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에게 필요한 11가지 약 이야기
정승규 지음 / 반니 / 202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항바이러스제에서 신경안정제까지,

인류에게 희망과 미래를 열어준 치료약의 역사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 라는 오래된 표어를 나는 얼마나 제대로 억하고 있던 건지 모르겠다. 진료를 받으러 병원에 가지만 약을 사면서 약사에게 뭘 물어본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그저 처방전에 따른 약을 받으면 그만일뿐 그 약이 어떤 약인지 나는 왜 의문을 품어본 적이 없었는지 갑자기 의아해질 정도다. 진료를 받지 않아도 구입할 수 있는 약이 엄청 다양해진 세상에 살면서;;;

약은 약사에게

그렇다. 약사가 약의 전문가이다. 그런데 의사가 쓴 책은 많아도 약사가 쓴 책은 별로 못 본것 같다. 이 책은 약사가 약에 대해 쓴 책이다. 더구나 내가 좋아하는 역사까지 곁들여서 쓴 책이라니. 기대만발 ㅎㅎ

약에 관한 내용뿐 아니라 관련된 역사적, 사회적, 문학적인 내용을 추가해 이해하기 쉽게 구성했고 인류이 삶에 큰 영향을 주었던 혁신적이고 혁명적인 약을 개발된 순서대로 배치했다. 궁극적으로는 실생활에서 많이 사용하는 중요한 약을 잘 이해하는 것이 목적이다. (p. 6)

먹는 식품들에 대해서는 뭐에 어떤 영양소가 들었고 어떻게 조리하면 좋은지 찾아 읽으면서도 약에 대해서는 너무 무지하지 않았나 싶다. 전문가급으로 어려운 약 이름을 줄줄 읊어댈 수야 없겠지만 간략하게라도 그 약이 어떻게 개발되었고 어떤 효능을 갖고 있는지 알아두면 좋을것 같긴 하다. 그리고나서 처방전에 쓰여진 약이름을 보면 그 약이름들이 좀더 친숙하게 보이지 않을까? ㅎ

저자는 11가지 약에 대해 쉽고 간략하게 풀어주고 있다.

전염병을 차단하는 항바이러스제, 여권 신장을 가져온 피임약, 카르브해에서 찾은 탈모 치료제의 열쇠, 현대인의 쓰린 속을 달래 주는 위장약, 환청과 망상에서 벗어나게 한 조현병 치료제, 인생의 즐거움을 되찾게 한 항우울제, 불안과 스트레스를 잠재우는 신경안정제와 수면제, 뇌 건강을 지켜주는 뇌 질환 치료제, 혈당을 낮춰주는 당뇨약, 기생충을 없애는 구충제, 새로운 지평을 여는 유전자 치료제.

암소를 라틴어로 바카vacca라고 하는데, 여기에서 따와 접종한 우두의 고름을 백신vaccine이라고 했다. 이것이 1세대 백신이다. 이후 프랑스 미생물학자 루이 파스퇴르가 광견병과 콜레라 백신을 개발했다. 사실 백신이라는 이름은 제너의 종두법만을 의미했지만, 그를 존경한 파스퇴르가 경의를 표하기 위해 자신이 개발한 약도 백신이라 부르면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 (p. 14)

어원 이야기는 늘 재미있다. 천연두의 백신을 개발하게 된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있는 바다. 그런데 거기서 백신 이라는 이름까지 유래된 줄은 몰랐었다. 어원을 알게 될때마다 지금은 실생활에 사용되지 않는 라틴어가 학명에서 여전히 위력을 떨치고 있는 것을 보며 새삼 대단한 언어구나 라는 걸 느끼게 되곤 한다.

전쟁 당시 스페인은 중립국이어서 독감이 퍼지는 사건에 대해 자유롭게 기사를 쓸 수 있었다. 반면 교전국들은 검열을 이유로 자국 군대가 독감에 걸린 사실을 보도하지 않았다. 새로 생긴 독감을 단순히 감기라고 말하며 국민을 안심시키기에 바빴다. 결국, 스페인에서 독감을 자주 보도하면서 스페인 독감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p. 18)

스페인 독감은 멀리 있는 우리나라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1918년 9월에 들어와 당시 인구 759만 명의 약38%인 288만 4,000명이 스페인 독감에 걸렸고, 14만명이 사망했다. 피해가 얼마나 컸는지 시체를 처리할 사람이 없고 농가에서는 추수하지 못한 논이 절반 이상이었다는 기록이 있다. (p. 19)

얼마전 읽은 책에서 스페인 독감이 스페인에서 유래됐거나 환자가 많지 않았음에도 언론보도가 잦아서 별칭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었는데, 전쟁당시 중립국이라 그랬다는 걸 알고 나니 의아스러웠던 부분이 이해가 되었다. 게다가 당시 조선에까지 큰 피해를 주었다니 놀랐다.

2002년 말 중국 광동성에서 발생한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사스는 2003년 4월이 되어서야 병의 원인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라고 밝혀졌다. 감기를 일으키는 코로나바이러스는 지금까지 10여 종류가 알려져 있다. 사람, 돼지, 개, 고양이, 소, 닭 등에서 감염되지만, 사람에게는 중증을 일으키지 않는다. 하지만 사스는 변종을 일으킨 바이러스여서 면역력이 약한 사람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줬다.

중국, 동남아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야생동물을 보양식으로 먹는다. 재래시장에는 많은 동물이 판매되괴 있는데 사스 유행 초기, 대부분의 환자가 시장에서 야생동물을 요리하다가 감염되었다. 역학조사 결과 사스는 박쥐에서 사향고양이를 거쳐 사람에게 전파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사향고양이는 재래시장에서 거래되는 과정에서 걸린 것이고 자연 숙주는 과일박쥐였다. (p. 27)

박쥐에게 있는 바이러스는 137종이나 된다. 그중 사람에게 감염되는 인수공통 바이러스는 61종이다. 사람과 대다수 동물은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면역물질 인터페론을 생성해 대항하지만, 박쥐는 평소에도 인터페론을 만든다. 그래서 많은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감염되지 않는 특이한 면역체계를 가지고 있다. 박쥐는 체온이 40℃이상으로 다른 포유류에 비해 높다. 체온이 높으면 신진대사가 활발하고 면역력이 강해져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는다. 박쥐는 바이러스와 균형을 유지하면서 공존해 살아간다. (p. 28)

메르스 코로나바이러스는 박쥐에서 낙타를 매개로 사람에게 전파된 것으로 보인다. (p. 31)

컨테이젼Contagion, 2011 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보고나서 우한코로나라고 불리던 지금의 코로나사태를 미리 예견한듯 해서 놀랐었다. 그런데 그 영화의 스토리를 생각해낼 수 있었던 이유가 이제 이해가 되었다. 코로나가 지금이 처음이 아니었던 거다. 사스니 메르스니 불러서 헤깔렸지만 결국 다 코로나였던 거다. 그리고 그 바이러스의 중심에 결국 다 박쥐가 있었던 거다. 지금의 코로나사태는 어쩌면 예견된 사태였을지도 모르겠다. 코로나변종바이러스가 사람에게 치명적이라는 것을 알았음에도 박쥐가 매체였음을 알았음에도 신약개발이나 야생동물취급에 있어 그 어떤 준비도 바이러스진화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

타미플루를 개발한 사람은 미국 길리어드 사이언스 부사장이었던 재일교포 한국인 김정은 박사다. 그는 1990년대 중반 계절 독감 때문에 세계적으로 많은 사망자가 나오자 1996년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알약으로 된 독감 치료제를 개발했다. (p. 30)

우리나라 제약회사에서 혹은 우리나라 연구소에서 일하면서 신약을 타미플루를 개발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고... 앞으로 점점 더 약과 바이오와 건강관련 기술들은 중요해질텐데...

그러면 최근에 사스, 메르스, 코로나19처럼 야생동물에서 서식하는 코로나바이러스가 사람에게 자주 유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밀림, 오지개발, 환경파괴가 가속화되면서 사람이 과거보다 야생동물의 서식지를 더 많이 침범하기 때문이다. 평화롭게 살던 야생동물과 사람의 접촉이 빈번해지자 인류가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새로운 바이러스와의 만남도 크게 늘어났다. 박쥐가 바이러스를 전파한다고 현실적으로 모두 잡아 없앨 수는 없다. 만약 모든 박쥐를 멸종시킨다면 바이러스는 새로운 자연 숙주를 찾아나설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돌연변이를 통해 더 강한 독성을 가지고 사람을 공격해 올 것이다.

바이러스 유전자는 숙주 유전체에서 연속하는 특성이 있어 생물 종의 다양성에도 기여한다. 사람은 바이러스와 공존하며 살되, 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에 대해서는 백신과 치료제 개발로 적절하게 대응해야 한다. (p. 35)

그렇다. 근시안적으로 박쥐탓만 해서는 해결되는게 없다. 결국 자연과 공존하지 못하고 자연을 침해하는 인간탓이다. 다 자업자득인거다. 그렇다고 모두가 한마음한뜻으로 자연을 존중하고 보호하며 살아갈 수 있겠는가? 불가능할 것이다. 이미 시작된 자연과 인간과의 불화를 전쟁으로 치를 것인지 공존의 방법을 모색할 것인지 선택할 수 있을 뿐이다.

경구 피임약기 개발되면서 성과 출산은 분리되었고, 성 혁명의 기폭제가 되었다. 1965년 연방대법원은 마침내 피임을 인정했다. (p. 55)

마거릿 생어는 세상을 바꾸었다. 시대에 뒤떨어진 콤스톡법의 지배로 억압받던 여성의 권리를 높였고, 과학의 힘을 빌려 경구피임약 시대를 열었다. 과학자는 아니었으나 뜻을 품고 사회변혁을 주도하며 누구도 하지 못한 업적을 남겼다. (p. 56)

저항자들에게 68혁명은 정치적으로는 실패였지만, 사회적으로는 엄청난 변혁을 일으켰다. 종교, 애국주의, 권위에 대한 복종 같은 보수적인 가치들이 평등, 인권, 성 해방, 공동체, 생태주의 등의 진보적인 가치로 바뀌기 시작했다. 젊은이들은 '금지하는 것을 금지하라'라는 유명한 구호를 외치며 기존 질서에 저항했다. 그들은 사랑을 노래하고 성적 자기 결정권을 요구했다. (p. 58)

다른 나라와 달리 우리나라에서 피임약은 오랫동안 널리 사용되지 못했는데 그 이유가 바로 산아제한이라는 정부의 강요로 시작된 피임약의 부작용이 여성들에게 트라우마로 남았기 때문이다. 노비드가 나온 이후 60년 가까이 호르몬 종류를 바꾸고, 양을 획기적으로 줄여서 부작용을 상당 부분 극복했음에도 대중화되지 못했다. (p. 60)

피임약의 발달사는 어떻게 보면 여성의 권리신장의 역사의 일면이기도 했다. 종교법에 매여있던 성적자기결정권이 피임약의 개발로 여성에게 주어지게 되었다. 초기약들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부작용들은 대중화에 큰 영향을 미치지 마련이다. 산아제한 이라는 국책사업과 맞물렸던 부작용많은 피임약의 복용이 국내 피임약 대중화에 걸림돌이 되었었다는 것도 몰랐지만, 지금은 피임약이 필요없을 정도로 출산율이 낮은 상황인 것을 보면 그 격세지감이 새삼 놀라울 뿐이다.

신약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이전에 만든 약의 역사를 참고하는 것이 필수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제약회상서는 신약 후보 물질을 찾을 때 이전에 시도한 자료를 먼저 분석한다. 그렇게 하면 시행착오도 줄이고 이전에 놓쳤던 틈새를 발견할 수 있다. (p. 99)

특허가 끝나면 오리지널을 개발한 제약회사의 독점권이 상실되어 다른 회사가 제네릭(복제약)을 생산, 판매할 수 있다. 그래서 맨 처음 개발한 제약회사는 이 기간 안에 수익을 내야 하므로 특허권 보호 기간의 연장을 바란다. 반면 제네릭이 나오면 일반적으로 약값이 떨어지기 때문에 환자는 특허가 빨리 끝나기를 기다린다. 맨 처음은 아니지만, 같은 계열의 가장 좋은 위장약 잔탁의 성공은 후발주자라도 빨리 따라붙어 기회를 잘 잡으면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가 되었다. (p. 102)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는 창조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세상 특이한 발명품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무수한 앞선 발명과 도전들이 있기에 가능했었다. 신약 개발도 그런것 같다. 이미 나와있고 밝혀진 것들을 제대로 습득해야 조금 더 나은 약을 만들수 있고 그러다가 새로운 신약도 만들 수 있고 그렇게 선의의 경쟁들이 꾸준히 있어야 약값도 싸지고 그럴텐데...

커피에서 카페인을 최초로 발견한 사람은 독일 화학자 프리드리히 룽게다. 1820년 룽게는 커피콩에서 순수한 카페인을 분리했다. 그는 괴테와 교분이 있었는데 룽게의 재능을 알아본 괴테는 그에게 커피 원두를 주면서 속에 있는 화학성분을 조사할 가치가 있다고 제안했다. 추출, 분석 기술을 통해 룽게는 순도 높은 카페인을 얻을 수 있었다. 그는 커피에 들어있는 혼합물이라는 뜻으로 카페인kaffein(영어로는 caffeine)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p. 175)

카페인이라는 이름을 보면서도 커피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못했었다. 이런 ㅋ

괴테가 카페인 발견에 힌트를 주었었다니! 역시 역사는 이런 쏠쏠한 재미를 준다. ㅎㅎ

우리나라는 1964년부터 1973년까지 베트남 전쟁에 32만명을 파병했는데, 미군 다음으로 그 수가 많았다. 한국군은 9년에 걸쳐 56만 3,387건의 작전을 수행했다. 이때 5,000여 명이 전사하거나 실종됐고 7,000여 명이 다쳤다. (p. 182)

미국은 베트남전 참전 보상으로 기존 경제 원조와는 다른, 획기적이고 파급 효과가 큰 종합연구소 설립을 추진했다. 그 결과 과학기술 연구와 산업 응용에 도움이 되는 응용과학 연구소를 만들어 지원하는 것이 결정되었다. 1965년 박정희 대통령과 존슨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개발차관과 응용과학연구소 설립 원조에 합의했다. 한국은 전투 부대의 베트남 파병을 약속했다. 미국 바텔 기념연구소가 주축이 되어 KIST가 설립되었다. KIST는 자율성을 지닌 비영리기관으로 만들어졌다. 국내의 가장 유능한 한국 과학기술자들을 유치하도록 급여와 대우를 보장했다. 그리고 대학과 연구기관 및 산업계와의 협조를 통해 개발된 기술이 파급되도록 제도화했다. 즉 KIST는 베트남 전쟁 참전 대가로 정치적으로 설립되었다. 그래서 서울 홍릉 KIST 본관 1층에는 '존슨 강당'이 있다. (p. 257)

생각보다 베트남 파병의 기간과 규모가 길고 컸음을 알고 놀랐다. 9년이라... 6.25보다 긴 남의 나라 전쟁에서 그나라도 이나라도 전쟁의 피해는 전쟁기간의 몇배로 돌아오고 있지 않을까... 그 배경에 국가과학산업의 토대를 닦았다는 것이 참... 새삼 슬프다.

한방 3대 영약으로 손꼽는 처방이 경옥고, 공진단, 우황청심원이다. 원나라 초대황제 쿠빌라이 칸이 즐겨 먹었다는 경옥고는 얼굴을 옥처럼 가꿔준다는 의미로 원기회복과 노황예방에 좋다. 현대인의 만성피로, 전신쇠약, 기력소모, 기억력감퇴에 효과적이다. 황제에게 바치는 약이라는 뜻의 공진단은 허약체질과 갱년기증상에 먹는 보약이다. 마지막으로 우황청심원은 경옥고, 공진단는 달리 치료제 성격이 강하다. 인사불성, 두근거림, 정신불안증에 사용하는 것으로 문헌에 나와 있지만, 보통 시험이나 발표, 면접 등을 앞두고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많이 먹는다. (p. 186)

우황은 소 쓸개에 생긴 돌인 담석을 말하는데 구하기 힘든 약재다. 사향은 궁노루라고도 하는 사향노루의 향선낭분비물이다. 사향은 우황보다 더 구하기 어려워 지금은 대체품을 쓴다. 사향노루와는 달리 사육이 가능한 사향고양이 향선낭분비물에서 사향을 채취한다. (p. 188)

경옥고, 공진단, 우황첨심원 이름은 많이 들었지만 무엇에 쓰는 약인지 잘 몰랐었는데, 이렇게 정리된 글을 보니 좋았다. 그리고 우황과 사향이 뭔지 알고 나니 그참... 약재라는 것이 정말 희귀하고 희한하구나 싶었다. 사스때 사향고양이 를 통해 감염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사향고양이가 많은가 싶었는데... 약재를 위해 사육되는 거였다. 결국 다 인간 탓인거였다...

1997년 일본 애니메이션 '포켓몬스터'를 보고 많은 어린이가 경련 발작을 일으켰다. 원인은 TV화면에 붉은색과 파란색의 빛의 현란한 깜빡거림이 뇌에 과도한 흥분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이 화면을 오랫동안 본 어린이들이 광과민성 발작을 일으키며 병원에 실려갔다. 750여 명의 어린이가 고통받은 이 사건으로 포켓몬스터는 가장 많은 사람에게 발작을 일으킨 TV프로로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했다. 뇌전증은 이처럼 빛에 약한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에게서도 발작을 일으키는데 반짝거리는 불빛이나 TV, 햇빛 등에 의해서도 발생할 수 있다. (p. 213)

예전에는 간질 이라고 불렀던 병명이 뇌전증으로 바뀌었다. 한결 병답다고나 할까 왠지 비하적인 의미가 느껴졌던 간질 보다는 훨씬 나은 것 같다. 그런데 이 뇌전증이 유전이나 태생적인 것이 아니라 후천적일 수 있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 게다가 포켓몬스터 같은 애니를 보면서도 그런 발작이 가능하다니 거참... 요즘 영상매체 문화가 더욱 걱정스러워진다...

엑스코프리는 2001년부터 기초 연구를 시작해서 임상시험과 인허가 과정을 모두 거쳐 개발됐다. 후보물질 개발을 위한 합성한 화합물 수만 2,000개 이상이다. 미국 FDA에 신약판매허가 신청을 위해 작성한 자료만 230여만 페이지에 달한다. 국내기업이 자력으로 FDA신약승인을 받은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엑스코프리 개발은 후보물질 탐색부터 최종판매 허가까지 18년 이라는 장기투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오랜 기간 성과가 없어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연구비를 쏟아부었다. (p. 215)

얼마전 코로롱제약의 신약사기?! 기사에 마음 씁쓸했던지라 2019년 11월 SK바이오팜이 개발했다는 뇌전증 치료제 이야기를 읽으니 반가웠다. 신약 개발이 이렇게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꾸준히 노력해주시기를 바래본다.

인슐린을 시작으로 성장호르몬, 인터페론 등이 유전자 재조합 기술로 생산되면서 화학약품에서 바이오의약품으로 제약산업의 패러다임이 바뀌게 되었다. (p. 233)

한때, 기생충은 박멸해야 하는 악이었지만 기생충이 거의 사라진 사회에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알레르기와 자가면역질환이 늘어난 것이다. 외부에서 들어온 기생충을 인체는 이물질로 인식한다. 면역세포가 기생충을 감시하며 관리하는 과정에서 면역체계가 강해졌는데, 이방인이었던 기생충이 갑자기 사라지자 혼란이 생겼다. 아토피, 천식, 비염같이 예전에는 드문 질환이 늘어났다. 3만년 전 사람 몸속에서 회충이 발견될 만큼 사람과 기생충은 오랫동안 공생해왔다. 그래서 서로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균형을 이루며 살았다. 보기에는 흉측하지만 나름 기생하면서 면역을 튼튼하게 해준 공로가 있다. (p. 252)

1980년대 우리나라 흡충 감염은 400만 명에 달했다. 그때만 해도 바이엘에서 판매한 빌트리시드가 세계 시장을 독점하고 있어서 약값이 비쌌다. 그런데 KIST 응용화학연구소에서 3년여간의 연구 끝에 1983년 새로운 방법으로 프라지콴텔 합성에 성공했다. 신풍제약은 이 합성법을 실용화해서 디스토시드를 만들어 판매했다. KIST에서 만든 합성법은 대량생산이 가능해 가격을 크게 낮출 수 있었다. 이 사실을 안 바이엘이 신풍제약에 특허권을 수십만 달러에 팔라고 요구했지만 팔지 않았다. 독일 역시 한국이 이런 약을 만들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래서 국제적으로 연합해 우리나라에 물질특허를 도입해야 한다고 압력을 가했다. 이후 합성법이 아닌 화학적으로 제조되는 물질 자체를 대상으로 하는 물질특허제도가 1987년에 도입되었다. 이때문에 독자적인 물질을 최초로 만들지 못하면 권리를 인정받지 못하게 되었다. 위기의식을 느낀 우리나라는 이때부터 신약 개발을 시작했다. (p. 260)

후발주자가 앞선 나라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선진국이 처음에 어떻게, 왜 기술을 개발했고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에 대한 역사, 사회, 문화 요인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 무턱대고 쫓아간다고 해서 그들을 능가하지는 못한다. 모방에 그치거나 힘들게 개발해도 시장성이 없어 쉽게 사장되는 경우가 많다. 결국 신약 개발을 하려면 단지 과학기술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반에 대한 입체적이고 종합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p. 298)

11가지 종류의 약 개발 변천사를 읽는 것도 좋았지만, 사이사이 약과 관련된 우리나라의 변천사나 약개발에 있어 어떤 부분을 중심에 두어야 하는지 생각하게 하는 부분에 더 눈길이 갔다. 코로나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질병과 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이런 때일수록 장기적인 관점으로 미래사회를 준비해나갈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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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로마 신화, 최대한 쉽게 설명해 드립니다 누구나 교양 시리즈 7
게롤트 돔머무트 구드리히 지음, 안성찬 옮김 / 이화북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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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로마 신화의 맥을 잡아 주는 50가지 재미있는 강의

신화 읽기의 즐거움을 배우다

유렵 최고의 신화 입문서

 

 

'최대한 쉽게 설명해드립니다' 시리즈를 개인적으로 참 좋아한다.

세계사, 종교, 전쟁과평화의역사 를 이 시리즈로 읽어봤었는데 가독성도 좋고 부담없는 분량임에도 깊이까지 있어서 대중서로 참 괜찮다고 생각했었다.

이번엔 '그리스로마 신화' 가 나왔다. 그리스로마 신화 를 정말 좋아하는 나로서는 끌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다 읽고 나니 역시나 흡족했다.

한편한편 단독적인 강의를 읽는 느낌의 글들은 신화의 연대기적 순서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뒤에 '옮긴이의 글'을 보니, 이 책의 원서는 각 장을 알파벳 순으로 배치하여 사전적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편집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한국어판에서도 이 기능을 살리기 위해 가나다 순으로 배치를 바꿔놓은 것이라 한다. 다시 차례를 보니 가나다 순이다.^^;;;

자세한 내막은 몰라도 이름은 들어봤음직한 신화적 요소들 50가지에 대한 각각의 글들은 독립적인만큼 한편한편 완성도가 있었다.

매 글마다 주제에 대한 현대적 설명과 틈틈이 분위기 전환을 해주는 그림들과 글 사이사이 노란박스에 쓰여진 보충설명들이 신화를 처음 접하는 사람이 읽어도 충분한 이해를 가능하게 해주고 있었다. 거기에 매 글마다 뒤에 '더 알아보기' 란을 덧붙여서 이 신화가 나오는 원전과 그 신화를 바탕으로 한 지금까지의 문학작품과 음악, 그림을 포함한 조형예술까지 알려주고 있어서 활용도를 높이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정리해보기' 란에서 간략하게 그 신화의 핵심까지 두어문장으로 요약해주니 그야말로 신화입문서로는 더할나위없이 좋은 책이었다.

'들어가는 글' 에서 왜 지금도 '신화'를 알고 읽어야 하는지 왜 여전히 '신화가 살아' 있는지 풀어주는 저자의 글부터 마음에 들었다.

오늘날 우리가 어떤 것을 일컬어 '신화'라고 할 때는 흔히 허구이고 진실이 아니라는 뜻이 포함된다. 하지만 신화는, 꿈에서 위안을 얻으려 했던 시대가 만들어낸 재미있는 허구적 이야기인 동화와는 다르다. 신화 속에 동화적인 모티브들이 있으며 동화에서도 신화의 흔적들이 발견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신화는 동화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신화에는 기억, 전통, 관습 등과 같은 문화 전반이 표현되기 때문이다.

신화에는 하나의 세계상 전체가 들어 있다. 또 신화는 개인의 행동과 민족의 숙명에 대해 설명한다.

인간은 이야기를 하며 살아가고 그 이야기는 계속해서 다른 사람에게 전달된다. 그때 그 이야기는 변화를 겪게 된다. 신화에서 유일하게 '참된' 버전이란 있을 수 없다.

신화의 다양성과 다의성은 커다란 장점을 지닌다. 왜냐하면 어떤 상황에도 정확히 들어맞는 많은 이야기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신화가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되는가는 주어진 상황에 달려 있으며 동시에 신화는 그 상황에 의미를 부여한다.

오랜 구전의 역사 속에서 신화는 실제의 역사적 사건이나 기나긴 문화적 발전 과정을 반영하는 새로운 요소들을 계속해서 받아들였다.

그리스 인들에게 '신성한 일'은 항상 공동체적 제의와 연관되었으며 내적 체험이나 개인적 도덕과는 별 상관이 없었다. 인간의 행동을 도덕적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의식은 그리스 고전시대(BC5세기)직전에 와서야 비로소 생겨났다. 도시가 발전하고 문명이 번영함에 따라 신화에도 새로운 과제가 부여되었다. 시민들에게는 옳고 그름을 판정하는 새로운 척도가 필요했다. 따라서 현실의 문제를 신화의 형식으로 그들 앞에 보여주는 연극 공연이 중요한 매체로 떠오르게 되었다.

헬레니즘 시대의 지배자들은 예전에는 영웅들과 신들에게만 허용되었던 제의를 자신들을 위해 올리게 함으로써 신화를 지배 수단으로 이용했다. 작가들은 당대의 지배자들이 제우스나 아니면 적어도 헤라클레스의 후손이라는 식으로 신화를 개작했다. 로마의 황제들도 이것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로마제국이 몰락한 지 천 년의 세월이 흐른 후, 스스로를 고대의 재탄생으로 이해했던 르네상스 시대에 와서 유럽은 또 다시 그리스 신화에 관심을 쏟게 되었다. 시인, 작곡가, 화가, 조각가들이 암시하는 신화적 형상들을 이해하기 위해 사람들은 고대의 신화들을 알아야만 했다.

이제 고대 신화는 '교양 자산'으로서 예전만큼 중요하지는 않게 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신화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는 문학, 연극, 오페라나 조형예술 등을 올바로 이해할 수 없다. 우리의 일상어 속에서도 신화는 여전히 살아 있다. 또 많은 환상소설이나 서부영화를 엄밀히 고찰해 보면, 그것은 옷만 갈아입은 신화이거나 새로운 환경 속에 옮겨놓은 고대 비극임이 드러난다. (p. 5~17 '들어가는 말' 中)

'들어가는 말'을 읽고나면, 지금도 왜 여전히 고대신화를 읽어야 하는지 이유를 더 명확하게 알게 된다. '그리스로마 신화'는 그저 지나간 재미있기만한 그런 옛이야기가 아니다. 미술관에 가면 그림과 조각속에 살아있고, 소설을 읽으면 그속에서 숨어있으며, 오페라나 발레 혹은 연주곡들 중에서도 제목에서부터 이미 신화적인 것들이 은근이 많다. 예전에 신화가 사람들에게 관습과 체제로서 받아들여졌다면 지금은 신화가 문화나 사상적으로 여전히 활용되고 있다. 그러니 지금도 여전히 우리는 신화를 읽어야 하는 것이다.

나르키소스, 다나에, 다이달로스, 디오니소스, 디오스쿠로이, 메데이아, 메두사, 비너스, 세이렌. 시쉬포스, 아도니스, 아르테미스, 아마존족, 아킬레우스, 아테나여신, 거인 아틀라스, 아폴론, 안티고네, 암피트리온, 에리뉘에스, 에우로페, 오이디푸스, 이피게네이아, 카산드라, 켄타우로스, 퀴클롭스, 키르케, 탄탈로스, 테세우스, 파리스, 판신, 페가수스, 페르세우스, 포세이돈, 퓌그말리온, 프로메테우스, 프로쿠르스테스, 하데스, 헤라, 헤라클레스, 헤르메스, 헥토르, 헬레나 등 들어본 있는 신화적 이름들과 모신들, 신탁들, 황금시대, 카오스와 코스모스, 기간토마키아, 트로이의목마 등 신화적 사건들이 이야기와 해설이 곁들여져 재미있으면서도 다양한 정보와 함께 의미있게 읽힌다.

신화를 꽤 아는 사람이 읽어도 새롭게 알게 되는 정보들이 많아서 쏠쏠한 재미가 있었는데, 그리스로마 신화와 그 이전의 오리엔트 신화 및 성서와의 연결성이나 어원의 풀이를 통한 본래의 의미파악도 흥미로웠고 그 사건이 과거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배경에 대해 좀더 자세히 알게 되면서 현대적 해석에도 고개끄덕여지는 부분이 많았다.

신화시대에는 신부를 약탈해 오는 것이 지극히 정상적인 결혼 방식의 하나였다. (p. 60)

그리스인들이 발칸반도에 진출하기 전인 신석기시대에 이 지역의 농경 사회는 당시의 다른 지역들과 마찬가지로 씨족의 구성원들이 모여 살면서 모계 혈통에 따랐다. 부계 혈통은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런 모권이 실제로 여자들이 '재배'하는 사회 즉 가모장 사회를 의미했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p. 86)

결혼은 그리스인들이 발칸반도에 도입한 제도였다. 그 이전에 이 지역에서는 대모신을 숭배했으며, 공동체 안의 사람들은 아버지가 누구인지 전혀 모르고 오직 어머니가 누구인지만 알 수 있었다. 한마디로 가부장적 결혼 제도가 성립되지 않았던 모계 사회였던 것이다. (p. 91)

그리스인들이 자신들의 가부장적 신들과 함께 발칸반도로 이주해 왔을 때, 모신들 및 그들의 신탁과 남성 신들의 지배권 사이에 일종의 이데올로기 투쟁이 있었을 것이다. (p. 130)

로마를 건국한 로물루스 레무스 형제도 아내를 약탈해옴으로써 나라의 기틀을 잡았다. 그 이전에 신화시대에도 이미 다른이의 아내임에도 불구하고 여자를 약탈해가는 경우는 흔했다. 신들은 거리낌 없이 남의 아내를 탐했지만 인간들 또한 그러했다. 하다못해 트로이전쟁 또한 파리스가 남의 아내인 헬레나를 데려오면서 발생했다. 그리고 아내 약탈전이 아니어도 여자들은 관리대상이었다. 모계 중심의 씨족사회에서 부계 중심의 가부장 사회가 되면서 남자들은 자신의 아이임을 확실히 하기 위해 여자들 또한 소유물화 했다. 신화에서 신들의 권력이동은 인간사회에서의 인식변화를 내포하고 있었다.

그리스 신화와 고대 오리엔트 지역의 신화 사이에는 많은 유사점이 있다. 성서에도 고대 오리엔트 신화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그리스 신화에서 성서와 공통점을 지닌 대표적인 것으로는, 성서의 낙원에 해당되는 황금시대와 성서의 노아의 방주에 해당하는 대홍수의 이야기를 꼽을 수 있다. 그리스 신화와 성서 사이에는 넓은 의미에서의 유사점을 또 하나 찾아볼 수 있는데, 이것은 거듭해서 새로운 시대가 등장하는 '순환론적인' 역사관이다. 이런 역사관에서는 하나의 시대가 큰 재난으로 파국을 맞게 되면 새로운 시대가 그 뒤를 잇게 되고, 결국에는 이런 시대들의 연속 전체가 또 다시 반복된다. 이에 대비되는 직선적인 역사관은 후기 유대문화에서 시작되어 기독교로 유입되는데, 이 관점에 따르면 역사는 천지창조로부터 인류의 구원이라는 목표에 이르는 하나의 일관된 흐름이다. (p. 140)

오비디우스나 베르길리우스 같은 위대한 시인들도 일조했던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정치선전은 그의 치세를 새로운 황금 시대라고 선언함으로써 황금시대로 되돌아가고 싶어하는 인류의 오랜 갈망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 이런 시대 구분을 이용하여 오히려 반로마적인 감정을 선동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이에 따르면 로마가 세계를 지배하던 시대는 인류의 타락과 몰락을 가져온 철의 시대가 된다. 기독교 교부들도 역사에 대한 이런 해석을 받아들였다. (p. 142)

카오스를 종식시키고 질서를 창조한 신들의 이야기는 바빌로니아에서 유래하여 그리스인들에게 전해진 것이다. 헤시오도스의 '신들의 계보'와 성경의 천지창소 이야기 사이의 커다란 유사성은 이 둘이 모두 동일한 원천에서 유래했다는 사실로 설명할 수 있다. (p. 260)

인간 창조에 관한 그리스 신화는 성서의 창조설화와 마찬가지로 중동 지방의 설화에 근원을 둔다. 성서에 나오는 최초의 인류 아담과 이브는 그리스 신화의 데우칼리온과 퓌라에 해당한다. (p. 368)

신화를 알면 역사와 종교적 해석에도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또한 정치적 해석까지 가능하다.

표면적으로 보여지는 모습이 다를지라도 비슷하게 이용되는 경우는 지금의 현실에서도 찾아보기 어렵지 않다.

중세의 영웅 지크프리트에게 아킬레우스의 경우와 같은 문제가 발생한다. 그는 용의 피에 몸을 담금으로써 부상을 입지 않는 신비한 힘을 얻지만 이때 그의 등에 보리수 잎이 떨어져 그곳이 그에게 '아킬레스건'이 된다. (p. 173)

마법의 힘을 지닌 황금 머리카락이라는 모티브는 고대 신화에도 자주 등장한다. 동화적인 모티브가 고대로부터 그림 형제에 이르는 오랜 노정에서 거의 변화를 겪지 않고 그대로 유지된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라 할 수 있다. (p. 211)

성 게오르크의 전설 속에는 페르세우스와 안드로메다의 신화가 살아서 이어진다. 성 게오르크는 용에게 희생 제물로 바쳐진 아이아 혹은 클레오돌린데라고 하는 아름다운 공주를 구해주고 그녀의 사랑을 얻는다. (p. 344)

신화에서 소설이나 희곡 등 문학으로 바로 연결된 경우도 많지만, 동화에 반영된 것들도 많았다. 신화는 환상적이다.

에리뉘에스는 법 질서가 거의 가족 단위에 제한되어 있어 피의 복수가 유일한 사법 형식이었던 신화시대의 여신들이었다. (p. 216)

오레스테스 사건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복수에 대한 법적 권리와 의무가 가족으로부터 법정으로 옮겨갔다는 것이다. (p. 219)

이피게네이아의 신화에서 아르테미스에 의해 인간 희생이 폐지되는 것과 유사한 이야기가 구약에도 나온다. 그리스 신화와 마찬가지로 유대의 설화도 노한 신에게 인간을 희생 제물로 바치던 고대의 오래된 관습을 증언해 준다. (p. 244)

티탄족들은 다시 타르타로스에 감금되고 새로운 질서가 수립되었다. 하지만 이 질서가 얼마나 오래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리스인들도 다른 민족들과 마찬가지로 카오스에 대한 불안을 지니고 있었다. 바로 이것이 그들이 그토록 진지하게 종교적 제의를 거행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들판의 풍작과 가축의 다산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리라는 보장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매년 새로이 그에 대해 기원해야 했다. 그리고 왕들은 신들과 도시를 창건한 영웅들에게 희생 제물을 바치는 제사를 올림으로써, 정치적 질서가 무너져 도시가 카오스 상태에 빠지는 일을 막아야 했다. (p. 259)

개인적 복수에서 법정에서의 판결로 인간 희생제물에서 동물 희생제물로 혼돈에서 질서유지를 위한 제의로 신들의 생성과 탄생 및 신들에 대한 제의의 변화는 곧 사회를 지탱하는 구조적 기준을 보여준다.

신들이 티탄족이나 기간테스 족과 전쟁을 벌이는 이야기는 이 신들이, 그리고 이 신들과 함께한 고대 그리스 문명이 어떻게 그들의 지배권을 확립했는지를 추측하게 해준다. 그리고 동시에 이 지배에 반발하여 계속해서 폭동이 일어났다는 사실도 말해준다. (p. 320)

그리스 민족의 선조들은 말을 가지고 그리스로 이주해 왔으며 신화의 영웅들은 대부분 말 사육과 전차몰이에 능숙했다고 전해진다. 말과 거의 한 몸인 것처럼 움직이는 북방 기마민족의 전사들이 그리스인들에게는 매우 두렵게 느껴졌던 것 같다. 아마도 그로 인해 켄타우로스족의 신화가 생겨났을 것이다. (p. 266)

포세이돈은 원래 그리스 이전 시대의 신이었다가 초기 그리스 시대에 와서 말의 신과 결합되었고 그 후 그리스의 바다신이 된 것이다.

그리스인들이 트로이를 함락시키는 데 사용한 목마는 포세이돈에게 바쳐졌을 가능성이 높다. (p. 355)

테세우스는 다시 길을 떠나면서 아리아드네를 이 섬에 홀로 남겨둔다. 왜였을까? 보편적으로 보아 전설 속의 어떤 영웅도 첫 번째 모험길에서 아내를 얻어 귀향하는 법은 없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이것은 타향에서 돌아오는 수공업의 도제들도 마찬가지다. 영웅이나 도제는 모두 왕이나 장인이 되어 한 곳에 정착한 후에야 아내를 구하는 법이다. (p. 300)

신화의 배경을 알면 알았던 신화도 새롭게 보인다. 신들의 전쟁은 인간들의 세력다툼을 은유하고, 기마민족에 대한 불안감이 훨씬 이전부터 유래되었음을 알수 있었다. 포세이돈이 말의신이기도 했다는 것을 처음 알면서 관련된 일화들에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되기도 했다. 신화에 등장하는 영웅들의 모험과 정착속에 아내의 위치를 설명하는 부분도 이마를 탁 치는 순간이었다.

그리스인들이 기간테스와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신들을 즐겨 묘사했던 것은 그것이 야만족에 대한 그들의 우월성을 입증해 주는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p. 263)

헤라클레스가 그토록 많은 여행을 한 이유는 그리스인들이 그를 각별히 사랑했기 때문이다. 즉 모든 그리스인들은 헤라클레스가 자신들의 고장을 방문하여 위대한 업적을 남겼거나, 혹은 심지어 그곳의 공주를 임신시켜 그 도시의 귀족 가문의 시조가 되었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p. 404)

오비디우스의 작품에서 비너스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를 통해 오비디우스는 수많은 에로틱한 이야기들을 그의 작품에서 다루었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그의 이 연작 신화집(변신이야기)을 아우구스투스 황제에 대한 찬양의 글로 만들 수 있었다.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 가문은 비너스의 후손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p. 361)

그리스 초기의 명문 귀족들은 미국 서부의 농장주처럼 서로 소떼를 훔치는 것을 일종의 스포츠로 즐겼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p. 408)

이 교통 안내 표시는 초기에는 단지 길을 가리키는 돌무더기였으나, 후에는 헤르메스의 머리가 새겨진 사각의 기둥으로 발전했다. 앞쪽에는 남자의 성기가 새겨져 있어 여행이 남자들의 일임을 상징했다. (p. 414)

트로이 전쟁에 참가한 영웅들 중에 아내에게 끝까지 충실했던 인물은 헥토르 하나뿐이었고 남편에 대한 사랑을 변함없이 지켰던 여인도 그의 아내 안드로마케뿐이었다. (p. 417)

헤르미오네는 남편(네오프톨레모스)의 노예인 안드로마케를 질투하여 남편이 집에 없을 때 그녀와 아들들을 살해하려 했다. 아킬레우스의 아버지이자 네오프톨레모스의 할아버지인 펠레우스가 개입하여 그들은 간신히 죽음을 모면할 수 있었다. (p. 420)

그리스인들이 신화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들이나 그들의 욕망 혹은 의도 그리고 문화를 알게 되면 신화를 보다 더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다. 나아가 그리스비극이나 펠로폰네소스전쟁사 같은 다른 고대관련 책들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예를들어,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읽을때 헤르메스의 기둥관련 에피소드가 있었는데, 그 모양에 대한 의미를 이제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안드로마케가 나중에 노예신분에서 벗어나 도시국가를 건설하게 되는 아이네이스 속 이야기가 떠올라 신화에 읽었음에도 더 신화를 알고 싶은 확장되는 호기심에 입문서로의 이 책의 능력을 여실히 느낄 수 있기도 했다.

신화는 언제 읽어도 또 읽어도 참 재미있는 것 같다. 그리고 읽을 때마다 점점 더 깊은 의미를 알게 되는듯 해서 또다시 새롭게 읽게 될 것 같다.

신화 읽기의 즐거움을 가르쳐주는 이 책을 읽는 내내 많이 즐거웠다. 역시 '최대한 쉽게 설명해드립니다' 시리즈는 참 좋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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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이 휩쓴 세계사 - 전염병은 어떻게 세계사의 운명을 뒤바꿔놓았는가 생각하는 힘 : 세계사컬렉션 17
김서형 지음 / 살림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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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은 어떻게 세계사의 운명을 뒤바꿔놓았는가

 

 

역사가 재미있는 이유 중 하나는 다양한 측면으로 살펴볼 수 있다는 점이다.

매시간매순간 다양한 곳 다양한 사람에게 많은 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다. 그런 시간들이 쌓여서 역사가 된다. 그런 순간들 중 어느 장면을 포착하느냐에 따라 역사는 매번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이 책은 세계사책치고 무척 얇은 편이라 역사서로서는 빈약하지만 세계사속 '팬데믹'에 초점을 맞추어 세계적 전염병사를 짧고 굵게 알려주고 있다.

석기시대에도 질병은 있었다. 그러나 이동식 생활에서 정착생활로 변경되면서 전염병은 생존에 커다란 위험요인이 되었다.

기생충은 인간과 동물에게 모두 전염병을 옮긴다. 농경이 시작된 이후 야생동물이 인간과 함께 살게 되면서 인간 사회에서 기생충에 의한 전염병이 자주 발생했다. 수렵·채집 시대보다 공동체의 규모가 컸기 때문에 전염병은 더욱 빠르게 확산되었고, 생활 터전을 버리고 떠나지 못하는 많은 사람이 전염병으로 목숨을 잃었다.

농경시 시작되면서 사람들은 수렵·채집 시대보다 더 많은 노동을 해야 했다. 작물을 재배하면서 인간 사회에는 당뇨병과 관절염이라는 새로운 질병이 발생했다. (p. 19)

따로 살때보다 모여살면서 더 다양한 질병이 생겨났고 멀리 있는 곳까지 이동하며 교류하면서 더 위험한 전염병이 생겨났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다.

인류가 문명을 이루고 도시와 국가를 형성하며 세계적 네트워크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 네트워크를 통해 신문물 뿐만 아니라 질병도 퍼지기 시작했다. 그 첫번째는 실크로드를 통한 천연두였다.

농경이 시작된 이후 사람들은 더 많은 생산물을 얻기 위해 소를 길들이기 시작했는데, 천연두는 소와 인간에게 공통으로 발생했다. 일찍부터 농경이 발달한 아프로-유라시아의 여러 지역에는 천연두와 관련된 기록이 남아 있다. 수천 년 전에 인도에서 처음 발생한 것으로 보이는 천연두는 중앙아시아에 살고 있던 훈족이 옮겨 다니면서 아프로-유라시아의 여러 지역으로 확산되었다. 그리고 수많은 도시와 지역을 연결하고 있던 글로벌 네트워크인 실크로드를 통해 로마까지 번졌다. (p. 33)

실크로드가 육로를 통해 중국과 로마를 연결한 광범위한 글로벌 네트워크였다면, 바닷길은 유럽과 아프리카, 인도와 동남아시아를 연결하는 글로벌 네트워크였다. (p. 40)

실크로드는 육로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바닷길도 있었다. 그렇게 예전부터 사회는 전세계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리고 오는 질병 있으면 가는 질병도 있는 법이다.

541년에 동로마제국에서 처음 발생한 페스트는 아프로-유라시아에서도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인구 변화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동로마제국이 점차 쇠락의 길을 걷는 동안 페스트가 영향을 미치지 않은 다른 지역에서 이슬람제국이 등장해 동로마제국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p. 47)

질병은 인류의 목숨과 직결되어 있는 문제다. 아무리 사회가 발전하고 산업이 발전하고 권력을 손아귀에 쥐어도 죽으면 다 일장춘몽이다. 권력의 이동은 군인과 병력에 좌우되었고 병력은 질병에 큰 영향을 받았다. 승승장구 하던 국가일지라도 전염병으로 노동력과 군사력이 감소하면 타격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인류 역사 속에 등장한 제국들은 넓은 영토를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도로를 정비했다. 로마제국에서는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도로를 체계적으로 건설했고, 페르시아제국에서는 서쪽 끝까지 2,700킬로미터에 달하는 '왕의 길'을 건설했다. 칭기즈칸과 그의 후계자들도 도로 건설에 관심이 많았는데, 30~40킬로미터마다 역참을 설치했다. (p. 50)

권력과 정복의 확산에도 중요했겠지만 전염병의 확산에도 '길'이 중요했다. 그리고 이 길을 따라 질병도 함께 이동했다.

14세기 동안에 아프로-유라시아에서 가장 치명적인 전염병은 흑사병이었다. 흔히 '페스트'라고 부르는 흑사병은 중국 남서부 지역의 윈난성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던 풍토병이었다. 몽골제국이 윈난성을 정복하면서 흑사병은 자연스럽게 몽골제국 내부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 뒤로 상인들의 교역이나 활발한 정복 전쟁과 함께 몽골제국 근처의 여러 지역으로 흑사병이 퍼졌다. (p. 53)

흑사병은 십자군 전쟁과 더불어 1,000년 이상 유럽을 지배한 교회가 붕괴되는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영주나 제후는 교회의 간섭과 구속에서 벗어나 자신의 권력을 확대해나갔고, 이는 결국 새로운 형태의 국가가 탄생하는 데 중요한 토대를 제공했다. (p. 60)

권력의 중심엔 대부분 종교가 함께하기 마련이었다. 종교는 중앙집권적 권력형성에 튼튼한 기반이 되어주었다. 하지만 전염병에 사람들이 죽언나갈때 종교는 아무런 힘이 되지 못했다. 그렇게 흐트러진 믿음은 권력도 흔들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흔들린 권력은 또다른 모양의 권력을 만들어내기 마련이었고... 그렇게 역사가 되기 마련이었다.

15세기 말 콜럼버스가 아메리카에 도착한 이후 30~40년 동안 유럽인이 아메리카로 이동하면서 숨낳은 전염병이 아메리카 원주민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미쳤다. 천연두와 홍역, 인플루엔자, 페스트, 티푸스, 디프테리아 등 모든 전염병은 아메리카 원주민에게 낯설고 이질적이었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에 도착한 지 한 세기가 채 지나지 않아 아메리카 원주민의 90퍼센트 이상이 멸종했다. (p. 74)

동식물만 멸종하는게 아니다. 인류도 멸종한 종류가 많았다. 특히나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 멸종은 인류사에 가장 참혹한 질병사가 아닐까...

1845년 다시 한번 기근이 발생했다. 감자역병균이라는 전염병 때문이다. 감자 기근과 더불어 아일랜드에서는 심각한 전염병이 발생했다. 사실 굶주림보다 전염병으로 사망한 사람이 훨씬 더 많았다. 1845년 대기근 동안 가장 빈번하게 발생한 전염병은 티푸스였다. 티푸스는 주로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자주 발생했다. (p. 85, 86)

질병은 동물과 인간으로부터만 오는 것도 아니었다. 기후와 환경은 갈수록 새로운 질병을 생성했다. 1300년대부터 1800년대까지 '소빙기' 동안 극심했던 추위는 기근을 불러왔다. 변화되는 기후와 기근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아진 인구는 (자연이 스스로 정화할 수 없는 수준의) 비위생적 환경을 만들었고 다시 전염병이 퍼지는 악순환을 만들었다.

이른바 '콜럼버스의 교환'으로 아프로-유라시아에서 아메리카로 이동한 작물 가운데 사탕수수와 커피가 잘 자랐다. 그래서 유럽인들은 사탕수수와 커피를 재배하는 대규모 플랜테이션 농장을 세웠다. 하지만 천연두나 홍역 등 아프로-유라시아에서 이동한 전염병으로 아메리카 원주민의 수가 급속하게 감소하면서 농장에서 일할 새로운 노동력을 찾아야만 했다. 유럽인들은 아프리카 출신의 흑인 노예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노예는 인류 역사상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기원전 2000년 무렵 수메르에서는 노예의 코에 코뚜레를 끼우고 가축과 동일하게 취급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p. 94)

고대에는 주로 채무 관계나 전쟁 때문에 노예가 되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노예주와 노예가 피부색이 비슷한 경우가 많았다. 피부색이 다른 사람을 노예로 삼은 대표적인 사례로는 이슬람의 노예무역을 들 수 있다. 9세기 무렵 이슬람 상인들은 동유럽과 남유럽, 중동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요충지인 발칸반도의 전쟁 포로를 노예로 삼으면서 '슬라브Slav'라고 불렀는데, 이것이 영어로 '노예slave'를 지칭하는 용어가 되었다. 11세기 즈음 이슬람 상인들은 에티오피아나 말리 등 아프리카 국가들과 교역하면서 아프리카 노예를 사고팔기 시작했다. (p. 95)

슬라브족은 백인계열 아닌가? 노예의 어원이 백인노예였다니... 이또한 참 아이러니하다...

아메리카 원주민과 달리 다양한 풍토병에 오랫동안 노출되었던 아프리카 원주민은 웬만한 전염병은 이길 수 있는 면역력을 가지고 있었다. 오히려 유럽인은 아프리카의 전염병에 저항할 아무런 면역력도 없었다. 노예로 잡히거나 팔린 아프리카 원주민과 함께 아메리카로 이동한 전염병은 황열병이었다. (p. 102)

동인도회사는 설탕이나 차, 면직물 등 인도의 다양한 상품뿐만 아니라 치명적인 풍토병(콜레라)이 영국으로 이동하는 데 주요한 매개체였다. (p. 113)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만들어진 전염병에 쓰러지던 유럽인들은 자연에서 만들어진 풍토병에도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력은 쓰러지지 않았다.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인 전염병은 결핵으로 알려져 있다. 기원전 7000년 무렵 수렵·채집 시대의 화석에서 결핵의 흔적이 발견되고, 기원전 2400년 무렵 이집트의 미라에서도 흔적을 볼수 있다. 결핵은 인류 역사상 매우 오래된 전염병 가운데 하나였지만, 산업 네트워크가 형성된 이후에 더욱 급속도로 확산되었다. (p. 124)

저자는 결핵이 빈부 격차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전염병이라고 말하며, 오늘날 결핵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지역이 인도와 아프리카라고 알려준다. 결핵은 영양부족과 연결되어 있으니 어쩌면 당연한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비교적 잘 살게 된 지금의 우리나라에서도 결핵환자는 여전히 생겨나고 있다. 잘 살게 됐다고 해서 모두가 잘 살게 된 것은 아니니 이또한 어쩌면 당연한건지도 모르겠다...

『조선왕조실록』은 조선 태조부터 철종까지 472년간의 역사를 시간 순서에 따라 편년체로 기록한 역사서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염병'이라는 단어가 총 736회 등장한다. 우리나라에서 비속어로 사용되는 단어인 '염병'은 전염병을 줄인 말이기도 하지만 주로 장티푸스를 가리킨다. (p. 132)

기근과 전염병은 쌍둥이인가 보다. 굶주림에 시달리던 신체에 퍼진 전염병에 인류는 속수무책일 때가 많았다. 그럼에도 이렇게 인구가 늘어난 것을 보면 참... 인류가 대단하긴 하다.

아일랜드 이민자에 대한 미국인의 부정적인 시선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일화는 '장티푸스 메리'사건이었다. (p. 138)

전염병은 빈부격차를 다시 확인시켜주는 계기가 되곤 한다.

미국내에서 결핵이 퍼졌을때 백인만을 위한 요양원이 세워졌고, 기근에 시달리던 아일랜드 이주민들이 미국에 몰려들기 시작했을때 먼저 와있던 이주민들은 노골적으로 적대시하곤 했다. 아일랜드 이주민 여성이었던 메리가 요리사로 일했던 집마다 장티푸스 환자가 발생하자 보건당국은 메리를 조사했고 메리가 무증상 보균자임이 확인되어 남은 일생을 수용소에서 격리된 삶을 살아야 했다.

미국내전 동안 사망자 수는 약62만명 이었다.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사망자가 발생한 전쟁이었다. 하지만 이 가운데 전투로 사망한 사람은 전체 사망자의 약3분의1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나머지 3분의2에 해당하는 약40만 명은 왜 목숨을 잃었을까? 그것은 다름 아닌 전염병 때문이었다. 그중 가장 심각한 전염병은 세균성이질이었다. 세균성이질은 주로 환자의 배설물을 통해 시겔라균에 감염되어 발생한다. (p. 155)

집단생활에서 전염병은 치명적이다. 전쟁이 발생할때마다 사망자수엔 전쟁 자체보다 전염병으로 인한 수가 생각보다 훨씬 많았다. 전쟁의 피해를 생각할때 놓쳤던 부분이다.

1918년 봄에 처음 발생한 인플루엔자는 유럽으로 파견된 병력과 함께 이동하면서 한 달 이내에 유럽 전역으로 퍼졌다. 유일하게 제1차대전에 참전하지 않은 국가는 스페인이었는데, 스페인 언론은 인플루엔자에 관해 빈번하게 보도했다. 이후 많은 사람이 이 전염병을 '스페인 독감'이라 불렀지만, 사실 인플루엔자는 스페인에서 시작된 것도 아니고 스페인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 것도 아니다. 따라서 최근 일부 역사학자들은 이 전염병을 스페인 독감 대신 '1918년 인플루엔자' 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p. 162)

'스페인 독감' 들어봤는데, 스페인이랑 별 상관이 없다니 거참... 스페인으로서는 영 기분이 안좋겠다. 코로나가 처음은 중국코로나 였다가 국가의 이미지를 고려해 중국이라는 빠진 걸로 아는데, 질병 명칭에도 국가권력이 영향을 미치나 보다...

현대전쟁을 이야기하며 저자는 '셀 쇼크' 같은 정신적인 전쟁 트라우마도 언급하지만, 글쎄... 트라우마를 전염병이라고 볼 수는 없지 않을까?

세계보건기구가 정한 심각한 전염병 가운데 하나가 말라리아다. 일부 과학자들은 약2,000만 년 전부터 말라리아가 존재했다고 주장한다. 아직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인류 역사에서 매우 오래된 전염병인 것은 확실하다. (p. 190)

이처럼 오래된 질병인 말라리아에 대한 백신은 아직 개발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전 세계 말라리아 환자의 90퍼센트 이상이 사하라사막 이남 지역 아프리카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거대 제약기업들에게 말라리아 백신은 돈이 되지 않는다고 여겨질 것이다.

에볼라바이러스도 황열병이나 말라리아, 에이즈처럼 아프리카에서 발생하는 풍토병이라 할 수 있다. 많은 사람이 에볼라는 1976년 아프리카 중부에 있는 콩고공화국에서 최초로 발생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2014년 지금까지 한 번도 발생하지 않은 서아프리카에서 에볼라가 다시 등장했다. 가장 먼저 에볼라가 발생한 나라는 기니였다. (p. 207)

한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한 질병일지라도 세계적 전염병이 되는 것은 순식간임을 역사는 내내 보여주고 있다. 세계는 늘 연결되어 왔다. 근시안적 이익에만 몰두하다간 걷잡을 수 없는 결과를 만들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학자들은 에볼라와 마찬가지로 사스도 박쥐가 매게체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중국·호주·미국 공동 연구팀은 중국에서 서식하는 박쥐 아홉 종류를 조사하고 이 가운데 70퍼센트가 사스와 유사한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다고 발표했다. (p. 212)

족제비는 인간이 인플루엔자바이러스에 감염되는지 확인하기 위한 지표 동물로 사용된다. 따라서 족제비에게 감염되는 바이러스는 인간에게 감염될 확률이 매우 높다. (p. 216)

신종인플루엔자A는 2003년 미국에서 처음 발생했고, 2009년에는 전 세계적으로 대유행했다. 신종인플루엔자A는 우리나라에서도 매우 치명적이었다. 확진판정을 받은 사람들은 타미플루를 복용했다. 타미플루는 국제보건기구로부터 유일한 조류인플루엔자 치료제로 인정받은 약이다. 결국 신종인플루엔자A는 조류인플루엔자의 또다른 변이라고 볼 수 있다. (p. 219)

에볼라, 사스 그리고 코로나까지 박쥐와 연결되어 있다니... 박쥐란 참 신묘한 동물이긴 한가 보다. 그러니 연구를 안할수는 없고 연구하다 바이러스에 걸리면 난리가 나고 거참...

족제비가 인간 대신 바이러스 검사체로 이용되고 있었구나... 족제비가 이렇게 인류와 밀접한 관계의 동물인지 몰랐네... 괜히 미안해지네...

조류독감이 발생할때마다 엄청난 살처분 뉴스를 보며 좀 과하지 않나 싶었었는데... 직접적인 전염이 되지 않더라도 같은 타미플루가 효과를 보는 인플루엔자여서 그랬구나... 그러다 인수공통바이러스가 언제 나타날지 모르지 그럴 수도 있었겠구나... 철새...조류독감... 반복... 거참....

현대사회는 밀접한 네트워크로 연결된 사회다. 아무리 코로나가 창궐해도 최대한 빠른 관계회복을 위해 국가별로 최선을 다해야 하는 모습을 보며 더욱 그런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러한 상호관련성이 이익을 넘어 전염병 극복과 질병예방에 전세계적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다면 참 좋을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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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친일파 - 반일 종족주의 거짓을 파헤친다
호사카 유지 지음 / 봄이아트북스 / 2020년 3월
평점 :
품절


일본 우파의 논리를 그대로 가져온 21세기 신친일파, 그들 앞에 맞선

한일 관계 전문가 호사카 유지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 강제징용문제, 독도문제'에 관한

『반일 종족주의』 저자의 왜곡과 오류를 조목조목 지적한다

 

 

'반일 종족주의'라는 책이 나왔을때 책소개내용과 기사들을 보며 뭐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버젓이 나오나 싶었다.

그런데 예상외로 어쨌든 그 책은 관심을 많이 받았고, 일본에서도 출판되어 꽤 많이 팔렸다는 얘길 들으니 그저 기가막힐 뿐이었다.

기사내용의 일부만으로도 이미 헛소리로 보이는 책에 내 시간을 쏟으며 읽어야 할 이유는 없었기에 그 책은 내 시야에서 바로 사라졌다.

그리고 뒤이어 이 책이 나왔다.

좀 옛날식?! 표지디자인이 영 내취향은 아니었지만, 상식삼아 읽어보면 좋겠다 싶어 읽어봤다.

읽고나니, 너무 당연한 내용들에 너무 명백한 증거들이던데 이런 모든 것들을 다 거짓이라 부정하고 악의적 편집을 한 '그' 책에 대해 더욱 화가 났다.

저자는 일본인이지만 도쿄대 졸업 후 고려대에서 정치학 석사&박사 학위를 받고 한국에 정착해(2003년 귀화함) 한일관계 연구를 하고 있는 학자였다.

한국인이 친일을 할때 일본인이 친한을 해준다는 것은 표면상으로도 의미있는 일인만큼, 헛소리에 논리적으로 반박해주어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2019년 『반일 종족주의』라는 기이한 제목의 책이 우리나라에서 출간되었고, 뒤이어 일본에서도 출간되었다. 그 책의 저자들은 한국인의 반일적인 '상식'이나 '정서'가 근거 없는 거짓말이라고 하면서 일본에 대한 '노예근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따라서 이 책에서는 그들이 책 『반일 종족주의』를 통해 주장하는 한국인들의 '상식'이나 '정서'중 현재 한일 양국이 외교적 갈등을 빚고 있는 문제들, 즉 일본군 '위안부'문제, 강제징용 문제, 독도 문제 등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루고자 한다. 본서는 그들의 주장을 분석해 오류를 지적하고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위 문제들에 대해서 그들이 내세우고 있는 주장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원래 일본 우파의 논리에 자신들의 생각을 더해 저술한 내용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p. 5)

머리말의 시작부터 깔끔하게 이 책의 성격을 드러내고 있는데, 저자의 논리정연한 말들에 그저 고개를 끄덕일뿐 뭔가 다른 말을 덧붙인다는 것이 오히려 군더더기가 될 것 같아서 인상적이었던 내용들을 정리해 옮겨와 보는 것으로 책에 대한 감상을 정리해보려 한다.

일본 우파가 주장하는 논리의 시작은 1993년 8월 자민당의 미야자와 정권의 관방장관 고노 요헤이가 '고노 담화'를 발표한 직후였다. '고노 담화'는 '위안부'가 일본군에 의해 강제적으로 동원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리고 일본군 '위안부'피해자들에게 사과와 반성의 마음도 표했다. 그러자 자민당 내 극우 세력이 반발하고 나섰다. 나아가 '고노 담화' 폐기를 목표로 본격적인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자민당 내에 '역사검토위원회'가 결정되었고, 우파 논객들을 강사로 초빙해 모임을 지속해서 가졌다. 그러면서 자민당 내부에 극우 세력이 대두하기 시작했다. 2년이 지난 1995년 8월 일본 정부는 '종전 50주년'을 맞이해 '무라야마 담화'를 발표했다. '무라야마 담화'는 일본의 침략 전쟁과 과거 식민지 지배에 대해 당시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가 세계 앞에 사과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런데 이에 대해서도 자민당 내 극우 세력이 강하게 반발했다. 일본 우파의 최종적인 목표는 '고노 담화' 와 '무라야마 담화'를 부정하는 데 있었다.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그들은 후지오카 노부카쓰 교수 등이 내세운 '자유주의 사관'을 도입했다. '자유주의 사관' 학설이란 일본이 침략 전쟁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 아시아를 백인 지배에서 해방시킨 '해방 전쟁'을 수행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난징 대학살이나 '위안부'강제연행을 부정하며, 일본이 아시아 국가들을 식민지배하면서 근대화시켰다고 강변한다. 그뿐만 아니라 일본의 과거를 사죄하는 태도를 '자학사관'적 태도라고 매도하면서, 일본의 사과 외교는 일본의 진보세력에 의해 만들어진 정치적 행위라고 주장한다. 1993년 '고노 담화'를 발표한 이후 자민당은 호소카와 내각에 정권을 넘겨주고 말았다. 창당 이래 무려 38년 동안 여당의 지위를 유지했던 자민당이 야당으로 전락한 것이다. 이와 같은 현상이 자민당 내 우파의 위기감을 자극해 우파의 논리 구축을 촉진시킨 결과 '자유주이 사관'을 도입하게 되었다. 이는 1997년 '새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과 극우단체 '일본회의' 결성으로 이어졌고, 일본 내에서 역사 왜곡을 심화시키는 주체적 역할을 해나갔다.그들은 또한 틈만 나면 '좌경화된 일본인의 의식을 바꾸어 놓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데 1998년 한국에서 김대중 정권이 성립된 이후, 한국내에서도 일본과 비슷한 현상이 일어났다. 바로 진보 세력에 대항하는 '뉴라이트'의 등장이다. 한국의 '뉴라이트'는 2000년경에 등장했는데, 일본과의 유사점은 한국 내 보수 우익이 1998년 정권을 상실한 것을 계기로, 정권 재창출을 위해 보수 우익의 논리를 추구한다는 데 있다. 2005년 뉴라이트 전국연합이 발족되었다. 이어서 2006년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가 뉴라이트재단을 창립해 초대이사장으로 취임했다. 『반일 종족주의』의 대표 저자 이영훈 낙성대경제연구소 이사장은 안병직 명예교수 등과 함께 조선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한국 경제사를 연구해왔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조선 경제를 연구한 것으로 알려진 그는 소위 '식민지 근대화론자'인 셈이다. 본서에서는 그들의 정치적 색깔을 문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논리와 주장을 문제로 삼았다. 본서는 특히 강제징용 문제, 일본군 '위안부'문제, 독도 문제 등에 관한 그들의 논리가 매우 잘못되었음을 입증해 나간다. (p. 6~8)

이영훈은 2018년 10월 말 확정된 강제징용 한국인 피해자에 대한 한국 대법원의 승소판결 역시 거짓말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일본 우파의 주장보다 훨씬 더 편협하다. 일본 우파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서 다 끝난 것을 뒤집은 이상한 판결이라고 했을 뿐, 거짓 판결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아베 정권 또한 한국 법원의 판결은 존중하지만 1965년에 모두 끝난 일이므로 한국 정부가 책임을 지고 해결해달라고 주장한 것이지, 거짓 판결이라고까지는 주장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영훈은 판결 자체가 거짓말이라고 주장했다. 『반일 종족주의』 일본판이 이미 일본에서 출간되었다. 일본인들이 그 책을 읽고 어떤 생각을 하게 될 것인지에 대해 이영훈은 걱정도 하지 않는 모양이다. 그는 어느 나라 사람이란 말인가. 필자가 분석한 결과, 이영훈과 이우연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원의 글에는 큰 결함과 왜곡과 은폐등이 다수 발견되었다. '노예근성'으로 가득 찬 잘못된 주장을 대중을 향해 펼치는 것은 정말 위험하다. (p. 18)

이영훈은 또한 어떤 말을 서술할 때 사실의 일부분만을 떼어내 자신의 주장과 연결고리를 만들어 읽는 이들로 하여금 믿게 만드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진실을 파악하기 위해 필요한 사실 100가지 중에서 그가 인용하거나 차용하는 비율은 20~30가지에 불과하며, 나머지 절대다수의 진실은 은폐하거나 왜곡하는 수법을 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또한 자신이 사람들에게 말한 20~30가지 중에 논리성을 만들어 그것이 마치 100가지 사실 전체인 것처럼 오해하게 만든다. 따라서 이영훈이나 이우연의 논리는 나머지 70가지 중 몇 가지 사실만 증거로 제시해도 쉽게 붕괴될 수 있다. 자신을 따르는 극소수 신봉자에게나 통하는 논리를 일반 대중에게 주장하는 셈이다. (p. 20)

원고들은 일본 측의 불법 행위에 대한 배상을 위자료로 청구한 것이지, 이영훈이 주장한 것처럼 받지 못한 저금이나 미불 임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제소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이영훈은 이 재판이 사감과 원고 사이의 문제이니 사감을 조사해야 하는데, 사감은 사망했으니 재판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원고들은 사감을 고소한 것이 아니라 일본제철을 고소한 것이고, 사감의 일은 내용 중 일부에 불과한데도 이영훈은 이 재판을 원고가 마치 사감을 고소한 사건인 것처럼 태연하게 왜곡했다. 하지만 재판의 내용을 모르는 사람들이 이영훈의 단정적인 글을 읽으면 그의 말에 현혹될 우려가 매우 크다. (p. 27)

메이지시대 일본 정부와 대규모 탄광들의 죄수 노동 정책이 나야 제도하에서 광부들을 착취하는 시스템을 만들어냈고, 그것은 조선인, 중국인, 전쟁 포로들의 강제연행과 강제노동으로 이어졌다. 일본 정부와 기업들이 일본인들도 기피하는 노예 노동에 조선인 등 타민족을 강제적으로 동원한 것이다. 이처럼 일본인들에게 노예 노역이었던 탄광에서의 지옥같은 착취 중노동을 타민족에게 시켰다는 사실을 '강제연행설 허구론자'들은 왜 모르는 척하는 것일까. (p. 44)

이우연은 강제징용 문제를 연구한 연구자로서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는데, 왜 '강제징용이 허구'라고만 강변하는지 그 까닭을 알 수가 없지만, '노예근성'이 발휘되어 그가 일본 앞잡이가 된 것이라면 그 주장을 이해할 수 있다. (p. 62)

중요한 사실을 이우연이나 일본 우파는 절대로 밝히려 하지 않는다. 그 대신 일부 부분적인 사실만을 부풀려 그것이 마치 전체적인 진실인 것처럼 목소리를 높이기도 한다. 이와 같이 일본 우파 논리의 노예가 된 사람들의 정신 상태는 구제하기가 어렵다. '노예근성'이 정신을 파괴해버린 것이다. (p. 93)

'2019년 11월 14일 일본 국회 중의원 외무위원회 회의록' 을 보면 2018년 11월 시점에서도 일본 정부는 개인 청구권은 소멸되지 않았고, 배상 문제는 한일 청구권 협정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분명히 인정했다. 그런데도 일본 측은 양국이 약속했기 때문에 재판에서 개인은 구제받지 못한다는 또 다른 주장을 내놓았다. 일본 측은 한국이 1965년에 일본과 맺은 약속을 어겼다고 강변하기 시작했다. 일본 정부의 주장은 항상 국가 대 국가의 약속이라는 말로 마지막을 장식한다. 그러나 개인 청구권이 남아 있다는 뜻은 개인이 해당 기업에 보상이나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의미다. 더구나 이번 소송들은 한국인 피해자가 일본이라는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것이 아니라, 개인이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 일제강점기의 불법성에 의해 기업이 피해자들에게 불법 행위를 저지른 사실에 대한 배상을 대법원이 명령했기 때문에 국가는 이번 판결문제에서 빠지고, 전범 기업들이 성실히 판결을 이행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다. 기업이 판결을 지키지 않는다면 기업의 한국 내 자산을 압류해 현금화한 뒤 피해자들에게 나눠줘야 한다. 그것만이 답이다. 한국 측의 판결 결과 집행에 대해 일본 정부가 한국에 대한 경제 보복을 다시 시작한다면, 그 결과는 일본의 국제적 고립으로 이어질 뿐이다. (p. 102)

이영훈은 자신의 논리-'위안부'들은 좋은 대우를 받았고, 돈도 많이 벌었으며, 자유롭게 지내며 폐업도 자유롭게 했으니 성노예가 아니었다-라는 논리에 유리해 보이는 부분만 인용했고, 자신의 논리와 맞지 않는 부분은 외면했다. 그와 같은 행위가 학자로서 올바른 태도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p. 117)

돈만 벌수 있다면 아무리 납치를 당해 성매매를 강요당했다 하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인권유린의 대표적인 견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돈만 주면 성노예로 삼아도 된다는 논리는 돈이 가장 가치가 있으니 다른 것은 눈감아 줄 수 있다는 물질만능주의, 배금주의의 발상이다. 이영훈은 '반일 종족주의'의 본질은 물질만능주의라고 스스로 비판하는데, 그의 견해가 물질만능주의 그 자체다. 이영훈은 경제학자이니 돈이 제일 가치가 있다는 발상을 하는지 모른다. 그렇다고 모든 경제학자가 돈을 인권보다 중요한 가치로 보는 것은 아니다. 이영훈을 비롯한 『반일 종족주의』의 저자들은 물질만능주의나 배금주의 신앙에 빠진 사람들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그렇다면 그들이야말로 종족주이자일 텐데, 왜 한국 사람들의 정신문화를 '반일 종족주의'라고 비판하는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종족주의'라는 말은 아마도 자신들을 관찰해서 나온 말일지도 모른다. 그런 뜻으로 그들을 '친일 종족주의'자라고 할 수도 있다. (p. 118)

그런 진실을 왜곡하는 일본 우파나 한국의 신친일파들은 하늘이 용서하지 않을 인권유린주의자들이다. (p. 128)

한국의 성매매 문제와 일제강점기의 일본군 '위안부'문제는 그 억압성이나 폭력성에 있어 큰 차이가 있다. 그런데도 『반일 종족주의』의 저자들은 그 차이를 무시했다. 그들은 일본이 역사적 잘못을 인정하지 않아서 생긴 반일 감정을 한민족의 미신이나 샤머니즘 같은 것이라고 갖다 붙여서 왜곡한다. 그들이 '반일 종족주의'라는 말을 만든 목적은 일제강점기에 대한 올바른 인식 확산을 방해하려는 의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사실 일본 우파는 과거 일본이 저지른 만행을 은폐할 목적으로 홍보와 연구, 집필, 언른 등의 활동을 해오고 있다. '반일 종족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 아닌가.

한국인의 일본군 '위안부'문제에 대한 올바른 주장이 미신이나 샤머니즘 이라면 한국 측 주장을 지지하는 UN인권위원회나, 일본 내엥서 일본군 '위안부'피해자들을 지원하는 일본인 활동가나 학자들, 단체들도 다 미신을 믿는 반일 종족주의자란 말인가.

그런데 『반일 종족주의』의 저자들은 '종족주의'라는 말을 매우 교묘하게 만들었다. 일본의 신도 사상이야말로 일본식 '종족주의'이고, 일본이 바로 '신도 종족주의'의 나라인데, 그 사실을 은폐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 말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 신도나 신사의 사상은 일본식 샤머니즘이다. 그런 일본식 '신도 종족주의'에서 나오는 주장들이야말로 일본 신도가 국가 종교였던 1945년까지 일본을 이상형 국가로 보는 일본 우파의 주장과 동일하다. 일본 우파는 일왕이 하늘의 혈통을 이어받은 신이고, 1945년까지 대일본제국은 죄가 없었다고 주장한다. 일본식 '신도 종족주의'를 외치는 사람들은 일본의 우파이자 역사 수정주의자들이다. 그런 일본의 우파와 같은 주장을 하는 한국인들이야말로 '친일 종족주이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반일 종족주의』의 저자들은 단어 하나만 바꾸면 자신들에게 딱 들어맞는 명칭을 스스로 만들어낸 셈이다. (p. 186)

1991년 김학순이 '위안부'였음을 고백했을 때, 구 일본 병사들은 많이 생존해 있었다. 따라서 김학순이 고백했을 때 만 62세부터 91세까지의 전쟁 경험자 중에 많은 분들이 살아 있어 할머니의 고백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이 입을 열지 않았다. 전쟁을 경험한 생존자들이 김학순의 고백에 반론하지 않았던 이유는 김학순의 이야기가 주익종이 말하는 '가공의 새 기억'이 아닌 역사의 진실이었기 때문이다. (p. 259)

『반일 종족주의』저자들은 인권 문제와 안보 문제를 일부러 혼동하는 척하는 것 같다. 안보 문제를 거론하면서 '위안부' 문제나 강제 징용자 문제와 같은 인권 문제를 덮으려고 한다. 그것은 일본 우파가 원하는 방향이다. 하지만 미국 입장은 그렇지 않다. 미국은 인권 문제를 한일 두 나라가 제대로 해결해서 안보 협력이 잘 되기를 바란다. 그런데 한국의 신친일파는 일본 우파의 입장을 수용해서, 다시 말해 일본에 대폭적으로 양보해서 안보 협력을 하자고 주장한다. 한국의 신친일파는 일본이 제대로 사죄를 하고 일본의 법적 책임을 인정했을 때, 그 후에 전개될 진상 규명으로 자신들의 선조의 친일 행각이 드러날 것을 두려워하고 있을 것이다. 『반일 종족주의』 저자들이 그런 부류나 신친일파가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p. 271)

이영훈의 독도에 대한 서술은 그동안의 독도 연구 성과를 전혀 모르면서 마치 자신의 주장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우기는 글이다. 그의 글에는 독도와 관련된 역사 연대조차 잘못된 부분이 많고, 사실관계 인식에도 오류가 많다. 예를 들어 이영훈은 독도를 거론할 때 기초적 문헌인 『세종실록지리지』 간행 연도가 1454년인데 1451년이라 썼고, 독도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알고 있는, 일본이 독도를 불법 편입한 연도인 1905년을 1904년으로 잘못 썼다. 이는 단순한 실수로 간주할 수 없으며, 이영훈의 독도에 관한 '무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 이외에도 독도에 관한 연대의 무지가 다수 드러난다.(p. 275)

이영훈이 왜 일본 측 논리를 그대로 대변하는지 알 수 없다. 이영훈은 한국 측 연구자들의 주장에는 아예 귀를 닫은 채 왜 일본측 논리만을 신봉하는지 모르지만, 학자라면 모름지기 여러 의견이나 주장을 두루 살펴야 하는데도 말이다. (p. 292)

이영훈의 주장은 다음과 같이 일본의 논리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솔직히 말해 한국 정부가 독도가 역사적으로 그의 고유한 영토임을 증명하기 위해 국제사회에 제시할 증거는 하나도 존재하지 않은 실정입니다.

참으로 한심하기 짝이 없는 주장이다. 오랫동안 일본 측의 논리만 파고들었다 할지라도 이 같은 발언은 결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독도가 한국 영토라는 역사적 증거를 살펴보자. (p. 299)

 

(1)세종실록지리지 에서... (2)숙종실록에서... 그외 다양한 책과 지도, 문서들을 바탕으로 조목조목조목

위의 독도가 한국 땅이라는 역사적 증거는 일부만을 소개했을 뿐이다. 독도가 한국 영토라고 증명할 수 있는 증거는 수도 없이 많다. 그러나 이영훈은 그러한 증거들을 알지 못하는 척 얼토당토 않은 예를 들어가며 일본 우익의 대변자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p. 301)

2006년 4월 당시 일본의 고이즈미 정권은 독도 영해에 일본 해상 자위대의 탐사선을 보내겠다고 한국에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당시 일본 관방장관이었던 아베 신조의 아이디어였다. 이에 노무현 정부는 독도 영해 12해리에 16척의 경비정을 배치했고, 노무현 대통령은 일본 탐사선이 독도에 오면 배로 밀어 부수라는 명령을 내렸다. 한국의 기세에 놀란 일본 측이 외교차관회담을 제의해 사태는 수습되었고, 이후 일본 배는 독도에서 13해리까지는 접근하지만 독도 영해를 노리는 행위는 하지 않았다. 이렇게 노무현 정권 때 한일 간의 '독도전쟁'이 한 차례 있었고, 한국이 이긴 것과 다름없다. 필자는 노무현 정권의 당시 일본에 대한 대처가 바람직했다고 확신한다. 그런데 이영훈은 당시 일본측에 한국이 대응했던 점을 왜곡했다. 이영훈이 독도는 조용히 관리하는 게 좋다고 했는데, 이 점에 대해서는 필자도 동의한다. 그러나 독도가 한국 영토라는 증거가 없다는 이영훈의 거짓 주장과 한국인이면서 일본 우익의 대변인 역할을 하는 행위는 용납할 수 없다. 일본은 독도 문제를 역사적 사실까지 왜곡해가며 일본식 종족주의로서 교묘하게 거짓말을 만들어 미국에 끊임없이 로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영훈은 알고 있을까? (p. 309)

이영훈의 '문재인 정부가 (위안부 합의를)파기했다'는 주장은 엄연한 거짓이다. 화해치유재단을 해산하여 한일 위안부 합의 파기를 주장해온 것은 문재인 정부가 아니라 '위안부'피해자 여성들과 지원 단체 들이다. 이영훈은 사실을 왜곡하여 문재인 정부가 위안부 합의를 파기했다고 주장한다. 하나하나 왜 사실대로 정직하게 쓰지 않고 일부분만을 취해서 그럴싸하게 거짓을 만들거나 왜곡시켜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걸까. (p. 312)

『반일 종족주의』에서는 그 밖에도 일제강점기 일제에 대한 토지 수탈론이나 쌀 수탈론에 대한 비판, 육군 특별 지원병이나 학도 지원병이 강제로 징병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지원했다는 주장, 백두산 신화 비판, 쇠말뚝 신화 비판, 구 총독부 청사 해체에 대한 비판, 고종 황제 비판, 친일 청산에 대한 비판등이 포함되어 있으나 본서에서는 다루지 않았다. 이에 대해서도 차차 그들의 그릇된 주장을 파고들 생각이다. (p. 316)

여기는 한국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한국의 법이나 관습이 통하는 곳이다. 어느 나라든 자국의 법이 적용된다. 한국에는 한국법이 있다. 그런데도 한국에서 일본법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아니러니하다. 자국을 침략한 나라를 옹호해주고 이상한 논리로 침략국을 감싸는 데도 그것이 옳다고 한다면, 자라나는 아이들이 무엇을 배운단 말인가. 신친일파 청산은 국가의 존망과도 연결된다. 친일 청산은 반드시 이뤄져야 하고 신친일파의 잘못된 사상도 바로잡아야 한다. (p. 318)

개인의 언론 자유는 보장되어야 하지만, 역사 왜곡 행위는 막아야 한다. 이우연을 비롯한 『반일 종족주의』의 저자들은 역사를 왜곡하는 글과 동영상을 서슴지 않고 발표해왔다. 어려운 시대를 사는 지금, 우리는 진실이 무엇인지 분별할 줄 아는 눈이 절실히 필요하다. 본서가 올바른 세상과 밝은 미래를 꿈꾸는 모든 분들께 미약하나마 나침반이 되어줄 수 있다면 더없는 영광이다. (p. 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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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스 오페라
캐서린 M. 발렌티 지음, 이정아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5월
평점 :
절판


두어페이지 읽자마자 이 소설과 아주 흡사한 분위기였던 책이 생각났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이하 '은하수...안내서'로 지칭)

SF도 좋아하고 판타지도 좋아하는 나는 SF의 전설적 작품이라는 '은하수...안내서' 라는 제목을 여러번 들었던 터라 꼭 읽어봐야지 마음먹었던 책이었다. 하지만 절반도 읽지 못한채 덮어야 했다.(내가 지금껏 책을 끝까지 읽지 않고 덮은 경우는 손가락에 꼽을 만큼 적다)

일단, 시대·문화적 공감대를 느낄 수 없었다. 70년대 라디오와 티비프로그램들이 다수 등장하는데 영국의 당시 프로그램들을 내가 어찌 알겠는가;;; 게다가 영미식 유머도 잘 모르는데 블랙유머라니 더더욱 이해가;;;

그리고 줄거리의 흐름을 종잡을 수 없었다. 라디오 연재로 시작한 작품이 인기를 얻으며 연장되서 그런지 개략적으로라도 플롯을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 읽어도읽어도 계속 너무 모르겠기만 한데 그 두꺼운 책을 끝까지 읽는다는 것은 내 능력 밖의 일이었다;;;

하지만 '스페이스 오페라'는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적어도 전체틀은 대충 짐작할 수 있었기에(지구인 밴드소개-외계인의 지구방문-우주적노래경연-지구인의 참가 등등으로 이어지는) 그 다음 내용이 궁금해지면서, 사이사이 다른 이야기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더라도 전체적 맥락을 놓칠듯놓칠듯 놓치지않고 이어갈 수 있었다. 다 읽고 나서도 (비록 '은하수...안내서'를 다 읽진 못했지만) 이 소설은 '은하수...안내서'에 대한 오마주 작품인가 하는 생각이 들만큼 굉장히 유사한 듯 했다.

'옛날, 옛적, 작지만 물이 많으며 쉽게 흥분하는 '지구'라는 이름의 행성에' 로 시작하는 SF 작품이라니! SF 소설이 과거시점이라니!! 독특했다. 각각의 소제목이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출전곡인만큼 이 소설의 흐름이 노래경연대회인것은 어쩌면 당연한 설정인지도 모르겠으나, 그 노래들 또한 굉장히 오래전 곡들이 많아서 미래적SF분위기는 전혀없는 색다른 SF소설로서 초반부터 강렬한 충격을 주었다.

삶은 아름다우면서도 또한 어리석다. 이는 열역학 제2법칙이나 불확실성의 원리나 일요일에는 우편물이 안 온다는 사실처럼 널리 통하는 불가침의 보편 규칙이다. 이 말을 마음 깊이 새기되 절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한, 은하의 역사는 화면에 가사가 나오는 간단한 노래이자, 모든 것을 소멸시키는 불꽃으로 이루어져서 쉽게 따라갈 수 있는 유익하고 친절한 거대 디스코 볼이 된다.

이 책이 바로 그런 디스코 볼이다. 음악을 틀고, 조명을 켜라. (p. 16)

 

다 읽고 나니 위 문단이 이 책의 줄거리였음을 깨달았다. 이 소설은 우주에서 돌아가는 디스코볼 이었다.

우주에 지적 생명체가 지구인 하나뿐이라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은가? 그 넓고 광활하다는 우주에!

그래서 저자는 엄청나게 다양한 지적 생명체들을 등장시킨다. 하도 희한하고 다양한 종족들이 등장하길래 문득 '스페이스 오페라'라는 단어를 검색해 보았더니, 뜻밖에도 소설제목이기 이전에 '우주를 무대로 한 모험담을 다룬 공상 과학 소설 또는 그런 영화' 라는 의미를 지닌 단어였다. 일례로 '스타워즈 시리즈' 같은... 그러고 보니 이 작품속에서 '스타워즈 시리즈'의 여러 장면들을 본것도 같다. 희한한 우주종족들이 나올때마다.

여하튼, 우주에 다양한 지적생명체들이 존재하는데 그들 사이에 '지각력 전쟁'이 있었다. 서로를 파괴하고 소모시키기만 하는 전쟁 끝에 그들은 평화공존의 방법으로 우주적 가요제인 '그랑프리 가요제'를 개최하기로 합의한다. 그리고 우주에 새로운 지적존재가 확인될때마다 이 신규종족은 반드시 참가하여 본인들이 지적생명체임을 확인받아야 한다. 매년 개최되는 이 '그랑프리 가요제'는 당연히 매년 개최되는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를 연상시킨다.

그런데... 이 책에 몰입하기까지는 상당히 긴 시간이 필요했는데 무엇보다 이 작품 특유의 표현방식때문이었다.

예를들어, 이 소설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밴드 '데시벨 존스와 앱솔루트 제로스'의 멤버들에 대한 이야기를 한 구절 옮겨보면

데스와 미라와 오르트에게 땀에 전 헌 밴드스타킹만 한 값어치밖에 안 되는 멜로디 하나와 노래방 마이크를 빼앗긴 고약한 술꾼이 산딸기향 막대사탕을 반쯤 빨아먹다 내뱉은 것 같은 가사 한 줄을 주면, 하룻밤 사이에 마치 혜성에 강타당한 오스카 와일드의 유령이 별을 필로폰처럼 흡입하고 부른 듯한 노래가 탄생했다. 이종 교배된 런던 부동산 시장의 노예가 되어 쓰레기통에 가득 담긴 싸구려 와인을 벌컥벌컥 들이켜면서 새틴 슬립을 입고 화성의 패션쇼를 묵사발로 만들겠다는, 무모하고 미래우주적인 희망을 품은 젊은이들의 절망을 완벽하게 형상화한 매력적이면서도 귀를 찢는 노래 말이다. (p. 27)

음... '은하수...안내서'를 좋아했던 이라면 그 작품과 유사한 이런식의 표현들이 포복절도SF코믹으로 읽혀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영미권의 블랙코미디적 유머에 웃을 수 없었다. 내겐 너무 먼 컬트적 표현들이었다. 우주적 밴드음악을 즐기는 이라면 '데스와 오르트'의 정서에 공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초현실적 밴드음악을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끝내주는 우주인'이라는 앨범으로 인기를 좀 얻나 싶었을때 한 멤버의 사고로 해체된 후 데시벨 존스는 혼자 근근이 음악활동을 해온 데뷔 15년차이지만 정말 아~주 별볼일 없는 신세임을 본인도 알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4월 말 어느 목요일 오후 2시에, 그런 걸 착륙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외계인들이 모든 사람들의 거실로 동시에 착륙했다. 잠시 동안 지구 전체는 달걀 프라이를 만들거나 [카운트다운]을 시청하거나 다양한 장치로 엔도르핀을 반복적으로 솟구치게 하는 게임 같은 것들을 하는 등 저마다 최선을 다해 지구다운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다음 순간 멋진 카펫 위에 엉거주춤 서 있는 2미터 키에, 반은 플라밍고이고 반은 아귀처럼 생긴 군청색 외계인과 맞닥뜨렸다. 크리스털로 뒤덮여 뼛속이 훤히 보이는 가슴에는 깃털이 나 있었고, 머리에는 축축하고 제릴 같은 옥색 꽃이 교회에 가는 할머니처럼 비틀거렸다. 커다랗고 까맣고 톱니처럼 째진 눈이 모든 지구인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p. 42)

'가느다랗고 유리 같은 빨대 형태의 기관이 달린 조류 대가리', '외계에서 온 2미터 높이의 등불 달린 물고기류 플라밍고', '커다랗고 파란새', '아귀플라밍고', '우주에서 온 플라밍고', '길고 긴 갈대 같은 다리' 등으로 표현되는 이 외계인은 '밀크로드를 지혜보다 빨리 달리는 고도 비행사이자 Aaba형 버스의 열네 번째 리릭'이라고 자신의 이름을 소개하며 그냥 '에스카'라고 부르라고 하지만, 데시벨에게 그 외계인은 (많이 이상한) '로드러너'로 보였다. 도저히 머리속으로 상상이 안되서 약간의 검색으로 합성해봤는데,

 

대시벨의 눈에는 (많이 이상한) 로드러너, 만화 '루니툰'에 등장하는 쏜살같이 달리는 그런 새의 한 종류로 보였다. 로드러너를 아귀와 합성시키고 깃털변형과 머리위 기관까지 합성한 형태는 각자 상상해 보는걸로;;;

그렇게 지구인은 일단, '지각력 있는 은하계의 1만 번째' 대상으로써 외계인의 방문을 경혐하게 된 것이다.

성격과 국적과 저마다 느끼는 극한의 공포에 따라 조금씩 변화를 주고 놀라울 만큼 빈번하게 시도한 끝에, 정말로 묵묵히 자기 일만 하고 애써 밤을 넘기려는 가련한 바텐더가 된 에스카 대표를 통해서 이후 90여 분에 걸쳐 지구의 모든 거실에서는 거의 똑같은 대화가 오고 갔다. (p. 57)

자, 여러분 새로운 단어에 겁먹을 우리가 아니죠, 그렇죠? 물론이죠! 공부는 재밌다! '버스verse'는 그냥 당신들 언어 중에서 우리가 스스로를 지칭하는 말과 가장 가까운 단어라고 보면 돼요. 오늘 수업에서는 아주 재밌는 에스카의 계층사회학을 공부해 볼 거예요! 함께 새끼를 기르는 한 쌍과 이들의 새끼는 버스, 어른 새끼들은 리릭스, 지배계급은 코러스, 프롤레타리아는 키, 그리고 상업에 종사하는 이들은 브리지 랍니다. 어떤 행성에 살든 모든 에스카를 통칭해서 콰이어라고 부른답니다. (p. 58)

하나의 존재이지만 전지구에서 동시에 듣는이에게 친숙한 각각의 다른 목소리로 자신이 어떤 외계인임을 설명하는 대화가 오간다. 외계인에게도 지구인과 별다를 것 없는 사회계층이 존재한다는 부분을 읽으며 '그리스 고전'을 공부했다는 저자의 이력이 새삼 생각났다. 비슷한 계층구조와 평화의 방법으로 합의한 노래경연은 어떻게 보면 고대사회와 그 사회에서 평화를 합의한 올림픽과도 닮아 있었다.

당신네 말로 풀어서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아. 인간은 우리의 생활 방식을 위협할 수 있는 무시무시하고 고통에 걸신들려 있으며 오염을 내뿜는 우주 괴물이라는 말씀. 근데 자기야, 그런 게 영화에서는 보통 어떻게 그려질까? 적어도 우리는 당신들이 우리가 틀렸다는 걸 납득시켜 볼 기회를 주려는 거잖아. 당신들은 나팔총으로 마지막 남은 도도새를 쏴 죽이기 전에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 새들에게 물어보지 않았을 테지. 하지만 당신들은 운 좋은 거야, 우리는 당신들보다 나은 존재니까. 우리는 괴물이 아니거든. 우리에게는 나름의 절차가 있어. 그리고 그 절차대로 잘 돌아가다 보니까 우리는 절차에서 벗어나지 않지. 당신들은 아마 그런 절차를 기업에서 내리는 지시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 잘리고 싶지 않으면 따라야 하는 거런 지시 말이야.

인류여, 힘내시라! 당신들은 우주에서 가장 인기 있는 나이트클럽에 예약되었어요! 당신들은 유행의 첨단을 걷는 종들이 은하계 최고상을 받기 위해 모두 모이는 아름다운 리토스트 행성에 인류 대표를 보낼 거예요. (p. 69)

우리는 다 함께 힘과 지적 능력과 각양각색의 재주를 두루 갖춰야 나갈 수 있는 명예로운 콘테스트에 참가할 거예요. 당신들이 인간의 불유쾌한 부분의 합보다 크다는 것을 우리에게 증명해 줘요. 부끄러운 인류 역사에서 말 그대로 뭐든 배웠다는 것을 증명해 봐요. 인간 대표가 맨 꼴찌를 하지 않는 한, 인류는 이미 하늘에서 열리고 있는 파티에 함께하게 될 거예요. 하지만 음치에다 머리가 거꾸로 붙어 있는 하찮기 그지없는 단 하나의 우주 문명조차도 이기지 못한다면 인류의 집단적 존재에 대한 모든 기억을 친히 대조 확인하여 파일에 보관한 뒤 당신들 행성의 자원을 상냥하게 빼내가서 결국 인간 종이 완전히 없어지지 않을까 싶어요. 인간의 유기물질은 생물권으로 다시 매끄럽게 통합되어 당신네 행성은 편안히 쉬면서 또다시 몇십억 년이 흐른 뒤 돌고래 같은 것들로 재기하기만을 꿈꾸겠지요. 정말 재밌지 않아요? (p. 70)

그냥 노래경연대회가 아니었다. 지구문명의 존폐가 걸린 콘테스트! 인류의 대표가 될 뮤지션에게 막중한 임무가 주어졌다. 하지만 외계인은 이미 사전조사를 거쳐 후보리스트를 작성해왔다. 그런데 그 명단의 맨 아래에 데시벨 존스의 밴드 이름이 있었고, 그 위의 다른 모든 후보들은 이미 죽고 없는 사람들이었다. 당연히 데시벨 존스의 밴드가 인류 대표가 되었다! 갑자기 엄청난 책임을 맡게된 데시벨에게 각종 정부기관들이 달려들지만 로드러너는 순식간에 훌쩍 이 밴드를 데리고 지구를 떠나버린다. 그야말로 뿅! 하고 순삭.

외계종족들을 설명하며 여기저기 블랙코미디가 난무하지만, 그 사이사이 지구인의 역사를 섞어 놓았다. 1회 그랑프리 대상을 받은 종족은 외계전쟁에서 철저히 중립을 지켰던 외계인이었는데, 유로송콘테스트 1회 대상이 스위스 였다. 식민지와 분리주의파와 사소한 사건을 빌미로 터지는 전쟁들에 대해서도 '작고 물이 많으며 쉽게 흥분하는 지구'의 역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와 밝히길 바라지 않는 모든 시대를 통틀어 수백만에 이르는 우주여행 종족들이 보유한 우주선의 공통점은, 제작하는 것보다 기르는 게 더 쉽고 비용이 덜 들며 더 재미있다는 점이다. (p. 171)

이 소설이 컬트적으로 느껴지는 것중 하나가 바로 우주선 이다. 광속보다 빠르게 우주 여기저기를 넘나드는 우주선은 스테이크를 연료로 먹는 '고기 우주선' 이다!

데시벨 존스는 언제나 현재를 살았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오마르 잘리쉬칸은 늘 불확실한 미래를 살았고, 미라는 항상 자신만의 생각에 빠져 살며 다른 사람들은 가끔씩만 들어올 수 있게 하는 것 같았다. 그것도 미리 예고한 광범위한 오염 제거 의식을 거치고 난 뒤에만 말이다. (p. 176)

밴드 멤버는 3명이었으나, 미라는 없다. 미라의 사고 이후 남은 두 멤버는 사이가 멀어졌다. 미라에 대한 책임감은 서로에 대한 왜곡으로 표현됐다. 둘은 몇년만에 얼굴을 마주하기 무섭게 외계행성에 함께 와 있는 처지다. 그렇게 오랜만에 대화를 하게 된 두사람은 서로의 과거부터 해결해야 했다. 하지만...

긴 침묵이 흘렀다. 그 안에 드러누울 수 있을 정도로 길었고, 말할 줄 안다는 사실조차 잊을 만큼 오래갔다.

"있지, 우린 없어"

"뭐가 없다는 거야 오르트?"

"지각력. 지각력이 있었다면 그런 일이 일어나게 하지도 않았을 거야. 그날 밤이 오게도, 이후 그렇게 지나가게도 하지 않았을 거야. 나 역시 지각력이 없어. 지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미라가 운전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을 테니까" (p. 215)

인류의 지각력을 증명하기 위해 뽑혀온 대표들이지만 이들은 서로의 지각력 없음을 확인할 수 있었을 뿐이다. 갑자기 노래를 만들어야 할 시간도 촉박하고 서로의 마음에 다가갈 시간도 촉박하다. 과거 인간이 만든 작품들을 베끼려고 모든 명작시, 모든 대사, 모든 불멸의 약강 5보격을 전치사 몇 개로 연결해 문장을 만들어 보려 하지만... 최악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지구에서 모든 인류가 티비중계로 보고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경연대회 날이 다가온다.

데시벨은 데이비드 보위가 1975년에 [지기 스타더스트]앨범 촬영 때 입었던 딱 붙는 금속성의 망고와 피스타치오와 코코넛 색깔 줄무늬 바지를 입고 있는 것 같았다. 더 나아가 작은 블록체로 자신에 대한 최악의 평들을 전부 인쇄해 넣은 연노랑 스타킹을 무릎까지 올라오게 신은 뒤 그 위에 버클까지 채웠다. 또한 외계인의 피부와 크게 다르지 않으면서 베르사체가 어디선가 구해 와서 자른 뒤 검정색 반짝이를 가득 붙인 듯한 재료로 만든 야성적인 언더버스트 코르셋 밑으로, 헐렁하고 약간 해적 옷처럼 보이는 심야 네온불빛 색깔의 셔츠가 살짝 삐져나와 매혹을 더했다. 천을 꼬아 꿰매 만든 넥타이스카프의 레이스 단은 과거에 가장 소란스러운 무대에 섰을 때 누군가 던져 준 레이스 속옷에서 떼어내 댄 것이었다. (p. 278)

이 뒤로도 한참 더 길게 이어지는 의상의 표현이 도저히 어떤 모습인지 그려지지 않아서 '지기 스타더스트'를 검색해 보았는데, 이런! 데시벨은 '지기 스타더스트' 즉 데이비드 보위의 아바타 라고 할 수 있는 화성에서 온 외계인 '지기 스타더스트' 에 대한 오마주였다. '지기 스타더스트' 로서의 데이비드 보위 의상들을 보니 대충 데시벨의 의상도 이해가 되는 것 같기도 하다. 데이비드 보위를 좋아했다면 이 소설이 환상적이고 이 소설에서 묘사되는 음악이 상상이 됐을 것도 같다. 하지만 역시 이또한 내게는 너무 먼 컬트적 문화였다;;;

 

                             

조금씩 아주 솔직한 모습을 드러내는 게 비결이었다. 누구도 완벽한 프로 뮤지션을 좋아하지 않았다. 심지어 다른 뮤지션들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좀 더 현실적이고 좀 더 원초적이고 지난 시절보다 좀 더 망가진 모습을 원했다. 그래야 그의 공연을 예약하고 쓰레기 같은 그의 물건들을 사고 그를 홍보하고 그와 섹스를 하는 것에 대해 관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래야 서서히 좀 더 인간적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데시벨이 앱솔루트 제로스와 단 하루의 영광을 누리면서 터득한 방정식이었다. 고통이 농담이 되고, 농담이 듣기 좋은 게 되고, 듣기 좋은 게 기쁨이 되고, 기쁨이 수익이 되고, 수익이 안전장치가 되고, 그러면 튀김 가게에서 하루 더 일하지 않아도 되고 막막함에서 하루 더 멀어졌다. 데스는 지구의 운명이 술집에서 써먹는 작업용 멘트 같아 웃음을 터뜨렸다. (p. 282)

지구에서 하던 데로 외계에서 행동하는 데시벨.

지구에서 하던 데로 영국인 답게 행동하는 오르트.

하지만 우주외계인들 역시 그들 하던데로 행동했으니,

너희도 이미 봤듯 이제부터는 여기 있는 거의 모두가 너희를 제거하려 하거나, 적어도 너희를 움직이지 못하게 하거나, 주의를 흐트러트리거나, 유혹하거나, 부담감을 주입하려 하거나, 아니면 아예 꼼짝 못 하게 붙들어 놓으려고 할 거야. 사실상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거라고. 너희도 언제든 되갚아 줄 수 있으니 꼭 해야 해. 우리 중 한 종족을 쓰러트리면 너희 종족의 미래가 보장되는 거니까. 하지만 우리는 기대하지 않을 거야. 인간은 해부학적으로 공격력이 굉장히 부족한 종족이야. 너희들은 그렇게 뭉뚝하고 뚫고 들어갈 수 있는 데다 멋없는 피부색을 지닌 상태를 넘어서기 힘들 거라고 봐. 너희는 공격하기 가장 쉬운 먹잇감이야. (p. 311)

16일이 흘러갔다. 작고 물이 많고 쉽게 흥분하는 지구라는 세상은 비존재의 허무주의를 마주하는 일에 권태를 느끼기 시작했다. 인류는 그런 상황을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p. 321)

지구는 만물의 종말이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삶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p. 322)

온갖 괴상망측한 모습의 외계인들이 인류대표를 무시하고 얕보고 깔보고, 지구에서는 이러한 인류대표들의 모습을 보며 싸우고 논쟁하고 내기를 걸고 급기야 다른 외계종족을 응원하게까지 되는데... 인류는 지적생명체임을 인정받을 수 있게 될까?

이 대회의 핵심이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를 보여 주고, 우리가 준비됐는지를 입증하고, 우리가 근본적으로 짐승보다 나은 존재인지 아닌지를 가리는 거라면... 내가 보기에는 오히려 지각력에 반하는 대회가 아닐까 싶어. 난 모두를 위해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없어. 네페르티부터 호메로스와 아퀴나스와 멋쟁이 브러멜과 마리 퀴리를 포함해 니코와 수지와 나까지 우리 모두를 위해서 말이지. 난 지구의 마지막 인간이 될 자질이 없어. 난 그냥 평범한 남자야. 할 수 없다고. 난 빌어먹을 카인이 아냐. 난 ㅚ초로 외계인을 죽인 놈이 되지 않을 거야. 설령 클리피라도 말이지. 근데 클리피는 재수 없긴 해 (p. 354)

데시벨은 환락을 즐기고 오르트는 좌절한다. 이들은 과연 경연대회를 치를 수 있을까?

번쩍거리는 디스코볼을 보는것마냥 정신없는 외계종족들을 헤매다 보면 그랑프리 콘테스트는 끝나있다.

 

모든 게 그냥 완전 엉망이 될 때가 있다! (p. 408)

'작가의 말'에서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 대한 감사 인사를,

'이 얼토당토않은 아이디어', '소설이라기 보다는 가출 청소년 기행담에 가깝다고 할' 이라고 자신의 작품을 표현하며 그러한 이 책을 써포트해준 에이전시에 대한 감사 인사를,

''은하수...안내서'가 없었다면 이 책은 그저 한줄기 생각으로 사라지고 말았을 것이다' 라며 '은하수...안내서'의 저자에 대한 경외의 심정을,

'우리가 가장 사랑한 우주 괴짜인 보위' 는 '죽지 않았고 잊히지 않았다. 늘 그랬듯 다른 행성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라는 표현을

먼저 읽었다면

이 책을 더 제대로 즐기며 읽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가 뭔지 몰랐고, '은하수...안내서'를 끝까지 읽지 못했으며, '우주 괴짜인 보위'를 알지 못했기에, 겨우겨우 줄거리를 이어가며 이 책을 읽을 수밖에 없었다.

'스타워즈' 시리즈의 외계종족들이 반갑고, '화성에서 온 지기 스타더스트'를 아끼며, '은하수...안내서'를 재밌게 읽었던 이라면 이 작품을 나보다 훨씬 감명깊게 읽으며, 작가 특유의 '기발한 상상이 폭발하는 코믹SF'로서 즐길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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