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나를 위로하는 중입니다 - 상처를 치유하고 무너진 감정을 회복하는 심리학 수업
쉬하오이 지음, 최인애 옮김, 김은지 감수 / 마음책방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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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서가 심리서가 참 많이 나오는 세상이다.

끊임없이 나오는 그런 책들이 끊임없이 많은 이에게 읽혀지는 것은 끊임없이 위로가 필요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예전에는 그저 마음을 진정시키고 주의를 환기시키며 힘내라고 응원해주는 책들이 많았다면 언제부턴가는 그냥 이대로도 괜찮다고 굳이 힘내서 또다시 하지 않아도 된다고 안아주는 책들이 많아진 것 같다. 그렇게 오롯이 자기자신에게 집중하도록... 그럴 때 필요한 문장,

"지금 나를 위로하는 중입니다"

 

기억도 추억도 가물해지더라도 머릿속에선 지워졌더라도 마음속에는 남아있는 그런 것들이 있다. 그것이 상처일 경우에는 더욱 진하게 각인되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런 감정들이 계속 나를 찌르고 기생하도록 그렇게 내가 숙주가 되어 말라비틀어질때까지 나를 내버려 둘수는 없는거 아닌가

 

내가 뭐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라고 나아닌 다른 존재 먼저 생각해주느라 숙주로 살아야 겠는가. 누구나 자기 인생밖에 감당하지 못한다지 않는가. 아니, 자기 인생 하나 오롯이 감당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러니 일단 나와 화해해야 한다. 누구를 용서하고말고를 떠나 일단 나에게는 스스로 손내밀어줘야 한다.

 

나를 어떤 모습으로라도 온전히 받아줄 수 있는 것은 결국 나 뿐이다.

 

그러니 소확행이 되었건 나를위한선물이 되었건 때로는 내가 나를 위로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옮긴이의 글이 이 책에 대한 내 마음과 닮아서 뭘 더 덧붙일 필요가 없어졌다.

각 에피소드마다 정리된 '효과' 들은 감정을 객관적으로 보는데 도움을 주기도 하고 심리적 상식으로 알아두어도 좋을 내용들이다.

매 장마다 가려뽑은 문장들이 인상적이었고, 정리된 단락들이 읽으면서 정리하게 해주어서 편했다. 가끔 등장하는 그림들도 긴문장과는 또다른 느낌으로 시선을 끌었다.

이 책은 실제사례와 저자의 따듯한 마음이 함께 하면서 공감과 위안을 주는 책이다. 가족이건 연인이건 친구건 지인이건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늘 다양한 감정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그러한 감정이 버거울때, 그렇게 때로는 필요한 위로를 담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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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와 초승달, 천년의 공존 - 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의 극적인 초기 교류사
리처드 플레처 지음, 박흥식 외 옮김 / 21세기북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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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의 극적인 초기 교류사

전쟁, 외교, 순례, 기술, 사상, 예술… 중세의 질서를 만든 두 세계가 있었다!

그들은 왜 끝끝내 서로를 이해하는 데 실패했는가

표지 中

 

 

저자는 중세사를 연구한 저명한 학자로 이 책이 나온 것은 2003년 이나 역자가 유학중 서점에서 발견했던 것이 인연이 되어 이제야 국내번역본이 나오게 되었다. 이제야 라고 표현했지만 여전히 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내용이었다.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여전히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듯 보이므로. (다행히 저자는 중립적인 태도를 견지하며 서술하고 있어서 종교와 관련없이 역사서로 읽기에 충분했다)

스티븐이 말했다. '역사는 제가 거기서 깨어나려고 몸부림치는 일종의 악몽입니다' (…) 만일 저 악몽이 당신에게 뒷발질을 하면 어떻게 될까요.

-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스] 2장 네스토르 중에서

 

로 시작하는 책의 첫페이지에서부터 확 끌렸다. 이 책의 내용과 관계없이 [율리시스]를 꼭 읽어야 겠구나 다시한번 다짐하게 하는 문장으로 다가왔다^^;;;

이슬람은 단일한 경전을 믿는 종교다. 그와 대조적으로 그리스도교는 여러 경전을 묶은 [성서]를 신앙의 근거로 삼는다. 이 같은 단일 경전과 복수 경전의 신앙 사이의 차이는 세계사에서 광범위한 영향을 미쳐왔다. 이슬람의 경전 [꾸란]은 하느님이 예언자 무함마드에게 계시한 내용이다. 이 책은 무함마드가 사망한 서기 632년 이래 약20년에 걸쳐 정통 이슬람 전통에 따라 편집되어 최종본이 확정되었다. 그리스도교 경전들은 [성서]라 불리던 한 권의 책 속에 함께 묶인 채 발견되었다. [성서]를 지칭하는 영어 단어 '바이블bible'이 서고 書賈'라는 뜻의 라틴어 '비블리오테카bibliotheca'에서 기원했다는 데서 그 성격을 명확히 할 수 있다. (p. 17)

그리스도교 경전들, 특히 예수와 그의 초기 추종자들의 가르침을 담은 서신들과 이야기들의 이 같은 다양성과 차이는 아주 초창기부터 그리스도교 역사에 토론, 논쟁, 의견 차이가 발생하는 요인을 제공했다. 어떤 관점에서 보면 그리스도교의 역사란 서로 다른 조류들과 분파들이 배태되고 시끌벅적한 논쟁과 규탄, 속임수가 난무하는 가운데 작은 파벌로 나눠졌다가 다시 재편되곤 하는 과정이었다. (p. 18)

한편 이슬람 체제에서는 이 같은 교리 논쟁이 가능하지 않다. [꾸란]이 간직하고 있는 엄격한 신학 교리들은 애매하거나 난해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이슬람은 그와 성격이 다른 싸움을 전개했다. 예언자가 사망한 후 채 한 세대도 지나지 않아 이슬람 공동체 내에서 권위의 원천이 누구인가 하는 문제를 두고 다툼이 생겼다. 결국 공동체는 순니파와 쉬아파로 갈라져 다시는 화해하지 못했다. (p. 19)

이슬람과 그리스도교 사이의 이 같은 근본적인 차이들은 상호간 너그러운 이해와 화합에 도움이 되는 대화를 어렵게 만들었다. 이슬람의 준엄한 일신교는 그리스도교의 삼위일체와 성육신 교리를 이해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불쾌해한다. 그리스도교 종파들은 전통적으로 무슬림 관찰자들에게 비웃음거리였다. 그리스도교 세계 내의 교회화 국가(혹은 사회) 사이에 긴장이 존재했다면, 이슬람하에서는 그럴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은 권위와 신자 공동체의 조직 즉 정치에 대한 완전히 다른 사고방식으로 이끌었다 (p. 21)

 

본문을 시작하는 첫문장부터 단도직입적이다. 1부의 첫 장 제목이 [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의 차이] 다. 그리고 5페이지로 간략하고 명쾌하게 차이를 정리해 낸다. 이렇게 다르니 서로를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게 당연한거 아닌가 싶을 정도다.

두 종교는 같은 하느님을 모신다.(유대교는 논외로 두고) 그리스도교는 예수탄생을 기점으로 다양한 종파의 난립 속에 합의의 종교를 만들어 왔다. 하나의 신에서 삼위일체라는 세부분의 신성을 함께 존중한다. 이슬람교는 일신교이다. 무함마드는 신이 아니라 신의 말씀을 전해준 예언자였을 뿐 신으로 받들어지진 않았다. 하나의 신성은 나누어질 수 없다. 유대교가 유일신앙으로서 그리스도교와 합쳐질 수 없었듯이 이슬람교도 마찬가지였던 셈이다. 시작부터 근본부터 완전히 달랐다. 같은 인간인데 남과 여가 천지 차이이듯이 이 두 종교도 같은 신을 숭배하지만 전혀 다르다고나 할까.

아랍의 무슬림 군대는 비잔티움과 페르시아 사이의 오랜 갈등으로 인해 극심한 파괴를 경험했던 시리아와 팔레스티나의 지방 주민들에게 가산족의 계승자로 간주되었다. 가산족은 황제와의 조약에 의해 그들의 보호자가 되었기 때문에 타협하는 데 신중했었다. 한편 박해받던 시리아와 이집트의 단성론 그리스도인에게는 무슬림이 해방자로 생각되었다. 이는 박해받던 에스파냐의 유대인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p. 37)

페르시아로 대표되던 아랍지역과 로마제국이 무너지고 난 후의 비잔티움과의 경계지역에서 완충지 역할을 했던 가산족에게 비잔티움은 언제부턴가 소홀해지기 시작했고 때마침 정복해들어온 무슬림 군대는 이전의 지배세력들보다 오히려 더 포용적이고 더 우호적이었다. 기꺼이 그들을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이단으로 박해받던 단성론 그리스도교인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리스도교는 끊임없는 종파싸움이 있어왔다. 세력을 잡은 자들에게 내쳐져 이단종파로 판정받은 그리스도교인들의 수는 생각보다 상당히 많았다. 역사적으로 이슬람의 급속한 성장에 있어 이단종파들의 포용과 이후 그들이 이슬람화 되는 것이 큰 영향을 끼쳤을 거라는 생각을 처음 깨달았다. 초기 기독교 세력이 우세했던 북아프리가 지역이 지금은 다 이슬람교를 믿게 됐다는 것이 새삼 의미있게 다가왔다.

당대인은 엄밀한 의미에서 이슬람이 '하나의 새로운 종교'일 수 있다는 관념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으며, 당연히 수용할 수도 없었다. (p. 40)

무함마드와 그의 분파는 단성론자나 그 외 다른 사람들처럼 결정적인 교리 문제에서 길을 잃은 종교적 이탈자의 또 다른 물결이라고 그럴듯하게 설명되었다. (p. 41)

 

당시 기독교인들은 본인들의 종교가 유일신 종교인 유대교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잊고 이단으로 여겼듯이 같은 신에서 출발한 이슬람교도 그저 이단종파의 하나일 뿐이라고 여겼다. 그들의 종교적 요소들은 자신들과 너무나 비슷했다. 그래서 더욱 이단이었다. 이단은 처단의 대상일뿐 존중할 가치가 없는 세력이었다.

무슬림 정복자들은 그들이 발견한 이같은 체제를 바꾸려 하지 않았다. 달리 대안이 없었다. 그들에게는 인력도 기술도 충분하지 않았으며 세금 수입도 필요했다. 그러므로 정복한 지역을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운영하는 것은 당연한 처사였다. 단지 지배자만 바뀌었을 뿐이다. (p. 47)

신흥 권력집단인 무슬림 정복자들이 기독교인들의 지역을 정복했을때 그들은 기존의 체제를 그대로 수용하고 관리인원들도 그대로 존속시켰다. 이슬람 지역의 그리스도인들이 정복자들에게 저항할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소외받던 그리스도인들이라면 더욱.

'성서의 백성'은 납세자, 관료, 기술자로서 유용했을 뿐 아니라 긴요했다. 그렇지만 그 정도에서 그쳤으며 그외에 다른 필요를 느끼지는 않았다. 그들은 이미 광대한 문명을 이루고 있기에 탐구가 필요하지 않았다. 반면 그리스도인들은 이슬람에 냉담할 수 없었다. (p. 57)

그리스도인들은 이슬람을 이단이라 생각했으나, 이슬람인들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무관심 했다. 이슬람인들은 자신들의 세계가 더 발달했다고 생각했고 자신들의 종교가 더 완전하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신성을 셋으로 나누냐며 그리스도인들의 종교는 이슬람교에 비해 미개하다고 무시할 뿐 관심을 갖지 않았다. 서로에 대한 동상이몽은 점점 격차가 더 크게 벌어진다.

이슬람 개종자들은 아랍 씨족의 일원, 달리 말하면 한 후견인의 피보호자(아랍어로는 마울라, 복수로는 마왈리)로 받아들여져야만 했다. 마왈리는 공동체의 완전한 구성원 자격을 누릴 수 없었으며 재정적인 측면 등에서 어느 정도 차별을 겪는 2등 시민에 머물렀다. 여기서 시작된 분노와 사회적 긴장은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이들이 압바스 혁명의 가장 강력한 지지 세력이었다. 압바스 왕조의 성립으로 이들 마왈리는 고대하던 것을 얻게 되었다. 사회적 처우의 평등이 인종보다는 종교와 문화에 의해 규정되는 사회, 다시 말해 '아랍'사회가 아닌 진정한 '이슬람' 사회가 선언되었다. (p. 67)

여기서 이 책을 읽으며 처음 느낀 두번째 깨달음을 얻었다. 로마!

이슬람 사회의 발달에서 로마가 보였다. 로마사회에 클리엔테스와 파트리키의 관계가 떠올랐다. 사회가 성장하면서 로마시민의 범위가 넓어졌던 것이 떠올랐다. 로마가 로마시를 넘어 로마제국이 되는 과정이 떠올랐다. 고대그리스부터 아랍지역과는 서로 반목하면서도 사실 끊임없는 교류가 있었다. 로마제국의 영토는 흑해연안까지 확장됐었다. 로마문화가 아랍지역에 생소했을리는 없다. 알렉산더대왕이 퍼뜨린 헬레니즘의 물결을 따라 로마제국의 문화도 어디까지 흘러갔는지는 알수 없는 거 아닐까, 그렇게 아랍지역에도 섞여 있지 않았을까?

중세 초 서양 그리스도교 세계는 압바스 왕조 시기에 부상하던 이슬람 사회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발전했다. 다르 알-이슬람이 정기 교역을 통해 연결된 도시들의 세계였던 반면, 서양은 압도적으로 농업 경제가 지배하는 사회였다. 도시들은 규모가 작고 널리 흩어져 있었다. 교역은 대체로 국지적인 범위로 국한되었으며 그 규모도 미미했다. 상인 역시 사회에서 영향력이 크거나 특별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지 않았다. 통합된 법 체제, 세금 제도, 관료제, 상비군 등 예전 로마제국을 떠받치고 있던 하부 구조를 더는 찾아볼 수 없었다. (p. 90)

더구나 이들의 식자 識字수준도 그리 높지 않았다. 서유럽에서 글을 읽고 쓰는 능력이 이슬람 세계에서만큼 가치 있게 평가되지 않았던 탓이다. 고대 고전의 과학과 철학 지식은 물론이거니와 그것의 매개 수단인 그리스어도 거의 잊혔다. 그것을 대체한 것은 주로 [성서]와 아우구스티누스 같은 라틴 교부들에 기반을 둔 지식문화였다. 이 문화는 본질적으로 과거 지향적이며 철저히 보수적이었다. 그러고 보면 압바스 시대의 무슬림들이 서양 혹은 라틴 그리스도교 세계에 대해 그토록 적은 관심을 보인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들로부터 제공받을 만한 것을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p. 91)

압바스 시대의 이슬람 세계는 여러 방식으로 자기 충족적이었다. (p. 94)

 

고대지식을 받아들이고 해석해서 더 발달시키고 있던 이슬람에게 그리스도교 세계는 오히려 변방이었다. 교류할 매력이 없는.

나도모르게 서양인의 세계사적 관점을 갖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슬람이 유럽을 무시했을 수 있다는 관점을 이 책을 통해 처음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해봄직한 관점이었다.

로마 시대 이래로 서유럽에서 가장 두드러진 도시들의 성장이 루앙, 링컨, 요크, 더블린 등 스칸디나비아 상인들이 자주 드나들고 정착했던 거점들에서 이뤄졌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중동 이슬람의 경제적 견인이 그 같은 간접적인 방식으로 서유럽 시민계층의 성장을 촉진했다. 북유럽과 관련해보자면 피렌 테제는 반박되었다. 지중해가 '이슬람의 호수'가 되었으며, 그리스도인 상인들이 그곳에서 추방되었다는 피렌의 판단은 과장되었다. 앞서 서술한 이슬람 이전의 경제적 혼란은 그 기원이 흑사병에 의한 인구감소에 있었다 (p. 110)

'피렌테제' 라는 말은 몰랐지만 피렌테제의 내용들은 세계사적 책들에서 익숙하게 보아왔던 관점이었다. 그리고 그 익숙한 관점 또한 이 책을 통해 반박의 근거를 얻을 수 있었다.

대외교류를 멈추고 땅을 경작하며 문맹으로 그리스도교에 갇혀있던 유럽의 중심이 아닌 지역에서는 종교성이 약한 정착민이 늘면서 외부와의 교역이 활발했고 그 대상들 중에는 이슬람도 있었으며 그렇게 새로운 도시들이 발전하고 있었다.

유럽의 역사를 기독교암흑천년으로만 봐서는 안될 곳이 있었다는 것도 이 책을 통해 처음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그러한 새로운 도시들이 있었기에 르네상스도 올 수 있었던 것이다.

두 문명의 이질적인 성격을 고려할 때 꽤 의아스러운 점은 양측 모두 상대 문명의 종교에 대한 관심이 결여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단적인 이스마엘의 후손들에게 언짢은 적의를 유지했다. 무슬림드른 그리스도교 세계에서 과학적 지식이나 생필품의 풍부한 원천을 발견했지만, 그 외에는 가치 있는 것을 찾지 못해 무시했다. 그리스도인과 무슬림은 서로 종교적 반감을 지니고 있었지만, 그 상태에서 어울리며 공존했다. 그 같은 상황에서 누군가 종교적 열정을 내세우며 격렬하게 선동한다면 폭력적인 대결로 발전하는 것은 불가피했을 것이다. (p. 113)

두 문명은 서로가 서로를 무시했지만 차단벽을 쌓아 올렸던 것은 아니다. 나름의 영역을 인정하며 교류도 하며 공존했던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한쪽의 세계가 불안정해지면 안정을 찾기 위해 외부에서 폭력성으로 풀어내야 했다. 어느쪽이 먼저였는지를 따질 의미가 없을만큼 서로간에 끊임없는 공방전을 주거니 받거니 했다. 서양사는 그것을 십자군전쟁이라는 종교전쟁으로 포장해왔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었음을 이 책을 통해 다시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알렉시오스 1세가 기대한 것은 비잔티움 장수의 지휘 아래 통제될 수 있을 만큼 규모가 적당하면서, 세밀한 군사 임무에 배치되는 데 필요한 무장과 훈련까지 갖춘 전사 집단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등장한 것은 열성적이기는 하나 훈련이라고는 거의 받지 못한 거대한 오합지졸이었다. 비잔티움 영토를 시끄럽게 가로지르고 시리아와 팔레스타인까지 내달려 1099년 예루살렘을 점령해버린 이 싸움꾼 무리를 보통 '제1차 십자군'이라고 부른다. (p. 132)

중세 그리스도교 세계는 십자군에 엄청난 관심을 기울였고 이를 지속적으로 진지한 관심을 가져 마땅한, 도덕적 무게감과 위엄을 지닌 주제로 여겼다. 그런데 이 점은 중세 이슬람의 경우와 흥미로운 대조를 이룬다. 이슬람권에서는 그리스도교 세계에서 생산된 것과 같은 십자군 원정 관련 사료들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당대의 이슬람 화자들에게 십자군 원정은 이슬람 세계의 주변부를 성가시게 한 소규모 접전에 지나지 않았다. 십자군은 이를테면 한때 왔다가 떠난 이들이었다. (p. 143)

십자군에 대한 무관심은 중세 이슬람 세계가 그리스도교 세계의 문화 전반에 얼마나 무관심했는지를 보여주는 핵심요소이다. (p. 144)

 

중세 하면 십자군 전쟁 아닌가? 그런데 이슬람사에서 십자군은 거의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니... 한마디로 웃기지 않은가? 혼자 북치고 장구친 느낌?!;;;

거대 종교전쟁을 이야기하지만 사실 그전쟁은 이슬람교와 전면전을 치룬적도 없는 자기들만의 리그였다. 그들이 처단하려고 했던 쪽에서는 그들이 그런 원대한 전쟁을 걸어왔다는 것을 무시했을 정도로.

구원자를 자처하던 십자군들이 그들이 도울 대상이었던 동방 그리스도교인들에게 기껏해야 미심쩍은 눈초리만 받게 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서방인들 역시 동방 그리스도교인들을 거만하고 매력 없는 먼 친척으로 간주하면서 특이한 관습과 전통에 대해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것을 최선으로 여겼다. 이에 비하면 훨씬 더 멀리 떨어져 있는 이국적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대한 태도가 차라리 더 관대했다. (p. 157)

도와달라고 한적도 없지만 도와주겠다고 온 사람들이 사실은 그리 반가운 대상이 아닐때, 그리고 그들이 없애려고 했던 그들의 적이 더 우호적일때 그 난감함이란;;; 그런데도 그들은 자꾸 원정을 왔다. 승리하지도 못할 전쟁을 자꾸 일으키는 배경에는 종교가 아니라 정치가 있었다. 그리고 몽골의 등장은 모든 것을 뒤집어 놓았다.

1050년에서 1250년 사이 서유럽 그리스도교 세계는 바로 이런 방식으로 무슬림-유대인-그리스인이 차지하고 있던 기존의 상업적 헤게모니를 점진적으로 잠식해갔다. 물론 이러한 헤게모니는 훗날 오스만 제국의 팽창 등으로 여러 번 위협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서유럽의 상업적 우위는 결코 완전히 전복되지 않았고 이는 광범위한 결과를 낳게 된다. 지중해의 상업이 북부 유럽의 해상 교역과 연결되고 여기에 재정 기법과 여러 기반구조의 발전이 더해지면서 훗날 세계를 지배하게 될 유럽의 상업 자본주의가 탄생한 것이다. (p. 180)

십자군원정이 해내지 못한 것을 자본이 해냈다. 종교는 승리하지 못했으나 돈은 승리할 수 있었다. 사실 이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늘 표면적으로는 다른 명분을 내세운다. 여전히.

철학 혹은 과학 문화와는 달리, 종교 문화와 관련해서는 지적 교류의 상황이 다소 달랐다. 이슬람의 식자층은 그리스도교에 대해 여전히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이는 어쩌면 그리 놀랄만한 일도 아니다. 그들은 예언자 무함마드에게 주어진 계시가 모세나 예수와 같은 이전 시기의 예언자들에게 주어진 부분적인 계시를 넘어섰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즉, 이미 하느님의 완전한 계시로 추월당해 불필요해진 신앙의 신조를 연구할 유인이 없었다. 따라서 다른 종교 연구는 오로지 신앙과 관련한 논쟁에 참여할 때만 수행되었다. (p. 209)

1515년 술찬은 포고령을 통해 인쇄 기술을 습득하려는 무슬림은 그 어떤 자라도 사형에 처하리라고 위협하기까지 했다. (p. 250)

이슬람 신학자들이 [꾸란]의 인쇄를 신성 모독적인 행위로 규정했던 것이다. 하느님의 말씀은 오직 '필사자들의 손'에 의해서만 그것도 가능한 한 최고의 필체로만 전승되어야 했다. 인쇄술과 관련한 그리스도교와 이슬람 사이의 문화적 차이는 매우 의미심장하다. 다르 알-이슬람, 즉 이슬람 세계는 그리스도교 세계로부터 무언가 배우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리스도교 세계에 대한 경멸이 그 어느 때보다 강했다. (p. 251)

 

고인물은 썩는다. 이슬람 초기에는 그토록 열성적으로 선진문물을 습득하던 그들이 어느때부터인가 자기중심적 사고에 빠지면서 더이상 아무것도 배우지 않았고 그저 무시와 경멸어린 태도로 일관하게 됐을때 바깥 상황은 서서히 역전되고 있었다.

중국이 떠올랐다. 고대 중국이 왜 고대유럽과 교류하지 않았는지 그들이 자신들의 왕국에 만족하며 원정을 접음으로써 어떻게 갇힌 세계가 되었는지 역사는 알려준다. 그리고 그같은 오만은 결국 수치스러운 침략을 당하게 했다. 이슬람이 스스로 완전하다고 배울거 다 배웠으니 외부는 그저 무시해도 된다고 오만하게 된 순간 역사는 거꾸로 덮칠 준비를 했다.

인쇄술의 거부는 [내 이름은 빨강] 이라는 소설을 생각나게 했다. 이슬람 전통의 세밀화가들을 통한 시대적 변화를 깨닫게 하는 오르한 파묵의 소설...

무슬림들은 처음부터 자신들이 하느님의 마지막이자 가장 완전한 계시를 받은 선택된 민족이라는 확신으로 인해 더할 나위 없는 자부심으로 고취되어 있었다. 그로 인해 불가피하게 그리스도인들을 경멸의 대상으로 낮춰봤다. 게다가 다르 알-이슬람은 지상에서 하느님이 베풀어 준 은총과 섭리로 그리스도교 세계보다 훨씬 광대한 지역을 차지했다. 바그다드의 시선에서 봤을 때, 900년 경 그리스도교 세계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은 환경에 머물러 있으면서 혼란을 야기하는 이단 분파들과 작은 왕국들로 구성된 무질서한 혼합에 불과했다. 이슬람 공동체는 신앙은 물론 부와 기술, 학식과 문화에서 경쟁할 상대가 전혀 없었다. 무슬림들이 당시 그리스도인에 대해 오만한 태도를 취한 이유는 이해할 수 있을 법하다. 마치 암반처럼 오래전에 저변을 구축한 이러한 태도들은 그 이후 여러 세기 동안 그들의 도덕적 환경을 형성해 왔다. 이는 경시해서는 안 되는 일종의 인간관계의 지질학이라 할 수 있다. (p. 261)

유럽의 헤게모니는 근대 초에 아무 기반 없이 생겨난 것이 아니다. 그것의 힘줄과 근육은 중세가 진척되던 중에 눈에 띄지 않는 서구 그리스도교 세계의 주변부에서 오랜 기간에 걸쳐 발전했다. (p. 262)

그리스도교 세계에 대한 무슬림의 냉담은 당대에 진행되던 변화에 대한 감각을 상실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슬람의 서양에 대한 경멸이 그와 같이 변화하는 상황을 간과하도록 했던 것이다. (p. 263)

 

역사의 반복적 순환을 새삼 느끼게 해주는 책이었다. 역사의 물결은 약해질 수도 있고 거세어질 수도 있으나 약해졌다고 멈춰있지 않고 거세졌다고 위험한것만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역사는 끊임없이 흐르지만 반복적인 교훈을 준다. 그 교훈을 무시할 때 역사는 바로 뒷발질을 할 것이다. 정신차리라고.

이 얇은 책에서 이토록 거대한 시각을 배우게 될줄 미처 몰랐다. 새로운 깨달음과 새로운 물음표들을 함께 던져준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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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쿠바산장 살인사건 히가시노 게이고 산장 3부작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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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범인을 단정하지 말 것!

밀실 트릭, 암호, 연쇄살인, 안도할 수 없는 반전의 연속

히가시노 게이고가 선사하는 정통 추리소설의 정수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처음 읽었다.

이름은 많이 들어봤고 추리소설도 좋아하지만 일본작가의 소설을 찾아 읽을만큼 일본소설을 좋아하진 않아서 기회가 생겼을때 드문드문 읽어왔는데, 그러던 중 이 책이 손에 들어왔다.

읽고나니 아~! 싶었다.

왜 그렇게 저자의 책이 많이 읽히는지를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손에 잡자 마자 두어시간만에 단숨에 읽어내렸다. 가독성이 정말 대박이라서 킬링타임용 책으로 으뜸이었다. 별생각없이 가볍게 책을 읽고 싶을때 저자의 작품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주저없이 또 선택하게 될 것 같은, 그야말로 '재미' 용 소설. 개인적으로 기욤 뮈소의 작품들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1986년에 발표된 작품이라는데 읽으면서 그닥 촌스러움을 느끼지 못했다. 낡지 않은 추리감각이 여전히 베스트셀러 순위에 작가의 작품들을 올려놓을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쫀쫀한 긴장감으로 몰입되다가 한순간에 터지면서 꿰어맞춰지는 퍼즐식이 아니라 하나를 알아내면 둘을 알게 되고 그다음 셋 이런 식으로 다 해결됐구나 싶었을때 또다른 숨은 의미가 나오는 (마트료시카인형이 생각나는) 전개방식은 설마 또있겠어 하며 인형뚜껑을 열었을때 정말 또 인형이 들어있는 발견의 재미를 주었다.

1년 전 어느 펜션에서 오빠가 자살했다는 연락을 받았던 여동생 나오코는 딱 1년이 되는 시기를 맞춰 그 펜션에 가보기로 한다.

영국의 전래동요 '머더구스' 라는 이름을 가진 펜션은 방 이름도 그 동요에서 따온 별칭으로 지어졌는데, 8년전 한 영국부인이 자신의 별장을 마스터에게 팔면서 '머더구스' 동요와 관련된 조건들을 내걸었고 마스터는 합의 후 별장을 인수하여 펜션사업을 시작했다.

이 펜션은 인적이 거의 없는 한적한 곳에 위치해 있어서 아는 사람도 별로 없을 것 같은데 매년 같은 시기 같은 사람들이 숙박을 한다.

그래서 나오코는 같은 시기 숙박을 하는 그 사람들 중에 오빠를 살해한 범인이 있을 것으로 예상하며 오빠가 묵었던 그 방에 숙박을 예약했다. 나오코는 오빠가 자살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크지 않은 이 펜션에 머문 사람들은 평범해 보이기도 하지만 이상스럽게 보이기도 한다.

그들은 왜 매년 같은 시기에 이곳에 오는가?

방마다 걸려있는 액자 속 동요는 왜 이렇게 이상한가?

누군가는 그 동요에 얽힌 숨은 의미에 집착하고 누군가는 그 동요에 아무 관심이 없지만 그 사람들 모두 나오코의 오빠가 그 동요에 관심이 많았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오빠가 죽었다. 외부침입이 불가능한 밀실에서. 구하기 힘든 독약을 먹고.

오빠의 죽음과 관련된 단서를 추적하던 중 2년 전 비슷한 시기에 있었던 한 남자의 추락사를 알게 된다.

그리고 그 추락사 1년 후 나오코의 오빠가 죽었다.

그리고 오빠의 죽음 1년 후 의심할 여지가 많던 숙박객 남자 한명이 사고사 한다.

그 남자가 오빠의 죽음과 관련되었을 거라 생각했는데 갑자기 사고사라니, 이제 본격적인 범인 색출 추리가 시작된다.

"3년 연속 사람이 죽었어요. 게다가 똑같은 시기에.

우연이라면 무서운 일이죠"

"우연이 아닌 경우가 무서운 일입니다" (p. 188)

 

번역해놓은 문장들을 보면 이게 무슨 동요인가 싶은 요상한 내용의 마더구스 노랫말을 주문인듯 암호인듯 풀다보면 매년 연속된 3차례의 죽음 이전에 있었던 더 오래된 죽음이 등장한다. 애초에 이 동요를 불렀을 혹은 이 동요를 불러줬을 누군가의 죽음 속에 숨어있던 슬픈 사랑이 등장한다.

끝까지 끝나지 않는 추리가 이어지는 그래서 다 읽을때까지 손에서 놓을 수 없던 소설이었다.

그렇게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찜찜한 서늘함이 남지 않는 깔끔한 마무리가 가벼운 만족감을 주는 소설이었다.

그러니까 간단히 말하자면, 재.미.있.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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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것들의 과학 - 물질에 집착하는 한 남자의 일상 여행
마크 미오도닉 지음, 변정현 옮김 / Mid(엠아이디)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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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오도닉은 뛰어난 지식과 넘치는 열정, 자신의 주제에 대한 뚜렷한 사랑으로 글을 쓰는 작가다" -올리버 색스

"그는 재치 있고 똑똑하며 그가 가진 재료에 대한 사랑을 전파하는 데 뛰어난 재능을 지닌 작가다" - 빌 게이츠

"사물의 이면에는 깊숙이 감춰진 무언가가 있다" - 아인슈타인

늘 움직이며 스며들고 흐르는 액체의 과학, 기묘하고도 놀라운 지적 여행이 시작된다!

 

 

저자 마크 미오도닉은 '타임즈'가 선정한 영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과학자 100명 중 한 명으로 재료 라이브러리인 UCL공작연구소(Institute of Making)의 소장이기도 하고 다양한 매체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과학커뮤니케이터 이기도 하다.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물질들 중에서 '액체'에 초점을 맞추어 과학적으로 풀어낸 이 책은 제목이 주는 느낌처럼 읽는 동안에도 내내 잘 흘러간다.

세계 유수의 지식인들이 극찬한 글솜씨까지 갖추고 있는 저자는 학회에 참석하기 위해 런던에서 샌프란시스코로 이동하는 여정에서 만난 액체들에 관해 그만의 독특하고 개성넘치는 스타일로 딱딱할 수도 있을 과학적 이야기를 술술 풀어낸다. 저자와 함께 비행기를 타러 출발해서 학회에 도착하기까지의 여정을 함께 하고 나면 이 책 한권을 다 읽게 되는데, 과학책을 읽은듯 비행에세이를 읽은듯 묘하게 공감하면서 때론 키득키득 웃어가며 읽게 되는 책이기도 하다. 과학책을 과학책이 아닌 것처럼 읽게 되는 설정의 힘! ㅎㅎ

저자가 런던의 히드로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검색대에서 압수당했던 액체형 용품들에 대한 그닥 유쾌하지 않았던 기억을 상기하며 '폭발적인' 액체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한다.

비행기에 탑승한 후 늘 같은 형식으로 시연되는 승무원의 안전브리핑을 보면서 저자는 그 브리핑 속에 빠져있는 항공유 에 대한 위험성을 혼자 걱정한다. 9세기에 페르시아의 의사이자 연금술사인 라제스가 '비밀의 책'이라는 책에서 언급했던 '등유'의 발견이 왜 천 년이 지나서야 현실화 되었는지 읽다보면 과학적 발견도 시기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긴 뭐 지구가 둥글다는 것도 증기기관에 대한 아이디어도 고대에 이미 있었지만 과학이 된 것은 역시나 한참 후였다.

여하튼, 등유에 대해 걱정하던 마음은 승무원이 제공해준 와인을 마시면서 비로소 진정되었는데 그래서 다음 등장하는 액체는 '알코올'이다. 와인에 들어있는 알콜에서 용해제 역할을 하는 알콜 이야기를 하다 표면장력의 차이를 설명하다보면 시각이 맛에 끼치는 영향까지 설명하게 된다. 비행기에서 취할 만큼 마셔서는 안되는 것 아니겠는가?! 그래서 창밖을 내다보니 '바다' 가 보인다. 커다란 액체의 등장이다.

지표면의 70%를 덮고 있는 바다는 아르키메데스의 '유레카' 이야기를 시작으로 밀도와 파도를 거쳐 쓰나미의 위력과 원자력발전소문제까지 등장시킨다. 하지만 창밖으로 잔잔해보이는 파도 대비 비행기가 난기류에 흔들기기 시작하자 저자는 비행기 동체의 안전성에 대한 고민에 빠져든다. 다른 승객들은 모르겠지만 자신은 비행기가 여러 조각이 접착제로 붙어 있는 형태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공포에 빠질 수 밖에 없다며 '접착제' 이야기로 연결한다.

그렇다. 비행기의 동체는 한 덩어리가 아니라 작은 조각들이 이어붙여져 있는 것이다. 비행기를 붙일 수 있을 만큼의 접착액체가 등장하기까지 인류는 다양한 재료의 역사를 거쳐왔다. 접착물질의 변천사는 고무의 등장과 에폭시까지 설명이 이어지는데 이제 안정된 비행기에서 저자는 영화 한편을 보기로 한다. 다음 액체는 '액정' 이다.

지금은 움직이는 활동을 액정화면을 통해 보는 행위가 너무나 자연스럽고 어쩌면 당연하게 받아들여 지지만 사실 액정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무언가를 본다는 것은 그림을 보는 것에서 LED 그리고 LCD 액정화면으로 보기 까지 급격한 발달을 이루었다. 끈적이는 거미줄을 뽑아내던 영화 스파이더맨을 다 보는 동안 함께 했던 액정화면에서 눈을 떼고 나니 슬슬 잠이 오기 시작한다.

옆사람이 거칠게 밀어낸 덕에 갑자기 잠에서 깨어난 저자는 자신이 자는 동안 옆사람 소매에 '침'을 흘린 것을 깨닫지만 아직 자고 있는 척 당황감을 감추기로 한다. 그렇게 상대방을 불쾌하게 만든 '침' 이 사실은 불쾌한 물질이 아님을 과학적으로 열심히 생각하기 시작한다. 기내식이 나오면서 자연스럽게 깬 척 식사에 집중하던 저자는 그동안 생각했던 '침'의 효용성으로 인해 자기만족상태가 되었다. 그렇게 기분 좋게 식후 '음료'를 선택한다.

'커피나 차 드시겠어요?' 하는 승무원의 질문에 길고긴 비행시간 동안 각성상태로 있고 싶지 않았던 저자는 '차'를 선택하고 한모금 마시자마자 이내 후회하게 된다. 우리는 차 보다는 커피 를 많이 마시는데, 영국인들은 (아직까지는) 차 를 훨씬 많이 마시는 문화라고 한다. 차문화와 다양한 차 와 커피원두 이야기를 하다보니 '비행기 내의 기압이 낮기 때문에 물의 끓는점은 약 92℃가 되는데, 우연히도 커피에 완벽하게 들어맞는다' 는 과학적 사실을 뒤늦게 기억한 저자는 차의 이뇨성분에 충실한 신체반응에 의해 화장실로 향한다.

비행기 내의 화장실에 새삼스러운 감탄을 하며 '세정제'로 손을 씻던 저자는 비누의 역사를 되짚어보기 시작한다. 액체형 비누로 손을 씻고 로션을 바르며 화장실을 나오던 저자는 지금 비행기가 날고 있는 고도에서 하늘의 온도가 얼마나 낮은지 생각하다 '냉매'를 연상하게 된다. 냉장고와 에어컨의 냉매가 발견되기 까지의 과정을 이야기 하다가 액체 산소까지 이어지는 동안 비행기는 어느새 도착지에 가까워지기 시작하고 그의 손에는 세관신고서가 들려진다.

'잉크' 가 들어 있는 볼펜으로 세관신고서를 적다보니 지금의 '잉크'가 자리잡기까지 어떤 노력들이 있어왔는지 이야기하던 저자는 작성을 마치고 창밖을 보니 구름이 보이고 안개낀 상태에서의 착륙이 갑자기 불안해진다. '구름'의 상당부분은 수분으로 되어 있다. 구름속 수분과 인공비까지 생각하다보니 불안한 안개속에서도 비행기는 무사히 착륙한다. 비행기가 지구표면에 닿았다. 그런데 '지구'의 중심또한 액체 이다.

'지구'는 모든 생명을 살아가게 하는 유동성에 의해 움직이고 있는 행성이다. 비행기가 단단한 땅에 안착한 것 같지만, 사실 '단단한' 은 실제로 옳은 단어가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행성이 움직이는 한 지구는 특별히 단단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지구는 뜨거운 액체 덩어리로 생명을 시작했음을 상기시킨다. 지구의 액체형 활동은 화산을 통해 체감할 수 있으니 화산활동을 생각하던 중 어느덧 비행기 내에 사람들이 거의 다 내렸음을 확인한 저자도 서둘러 내리기로 한다.

지구 이야기를 하다보면 '환경'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환경에 악형향을 주는 다양한 재료들을 생각하다가도 인류의 생존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물'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에필로그 에서 물 이야기를 조금 더 한 후 '액체를 기대 수명을 연장하고 집단 이주와 갈등을 예방하는 주요 발명품으로 환영하게 될' 21세기 를 그려보며 저자는 책을 마무리한다.

어찌나 자연스럽게 다음 액체로 흘러가는지 다 읽고 나니 마치 내가 저자 옆에서 비행기를 11시간 함께 타며 이야기를 들은 듯한 피로감이 살짝 들 정도다. 하지만 몹시 흥미로운 이야기들이었고 이 책을 읽고 나면 일상의 액체들이 새롭게 보일 것 같긴 하다. 이 책이 액체를 다룬 책이고 보니 '고체'를 다룬 저자의 책 '사소한 것들의 과학' 이라는 책도 궁금해진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기체' 에 대한 책이 어서 나오길 기대하게 된다. 이처럼 신선하게 일상의 과학탐험을 시켜주는 책들을 나는 언제나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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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 사냥꾼 - 집착과 욕망 그리고 지구 최고의 전리품을 얻기 위한 모험
페이지 윌리엄스 지음, 전행선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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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과 욕망

그리고

지구 최고의 전리품을 얻기 위한 모험

 

 

우리말 책의 제목은 '공룡 사냥꾼' 이라서 공룡을 사냥했다는 탈취의 성격이 강하게 느껴지지만, 원제인 'The Dinosaur Artist' 는 아~ㄹ티스트! 라는 표현에서 사냥과는 좀 다른 예술적?!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일단, 사건의 등장 자체가 예술품들의 거래가 주로 이루어지는 고급경매장이라서 더욱 이중적 의미를 풍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먹고사는데 필수적인 소모품 대비 먹고사는데 직접적인 필요가 없는 '어떤' 것들은 굉장히 비싸다. 그 가격만큼 인간의 탐욕을 보여주는 듯, 경매장에서 고가에 팔리는 물건일 수록 그것이 도대체 왜 그 가격인가 하는 의구심을 품게 한다. 사냥은 생존을 위한 수단이었다가 장식품을 얻기 위한 편법으로 변질되었다. 그 개인적인 욕망들이 공개적으로 거래되는 곳이 예술품 경매시장이다. 이 책은 개인적인 욕망을 넘어 사회적 부조리까지 아우르고 있는 욕망의 기록이다. 또한 공룡을 사냥하는 사람들을 통해 인간의 욕망을 사냥하는 사회를 보여주는 사냥의 기록이다.

2012년 뉴욕시의 경매장에 진귀한 품목 하나가 등장했다.

NO 49135 티라노사우루스 바타르

높이 2.4미터, 길이 7.3미터에 이르는 이 희귀한 완전체 공룡화석의 낙찰가는 100만 달러를 넘으리라 예상됐었다.

중요한 지점은, '바타르' 라는 이름에서 알수 있듯이 이 공룡화석의 출생지가 몽골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공룡화석을 경매장에 내놓은 사람인 에릭 프로코피는 평생 화석발굴만 해오면서도 이런 일이 이렇게 '사건'이 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니 암시장이 아니라 뉴욕 헤리티지 옥션스에 공개적이고도 대대적으로 '최상급 티라노사우루스 화석'으로 당당히 이름을 올렸겠지.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화석은 지구의 진화를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단서이지만, 그들을 보호하려는 태도는 대륙마다 매우 다르다. 특히 화석이 풍부한 나라인 미국의 태도는 예외적이다. 정책 입안자들이 사유재산에 관여하고 싶어 하지 않는 까닭에 화석을 자신의 토지에서 발견하거나 수집이 허락된 개인 소유지에서 발견하면, 그것이 과학적으로 얼마나 중요한지와는 상관없이 발견자가 갖거나 팔거나 무시하거나 파괴하더라도 국가가 관여하지 않는다. (p. 17)

몽골의 법은 화석 거래를 금지한다. 법에 따르면, 화석은 국가의 재산이다. 그러나 불법적으로 발굴된 고비사막의 공룡들이 공개 시장에서 팔리고 있다. (p. 37)

 

그러나 법이 문제라기 보다는 (법도 물론 문제이긴 한데) 더 큰 문제가 숨어 있었음이 이 사건을 통해 드러나게 된다.

베니스는 주변의 넓고 얕고 잔잔한 바다에서 쉽게 상어 이빨을 찾아낼 수 있었기 때문에 오래전부터 '세계 상어 이빨의 수도'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고, 5월이면 축제도 열렸다. 그러면 해변은, 마치 마을 전체가 잃어버린 콘택트렌즈 한 짝을 찾아다니기라도 하는 것처럼 바닥만 쳐다보며 천천히 걸어 다니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어진다. (p. 53)

프랭크는 북미 전역에서 가장 풍부한 플라이스토세 화석층을 발견한 것이고, 지역 화석 클럽 회원들은 그 뼈를 발굴해내는 것을 도운 것이었다.

"발굴하신 화석 가격으로 거액을 제안받았음에도, 그걸 팔지 않고 과학계에 기부하기로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왜죠?"

"그것들은 플로리다 주민의 것이니까요" (p. 64)

자연사박물관은 그 존재 자체를 독립적인 수집가들에게 빚지고 있지만, 과학자들은 그들 모두를 원망과 의심의 눈으로만 바라보는 것 같았다. (p. 97)

 

미국은 땅덩이가 넓은 만큼 화석도 굉장히 많이 발견된다. 하지만 화석이 학문적으로 가치를 인정받은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해변을 걸으며 조개껍데기 줍듯이 상어이빨화석을 줍고 자란 에릭은 아마추어 화석발굴자들을 보고 배우며 성장했다. 그에게 가르침을 준 사람들 중에는 화석을 발굴해서 파는 사람도 있었고 과학에 기증한 프랭크 같은 사람도 있었지만, 여하튼 과학자들보다 한발 앞서 화석을 발굴하고 누구 못지 않게 화석에 열정인 바친 이러한 사람들을 뒤늦게 성장한 과학계에서는 인정해주지 않았다.

오늘날에도 한의사는 용의 뼈를 처방한다. 얼마 전, <내셔널지오그래픽>의 작가 한 명이 유명한 고생물학자인 쉬 싱에게 물었다.

"어떻게 중국 사람들은 21세기를 살아가면서도 여전히 신화 속의 짐승을 믿을 수가 있습니까?"

쉬 싱은

"어떻게 그 많은 미국인이 여전히 진화를 믿지 않을 수 있나요?" 라고 되물었다. (p. 78)

 

미국 못지 않게 거대한 땅덩어리를 가진 중국 또한 화석이 많이 발견된다. 오래전부터 중국인들은 거대한 공룡뼈를 '용의 뼈'라고 부르며 치유력이 있다고 믿어왔다. 그래서 그 뼈를 가루로 내어 약재로 처방한다. 하지만 이것을 단순히 신화로 치부해 넘기기에는 쉬싱이 반문한 질문이 뒤통수를 때리는 듯 하다.

자연사 수집에 관한 최초의 문서화된 이미지는 1599년 이탈리아 나폴리의 페란테 임페라토 라는 약제사의 책에 등장했다. 그는 <자연사>라는 저서에서 자신의 '캐비닛'을 스케치한 그림을 소개했다. '방'이라는 의미의 캐비닛은 기본적으로는 박물관을 의미했다. 그런 캐비닛은 또한 분더캄머나 '경이의 방'이라고도 불렸는데, 분더캄머는 고생물학, 지질학, 종교학, 민속학, 고고학 등과 관련된 모든 물품을 백과사전식으로 정리한 목록을 일컬었다. 수집가들은 캐비닛을 채우기 위해 '가장 크고 아름답고 이상하고 특이한 것을 구하러 다녔다'. 자연사박물관은 이런 경이의 방에서 자라 나왔다. (p. 87~88)

무언가를 수집한다는 것은 어쩌면 인간의 생존에 대한 욕망 버금가는 인간의 기본적 욕망인지도 모르겠다. 많은 사람들이 늘 뭔가를 모은다. 어려서 딱지를 모으고 구슬을 모으다가 좀 커서는 레고를 모으고 예쁜 악세사리를 모으다가 돈을 모으고 또 모으고 나면 다른사람이 갖지 않은 특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내것으로 만들기 위해 모으기 시작한다. 박물관이란 애초에 개인적 자랑거리를 모은 장식장에서 시작했다. 그리고 거대한 세계적 박물관들은 여전히 자신의 것이 아닌 다른나라 문화유산들을 모아와서 자랑스럽게 전시해놓고 있다.

화석을 구매하면 잠재적으로 중요한 표본이 적절한 연구 현장에서 멀어지게 되고, 시장을 자극하여 수요를 촉진시킴으로써 밀렵을 장려하게 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고생물학자들을 그 분야 밖으로 내몰고, 화석을 과학 연구의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밀어내겠다고 위협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p. 100)

화석을 사고 파는 거대 시장이 있는 곳은 아마도 미국 뿐일 것이다.

에릭은 그가 파낸 브룩스빌 화석 일부를 박물관에 대여했고, 1년 후에 그가 대여품을 찾으러 갔을 때, 그 물품에는 등록 번호가 붙어 있었다. 그가 발견한 표본 하나는 다른 직업 사냥꾼 앞으로 등록되어 있었다. 에릭은 FMNH 과학자들이 그를 심각하게 위법적인 존재로 여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그 이유는 끝내 알 수 없었다. 과학자들은 브룩스빌 현장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면서 에릭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고, 에릭은 분노했다. 에릭은 과학에 품고 있던 일말의 충성심도 던져버리고, 전적으로 사냥에만 헌신하기 시작했다. (p. 102)

나라마다 같은 방식으로 산업이 발전하고 과학이 수용되는 것이 아니듯이, 미국은 미국만의 절충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화석거래시장이 합법적으로 존재하는 유일한 나라에서 법으로 구속하는 것은 너무 늦은 선택아닐까? 비록 에릭은 유죄를 받았지만 말이다.

고급 경매장과 화석의 제휴는 구매자에게 화석의 지위를 높여놓았다. 소더비와 같은 유서 깊은 경매회사는 좀 더 세속적인 박람회 등에 비해 고상해 보였다. 경매장에서는 자연사가 예술과 동일시 되었다. 화석 업계에는 결코 없던 방식이었지만, 어쨌든 거래상들은 그것이 타당하다고 느꼈다. 박람회에서는 가격이 늘 내려갈 수 있지만, 경매에서 가격은 오직 올라갈 수만 있었다. 또한 경매는 화석 거래의 어두운 부분을 덮어주는 역할도 했다. 불법 화석과 위조품이 중국에서 흘러나와 미완의 상태로 투손에서 팔리면 그것은 나중에 완성품으로 시장에 나왔다. (p. 136)

화석이 거래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이미 자연사 품목들은 예술품처럼 거래되어 왔다. 기존에 있어왔던 관행들을 없앤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번 'T바타르' 경매건으로 인해 비로소 제재는 시작되었다. 하지만, 고비에서 공룡화석을 가져온 것이 에릭이 처음은 아니었다.

"제국주의적 목표가 그 원정의 핵심요소였다. 그들에게 아시아는 경제 발전과 착취를 위한 비옥한 토대였다. 중앙아시아 탐험 같은 프로젝트는 정치적, 경제적 팽창을 통한 개방의 뒤를 따랐을 뿐만 아니라 같은 태도와 목표를 구현했다." 과학 사학자 로널드 레인저는 이것이 미국인들, 특히 앵글로 색슨계 백인 개신교 미국인들이 그들의 존재를 '전 세계'에 알리는 방식이었다고 지적하면서 앤드루스가 자신의 가장 중요한 책 중 하나에 '중앙아시아의 새로운 정복'이라는 제목을 붙인 것은 우연이 아니라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 제목은 '우선 의식, 우월성 그리고 이러한 탐험을 특징짓는 지식을 장악할 권리'를 담아낸 것이었다. (p. 199)

1922년 '중앙아시아 원정대'가 고비 사막을 찾았다. 로이 앤드루스 와 월터 그레인저 가 주축이었다. 앤드루스가 이야기꾼이라면 그레인저는 이야기 자체였다. 앤드루스가 과학을 대표했다면 앤드루스는 무용담을 대표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앤드루스에 열광했고 그레인저는 기억되지 않았다. 앤드루스는 '인디애나 존스'로 영웅화 되었지만, 그레인저의 발견은 과학사에만 흔적을 남겼을 따름이었다. 그리고 그 때 가져왔던 수많은 몽골의 화석들은 여전히 미국의 박물관에 묻혀있다.

민주주의로의 이행은 보통 시간이 걸리고 종종 피를 흘리지만, 몽골에서는 신속하고 평화롭게 일어났다. 그해 여름, 거의 100만명, 그러니까 전 유권자의 98퍼센트에 해당하는 시민이 국회의원을 뽑기 위해 투표장에 나타났다. 레닌 조각상이 무너지고, 칭기스칸 동상이 올라갔다. (p. 213)

몽골이 민주주의를 향해 빠르게 나아간 지 몇 주만에 사절단이 다시 박물관에 나타나 AMNH 과학자들에게 고비로 돌아와달라고 말했다. 1990년 스카우트 원정대가 사막으로 향했다. (p. 214)

고비는 이제 외부 과학자로 넘쳐났다. 이런 팀들은 정기적으로 40~50명의 몽골 현지인을 고용해서 발굴 기술자로 훈련시키고 답사하는 법도 가르쳤다. 몽골헌법은 1992년 개정되기는 했으나, 여전히 몽골인들의 역사, 문화, 과학, 지적재산권을 보호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어쨌든 거래는 이루어졌고 그 이유를 추측하기란 어렵지 않았다.(p. 221)

전시실의 온도, 습도, 먼지 등도 제어되지 않았다. 복원과 재건에 관한 얘기는 거의 들리지도 않았다. 중요한 유물은 부서지고 퇴색되어, 곤충의 먹이가 되었다. (p. 222)

 

중국의 지배를 받다가 러시아의 지배를 받다가 1990년 민주혁명으로 평화적 정권교체가 이루어진 몽골의 정치현실은 여전히 복잡하다. 민주화 시위로 정권교체가 이루어졌지만 부정투표가 거의 확실해 보이는 방식으로 당선된 대통령이 장기집권했고 이 대통령과 함께온 미국인은 공화당에 뿌리를 둔 우익이었다. 경제는 무너졌고 빈부격차는 극심해지는 와중에서 몽골이 지닌 천연자원이 급부상했지만 가장 먼저 내다팔기 시작한 것은 도처에 널려있던 '뼈'들이었다.

나중에 에릭 프로코피라는 이름이 국제 화석 밀수와 동의어처럼 되어버리면 사람들은 그가 몽골로 몰래 숨어 들어가 어둠 속에서 공룡을 파낸 다음 국경을 넘어 은밀히 들여오는 상상을 하게 될 터였다. 또한 몽골 관리인들은 그 밀수품이 세관에서 가장 허술하게 검문받는 수출품인 소금 속에 숨겨진 채 국경을 빠져나갔을 것으로 추측하게 될 터였다. '범죄 주모자'라고 하면 뭔가 비밀스러운 이미지를 떠올리게 되지만, 어맨다는 그런 지적에 콧방귀를 뀌었다. (p. 255)

에릭의 아내인 어맨다의 콧방귀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에릭은 몽골에 방문해서 직접 현장 답사를 했고 관계자를 만났으며 정식으로 세관을 통과했고 화석을 실은 콘테이너는 화석을 실었다고 명기된채 배에 운반되어 미국에 들어왔다. 그리고 에릭은 그 화석들을 심혈을 기울여 복원해 하나의 예술품으로 승화시켜 놓았고 자신의 예술품을 자랑스럽게 시장에 내놓았다.

여러 해 동안, 의원들은 화석 수집을 규제하기 위해 여러 시도를 했지만 잇달아 실패했다. 하지만 2009년 마침내 옴니버스 공공토지관리법이라는 입법안이 상원을 통과했다. (p. 288)

2008년 박사학위를 받은 볼로르는 호너와 함께하는 박사 후 연구직을 수락하고, 자신과 자신의 새로운 멘토가 공유한 몇 가지 걱정거리를 해결하기 위해 몽골공룡연구소라는 NGO 단체를 설립했다. 그녀는 몽골에 최첨단 공룡 박물관을 짓고 자신이 받은 서구의 교육을 통해 차세대 몽골 고생물학자들을 도우면서 밀렵과 싸우고 싶었다. (p. 300)

 

모든 일에 정말 '때' 라는 것이 있나 보다.

그전에는 아무일도 아닌 것들이 별일이 되는 순간이 오는 것을 보면.

에릭이 자신의 작품을 경매시장에 내놓았을때 미국법은 처벌규정에 관한 기초를 마련하는 중이었고 미국에서 공부한 몽골학자의 눈에 그 작품이 들어온 것을 보면.

"지금 나한테 공룡 얘기를 하는 겁니까? 난 당신을 과학 고문으로 임명한 게 아닌데요"

"이 공룡은 곧 팔릴 예정이에요. 누군가는 이의를 제기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뭘 할 수 있죠?"

"우리가 진다고 하더라도 대통령님은 몽골의 재산권을 주장한 최초의 대통령이 되실 겁니다. 우리가 이긴다면, 몽골의 재산을 되찾은 최초의 대통령이 되실 테고요." (p. 307)

 

학자의 안타까움은 정치권의 이익과 맞물렸을 때 비로소 움직임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이때 몽골의 대통령이 처한 현실은 '영웅의 귀환'이 필요했다.

몽골은 공식적으로 경매장에 이의를 제기한다.

에릭이 장기 수감을 피할 가장 좋은 기회는 정부의 '협력자'가 괴는 것이었다. 협력자들은 검찰이 그쪽 분야를 이해하도록 돕고, 그 대가로 장기 징역형과 높은 벌금을 피할 수도 있었다. (p. 379)

사실 이 사건은 '법 집행의 르네상스'를 가져왔다. 당시로서는 프로코피가 최소한 간접적이라도 법 집행기관에 제공한 정보게 빚지지 않은 화석 관련 조사가 없었다. 이 사건은 '일반적으로 모호한 그 영역의 법 질서 유지와 관련해서 연방 법 집행부가 모두 힘을 합치게 하는' 결과를 불러왔다. (p. 390)

 

지지세력이 흔들렸던 몽골의 대통령은 재선에 성공했고, 에릭은 감형을 받았으며, 법 집행자들은 화석거래에 대한 기초지식을 얻었다.

'T바타르'는 몽골로 돌아왔으나 여전히 몽골국립박물관은 재건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볼로르는 미국에서도 몽골에서도 연구직을 얻지 못했다.

에릭은 형을 마치고 다시 상어이빨화석을 줍기 시작했고, 이 사건의 검사로서 성공적 해결을 마무리했던 프릿 바바라 검사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직후 해고당했다.

에릭 프로코피와 그의 가족은 이 프로젝트의 결과가 어떨지 사전 확답을 받지 못했음에도 허심탄회하게 그들의 삶을 내게 열어주었습니다. 프로코피 일가는 또한 스크랩북, 사진, 서신 등은 물론이고 화석 거래상의 삶과 T바타르 소송 사건의 세부적인 내용을 담은 다른 자료들도 공유해주었습니다. 또한 공식적으로 대화를 나누어준 다른 상업적 화석사냥꾼, 자연사 중개인, 수집가, 경매 업계 임원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고생물학, 지질학, 화석생성론, 층서학 등 수백 가지 분야의 여러 과학자를 만나 전문 지식을 공유할 수 있었습니다. (p. 473)

이 책은 2009년 답사 보도 형태로 시작되었던 것이,심도 있는 취재와 연구를 거쳐 2018년 최종적으로 책의 형태가 되어 나온 것이다. 거의 10년 가까이 착실하게 준비한 만큼 일반인에게 생소한 화석이나 공룡에 관련된 세계를 차근차근 알려주면서도 폭넓게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고 있다.

비슷한 책으로 <깃털도둑> 이 생각난다. 자연사박물관에서 깃털을 훔쳐낸 범인을 쫒는 이 책또한 흥미진진하지만 논픽션이었다. 그러나 '깃털도둑'이 개인적 범죄를 저지른 도둑검거기에 깃털에 관련된 자연사를 버무린 책이었다면, '공룡 사냥꾼'은 좀더 거대한 문제를 드러낸다.

<공룡 사냥꾼> 도 공룡 화석에 대한 개인적 범죄에서 시작되었지만, 화석발굴에 대한 역사를 다양하게 되짚어보면서 고생물학계의 문제와 상업화된 화석시장의 문제와 정치적 셈법을 포함해 자연사에 대한 관점이 얼마나 복잡할 수 있는지 좀더 깊숙이 느끼게 한다.

서랍속에 밀봉된 작은 깃털이 되었건 전시장 한가운데 우뚝 선 거대한 공룡이 되었건 자연이 남긴 것은 유한하다. 그리고 무한해 보이는 자연 자체도 사실은 유한하다. 그 유한함을 잊고 있다는 것이 어쩌면 가장 큰 문제일 것이다. 유한하기에 더욱 집착과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유한하기에 좀더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내가 직접 깃털을 훔치고 화석을 팔진 않았더라도 유한한 것에 욕망을 품는 순간 나도 모르게 깃털도둑이 되고 공룡사냥꾼이 될지 모를 일이다. 자연은 인간의 것이 아니라는 점을 늘 되새겨야 할 것이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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