 사이에 둔 교전경험기를 읽는 것 같고 마지막엔 망망대해 위에서의 생존기를 읽는 것 같다. 쭈욱 1인칭 독백처럼 읽히는 소설이다 보니 더 그런 느낌이 드는 것 같기도 하다.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과 정치적 분열 증가로 황폐화된 미래 세계, 섬나라 영국의 모든 해안선을 둘러싸는 거대한 콘크리트 벽이 세워진다. 이 벽을 통해 안에 사는 사람들은 바깥에 존재하는 '상대'의 침입을 원천봉쇄하고자 한다. 그 방법으로 벽 에 항상 경계병 들을 상주시킨다. 주인공 카바나는 2년의 의무적인 군복무를 시작하면서 경계병으로 벽 에서 지내게 된다.

하루하루 별 변화가 없다. 어제도 오늘도 별다를 게 없다. 이야기할 만한 것도 별로 없다. 항상 전투가 벌어질 가능성, 즉 갑자기 엄청난 재앙이 닥칠 위험성에 노출되어 있긴 하지만 가능성과 현실 사이의 거리는 멀다. 그런 일이 벌어지는 날은 거의 없다. 전형적인 하루란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어제 같다는 것이다. 하루가 시간의 단위라기보다는 물리적 성분처럼 느껴진다. 형체가 있는 사물 같은 시간. 내 인생과 주위 다른 사람들의 인생에서 벽이 지배적인 존재이고, 내가 짊어진 책임과 하루와 생각이 모두 벽과 관련된 것이며, 나의 미래가 벽에서 벌어지는 일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p. 17)

벽에서 시작해서 벽에서 끝마쳐질 생활은 여하튼 군생활이기 때문에 군대에 다녀온 사람이 이 소설을 읽는다면 굉장히 공감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군대에 다녀오지 않았더라도 여전히 분단국으로서 휴전중인 상태의 한국 사람이라면 정전이 아닌 휴전이라는 위험요소가 일상이 되고 얼마나 무료해질 수 있는지 알기 때문에 의무복무가 없는 나라 사람들이 읽는 것보다는 공감도가 높을 것 같기도 하다.

어떤 기후변화로 해수면이 상승했는지, 어떤 정치적 분쟁으로 '대격변' 이라는 사건이 일어나서 벽을 세우게 된건지, 그 벽이 세계에서 어느 나라들에 세워진건지 자세한 배경은 나오지 않는다. 그저 이미 그렇게 된 상황에서 소설은 이야기한다. 드론과 로봇이 일상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이 사회에서 임신이라는 말 대신 '번식' 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번식을 원치 않는 사람을 선택자라 부른다. 그리고 '상대'가 벽을 넘어올 때마다 경계병도 한 명씩 바다로 추방된다. 경계병이 휴전선에서 근무중인 우리 군인들보다 더 살벌한 조건인 셈이다.

우리는 모두 부모님과 말이 안 통한다. 여기서 '우리'라는 것은 우리 세대, 그러니까 대격변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을 말한다. 연인과 결별할 때 하는 말이 '너 때문이 아니라 나 때문이야'라고 하던가? 그때와 이때는 정반대가 된다. 우리 때문이 아니라 부모 때문이다. 무엇이 문제인지는 모두가 다 안다. 진단 내리는 건 어렵지 않다. 심지어 그 진단은 논란거리조차 못 된다. 그건 죄책감, 집단 죄책감, 세대 간 죄책감이다. 기성세대는 이 세상을 돌이킬 수 없게 엉망으로 만들어 놓고는 그런 세상에 우리를 태어나게 했다고 느끼는 거다. 아는가? 그건 사실이다. 그게 바로 기성세대가 한 짓이다. 그걸 그 세대도 알고, 우리 세대도 안다. 모두가 다 안다. 설상가상이라더니 그때는 벽이 없었던 탓에, 대격변 발발 전이라 벽이 필요치 않았던 탓에 기성세대에게는 벽 복무가 없었다. 이게 무슨 말인고 하면, 우리 세대의 삶을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단 하나의 경험을 기성세대는 짐작조차 못 한다는 말이다. (p. 63)

세대차이는 시대를 막론하고 늘 존재해 왔다. 이집트 피라미드에도 상형문자로 세대차이에 대한 불만이 적혀 있다지 않은가. 하지만 소설 속에서의 세대차이는 좀 반대적이다. 앞세대가 '나때는 말이야~'하면서 자신들보다 못하고 있는것으로 보이는 뒷세대를 훈계하려드는 것이 아니라 앞세대가 저질러 놓은 것을 뒷세대가 책임지느라 벌어진 간극이다. 그래서인지 젊은이들은 대부분 선택자들이다. 즉, 번식을 원하지 않는다.

종종 사람들 말로는, 부자들이 ID칩을 조작해서 당사자 대신 도우미를 벽으로 보낸다고 한다. 건강이나 학업을 핑계로 벽 복무를 면제받는다는 소문도 나돌았다. 벽에 안 갔다고 시인하는 사람은 아마두 없었지만, 돈있고 빽있는 사람은 벽에 안 간다는 의심은 누구나 가지고 있었다. (p. 126)

굉장히 익숙한 상황 아닌가? ㅎㅎ 개인별 ID칩을 몸에 심고 법으로 금지되기전 넘어온 '상대'들을 도우미로 노예처럼 부리는 이 미래 사회에서도 가진 것 많은 사람들의 선택이란...

"벽은 이제 지긋지긋해"

"나도"

"만약 우리가 벽에 있는데 공격이 계속되고, 이번 같은 공격을 받는다면 우린 결국 죽을 거야"

"너, 나하고 같이 번식자 할래?" (p. 154)

 

춥고 지루하기만 했던 경계병으로서의 임무에 지칠즈음 혹독한 근무에 비하면 휴식처럼 느껴지는 훈련을 함께 하면서 부대원들과 끈끈한 전우애를 쌓게된 카바나는 같은 조원인 히파에게 언제부턴가 눈길이 자꾸 가곤 했다.(경계병들의 부대는 성비를 5:5로 맞춰 편성한다. 카바나는 남성, 히파는 여성이다.) 그러다 갑작스런 '상대'들의 공격을 받고 전우 몇명을 잃고서야 겨우 막아낸 후에 히파는 카바나에게 번식자가 되자고 제안한다.

내 생각을 말한다면 나는 특별히 궁금하지 않았다. 벽에서 논리를 찾으면 과정이 공정할 거라고 기대하게 되고, 공정할 거라고 기대하면 미쳐 버릴 거다. 어쨌든 이게 내 생각이다. (p. 159)

군대 생활이란 정말 극한의 경험인 것인가...

손가락 하나만 까딱하면 달려오는 사람이 간단히 주어진다는 건, 사실상 개인 자신이 된다는 건.... 물론 엄밀히 따지면 국가의 자산이고, 온갖 종류의 감시 장치와 안전 보장 장치가 있으며, 무지몽매한 과거의 제도와 완전히 다르다 하고, 불쌍한 자들한테 복지 혜택과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는 제도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건 아냐. 난 믿지 못하겠다. 이건 퇴화, 우리 인간성의 상실이야. 도덕규범의 추락이라고 할 수 있지. (p. 168)

기술이 발전하고 드론과 로봇이 있지만 사람만한 기술력을 가진 기계는 아직 없는 시대, 적으로 간주되던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방법은 '도우미' 로 그들을 부려먹는 것 뿐이다. 나쁜 과거로 회귀되는 미래... 이 소설은 여러모로 디스토피아적이다.

우리는 잠시 선 채로 섬을 바라보았다. 나는 예전에 이 섬이 어떤 모습이었을지 상상해 보았다. 해변이 있었고, 완만한 둔덕이 있었고, 아마 물가엔 집도 몇 채 있었겠지. 발밑에 있는 저 해저는 맨땅이었을 거다. 이제는 모두 물속에 잠겼다. 물에 잠긴 세상이 되어 버렸다. (p. 233)

경계병으로 벽 에서 처음 생활할때는 벽 이 끝인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차라이 벽 에 있을때는 살만했던 것이었다. 카바나와 히파의 상황은 점점 더 나빠진다. 가도 가도 새로운 끝이 등장했다. 그리고 그 끝은 점점 더 벽 을 그리워하게 만들었다. 돌아갈 수 없는 그 벽.

나는 이런 게 바로 이야기라고, 모든 게 다 잘되는 것이야말로 이야기라고 말했따. 그러나 이건 그녀가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가 아니란 걸 알았따. 이건 또 다른 이야기, 누군가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지만, 나는 머릿속이 텅 비어서 지금 히파는 내가 해 주는 이야기가 듣고 싶은 것뿐이라고, 모든 게 다 잘된다는 이야기가 듣고 싶은 거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나는 이게 바로 이야기라고, 모든 게 다 잘될 거라고 혼자서 몇 번이고 중얼거렸다. 그러고 나서 문득 떠올렸다. 그리고 나는 큰 소리로 이야기의 운을 떼었다. "벽 위는 춥지" (p. 309)

망가진 세상에서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고 느꼈을 때, 그 앞에 닥친 현실은 더 망가진 세상이 보이고 더 잃을 것이 있었구나라는 깨달음이었다. 알면서도 뒤돌아가는 길은 없었고 그저 앞으로만 계속 앞으로만 갈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자꾸 더더더 잃어버리다가 그럼에도 남는 것은 무엇일까? 누구를 위해서 무엇을 지켜야 하는 것일까...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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