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풀니스 - 우리가 세상을 오해하는 10가지 이유와 세상이 생각보다 괜찮은 이유
한스 로슬링.올라 로슬링.안나 로슬링 뢴룬드 지음,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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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우리가 세상을 오해하는 10가지 이유와 세상이 생각보다 괜찮은 이유

FACTFULNESS

 

 

작년 연말 이 책을 알게 되었다. 티비에 나왔다고 하던데 (티비를 잘 안보는 나로서는 어떤식으로 나왔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래서인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여기저기서 이 책 이름이 튀어나왔다. 무엇이 그토록 이 책을 유명해지게 했는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공동저자 3명은 가족관계다. 아버지 한스 로슬링과 아들 올라 로슬링과 며느리 안나 로슬링 륀룬드.

한스 로슬링은 공중보건의 이자 통계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이고 테드를 비롯한 다수의 세계적 강의를 진행했던 스타강사이다. 스웨덴 국경없는의사회를 공동설립하고 세계보건기구와 유니세프 등의 구호기구에서 활동하면서 공중보건에 대한 현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러한 현실적 문제점을 개선시키기 위해서는 잘못된 인식을 바꿔야 하며 그 인식을 바꾸는데 있어 무엇보다 데이터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에 근거한 세계관'으로 심각한 무지와 싸우기 위해 '갭마인더재단'을 세웠고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팩트체크를 하여 그 결과를 널리 알려 왔다. 이 연구재단에서 아들부부가 활동하며 한스 로슬링을 뒷받침 하는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다양한 자료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팩트풀니스 FACTFULNESS - 이 책에서 '사실충실성' 이란 말로 번역되어진 이 말은 저자들이 만들어낸 신조어로, 팩트(사실)에 근거해 세계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습관을 뜻한다고 한다.

즉, 이 책은 사실에 근거한 세계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책이다. 따라서 얼마나 우리가 사실에 근거하지 못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지 깨닫게 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저자는 13문제를 질문한다. 어렵거나 한 문제들은 아니다. 예를들어 '세계 인구의 다수는 어디에 살까?' 하는 식의 문제들이다.(모두가 답을 뻔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런 질문들?!) 이 13가지 문제에서 인간의 평균 정답률은 16%였다. (세계 유수의 석학들이 모인 곳에서 질문을 던져도 정답률에 큰 차이가 있진 않았다;;) 하지만 3지선다형 문제를 침팬지에게 풀게해서 침팬지가 무작위로 찍어도 정답률은 33%다. 정리하면, 인간은 침팬지가 찍는 답보다 낮은 정답률을 보일만큼 왜곡된 혹은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다는 말이다. 어쩌다 이렇게 판단착오를 하게 되었을까?

이 낮은 정답률이 알려주는 결론이 큰 문제인 이유는 사람들이 '세상을 실제보다 더 무섭고, 더 폭력적이며, 더 가망 없는 곳으로, 한마디로 더 극적인 곳'(p. 22) 으로 여기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그것을 '과도하게 극적인 세계관'이라고 부른다. 그런 세계관은 스트레스와 오해를 불러온다'(p. 27) 고 말한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세계관을 갖고 있다며 우려를 표한다.

따라서 ''사실충실성'은 건강한 식이요법이나 규칙적 운동처럼 일상이 될 수 있으며, 그렇게 되어야 한다. 일단 연습해보라. 그러면 과도하게 극적인 세계관을 사실에 근거한 세계관으로 대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세상을 암기하지 않고도 올바로 이해할 수 있다. 또 더 나은 결정을 내리고, 진짜 위험성과 여러 가능성을 예의 주시하되 엉터리 정보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수 있다'(p. 31) 고 구체적인 방법들까지 알려주고 있다.

저자는 다수에게 질문했고 (안타깝게도) 늘 낮은 결과를 확인시켜주었던 13문제를 바탕으로 인간의 10가지 본능을 분석하고 각각마다 원인과 결과 그리고 해결점을 모색한다.

간극본능, 부정본능, 직선본능, 공포본능, 크기본능, 일반화본능, 운명본능, 단일관점본능, 비난본능, 다급함본능, 이 10가지 본능은 때로는 습관으로 때로는 오류논리로 때로는 심리적으로 우리가 너무 일상적으로 이용해왔던 판단근거들이기도 했다. 우리와 그들을 반대적으로 구분하고 지금까지 그래왔다면 앞으로도 그럴거라고 섣불리 판단하고 눈에 보이는 데로 성급하게 결정해왔던 과거의 많은 생각들이 얼마나 잘못됐었는지 하나하나 깨닫다 보면 결과적으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은 훨씬 살만한 세상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왜 굳이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려고 하는가? 세상은 생각보다 훨씬 긍정적이었다. 저자의 데이터들이 증명한다.

오해에 사로잡힌 사람을 설득할 때는 그의 의견을 데이터와 비교하는 방법이 매우 유용하다. (p. 41)

첫번째 주제에 따른 그래프부터 눈에 확 띄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세계를 개발도상국과 선진국으로 구분하고 개발도상국들이 선진국들에 비해 엄청나게 못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아니었다.

'개발도상국이란 말이 의미없어진지 오래였다. '인류의 85%가 소위 '선진국'에 들어갔다는 이야기다. 나머지 15%중 상당수는 사이에 있고, 6%에 해당하는 13개 나라만 여전히 '개발도상국'안에 있다. 적어도 서양인의 머릿속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그대로다. 서양인 대부분은 시대착오적 생각에 사로잡혀 서양 이외의 세상을 바라본다.(p. 46)'

서양인만 그랬을까? 우리라고 달랐을까?

요악하면, 저소득 국가는 대부분의 사람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발전했다. 그리고 그런 나라에 사는 사람은 생각보다 훨씬 적다. 둘로 나뉜 세계에서 다수가 비참하고 결핍된 상태로 살아 간다는 생각은 그야말로 착각이자, 전적으로 오해다. 한마디로 엉터리다. (p. 50)

시원시원한 어투로 옆에서 힘차게 설명해주듯이 문장들이 귀에 쏙쏙 들어와 박히는 것 같았다. 각 장을 마무리할때마다 뒤에서 '사실충실성' 이 이 본능에서는 무엇이고 따라서 이 잘못된 본능을 억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요점정리까지 해주니 책이 막히는 부분 없이 쑥쑥 읽힌다.

이렇게 희망적인 통계가 많은데, 어떻게 세계가 점점 나빠진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런식의 생각은 대개 부정 본능 때문이다. 좋은 것보다 나쁜 것에 더 주목하는 본능이다. 여기에는 세 가지 원인이 작용한다. 하나는 과거를 잘못 기억하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언론인과 활동가들이 사건을 선별적으로 보도하기 때문이며, 마지막으로 상황이 나쁜데 세상이 더 좋아진다고 말하면 냉정해보이기 때문이다. (p. 95)

상황은 나쁘면서 동시에 나아지고 있기도 하고, 나아지고 있지만 동시에 나쁘기도 하다. 세계의 현 상황도 그렇게 생각해야 한다. (p. 103)

 

무조건적으로 부정적인 것도 덮어놓고 희망적인 것도 다 아니다. 그렇게 부정적으로만 생각하지 않을만큼 세상은 희망적이며 마냥 희망적이지 않을만큼 세상은 부정적이다. 다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너무 부정적으로만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가난한 아이를 구하면 인구는 '단지' 늘어난다" 는 말은 옳은 것 같지만 사실은 정반대다. 극빈층 탈출이 늦어질 때 인구는 '단지' 늘어난다. 극빈층에 갇힌 세대가 오히려 다음 세대 인구를 더 증가시킬 것이다. 인구 성장을 멈출 수 있는 유일하게 증명된 방법은 극빈층을 없애고, 교육과 피임을 비롯해 더 나은 삶을 제공하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삶이 나아진 부모는 자녀를 더 적게 낳는 쪽을 선택했다. 이런 변화는 전 세계에서 일어났다. 아동 사망률을 낮추지 않고 이런 변화가 일어난 곳은 없었다. (p. 131)

저자가 오랜기간 세계 곳곳에서 구호활동을 해온 만큼 공중 보건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지적하는 부분이 책에서 자주 등장한다. '가난한 아이들을 계속 살리면 인구 과잉으로 지구가 멸망할 것이다' 라며 어린이구호사업을 하는 이들을 말리는 사람들이 은근 많다고 한다. 그 사람들에게 저자는 객관적으로 대응한다. '우리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아동 사망률을 줄여야 한다. 이는 고통받는 아이를 살리는 인간적 행위일 뿐 아니라 현재에도, 미래에도 전 세계에 이로운 행위다'(p. 131) 라고. 인구증가해결을 아동사망률에서 찾지 말라고 정확하게 지적한다.

'위험한 세계'라는 이미지는 요즘 그 어느 때보다 효과적으로 방송을 타지만, 실제 세계는 다른 어느 때보나 덜 폭력적이고 더 안전하다. (p. 152)

공포 본능은 세계를 이해하는 형편없는 지침이다. 공포는 우리가 가장 무서워하지만 위험하지는 않은 것에 주목하게 하고, 실제로 매우 위험한 것은 외면하도록 한다. (p. 172)

우리가 정말로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무엇이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해하려면 공포 본능을 누르고 실제 사망자 수를 따져봐야 한다. '공포'와 '위험'은 엄연히 다르다. 무서운 것은 위험해 보인다. 그러나 정말로 위험한 것에 진짜 위험 요소가 있다. 진짜 위험한 것보다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에 지나치게 주목하면, 즉 공포에 지나치게 주목하면 우리 힘을 엉뚱한 곳에 써버릴 수 있다. (p. 173)

 

문득 궁금해진다. 지금 코로나 사태는 '공포' 일까? '위험' 일까?

저자에게 묻고 싶지만... 저자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저자가 세운 재단에 묻고 싶지만 나는 한국어밖에 못한다;;;

하지만 일단 지금의 사태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세계적인 문제이므로 '위험' 이라고 여겨도 되는 것이겠지...?;;;

오늘날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에서 나타나는 마초적 가치는 아시아의 가치도, 아프리카의 가치도 아니며 이슬람의 가치도 아니고, 동양의 가치도 아니다. 스웨덴에서 60년 전에나 볼 수 있었던 가부장적 가치이며, 스웨덴에서 그랬듯 사회와 경제가 발전하면서 사라질 가치다. 불변의 가치가 결코 아니다. (p. 254)

저자가 13문제를 조사한 나라는 14개국인데 그 중에 한국이 포함되어 있다. 조사대상국가는 오스트레일리아, 벨기에, 캐나다, 핀란드, 프랑스, 독일, 헝가리, 일본, 노르웨이, 한국, 스페인, 스웨덴, 영국 미국이며, 각국의 성인 인구를 대표하도록 가중치를 부여해 구성한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이 조사결과는 다양한 그래프로 본문에 자주 이용된다. 14개국이 모두 침팬지보다 낮은 정답율을 보이긴 했지만, 실사례로 한국이 예로 들어질때 마다 마음이 조심스러워졌다.

가부장의 예를 한국에서 경험했던 일화를 인용하기도 하고 군부독재 시절을 (국가성장결과만 봤을때) 긍정적으로 판단하고 있는듯 보이기도 하는데, 만약 저자가 이 책을 들고 내한하여 북토크를 진행했다면 논쟁거리가 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여하튼, 가부장의 가치가 불변의 가치가 아니라는 말은 좋은데 그것을 과연 성장의 결과로만 볼 수 있을 것인지는 개인적으로 의문이다. 한국이 더 발전하면 가부장이 없어질까? 과연??

우리는 단순한 생각에 크게 끌리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그 통찰력의 순간을 즐기고, 무언가를 정말로 이해한다거나 안다는 느낌을 즐긴다. 주위를 사로잡는 단순한 생각에서 출발해, 그것이 다른 많은 것을 훌륭하게 설명한다거나, 다른 많은 것의 훌륭한 해결책이 된다는 느낌까지 매끄럽게 쭉 이어지기 쉽다. 세계가 단순해지고, 모든 문제는 단 하나의 원인이 있어 항상 그것만 반대하면 그만이다. 또 모든 문제는 하나의 해결책이 있어 항상 그것만 지지하면 그만이다. (p. 266)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이 편리하긴 하다. 나를 세상을 단순하게 규정할 수록 판단이 빨라질 수 있고 해결책도 쉽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옳은 방법이 아니다.

혈액형별 성격 이 생각났다. 혈액형은 크게 4가지이고 따라서 모든 사람을 4가지 성격유형으로 나눈다. 재미반 진심반으로 상대방이 성격을 판단할때 우리는 종종 혈액형을 묻곤 한다. 하지만 세상 사람이 딱 4가지 종류의 성격뿐이겠는가? 다양성을 이해하는데는 노력이 필요하고 받아들이는 데는 더 노력이 필요하지만 세상은 점점 더 다양해 지고 있고 우리는 단순성을 탈피해야 한다.

세계를 정말로 바꾸고 싶다면, 세계를 이해해야지 비난 본능에 좌우돼서는 안 된다. (p. 295)

지금 사는 세상이 부정적으로 보인다면 그래서 바꾸고 싶다면 우리는 객관적이 되어야 한다. 즉, 팩트풀니스 적 세계관을 장착해야 한다.

하지만 팩트를 체크하는 데 사용하는 데이터를 맹신해서도 곤란하다.

 

새로운 증거가 나오면 언제든지 예전의 단정에 의문을 제기하고, 그것을 재평가해 우리가 틀렸다는 사실을 기꺼이 시인해야 한다. (p. 231)

나는 수를 아주 좋아하지는 않는다. 데이터 광팬이긴 하지만, 데이터를 아주 좋아하지는 않는다. 데이터에도 한계가 있다. 나는 데이터가 수치 이면의 현실, 즉 인간의 삶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때만 데이터를 좋아한다. 하지만 수치만 분석해서 얻은 결론은 의심해봐야 한다. (p. 273)

데이터는 진실을 말하는 데 사용해야지, 아무리 의도가 좋아도 행동을 촉구하는 데 사용해서는 안 된다. (p. 337)

 

저자가 데이터를 많이 활용하는 것은 사람들이 그냥 말하면 믿어주지 않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데이터를 들이대면 어느 정도 수긍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데이터를 활용하는 데 있어서도 조심해야 할 점들이 분명히 있다. 저자가 데이터를 대하는 태도들이 그 조심성들이 안심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과 함께 유발 하라리의 '호모 데우스' 를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미래사회에서 데이터의 의미에 대해 좀더 폭넓게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저자가 왜곡된 진실들을 10가지루 나누어 밝혀내고 나서 '우리가 '정말로' 걱정해야 할 세계적 위험 다섯 가지'를 알려주는데, 세계적 유행병, 금융위기, 제3차세계대전, 기후변화, 극도의 빈곤 이 그것들이다. 이중 첫번째 위험이 이미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이 되어 있는 상태다. 우리는 지금의 이 현실을 팩트풀니스하게 잘 판단하고 있는 걸까?

저자는 사실충실성을 실천하는 방법들을 교육계, 업계, 언론인, 활동가, 정치인, 자신이 속한 조직 에 꼼꼼이 조언하고 있다.

그렇게 다시한번 마지막으로 당부하고 있다.

                            

세계는 생각만큼 그렇게 나쁘지 않다.

그리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알 수 있다. (p. 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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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이 괴델과 함께 걸을 때 - 사고의 첨단을 찾아 떠나는 여행
짐 홀트 지음, 노태복 옮김 / 소소의책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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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의 첨단을 찾아 떠나는 여행

과학과 수학, 그리고 철학의 최근 쟁점을 읽고

위대한 지적 사상가들을 소환한다!

 

 

저자 짐 홀트는 미국의 철학자이자 현대 과학 작가라고 한다. 수학, 과학, 그리고 철학이 함께 어우러진 글을 다양한 매체에 기고해 왔는데, 그렇게 20년간 써온 글들을 모은 것이 이 책이다. 한 흐름에 따라 쓰여진 책이 아니므로 주제에 따라 일부 중복되는 내용들이 등장하는 것도 그래서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읽다보니 생각보다 과하게 전문적이었다. 그제야 표지에 써있던 '세계적인 과학 학술지 <네이처> 추천 도서' 라는 문구가 새삼 눈에 들어와 박혔다. 학.술.지. 에 실렸던 글들이었구나;;; 그리고 많은 글들이 어떤 책 을 중심으로 풀어내고 있었다. 책 읽던 도중 앞뒤를 다시 훑어보니 책 뒤편에 '감사의 말'에서 이 책의 글들은 대부분 '북리뷰'였음을 알 수 있었다. 즉, 이 책은 어렵고 복잡다단한 사고의 유희였긴 했으나 내가 기대했던 일괄적이고 포괄적인 깨달음을 주는 사상서는 아니었다.

'감사의 말'을 토대로 글이 실린 매체들을 정리해 보았다. 글의 성격을 알면 글의 중심을 파악하기가 개인적으로 수월해서...

(글이 발표된 시기를 알 수 없다는 것이 아쉬웠다. 20년간 쓴 글들인데 그중 언제 쓰여진 글인지 확인할 수 있는 글이 별로 없었다.)

잡지에 (아마도 칼럼식으로 쓰여져) 실린 글이 13, 북리뷰 가 11 이다. 8부는 15편의 글이 다른 부의 글들에 비해 4~5페이지 안팎정도 분량의 비교적 짧은 글들이라 일종의 에세이정도로 읽히긴 한다. (하지만 내용까지 에세이적이지는 않다;;;) 북리뷰의 경우 글의 중심에 있는 책도 나름 짐작해서 제목을 적어보았다. 하지만 북리뷰 임에도 어떤 책에 대한 리뷰인지 알수 없거나, 북리뷰가 아님에도 다양한 책들이 언급되곤 했다.

1부> 영원성의 움이는 이미지

1. 아인슈타인이 괴델과 함께 걸을 때 --- [뉴요커]

2. 시간은 거대한 환영에 불과한 것일까? --- [라팜스 쿼터리]

2부> 수가 활약하는 세 가지 세계

3. 숫자 사나이 --- [뉴요커]

4. 리만 제타 추측, 그리고 최종 승자의 웃음 --- [이어 밀리언]

5. 프랜시스 골턴 경, 통계학... 그리고 우생학의 아버지 --- [뉴요커]

3부> 수학, 순수하고 불순한

6. 수학자의 로맨스 --- [뉴욕 리뷰 오브 북스] < 에드워드 프렌켈의 [내가 사랑한 수학] >

7. 고등수학의 아바타들 --- [뉴욕 리뷰 오브 북스] < 마이클 해리스의 [변명이 없는 수학] >

8. 브누아 망델브로와 프랙털의 발견 --- [뉴욕 리뷰 오브 북스] < 브누아 망델브로의 [프랙털리스트] >

4부> 더 높은 차원들, 추상적인 지도들

9. 기하학적 창조물 --- [뉴욕 리뷰 오브 북스] < 에드윈 애벗 [플랫랜드 : 다차원 세계의 이야기] >

10. 색깔의 코미디--- [뉴욕 리뷰 오브 북스]

5부> 무한, 큰 무한과 작은 무한

11. 무한한 비젼 --- [뉴요커]

12. 무한 숭배 ---[런던 리뷰 오브 북스] < 3인공저 [무한에 이름 붙이기] >

13. 무한소라는 위험한 발상 --- [뉴욕 리뷰 오브 북스] < 에이브러햄 로빈슨 [비표준 해석] >

6부> 영웅주의, 비극, 그리고 컴퓨터 시대

14. 에이다를 둘러싼 논란 --- [뉴요커]

15. 앨런 튜링의 삶, 논리, 그리고 죽음 --- [뉴요커]

16. 닥터 스트레인지러브가 '생각하는 기계'를 만들다 --- [뉴욕 리뷰 오브 북스] < 조지 다이슨 [튜링의 대성당] >

17. 더 똑똑한, 더 행복한, 더 생산적인 ---[런던 리뷰 오브 북스] < 니콜라스 카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 인터넷이 우리의 뇌 구조를 바꾸고 있다] >

7부> 다시 살펴보는 우주

18. 끈이론 전쟁, 아름다움은 진리인가? --- [뉴요커]

19. 아인슈타인, '유령 같은 작용', 그리고 공간의 실재 --- [뉴욕 리뷰 오브 북스]

20. 우주는 어떻게 끝나는가? --- [슬레이트]

8부> 짧지만 의미 있는 생각들 --- [링구아 프랑카] (15개 글 중 일부는 슬레이트 와 뉴욕타임스북리뷰 와 뉴욕타임스매거진 에 실림)

9부> 신, 성인, 진리, 그리고 헛소리

21. 도킨스와 신 --- [뉴욕 타임스 북 리뷰] < 리처드 도킨스 [만들어진 신] >

22. 도덕적 성인에 관하여 --- [뉴요커] < 닉 혼비의 [좋은 사람 되는 법] >

23. 진리와 지칭 --- [링구아 프랑카]

24. 아무 말이나 하세요 --- [뉴요커] < 해리 프랑크푸르트의 [헛소리에 관하여] >

이 책의 글들이 북리뷰에 실렸다고 해도 북리뷰처럼 읽히지 않는것은 딱 한권의 책을 꼬집어 말하기 보다는 다른 내용들과 섞어 풀어내고 있기 때문이고,

이 책의 글들이 잡지에 칼럼식으로 실렸음에도 북리뷰처럼 읽히는 것은 과학과 수학과 철학적 내용이 담겼을 다양한 논문과 책을 바탕으로 풀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참 묘한 것이 모든 글들이 굉장히 중립적이다. 그러나 어느 한쪽 입장을 대변하지 않는 것 같긴 한데, 그게 참 기묘하다고 느껴지는 것이 칭찬과 욕을 동시에 하고 있달까... 이랬다저랬다 식의 입장변화는 아닌데 이쪽저쪽 절충하는 방식이 교묘해 보였다.

예를 들어,

미 국방부에서 군사 시스템을 제어하기 위해 사용하는 프로그맹 언어의 명칭은 '에이다Ada' 이다. 조지 고든 바이런 경의 딸인 에이다 바이런의 이름을 땄다. 오거스타 에이다 바이런-결혼 후에는 러브레이스 백작 부인이 되는 인물-은 나중에 컴퓨터 프로그래밍이라고 불리는 작업을 처음 했다고 널리 알려져 있다. 평생 그녀는 수학 천재, 일명 '수의 여자 마법사'로 통했다. (p. 235)

(메나브레의 프랑스어 논문 '해석기관 개요' 를 번역하며 그녀가 붙인) 주석에 담긴 내용 중에서 어느 것이라도 그녀가 '독창적으로' 알아낸 것이 있는지는 의심스럽다. (p. 243) 사실 동물 자기장을 다룬 논문에 관해 쓰다 만 검토서를 빼고는 여생 동안 아무런 중요한 저술을 남기지 않았다.(p. 245) 사실 에이다는 미적분의 초급 과정을 배우는 학생이었을 뿐이다. (p. 247)

최초로 컴퓨터 시대의 도래를 알린 이가 바로 신경이 예민한 젊은 여인이자 시인의 딸이자 자신을 요정으로 여긴 에이다 러브레이스다. (p. 249)

14. 에이다를 둘러싼 논란

 

 

에이다의 현재적 위치를 조명하며 과거 에이다의 삶을 통해 에이다의 과대망상과 부풀려진 명성을 비판하는 내용으로 배비지나 다른 인물들의 중요성과 함께 쭉 서술하는듯 하다가 결론에 가서는 명확한 판단을 보류하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에이다가 중요했다는 걸까? 의미없다는 걸까?

'더 똑똑한, 더 행복한, 더 생산적인' 이란 글에서 컴퓨터 시대의 도래와 관련된 서술은 더욱 교묘했다.

책을 읽는 내내 전반적으로 저자의 서술방식이 대중적이라고 여겨지지는 않는다. 굉장히 학자적이다. 내게는 그랬다.

 

나는 유머와 수학은 100만 년이 지나면 자리를 바꾸리라고 본다. 하지만 아득히 먼 미래에 농담은 어떤 모습일까? 더 차원 높은 웃음은 부조화가 영리한 방식으로 해소되어 즐거운 인식의 감정적 흥분을 일으킬 때 표출된다. 기이하고 불가사의한 무언가를 이해한 줄 알고 있다가, 갑자기 아무것도 쥐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그런 웃음이 생기는 법이다. 리만 제타 가설은 다가올 영겁의 세월이 지나 마침내 풀릴 때, 그런 해소를 우리에게 선사할 것이다. 그때에는 즐거운 웃음소리가 퍼지는 가운데 소수의 플라톤적 독보성은 사소한 동어반복으로 변하고 말 것이다. 오늘날 인간 정신이 생각해낸 가장 위대한 문제가 100만 년 후에는 학생들에게나 어울리는 약간 천박한 농담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정신이 번쩍 든다. ('리만 제타 추측, 그리고 최종 승자의 웃음 中 p. 80)

미래의 학생들에게 농담이 될지도 모를 수학적 과학적 철학적 논제들이, 저자는 술술 풀어내는 그 논리들이 내게는 그저 어렵고 어려웠다.

물론, 새로 알게 된 것들도 많았고 따라서 배운 것들도 많았다.

'수' 나 '시간' , '차원' 에 대한 새로운 사고, '대수와 기하'의 통합에 대한 논제, '색깔정리' 를 둘러싼 무용한 논쟁을 통한 수학적 성격, '무한' 을 통한 수학과 철학 그리고 과학의 연결, 수학사와 과학사에 가까운 이론들의 발전사, '끈이론' 에 대한 논쟁사, '양자물리학' 의 두 입장(물리학이 예측을 하기 위한 수단인가, 아니면 실재를 통합적으로 드러낼 원대한 방안인가), 우주 종말론의 세 입장( 빅크런치- 최종적인 붕괴, 빅칠-꾸준한 속도로 영원한 팽창, 빅크랙업-점점 더 가속되는 영원한 팽창), 아이디어의 도용과 착상에 대한 차이, 괴델, 골턴, 프렌켈, 앨런 튜링, 폰 노이만, 푸엥카레의 일화들 은 새롭고 흥미로웠다. (특히, 앨런 튜링과 골턴 경)

하지만 역시나 이 책을 제대로 이해하기엔 내 지적수준이 한참 모자람을 깨달아야 했다.

저자는 이런 글들을 쓰면서 이런 글들의 내용을 소통할 수 있는 지인들이 옆에 많았던 모양이지만, 오직 이 한권의 책으로만 그 많은 과학적 추측과 수학적 논리와 철학적 통찰을 경험하기에는 나로서는 영... 방법이 없었다;;; 천재들의 창의성을 다룬 '생각의 탄생' 이라는 책에서 느꼈던 소외감을 이 책을 통해 다시한번 느끼며 아인슈타인이 괴델을 만났을때 느꼈던 심정을 저자와 공유하지 못한 나를 탓해보는 걸로 마무리한다.

 

 

연구소의 다른 회원들은 이 우울한 논리학자를 찜찜해하고 난처해했지만 아인슈티안만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자신이 연구실에 나오는 까닭은 '잔지 쿠르트 괴델과 함께 집으로 걸어가는 특권을 누리기 위해서' 라고.

지적인 고립의 감정을 공유했던 둘은 서로의 사귐에서 위안을 찾았다. 연구소의 또 다른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둘은 다른 누구와도 이야기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자기들끼리만 이야기하길 원했다" (p. 19)

 

 

-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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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례한 시대를 품위 있게 건너는 법 - 차별과 배제, 혐오의 시대를 살아내기 위하여
악셀 하케 지음, 장윤경 옮김 / 쌤앤파커스 / 2020년 5월
평점 :
절판


차별과 배제, 혐오의 시대를 살아내기 위하여

공존을 위한 포용과 연대, 품위 있는 삶에 대한 고민

 

 

무례하다 라는 말을 체감하며 살고 있는 시대이다. 무례, 말 그대로 예의가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품위 라는 단어가 그에 상응하는 말인 것일까? 품위 - 사람이 갖추어야 할 위엄이나 기품

무례 를 예의가 있다 없다 로 구분할 수 있다면 품위는 예의를 아우르는 그 무언가 가 아닐까 어렴풋이 짐작해본다.

이 세상에서 자신이 세운 높은 기준에 도달한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또한 높은 기준은커녕 일반적으로 괜찮다고 여겨지는 최소한의 수준에조차 도달하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내가 여기에서 다루려는 이야기는 그런 것이 아니다. 나는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의 기본적인 예의와 품위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p. 11)

저자는 어려운 철학적 담론이나 심오한 삶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겪고 살아가고 있는 일상에 대해 이야기를 건넨다. 무심코 지나쳤던 시간들을 다시한번 생각해보라고.

얼마 전부터 품위가 상실된 언행과 현상들이 전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는데, 이는 그저 한번 몰아치고 마는 파도가 아니라 온 세상을 뒤덮을 정도로 광란의 소용돌이처럼 휘몰아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현재 우리는 인간적 품위가 결여된 한 남자가 미합중국의 대통령이 되는 것을 막지 못한 세상에 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가 이끄는 정부는 스스로의 비열한 언행을 숨기기는커녕 오히려 과시하는 듯하다. 도널드 트럼프가 해온 그 모든 불쾌한 언행들은 결코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 그가 쏟아낸 너무나도 많은 혐오의 언행은 충분하고도 남는다. (p. 12)

무례의 대표적인 예가 트럼프 대통령이다. 일상을 이야기하려 하지만 일상은 정치나 사회문제와 외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책은 시사평론서는 아니지만 현실칼럼으로 다양한 실제적 무례한 경우들을 끄집어낸다. 소설이든 사회비평서든 여하튼 현실을 반영한 책을 읽다보면 트럼프가 자주 등장한다. wow 이렇게 세계적으로 욕먹는 대통령이 또 있었던가 싶다. 실은 그렇기 때문이 더 위기일수 있다. 반면교사를 훌륭한 교사인줄 알고 따라하는 이들이 넘쳐나고 있는 것을 보면.

예의 없는 사람, 배려 없는 사람 그리고 거칠고 폭력적인 사람 등 행태는 각기 다르지만 이들이 결국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또한 한 사람 한 사람이 겪은 불쾌한 일화는 수많은 이야기가 되어 하나의 역사를 이룰 것이다. 현재 우리의 일상이 역사로 남게 된다고 생각하면 조금 두렵기까지 하다. 그러면서 몇 가지 질문이 떠오른다. 지금까지 풍요로운 사회에서 궤도를 이탈한, 예의와 품위가 결여된 언행이 유독 늘어난 이유가 무엇일까? 그동안 인류가 쌓아올린 문명이 상실되고 있는 오늘날의 현상은 단순히 생존 경쟁의 산물이 아닌, 시대적 위기로 보아야 옳지 않을까? 지금 우리 시대가 마주한 절박한 문제는 과연 무엇일까? (p. 15)

이 책의 원제는 Über den Anstand in schwierigen Zeiten und die Frage, wie wir miteinander umgehen 이다.

나는 독일어를 모르므로 당연히 번역기에 물어봤다. '어려운 시기에 품위 있는 것에 관하여 질문하다, 우리가 어떻게 상대하는지' 정도로 해석되는 듯 하다.

그렇다. 이 책의 원제에서 핵심은 '질문'이었다. 그런데 어쩌다 한국어판의 제목은 '-는 법' 이라는 답이 되었는가?

저자는 지금을 일상을 대화하듯 말하면서 툭툭 질문을 던진다. 그런데 그 질문들이 질문으로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이 '답'으로 변할 수 있었던 이유인듯 싶다. 일종의 소크라테스적 방법이랄까? 한번에 답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질문을 하면서 스스로 답을 찾게 하는.

품위는 법도 아니며 도덕도 아니라고 괴테르트는 이야기한다. 이렇게 설명하면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즉 품위는 "유행과 유사하면서 이를 넘어서는 개념으로, 해가 바뀔 때마다 (반드시) 입어야 하는 옷이 있듯이 각각의 시대에 발생하는 문제를 매번 새로운 생각으로 해결하는 방식" 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여기서 몇 가지 질문이 떠오른다. 현재 우리가 사는 시대에서 지켜야 하는 품위는 과연 무엇일까? 지금 우리는 어떤 생각을 가져야 하며, 지금 우리가 마주한 문제는 무엇일까? (p. 39)

현대 사회는 결속과 분열이 동시에 이루어지는데, 그 한가운데에 이른바 '중간 세계'가 있다. "이 중간 세계에서 개인은 타인과 서로 조율하고 화합하며, 서로를 받아들이면서 (사적 영역을 존중하며) 나란히 성장해 간다" 우리가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품위가 존재해야 할 곳은 바로 이 영역이다. (p. 41)

품위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은 책을 읽는 내내 다른 형식으로 자꾸 등장한다. 이것이 품위인가? 아니 저것이 품위인가? 그렇게 읽는이에게 품위가 무엇인지 생각의 업그레이드를 시켜나간다. 질문을 통해.

판타지소설을 읽으면 중간계가 등장하곤 한다. 신들이 사는 천상계와 괴물비슷한 여하튼 암흑적 존재가 사는 지하계와 그리고 중간계. 인간은 늘 이 중간계에 산다. 품위를 중간계에 놓고 보니 얼핏 이해가 더 되는 기분이 든다. 사람이 사는 세상에도 이처럼 '중간 세계' 가 있다. 저~ 꼭대기도 아니고 저~ 밑바닥도 아닌 이 중간세계가 중심을 제대로 잡아야 사회가 흔들리지 않는다.

우리는 한동안 타인과 공존하는 방법을 고심하지 않았다. 이제는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사회라는 공동체 안에 사는 우리 인간들이 어떻게 더불어 지내야 하는지 깊이 고민하며 공론화해야 할 시기가 온 것이다. 여기에는 타인과 대화할 때 지켜야 할 어조와 성량 그리고 단어 선택까지도 퐘된다. 즉 타인을 대하는 모든 태도와 자세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p. 48)

지금 우리가 왜 품위를 생각해야 하는가? 함께 살기 위해서다. 사회는 혼자 살아가는 곳이 아니다. 무례 라는 단어 자체가 상대방으로 부터 경험되어지는 것이다. 사회가 분열될 수록 불안감이 높아질수록 공존의 방법은 평화적이어야 한다. 그 방법의 핵심으로 저자는 품위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의 주제는 법이 아니라 공생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직 법적으로 통제되지 않는, 이 새로운 세계에서 타인과 더불어 살려면 각 개인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서는 자세와 배려이다. 이에 더해 우리 모두가 각각 한 명의 시민으로서 진실과 거짓을 분별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이를 적극적으로 시도해야 한다. (p. 77)

인터넷상에서 벌어지는 무례의 경우를 이야기하는데 저자는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고 있다. 그 예중에 2017년 3월 부산에 사는 미국출신 교수 로버트 켈리의 BBC 인터뷰 영상이 있었다. 당시 탄핵관련 주제로 한국에 사는 정치학 교수로서 그를 인터뷰한 것이었는데, 내용보다도 인터뷰도중 등장한 켈리의 아이들과 아내로 인해 화제가 됐었다. (집에서 스카이프로 인터뷰했었다) 나도 기억이 난다. 귀여운 해프닝으로 티비에서 소개가 됐었다. 그런데 저자는 이후의 댓글논쟁에 집중한다. 아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는 장면을 두고 '보모' 라는 표현이 언급되면서 동양인 아내는 왜 보모로 인식하냐며 댓글로 갑론을박이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익숙히 알고 있듯이 이러한 댓글논쟁에서 품위는 커녕 존중이나 예의는 찾아볼 수 없기 마련이다. 인터넷 사회에서의 품위에 대해 저자는 더욱 심각하게 문제임을 지적한다.

우리 사회는 지위나 권위가 높은 이들의 태도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즉 그들의 언행을 품위나 예의의 기준으로 삼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이 일상에 스며들어 습관으로 자리하면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분별력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무엇을 받아들이고 또 무엇은 받아들이지 말아야 할까? (p. 97)

또다시 트럼프의 일화를 등장시켜서 그 악영향을 우려하며 저자는 트럼프 외에도 다른 지도자급 인물들의 걱정스런 일화들을 알려준다. 다양한 매체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들의 파급력은 무시해서는 안된다. 누가 따라하겠느냐고? 의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댓글에서 누군가 함부로 말하는 순간 그렇게 누군가 시작하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 험한 댓글들이 쏟아지는 것을 수시로 볼 수 있는 사회에 살고 있다. 익명의 한사람에게도 이렇게 영향을 받는데 하물며 사회의 리더가 수시로 그런 행동을 보인다면?

지금 우리는 지나온 길을 되돌아가고 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현재 우리는 지금 처한 상황이 무언가 잘못되었으며, 어딘가 잘못된 길로 들어서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어디로 가야 하며 또 어디로 가지 말아야 하는지도 다들 인지하고 있다. 그럼 이쯤에서 질문이 하나 떠오른다. 왜 우리는 그것을 알면서도 솔직하게 시인하지 않는 것일까? (p. 112)

이 사회가 역행하고 있는가? 과연 그럴까? 과거가 지금보다 더 품위있었다고? 지금이 더 무례하다고?

나는 잘 모르겠다. 늘 무례와 품위가 경쟁하듯 공존해왔다. 어느쪽으로 쏠리느냐에 따라 표면적 모습이 달라 보일 수 있지 않을까.

현실 세계에서는 나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며, 누구도 나에게 무언가를 묻지 않는다. 설령 묻는다 하더라도 제대로 된 답을 할 수가 없다. 또한 이 현실 세계에서는 대단하든 미미하든 간에, 인생이 발전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 이런 이유로 사람들은 자기만의 세계를 세운다. 현실 세계에서는 자기 자신이 완전히 무의미한 존재로 느껴지기 때문에 이를 견딜 수 없어 확실하고 안전한 세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p. 141)

자기만의 세계에 대한 규칙이 확고한 사람일수록 사실은 현실에 대한 불안감이 높을 수 있다는 말에는 일면 공감한다. 취업이 안되는 청년이 채식주의자로 변신하여 자신의 일상에서 엄격히 자신을 관리하는 것이 외부적 불안 요소에 대해 자신을 지키는 방법 중 하나일 수 있다는 저자의 사례에도 그럴 수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저자도 말하듯이 어떤 이유에서는 개인화로 자꾸 찢어지기만 하는 것은 사회적 측면에서 봤을때 불안요소가 될 수 있다. 파편화된 개인들은 거짓 뉴스에 더 쉽게 휩쓸리기 마련이다.

우리는 이 책을 시작할 때만 해도 품위라는 개념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내릴 수 없었다. 그런데 여기까지 다다르니 그 개념에 조금은 가까워진 듯하다. 한 인간이 스스로를 통제하는 행위라고 말이다. 아니면 살을 좀 더 붙여서 이렇게 표현하는 건 어떨까. 품위란 다른 이들과 기본적인 연대 의식을 느끼는 것이며, 우리 모두가 생을 공유하고 있음을 느끼는 것이라고. 또한 삶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의식은 크든 작든 모두 동일하게 중요하며, 이를 일상의 모든 상황 속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마음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p. 207)

저자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에 감동한다. 로마제국의 황제임에도 스스로에 대한 검열이 철저했던 그가 남긴 기록은 '명상록'으로 대대손손 가르침을 주고 있지만, 그가 그토록 어렵게 유지했던 품위가 그 자신에게만 지켜졌던 것임을 역사는 (안타깝지만) 이미 알려주고 있다. 지금 이 시대에 로마황제도 지키기 어려웠던 품위를 일상에서 지킬 수 있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 것인가?

다른 건 물라도, 인간은 자신의 인생만은 제대로 통제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한때 우리 사회는 민주주의가 통제의 한 부분을 담당했지만 오늘날 민주주의는 그 힘을 잃었다. 이제 더 이상 민주주의는 통제를 보장하지 못한다. 그로 인해 사람들은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어떻게든 통제의 힘을되돌리려 애쓰고 있다. (p. 225)

"네가 만약 다른 사람을 바꾸려고 한다면 이내 실패하게 될 거야. 실제로 네가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 뿐이지. 바로 너 자신. 자신 외에 다른 사람을 바꿀 수 없어. 그러니까 너 스스로 세상을 보다 호의적으로 대한다면 아주 작은 티끌만큼이라도 세상은 더욱 나아지게 될 거야" (p. 228)

다른 것은 몰라도, 적어도 우리는 이들을 존중할 책임이 있다. 또한 이들을 이해하려 노력하면서 인정과 배려 그리고 호의와 친절을 베풀어야 한다. 여기에는 '모든 유형의 인간' 과 연대하려는 의식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 연대감은 우리가 인간다운 품위라 칭하는 가치의 근본적인 토대이기도 하다. 각 개인의 문제는 곧 우리 모두의 문제이다. (p. 244)

인간이 인간이기에 기본적으로 지녀야 할 품위가 무엇일까? 인간답다는 것이 무엇일까? 상대적인 개념일수록 쉽게 답할 수 없다.

그렇기에 어쩌면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른 누구에게 보다도 일단은 나 자신에게 계속 질문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나는 품위가 있는 인간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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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지기 2022-07-16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더 무례한 시대로 역행하고 있다는 주장에는 크게 공감이 안되었어요. 정말 과거에 비해 다름을 용납하지 못하는 사회가 되었나? 오히려 그렇지 않기에 다원화된거 아니야? 싶기도 하고요.

정성스러운 리뷰 잘 읽었습니다! ㅎㅎ

LILLY 2022-07-19 12:08   좋아요 1 | URL
공감하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키르케
매들린 밀러 지음, 이은선 옮김 / 이봄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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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로마신화를 좋아하고 역사를 좋아하는 이에게 신화적 존재를 모티브로 한 소설은 일단 소재자체부터 끌리게 되지 않을까. 내게 이 책이 그랬다.

고전학을 공부하고 라틴어와 고대그리스어, 세익스피어를 가르쳐왔다는 작가의 첫번째 소설은 '아킬레우스의 노래' 라고 한다. 저자의 이력과 첫번째 소설제목으로 보건대 자신의 전공분야를 잘 살린, 신화적 요소를 끌어왔으나 현대적 의미로 각색한 작품이지 않을까 예상했었다. 저자의 두번째 소설이라는 이 작품을 읽고 나니 그렇지 않다는 것을 여실히 깨달았다. 저자는 이 시대의 베르길리우스 였다.^^

일리아드와 오뒷세이아를 아는 사람이라면 '키르케' 라는 이름은 한번쯤 들어봤을 이름이다. 하지만 오딧세우스의 귀향길에 잠깐 등장했던 존재들중 하나였을 뿐, 괴물이든 거인이든 마녀이든 그저 주인공을 돋보이게하기 위한 보조장치였을 뿐 그 자체로서의 서사는 별게 없었다. 아니 별게 없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소설을 읽고나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일리아드와 오뒷세이아를 적절히 응용해 아이네이스 라는 로마건국서사시를 써낸 베르길리우스 처럼, 저자는 이 고대의 서사시 3개를 뒷배경으로 하는 키르케 만의 서사를 소설로 완벽히 구현해내고 있었다.

키르케의 어머니는 물의 님프 페르세였다. 하지만 다른 님프들과 뭔가 달랐다.

<<그녀는 가녀렸을지 몰라도 뽀족한 이빨이 달린 뱀장어처럼 꾀가 많았다. 자기 같은 존재가 힘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았고, 사생아를 낳거나 강둑에서 몸을 섞는 건 알맞은 방법이 아니었다. (p. 11) >>

키르케의 아버지인 태양의 티탄신족 헬리오스를 만났을때 페르세는 결혼을 요구했고, 당당히 헬리오스의 아내자리를 꿰찮다. 그리고 4남매를 낳았다.

<<어머니의 환심을 사고 싶은 마음에 곁에 남은 이모가, 눈이 노랗고 우는 소리가 특이하고 가늘다며 내 이름을 매hawk라는 뜻의 키르케라고 지었다. (p. 14) >>

키르케가 태어났을때, 미래의 사위를 궁금해하는 페르세에게 헬리오스는 '왕자겠지' 라 말했고 페르세는 인간이냐며 혐오스러워했다.

<<"바보 같은 키르케" (p. 22)

어느 누구도 나는 안중에 없었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닌, 돌멩이였다. 수천 곱하기 수천의 어린 님프 가운데 한 명일 뿐이었다. (p. 34) >>

키르케는 부모와 형제자매에게 따돌림과 무시를 당하며 성장하는 내내 있는듯없는듯한 눈에 띄지 않는 존재로 외롭게 견뎌야 했다.

<< "당신 눈에 제가 얼마나 추하게 보일지 압니다"

아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나의 외할아버지의 신전은 눈부신 님프와 근육질을 자랑하는 강의 신들로 가득하지만 나는 그 누구보다 너를 바라보고 싶다. (p. 53) >>

바닷가에서 우연히 인간 어부 글라우코스를 만났을때, 처음에 그는 여신을 감히 쳐다보지도 못했지만 만남이 잦아지면서 둘은 친구와 연인 사이 그 어딘가에서 서로를 의식하고 있었다.

<<"아가, 아무리 작은 거라도, 하다못해 네 샘물에 포도주를 붓는 것도 좋으니 반드시 뭔가를 바치게 해야 한단다. 안 그러면 고마운 마음을 잊을 거야. 나중엔." (p. 58) >>

글라우코스라는 인간을 위해 뭔가 해주고 싶어하는 키르케에게 외할머니는 신의 취해야 할 입장을 알려주지만, 키르케는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땅바닥에 쓰러져 흐느꼈다. 그 꽃의 즙을 먹고 드러난 그의 진면모는 파랗고 지느러미가 달렸고, 내 것이 아니었다. 너무 아파서 죽을 것만 같았다. 칼날이 내 가슴을 관통하는 듯 날카롭고 격렬했다. 하지만 나는 죽을 수 없는 몸이었다. 데일 듯한 순간을 견뎌가며 게속 살아가야 했다. 우리 신족이 육신을 버리고 돌이나 나무로 지내는 쪽을 선택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이런 상심이었다. (p. 74) >>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 에 짧게 나오는 '어부가 우연히 신이 된 이야기' 가 키르케를 만나 한편의 러브스토리로 완성됐다. 늘 그렇듯 첫사랑은 비극이었다. 그 비극도 비극이지만, 영원히 사는 신들이 삶을 멈추는 방법을 알려주는 이 문장에 나는 뒤통수를 맞은 듯 했다. 죽을 수 없는 존재의 선택, 신성한 자연, 신성! 어쩜 이렇게 똑 떨어지는지!!

<<"아버지 생각이 틀렸어요"

"방금 뭐라고 했느냐?">>

그동안 무시당해왔던 키르케가 서서히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존재감 조차 처음엔 무시당했지만 키르케는 꿋꿋하게 자신만의 삶을 만들어가기 시작한다.

<<"그런 술수를 파르마케이아라고 부릅니다. 세상에 변화를 유발하는 능력이 있는 약초 파르마콘을 쓰기 때문인데, 신들이 피를 흘린 곳에서 피어나기도 하고 지상에서 지천으로 자라기도 하죠. 그 약초의 능력을 끄집어내는 것이 재능이고 저 혼자 그런 재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크레테에서는 파시파에가 독약으로 왕국을 다스리고 바빌론에서는 페르세스가 육신에 영혼을 다시 불어넣습니다. 키르케가 마지막으로 능력을 입증한 셈이죠" (p. 89)

"파르마키스" 내가 말했다. 마녀 라는 뜻이었다. (p. 90) >>

메데이아의 아버지인 콜키스의 왕 아이에테스, 미노타우로스를 낳은 미노스의 왕비 파시파에, 그리스신들의 영향력이 닿지 않는 곳으로 간 페르세스 모두 키르케의 동생들이었다.

<<앞에서도 밝혔다시피 나에게는 일말의 자존심이 있었고 그래서 다행이었다. 그보다 더 많았다면 치명적이었을 것이다. 이쯤에서 설명하자면 마법은 머릿속에 떠올리고 눈만 감빡이면 되는 신적인 능력이 아니다. 마법은 만들고 작업하고 계획하고 모색하고 파헤치고 말리고 다지고 빻고 끓이고 그 위에 대고 말을 걸고 노래를 불러야 한다. 그걸 다 했어도 실패할 수 있다. 신들의 방식과 다른 점이다. (p. 110)

하지만 아이에테스의 말마따나 내가 가장 재능이 있는 분야는 변신이었고 계속해서 생각이 나는 것도 그것이었다. (p. 114) >>

인간을 신으로 변신시켰고, 님프를 스퀼라 라는 괴물로 변신시켰지만 그것은 그저 신비한 꽃의 능력이라고 생각했다. 변신에 대한 스스로의 고백 덕분에 키르케가 신전에서 쫓겨나 외로운 섬에 유배당했을때 그 꽃이 없는 그 섬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키르케는 포기하지 않았다.

<<"신들은 대부분 천둥과 바위 소리를 내지. 인간과 얘기할때 소곤소곤하지 않으면 귀가 갈기갈기 찢걸 거야. 우리가 듣기에 인간들의 목소리는 희미하고 가늘지. 흔한 일은 아니야. 하지만 하급 님프들이 인간의 목소리로 태어나는 경우가 가끔 있어. 너처럼 말이야. 그들은 우리를 무서워하듯 너를 무서워하지는 않을거야"

인간의 목소리를 한 신이라니. 충격이었지만 머릿속 한구석에서는 그럴 줄 알았다는 인식 비슷한게 느껴졌다. (p. 122) >>

아무도 찾아오지 않고 어디로도 갈 수 없는 섬에서 키르케가 마녀로서의 성장을 하기 시작했을 때 호기심덩어리 헤르메스가 찾아오곤 했다. 그에게 새로운 장난감이 필요했을 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키르케는 그의 방문만이 유일했기에 반갑고 반가웠다. 그리고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해 세상을 향한 눈도 띄여지고 있었다. 그리고 신들의 세계에 대해서도.

<<"최대한 잘 감당하는 수밖에" (p. 195) >>

헬리오스의 신전에서 자신만의 세계속에 살다가 갑자기 섬에 내동댕이 쳐진 후 키르케가 모질게 세상을 알아가고 겪어나가는 동안 그 누구도 키르케에게 진심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그렇게 키르케는 마녀가 되어갔다. 그리고 다이달로스와 미노스의 궁전에서 파시파에가 미노타우로스를 낳는 것을 돕게 됐을때 키르케는 오래전 프로메테우스가 자신의 질문에 대답했던 말을 되새기고 있었다. 인간을 돕다 벌을 받은 신, 프로메테우스가 준 교훈 같은 그 말...

<<그들이 청한 건 주술이 아니라 우리 신족의 가장 오랜 의식이었다. 카타르시스. 연기와 기도, 물과 피로 하는 정화였다. 내 쪽에서는 그들이 죄를 지었다면 어떤 죄를 지었는지 심문할 수가 없었다. 요청에 응하거나 거부하거나 둘 중 하나만 할 수 있었다. (p. 211) >>

이아손과 메데이아가 정체를 숨기고 정화를 요청하러 섬에 방문하는 부분을 읽으며 또 한번 감탄했다. 고대의 신화적 사건들이 어쩌면 이렇게 자연스럽게 키르케와 연결될 수 있는지. 에우리피데스의 비극 '메데이아'를 분명 읽었었는데.. 메데이아에 너무 집중하다 보니 키르케가 나왔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왔더라도 스치듯 잠깐 언급되었을 것인데... 저자의 짜임새가 기막히게 감탄스러웠다.

<<님프들이 내 주변에서 맴돌았다. 숨죽인 그들의 웃음소리가 복도를 타고 흘러들어왔다. 그나마 그들의 형제가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물론 그런 사태가 벌어질 일은 없었다. 아들들은 절대 벌을 받지 않았다. (p. 236) >>

헤르메스가 퍼뜨린 소문들로 키르케는 만만한 웃음거리가 되고 아버지신들이 딸 님프들을 벌주러 일정기간 격리시키는 유배지가 되는 키르케의 섬, 아이아이에. 그리고 벌은 항상 딸들만 받았다. 신들의 세계에서도 여신들의 존재란, 하급신 님프들의 존재란, 님프 대우조차 받은 적 없는 키르케의 존재란...

<<님프들은 신부라고 불렸지만 세상은 우리를 그렇게 보지 않았다. 우리는 식탁 위에 차려진, 아름답고 늘 새롭게 바뀌는 진수성찬이었다. 그리고 도망치는 데 영 젬병이었다. (p. 252) >>

좌초한 인간의 배들이 처음엔 반가웠다. 외로움에 사무쳐 우연히 섬에 닿은 인간들이 그저 반가워서 극진히 대접했건만... 인간의 목소리로 말하고 혼자 사는 여신 키르케는 인간남성들의 눈에 그저 멋잇감이었다. 그렇게 키르케의 돼지우리에 돼지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돼지우리에 돼지가 넘쳐나던 어느날 좀 다른 인간이 나타났다.

<<"너는 왕인가? 귀족인가?"

"왕자입니다"

"그렇다면 오디세우스 왕자, 우리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 너에게는 몰리가 있고 나에게는 네 부하들이 있으니 말이다. 나는 너를 해치지 못하지만 네가 나를 공격하면 그들은 영영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p. 263)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험준한 바위에 앉아 있는 매가 된 느낌이었다. 발톱으로 바위를 움켜쥐고 있었지만 마음은 허공을 날아다녔다.

"휴전을 제안한다" 내가 말했다. "일종의 시험을" (p. 264) >>

둘은 휴전을 한 적으로서 시작했지만 이내 둘이 서로 통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처음 사흘에서 한달에서 점점 더 섬에 머무는 날들이 길어져 갔다.

<<이제 와 생각해보니 그가 나와 부부처럼 오순도순 지낸 것은 일종의 예행연습이었다. 벽난로 옆에 앉았을 때, 내 꽃밭에서 일을 했을 때 그는 그 요령을 기억하려고 애를 썼다. 도끼로 살이 아니라 나무를 쪼개면 어떤 느낌인지. 어떻게 하면 다이달로스가 만든 이음새처럼 부드럽게 다시 페넬로페에게 맞출 수 있을지 (p. 288) >>

하지만 예행연습 기간이 짧았던 걸까? 페넬로페에게 돌아가 구혼자를 물리친 것까지만 고대서사시에서 말해주었었는데, 이 소설에선 그 이후를 알려준다. 너무나 그럴듯 하게. 정말 그랬던 것처럼. 신화는 지금도 진행중일 수 있었다.

<<그의 배가 닻을 올린 순간부터 내 뱃속이 부글거리기 시작했다. 구역질이 멈출 줄 몰랐다. 그 어떤 차단 마법을 동원해도, 심지어 몰리를 써도 고통이 가라앉을 줄 몰랐다. 이런 상태라면 선원들이 찾아왔을 때 나 자신을 지킬 수가 없었고 나도 그렇다는 걸 알았다. 약초를 담은 병 앞으로 기어가 오래전에 생각해놓은 주문을 외웠다. 섬이 배를 난파시키기 딱 좋은 험상궂은 바위로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마법이었다. (p. 306~308) >>

오디세우스를 보낼때 키르케는 말하지 않았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아들임을 이미 알 수 있었다. 그 아이는 오디세우스의 아들이 아니라 키르케의 아들이었다. 키르케는 모든 것이 처음이었지만 모든 것을 혼자 해내야 했다. 그리고 아이가 생기고 나서야 섬을 완전히 고립시킬 결심이 서게 되었다.

<<나는 이 세상만큼 나이를 먹었고 조건은 내 마음대로 정한다. 그 조건을 충족시킨 자는 네가 처음이고 (p. 364) >>

아테나여신이 키르케의 아들 텔레고노스의 목숨을 요구하자 키르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총 동원하여 아들을 지켜내고자 한다. 그 마지막 수단으로 심해 깊은 곳에 사는 티탄신족보다 더 오래된 존재의 독이 필요하다면 기꺼이 그일을 실행했다.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그이의 표정을 보셨어야 하는 건데. 구혼자들을 죽였지만 그러고 나니 뭐가 남았을까요? 물고기와 염소, 여신과는 거리가 먼 나이 먹은 아내, 이해할 수 없는 아들.

그리고 날이면 날마다 멀리서 으리으리한 소식이 새롭게 전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메넬라오스는 황금 궁전을 새롭게 지였죠. 디오메데스는 이탈리아의 어느 왕국을 정복했고요. 심지어 트로이아에서 망명한 아이네이아스도 도시를 건설했지 뭡니까." (p. 425) >>

오디세우스는 고향에 돌아가 행복하게 자알 살았습니다~ 가 오뒷세이아의 결말이었을까? 하지만 정말 행복하게 살았을까 라는 생각을 나는 왜 한번도 해보지 못했을까?

심지어 아이네이아스도 도시를 건설했다는 표현에서 혼자 빵 터졌다. 요즘 '아이네이스'를 읽고 있는데, 로마건국의 시조로 칭송과 경탄의 존재인 아이네이아스에 대해 '심지어' 라고 표현하는 걸 읽고 어찌나 웃기던지 ㅋㅋㅋ 베르길리우스가 이 소설을 읽으면 좀 기분나빠하려나? ㅎㅎㅎ

<<"너를 위해 만들어지는 노래는 없을 것이다. 이야기도 그렇고, 알겠느냐? 너는 아무도 모르는 삶을 살게 될 것이야. 역사에 이름을 남기지 못할 것이다. 아무도 아닌 존재가 될 것이다"

"저는 그쪽의 운명을 택하겠습니다" (p. 458) >>

아테네의 총아 오디세우스가 죽고 키르케의 섬에 아테네가 찾아온다. 그 아테네 앞에는 네명이 있었다. 텔레마코스, 페넬로페, 텔레고노스 그리고 키르케.

<<예전에는 신이 죽음의 반대말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 무엇보다 죽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바뀌지도 않고, 손에 쥘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 나는 평생 전진한 끝에 지금 이 자리에 왔다. 인간의 목소리를 가졌으니 그 나머지까지 가져보자. 나는 찰랑거리는 사발을 입술에 대고 마신다. (p. 500) >>

이렇게 완벽할 수가.

이렇게 모든 신화적 요소들이 딱딱 들어맞게 키르케의 생을 구성해 낼 수가.

읽는 내내 손에서 놓을 수 없었고 읽는 내내 감탄 정도가 아니라 경탄에 경탄을 거듭했다.

신들의 전쟁속에 겪는 반신반인 아킬레우스의 고뇌를 담은 일리아드도,

신들의 참견속에 겪는 인간 오디세우스의 고행을 담은 오뒷세이아도,

신들의 동의속에 겪는 아이네이아스의 거룩함을 담은 아이네이스도

모두 인간이 주인공인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인간이 주인공인지는 의문이다. 모두 '신의 뜻대로' 인것을...

하지만,

이 소설은, 키르케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키르케는

여신 키르케가 주인공이지만 인간이 주인공인 작품으로 생각되어졌다. 신들중심이 아니라, 인간중심.

요즘 신화관련 책을 읽고 있던 중에 읽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너무너무 재미있게 읽었다.

신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정말정말 흠~뻑 빠져들만한 멋진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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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하고 역동적인 바이킹 - 전 세계의 박물관 소장품에서 선정한 유물로 읽는 문명 이야기 손바닥 박물관 4
스티븐 애슈비.앨리슨 레너드 지음, 김지선 옮김 / 성안북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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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의 박물관 소장품에서 선정한 유물로 읽는 문명 이야기

집에서 탐험하는 손바닥 박물관 시리즈 4

 

 

박물관의 유물 중심으로 풀어낸 문명이야기 시리즈인 손바닥 박물관 시리즈가 고대로마, 고대그리스, 고대이집트 에 이어 바이킹을 등장시켰다. 사실 고대그리스,로마,이집트 는 고대문명으로 워낙 유명해서 대충이라도 짐작가는 바가 있지만(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고대시리즈 3권의 책 역시 몹시아주무척 보고싶긴 하다) '바이킹'은 정말 처음이었다. 몹시 궁금했고 아주 흥미로웠으며 무척 재미있게 읽었다.^^

네덜란드, 덴마크, 독일, 러시아, 미국, 스웨덴, 스페인, 아이슬란드, 아일랜드, 영국, 캐나다, 핀란드 에 있는 세계 유수의 박물관 소장품 중 세심하게 가려 뽑은 200여 점의 바이킹 유물을 소개하고 있는 이 책은 유물을 읽으며 바이킹의 역사도 틈틈이 엿볼수 있는 책이다.

 

 

책을 시작함에 앞서 이 책을 더 재미있게 보는 Tip 을 알려주고 있는데, 바로 유물의 실제크기를 가늠해 볼 수 있는 표식이다. 인체와 손바닥을 이용하여 유물의 크기를 대비시켜 놓았는데, 유물마다 이 표식을 통해 실제크기를 연상해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바이킹이 활동했던 지역을 시대순으로 구분하여 표시해놓은 지도도 마음에 들었다. 세계사의 중심을 유럽사의 중심을 너무 로마제국 중심으로만 생각해왔던 터라 이런 지도가 알려주는 느낌은 신선하다. 그리고 대서양을 가운데 둔 세계지도는 늘 나도모르게 좁혀진 시각을 다시 넓혀주곤 한다.

바이킹의 시대를 연대순으로 구분하자면 초기, 중기, 후기 로 나눌 수 있는데, 그 연대는 각각 약 550년~899년경, 약900년~999년, 약1000년~1500년 이다. 로마제국이 쇠망하던 시기에 점차 바이킹의 세력이 커졌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 있는데, 중세암흑기에 가려진 곳들 중 이슬람을 최근 ('십자가와 초승달, 천년의 공존' 이라는 책을 통해) 발견한 나로서는 '바이킹' 또한 그렇게 가려진 곳들 중 하나였음을 이 책을 통해 깨닫게 됐다. 어두웠던 천년 중에도 반짝이는 별들이 있었던 것이다. 이또한 어쩌면 당연함에도 이제야 새삼스레 깨달았다.

바이킹 세계에서 어떤 단일한 시작이나 종말의 일시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양한 시기에, 그 세계는 현대의 스칸디나비아와 유럽 북부의 넓은 영토를 아울렀고, 서쪽으로는 북대서양의 섬들, 그리고 동쪽으로는 러시아의 변방까지 뻗었다. 많은 스칸디나비아인들은 심지어 그 한계선도 넘어갔다. 시대적 또는 지리적으로 확관 경계선을 긋기가 불가능하다보니, 바이킹 세계를 정의하려면 실용적 접근법을 취할 필요가 있다. 몇 세기에 걸쳐 군사 행위, 집단 이동, 교역과 소통이 이루어지는 동안 이 세계를 하나로 묶어 준 것은 무엇인가? 답은 '변화'이다. (p. 6)

천하를 재패했던 로마가 무너져가던 시기 다른 곳들이 가만히 있었던 것은 아니었음을 종종 잊곤 한다. 권력은 늘 흥망성쇠를 거듭하기 마련이며 그 중심지는 변하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세계는 모두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세계 곳곳에 거의 대부분 사람들이 살고 있었고 그들은 따로 떨어져 있었지만 어느 순간 서로 만나기 마련이다. 문화의 흐름은 강물처럼 눈에 보이지 않지만 강물보다 더 멀리 뻗어나가고 그렇게 흩어져 발달하던 문화는 서로 섞이며 또다른 세계를 만들어내기 마련이다. 누군가 망하면 누군가는 흥한다.

서사는 아마도 고대 그리스, 로마 또는 이집트 세계에 대해서라면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바이킹 시대에는 통하지 않는다. 바이킹 세계가, 비록 크고 폭넓게 연결되어 있었지만, 더 이전 문명들에 비해 좀 더 정치적으로 파편화되었고 사회적으로 다양했기 때문이다. 어떤 단일한 서사에 액자 역할을 할 바이킹 제국은 존재하지 않았다. 게다가 바이킹 시대는 바이킹들의 한 시대였다. (p. 7)

이 책은 전문적 연구에 요구되는 정도의 상세한 유물 묘사를 다루기보다, 서사를 위한 시작 지점으로 유물들을 이용한다. 유물들은 말을 하지 못하지만, 창의성과 새로운 과학 기법에 힘입으면, 이따금 읽어낼 수 있다. (p. 9)

바이킹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세력이다. 이런 점에서 징기스칸의 몽골과 비슷한 것도 같다. 그들은 적은 것을 남겼지만, 그 시대에 커다란 변화를 일으켰다.

고고학은 이름대비 사실 그리 오래된 학문이 아니다. 약탈과 도굴과 개인적 수집을 넘어 학문으로 정착한 것은 생각보다 최근이다. 그래서인지 고고학의 발달은 최신과학의 발달과 맞물려 성과를 뚜렷이 내기 시작했다. 이 책속의 유물들을 보면서 이걸 어떻게 알아냈지? 싶은 유물들이 있었다. 과학은 고고학의 필수적 동반자이다.

6세기 중반, 아마도 환경적 재앙(화산분출)의 결과로 사회는 붕괴하기 시작했고, 따라서 정착지 폐기와 정치적 이탈이 초래되었다. 다양한 당파들이 지역 지배를 놓고 경쟁하다 보니, 다시 건축된 사회는 틀림없이 그 후유증을 안고 있었을 것이다. 바로 수평선에서는 유럽 대륙이 꽃을 피우고 있었고, 북해와 발트해 해안을 끼고 도시와 교역 정착지들이 솟아나고 있었다. 그리고 아랍 칼리프 국가로부터 유럽으로 은이 흘러들어 오기 시작했다. 바이킹 시대 여명의 상황은 그러했다. 매우 무너지기 쉬운 신분질서를 가진 사회에서, 성공적인 해외원정이 한 족장의 지위를 얼마나 높아지게 만들었을 지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p. 16)

침탈과 약탈로 시작된 교류도 반복되고 서로 섞이다 보면 나름의 구조를 갖추기 마련이다. 바이킹의 흥망성쇠는 소규모 부족난립의 범위가 넓어지면서 어떻게 서로 교류하게 되고 또 어떻게 중앙집권화되어 서로 비슷해지는지를 보여준다. 바이킹의 시대는 일종의 춘추전국시대였다.

 

 

가장 놀라운(혹은 충격적인^^) 유물과 가장 상징적인 유물을 고르라면, '변'과 '장신구' 이다.

영국 요크지역의 늪지대에서 발견된 '변'은 그야말로 '이런 변이 있나!' 라는 말이 나오게 만들었다. 검색해보니, 요크에는 2천년 이상 동안 정착촌이 있어왔고, 이 도시의 지속적인 점령의 결과는 현대도시가 고밀도로 압축 된 쓰레기 와 오물층에 자리잡게 만들었다고 한다. 고고학자들이 추정하는 깊이가 약 10피트에 이른다는데, 켜켜이 '뭔가' 들이 쌓여 있다는 말이다. 이 지역의 일부는 도시의 일부 지역의 토양에 수분이 침착되어 있고 산소가 거의 없어 소멸되기 쉬운 목재,가죽,천,뼈 같은 것들을 천년 이상 보존해 놓을 수 있었다고 하는데 1970년대에서야 발굴된 이 지역에서 뭐가 얼마나 더 나올지 모르겠지만, '변' 뿐만 아니라 '뇌'도 나왔다고 하니 진흙이 산소를 차단하면서 부패를 막은 또다른 유물이 무엇이 더 나올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소부족 난립 시대에서 해외원정을 성공한 바이킹들은 서로 동맹과 충성관계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때 이용되는 선물로 '장신구'들은 특별했을 것이고 정략결혼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다양한 지역에서 발굴되는 금속세공품들을 이런 맥락에서 보아야 한다고 말하는데, 200여개에 이르는 이국적 물품들을 활용해 만든 목걸이를 보면서 바이킹이 불러일으킨 변화의 핵심은 결국 교류가 아니었을까 싶었다.

이러한 교류의 핵심은 '바다' 였다.

그러고보면 지중해라는 바다를 중심으로 발달했던 고대그리스와 로마 그리고 이집트의 교류에서도 중요했던 지역은 땅보다는 바다였다.

로마가 제국으로 모두를 통합하고 육지중심 권력으로 변화해가면서 교류는 폐쇄적이 된 것이 아닐까. 육지에서 그렇게 치고받고 있을때 바다에 등장한 새로운 세력이 교류를 만들어내고 있었고, 이 세력이 결국은 중심패권을 흔들게 된 것이 아닐까. 이슬람도 바다를 통해 스페인까지 진출했을 때가 가장 부흥했던 때가 아닐까. 오스만제국이라는 육지에 갇히면서 결국 패망의 길로 간 것이 아닐까. 바다는 지구표면의 70%이상을 차지한다는 부피 이상으로 역사에서도 중심무대였던 것이 아닐까.

맹약을 다지기 위해 '반지를 주는' 관습은 게르만 세계 전역에서 공통적이었다. 검 자체도 족장이 추종자들에게 충성 및 봉사의 대가로 주는 선물이었다. (p. 47)

10세기는 팽창의 시대였다. 상업과 정착지, 그리고 권력의 팽창, 이는 새로운 육지로의 여행, 교역 및 산업 조직의 혁신, 그리고 정치적 권력에서는 중앙집권화의 증가를 야기했다. 초기 바이킹 시대가 일종의 초기 중세식 거친 서부였다면, 그 후 수백 년간은 결국 중세 유럽 사회로 성장할 씨앗들이 부려진 셈이다. (p. 103)

자물쇠와 열쇠가 여러 곳에서 발견되는 것은 바이킹 시대 사회가 어떻게 짜여 있었는지, 그리고 사람들이 자신의 개인 소지품 및 개인 공간에 관해 어떤 관점을 가지고 있었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p. 115)

맹약의 징표로 주고 받던 반지, 그 반지를 달고 있는 검, 검또한 충성의 증표, 자물쇠와 열쇠 사용의 확대 이러한 것들이 결혼서약때 주고받는 반지와 기사에게 내려지던 검과 재산보호를 위한 잠금장치의 발달등과 관련이 있겠지 싶어서 흥미로웠다. 바이킹이 뿌린 씨앗들은 다른 씨앗들과 섞여 중세문화를 만들어냈을 것이다.

바이킹 연구에서 너무나 자주 나오는 뻔한 이야기는 바이킹이 뿔 달린 투구를 쓴 적 없다는 것이다. (p. 146)

바이킹! 하면 뿔투구! 인데 바이킹은 뿔달린 투구를 쓴 적 없다니!! ㅎㅎㅎ

이런 역사적 왜곡은 찾아보면 은근히 많다. 소크라테스도 '악법도 법이다' 라는 말을 한 적 없는 것처럼.

핵실버는 바이킹이 경제 거래에 사용하기 위해 작게 자른 은 조각들을 가리킨다. 은은 바이킹 시대에 주요 통화를 구성했다. 약탈로 더 많은 은을 손에 넣는 것이 부를 얻는 효율적 방법이었다 (p. 173)

요크에서 발견된 성 베드로의 페니는 아마도 바이킹 시대의 가장 유명한 동전일 것이다. 앞면에 십자가, 칼, 그리고 토르의 망치 묘사가 문구와 함께 적혀 있다. 이것은 종교적 통합 또는 토르와 성 베드로의 융합을 의도한 듯한데, 이는 대중적 개종을 용이하게 만들려는 의도된 전략이었다. (p. 181)

스칸디나비아 양식에 더해, 오스만과 다른 유럽 내륙의 문화 역시 국제 연결성의 결과로 북해 세계를 통해 모방되었다. 그러나, 바이킹 시대 최후의 주요 교역항들은 쇠락하고 있었다. 이런 변화에는 환경 변화가 한몫을 했다. 비록 핵심 촉매는 증가하는 중앙집권화와 새로운 '도시'종교였지만, 그것은 기독교 였다. 1000년 무렵, 덴마트, 스웨덴, 그리고 노르웨이 왕들은 모두 자신들을 기독교인으로 선포했다. 기독교, 도시화 그리고 중앙집권화는 손에 손을 맞잡고 스칸디나비아 전역에서 발달했다. (p. 196)

은관련 유물은 상당히 많이 발견되었다. 작은 조각들이 많았는데 무게로 잰 은은 굳이 동전이 아니어도 화폐로 통용되었다. 왕이 자주 바뀌는 시대에 왕의 얼굴이 박힌 동전보다는 무게 자체로 거래되는 은조각 들이 더 화폐가치가 있었을 것도 같다. 약탈로 시작했지만 거래가 되고 교류가 되면서 많은 것들이 표준화되기 시작했다. 토속신앙과 합쳐지면서 자리잡은 기독교는 중앙집권화를 가속시켰고 교역의 발달로 인한 도시화또한 국가의 성장을 촉진시켰다. 그렇게 도적때들은 시민이 되기 시작했다.

이 인상적인 뿔피리는 코끼리 엄니로 만들어지고 이탈리아 살레르노에서 조각되었다. 공예가들은 상아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이슬람 조각가들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p. 240)

노예는 바이킹 경제의 주요한 원동력이었지만, 노예제의 고고학적 증거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찾기 힘들다. (p. 243)

어디선가 봤던 것 같은 커다란 뿔피리 유물사진을 보면서 정교하게 새겨진 문양들이 이슬람조각들이 한 것이라는 설명을 읽으니 역시 바이킹이 성장하던 시기가 얼마나 열려있던 사회였는지 다시한번 느껴졌다. 하지만 어느시대의 역사를 보더라도 간과하는 부분이 바로 노예제 이다. 고대부터 중세, 그리고 근대까지도 노예가 없던 적이 없었다. 노예는 사회와 문화발달의 근간이었다. 인간의 역사에서 인간취급을 받지 못했던 노예의 역사가 얼마나 밝혀질 수 있을지 갑자기 궁금해지기도 하지만, 여하튼 역사를 읽으며 늘 기록에 남지 않은 존재들을 기억하며 읽어야 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역사는 알면알수록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분야인것 같다.

그동안 중세역사에 대해 좁은 시각을 갖고 있었던 것을 최근 읽었던 책과 이 책을 통해 새롭게 확장시킬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 참 좋았다.

무엇보다, 직접 보지 못하더라도 큼직하게 다양한 유물사진을 컬러풀하게 설명과 함께 책으로 읽는 다는 것이 요즘 같은때 얼마나 감사한지 새삼 느낄 수 있었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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